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⑱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발행 2020-05-31 16:50:06
수정 2020-06-01 08: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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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년 새해가 되자 대한민국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을 눈앞에 두고,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시민사회도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층 대중조직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총선이야말로 촛불혁명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느냐 아니면 반혁명세력에 의해 뒤집히느냐의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전투태세로 전열을 가다듬은 야당은 문재인 정부 심판으로 틀을 짰고 문재인 정부는 그것을 되받아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 심판과 야당 심판이 마주 달려오는 기차처럼 속도를 내고 있었고,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들은 여기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광화문을 장악한 태극기부대는 연일 기세를 올리고 있었고, 촛불개혁이 미흡했고 조국사태 등이 이어지면서 수도권부터 흔들려 정부여당의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이 무렵 아직 이름도 없는 신종바이러스가 우한을 중심으로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바이러스가 일순간에 세상을 바꾸어놓을 줄 아무도 몰랐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삶을 이렇게 변화시킬 줄 누구도 몰랐다.
이 무렵 조용히 움직이는 또 하나의 조직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질병관리본부였다. 몇 년 전 메르스 사태 대응의 실패가 교훈이 되어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남다른 각오가 있었다. 정부 부처는 말할 것도 없고 관련 단체나 기업 등을 망라한 긴급회의가 소집되고, 대응 매뉴얼의 확인과 진단키트의 연구 제작, 마스크 등 예방과 치료 기자재들의 계획생산이 시작됐다.
우한이 봉쇄됐으나 코로나19는 중국 전역으로 번져가기 시작했고, 비행기의 속도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인류가 자랑했던 글로벌교통망은 코로나19에게도 탄탄대로였다. 인류는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화 시대에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이성적 종교집단, 의료를 빙자한 집단수용
열악한 노동현장, N포 세대의 소비문화, 거대화한 사교육시장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든 코로나19
열악한 노동현장, N포 세대의 소비문화, 거대화한 사교육시장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든 코로나19
우리나라의 준비된 방역체계와 당사자들의 헌신적 노력도 팬데믹(감염병 세계유행)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또 우리 사회는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코로나19는 그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첫째는 31번 확진자에서 시작한 사이비 종교단체인 신천지교회였다. 신천지 교회라는 이단 기독교단체의 행태가 이번 코로나19로 드러났다. 반이성, 비과학, 비상식의 극치였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혹세무민하는 피폐한 정신세계의 현장은 코로나19가 침투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거대집단화한 형태는 자본주의와 종교가 결탁한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코로나19는 이런 곳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이 3월 2일 오후 경기 가평 평화연수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3.02.ⓒ뉴시스
둘째는 의료를 빙자한 집단 수용소였다. 청도 대남병원 등 대규모 정신병동과 요양병원, 요양원 등이다. 우리 사회가 인간의 보편적 상황인 질병과 노후를 시장에만 맡긴 후과이다. 영리만을 추구하며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않은 수많은 유사한 시설에 내리는 코로나19의 경고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충분히 입증됐음에도 의료민영화라는 돈을 중시하는 체제로의 변환은 앞으로 닥칠 새로운 바이러스 앞에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일이 될 것이다.
셋째는 열악한 노동현장에 대한 공격이었다. 비인간적이고 반노동적으로 운영되던 콜 센터, 물류센터 등을 코로나19가 그냥 지나칠 리 있겠는가? 구로 콜센터, 쿠팡 물류센터 등 많은 유사한 시설과 근무조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고 할당량의 압박 속에 상대방의 폭언 등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취약 노동자였다. 어찌 우리나라 노동자의 현실이 이곳뿐이겠는가?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소규모 자영업자 등 불안정노동은 극에 달해 있다. 더군다나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법의 사각지대에 내팽개쳐져 아무런 보호도 못 받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결국 코로나19의 최대 피해는 양극화의 그늘에서 피땀 흘리는 이런 저임금 노동자의 몫임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넷째는 청년 소비문화의 서식지였다. 이태원을 비롯한 곳곳에 성행하고 있는 이른바 클럽들과 노래방, 감성주점 등이 그곳이다. 이른바 ‘N포’ 시대의 많은 청년들은 그 한계와 불만을 해소할 문화가 필요하고 구체적인 방법과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한 청년시기의 역동적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현하도록 지원하고 함께할 책임이 우리 사회에 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 사회의 한쪽은 병들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을 비난하거나 어쩔 수 없는 그들의 문화를 범죄시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 또 코로나19가 노인들의 문화 소비처인 대형 콜라텍 등을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노인들의 여가문화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하겠다.
다음은 입시를 앞둔 학생이나 청소년을 비롯한 취업준비생들이 집단적으로 모이는 학원 등이다. 사교육시장의 비대나 야간교습, 과외 등은 우리나라 교육의 비정상적 행태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상당부분의 교육을 자본시장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의 참담한 모습이다. 지금과 같은 과도한 입시경쟁이나 공무원이나 교사, 공기업으로 몰린 취업 선호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불가피하다. 코로나19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택배 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돌아보면 코로나19 사태의 발생은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기록으로 남은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바이러스의 인류에 대한 공격은 일상화 됐다. 인간이 인간만을 위한 탐욕으로 더불어 살아야 할 자연을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체가 같이 누려야 할 생태계를 독점, 교란함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신종 플루, 메르스, 에블라, 홍콩독감 등 바이러스에 의한 집단 감염은 주기적으로 발생했고 그 주기는 점점 빨라질 뿐 아니라 성질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여러 나라의 대응은 다양했으나 효과적이지 못했다. 중국과 미국은 패권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과도한 책임 논쟁 등으로 정치쟁점화 시켜 연대, 협력해야 하는 글로벌 체제가 경쟁, 배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기재로 활용하고 있다. 힘을 모아 인류 공동의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자국 이기의 편협한 국가주의를 발동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도 정치논리 속에서 중심을 잃고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은 미국의 분담금 거부 사태로까지 비화했다.
우리나라의 대응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정적 평가를 하기엔 이르지만 그나마도 지금까지의 대응은 괜찮았다는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가 민주주의의 작동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국내 첫 유입에서부터 지금까지 구체적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전 국민이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 대응할 수 있었다. 매일 발표되는 현황 브리핑도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나서지 않고 질병관리본부 차원에서 책임 있게 실시함으로 정치중립의 과학적 전문성에 의한 대응이라는 신뢰를 획득할 수 있었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성숙한 민주의식이 정부로 하여금 민주적 대응을 하도록 견인한 것이다. 이 민주의식은 생활 속에 뿌리 내려 확진자 동선 파악에서처럼 공익을 위해 개인 인권을 양보한다거나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정부의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은 좋은 사례라 하겠다. 특히 신천지교회나 대남병원 등으로 집단감염 위기에 빠졌던 대구와 경북 시민들이 보여준 민주의식과 실천은 아주 모범적이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이 29일 오후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어린이 특집 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둘째는 질본이나 의료노동자들의 헌신과 대다수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이다. 금 모으기 등 과거 몇 번의 재난 상황에서도 작동됐지만 우리 국민의 재난 극복의 공동체적 대응은 빛나는 것이었다. 사재기를 위해 슈퍼마켓으로 가는 대신 자원봉사를 위해 위험을 마다 않고 재난현장으로 달려가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 실천 앞에 코로나19도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셋째는 과거 실패 경험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르스 대응 실패의 교훈은 소를 잃었을 때 다음을 위해 외양간을 얼마나 튼튼하게 잘 고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성적 태도와 과학적 대응은 고친 외양간이 얼마나 튼튼한가를 잘 보여주었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끝나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19나 다른 새로운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아야 할 세상을 맞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가 서식하기 좋았던 과거 우리 사회와 결별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 사회가 어떤 사회였나? 청년들은 n포 시대, 헬조선이라 불렀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산업재해, 불평등 지수에 허덕이는 나라였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토지공개념 등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면 경기를 일으키며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사회였다. 가난한 사람,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일상화 돼 있던 나라였다. 매년 새로운 무기를 사는 방위비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외국 군대의 주둔을 당연시하며 전쟁국가로 남아 있기를 자처하는 나라였다. 이런 사회, 이런 나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아니 되돌아 갈 수도 없다.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 국민 기본소득 논의조차 자연스러워지고 있지 않은가?
지구적 공동대응, 생활 민주주의 확대
나아가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까지
연대하고 협력해야 바이러스 이길 수 있다
나아가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까지
연대하고 협력해야 바이러스 이길 수 있다
이제 연대하고 힘을 모아 새롭게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하고 실천할 때다.
첫째, 코로나19를 빨리 종식시키는 일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함께하는 전 지구적 사회적 방역이 이루어져야한다. 자국 중심, 국가이기주의에서 벗어난 글로벌방역체제 구축이다. 국가 간 정보의 소통과 적극적 연대, 그에 맞는 실효적인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인종 간 국가 간 책임 전가를 위한 혐오 행위는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또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 가자란 말은 조심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의 사회는 코로나19를 불러온 사회이고 코로나19를 존속시키는 사회다. 코로나19 이전 사회를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코로나19를 떨쳐버릴 수 없다. 코로나19라는 독버섯이 솟아나는 부패한 토양을 갈아엎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어찌 보면 하늘이 우리 인류에게 준 또 한 번의 기회이다. 버릴 걸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둘째, 생활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과 확대이다. 이번 사태의 대응과 관련하여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잘 대처했다는 국제적 평가는 우리나라의 생활 속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작동했기 때문이다. 강제 차단이나 봉쇄 같은 적극적 제약 없이도 자발적 마스크 쓰기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 것도, 거대한 자발적 촛불항거로 부당한 현직 대통령을 법절차에 따라 물러가게 한 민주주의 실천의 성과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발휘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삶과 밀착된 생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야겠다.
셋째, 현실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국가중심의 시장만능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신자유주의를 강화하여 경쟁과 효율을 통한 성장만을 미덕으로 여겼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공공의료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고 사회양극화는 점점 극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양극화의 그늘 쪽은 이번 코로나19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사회체제의 근본적 고민 없이는 앞으로 계속 닥칠 새로운 변종바이러스 등 집단감염과 대규모 자연재해의 발생을 막을 수가 없다. 전 지구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인간과 인간, 나아가서 자연과도 더불어 공존하며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때이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김슬찬 기자
넷째, 자연의 일부요 동물의 한 종인 사람이라는 이름의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렇게 피폐하고 자연은 파괴되고 있는가? 초등학교 학생까지 나와 눈물을 흘리며 지구를 지키자고 호소하고 있는데 우리 어른은 오늘도 지구 멸망의 시간을 앞당기고 있는가? 지구촌 곳곳에서는 지구 멸망의 사태와 사건들이 속속 일어나고 있는데도 강 건너 불처럼 혀를 차며 구경만 하고 있다. 당장 나에게 구체적으로 닥친 일이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자연재해는 인재라는 말이 과장이나 비유가 아님에도 우리들은 무슨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남 탓의 핑계거리만 찾는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인종 간, 민족 간, 국가 간 혐오로까지 발전시킨다. 겸손해야 한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인간이 지구의 여러 생명체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생각도 접어야 한다. 편협한 민족주의나 패권적 국가주의도 탈피해야 한다. 강대국중심의 세계화와 무분별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이번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올 수밖에 없었던 여러 원인을 살피고 어떻게 피해를 줄일 것인가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고찰하고 성찰하여 그것을 통해 이와 유사한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모든 나라와 인민이 연대하고 협력하며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멀지 않은 때에 또 더 큰 공격을 받고 허둥대다가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