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6일 화요일

김정은, ‘신형전술유도탄 위력시위발사’ 참관

한미군사연습 ‘경고’...당 부위워장 동행해 기념촬영도 (중통)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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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7  08: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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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일 새벽 ‘신형전술유도탄 위력시위발사’를 참관했다. 당 부위원장들이 대거 동행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일 새벽 ‘신형전술유도탄 위력시위발사’를 참관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다.
통신은 “우리 나라 서부작전비행장에서 발사된 전술유도탄 2발은 수도권지역 상공과 우리 나라 중부내륙지대 상공을 비행하여 조선동해상의 설정된 목표섬을 정밀타격하였다”며 “위력시위발사를 통하여 새형의 전술유도무기체계의 신뢰성과 안전성,실전능력이 의심할바없이 검증되였다”고 전했다.
합동참모본부는 6일 “우리 군은 오늘 05:24경, 05:36경 북한이 황해남도 과일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포착하였다”며, “고도는 약 37km, 비행거리는 약 450km, 최대 비행속도는 마하 6.9 이상”이라고 파악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된 발사체를 북측은 ‘신형전술유도탄’이라고 밝히고 통상 ‘시험발사’라는 명칭이 아닌 ‘위력시위발사’라고 명명했다.
  
▲ 발사는 이동식 차량 발사대에서 행해졌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 발사체가 화염을 내뿜으며 비상하고 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 이례적으로 탄착 지점 사진을 공개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통신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신형전술유도탄 위력시위발사가 목적한바대로 만족스럽게 진행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오늘 우리의 군사적행동이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벌려놓은 합동군사연습에 적중한 경고를 보내는 기회가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고 전했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한미연합군사연습 ‘동맹 19-2’를 겨냥한 ‘위력시위’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번 ‘위력시위발사’ 참관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 리만건, 박광호, 리수용, 김평해, 오수용, 안정수, 박태덕, 박태성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인 조용원, 리병철, 그리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들이 함께 했다. 당 중앙위 부위원장들이 대거 참석한 것.
또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륙군대장 리영길, 조선인민군 포병국장 륙군대장 박정천이 참가했고, 현지에서 장창하, 전일호를 비롯한 국방과학부문의 지도간부들이 맞이했다.
통신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위력시위발사를 성공적으로 단행한 국방과학부문의 지도간부들과 과학자, 군수로동계급들을 만나시고 그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고 전했다.
  
▲ 발사 성공을 확인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간부들이 기뻐하고 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 부대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 최근 일련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현지지도에서 처음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거 참석하고 최근 들어 처음으로 기념사진 촬영을 한 것은 최근 일련의 시험발사, 위력시위발사가 한 단계 마무리됐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간 실무회담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7월 25일, 31일에 이어 8월 2일, 6일, 연이은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현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주요 간부들과 함께 직접 참관에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추가2, 09:26)

1년 365일 집집마다, 길거리마다 태극기 휘날리는 섬

19.08.07 08:35l최종 업데이트 19.08.07 08:35l










 소안도 항일운동을 기념한 조형물. 완도 소안도는 항일의 섬, 해방의 섬으로 통한다.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예우 받아야 할 섬이다.
▲  소안도 항일운동을 기념한 조형물. 완도 소안도는 항일의 섬, 해방의 섬으로 통한다.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예우 받아야 할 섬이다.
ⓒ 이돈삼


친일 논쟁이 뜨겁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친일파 낙인찍기 경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상대를 향해 '왜구' '토착왜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 '기해왜란'으로도 불리는 일본정부의 수입규제 조치 이후 우리 국민들의 반일감정에 기대고 있다. 국민과 정부, 정치권이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에, 서로 삿대질을 하며 핏대를 세운다.

그 논쟁의 한복판이라도 서 있는 듯, 바다에 안개가 짙게 깔렸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날씨까지도 흐리고 개다를 되풀이한다.

우리 국민들로부터 예우를 받아야 할 섬, 완도 소안도로 가는 길이다. 소안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화흥포항에서 뱃길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보길도와 노화도, 청산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완도 화흥포와 소안도를 오가는 민국호. '항일의 섬' 소안도를 오가는 배의 이름이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로 붙여져 있다.
▲  완도 화흥포와 소안도를 오가는 민국호. "항일의 섬" 소안도를 오가는 배의 이름이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로 붙여져 있다.
ⓒ 이돈삼
   
 소안항에 세워져 있는 소안도 표지석. 항일의 섬, 해방의 섬이라고 새겨져 있다.
▲  소안항에 세워져 있는 소안도 표지석. 항일의 섬, 해방의 섬이라고 새겨져 있다.
ⓒ 이돈삼
 
민국호를 타고 들어가 소안항에 내렸다.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소안도는 항일의 섬이다. 화흥포와 소안도를 오가는 여객선도 대한민국만세, '대한호'와 '민국호' '만세호'로 이름 붙여져 있다.

소안도는 일제에 의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분류된 사람이 800여 명이나 됐다. 일제는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사람을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사람'이라며 그렇게 불렀다.

지금은 우리 정부로부터 애국지사, 독립운동 지도자로 인정받은 사람이 89명, 그 가운데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0명에 이른다. 섬주민들이 1년 365일 집집마다, 길거리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있는 이유다.
  
 태극기가 내걸려 있는 소안도의 민가. 소안도는 1년 365일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있다.
▲  태극기가 내걸려 있는 소안도의 민가. 소안도는 1년 365일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있다.
ⓒ 이돈삼
   
 태극기와 함께 어우러진 소안도 항일운동기념탑과 기념관 전경.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가학리에 자리하고 있다.
▲  태극기와 함께 어우러진 소안도 항일운동기념탑과 기념관 전경.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가학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소안도의 항일 역사는 등대 습격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섬사람들이 자지도(현재 당사도) 등대를 습격, 일본인 간수를 처단했다. 일본이 우리의 수산물과 쌀·면화 등을 수탈해 갈 목적으로 세운 자지도등대를 습격, 등대를 지키고 있던 일본인 4명을 죽이고 등대를 부숴버렸다.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빼앗긴 한일병합(1910. 8. 29) 이후 소안도의 항일운동은 더욱 활발했다. 1909년부터 1921년까지 13년 동안 친일파 이기용에게 넘어간 토지소유권의 반환을 요구하는 지난한 투쟁을 벌여 승리했다.

사립 소안학교 설립과 강제 폐교 조치에도 정면으로 맞섰다. 1921년 토지반환 소송에서 승소한 주민들은 사립 소안학교 설립을 결의하고 설립기금 1만454원을 모았다. 현 시세로 1억 원이 넘는 돈이다. 배움만이 살길이고, 항일의 길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주민들은 이 기금으로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소안항일운동기념탑과 나란히 세워져 있는 옛 소안학교 건물. 소안학교는 항일운동 당시 소안도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  소안항일운동기념탑과 나란히 세워져 있는 옛 소안학교 건물. 소안학교는 항일운동 당시 소안도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 이돈삼
   
 옛 소안학교를 그려볼 수 있는 전시물. 소안도항일운동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  옛 소안학교를 그려볼 수 있는 전시물. 소안도항일운동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 이돈삼
 
소안학교는 일제에게 눈엣가시였다. 일제는 국경일에 일장기를 달지 않는다, 국상에도 조의를 표하는 상장(喪章)을 붙이지 않는다, 독립운동가를 양성한다는 등의 이유로 강제 폐교 조치를 단행했다.

정신적 지주였던 소안학교가 강제 폐교되자 섬주민들은 복교운동을 벌였다. 섬주민 1000가구 가운데 800가구가 참여했다. 일제 경찰로부터 보안감시 대상인 '불령선인'으로 불리며 온갖 감시와 고초를 겪었다.
  
 소안도 항일운동을 이끌었던 송내호 선생의 묘. 묘비에 태극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소안도 항일운동을 이끌었던 송내호 선생의 묘. 묘비에 태극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이돈삼
   
 크고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소안도 포구 풍경. 포구는 여느 바닷가마을과 다름없이 호젓하다.
▲  크고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소안도 포구 풍경. 포구는 여느 바닷가마을과 다름없이 호젓하다.
ⓒ 이돈삼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섬에 남은 사람들은 감옥에 간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겨울에 이불을 덮지 않았어요. 아픔을 함께 하면서 차가운 방에서 지낸 겁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한테는 불씨를 나눠주지 않고, 경찰과는 말도 하지 않는다는 불언동맹도 실천했어요."

이대욱(65) 소안도항일운동기념사업회장의 말이다.

소안도의 항일정신을 엿볼 수 있는 항일운동기념탑과 기념관이 가학리에 있다. 섬사람들의 항일정신이 오롯이 밴 옛 소안학교가 있던 그 자리다. 기념관에는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20명의 흉상과 함께 독립운동가 69명의 존영이 모셔져 있다. 자지도등대 습격사건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실감나게 만들어져 있다.
  
 당사도등대 습격사건을 보여주는 조형물. 소안도항일운동기념관에 만들어져 있다.
▲  당사도등대 습격사건을 보여주는 조형물. 소안도항일운동기념관에 만들어져 있다.
ⓒ 이돈삼
   
 소안도 미라리의 몽돌해변. '항일의 섬' 소안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물놀이를 즐기려는 피서객들이 찾고 있다.
▲  소안도 미라리의 몽돌해변. "항일의 섬" 소안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물놀이를 즐기려는 피서객들이 찾고 있다.
ⓒ 이돈삼
 
섬에 깊게 스며있는 항일정신 못지않게 소안도의 풍광도 빼어나다. 미라리와 맹선리의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갯돌해변과 어우러진 미라리 상록수림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해송 등 776그루로 이뤄져 있다. 면적이 1만6000㎡에 이른다.

맹선리에는 수령 200∼300년 된 후박나무 등 상록수 245그루가 해안선을 따라 방풍림을 형성하고 있다. 면적이 8500㎡에 이른다. 마을의 풍광을 아름답게, 돋보이게 해준다.

섬의 둘레길도 예쁘다. 대봉산 동쪽을 끼고 도는 북암과 비자리를 잇는 길이 멋스럽다. 오래 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이다. 아부산 정상과 거북바위로 가는 숲길도 좋다. 소안도 풍경과 함께 전복양식장이 바둑판처럼 깔린 주변 다도해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몽돌과 어우러진 소안도 미라리 상록수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귀한 숲과 해변이다.
▲  몽돌과 어우러진 소안도 미라리 상록수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귀한 숲과 해변이다.
ⓒ 이돈삼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할 일입니다. 친일잔재 청산은 이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이 단순한 진실이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입니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했던 말이 귓전에서 맴돈다. 뼛속까지 항일정신이 배어있는 섬, 소안도에서의 여름날이다.
  
 아부산 거북바위에서 내려다 본 소안도 풍경. 앞바다에 전복 양식장이 그림처럼 떠 있다.
▲  아부산 거북바위에서 내려다 본 소안도 풍경. 앞바다에 전복 양식장이 그림처럼 떠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영상+]‘위안부’ 혐오? 소녀상 실제로 본 일본인들 솔직 반응

등록 :2019-08-06 21:10수정 :2019-08-06 22:00


지난 1일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소녀상 전시 현장
관람객들 “선입견 있었지만 보고 마음 바뀌어” “작가 의도 공감”
우익 위협 이유로 전시 중단됐지만, 시민들 따뜻한 관람 소감 
▶▶유튜브로 보기
지난 3일 일본 나고야시 아이치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전시 중 소녀상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 전시가 중단됐습니다. 1일 개막한 지 이틀 만입니다.
이에 전시 기획자로 참여한 오카모토 유카 등 전시 실행위원들은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라며 성명을 냈고,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예술단체 역시 서명운동을 벌이고 ‘노 아베’ 집회를 여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더하고 있습니다.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는 “테러 예고 같은 전화가 오는 등 불측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며 중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 실제로는 일본의 경제 도발 이후 격화하고 있는 한-일 갈등 상황에서 지자체가 아베 정부와 배후 우익 세력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 전시 중지 전시회장에서 만난 일본 관람객들의 태도는 일본 사회 일각의 극우 혐한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개막 첫날인 1일, 많은 일본 관람객들이 소녀상 옆에 앉았다 가기를 반복했습니다. 한 관람객은 “‘반일의 상징’으로 생각해 기분은 나빴다”면서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위안부’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우익들의 전시 방해를 막기 위해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전시장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전시 주최인 아이치현은 끝내 가설벽을 세워 관람객을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일본 안에서도 일고 있습니다. 소통과 공감을 북돋음으로써 도발과 갈등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개막 첫날 소녀상을 실제로 본 일본 관람객들의 반응 또한 소통의 의미와 필요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소녀상을 처음으로 직접 본 일본 시민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영상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유튜브로 보기
취재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제작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번역 정성훈

짚 울타리 덕에 내몽골 사막에 나무 뿌리 내린다

이은주 2019. 08. 05
조회수 4501 추천수 1
모래 고정해 식물 정착 도움, 나중엔 비료로 활용

11663_11366_3630 (1).jpg» 내몽골 조림지역에 어린 나무를 모래로부터 보호하는 짚 울타리가 세워져 있다. 산림청 제공.

지난 7월 21일부터 일주일간 내몽골 황사 발생지인 후룬베이얼에 사막화 지역 생태계 복원 연구를 위해 다녀 왔다. 현지 조사지인 이곳은 중국 북동 3성 왼쪽, 우리나라에서 보면 북서쪽에 있으며 광활한 평원에 초원과 곳곳에 모래땅이 자리 잡고 있다. 연간 강수량은 280~400㎜로 우리나라의 약 4분의 1에 불과하며, 70% 이상이 7월과 8월에 내린다. 

올해 둘러본 내몽골 황사 발생지 현장은 여름철에 비교적 비가 자주 내려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고 있었다. 보통 현장에 가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현지에 작은 물웅덩이가 있는가이다. 올해는 물웅덩이 수도 많았고 웅덩이마다 물이 차 있었다. 최근에 이 지역에 비가 자주 왔다는 뜻이다. 

조사지는 사막화된 모래땅에 2005년, 2008년 2011년, 2012년 등 4차례에 걸쳐 가축 접근을 막는 펜스와 바람 울타리를 설치하고 장자송, 포플러를 심고 졸골담초 같은 자생 종자를 뿌려 복원 중인 장소이다. 지난해까지 고온과 가뭄으로 시들어 가던 장자송과 포플러는 새로운 가지와 잎을 내면서 회복되었고, 키 작은 좀골담초와 나무황기도 작년과 달리 건강한 잎을 많이 달고 잘 자라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생육 기간 동안 비가 적절히 와 준다면 식생이 많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까지 내몽골 황사 발생지에서 생태계 복원 연구를 하면서 얻은 몇 가지 중요한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512.jpg» 내몽골 지역 사막화의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와 과도한 방목이다. 이순혁 제공

첫째, 내몽골 지역의 황사 발생 원인은 이 지역의 시막화 때문이다. 사막화를 일으킨 원인은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이다. 내몽골 지역은 지난 40년간 인구증가와 산업화로 인해 사막화가 진행되었고, 특히 연간 강수량이 400㎜ 이하인 반건조 지역은 과도한 방목과 나무 베기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과도한 방목으로 풀의 뿌리까지 먹히고 이로 인해 토양이 노출되어 쉽게 건조해져 바람에 날리게 된다. 과도한 방목만 멈추어도 생태계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고정해 주는 울타리 설치는 식생복원에 도움이 되었다. 사막화 지역에 1∼2m 간격으로 설치한 무릎 높이의 모래 고정용 짚 울타리는 움직이는 모래를 고정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짚 울타리는 3~5년 모래를 고정하는 제구실을 마치면 유기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거양득이다. 특히 울타리 가장자리에는 많은 식물이 정착해서 식생복원에 도움이 되었다.

모래고정1.jpg» 내몽골의 모래고정 울타리. 우리나라 대관령의 풍충지역 조림 때도 이 방법이 적용돼 큰 성과를 거두었다. 산림청 제공.

세 번째, 잘 선정한 지역 자생식물 종자를 뿌린 것이 식생복원을 촉진했다. 사막화 지역에서 식생복원은 짚 울타리 안에 주로 장자송이나 포플러의 식재 또는 자생식물 종자 산포로 이루어졌다. 보기에는 키가 큰 나무인 장자송이나 포플러가 도움되었지만, 주기적인 가뭄에 약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키 작은 자생나무인 좀골담초와 나무황기는 콩과 식물로 질소고정이 가능해 잘 자라고 가뭄에도 상대적으로 강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질소를 고정하는 좀골담초와 나무황기 아래 흙 속에 질소 함량이 높아 토양을 더 비옥하게 만들어 주어 생태계 복원에 도움이 되었다.

좀골담초.jpg» 내몽골 조림 식물인 좀골담초. 산림청 제공

네 번째, 사막화 지역 식생복원이 황사 발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현지 연구결과를 보면, 식물 잎의 면적(피도)이 땅 면적의 10% 정도가 되면 모래 날림이 70~80% 정도 감소했다. 식물 잎의 피도 10%는 종자 뿌리고 몇 년간 잘 관리해 주면 얻을 수 있는 수준이다.

다섯 번째, 사막화 지역 복원의 마지막 성공 요인은 바로 자연의 힘이다. 아무리 인간이 온 힘을 다해서 가축의 접근을 막고, 울타리 설치하고, 적합한 종자를 뿌려주어도 적절한 시기에 비가 와 주지 않으면 생태계 복원은 기대만큼 성과를 낼 수 없다. 

2012년부터 환경부가 중심이 되어 한·중·일이 황사 공동연구단을 구성해서 황사 문제 해결을 위해 3국 간 협력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황사 공동연구단은 황사 발생과 이동을 연구하는 1그룹과 황사 발생지 현장과 생태계 복원을 연구하는 2그룹이 있다. 한·중·일 협력연구 초기에는 3국의 의견이 달라 힘들었지만 해가 갈수록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으며, 매년 여러 차례 황사 전문가들과 3국 환경부가 머리를 맞대고 황사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3272.jpg» 산림청은 내몽골 쿠부치 사막에서 조림사업을 벌이고 있다. 버드나무와 포플러 등이 우거질 미래 모습이다. 산림청 제공

지난 7월 갔다 온 내몽골 황사 발생지의 현장 방문 연구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우리가 사막화 지역 생태계 복원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생태계는 회복되고 그 결과 황사 발생은 앞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둘째, 최근 관심사인 미세먼지 해결도 황사처럼 이웃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서 해결해 볼 것을 제안한다.

2015년까지 많이 발생했던 황사는 올해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해 미세먼지보다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 십 년간 우리나라 황사 발생 횟수와 일수를 보면, 2010년에 15회 발생에 26일 관측으로 가장 잦았고, 올해는 지금까지 3회 발생에 5일 관측으로 가장 뜸했다. 평균적으로 보면 황사는 매년 8회 발생에 15일 정도 관측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황사는 이르면 2월부터 관측되고, 봄철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2018년의 경우 초겨울인 11월 말과 12월 초에도 관측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황사는 주로 몽골, 중국 황토고원, 내몽골 건조지역에서 강한 바람이나 지형에 의해 만들어진 난류에 의해서 다량의 흙먼지가 공중으로 떠올라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서 떨어지는 현상이다. 

이은주/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조국 교수가 일러준 ‘토착왜구 식별법’

최근 정치인과 언론인의 친일 발언이 쏟아지면서 토착왜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토착왜구란 한국인인 척하며 일본을 위해 활동하는 자를 말한다. 한마디로 일본간첩.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이 조선사람으로 신분을 바꿔 스며든 진짜 일본인이 토착왜구의 원조라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아직 그 숫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토착왜구는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별위원회’(반민특위)가 작성한 22만 명의 악질 친일파들이다.
미 군정 하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 토착왜구들은 부와 권력은 물론이고 친일 행적을 지우고 명예까지 누렸다.
문제는 악질 친일파였던 토착왜구가 대를 이어오면서 너무 깊이 침투한 데다 친미로 둔갑해 있어 식별이 어려워 졌다는데 있다.
누가 토착왜구인지 정확히 가려내야 토착왜구를 박멸할 수 있으니 당장 급한 것은 토착왜구 식별법이다.
선명하게 눈에 띄는 토착왜구는 반일운동에 시비질하는 사람들이다.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느니, “불매운동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라느니, “한일 경제전쟁의 책임이 한국 정부에도 있다”라느니, “반일 할 때가 아니라 반북 할 때”라느니 하는 주장들이 대표적이다.
[사진 : 뉴시스]
여기까지는 대체로 구분하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꼭꼭 숨은 토착왜구를 솎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조국 교수가 SNS를 통해 그 실마리를 풀어 줬다.
조국 교수는 일본이 지난 70년 동안 집요하게 전파한 일제강점기 정치 논리를 알기 쉽게 정리해 주었다.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은 국제법적으로 합법이다”는 억척에 근거하여
▲1910-1945년 동안 한반도에는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이 기간 동안 조선 사람은 모두 일본인이 되었다. 항일독립운동가들은 ‘반일사상’을 가진 ‘불령선인’(不逞鮮人 ふていせんじん 후테이센진)들이다.
▲조선인에 대한 ‘강제징용’은 없으며, 1939년 '국민징용령'에 따른 합법징용이다(그리고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몸을 판 ‘매춘부’다).
▲1945년 패전했으나, 일본인이었던 전(前) 조선인들에게 ‘배상’을 할 이유가 없다.
▲‘일본통치시대’의 논란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3억 달러 지급으로 모두 해소되었다. 이 돈 덕분에 한국의 경제발전이 가능했다. 이 기간 동안 한반도에는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역대 한국 정부 및 한국인들은 ‘민족감정’에 사로잡혀 이상을 무시하면서 계속 사과를 요구하며 떼를 쓴다.
▲게다가 2012년 및 2018년 한국 대법원은 이상을 무시하고 일본 기업에게 피해를 입히는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지, 일본 기업이나 정부가 책임질 사안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으니 수출규제를 가해서 버릇을 고쳐야 한다.
일본의 이같은 논리에 동조하는 자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자들이 토착왜구다.
요점정리 토착왜구 식별법
1.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근대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자
2. ‘강제징용’과 ‘위안부’문제를 외면하는 자
3. 박정희가 체결한 1965년 ‘한일협정’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
4. 일본에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지 않는 자
5. 반일운동을 저급한 민족감정으로 치부하는 자
6.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매도하는 자
7. 백선엽 같은 일본 괴뢰군 장교를 대한민국 군대의 뿌리라 칭송하는 자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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