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5일 수요일

‘朴 비판 전단’ 박성수씨 “언론, 쫄지말고 성토하라”


‘뉴스박스 인터뷰’서 ‘전단지 공안탄압’ 질타.. “비판은 국민의 권리”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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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5  12:57:47
수정 2015.03.25  13: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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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비방 전단지를 배포해 자택을 압수수색 당했던 박성수 씨가 언론의 역할을 언급하며 “시민들도 노력하고 있는데 언론에서도 용기 내어 잘못된 것들을 성토해 달라”고 당부의 뜻을 전했다.
박성수 씨는 24일 ‘go발뉴스’의 데일리 팟캐스트 <민동기의 뉴스박스>에 출연해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사비와 시간을 들이고 경찰서 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기자들도 힘들겠지만 한발씩 앞으로 나가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 [‘민동기의 뉴스박스’ 바로 듣기]
박 씨는 “전단지를 뿌리는 게 대단한 건 아니지 않나. 조금 더 뿌리자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고 오늘도 20곳 배포해서 우편 발송하고 (시민들이) 위험부담 하면서 뿌리고 있는 것”이라며 언론도 용기를 내어 사회를 비판하는 보도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 이미지출처 = 박성수 씨 페이스북
박 씨는 최근 자신에게 소환장 등을 발송한 바 있는 대구·군산 등의 경찰서에 개껌, 기저귀 등을 보내고 개사료를 투척한 것에 대해서도 소감을 밝혔다.
그는 “경찰이 소환장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적어 보냈다. 이 전단지가 책으로 보인다면 사료 드시고 최고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꼬리 흔들기를 계속 하시라는 취지로 보냈다”고 밝혔다.
  
▲ 이미지출처 = 박성수 씨 페이스북
박 씨는 “부산 경찰서의 경우 이메일로 소환장이 왔다. 부산에서 전단을 뿌린 선생님과 주고 받은 이메일을 보고 개인정보 수집을 한 것”이라며 “전혀 상관없는 맥락에서 범죄 용이점을 찾아 소환 조사 받으러 오라는 건 똥·오줌도 못 가리는 영아 수준의 공무집행이 아닌가 판단해 기저귀 차고 공무집행 하시라고 보냈다”고 꼬집었다.
박 씨는 “전국에서 전단 살포가 확산되니 정치적 문제로 바뀌면서 공안탄압을 하고 있는 거라고 본다”며 “‘박근혜 대통령 당신도 과거에 했던 행적에 대해 수사를 받아라’는 취지 밖에 안 되는 데 이 주장 자체를 명예훼손으로 공안 수사 하듯 하려는 대한민국 사회가 국격을 떨어트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박 씨는 ‘비방 전단지’에 관련된 사항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전국 경찰을 상대로 혼자 정면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시민들이 좋은 일 함께 하자고 60명이 실명을 실어 주었다”며 “전단지가 2판부터 7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라며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전했다.
박 씨는 “압수수색 하니까 쫄지 않을까, 이름을 빼달라고 할까 했는데 단 한명도 이름을 빼 달라는 분이 없고 오히려 20명이 더 늘었다”며 “전단지로 공안 탄압하는 무리한 상황을 시민들이 다 느끼고 있고 비판은 당연한 국민의 권리다. 더 이상 물러날 마지노선은 없다”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비판 활동을 할 계획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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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이 '월하의 공동묘지'?


청전 스님 2015. 03. 24
조회수 118 추천수 0

*청전 스님이 라닥의 노스님들과 지난 1월 20여일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4편
바다를 아쉬워하며 저도 처음인 바도다라(Vadodala)라는 전형적인 인도 도시에 들어갑니다. 운전하는 뻬마스님의 인연으로, 인도 가정집 입니다. 그날 밤 저와 소묵이는 잠을 못잤는바 모기 때문이었습니다. 희안케도 모기란 넘들은 수입품을 알아봅니다. 인도사람 피는 맛이 없는건지?  이튿날은 주인이 약을 미리 쳐 주어 잠을 잘 잤네요. 구자라트주를 넘어 라자스탄으로 다시 들어오니 도로 상태며 농촌 모습이 넘넘 차이가 보이네요. 독일에서 폴란드로 국경 넘어갈 때 차이지는 모습이랄까. 우다이푸르란 도시로 나왔습니다. 한 때 화려한 어느 왕의 왕궁인데 볼만 합니다. 


<<씨티 팰러스란 이름이 붙은 옛 왕궁 입니다, 입구에서 문지기 아자씨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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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하시는 전통 라자스탄 할배, 수염이 너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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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꼭대기 문에서 시내를 내려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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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안케도 성 뒤쪽은 이리 천혜의 호수랍니다. 물 위의 하얀 건물도 다 옛 성의 일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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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뜰안에서,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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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푸쉬가르란 고도의 자그마한 도시입니다. 그 조그만 동네에 천개의 신전이 있다네요. 인도 삼대 큰 신 중의 한나, 브라마 신 - 창조의 신이 태어났다는 곳 입니다. (나같은 머저리도, 그렇다면 이 신이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이 땅은 누가 맹글었다냐?) 사실 인도 전역에 다녀보면 흔한게 쉬바신 신전인데 브라마 신전은 드뭅니다. 당연하지요, 과거의 신, 즉 지금 민중에게 필요한건 삶의 고를 여이고 복(돈)을 관장하는 지금 바로 여기의 신이 더욱 중요하지요. 불행하게도 이 신전은 힌두교도 이외엔 출입불가!  나와 소묵이는 밖에서만.

<<힌두교 신전안에는 늘 물이 있는바 죄를 씻는다는 정화의식의 장소지요, 그럼 목욕 후에 도 저지르는 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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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창조신 브라마 신전 입니다.  우리 이국인은 출입금지, 노시님들이 참배 후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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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모리는 원숭이 가족들, 이들에게 신이건 뭐건 알게 뭐야. 그저 맛나는 먹거리만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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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뿌르, 라자스탄의 수도 입니다.  도시가 인도 전통의 샌드 스톤 즉, 모래 사암으로 되어 있어 핑크 씨티(분홍빛 동네)라고도 불립니다. 델리에서 반나절이면 내려오는 길목에 많은 외국인들이 다녀가지요.

<< 바람의 성이라 불리는 하와 마할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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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님덜은 이런 이색적인 풍경이 그리 좋은가 봅니다. 허긴 80 년 만의 일생 첨 나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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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계적인 인류 유산이라고 불리는 타즈마할, 사실 이 건물을 우리말로 옮긴다면 "월하의 공동 묘지"여야 맞지 않는지요. 왕과 마누라의 무덤이 이리 화려하다보니…. 착각으로 무슨 왕궁인줄로 알고 구경을 하기도. 여기서 우리는 네 분 슨상님들을 다시 만납니다. 그분들의 일정은 서로 탄젠트가 달랐으니까요. 함께 델리까지 입성합니다. 아그라 - 델리 구간은 인도에서 자랑하는 고속도로 1 호 입니다. 정말 신호등 없고 소 개 말 등이며 리어카나 자전거도 안다니는 고속도로...................  ㅋ ㅋ ㅋ

<<모다들 행뽀꾸하여 죽습니다. 저는 몇십번의 방문에 재미도 한나 읍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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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히 들어가시는 노시님들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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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에서 현 회장님댁에 들러 노시님들이랑 한국 음식을  많이도 묵습니다. 우리 현회장님은 고향이 이북 함갱도땅 청진 입니다.  육이오때 유엔군에 포로로 잡혔다가(당시 인민군 소좌), 1954년 혼자만의 선택으로 인도에 들어오셔 지금까지 입니다. 그동안의 고생이며 많은 역사의 증인이시기도. 올 84 세, 죽기전에 조국 통일을 보고 고향땅 청진에 가보고 싶으시다는 말슴이며, 이 한생을 인도에서 살았음에 보람을 느끼며 인도땅에 감사하신다는 말씀에 숙연해 집니다. 아마 제가 3 월 한국 나갈 때 다시 들를겁니다.

<<두 내외분 늘 건강과 청안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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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6박 17일의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됩니다. 지난 1월8일 길을 떠나 24일 밤 늦게 들어왔으니까요. 소묵이와는 24일 아침에 델리에서 헤어집니다. 낮시간 혼자 길 잃어버리지 않고 시내 구경 하다가 저녁 공항에 갈 수가 있을거로 믿고.

마지막 델리 여관 밖의 사진 한장  함께 하지요. 항상 보이지 않는 이면엔 이런 힘들게 죽지못해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요.
  
<<그래도 집 두채가 단독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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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다녀온 것은 모두 보이지않는 분들의 기원과 성원으로임을 압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리지요. 늘 건강과 아름다운 인생길이시기를….

<연재 끝>


문재인 대표, 천안함 침몰은 ‘북한 소행’ 첫 언급

등록 : 2015.03.25 20:05수정 : 2015.03.2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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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오른쪽)가 25일 오전 경기도 김포 해병대 2사단 제3165부대를 방문해 장갑차를 탄 채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포/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천안함 5주기 앞두고 해병대 방문해 “북 잠수정이 타격”
‘안보 무능’ 새누리 비판…·중도층 겨냥해 ‘우향우 행보’
새정치 “안보 구멍 뚫린 것 지적…입장 변화 없다” 설명

천안함 사건 5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폭침’과 ‘북한 잠수정의 타격’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문 대표와 새정치연합이 2012년 대선 당시 천안함 사건을 ‘폭침’으로 규정한 적은 있지만, ‘북한의 공격’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대표 취임 뒤 ‘경제정당, 안보정당’ 등을 내세우며 걸어온 ‘우향우 행보’의 일환으로, 보수·중도층에 손짓하는 한편, 새누리당의 ‘종북몰이’에 대한 선제대응 성격이 강한 의도된 발언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이날 4·29 재보궐선거가 열리는 인천 강화·서구을에서 최고위원회 회의를 열고 “천안함 폭침 사건 자체가 새누리당 정권의 안보 무능의 산물”이라며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안보를 바로 세우는 반성의 계기로 삼지 않고 종북몰이의 빌미로 삼아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궁리뿐이다. 새누리당은 천안함 장병들의 영령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정부와 새누리당을 겨냥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 무능’을 공격하는 데 이어 천안함 사건 5년을 맞아 ‘안보 무능’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군 관계자들로부터 부대 현황을 보고받으며 “천안함 폭침 때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들어와 천안함 타격 후 북한으로 복귀했는데 이것을 제대로 탐지하지 못했다. 지금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김영록 새정치연합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판하면서도 “남북 평화와 신뢰를 깨뜨리는 어떤 군사적 위협과 도발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북에 경고한다”고 북한을 겨냥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핵심 당직자는 “북한 잠수함의 소행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기보다는 ‘정부 발표대로 북한 잠수함이 내려와서 공격했다면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이에 대한 대비를 잘하고 있느냐’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진화했다. 문 대표와 당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발언은 여당의 ‘종북몰이’에 맞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문 대표와 당의 판단이 반영된 걸로 풀이된다. “북의 소행이라고 규정하는 데 소극적이다”라는 새누리당과 보수층의 지속적인 공격에 대해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의도다. 새정치연합의 또 다른 당직자는 “여당이나 보수층의 공격에 빌미를 줄 필요 없다는 생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의 발언에 대해 대전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그것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5년 걸린 것은 너무 길었다고 생각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사진 김포/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무릎 꿇지 않고 본질 호도하는 기만극


‘중동 가라’와 ‘미혼현황판’ 이것들이 ‘중죄’인 이유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무릎 꿇지 않고 본질 호도하는 기만극
육근성 | 2015-03-25 13:55:3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떤 죄가 가장 무거울까? 14세기 시인 단테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목들을 ‘기독교 철학과 윤리’라는 저울에 올려놓고 각기 그 무게를 달아 가벼운 것부터 가장 무거운 것까지 순서대로 나열했다. 그의 서사시 ‘신곡’의 ‘지옥편’은 이렇게 구성돼 있다.

죄의 무게 달아 순차적으로 나열한 단테
단테는 죄의 경중에 따라 지옥을 9개의 원으로 구분했다. 가장 경미한 죄는 제1원에 속하고 가장 무거운 죄는 제9원)에 속한다. ‘저승의 강’인 아케론을 건너면 제1원인 ‘림보’가 나온다. 신앙은 없지만 심성이 착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비록 지옥일지언정 고통과 괴로움은 없다. 단지 하나님을 믿을 수도 볼 수도 없을 뿐이다.
제2원은 색욕의 죄를 범한 자들이, 제3원은 폭음과 폭식에 빠졌던 이들이 고통 받는 곳이며, 제4원과 제5원은 탐욕과 분노의 죄를, 제6원은 이단자들이 뜨거운 관속에서 신음하는 곳이다. 제7원은 타인에게 폭력을 가했거나 자신에게 폭력(자살)을 행한 이들과 신과 자연의 순리에 폐해를 끼친 자들이 벌을 받는 공간이다. 제8원은 사기와 기만의 죄를, 지옥의 심연인 제9원은 배신과 반역의 죄를 범한 이들이 악마의 왕 루시퍼에게 붙들려 있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 / 보티첼리>
9개의 원이지만 크게 나누면 ①부절제의 죄(색욕, 낭비, 탐욕, 분노) ②타인, 자신, 신에게 가한 폭력의 죄 ③사기와 기만의 죄 ④반역과 배신의 죄 등 4개로 요약된다. 단테는 부절제보다는 폭력이, 폭력보다는 기만이, 기만보다는 배신이 더 큰 잘못이라고 말한다. 물리적 피해(부절제와 폭력 등)보다 정신적 고통(기만과 배신)을 주는 것이 더 큰 죄라는 얘기다.

박근혜의 “중동으로 가라”, 황우여의 ‘미혼 현황판’
이쯤에서 청년 중동 진출을 독려한 박 대통령의 발언과, 자신의 집무실에 ‘처녀총각 현황판’을 붙여놓고 직원들에게 결혼을 압박한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처사를 생각해 보자.
박 대통령은 중동 4개국 순방 성과를 자평하면서 “청년들이 해외에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며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고 중동진출을 강하게 독려한 바 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자신의 집무실 벽에 직급별 미혼 실태를 실적표처럼 표시한 ‘현황판’을 붙여놓았다. “미혼자 많은 과의 과장은 국장 못 되게 하겠다”는 황당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담이라도 도가 지나치다. 취업을 못해 전전긍긍하는 청년들에게 ‘중동이나 가라’는 말은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중동 진출이 이뤄진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호재’가 된다. 청년실업의 돌파구를 찾아낸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들에게는 중동행이 달갑지만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 취업하는 친구들이 있는데도 가족을 떠나 먼 이국에서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동국가가 한국청년들에게 얼마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40년 전 중동붐이 일었던 그때와 현재 상황은 크게 다르다. 1970년대는 중동국가들의 ‘석유권력’과 ‘오일머니’가 절정에 달했을 시기여서 굵직한 건설 인프라 수주가 넘쳐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투자를 줄이고 긴축재정을 펴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비건설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경협이 이뤄진다 해도 제2의 중동붐은 언감생심이다.

본질을 호도하는 기만극
교육부 직원들은 ‘미혼 현황판’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황 장관은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라’는 뜻에서 현황판을 붙여 놓았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직원들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결혼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자 개인의 행복권과 자기결정권과도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도 장관이 직접 나서 공적인 ‘과제화’하다니, 무슨 권한으로 그러는 건지 묻고 싶다. 사생활 침해이며, 약자에 대한 강자의 소리 없는 폭력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대통령과 장관이 청년취업난과 결혼·출산 기피 현상을 해소하고자 고심하다보니 그렇게 처신한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말초적 인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거다. 사고의 더듬이를 조금만 더 넓게 펴도 ‘문제가 되는 처신’라는 걸 단박에 알 텐데 안타깝다.
‘중동 발언’과 ‘현황판 결혼 독려’는 본질을 호도하는 일종의 ‘기만극’이다. 제 나라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모든 국민에게 만들어 줄 책무가 대통령에게 있다. 그런데 정부는 청년들에게 어떻게 했나. ‘고용률 70%’라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정작 한 일은 기간제 근로자 등 ‘나쁜 일자리’를 늘리는 데 급급했다. 정부가 ‘수치놀음’만 한 셈이다.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먼저 무릎 꿇어야
결혼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걸 싫어하겠는가. 취업난, 치솟는 전월세, 미래에 대한 불안, 교육비와 양육비 부담 등으로 결혼할 엄두도 못 내는 젊은이들이 너무도 많다. 오죽하면 연해,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안정된 직장을 가진 교육부 직원들도 결혼을 꺼려할 정도라면, 상당수의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못 오를 나무다.
‘중동이나 가라’고 등 떠밀고, 결혼 다그치며 ‘미혼현황판’ 만들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만 한다. 취업이 안 돼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 청년실업 해소할 대책 마련하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송구할 뿐이다, 이런 얘기를 먼저 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무릎 꿇기는커녕 대통령의 치적인 양 떠들며 ‘중동 가라’고 하는 건 기만행위나 다름없다.
‘삼포세대’로 살게 해서 죄송하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당연한 권리와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정부가 무한 책임을 느낀다, 이렇게 나오는 게 맞다. 결혼을 포기하게 만든 잘못이 정부에게 있다고 인정하기는커녕 미혼자 현황판이나 그리는 행위 또한 본질을 흐리는 사기이자 기만이다.

‘신곡’은 말한다, 대통령과 장관 처신은 ‘중죄’라고
다시 ‘신곡’으로 돌아가 보자. 진정한 고전에는 시대와 문명의 경계를 관통하는 힘과 가치가 있다. ‘신곡’은 순례자처럼 살다간 단테가 진리의 궁극인 하나님의 존재를 통해 삶과 구원의 문제를 성찰한 고전이다. 진리와 구원의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의 길잡이이기도 하다.
단테는 기만과 사기가 색욕, 탐욕, 분노, 폭력보다 더 중한 죄라고 말한다. 물리적 상처보다는 정신적 상처가 더 큰 고통이란 얘기다. ‘중동 발언’과 ‘미혼현황판’은 많은 청년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마음의 상처로 남기 십상이다.
박 대통령과 황 장관의 처신이 대수롭지 않은 거라고 말하면 안 된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뛰어난 고전 중 하나인 ‘신곡’은 말한다. 두 사람의 처신은 ‘기만’이라는 중죄에 해당한다고.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02 

'민족의학' 장두석 선생 별세

"빨갱이 취급도 좋다"...'민족의학' 장두석 선생 별세

15.03.25 18:59l최종 업데이트 15.03.25 19:45l


기사 관련 사진
▲  민주화·통일·노동·환경·농민 운동을 하며 자신만의 '자연건강법'을 설파한 민족생활의학자 해관(海觀) 장두석 선생이 25일 새벽 지병 악화로 별세했다. 고 장두석 선생이 2013년 3월 7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10만인클럽 특강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민주화·통일·노동·환경·농민 운동을 하며 자신만의 '자연건강법'을 설파한 민족생활의학자 해관(海觀) 장두석 선생이 25일 새벽 지병 악화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38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선생은 6·25전쟁 도중 얻은 병을 '자연 치유'를 통해 극복한 뒤, 이를 토대로 연구한 '자연건강법'을 평생 알려왔다.

"(6·25전쟁 이후) 폐에 물이 차고, 영양이 부족해 인력거에 실린 채로 광주에 있는 모든 병원을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살 수 없다고 환자 받기를 거부하더라고. 결국 소풍가는 마음으로 화순 옹성산에 있는 옹성사에 찾아갔습니다. 절은 전쟁으로 폐허가 돼 있었습니다. 결국 바위 밑 움막 같은 곳에 의지해 초근목피 뜯어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을 스승삼아 지내기 시작하니 배에 복수도 빠지고 심신이 건강해져 날 것 같더라고요."  
- 2013년 3월 10만인클럽 특강 중

조봉암이 이끈 진보당 활동과 5·18민중항쟁 당시 수습대책위원회 활동 등의 이력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선생은 "사회가 꼬이고, 막히고, 뒤틀렸기 때문에 사람이 건강할 수 없다"며 "원래 병이란 건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1960년 이승만 정권 독재 타도와 3·15부정선거 관련 투쟁을 벌여 옥고를 치렀다. 5·18민중항쟁 직후에도 군사법원에서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1년 4월 사면 석방됐다.

생전인 2013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을 한 그는 자신의 저서 <병은 없다>(2013)를 소개하며 '인류가 아픈 이유'를 설명했다(관련강의 : 장두석 선생의 자연치유법, "병은 없다").

"국민 건강? 간단해요. 정치, 경제, 교육, 환경, 문화, 역사, 의료, 농업…. 이런 것들이 바르고, 민주적으로 얽히면 아픈 사람 없을 겁니다. 남을 딛고 넘어서야 자기가 사는 경쟁 구도, 꽁꽁 얼어붙어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남북한 관계, 밥을 산더미 같이 쌓아 둔 사람은 나눌 줄 모르고 24시간 불철주야 일한 사람은 밥을 먹을 둥 말 둥 하는 양극화 사회….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건강할 수 없죠."

"분단된 조국에서 누구도 건강할 수 없어"

기사 관련 사진
▲  민주화·통일·노동·환경·농민 운동을 하며 자신만의 '자연건강법'을 설파한 민족생활의학자 해관(海觀) 장두석 선생이 25일 새벽 지병 악화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의 빈소는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층 1분향소에 마련됐다. 28일 발인해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 소중한

특히 선생은 "우리가 발딛고 사는 '흙'을 살리기 위해 환경운동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흙이 죽으면 우리도 죽어요. 그래서 (1970년대) 공해 추방운동을 한 거예요. 지금이야 환경운동이 익숙하지만 그때는 (환경운동 하면) 빨갱이었습니다. '아이고, 빨갱이 취급해도 좋고, 흰갱이 취급해도 좋다. 민족이 살아야 한다'며 추진한 거죠."

"외부 세력에 의해 조국 강토가 분단된 현실에선 누구도 건강할 수 없다"고 한 선생은 통일운동에도 앞장 섰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았다. 배달문화선양회를 만들어 매해 개천절 행사를 진행한 선생은 지난해 10월 북한을 찾아 평양 단군릉에서 단군제 봉행 행사를 열기도 했다.

선생의 지인들은 "지난해 북한에 다녀온 뒤,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5년 동안 고인을 모셨다"는 김재열(41)씨를 선생이 안치돼 있는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김씨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신이 1989년에 만든 민족생활학교 교육생들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에 다녀온 뒤로 약 5개월 동안 점점 몸이 안 좋아졌다. 스스로 '30년 동안 간암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는데 선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몸을 혹사하다보니 더는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 의식을 자주 잃어 광주 친척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돌아가시기 2주 전엔 갑자기 의식을 차리더니 '화순에 있는 (민족생활학교) 교육생들에게 가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몸이 아프면 자기만 생각하게 되는데, 선생이 교육생들을 생각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

김씨는 "돌아가시기 직전 선생의 특별한 유언은 없었지만 자신이 세운 '민족생활학교,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해관문화재단을 잘 이끌어 민족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10여 년 동안 선생과 인연을 이어온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은 "보기 드문 귀한 어르신 한 분이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황 편집장은 "(고인이) 두루마기 자락 입고, 전통과 민속을 자주 이야기 하니 고리타분한 옛날 어르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항상 시대의 흐름에 깨어 있는 어른이었다"며 선생을 떠올렸다.

"지난해 선생이 내가 있는 사무실에 놀러와 막걸리를 나눠 먹은 게 마지막이다. 한 번 찾아간다는 걸…. (선생은) 자기 맘에 안 드는 행색을 보면 자주 불호령을 내렸다. 하지만 고통을 겪거나 안타까운 상황에 놓은 사람들에겐 정말 따뜻한 면모를 보였다."

고인의 빈소는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층 1분향소에 마련됐다. 28일 발인해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