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7일 금요일

“‘박사방’ 조주빈은 유일하고 이상한 악마가 아니다”

등록 :2020-03-28 09:04수정 :2020-03-28 09:08

[토요판] 커버스토리
텔레그램 엔(n)번방 취재기

지난해 11월부터 엔번방 범죄
쫓아온 김완, 오연서 기자 대담
4개월여 추적의 분노와 좌절감

법과 문화 바꾸지 않으면 근절 못해
“경찰 조사 다 받게 해 기록 남겨야”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지난해 11월 <한겨레>가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물 유통을 고발하는 연속 기획보도를 내보낸 지 4개월 만에 핵심 인물인 ‘박사’ 조주빈(24)씨가 검거됐다. 조씨 구속 이후 엔(n)번방 등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운영자와 회원(관전자)의 엽기적인 성착취 행태를 알리는 기사가 넘쳐나지만, 당시 <한겨레> 보도 이후 다른 언론은 이상하리만치 침묵했다. 한국 사회에 성착취 동영상 유통은 언제나 있는데 뭐 대단한 일이냐는 안일한 인식 탓이다. 오히려 보도로 박사방을 찾아온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조씨는 비밀대화방 이용료를 높이고 다른 운영자들은 <한겨레>에 내 대화방도 보도해달라고 조롱했다. 그렇게 또 묻혀버릴 수 있는 ‘사건’을 끈질기게 공론화하고 성착취 범죄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운 것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을 만들어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나서고 트위터 등을 통해 엔(n)번방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했다. 대학생 2명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은 비밀대화방에 잠입해 수집자료를 차곡차곡 모아 보도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성범죄자들이 잇따라 경찰에 검거되고 있다. 하지만 출발일 뿐이다. ‘제2의 조주빈’이 탄생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사건을 취재한 김완·오연서 기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2층 사이버안전과에서 16일 22시~(17일 새벽) 1시에 조사받던 피의자가 코로나19로 의심돼 검사진행(하고) 긴급 방역 중.”
지난 17일 오후 5시 서울지방경찰청이 출입기자들에게 자료를 냈다. 기사 마감을 끝낸 기자들이 분주해졌다. 코로나19 의심 피의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쏟아지는 전화에 서울지방경찰청은 두번째 자료를 보낸다.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과 관련해 3.16~17 박사방을 운영한 유력 피의자를 포함 총 4명을 검거하여 현재 조사 중에 있음. 현재 수사 중인 관계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드리기 어려움을 양해해주기를 바람.”
‘박사방을 운영한 유력 피의자’란 지난해 11월 <한겨레>의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연속 기획에서 사건의 핵심 ‘지배자’로 등장했던 ‘박사’를 말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미끼로 여성들을 교묘히 꾀어 신상정보를 털어낸 뒤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도록 하고 이를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유통하면서 돈을 벌어온 인물이다. 피해자들에게 ‘나는 박사의 노예다’라고 몸에 새기도록 지시하고 성착취물을 공유하며 ‘얘(피해자)는 나에게 약점이 잡혔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니 가지고 놀아도 된다’는 설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 취재를 한 김완 <한겨레> 24시팀 기자는 이날 돌봄휴가로 하루 쉬면서 아이들 목욕을 시키다가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취재를 하면서 비트코인 주소 등 박사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자료를 경찰에 다 넘겼다. 그래서 금방 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경찰은 ‘진도 많이 나갔다. 곧 잡는다’고 하면서도 4개월이나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기자들한테 박사방 유력 피의자가 알려졌다니 놀랍고 어이없었다.” 김 기자는 그 피의자가 박사이며, 학보사 기자 출신의 20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자를 취재해온 오연서 기자는 박사 조주빈(24)씨 검거 소식을 피해자들에게 전했다. “다들 놀라면서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하더라. 처음엔 ‘잘됐다,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후 보도가 쏟아지자 ‘잊고 지냈던 당시 피해가 다시 떠올라 병원에 갔다 왔다. 차라리 안 잡혔으면 좋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조씨가) 봉사활동을 하고 학점도 높았다는 뉴스를 보고 ‘나중에 모범수로 나오면 어떡하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다른 운영자의 시기성 제보였다
지난해 11월 <한겨레>는 ‘인천에 있는 고등학생이 9천명 정도 가입된 텔레그램 대화방을 운영하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통한다’는 제보로 텔레그램 성착취물 유통을 고발하는 최초의 보도를 했다. 지난 25일 두 기자에게 취재 과정과 소회를 들어봤다.
―첫 보도가 지난해 11월11일에 나왔고, 25일부터 나흘간 연속 기획을 네차례 내보냈다. 시작은 제보라고?
김완(이하 김) “나중에 알았는데 첫 제보는 다른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의 저격, ‘견제질’이었다. 우리가 처음 보도한 비밀대화방 ‘공식 링크(Link) ○○○○방’은 성착취 영상과 사진 링크를 공유하는 일종의 포털과 같은 ‘허브’였다. 이 방이 너무 커지자 견제하려고 다른 운영자가 제보한 것이었다. 그 세계에서 제일 무시무시한 형벌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다. 제보자는 ‘○○○○방’ 운영자가 ‘오늘 급식 메뉴로 뭐 나왔다’라는 식의 채팅글을 남긴 것을 단서로 그 지역 중고등학교의 급식 메뉴를 확인해서 그를 특정해냈다. 그 제보를 확인하는 취재를 하면서 텔레그램 성착취물 제작·유통이라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를 마주한 것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1분도 안 쉬고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글이 올라왔다. 카피방, 파생방 등 하루에도 수십개씩 대화방이 만들어지고 사라졌는데, 취재할 당시 엔(n)번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게 수백개였다.”
―어떤 채팅글이 오가나? 기사에 ‘토할 것 같았다’는 표현도 썼는데.
 “말로 옮길 수가 없다. 완전히 인간성이 파괴된 현장이었다. 여성을 대상화, 사물화해서 보고, 여성을 종속시키고 지배하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곳이었다. 여성을 강간 대상으로 취급한다. 여러번 토할 뻔했다. 특히 조주빈이 올리는 건 다 그랬다. 무엇보다 그걸 회원들이 왜 기다리는가, 왜 찬양하는가 궁금했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지배 욕구를 그렇게 푸는 것이다. 공범이라는 쾌감도 있는 것 같고, 그 환호를 보며 다시 한번 구역질이 났다. 최소한의 윤리나 수치심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오연서(이하 오) “성착취가 범죄라는 걸 알지만 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얘들(피해자)한테 하는 건 범죄가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얘네는 돈 때문에 왔잖아, 노예잖아, 신고 안 할 거잖아, 그래서 협박하고 농락하는 게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천명의 남성이 범죄에 환호하고 더 수위 높은 영상을 구걸했다. 한 인간의 인격을 살인하는 그 현장에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았지만 공포감은 의외의 순간에 몰려왔다고 오 기자는 말했다. “지하철역 화장실에 여성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담은 불법쵤영물 영상을 봤을 때였다. 그런 게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았지만 실제로 찍힌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 곁에서 일어나는 일이구나,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구나 소름이 돋으면서 한참을 봤다. 피해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피해 사실을 취재했는데 다음날 그것과 일치하는 동영상을 본 적도 있다. 피해를 신고하고 삭제를 요청해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여전히 계속 유포되고 있는 거였다. 그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피해자를 인터뷰한 내가 그 영상을 보고 있으니 내가 가해자가 된 것은 아닌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성착취방을 이용한 모두가 공범이다’ ‘26만 성착취 공범 제대로 처벌하라’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성착취방을 이용한 모두가 공범이다’ ‘26만 성착취 공범 제대로 처벌하라’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 보도 뒤 엔(n)번방 유입이 늘었다
최초 고발 보도와 엔번방, 박사방 등의 성착취 행태와 구조를 추적한 연속 기획보도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 언론은 이상하리만치 침묵했다. 빅카인즈에 등록된 54개 언론사 중 지난해 12월까지 엔번방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는 <한겨레>가 유일했다. 올해 들어 에스비에스(SBS)의 <궁금한 이야기 와이(Y)>, <국민일보>의 ‘n번방에 잠입하다’ 등 후속 보도가 나왔다.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새롭지 않다고 본 탓이다. 인터넷상에서 성착취 동영상은 언제나 있었는데 뭐 대단한 일이냐가 본 거다. (텔레그램 등을 통한 성착취 범죄에 대한 처벌 법안을 논의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논의 수준이 그렇고, 언론과 수사기관의 인식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런 나이브한 생각이 사이버 성착취물 유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인터넷이 탄생한 이래 계속, 여기까지 오게 했다.”(김완)
―소라넷이나 양진호 웹하드 사건 등 성착취물 유통 과정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엄벌한 적이 없다. 특히 텔레그램은 국외에 서버가 있고 신원을 감출 수 있어 수사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졌다.
 “경찰이 수사에 소극적인 게 사실이었다. 범죄가 너무 잔혹해서 여성 수사관을 배정해달라고 했는데 수사관이 없다고 하고, 텔레그램 범죄는 잡기 힘들다며 전화번호나 적고 가라고 하기도 했다. 채증 자료도 요구하는데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은 3초 만에 사라지는데 그게 쉬운가. 특히 나체 사진 등을 피해자 스스로 캡쳐해놓는다는 게 얼마나 가능한가. 어렵게 마음먹고 경찰서를 찾은 피해자가 신고 접수를 다시 주저할 수밖에 없다. 여성단체가 고발하려고 하면 피해자가 직접 와야 한다고 하면서 접수를 해주지도 않았다.”
 “경찰도 사이버 성착취 수사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없다’고 답답해한다. 24시간 붙어서 텔레그램 대화방을 두서너달 감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잡아도 초범이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나니까. 그렇게 수사인력을 투입할 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탐사보도 이후 텔레그램 성착취물 유통이 위축된 게 아니었나?
 “처음 보도가 나갔을 때는 이용자들이 흩어져서 텔레그램이 망하겠다고 했다. 그 뒤 <한겨레>만 간헐적으로 보도하니까 오히려 유입이 늘었다. 이용자들이 <한겨레> 보고 왔다면서 박사방을 찾으러 다니고 박사는 신나서 대화방을 더 많이 개설했다. 대화방 입장료를 200만원까지 올리고, <한겨레> 기자 신상을 털어 오면 박사방 입장을 무료로 해준다고 프로모션했다. 나는 실제로 개인정보가 털려서 아이들 사진까지 유포됐다. ‘길 다닐 때 항상 주위를 돌아보게 만들겠다’는 협박 글에다, ‘(박사방처럼 인기 얻도록) 내 대화방도 보도해달라’는 조롱 글, 나를 기레기로 묘사한 만화까지 쏟아졌다.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며 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가 곱씹기도 했다.”
오 “무엇보다 피해자들한테 미안함이 커서 힘들었다. 가해자들이 너무 버젓이 활보하고 다니니까 이러다가 정말 안 잡히는 거 아닌가, 그럼 피해자들은 어떻게 하지 싶었다. 보도 이후에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자가 많이 연락해온 것도 아니었다. 초반에 서너통 왔을 뿐이다. 결국 우리 보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한숨이 나왔다. 게다가 박사가 피해 여성 사진을 유포하면서 ‘한겨레 피해1’ ‘한겨레 피해2’라고 일종의 워터마크를 박았다. 취재를 계속하면 피해자가 더 생긴다고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여성을 사물화하고도 죄의식 없어
―피해자들이 왜 성착취를 당하는지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겠다.
김 “실시간으로 피해자를 협박하는 걸 채팅으로 봤는데 3시간도 안 걸리더라. 처음 접촉해서 성착취물 동영상을 찍게 하는 데까지 말이다. 어느 날 오전, 오후 한때 정신없이 훅 지나가는 일이다. 피해자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신체 사진을 올려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취약한 여성이다. 그 고리를 잘 아는 박사와 마주 앉게 되니까 일단 지고 들어가는 거다. 신상정보 다 털렸고 동영상 공개됐고 완전히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조주빈이 검거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참여하고 이 문제를 계속 공론화했던 젊은 여성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보도는 큰 반향 없이 끝나고 경찰 수사팀의 외로운 사투만으로 남을 뻔했다. 그런데 20대 여성들이 국회 입법 청원을 올리고 여성 독자층이 많은 작은 매체들이 끊임없이 언급한 것이 이 문제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트위터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단어가 엔번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계속 목소리를 높인 많은 사람이 있었다.”
실천하는 여성들의 첫자리엔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를 가장 먼저 알린 대학생 취재단 ‘추적단 불꽃’(불꽃)이 있다. 지난해 7월 아동·청소년 착취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은 비밀대화방에 회원으로 잠입해 두달여간 대화를 모니터링했다. 성착취물 피해 사실을 확인한 그들은 수집자료를 차곡차곡 모아 경찰에 신고했다. 취재 결과물로는 지난해 9월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뉴스통신진흥회를 통해 보도했다. <한겨레>도 텔레그램 대화방 제보를 받고 지난해 10월 취재를 시작하면서 이 보도를 확인했고, 불꽃 취재단에서 자료를 협조받았다. 무엇보다 최근 지방경찰청이 디지털 성범죄자를 잇달아 검거하는 것에도 이들의 수집자료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단체 ‘리셋’(ReSET)이 활동을 시작해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나서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오 기자는 “젊은 여성들이 나선 것은 가해 행위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 신상이 다 공개되고 집까지 쫓아와서 협박하는 남성들도 있었다. 두렵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피해자들이 인터뷰해준 것이다. 어떤 피해자는 친구 집으로 피신한 상태였는데 그 친구한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고백한 그들이 출발점이구나 나중에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피해 사진에 ‘한겨레’ 워터마크
―과거처럼 또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박사는 유일하고 이상한 악마가 아니다. 그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대한민국 남성들이 성착취 문화를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고 그것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자란 것, 그것이 이 범죄를 가능하게 한 토대다. 그것 위에 박사방도, 엔번방도 다 얹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 잡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한번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 엄벌주의를 해본 적이 없다. 현행법으로 못 잡으면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서 회원인 ‘관전자’를 포함해서 과태료 처분이라도 해야 한다. 이 행위는 범죄이고, 사회적으로 안 되는 일이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
김 기자는 보도가 나간 뒤 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남자 고등학생들을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자녀의 휴대전화에 텔레그램이 깔렸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가 이미 몇달 전부터 돌았다고 알려줬다. 실제로 2019년 초 텔레그램 엔번방이 생겨났을 때 텔레그램이 구글 앱스토어에서 상위에 랭크됐다. 당시 유입된 수가 30만에서 50만명 정도다. “많은 10대가 여성을 사물화하고 범죄 대상으로 바라봤는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감각을 새기게 해선 안 된다.”
오 기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고 했다. ‘엔번방 기록을 어떻게 지울 수 있나’ 같은 질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곳에서 성착취물을 보던 이들이 엔번방 국민 청원에 동의하라는 글을 올리고 있었다. 엔번방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선을 그으며 분리 전략을 쓰는 것이다. “‘구글 드라이브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영상을 봤는데 다 삭제했다, 괜찮을까’ 묻는 말에 ‘지금은 엔번방만 대상이기에 우리는 상관없다’고 답하더라. 우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까 잡힐 일이 없고 그러니까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형량을 따지지 말고 경찰 조사를 다 받게 해 기록이라도 남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부터 해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미국서 띄우는 편지] 힘내세요, 한국이 다른 나라의 희망입니다

본문듣기 등록 2020.03.27 13:49 수정 2020.03.27 14:57
▲ 프레스크섬 주립공권 ⓒ 강인규
 
저는 공원 호숫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수업이 없는 날이기에, 평상시라면 카페 탁자 위에 컴퓨터와 찻잔을 놓고 앉아 있었을 테지요. 지난 주까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곳에 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즐겨 찾던 찻집은 좌석을 모두 없앤 뒤 포장용 주문만 받고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주정부가 내린 행정명령 때문입니다.

현재 도시의 모든 극장이 문을 닫았고, 오케스트라 등 공연단체는 올해의 일정을 모두 취소했습니다. 슈퍼마켓과 식료품점도 영업시간을 대폭 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카페에 갔던 날, 근처의 슈퍼마켓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과 마주쳤습니다. 육류와 냉동식품 진열대가 텅 비어 있던 것입니다.
 
▲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이틀 뒤, 슈퍼마켓 육류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 강인규

어느 나라에서 왔든, 미국 슈퍼마켓에 처음 간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무지막지한 물건들을 누가 다 사?" 게다가 미국 상점은 재고관리 하나는 철저해서, 선반에서 물건이 빠져나가면 어느새 귀신같이 채워 넣습니다.

하지만 이런 미국 슈퍼도 공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휴지와 키친타월 선반 위에도 선택받지 못한 물건 몇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앞에는 '고객당 3묶음씩만 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이후 숫자 '3'은 곧 '1'로 바뀌었습니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나이 지긋한 직원에게 "과거에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백발이 고운 그 분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60년대 이래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분은 "내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들키고 말았네"하고 웃으며 영수증을 건넸습니다.

주지사는 지난 주말에 '생존에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문을 닫을 것'을 지시하는 강화된 조처를 발표했습니다. 제가 강의하고 있는 주립대학도 폐쇄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학생들은 한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교수와 직원들은 계속 출근했습니다. 저도 이제 집에서 수업을 해야 합니다.
 
▲ 평상시 선반 위에 가득 놓여있던 빵이 비상사태 이후 한꺼번에 팔려나갔다. ⓒ 강인규

미국, '느긋함'에서 '허둥대기'로

금요일 저녁, 연구실에서 노트북과 출석부를 가져오기 위해 학교로 갔습니다. 기척이 사라진 교정이 좀비 영화 <28일 후>의 시가지를 방불케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심지의 밤은 유독 컴컴했습니다. 상점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고, 도로의 차도 확연히 줄어 있었습니다.

반가운 장면이라곤, 주유소 앞에 내걸린 휘발유 값뿐이었습니다. 사업장들이 시간을 단축하거나 중단한 데다가, 이동 자제, 금지, 국경 폐쇄 등으로 여행이 끊긴 탓에 유류소비가 대폭 줄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되레 생산을 늘리는 상황까지 발생했지요.

하지만 행동 반경이 줄어든 만큼, 차에 기름을 채울 일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상황은 보름도 안 돼 극에서 극으로 변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사력을 다해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던 2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안일하다 못해 천진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사라질 거예요. 어느 날 기적처럼 사라질 거라니까요."

2월 27일, 트럼프가 "상황이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면서 "별 걱정 안 한다"며 한 말입니다. 미국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나라보다 늦게 도착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정확히 한국과 같은 날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한국이 이 상황을 심각히 받아들인 반면, 미국 정부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지요.
 
▲ '코로나19' 관련 기자 질문 받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AP

이러던 백악관이 정확히 보름 뒤인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다수의 병원에는 진단키트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대통령은 비상사태 선포 일주일 전부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으나, 사실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유사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연락을 취한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3월 말인 현재까지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증상이 나타나도 승인을 받은 환자에 한해 선별적 검사가 이뤄지고 있고, 무엇보다 의료진은 병상 수와 진료용 마스크, 장갑, 산소마스크 등의 의료장비 부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 새 확진자와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비상사태 선포 당일까지도 미국의 확진자는 (한국의 4분의 1도 안 되는) 1700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열흘 뒤인 23일에는 4만3천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550명 이상으로 증가해, 한국의 4배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26일 현재(미국 시간), 확진자는 한국의 10배 가까운 8만 5500여명으로, 그리고 사망자는 1300명으로 늘었습니다. 사망자는 아직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확진자 수에서는 이미 중국을 넘어섰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휴교, 행사 취소, 공공시설과 영업장의 제한과 폐쇄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한 것을 볼 때, 환자의 가파른 증가세는 검사 확대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소극적 대처 당시 감염된 환자들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 공원의 모든 시설이 폐쇄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 ⓒ 강인규
 
미국, 제2의 이탈리아가 될까, 한국이 될까

미국의 보건 전문가들은 두 가지 가능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최상의 시나리오'로,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의 사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가장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나 대만은 한국에 비해 인구도 적고, 최근 들어 2차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2차 확산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뒤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보다 많은 사망자를 낸, 이탈리아의 안타까운 사태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3월 26일 현재(현지시간),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8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8200명을 넘어섰습니다. 확진자 수는 중국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고, 사망자는 무려 두 배 반이나 됩니다.

당연히 미국은 한국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만찮은 장애물과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이탈리아를 바짝 뒤쫓는 미국이 한국 쪽으로 방향을 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미국이 '한국'과 '이탈리아'의 어느 뒤를 따를지를 분석한 <뉴욕타임스>의 기사 ⓒ 뉴욕타임스
 
우선 널리 알려진 미국의 민영화된 의료체계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긴 했습니다만, 의사와 병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막대한 치료 비용은 둘째치더라도, 그에 앞서 치열한 '입원경쟁'부터 뚫어야 합니다. 현재 뉴욕 주에서 코로나 환자 8명 가운데 1명만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상황을 말해 줍니다.

미국인 한 명당 의사와 병상 수는 이탈리아보다도 적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입니다만, 기대수명은 78.6세로(2017년 기준), 한국이나 이탈리아보다 4년 이상 낮습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이라며 불온시해 온 것이 첫 번째 원인입니다.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 중 28위에 머물지만, 놀랍게도 미 정부의 보건지출은 압도적인 1위입니다. 시민들의 세금이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대형병원, 의료업체, 제약회사, 보험사 등 영리기업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며 의료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듯 (한국의 전체 병상 수에서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보다 낮습니다), 미국에서도 새로운 깨달음과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마스크, 방호복, 장갑 등의 의료용품과 의료장비의 생산을 국유화할 것을 연방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트럼프는 이 제안을 거부했지만, 앞으로 펼쳐질 상황은 미국 의료제도의 치부를 드러낼 것이고, 이는 의료제도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 장을 보던 한 남성이 빈 선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강인규
 
공원에서 퇴근하며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갑니다. 이제 컴퓨터를 접어야겠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제게도 소중한 깨달음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삶의 구석구석이 타인과 연결된 이 세상에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나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입니다.

그동안 제게 찻집, 식당, 마트 등에서 일상적으로 도움을 베푼 직원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이었는지 마음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고, 경제도 활발히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온라인 경제'니, '디지털 세상'이니 하며 침을 튀겨도, 사람의 손과 발을 거치지 않고는 우리 곁에 편지 한 장도 도착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물리적 관계 속에서 느끼는 충만함을 인터넷은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이것은 제가 온라인으로 강의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점입니다. 이처럼 그동안 당연시해 온 일상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또 한 가지 느끼는 게 있습니다.

한국 시민들이 촛불 이후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저력입니다. 국경 차단이나 지역 봉쇄 등의 조치는 말할 것도 없고, 극장, 공연장, 식당 등의 강제 폐쇄도 없이 사태를 진정시켜 온 한국의 모습은 국제사회에 큰 교훈과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대처방안을 가르치고 있을 뿐 아니라, '잘 대응하면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낼 수 있다'는 희망까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오랜 싸움으로 지쳐갈지는 모르나, 앞으로도 잘 싸워 가시리라 믿습니다. 한국인이 희망을 잃는다면, 그 어느 나라도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도 공원으로 출퇴근하면서 응원하겠습니다.

멀리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팬데믹이 불러들인 기회: 4.27정상회담 'Ver.2를 상상하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일회담’으로 개최하자
김광수  |  no-ulta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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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8  0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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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모르긴 몰라도 역사와 변화는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적인 교집합에 의해 발전되어 갈 것이다. 대입하면 지금의 남북관계가 바로 그 우연에 의해 획기적으로 전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하다.
타이밍이 꼭 그렇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근거 첫째, 필자 본인이 누누이 얘기해오고 있지만 제비 한 마리가 왔다하여 봄이 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희망적 사고로 본다면), 친서는 분명 잔뜩 움츠렸던 남북관계가 이 친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지개를 펼 수도 있는 좋은 청신호임에는 분명하다. 그것도 시차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거의 동시적으로 남과 북, 북과 미 정상들 사이에 이뤄진 친서교환이니 더더욱 폄훼할 이유는 없다.
둘째 근거, 유엔(UN)이 G20정상회의(현지시각, 3.26)를 앞두고 각국 정상들에게 서신 하나를 보냈다. 모든 제재완화가 핵심인데, 쿠테흐스 사무총장은 “제재대상의 국가들이 식량, 의약품 그리고 코로나-19(COVID-19 ) 퇴치에 필요한 지원을 쉽게 받기 위한 조치로 제재를 완화하도록 촉구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연대할 시점이지, 배제를 지속할 때가 아닙니다(강조, 필자)”라고 언급했다. 앞서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지난 2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북을 언급하며 "코로나19 확산이 전 세계에 미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대북 제재 완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두 발언을 대북제재에 대입시키면 쉽게 답은 나온다.
셋째 근거, 코로나-19가 준 역설의 선물이 또한 그 중 하나이다. 다름 아닌, 2020년 3월에 실시되려든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중단된 것이 그것이고, 이는 정치적 산물로서 연기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좋은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해서 위 3요인을 조합해 해석하면 이렇다.
3요인 하나하나는 제비 한 마리일 뿐이고, 각기 다른 우연이겠지만, 3요인이 합해지면 인식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양질 전환의 법칙에 따라 필연으로 전환된다.
필연으로써 남북관계가 그렇게 찾아왔다. 
이제 그 활용은 대한민국 정부의 능력문제이다. 좀 더 직설하자면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 능력의 문제이고, 좁히면 청와대 통일·외교 관련 참모들이 이 상황을 정확히 캐치해내고, 대통령께 보고(혹은, 직언)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첫째, 정치적 타이밍이 정말 좋다.
분명 역발상하면 그렇게 보이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4월 총선국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선거라는 것이 각 정당이 중심되어 치러지는 치킨게임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대통령은 한 발 빠져 있을 수 있다.
반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상황은 영 다르다. 연말 대선에서 본인이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재선문제가 달려있어 자기 코가 석자일 수밖에 없다. 대선에 올인 해야 할 수밖에 없고, 남북-북미문제는 당략과 관련된 대선의 직접적 이슈가 아니니 관심 밖이 된다.
두 상황은 이렇듯 두 대통령으로 하여금 전혀 다른 시선을 향하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은 당면한 코로나-19 대응은 물론, 남북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문제에 올인 하게 한다. 때문에 득표요인에 결정변수가 아닌 남북관계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비례하여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남북문제에 있어 독자적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기회가 그렇게 찾아온다.
어떻게?
① 미국 국내 상황이 대선국면으로 급격히 빠져들어 가버리기 때문에, 이때를 활용해 남북관계 내정간섭 기제인 한미 워킹그룹을 무력화 할 수 있다. (해체까지 검토 가능)
② 동시적으로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총선이 끝나자마자(물밑에서는 지금부터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직후 코로나-19 협력을 매개로 하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나갈 수 있다.
물론 대전제는 있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에게 분명한 시그널을 보내야 하는데, 그 핵심에 기간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약속이행을 하겠다는 보장을 해 주어야 하고, 동시적으로 이제까지 해 왔던 ‘선 한미협의-후 남북협의’ 방식이 아니라, ‘선 남북합의-후 미국설득(남북공동으로)’이라는 민족공조 방식에 대한 확실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결과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다. 의제도 6.15와 10.4, 4.27과 9월 평양선언 모두 다 총화 되는 집적으로서의 통일회담이다. 그렇게 남북관계가 민족자주의 관점에서 순항하게 되는 것이다(“양 정상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중략)”, <9월 평양공동선언 전문> 중에서).
둘째, 한미동맹체제에 의존하지 않는 남북관계 모멘텀(momentum)도 반드시 만들어 낼 수 있다. 근거는 이렇다. 
코로나-19로 인해 남측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모범국가로 칭송받는다.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채택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북측도 오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의료체계특성(무상의료체계와 예방의학)과 여러 요인들이 겹쳐 현재까지 단 한명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는 유일국가(?)이다. 
사실로부터 남북관계도 모범적으로 해날 갈 수 있다는 충분한 명분이 우리(민족)에게 있고, 국제사회의 지지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남측은 방역시스템과 진단키트 등 우수한 의료기술과 제도를, 북측은 개성공단 재가동을 통한 마스크 대량생산, 그렇게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전 세계의 의료 방역시스템에 획기적으로 기여한다면 이는 우리 민족이 21세기형 인도주의 모범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 바탕위에서 우리(민족)는 코로나-19만큼이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도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국제사회에 주지시킬 수 있고, 동시적으로 '한국식 모델로 분단 문제도 반드시 풀릴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져줄 수 있다.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아래와 같다.
① 코로나-19 남북협력은 전 세계의 지지를 받으면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미국 등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② 개성공단 재가동은 전 세계에 공급될 코로나-19 마스크 생산을 명분으로 제재해제를 보장받고, 국제사회로부터 대북제재 해제 전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이다.
③ 코로나-19 계기로 ‘잠정’ 중단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 중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 기간 안에 - 잠정 중단된 한미합동군사훈련 그 기간 안에 3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만 된다면 이는 당연히 통일회담일 수밖에 없고, 그러면 한미동맹체제는 자연스럽게 그 운명이 다하고, 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군사적 긴장고조의 근원적(본질적) 원인이 제거된다.
결론적으로 이렇듯 지금의 국면은 위 ‘첫째’와 ‘둘째’를 상상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좋은 기회이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는 절대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한낱 일장춘몽이 정말 아니길 바란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외 다수가 있다.

코로나, 조국, 위성정당…이런 선거는 처음이지?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정치 퇴행
4.15 총선 후보등록일이 27일 마감됐다. 공식 선거운동은 다음달 2일부터지만 지역구 대진표가 완성되고 정당기호 등이 결정되면서 본선 레이스가 사실상 시작됐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무당층이 늘어나는 등 정치와 선거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최악의 총선 투표율을 보일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된다.
달라진 공직선거법의 빈틈을 노려 우후죽순 등장한 비례정당들의 난립에 여야를 가르는 굵직한 쟁점마저 보이지 않아 통상 현 정부 중간평가로 인식돼온 전국단위 선거의 성격과 거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비례용 위성정당 창당과 의원 꿔주기를 경쟁하며 꼼수 논란을 일으켰고 지역구 공천 과정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코로나 정국', 총선 블랙홀로 
지난 1월 하순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사태는 두 달째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이다. 감염자 확산 초기,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76만 명이 서명하는 등 정부 대응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져 정부여당이 한때 위기에 몰렸다. 수요‧공급 예측에 실패해 '마스크 대란'을 일으킨 점도 감점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유럽 등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감염자 확산 추세 속에 한국 정부의 감염병 관리 수준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사정이 변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율은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호평에 힘입어 지난주보다 6%포인트 오른 55%로 집계됐다. '코로나 정국'의 주도권은 문 대통령으로 기울어 있다. 
미래통합당도 코로나19 사태를 고리로 한 정부 비판에서 한 발 빼는 분위기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마구잡이식 현금 살포"라고 맹성토했던 통합당은 경기도 등 여권 지자체장들이 주도한 재난생계지원 방안에 여론의 호응도가 높아지자 '40조 국채 발행'을 제안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다만 일일 100명 선으로 관리되고 있는 신규 확진자수가 좀처럼 안심할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감염병의 특성 상 언제든 다시 폭증할 수도 있어 코로나19 사태가 총선에 미칠 영향력을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평가다.
'화학적 결합' 부실한 보수 통합, 위력은? 
선거구도 정비 면에서는 보수 통합에 성공한 미래통합당이 한 발 앞서있다. 유승민 의원이 이끌던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에 사실상 흡수 합병되는 방식으로 지난 2월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3년 여 만에 보수 단일대오가 완성됐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이 '옥중 서신'을 통해 미래통합당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태극기 세력'에 주문함으로써 통합당은 강경 친박 지지층들의 이탈도 단속할 수 있게 됐다. 총선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민경욱 의원이 기사회생 하는 등 막판까지 잡음이 일었지만,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상징성 있는 친박 중진들과 대구‧경북(TK) 지역에 대한 물갈이가 이뤄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논란만 한차례 일으키고 무산된 것으로 보였던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끝내 총괄선대위원장에 내세운 점도 중도 확장성 면에서 득표 요인이다. 
그러나 보수 통합의 관건적 문제이던 '탄핵의 강' 논란이 여전히 잠복해 있는 데다, 합당 이후 유승민 의원의 정치적 침묵이 이어지고 있어 형식적 보수 통합이 내용적으로도 완성됐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황교안 대표가 공천관리위원회와 빚은 갈등,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순번 파동을 거치며 빈약한 리더십을 노출한 점도 '김종인 효과'로 극복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총선 정국에 드리운 '조국 그림자' 
50% 위로 치고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미래통합당의 '정권 심판론'을 방어하는 형국이지만, 민주당의 총선 전열 정비는 총체적인 실패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조국 사태'를 계기로 폭발적 균열이 일기 시작한 '진보 내전'이 총선을 앞두고 봉합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조국 사태의 본질을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반란'으로 보는 '친문‧친조국' 성향의 지지자들과 '개혁의 외피를 쓴 정권 실세가 드러낸 불평등 세습 사회의 민낯'으로 보는 진보 진영의 설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국 사태라는 정권적 위기를 맞아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 개혁으로 논점을 바꾸면서도 총선에서 조국 프레임이 전면화 되는 데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공개선언을 한 데 이어 강성 지지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은 금태섭 의원이 결국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범여권 내부 논란의 핵심은 '조국이냐 아니냐'로 모아졌다. 
특히 김남국 변호사 등 '조국 키즈'들이 속속 민주당 공천장을 받아 쥐었고, 대놓고 '친조국'을 표방하는 인사들이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을 창당해 지지층 표심을 가르는 점도 여권이 조국 프레임을 피할 수 없는 배경이다.
민주당 위성정당 전략 자충수?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저)가 비유하듯 ,'60대 건물주' 세력과 '50대 부장님' 세력 사이의 도덕적‧계급적 경계를 허문 조국 사태에 이어 미래통합당과 민주당이 앞 다퉈 만든 위성정당 논란은 정치적으로도 두 세력의 차이를 분간하기 어렵도록 했다. 
지난해 선거법 개정 자체를 반대했던 통합당은 "우리가 만든 비례정당은 민주당과 야합 정당들이 만든 선거법에 대응해서 나온 것"(황교안 대표)라는 말로 미래한국당 창당 명분을 내세운다. 
반면 통합당의 위성정당 만들기를 "민주주의도, 정당정치도, 국민의 눈초리도, 체면도, 염치도 모두 다 버렸다"(이인영 원내대표)고 비판했던 민주당은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은 '문 대통령 탄핵론'을 내세워 부랴부랴 위성정당에 비례대표를 파견했다. 
민주당은 특히 시민사회 원로들이 제공한 위성정당 플랫폼을 걷어차고, 친조국 성향의 인사들이 주도한 더불어시민당과 손을 잡아 소수정당 원내진출이라는 마지막 명분마저 포기했다. 또 다른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이 만만치 않은 득표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재까지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지지율 이전 효과는 마이너스다.
27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정당지지도가 37%인 반면, 비례대표 투표 의향을 묻는 조사에서 더불어시민당은 25%를 얻는데 불과했다. 미래통합당의 정당 지지율은 22%였으나 미래한국당에 비례대표 투표를 하겠다는 응답은 24%로 불어났다. 
총선 득표력과는 별개로, 민주당이 위성정당 전략을 채택한 효과는 진보 진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꼼수 따라하기'로 규정하며 등을 돌린 데다, 정의당은 지지율 하락, 녹색당을 비롯한 원외 소수정당들은 내부 논란을 겪는 등 진보진영 전반이 후폭풍을 겪고 있다.
 
※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지난 24~26일 휴대전화 무작위걸기 표본 프레임에서 추출한 유·무선전화 표본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면접 방식으로 시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4%다. 설문지 문항과 통계보정 기법 등 조사 관련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경구 기자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32718242518183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천안함 침몰사건 10주기에 부쳐

국가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직과 진실’ 뿐
신상철 | 2020-03-26 10:12:4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2010 천안함 침몰 사건
오늘로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지 꼭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2010년 3월 26일 밤 비운의 천안함은 항해당직사관의 운항과실과 잘못된 판단으로 좌초를 겪은 직후 이어진 충돌사고로 반파 침몰되어 46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두 번의 불행이 겹쳐진 복합 해난사고였습니다. 하지만 천재지변은 아닙니다. 운항자가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사고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사건 자체보다 더 크고 심각한 비극은 그 사고 이후 정부와 군 당국이 줄곳 행하고 있는 ‘거짓과 왜곡’ 그리고 ‘조작과 은폐’이며 그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들의 ‘침묵’입니다.
그로 인하여 천안함 침몰사건은 사고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은커녕 어떠한 교훈도 주지 못한 채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 사건인 채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선박이 어떠한 곳을 항해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 해저와 수로지형에 대한 정보부실이 어떠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선체가 침수를 겪을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침몰한 선체에서 인명구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무수히 많은 과제들이 <적의 공격>이라는 허구의 조작아래 묻혀버렸습니다.
대형 해난사고의 정확한 원인규명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 대책과 대비를 위한 교훈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행했어야 할 합당한 의무를 저버린 결과는 불과 4년 뒤의 참극 속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 2014 세월호 침몰 사건
그날의 바다를 떠 올릴 때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아릿하게 저며오는 느낌은 세월이 흘러도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기다리라’는 메시지만 반복되었다는 사실이 울화의 응어리가 되어 아직도 목구멍에 걸려있는 듯합니다.  
그날 사고 순간 현장에 있었더라면.. 방 마다 문을 젖히며 ‘Abandon Ship!(탈출)’을 목이 터져라 외칠 수 있었더라면.. 유리창마다 망치로 깨 아이들을 물속으로 뛰어들게 할 수 있었더라면.. 주변 배들에게 섬 쪽으로 밀게 해 인위좌초를 시킬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쉬움의 편린들이 한숨 되어 흘러나옵니다. 
세월호 사건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6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고의 원인, 관계자들의 조치와 처신의 적절성, 해난사고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밝혀진 것도 매듭지어진 것도 없습니다.
정부 당국과 관계기관들의 거짓과 왜곡 그리고 조작과 은폐 속에 그 또한 녹슨 세월의 부식물 아래 깊숙이 매몰되어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분노가 치밉니다.
국가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국가가 국가기관을 총동원하여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은폐하는 짓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3. 2020 COVID-19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작금 전 세계는 COVID-19 펜더믹으로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 매일 수 백 명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위기의 상황을 바라보며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하나는, 만약 이러한 수준의 바이러스 위기가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시절에 발생했더라면 우리의 현재 상황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응을 적절히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정직하지 못하고 투명하지 못하였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하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우리는 그들로부터 너무나 분명하고 확고하게 학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2010년 3월 백령도 해역에서 침몰하여 4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던 천안함 침몰사건, 2014년 생떼와 같은 아이들을 잃어야 했던 비극적인 사건들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거짓으로 진실을 덮어버렸을 때 그것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과 다름아닙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직과 진실’뿐입니다. 그래야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고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으며 그것을 딛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망각한 대가는 반드시 혹독한 결과로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늘 가르쳐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가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신상철
덧글 : 지난 1월 30일 천안함 항소심 최종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선고 이틀을 앞두고 재판부에서 변론재개를 통보하여 오는 4월 23일 항소심 재판이 속개될 예정입니다. 이 사건이 마무리 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리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10년간 그랬듯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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