2016년 3월 8일 화요일

제주, 지금 우리는 행복할까요?

[총선아바타_제주종합편]제주, 지금 우리는 행복할까요?
총선아바타의 중심은 4.13총선입니다.
임병도 | 2016-03-09 08:49:5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3일간의 총선아바타의 첫 번째 여정은 제주였습니다. 제주에 사는 아이엠피터는 서울 취재가 끝나자마자 전 날 밤에 내려왔습니다. 3월 3일 취재팀은 우여곡절 끝에 제주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걱정이 있었지만, 2박 3일 간의 제주 취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총선아바타 제주편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환상 이상으로 고민과 아픔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7년째 제주에 사는 아이엠피터조차 이번 취재를 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제주의 속살을 보기도 했습니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열풍’,’전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이주민이 제일 많이 늘어난 섬’ 등 제주를 아름답게 보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여행객이 늘어나는 만큼 발생하는 교통사고와 공항 문제, 지역 주민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해군기지와 제2공항, 거대 자본에만 의존하는 중산간개발,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벌어지는 쓰레기 대란과 환경 문제, 역사를 뒤집는 제주 4.3사건 재심사 등 제주 곳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그 정도 아픔과 상처가 없는 땅이 우리나라에 없는 곳이 있느냐고. 맞습니다. 대한민국 땅 어디에도 아픔과 고민은 다 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그 고통을 상식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나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는 왜 늘 무시당하나요?
총선아바타의 중심은 4.13총선입니다. 그러나 제주만큼은 선거를 왜 하는지 우리의 본질적인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헌법에는 개인의 행복이 곧 국가의 기본이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의 행복지수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제주에 살지만, 제주를 취재하면서 느낀 결론은 ‘제주,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총선아바타 제주 종합편을 보시면서 제주의 고민을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는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008 

비정규직의 대표자, 이진희를 만나다







본 코너는 4.13 총선특집인 <저평가 우량주를 찾아서>와 함께 
<20대 총선 잇(it)후보> 기획 중 하나다.

힘닿는 데까지 열쒸미 발굴할 예정이니,
독자분들도 주저 없이 추천해 주시라.






오늘은 딴지 선정 ‘20대 총선 잇(it) 후보’로 더불어민주당에 비례후보 공천을 신청한 전국시설노조 이진희 위원장을 소개한다. 생소하겠지만, 수십 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활동을 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직함은 위원장이지만 동시에 아파트 관리업체의 전기기사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아파트 경비, 청소 등 시설 관리 분야는 노동권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도 노동 인권 침해의 대표적 사각지대로 불린다. 빈번한 해고로 인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일부 몰지각한 주민에 의한 인격 테러를 당하는 을(乙) 중에 을 직종이다.

얼마 전 부산의 모 아파트에서 동대표가 경비원에게 90도 인사를 강요하여, 엘리베이터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에게 경비원이 허리를 굽힌 사진은 이런 현실을 가장 극명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에 앞서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주민의 폭언에 시달린 끝에 분신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그해 말 경비원들은 모조리 해고되었다.

이진희는 이들 비정규직을 대표해 더민주의 비례대표 후보 공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금까지의 배경만 보자면 지역구 국회의원의 대표성 한계를 보완해 계층과 직능을 대변하기 위한 비례대표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는 요건은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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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 리버럴,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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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비례 대표 공모에 응모했는데, 느낌이 어떤가?

이 : 비례대표는 대중적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실감이 안 간다. 취업 이력서를 내고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심정에 더 가깝다. 서류가 통과되면 면접인데, 이번 인터뷰를 모의 면접이라 생각하고 있다.(웃음)

 : 그럼 면접에 대비하여 강도 높은 압박 인터뷰를 전개하겠다.(웃음) 삶의 이력을 보니 66년생에 아주대 경제학과를 중퇴하셨다. 운동권 학생이었는가?

이 : 80년대 시절 대학생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다 비슷한 경로를 통해 데모도 하고, 학생 운동하지 않았나? 특별한 이력이라고 볼 수도 없다.


노동운동 대신 생계문제로 전기기사 취업

 : 근데 왜 4학년 때 중퇴하셨나? 1년 남았는데... 그 동안 낸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가?

이 : 학생 시절에 공부 대신 데모만 했으니 졸업장이 있었다면 학교에 미안할 일이다. 평생 노동운동하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졸업장은 오히려 부담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대졸 출신이 흔하고, 또 그들이 생계를 위해 생산직에 종사하는 게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오히려 대학 출신이 생산직에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운동권이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측에서 경계를 많이 했다. 그래서 졸업장을 굳이 따야겠다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

 : 후회하지 않나?

이 : 후회 없다. 지금까지 인생이 후회되지 않는데, 대학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그래서 결심대로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는가?

이 : 성남 공단에 있는 한 업체에 취업했다. 한 1년간 프레스 일을 했는데, 92년도 총선 때 창당된 민중당에서 후보를 도울 일손이 너무 필요하다고 해, 일을 그만두고 선거를 도왔다. 그러나 민중당이 3% 지지율을 받지 못해 해산된 뒤 다소 공백기가 있었다. 당시 분당 신도시가 막 들어설 때였는데, 아파트 관리소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당분간 생계 방편으로 생각하고 들어갔다. 마침 전기기사 자격증이 있고 젊어서 쉽게 취업되었다.

 : 그럼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취업한 것이 아니었는가?

이 : 그렇다. 사실 노동운동을 하러 들어간 곳은 1년 남짓 일하다 선거 때문에 그냥 나왔고, 생계를 위해 입사했던 아파트 관리업체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게 될 줄은 당시에 생각도 못 했다. 그 당시 노동운동하면 공장 생산직을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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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계속 거기서 근무하고 있는가?

이 : 그렇다. 생계를 위해 취업해 여기서 노조활동을 한 것은 내 자신에게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 다행이라고? 어떤 점에서?

이 : 사실 과거 80년대 운동권들이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위장 취업하다 보면, 아무래도 의식화라는 목적으로 들어갔으니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일종의 선민의식이 생겼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를 의식화하겠다는 목적 없이 입사하여 같은 처지에서 일했기 때문에, 운동권으로서의 오만함 같은 것은 덜했던 것 같다.

 : 위장취업해서 노동운동했던 운동권들에게 그런 심리가 어느 정도 있었단 말인가?

이 : 뭐,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마르크스주의 서적 몇 권이랑 문건을 읽은 먹물 20대 청년이 수십 년 짬밥의 노동자들을 지도하러 현장에 들어갔다는 것이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이다.

 : 그래도 그들 때문에 노동운동이 발전했다는 면도 있지 않을까?

이 : 물론 훌륭한 노동운동가로 성장한 사람도 있고, 또 겸허하게 배우는 자세를 가졌던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이 과연 노동운동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소모적인 정파라든가, 대중과 동떨어진 운동권 문화라든가 하는 부정적인 면도 같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들어가면 노동인권법 제정하겠다.”

 : 이 위원장은 시설관리직 노동자이기도 한데, 최근 경비원들의 처지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부산의 아파트 경비원이 동 대표에 의해 모든 주민에게 출근길 인사를 강요당한 사건이 있었다. 또 폭언에 시달린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는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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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모든 국민들이 분노를 감추지 않았던 사건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런 황당한 갑질을 비난할 만큼 건전한 상식을 갖추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주민 대부분은 시설 관리인들과 이웃처럼 인간적 유대 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 사실, 출근길 인사를 강요한 그 사진을 찍어 SNS에 고발한 것도 그 아파트 주민이다.

일부 입주민 대표자 몇몇이 그런 횡포를 부리는 것이 문제다. 그런 갑질에 관리인이 저항하기도 힘들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그런 횡포가 있는지조차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나서서 방어해주기도 쉽지 않다.

때문에 피고용인에 대한 인격적 모독과 같은 일에 대해서는 어떤 제도적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 비단 아파트 관리직만이 아니라 서비스직, 특히 감정 노동자들에 대한 인격 모독이 너무나 심하고 빈번하다. 스튜어디스에 대한 라면상무 사건에서 보듯이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 폭언과 폭행 모욕을 주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회사는 고객의 모든 요구에도 감내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거의 서비스직 노동자를 노예 대하듯 하는 비상식적인 일마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달리 서열문화가 강해서 그런지 다른 나라보다 심한 것 같다.

오죽하면 감정노동자의 약 40%가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겠는가? 그런대도 갑질 횡포가 드러나면 도덕적인 비난만 한때 들끓고 만다.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국회 들어가면 이들을 보호하는 노동인권법을 제정하여, 상식을 벗어난 갑질 횡포에 대해 회사가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를 지우게 하고, 민형사상 배상 제도를 도입토록 하고 싶다. 그것만은 꼭 하고 싶다.


아파트 노조위원장, 아파트 주민대표 되다

 : 이진희 위원장은 어디에 살고 있나? 아파트인가 주택인가?

이 : 아파트다.

 : 아파트 주민으로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인들을 보면 남다르게 느껴지나?

이 : 아파트 주민일 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민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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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음) 이거 정말 아주 아이러니하다. 거주지와 근무지가 다르지만 어쨌든 노동자면서 동시에 사용자인 셈인데, 관리비 절감 차원에서 경비원을 해고하고 자동 방범 시스템 도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 경비를 해고하고 방범 시스템 도입이 과연 주민복리에 더 좋은지는 의문이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주민들의 공정한 판단을 구해야 하지 않겠나? 인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주민들은 절감되는 관리 비용보다 경비원분들을 통해 얻는 주거 편익을 더 가치 있게 보는 것 같다. 주민투표하면 부결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자동방범 시스템 업자들이 주민 대표에게 지속적으로 로비하는 영향이 크다고 본다. 얼마 전 가양동 아파트에서 그런 시스템 도입을 빌미로 경비원 해고를 강행했던 입주자 대표와 주민 대표와 갈등만 보더라도 그렇다. 주민 투표에서 두 차례나 압도적으로 부결되었는데도 그걸 강행하는 걸 보면, 몇 천 원 관리비 아끼겠다는 것이 입주자 대표의 본심은 아닌 것 같다.

 : 택배 받아주고,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일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닌데..

이 : 사실 택배, 쓰레기 분리수거는 경비원의 고유 업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주민 편의를 위해 그 일을 해준 것이 이제 거의 고유 업무가 되다시피 한 것이다. 문제가 되었던 가양동 아파트 경비원들은 해고 반대 기자회견을 하러 가는 도중에도 단지에 널린 쓰레기를 줍고, 분리수거 포대를 종류별로 정리했던 사람들이다.


최저 임금인상 부담스러워하는 경비원

 : 해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파트 경비원들과 청소원들 임금이 올라가면 주민들 부담이 약간이라도 늘어날 텐데... 이진희 위원장이 주민 대표로 있는 아파트에서는 관리인들의 임금을 얼마나 인상했나?

이 :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더 높였다. 10% 넘는 수준이다.

 : 주민들 반발이 있지 않은가?

이 :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 아파트단지 세대가 300세대가 안 되는데도 불과 몇천 원 인상에 그친다. 주로 시간제 근무하는 분이 많아 임금 자체가 높지도 않다. 근데 사실 경비업무하시는 분들 중에는 높은 임금 인상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있다.

 : 왜 그런가?

이 : 시설관리 업무는 고령자들이 많다. 짤리면 어디서 일자리 구하겠나, 그런 불안이 가장 크다. 임금 인상 때문에 큰 부담을 느껴 해고하지 않을까 불안하여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을 싫어하는 분들까지 생길 정도다. 그래서 임금 수준보다 고용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 본인은 비정규직 대표로서 나왔는데, 그동안 비정규직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해왔나?

이 : 전국시설관리노조 조합원들 모두가 외주 용역업체에 속해 있는 분들이다. 내 자신이 비정규직 직원으로서 우리 조합원들을 대표해 20년 넘게 활동해 왔다.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하고 교섭한 것은 노조위원장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진보정당에 결합해서 제도 개선 투쟁에도 앞장서왔다.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경비원에게도 최저임금이 전면 적용될 수 있도록 입법 청원을 하고, 원청업체의 사용자성 인정, 위탁관리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포괄임금제 철폐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안 사항을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포함시키도록 압박해 왔다.

리 : 용역업체, 외주.. 이런 업체에 근무하면 모두 비정규직인가?

이 : 정규직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붙는다. 첫째 정해진 기간이 없고, 둘째 사용사업주와 직접 고용하는 자가 정규직이다. 이런 조건의 정규직이 아닌 모든 피고용인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리 : 그러니까 간접고용은 고용자와 사용자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정규직 조건에서 벗어나 있는 건가?

이 : 그렇다. 예전에는 어떤 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근무한다면 그 사업장 소속 노동자가 되는 것이 당연했지만, 기간제법, 파견법이 만들어지면서 갑자기 고용관행이 천지개벽처럼 바뀌어서 소속된 회사와 근무하는 사업장이 별개로 되는 일이 생겼다. 과거에는 그런 경우는 아주 특수한 직군에만 있었는데 이제 아웃소싱이 보편화되어서 상시적인 고용불안 체제다.


비정규직, 출구 규제가 아니라 입구 규제해야

리 : 최근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법을 확대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 : 그것만큼은 단호히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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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 근데 2년 제한을 둔 현행 비정규직법이 통과될 때도 2년마다 해고하라는 법이라고 노무현 정부 때 노동계가 엄청 반대하지 않았나?

이 : 맞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에 제한을 두는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원래 2년이라는 기간 제한을 둔 것은 그 정도 근무하면 상시, 지속적인 업무로 간주하여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것이 도입 취지인데 현실을 보면 얼마나 안이했던 생각인가? 그런데 그걸 오히려 4년으로 더 연장시키겠다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렇게 출구 규제를 할 것이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규제해야 한다.

리 : 입구 규제.

이 : 처음부터 사용제한을 두어야 한다. 이게 상시적인지 일시적인 일인지 아닌지는 대부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가령 은행 창구일은 일시적인 일이겠는가? 그래서 출구 규제가 아닌 입구 규제를 해야 한다.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고용 안정은 조직이나 직무에 대한 몰입을 끌어내기 위한 기본이다. 그래야 생산성도 좋아지고, 일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 아닌가?

리 : 파견 남발도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 맞다. 아웃소싱이 직접 고용보다 비용절감에서 얼마나 효과 있는지도 의문이다. 내가 있는 업종만 보더라도 그렇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근무 장소와 일은 똑같은데 사장만 바뀐 꼴이다. 그런데 임금은 푹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원청회사가 아웃소싱업체에 주는 이윤을 생각하면 인건비 총액이 많이 주는 건 아니다. 결국 중간 아웃소싱업체에서 노동자 임금을 중간에서 갈취하는 효과밖에 더 있나? 공공기관의 경우는 직원 사우회가 아웃소싱업체로 둔갑해 퇴직한 임직원들의 노후보장 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파견 노동자가 그들 노후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셈이다. 조폭 수준의 중간 갈취다. 말이 아웃소싱이지 사실상 임금 가로채기 인력관리업체나 다를 바 없다. 간접고용이라는 이름으로 임금을 중간착취가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박정희 시대 때도 중간착취를 법으로 금지했는데, 노동문제로만 본다면 그 시절보다 훨씬 퇴보한 셈이다.

리 : 맞다. 아웃소싱은 사실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소속이 서로 달라 소통도 잘 안 되고, 이직률도 높다. 이것이 제품의 질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령 고객 상담 부문이 많이 외주화되는데, 고객 의견이 제품 개발에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 : 그렇다. 비정규직의 폐해는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지만 결국엔 회사의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반드시 효율적이라고만 볼 수 없다. 비정규직 폐해는 너무나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이 문제를 두고서는 대한민국 미래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 해고가 트렌드

리 : 사실 이전에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하게 평생 고용 비슷한 체제였는데,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진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아닌가?

이 : 바로 그렇다.

리 : 시설관리분야도 IMF 위기 영향을 많이 받았나?

이 : 물론이다. 그때 생각하면 기가 막힌 게... 해고가 마치 트렌드처럼 퍼져나갔다. 물론 많은 기업이 도산하거나 위기에 처해서 노동자가 무더기로 짤려 나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던 곳도 많았다. 그런 곳에서 정리해고야 불가피하겠지만, 문제는 그런 영향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도 해고를 마치 선진 경영의 기법으로 여기고 마구잡이로 할 때도 많았다.

리 : 그런 사회 분위기 기억난다. 미국의 해고왕 GE의 잭웰치의 경영론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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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ORTUNE>

이 : 가령 내가 근무하던 분당의 A 아파트 단지에서 관리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거기서 수십 년 근무한 직원들을 다 같이 짤랐다. 그러면 그 일을 대체할 사람이 누군가가 또 와야 하지 않나? 그러면 옆에 있는 B단지, C단지 근무자들을 채용한다. 마치 순환 근무하듯 서로 돌아가며 해고하고 채용한다. 그러면 새로 채용된 사람들은 그 아파트 보일러실부터 구조까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아가야 하지 않겠나?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해고가 민간 기관만이 아니라,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비일비재했다.

제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경기지역 전체로 노조를 조직하고, 마침내 전국 조직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바로 IMF 외환위기 때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정리해고 때문이었다. 노조 결성식을 위해 부산에 갔던 날 부산대에서 시설관리직원들이 용역업체와 계약해지와 동시에 모두 해고되었다. 해고통지서를 받아들고서 어쩔 줄 모르며 눈물만 훔치던 아주머니들 손을 붙잡고 그날 당일 총장실 점거투쟁에 들어갔다. 몇 달 동안 투쟁한 끝에 복직되었지만, 참 생각해보면 국립대학이란 곳에서도 그렇게 몰상식적으로 무분별하게 해고한다는 것이 참담했다.

리 : 그러니까 IMF로 신자유주의적 광풍이 불면서, 노동 유연성이 글로벌스탠다드로 제시되고...

이 : 그렇다.

리 : 그때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이 아니었나? 민주 진보 정권에서 신자유주의 앞장서 도입한 셈인데... 비록 집권이 오래전 일이지만, 바로 그 정당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건 모순 아닌가?

이 :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의 과오랄까 그런 한계에 대해서는 단호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리 : IMF가 강요한 구조조정 같은 거?

이 : 사실 외환위기가 없더라도 IMF가 요구한 일련의 정책들은 당시 정치권 모두가 추진하려던 정책이었다. 민영화, 재벌개혁, 주주 자본주의, 노동 유연화, 개방화, 규제 완화 그런 것들... 90년대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자.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10년 되고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화세력은 그동안 국가폭력에 저항해왔기 국가 기구라든가, 국가 주도 정책 전반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반대 편향으로 민영화 같은 것을 민주화나 자유화 연장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다. 당시 세계정세도 비슷했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지면서 시장주의, 자유주의가 세계적인 대세였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진영도 제3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물결을 받아들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펼친 정책도 당시 이러한 시대 흐름을 쫓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이라고 무조건 규정할 수만은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리 : 그래도 오늘날 양극화가 거기서 비롯되지 않았나?

이 : 물론이다. 그 시대 노동자와 서민들이 겪은 피해는 말할 수 없다. 빈부격차 심화는 세계적 현상으로도 번졌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시작된 이런 신자유주의 물결은 이제 곧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의 샌더스 열풍, 영국 노동당 코빈의 등장, 피케티 현상 등은 아주 상징적인 사건들 아닌가?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 복지 정책이 최대 이슈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 이명박의 ‘부자 되세요’ 선거 분위기와 비교한다면 상전벽해의 변화다. 미국이나 유럽이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후, 40년대부터 사회민주주의적인 가치로서 번영의 시기를 이끌었던 그런 시대적 분위기와 흡사해졌다.


신자유주의 시대 종말, 사회민주주의 시대 다시 찾아와

리 : 더민주당이 사회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근거는 있나?

이 : 새누리당이 시장주의로 방향을 가져가고 있다면, 그와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사회민주적 가치를 자기 정체성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 :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뚜렷이 내세우는 건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 아닌가? 왜 진보정당 노선을 취하지 않은가?

이 :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현행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양당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학에서 뒤베르제 법칙이라고도 한다는데 어쨌든, 제3의 정당은 한국에서는 안 된다. 우리와 비슷한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갖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도 백 년 넘게 양당제의 정치구조를 갖게 된 것도 다 그 때문 아닌가.

그래서 미국의 진보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민주당으로 들어가서 왼쪽을 차지했다. 미국 민주당은 대공황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원래 남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 보수정당이었는데, 대공황을 거치며 노동자 흑인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완전히 성격이 변화되지 않았나?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 민주당에서 샌더스가 뜬금없이 나타난 게 아니다. 루즈벨트 시절부터 뿌리가 있는 사회민주주의 풀뿌리 그룹이 민주당 내부로 들어갔고 그런 조직들이 마침내 샌더스로 발아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조직이나 개인이라면 우리도 그런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한국의 제1야당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전략적으로 바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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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과연 한국의 진보정당들이 과연 진보적인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통진당 사태를 보더라도 그렇지만 민주노동당 시절 정파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우리 국민의 상식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리고 사실 정의당이 내건 정책과 이념이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정강정책과 얼마나 차별화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리 : 지금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켰다. 이에 대한 생각은?

이 :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한다. 필리버스터 중단이 테러방지법 독소조항을 방임하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지속할 경우 선거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 헌정 중단이라는 사태를 맞이할 수 있는 우려 때문에 불가피했을 것이라 이해한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웠다는 것은 좀 유감이다.

리 : 김종인 체제가 공천에 전권을 행사하고, 운동권 대신 전문성 있는 인사를 중용하겠다고 하는데 본인에게는 공천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 하하.. 비례대표 도입 취지대로 공천한다면 유리할 것도 불리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비례대표는 지역 대표의 한계를 보완해 다양한 계층과 직능 대표를 선출하여 국민의 대표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난번 문재인 대표가 만들었던 혁신공천위원회에서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의 사회적 약자를 우선 배려하겠다는 공천 세칙은 비례 대표제 원리에 충실한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대의기구 국회는 국민을 닮아야 한다. 그런데 19대 국회를 보면 법조인 비율이 15%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15%가 변호사나 판검사인가? 운동권도 심각하지만 문제는 특정 직업군이 이렇게 국회를 과다하게 점유하는 것 자체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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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타파>

제가 비정규직을 대표해서 나왔는데, 저보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다른 분이 비정규직 대표가 된다면 아무런 유감이 없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에 850만 비정규직을 위한 자리가 단 한 석도 남아 있지 않다면 정체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을 당으로 조직해 정권교체에 공헌할 터

리 : 맞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양극화 문제와 직결되는데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이렇게 적다면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것이다.

이 :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대신해주서 정말 고맙다. 사실 정규직 비정규직, 대기업 중소기업과 같은 이중화된 노동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 미래는 없다. 이 심각한 노동의 이중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남은 생을 다 바치고 싶다.

리 : 끝으로 본인이 정치인으로서 어떤 전망을 갖고 있는가?

이 : 우선 당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 목표다. 우리 당 지지층을 보면 고학력, 젊은층, 전문직 등에서 지지율이 높지만, 상대적으로 저소득층과 비정규직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이분들과 함께 정권교체에 기여하고 싶다.

리 : 장시간 인터뷰 감사하다.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국회에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 이렇게 인터뷰까지 해줘서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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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 850만 명, 노동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850만 명'이라는 숫자로는 심각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사회 곳곳에서 밀린 이들, 언제 잘릴지 몰라 고용불안에 떠는 이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 즉, 절벽을 등지고 사는 이들이 600만 명이라는 말이다. 

더 많은 이들이 절벽을 마주하기 전에 정치가 이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노동운동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그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다. 우리에겐 '정치인'의 시각이 아니라 '노동자'의 시각으로 대변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으로 비정규직의 고통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그가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바란다. 




리버럴

편집 : 딴지일보 cocoa

김 위원장, “미제 핵으로 덮치려 들 때 핵으로 먼저 냅다 칠 것”

“핵 탄 경량화해 핵 탄두 표준화. 규격화 실현했다”만족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3/09 [07: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선의 젊은 지도자의 담력과 배짱은 어떻게 종결지어 질 것인가 세계는 김정은 원수의 일거수 일투족에 쏠리고 있다.     ©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핵 선제 타격권은 결코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며 "미제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핵으로 덮치려 들 때는 주저 없이 핵으로 먼저 냅다 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합뉴스는 9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이 같이 전하며 김정은 조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핵탄을 경량화해 탄도 로켓에 맞게 표준화, 규격화를 실현했다"고 밝힌 사실을 보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핵무기 연구 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이것이 진짜 핵억제력"이라고 말했다.

▲     © 이정섭 기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어 "우리식의 혼합장약 구조로서 열핵반응이 순간적으로 급속히 전개될 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로 설계된 핵탄두가 정말 대단하다"며 "당의 미더운 '핵 전투원'들인 핵과학자·기술자들이 국방과학연구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김 제1위원장은 "핵시설들의 정상 운영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며 필요한 핵물질들을 꽝꽝 생산하여 핵무기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보다 위력하고 정밀화, 소형화된 핵무기들과 그 운반수단들을 더 많이 만들 뿐 아니라 이미 실전 배비한 핵 타격수단들도 부단히 갱신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핵 선제 타격권은 결코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며 "미제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핵으로 덮치려 들 때는 주저 없이 핵으로 먼저 냅다 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     © 이정섭 기자

그러면서 "우리가 보유한 핵무력이 상대해야 할 진짜 '적'은 핵전쟁 그 자체"라며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억척같이 다져나가는 것이 우리 조국강토에 들씌워질 핵전쟁의 참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정당하고 믿음직한 길"이라고 핵무기 보유의 정당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자리에는 인민군 대장인 김락겸 전략군사령관과 홍영칠·김여정 당 부부장이 동석했다.

한편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와 국방위원회, 외무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선인민군최고사령부 성명과 담화에 이어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핵무기 부문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만나 미국을 상대로 강력한 발언의 경고를 이어 가고 있어 조-미 대결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후쿠시마 5년…파시즘 국가로 질주하는 일본


[독서통]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이대희
기자
| 2016.03.09 09:23:08
2011년 3월 11일의 기억을 재생해 봅시다. 주말을 앞둔 TV에서 딴 세상 이야기인 듯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한 진도 9의 강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후쿠시마를 덮쳤습니다. 이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원자로 1호기부터 4호기가 모두 망가졌습니다. 놀란 주민은 방사선 피해를 우려해 고향을 신속히 떠나고 있습니다."

올해 3월 11일은 후쿠시마 사고 5년이 되는 날입니다. 핵폭탄의 야수성을 처음 알린 두 차례의 원폭, 핵발전소 사고가 일으킨 참사로 유라시아 전체가 떨었던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웃 일본은 또 한 차례의 대형 핵발전소 사고로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뀐 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이 사고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 한국은 물론, 사고 당사자인 일본마저 이런 일은 없었다는 듯 '핵발전소 올인' 정책을 바꾸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입니다. 중국 동부 지방, 한국 남동부 지방, 일본 동부 지방에 엄청난 수의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고, 그 중간에 있는 북한은 연일 핵실험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2의 후쿠시마' 사고가 이들 지역 어딘가에서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린 알 수 없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8일 '독서통'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를 다룬 새 책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서경식·정주하 외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을 들고 후쿠시마 이후 극우 광기에 휩싸여 질주하는 일본을 이야기합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이 책의 저자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대학 교수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교토 시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으로, 박정희 정권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두 형의 구명 운동을 벌이며 한국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애초 문학을 공부하는 미술 애호가였던 서 교수는 그때부터 재일 조선인의 정체성, 국가폭력과 인권, 현대성과 문명 등을 전방위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역시 이 모든 문제가 응축된 파국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진행하는 독서통, 이번에는 서 교수를 모시고 후쿠시마 사고 5년의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 후쿠시마 사고 하루 뒤인 지난 2011년 3월 12일, 상공에서 촬영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모습. ⓒAP=연합뉴스


후쿠시마, 한일 지식인을 잇다 

김종배 : 매주 화요일 오후 찾아뵙는 독서통 시간입니다. 금주의 책은 뭡니까?

강양구 : 며칠 후면 3월 11일입니다. '3.11' 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날이죠.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김종배 : 2011년이었죠? 저는 지금도 바닷물이 거세게 밀려들어 오는 무서운 영상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강양구 :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격납고가 수소 폭발로 날아가는 장면도 청취자 여러분 뇌리에 남아 있을 겁니다. 안타까운 건, 5년이 지났는데 세상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죠. 

김종배 : 이제는 잊힌 일이 되었죠. 당시만 해도 별의별 얘기가 나왔죠. 한반도로 방사능이 오네 마네부터 말이죠. 지금은 일본산 수산물 얘기가 나올 때나 가끔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강양구 : 당시 21기였던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오히려 그사이 24기로 늘어났습니다. 북한에서도 핵폭탄을 실험하고 있고요. '3.11'이라는 비극에서 우리가 배운 게 없는 것 같습니다.

'3.11' 5년을 기념해 책이 몇 권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책을 오늘 갖고 나왔습니다.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한일의 여러 지식인이 공동 작업해서 낸 책입니다. 오늘은 이 책의 대표 저자라고 할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대학 교수를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마침 한국에 잠시 방문하셨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재일 조선인입니다. 서승, 서준식 두 형이 박정희 정권 때 간첩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는데, 당시 옥바라지와 구명 운동을 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일 조선인의 정체성, 남북 관계, 한일 관계 등을 폭넓게 사유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 경험을 계기로 국가폭력과 인권, 현대성과 문명 등으로 사고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책을 통해서 많은 독자와도 만났죠. <나의 서양 미술 순례>(창비 펴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펴냄), <소년의 논물>(돌베개 펴냄), <디아스포라 기행>(돌베개 펴냄), <나의 조선 미술 순례>(반비 펴냄),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반비 펴냄) 등의 책이 있죠. 

김종배 : 애초 전공은 문학이었지만, 전방위 지식인으로 소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강양구 : 지금은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문의 출발은 문학, 예술, 미학이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으로 사유의 폭을 넓히고 계십니다. 방금도 얘기했지만 요즘 서경식 교수의 사유는 '현대란 무엇인가'에 닿아 있습니다. 아마 교수께서 후쿠시마 사고에 깊이 몰두하신 이유도 여기와 연관이 있는 것 같고요.

김종배 : 서경식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서경식 : 네, 안녕하십니까. 

김종배 : 간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이 책 강연 때문에 들어오신 겁니까?

서경식 : 북 콘서트가 있습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도 참가하고, 사진작가 정주하 작가도 함께합니다. 원저를 펴낸 일본 출판사 관계자도 한국에 왔고요. 

강양구 : 정주하 작가가 찍은 사진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주하 작가와 공동 작업한 이야기를 해주시죠. 

서경식 : 5년 전, 3.11 이후 3개월이 지난 6월에 제가 NHK 다큐멘터리 촬영 팀과 함께 후쿠시마를 찾았어요. 이후 한국의 한홍구 교수께서 이 사고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죠. 그 해 여름에 일본에서 만났습니다. 마땅히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후쿠시마 안내를 맡았죠.

당시 한홍구 교수께서 정주하 작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정주하 작가도 동행했고, 후쿠시마에서 사진 작업을 했어요. 

강양구 : 그때 찍은 사진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제목의 순회 전시회도 하셨죠. 이 책을 내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사진전이라면서요?

서경식 : 네. 한홍구 교수와 정주하 작가, 그리고 제가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전시회 제목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전시회 이름이 이상화 시인께서 지은 항일 시의 제목인데, 핵발전소 이후의 후쿠시마를 찍은 사진 전시회의 제목으로도 적절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후쿠시마 사람은 우리 민족을 식민 지배한 일본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편으로 일본이 추진한 핵발전소 정책 때문에 땅을 빼앗긴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양쪽이) 피해자로서 서로를 공감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전시회를 시작했습니다.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보도 사진이라기보다는 성찰을 촉구하는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김종배 : 텅 빈 들녘, 말라버린 나뭇잎, 폐허가 된 집 등을 사진에 담았어요.

이 책 구성도 흥미롭습니다. 여러 군데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그곳에 참여한 여러분이 대화를 나눈 내용을 엮었습니다. 

강양구 : 한일 지식인이 각자 준비한 내용을 토대로 대화를 나눈 것도 있고, 이 발표나 대화를 들은 청중과의 질의응답 과정도 실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갈무리해 일본에서 먼저 펴냈고, 그걸 다시 번역해서 한국에서 펴낸 책이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이라고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빼앗긴 들, 후쿠시마의 풍경 

김종배 : 정주하 작가의 사진으로 일본에서 사진 전시회도 하셨는데, 당시 반응이 어땠습니까? 

서경식 : 처음에는 (관람객을 모으기가) 어려웠어요.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주제로 한 사진이라고 하면, 흔히 보도 사진을 상상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사진 작품은 풍경 사진처럼 보이거든요. 후쿠시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조금 어려울 수 있죠.

강양구 : '후쿠시마'라는 이름을 빼고 사진만 보면, 마치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경식 : 아, 그런가요? 일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형적인 일본 동북 지방 풍경을 담은 사진이라는 말도 있어요. (웃음) 이렇게 풍경을 찍은 건 정주하 작가의 예술적 의도예요. 이 아름다운 풍경이 뭘 호소하는지 보는 이가 생각하도록 하는 사진이에요. 결론을 먼저 내리고 전시하는 게 아니라, 관람자가 작품을 보는 도중 생각하고 토론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의도였어요. 

강양구 : 아무래도 대중은 강렬한 사진, 한눈에 봐도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을 원할 텐데, 이 사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경식 : 그 대목에서 정주하 작가와 제 생각이 일치했어요. 직접 주제를 드러내는 사진은 오히려 잊히기 쉬워요. 반면에 생각을 추동하는 사진은 오랫동안 마음에 이미지가 남죠.

처음부터 이런 의도가 관람객에게 가 닿았던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쉽지 않았죠. 순회 전시의 일본 내 첫 번째 장소가 후쿠시마 현지였어요. 사진을 본 분들 가운데는 미래를 희망 있게 보고자 하는 분도 있고, 절망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진전은 '함께 고민하자'는 거였지, '이게 결론이다!' 이렇게 미리 정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후쿠시마 현지에 탑이 하나 있어요. 현지인에게는 자랑스러운 고향의 상징인데,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온 분들이 이 탑을 건설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 사진전의 제목이 이상화 시인의 시에서 따왔잖아요? 이 사진전을 본 후쿠시마 주민 가운데 "우리가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탑을 만들 때 조선인이 희생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장소도 다른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이 이 사진전을 계기로 교차한 것이죠.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총 여섯 군데서 사진전을 했습니다. 지금도 사진전 개최 요청이 계속 오고 있어서,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 
▲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대학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후쿠시마 5년 후, 달라진 건 없다
 

김종배 : 이제 본격적으로 책 내용을 이야기해 보죠. 벌써 사고 5년이 지났는데 그곳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서경식 : 문제가 해결된 게 거의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언더 콘트롤(under control)', 문제가 해결됐다면서 피난민에게 귀향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1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귀향하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은 정부 주장을 못 믿는 거죠. 정부에서는 "과잉 반응"이라는 입장인데, 바로 이런 정부의 태도야말로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방사능 폐기물 오염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어요. 폐기물을 버릴 장소도 없습니다. 핵발전소 사고 역시 수습되지 않았고요. 정부는 이런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방사능 오염이 수년 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이러는 건 국가 책임 문제, 기업의 보상 문제 등이 다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작년부터 다른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기 시작했어요. 핵발전소 수출도 하니까... (후쿠시마가 여전히 위험하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죠.) 

김종배 : 얼마 전 아베 총리가 후쿠시마 근처에서 수산물 먹는 장면이 보도되더군요. 이런 걸 보는 국민 반응은 어떻습니까? 

서경식 : 양가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불안한 상황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 조금이라도 낙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더구나 아베 총리가 "경기를 살린다", "주식 시장을 살린다" 하고 있잖아요? 아베 총리를 따라가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반인은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요? 더구나 정부가 발표하는 사실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존재하고요. 특히 여성, 주로 아이 키우는 여성이 그렇습니다. 

김종배 : 일본 정부나 과학계가 계속 후쿠시마 인근에서 추적 조사를 하지 않습니까?

서경식 : 조사는 하죠. 

김종배 : 그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습니까? 

서경식 : 지극히 자의적이죠. 예를 들어, 후쿠시마 아이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유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큽니다. 그런데 이 수치를 공개하면서 "핵발전소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 지역 아이들만 평상시라면 안 했을) 검사를 해서 이런 높은 수치가 나왔다는 식으로도 말해요.

그러나 체르노빌은 사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문제가 끝나지 않았잖아요? 이런 일을 보면 도저히 이런 주장을 믿을 수 없죠. 

여론 조사를 하면 핵발전소 재가동을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일본에서도 50% 이상이에요. 아까 얘기했던 아이가 있는 여성처럼. 그런데 이런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 세력이 없어요. 지금은 야당인 민주당 집권기에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잖아요? 당시 노다 요시히코 수상이 사고 수습 선언도 했고요. (그러니 민주당에서도 이 문제를 걸고넘어질 수 없죠.)

더구나 도쿄전력 노동조합이 민주당 지지 기반이에요. 그러니 여당인 자민당은 물론이고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시민의 불안감을 해소할 야당 정치 세력도 없는 거죠.

김종배 : 도쿄전력 노조가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이해관계가 있으니, 민주당도 입 닫게 되는 거군요. 그런데 1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어요?

서경식 : 친척 도움을 받으며 임시로 다른 곳에 거주하고 있거나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 같은 아예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죠. 

'안전하다'는 믿음은 믿음일 뿐 

김종배 : 일본 정부는 손 놓은 겁니까? 

서경식 : 지원이 있긴 해요. 중앙 정부는 아니고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도쿄전력의 위로금도 있고요. 그런데 4년이 지나면서 지원을 끊겠다는 통보가 잇따르고 있죠.

강양구 : 일본 정부로서는 이제 아무 문제가 없으니 지원하지 않겠다는 거군요.

서경식 : 맞아요.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 직업 문제도 걸려 있고,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후쿠시마로 돌아가려 해요. 반면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불안해서 돌아가려 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불행히도 이 문제가 이혼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심각해요. 

김종배 : 아무래도 사회적 관계망을 중시하는 남성을 중심으로 후쿠시마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있군요. 

서경식 : 일본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보다 회사나 조직에 속해야 살 수 있다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김종배 : 한국인 중에는 '일본 여행하고 싶은데 어디까지가 안전하냐'는 식의 물음을 가지는 분이 많으세요. 

서경식 : (혀를 차며) 그건 너무 사태를 단순화해서 보는 거죠. 그런 시각은 금방 아베가 수산물 먹는 장면을 보면서 "괜찮다"고 믿어버리는 거로 연결됩니다. 물론 일본 정부도 농산물이나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합니다. 하지만 방사능이라는 게 어느 수준이면 위험하다는 기준 자체가 모호해요. 그렇다면, 소비자의 불안을 중심으로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해야죠. 

김종배 : 한국에서도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가 이야기되긴 합니다. 하지만 논란이 되어야 함에도 그만큼 논란이 되진 않습니다. 

서경식 :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한국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유지해왔어요. 저는 당연한 조치라고 봅니다. 그러나 일본의 혐한론자들은 이 문제를 두고 "한국이 반일 차원에서 우리가 고생하는 걸 좋아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수입 금지 조치는 국제 표준을 따른 거지, 한국인이 일본을 싫어해서 한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3.11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을 돕자"는 여론이 크게 일어났죠. 저도 놀라울 정도였고요. 그런 움직임에 당시 일본인도 매우 놀랐죠. 

후쿠시마 이후, 극우로 질주하는 일본 

김종배 : 책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가 일본이 파시즘으로 회귀하는 전기가 되었다"고 하셨어요. 왜 이렇게 보셨어요? 

서경식 :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기존의 정치 세력은 사실상 무력했습니다. 더구나 후쿠시마 사태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국가 지도력 자체도 불신을 받았고요. 그럼, '누군가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서 법적 한계를 넘은 지도력을 발휘해주면 좋겠다'는 심리가 생기죠. 

더구나 일본 시민 상당수가 이 사고로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안 그래도 중국과 한국이 대두하면서 일본이 '아시아 일등국'이라는 지위가 흔들리는 와중에 이런 사고가 터진 거죠. 그러니 역효과로 파시즘적 방향으로 사회가 굴러가기 쉬워집니다. 실제 사고 수습 과정에서 '우리는 힘이 있다', '우리는 부흥할 수 있다'는 공허한 외침만 커졌어요.

김종배 : 아베 정부의 극우 행보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겠네요.

서경식 :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러니 올림픽 개최에 일본인이 그처럼 환호했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처럼 어려울 때 그런 큰 이벤트를 개최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재정을 더 의미 있는 데 써야 맞는데, '우리는 (후쿠시마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문제없이 개최하고, 외국인을 많이 초청할 수 있는 나라'라는 환상이 (아베 정부) 지지로 이어지죠. 

중국이나 한국을 대하는 아베 정부의 국가주의적 태도가 오히려 인기를 얻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강양구 : 독일의 경우 1986년 이웃한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녹색당이 부상했고,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확실하게 탈핵을 선언한 나라도 독일이잖아요? 똑같은 사고를 두고 독일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졌는데, 왜 일본과 그 이웃인 우리나라는 반대 방향으로 치달을까요?

서경식 : 가장 큰 문제는 국민과 국가 사이의 거리에 있습니다. 국민이 국가와 자신을 일치해서 보는지, 국가에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보는지가 중요해요.

독일의 경우, 실질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만, 전쟁 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나치와 단절됐죠. 시민 다수가 국가가 얼마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더 나아가 국민이 정신 차려야 국가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전제로 두게 되죠. 국민과 국가 사이의 거리가 생긴 거죠.  

반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질주하다 결국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런데도 전쟁에 책임이 있는 천황제를 존치했습니다. 또 다수의 시민이 전쟁 후에 국가와 기업이 주도한 '원자력 무라(핵마피아)'가 국민을 잘살게 했다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김종배 : 책에도 "메이지 이후 일본은 바뀐 게 없다"고 쓰셨어요.

서경식 : 많이 바뀌긴 했죠. (웃음) 그러나 근간은 바뀐 게 없다고 봅니다. 지난해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냈는데, 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가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아시아 민족에게 용기를 줬다"는 식으로 담화를 시작했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나 조선 민족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김종배 : 우리나라 대통령은 호평했는데요? (웃음) 

서경식 : (웃음) 그 전쟁으로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가 됐는데, 그런 발언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죠. 그런데 '이 담화는 문제'라는 식으로 느끼는 일본인이 많지 않다는 게 진짜 문제예요. 대한민국과 조선 민족, 또 중국에 대해 어떤 사과를 담느냐가 주목되는 담화에서 러일 전쟁 승전을 언급한다는 게 너무나 도발적이고 모욕적인 거죠.

강양구 : 그게 아베의 특이한 역사관을 반영한 게 아니라, 일본 사람 대부분이 암묵적으로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서경식 : 그렇죠. 아베가 새삼스럽게 저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니에요.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 보수파가 꾸준히 한 얘깁니다. 이를 문제 삼는 일본인이 많지 않아요. 물론 이런 이야기를 문제로 보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힘이 약해요.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근본적으로는 메이지 시대 이후 바뀐 게 없다고 할 수 있죠. 

김종배 : 아베 정권이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인의 상실감을 에너지원 삼아서 극우 행보를 펼치는 것도 그런 흐름과 맞닿은 거겠군요. 

서경식 : 조금 길게 말씀드리자면,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일본에 핵발전 정책을 도입한 당사자입니다. 1950년대에 말이죠. 나카소네가 일본이 패전했을 때, 핵폭탄이 터졌을 때 '앞으로는 원자력 시대'임을 느꼈다고 해요. 이 말이 뭐냐면, 일본도 핵폭탄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이를 목표로 1950년대부터 일본 에너지 정책을 바꿔서 핵발전소를 도입한 거예요. 

강양구 : 산업화를 위해서 핵발전소를 지었다기보다, 일본과 우리나라 공히 마찬가지인데,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부산물(플루토늄)로 핵폭탄 연료를 얻기 위해 핵발전소를 지은 거죠.

서경식 : 일본에는 핵폭탄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 방사성 폐기물 재처리 공장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곳은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몬주 고속증식로는 지은 지 수십 년이 넘었는데,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요.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 시설을 가동하고자 엄청난 돈을 씁니다. 정말 전력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핵무장을 위해서죠.

요즘은 일본 정치인도 이 얘기를 공공연히 해요. 일본 자민당 정치인 이시바 시게루는 예전 장관이었을 때 "일본은 핵무장에 대비해 플루토늄을 보유해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했어요. 

강양구 : 일본이 파시즘화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에서도 최근에 테러 방지법 통과를 둘러싸고 진통이 있었습니다. 

서경식 : 테러라는 말을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해요. 이런 토론 없이 법안만 통과시키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입니다. "너는 테러리스트"라는 걸 누가, 어떤 식으로 규정할 거예요? 도널드 트럼프의 "이슬람교도는 모두 테러리스트"라는 식의 폭력을 우리가 허용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세계가 그런 위태로운 수준까지 왔다고 저는 봅니다.

테러를 방지하는 건 (테러 방지법과 관계없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리고 일반 형법에 이미 그런 게 규정되었을 테죠. 그렇다면, '테러'라는 건 권력자가 자기가 보기에 안 좋은 행동을 예방하려는 핑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의 관방장관은 안중근 선생을 두고 "테러리스트"라고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했어요. 한국에서 그걸 시인할 수 있습니까? 

저는 세계적으로도, 또 한국이라는 개별 나라의 입장에서도 사회적 토론 없이 이런 법안이 쉽게 통과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 후쿠시마 이후 급격히 우경화하는 일본은 노골적으로 군사 대국화를 꿈꾼다. 지난해 7월 15일 일본 중의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법안 표결에 반대하는 의사를 담은 종이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집권당인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AP=연합뉴스

5년, 망각하기 좋은 시간 

김종배 : 잠시 곁가지로 빠져서, 지난해 연말 위안부 합의 얘기를 좀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일본 안에서는 합의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됩니까? 

서경식 : 대부분이 호의적으로 봅니다. 아베 정권이 잘했다고요. 대부분의 일본 시민은 위안부 문제를 골치 아픈,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로 봤어요. 그런데 아베가 "내가 해결하겠다"고 나서서 또 "끝냈다"고 하니, 호의적인 반응 일색이죠. 저는 그런 식의 재정적 해결이 말도 안 된다고 보지만요. 

김종배 : 10억 엔 주는 거로 정리됐죠. 

서경식 : 그렇죠. 물론 일부 우익은 "아베가 양보했다"며 비판합니다. 소수의 진보파도 이것이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정치적으로) 중도 세력이 호의적으로 봅니다.

김종배 : 중도파가 호의적이라고요? 

서경식 : 네. <아사히신문>을 포함한 여러 신문이 "일부 전진했다", "이 기반 위에서 앞으로 새 관계를 구축한다"는 식으로 보도했죠. 

강양구 : 오늘 방송을 시작할 때 교수께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변한 게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오히려 나빠지고 있군요. 

서경식 : 후쿠시마 사고가 하나의 계기였죠. 사회가 몰락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요.)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터지고 한순간에 3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죽었어요. 그 중 3~5만 명 정도가 조선인이었어.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일본은 물론이고 여기(한국)서도 마찬가지죠.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작가 하라 다미키가 피폭 경험을 시나 소설에 녹였어요.

그중 대표작이 <여름의 꽃>이라는 아주 좋은 작품이죠. 그런데 그는 원폭 5년 후 도쿄 중앙선에 몸을 던져 자살했어요. 당시 한국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미국에서 다시 "원폭을 사용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이 소식을 듣고 하라 다미키가 절망해 자살한 거예요. 그런 비극이 있었는데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폭탄을 다시 사용하려 하느냐는 절망으로 자살한 거예요. 

희생자가 누구냐를 떠나서, 그런 비극을 경험했음에도 그 사악한 수단을 버리지 못한다는 인류에 대한 절망감이죠. 하라 다미키가 도쿄에서 그런 얘기를 계속했습니다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후쿠시마 이후 지금과 마찬가지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죠. 이처럼, 5년이라는 시간은 망각하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도쿄 사람은 왜 하라 다미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요? (핵폭탄에 희생된) 히로시마가 아닌 도쿄라는, 이런 지리적인 거리감이 작용했겠죠. 또 (앞으로) 핵폭탄이 터져도 그건 한국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거리감도 작용했겠고. 그런 자세 때문에 30만 명이라는 사람이 한순간에 학살당한 사건조차 잊어버린 겁니다.

이게 인간의 뭐랄까, 이겨내기 힘든 망각의 습관입니다. 그런데 정치인은 바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또 그래서 이용하고요. 

김종배 : 후쿠시마 이후 핵발전소가 하나둘 재가동될 때 저항이라든지, 논란은 없었습니까? 

서경식 : 있어요. 지역마다 아주 끈기 있게 저항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소수고, 고립되어 있고, 보도도 잘 안 됩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정치 시스템 자체가 문제입니다. 일본에서 정치는 기업과 결합해 이뤄지죠. 이런 사람이 지역 부흥이나 경제 개발을 강조해 국회의원이 되고, 국가 정책을 결정합니다. 그러니 일반인, 특히 여성 등 약자의 목소리는 안 들어줘도 문제가 전혀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거죠. 

김종배 : 선거 때마다 사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여론이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거죠. 

서경식 : 일본은 선거 제도가 소선거구제이기 때문에 (사표의 영향력이 커서) 투표율이 50%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너무 심각합니다. 

반핵 한일 시민 연대를 구상할 때 

강양구 :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이라는 책이 한국에서 나온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가 한국에 던져준 교훈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지금의 한국 상황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서경식 : 제가 아무래도 일본에 있으니까 한국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핵발전소 문제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한국도 핵발전소 대국, 일본도 핵발전소 대국, 중국도 핵발전소 대국이니까 동아시아라는 지역이 너무 위태로워요. 더구나 북조선(북한)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핵투성이인 지역이 지구에 없습니다. 더구나 서로 대립 관계니, 물론 이 관계의 가장 큰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저는 보는데요, 너무나 위태롭습니다.

강양구 : 중국에서 핵발전소가 밀집한 곳 가운데 하나가 산둥 반도죠. 거기서 사고가 나면 편서풍으로 인해 우리나라 수도권이 직격탄을 맞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이 규슈인데, 규슈 사람이 가장 불안해하는 게 한국의 동남권에 밀집한 핵발전소입니다. 이런 식으로 3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경식 : 맞습니다. 핵발전소 사고의 피해가 국경을 넘는 거니까, 한일의 시민이 국경을 넘어 저항하지 않는 한 (이 위기를) 막아낼 수 없습니다.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핵을 앞세운 기업을 중심으로 해서 사고하는 한 넘어설 수 없어요. 한일의 시민이 함께 대화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금 너무 위태로운 방향으로 급히 모두가 몰락하고 있어요.

▲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서경식·정주하 외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 ⓒ반비
김종배 : 한일 시민이 일종의 ‘반핵 연대’를 마련하고 공동 움직임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서경식 : 물론이죠. 2012년에 서울에서 핵 안보 정상 회의가 열렸습니다. 당시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이 책의 계기가 된 정주하 작가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렸어요. 일본뿐만 아니라 핵을 유지하는 나라끼리 똘똘 뭉쳐 세계를 현 상태대로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런 세력에 대항해 시민이 연대해서 대안을 내고, 맞서서 저항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죠.

김종배 : 벌써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강양구 : "5년은 잊기 충분한 시간"이라는 서경식 교수의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네요.

김종배 : 당시는 엄청난 충격이었는데요, 오늘 독서통은 당시 기억을 되살리면서 현재를 돌아볼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으로 여러 저자 중 한 분인 서경식 교수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5년 전 후쿠시마 사고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서경식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