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7일 화요일

광주 고려인들 “즈드라스트부이쩨” 여기선 안녕혀라~

 등록 :2021-08-18 08:31수정 :2021-08-18 09:30

려인 동포들 광주 이주·정착 20년

지난 4일 저녁 광주시 광산구 월곡2동 ‘맛있는 정육점’ 앞길에서 고려인 동포 부부가 걷고 있다.
지난 4일 저녁 광주시 광산구 월곡2동 ‘맛있는 정육점’ 앞길에서 고려인 동포 부부가 걷고 있다.

스탈린때 강제이주 당했던 동포들
2007년부터 국내 재이주 본격화
집값 싼 월곡동에 둥지·특화거리

광주 고려인 마을 위치도.
광주 고려인 마을 위치도.

“즈드라스트부이쩨.”


경기도 안산에서 식료품점을 했던 김씨는 “안산의 고려인들과 달리 광주 고려인들은 부모와 자녀 등 3대가 가족 단위로 이주한 경우가 많다”고 광주 고려인 사회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월곡2동 고려인 특화거리는 외관부터 이채로웠다. Я, Б, Л, Ж 등 생소한 키릴글자 간판들을 단 음식점과 마트, 카페, 식료품점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러시아어를 하는 고려인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알렉스 김(25)은 “현재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한다. 이 거리에 오면 마음이 편해 퇴근 뒤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월곡2동 고려인 특화거리는 2014년 발레리 전(57) 대표가 ‘고려인마을 가족카페(1호점)’를 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 고유의 풍미를 담아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지 관광객들까지 찾아왔다. 고려인마을 가족카페는 4호점까지 생겨나 모두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다.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가족카페’는 중앙아시아 전통 음식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 외지에서도 찾아온다.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가족카페’는 중앙아시아 전통 음식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 외지에서도 찾아온다.

고려인 특화거리엔 중앙아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과 식료품점, 통신사 대리점, 무용학원 등 30여곳의 고려인 업소들이 들어섰다.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바람개비 꿈터 지역아동센터, 고려인 광주진료소, 월곡고려인문화관 등은 파란색과 녹색으로 칠해진 ‘러시아풍’ 외관이 이색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1937년 9월~1938년 1월 농업이민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 영토로 이주했던 동포 가운데 17만여명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수천㎞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던져졌다. 살아남기조차 힘든 척박한 땅에서 이들은 살아남았고, 고려인 공동체를 만들어 대를 이어 살아왔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한국과 왕래가 시작됐고, 2007년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12개 독립국가연합(CIS) 동포들을 대상으로 방문취업제도를 시행하면서 고려인들의 국내 재이주가 본격화됐다.


지난 3일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앞에서 신조야 센터장(가운데)과 이천영 목사(맨 오른쪽), 고려인마을 가족카페 발레리 전 대표와 촬영을 했다.
지난 3일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앞에서 신조야 센터장(가운데)과 이천영 목사(맨 오른쪽), 고려인마을 가족카페 발레리 전 대표와 촬영을 했다.

이 가운데 광주지역을 찾은 고려인들은 하남·평동산업단지의 중간에 있어 집값이 그리 비싸지 않았던 월곡동에 터를 잡았다.

한국어를 하지 못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고려인들 사이에서 공동체 의식이 싹튼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하남산업단지 인근에서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운영하던 이천영 목사와 당시 고려인 불법체류자였던 신조야(66)씨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은 2004년 9월 고려인 20여명과 고려인 공동체 모임을 꾸렸고, 1년 뒤엔 상담소를 개설했다. 신씨는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사무실을 빌렸고, 2009년 1월부터는 고려인지원센터를 열어 상주하기 시작했다. 고려인지원센터는 한국어 통역을 지원하고, 미취업자들에겐 숙식을 제공했다. 일자리를 알선하고, 임금체불 문제를 도왔다.


광주시 등 자치단체의 관심도 고려인 공동체 안정화에 큰 힘이 됐다. 2013년 10월 광주시의회는 전국 최초로 “고려인들을 광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대표발의자인 홍인화 전 광주시의원)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해 6월 광주시 광산구 고려인마을에서 열린 아시아인권평화대회. 광산구청 제공
지난해 6월 광주시 광산구 고려인마을에서 열린 아시아인권평화대회. 광산구청 제공


이천영 목사·불법체류 했던 신조야씨
고려인 공동체 ‘씨앗’ 뿌려 각종 도움
시의회 조례로 교육·의료 예산 지원
“광주선 투명인간 신세 면해” 입소문


이후 2014년 법무부에서 사단법인 ‘고려인마을’ 설립 허가를 내줬고, 고려인마을은 1억8천만원을 모금해 오래된 상가 건물을 사들여 2015년 7월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를 열었다. 현재 고려인마을이 운영하는 기관·단체는 어린이집, 고려인지역아동센터, 고려인진료소, 고려에프엠(FM)방송, 월곡고려인문화관 등 21곳에 달한다. 광주시와 광산구에서 지원받은 예산과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잘 갖춰진 교육·보육체계는 고려인 커뮤니티의 자랑이다. 어린이집과 바람개비 꿈터 공립지역아동센터는 부모들의 출근 시간에 아이들을 돌봐주고, 이천영 목사가 2007년 설립한 다문화 대안학교인 새날학교는 2011년 초·중·고교 학력인정학교로 인가를 받아 대학 입학생을 배출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고려인법률지원단이 무료로 법률상담을 돕고, 화요일 저녁엔 광주 의료인들이 무료진료 활동을 펼친다. 국내 고려인들 사이엔 ‘광주에 가면 ‘투명인간’인 우리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퍼졌을 정도다.


지난 3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해설사가 고려인 동포 강제이주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해설사가 고려인 동포 강제이주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공동체가 자리를 잡으면서 광주 고려인 거주자 수도 지난해 말 기준 5700명가량(광산구청)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10년 새 10배 이상 늘어, 경기도 안산(1만2천여명)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다.


방문취업(H-2), 동포비자(F-4)를 얻어 광주와 전남지역 건설 현장이나 공장, 농장에서 일하는데, 5천명 이상이 광산구 월곡·하남동 등지에 모여 산다. 이천영 목사는 “경기도 안산엔 고려인들이 흩어져 살기 때문에 광주처럼 고유의 커뮤니티를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광주 고려인 공동체의 다음 목표는 주거문제 해결이다. 신조야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장은 “광주 시민들이 고려인 동포들을 품에 꼭 안아 주셔서 고려인 커뮤니티가 가능했다”며 “생계비 중 임대비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엘에이치(LH) 임대아파트에 고려인 동포들도 거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동포들 나처럼 고생 않길 바라…꾸준히 봉사활동”
신조야 광주고려인마을지원센터장


신조야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장.
신조야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장.

“(새로 입국한) 고려인 동포들이 나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3일 광주시 광산구 월곡2동 센터에서 만난 신조야(66)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장의 말이다. 광주의 고려인 공동체가 자리잡는 데 큰 구실을 한 그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인 사위의 초청을 받아 2001년 10월 한국에 왔다. 충남 서천에서 시작한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한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남 함평 콘크리트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광주 하남산업단지에 있던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에서 이천영 목사를 만나면서 고려인 동포 지원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의 고려에프엠방송은 2016년 임시 주파수를 받아 한달간 라디오 방송을 한 경험을 살려 휴대전화 앱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이어왔다.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의 고려에프엠방송은 2016년 임시 주파수를 받아 한달간 라디오 방송을 한 경험을 살려 휴대전화 앱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이어왔다.


“고려FM방송 허가 한국인 인정된 것
모금 통해 장비 사 내년 2월 첫 전파”


신 센터장은 법무부의 위임을 받아 고려인들이 외국인 등록증을 받을 때 필요한 법정 의무교육(3시간)을 하고 있다. 그는 “고려인 커뮤니티 안에서 마약이나 성매매 등을 하면 공동체가 모두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깔끔이봉사단’을 조직해 일주일에 한번씩 거리 청소를 하고, 자율방범대를 결성해 월곡동 일대를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등 공동체 활동에도 열심이다.


신 센터장은 이천영 목사와 함께 ‘고려에프엠(FM)방송’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고려에프엠방송은 지난달 20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동체 라디오방송’ 신규 허가 대상 사업자에 선정됐다.


그는 “전파법상 주파수는 공공재여서 고려에프엠방송 허가를 받은 것은 고려인들이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로,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은 2016년 한달 동안 임시 주파수를 받아 라디오방송을 진행한 뒤, 휴대전화 앱을 통해 한국어 교육과 이민자 뉴스 등 12개 프로그램을 24시간 방송해왔다. 신 센터장은 “모금을 통해 방송송출 장비를 사들이고 내년 2월부터 라디오 방송을 송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008084.html?_fr=mt1#csidxa82de42b3d914a5bbbec3563157f10b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정혜연 기자 

편집자주: 미국에 의해 축출됐던 탈레반이 20년의 무장항쟁 끝에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함락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는데 이를 비판하는 가디언의 칼럼을 소개한다.
원문:It has taken 20 years to prove the invasion of Afghanistan was totally unnecessary

카불 함락 이후 기뻐하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전사들ⓒ사진=뉴시스/AP

 카불이 함락됐다. 그건 필연이었다. 그리고 포스트-제국주의 서방의 환상이 하나 깨졌다. 하지만 서방의 반응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재앙, 굴욕, 재앙적인 실수로 이를 묘사해도 좋다. 듣기에 좋기만 하면 말이다. 제국의 후퇴는 깔끔한 법이 없다. 그러나 20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최소한 끝은 신속하지 않았는가. 이런 식이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제대로 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리스트 국가’였던 적도 없었고,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1996년에 탈레반이 러시아에 맞서며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했었다.

물론 탈레반이 탈레반의 창시자이자 최고 지도자였던 물라 오마르와 친했던 오사마 빈라덴을 아프가니스탄에 머무르게 해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빈라덴은 9/11 이틀 전에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주의 운동가이자 영웅이었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를 암살한 터였다. 그래서 젊은 지도자들이 물라에게 빈 라덴을 추방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파키스탄이 언젠가는 빈 라덴의 항복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2001년 침공 직후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탈레반을 혼내 주고 얼른 빠져 나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부시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도 말을 듣지 않았다. 둘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아무런 이익이 걸려 있지 않았던 NATO를 동원해 그게 마치 레고로 만들어지는 양 아프가니스탄의 국민형성(nation-building)에 착수했다.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조세프 나이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을 소프트 파워로 지배하는 ‘벨벳 패권’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떠들어댔고,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이유 때문에 블레어는 ‘국제 사회 독트린’을 발표하며 영국이 첫 카불 폭격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리고는 탈레반의 주 수입원이었던 양귀비 재배를 막기 위해 클레어 쇼트 국제개발 장관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미군ⓒ사진=미국 육군

나는 2006년에 카불을 방문했는데, 당시 들리는 얘기는 이미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 영국의 무모한 시도에 대한 욕설뿐이었다. 그때 3,400명의 영국군이 지원해 헬만드에서 무장항쟁을 하는 탈레반 ‘반군’을 진압하러 갔었다. 존 리드 영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의 찌꺼기만 남아 있기 때문에 총알 하나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고, 데이비드 리처드스 영국 장군은 그 임무가 영국이 손쉽게 점령한 후 보다 손쉽게 통치하기 위해 정부를 세웠던 “또 다른 말라야(1946~48년)”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자 패배한 영국군이 퇴각했고, 대신 미국이 발 벗고 나섰다. 결국 패배했지만 말이다. 외세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데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 만한 사람들이 없다. 미국의 퇴각은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현재 상황은 끔찍하다. 20년간 서방의 부자 납세자들에게 의존해 온 친구들이 협박당하고 살해되는 모습이 군인과 통역가, 언론인 및 학자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수 년 간의 지원과 훈련이 물거품이 될 판이다. 그리고 1조 달러로 알려진 미국의 돈과 370억 파운드에 달하는 영국의 돈이 낭비됐다.

대체 영국인들에게 얼마나 더 얘기를 해야 이해를 할까? 대영제국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이다. 대영제국은 죽었다. 끝났다. 시대에 뒤떨어졌고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방금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보냈다. 영국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국가를 지배할 필요도 그럴 권리도 없다. 그것을 위해 군인도 목숨을 내걸 필요도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454명의 영국 군인과 민간인이 죽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지금으로서 영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아프가니스탄의 새 정부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카불의 이웃 나라 파키스탄, 그리고 이란과 함께 말이다. 세상은 영국을 위협하고 있지 않다. 테러리즘은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의 정복으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지금, 바로 김대중... 재평가가 절실한 까닭

 [김대중 대통령 서거 12주기] 대선 앞두고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을 강조하며

21.08.18 07:36l최종 업데이트 21.08.18 07:36l
2009년 6월 11일 연설 모습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6월 11일 연설하고 있다. 그는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촉구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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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서거 12주기가 되는 2021년 8월 18일, 이제는 김대중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김대중은 국제적으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는데 국내에서는 생전에도 그랬지만 사후에도 여전히 저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 저평가를 받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보수 진영뿐만 아니라 소위 민주-진보 진영 내에서도 김대중에 대한 무지와 부정적 편견의 뿌리가 깊다는 것이 그 핵심 원인 중의 하나다. 그렇다 보니 김대중의 정치적 가치와 유산은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그래서 '김대중 정신 계승'이라는 표현은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는 학문적 해석과 역사적 평가와 관련된 정치담론, 역사정치 차원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김대중은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보수적 국가발전노선에 대한 총체적이면서도 전면적인 대안(노선, 프로그램, 정책)을 정립했으며, 정권교체를 통해서 이를 국정에 직접 반영했다는 점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뿌리가 되는 정치가다. 그래서 김대중에 대한 평가의 내용과 방향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특히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김대중 재평가는 현실정치 측면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위기 극복과 창조적 발전의 역사 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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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 표지.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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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김대중의 어떠한 점이 현 시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 필자는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서 김대중의 사상과 활동 그리고 업적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라는 책을 썼다. 필자가 이 책에서 강조한 내용은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의 면모다. 필자가 김대중에 대해서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김대중이 오랜 기간 동안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위기극복과 창조적 발전의 역사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몇 가지 내용과 사례를 거론한다.


먼저 위기극복 리더십에 대한 내용이다. 김대중은 평생 수 많은 위기를 겪었는데 그중에는 극단적 위기 상황도 여러번 있었다.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실천을 이어갔다.

김대중은 민주화 세력이 처한 국내외적인 여건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서 야당-재야 학생운동 세력의 연합, 미국의 협조와 중산층의 지지 획득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마련해 결국 불가능해보였던 민주화 이행에 성공했다. 또한 1994년 1차 북핵위기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악화했을 당시 김대중은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일괄타결론과 카터 방북 카드를 제시했다. 이것이 실현돼 전쟁위기가 해소될 수 있었다.

김대중의 위기 극복 리더십은 대통령이 된 직후에도 크게 빛났다. 김대중은 1997년 12월 15대 대선에서 당선된 직후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국란으로 불리운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 했다. 그와 같은 위기극복 리더십을 통해 한국경제는 국가부도위기를 넘겼으며, 경제회생을 위한 4대분야 구조개혁에 성공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발전과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당시 김대중이 국가위기 상황에서 배제와 혐오의 정치를 동원하지 않고 자유, 민주, 개방적인 리더십과 전략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인상적인 지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전례없는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도 김대중은 최루탄 사용을 금지하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러면서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치유하고 문제해결을 도모했다. 이와 같은 방식이 효과를 내 한국은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존의 보수 정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그 다음으로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정치에 대한 내용이다. 김대중은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실사구시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위한 감각과 실력을 갖췄다. 그래서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 이후 21세기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지식정보(IT)와 문화를 강조하며 IT강국 건설과 문화강국 및 한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고 4대 사회보험 적용의 보편화와 확대를 이뤄내 한국이 복지국가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외교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외교의 최고 전성기를 이뤄냈다. 이는 국익위주의 현실주의적인 실용외교의 위대한 성과였다. 김대중의 실용적 면모는 정치적으로 반북주의와 반일주의 모두를 배격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김대중의 유명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라는 말은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정치에 대한 그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함축한다.

김대중 리더십

이러한 김대중 리더십의 성격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래지향적 리더십이다. 그래서 김대중은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인식과 태도를 강조했다. 같은 사안이라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진취적인 태도를 강조했다.

둘째, 실사구시형 리더십이다. 김대중은 관념에 치우친 인식과 태도를 비판하면서 실질을 중시했다. 김대중이 문제제기에 그치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해결형 정치를 지향한 것도 이와 같은 정치관과 관련이 있다.

셋째, 대통합의 리더십이다. 김대중은 화해와 관용이 진정한 용기이며 이것이 현재와 미래의 발전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중은 구원(舊怨)에 사로잡혀 있어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대통합의 화해, 관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김대중은 막스 베버가 정치인에게 필요한 윤리로 강조한 책임윤리와 신념윤리, 그리고 정치인에게 필요한 소양으로 강조한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을 모두 갖춘 뛰어난 정치가다. 또한 마키아벨리가 정치가의 중요한 자질로 강조한 사자와 같은 용기와 여우와 같은 지략(꾀)을 갖춘 유능한 정치가였다. 김대중은 망원경을 통해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현미경을 통해 미시적이면서도 세부적인 전략을 세우면서 용기와 인내를 갖고 이를 관철시키는 전략가이자 실천가였다.

또한 김대중은 관료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면서 효과적으로 리드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김대중은 국정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정치적 비전과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데에 능숙한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집권 5년의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분야에서 패러다임적 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래서 김대중은 '유능한 정치가'였으며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 담론의 의미는 무엇인가?
 
1971년 대선 당시 김대중의 모습 민주화 투쟁을 이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
▲ 1971년 대선 당시 김대중의 모습 민주화 투쟁을 이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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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필자가 규정한 김대중 재평가의 핵심 내용인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 담론은 현 시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역사정치(담론정치)와 현실정치 두 측면에서 모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여기서 먼저 역사정치(담론정치) 관점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한국 사회의 통념으로 자리잡은 '무능한 정치, 실패한(불행한) 대통령' 담론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일반인들이 한국 정치를 평가하고 해석할 때 '유능과 성공' 담론을 통해 정치와 정치가를 평가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독한 정치혐오론의 소산이며 자학적 역사관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정적인 담론이 압도한다.

더욱 문제는 이것을 객관적인 진단과 평가로 인식하는 문화가 뿌리 박혀 있어서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서 '유능하고 성공한 정치' 담론을 강조한다는 것은 기존 통념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김대중은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유능하고 성공한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하다. 김대중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보수우위 정치구조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결국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해 집권능력을 보여줬다. 또한 여기에 더해서 대통령으로서 통치능력까지 보여주었다. 특히 5년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한국 현대사의 대전환을 이뤄냈다는 점도 대단한데 이것을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에 충실한 민주적인 리더십을 통해서 이뤄냈다는 점은 더욱 대단하다.

이는 보수 진영과의 역사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가 있다. 보수 진영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 이승만-박정희의 과오를 고려하여 몇몇 역사적 성과를 강조하면서 권위주의 리더십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제시하곤 한다. 그러면서 민주-진보 세력이 실질보다 관념에 치우친 비현실적 이상주의에 경도되어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생산적인 리더십과 행정능력이 약하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민주적인 리더십을 통해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 김대중의 성과는 보수 진영의 공세를 반박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재평가는 역사정치(정치담론)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 김대중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김대중 재평가는 현실정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김대중은 여전히 우리의 많은 영역에서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현실정치적 의미는 더하다.

차기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불가항력적인 고난도 난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차기 정권은 델타변이에 따른 코로나 팬데믹의 지속, 미중갈등의 격화 등 외부 변수에 의한 중대한 구조적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 아주 어려운 과제로서 이에 잘못 대응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운명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적 난제 해결을 위한 지혜를 얻는 데 있어 김대중 리더십, 김대중의 업적은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지혜를 얻고자 할때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인물를 찾거나 우리나라의 사례를 찾을 때에는 근대 이전의 역사적 인물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례로서 가장 가까운 시점에 속한 인물을 선택한다면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김대중이 그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보수 진영은 박정희 그리고 이승만까지 포함해서 이와 같은 작업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두 인물은 현대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 독재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리더십을 현 시점에서 온고지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뿌리이면서 현재 대한민국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긴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는 현실정치적인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최근에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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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골치 아픈 한일관계

 

[아침햇살139]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골치 아픈 한일관계

이형구 | 기사입력 2021/08/1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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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정세에는 근본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 온 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하려 북한, 중국, 러시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반제자주 국가 사이의 신냉전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제재와 봉쇄를 강화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내세운 ‘가치동맹’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가치동맹엔 신냉전 대결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에 맞서 북·중·러가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주의·반제자주 진영은 세 나라가 각각 자기 힘을 키우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그리고 세 나라가 서로 연대와 공조, 지원과 지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이 대결에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북·중·러가 공세를 펴며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형세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살펴보려 한다.

 

 

  

 

1. 들어가며

 

“한일관계가 추락한 점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걱정스럽다.”

 

지난 4월 15일, 백악관 당국자가 미일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브리핑한 말이다. “한일 사이의 정치적인 긴장이 동북아의 역량을 저해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미국을 매우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했다”라며 한일관계를 우려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 기본 축은 바로 한미일 동맹이다. 한미일 동맹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선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한일관계는 좋지 못하다. 서로를 원수 보듯 적대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한미일 동맹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이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에게 한일협정을 체결하도록 한 게 1965년이다. 하지만 그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한일동맹은 실현되지 않았다. 2016년 탄핵 직전의 박근혜 정권을 시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를 체결하게 했지만 미국이 원하는 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한일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자위대가 한반도에 자유롭게 진출하도록 군사동맹을 맺기 위해서 갈 길이 먼데 도리어 한일관계는 악화하고 있으니 미국으로선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미국이 말하는 한일관계 ‘정상화’란 일본의 친한화가 아니라 한국의 친일화를 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미일 동맹 구상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고 일본은 현지 거점이며 한국은 일본 아래의 돌격대로 삼는 것이다. 즉, 미국은 한미일 관계를 미국-일본-한국 순의 수직적 관계를 형성해 일본은 미국에, 한국은 일본에 복종하길 바란다.

 

예를 들어 일본 안에서 반미여론이 생겼다고 해보자. 그러면 미국은 일본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고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갑이고 일본이 을이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반미 감정을 제거하려 든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반일 여론이 생기면, 미국은 일본이 변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반일 여론을 없애려고 든다.

 

미국은 주한미대사에 해리 해리스라는 일본계 미국인을 임명했었다. 해리스는 2019년 일본의 경제공격 때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라는 대응조치를 하자 “보기 참 불편하다” “한국에 실망했다”라며 한국을 비난했다. 그리고 기업인들을 만나 한일 갈등을 중재하라면서 주한미대사라기 보다는 주한일본대사와 같은 친일행보를 펴 한국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한국 국민은 미국이 주한미대사를 잘못 임명했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일본에 반감을 갖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9년 지소미아 종료 논란 때도 일본 기업이 한국 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을 하면 해결되지만 미국은 일본을 놔두고 한국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라고 압박했다. 

 

이처럼 한일 갈등의 원인은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군국주의를 부활하려는 데 있지만 미국은 언제나 일본 편을 든다. 미국이 바라는 건 한국의 친일화이기 때문이다.

 

올해 출범한 미국의 조 바이든 정권도 한일동맹을 실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바이든 정권은 국제적으로 여러 나라와 연대해 반북·반중·반러 전선을 구축하려고 한다. 바이든 정권은 이를 위해 민주주의, 인권, 자유를 말하는 ‘가치동맹’을 내세운다. 올해 12월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와 시민사회 대표를 모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열고자 준비 중이다. 그중 동북아에서의 반북·반중·반러 전선 핵심은 한미일 동맹이다.

 

그래서 바이든 정권은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2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3월에 한미 외교장관 및 국방장관 회담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문재인 정부에 한일관계 ‘정상화’를 주문했다. 그리고 미국은 지난 5월엔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7월엔 한미일 외교차관 회담을 열었다.

 

최근 시도했던 건 도쿄올림픽 때 한일정상회담을 성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7월 한일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중요 화제로 떠올랐다. 일본 언론은 7월 초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할 거라는 보도를 쏟아내 정상회담 개최 분위기를 잡아갔다. 

 

당시 한국 국민은 한일정상회담 추진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했다. 일본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고 거꾸로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를 자기 땅으로 표시해 한국 국민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심지어 7월 15일에는 주한 일본 대사관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라며 막말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왜 정상회담이 추진하는 것인지 공감하지 못했고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을 추진했던 이유는 바로 미국이 한일정상회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반일 여론이 거세자 끝내 한일정상회담을 강행할 수 없게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을 가지 않겠다고 결정할 때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다 수차례나 “아쉽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듯 한일관계 ‘정상화’가 좌절되자 미국의 전략은 차질을 빚고 있다. 예를 들자면 8월 현재 한반도에서는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면서 곧 북한이 대응조치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만약 지금 한미일 동맹이 실현되어 있다면 미국은 자위대를 한반도에 진출시켜 한미일 군사력을 총동원해 북한에 맞설 것이다.

 

하지만 한미일 동맹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위대는 한국에 진출할 수가 없다. 미국은 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을 투입했다. 영국에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를 파견하도록 한 것이다. 영국 퀸 엘리자베스호는 8월 말 부산에 들어올 예정이다. 지금은 퀸 엘리자베스호 소속 핵추진 잠수함인 ‘아트풀’이 부산에 점검 차 입항해 있다. 만약 한일동맹이 체결되었다면 미국은 영국 항공모함을 데려올 필요 없이 자위대를 한반도에 출격시켰을 것이다. 일본 자체가 거대한 미국의 항공모함 아닌가. 동북아의 반대편에 있는 영국은 동북아 전선의 보조수단일 뿐 핵심수단은 될 수 없다.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세력은 문재인 정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단순히 문재인 정부의 성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은 과거 박정희나 박근혜 때는 한국 국민의 반발이 있어도 우격다짐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관철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은 자기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 촛불국민의 주권의식이 높아지는 반면 미국과 일본의 힘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북한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패권이 급격히 약화되며 생기는 구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 한국에서 촛불 민심의 영향력이 커졌다

 

한일관계가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 촛불 민심 때문이다. 국민은 촛불로 민족적 자존심, 주권의식이 높아지면서 반일의식 또한 강화됐다. 그래서 한국 정치권은 함부로 친일로 가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스스로의 의지로 반일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라며 친일보수세력이 하던 주장과 비슷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을 강조하며 일본에 대화를 제안했다. 

 

오늘날 한일 갈등은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 때문에 빚어진 게 아니다. 일본이 제국주의·군국주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이런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들은 매우 우려스러운 내용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실제로 한일관계를 개선시키진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국민의 반일 여론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2019년을 되돌아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에 수출 규제 조치를 하면서 경제공격을 해왔다. 당시 자유한국당이나 조중동은 대일 외교를 잘못해서 큰 피해를 보게 됐다며 문재인 정부를 맹공격했다. 하지만 국민은 일본을 옹호한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을 토착왜구로 규정했다. 

 

국민은 친일적폐세력의 행태에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 국민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토착왜구 청산에 나섰다. 민주당의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은 2019년 “여론에 비춰 볼 때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며 반일 여론이 총선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0년 총선에선 민주개혁세력이 180석을 차지하며 승리를 거뒀다.

 

지금이야 친일행적이 욕을 먹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좀 달랐다. 나경원은 2004년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지만 나경원은 2008년 2014년, 2016년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친일이 선거 당락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친일을 함으로써 친미친일보수적폐 동맹에 동참함으로써 권력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박근혜도 친일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제는 친일행보를 하면 토착왜구로 찍혀 정치계에서 퇴출된다. 나경원은 지금은 완전히 친일 정치인으로 찍혔다. 나경원은 국힘당 기성 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기 때문에 총선이나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을 하면 항상 초반에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하지만 친일로 찍힌 탓에 마지막엔 여론에 밀려 번번이 고배를 맛보고 있다. 철옹성 같은 반일 민심의 벽에 부딪힌 나경원은 SNS에 “뭘 해도 안 되는 좌절과 외로움”을 느낀다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국민의 반일 기세가 거세자 문재인 정부는 아무리 미국의 요구라고 해도 차마 일본과 결탁할 수는 없게 됐다.

 

이처럼 촛불민심은 민족 자존, 주권의식으로 발현되어 확고한 반일의식을 형성했다. 촛불민심은 아직 미국에 대해서는 일면 비판을 하면서도 전면적인 반미를 하진 못하고 있다. 전면적으로 반미를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식민지 근대화론의 영향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이 강하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일본에 의해서 근대화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오늘날 미국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 말을 들어야 하며 미국에 의존해서 경제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미국 의존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반일여론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촛불로 인한 확고한 반일의식은 미국의 한미일 동맹 전략을 파탄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3. 일본이 몰락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둘째 이유는 일본이 몰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반도를 장악하는 수단 중 하나로 일본을 이용했다. 미국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거웠기 때문에 일본과 그 부담을 나눠 한국의 군사, 경제에 관여했다.

 

1965년에 체결한 한일협정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고 국민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며 민주화운동과 함께 통일운동에 불을 지폈다. 미국은 통일의 기운이 급속도로 커지고 한국이 친북화되는 걸 막고자 했다. 그래서 일본을 내세워 한일협정을 체결하게 하고 일본 자본을 한국에 투입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이 몰락하고 있다. 한국을 장악하는 미국의 주요 축 중 하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다.

 

일본은 왜 몰락하게 되었나. 일본은 스스로를 경제 동물(economic animal)이라고 한다. 국제 사회에서 오로지 경제적인 실리만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일본을 넘어뜨린 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1980년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동시에 겪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게 됐다. 그러자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985년 플라자합의를 맺는다. 

 

플라자합의란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의 가치를 강제로 상승시키고 달러 가치를 낮춘 것이다. 플라자합의 직전 엔화 환율은 1달러당 235엔이었는데 1년 후에는 1달러에 120엔이 되었다. 엔화의 가치가 두 배 정도 상승한 것이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자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졌다. 일본에서 240엔짜리 상품을 미국에 판다고 가정해보자. 이 똑같은 물건이 1985년엔 1달러였는데 1986년엔 2달러로 변했으니 판매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국은 달러 가치가 하락한 결과 미국 상품을 일본에 수출하기 유리해졌다. 플라자합의는 한마디로 미국이 자신의 경제 위기를 일본에 떠넘긴 조치였다. 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30년 동안 경제침체를 맞게 되었다. 일본은 이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플라자합의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미국 중심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혀서 생긴 결과이다. 다시 말해 미국 중심 자본주의는 이미 30년 전에 구조적인 한계를 맞닥뜨렸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미국 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이 몰락하니 미국 중심 자본주의 체계에 속한 일본 경제도 살아날 수가 없다. 

 

경제가 안 좋으면 정치에서는 보통 혁명이 일어나거나 극우파쇼화가 일어난다. 일본은 경제가 몰락하면서 흔들리는 정치권력을 혐한을 통해 강화하고 있다. 이제 혐한이 일본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 보수적폐세력이 선거철만 되면 반북 색깔론을 펴듯 일본에서는 혐한을 조장한다.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일본은 한국 국민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게다가 일본이 경제공격을 하고 극우혐한 정치를 펴고 독도 강탈 같은 군국주의 부활 야욕을 벌이고 있으니 한국인이 일본을 좋아하려 해도 좋아할 수가 없다. 

 

일본의 경제 몰락과 극우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반일기운이 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되돌릴 수 없다.

 

4. 북한의 영향

 

북한은 아주 강한 반일 태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8.15광복절에도 조선중앙통신은 “침략행위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올바로 반성하고 깨끗이 청산하는 것은 회피할 수도, 모면할 수도 없는 일본의 법적 책임이고 도덕적 의무”라며 “피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반일강경 입장을 밝혔다. 

 

또 일본이 도쿄올림픽에서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의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쓰인 한국 선수단의 현수막을 문제 삼고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게시하는 등의 혐한 행동을 하자 북한은 7월 26일 “민족적 의분으로 피를 끓게 하는 후안무치한 망동”이라고 일본을 규탄했다. “올림픽 경기 대회마저 추악한 정치적 목적과 재침 야망 실현에 악용하는 왜나라 족속들이야말로 조선 민족의 천년 숙적이고 악성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평화의 파괴자”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한국 민심은 북한의 반일 강경 행보에 열광했다. 인터넷 기사에는 “북한이 일본 때리기를 잘한다”, “일본의 태도를 바로잡아주기 위해서라도 남북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은 한민족”, “한 핏줄을 나눈 우리 편”,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국가이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주류 정치권이 친일행위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지금 한국 정치인이 친일행위를 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들의 입지는 급속도로 축소될 것이다. 그리고 반일을 내세운 정치세력의 입지가 급속도로 확대될 것이다. 그 반일세력이란 민족자주세력이고 통일지향세력이다. 자주통일 세력은 반일 강경태세를 보이는 북한과 손잡고 반일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민심과 결합해 한국 정치를 주도할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한국의 주류 정치권이 미국의 압박에도 섣불리 친일 행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승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한일관계 ‘정상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민심으로부터 배척받게 될 것 같아서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마 미국에도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 하면 자칫 자주통일세력에 정권을 내줄 수 있다고 하소연했을 것이며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더 들어보자. 만약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는 군사작전을 실행한다고 가정해보자. 극단적인 사례 같지만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 2008년 나카무라 아키라 도쿄대 명예교수가 독도 탈환론을 주창한 바 있고 육상자위대 간부학교 교관 출신인 다카이 사부로는 독도 강습작전 시나리오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시나리오에는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기 위해 동원할 군사력과 작전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또 시나리오에는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면 한국은 대마도를 점령한 후 독도와 대마도의 맞교환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측도 담겨 있다. 실제로 일본은 1995년 이후 꾸준히 섬 탈환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도 2020년 12월 일본의 독도 침공 작전 시나리오와 이를 방어할 대응전략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한국 군 당국도 일본이 독도를 침략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한국군이 독도 수호 작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독도를 수호하는 데 실패하면 한국 민심은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은 평소 독도 문제에서 일본 편을 들어 왔고 한국군의 전시작전권도 가지고 있다. 만약 일본이 독도를 침략해오는데 미국이 일본 편을 들면서 한국군 출병을 불허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이 스스로 출동시킬 수 있는 건 해경밖에 없는데 해경만으로 일본군을 막을 수가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한일 분쟁이 일어나도 한국 편을 들지 않을 것이고 한국군의 전면적인 대응을 억제할 것이기 때문에 일본으로선 독도 침략을 꺼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한반도엔 북한이 함께 존재한다. 일본이 독도를 침략하고 미국이 한국군을 저지해 일본을 도와주고 있을 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일본 군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국민은 북한의 군사력을 반일을 하는 군사력, 즉 민족의 군사력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은 반일로 커다란 공감대를 이루고 머잖아 통일로 가게 될 것이다. 

 

지금도 일본이 독도 도발을 할 때마다 인터넷 기사에는 북한에 핵미사일을 쏘아달라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2월 11일 다음 포털에 있는 연합뉴스 <북한, 日 독도영유권 주장에 "적반하장 날강도 행위..천년숙적"> 기사에는 “왜구가 독도에 쳐들어오면 북에서 미사일이 날아갈 수도 있다”, “핵무기 하나 시원하게 부탁한다”, “일본에 설 선물로 핵폭탄을 보내 달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 민심은 반일에 있어선 이미 북한 핵을 민족의 무기로 여기는 것이다. 반일이라는 공감대에서는 북핵에 대한 거부감이 완화되고 앞으로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루면 북핵은 우리의 것이 될 거라며 친밀하게 여기고 있다. 

 

북한은 2018년~2019년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연달아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일본과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이때도 한국 민심은 북한의 반일 행보를 좋아했다. 만약 북한이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고 관계를 개선했으면 한국 민심 속 북한에 대한 연대감이 다소 덜해졌을 것이다.

 

지금 북한의 철저한 반일태세는 한국 민심에 강력한 영향을 주고 남북 동질감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정치권,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함부로 일본에 저자세를 취하는 걸 막는 작용을 하고 있다.

 

5. 결론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 상 북한, 중국, 러시아가 모여있는 동북아시아는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 체제를 동북아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나쁘기 때문에 한미일 동맹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을 저지하는 것은 촛불민심으로 높아진 주권의식과 일본의 몰락 그리고 핵을 가진 북한의 반일공세와 이에 대한 한국 민심의 호응에서 나오고 있다. 

 

한일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 주도 체제가 구조적으로 약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촛불민심의 주권의지와 북한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시대를 저물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비대면, 디지털 소통시대… ‘메타문자’역할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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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1-08-17 07: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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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세계문자심포지아’서 강조
세계문자심포지아에서 영상으로 축사를 하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세계문자연구소 제공 


“현대사회는 이모티콘 같은
복합ㆍ다성적 형태로 소통
문자가 모든 장벽을 허무는
하나가 되는 세상 만드는데
긍정적 역할 할수 있게 해야”
‘문자 너머 문자’로 비전 제시


“문자를 얘기할 때 중요한 것은 문자 자체가 아니라 (문자 위의 또하나의 문자인) ‘메타문자’입니다.” 지난 12일 막을 올려 15일까지 진행된 ‘제6회 세계문자심포지아’ 기간에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영상 메시지’ 형태로 보낸 축하메시지가 행사 참가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메타문자’를 주제로 한 이 전 장관의 메시지는 특히 ‘비대면, 디지털 소통시대’에 문자의 역할과 외연을 넓히는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메시지의 서두에 이 전 장관은 먼저 한자를 창제했다고 전해지는 창힐(蒼頡)의 고사를 예로 들었다.

“창힐의 문자 발명 소식에 귀신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인 어둠을 (문자의 ) 빛으로 밝혔다고 ‘곡’을 하며 슬퍼했지만,  …(중략) …한편에서는 농사는 짓지 않고 문자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인간들의 의지로 인해 기근이 들 것을 우려해 하늘에서 곡식을 내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전 장관은 이처럼 문자의 긍정적, 부정적 역할을 고사로 전한 후 (문자의 긍정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요즘 젊은이들이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모지’나 ‘이모티콘’ 등  ‘메타문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통용되는 이모지나 이모티콘 등 ‘회화문자’ 역시 메타문자입니다. ‘너 미워’라고 쓰면서도 ‘웃는 얼굴’의 이모지나, ‘사랑의 이모티콘’을 추가하면 ‘미워해’가 오히려 ‘사랑해’를 강조하는 반어법적 표현이 됩니다. …(중략)…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스크는 ‘타인으로부터 내 건강을 지키겠다’는 이기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병을 남에게 옮기지 않겠다’는 이타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전 장관은 축사의 말미에 “현대 사회는 회화언어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 선형적 문자뿐 아니라 복합적이며 다성적(多聲的, polyphonic) 형태로 소통이 이뤄진다”며 “(문자는 ‘어둠을 쫓아내는 빛’이라는 창힐의 고사처럼)  너와 나의 벽, 신분과 빈부, 인종의 차이, 남녀 간 벽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세상’을 만드는데 문자가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번 행사가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축사를 마무리했다.

세계문자심포지아를 주관한 세계문자연구소의 임옥상 대표는 “행사 프로그램이 모두  ‘비대면 SNS와 가상현실 공간’에서만 열린 만큼 큰 도전이었지만, 디지털 세대의 등장과 함께 소통방식이 다양해지는 시점에  ‘문자 너머 문자’의 세계를 언급하신 이 전 장관님의 축사가 또 하나의 큰 비전을 제시해 주셨다”고 말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공동 건립위원장인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은 “디지털 비대면시대에 ‘문자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 아래 의미있는 행사가 열려  ‘문자’연구 학자들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며 “문자박물관이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 내에) 개관하면 함께 연계 학술행사나 전시 등을 개최, 보다 풍성하면서도 깊이있는 행사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경택 기자 ktlee@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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