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일 일요일

손에서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강정과 평화는 계속 이어진다

"강정, 쓰러지지 마라…전 세계에서 응원"
[언론 네트워크] 손에서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강정과 평화는 계속 이어진다



생명평화마을 제주 서귀포시 강정. 지난 2007년 4월26일, 강정마을에서 주민 1200여 명 중 불과 87명만이 참석한, 그것도 마을 정관까지 어겨가며 소집된 임시총회를 통해 '박수'로 해군기지가 유치 결정된지 어언 3000일. 강정을 생명평화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길고 험난한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범국민문화제-함께 온 길! 강정평화 3000' 평화콘서트 현장에 이동편집국을 마련해 강정마을의 생생한 생명평화 기운을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 강정마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2015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하 대행진)이 5박 6일의 일정으로 무사히 끝났다. 무더위 속 고된 행진을 평화의 마음으로 즐겁게 감내한 참가자들은 강정천 운동장에서 열린 평화콘서트로 그동안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리며 다시 한 번 '강정의 평화'를 기원했다.

올해 대행진을 갈무리한 평화콘서트는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강정천 운동장 특설무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평화콘서트의 부제는 '함께 온 길! 강정평화 3000'이다. 전체 주민 1200여명 가운데 87명의 박수로 결정된 해군기지 유치에 분개하며 강정주민들이 일어선지 3000일, 그 동안의 험난했던 여정을 위로하며 앞으로의 3000일 역시 '함께 가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 2015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 5박 6일의 행진에 이어 8월 1일 열린 평화콘서트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제주의소리

1일 낮 12시 30분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만난 동진·서진 행렬은 서로의 손을 잡는 인간 띠 잇기로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고, 강정천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쌓인 피로와 이야기 거리를 풀었다. 이후 준비된 식사와 풍성한 프리마켓으로 기분전환에 나섰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평화콘서트는 1부 해단식과 2부 공연으로 나눠 진행됐다. 해단식은 춤비숨비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동진 단장 강동균 전 마을회장과 서진 단장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소장의 행진 마무리 인사, 대행진 영상 관람, 국제 참가자들의 연대 발언, 인디밴드 액트(ACT)의 공연으로 진행됐다.

2부는 본격적인 공연으로 꾸려졌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모인 '쌍차 노래패', 강정초등학교 학생들의 합창,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의 비눗방울 퍼포먼스, 격려기금 전달, 가수 반하리,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가 순서대로 무대에 오른 후 모두 함께 '강정 댄스'를 추는 순서로 마무리됐다.
▲ 평화콘서트 게스트로 참여한 꽃다지의 공연. ⓒ제주의소리

그야말로 '목이 완전히 가버린' 두 단장은 해단식에서 아무 탈 없이 따라와 준 동지들에게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강동균 단장은 "어린 친구들, 학생들이 어느 때 보다 많이 참여해 감격했다"며 희망을 주목했고, 홍기룡 단장은 "이 시간이 끝나서 각자 생활 속에 돌아가도 함께 했던 순간을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대행진은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전국, 전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특히 해외 참가자는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마리아나 군도 티니아 섬 등 대부분 전쟁과 군사기지로 몸살을 앓는 지역에서 왔다.

미군과 수십 년을 싸워온 오키나와, 마찬가지로 미군과 갈등을 빚어온 필리핀, 중국·미국의 힘 싸움 가운데 놓인 대만, 태평양전쟁 당시 군사기지가 있던 티니아 섬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실은 B-29기가 출격한 지역이다.

연대 발언에서 강정과 끈끈한 관계인 오키나와 참가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대행진에 참여하겠다는 든든한 마음을 전했고, 대만에서 온 인원은 3000일간의 투쟁에 대한 찬사로 "GangJeong is Amazing!"(강정은 정말 놀랍다)이라고 외쳤다.

필리핀 참가자는 불끈 쥔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며 "어느 누구도 여러분(강정주민, 지킴이)의 영혼을 빼앗을 수 없다"고 힘을 불어넣었다.

티니아 섬에서 온 인원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여러분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부디 (해군기지 투쟁을) 멈추지 마라. 포기하지 않고 연대할 때 우리는 언젠가 승리한다"고 밝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어 대행진 종료 소감을 밝힌 문정현 천주교 신부는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올까' 걱정이 앞섰지만 수백 명이 신청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은 기대로 바뀌었다"며 "(여러분이 있기에) 나는 희망을 놓을 수가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강정을 지키자. 우리의 불꽃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대행진 참가자들에게 반갑게 고마움을 전하는 문정현 신부. ⓒ제주의소리

2부 공연은 지친 피로를 씻어주고, 새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열정의 시간이었다.

3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 극단 '새벽'의 단원들로 구성된 인디밴드 액트(ACT)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쌍차 노래패는 강정, 용산, 밀양, 세월호 모두 함께 싸워가는 동지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대표곡 '함께 꾸는 꿈'을 열창했고, 성인가요 가수 '반하리'는 뛰어난 무대 매너와 구성진 목소리로 흥을 듬뿍 불어넣었다.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는 멋진 비누방울 퍼포먼스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2부 순서 가운데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됐다. 강정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잠시 떠난 평화운동가 실버, 파코가 6주 동안 미국 10개 도시를 돌며 모금한 강정투쟁기금을 전달한 것이다.

마이크를 잡은 실버는 "미국에서 강정을 알리면서 느낀 점은 강정에서 함께 싸웠던 평화운동가들은 각자 위치로 돌아가서도 강정을 위해 어떤 역할이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전했다.

소중한 정성을 받은 조경철 마을회장은 "비록 우리도 싸우고 있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강정이 되겠다"며 3000일에도 굴하지 않은 '강정인'의 의지와 성숙함을 보였다.

다시 이어진 공연은 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와 국내 대표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무대로 절정을 향했다.

강정을 포함해 많은 현장에서 불리는 노래 '바위처럼'을 처음 부른 것으로 알려진 꽃다지는 원조다운 실력을 뽐내며 큰 호응을 받았다.

킹스턴 루디스카는 2007년 강정에 공연하러 왔다가 경관에 매료돼 앨범 사진까지 이곳에서 찍었다는 남다른 사연을 자랑했다.

▲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의 비누방울 퍼포먼스에 환호하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강정에 평화'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른 킹스턴 루디스카 멤버들. ⓒ제주의소리

리더 최철욱 씨는 "3000일 동안 꿋꿋하게 걸어오셨는데 저희 음악이 강정에 작은 위로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모두를 일으켜 세운 킹스턴 루디스카의 신나는 무대가 끝나고 평화콘서트는 '강정댄스'로 대미를 장식했다. 다 함께 노래 '바위처럼', '강정마을 좋아송'에 맞춰 춤추는 장관이 연출됐다.

불안으로 시작한 대행진은 희망으로 끝이 났다. 작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참가자들과 넓어지는 구성은 강정이 아직 살아있음을 입증했다.

여전히 비난의 화살은 존재한다. 누군가는 '돈 받고 온 것 아니냐', '더운데 생고생이다'라고 비아냥거리지만, 그것은 '조건 없이 함께 하는 연대를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존재들의 슬픈 질투'일 뿐임을 대행진 참가자들은 말이 아닌 몸으로 일축시켰다.

물론 강정천 운동장을 채운 1000여명이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쳐도 다음 날 아침이면 공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진행된다. 당분간은 공사를 멈추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강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강정이 쓰러지지 않기를 전세계에서 바라기 때문이다. 그 바람의 증명이 바로 생명평화대행진이다.

평화콘서트는 모두가 함께 사진을 찍는 순서로 마무리됐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이와 어른이 손을 잡았다. 강정 그리고 평화는 손에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그렇게 이어졌다.

'강정아 너는 비록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강우일 주교)

▲ 강정초등학교 학생들의 합창. ⓒ제주의소리

▲ 쌍차 노래패. ⓒ제주의소리

▲ 평화운동가 실버(맨 왼쪽)와 파크(가운데)가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에게 투쟁기금과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다함께 강정 댄스를 추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평화콘서트 마지막 무대에서 즐겁게 강정 댄스를 추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제주의소리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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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녘 독도, 일본 순시선이 다가왔다

등록 :2015-08-02 19:12수정 :2015-08-03 01:15

광복 70돌의 해인 올해 6월11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의 동도 헬기장에서 바라본 서도가 수직으로 웅장하게 치솟아 있다. 독도/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광복 70돌의 해인 올해 6월11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의 동도 헬기장에서 바라본 서도가 수직으로 웅장하게 치솟아 있다. 독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광복·분단 70년 - 다시 쓰는 징비]
① 독도에서 본 광복 70년
독도에 파랑이 일었다. 너울이 허연 거품을 앞세워 동도 선착장 너머로 거칠게 밀려 들어왔다. “오늘은 배가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고, K2 소총을 멘 채 동남쪽 바다를 지켜보던 한 경비대원이 말했다. 심상한 표정과 어투였다. 파도가 치면 1주, 2주 갇히기 일쑤인 독도의 날씨를 일상으로 겪으며 밴 심상함일 터이다.
과연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배들은 이날 선착장에 닿지 못한 채 독도를 한바퀴 돌고는 되돌아갔다. 6월12일 속절없이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다.
주 2회 독도 한바퀴 돌아나가
그때마다 해경 경비정은
밀어내기 대치로 막아내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뒤
일, 집요하게 ‘영유권 주장’
다음날에도 짙게 낀 구름은 새벽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해의 말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에도, 독도경비대 2층 상황실에는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을 나중에 전해들었다. 새벽 5시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독도 동쪽 영해선을 향해 접근해왔다. 독도 동도 꼭대기 98.6m 지점에 설치된 레이더가 이를 포착했다. 레이더병은 일본어와 영어로 배가 한국의 영해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리고 영해선을 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당직관은 곧장 해경 경비정 5001함과 해군·공군 부대로 상황을 전파했다. 24시간 독도 주변을 돌고 있는 해경 경비정이 즉각 일본 순시선 쪽으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일본 순시선은 여느 때처럼 12해리 영해선을 넘지 않은 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독도 주변을 한바퀴 돌아 울릉도와 독도 사이 공해로 빠져나갔다. 일본 순시선은 주 2회가량 독도로 접근한다. “그때마다 해경 경비정이 영해선 안쪽에서 밀어내기 자세로 대치하며 따라 돈다”고 송지원 독도 주둔 경찰경비대 지역대장(경감)이 말했다.
일본 순시선의 독도 접근은 장구한 기간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미군 포고에 따라 일본 선박들은 한동안 독도 해역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1951년 한국이 빠진 채 연합국과 일본 사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것을 계기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 순시선들이 독도에 출현했다. 1953~54년 일본은 한국의 영토 표지를 2차례 제거하고, 4차례 일본령 표지를 세웠다. 한국도 그때마다 이를 뽑아냈다. 53년 7월12일에는 울릉도경찰서 독도순찰반이 영해를 침범했다가 달아나는 일본 순시선을 향해 경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하기도 했다.(정병준 <독도 1947>) 한국전쟁의 한편에서 한때의 식민 강점국 일본과 신생 대한민국 사이에 독도를 둔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독도는 작고 외로우리라는 선입견을 깨고 우뚝했다. 울릉도에서 망망대해를 두시간여 배로 달리면 수직으로 치솟은 서도가 먼저 눈길을 잡는다. 168.5m지만, 바다 위에 돌출해 한층 웅장했다. 승객들이 너나없이 “와” 하는 탄성을 토했다. 서도를 마주보며 동도는 151m 거리에 밀착해 있다. ‘국토의 솟을대문’(이근배 ‘독도 만세’)이라는 시인의 묘사는 적확해 보였다.
일본은 대한제국 영토 중 가장 먼저 독도를 강점했다. 바다 한가운데 솟구친 독도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러시아의 방해로 한반도에서 물러나야 했던 일본은, 10년 뒤인 1904년 2월 대한제국에 다시 군대를 진주시키면서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1905년 1월2일에는 뤼순 요새를 함락시키고, 러시아 극동함대(제1태평양 함대)에 괴멸적 타격을 입혔다. 그 직후인 1월28일 일본은 각의 결정으로 독도를 시마네현에 복속시킨다. 발트해의 기지를 떠나 동해로 향하던 러시아 최강의 제2태평양 함대를 감시할 망루를 독도에 세우려는 목적에서였다. 당시 내무성에서는 “지금의 국면에 한국 영지로 생각되는 황막한 일개 불모지 바위섬을 접수하여 여러 외국에 우리나라가 한국 병합의 야심이 있다는 의심을 키운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야마자 엔지로 외무성 정무국장은 “이러한 때에야말로 영토 편입을 급선무로 해야 할 것이라, 망루를 건설하고 무선이나 해저 전신을 설치한다면 적함 감시가 매우 좋아질 것”이라고 일축했다.(와다 하루키 ‘독도의 역사적 의미와 해결법’)
독도, 우리 국토의 ‘솟을대문’…군사적 가치 커 일본 일찍이 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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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전초기지’ 전략성 중요성 알고
집요한 영유권 주장 억지
방위백서, 독도에 ‘빨간 동그라미’

한국전쟁 와중에도
독도 둘러싸고 한-일 충돌 기록도
독도를 삼킨 일본은, 220일 동안 지구 둘레 4분의 3인 2만9000㎞를 돌아오느라 지친 러시아 함대를 쓰시마 해협에서 대파했다. 이어 달아나는 러시아 함선들을 울릉도 동남쪽 독도 인근 해역까지 추격해 항복을 받아냈다. 러시아를 이긴 일본은 미국이 중재한 포츠머스 강화조약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러시아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일본은 곧이어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5년 뒤인 1910년에는 한반도 전체를 강제병합한다. 독도를 잃은 대한제국은 나라까지 빼앗겼다. 2차대전 패전으로 한반도에서 물러나고도 끝까지 독도 영유권만은 내려놓지 않겠다는 일본의 욕망이 불길한 이유다.
독도를 일본령으로 삼아 군사적 전초기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44년 뒤 미국에 의해 부활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준비 과정에서 미국은 초반에는 줄곧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는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1949년 11월 주일본 미정치고문실의 윌리엄 시볼드 정치담당관이 “리앙쿠르암(독도의 서구 명칭)에 대한 재고를 요청함. 이들 섬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유효한 것으로 보임. 안보적 고려에서 그곳에 기상 및 레이더 기지를 상정해볼 수 있음”이라는 의견서를 낸다. 독도를 불안정한 한국보다 만만한 일본 영토로 만들어 대소련 전초기지로 손쉽게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쪽으로 180도 입장을 뒤집고 만다. 이후 일본이 두고두고 ‘미국도 독도가 일본 땅임을 인정했다’며 독도의 분쟁지역화에 나서게끔 만든 배경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노골적 책동에도 독도는 꿋꿋이 한국 영토로 서 있다. 첫째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 의지를 뚜렷이 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 체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1947년 시행된 일본 평화헌법 제9조는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전쟁 및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했다. 1953년 독도 충돌 때 일본도 무력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안에서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헌법 금지 사항”이라며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 평화헌법 체제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미-중 패권 다툼 가능성이 부상하는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신념에 따라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은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며 미·일 군사일체화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중국 또한 이에 맞서 ‘대국굴기’의 ‘중국몽’을 꿈꾸며 빠른 속도로 군사력을 팽창시키고 있다. 한국의 유일 동맹국인 미국이 미-일 동맹의 확장판으로서 한-미-일 삼각공조 구축에 한국의 참여를 강하게 압박하는 점은 급변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복잡성을 배가한다.
더불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 7월20일에는 11년째 <방위백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 기재했다. 한·중·일 방공식별구역 표시 지도에는 ‘다케시마’에 영유권을 뜻하는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과거사 역주행 속에 영토 야심은 폭주하는 양상이다.
그 결과는 110년 만에 다시 한번 동아시아 지정학의 ‘열점’으로 독도가 부각되는 지금의 형국이다. 애초 독도는 460만년 전 지각의 틈을 뚫고 마그마가 분출하는 지질학적 ‘열점’의 생성물로 태어났다. 국가 간 힘과 의지가 충돌하는 열점의 운명이 다시금 독도, 나아가 한반도를 덮치지 않으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광복·분단 70돌을 맞아 ‘징비’의 의미를 가장 먼저 ‘독도’에서 떠올린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란을 겪고, 또다른 전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삼가는 기록’ <징비록>을 남겼다. 광복 70돌, 구한말 격랑의 그림자가 다시금 어른거린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지식인 500여명은 7월29일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을 통해 “동아시아의 과거사를 둘러싼 충돌이 민족주의 충돌로 이어지고 영토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과거 회귀는 전쟁 위기와 안보 불안으로 확대되고 각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망국의 그때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나라로 성장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난제를 여전히 품은 위에 열강 다툼의 파열음도 높아가고 있다. 묵은 과제와 새 도전이 한데 몰아치고 있다.
류성룡은 변화를 미리 읽지도, 자강하지도 못한 조선의 비극을 징비했다. <징비록> 연구서를 쓴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통일된 미래도 우리 것이 아닐 것”(<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지정학의 격랑을 이겨낼 것인가? 광복 70돌의 해에 독도 선착장에서 일렁이는 바다를 보며 동아시아의 격동을 헤쳐나갈 담대한 상상력을 묻는다. 13일 오전 10시30분께 파도가 조금 순해진 틈을 타 접안한 울릉행 여객선에 올랐다. 독도에는 주민 2명과 등대원 3명, 경비대원 45명, 수를 셀 길 없는 갈매기들이 남았다.
독도/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북, "괴뢰 대결 광분 댓가 참혹"경고


"병진 노선 헐 뜯는 것은 악랄한 정치적 도발" 비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02 [18: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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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시킬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을 비난하며 자신의 노선을 헐뜯는 남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언론들은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이날 '대결광신자들은 대화상대로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남조선괴뢰들이 대화를 극성스럽게 외워대는 그 입으로 우리의 노선과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방미 중인 김무성 대표의 우드로윌슨센터 오찬연설을 지목해 "김무성 역도는 상전 앞에서 온갖 아양을 다 떨며 북이 병진노선을 포기하도록 외교안보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망발을 줴쳐댔다"고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괴뢰통일부 대변인이라는 자도 우리의 병진노선에 대해 감히 그 무슨 '삶의 질 향상과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느니, 개탄이니 하며 악의에 차서 헐뜯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은 "자주와 존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얼간망둥이들과 어떻게 민족의 운명를 논하는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대결을 구하는 남조선괴뢰패당은 우리의 대화상대로 될 수 없다"고 피력했다. 

논평은 "괴뢰들이 대화를 떠들면서도 우리의 병진노선을 헐뜯는 악담질에 미쳐돌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대화가 아니라 대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단정했다.

특히 "우리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키는 것은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갈 전략적 노선"이라고 주장하고 "괴뢰역적패당이 병진노선에 대해 시비질하며 못된 수작을 늘어놓는 것은 우리에 대한 악랄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은 "우리의 자주적 노선과 존엄 높은 체제에 감히 도전하는 자들과는 애당초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며 "남조선 괴뢰들은 대화 상대방을 함부로 헐뜯으며 대결에 광분한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상훈공동대표 11일째 묵비단식투쟁 ... 암투병 김혜영회원 8일째 묵비단식

  • [사회] 이상훈공동대표 11일째 묵비단식투쟁 ... 암투병 김혜영회원 8일째 묵비단식



  •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이상훈공동대표가 11일간이나 완강한 묵비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월31일 서울구치소로 송치됐으나 이상훈공동대표는 국가보안법철폐, 보안수사대·국가정보원해체, 박근혜폭압<정권>퇴진을 요구하며 묵비단식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상훈공동대표는 또한 코리아연대에 대해 이적단체혐의를 들씌우고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개악해 이적단체로 판결나면 강제해산하려고 하는 박근혜<정권>의 파쇼적 음모를 폭로하며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투쟁하고 있다. 

    현재 이상훈공동대표는 보안수사대의 강압수사로 인해 앉아있기도 힘들정도로 건강이 상해있다. 

    한편 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도 지난 26일 연행된 이래 오늘로 8일째 역시 인정심문도 거부하고 철저히 묵비단식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김혜영회원은 암수술을 2번이나 받았으며 지속적으로 투약해야 하는 몸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단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투약을 중단하고 있다. 그로 인해 심각한 구토증상을 보이고 있으나 고통을 감내하며 묵비단식투쟁을 완강하게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헌데 김혜영회원이 수감된 남대문경찰서는 일요일이라고 생수반입을 금지하는 등 상식이하의 반인권적 행태를 보여 코리아연대회원들과 시민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고있다. 

    남대문경찰서는 그렇지않아도 지난 4월말 코리아연대회원들을 연행한데 대해 항의하는 여성회원을 성추행하고 회원들을 폭행한 사건으로 현재 법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태에 있다. 

    이에 코리아연대측은 오늘부터 그동안 종로서에 집중했던 1인시위를 남대문서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후 가장 강력히 항의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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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유신공주로 자기 세계에 갇혀...
박 대통령 기본개념 전혀 없어"

15.02.13 11:16l최종 업데이트 15.08.03 00:50l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 심장마비로 별세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향년 73세. <오마이뉴스>는 김수행 교수의 생전 인터뷰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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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지난 2년 박근혜 정부에 대해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과 좀 다를 것 같았는 데, 금세 본색을 드러냈다"며 "경제는 더 나빠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그동안 뭐 한 것도 없지 않았나"고 평가했다.
ⓒ 유성호



"여기가 지금 지옥이에요, 지옥…. 뭐하나 제대로 가고 있는 게 있나 봐. 정치도, 경제도, 복지도 그렇고….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종북'이라고 딱지를 붙여 버리고 말야. 이런 사회에서 무슨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어요."

그는 마치 작심이라도 한 듯했다. 그의 입에선 '지옥', '엉터리', '나쁜 놈', '말도 안 되는 소리' 등의 단어가 계속 터져 나왔다. 백발의 노(老) 교수는 거침이 없었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72)다. 예전에도 그와 수차례 인터뷰를 했던 기자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되물었다.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라며 "지금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에요"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 그는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프랑스대혁명 시절에 있는 것 같다"면서 "그게 1789년 이야기인데, 그때나 볼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래서야 되겠어요?"라며 다시 되물었다.

지난 2월 6일 오후 고려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국내 최대의 마르크스주의 포럼인 '맑시즘 2015' 첫날 강연을 마친 다음이었다. 문과대 202호 강의실은 학생과 직장인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김 교수는 언제나 그랬듯이 하얀색 칠판 위에 그래프를 그려가며 자본론을 강의했다. 그는 당초 예정됐던 1시간 30분의 시간이 못내 아쉬웠던 것 같았다.

- 강의 후에 학생들 질문이 많았던 것 같던데요.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여러 고민들도 보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이 부족했지. 이런 강의는 항상 그래요. 어느 외국인도 질문을 하던데, 나중에라도 좀더 토론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 지난해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국내에 소개되고, 장하성 교수도 '한국자본주의'를 펴내면서, 불평등과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는데요.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은 말그대로 부(富)를 말하는 거예요. 맑스의 '자본'과 다르지. 다만 피케티 주장의 핵심은 분배 문제인데, 그동안 자본주의 병폐가 불평등과 양극화 잖아요. 그것을 수백년의 자료로 입증해 보인 거예요. 주류경제학 입장에선 그의 주장에 '쇼크'를 먹은 거지."

김 교수의 말은 계속됐다. 이미 반복되는 경제위기 속에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는 "이미 지난 수십 년동안 미국 등에선 부자감세를 비롯해 사회보장제도가 해체되면서 빈부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했다. 양극화에 따른 부의 불평등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이미 맑스가 살던 시대부터 개혁과제를 내놨어요. 1848년 공산당 선언 등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위해 소득 누진세를 도입하고,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상속 제한 등 말이에요. 무상 교육도 있었고…. 나중에 서구국가들이 1950년대에 들어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고…."

"복지를 줄인다고? 여기는 지옥이야, 지옥...."

그는 이어 "당장 자본주의가 없어지거나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끊임없이 개혁을 추진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복지 논쟁도 마찬가지였다. 그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박근혜 정부 2년 평가로 흘러갔다.

- 박근혜 정부가 만 2년이 지나고, 3년차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그래, 벌써 그렇게 됐어.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과 좀 다를 것 같았는데, 금세 본색을 드러냈어. 그냥 MB 것 거의 그대로 했는데…. 경제는 더 나뻐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그동안 뭐 한 것도 없지 않아요?"

- 애초 내걸었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등 공약이 줄줄이 사라지고, 인사파동으로 시간만 보냈다는 지적도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게 말이에요. 내가 보기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든, 경제든 기본적인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머리가 없어요. 그냥 유신공주로서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 같아. 내가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은데, 세월호 사고를 보고 저 사람이 대통령인가 싶기도 하고…."

그는 '세월호 사고'를 꺼냈다. 작년 4월 기자가 김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관련기사: "박근혜 대통령 자격없다, 집권층 무너져도 혼란없어"). 김 교수는 "정말 자기 자식 죽은 부모의 심정을 그 사람(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이 얼마나 슬퍼하고,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해결해줘야 하지 않은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올들어 연말정산 파동으로 증세와 복지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지금 청와대나 여당 모두 결국 복지 지출 줄이자는 거 아니에요. 오이시디(OECD)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가 복지 지출에서 거의 꼴지라고 하는데, 지금 무엇을 얼마나 쓰고 있길래 줄이자고 하는지…. 내 생각엔,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복지를 안 하고 있는 게 문제야."

- 여당에선 무상급식이나 보육 등에 들어가는 부담이 크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돈이 없다고 하면서 이미 증세로 서민들한테 돈을 거둬가고 있잖아. 담뱃세부터 말이야. 그런데 부자들은 모두 금고에 돈을 쌓아두고, 기업들도 마찬가지고…. 부자들부터 제대로 세금을 거둬야지."

"MB의 4대강 등 그 아까운 돈들을... 정말 나쁜 놈들"

-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 해서 고용 늘리면 세금도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고개를 흔들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민간기업들은 이윤을 볼 수 있는 정도만 사람을 고용하잖아. 거기에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은 실업자야. 기업들은 실업률 같은 거 신경도 안 써요. 정말로 실업률 낮추고, 일자리 만들려면 정부가 나서야지."

김 교수의 비판은 계속됐다. 다시 그의 말이다.

"정부 1년 예산이 수백조 원이에요. 그것부터 제대로 잘 쓰면 돼.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와 복지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쓸데없이 돈을 써버리잖아.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4대강 사업한다고 22조 원인가 쓰고, 자원외교한다고 수조 원 날리고…. 그 피 같은 국민들 돈을 말이야…. 정말 나쁜 놈들이야."

-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 극복했다고 썼는데요.
"(목소리를 높이며) 무슨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자기가 무슨 옛날 대공황 시절 루즈벨트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는 모양이구만. 4대강사업 한다고 그 돈을 대기업들한테 다 나눠줬는데, 무슨 위기를 극복했다고…."

- 요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지면서, 조기 레임덕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자업자득이지. 누가 좋아하겠어. 지금 사람들 사는 것이 지옥이에요, 지옥. 그래도 처음에 무슨 복지국가한다고 했으니 기대라도 했지만, 아니잖아. 청와대서 나오는 이야기 보면 무슨 지들끼리 권력싸움이나 하고 있질 않나, 그 사람들한테 국민들이 안중에도 없어요."

"참으로 더티한 나라, 과거로 후퇴한 민주화, 다시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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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보수 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각종 복지공약으로 표를 모을 것"이라며 "야당이 보다 선명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다음 선거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여전한데요.
"야당에 있는 친구들이 말이에요. 새누리당과 같은 수준의 복지 이야기를 하면 안 돼. 좀더 진보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보여줘야지. 지금 실업,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해요. 정말 기업들이 맘대로 해고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를 하든지, 노동조합의 권한이나 지위를 대폭 높여서 기업들과 대등하게 해주든지."

김 교수는 "아마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에도 정권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각종 복지공약으로 표를 모을 것"이라며 "야당이 선명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다음 선거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에서 민주화의 후퇴를 가장 우려하며 "후퇴가 정치·경제·사회 등 우리 전반에 걸쳐 있다"고 아쉬워 했다. 그러면서 언론과 표현의 기본 자유가 침해받는 현실을 두고 "참으로 더티한(dirty, 더러운) 사회"라고 평가했다. 1시간을 훌쩍 넘는 인터뷰 내내 그의 직설은 계속됐다.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지를 물었다.

"(웃으면서) 3년이나 남았나. 어떻게 하겠어, 계속 이야기를 해야지. 우리가 어떻게 얻은 민주화인데, 지금 이렇게 후퇴해 버리면 되겠어요? 사상적으로 국민들을 이간질하고 말이야. 참으로 더티한 사회야.  그래도, 이래선 안 되니까, 계속해서 정치든, 경제든 다시 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싸워야지. 그래야 바뀌지 않겠어. 나부터, 당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