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일 일요일

장수하늘소 미스터리 풀렸다…“중남미 종과 같은 핏줄”

장수하늘소 미스터리 풀렸다…“중남미 종과 같은 핏줄”

조홍섭 2018. 06. 04
조회수 1093 추천수 0
세계 23종 중 22종 중남미 열대림에
직계 아시아존만 온대우림 ‘수수께끼’
베링 해 육지였을 때 연결 증거 확인

자연사 증명하는 ‘살아있는 유적’
자연림 감소에 로드킬·채집 위협
광릉숲서 증식 성공…곧 방사한다

l2.jpg» 먹이로 제공한 젤리를 먹는 장수하늘소 수컷. 국립수목원에서 인공증식한, 짝짓기를 마친 성체이다. 조홍섭 기자

장수하늘소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곤충이다. 갑옷과 투구를 갖춘 장수 같은 육중한 몸집에 길이도 10㎝ 넘게 자란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성충은 짝짓기와 산란을 1~2개월 동안 서둘러 마치고 죽는 덧없는 존재일 뿐이다. 장수하늘소의 본령은 나무 깊숙이 파고들어 썩은 나무를 갉아먹으며 5~7년, 추운 곳에서는 20년까지 사는 애벌레라고 할 수 있다. 애벌레도 어른 손바닥만큼 크다.

장수하늘소는 그 희귀성 때문에 일찍이 1968년 곤충으로선 처음으로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됐다. 붉은점모시나비 등 다른 5종과 함께 곤충 가운데 보존 등급이 가장 높은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남한에선 경기도 포천의 광릉숲이 유일한 서식지이다. 오대산 소금강을 비롯해 강원도 춘천·화천·양구, 북한산 등에 분포한 기록이 있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이 대형 딱정벌레가 확인된 곳은 광릉숲밖에 없다.

 2014년부터 4년 연속 장수하늘소가 출현한 국립수목원은 올해도 나타날 것으로 보고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이승규 국립수목원 곤충 분류연구실 박사는 “성충은 7~8월이 돼야 나오기 때문에 서어나무 등에서 애벌레가 나무를 뚫고 탈출한 흔적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l3.jpg» 장수하늘소 애벌레. 썩어가는 고목 심부로 파고들어 5∼7년, 길게는 20년까지 자란다. 사람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자연림에서만 애벌레가 자랄 수 있다. 국립수목원 제공.

6천만년 전 ‘베링육교’ 통해 연결

장수하늘소는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부에 분포한다. 이 곤충의 표본을 전수조사해 분포지역을 과학저널 <주탁사>(Zootaxa) 최근호에 보고한 이대암 영월곤충박물관장(곤충 생태학 박사)은 “1899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처음 발견된 뒤 100여년 동안 러시아에서 확보한 장수하늘소 표본이 100개 남짓할 정도로 드문 곤충”이라며 “현재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은 북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무르 강과 하바롭스크 등 연해주 북부까지 서식하고 남한의 광릉숲이 분포의 남방한계라면 장수하늘소는 추운 곳에 주로 서식하는 곤충일까. 이 관장은 “그동안 장수하늘소는 북방계 곤충으로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사라진다고 보는 게 통념이었지만 최근 계통지리학 연구로 그것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l4.jpg» 김상일 연구원 등이 표본을 분석한 장수하늘소 속 딱정벌레의 분포지역. 베링 해가 육지였을 때 환태평양 분포를 이뤘다. 김상일 외 (2018) ‘분자 계통 유전학 및 진화’ 제공

김상일 미국 하버드대 진화생물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등 한국과 미국 연구자들은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가 중남미 장수하늘소와 같은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자매’ 관계임을 증명했다. 장수하늘소 속(屬)에는 23종이 있는데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를 뺀 나머지는 모두 멕시코와 중남미, 카리브래 등에 분포한다. 어떻게 한반도와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 직계 조상에서 유래한 같은 혈통의 장수하늘소가 분포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장수하늘소가 속한 톱하늘소 아과에 속한 종들에 대한 유전자와 관련 화석을 분석해 동아시아와 아메리카 장수하늘소의 공통조상이 6천만년 전 동아시아에서 베링 해를 거쳐 남아메리카까지 띠 형태로 이어진 환태평양 분포를 이뤘을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베링 해가 육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베링기아’로 불리는 육교로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이어져 연속적인 생물 분포를 이뤘다.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분자 계통 유전학 및 진화> 최근호에 실렸다.

3400만년 전 지구 기온이 한랭화하면서 베링육교의 ‘북극 열대’가 사라지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장수하늘소는 각각 독립된 진화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주 저자인 김상일 연구원은 “베링기아는 중생대 백악기 중기에 형성되어 신생대 플라이오세까지 계속 존재했고 장수하늘소는 유라시아의 구 북구 동부와 베링기아,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분포했던 것을 보인다”며 3500만년 전에는 지구 전체가 아열대와 열대 기후로 북극지방 주변까지 열대성 동·식물이 분포했다”고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최근 캐나다 고지대에서 야자잎만 먹는 딱정벌레 화석이 발견된 것도 그런 증거로 제시했다. 김 연구원은 이처럼 베링기아를 통해 환태평양 분포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진 동물로 부전네발나비과, 장님도매뱀과, 사랑부전나비속 등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장수하늘소가 중남미의 열대우림에 사는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연구자들은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 조상도 중남미처럼 따뜻한 서식지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가 왜 이렇게 희귀한지를 설명하는 단서도 된다. 이대암 관장은 “인위적인 요인 이전에 애초 기후대가 번성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차츰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l1.jpg» 경기도 포천 광릉숲에서 관찰된 장수하늘소. 2014년 이후 해마다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장수하늘소가 열대우림에 적응한 곤충이라면 왜 동남아에는 살지 않을까. 김 연구원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 열대우림에도 장수하늘소가 충분히 서식할 수 있으나 장수하늘소와 비슷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는 대형 하늘소 종이 이미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장수하늘소가 저위도 지방으로 퍼져나가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는 중·남미 종과 조사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서 불과 7∼9%의 차이만 보였다. 김 연구원은 “동북아에 서식하는 종의 최 근연종이 중·남미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진화학적 의미 있다”며 “만일 동북아의 장수하늘소가 이미 멸종했더라면 장수하늘소가 아시아에 한때 서식했다는 사실 자체가 확인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로 한국의 장수하늘소가 계통진화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종임이 드러났으므로 보전의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라고 덧붙였다.

토종 증식해 광릉숲 방사 예정

사육과정별+사진.jpg» 장수하늘소의 한살이. 국립수목원과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증식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국립수목원 제공.

그렇다면 기후변화는 장수하늘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연구자들은 종 분포 모델링을 통해 “지구온난화에 따라 서식지가 확장되겠지만, 동아시아의 급속한 개발로 자연림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 인위적 요인을 고려하면 장수하늘소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장은 “장수하늘소는 유충이 장기간 갉아먹으며 살아갈 죽어가는 신갈나무나 서어나무 거목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300년 이상 된 자연림은 거의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변봉규 한남대 교수는 “장수하늘소 성충은 불빛에 유인돼 숲 밖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어 차량에 치이거나 고가의 표본을 노린 불법포획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립수목원과 국립생물자원관은 장수하늘소를 단기간에 인공증식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 둔 상태이다. 그런데 도입한 알이 중국산이어서 복원이 아니라 생태연구에 주로 쓰이고 있다. 문화재청과 함께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립수목원은 2년 전 국내에서 확보한 장수하늘소 알을 이용한 증식에 성공해 광릉숲에 방사할 예정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Il Kim, S., De Medeiros, B.A.S., Byun, B-K., Lee, S., Kang, J-H., Lee, B., Farrell, B.D., West meets east: How do rainforest beetles become circum-Pacific? Evolutionary origin of Callipogon relictusand allied species (Cerambycidae: Prioninae) in the New and Old Worlds, Molecular Phylogenetics and Evolution (2018), doi: https://doi.org/10.1016/j.ympev.2018.02.0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일제의 만행 폭로한 일본인 그가 기억하는 지옥섬의 진실

선감도의 비극 알린 이하라 히로미츠씨
18.06.04 08:07 | 글: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 선감도의 비극을 알린 이하라 히로미츠(84) 씨. 그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일본인이다. ⓒ 정대희

여든넷의 일본인이 무릎을 꿇었다. 한국의 전통 제례복 차림이었다. 그가 내디디고 있는 땅에서 어린 소년의 꽃신이 발견됐다. 암매장된 아이의 것이었다. 백발의 그가 제사상에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고개 숙인 머리 앞에 봉분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대한해협을 건너온 그는 이렇게 어린아이들의 넋을 기렸다. 

그의 이름은 이하라 히로미츠(84)다. 어린 소년들이 묻힌 땅은 경기도에 있는 선감도다. 지난달 26일,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번지에서 선감학원 희생자 추모 위령제가 열렸다. 선감도의 비밀, 감춰진 소년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옛 선감학원 터에서 이하라 히로미츠씨를 만났다. '선감학원'은 일제가 1942년, 선감도에 세운 소년 강제수용소다. 수많은 아이가 여기로 끌려와 노역을 살고,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아무렇게나 땅에 묻혔다. 그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일본인이다. 

선감학원은 지금 경기창작센터로 변했다. 전시사무동 옆 나무 밑, 야외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폈다. 그가 기억하는 선감학원의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일제가 어린아이들에게 가한 서슬 퍼런 폭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진실규명을 위해 그가 입을 열었다. 통역은 신혜란 한양대학교 국제관광대학원 겸임교수가 맡았다.

"선감도... 내겐 천국, 아이들에겐 지옥"
▲ 선감도의 비극을 알린 이하라 히로미츠(84) 씨. 그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일본인이다. ⓒ 정대희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옛날이 그립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향"이란 단어를 내뱉은 건, 선감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서다. 그는 지난 1943년, 선감학원 부원장으로 발령이 난 아버지를 따라 여기로 왔다. 이후 10살까지 살다가 일본 요코하마로 건너갔다고 했다. 

여기선 행복했으나 거기선 불행했단다.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학교에서 "이지메(왕따)"를 당했다. 한국에서 살다 온 게 이유였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선감도에서 즐거웠던 추억이 떠올랐다. 괴로울 때마다 이런 기억을 꺼냈다. 그제야 생각났다. 선감학원에 갇혀 있던 또래 아이들의 얼굴이. 

"학교에 다니면서 굉장히 부조리하게 왕따를 당했다. 이런 일을 겪다가 보니, 선감도에 있던 아이들도 어떻게 보면, 일본군에게 부조리하게 왕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의 마음에 동감하게 됐다. 내겐 천국이었던 곳이 어린아이들에겐 지옥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다. 지옥 섬에서 목격한 걸,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책을 좋아하던 문학 소년은 트럭 운전을 하며, 작가를 꿈꿨다. 머릿속에 묵혀두었던 기억을 꺼내 글로 옮겼다. 생생한 현장을 담아내기 위해선 한국에, 선감도에 가야 했다. 뾰족한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건,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단다. "아버지의 제자"라고 했다. 한국에 온다면, 취재를 도와준다고 했다. 선감도에 간다면, 따라 나서준다고 했다. 이렇게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아버지가 선감학원에 발령받기 전, (북한) 원산에서 교사였다. 이때 가르쳤던 제자가 수소문 끝에 연락을 해왔다. 일본에 가는데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이 편지를 어머니가 받았고, 나에게까지 전달됐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조 박사'라는 사람이었는데, 선감도를 취재하고 싶다니 한국에 온다면 얼마든지 도와준다고 했다. 

아버지는 생전에 선감학원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일본으로 돌아오고 10년 후 돌아가셔서 아무것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조 박사'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으니, 아버지가 말은 안 했지만 나를 통해서 선감도에서 벌어진 비극을 세상에 알리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44년만의 기록을 소설 형식으로 쓴 까닭
▲ 선감도의 비극을 알린 이하라 히로미츠(84) 씨. 그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일본인이다. 그가 옛 선감학원 운동장에 섰다.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목격한 소년 수용소의 이야기를 증언했다. ⓒ 정대희

지난 1980년 5월, 어렵게 찾은 한국은 예전과 달랐다. 계엄령이 발령된 상태였다. 험악하고 삼엄한 분위기에 그는 두려웠단다. 한 번은 간첩 누명을 쓰고 경찰에 붙잡혔다.

배에서 내리니 경찰이 다가왔다. 지난 1981년, 선감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선감도에 사는 친구가 "여기서(선감도) 사진 찍으면 잡혀간다"라고 했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경찰에 체포돼 파출소로 끌려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니 누군가 밀고를 한 거다. 간첩이라고.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오는데,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붙잡혀 실랑이하다가 카메라 필름을 빼버리고 때마침 오는 버스에 올라타 도망갔다. 

이번에는 경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는데, 경찰차 두 대가 버스를 가로막았다. 다시 파출소로 끌려가 신체검사까지 받았다. 다행히 선감도에 사는 친구와 지인이 적극적으로 대변해줘서 풀려났다." 

아찔한 경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포기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그는 선감도의 비극을 알리기 위한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1989년까지 수차례 한국을 찾았고, 그해 12월 책 <아! 선감도>가 출판됐다. 선감도를 떠난 지 44년 만이었다.

"일본 사람들에게도 선감도에서 일어난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책에 담은 내용을 대자보로 만들어서 집 앞 담벼락에 걸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가까운 형제, 친척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해보면 알 텐데, 저를 향한 나쁜 기사가 많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어느 나라 사람이건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나의 신념을 이해하고 도와준 건, 한국 사람들이다. 이런 일본인도 있다는 걸 알아줘서 굉장히 고맙다. 한국에 대한 사랑 잊지 않고 기억할 거다. 그리고 오랜 시간 트럭운전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무사고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린 영혼들이 날 지켜주고 있어서란 생각이 든다."

- 책 <아! 선감도>는 얼마나 현실을 반영했나?
"거의 논픽션으로 썼다. 소설이라고 이름 붙인 건, 최후의 보류 장치다. 일본이나, 한국에 민감한 사안이라 문제가 되면 도망치기 위해서 '소설'이라고 한 거다. 퍼센트로 따지면 70%가 진실이고, 30%가 픽션이다."  

70%의 진실
▲ 선감도의 비극을 알린 이하라 히로미츠(84) 씨. 그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일본인이다. 그가 위령비 앞에 섰다. 이걸 세우려고 그는 대한해협을 수차례 오갔다. 어린 영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 정대희

70%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가 목격한 선감도의 비극이 궁금했다. 그가 기억하는 지옥 섬에 사는 어린 소년은 이랬다.

"저기(경기창작센터 앞에 보이는 마을 근처)에 포도밭이 있었다. 거기에 '피병자 수용소'라고 병에 걸린 아이들이 있었는데, 열 살이나 열두 살 된 소년과 자주 마주쳤다. 눈만 크고 깡마른 아이였다. 쭈그려 앉아 있었는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팔을 흔들며, 손가락질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과거의 선감도 풍경을 불러오느라 온몸을 썼다. 이런 손가락 끝에, 온몸으로 표현한 장소에 봉분이 있던 야산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관에 넣어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말하길 어린아이들이 물에 빠져서 죽고, 병이 나서 죽었다고 했다."

여기선, 정진각 안산지역소장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선감학원의 진실을 파헤친 사람이다. 이하라 히로미츠의 증언을 기록하고 그와 함께 감춰진 소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강제노역과 굶주림. 정 소장이 추정하는 소년들의 죽음이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섬을 탈출하려고 바다를 건너다가 물에 빠져 숨을 거뒀다는 거다.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잠들어 그대로 깨지 못했다는 거다. 박정희 정부 때도 이런 일이 반복됐다고 한다. 

[관련 기사] 선감도의 비극... 바다로 뛰어든 고아들 

이게 다가 아니다. 이하라 히로미츠씨가 죽도를 든 자세를 취했다. 주먹을 위아래로 쌓고 손목을 앞뒤로 흔들며, 죽도를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죽도로 어린아이가 맞는 거를 봤다. 선감학원 원장선생님 집에서다. 그 앞이 대부도 소학교 선감분교였다. 공부하고 있으면, 매 맞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소리를 듣고 상상이 됐다. 강제노역에 지친 뼈만 앙상한 아이가 매타작을 당하는 게. 반대로 머리로는 그릴 수 없는 게 있었다. 아이들이 겪은 고통이다.

- 어린 소년들의 강제노역을 목격한 적은 없나?
"여기(경기창작센터 앞터)서 아이들이 농사를 지었다. 논에서 모내기를 한다거나 밭에서 일을 했다. 운동장을 만든다고 흙을 잔뜩 퍼나르는 것도 봤다. 바다에서 고기도 잡았다. 갯벌에 쳐놓은 그물에서 생선을 빼서 가는 걸 봤다. 바지락이랑 맛도 캤다. 그땐 그게 강제노역인 줄 몰랐다."

- 황민화 교육을 받는 걸 본 기억은 없나?
"나무를 총 모양으로 깎아서 훈련했다. 소리도 내지르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인으로 키우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때가 전쟁이 끝날 무렵이었으니 인적자원이 필요했을 거다. 군인 양성하려고 훈련을 한 거다. 하지만 행동을 보면, 강제노역에 지치고 못 먹어서 체력이 말이 아니었다."

풀리지 않은 비밀, 진실 규명해야
▲ 일제 강점기 선감학원 ⓒ 홍석민

여기까지다. 지난달 26일 이하라 히로미츠씨가 들려준 선감학원의 비극은. 그는 "내년에 다시 만나자"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옛 선감학원을 떠났다. "일본에서 살 때 선생님께(이하라 히로미츠) 신세를 많이졌다"는 부산에서 온 중년 남성의 자동차를 타고 경기창작센터를 빠져나갔다.

그 시각, 군사독재 정권 시절 선감학원에 강제로 끌려왔던 소년들은 경기창작센터 전시사무동에서 선감학원 피해자 총회를 했다.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스스로 나선 거다.

선감도의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일제와 군사독재 정권은 40년 동안 어린 소년들을 강제로 끌어가 노역에 동원했다. 어린아이들을 몽둥이로 다스리고 숨을 거두면 아무렇게나 땅에 묻었다. 인권유린의 땅이자 생지옥 섬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젠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일만 남았다.

끝으로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선감도에 강제로 끌려온 첫 번째 아이들이다. '부랑아'로 취급돼 길거리에서 붙잡혀온 소년들이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 앞에 펼쳐질 일들을.
▲ 선감도에 1942년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학원이 문을 열었다. 사진은 첫 번째 원생들이 대부도 진두포구에 도착한 모습 ⓒ 이하라 히로미츠

트럼프의 마음 사로잡은 특사파견과 친서외교

<개벽예감 301> 트럼프의 마음 사로잡은 특사파견과 친서외교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6/04 [08: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중대현안 논의하지 않은 조미고위급회담
2. 친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흥분한 트럼프 
3. 조미정상회담 성사과정은 ‘유훈관철과정’
4. 트럼프의 파격행동, 무슨 뜻인가?
5. 최대압박 중지와 제재 해제 언급한 트럼프
6. 조미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질 “대단한 타협”
7.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단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1. 중대현안 논의하지 않은 조미고위급회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에 파견한 김영철 특사가 2018년 5월 30일 뉴욕에 왔다. 김영철 특사와 수행원들은 중국 베이징을 떠난 중국국제항공(Air China)편으로 뉴욕에 있는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백악관은 뉴욕에 도착한 김영철 특사를 국빈급 의전과 경호로 영접하였다.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백악관이 전례 없는 특급 의전으로 김영철 특사를 맞이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뉴욕에서 김영철 특사의 첫 일정은 2018년 5월 30일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국무장관이 마련한 환영만찬에 참석한 것이었다. 환영만찬은 맨해튼 38가에 있는 유엔주재 미국차석대사의 관저에서 당일 오후 7시부터 약 90분 동안 진행되었다. 김영철 특사의 미국 방문을 환영하는 만찬이었으므로, 팜페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특사 두 사람만 만찬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환영만찬에 통역이 필요하였다. 김영철 특사는 자신을 수행하는 통역관을 환영만찬에 동석시켰고, 팜페오 국무장관은 우리말을 잘 하는 앤드루 김(김성현)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를 환영만찬에 동석시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환영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8년 5월 30일 김영철 특사의 미국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팜페오 국무장관이 마련한 환영만찬 장면이다. 환영만찬은 뉴욕 맨해튼 38가에 있는 유엔주재 미국차석대사의 관저에서 약 90분 동안 진행되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였다. 조선측에서는 김영철 특사와 통역관이, 미국측에서는 팜페오 국무장관과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가 환영만찬에 참석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튿날인 5월 31일 김영철 특사는 둘째날 방미일정을 진행하였다. 전날 저녁 환영만찬을 나눈 그 장소에서 조미고위급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오전 9시 5분경에 시작되어 오전 11시 25분경에 끝났다. 회담시간이 예상한 것보다 짧아진 까닭은 김영철 특사의 방미목적이 팜페오 국무장관과 회담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에게 전하고 대통령과 회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철 특사와 팜페오 국무장관이 진행한 고위급회담에 참석한 조선측 배석자는 김성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최강일 조선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 직무대행이다. 미국측 배석자는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와 마크 램벗(Mark Lambert) 국무부 코리아과장이었다. 양측 통역관도 각각 한 사람씩 참석하였다. 이처럼 조선외무성에서 부상급 인사가 아닌 국장급 인사가 배석하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보좌하는 통일전선책략실장이 배석하였으며, 미국 국무부에서도 차관급 인사가 아닌 과장급 인사가 배석한 것을 보면, 5월 31일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은 중대현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전날 저녁 환영만찬이 있었던 장소에서 2018년 5월 31일에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 장면이다. 사진 오른쪽 앞에서부터 최강일 조선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 직무대행, 김영철 특사, 통역관, 김성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순으로 앉았고, 맞은 편에 마크 램벗 국무부 코리아과장, 팜페오 국무장관, 통역관,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 순으로 앉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3류 소설’을 제멋대로 써갈기는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비핵화 해법을 놓고 탐색전을 벌였을 것”이라느니, 또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을 것”이라느니, 또는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담판을 시도하였다”느니 하는, 말도 되지 않는 별별 억측을 다 늘어놓았다. 특히 <연합뉴스> 취재기자는 한 술 더 떠서 “미국은 이날 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시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보장과 북한의 경제적 번영지원 등을 약속하며 북한의 확고한 결단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고 써갈겼으니, 이것은 ‘3류 소설’도 되지 못한 유언비어로 들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악관에 특사를 파견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의제가 오래 전에 확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만일 조미정상회담 의제가 확정되지 않았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를 실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미정상회담 의제는 언제 확정되었나?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에서 접견하고 두 차례 진행한 회담에서 이미 확정되었고, 당시 김영철 조선로동당 부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별도로 진행한 두 차례 회담에서 조미정상회담 의제에 관한 세부적인 토의까지 마쳤다. 이에 관해서는 2018년 5월 21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나의 글 ‘비밀에 쌓인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그런데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한 달이 지나도록 알지 못한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미정상회담 의제가 아직 확정되지 못한 것으로 착각하고, 이번에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탐색전’, ‘신경전’, ‘담판’을 벌였을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억측을 늘어놓았으니,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보도행태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 친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흥분한 트럼프 

김영철 특사의 방미일정 중에 가장 중요한 일정은 백악관 방문이었다. 2018년 6월 1일 오전 6시 50분경 김영철 특사와 수행원들은 두 대의 의전차량을 타고 경호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맨해튼을 출발하여 워싱턴으로 향했다. 맨해튼에서 워싱턴까지 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약 4시간이다. 

오후 1시 12분경 김영철 특사와 수행원들이 탄 두 대의 의전차량이 백악관 경내에 들어서자,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이 문 밖에 나와 김영철 특사를 영접하고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하였다. 수행원들은 김영철 특사와 함께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대기하였다.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김영철 특사를 접견하는 시간이 대략 10~15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백악관의 예상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김영철 특사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약 80분 동안 회담하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8년 6월 1일 김영철 특사 일행이 탄 두 대의 의전차량이 백악관 경내에 들어서자,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문 밖에 나와 김영철 특사를 영접하고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하는 장면이다. 특사의 수행원들은 김영철 특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대기하였다.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김영철 특사를 접견하는 시간이 대략 10~15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백악관의 예상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80분 동안 김영철 특사를 접견하고 회담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영철 특사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정중히 전하였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를 열어보지도 않고 흥분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흥분한 그는 친서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쳐 들고 환하게 웃으며 김영철 특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치 교장선생님이 안겨준 표창장을 받고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중학생처럼...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 국가수반들로부터 친서들을 많이 받지만,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친서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쳐 들고 특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전례는 찾아볼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아들고 흥분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말해준다. <사진 4> 

▲ <사진 4> 김영철 특사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정중히 전하였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를 열어보지도 않고 흥분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친서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쳐 들고 환하게 웃으며 김영철 특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치 교장선생님이 주는 표창장을 받고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중학생처럼...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흥분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와 회담을 마치고 그와 수행원들을 배웅한 직후 백악관 마당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그 친서는 매우 좋은 친서다. 기자 여러분들은 그 친서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직접 읽어보고 싶나? 얼마나 보고 싶은가? 얼마나 보고 싶어?”라고 말하면서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곧이어 그는 “나는 일부러 그 친서를 열어보지 않았다. 나는 국장(김영철 특사를 정찰총국장으로 생각하여 그렇게 지칭함-옮긴이) 앞에서 친서를 열어보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친서를 열어보기 바라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중에 읽어봐도 된다고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 그 친서에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국가수반이 보내온 친서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법이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내용도 알 길이 없지만,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리는 그 친서에는 “(조미)정상회담을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조치와 함께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내용이 들어있다”고 백악관 출입기자에게 귀띔해주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친서에서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였을 것이고, 조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성사되기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기념사진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두 손으로 받쳐든 친서겉봉이 유별나게 크다. 그렇게 큰 겉봉에 들어있는 친서의 크기도 그만큼 클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의 크기가 그처럼 유별나게 큰 까닭은, 절반을 접지 않는 표창장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는 절반을 접는 형태였으므로, 그렇게 크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표창장만큼 유별나게 큰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것에는,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정상회담을 살려낸 트럼프 대통령의 공로를 표창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3. 조미정상회담 성사과정은 ‘유훈관철과정’

김영철 특사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한 뒤에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였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배석하였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국가수반이나 특사와 회담할 때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 비서실장이 배석하는 것이 백악관의 관례이건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와 회담할 때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을 배석시키지 않았다. 얼마 전,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으로 광분하며 조선을 향해 폭언을 늘어놓았던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조선의 첫 번째 혐오대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분위기를 고려하여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회담에 배석시키지 않고 팜페오 국무장관만 배석시킨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부화뇌동했던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회담에 배석시키지 않았다. 백악관의 관례를 벗어나 자기 측근들을 회담에 배석시키지 않으면서 온화한 회담분위기를 조성한 트럼프 대통령의 배려가 보인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영철 특사와 회담하는 장면이다. 사진 오른쪽에 미국측 통역관, 팜페오 국무장관, 김영철 특사, 조선측 통역관 순으로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의 관례를 벗어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을 그 자리에 배석시키지 않고, 팜페오 국무장관만 배석시켰다. 볼턴은 얼마 전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으로 광분하며 조선을 향해 폭언을 늘어놓았고, 켈리는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부화뇌동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일부러 배석시키지 않은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외국 특사를 만나 80분 동안 회담한 전례가 없다는 사실이다. 2018년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시간은 약 21분밖에 되지 않았다. 2000년 10월 10일 조명록 특사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대통령에 전하고, 약 45분 동안 회담하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특사가 매우 이례적으로 80분 동안 회담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으며,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영철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전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확고한 입장을 이미 팜페오 국무장관의 방북보고를 통해 들은 바 있지만, 이번에 김영철 특사를 통해 직접 확인한 것이다. 김영철 특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사와 의지를 직접 확인한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를 받아들 때처럼 흥분하였을 것이다. 회담시간이 그렇게 길어진 까닭이 거기에 있다. 

김영철 특사의 백악관 방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파견한 조명록 특사가 2000년 10월 10일 백악관을 방문한 때로부터 18년 만에 이루어진 쾌거다. 당시 조명록 특사는 미국 국무부 청사를 먼저 방문하여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 국무장관과 회담한 직후 자신이 입은 양복 정장을 왕별이 달린 차수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백악관에 들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하고 회담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게 된 계기였으나, 클린턴 대통령이 검은 이익집단의 저지선을 넘지 못하는 바람에 조미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00년 10월 10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미국에 파견된 조명록 특사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접견하고 회담하면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왕별이 달린 차수복으로 갈아입고 백악관에 들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했던 조명록 특사는 2010년 11월 노환으로 별세하였고, 클린턴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2001년 1월 야인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김영철 특사의 백악관 방문은 조명록 특사가 백악관을 방문한 때로부터 18년 만에 이루어진 쾌거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18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가 이루지 못했던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유훈관철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므로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18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가 이루지 못했던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유훈관철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조선에서 선대 수령들의 유훈을 실현하는 것은 뒤로 미루거나 어길 수 없는 최상의 과업이다. 이런 관점에 서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가 가지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18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를 계승, 발전시킨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18년 전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와 전혀 무관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8년 전 클린턴 대통령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특사로 평양에 파견한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팜페오 국무장관을 특사로 평양에 파견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파견 및 친서외교와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파견 및 친서외교 사이에는 연속성이나 계승성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단절만 있을 뿐이다. 백악관 각료들 가운데 18년 전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를 기억하고 그 경험을 계승하려는 사람은 없다. 

18년 전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를 계승, 발전시키며 ‘유훈관철’에로 힘을 집중시키는 조선의 외교역량이 전혀 그렇지 못한 미국의 외교역량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4. 트럼프의 파격행동, 무슨 뜻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행동과 충격발언에서 거듭 확인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와 회담을 마치고 그와 수행원들을 배웅하면서 백악관의 관례를 뛰어넘는 파격행동을 보여주었는데, 그 상황은 이러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마치고 김영철 특사와 함께 백악관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회담에 배석하였던 팜페오 국무장관도 그 뒤를 따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특사는 함께 백악관 밖으로 걸어 나오는 동안에도 계속 담화를 나누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가 타고 온 의전차량 앞까지 다가갔다. 미국이 중시하는 주요동맹국의 국가수반들이 백악관 회담을 마치고 떠날 때,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현관 앞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이 관례인데,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관례를 벗어나 백악관 마당을 걸어 나와 의전차량 앞에까지 가서 김영철 특사를 배웅하였으니 파격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특사는 의전차량 앞에서 통역을 통해 몇 분 동안 담화를 계속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례 없이 80분 동안 장시간 회담을 진행하였으면서도, 작별하기 아쉬운 듯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김영철 특사와 백악관 마당에 서서 담화하였다. <사진 7>

▲ <사진 7> 위쪽 사진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전례 없는 80분 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밖으로 걸어나오는 김영철 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이 담화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가 타고 온 의전차량 바로 앞까지 갔다. 파격행동이 아닐 수 없다. 아래쪽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특사가 의전차량 앞에서 통역을 통해 몇 분 동안 담화를 계속하는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뒤에 팜페오 국무장관이 미소를 담은 표정을 지으며 서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바로 그 때, 김영철 특사는 백악관 밖에서 자신이 회담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던 김성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최강일 조선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 직무대행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하였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과 악수하면서 인사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행동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행동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뒤에 서 있는 팜페오 국무장관을 앞으로 부르더니, 김영철 특사 일행과 함께 또 다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사진 8>

▲ <사진 8> 김영철 특사는 회담이 일찍 끝나는 줄 알고 백악관 밖에서 오래동안 기다리던 수행원들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하였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과 악수하면서 인사하고,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위의 사진이 바로 그 기념사진이다. 위의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트럼프 대통령은 곁에 있는 팜페오 국무장관을 부르더니, 김영철 특사 일행과 함께 또 다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파격에 파격을 거듭한 행동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영철 특사 일행이 탄 의전차량들이 백악관을 떠날 때,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특사를 배웅하면서 보여준 파격행동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진 9>

▲ <사진 9> 위쪽 사진은 김영철 특사가 의전차량에 오르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과 담화하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영철 특사 일행이 탄 두 대의 의전차량이 백악관을 떠날 때,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특사를 배웅하면서 보여준 그런 파격행동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을 간파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은 2018년 6월 2일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비판과 우려를 쏟아냈다. 그들의 비판과 우려를 요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과의 관계에서 커다란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느니, 조선의 선전전술에 말려들었다느니, 일관성 없고 순진한 외교로 조선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느니 하는 따위들이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은,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승리하였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능하고 무기력해서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어떤 위대하고 유능한 미국 대통령이 나타나더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조미핵대결에서 완패한 미국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길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핵대결에서 완패한 미국을 국가안보파탄위기에서 건져내는 궁여지책으로 조미정상회담에 그처럼 매달리게 된 것이다. 조미정상회담을 궁여지책으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 회담에서 패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패자에게 주어지는 선택범위는 회담에서 자기의 패배범위를 되도록 축소하는 것밖에 없다. 그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은폐하는 바람에 세상이 모르고 있었던 그런 놀라운 사실이 조미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드러나기 시작한 것뿐이다.    


5. 최대압박 중지와 제재 해제 언급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 일행을 배웅한 직후 백악관 마당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꺼내놓은 충격발언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충격발언이라고 표현했으나, 세기적인 대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이미 패하고 있다는 숨겨진 사실을 알면, 그다지 충격적인 것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나는 북조선에게 최대압박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조미)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대조선)제재를 하지 않겠다. 나는 (대조선)제재가 해제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에 대한 최대압박을 중지하고, 대조선제재를 해제하고 싶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사에 호응한 것이다. 이것은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이후에 취해야 할 조치를 예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그것은 조선에 대한 최대압박을 중지하고 대조선제재를 해제하는 전향적인 조치가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는 미국 정세분석가들의 어설픈 예상을 뛰어넘는 발언이었다. <사진 10>

▲ <사진 10> 이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특사 일행을 배웅한 직후 백악관 마당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다. 그의 곁에 팜페오 국무장관이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기자회견에서 충격발언을 꺼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 충격발언에서 그의 숨겨진 진심이 살짝 드러났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이 쏟아내는 엉터리 분석기사와 추측보도를 밀쳐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숨겨진 진심이 살짝 드러난 기자회견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백악관과 국무부의 고위관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전담하는 팜페오 국무장관마저도 조선이 비핵화를 실현할 때까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최대압박이 유지되고, 대조선경제제재가 지속될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 대한 최대압박을 중지하고 대조선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싶다는 전향적인 의사를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 표명하였다. 이런 전향적인 의사표명이야말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6. 조미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질 “대단한 타협”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회담(6월 12일에 개최될 조미정상회담을 뜻함-옮긴이)에서 대단한 타협(big deal)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며, 우리는 (6월) 12일에 무엇인가에 서명하지는 않을 것이고, 하나의 과정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한 차례 회담으로 진행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시작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한 차례 회담에서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오늘 그들(김영철 특사를 지칭함-옮긴이)에게 천천히 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빨리 갈 수도 있고, 천천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매우 성공적이고,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과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위의 인용문은 평소에도 정확한 어휘와 개념을 사용하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꺼내놓은 발언이어서, 조리 있는 내용이 아니었으나,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말하지 못하는 중대한 내용이 그 발언에 들어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 발언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오는 6월 12일 싱가폴(Singapore)에서 열리는 조미정상회담에서 “대단한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단한 타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발언 중에 코리아전쟁을 종식시키는 문제를 슬쩍 언급한 것으로 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이 합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할 별도의 정상회담들에서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을 각각 따로 진행하게 될 것으로 오판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그 중 어느 회담에 참석하느냐 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은 별도의 정상회담을 각각 개최해야 할 만큼 서로 분리될 사안이 아니므로 단번에 해결되어야 한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이 합의되고, 남북미 정상들이 아니라 외교수장들이 이른 시일 안에 평화회담을 개최하여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7.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단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조미정상회담에서 “대단한 타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조미정상회담은 조미 쌍방이 일련의 과정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될 해결방안은 “천천히” 이행될 것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또 다른 내용들이다. 그가 언급한 “천천히”라는 말은 이행속도가 늦다는 뜻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이행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괄타결을 주장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여 합의점을 아직도 찾지 못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위에 인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견을 따라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단계적 해법이란 조미 쌍방이 각각 제시한 등가적 해결방안들을 단계적으로 합의하고,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행한다는 뜻이다. 이행만 단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행에 앞서 합의도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단계적 해법은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 그 이후 이행하여야 할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구분하고, 그것을 정세발전단계에 맞춰 순차적으로 합의, 이행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첫 단계에서 최소강령을 합의하고 그것을 이행하며, 조미 쌍방이 최소강령을 충실히 이행하였을 때 둘째 단계로 넘어가 최대강령을 합의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소강령은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이고, 최대강령은 주한미국군 완전철수다. 주한미국군 완전철수에 상응하는 또 다른 최대강령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표현을 빌리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개념은 조선의 핵무기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뜻이 아니라 핵전쟁위험이 완전히 소멸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핵 없는 한반도”라는 개념은 조선이 핵무기가 사라진 한반도라는 뜻이 아니라 핵전쟁위험이 사라진 한반도라는 뜻이다. 조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핵 없는 한반도”라는 개념은 조선의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없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5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2018년 5월 초 미국 중앙정보국이 새로 작성하여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에게 회람시킨 정보보고서에는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되었다고 한다. 팜페오가 중앙정보국장에서 국무장관으로 영전한 날이 2018년 5월 2일이었으므로, 그는 국무장관에 취임하기 직전,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한 정보보고를 받았고, 그 정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한 정보보고를 받은 직후, 평양을 방문하여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차례 회담하였다. 그러므로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 두 차례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미국이 오해한 것처럼 조선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점을 파악하였고, 그에 대해 동의하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판단이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라는 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사진 11>

▲ <사진 11> 이 사진은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회담한 직후 촬영한 사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는 모습은 그 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 중앙정보국 정보보고를 받은 직후,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차례 회담하였다. 그러므로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 두 차례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조선의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점을 파악하였고, 그에 대해 동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런 진실을 은폐하면서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 고육책에 매달리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만일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이 더 이상 진척될 수 없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평양회담이 진행되었던 5월 9일로부터 오늘까지 한 달이 지나면서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이 꾸준히 진척되어온 것을 보면, 그 문제가 이미 지난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합의된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은, 조선의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조선에 대한 불신이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을 설득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불신을 해소시켜주었을 것이다. 조선의 핵무기가 미국을 위협하지 않고, 미국의 핵무기가 조선을 위협하지 않는 전향적인 조치들(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국군 철수, 조미국교수립)를 조미 쌍방이 합의하고 실행하면, 조미 쌍방은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이다.  

그런데도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 무슨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말을 여전히 외우고 있으며, 그의 입만 쳐다보는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도 앵무새처럼 그 말을 외워대고 있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조선의 핵무기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견해에 동의하였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은폐하는 고육책에 매달리고 있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그런 고육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굴복한 것으로 보이게 되고, 그로써 미국과 동맹국들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오는 6월 12일 싱가폴에서 열리는 조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될 공동성명의 문안조율은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과 성 김 미국측 회담대표가 판문점 통일각에서 최근 몇 차례에 걸쳐 진행해온 실무회담에서 수행되고 있는데,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그 공동성명에 당연히 명시될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될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조선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라고 발표하지 않을 것이므로,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반도의 비핵화’ 개념해석에 관한 진실을 은폐해온 고육책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조미 쌍방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최소강령을 합의하여 한반도의 평화가 실현되고, 조미정상회담에서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해소하는 최대강령(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국교수립)을 합의하여 한반도의 비핵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를 뚜렷이 전망할 수 있다.


‘스윙 보수’냐 ‘샤이 보수’냐…선거 좌우할 민심 종착역은?

‘스윙 보수’냐 ‘샤이 보수’냐…선거 좌우할 민심 종착역은?

등록 :2018-06-04 05:00수정 :2018-06-04 09:55


지방선거 D-9
민주당, 주말 부·울·경 집중유세
“지역주의 기댄 공짜정치 끝내야”
합리적 표심 기대 ‘전국정당’ 야망

한국당 “김정은에게 목맨 정부”
경북·강남 텃밭 돌며 안보공세
‘집토끼 불러내기’ 투표 독려도

전문가 “탄핵·평화 등 지형 바뀌어
숨은 표 떠오르게 할 요소 안 보여”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선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 후보자의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선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 후보자의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샤이 보수’(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숨은 보수표)냐 ‘스윙 보수’(지지 정당을 바꿔 투표하는 보수표)냐.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민심의 향배가 여야의 선거 성적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표류하고 있는 보수 민심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지방선거→총선(2020년)→대선(2022년)의 정치적 전망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외연 확장’에, 자유한국당은 영남과 서울 일부를 중심으로 ‘지지층 결집’에 당력을 모으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뒤 첫 주말인 2일과 3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각각 보수 표심 잡기에 나섰다.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인 추미애 대표 등 지도부는 2일 울산·경남 집중유세에 이어 3일 부산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경남지역 유세에 나선 추 대표는 “낡은 지역주의를 청산하고, 자유한국당의 공짜 정치를 끝장낼 수 있도록 해달라”며 ‘보수 기득권 심판론’을 주장했다. 여당은 보수 유권자지만 문 대통령을 지지하며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해줄 합리적 보수 표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른바 ‘스윙 보수’를 잡아, 영호남 지역주의를 넘어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3일 오후 서울 신도림역 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 합동유세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왼쪽부터), 추미애 대표, 박원순 서울 시장 후보,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후보가 참석해 함께 유권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일 오후 서울 신도림역 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 합동유세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왼쪽부터), 추미애 대표, 박원순 서울 시장 후보,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후보가 참석해 함께 유권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6.13 지방선거 집중유세 지원에 나선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 기초단체장 후보들과 함께 서울 강서구 방신시장 네거리에서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6.13 지방선거 집중유세 지원에 나선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 기초단체장 후보들과 함께 서울 강서구 방신시장 네거리에서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자유한국당은 지지세 확장보다는 ‘결집’에 힘을 쏟고 있다. 보수의 아성인 경북 지역과 서울 서초·강남 일대에서 안보 공세와 세금 폭탄 등을 내걸며 ‘집토끼’ 지키기에 나섰다. 홍 대표는 2일 서울 유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김정은에게 목숨을 걸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아마 부동산 보유세 폭탄이 곧 떨어질 것”이라며 안보와 세금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전통적 지지층을 겨냥한 발언을 내놓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여론조사에 드러나지 않는, 이른바 ‘샤이 보수’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통상 50%대인 지방선거의 낮은 투표율은 투표에 적극적인 고연령·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조직 기반이 탄탄한 보수야당에 유리하다고 평가돼왔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 여론조사에서 전국적으로 열세를 보이자, 자유한국당은 ‘샤이 보수’를 투표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투표율 끌어올리기에 나선 모습이다. 홍 대표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사전투표하고 투표날은 주위 친지들에게 모두 투표하시도록 권유해달라”는 글을 남겼다. 사전투표(8~9일)에서 보수층이 결집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지방선거 하루 전날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변수와 관계없이 보수층이 투표장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오른쪽 둘째)가 3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거리유세를 펼치며 잡은 손을 높이 들고 있다. 왼쪽부터 손학규 선거대책위 원장, 유승민 공동대표, 안 후보, 박주선 공동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오른쪽 둘째)가 3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거리유세를 펼치며 잡은 손을 높이 들고 있다. 왼쪽부터 손학규 선거대책위 원장, 유승민 공동대표, 안 후보, 박주선 공동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선거가 “북-미 회담 등 한반도 평화 의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등으로 변화한 정치 지형”(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에서 치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선거 막판에 유권자의 균형감각 때문에 야당의 지지율이 기계적으로 오르는 건 있다”면서도 “숨은 표가 전면화되려면 정부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요소가 안 보인다”고 짚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전문위원도 “지지 선호가 강할수록 투표 동기가 강한데 자기 입장을 얘기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충성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엄지원 김규남 이정훈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