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기득권 대 국민이라는 ‘포퓰리즘적 균열’이 눈에 띄진 않았다. 그러나 내년 대선은 다를 것이다.”
정치사회학자 김호기 교수가 선거 당일 새벽 SNS에 남긴 글이다.
“유력 대선후보 두 사람이 미국 샌더스와 같은 진보적 포퓰리즘을, 프랑스 마크롱과 같은 중도적 포퓰리즘을 앞세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가 촉발하고 구조화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우리 사회에서도 ‘포퓰리즘적 모멘트’에 불을 댕길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가 진보포퓰리스트와 중도포퓰리스트를 누구라고 찍어 언급하진 않았다.
그러나 능히 추측 가능하다. 이재명과 윤석열이다. 결국 내년 대선은 이재명 대 윤석열의 구도일까.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연합, 사진공동취재단
■ 코로나 격리, SNS 글로 사과한 이낙연 “국민 여러분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4·7 재보선으로 표현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합니다. (…) 성찰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대한민국과 민주당의 미래를 차분히 생각하며, 낮은 곳에서 국민을 뵙겠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개표가 마감된 후 4월 8일 아침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전날 그는 출구조사가 중계되는 당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진자 접촉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총괄하는 입장에서 선거결과가 뚜렷해지는 시점에 입장을 표명해야 했지만 타이밍이 늦었다. 사즉생(死卽生)이 필요했지만 사는 길을 택했다. 기자가 접촉한 정치전문가들은 선거참패의 책임으로 유력 대권주자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이낙연이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정세균이 나와 대번에 10% 정도로 뛰어오르면 확 기울게 된다. 그러면 여권에서는 이재명 독주체제가 되는데 지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한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 소장의 말이다. 공표 금지 기간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퇴(3월 4일) 직후 단독 1위로 올라선 지지율이 3.5% 정도 빠진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지율이 2.7% 올랐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치고 올라가면 제일 타격이 큰 쪽이 이재명이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둘의 관계가 대체재나 보완재라는 것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 사람들은 ‘윤석열은 개혁적인데 (이 정권에서) 억울하게 탄압받았다, 추미애이고 대통령이고 다 나서서 윤석열을 못살게 굴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윤석열의 고공행진이 계속되면 이재명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진다. 민주당 내에서는 1위일지 모르지만.”
앞서 이낙연과 정세균의 관계도 대체재나 보완재로 인식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총리 출신이며 지역적 기반도 비슷하다.
“정세균계에서는 이낙연 쪽을 흡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 이합집산이 일어날 것이다. 이재명이 유력주자가 되면서 이재명계 쪽에서 행사나 콘퍼런스를 하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의원들도 얼굴을 비친다. 정 총리가 물러나면 개각이 있을 것이고, 그동안 불만이 누적돼온 경제부총리 교체 요구도 나올 것이다. 그동안 몸 풀던 군소후보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신철우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당을 깨는 수순까지는 안 가겠지만 선거 후 당·청 인적 쇄신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신 평론가가 주목하는 것은 이광재 의원의 움직임이다. “원래 이광재는 정세균을 돕기로 약속돼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서 부산에 상주하면서 김영춘 선거를 도왔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던 시절의 PK 인연을 동원했다. 현지에서는 ‘김영춘 선거가 아니라 이광재 선거’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양정철발로 알려진 이른바 ‘13룡 등판론’도 힘을 받을 기세다. ‘포스트 이낙연 체제’에서 전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잠룡 정치인들을 차기 리더십으로 키우자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다.
4월 8일 오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참석을 마친 뒤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 김종인, 윤석열 킹메이커로?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 이후는 상당 기간 윤석열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정치평론가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의 말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적 의미가 큰 사건이다. 촛불과 탄핵으로 하나의 분기점이 됐던 정치적 변곡점이 민주당의 거듭된 실패와 불공정·기득권화로 다시 원점에 돌아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3지대의 공간이 넓어진 상태의 원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힘이 실리는 것은 아직 뚜렷하게 정치적 향방을 밝히지 않고 있는 윤석열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윤석열이 어떤 정치적 행보를 하냐에 따라 나머지는 변수가 될 것이다.”
당장 주목되는 것은 선거 이튿날인 4월 8일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내려놓은 김종인의 행보다.
국민의힘 외곽에서 윤석열의 대권행보에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전 비대위원장은 윤석열과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이제 자연인으로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가에는 벌써부터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당장 국민의힘 바깥에서 윤석열과 함께 전 정권관련자나 비리전력자, 김종인 비대위에 반기를 들었던 당 중진들을 내치고 보수개혁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추측이 돌고 있다. 서울시장 경선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안철수나 김무성, 이재오 등 구정권 실세들을 제외하고 흡수한다는 시나리오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역할론도 끊임없이 나온다. 과거 안철수나 현 여권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등에서 뜻을 맞춘 적이 있는 김종인·윤여준이 이번에는 윤석열 대권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관측이다.
윤여준 전 장관 측 인사는 “사실 윤 전 장관은 지난해 이재명 전 지사 측의 요청으로 두어 번 만난 것으로 알고 있고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이라며 “여론조사에서 이재명이 단독 1위로 올라선 뒤 이재명 측에서 발길을 끊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이 이재명 측 ‘제안’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안 왔고, 그 사이에 윤석열이 뜨게 되자 두 사람 모두에게 메시지를 낸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이 종친(파평 윤씨)이라 뒷말도 나올 수 있고, 김종인이 나서게 되면 윤 장관은 자연스럽게 뒤로 빠질 것”이라는 것이 이 인사의 관측이다.
야권에서는 유승민, 원희룡, 홍준표 등 다른 잠재적 대권주자도 있지만 향후 행보가 가장 주목되는 것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공동유세 과정에서 공언한 공동운영을 넘어선 합당은 윤석열의 움직임과 함께 서울시장 선거 후 진행될 야권발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단일화 결과를 깔끔히 수용하고 선거에서 열심히 뛰면서 보수 쪽으로부터 믿을 만하다는 이미지와 신망을 받았다”고 평가하며 “정치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여전히 안철수에게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실시된 4.7 재보궐선거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변화와 개혁, 철저하고 진지한 성찰을 통해 재출발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을 보여줬다. 선거 유세 현장에서 싸늘한 민심을 마주했다. 당의 모습을 냉철하게 되돌아보고 변화해야 할 시기다.
우리 민주당은 보궐선거의 원인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 이번 보궐선거의 원인은 우리 당 공직자의 불미스러운 성비위 사건이었기에 진솔한 반성이 전제돼야 했다. 그러나 당헌·당규를 무리하게 개정해서 결국 후보를 냈으며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한참 늦었다. 피해방지대책 역시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민주당을 보며 시민은 돌아섰다.
또한, 민주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혁명의 이념에서 멀어졌다. 2016년 전국민으로부터 일어난 촛불은 적폐청산을 요구했다. 소수의 정치경제적 특권을 축소하고, 중산층과 사회적 약자를 함께 품자는 목소리였다.
이러한 요구에 힘입어 민주 정부가 탄생했다. 우리 당이 강령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일치하는 지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떠했는가? 적폐청산은 기존의 제도가 가진 불합리성을 제거하면서 균형있는 제도로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기존 제도에서 편익을 보는 행위자와 비용을 부담하는 행위자의 불균형을 새로운 균형점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연히, 정부가 비용과 편익의 불균형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적폐청산을 선악의 구도로 이해하고 높은 지지율에 현혹돼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을 배제해왔다. 우리만 옳다는 오만함으로 국민을 가르치려 했으며 촛불연합 세력에서 스스로 고립됐다.
▲ 4.7재보궐선거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난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한 신문가판대에 재보선 결과를 알리는 일간지들이 꽂혀 있다. 일간지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민심은 매서웠다... "무능, 오만" 여당 참패"(경향신문), "부동산 분노, 정부-여당 심판했다"(동아일보), "41대0... 분노한 민심, 정권을 심판했다"(조선일보), "정권을 심판했다, 서울이 뒤집어졌다"(중앙일보), "여당 참패, 무섭게 돌아선 민심"(한겨레), "분노의 민심, 여 독주 뒤엎다"(한국일보)
첫째, 우리 스스로 특권 세력이 돼 있었다.적폐청산과 개혁에 이의를 제기하는 집단을 악으로 규정하여 무시했다. 도덕적 우월성과 선악 프레임을 바탕으로 한 일방적인 소통 단절은 국민이 보기에 또 다른 특권 세력으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더 나아가 민주당은 그에 대한 비판을 과거 역사와 언론만을 탓하기 바빴다. 오만하고 또 교만한 모습의 연속이었다.
둘째, 국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 부동산 정책에 있어 시장원리를 무시한 집행은 국민들께 실망을 안겨드렸다. 투기와 투자는 구별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다주택자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해 나쁜 것이라 규정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득이 2주택을 소유한 국민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무시하고 전문성이 결여된 정책으로 국민은 내집마련이라는 희망 앞에서 좌절했다.
또한, 무조건적인 대출 규제로 청년을 비롯한 생애최초주택을 마련하려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부동산 정책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인정하고 시장의 작동원리를 세심하게 살필 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국민의 삶에 와닿는 정책들을 구사해야 한다.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 등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계층에 대해서는 취득비용을 줄여주기 위해 취득세와 등록세 감면, 그리고 금융지원제도(장기 모지기) 등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에 의해 부담으로 작용할 종부세는, 특히 은퇴 이후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만 60세 이상 1주택 실거주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해당 주택을 양도하거나 상속, 증여할 때까지 과세를 미뤄 납부할 수 있는 과세이연제의 도입 역시 필요하다.
셋째, 유례없는 코로나로 인한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에 전세계적으로 모범적 대응을 한 국가로 손꼽힌다. 이른바 'K-방역'이다. 'K-방역'의 주인공은 국민의 적극적인 협력과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이다. 정부의 성과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K-방역의 성과를 정부의 것으로 적극 홍보했다. 물론, "덕분에"로 국민께 감사를 표했다. 그 이후는 어떠했는가? 공공의료기관의 적자와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중소영세자영업자의 손실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일을 뒤로한 채, 코로나 이후 뉴딜정책에 대해서만 적극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계속되는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공감하는 정책이 우선시됐어야 한다.
근본적인 변화
'골목식당'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 가게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인데, 장사가 안되는 이유는 누구나 안다. 청결, 서비스, 맛 어느 하나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왜 자기 음식이 인기가 없는지 '식당주인 자신만 모른다'는 것이다. 식당주인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식당의 간판만 바꿔 신장개업하면 고객은 금방 알아챈다.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식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레시피, 서비스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 요구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현장과 괴리된 정책만을 추진해왔고, 국민의 냉정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 국민이 주신 명령은 민주당이 지향하는 사회, 공정함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루는 국가를 바로 세우라는 것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어렵다. 한동안 지속돼온 기존 지형의 세력교체가 필요하고, 당의 구성원이 다양해져야 한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 지도부 구성부터 국민의 눈높이에서 혁신해야 하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월 9일, 나를 비롯한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국민들의 처절함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으며, 초선이 혁신의 주체가 돼 앞장서겠다는 입장문을 밝힌 바 있다. 어느새 기득권 정당이 된 민주당의 변화와 개혁, 철저하고 진지한 성찰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당,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좌담] ② <다시 촛불이 묻는다> 이병천·조돈문·전강수 교수가 짚은 '문재인 정부 4년'
박세열 기자/조성은 기자 | 기사입력 2021.04.10. 08:32:03 최종수정 2021.04.10. 17:36:51
4.7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야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현 정부를 이끌어가는 집권 세력과 집권 여당에 대해 민심이 강력한 경고음을 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41.1% 득표율) 서울 득표율은 크게 3자대결(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가운데에서도 42.34%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에서 박영선 후보가 받은 표는 양자 구도에서 39.18%. 핵심 지지층 일부가 집권여당을 떠났다는 얘기다. 여기에 문 대통령 집권 초반 ‘반 자유한국당’블록까지 아우르며 지지율 70%를 넘나들던 시절을 보정해 넣으면 이번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얻은 득표율은 초라한 수치다. 물론 정치적 요인(박원순 전 시장의 성비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상 등)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지만, 지지층과 기대층의 사회경제 개혁 요구를 외면했거나 갈팡질팡 해 왔던 현 정부의 행태에도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촛불 정부를 자임한 현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다. 지난 2018년 7월 문재인 정부 2년차를 맞아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개혁 과정의 지지부진함을 비판하며 선언문을 낸 적이 있다. 그 후 2년 반 이상이 지났다. 지금은 어떨까. 문재인 정부가 놓인 현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다시 촛불이 묻는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 소개 기사 바로가기 : 문재인정부는 양극화, 재벌개혁, 노동문제 등 '촛불'의 약속을 지켰나?)
2018년 7월은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였다. 사회 개혁 정책이 전환점을 맞았던 시점으로 평가할 만 하다. 당시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의 상징이었던 홍장표 경제수석은 물러났고, 노동 시간 단축 등 사회 개혁 의제 깊숙이 재계(경총)가 침투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당시 국회 내 민주당 의석수의 상대적 열세(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한)를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일(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 등)을 등한시한 것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에 담겨 있던 진보적 의제들은 속속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시 촛불이 묻는다>는 수치와 실증을 통해 문재인 정부 4년차 사회경제 개혁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부 의제에선 약간의 성과가 확인됐지만, 많은 의제에서 제자리걸음을 했거나, 심지어 ‘후퇴’한 사실들이 기록돼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상황이라는 악조건이 있었지만, 그 부분을 보정한다고 해도 촛불 정부 출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나 시대적 요구에 현저히 부응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결론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의 사회 개혁은 왜 실패했는가. 민심은 왜 돌아섰는가. 현 정부 정책 결정권자들이 꼭 살펴야 할 화두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5년차에 접어드는 시점에,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를 위해 <프레시안>과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좌담회를 열었다. <프레시안> 박세열 편집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는 <다시 촛불이 묻는다> 기획에 참여한 이병천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가 함께 했다. 좌담은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 전인 4월 2일 <프레시안>에서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두편에 나눠서 싣는다.편집자
프레시안 : 문재인정부의 초반 개혁 의지까진 의심하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개혁 추진 동력을 자의적, 타의적으로 잃어버리면서 사회 개혁은 지금 여전히 요원한 상황에 머물러 있다. 불공정,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거의 시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공정’ 담론은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갔다. 특히 부동산 문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강수 교수가 책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은 GDP 대비 토지자산비율이 매우 비정상적이다. 2018년 지식인선언네트워크의 성명 전후 시점이 정부가 ‘부동산을 잡겠다’고 나섰던 시점과 비슷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불신이 커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전강수 : 오늘 <한겨레>에 칼럼이 실린 걸 봤는데 이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열화(劣化)복제판(절연체가 외부적인 영향이나 내부적인 영향에 따라 화학적 및 물리적 성질이 나빠지는 현상. 열화 복제판은 주로 화질, 품질이 낮게 복제한 판본이라는 의미로 쓰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망쳐놨는데 문재인 정부는 가당치 않게 완전히 버려놨다는 식이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노무현 정부의 연속선에서 평가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사이에 굉장한 차별성이 있다. 이 차별성의 큰 요인 중 하나는 좌담 초반에서 언급한 ‘개혁 인사’의 위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계승이라고 한다. 왜냐면 김수현 전 정책실장이 두 정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잘못됐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을 지휘한 건 이정우 당시 초대 정책실장이다. 그걸 잊고 엉뚱한 비유를 갖고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또 이 칼럼에는 헨리 조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노무현 정부나 지금 정부나 헨리 조지의 사상에 따라서 부동산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수언론 어디에서는 ‘김수현도 헨리 조지학파, 변창흠도 헨리 조지학파, 토지공개념같은 것으로 정책 하다가 망쳤다’는 식으로 비난하는데, 제가 그런 글들을 보다보다 화가 났다. 그래서 지난달 <영남일보>에 ‘헨리 조지학파의 항변’ 이라는 칼럼을 썼다.
김수현 전 실장의 생각은 헨리 조지의 생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변창흠 장관은 2.4대책으로 서울을 고층아파트로 뒤덮으려고 했는데 무슨 헨리 조지에 비유를 하나, 실제 헨리 조지학파가 항변한다, 저 사람들은 아니다.
이 말을 왜 하냐면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는 분명한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러 측면에서 잘못한 것도 있지만 종합부동산세라는 유용한 세금을 만들었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 당시 청와대 근무한 사람들조차도 ‘이거 안된다, 부담이 크다’ 했는데도 끝까지 이걸 밀어붙인 게 노 전 대통령이다.
프레시안 : “절대 돌이킬 수 없는 부동산세를 만들겠다”라는 말도 했다.
전강수 :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강남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다”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다루는 데 있어 의지도 다르고 정책 내용도 다르다. 예를 들면 균형발전 정책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혁신도시를 곳곳에 만들고 행정수도를 만들었는데 이런 건 그 당시에 보면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그런데 균형발전 정책을 이 정부에 들어서 제대로 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최근에 내놓은 게 2.4대책이라고 62만 채를 서울 수도권에 짓겠다고 한다. 이런 수도권 중심주의가 어딨나. 완전히 균형발전정책은 팽개쳐 졌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도 굉장히 중요한데. 이것도 적당히 면피성으로 하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는 실제로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연 10만 호씩 공급했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반토막 났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거의 안 하다시피 했다. 이 정부 들어서 복원이 되긴 했는데 노무현정부 때와 비교하면 시원치 않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차이는 먼저 대통령의 의지. 두 번째는 정책 참모의 차이가 크다. 부동산 정책은 단순히 집값을 어떻게 하고 주택 가격을 마사지하는 그런 정책이 아니다. 그런데 4년 가까이 거의 그쪽에만 치중했다. 집값과 전쟁하고, 집값 잡겠다 하고. 부동산 정책의 모든 걸 주택가격에 타깃을 맞췄다. 정부가 가격하고 싸움해서 이길 수 있나. 가격을 직접 타깃으로 할 경우 여기 잡으면 저기 터지고 저기 잡으니 여기 터진다. 이 정부 들어서 역대 정부 최고로 집값이 올랐다. 역대 정부 최대로 풍선효과가 일어났다.
프레시안 : 어떤 방식을 써야 할까.
전강수 : 이건 정공법이 필요한 문제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환수할 수 있는 조세정책을 써야 한다. 보유세 강화 정책 말고는 없다. 만약 부동산 보유세를 장기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가져간다는 걸 처음부터 발표하고 꾸준히 추진했다면, 부동산 시장 참가자들이 ‘이 정부가 진짜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구나’하고 믿었을 거다. 그럼 지난 몇 년 동안의 엄청난 투기도 안 일어났거나 적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2017년 대선 며칠 전에 캠프 정책 담당자가 나와서 “우리는 보유세 강화할 방침이 현재로서는 없다”라고 기자회견을 한다. 그걸 보고 나는 무슨 짓인가 싶었다. 이건 무슨 얘기냐면, 강력한 신호를 준 것이다. 부동산 시장을 근본적으로 안 건드린다, 안심해라.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고 본다. 부동산 정책이라는 건 초반에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 요 몇 년을 보면서 부동산 투기는 보통 괴물이 아니고, 보통 의지가 없으면 이길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근절하려면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조세저항이 크기 때문에. 조세저항을 해결하는 대안을 붙여서 가야 한다. 지금은 두 가지가 나와 있다. 먼저 보유세를 강화하면서 다른 세금을 좀 줄이자는 것, 두 번째로는 보유세를 거둬서 기본소득으로 배당하자는 방안. 이런 식으로 가면 조세저항 문제를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현재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보나.
전강수 : 투기수요가 일어나서 집값이 폭등했는데 왜 서울을 고층아파트단지로 뒤덮어서 해결하려고 하나. 이건 15년, 20년 전부터 보수세력이 주장하던 논리다. 집값 폭등은 공급이 부족해서 발생하니,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거다. 이걸 이 정부가 결국 수용한 것으로 본다. 3기 신도시를 여기저기 만들고 급기야 2.4대책을 통해 서울에 공공주도의 재개발을 한다고 한다. 그런 무리한 정책이 어딨나. 공급이 부족하면 실수요를 파악해 거기에 맞춰 공급하면 된다. 지금은 수요가 투기 때문에 팽창해 있는 상황이다.
또 하나는 왜 민간이 사용하는 주택을 정부가 나서서 자꾸 공급하는가 하는 문제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이나 토지임대부주택 같은 공공성 강한 정책을 맡아서 하고 재개발이든 재건축이든 나머지는 민간이 알아서 땅을 사서, 알아서 짓게 해야 한다. 국유지를 왜 푸나. 민간이 알아서 땅을 사서 조성해 짓게 하고, 갈등이 있으면 민간이 비용을 대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풀게 하든지 해야 하는 것이다. 원래 재개발은 40-50년 걸린다. 그걸 왜 정부가 나서서 기간 단축해주고 개발 이익을 소유주들에게 돌려주고 난리를 치나. 그런 정책은 정책을 시행하고 주관하는 기관에게 엄청난 재량권이 생긴다. LH 사태 같은 일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이번에 안 터졌으면 더 교묘하게 터졌을 거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본다.
▲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심화되는 불공정, 불평등, 양극화 문제
프레시안 : 한국에서 부동산이 갖는 사회경제적 의미는 참 특별하다. 지금 자산 양극화, 불평등의 문제가 모두 부동산의 ‘사회경제학’과 연관이 돼 있다. 답답한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도 평가이지만, 곧 있으면 2021년은 대선이 있는 등 한국 사회는 권력 교체기에 접어든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우선시됐으면 하는지 이야기 해 보자.
이병천 : 부동산정책은 전 교수 말씀대로 종부세를 강화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정부는 종부세 트라우마에 걸려 계속 뒷북을 열심히 쳤지만 종부세 강화는 언제가 되든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이와 함께 현안이 되어 있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그리고 부동산백지신탁제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부동산정책 트랙은 주거권의 문제다. 주거 불안은 일자리 불안, 생명과 건강 불안과 함께 우리 시대 한국인의 3대 핵심 불안문제, 불평등문제이고 삶의 기본적 필요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공공임대주택비율이 OECD 국가들 중에 굉장히 낮다.
그런데 주거라는 게 삶의 다른 문제들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은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이 깔려 있다. 또 좋은 입지가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다.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역균형발전을 비롯해 다른 발전 정책들과 같이 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주거에는 교육, 지역, 문화 등 삶의 온갖 이슈들이 다 따라가게 돼 있다. 그래서 어렵다. 부동산 정책, 주거권 보장정책, 교육정책, 균형발전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잘 설계하고 조합해서 갈 수 있어야 한다.
조돈문 : 부동산 문제는 두 분이 많이 말했으니까 저는 비정규직 문제를 추가로 이야기하겠다. 문재인 정부 출범할 때 <한겨레>가 한 여론조사를 보면,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과제로는 1순위가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노동시장 문제였다.
비정규직 문제를 보면 핵심적인 정책 대안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가 상시적 업무에 대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두 번째가 정규직-비정규직뿐 아니라 남성-여성,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관철. 그리고 ILO 핵심 협약 비준과 그에 따른 노동자 개념 정의 확대였다. 우리 노동조합법은 2조에 ‘노동자’ 개념을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걸 실제로 ‘노무 서비스를 제공해서 임금을 받는 사람’을 포괄하라는 게 ILO의 요구다. 우리 헌법 정신과도 부합한다. 이 3가지가 핵심이다. 이게 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공약, 대선 공약에 있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 하나도 실현하지 않았다. 이 정부가 처음에 출범할 때 첫날 일자리위원회 설치하는 걸 제1호 지시사항으로 해서 설치했고, 이틀 뒤에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었다. 인천공항은 굉장히 악명높은 사업장이었다. 공항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다 비정규직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사업장에 가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문제의 핵심을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뭐가 되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다른 주요 공약은 거의 안 지켜졌고 거의 유일하게 한 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가 훨씬 나은 점은, 친노동적이라는 거다. 그것이 드러나는 부분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규모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월등히 규모가 크다. 다음 차이는 공공부문에서 이명박-박근혜는 ‘직접고용된 기간제 비정규직’만 정규직 전환 대상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포함했다. 문재인 정부가 그만큼 나아진 거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 방식은 좀 아쉽다. 자회사 방식을 정규직 전환으로 분류했다. 그건 KTX 여성 승무원들이 10년 이상 싸운 이슈였던 것 아닌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노동자 김 군도 외주하청업체 은성PSD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하면 김 군이 세상을 떠날 일이 없었을까. 자회사 방식으로 가도 간접고용이라서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민간 부분은 더 심각한데, 공공부문이 모범 사용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이런 짓을 한 셈이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프레시안 : 전국민고용보험을 도입하겠다는 게 지금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인데, 현재까지 어떻게 되고 있는 건가.
조돈문: 사실 코로나 사태도 문재인 정부가 친노동·진보적인 정책을 펼치게 했다. 코로나 사태로 작년에 실직된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8배 정도로 훨씬 많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 한국형 실업부조제를 도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비정규직 실직이 너무 많고 그 사람들이 고용보험 혜택도 못 받으니까 전국민 고용보험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3주년 대통령 특별담화로 발표했다. 거기까지는 참 좋았다.
정부는 세 단계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 대상으로 아직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저임금 비정규직을 조속히 가입한다. 그다음 특수고용 비정규직, 프리랜서 같은 사람들은 빠른 시일내 편입시킨다. 그리고 자영업자는 사회적 합의, 사회적 대화를 거쳐 포함하겠다는 방안이었다.
첫 번째 대상인 고용보험 미가입된 저임금 비정규직은 현재도 의무가입대상이다. 이 부분은 법을 안 고치고도 가입시킬 수 있다. 지금 비정규직 중 20%는 법적으로 고용보험 가입대상에서 배제돼 있다. 나머지 80%는 의무가입대상인데. 그중 절반만 가입된 상태다. 그럼 가입되지 않은 40%는 지금 법 하나 안 고치고 가입시킬 수 있다. 정부가 정책 의지만 있으면 정규직 전환 안 해도 비정규직 상태에서 고용보험 혜택을 줄 수 있다.
그것도 안 한 상태에서 자영업자 얘기를 했다. 자영업자를 끌어들이려면 고용보험은 어떻게 설계하나. 그리고 자영업자는 좀 다른 게, 실직하는 게 비정규직을 포함한 일반 노동자들과 다르다. 노동자들은 자기가 실직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사용자가 결정하면 그 피해로 실직하는 거다. 그런데 자영업자는 자기가 자기 사업을 접는 거다. 스스로 실업자가 되는 거다.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특히 자영업자 중 고소득 자영업자는 소득적출률이 절반밖에 안 된다. 50%밖에 안된다. 이걸 높여야 하는데 이게 1-2년 안에 안 된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에 못한다. 현 정부 임기 동안에 할 수 없는 자영업자 얘기를 하면서, 지금 현재 법상으로도 의무가입대상이고 당장 고용보험에 편입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그 이후에 정책대안이 하나도 안 나왔다. 전국민고용보험제 선언이 맞는 얘기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발표하는 정책, 하겠다는 선언, 그리고 실제 추진하고 있는 정책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 배반감과 실망감을 준다.
▲ 이병천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프레시안 : 마무리 주제로 넘어가겠다. ‘다시 촛불이 묻는다’라는 책 제목을 변주하자면, 곧 다가올 권력 교체기에 ‘다시 촛불은 무엇을 물어야 할까‘
이병천 : 씁쓸한 상황이다. 박근혜 국정농단과 촛불항쟁 덕분에 집권한 정부가 4년을 보냈는데,이제 개혁 결과는 거의 드러났다.
조돈문 : 이 정부보다는 다음 정부 얘기를 하자.
이병천 : 이 정부의 개혁실패는 정말 아픈 실패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항쟁 동력으로 세워졌고 여기까지 왔다. 한국이 다시 전향적인 새 진로를 열려고 한다면 그만큼 아래로부터 새로운 동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동력이 다시 어떻게 나올까. 지금 이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의 힘세력이 거의 완벽하게 부활했다. 이들 세력이 잘해서 부활한 게 전혀 아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정치의 현주소이고, 사회경제적으로는 복합위기 함정에 빠져 있다. 다층적인 불평등 위기에 코로나 위기, 기후위기까지 겹쳐 있다.
K방역의 성공때문에 많이 가려졌으나 우리는 분명 어두운 전환의 계곡 안에 들어와 있다. 여기서 새로운 스텝을 받으려면 새로운 아래로부터 동력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 환경을 보면 매우 어렵다.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은 굉장히 험난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쩔 수없이 좀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대안세력이라고 불리는 세력은 극우적 성향이거나, 또는 주변화되어 버린 상황이다. 여기에 현 집권세력은 매우 보수화됐다.
이병천 : 우리는 지난 87년 6월항쟁 이후에 군부세력이 재집권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운동정치의 에너지, 열망 같은 게 크게 무너졌다. 운동의 정치와 제도의 정치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2016년 촛불항쟁 이후에는 다행스럽게도 촛불민심을 실현하겠다는 중도정부가 출범했다. 그래서 일각에선 6월항쟁이 완성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오늘날 촛불정부가 남긴 결과가 민심이 이반하고 역풍을 불게 한 이런 지점(사회경제 정책적 실패)이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현재의 정치적 지형으로 보자면, 이런 여러 가지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들을 보수·수구세력이 낚아챌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 때문에 더욱 우려된다.
프레시안 : 새로운, 큰 동력은 없고, 사람들의 바람들은 모두 파편화된 것 같다.
전강수 : 이 정부가 워낙 헤매서, 반면교사로서는 괜찮은 거 같다. 다음 권력 교체기에 다행히도 합리적인 정부가 들어선다면 굉장한 자료가 축적돼 있을 수 있다. ‘아, 이렇게 가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 식으로 교훈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희망을 가지고 싶다.
과거를 회고해 보면 어느 정부든, 즉,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개혁과제를 안 내세운 정부가 없었다. 또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을 내세웠다. 그런데 과연 실제로 무엇을 이루었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남북관계 개선, 검찰개혁 문제 등은 생각나는데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개혁을 이뤘는지, 별로 생각이 안 난다. 다음 정부가 들어선다면, 사회경제 분야에서 확실한 개혁노선을 견지해야 한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정치지도자들이 확고한 정책 철학이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게 부족했던 것 같다. 현 정부가 지지율에 굉장히 민감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당황하고, 그래서 지지율 올리기 정책에만 매달려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분명한 정책 철학은 뒷전이 되고 개혁 노선은 사라지게 된다. 대증 요법, 그것도 정치적 대증요법에만 치중한 것 아닌가.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실질적 개혁을 등한시했다는 게.
‘보여지는 단기간 결과에 집착한다’는 데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이나 다음 정부 담당하는 분들은 제발 그러지 말고 분명한 개혁철학을 세우고 흔들림 없이 추진했으면 좋겠다. 그 개혁을 추진할 때 저항이 있겠지만, 왜 우리 대통령들, 정치인들은 모든 국민한테 사랑을 받으려고 하나.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욕먹을 각오도 해야한다.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관철시키고 그게 개혁적 결과를 조금 늦더라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다음 정부의 주역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탁을 하고 싶다.
조돈문 : 저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게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보수정당(민주당)이 그 정도 대선공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그 선거가 촛불 대선이었기 때문인 거 같다. 문제는 그런 정책을 펼칠 때는 기득권세력이 엄청나게 저항할 텐데 거기에 대한 준비가 안 돼있었다는 거다. 정책의 마스터플랜도, 그걸 돌파하는 정치력과 뚝심도 부족했다.
핵심은 소득주도성장이라 생각한다. 이게 경제정책이면서 동시에 사회정책이다. 그 자체로 정치적인 전략이다.
스웨덴은 1920년대 사회민주당이 이걸 들고 나왔다. 그때는 사민당이 집권한 적이 없었고 보수정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다. 그때 스웨덴이 경제위기와 일자리위기, 고용위기를 겪었다. 지금 우리 상황하고 비슷하다. 그때 사민당이 내수시장을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공공부문의 지출을 확대하고, 노동자 임금을 올리고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정당의 정책이 외면받고 시민들이 사민당에 ‘니네 한번 해봐라’ 했는데, 막상 그 정책을 추진하니까 경제문제가 해결되고 일자리가 생기고 고용문제가 해결된 거다. 사람들은 계속 사민당에 표를 줬다. 사민당은 1932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우리가 ‘기재부로 권력이 다시 돌아갔기 때문에 이 정부의 사회경제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 이유도, 소득주도성장이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노동 정책, 사회 정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든 정권하에서 사회정책은 경제정책의 하위범주로 다뤄졌다. 경제정책이 결정되면 그걸 뒤치다꺼리하는... 아니면 경제정책을 펼치는데 있어서 따라오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지난 대선 공약을 보면, 사회문제 노동문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대안들이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패키지 속에 들어가 있었다.
공약은 잘 돼 있었는데 앞서 좌담 초반에 언급한대로 큰 틀의 플랜 없이 가다가 그걸 중단하면서 기재부 페이스로 말려드니까 결국 다시 이윤주도성장전략으로 돌아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정치적인 전략이나 프로그램이라고 보는 건, 수혜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수혜자들은 사회적 약자다. 기득권세력에 대비되고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 다수가 바로 촛불을 들었던 사람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고 이 수혜자들, 혹은 수혜자들의 대표들을 정책 파트너로, 적어도 지배동맹으로 가져오는 정책연대라도 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걸 못했다. 그러나 스웨덴 사민당은 이 소득주도성장 전략으로 노동자, 저소득 일반 서민들을 규합해 집권했다.
소득주도성장 전략 같은 건 경제적인 성과도 시차를 두고 나타나지만, 수혜자들이 바로 그 이후에 후속 사회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고 지지기반이 되어 줄 수 있다. 앞으로 진보정권이 탄생하고 진보정권이 진보적인 정책을 펼치려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고 그 수혜자들을 중심으로 사회세력을 규합하는 정치적인 전략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번 정부도 명칭을 뭐라고 하든 간에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지지세력들을 규합하고 그 동력으로 사회경제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이병천 : 흔히 선거정치란 다수를 얻기 위한 정치이고 그래서 ‘중원’을 차지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는 말들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다수를 얻는가 하는 게 문제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중도 기득권 정치가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포퓰리즘이 득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박근혜 국정농단과 촛불항쟁 때문에 정치적 흐름이 이와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재인정부 개혁의 좌초와 국민의 힘 세력의 당당한 부활은 한국 연성 중도정치의 허약함과 맥빠짐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을 던져 준다. 앞으로 이 생생한 교훈, 촛불교훈을 갖고 가야 한다.
단순히 줏대없이 다수의 지지를 도모하는 게 아니라 확실한 개혁 중심을 세우고 길게 보는 철학을 갖고, 일관성 있게 밀고 가야 한다. 이전의 안이한 관성 정치에서 벗어나, 확실히 전환적 개혁의 길에 터하면서 다수를 추구하는 정치여야 한다. 단순 다수를 추구하는 나머지 자기 중심이 없이 마구 기득권층들, 강자의 표도 얻으려 하고, 산토끼도 집토끼도 다 얻으려고 하다가 계속 뒷북치고 결국 개혁정치의 실패로 귀결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굳건한 다수의 정치가, 그야말로 사회경제적 약자 다수의 이해와 필요를 자기 중심으로 받아 안으면서 기후위기, 코로나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정치 세력과 지도자가 출현해야 한다. 그게 우리 시대 한국 나아가 세계정치의 새로운 시대정신이라는 생각이다. 또 그것이 촛불항쟁과 촛불정부의 출범 그리고 평등도, 공정도 밀어낸 개혁실패로부터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교훈이고, 한국의 새 희망의 전환정치 길이 아닐까
.
조돈문 : 지금까지 대선은 기득권세력이 신자유주의 대동맹 안에서 청군, 백군 나눠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 큰 차이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난번 촛불대선이 이상한 것이었다. 촛불항쟁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그런 진보적인 정책 공약을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공약은 신자유주의 대동맹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집행도 어려웠다고 본다.
앞으로도 신자유주의 대동맹이라는 지배블록이 해체되지 않으면, 혹은 큰 충격을 받고 어떤 식으로든 변화되지 않으면,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지배블록 내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런 정치지도자나 세력이 있으면 굉장한 모험을 해야할 것이다. 기존의 지배블록과 내부에서의 싸움을 해야 하니까.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끝>
▲좌담에 참여한 이병천, 전강수, 조돈문 교수(오른쪽부터 반시계방향).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