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5일 화요일

칼날 위 영국…브렉시트안 부결 이어 정부 해산위기

칼날 위 영국…브렉시트안 부결 이어 정부 해산위기

등록 :2019-01-16 10:27수정 :2019-01-16 11:48


메이 협상안, 역대 최대 230표차 부결
코빈 노동당 대표, 정부불신임안 제출
3월29일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 커져
영국 의회에서 15일 유럽연합 탈퇴 승인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민이 ‘(유럽연합에서) 떠나는 것은 곧 떠나는 것’이라는 글귀가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 신화 연합뉴스
영국 의회에서 15일 유럽연합 탈퇴 승인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민이 ‘(유럽연합에서) 떠나는 것은 곧 떠나는 것’이라는 글귀가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 신화 연합뉴스
영국이 칼날 위에 서게 됐다. 영국 의회가 테리사 메이 총리가 주도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협상안을 사상 최대의 표차로 부결시켰다. 야당에서는 즉각 정부 불신임을 제출해, 정국의 파국조차 예상된다.
최대 표차 부결
영국 의회는 15일 메이 총리가 제출한 브렉시트 협상안을 230표차로 부결시켰다. 이는 영국 의회에서 95년만에 최대 표차의 현직 정부 패배이다. 이날 의회에서는 432명의 의원이 반대했고, 찬성은 202명에 불과했다.
이로써, 영국은 오는 3월29일로 기한이 만료되는 유럽연합 탈퇴에서, 유럽연합과의 아무런 새로운 관계 설정도 없이 내몰리게 될 우려가 커졌다.
일단 메이 정부는 의회의 앞선 의결에 따라, 3일 시한 내로 유럽연합과 다시 협상해 새로운 협상안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메이 정부가 이 시한 내로 의회를 만족시킬 새로운 협상안을 마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번 브렉시트 협상안에서 최대 쟁점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국경 개방을 보장하는 ‘백스톱’ 조항이었다. 영국이 오는 3월29일 유럽연합을 탈퇴한 뒤 21개월 동안의 과도기를 갖는 동안 유럽연합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도출하지 못하더라도, 북아일랜드 국경 개방은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브렉시트 찬성론자 등은 영국의 주권과 통합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격렬히 반발했다.
이날 부결 사태는 브렉시트 강경론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국민투표 실시를 주장하거나 더욱 온건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쪽 모두가 가세하면서 벌어졌다. 메이 총리 정부의 집권 여당인 보수당에서도 118명이 반대에 가세했다.
15일 영국 하원에서 실시된 브렉시트 승인투표가 부결된 직후 테리사 메이 총리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15일 영국 하원에서 실시된 브렉시트 승인투표가 부결된 직후 테리사 메이 총리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메이 총리 정부 운명 불투명
메이 총리 정부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이 됐다.
정부의 중대한 동의안이 이런 표차로 부결되면, 통상 총리가 이끄는 정부는 해산하는 것이 관례이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이날 부결 직후 성명에서 “하원은 말했고, 정부는 경청할 것이다”고 말해, 물러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해, 16일 오후 7시에 표결에 들어간다. 불신임되면 총선이 실시된다.
불신임안을 일단 17일 오후 7시에 동의안 상정 투표를 거친 뒤 14일 내로 불신임 본안 투표가 이뤄져야 한다. 만약 이 시한 내로 현 정부나 다른 대안 정부가 신임을 얻지 못하면, 총선이 실시된다.
여당인 보수당은 현시점에서 총선에 치르면 노동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우려가 있어, 일단 메이 총리를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를 주도하는 강경파인 보수당 의원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총리가 “브뤼셀로 돌아가 북아일랜드 백스톱이 없는 더 좋은 협상안을 협상할 막대한 사명을 받았다”며 정부 불신임안 투표에서 메이 총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당 정권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북아일랜드의 신교도 정당인 북아일랜드연합당의 대표 아리엔느 포스터도 자신의 당은 메이 총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자신이 주도한 브렉시트 협상안이 사상 최대의 표차로 부결된 것을 감안하면, 그 운명을 장담하지 못하게 됐다. 보수당 내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메이 총리 불신임을 통해 제2의 국민투표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
유럽연합, ‘영국이 원하는게 무엇이냐?’
유럽연합은 당혹과 우려에 빠졌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협상안이 부결돼서 무질서한 브렉시트의 위험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그는 협상안은 “질서있는 철수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안이었다”며 자신과 도날드 투스트 유럽연합 이사회 상임의장은 영국 의원들을 달래기 위해 이번주 내로 추가적인 명확성을 가진 의지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영국이 가능한 빨리 그 의도를 명확히 해줄 것을 촉구한다, 시간이 거의 다됐다”고 말해, 영국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밝히라고 압박했다.
투스크 의장도 트위터에서 “유일한 긍정적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말한 용기를 최종적으로 말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영국이 해결책도 없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시사했다.
브렉시트 협상안은 당초 지난해 12월에 의회에서 의결될 예정이었으나, 메이 총리가 부결을 우려해 이날로 늦췄다. 그동안 메이 총리와 유럽연합은 쟁점 사안인 백스톱을 완화하는 대안을 마련했다. 유럽연합 쪽은 백스톱은 적용된다고 해도 “가능한 단기간”으로 일시적일 것이라고 보장을 했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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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어뢰’에 대하여

천안함 어뢰가 거짓인 10가지 이유
  •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 승인 2019.01.16 10:16
  • 댓글 0
국방부는 스스로 천안함에 폭발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최종조사결과 보고서에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비접촉폭발’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 논리적 모순은 역설적으로 ‘어뢰’가 등장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상황임을 말해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짚어보자면, 2010년 4월 15일 오후 1시 14분경 함미가 수면위로 올라오고 바지선 거치대에 탑재되면서 처음으로 선저하부의 모습을 세상에 처음 드러내었습니다. 하지만 거치대 10개가 무너지면서 다시 함미는 크레인에 매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잠깐 지켜보던 美대표단장 토마스에클스는 독도함으로 가서 본국에 이메일을 보냅니다. 선저하부 1∼3m 지점에서 비접촉폭발! 토마스에클스가 함미의 선저하부를 본 후 독도함으로 가 이메일을 보낼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여분 밖에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인 4/16 함미는 백령도를 출발해 평택2함대를 향해 바지선에 실려 항해를 시작했으며 그 시각 국방부는 대국민 중간발표를 통해 ‘천안함 사고의 원인이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비접촉폭발’이라고 발표합니다.
[브레이크뉴스=문흥수 기자] < 부분발췌 >
현재 군 당국은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해 어뢰 등 외부 충격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한 군은 폭뢰보다는 어뢰에 좀더 가능성을 두고 있으며 어뢰 종류로는 함체에 명중시키는 직격 어뢰 보다는 선체 하부에서 폭발시켜 강한 충격파와 고압 가스거품으로 배에 강한 충격을 주는 버블제트 어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 : http://www.breaknews.com/129702 )
국방부의 ‘버블제트 어뢰 가능성’ 발표는 바로 전 날인 4월 15일 함미가 최초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 직후 본국에 ‘비접촉폭발(Explosive not contact)’로 이메일 보고한 美 잠수함 전문가 토마스에클스의 보고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리고 국방부는 곧 바로 저인망 쌍끌이 어선들을 동원하여 그물코 간격을 좁힌 어망으로 해저를 훑으며 천안함을 반파시킨 어뢰찾기에 돌입합니다.
이 상황이 얼마나 모순인가 하면, 국방부가 판단하기에 ‘선체에는 폭발의 흔적과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순간 당연히 검토대상이 되어야 할 1 순위는 가장 흔한 선박사고이며 실제 선박운항사고의 80% 이상 차지하는 ‘충돌’과 ‘좌초’를 생각했어야 함에도 충돌과 좌초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반토막 난 선체의 절반 함수는 아직 물 속에 있고, 함미만 이제 겨우 처음 물 밖으로 나와 크레인에 매달려있는 모습을 본 국방관계자들이 한 눈에 ‘음, 폭발의 흔적이 전혀 없군! 그러면 비접촉폭발이군! 이제 어뢰를 찾아야겠군!’결론내리고 곧장 쌍끌이 어선을 투입하는 과정이 얼마나 유치하고 비약적이며 작위적인지 말 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입니다.
‘버블제트 어뢰 비접촉폭발’이 언급된 날로부터 정확하게 한 달이 지난 2010년 5월 15일, 드디어 ‘어뢰’가 떡 하니 대평호 갑판 위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국방부가 공개한 ‘어뢰’등장 영상의 첫 장면부터 석연치 않은 모습들이 잡힙니다.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저는 이 영상과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울화가 치밀고 머리에는 열이 납니다. 국방부는 왜 이렇게 속들여다 보이는 거짓을 연출했던 것일까요?
위 영상은 ‘어뢰수거 장면’이라며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입니다. 영상 촬영을 시작하며 2G 핸드폰으로 날짜와 시간을 확인시켜 주면서도 정작 어뢰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장면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갑판 양쪽 구석엔 ‘어뢰 모터(A)’와 ‘추진체 프로펠러(B)’가 올려져 있으며 둘 다 수십m 주황색 나일론 끈에 묶여져 있고, 그물은 소위 온갖 잡동사니의 천국이라는 서해바다 뻘밭에서 끌어올린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왜 국방부가 이렇게 곧 드러날 유치한 '쇼(show)'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영상을 찍으려면 바다에서 건져올리는 것을 찍든지, 모터와 추진체에 묶여져 있는 주황색 나일론 끈은 또 무엇인지, 심지어 스테인레스 클립밴드와 철사줄까지.. 낯 뜨거운 황당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쌍끌이 두 척을 투입하여 해역을 샅샅이 훑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던 대평 11호는 2010년 5월 15일 아침, 평소와는 다르게 해군 장성과 조사요원들이 대거 탑승한 날, 바다로 나가자마자 첫 항해에 어뢰 모터와 추진체를 한꺼번에 그물로 수거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당시 이명박은 이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천운(天運)’이라며 좋아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46명이 사망한 사고에 ‘천운’이라니요..
갑판 위에 올려진 모터와 추진체는 그것이 해저에 가라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 뻘은 물론 모래 알갱이 하나 묻어있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갑판 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늘이 내린 ‘천운의 어뢰’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부터 국방부의 야심작 - ‘1번을 쓴 어뢰’가 왜 거짓인지.. 그 이유를 10가지로 압축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 백색물질의 분포
어뢰에 백색물질이 분포되어 있는데 특정한 곳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색물질이 집중적으로 붙어있는 곳 하부 금속들이 모두 알루미늄 재질이라면? 백색물질과 하부금속과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을 해야하는 것이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일방적 주장만 합니다. 백색물질에 대한 국방부의 주장은 어뢰 폭발 때 발생하는 고열(3000℃)로 인해 폭약 속 혼재된 알루미늄 성분이 산화하면서 백색 알루미늄산화물이 생성되었고 그 백색가루가 어뢰추진체에 날아와서 달라 붙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백색물질이 날아와서 달라붙은 것이라면 백색물질은 무작위(random)하게 아무곳에나 부착되어야 국방부 주장의 논리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정부위, 그것도 알루미늄금속 상부에만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면 그것은 확률적으로도 존재할 수 없는 허구의 주장인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합조단 민간단장을 맡았던 윤덕용 전 카이스트 총장이 1심 증인으로 법정에 나왔을 때 질문하였습니다. “어떻게 백색물질이 무작위로 붙지 않고 특정금속 위에만 붙을 수 있느냐”며 질문을 하자 윤 총장은 “그렇게 붙는 무언가가 있겠지요.”라며 얼버무렸습니다.
어뢰 추진체 후미 끝단을 살펴보면 구석구석 백색물질이 발견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모두 알루미늄 재질 금속에만 있고, 알루미늄 성분이 아닌 곳(스테인레스, 황동, 철)에는 백색물질이 전혀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주변의 백색가루 일부가 떨어져나와 묻어 있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2010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전 대표(당시 의원)는 어뢰추진체에서 백색가루 일부를 긁어낸 시료를 국방부로부터 건네받아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의 양판석 박사, 미국 버지니아대 이승헌 박사께 보내어 성분분석을 의뢰하였는데 그 결과 국방부의 주장(알루미늄 산화물)과는 달리 ‘알루미늄 수산화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KBS 추적60분 팀은 국내 400명의 과학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문제를 누구에게 의뢰하면 가장 권위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지 조사한 결과 ‘안동대 정기영 박사’추천이 압도적이라 정기영 박사께 동일한 시료를 보내어 분석한 결과 ‘알루미늄황산염수산화물’로 결론남으로써 국방부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음으로 판명난 바 있습니다.
안동대 정기영 박사의 분석결과는 ‘수산화물’입니다. 국방부의 주장인 ‘산화물’과의 차이는 성분분석 결과 시료속에 ‘수(水)’- 물(H2O)성분의 존재유무의 차이이며, 3천도 고열의 존재여부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국방부의 주장대로 폭발원점에 3천도의 고열이 존재했다면 고압으로 형성된 버블 내 바닷물은 모두 증발하고 고열의 가스만 존재하므로 그 상황에서 발생한 산화물(백색가루)에는 물(H2O)성분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과학자분들과 안동대 정기영 박사의 분석결과 물(H2O)성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결론적으로 <물(H2O)성분의 존재>는 <물을 증발시킬만한 고열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국방부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안동대 정기영 박사는 “입자가 와서 달라붙은 것이 아니라 자라난 조직”이라고 말합니다. ‘자라난’ 물질은 하부 금속으로부터 산화되어 생성된 물질 즉, ‘알루미늄 녹’을 의미하는 것으로 저는 판단합니다.
1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기영 박사는 “만약 백색물질의 최초 채취과정부터 관여를 했더라면 오리지네이션(Origination, 발생기원)까지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증언을 한 바 있으며 국방연구소 이근득 박사의 “알루미늄 황산염 수산화물이라고 하는 것은 저희가 예측했던 것 중의 하나”라는 말은 “폭발이 없었다”는 고백과 다르지 않습니다.
2. 페인트 아래 백색물질
국방부 말대로 백색물질이 날아와 붙었다면, 어뢰의 검정색 페인트 위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검정색 페인트 하부에 백색물질이 있고, 또한 백색물질이 넓게 퍼져 있는 곳엔 아예 검은색 페인트 자체가 없습니다. 검정색 페인트를 살짝 들춰보면 그 밑에 백색물질이 가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검정색 페인트를 살짝 들어보면 그 밑에 하얀 물질이 가득하다.[사진 : 블로그 '가을밤']
저는 지난 9월13일 평택2함대 어뢰검증에서 이 부분에 대한 검증 및 확인을 희망하였습니다만, 국방부에서 어뢰를 두꺼운 하얀 비닐로 포장해 놓고 유리케이스 안에 넣어 밀폐시킨 탓에 검은색 페인트를 칼로 긁어보거나 들추어보는 검증을 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위 그림 좌하단의 그래픽과 같이 외부에서 와서 부착(흡착)되었다면 금속에 발려진 페인트 위에 백색물질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부금속으로부터 발생된 백색가루가 존재하는 곳에는 검은 페인트가 존재하지 않거나 검은 페인트 하부에 백색물질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에 저는 이 물질을 ‘알루미늄 부식물(녹)’이라 규정하는 것입니다.
3. 네티즌, “우리집 보트가 ‘1번 어뢰’ 맞았냐?”
어느 한 네티즌이 자신의 보트 프로펠러 사진을 찍어 아고라에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집 보트가 ‘1번 어뢰’ 맞았냐?”고 반문했습니다. 네티즌의 사진을 보면 천안함 ‘1번 어뢰’ 백색물질과 똑같습니다.
▲ 다음 아고라 네티즌이 찍어 사이트에 올린 보트 프로펠러(오른쪽), 천안함 '1번 어뢰' 프로펠러(좌측 아래), 해수에서 부식된 프로펠러(좌측 상단)
바로 이것입니다. 알루미늄황화수산화물이며, 알루미늄 부식물(녹)입니다. 우리가 흔히 해안 인접 도로를 운전하다가 발견하게 되는 ‘중고 보트 판매점’뒷 뜰에 진열된 소형 보트들 알루미늄 재질의 프로펠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백색물질 - 알루미늄수산화물(녹) 바로 그것입니다.
4. 어뢰의 부식상태
어뢰 모터와 추진체 모두 세밀히 살펴보면 아무리 좋게 보아준다해도 최소한 몇 년은 어디선가 썩다가 나온 고철덩어리입니다. 아래 사진은 ‘1번 어뢰’ 모터에서 시편을 잘라 낸 부위의 사진입니다. 매우 깊숙한 곳으로부터 상당 기간 부식이 진행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어뢰 모터 부식 상태 [사진 : 블로그 '가을밤']
어뢰가 존재했다면 처음부터 녹슨 어뢰를 쏘진 않았을 테고, 겨우 50일간 바닷속에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구석구석 썩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터 코일은 구리 재질인데 녹청이 잔뜩 끼였고 꽁꽁 감아둔 코일 사이사이가 녹슨게 보이고 있습니다. 2010년 6월 방한하여 독자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였던 러시아조사단은 조사결과 “1번 어뢰의 부식상태로 볼 때 천안함과 관련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덧붙여 녹슨 어뢰 곳곳에 보이는 볼트와 너트, 그것이 저렇게 풀려있는 메카니즘에 대해 국방부는 과연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폭발이 너트를 돌려서 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5. 녹 위에 쓰여진 ‘1번’
▲ 어뢰에 매직으로 쓴 ‘1번’은 녹 위에 쓰여졌다. [사진 : 블로그 '가을밤']
6.2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하늘이 내린 어뢰에 당시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 1번’이 적혀있었다고 하여 정치적인 해석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만, 그와 상관없이 어뢰에 매직으로 쓴 ‘1번’은 분명 녹 위에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을 확대하면 매직글씨가 녹 위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만약 신품일 때부터 1번이 쓰여있었다면 녹이 매직을 뚫고 올라와야 합니다. 더구나 1번이 쓰여지기 전에 표면을 세척제(WD-40)등으로 깨끗이 닦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닦은 곳과 구석에 닦지 않은 곳의 잔유 녹물 흔적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번 역시 녹 난 부분을 피해서 쓴 것으로 보입니다.
6. ‘1번’ 매직 테스트 흔적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매우 특이한 행태 하나가 드러났습니다. 어뢰 반대쪽 면 구석에 ‘매직을 사전 테스트’한 흔적이 발견된 것입니다.
▲ 매직으로 콕콕 찍어보고 몇 군데 테스트한 자국을 찾았다. [사진 : 블로그 '가을밤']
상황을 유추해보건데, ‘1번을 쓰라는 명령을 받은 당사자’는 무척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중고 어뢰를 아무데서나 뚝딱 만들어 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만약 상부에서 만족할만한 ‘1번’이 안쓰여지면 어쩌나 심리적인 부담이 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매직잉크가 제대로 나오는지, 어뢰 표면에 쓰면 어떻게 변하는지 몹시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테스트 흔적이 고스란이 남았을 뿐만아니라 반듯한 표면에 썼을 때, 흠이 패인 곳에 썼을 때 어떻게 다른지 테스트도 해보고, 물이 묻으면 어떻게 되는지 매직을 쓰자마자 테스트도 해 보았습니다. 실전에서 실수하지 않고 잘 쓰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7. 해양생물체 - 참가리비
어뢰 추진체 후부 구멍 속에서 참가리비가 발견되었습니다. 어뢰 추진체 뒷부분 동그란 구멍 안에 참가리비가 있고, 그 위에 백색물질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설명 되려면, 어뢰 폭발과 동시에 하얀 가루가 생성되는 0.00몇 초 사이에 참가리비가 헤엄쳐 구멍 속으로 재빨리 들어가 있다가 날아오는 백색물질을 뒤집어 써야만 논리적으로 성립됩니다.
그리고 “참가리비는 동해안(알래스카, 홋가이도, 하와이 등)과 같은 맑은 물에서만 살기 때문에 이것이 탁한 서해바다에 빠진 어뢰 속에 있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참가리비 양식전문가의 지적도 있었습니다.
▲ 어뢰 추진체 뒷부분 동그란 구멍 안에 가리비가 있다. [사진 : 블로그 '가을밤']
이처럼 참가리비 의혹이 제기되자 국방부 수사관을 전쟁기념관으로 급히 보내 유리상자 안에 비치돼 있던 어뢰에서 가리비를 후벼파 없애버렸고, 그 시간 국방부 조사본부에서는 어디서 구했는지 2.5×2.5cm 가리비 껍데기를 만들어 그것이 서해안에도 자라는 ‘비단가리비’라고 언론에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이즈’에 대한 논란에 휩싸입니다. 조개가 나온 어뢰 추진체 뒤 구멍 크기는 지름이 불과 1.8~2cm 밖에 되지 않는데 어떻게 2.5×2.5cm 조개껍데기가 들어가 앉아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였습니다.
웃지못할 이 해프닝을 분석한 결과, 국방부에서 구멍을 착각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어뢰 뒤쪽 뿐만아니라 앞쪽에도 마치 구멍인 것처럼 보이는 움푹 패인 곳이 4개가 있는데 그곳 지름은 대략 5cm정도 됩니다. 그렇다 보니 5cm 구멍의 절반으로 잡아 2.5×2.5cm크기의 조개를 만들어서 그것이 구멍 속 조개껍데기라며 언론에 공개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참가리비가 발견된 구멍의 지름이 불과 1.8~2cm 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그것이 사실임이 확인되자 국방부는 무려 열흘동안 침묵으로 일관하였으며 급기야 1번 어뢰를 통째로 국방부조사본부 지하 창고로 이동시키고 전쟁기념관 현장에는 어뢰 유사모조품으로 대체해 버렸습니다.
2010년 11월 KBS <추적60분>팀이 ‘의혹의 천안함'편에 참가리비 부분도 포함시켜 방영을 준비하자 ‘참가리비’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방영을 못하도록 KBS측을 압박하여 결국 그 부분은 삭제한 후 방송이 되었습니다.
8. 또 다른 해양생물체(붉은멍게 . 거머리형체) & 해양식물체(면사체)
참가리비에 이어 이번에는 또 다른 해양생물체들에 더해 급기야 해양식물체까지 등장합니다. 우선 ‘붉은 멍게 유생’부터 보시겠습니다.
▲ ‘1번 어뢰’ 프로펠러에서 동해안에만 자라는 붉은멍게 유생이 발견됐다. [사진:가을밤]
‘1번 어뢰’ 프로펠러에서 동해안에만 자라는 붉은멍게 유생이 발견되었습니다. 프로펠러 블레이드 날 모서리에 빨간 점들이 콕콕콕 찍혀있는데, 네티즌들이 정밀 마이크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분석한 결과 촉수가 있는 해양생물체 - ‘붉은멍게 유생’(학명 : Red Sea Squirt)이었습니다.
국방부는 붉은 멍게 유생을 모두 없애버린 후, “수거해 DNA 분석을 하였으나 생명체가 아니었다”고 발표한 후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뢰에서 발견된 또 다른 해양생물체는 ‘거머리 형태의 해양생물체’입니다. 이것은 마치 ‘납자루’ 혹은 ‘거머리’와 유사한 형체를 갖고 있으며 이 해양생물체가 발견된 곳은 ‘어뢰 모터’의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현재는 정밀 마이크로 사진기로 촬영한 영상에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양생물체 뿐만아니라 해양식물체(우측, 면사체)도 발견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촉수가 달린 해양생물체와 섬유질의 해양식물체는 어뢰폭발과 3천도 고열과 화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강력한 증거인 것입니다.
9. 어뢰 샤프트를 감고 있는 ‘철사뭉치’의 정체
지난 여름 (2018. 7. 19) 항소심 공판에서 국방부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1번 어뢰’의 최근 모습이 담긴 CD가 공개된 바 있습니다.
당시 9월 13일로 예정된 재판부, 검찰, 변호인단과 함께 평택2함대에서 천안함 선체와 ‘1번 어뢰’에 대한 실물 검증이 계획되어 있어 사전에 ‘1번 어뢰’의 현재 상태가 어떠한지 ‘사진’이라도 제출할 것을 변호인단이 국방부에 요청한 결과로 제출받았던 CD였습니다.
그런데 수십 장의 영상 가운데 특이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평택2함대의 합조단 요원이 ‘1번 어뢰’ 샤프트에 칭칭 감겨있던 철사줄을 펜치로 끊는 장면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대평 11호 갑판 구석에 놓여져 있던 어뢰 모터와 추진체에서 웬 ‘철사뭉치’와 ‘클립밴드’가 나왔는지에 대한 논란과 공방은 작년 2017년 5월 18일 항소심 제5차 공판에서 이미 뜨거운 쟁점으로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만, 어떤 논란이었는지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번 어뢰 추진체’를 덮어 놓은 그물을 젖히자 해저 뻘 속에 50일간 처박혀 있었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깔끔한 상태의 어뢰 추진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계측요원이 줄자를 들고 어뢰추진체의 치수를 재기 시작합니다.
계측요원 2명이 줄자로 어뢰추진체를 측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뢰추진체 샤프트에 웬 ‘철사뭉치’가 칭칭감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철사뭉치’가 도대체 어떻게 ‘1번 어뢰’ 샤프트에 칭칭 감겨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그냥 걸쳐진 정도였다면 해저에서 끌어올리다 보니 해저에 있던 철사뭉치가 걸려 올라왔다는 핑계라도 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넓디넓은 서해바다에 부식되지 않을 만큼 최근에 버려진 철사뭉치가 어뢰에 걸려 올라올 확률은 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단순히 ‘걸쳐진’ 상태가 아니라 ‘추진체 샤프트에 칭칭 감긴’철사뭉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합조단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여주는 사진이 금년(2018) 항소심 7월 19일 공판에서 공개된 바 있습니다. 합조단이 평택에 도착한 어뢰샤프트에 감긴 저 철사뭉치를 ‘펜치로 절단’하는 장면의 사진이 CD에 담겨 제출되었던 것입니다.
그 철사뭉치가 대평11호 갑판위에서 제거되지 않고 평택2함대에 까지 가서야 펜치로 절단해야만 했다는 것은 대평11호 갑판에서는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고, 2함대에서 펜치를 사용해 철사뭉치를 끊어냈다는 것은 간단하게 손으로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과연 북한이 쏜 최신 버블제트 어뢰가 천안함 하부에서 폭발하였고, 해저에 50일 동안 있다가 막 건져낸 어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렇듯 황당한 ‘철사뭉치’의 존재를 통해 제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입니다.
- 천안함 비접촉폭발용 어뢰를 등장시키기로 결심하신 분.
- 국방부 창고에 썩은 고물어뢰 하나가 있다고 보고한 분.
- 그 어뢰를 즉시 백령도 현장으로 갖다주라고 지시한 분.
- 철사 등과 얽혀져있는 어뢰를 포장해 백령도로 보낸 분.
- 백령도에 도착한 어뢰를 대평11호 갑판위로 이송한 분.
- 주황색 나일론 끈에 묶어 바닷속으로 담궜다가 꺼낸 분.
- 갑판위에 올려놓고 치수측정을 하는 척 모션을 취한 분
- 11호에서 평택2함대 합조단으로 어뢰를 이송한 분.
이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당사자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에만 충실하느라 정작 샤프트에 감겨있던 철사뭉치의 존재 이유를 몰랐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어뢰추진체가 얼마나 극비사항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던 터라 조심스러웠던 반면, 철사뭉치를 제거하라는 명령은 없었으니 제거하지 않은 채 계속 이동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이 어뢰추진체를 받아 든 평택2함대 합조단 요원들의 업무수행 과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샤프트에 철사뭉치가 칭칭 감겨왔으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 논의를 하였을 것이고 그것을 제거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손으로 제거하기가 힘들자 펜치로 끊어내면서 그것도 <수행한 과업>이라고 사진을 찍어 남겨놓았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그러던 차 지난 9월 13일 어뢰검증을 앞두고 <어뢰의 현재 상태를 사진으로 보내달라>는 변호인단의 요구에 부응키 위해 국방부가 보낸 사진들 속에 펜치로 철사끊는 장면이 포함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거짓은 거짓을 낳고, 여기저기 증거와 흔적들을 남겨놓고 있으니 <모든 범죄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법의학자 마르케 베네케의 명언을 절절히 실감하게 됩니다.
10. 샤프트에 감겨있었던 ‘클립밴드’의 정체
이번에는 ‘스테인레스 클립밴드’입니다. 클립밴드(Clip Band)는 설비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흔하고 친숙한 부품입니다.
무언가 묶거나 결속할 때 플라스틱보다 더 강력하고 오랜기간 결속해야 할 경우 사용하는 밴드로 나사식 타이트(Tight)가 붙어 있어서 강력한 결속이 가능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주로 도시가스와 가스렌지 를 이어주는 호스를 결속하는 부분에 많이 사용됩니다.
이 재질은 ‘스테인레스(stainless)’라 부식에 강한 것이 특징이지만, 엄밀히 말해 스테인레스 재질도 수분에 오래 노출되면 어느 정도 녹이 발생합니다. 부식에 강한 스테인레스 레벨에도 등급이 있어서 ‘SUS304’, ‘SUS316’과 같이 등급을 매겨 부식에 강한 정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 클립밴드가 왜? ‘1번 어뢰’에 철사뭉치와 함께 걸쳐져 있었던 것일까요? 어뢰 샤프트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는 클립밴드 결속 흔적은 클립밴드가 샤프트에 상당기간 결속되어 있었던 것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측사진 붉은 원) 이것은 무거운 추진체를 이동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랫동안 걸어 두었을 것으로 저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계측요원들이 펜치는 안가져갔는지 현장에서 철사뭉치는 제거하지 못했지만, 드라이버는 가져갔던 듯합니다. 클립밴드는 현장에서 나사를 풀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습니다.
결언(結言)
우리 국방부는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어뢰 구멍 속에서 발견된 ‘참가리비’, 어뢰 날개 끝에서 발견된 무수히 많은 ‘붉은 멍게 유생’, 모터 곳곳에서 발견된 ‘거머리형 해양생물체’그리고 백색물질 곳곳에 박혀 있는 해양식물체 등...
그것도 모자라 ‘철사뭉치’와 ‘클립밴드’까지 등장하며 ‘1번 어뢰’의 불편했던 과거와 이력을 스스로 말해주고 있으니 국방부, 그리고 이 황당한 조작과 왜곡에 적극 가담한 사람들의 양심적 고백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히 진실을 땅 속에 묻어 둘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그들의 환상과 기대가 깨지는 날이 바로 ‘진실이 승리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대평 11호 갑판 위의 ‘모터’와 ‘어뢰추진체’에 묶여 있는 십 수 미터 길이의 주홍색 나일론 줄의 용도를 분석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어렵게 준비한 모터와 어뢰추진체를 서해 바다에 던져 넣으면, 심청이 빠졌다는 바로 그 인당수 뻘 속으로 처박혀 쌍끌이 그물로 건져올리지 못하게 될 것이 우려되므로 아예 긴 주홍색 나일론 줄에 묶어 놓아 만약에 대비하는 그들의 ‘어설픈 꼼꼼함’이 한심해 보입니다.
정작 어뢰모터와 추진체를 건져올리는 순간의 장면이 없었던 이유 또한 그러한 사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10월 초, <좌초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프로펠러 손상> - <충돌> - <잠수함> - <폭발> - <비접촉폭발> - <어뢰>에 이르기까지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하여 제가 판단하고 분석한 내용을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작성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긴 글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minplusnews@gmail.com

트럼프 보다 더 잘한 시진핑의 군 리더십

[윤석준 차밀] 트럼프 보다 더 잘한 시진핑의 군 리더십
시징핑은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
윤석준  | 등록:2019-01-15 17:33:38 | 최종:2019-01-15 17:39:09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8년 한해 동안 세계 2대 군사강대국 미국과 중국 대통령과 주석(主席)의 군 통수권자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극한 대비로 나타났으며, 놀라옵게도 전문가들은 군 리더십 발휘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 보다 시진핑 주석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여기에서 후한 점수는 정치적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합법적 폭력수단인 군사력을 운용함에 있어 군통수권자로서의 사상과 덕목 등의 리더십(leadership)에 대한 평가이다.
특히 지난 12월 28일 자 『뉴욕타임스(NYT)』지는 미 공화당에게 “더 이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국정을 맡길 수 없다”면서, “지난 12월 20일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사임을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군에 대한 리더십 발휘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여 트럼프 해임(fire) 조치를 제안하였다. 이는 지난 11월 19일 자 『뉴욕타임지』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에 대한 리더십 문제를 제기한 이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논조(論調)였다.
반면, 지난 8월 24일자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지는 시진핑 주석의 8월에 실시된 중국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사례를 들어 시 주석의 군통수권 행사가 과거와 같은 정치적 성향이 아닌, 미래전을 준비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개편하기 위한 리더십으로 발휘되고 있다면서 매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또한 지난 12월 16일자 『China Daily』는 “미국 등 서방 주요 국가들이 중국의 군사력 운용에 대해 편견(偏見)을 갖고 있다”면서 “중국의 군사력 사용은 미국이 보이는 유일한 압박과 강제적 수단이 아닌, 항상 외교적 협상 이후 마지막 수단으로 간주되며, 이마저 일대일로에 의한 운명공동체를 지향하는 수준과 범위 내에서 적용될 것이다”고 보도하였다.
사실 미국이 세계 구도와 질서 개편에 있어 개입을 주저하여 고립을 지향함으로써 초래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평화와 번영을 견지하는 국제기구 지원, 보편적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확산과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대를 주도하는 미국의 이념과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 인민 민주주의 독재와 기획경제에 의한 공산체제를 강요하는 중국 이념을 책임지는 양국 지도자들 간 리더십 비교가 있을 수 없으며, 특히 군사력 운용 개념이 전혀 다른 양국 지도자의 군통수권자 리더십을 비교하는 것은 더 더욱 있을 수 없다.
하지만 2018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세계 구도와 질서 개편을 주도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후발주자인 중국 시진핑 주석 간 군통수권 리더십 발휘에 있어서는 극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을 경험하였으며, 현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시진핑 주석에 대한 기대가 함께 교차하고 있다.
이는 현 국제구도를 주도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임기 없는 주석직을 보장받은 중국 시진핑 주석 간 군통수권자로서의 사상과 덕목에 있어 다음과 같이 너무 크고 차이가 있는 대조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첫째, 역사적 인식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자 대통령으로서 세계 구도와 질서 개편을 주도해야 할 미국의 역사적 인식을 저버렸다. 예를 들면 미국의 역사적이며 인종적 동맹인 나토(NATO) 회원국에 대해 국방비를 올리지 않으면, 미국이 NATO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한 사례였다.
ⓒ 셔터스톡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가 2020년까지 GDP의 2% 수준으로 국방비를 올리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토를 믿지 못하겠다면서 ‘욱박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에 대한 편견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을 제한시키는 역효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미국 마저 불신하는 유럽연합에 영국이 다시 들어가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는 영국인들의 반문이 팽배한 현상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과거 역사적으로 미국의 충실한 동맹으로 행동하여 나토의 비난받던 영국마저 미국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군사굴기(軍事崛起)에 위협을 느끼는 주변 약소국에 대해 실크로드(Silk Road) 개념에 의한 역사적 연계성과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지리적 선의(善意)를 제시하여, 이들 국가의 중국 위협론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중국의 이익을 자연스럽게 적용시키고 있다. 더욱이 일대일로의 지향점을 “운명공동체”로 제시하여, 2017년 1월 20일 취임 다음날 바로 TPP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위협을 느낀 아세안(ASEAN)에게 위안을 주었다. 현재 아세안 학자와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약소국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 다르게 되바뀌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군통수권자로서의 주변국과 동맹국을 보는 역사적 접근과 인식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제2호 항모의 시험 항해장면. ⓒ인민망
둘째, 자질(資質)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미 국방이슈와 안보정책에 대한 방향과 지향점을 10대 소년과 같이 트위트(Tweet)을 이용해 공개함으로써 미 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의 위상을 저하시켰으며, 모든 국방정책과 군사작전을 일관성 없는 “사례(case)” 위주로 다루었다. 이는 그동안 정치가 아닌, 냉혹한 비즈니스에 익숙한 트럼프 대통령의 군통수권자로서의 자질이 의문시되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더욱이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자질론을 보호해 주었던 “워싱턴 어른그룹(Adult in the Room)”이었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수석보좌관 H. R. 맥마스터스 육군중장과 백악관 비서실장 존 켈리 전(前) 해병대 대장의 퇴장에 이어 마지막으로 제임스 매티스 전(前) 국방장관이 지난 12월 20일에 사임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군통수권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당중앙군사위원회(CMC)에서의 과거 경험을 토대로 군을 잘 이해하는 측근을 활용하여 부패한 군부내 파벌을 반부패운동으로 쇄신하고, 당군사위원회 조직을 군부 파벌이 아닌 시진핑 자신의 군통수권위로 강화하며 군정과 군령을 모두 장악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였으며, 이를 통해 “중국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을 공고화시켰다. 과거와 달리 당중앙군사위원회 내 민간인은 시진핑 주석이 유일하나, 시 주석은 군복 차림으로 당중앙군사위원회 연합작전지휘소를 방문하고, 단독으로 군사열병식을 사열하는 등의 군 장악 능력을 보이며 문민통제 원칙을 시현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선거에서 갑자기 군통수권자로 임명된 트럼프와 젊어서부터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군의 문제를 잘 이해한 시진핑 주석과는 군통수권자로서의 자질부터가 달랐다고 지적한다. 민주적 선거에 의해 군통수권자를 ‘선발’하는 미국과 당 원로의 ‘지명’에 의해 정치 지도자 수업 과정을 거쳐 군통수권자가 되는 중국 간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으나, 실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군통수권자로서의 자질에서는 너무 많은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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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군사력 운용에 대한 시각이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5월부터 증폭된 멕시코 캐러밴 난민 행렬의 목적이 멕시코 난민 신청이 아닌, 미국으로의 난민 신청으로 나타나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정의하면서 육군 5,000명을 멕시코 국경지대에 배치한 사례였다. 이는 당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으로부터의 핵탄도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여 미 본토 방어 임무에 집중하던 북부사령부가 갑자기 비무장 난민행렬에 대응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상황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이에 당황한 제임스 매티스 전(前) 국방장관이 현지 부대를 방문하여 임무 수행에 의아해 하는 장병들을 설득해야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 쇼였으며, 전문가들은 이를 대통령이 미군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지 않는 묵시적 전통을 무시한 처사로 평가한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시내에서의 군사 퍼레이드 실시와 전략군 임무를 수행하는 미 공군에서 분류하여 제6군 우주군(Space Force)을 창설하라는 지시를 국방부에 일방적으로 시달하였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1989년 뎬안먼(天安門) 사건과 티벳과 신장자치구 반정부 시위 진압 등 중국인민해방군이 중국 인민의 반정부 시위 진압에 동원된 중국군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집중하였다. 이를 위해 부패한 소수 군부 지도부에 의해 행사되던 군령을 장악하여 중국군 운용에 대한 과거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무장경찰(PAP)에 이어 중국 해양경찰(CCG)을 당중앙군사위원회에 배속시켜 중국군의 국내 정치 개입 가능성을 낮추고, 남중국해에서의 주변국 및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제한시켰다. 총 12차례에 걸친 미 해군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작전(FONOP)과 영국, 프랑스, 호주와 일본 등의 FONOP 실시에 대해 중국해군과 해경이 비교적 유연한 대응을 보인 사례도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일본 해상자위대이 FONO에 대해서도 감정이 아닌, 유연한 태도를 보여 당시 군사전문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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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의사결정 성향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운용을 독단적으로 결정하였으나, 시진핑 주석은 비교적 신중한 결정과정을 거치는 성숙된 태도를 보였다. 지난 12월 20일 시리아 미군의 일방적 철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결정이었으며, 언론 보도에 의하면 심지어 미 합참의장 조지프 던포드 해병대 대장과도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옵게도 시리아 쿠르드민주군(SDF)은 지난 십년 간 미국의 이슬람국가 테러 위협을 지원한 역할을 무시하고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직면한 쿠르드민주군을 불과 2,000 여명에 이르는 시리아 미군 철수를 결정한 것은 국방비 절약와 작전효율성이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결정 과정에 참가해야 할 각료와 실무진들을 배제하거나, 고립시켜 혼선을 유발하고 주무 장관과 갈등을 불려 일으켰다. 이는 전 세계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십 국가들이 향후 미군의 세계 경찰군 역할 수행에 의구심을 보내며, 누구와 협의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반면, 시 주석은 자신이 주임을 맡은 『국방개혁영도소조(원명: 中國國防軍事改革領導小組)』 정책적 과정을 통해 2016년 11월 26일에 『국방개혁 의견(이후 국방개혁)(원명: 關于國防和軍隊改革深化的意見)』을 추진하여 무리없이 중국군을 한 단계 끌어 올렸으며, 2017년에는 2049년까지 세계 일류 군대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세계 어느 주요 국가도 2050년대까지 국방비전을 제시하는 국가는 없다,
현재 시진핑 주석은 어느 누구도 못한 중국군의 기본 골격을 바꾸고 전면적 체형을 변화시키며, 그동안의 내부지향적 중국군을 외부지향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 주둔군 성향의 군구(軍區)체계를 세계 경찰군 역할을 담당할 기동군 위주의 전구(戰區)사령부 체계로 재편하고 집단군을 재배치한 것이며, 이는 중국 역사에 있어 어느 누구도 못한 군통수권자의 리더십 발휘였으며 이는 모두 제도적 정책결정 과정을 거쳤다. 군내 반발이라고 해야 일부 퇴역 군인들의 전역후 복지에 대한 시위 수준이었으며, 시 주석은 이들에 대한 배려로 무마시키고 있다. 현재 중국 내 공항에 예비역 군인 전용 창구가 설치되었으며, 객석 배정 특혜가 부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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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동맹(alliance)에 대한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현안 해결을 거의 모두 군사적 문제로 보아 해외 미군의 역할을 세계 경찰군으로서의 선의적 기여 보다 미 국방비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평가해 동맹국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반면, 시진핑 주석은 주변국과 관련국과의 역사적 연계성을 강조한 일대일로와 같은 비전을 제시하면서 중국의 군사굴기를 우려하는 주변국들에 대해 경제적 상호이익을 위한 군사협력을 강조하여 차츰 성과를 보고 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쌓아온 동맹과 파트너십 관계를 미국 우선주의 원칙을 고집하여 점차 무너뜨리고 있다면, 시진핑 주석은 이를 기회로 삼아 일대일로와 실크로드 개념을 중심으로 향후 2049년에 나타날 중국군의 위협론을 불식시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틈새를 벌리며,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유럽에 이어 중남미 국가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 12월 20일자 『뉴욕타임스(NYT)』지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캐러밴 난민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에 떠넘기는 식의 태도를 취하자, 지난 12월 2일에 취임한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China 카드’로 해석되는 『중남미판 마샬 계획』을 발표한 사례에서 식별되었다. 이는 지난 11월 중순 G20 회의차 브라질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이 페루와 파나마를 방문해 일대일로 사업을 제안한 효과로서 트럼프 대통령이 각론(各論)에 있어서는 강(强)하나, 포괄적 세계전략에 있어서는 중국 시진핑 주석에 밀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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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한해 동안 미국 우선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동맹국과 파트너십 국가들을 불편한 상황에 이르게 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주둔에 편의를 보아준 동맹국 한국 정부의 기여를 단순히 방위비 분담금 수준으로만 보아 2019년부터 시행할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의 2배로 요구하면서, 지속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론을 제기해 결국 해(年)을 넘긴 한미 방위비부담금 협상에서 찾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남북군사합의서 체결로 한미연합방위체제가 흔들리는 상황 하에 이제는 주한미군 역할론에 대한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재래식 위협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동맹국 간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12월 20일 북한 조난어선에 대한 인도주의적 수색 및 구조(SAR) 작전 과정에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개입하여 추적레이더 작동을 두고 적아를 가리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그동안 인공섬 조성에 대한 미국과 지역내 주요 국가의 반발과 중국의 남중국 무력화를 염두에 둔 미 해군의 FONOP 실시 등의 불리한 국면을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아세안 간 행동규칙(COC) 프레임워크 합의, 중국-아세안 해상 연합훈련 실시, 중국-필리핀 간 남중국해 공동개발 합의서 추진 그리고 말레이시아 신임 내각의 중국-말레이시아 일대일로 사업 취소 및 재조정 선언에 대한 매우 유연한 대응 등으로 비교적 안정화시키고 있다.
공식적으로 동맹관계를 지향하지 않는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 개념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지향에 따라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국가들에게 적용하여 동맹에 가까운 군사적 관계로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일부 국가들의 중국산 장비와 무기 구매 결정에서 식별되고 있다. 예를 들면 미얀마, 필리핀,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남수단, 베네주엘라, 그리고 일부 동유럽 국가들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최강 군사력인 미군을 토이솔져(Tory Soldier)로 만들고 전 세계 국가로부터 존경을 받던 매티스 전(前) 국방장관을 사임시키는가 하면, 2019년 1월 1일부로 친(親)트럼프 성향인 보잉사 영업업무 출신 패트릭 새나한 부장관을 국방장관 대행으로 임명하는 좌충우돌의 행각을 보였다면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시 주석은 거대하나, 비전문성을 갖고 있었던 중국군을 홍군(紅군)에서 전사(戰士)로 만드는 성공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면 후한 평가를 한다. 특히 취임 이후 해외 파병부대를 한번도 방문하지 않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 20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사임 이후 전격적으로 이라크 파병 미군부대를 방문한 것은 극히 국내 정치적 함의를 나타난 사례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을 또 다시 토이솔져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비난하고 있다.
중국 시 주석이 제시한 중국꿈과 강군꿈을 위한 중국군 국방개혁과 영도 지도이념은 분명히 위협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 주석의 위협에 대응할 미국 군통수권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을 미국 우선주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실수를 연발하여 미 국내만이 아닌, 동맹국과 파트너십 국가들에게 불안감을 더해 주는 이상한 구도가 되었다. 오히려 중국의 군사굴기에 대해 미국과의 안보동맹과 경제적 파트너십으로 대응하려던 국가들이 그동안의 중국 군사굴기에 대한 우려를 뒤로 하고 일대일로와 실크로드와 같은 역사적 연계성을 들어 중국에게 선의(善意)를 베풀어 줄 것으로 요청하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이래저래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 보다 군통수권자 리더십 발휘에 있어서 한참 한수 밑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가 큰 착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걱정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아직도 2년이나 남았으며, 이는 계속 시 주석에게 군통수권 리더십을 발휘하는 전략적 호기(好機)로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심난하다.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차이나랩
윤석준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이자, 예비역 해군대령이다. 2011년 12월31일 제대 이전까지 수상함 전투장교로 30년 이상 한국해군에 복무했으며, 252 편대장, 해본 정책분석과장, 원산함장, 해군본부 정책처장, 해본 교리발전처장 및 해군대학 해양전략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711&table=byple_news 

노회찬 속의 신영복

[노회찬 OOO를 만나다] '미완의 기록'으로 본 노회찬과 신영복 (2)


노회찬은 항상 '영감'을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등졌지만, 세상은 그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은 노회찬재단과 함께 '노회찬 OOO를 만나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은 정치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점에서,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고 봅니다. 노회찬이 만난 사람, 노회찬의 생각, 노회찬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노회찬재단과 함께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바로보기 : 노회찬, '마음의 스승' 신영복을 만나다 (1))

노회찬 <난중일기> 속의 신영복, 그리고 글 선물 
노회찬의 <난중일기>는 17대 총선 기간 중 2004년 1월 5일부터 3월 31일까지 기록한 일기다. 노회찬은 많은 사람들을 가슴 졸이게 하며 총선 다음 날인 4월 16일 새벽 2시 30분경 299명 가운데 꼴찌로 당선이 확정된다. 17대 국회의원이 된 뒤 노회찬의 2004년 9월과 10월 <난중일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신영복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데 대한 글이 두 편 있다. 정말로 많이 아쉬웠나 보다. 찐한 아쉬움이 글에 묻어난다.

2004년 9월 12일(일) 종일 비 내리다  
아침부터 마음이 허전하다. 
토요일의 여러 일정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강원도 인제 미산리에 있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어제 밤은 그곳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교장으로 있는 <더불어 숲> 학교에서 오랜만에 신 선생님이 직접 강의하는 시간이었다.  
신 선생님의 말과 글에서 깨우침을 얻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잠시 만나 얘기를 나눈 경우에도 여지없이 그러했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이다. 
작년 가을 <더불어 숲>에서 신 선생님의 강의가 있을 때도 수강신청을 하고 회비를 송금했다.  
그러나 바로 그 날 이라크 파병발표가 있었고 청와대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이 잡혔다. 
이근성 선배에게 미안하게 됐다고 연락을 하자 이 선배는 다음 강의라도 오라고 했는데 어느덧 1년이 지났다.  

2004년 10월 2일 (토) 맑음 한파주의보  
19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외침 아시아2004 록 콘서트>에 끝내 가지 못했다. 
아시아지역 시민활동가 교육훈련비용 마련을 위한 음악회이다. 
신영복, 김동춘, 한홍구, 김창남 교수 등이 윤도현, 강산에, 김C 등 가수와 함께 록을 부르는 기괴한 장면을 목격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국감 탓이다. 

2005년 2월 21일 오전 노회찬 의원실 관계자가 국회 기자회견장에 들러 '신세대 맞춤형 의정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CD' 형태의 영상 다큐멘터리 의정보고서를 기자들에게 돌린다. 이 의정보고서는 신영복이 노회찬에게 보내준 "꽃이되어바람이되어”라는 타이틀로 제작됐다. 의정보고서는 △2004국정감사, 피감기관 의정활동 평가 1위 △굴욕적 용산미군기지 협상 문제제기 △국가보안법 폐지 △민생 인권을 위한 입법활동 △당과 함께 대중과 함께 등 5부로 구성돼 있으며 35분 분량의 동영상이다.  

2009년 9월 6일 노회찬(진보신당 대표)은 이 글씨를 액자에 담아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악법 원천무효 시민바자회' 경매물품으로 내놓는다. 노회찬은 경매 시작 전 발언에서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가져오려 하였으나 아내에 반대에 부딪쳐 두 번째로 비싼 물건을 가져 왔다고 하며 제일 비싼 것은 바로 저라고 하여 바자회를 찾은 시민들에게 웃음까지 선물한다. 이어 노회찬은 이 물품이 희망가 이상으로 팔리게 되면 을지면옥의 냉면과 빈대떡을 대접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 참고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노회찬은 평양냉면 광이다. 수도권의 소문난 평양냉면집은 거의 다 가봤을 정도이고,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옥류관 냉면이 너무 맛있어 여섯 그릇 먹고 특별방문록에 서명했다는 일화도 남겼다.)
바자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최상재(전국언론노조 위원장)는 이렇게 인사한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 속에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언론자유를 다시 생각하고 지금 기울어져가는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정말 모두가 주인이었고 모두가 참여자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바자회를 통해 6천만원이 넘는 소중한 기금이 마련됐습니다. 이 기금은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소중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신영복은 신세진 사람에게 선물하라며 노회찬에게 글을 많이 써 주었다. 받은 글들 중에 노회찬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인 2005년 2월 15일 책과 함께 건네준 '함께맞는비'다. 신영복의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에 수록된 것으로, 서화집에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노회찬은 "국회의원으로 갖고 있는 많은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 데서 끝나지 말고 동고동락하는 자세로 현장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의원이 되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신영복의 '함께맞는비'는 노회찬이 일하는 공간에서 늘 그와 함께 한다.
▲ 왼쪽부터 17대 의원회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의 인터뷰 (2007.4.20.), 19대 노회찬 국회의원 지역사무실(노원구 상계동) 개소식 (2012.8.21.)

2006년 2월 14일 한 아이가 태어난다. 이름은 박지인(朴芝人). 오랫동안 노회찬과 같이 활동해 오면서 법률자문 역할을 묵묵히 해온 박갑주-김수정 변호사 부부의 아이로, 노회찬이 이름을 지었다. "섬진강 가로질러 송화강 너머까지 산과 들에 절로 나서 홀로자라는 들풀 지초(芝草)처럼 자유로이 살거라 / 초여름밤 어둠속에서 조용히 흰꽃 피우는 야생화 지초(芝草)처럼 한줄기 세상의 빛이 되거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김수정, 「[왜냐면]끝나지 않은 노회찬의 꿈」, 한겨레, 2018.12.6.). 2007년 노회찬은 아이의 돌 기념으로 부탁한,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芝蘭之香>에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선물한다. 


정년퇴임 '고별 수업'과 석과불식(碩果不食):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

2006년 6월 8일. 65세 정년을 맞아 퇴임을 앞둔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가 성공회대에서 있었다. 1989년 3월 성공회대에서 첫 강의를 시작하며 장기수에서 대학교수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 신영복은 이 자리를 끝으로 17년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한다. (정년퇴임 이후 2015년까지 신영복은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석좌교수를 지냈다.)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운을 뗀 이날 강의의 주제는 <주역>의 64괘 가운데 박괘(剝卦)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였다. '박(剝)'은 '떨어지다(落)' '다하다(盡)' '소멸하다(消)'라는 뜻으로, 박괘는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낸다. 신영복은 "사회변화가 쉽지는 않다고 본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로 '길을 잃었을 때는 근본으로 돌아가라'고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 그리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사람은 일생동안 참 멀리도 여행들을 떠나는데, 가장 먼 여행은 어디인가?" 그의 강의가 끝나자, 큰 박수 물결이 이어졌다. 강단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의 눈은 붉게 상기됐고 이슬이 맺혔다.  

노회찬은 신영복의 정년퇴임과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기 위해 고별강연에 참석한다. "신 교수님처럼 겉과 속, 말과 행동, 이론과 사상이 일치하는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평소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은 뒤 깊은 감명을 받았고, 92년 직접 신 교수님을 찾아간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고 있다"며 참석 이유를 밝힌다.

2006년 8월 25일 신영복 교수 정년퇴임식이 '여럿이 함께'라는 이름의 콘서트와 토크쇼로 진행되었다.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문집 <신영복 함께 읽기>(돌베개, 2006.8.)도 이에 맞춰 출간된다. <신영복 함께 읽기>는 '신출귀모'(신영복 선생님의 출판을 귀하게 생각하는 모임)가 기획하고 60여명의 '여럿이 함께'가 만든 신영복의 학문읽기(1부)와 추억담(2부)을 모은 책이다.  

"신영복 선생을 거울로 삼고 닮아가려는 사람들이 만든 문집"에 노회찬은 <함께 걷는 서오릉 길>이라는 글을 싣는다. 서오릉은 1966년 어느 봄날 스물여섯 살의 청년 신영복이 오른 소풍길이고, 여기서 그는 우연히 여섯 소년을 만난다. 이때의 순수하고도 소박했던 만남과 우정을 다룬 것이 <청구회추억>이며 노회찬은 이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맺는다. "신영복 선생과 함께 걷는다는 것,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 같은 곳을 디디고 서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축복이고 기쁨이다." 

▲ 정년퇴임식에서 신영복, 노회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외에 가장 좋아하는 책이자, '신영복 문학의 백미'로 노회찬은 <청구회추억>을 꼽는다. 2008년 8월 28일 <노회찬의 난중일기>는 '청구회 추억'에 얽힌 개인적 추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8월 28일 (금) 맑음  
<청구회 추억>은 이른바 <신영복 문학>의 백미이다. (…) <청구회 추억>은 사형선고를 받은 신영복 선생이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유품을 미리 정리하듯 남긴 글이다. <청구회>란 1966년 서오릉 소풍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섯 명의 꼬마들과 인연을 맺으며 만든 모임 이름이며 이들과의 2년에 걸친 만남의 기록이 <청구회 추억>이다. 
1992년 출소 이후 진보정당건설운동에 매진하던 시절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함께 늘 <청구회 추억>을 권하곤 했다. 활동가라면 특히 조직사업을 하는 활동가라면 마땅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강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1991년 월간중앙에 게재된 글의 복사본밖에 없어 마치 유인물 건네듯 이 복사본을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구미의 조근래 동지는 이 복사본 <청구회 추억>을 읽고 신영복 선생을 주례로 모시고 싶다고 해서 신 선생을 모시고 구미까지 내려간 일도 있었다. 얼마 후 조근래 동지는 <청구회 추억>을 수첩만한 크기로 만든 책자를 나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 <청구회 추억>은 이렇게 돌려가며 읽혀졌다. 그 후 <엽서>가 발간되면서 육군교도소 똥종이에 쓰여진 육필원고가 영인본으로 실리고, 부록처럼 다른 책에 함께 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 글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식힐 순 없었다.  
27일 선재아트센터에서 <청구회 추억>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강당은 만원이고 통로와 계단까지 선남선녀로 가득 찼다. (…) <청구회 추억> 출간 기념회이기도 하지만 마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주년이 되는 시점이고 돌이켜보면 20년을 옥중에서 보낸 신영복선생의 <바깥세상 체험 20년>도 되는 터이라 신 선생의 인사말은 그에 걸맞는 '작은 강연'이 되었다. (…) 이 날도 신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 했다. 가슴에서 발(실천을 뜻한다)까지 가는 여행은 더 힘들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나? 머리에서 출발하여 귀, 눈, 혹은 입까지 와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십년 운동을 하면서 칼날같이 날카롭게 맞선 상대가 아니라 함께 하는 동지들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스스로 올바르다는 생각에 빠져 쉽게 상처를 안겨주고, 또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에서 그에 못지않은 상처를 주는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이 안긴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입은 상처만 바라보니 남는 것은 '상처 입은 피해자'들뿐이다.  
이날 강연 중에서 신 선생은 독서란 3독이라 말하셨다. 텍스트(책의 내용)를 읽고 책쓴이를 읽고 동시에 자신을 읽는다고 해서 3독이라는 것이다. 마침 선선한 밤공기가 책읽기에 적절하다. <청구회 추억>이 우리들의 현재가 되길 바라며 3독을 권한다. 

<노회찬마들연구소> 명사초청특강: "성찰과 모색"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석패한 노회찬은 11월 28일 지역 정당활동의 모범을 만들기 위해 노원구 상계동에 <노회찬마들연구소>를 설립, 창립기념식을 치렀다. 축하와 격려의 의미로 신영복은 '노회찬마들연구소' 제호를 글로 써서 선물한다. 2009년 1월 7일 신영복은 노회찬이 이사장으로 있는 <노회찬마들연구소> 명사초청특강에서 "성찰과 모색"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연구소의 '명사초청특강'은 2008년 9월 7일부터 2012년 9월 26일까지 4년 동안 총 41회를 진행하면서 '지역명품특강'으로 장안의 화제를 몰고오기도 했다. 

 
강연장인 노원역 인근 서울북부고용지원센터는 발 디딜 틈도 없이 500여 청중들이 빽빽이 메웠다. 여러 울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 가운데서 '물'에 대한 신영복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인간의 관계성을 가장 나타내는 것이 물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로서 배워야 합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지요. 다투지 않습니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절벽을 만나면 뛰어내리고 큰 웅덩이를 만나면 건너뛰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서 넘칩니다. 이러한 물의 자기 변화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하게 배울 점이 또 있습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점입니다. 바로 하방연대(下方連帶), 낮은 곳과의 연대입니다." 

▲ 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회에는 몰려든 인파로 앉을 자리가 부족해 강연중인 연단 위에 몰려 앉는 청중들도 눈에 띄었다. (사진=노회찬마들연구소)

신영복이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 선생으로부터 배우고 깨달은 것처럼, 노회찬의 삶에 신영복은 큰 영향을 준다.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신영복은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노촌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였음을 뉘우치게 된다. 그러나 조금도 적조한 느낌을 갖지 않고 있다. 문득 문득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찾아뵐 수는 없었지만 신영복에 대한 노회찬의 생각도 아마 비슷했으리라고 본다. 노회찬의 글이나 말을 보면 신영복의 향기가 스며있다. '6411번 버스'와 '투명인간' 이야기로 잘 알려진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문>(2012년 10월 21일)은 이렇게 적고 있다.
"강물은 아래로 흘러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인민노련 사건으로 체포된 지 23년이 되는 날인 2012년 12월 24일 노회찬은 '노회찬의 여의도 이야기'에 신영복의 말을 인용해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납니다> 제목으로 이런 글을 올린다.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난다(야심성유휘 夜深星逾輝)는 말을 기억합니다.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오직 한 가지 더욱 빛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약속뿐입니다. 두 달 전, 지난 10월 21일 창당대회에서 <대중적인 제대로 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한 대국민 약속입니다.…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난다는 말은 단지 밤하늘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가장 어두울 때 험하고 먼 길을 함께 걷고자 입당을 결심하신 모든 신입당원들께 뜨거운 환영의 인사를 전합니다."

2013년 7월 21일 진보정의당 대표 자리를 물러나는 노회찬의 <퇴임사>는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그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믿고 여기까지 함께 온 분들께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그 길을 걷는 길동무들이라 합니다. 당원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와 '노유진의 정치카페 테라스'

2015년 5월 21일 진보정의당 이정미가 진행하는 '노유진의 정치카페 테라스'라는 팟캐스트에 노회찬은 신영복과 함께 그의 인생과 새 책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돌베개, 2015)에 대해 2시간여에 걸쳐 잔잔한 이야기를 나눈다. "노 의원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안 나왔을 텐데...나왔다." 사실 신영복이 나오기 쉽지 않은 자리였다. 신영복은 암 투병 중이었는데 몸이 좀 회복되기도 했고 또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낸 것이었다.

1부에서는 노회찬과 신영복의 만남과 인연, '마지막 강의'의 의미와 건강상태, 소주 '처음처럼'의 탄생, '텍스트-저자-독자'와 '머리-가슴-발'의 '서3독'(書三讀),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脫走)로서의 독서, 청구회 추억과 모순의 결집체로서의 감옥생활, 경직된 인식틀로서의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악(詩書畵樂)의 중요성, 청년시절의 꿈과 이상 및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중함 등 신영복의 삶 전반에 대한 일화를 들을 수 있다.
2부는 <담론>에 담은 신영복의 생각을 들려준다. 변방의 창조성과 역동성, '나무와 물'의 철학과 철학적 상상력, 감옥생활 20년의 교훈이자 고별수업 주제였던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엽락(葉落)-체로(體露)-분본(糞本)', <담론> 읽기의 의미 등에 대해 소중한 시간을 갖는다.
마무리 발언에서 노회찬은 휴머니즘과 변혁의 결합, 세상에 맞춰나가기보다는 세상을 바꿔나가는 삶으로 <담론>을 읽어낸다.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가 흐르며 2시간여에 걸친 이야기는 끝나며 신영복과 노회찬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난다. 다음 링크를 열면 이날 나눈 이야기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http://www.shinyoungbok.pe.kr/video/307531
(http://www.shinyoungbok.pe.kr/video/307542) 

"내가 (교도소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 이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그러다가 얼마 전 책장을 다시 넘겼을 때 내 눈에 담긴 <담론>의 글귀다. 

▲ 왼쪽부터 노회찬 신영복 이정미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은 2016년 1월 7일 노회찬의 병문안이 마지막이었고, 8일 후인 1월 15일 떠남과 헤어짐의 시간을 맞게 된다.  

2016년 1월 18일 영결식 이후 그리움의 시간들 
신영복이 세상을 떠난 뒤 3달이 채 안 된 2016년 4월 3일 일요일, 고향땅 밀양 선산에서 고인의 수목장이 조촐하게 진행된다. 좋아하는 진달래꽃도 묘목으로 표지석 주변에 빼곡하게 심어두었다고 한다. 

▲ 출처: 사단법인 더불어숲

2017년, 구로구는 1주기를 맞아 신영복의 정신을 기리고, 주민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그의 대표적 저서인 <더불어 숲>에서 착안한 '더불어 숲길'을 조성했다. '더불어 숲길'은 그가 재직했던 성공회대 뒷산인 항동 산 23-1번지 일대에 길이 480m, 폭 2m로 조성된 산책로다. 생전에 직접 쓴 서화작품 31점이 안내판 형식으로 설치되어 있고 항동 철도길과 수목원, 구로 올레길 3코스와도 연결되어 있다. 한번쯤은 걸어봄직하다. 



신영복은 떠났지만, 이후에도 계속 노회찬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그의 발자취를 알려주며 그리움을 대신한다. (※ 그러던 중에 맞이한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 창원 성산에 출마한 노회찬은 3선 국회의원이 된다.)  

2016년 12월 25일 트위터 
신영복 선생님 덕분에 아내와 결혼한 얘기 등 얽힌 사연들을 풀었습니다. [다음스토리펀딩] 노회찬의 프로포즈,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6659 여러분의 공감과 투자를 기다립니다! 

2017년 1월 3일 트위터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공연 [만남] 예매중입니다. YB, 김제동, 두번째달, 김형석, 더숲트리오, 문소리, 고민정 출연. 1월 19일(목요일) 블루스퀘어. 
http://mticket.interpark.com/Goods/GoodsInfo/info?GoodsCode=16015996&app_tapbar_state=fix … 

2017년 1월 4일 트위터 
신영복선생 1주기를 맞이하여 두 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발표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와 대담집 <손잡고더불어>. 신영복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신년벽두에 읽기 적합한 내용입니다. 감히 일독을 권합니다. 

2017년 1월 17일 <[신영복 1주기 추모기획: 만남] 신영복의 글을 만나다 국회의원 노회찬>(https://youtu.be/_UK-uYrscb8)을 통해 노회찬은 신영복이 '정치'에 대해 말한 글을 읽는다.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유고집인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와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과의 대화>에 카네이션 꽃을 올린다.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의 궁극적 목표가 평화로운 세상(平天下)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平和)란 글자 그대로 화(和)를 고르게(平) 하는 것이다. 화(和)의 의미가 쌀을 먹는 우리의 삶 그 자체라면 정치는 우리의 삶이 억압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정치가 평화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까닭은 오늘의 정치적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짐지고 있는 고통이 무겁고 질긴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그 엄청난 무게 때문에 머지않아 '평화와 소통과 변화'라는 새로운 정치 전형(典型)의 창조로 꽃필 수 있기를 바란다. (…)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2017년 5월 15일 트위터 
오늘은 스승의 날.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이셨던 신덕만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스승님께 인사 올렸습니다. 영원한 스승 고 신영복 선생님께도 신간에 카네이션 꽃을 바쳤습니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1년의 시간이 흐른 2018년 1월 10일 신영복 선생 2주기 전시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0주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린다. 1월 20일까지 신영복 선생의 옥중 작품 17점을 포함한 서화, 옥중 엽서 원본 등을 전시했다. 노회찬은 이 자리에 참석해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을 함께 나눈다. 


▲ 인사말 하는 노회찬(정의당 원내대표) (출처: 사단법인 더불어숲)

나흘 뒤인 1월 14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 성당. 노회찬은 신영복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째 되는 날을 기리는 추모식 자리에 함께 했다. 성공회대 교수밴드 <더숲트리오>(김진업, 김창남, 박경태)는 "다음 추모식에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면 좋겠다"며, 신 교수가 감옥에서부터 부르곤 했던 '시냇물'을 시민들과 함께 합창하며 추모식을 마쳤다.  

2018년 7월 23일 노회찬, 먼 길을 떠나다 
2018년 7월 18일 여야 원내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노회찬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신영복으로부터 받아 소장하고 있던 글 6점을 표구사에 맡긴다. 7월 22일 오후에 귀국한 노회찬은 그 다음날인 7월 23일 아침 홀연히 먼 길을 떠난다.

3년 전인 2016년 1월 18일 고 신영복 선생 영결식, 노회찬은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 선생님은 떠나시지만 내일부터 선생님을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노회찬이 신영복을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것을 믿은 것처럼, 노회찬의 오랜 길동무들도 노회찬을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있다.
노회찬의 생환(生還)과 새로운 만남의 첫 걸음으로 오는 1월 24일(목) 저녁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창립 기념행사가 열린다. "함께가면 길이된다"는 신영복의 말처럼 이제 노회찬재단은 '아름다운 동행' 속에서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먼 길을 함께' 떠나고자 한다.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 나라…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마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단지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니다. 그 꿈 이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절박한 시점에서 쓰인, 그리고 노회찬이 신영복 문학의 백미라고 꼽았던 <청구회추억>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Some day in the future, I want to take a lonely walk to Seo-O-Reung. With a bright azalea on my plastron, I want to go slowly on foot to Seo-O-Reung and slowly walk back." 

'영원한 자유인'으로 '더불어 숲'의 세상을 꿈꾼 두 사람이 진달래 피는 올 봄철에 서오릉에서 만나 함께 천천히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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