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8일 수요일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바꾼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안재정 2017. 06. 29
조회수 649 추천수 0
영화로 환경 읽기 21. <딥워터 호라이즌>
안전보다 돈 선택한 석유 메이저, 이제 태양광 투자에
에너지 생산과 소비구조 바꾸는 일이 재생에너지보다 중요 

Deepwater_Horizon_offshore_drilling_unit_on_fire_2010.jpg» 2010년 4월 20일 미국 뉴올리언스 해상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폭발 및 기름 유출사고 현장. <딥워터 호라이즌>은 이 사고를 영화화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9일 ‘탈핵 시대’를 선포했다.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 영구정지는 탈핵으로 가는 출발이자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대전환의 시작이라며 많은 이들이 환호하였다. 우리는 과연 이 여정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을까? 이웃 나라 일본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탈핵의 길을 나섰으나, 멀리 가지 못하고 되돌아온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핵발전의 중독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로 가는 길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말하는 것처럼 재생에너지의 ㎾ h 당 전력생산 단가가 높다는 변명을 넘어서는 우리 사회의 대전환을 의미한다(한국수력원자력에서 주장하는 에너지원별 ㎾ h 당 전력생산 단가는 원전 68원, 석탄 화력 73.8원, LNG 화력 101.2원, 신재생에너지 발전 156.5원이다). 이러한 전환의 목표는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를 낮추거나 반대로 핵발전 또는 화력발전의 단가가 높아져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확보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진 에너지 지배 구조를 넘어서는 일이다. 이번 호에서 다룰 <딥워터 호라이즌>을 통해 에너지 전환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d1.jpg» <딥워터 호라이즌>의 포스터
  
<딥워터 호라이즌>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임을 강조하기 위해 법정 증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실제 영화의 배경은 2010년 4월 20일 미국 뉴올리언스 남쪽 200여㎞ 떨어진 해상에서 벌어진 심해 석유시추선 딥워터호라이즌호의 폭발 사고이다. 이 시추선의 소유주는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 업체인 비피(BP)(이전 명칭 브리티시 피트롤리엄, British Petroleum)이다.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이 심해 시추시설은 사고 당시 수심 1600m의 깊은 바다에서 석유시추공을 뚫어 해수면 이하 5600m 부근의 지하를 시추하고 있었다. 수심 3000m의 심해에서도 석유 시추가 가능한 이 시설에 왜 딥워터(deepwater) 호라이즌(horizon)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고는 미국 멕시코만 기름유출사고, 딥워터 호라이즌 호 기름유출사고, 비피 기름유출사고, 마콘도 폭발 사고 등으로 불리는데, 원인 제공 기업과 유조선 이름을 포함하여 부르는 국제관례를 따른다면 가장 적당한 이름은 “비피 딥워터 호라이즌호 기름유출사고”이다(■ 관련 기사가해자는 뒤로 숨은 기름유출사고 명칭).

이 영화를 감독한 피터 버그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은 <배틀 쉼> 이후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실화를 바탕으로 검증하고자 <딥워터 호라이즌>을 내세웠을 정도로 리얼리티에 초점을 두었다. 실제 영화는 대부분의 재난 영화와는 달리 서사의 힘과 배후 세력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되는 이들의 신파적인 감동 스토리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판도라>와 비교가 된다(■ 관련 기사영화라 다행이다, 미리 알려줘 고맙다)


영화는 2010년 4월 20일 발생한 사고 이후 48시간 정도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벌어진 사고를 경험하는 듯한 현장감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생생한 현장감과 깔끔한 스토리를 통해 이 영화에 몰입하도록 하면서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래서 말하고 싶은 건 뭔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그들은 왜 그곳에서 시간에 쫓기어 작업하였고, 무엇 때문에 속도와 경제 논리 속에서 죽어야만 했을까?
  
BP, 그들은 누구인가?

BP_Helios_logo.svg.png» BP의 로고.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 속에서 사고 원인을 제공한 비피(BP)는 어떤 기업일까? 영화에서 자세히 묘사는 되어 있지 않지만, 비피에서 파견 나온 ‘돈 비드린’(존 말코비치 분)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돈’은 영화 속 재난을 초래한 원인인 안전보다 경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원유 시추를 위한 공정이 43일이나 지체되고 이로 인해 5000만 달러(약 570억 원) 이상의 초과 예산이 발생하자 무수히 많은 사고에 대한 경고와 12만5000 달러(약 1억4000만 원)가 드는 안전성 검사를 무시하고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여기서 우리가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은, 이것이 영국 최대의 기업이자 미국 엑손 모빌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 회사이며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다국적 에너지 기업인 비피의 파견 감독관으로서 당연한 선택인가 하는 점이다.
   
BP의 탄생과 석유 카르텔
  
19세기 후반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의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랑군석유회사를 세운다. 이 회사는 19세기 후반 소유권이 여러 차례 넘어가면서 버마석유회사(Burmah Oil Company)로 이름이 변경된다. 1908년 영국의 지질학자들은 이란에서 엄청난 양의 원유를 발견하고, 당시 이란의 카자르 왕조는 그 시추권을 버마석유회사의 자회사인 앵글로-페르시안 석유 회사(Anglo-Persian Oil Company, APOC)에 넘긴다. 이러한 기업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수, 운송 등에 필요한 정유 공장을 세우며 세력을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이란 왕조의 석유자원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영국 총리이던 윈스턴 처칠 등을 컨설턴트로 고용해 로비할 정도로 심각한 정경유착이 발생하였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공정한 경쟁 대신 독점과 담합으로 세계의 석유 지배 구조를 견고히 하며 석유 카르텔을 형성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유럽 경제의 재건을 위해 추진한 ‘마셜 플랜’ 등이 가동되면서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이 이 석유 카르텔에 합류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의 민족주의 정서가 늘어나면서 친서방 정책을 편 이란 정권이 몰락하고 앵글로-이란 석유 회사(Anglo-Persian Oil Company, AIOC, APOC가 1935년 회사명을 변경함) 등이 이란으로부터 추방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역시 오래가지 못하는데,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의 계획에 따라 친서방 세력인 자헤디 장군이 새로운 이란 수상이 되면서 AIOC는 다시 이란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AIOC가 1954년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브리티시 피트롤리엄(British Petroleum Company)으로 바뀐다. 이후 이 회사는 알래스카, 리비아, 북해 등에 진출하며, 전 세계 석유를 독식하게 된다. 비피와 같은 성장 배경을 가진 세계 7대 석유 회사를 ‘세븐 시스터스’(Seven Sisters)라 부르는데, 이들은 1970년대 중동 석유 생산량의 90% 이상, 세계 석유 생산량의 90%를 독점하게 된다.
  
세상을 지배하는 슈퍼 메이저의 탄생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유국들의 ‘반란’으로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하였다. 이로써 세계 석유 권력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로 넘어가고, 산유국들은 민간 석유 회사가 더는 독점하지 못하도록 국유화를 단행하여 국영기업을 만들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석유가격하락과 함께 석유 기업들이 합병하며 5~6개의 거대 석유에너지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이들을 ‘빅 오일’(Big Oil) 또는 슈퍼 메이저(Supermajors)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장 패턴은 석유 산업뿐만 아니라, 곡물, 전자, 국방, 음반, 자동차 등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현재는 아이티(IT)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슈퍼 메이저들의 지배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 3] Seven sisters & Super majors.jpg» 세븐 시스터스와 슈퍼메이저 계보도.
  
속도가 돈인 시대, 왜 그들은 안전보다 경제성을 택하는가?
  
영화 속 <딥워터 호라이즌>은 작업을 강행하면서 발생하는 많은 안전상의 문제점을 무시하다 사고에 직면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렇게 작업 속도에 연연했을까? 이는 현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마콘도(MACONDO)에서 30억~40억 배럴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카스키다(KASKIDA)로 시추선을 이동하기 위해서이다. 영화 속 표현을 빌자면, 원유라는 선물을 배송하기 위해 비피는 산타클로스이며, 딥워터 호라이즌호는 산타클로스의 썰매이고, 이곳에 탑승한 126명은 루돌프 사슴이 되는 셈이다. 사고 당시 딥워터 호라이즌호에 타고 있던 사람 중 115명이 탈출하고 11명이 실종(사망)했는데, 9명은 플랫폼의 승무원이고 2명은 엔지니어였다(비피 소속 6인은 모두 탈출하였다). 폭발 사고와 수습 과정에서 사망한 이들은, 생태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약자였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사상 최악의 해양 석유 유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지에 관한 논쟁이 등장한다. 지미 하렐(커트 러셀 분)과 마이크 월리(마크 월버그 분)가 비피 관계자를 찾아가 시추공의 안정성 테스트 팀을 돌려보낸 것을 항의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내 할아버지는 한 번도 치과에 찾아가지 않았어. 왜냐하면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지 않았거든. 문제가 뭔지 알게 되면 그 일에 대해 다뤄야 할 테니까. 당신들은 1800억 달러짜리 회사지만 싸구려로군.”
  
d10_deepwater-horizon-kurt-russell.jpg» 지미 하렐(커트 러셀 분)이 비피 관계자에게 시추공의 안정성 테스트 팀을 돌려보낸 것을 항의한다.
  
그렇다. 그들은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문제가 이익을 저해할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지미 하렐은 이를 자신의 할아버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할아버지는 평소 양치질을 게을리하면서도 치실을 쓰지 않고 큰돈이 들까 봐 평생 치과에 가지 않았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엄청난 비용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지미 하렐의 비난에 돈 비드린은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1860억 달러짜리 회사가 된 거야.”
  
그들은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게 되고, 이러한 상황을 검증할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딥워터 호라이즌 호의 390가지가 넘는 장비들이 고장 났다고 마이크 월리가 이야기하지만 2010년 비피는 최고 안전상을 7년 연속으로 받는다. 이미 사고는 예견되어 있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후 사고는 우리가 아는 대로 발생한다.
  
d-8.jpg» 사고 수습과정에서 희생을 당한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1 : 29 : 300 그리고 희생자들
  
우리는 <딥워터 호라이즌>와 같이 큰 사고를 당할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 이미 비슷한 작은 사고들이 여러 번 발생하고, 이를 방치하면 정말 큰 사고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인리히 법칙이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큰 재해가 한 번 있었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작은 사고가 29번 있었고, 또 운 좋게 사고는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상처를 입을 뻔한 일이 무려 300번이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사례는 우리를 안타깝게 한 세월호나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호 사고 등 대형 참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희생을 감수했고, 그 희생의 확률은 누구에게 높았는지, 그리고 330번의 사고는 어떤 배경 속에서 발생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속 희생자 모두가 플랫폼의 승무원과 엔지니어였는지, 텍사스대학교 건축학과 4년 장학생인 케일럽(딜런 오브라이언 분)은 왜 비정규직 근로자로 딥워터 호라이즌 호에 탑승했고, 마지막까지 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뛰어들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이 없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 (또는 현재)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d9-deepwater-horizon-dylan-obrien-mark-wahlberg.jpg» 텍사스대학교 4년 장학생이자 비정규직인 케일럽(딜런 오브라이언 분).
 
복구와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로 인해 2010년 4월 20일부터 7월 15일까지 총 490만 배럴(약 7.78억ℓ)의 원유가 멕시코만으로 유출되었다. 당시 비피사는 바닷물 위에 뜬 유막을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불을 내 기름을 태웠고(약 4925만ℓ를 태움), 대규모 오일 스키머(Oil skimmer, 물에 뜬 기름을 유착 벨트 등에 흡착시켜서 제거하는 것) 선박을 이용해 기름을 걸러 냈다. 또한 비피 계열사가 만든 코렉시트(Corexit)라는 유화제를 70만 갤런이 넘는 양을 사용해서 세계 기록으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유출량이 많아 이런 물리적, 화학적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원유 유출 사고라는 불명예를 남기며 사고는 마무리가 되고 있지만, 수습과 복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에 따른 책임도 묻고 있는데 2016년 4월 미국 법무부는 비피에 단일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액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208억 달러(약 24조원)의 손해 배상금을 부과했다. 

04526050_P_0.JPG» 허베이스피리트호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피해자 모임인 서해안유류피해민전국총연합회 회원들이 2012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성의있는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7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고와 비교해 보면,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묻는 이러한 징벌성 판결은 한국과 미국의 법정과 정부의 대응 차이만으로 보기에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고의 경우, 사고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2013년 피해액이 7341억 원으로 정해졌다. 이중 원유를 유출한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사 1500억 원, 유출 사고를 유발한 삼성중공업 56억 원에 더하여 IOPC(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에서 최대 3258억 원까지 배상한다면, 세금으로 약 2000억 원을 부담하게 된다. 유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삼성중공업이 최대 56억 원에 불과한 배상금과 별개로 출연한 2900억 원 규모의 지역발전기금은 2017년 6월까지 배분되지 않았다. 2016년 7월 기준, 중국 선박회사 '허베이 스피리트 시핑'에 부과한 161억 원의 방제 비용에 대해서도 법정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17년 4월 24일부터 국제해사기구(IMO) 본부에서 개최되는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회의에 참석해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 관련 배·보상 소송 내용‘을 논의하였으니 이 사고의 수습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우리는 ‘기름 유출 9주년 태안군, 피해 배·보상 완벽 마무리’라는 기사를 늘 접하게 될 것이긴 하다. 
  
에너지 전환의 시작 그리고 남겨진 고민
  
머지않아 석유가 시대가 끝날 것이다. 아니 벌써 값싼 석유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미국 텍사스의 앞마당을 파면 석유가 나는 시대가 더는 아니다. 망망한(horizon) 멕시코만에서 1600m의 깊은 바다(deepwater)를 파헤쳐야 석유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비피 딥워터 호라이즌 기름유출사고’의 배경이다. 그렇다고 핵에너지가 그다음을 이어갈 것으로 보기 어렵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동안 석유 시대는 슈퍼 메이저가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했으며, 저항하던 정권들을 몰락시키며 그들은 몸집을 키웠다. 최근 이러한 에너지 슈퍼 메이저들은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전력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2016년 프랑스의 거대 석유 회사인 토탈이 배터리업체 사프트를 9억5000만 유로(약 1조3000억 원)에 인수했고, 세계 최대의 원유 수출업체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도 석유 이후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태양광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cp-3.jpg» 사우디 아람코의 태양광 주차장.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룰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에너지를 핵, 석유-석탄-천연가스,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원의 문제로 주로 보았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의 시대에는 에너지원의 변화와 함께 에너지를 지배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사용할 에너지를 가능한 한 많이 생산하고, 가능한 한 많이 소비하는 구조를 유지한다면 슈퍼 메이저에 의한 파괴와 지배 방식이나 그들이 사회 구성원들을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에 다소 불편을 수반하더라도 개인의 에너지 자립과 독립을 통해 불평등한 에너지 지배 구조를 바꾸고, 에너지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희생되는 생명과 삶이 생기지 않도록 주위를 살피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에너지 전환의 시작에서 말이다. 

안재정/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송내고등학교 교사
  
■ 참고 문헌

<월간 환경> 2014년 7월호 – 환경일보, 2014.6.25. 5쪽.
<중앙일보> 숫자로 알아보는 최악의 해양 재난영화 '딥워터 호라이즌'


문 대통령 “핵 동결 북한에 무엇을 줄지 미국과 협의”


등록 :2017-06-29 07:46수정 :2017-06-29 08:36
한-미 정상회담 위한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간담회
북핵 해결 ‘포괄·단계·행동 대 행동’ 원칙 재확인
“핵 동결이 대화의 입구, 완전한 비핵화가 출구”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미국행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6.28.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미국행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6.28.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북한이 핵 동결을 하면 그에 대해 무언가를 주어야 할 것이고, 준다면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지 한-미 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첫 단추로 북한이 추가 핵 개발을 않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경우, 그에 상응해 어떤 보상 조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미국과 논의를 하겠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위기의) 가장 이상적인 해법은 원샷으로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어쨌든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 동결 정도는 약속을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추가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멈추고 핵 동결을 선언하는 것과 동시에 대화를 시작하고, 비핵화를 향한 행동이 진척되는 것에 상응해 북한이 원하는 조처들을 단계적으로 취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핵 동결은 대화의 입구이고, 그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 폐기(비핵화)다. 핵 폐기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것”이라며 “중간에 여러 가지 이행 과정을 거칠 수 있고, 각 이행과정들은 하나하나 완벽하게 검증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6자 회담 당사국들이 합의한 ‘포괄적(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연계)-단계적(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행동 대 행동(비핵화의 각 단계마다 상응하는 행동으로 보상)’ 원칙이 지금의 한반도 위기 해법으로도 유효하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핵 동결을 핵 폐기를 위한 대화의 입구라고 생각한다면, 핵 폐기에 이를 때까지 서로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가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문 대통령의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핵 동결 및 검증에 이어) 핵 시설에 대한 폐기 단계에 들어선다면 그 때는 또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궁극적으로 기왕에 만든 핵 무기와 핵 물질들을 다 폐기하는 단계에 이르면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이런 부분들도 한-미 간 긴밀히 협의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핵 동결 선언→ 검증→핵 시설 폐기→검증→핵무기·핵물질 폐기→검증’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프로세스를 상정하고, 각 단계마다 우리 쪽이 취해야 할 상응조처를 미국과 협의해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씨와 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씨와 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다만 “지금까지 한-미 양국의 공식 입장은 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연계될 수 없다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축소를 논의할 수 있다’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최근 방미 발언이 국내는 물론 워싱턴 정가에서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자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워싱턴/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2017.6.29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2017.6.29청와대사진기자단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800733.html?_fr=mt1#csidx63201df650a6ddca2b7113242b07ece 

"우리에겐 애국이나 누군가에겐 학살이다"

시민사회, 문재인 대통령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성찰 촉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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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8  16: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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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베평화재단, 베트남프렌즈 등 53개 시민사회단체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베트남 역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우리에게는 애국의 역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살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언급하며 애국을 강조한 데 대해 시민사회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성찰하라고 촉구했다.
한베평화재단, 베트남프렌즈 등 53개 시민사회단체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베트남 역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명진 스님이 읽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들 시민사회는 "20세기 우리가 겪은 가장 비극적인 두 개의 전쟁. 바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다. 이 두 개의 전쟁은 한국사회에 씻을 수없는 상처를 남겼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통합과 애국을 강조했다. 그러나 통합에 방점이 찍힌 추념사는 정의의 관점에서 균형있는 시각을 제시하지 못했다. 애국과 보훈에 대한 강조로 정작 우리가 겪은 두 개의 큰 전쟁 중 하나인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을 간과하고 말았다."
  
▲ 명진스님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이들 시민사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그리고 "이번 현충일 추념사 논란의 한가운데에는 바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의혹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며 "참전 병력수가 전쟁 당사국인 미국 다음으로 많았던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의 피해도 매우 크다. 민간인 학살문제는 20년이 되도록 여전히 의혹으로만 머물러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성찰하고 해결하는 정부가 되길 기대한다. 이제 더 이상 베트남과의 역사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참전군인의 상처뿐만 아니라 베트남 피해자들의 아픔까지 보듬는 것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정의로운 국가의 모습"이라며 정부차원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 이예진 씨는 "우리에게는 애국의 역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살의 역사였다"고 꼬집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예진 '베트남프렌즈' 소속 청소년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 "참전군인분들의 희생과 경제발전에 가려지고 묻힌 사람들 역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애국의 역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살의 역사였다"고 꼬집었다.
"평화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이 베트남 전쟁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베트남 전쟁의 모든 피해자분들에게 사과하여 그 분들이 조금이나마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유학생인 도 웅옥 루옌 씨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이 일본을 끊임없이 원망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목적으로든 다른 나라게 가서 사람을 죽였으면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며 "한국 군인에 의해서 베트남의 많은 민간인이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반성한다면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30여 명이 참가했으며, 가수 홍순관 씨가 노래를 불렀다.
  
▲ 가수 홍순관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군인은 애국이라고 한 현충일 추념사로 베트남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베트남 현지 언론은 연일 현충일 추념사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으며, 한국제품 불매 여론도 일고 있다는 것.
급기야 베트남 외교부는 지난 12일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발언과 행동을 삼가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고만 밝혔다. 한국과 베트남은 올해 수교 25년을 맞았다.

[단독] “밤 살수는 처음, 살수차 지침도 전날 처음 봐” 백남기 사건 살수차요원의 거짓말


백남기 사건 직후 작성된 경찰 ‘살수차요원 진술조서 및 청문감사보고서’ 입수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 당시 충남 9호 살수차 요원이던 최모 경장이 밤 살수 경험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민중총궐기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사건 직후 작성된 ‘경찰 진술조서’ 확인 결과 드러났다. 최 경장은 작년 9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밤 살수 경험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최 경장은 ‘살수차 운용 지침’을 민중총궐기 전날 처음 본 것으로 확인됐다. 충분한 교육과 운용 지침 숙지 없이 살수차 요원들이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직후 작성된 살수차 요원들의 진술조서 일부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직후 작성된 살수차 요원들의 진술조서 일부ⓒ민중의소리
경찰이 국회와 법원에 제출을 거부하던 ‘백남기 청문감사보고서’를 <민중의소리>가 28일 입수했다. 해당 감사보고서는 사건 당시 살수차 요원이던 최모·한모 경장의 진술조서와 7쪽짜리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 보고서로 구성됐다.
충남 9호차 살수차 요원, 밤 살수 등 실전 경험 전무
살수차 운용 지침도 전날 처음 봐
살수차 내 모니터 조작법도 몰라
해당 보고서에는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주먹구구식으로 살수차를 운용했다는 기록이 담겼다.
최 경장의 증언이 담긴 진술조서에 따르면 최 경장은 민중총궐기 현장에 투입되기 전까지 실전경험이 없었다. 최 경장은 백 농민을 직사살수한 ‘충남 9호 살수차’에서 물대포의 방향을 조작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민충총궐기 두 달 전 지휘검열 당시 살수차 조작요원으로 2~3번 준비했던 경험밖에 없어서 살수차 조작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또 살수차 운용지침을 민중총궐기 전날 교육에서 처음 봤다고 증언했다. 경찰이 충분한 교육과 살수차 운용지침 숙지를 시키지 않고 살수차 요원들을 실전에 주먹구구식으로 투입한 것이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직후 살수차 요원이었던 최모, 한모 경위의 경찰 진술조서. 맨 위와 중간 진술은 최 경장, 맨 아래 진술은 한 경장 진술.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직후 살수차 요원이었던 최모, 한모 경위의 경찰 진술조서. 맨 위와 중간 진술은 최 경장, 맨 아래 진술은 한 경장 진술.ⓒ민중의소리
사건 당시 충남 9호 살수차 운전과 물대포 강도 등을 조작했던 한모 경장 역시 살수차 실전 경험은 한 번(2014년 9월 충남 보령 플랜트노조 집회)밖에 없었다. 한 경장은 살수차 내에서 실제 발사 등을 실행하는 조장이였지만,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 작동 방법조차 잘 알지 못했다. 살수차 요원들은 해당 모니터를 보고 사물의 위치를 가늠해 물대포를 발사한다. 하지만 그는 당시 4분할 된 모니터 화면을 대화면으로 바꾸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밤 집회 당시 주변이 어두운 상황에서 외부 사물을 보는 유일한 수단인 모니터 화면을 키우기 위한 시도 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최 경장과 한 경장은 국회 청문회 등에서 “밤이라서 어둡고 가랑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모니터 화질이 좋지 않아 백 농민 등을 보지 못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반복했다. 모니터 작동 방법을 잘 몰랐다는 취지의 증언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수차 운용을 주먹구구식으로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실무자뿐만 아니라 현장을 관리했던 경찰 지휘부 등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쓰러진 백 농민 부축한 시위대 겨냥해 직사살수
살수차 요원 ‘잘못 인정’에도 ‘정당한 직무집행’ 논리 고집한 경찰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민중총궐기 참가자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민중총궐기 참가자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기타
진술조서에는 충남 9호 살수차가 사건 당시 백남기 농민을 부축하러 나온 시위대를 겨냥해 직사살수를 했다는 진술도 담겼다.
쓰러진 사람을 대신해 등으로 살수를 막은 사람에게 추적살수를 했는지를 여부를 묻는 청문감사관의 질문에 최 경위는 “비닐 우의를 입고 있는 사람이 물포를 맞았는데도 자리를 옮기지 않아 방향을 옮겼다가 다시 맞췄다”고 진술했다. 그의 진술은 민중의소리가 사고 직후 공개한 살수차가 백 농민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집회참가자 등에게 12초~17초정도 직사살수한 영상 내용과 일치한다.
국회 청문회에서 최 경장은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고, 특정인을 겨냥해 직사살수한 적이 없다. 밧줄을 당기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대 무리를 향해 상하좌우 방향을 바꿔가며 살수를 했다”고 증언했다.
최 경장과 한 경장 모두 사건 직후 진행된 조사에서 백 농민 사건의 “잘못을 인정한다”, 직사살수 행위 등의 “위험성을 인정한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현장 실무자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그간 경찰 지휘부는 백 농민 사건이 폭력 시위대를 향한 정당한 직무집행이라는 논리를 고집했다. 급기야 작년 9월 백 농민 사망 당시 사망진단서 사인이 병사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부검 시도를 강행하며 논란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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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법원장'이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 끝장낼 때


[기고] 제왕적 인사권과 사법 독립은 양립 불가




지난 22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일부 판사들의 사퇴 요구에 직면했다. 1988년 김용철 대법원장의 용퇴이후 30년 동안 없었던 일이다. 지난 19일엔 사법사상 세 번째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돼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등을 요구사항으로 결의했다. 양 대법원장은 시민단체에 의해 직무남용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상태이기도 하다. 국회법사위도 조사청문회를 벼르고 있고 국회개헌특위는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대법원장에서 사법평의회로 이양하는 개헌안을 내놓았다.

이 모든 움직임은 지난 3월 5일 법원행정처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이 언론보도를 탄 이래 계속 진행돼 온 저강도 사법파동의 후과들이다.  

사법파동의 1단계 산물로 이인복 진상조사위가 구성돼 지난 4월18일 조사결과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부실조사로 말미암아 다시 판사들이 들고 일어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및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사법파동의 2단계였다. 지난 19일 개최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아예 사법개혁 저지 의혹 및 판사 블랙리스트의혹 추가조사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권한 위임을 요구했다.  

이번 사법파동의 성격상 양승태 대법원장은 한국 사법부의 마지막 제왕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꼭 그렇게 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촛불시민혁명으로 공사 분간 못한 제왕적 대통령을 쫓아냈다. 드디어 제왕적 대법원장도 도마 위에 올라와있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은 지금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사법 부문의 영순위 제도 적폐라고 할 수 있다.

청산 대상 사법 적폐라고 하면 유전무죄, 특히 재벌 총수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제일 먼저 떠올리기 쉽다. 전관예우와 정치사법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사법적폐들이 단연 대법원장의 제왕적 법관인사권에 그 뿌리와 토대를 두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사법파동은 처음으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한국 사법 역사의 획기적 사건이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대법원장에게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전방위적 법관인사권을 부여한다. 대법원장은 모든 법관에 대해 첫째, 최초 임용 여부와 10년 주기 재임용 여부를 정할 수 있다. 둘째, 전국 어디로나 정기적으로 전보시킬 수 있다. 셋째, 해외연수를 보내줄 수 있다. 넷째, 고법부장 승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다섯째, 법원행정처의 모든 보직에 발탁할 수 있다. 대법원장은 또한 여섯째, 모든 지법원장과 고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고, 일곱째, 모든 대법관에 대해 임명제청권을 갖는다.  

대법원장의 법관인사권 행사를 견제하기 위해 대법관회의, 대법관후보추천위, 판사회의 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통과의례를 위한 들러리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은 사법부 안에서 누구한테도 견제 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누린다. 제왕적 대법원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거꾸로 한국의 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 앞에 장기판의 졸처럼 무력감을 느끼며 사법부 관료로 길들여진다. 매년 전보와 승진, 재임용이 대규모로 이뤄지는 현행 법관인사제도 아래서 한국의 법관들은 꽃보직과 승진, 좋은 임지와 주요 재판부를 향해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대법원장과 그의 대리인인 소속 법원장에게 잘 보여야 한다. 주요 사건을 판결할 때도 혹시 튀지나 않을까, 혹시 밉보이진 않을까 신경을 써야한다. 이처럼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은 법관독립의 관점에서 수용할 수 없는 제도다.

비교법적으로 한국의 대법원장처럼 제왕적 인사권을 보유한 외국의 대법원장을 찾아보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선진국에서는 법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법관의 전보마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소신파 법관을 오지나 한직으로 좌천 인사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재임용 제도도 소신파 판사를 해임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높기 때문에 운영하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제청권을 갖는 나라도 없다. 대법원장 덕에 대법관이 된 이가 대법원장과 대등한 입장에서, 때로는 대법원장과 맞서며, 판결하는 게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원장도 소속법관의 호선으로 뽑고 사무분담과 사건 배당도 법관자치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 자체를 대법원장이 아닌 별도의 헌법기관(사법평의회, 사법최고위 등 다양한 명칭)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선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이 대법원장 1인에게 속한다는 엄청난 사실이 알려지면 외국의 대법원장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잠시 부러움과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으나 곧바로 한국의 사법부를 매우 얕잡아볼 게 틀림없다. 법관인사권이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되면 법관사회의 관료화와 법관독립(사법독립)의 손상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법관사회를 눈치 보는 난쟁이들의 관료사회로 타락시키는 제왕적 대법원장의 존재는 민주법치국가의 품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제왕적 권력을 누리는 대가는 누가 지불하는가? 일차적으로 법관이 지불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법이용자인 국민이 지불한다. 세상의 이목이 쏠린 주요 사건에서 법관이 인사권자인 대법원장과 소속법원장의 의중을 살피게 되면 공정사법이 멀어지고 사법불신이 확산된다. 우리나라 법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의 제왕적 대법원장 아래서는 소신파 판사들이 발붙이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거 놔두면 진짜 큰일 난다. 한시바삐 바로잡아야 한다. 제왕적 대법원장 탓에 소심법관이 소신법관을 대체하면 사법부의 권력통제는 시늉에 그치고 약자보호는 지체되며 사법불신은 심화된다. 이것이 기관과 제도로서 제왕적 대법원장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보장에 미치는 해악이다. 그로 말미암는 사회적 비용은 힘없는 국민 순으로 몸으로 부담한다.

그럼에도 제왕적 대법원장에 대한 우리사회의 문제의식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도 일천하고 미약하다. 그 업보는 결코 간단치 않다. 

첫째,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을 위한 아주 중요한 실천과제를 오랫동안 놓쳤다. 제왕적 대법원장을 그대로 둔 채 사법독립과 공정사법,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논하는 어리석음에 너무 오래 빠져있었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국정원과 검찰의 시녀화, 총리의 각료제청권 형해화 등 불법과 편법에 빚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은 100% 헌법과 법률에서 나온다. 양대 제왕적 권력의 합헌성과 합법성 차이는 어째서 대통령의 권력행사가 수시로 정치문제로 비화한 반면 대법원장의 권력행사는 그런 일이 없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대법원장처럼 합헌적, 합법적 제왕에 대해서는 외부 비판이나 시비 논쟁이 몹시 어렵다.

둘째, 지난 역사에서 제왕적 대법원장은 제왕적 대통령에게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며 제왕적 대통령을 뒷받침해온 가장 중요한 기둥이었다. 정권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적, 정책적 사안에서 대법원장은 서울지법과 서울고법의 요로에 배치된 심복법관들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로 구성된 대법원을 통해 구원투수 노릇을 했다. 코드가 맞는 제왕적 대법원장이 결정적인 순간에 판결로 정권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도 운신의 폭이 좁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제왕적 대통령을 청산하려면 동시에 제왕적 대법원장도 청산해야 한다는 진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했다. 

지금은 촛불시민혁명으로 제왕적 대통령을 쫓아내고 다시는 제왕적 대통령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관련 제도 개혁을 강구하는 중이다. 이런 시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의 강력한 동맹인 제왕적 대법원장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또한 판사들이 앞장서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 실은 법학자나 법운동가도 사법부의 내부사정을 아는 게 쉽지 않다. 하물며, 재판받을 경우를 제외하면 사법부의 권력을 체감할 일이 전혀 없는 일반시민에게 사법부의 내부사정은 너무나 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법관들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관료적 사법행정제도를 법관독립의 관점에서 비교법 연구를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법관들의 연구모임, 우리법연구회가 1988년에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의 관점에서 유엔과 EU, OECD 등 국제기구의 관련규범까지 본격적으로 검토하며 더 체계적인 연구조사를 진행한 건 이번에 문제가 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011년에 출범하면서부터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현재 5백 명 가까운 현직 법관을 연구회원으로 둔 최대 법관연구모임이다.  

2015년 7월 국제인권법연구회 안에는 사법행정과 법관인사 관련제도를 하나씩 잡아 매달 집중 토론하는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연구모임'(인사모)가 결성됐다. 법원행정처는 인사모의 활동상황과 토론결과를 비상한 관심과 경계심을 갖고 감시했다. 법원행정처는 인사모를 법원행정처를 반대하는 불온한 조직으로 규정했다. 지난연말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관독립 강화의 관점에서 법관인사제도에 대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자 법원행정처는 금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탄압과 회유의 양동작전을 전개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법원행정처는 법관인사제도 학술대회를 어떻게든 내부행사로 축소하거나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종료(9월 24일)이후로 연기하려고 공작 차원의 꼼수를 몇 가지 동원했다. 통틀어서 법원행정처의 사법개혁저지의혹 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태가 지난 3월 5일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이번 사법파동이 점화된다.

이런 흐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번의 사법파동은 문제의식과 조직력을 갖춘 단단한 주체들이 형성돼 있을 뿐 아니라 오랜 조사연구에 의해 탄탄한 논리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전례 없이 '준비된' 사법파동이다. 사법제도의 부분개혁을 내걸었던 과거의 사법파동과 달리 이번엔 법관인사제도와 사법행정시스템의 전면개혁을 내세운 사실도 이번의 특별한 준비태세를 보여준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주체와 역량이 준비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쉽게 물러서거나 중간에 포기할 것 같지 않다. 전국법관대표회의도 오는 7월 24일, 2차 회의 때부터 법관의 독립성을 국제규범과 선진국 수준으로 보장하는 데 필요한 법관인사제도의 전면 재설계 논의에 착수할 전망이다. 하필이면 양승태 대법원장 말년에 이렇듯 과거와 차원이 다른 사법파동이 터졌다. 소장법관들이 보기에 양 대법원장 시절에 대법원장의 제왕화와 법원행정처의 관료화가 부쩍 심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5일에 공표된 현직법관 507명의 설문조사결과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법관인사와 사법행정에 대한 소장법관들의 진단과 평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절대다수의 응답법관들은 현행 사법행정/법관인사시스템의 주요제도들을 빠짐없이 반드시 고쳐야할 나쁜 제도로 평가했다. 법관독립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대법관제청제도와 법원장임명제도, 법관전보제도와 법관승진제도, 사무분담제도는 조금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절대다수의 현직법관들은 또한 법관독립 침해주범을 다름 아닌 제왕적 대법원장과 관료화된 법원행정처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일반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이 법관독립과 상극이며 본원적인 사법적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이제 법원 안팎의 누구도 이 설문조사결과를 외면하거나 덮을 수 없다. 더 이상 그 문제의식과 처방전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딴청부릴 수 없다. 사법개혁 문제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 사법제도사는 법관설문조사결과가 공표된 지난 3월 25일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확연하게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개혁파 법관들은 현재의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관인사제도에 대한 유력한 대안으로 사법부와 사법행정의 법관자치방안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차성안 판사는 첫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정책 최고결정기관으로서 제왕적 대법원장을 대체한다, 둘째, 대법원장이 임명해온 법원장을 소속법관 호선으로 선출한다, 셋째, 법원장의 사무분담권한을 판사회의 운영위를 선출해서 넘겨준다, 넷째, 지법-고법 이원화를 통해 고법부장 승진제도를 없앤다, 다섯째, 법원행정처를 상근법관 중심에서 비법관 전문가조직으로 대체한다는 방안을 제시한다.  

위의 방안들은 기본적으로 지금의 제왕적 사법행정/법관인사를 최대한 법관자치형 사법행정/법관인사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이러한 대안은 개헌 없이 법원조직법과 대법원규칙을 고치기만 해도 가능한 점이 장점이다. 또한 법관설문조사결과가 말해주듯이 절대다수의 법관들이 이러한 5종 세트 개혁안을 지지하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개헌의지를 표명하고 국회개헌특위가 구체적 개헌안 마련에 나선 지금 시점에서 대법관제청권을 행사하고 법관인사권을 가질 최고사법정책기구를 어떤 원칙과 모습으로 구성할지는 좀 더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이미 언급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을 대법원장에게 주지 않고 별도의 헌법기관에 준다. 보통 사법평의회나 사법최고위 등의 명칭이 붙는데 구성 원리에 따라 세 유형으로 대별된다. 법관대표로만 구성하는 순수법관자치기구형, 법관대표를 중심으로 법률가직역(검찰, 변호사, 법학교수)대표를 망라하는 법관·법률가자치기구형, 국회대표와 법관대표를 중심으로 변호사대표와 법학교수대표를 섞는 국회·법률가혼합기구형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임명직이나 당연직이 아니라 각 직역이나 국회에서 선출된 ‘대표’들로 위원회가 구성된다는 점이다.  

어떤 유형이든 상관없이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이 별도의 합의제헌법기관에 부여될 경우 법관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볼 일이 없다. 인사권자가 합의제 대표기구이기 때문에 특정한 한두 사람의 눈치를 봐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위원들의 눈치를 보는 건 물론 불가능하다. 또한 법관독립성도 강화된다. 일단 대법원장이나 소속법원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데다 법률가들이 주도할 사법정책기관이 법관독립에 역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양승태 대법원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28일 전격 발표한 판사회의 상설화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제일 필요한 것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정직한 고해와 철저한 반성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과거의 잘못을 책임지고 바로 사퇴해서 새 길을 앞당겨주든가, 모든 사심을 버리고 전국법관대표회의와 함께 사법개혁에 앞장설 것을 약속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어정쩡한 제3의 길을 선택하면 고작 1, 2주 안간힘을 쓰다 결국 소장법관들에게 떠밀려 그만둘 수밖에 없다.

두 가지만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답이 나온다. 양 대법원장이 이도저도 아닌 대응으로 면피하려들면 법관들의 집단행동, 즉, 사퇴요구가 빗발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국회가 인사청문회국면이 끝나는 즉시 사법파동 청문회 개최를 벼르게 될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도 수사의 칼을 뽑을 시점을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직 사법부의 명예와 법관의 독립을 위해서 어떤 길이 최선인지만 고민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작금의 상황에서 남은 임기를 채우려면 최소한 국민들과 법관들에게 막판 감동과 믿음을 줘야 한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이번의 사법파동을 계기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왕적 대법원장 시대를 본인의 대에서 끝내겠다고 깜짝 선언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발본적인 개혁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하는 파격적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만약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과오를 진솔하게 사과하며,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개혁주도권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대승적으로 뒷받침해줄 경우 전국법관대표회의도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 중에 치고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새 대법원장이 임명되면 아무리 개혁적인 인물이라도 권한의 대폭 축소를 달가워하지 않고 타협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반면 양 대법원장의 경우 허물이 큰데다 임기도 다 돼 어떤 개혁안을 내밀어도 적극적으로 저항할 힘이 없다. 일반적인 예측과 달리 제왕적 대법원장의 해체 및 사법행정시스템 재설계 방안에 대한 합의가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양승태 대법원장의 몫일 수도 있는 이유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가 90일도 채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양 대법원장의 임기 내에 그와 같은 합의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양 대법원장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해체와 법관독립의 강화라는 사법개혁의 목적과 방향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서 확립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드물지만 진보의 역사가 가장 맞지 않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실현하는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이 그와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작동하는 때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번의 잘 준비된 사법파동의 결과로 사법부에서 제왕적 존재가 제거되고 사법독립과 법관자치가 획기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낙관한다. 머지않아 전개될 개헌국면도 사법개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후세의 역사가 2017년의 대한민국은 촛불시민혁명의 힘으로 제왕적 대통령에 이어 제왕적 대법원장을 청산하고 법관독립과 공정사법을 보장하는 새로운 사법행정시스템을 만들어냈다고 기록할 것으로 상상하며, 양승태 대법원장의 올바른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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