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3일 화요일

“노조를 파괴해도, 노동자를 해고해도, 재벌이면 봐줍니까?”

“노조를 파괴해도, 노동자를 해고해도, 재벌이면 봐줍니까?”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10/24 [07: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현대기아자동차를 판매해 온 비정규노동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을 규탄하고 나섰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현대·기아자동차 하청 대리점의 비정규직 자동차판매 노동자들이 재벌 감싸기로 일관하는 노동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는 지난 6월 18일 법률상 사용자인 현대·기아차그룹이 대리점을 앞세워 비정규직 자동차판매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6월 25검찰은 서울고용노동청에 관련 사안을 조사하라고 수사 지시를 내렸지만 고용노동부가 4개월째 수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는 23일 오후1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의 자동차 판매노동자 탄압과 이를 방기하고 있는 서울노동청을 규탄했다.

금속노조는 지금까지 현대·기아차 판매대리점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판매 노동자는 원청 판매직과 업무의 구분 없이 똑같은 일을 하고도기본급의 차별, 4대보험의 차별, 10년 넘게 근무하고도 퇴직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노예 같은 취급을 20년 넘게 견디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현대·기아차는 인간의 권리를 무시했다며 노조를 결성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대리점 소장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금속노조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교섭을 요청한 자동차 판매 대리점 중에서 7곳이 강제 폐업 당했다며 모두 1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자 신세가 됐다남은 조합원들도 끊임없는 탈퇴공작과 회유에 시달렸고 끝까지 버티면 부당해고 통지가 날아왔다고 밝혔다.

판매연대지회는 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대리점소장들을 모두 검찰에 고소해 왔다하지만 금속노조는 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벌금형 같은 미약한 처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금속노조는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노동부 조사검찰 조사법원 재판과정에서 모두 한결같이 원청인 현대·기아차가 시켜서 한 일이라는 취지의 진술과 증언을 내놓고있으며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한 명이라도 노조에 가입하면 대리점 재계약을 해지한다는 원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조합원을 해고했노라고 진술한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는 서울노동청을 향해 수사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고의로 수사를 지연하고 있다며 이것은 하청업체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원청을 직접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나아가 범죄 집단인 현대·기아차 재벌은 철저히 감싸고 돌면서 공직자로서 노동부의 책무는 등한시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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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현대차의 판매노동자 탄압조사조차 안 하는 서울노동청
노조를 파괴해도노동자를 해고해도재벌이면 봐줍니까?

우리는 자동차 판매 노동자다우리가 파는 자동차는 현대자동차 공장에서기아자동차 공장에서 똑같이 생산되는 똑같은 자동차다그러나 똑같은 자동차도 우리는 다르게 팔아야 한다왜냐하면우리는 비정규직 판매 노동자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정가보다 더 낮게기준보다 더 싸게 팔아야 한다왜냐하면우리는 하청 대리점 판매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현대·기아차 판매대리점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판매 노동자는 원청 판매직과 업무의 구분 없이 똑같은 일을 하고도기본급의 차별, 4대보험의 차별, 10년 넘게 근무하고도 퇴직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노예 같은 취급을 20년 넘게 견디고 있다이것이 잘못됐기 때문에노동자가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노동조합만이 길이라고 깨달은 우리는 지난 2015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인간의 권리를 무시했다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한 조합원은 노조를 결성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대리점 소장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당시 이 사건은 3일 연속 지상파 뉴스로 보도됐다이후 노조 위원장이 근무하던 현대자동차 안산중앙대리점을 선두로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교섭을 요청한 자동차 판매 대리점 중에서 7곳이 강제 폐업 당했다모두 1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자 신세가 됐다남은 조합원들도 끊임없는 탈퇴공작과 회유에 시달렸고 끝까지 버티면 부당해고 통지가 날아왔다.

판매연대지회는 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대리점소장들을 모두 검찰에 고소했다수십 명의 대리점 소장들이 기소됐다노조 위원장을 폭행했던 현대자동차 안산중앙대리점 소장은 고작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받았다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벌금형 같은 미약한 처벌을 받았다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은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되었고 이어진 노동부 조사검찰 조사법원 재판과정에서 모두 한결같이 원청인 현대·기아차가 시켜서 한 일이라는 취지의 진술과 증언을 내놓고 있다노조위원장이 근무했던 현대자동차 안산중앙대리점 소장은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모두 원청인 현대자동차에서 김선영 노조 위원장을 해고하라 지시했으며 대리점을 폐업한 이유 역시 원청의 압박 때문이다.”라고 진술했다.

현대자동차 문래중앙 대리점 소장은 원청의 지시에 따라 조합원을 해고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기아자동차 목동법원 대리점 소장 역시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본사에 수십 번 불려 가 조합원을 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시인했다현대자동차 효성서부 대리점 소장은 본사 임원의 지시로 노조탈퇴서를 받고 탈퇴를 종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최근 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의 유죄를 선고받았다위에 열거한 사례에 더해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한 명이라도 노조에 가입하면 대리점 재계약을 해지한다는 원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조합원을 해고했노라고 진술한다.

판매연대지회는 지금으로부터 4개월 전인 6월 18서울중앙지검에 현대·기아차 원청을 고소했으며 검찰은 즉시 서울고용노동청에 수사지휘를 내렸다하지만 놀랍게도 서울고용노동청은 4개월이 넘도록 단 한 명의 참고인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수사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고의로 수사를 지연하고 있다이것은 하청업체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원청을 직접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나아가 범죄 집단인 현대·기아차 재벌은 철저히 감싸고 돌면서 공직자로서 노동부의 책무는 등한시한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부가 고의로 수사를 지연한 결과 전국에 걸친 현대·기아차 대리점에서는 수많은 노동탄압이 쌓여만 가고 있다노동부는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에 섰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법과 정의공무원의 양심에 따라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현대·기아차 재벌을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보장받는 길은 노동부가 공정한 잣대로 노사관계를 바라보고 노동의 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노동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금속노조는 진심으로 노동부의 반성과 변화를 기대한다금속노조와 판매연대지회는 노동부가 현대·기아차 재벌을 엄정하게 수사하고잘못을 가리고죄를 물을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8년 10월 23일 
전국금속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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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과 달러기축체제의 위기(1)

양적완화가 끝나고 있다
  • 손정목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10.24 10:23
  • 댓글 0
세계경제의 불안정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 천문학적 부채위기가 전후 7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달러기축체제의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미국이 최근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대규모 무역전쟁'과 '금리인상', 그리고 '경제제재의 남발'은 본질적으로 달러기축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3대 경제전략이다. 당연히 이에 대항하는 주요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달러국채를 팔아치우고, 제재에 저항하면서 달러결제시스템을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다극화된 경제질서로의 전환기에 서있다. [필자주]
1. 양적완화가 끝나고 있다
2.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향방
3. 윤곽을 드러내는 다극화 경제질서
1.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
지난 9월말 이래 미국 국채금리가 심리적 저지선이던 3%를 넘어 3.25%로 급격히 상승하고, 이에 영향을 받아 지난 10, 11일 미 증권시장이 대폭락하자 지난 수년간 제기되어 왔던 거품붕괴론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 공화당 의원 론폴(Ron Paul)은 지난 7일 미국의 CNBC방송에서 지금의 미국 금융상황을 “인류역사상 최대의 거품(bubble)”이라고 지적하고 내년 어느 시점에 미 주식시장이 50%이상 폭락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였다. 나아가 그는 “이것은 막을 수 없다”고까지 비관적 전망을 하였다. 이런 전망은 비단 론폴만이 아니다. 유로퍼시픽캐피털의 CEO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피터 쉬프(Peter Schiff)등 상당수 경제전문가들 역시 현 상황을 미국, 유럽, 일본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QE)로 만들어진 사상최대 금융거품의 말기로 조만간 거대한 거품붕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거품”이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붕괴된 채권, 주식시장에 자금을 주입해 연명시키기 위해 미 연준(Fed)이 주도한 양적완화(Quantity Easing. QE) 정책의 결과로 어마어마하게 부풀려진 채권과 파생상품의 거품을 말한다. 2008년 11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양적완화는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이 국채나 회사채 등 각종 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대량 찍어내 공급해온 정책으로 현재까지 10년간 13조 달러(약 1경4천조 원)가 증쇄됐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리먼브라더스 붕괴 이후 5년간의 양적완화로 4조5천억 달러(약 5천조 원)를 증쇄하고, 제로금리로 대규모 자금을 주입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연방은행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고, 기축통화로서의 신용 상실이 우려되자 2014년 가을 미 연준은 양적완화를 중단하면서 동맹국인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에 양적완화를 위임했고,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은 현재까지 8조5천억 달러(약 9천조 원)를 증쇄해 공급했다. 미국이 달러의 기축성 유지를 위해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돌아섰는데 유럽과 일본은 달러기축체제를 떠받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까지 채택한 것이다.
이런 부채기반의 양적완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지자 미 정부는 경제회복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가시적 실적 호조에 집착해 시간이 걸리는 생산영역 투자보다 단기적 금융차익에 집중하여, 실물경기는 회복되지 않은 채 채권, 주식시장만 과열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연출됐다. 그 결과 이제 세계 채권의 시가 총액은 100조 달러에 이르고, 채권 관련 파생상품 총액은 그의 5배가 넘는 550조 달러(약 60경원)에 이르게 됐다. 세계 GDP 총액보다 무려 7배나 더 많은 것이다. 또 국제금융협회(IIF)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부채는 247조 달러(약 27경6천조 원)에 달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부채의 거품이자 바벨탑이다. 누구도 이 많은 부채를 갚을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미국 주도의 달러체제는 역사상 최대의 거품, 최고의 공황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양적완화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인 JP모건조차 “위기가 닥치면 지난 50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주식시장 붕괴와 사회 불안정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3일 IMF도 ‘세계 부채가 2008년 이상으로 쌓이고, 은행시스템 개혁의 실패가 세계공황을 촉발할 수 있다’고 노란불을 켰다. 이제 영미식 세계 자본주의는 마지막 지점에서 그 탐욕과 기생성을 남김없이 발휘해 빚더미로 하늘에 닿으려다가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2.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ming)
2008년 금융위기로 금융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한 정책인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지만, 그 달콤한 열매에 중독된 금융독점자본은 반성은커녕 더욱 더 자기들만의 천국을 위한 탐욕의 질주를 계속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높아진 은행과 금융시스템 개혁요구에 허울뿐인 규제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했지만 이마저도 트럼프 정부는 폐기하려 하고 있다. 사실 무엇 하나 개선된 것은 없었다. 지난 10년간 미 연준에 모여 앉은 이들은 금융위기에 의한 유동성 부족을 명분으로 부채를 담보로 한 현금을 수혈 받아 더욱더 많은 부를 쌓아올렸고, 이로부터 소외된 일반대중의 가난은 더 심화되었다. 그 결과 세계는 슈퍼리치 8명이 세계 인구 절반의 부를 소유하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불평등 세계가 됐었다.
이런 상황은 대중의 강력한 분노를 낳았고,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국들은 부채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달러체제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비롯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에서의 반EU 정권 등장,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유럽에서 반EU 정치세력 강화 등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새로운 정치현상은 모두 누적된 불평등한 사회경제정책과 금융독점자본의 탐욕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중국, 러시아 등 신흥국들의 달러 국채 매각, 금 보유의 확대, 석유 거래에서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 내지 위안화, 유로화 결제 확대, 달러를 배제한 새 금융결제시스템 구축 시도 등은 모두 달러기축체제의 붕괴를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미 정부와 대부분 주류언론들(국내 언론 포함)이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마치 양적완화가 금융위기를 이겨내고 경제를 살린 것처럼 호도한다. 미 정부는 주식시장의 활황을 내세워 경제가 살아나고, 실업률이 떨어지고 소비력이 증대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3월 “미국 식료품 체인의 연속된 파산은 ‘소매상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듯이 미국은 식품은 물론 백화점, 전자부품, 완구 등 대형 소매체인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있다. 132년 된 미국의 대표적 백화점 시어스, 70년 된 장난감 회사 토이저러스, 대표적 식료품체인 톱스마케츠 등 최근 2~3년 동안 30여개의 전통적인 소매 대기업들이 문을 닫은 것은 소비력이 살아나지 않았다는 단적인 예다. 주류언론들은 이를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란 식으로 평가하지만, 이런 평가는 마치 한국의 롯데, 현대백화점이 네이버 쇼핑몰에 밀려 무너졌다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이런 분석은 미국의 실물경기 실상을 가리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양적완화는 소수의 금융독점세력과 군산복합세력들이 탐욕과 이익을 위해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극한으로 남용해 세계경제를 헤어날 수 없는 부채와 금융위기의 늪으로 빠뜨린 결정적 정책이다. 이들은 이를 분식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선전하고 주식시장에 자금을 주입해 활황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물경기가 받쳐주지 않은 조건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중단되거나 감소된다면 시장의 붕괴는 불가피하다. 양적완화가 중단된다면 부채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3, 금리인상, 무역전쟁, 경제제재의 남발은 양날의 칼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부채의 무한증대는 불가능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 자체도 양적완화를 5년 만에 중단했듯이 유럽과 일본의 양적완화 역시 그들 경제의 건전성을 심각히 훼손하기에 지속될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연합은 적”이란 발언과 일본에게도 ‘환율협상’을 요구한 것처럼 유럽, 일본과의 관계가 더 이상 동맹이 아닌 경쟁상대로 여겨진 조건에서 EU와 일본이 계속 미국과 달러체제 유지를 위해 헌신할 리 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지난 6월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일본 역시 내년 중에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양적완화 중단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달러체제를 유지하고 자국 주식시장의 활황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제조업 육성 등을 위해 시행하는 비상한 조치가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재재의 확대다. 금리인상은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로 상실된 달러의 신용을 회복해 기축체제를 유지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달러를 미국으로 모아 주가를 떠받치기 위한 직접적 수단이다. 그리고 무역전쟁과 경제제재는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여러 신흥국과 EU까지도 저울질하고 있는 달러 배제의 새로운 국제통화체제, 다극화된 경제질서 준비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들 세 정책은 각기 고유의 특성이 있지만 모두 위기에 처한 달러기축체제 유지를 공통의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상호 연관돼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남발은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론 미국의 패권과 달러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해당국의 반발을 불러와 달러기축 붕괴를 가속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이 압도적 무력을 앞세워 달러로만 석유대금을 결제케 했던 이른바 페트로 달러(Petro-Dollar) 체제에선 이런 압박정책이 해당국을 순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미국의 핵무력이 압도적이지 않고 달러체제 역시 천문학적 부채로 위태로운 조건에서는 제재와 압박이 되레 해당국들의 단결을 촉진시켜 달러를 배제하는 다극화된 경제질서를 앞당기는 명분이 된다.
전후 70년을 유지해온 달러를 축으로 한 세계경제질서가 근본에서 흔들리고 있다. 세계는 정치, 군사적 측면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전환기적 진통을 겪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이 겨울이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준비기가 될지 아니면 더 긴 혹독한 추위로 이어질지는 향후 몇 년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2편에 계속)
손정목 편집기획위원  webmaster@minplus.or.kr

6.25 전쟁고아들 유럽으로 보낸 북한, 김일성의 큰 그림

18.10.24 09:44최종업데이트18.10.24 09:44
아주 어린 나이에 미국이나 유럽에 입양돼 성장한 뒤, TV 화면에 나타나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런 아픔의 시작은 6·25가 배출한 전쟁고아들의 해외입양이다.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전쟁고아는 아직 그 정확한 수치마저도 완전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남한 측에서 발생한 전쟁고아의 수가 4만 4648명, 5만 9000명, 4만 8322명 등으로 파악되는 것으로 보아, 대략 5만여 명 내외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 전체에서 발생한 전쟁고아의 수를 약 10만 명으로 보는 견해(국방부 견해)에 따른다면, 북한 지역에서도 남한과 거의 비슷한 숫자의 전쟁고아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2015년 <중동유럽한국학회지>에 실린 이해성의 논문 '폴란드에 남겨진 북한 전쟁고아의 자취를 찾아서.'
 
위와 같이 남북한에서 배출된 전쟁고아는 대략 5만 정도로 추정된다. 남한의 경우에는, 그중 상당수가 고아원이나 외국 양부모의 손에 맡겨졌다. 북한 경우에는 만경대혁명학원 같은 국립시설 또는 외국 국립양육기관에 맡겨졌다.
 
남한과 판이했던 북한 전쟁고아 실태를 소개하고 그로 인해 북한 고아들이 받았을 심리적 영향을 다룬 영화가 추상미 감독의 다큐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다. 6·25가 배출한 북한 전쟁고아들을 가장 많이 수용해준 나라가 폴란드다. 이 영화가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을 다룬 이유는 그런 대표성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보아스필름
  
북한의 전쟁고아와 남한의 전쟁고아
 
감독 겸 주연으로 출연한 이 영화에서 추상미는 북한 전쟁고아에 관심을 갖고 다큐영화를 준비하게 된 사연, 이 문제를 함께 탐사하게 될 탈북소녀 송이를 만나게 된 사연, 송이와 함께 폴란드로 날아가 북한 고아 양육시설을 답사하고 거기 근무했던 폴란드인들을 만난 이야기 등을 순차적으로 들려준다.
 
감독은 영화 중간 중간에, 1951년 이후 촬영된 북한 고아들의 폴란드 생활을 담은 동영상이나 사진, 이 문제와 관련된 신문기사 등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면서 송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탈북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이따금씩 들려줬다.
 
송이를 폴란드행의 동반자로 선택한 것은, 감독 본인이 전쟁고아들의 심경을 탈북소녀를 통해 들여다보는 한편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곳곳에서 탈북 청소년들의 가슴 속의 상처를 들려준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추상미.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추상미.ⓒ 보아스필름
  
폴란드로 날아간 추 감독과 송이가 접한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는, 그동안 남한에서 접했던 남한 전쟁고아 이야기와는 상당히 다르다. 전쟁고아들이 겪었을 아픔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별 차이가 없겠지만, 이 문제를 대하는 양쪽의 접근법에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이승만 정부가 이 문제를 원칙상 민간에 맡긴 것과 대조적으로, 북한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국내에서 수용할 수 없는 아이들을 중국·소련 혹은 동구권 동맹국들로 보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 중에서 동구권에 보내진 고아들은 "1951년부터 1959년까지 폴란드에 6천여 명, 루마니아에 3천여 명, 헝가리에 950여 명, 동독에 600여 명, 체코슬로바키아에 400여 명, 불가리아에 500여 명"이라고 위의 이해성 논문은 말한다.
 
폴란드가 북한 고아들을 가장 많이 수용한 것은 동병상련 때문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제작노트에 언급된 것처럼,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에 망명정부를 둬야 할 정도로 시련을 겪었을 뿐 아니라 "(1945년) 당시 폴란드 고아원의 90% 이상이 전쟁고아로 가득 찼을 정도로" 인평피해와 재산손실도 크게 경험했다.
 
그런 폴란드인들을 적극 도운 나라가 인도였다. 이해성 논문에 따르면, 인도의 지방 유력자인 잠 사헵 디그비자이신지(Jam Saheb Digvijaysinhji) 같은 사람은 천여 명의 폴란드 고아를 직접 보살피는 한편, 5천여 명의 폴란드 아이가 여타 유력자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이렇게 인도인들한테 빚진 경험이, 폴란드인들로 하여금 북한 고아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배우 겸 동반자로 출연한 송이.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배우 겸 동반자로 출연한 송이.ⓒ 보아스필름
  
가장 많은 전쟁고아를 받은 폴란드
 
그런데 북한 고아들을 맡아준 나라들이 이들에 대해 배타적 보호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도 언급됐듯이, 아이들이 해외입양이 아니라 위탁교육 형식으로 맡겨졌기 때문이다. 남한 전쟁고아들에 대해 해외입양 방식이 적용된 데 비해, 북한 전쟁고아들에게는 해외위탁 방식이 적용됐다. 위 논문에 따르면, 북한 고아들이 폴란드로 떠나는 날 김일성이 작별인사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멀리 유럽의 어느 나라로 간다. 그곳에서 너희들은 가능한 한 최대로 많이 배워야 하며 더욱 더 많이 익혀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이곳으로 돌아와서 사랑하는 우리 조국을 건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서도 소개됐듯이, 아이들은 폴란드 교사뿐 아니라 북한 교사의 지도도 함께 받았다. 이해성 논문에 따르면, 북한에서 파견된 교사들은 한글과 역사뿐 아니라 전통 무용과 민요까지 가르쳤다. 심지어 군사훈련도 있었다. 영화에 언급된 것처럼 사상교육도 있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북한 전쟁고아들과 폴란드인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북한 전쟁고아들과 폴란드인들.ⓒ 보아스필름
  
전쟁고아들이 입양이 아니라 해외위탁 형식으로, 그것도 북한 교사의 관리 하에 폴란드에 거주했다는 사실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스토리 전개방식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영화에서는 탈북 청소년들의 심경을 통해 전쟁고아들의 심경을 유추했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과의 공식적 연계가 끊어진 데 반해, 전쟁고아들은 여전히 그 연계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언급된 것처럼 아이들 상당수가 북한으로 돌아가기 싫어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북한 정부의 관리를 받았으므로 이들의 고통을 탈북 청소년들의 고통과 등치시키는 것은 최상의 접근법이 아닐 수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모국 정부의 관리를 받는 가운데 북한 전쟁고아들이 겪었을 독특한 시련이 관객들에게 설명됐어야 한다. 탈북 청소년들도 고통을 많이 겪었지만, 이 청소년들도 이해할 수 없는 전쟁고아들만의 독특한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이 점이 영화에서 나타나지 않은 게 아쉽다.
 
북한 정부는 고아들을 맡긴 지 7년 뒤인 1958년부터 고아들을 국내로 불러들였다. 이듬해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귀국시켰다. 북한이 이들을 불러들인 이유를,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북한 내부의 노동력 수요와 연결 지었다. 천리마운동에 참여시킬 인력을 확보하고자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체가 아닌 일부만 설명하는 해답이다.

뜻깊은 조명, 그럼에도 아쉬운 지점들
 
1958년이면 북한에서 전쟁복구가 어느 정도 이뤄진 뒤였다. 그래서 북한이 고아들을 귀국시킬 만한 여건이 조성돼 있었다. 이에 더해 공산권의 분열도 작용했다. 1956년 폴란드 및 헝가리에서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는 폭동이 발생한 것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시기에는 동유럽 정치상황이 전반적으로 어수선했다. 거기다가 북한과 중국·소련의 관계도 예전처럼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쟁고아들을 더 이상 중국·소련 및 동유럽에 맡겨두기 힘들었다.
 
그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돼서 전쟁고아들의 귀국으로 연결된 것이다. 박종철·정은이의 논문 '한국전쟁 이후 북한 재건을 위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의 원조에 대한 검토'에서 보다 상세한 상황을 접할 수 있다.
 
"이 시기 동유럽의 북한 유학생과 전쟁고아들이 동시에 귀국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이후, 사회주의 각국의 권력투쟁과 관련이 있다. 북한의 8월 종파사건(정권전복 음모에 맞선 숙청작업)과 헝가리·폴란드 사태 시기에, 개인 숭배에 대한 비판 및 레닌주의적 민주원칙이 주창되면서 북한은 체제 단속을 위하여 유학생과 고아의 동시 귀국을 추진하였다. 둘째, 8월 종파사건으로 북중·북소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김일성은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를 요구하였고, 1958년 철군이 완료되었다."
 
-  2014년에 <중동유럽한국학회지>에 실린 논문
 
북한과 공산권의 연계가 약해지고 동유럽이 정치적으로 혼란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전쟁고아들을 맡겨두기 힘들어서 1958년부터 전쟁고아들을 귀국시켰던 것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강조한 것처럼 노동력 확보를 위한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측면이었다.
 
동유럽에서 7, 8년 정도 생활하다가 북으로 귀화한 아이들 중에는 그 7, 8년의 경험을 토대로 북한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들이 적지 않다.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 중에서 한의표는 폴란드 대사가 됐고 한경식은 인민군 대좌를 거쳐 폴란드대사관 무관이 됐다. 박동호는 외교관이 됐고, 조성무는 조선·폴란드 친선협회 의장을 거쳐 폴란드어 교수가 됐다.
 
북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다들 그랬던 것은 아니다. 폴란드에 보낸 편지에서 그 7, 8년의 그리움을 토로하는 아이들도 있고, 폴란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덜 얽매인 상태에서 자신을 안아준 폴란드인들의 품이 북한에 가서도 잊히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북한 고아들을 태우고 폴란드를 떠나는 비행기.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북한 고아들을 태우고 폴란드를 떠나는 비행기.ⓒ 보아스필름
  
전쟁이 발발하면 누구나 다 고통을 겪지만, 전쟁고아들의 고통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런 고아들에 대해 남북이 각각 별개의 접근법을 취했고, 이로 인해 남북의 전쟁고아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그럴지라도 전쟁고아로서 겪는 시련은 동일하겠지만, 모국과의 연결고리라는 측면에서 남북 고아들은 서로 다른 조건에 처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낯선 북한 전쟁고아 문제와 그들의 독특한 경험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뜻 깊은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엘시티 비리 연루자를 부산교통공사 사장에 임명한 오거돈 부산시장

정무수석부터 부산시장까지 연루됐던 엘시티 게이트
임병도 | 2018-10-24 09:16:2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가 부산시 정책기획실장, 행정부시장으로 재직했던 시기에 엘시티 시행사로부터 금품을 수수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22일 부산시 류제정 감사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2월 엘시티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로부터 받은 명단을 부산시에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통보한 명단에는 2010년부터 2016년 2월까지 엘시티 측으로부터 명절 때마다 선물을 받은 현직 공무원 5명, 퇴직 공무원 13명, 공기업 임직원 4명, 부산시 도시계획위원 6명으로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게이트 주범인 청안건설 이영복 회장은 돈과 여자로 부산 지역 정,관계 인사를 꽉 잡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이영복 회장을 아는 자체가 부산 지역의 권력자임을 나타내는 증거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권력을 등에 업고 인허가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받았고, 분양 대금 등을 빼돌려 수백억 원의 비자금 등을 조성한 혐의로 징역 6년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이영복 ‘돈을 풀지 않으면 (포스코 건설) 사장이 바뀔 것’
▲엘시티 비리 주범이었던 이영복 회장은 비자금을 조성하던 분양대금 통장을 포스코 건설이 막자, 황태현 포스코 건설 사장을 협박하기도 했다. ⓒSBS뉴스 화면 캡처
2009년 당시 해운대 엘시티 부지는 고층 건물이나 주거 시설 등을 건설할 수 없어 수익성이 떨어져, 건설사가 모두 포기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산시는 돌연 ‘고도 제한’이나 ‘아파트 건축’ 등의 규제를 풀어줬습니다.
규제가 풀렸지만, 건설사들은 엘시티 건설을 주저했습니다. 특히 세계 최대 중국 건설회사조차 사업성이 없다며 시공 계약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포스코 건설이 엘시티 사업의 시공을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영복 회장은 포스코 건설 덕분에 사업비 1조 7천8백억 원을 대출받는 데 성공했고, 이 회장은 하청 대금이나 분양 수수료를 허위로 지급하는 수법으로 570억 원을 빼돌렸습니다.
이영복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포스코 건설이 제동을 걸자, 이 회장은 직접 포스코 건설 사장을 찾아가 “돈을 풀지 않으면 사장이 바뀔 것”이라며 협박까지 했습니다.
이 회장의 협박은 사실로 이루어졌습니다. 황태현 포스코 건설 사장은 이 회장의 요구를 거절하고 한 달 뒤에 연임이 되지 않고 회의 중에 해임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영복 지명 수배 중에도 아들은 박근혜 만나 기념사진

▲ 2016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VR 관련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이영복 회장 아들 A씨(박 대통령 뒤)ⓒ박근혜정권 청와대
2016년 엘시티 비리 문제로 이영복 회장은 검찰의 지명 수배를 받았습니다. 이영복 회장이 도피 생활을 하는 중에도 이 회장의 아들은 서울에서 열린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상암동 DMC에서 열린 ‘코리아 가상현실 페스티벌’ 현장에 방문해 VR 전문 벤처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났습니다. 청와대가 올린 행사 사진을 보면 이 회장의 아들 A씨가 박 대통령의 뒤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아버지 이영복 회장이 소유한 엘시티 시행사인 청안건설의 임원입니다. 이영복 회장의 공소장에도 A씨의 이름이 올라와 있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영복 회장은 A씨 등 가족을 엘시티 시행사 임직원 이름으로 등재한 뒤 임금 등 75억 원을 횡령하기도 했습니다.

정무수석부터 부산시장까지 연루됐던 엘시티 게이트
▲엘시티 게이트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 ⓒ부산일보
엘시티 게이트는 전직 부산 시장은 물론 전직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연루된 권력형 비리였습니다. 엘시티 비리 수사 결과 관련된 인물들은 1심에서 전원 실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억 2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정기룡 전 부산시 경제특보는 엘시티 시행사 법인카드로 4800만 원을 쓴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허남식 전 부산시장은 측근을 통해 3000만 원의 현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을, 배덕광 자유한국당 의원은 7700만 원의 현금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징역 6년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최측근이었던 전 포럼부산비전 사무처장 김모씨는 2억 2000만원의 현금과 사무실 임대료 대납 등의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허남식, 서병수 부산시장 재임 시절 금품을 받았던 정경식
▲서병수 부산시장 재직 시절 행정부시장이었던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 그가 재직 시절 청렴을 강조했던 동영상 ⓒ부산시 유튜브 화면 캡처
해운대 엘시티 비리에는 허남식 전 부산시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의 최측근이 연루됐습니다. 이번에 부산교통공사 사장으로 내정된 정경진 후보자는 이 기간에 부산시 정책기획실장과 행정부시장으로 재직했습니다.
정경진 후보자는 부산시 고위공무원으로 재직하던 2012년 하반기부터 3년 6개월 동안 금품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산시는 정경진 후보자가 받은 금품과 직무관련성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 현직 부산시장이 비리로 연루됐던 엘시티 시행사가 정기적으로 금품을 보냈다는 사실 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 오거돈 시장은 즉각 인사 철회 해야 한다
정경진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하루 앞둔 10월 23일 부산지하철노조는 “오거돈 부산시장은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를 즉각 철회하고, 부산시의회는 인사검증을 취소해야 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 8월 22일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산 민선7기 지방공기업 공공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세미나
부산지하철노조는 이런 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 지난 8월에 ‘부산 민선7기, 지방공기업 공공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과거 부산시장들의 독단적인 낙하산 인사로 공공성이 훼손됐던 지역 공기업을 어떻게 하면 시민의 품으로 돌려줄지에 대한 논의를 가진 바 있습니다.
바뀔 것이라고 믿었던 오거돈 부산시장도 과거 전임 시장들과 똑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우선시해야 하는 지방공공기관이 여전히 부산시의 밀실 보은 낙하산 인사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지난 3월 오거돈 후보를 취재하면서 엘시티 비리 공무원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 후보의 답변을 들으면서 적폐 청산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엘시티 비리 연루자를 공공기관장에 내정한 오거돈 부산시장을 보며, 설마 했던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62 

통일의 끈은 말‧글‧얼이다

<칼럼>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김동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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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4  0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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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그 집단의 문화정체성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로 민족성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또한 사회문화적 동화의 신뢰할 만한 지표 역시 민족집단의 언어동화가 우선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민족정체성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정체성이란 공유된 민족적 특성들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 집단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으로 개념화 할 수 있다. 우바(Uba, L.)는 (1) 한 개인이 자신의 민족 집단에 대한 일반 지식, 신념, 기대들을 일으키고, (2) 그가 사물, 상황, 그리고 타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의 의미를 해석하느냐를 결정짓는 인지적, 정보처리적 틀 또는 필터로서 기능하며, (3) 그의 행위 기준이 된다고 민족정체성을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나와 우리를 규정짓는 처음과 끝이 민족정체성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민족정체성은 그 집단의 언어와 떨어질 수 없다. 언어(말과 글)가 민족정체성(얼)을 지탱하는 그물망이라면, 얼은 더더욱 말과 글의 정신적 뿌리가 된다. 언어의 상실이 민족정체성의 붕괴와 직결되듯, 민족정체성의 쇠퇴는 언어의 퇴행을 필연적으로 몰고 올 수 밖에 없다. 말‧글‧얼을 떼어 놓고 이해할 수 없는 근거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가 그 대표적 경험이다. 우리의 말‧글‧얼을 말살시키기 위해 광분했던 일제의 준동(蠢動)에서 그 실상이 드러난다. 일제는 식민통치의 완성을 위하여 우리의 말‧글‧얼을 철저하게 압살해 갔다. 1910년대 후반부터 우리 얼의 중심인 대종교의 국내 거점을 궤멸시키는가 하면, 우리 국어(한글)를 외국어(조선어)로 몰아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神道와 일본어)을 우리의 국교(國敎)와 국어로 이식(移植)시켜 식민지의 완성을 도모하려 하였다.
일제는 1937년 중국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조선에 대한 말살정책을 더더욱 가속화해 갔다. 1938년 이후 외국어처럼 가르쳤던 조선어 교육마저 폐지하고 일본어의 사용을 강제하는가 하면, 한글로 된 신문과 잡지마저 전면 폐간시켰다. 그리고 1940년에 들어서는 창씨개명을 통해 우리 이름마저 일본식 이름으로 강제화하였다.
그러한 민족말살의 정점이 '조선어학회사건(1942. 10)'과 ‘대종교지도자일제구속사건(大倧敎指導者一齊拘束事件, 1942. 11, 대종교에서는 ’壬午敎變‘이라 부름)’이다. 1개월의 사이를 두고 발생한 이 사건은, 일제가 우리의 말‧글‧얼을 없애기 위해 저지른 마지막 발악이었다.
말‧글‧얼을 분리해 이해할 수 없듯이 조선어학회와 대종교 역시 떼어 놓고 말하기 힘들다.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뿌리가 대종교였으며 대종교의 비밀결사가 조선어학회였기 때문이다.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주시경으로부터 김두봉‧이극로‧최현배‧신명균‧권덕규‧정열모‧이병기 등등, 그 중심인물들의 대부분이 대종교의 핵심이었다.
두 사건 모두 이극로와 연관이 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당시 이극로는 대종교의 국내 중심이자 조선어학회의 간사장이었다. 임오교변이 이극로가 윤세복에게 보낸 「널리펴는 말」이라는 글이 단서가 된 것 같이, 조선어학회사건은 만주에서 윤세복이 국내 이극로에게 보낸 「단군성가(檀君聖歌)」라는 가사가 단초가 되었다. 「단군성가」가 조선어학회 이극로의 책상 위에서 일경(日警)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조선어학회사건의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이다.
일제가 우리 말‧글‧얼의 중심이었던 대종교를 그렇게 없애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 대종교가 국내외적 모든 기반을 잃어가면서 끝까지 일제에 저항한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정체성의 다툼이었다. 지키고자 한 집단과 바꾸고자 한 세력의 양보 없는 전면전이었다.
해방 이후에 들어 우리의 정체성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망국(亡國)의 대가로 찾아 낸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스스로의 노안(奴眼)에 의해 다시 풍비박산이 났다. 우리의 해방은 자력에 의한 환희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념의 족쇄와 분단의 고착은 한반도를 질시와 반목이 판을 치는 공간으로 몰아넣었다. 민족을 묻어버린 부류와 민족을 배반한 자들 간의 좌우의 굿판이 시작된 것이다.
6‧25는 근근이 숨을 쉬던 그 정체성의 잔명마저 질식시켜 놓았다. 일제강점기 정체성의 중심이었던 대종교지도자들은 해방 이후 남북으로 쪼개졌다. 김두봉을 중심으로 한 북과 윤세복을 정점으로 한 남으로 찢어진 형국이 되었다. 조만간 합쳐질 것으로 기대한 윤세복의 바람과는 달리 남과 북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달았다.
6‧25 직전에 월북한 이극로와 홍명희, 전쟁 당시 납북 당한 조완구‧조소앙‧안재홍‧정인보‧명제세, 그리고 전쟁 발발 후 자진 월북한 정열모‧류열 등등으로 인해, 남쪽의 대종교 인물 지형은 더더욱 공동화(空洞化) 되었다. 나아가 전쟁 직후 이들의 입지는 남북 쪽 모두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한 쪽에선 종파주의로, 또 한 편에선 공산주의‧국수주의 등으로 매도되어 사라져갔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얼을 지키던 인물들의 도태와 더불어 대종교의 기반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말과 글만은 그 인물들에 의해 지켜졌다. 북에서는 김두봉, 그리고 그를 계승한 이극로‧정열모‧류열 등이 우리의 말과 글을 갈고 닦았다. 남에서는 최현배가 고군분투하며 한글을 사수했다.
김두봉은 나철의 수제자이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대종교의 교리‧교사와 한글 부문에서 누구보다 해박한 인물이었다. 그는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나자, 스승이 못다 한 일을 이어 받아 『조선말본』을 저술했다. 당시 『조선말본』은 그 때까지 발표된 문법학설로는 가장 깊고 넓게 연구된 대표적 권위라는 평가를 받은 책이다. 1916년 나철이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결할 당시는 수석시자(首席侍者)로도 동행한 인물이 김두봉이다.
최현배 역시 주시경‧김두봉의 영향을 받고 1911년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경성고보 시절 그가 중시한 두 가지가 주시경에 의한 한글공부와 나철에 의한 대종교 참여였다. 심지어 일본인 교사로부터 대종교에 참여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받았던 인물이 최현배다.
남북은 단절과 대립 그리고 전쟁으로 더더욱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북의 흰못[白淵, 김두봉의 우리말 호]과 남의 외솔에 의해 우리말‧우리글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같은 얼을 공감해 온 이들이 정체성의 외연(外延)을 놓지 않은 것이다.
개천절과 한글날이 얼마 전 지났다. 안재홍의 말처럼 ‘국가적 의미에서 개천절이요, 민족문화적 의미에서 한글날’이다. 한글을 기리는 행사가 남북 모두 열린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다만 남쪽은 한글 반포일을, 북쪽은 한글 창제일을 기준으로 함이 다를 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개천절과 한글날만은 대통령이 너나없이 딴전을 핀다. 거시기 대통령이나 머시기 대통령, 그 대통령이나 저 대통령 다 만찬가지다. 정체성이 망가진 나라의 서글픈 초상이다. 올 한글날 대통령은 세종대왕 영릉은 참배했고, 남북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 작업을 재개한다는 국무총리의 축사가 그나마 작은 위안을 주었다.
일부는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우다. 외국어도 못 끌어다 써서 안달인 판에, 표준어면 어떻고 문화어면 어떠랴. 상호(相互)만이 단어고 호상(互相)은 단어가 아니란 법 없다. 방언(사투리)이 고어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또한 향토색을 살리고 표준어를 보완해 준다는 것도 주지하는 바다.
무엇보다 같은 말, 같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뜻 깊은 일인가. 남북지도자 단 둘이 나눈 판문점 '도보다리'의 밀담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같이 웃고, 함께 고민하며, 더불어 공감하던 두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둘이 아니라는 희열을 만끽하였다.
얼빠진 말과 글이 박제된 기호에 불과하듯, 말‧글 없는 얼은 심장만 박동하는 뇌사상태와 같다. 우리의 말‧글‧얼이 한민족 정체성의 본질이자 현상임을 다시금 강조해 보는 이유다. 다만 그 말‧글 속에 숨겨진 얼을 각성할 날은 언제 올 것인지. 그러한 깨우침이야말로 한민족 정체성 확립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통일의 가장 확실한 끈임을 상기할 때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