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김성태 딸 ‘KT 특혜채용’ 의혹…“무조건 입사시키란 지시 받아”

[단독] 김성태 딸 ‘KT 특혜채용’ 의혹…“무조건 입사시키란 지시 받아”

등록 :2018-12-20 04:59수정 :2018-12-20 11:30


김성태 딸 채용기록 미스터리
KT 내부 복수의 관계자들 증언
2011년 정식절차 없이 계약직 입사
“윗선에서 이력서 줘 계획 없던 채용”
2013년 정규직 되는 과정도 불투명
올 초 채용비리 사회적 파문 때 퇴사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성태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의 딸이 케이티(KT)그룹에 비정상적인 경로로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성태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강력히 요구해 이를 관철한 바 있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케이티 자회사인 케이티링커스 노조위원장을 지낸 노동계 출신 인사다.
19일 케이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성태 의원의 딸 김아무개(31)씨는 2011년 4월 케이티 경영지원실(GSS) 케이티스포츠단에 계약직으로 채용된 뒤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가 올해 2월 퇴사했다. 김씨가 일했던 케이티스포츠단은 2013년 4월 ㈜케이티스포츠로 분사했다.
케이티 내부에서는 김씨의 계약직 채용부터 정규직이 된 과정, 퇴사 시점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먼저, 김씨와 함께 케이티스포츠에 근무했던 복수의 관계자들은 김씨가 정식 채용 절차 없이 비정상적 통로로 채용됐다고 증언한다. 당시 케이티스포츠단 사무국장 ㄱ씨는 “윗선에서 이력서를 받아 와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엔 김성태 의원의 딸이란 것도 몰랐다. 원래 계약직 채용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위에서 무조건 입사시키란 지시를 받아 부랴부랴 계약직 채용 기안을 올려 입사시켰다”고 밝혔다.
ㄱ 사무국장에게 이력서를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당시 케이티스포츠단장 ㄴ씨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당시 나는 김성태 의원을 직접 만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대관 업무를 총괄하는 (나보다) 더 윗선의 인사가 사무국장과 함께 불러 가보니 이력서를 주며 입사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ㄴ씨의 ‘윗선’으로 ㄴ씨에게 김 의원의 딸 이력서를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이는 서아무개 당시 케이티 홈고객부문 총괄사장이다. <한겨레>는 서 전 사장에게 취재 내용을 알리며 수차례 문자와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 의원 딸이 정규직이 되는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케이티의 공식 설명은 “김씨가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2012년도 하반기 케이티 본사 공채 시험에 합격해, 2013년 1월 정규직으로 임용됐고 이후 ㈜케이티스포츠 창립에 맞춰 2013년 4월 전출 처리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가 당시 케이티 인재개발실 간부 ㄷ씨를 통해 확인한 내부 전산 기록에 따르면, 김씨의 정규직 전환 과정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ㄷ씨는 “김씨는 2011년 4월 계약직으로 입사해 2012년 12월까지 계약직으로 근무한 뒤, 2013년 1월 정규직 공채로 임용됐다. 이후 신입사원 연수 교육을 받던 도중 1월말에 스스로 퇴사하고 4월 케이티스포츠 분사에 맞춰 특채로 재입사했다”고 밝혔다. 이 간부의 설명대로라면 김 의원의 딸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채로 합격한 뒤 한달 만에 스스로 퇴사하고 두달을 쉬었다가 케이티스포츠 분사를 계기로 특채로 재입사한 것이다. ㄷ씨는 “무리하게 공채(전형 과정)에 태워 정규직으로 만들려다 보니 (전산 기록이) 엉망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케이티스포츠 분사와 함께 옮겨간 다른 직원들은 분사 시점인 2013년 4월1일자로 본사를 퇴사하고 재입사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김씨만 유일하게 같은 해 1월말 퇴사한 뒤 두달가량 공백기를 가진 것으로 처리된 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더구나 김씨와 함께 케이티스포츠에 근무했던 관계자들은 김씨가 수습사원 연수 기간을 제외하고는 회사에 계속 다녔다고 증언한다. 전산 기록상 정규직 채용 뒤 퇴사한 것으로 돼 있는 2013년 1월말 이후에도 회사에 정상 출근했다는 것이다. 사무국장 ㄱ씨는 “당시 김씨는 업무 공백 없이 계속 근무했다. 다만, 본인이 어느 날 갑자기 (정규직) 수습사원 연수를 다녀오겠다고 말해 그러라고 했을 뿐이다. 김 의원의 딸이다 보니 그러려니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케이티스포츠 관계자도 김씨에 대해 “시점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달여 연수를 다녀온 기간을 제외하곤 같은 자리에 계속 있었다. (1월에) 퇴사하고 재입사했다는 건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케이티스포츠단장 ㄴ씨는 김씨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정규직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ㄴ씨는 “2012년 10월 스포츠단 업무를 인수받았을 때 비정규직은 한명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씨가 그때 이미 정규직으로 처리가 돼 있었던 것”이라며 “김씨가 정규직 공채에 붙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김씨가 정규직이 된 과정은 미스터리하고 한마디로 미러클하다”고 말했다. 사무국장 ㄱ씨는 “케이티가 2012년 10월 김씨 신분을 미리 정규직으로 전환해놓고, 2013년 1월 정규직 공채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사후적으로 전산 기록을 수정한 것 아니겠느냐”며 “본사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정규직으로)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면 당연히 있었어야 할 사번 변경 요청 등 본사의 행정적 연락 역시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최종 퇴사 시점도 논란거리다. 김씨가 사표를 제출한 올해 2월은 <한겨레>가 강원랜드 등 공기업 채용비리를 집중 보도한 이후 정부가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등 사회 각 부문으로 파장이 이어지던 시기다. 당시 김씨가 회사를 그만두자 케이티스포츠 내부에서는 “채용비리 문제가 워낙 크게 불거지다 보니 조용히 그만두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김씨가 케이티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고, 정규직이 되는 시기는 공교롭게도 김성태 의원이 케이티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시기와 겹친다. 김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2010~2012년) 소속일 때 딸이 케이티에 계약직으로 입사했고, 환경노동위원회(2012~2014년) 위원일 때 딸은 정규직이 되었다. 당시 케이티는 국정감사 관련 이슈가 많았다. 기지국 수사 협조 및 개인정보 유출(2011년)과 이석채 케이티 회장 비리 및 부당 노동 행위(2012년) 등으로 이 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이 뜨거운 이슈였다. 이때 김 의원은 이 회장 증인 채택을 요구하던 민주당을 향해 “상식껏 도리껏 하라”며 케이티 회장 증인 채택을 저지하고, 국감을 파행으로 이끌었다.
김 의원의 딸 김씨는 계약직 입사 경위에 대한 질문에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케이티는 “헤드헌터 업체의 추천을 받아 채용하게 된 것”이라고 공식 해명했다.
정규직 채용에 대해 김씨는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회사에 말하고 공채 시험을 준비했다. 특별히 퇴사한 것은 아니라 파견 계약직 2년을 채운 시점에 맞춰서 공채를 준비해서 시험을 다시 보고 들어온 것”이라며 “정규직이 정확히 언제 됐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당 정자동에서 시험을 치렀고, 여러 군데에서 몇차례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 채용 관련 자료를 요청하자 케이티는 “고용노동부 개인정보관리 지침에 따라 퇴사자의 경우 3년이 지나면 자료를 폐기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수의 인재개발실 관계자들은 “채용과 관련한 서류는 영구 보관해야 한다. 분당 정자동 케이티 본사 지하 문서고에 모두 보관되어 있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에게도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끝내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검찰, ‘강제징용 재판거래 핵심’ 윤병세 전 장관 소환

검찰, ‘강제징용 재판거래 핵심’ 윤병세 전 장관 소환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18-12-20 11:25:19
수정 2018-12-20 11:25:19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정의철 기자


검찰이 일제 강제징용 관련 소송 재판거래의 연결고리로 지목되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을 불렀다.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한동훈 3차장검사)은 20일 오전 윤 전 장관을 소환해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일제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사이에 재판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추궁하고 있다.
윤 전 장관은 2013~2014년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관한 회동에 참석해 차한성·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과 함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승소한 판결을 뒤집거나 확정 판결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윤 전 장관은 법원행정처가 외교부 입장을 반영해 해당 재판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외교부가 2016년 일제 전범기업 측 입장이 반영된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행정처는 외교부가 김앤장의 의견을 접수할 수 있는 공식 ‘통로’를 마련해줬다. 2015년 1월 대법원이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한 것이다. 이 개정안에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공익 관련 사항에 관하여 대법원에 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대법원은 이들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 명분은 ‘상고심 충실화’였다.
이에 따라 일본 전범기업을 변호한 김앤장이 2016년 10월 외교부에 의견서를 요청했고, 외교부는 그 해 11월 대법원에 “법리적으로 한국이 이기기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내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검찰은 내달 중으로 사법농단 사태의 총책임자 격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우는 왜 ‘조선일보 오너 일가 자살 동향’을 첩보로 올렸나

방용훈 사장과 자녀들, 검찰 수사와 고소 이어져
임병도 | 2018-12-20 09:23:2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2월 19일 자유한국당은 의원총회에서 김태우 수사관이 작성한 첩보 보고서 목록을 공개했습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마구잡이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이 분(김태우 수사관)이 특감반 초기에 (과거 정부에서) 민간을 사찰하는 관행을 못 버리고 민간 영역의 내용을 특감 반장에게 보고했다”라며 “특감 반장이 우리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르다. 이런 첩보를 수집하지 말라고 제지했다”고 밝혔습니다.
김태우 수사관은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으로 비위혐의로 원 소속기관인 검찰로 복귀한 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청와대는 파견 직원을 징계할 수 없고 소속기관장인 검찰총장이 해야 합니다.) 현재 청와대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법무부에 김태우 수사관에 대한 추가 징계를 요청했고, ‘공무상 비밀누설’에 대해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공개한 김태우 수사관의 첩보 보고서 목록을 보면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일보 오너 일가인 “코리아나호텔 사장 배우자 이미란 자살 동향(2017년 7월11일)”입니다.
김태우 수사관은 왜 조선일보 오너 일가의 자살 동향을 첩보로 올렸을까요?

코리아나 호텔 사장 부인의 죽음, 그리고 의문의 편지
▲ 2016년 9월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 부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MBC뉴스 화면 캡처
2016년 9월 2일 방용훈 코리아사호텔 사장 부인 이미란씨가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이씨의 렉서스 차량에는 유서가 있었으나 가족들이 공개를 꺼려해서 왜 자살을 택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이자 조선일보 주주(10.57%)이며, 장자연 사건과 연루된 인물입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기업 오너 배우자가 자살한 사건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았고, 곧장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났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방용훈 사장 장모의 편지’
언론은 코리아나호텔 사장 부인의 자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편지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이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확산됐습니다.
“방 서방, 자네와 우리 집과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네. 이 세상에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처럼 찢어지는 것은 없다네. 병으로 보낸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로 보낸 것도 아니고 더더욱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도 아니고 악한 누명을 씌워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들을 시켜, 다른 곳도 아닌 자기 집 지하실에 설치한 사설 감옥에서 잔인하게 몇 달을 고문하다가, 가정을 지키며 나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내 딸을 네 아이들과 사설 엠블란스 파견 용역직원 여러 명에게 벗겨진 채, 온몸이 피멍 상처투성이로 맨발로 꽁꽁 묶여 내 집에 내동댕이 친 뒤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음에 내몰린 딸을 둔 그런 에미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네…30년을 살면서 자식을 네 명이나 낳아주고 길러준 아내를 그렇게 잔인하고 참혹하게 죽이다니, 자네가 그러고도 사람인가?”
‘방용훈 사장 장모 편지’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편지는 방용훈 사장의 장모, 즉 이씨의 어머니가 작성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만약 이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씨는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으로 봐야 합니다.

방용훈 사장과 자녀들, 검찰 수사와 고소 이어져
▲코리아나 호텔 모습 ⓒ코리아나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씨가 죽은 뒤 방용훈 사장의 장모와 처형은 방 사장의 큰딸과 큰아들을 ‘자살 교사 및 존속 확대, 공동감금 등의 협의’로 고소했습니다.
방 사장의 장모와 처형은 자녀들이 재산 문제 등으로 이씨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을 했고, 감금과 학대를 일삼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씨의 죽음이 폭력과 감금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숨진 부인의 처형 집에 등산용 장비를 들고 간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이모 집 현관문을 돌려 내리 친 방 사장의 아들이 CCTV에 찍힌 모습 ⓒKBS 뉴스 화면 캡처
방용훈 사장 부인이 죽고 몇 달 뒤인 2016년 11월 1일 방 사장과 아들은 이씨의(숨진 부인의 동생, 처형) 집을 찾아갑니다.
방용훈 사장은 등반용 철제 장비(아이스 바일)를 들고 있었고, 방씨의 아들은 돌멩이로 이씨의(이모) 집 현관문을 수 차례 내려쳤습니다.
방 사장의 처형은 주거침입과 재물손괴 혐의로 이들을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방용훈 사장에게는 ‘혐의 없음’아들 방 씨에게는 ‘기소 유예’ 즉 재판에 넘기지 않는 이상한 결론을 내립니다.
이씨는 항고했고, 2017년 2월 23일 서울고검은 사건을 다시 수사하라는 ‘재기 수사 명령’을 내립니다.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 뒤에 숨겨졌던 방용훈 사장
장자연 사건에는 방 사장이 등장합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나 차남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도 거론됐습니다.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도 장씨가 있는 술자리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히 장자연씨와 강남구 청담동의 유흥업소에서 만나 정황이 드러난 인물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입니다.
방용훈 사장이 있던 술자리에는 권재진 당시 대검 차장도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장자연씨 사건 수사가 축소되거나 은폐됐다는 여론에 따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7월부터 대검 진상조사단을 통해 재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태우 수사관과 조선일보의 합작품인가?
다시 김태우 수사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왜 김태우 수사관은 “코리아나호텔 사장 배우자 이미란 자살 동향(2017년 7월11일)” 첩보를 수집했을까요?
과거 청와대가 첩보를 수집했던 이유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과 수집한 정보를 통한 권력 유지입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김태우 수사관은 현재 비위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처벌을 받아야 할 김태우 수사관은 상부의 지시 없이 수집한 정보를 언론에 흘리고, 조선일보는 이를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덕분에 김태우 수사관은 마치 양심선언을 한 인물처럼 변신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김태우 수사관의 첩보로 오너 일가가 사찰을 받고 있다는 주장을 펼칠 수가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김태우 수사관의 첩보 리스트를 들고 문재인 정권이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주장합니다.
청와대가 과거 정부에서 근무하면서 했던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첩보를 수집했던 특별감찰반원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던 책임은 있지만, 주도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00 

한국 정치와 한국 진보는 화석이 되어버렸나?

[기고] 한반도의 새로운 상상력은 어디로 갔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장면은 거대한 5.1 경기장에서 그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을 앞에 두고 한 연설이었다. 이 열성적인 남녀 군중한테서 나오는 열정은 그 강도 면에서 놀랄만한 것이었으며, 문 대통령 자신도 이러한 반응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든 단어는 청중들의 무제한적인 환호를 통해 강조되고 부각되었다. 김일성을 인용했을 때에는 문 대통령과 군중들이 '하나의 몸'인 듯 보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이나 아이콘(iKON)의 콘서트가 아니면, 이 정도의 열정에 찬 대중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문 대통령에게 그 순간이 매혹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북한의 음모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축복을 받기 위해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절을 하는 공허한 의식이 정치적 관례가 되었고, 그러한 관례는 자신이 얼마나 접근하기 쉬운 사람인가를 증명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정치인들이 전혀 만난 적이 없으며, 향후에도 결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젊은이들 및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포즈를 취하는 또 다른 의식으로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직면한 상황은 달랐다. 그곳에 모인 군중들이 권력의 지배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군중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나는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헌신을 단순히 독재 정권의 표식으로 일축할 수 없다고 본다. 대규모 집회와 완벽하게 조정된 댄스 루틴 뒤의 모든 쇼맨십과 강압에는 '참여 심리학'을 암시하는 뚜렷한 에너지가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국에서 그런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2016년에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 집회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 항의 시위는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를 나타냈으며,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다는 좁은 의미의 목표에서 보면 성공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뒤에 숨어 있는 제도적 부패, 국내 경제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역으로 부상한 해외 투자은행들, 트럼프 행정부 지시에 대한 맹종과 집착, 이란과의 전쟁을 위해 미국 내 네오 파시스트 운동에 관련한 완전한 침묵 등의 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촛불 혁명' 대통령으로서 갖는 문 대통령의 신화는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서 정치가 쇠퇴하게 된 것은 인간의 경험에 대한 페티시즘적 접근 방식과 지나친 상업주의에 따른 결과이다. 삶의 모든 측면은 유료로 제공되는 일종의 서비스나 움직이면서 즐기는 일종의 황홀감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문화는 한국의 출생률이 절대적 최저점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에 자리 잡았으며, 최근 예멘 출신 난민에 대한 항의에서 표출되듯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 결합되었다. 

더욱 노쇠해진 사회는 고령자가 정치 과정 대부분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치 경제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것은 70세 이상 남성들이다. 이 문제는 부(副)의 집중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극히 일부만이 참여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 대신 게임과 포르노, 기타 현실 도피적 행위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방종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가 붕괴되었다.

진보주의 운동은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나 2000년대 초 노무현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열정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특히 진보적인 정치적 논쟁이 좁은 범위의 상징적 문제들로 한정되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인이 성적으로 학대한 '위안부'에 대한 논의는 끝없이 이어지지만, 오늘날 한국 남성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외국인 여성 학대에 대해 관심 갖는 이는 거의 없다. 또한 자유무역이 농업 및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금기 주제가 되었다. 

노년에 접어든 진보 정치 지도자 중 다수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라는 향수에 빠진 채 현재 한국의 노동 계급 젊은이들이 직면한 진정한 문제를 모르고 있다. 그들은 미국 민주당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보다는 좌파로부터의 비판에 더욱 관심이 있다. 결국 그러한 나이 든 지도자들 중 다수는 상당히 부유해졌으며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자녀나 손자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는 데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영향력이 큰 진보 정치 활동가들이 주최한 책 사인회에 초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올해 53세인 내가 참석자 중 최연소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멸종한 파충류 알로사우루스와 디메트로돈처럼 화석화된 이들은 그곳에 모여서 자신들이 70년대와 80년대에 만났던 학생들의 투쟁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장황하게 늘어놓은 다음 그 시대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몇몇 보수 정치인들에 대해 비난했지만, 일반 청년들이 직면한 악몽과 같은 세계에 직면한 일반 청년들이 저하된 현대 교육 하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쇠퇴하고 있는 경제 체제의 최전선에서 탐욕스러운 학원들과 그들을 고용해야 하는 기업들의 거만한 무관심 사이에 끼어있는 있는 한국 젊은이들이 그 행사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나이 든 진보주의자들이 청년들을 행사에 초대했다면, 행사 참석으로 인해 많은 이익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달 진보적인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곳에 진열된 한국어로 쓰인 교육, 경제, 사회 및 문화에 관한 책들은 훌륭했다. 서점 주인은 현대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가장 사려 깊은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이 든 지식인들이 만든 지적 공간과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세계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전역의 카페와 편의점에서 일하며 혼란스러워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 서점에 있는 책의 내용을 통해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독서하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겠지만 그러한 글들에서 찾을 수 있는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정직한 평가는 많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 젊은이들이 그러한 진보적인 서점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며 서점이 세워진 것을 매우 낯설게 여길 것이라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대중가요의 가사에서 자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은 의도에서 그러한 서점을 운영하는 고등 교육을 받고 부유한 사람들은 무자비한 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한국에서 살았던 11년 동안 4개의 진보적 비정부기구(NGO)에 참여했지만, 모든 곳에서 참여 문화가 사라진 것을 느껴 그만두었다. 그 NGO들은 내가 월 회비를 지급할 것을 기대했으며, 나는 연례 모임에 초대받았지만, 그 외의 다른 행사에는 참석할 기회가 없었으며,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도움을 제공할 방법이 없었다. 

회원 자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이 분명해졌다. 오히려 연례 모임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부유한 기부자들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다시 말해 이런 진보적 기부자들은 마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북극곰을 구하기 위한 캠페인을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진보적 활동을 바라보고 있다. 그린피스는 북극곰에게 의견을 말하거나 회원이 되도록 요청하지 않으며 진보적 단체들은 노동 계급 사람들에게 가입을 요청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던 NGO는 참여연대로, 대전과 서울에서 회원으로 참여했었다. 당시 나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관심사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사무실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이벤트를 게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제안은 거절당했다. 

4개월 전, 참여연대 측으로부터 회원 탈퇴 이유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또한 내가 행정 담당자들과 만나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나는 그들의 답변을 전혀 듣지 못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불행하게도 그러한 정치의 화석화 과정은 보수 진영이 더욱 심각하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보수 진영의 보수적인 항의 시위가 정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참석하는 이들은 한국, 미국, 이스라엘 깃발을 손에 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본과의 긴밀한 군사 협력을 위해 보수 정치인들 간에 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장기를 들고 있는 이들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집회들에서는 주로 반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기독교계의 지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방 정책,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의 발전 모델에 대한 찬양 등이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시위 참석자 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부착된 배지를 착용한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한국의 국제 무역 의존도를 높이고 농업을 경시하며 화석 연료를 대규모로 수입하기로 한 박 전 대통령의 결정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경제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추진력과 공교육에 대한 공약이 여전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실은 이 노인들이 한때 좌익 남로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경제적 자립을 주요 목표로 삼았던 박 전 대통령을 현재의 보수 정당들과 연관 짓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었다면, 현재 보수 진영에서 추진하고 있는 수입 식품 및 기타 중요한 물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외국의 투자 은행들이 한국 경제에 직접 간섭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황당한 경제 정책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맥쿼리 그룹과 같이 포식성을 갖고 있는 해외 금융 기관에게 자국의 인프라를 기꺼이 팔아넘기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었으면 민관합작투자 인프라 법(PPI Act)을 수용하거나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영세 자영업자들이 망하도록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은 한국의 전통을 파괴하고 카지노 홍보나 성형수술의 장려 또는 광고에서 성적 대상으로 여성의 역할을 국한시키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보수 정치에서 노인 집단의 가장 중요한 주요 자산은 한미 동맹이다. 한미 관계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선교사들 및 평화봉사단 자원 봉사자들과 한국 전쟁 이전 시대에 민주적 과정을 붕괴시킨 무자비한 군부 인사들이 어우러진 매우 복잡한 관계였다. 

노인 시위대는 실제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양국 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정하고 실질적인 제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은 급격한 발전보다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과거를 상징하는 비유가 되었다.

미국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이러한 태도를 통해 가장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과거 한국인들이 우수한 문화 및 경제력을 갖추었던 명나라를 형님으로 섬기며 예를 갖추었던 사대주의 방식이다. 결국 명나라는 1592년과 1598년 사이에 조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 구원병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양국 관계를 공고히 하는 일련의 캠페인을 통해 깊은 유대 관계가 형성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들에게 있어 명나라는 정치적·문화적 권위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가속화되고 있던 명나라의 정치, 도덕 및 제도적 쇠퇴는 17세기 초반 절정에 이르렀다. 명나라 정치 문화의 문화적 특징이 한국에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명나라 자체는 국내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갈가리 찢어졌고 결국 1644년 정치 단위로서는 완전히 파편화되어 붕괴되었다.

당시 한국 지식인의 대다수는 그 후 300여 년 동안 명나라의 문화적 권위에 충실했으며, 만주족이 청 왕조를 설립함으로써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천명이 위태롭게 된 이후에도 한국에 있는 기관을 유지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인들은 명 말기에도 쇠퇴하고 있는 징후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명나라의 권위는 멸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한국에는 현재까지도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1627~1644)의 연호를 계속 사용하는 유교 서원들이 있다. 

현재 보수주의 운동가들의 태도는 이와 상당히 유사해 보였는데 나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그만둔 이후에도 미국에 대한 그러한 충성심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 여부가 궁금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지만 그것은 이미 사라졌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가 현실에 직면할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의 지도자와 '사랑에 빠졌음'을 말하는 미국 대통령에 맞서 과거에 대한 그들 자신의 신화로 후퇴하고 있다. 

노인들에 의한 진보와 보수 담론의 지배 및 좁은 범위로 한정된 주제의 제한으로 인해 한국은 북한의 개방을 잘 활용할 능력이 마비되었다. 북한과 함께할 많은 프로젝트를 제안 및 실행할 수 있는 창조적인 젊은이들이 많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방관자로 남아있으며 갈수록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북한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가장 큰 난제는 한반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남한 사람들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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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찾은 신의주... 많이 달라졌구나

18.12.20 09:35l최종 업데이트 18.12.20 09:46l
글·사진: 신은미(eunmishin)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의 북한 여행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2017년 5월 신은미 시민기자가 다녀온 북한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편집자말]
 (서울=연합뉴스) 북한 선전매체 '내나라'가 공개한 함경북도 지역의 홍수 피해 모습. 홍수로 가옥들이 파손되고 다리가 끊어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201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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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선전매체 "내나라"가 2016년 9월 공개한 함경북도 지역의 홍수 피해 모습. 홍수로 가옥들이 파손되고 다리가 끊어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 내나라/연합뉴스

2016년 북녘의 대홍수

2016년 여름,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의 지역에서 큰 홍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수만 북녘동포들의 집이 파괴됐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중국에서 쌀을 구입해 북한에 전달하기로 결정한 것. '신은미 재단'을 설립하고 동시에 모금운동도 벌였다. 순식간에 4000만 원에 가까운 성금이 모였다. 남한의 동포들, 해외동포들, 그리고 뜻을 함께 하는 외국인들이 동참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한국의 은행 계좌로 입금된 남녘동포들의 성금을 해당 지점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인출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는 곧바로 서울에 사는 '신은미 재단' 이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변호사인 그분의 도움으로 성금을 송금할 수 있었다. 후일 <시사IN>은 당시의 인출거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안종범 수석에게 내린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관련 기사 : 개인 금융 정보까지 탈탈 턴 청와대).

북한의 식량 사정이 많이 좋아져서 예전처럼 힘들진 않다고들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쌀을 구입해 북한으로 가져가기로 한 것은, 비록 한 줌의 쌀에 불과하지만 남녘과 해외동포 그리고 함께 가슴 아파하는 외국인들의 마음을 따뜻한 '밥 한 공기' 속에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성금을 인출하니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미국 국적자가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내려면 미 재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하루빨리 쌀을 전해야 한다는 초조함 속에 몇 개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막상 미 재무부의 허가를 받고 나니, 이젠 쌀 구입을 할 생각에 가슴이 막막했다. 대체 쌀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해야 하며 이를 북한에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 건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남편과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소문 끝에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재중동포 3세 기업인 리헌호 사장을 소개받았다. 리 사장에게 쌀 구입부터 세관 통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북한 비자를 신청했다.

압록강철교 한가운데서 눈시울을 적시다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 신은미
  
2017년 5월 13일,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한다. 14일 밤 북경을 거쳐 심양공항에 도착하니 리헌호 사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심양의 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뒤, 다음날 아침 리 사장과 우리는 육로를 통해 중국의 국경도시 단동으로 향한다. 단동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를 바라보는 도시다.

단동에 도착하자마자 북한 영사관에 가 미리 신청해 놓은 비자를 받아 국경으로 향한다. 점심식사를 위해 압록강변에 위치한 북한식당 '류경식당'에 들어선다. 남편과 나의 남한 말투를 들은 식당의 종업원은 "남조선 사람은 받지 않습니다"라면서 거절한다.

리헌호 사장이 서툰 우리말로 "이분들은 해외동포인데 곧 북으로 갈 예정"이라면서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안으로 안내한다. 리 사장에 의하면 2016년 4월, 12명의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남으로 간 뒤부터 북한 식당은 남한 손님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고 한다(이후 이 집단 탈북 사건을 두고 '국정원의 기획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식사를 마친 후, 58톤의 쌀을 실은 화물 트럭이 세관을 통과해 압록강 철교로 진입하는 걸 확인한 리헌호 사장이 우리를 철교 바로 앞 출입국 사무소로 안내한다. 마음이 따스하고 친절한 리 사장님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다.

귀국하는 북녘동포들 틈에 섞여 출국 수속을 밟는다. 대부분 귀국하는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기대로 모두 들떠 있는 모습이다. 입고 있는 옷들도 모두 새로 사 입은 듯하다. 예전 우리네 추석 명절을 앞둔 기차역 귀성객 모습이다.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엑스레이 검색대에 가방을 올릴 때도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저 가방 속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들께 드릴 선물들이 가득 들어 있겠지. 나도 트럭에 실려 있을 쌀을 걱정하며 함께 국경버스를 타고 압록강을 건넌다.

민족의 슬픈 사연이 어린 압록강을 내려다 보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수해를 입은 북녘의 동포들에게 한 줌의 쌀을 전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하나. 쌀이 남아 돌아서 그 쌀의 보관료만도 수천억 원에 달한다는 남녘 쌀을 수해를 입은 북녘 동포에게 보낼 수는 없는 것인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끊어진 또 다른 철교 잔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강을 건넌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신의주
 
 신의주 화물 하역장에서. 평양에서 온 경미와 함께. 화물트럭 안에 실린 쌀이 바로 동포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쌀이다.
▲  신의주 화물 하역장에서. 평양에서 온 경미와 함께. 화물트럭 안에 실린 쌀이 바로 동포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쌀이다.
ⓒ 신은미
 
신의주 세관에 도착하니 평양에서 온 수양딸 경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신의주 해외동포위원회 직원도 함께 나와 우리의 수속을 도와준다. 2015년 10월 신의주를 방문했을 때 우리를 안내해 줬던 바로 그분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화물하역장으로 가 쌀을 확인한 뒤 신의주 시내에 들어선다. 2015년 10월 처음 신의주를 여행한 이후 두 번째 찾는 신의주.
 
 새로 짓는 '압록강려관'. 2017년 5월에 본 신의주는 2년 전의 신의주와 크게 달라져 있었다.
▲  새로 짓는 "압록강려관". 2017년 5월에 본 신의주는 2년 전의 신의주와 크게 달라져 있었다.
ⓒ 신은미
 
2017년의 신의주는 2015년의 신의주와 달랐다. 이곳도 평양과 마찬가지로 사방이 건설공사 중이다. 오늘밤 우리가 지낼 '압록강려관'도 바로 옆 빈터에 새 건물을 짓고 있다. 체크인을 한 뒤 방에 짐을 내려놓고 경미, 신의주 해외동포위원회 직원과 함께 여관을 나선다. 너무 피곤해 밥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마중 나온 이들을 위해 식당을 찾는다.

압록강에서 채취한 조개로 만든 조갯국, 오이물김치 덕에 겨우 섭조개죽 한 그릇을 비웠다. 남편도 피로 때문에 식욕이 없는지 다른 음식은 손도 안대고 육회를 안주삼아 대동강맥주만 마신다. 저녁식사를 마치니 피로가 엄습해 온다. '압록강려관'으로 돌아와 힘없이 쓰러진다. 로스앤젤레스, 북경, 심양, 단동, 신의주를 잇는 긴 여정이었다.

내일(2017년 5월 16일)은 평의선(평양-신의주) 열차를 타고 수양딸들이 살고 있는 평양으로 간다.
  
 섭조개죽.
▲  섭조개죽.
ⓒ 신은미

대격변의 근원,'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


<2018 송년특집 ③>북한 내부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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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9  16: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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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018년은 한마디로 ‘격변의 해’였습니다. 70여 년에 걸친 분단과 전쟁의 역사에 파열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웬만큼 굵직한 사건들을 차치하더라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역시 세 차례의 북중정상회담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것입니다.
한반도에 과연 평화와 통일의 싹이 틀 것인가? 올해 안에 예상됐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의 내년으로의 순연과 내년 초 예정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기대를 걸면서, 통일뉴스는 <2018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미관계 ③북한 내부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4월 20일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하고 '비핵화'와 함께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제시했다.[통일뉴스 자료사진]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
지난 4월 20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노선과 전략적 구호를 선언하면서 2018년 한반도는 대격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김 위원장은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4월 전원회의)에서 '우리 공화국이 세계적인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천명했다.
5년 전인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을 병진시킬데 대한 혁명적인 전략적 노선'(병진노선)에서 핵무력을 빼고 경제건설에 매진하겠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선포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 노선이 내세운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수행된 오늘 우리 당앞에는 승리의 신심드높이 혁명의 전진속도를 보다 가속화하여 사회주의 위업의 최후승리를 앞당겨야 할 중대한 혁명과업이 나서고 있다"며, 새로운 노선을 채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핵과 관련해서는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었고 운반타격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며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했다.
'국가핵무력 완성'에서 탄생한 '비핵화'의지와 새로운 노선 
김 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전격적으로 병진노선의 포기와 경제발전 노선을 대내외에 선포함으로써 '비핵화 실현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화두는 단숨에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새로운 전략적 노선의 선포는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의 개막'으로 해석되었다. 병진노선이 김정은 위원장의 손끝에서 벼려지고 완결되긴 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장선이었고, '국가핵무력 완성'이라는 김 위원장의 업적에 기초해 비로소 새로운 노선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인 평가이지만 북의 변화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 발사 성공을 계기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올해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적 환경 조성, 남북관계 개선'을 제안할 때부터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3월 초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에게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함께 비핵화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 김정은 시대 ‘과학중시, 인재중시’의 상징인 평양 과학기술전당. 2016년 준공되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4월 전원회의 의정보고에 나선 김 위원장은 새로운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당면 목표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 완수'로, 전망적으로는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여 인민생활을 유족하고 문명하게 마련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또 노선 관철을 위한 과업과 방도로는 △당과 국가의 전반 사업에서 경제사업 우선시 △경제발전에 나라의 인적, 물적, 기술적 잠재력 총동원 △모든 부문과 단위에서 자력갱생, 자급자족 구호 △과학기술에 철저히 의거한 자강력 증대 등을 내세웠다.
당 조직들은 모든 일꾼들과 당원, 근로자들에게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의 진수와 정당성을 깊이 인식시켜 경제사업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새로운 노선이 그리는 미래는 그럭저럭 먹고 사는 생활이 아니라 경제분야 뿐만 아니라 전반적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유족한 생활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꾸준히 보도했고, 당과 국가는 자력갱생과 과학기술 중시의 정신을 앞세워 경제발전에 총력을 집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내용은 결정서를 통해 △핵무기 병기화 실현 선언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및 북부핵시험장 폐기 △세계 핵군축의 중요 과정인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 △핵위협과 핵도발없는 한 핵무기 절대 사용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 이전하지 않을 것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건설, 인민생활을 높이는 투쟁에 모든 노력 집중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환경, 조선(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주변국들과 긴밀한 대화를 적극화할 것 등으로 압축, 표현됐다.
'새로운 노선'이 꿈꾸는 미래는 '세계적 수준의 풍요'
김 위원장은 연초부터 미리 준비한 것 처럼 경제발전에 대한 열망을 피력했고 4월에 채택할 새로운 노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행보를 시작했다.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한 김 위원장이 올해 첫 현지지도를 나간 곳은 1월 12일(이하 날짜는 보도일자) 국가과학원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을 개선향상시키기 위한 지름길은 과학기술을 앞세우는데 있다"며 '국가과학원은 자력자강의 고향집'이라는 말을 남겼다.
국가과학원을 찾은 지 며칠 지나 새로 개건한 평양교원대학(1월 17일)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4월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과학기술강국, 인재강국 건설을 위한 과학교육사업의 혁명적 전환'을 예견한 것 처럼 강조했다.
물론 김책공업종합대학 창립 70주년 방문(9월 29일)때에는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는 4월 전원회의의 구호를 역설했다.
평양제약공장(1월 25일), 평양무궤도전차공장(2월 1일) 현지지도에서도 한결같은 방향은 자력갱생과 인민경제 향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비공개 회담(5월 26일)을 하기 직전에도 동해안 고암-답촌철길을 시찰(5월 25일)하고,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5월 26일)을 현지지도했으며,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서는 새로 건설된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6월 9일)을 돌아볼 정도였다.
심지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 11일 밤에는 수행원들과 함께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과 주빌리 다리, 싱가포르 항을 깜짝 방문해 싱가포르의 관광사업, 도시계획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6월과 7월에는 신도군(6월 30일) 현지지도를 시작으로 신의주화장품공장과 신의주방직공장(7월 2일) 등 평안북도 현지지도, 삼지연군 중흥농장과 감자가루생산공장, 건설장 등(7월 10일) 현지지도, 어랑천발전소건설장과 낙산바다연어양어사업소·석막대서양연어종어장, 청진조선소,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9월1일기계공장, 염분진호텔건설장, 온포휴양소, 경성군 중평리 대규모 남새온실농장터, 청진가방공장(7월 17일) 등 함경북도 현지지도, 강원도양묘장(7월 24일), 군 제525호공장(7월 25일), 송도원종합식료공장·원산영예군인가방공장(7월 26일) 등 북한 전역의 경제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올 여름 폭염속에서도 평양무궤도전차공장과 버스수리공장(8월 4일), 삼천메기공장(8월 6일), 금산포젓갈가공공장(8월 8일), 운곡지구종합목장·연풍호방류어업사업소(8월 13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평안남도 양덕군 온천지구(8월 17일), 함경북도 경성군 온포온실농장건설준비사업(8월 18일), 삼지연군 건설장(8월 19일), 묘향산의료기구공장(8월 21일)을 다니는 모습에서 '인민경제 향상'에 대한 열망이 묻어났다.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는 삼지연관현악단 극장(10월 11일), 삼지연군(10월 30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건설장(11월 1일), 신의주시건설총계획 지도(11월 16일), 대관유리공장(11월 18일), 동해지구 수산사업소들(12월 1일), 원산구두공장(12월 3일)으로 이어졌다.
반면, 올해 북한 언론에 공개된 김 위원장의 군사분야 행보는 2월 8일로 날짜를 옮긴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참가하고 11월 16일 국방과학원 시험장을 찾아 새로 개발한 첨단전술무기시험을 지도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북한에서 전승절로 기념하는 7월 27일을 하루 앞두고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를 찾아 그곳에서 만난 제5차 전국노병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평안북도 신도군을 현지지도하면서 인근 군부대를 시찰(6월 30일)한 것이 더 있을 정도이다.
  
▲ 북한은 지난 5월 24일 외신을 초청해 풍계리 핵시험장을 폭파 폐기하는 의식을 진행하고 이를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외신을 초청해 풍계리 핵시험장을 폭파 폐기(5월 24일)한 것은 북의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조치였다.
새로운 노선따라 북은 계속 변화할 것
그러나 뿌리깊은 북미 적대관계가 하루 아침에 해소되기는 어려운 법.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새로운 북미관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은 이후 구체적 이행과정에서 획기적 진전과 답보, 교착과 반전을 거듭하면서 아직은 결실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와 여러차례 진행한 고위급 회담 등 직접 접촉을 통해 북의 비핵화 의지와 새로운 노선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여전히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 원칙을 고수하면서 전방위적으로 대북제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최근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담화를 통해 미국의 제재로 조선(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미국과의 협상판을 깰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내년에는 어떨까?
한편으로, 미국이 경제발전에 대한 북한의 열망을 마치 약점인 양 여기고 제재를 무기삼아 완전한 비핵화를 강박하는 국면이 계속된다면 상황은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김경일 중국 베이징대학교 동방학부 교수는 "북한이 새로 채택한 경제발전 노선과 핵은 100% 반비례한다. 경제발전을 이루면 이룰수록, 개혁·개방을 심화시키면 시킬수록,  핵포기 가능성은 커진다"면서 미국의 제재 압박은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난 14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로 열린 국제회의 패널로 참가해 "북한이 경제발전 노선을 선택한 것을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굴복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견해가 적지 않지만 경제발전노선을 채택한 것은 김정은 시대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로드맵"이라고 하면서 "북한이 새로운 노선을 채택한 것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앞으로 북한의 변화에서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새로 채택한 경제발전 노선이 단기적 목표 달성을 위해 세워진 계획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건 총적 방향이며, 쉽게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