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맛있는 우리말 [29] ‘약’의 문화 문법

어린 시절 많이 하던 말 중에 “용용 죽겠지”와 “약오르지롱”이 있다. 고무줄놀이 하는 여자 아이들의 고무줄을 면도칼로 끊고 도망가면서 많이 써 먹은 말이다. 부끄러운 과거의 한 장면이다. 의미도 모르고 썼던 약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그런데 ‘약’은 어디서 유래한 말일까?
‘약오르다’는 ‘비위가 상하여 은근히 화가 나다’라는 말이다. ‘약’은 ‘고추나 담배 따위의 식물이 한창 자랄 때 생기는 맵고 자극적인 기운’을 말한다. 약초가 성숙하여 독특한 자극적인 성분이 생기는 것을 ‘약오르다’라고 했다. 고추밭에서 많이 쓰던 말이다. 이것이 ‘사람의 성질이 변하여 독을 품은 것’을 일컫는 표현으로 그 쓰임이 확장되었다.
사람이 독한 기운을 품으면 기운이 뻗치게 되어 있다. 식물에서 약이 올라 매워지듯이 마음속에서 독한 기운이 오르면 기운이 뻗쳐오른다. 그래서 ‘약오르다’라는 말이 ‘화가 나다’의 의미로 변질된 것이다. 남의 약을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삭이고추도 청양고추 옆에 있으면 바람이 나서 약이 오른다.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한국어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