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0일 일요일

한겨레·동아 “이재명 불안한 출발” 중앙 “경선불복 낳은 대장동”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대장동 의혹에 대해 좀 더 진솔하게 해명해야”, 민주당 원팀도 과제 

대선 앞두고 여권에서 나오는 ‘유시민 역할론’에 중앙 “작가일 때가 제일 나아”

11일자 대다수 아침신문에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이재명 후보의 과제라고 강조하며 실제 민심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이슈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유 이사장에 대해 “작가할 때가 제일 낫다”며 정치참여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 11일자 한겨레 1면
▲ 11일자 한겨레 1면

 

한겨레는 1면에서 “이재명 ‘턱걸이’로 대선 후보 확정”으로 기사 제목을 뽑았고, 3면에선 “대장동 경고음 켜진 이재명, ‘불안한 후보’ 불식이 최대과제”라는 기사에서 “민주당 순회경선에서 대세론을 타고 ‘과반 연승’을 이어갔으나, 경선 마지막날 ‘대장동 민심’이 확인되면서 불안한 출발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도 사설 제목에서 이 후보가 “불안한 출발선에 섰다”고 표현했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이재명 후보 캠프 관계자는 “다들 멘붕(멘탈붕괴)이다”라며 “갑자기 완전히 정반대로 나온 거라 현장 사람들도 당황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선 본선에서 ‘외연 확장’을 위해 대응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겨레는 “이 후보는 최근 부동산 개발로 생긴 불로소득을 법적으로 공공이 환수하는 ‘개발이익 국민 환수제’를 도입해 토지개발 투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며 “‘이재명 불안론’을 잠재우고 ‘이재명은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을 심겠다는 전략”이라고 전했다. 

한겨레는 사설 “대선후보 된 이재명, 본선에서는 달라져야 한다”에서 “이 후보는 비판에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며 진솔한 자세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며 “경선 과정에서 싸움에 불사하는 강한 모습이 당내 지지층 결집에 유리했을지 모르나 본선에서도 똑같은 전략을 써서는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3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이를 미리 보여준다”며 “이재명의 ‘사이다’와 추진력이 엇나가면 자칫 위험하고 독선적이라는 인상이 심어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3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했다. 

▲ 11일자 경향신문 만평
▲ 11일자 경향신문 만평

 

경향신문 역시 사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앞에 놓은 과제”에서 이 후보 앞에 놓은 ‘무거운 과제’로 ‘대장동 의혹’을 거론했다.

이 신문은 “‘옛 측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구속된 만큼, 검찰 수사 향방에 따라 이 후보 본인에게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며 “이 후보는 관리자로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비리와 무관하다며 방어막을 치고 있는데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의 패배는 대장동 의혹이 이러한 ‘선 긋기’로 넘어갈 사안이 아님을 말해준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의 또다른 난제는 ‘원팀’ 만들기다. 경향신문은 “이낙연 전 대표 측에서 이재명 후보의 구속가능성까지 거론할 만큼 양측 감정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라며 “당장 2위 이 전 대표 측은 중도사퇴한 경선 후보의 득표를 무효 처리한 당 선거관리위원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는데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지 못할 경우 대선 승리로 가는 길은 험난해질 것”이라고 했다.  

보수진영에서도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중앙일보는 사설 “이재명, 경선 불복까지 낳은 대장동 표심 새겨야”에서 이 전 대표 측의 이의제기에 대해 “사실상 경선 불복”이라며 “상당 기간 170여석 거대 집권당의 정치적 혼돈은 불가피해졌다”고 봤다. 

▲ 11일 중앙일보 사설
▲ 11일 중앙일보 사설

 

이어 “여권 안팎에선 대장동 사건의 여파로 이재명 후보에 대한 회의가 확산된 게 아니냐고 보는데 타당한 해석”이라며 “이 후보는 ‘단군 이래 최대 치적’ ‘사과할 일이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라더니 이제 와서 ‘국민의힘’ ‘토건세력’만 비난하는데 솔직하지 않은 접근법”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재명 지사가 이 전 대표 측의 승복을 이끌어 내고 전체 국민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감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대장동 의혹에 대해 좀 더 진솔하게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일 누적 투표율에서 ‘턱걸이 과반’한 것에 대해 “국민의 회초리”라면서도 “야당 선동이나 일부 가짜뉴스 때문에 대장동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국민의힘 화천대유 게이트”라며 “개발 이익을 전액 환수하고 당선 즉시 강력한 ‘부동산 대개혁’으로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없애겠다”고 했다. 이 후보의 의지를 1면 제목으로 뽑은 언론사들도 있었다. 

이재명 경선 승리 “기득권과 최후대첩” (중앙일보 1면)
이재명 “국가 개혁 반드시 완수하겠다” (경향신문 1면)
이재명, 턱걸이 과반…“당선 즉시 부동산 대개혁” (국민일보 1면)
이재명 “당선 즉시 부동산 대개혁” (세계일보 1면)
與후보 이재명 “부동산 대개혁 할 것” (조선일보 1면) 

중앙일보, ‘작가 유시민’ 괜찮았는데

유시민 이사장은 지난 4일 정세현,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한 유튜브 방송에서 “오늘이 이사장으로 마지막 공식 행사”라고 했다. 지난 10일 민주당 경선이 끝나는데 며칠 전 그가 ‘프리선언’을 했다면서 중앙일보 칼럼 “대선과 ‘자유인’ 유시민”에선 “이 지사를 돕는다면 당분간은 선대위 외곽에서 역할을 하리란 전망이 많다”고 전했다. 

▲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 화면 갈무리
▲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 화면 갈무리

 

지난 8일 이재명 캠프 총괄특보단장인 안민석 민주당 의원 역시 유 이사장 이름을 거론하며 “지지를 기대하고 그런 게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유시민 역할론’에 대해 “지지 기대의 이면에는 여권의 위기감이 어른거린다”며 “이 지사가 대장동 의혹에 대해 정면돌파 중이지만 당 내부에선 다른 기류가 적지 않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거부감이 극도로 팽배해 ‘정권을 넘기면 거덜이 난다’는 생각이 어느 대선 때보다 강하다”고 분석했다. 

인물난도 거론했다. 중앙일보는 “이 지사가 후보가 됐지만 명락대전을 거치며 난 상처가 깊다”며 “민주당 지지자 중 반이재명 정서를 지닌 이들에게 유 이사장은 약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여권 일각에선 유 이사장이 과거 친문들 사이에서 대선후보로 거론돼 온 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포석이란 말까지 나온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신문은 “과거 ‘싸가지 없는 유시민’에서 방송 등을 통해 온화한 이미지를 쌓은 ‘작가 유시민’일 때는 괜찮았지만 조국 사태로 바닥을 드러냈다”며 “정경심 교수의 압수수색 전 검퓨터 반출이 ‘증거 보전’이라는 주장은 궤변 중의 궤변이고 ‘노무현재단 계좌를 검찰이 들여다본 사실을 확인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가 1년 후 사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유 이사장이 이 지사를 돕고 나서면 사실상 정치를 하는 것”이라며 “직접 출마하는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정치 안 한다’는 평소 기조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그를 봤지만 자신의 말대로 작가일 때가 제일 낫다”고 했다.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까지 분열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완배 기자 

발행2021-10-11 07:36:03 수정2021-10-11 07:36:03

내가 평소 지인들에게 가끔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너는 누구 편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비판에 딱히 반론을 펼치지 않아서 나의 희미한 정파적 성향은 얼추 나의 특징처럼 굳어진 편이다.

그러다보니 진보진영의 분열이 격화될수록 나는 각 진영에서 좀 못 믿을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실망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몇 년 전에는 절친한 친구로부터 “근묵자흑이라고, 너 요즘 저쪽 사람들과 어울리더니 많이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내가 약간 정색을 하면서 “야, 아무리 그래도 진보 운동 하는 사람들을 ‘흑(黑)’에 비유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고 말해도 그 친구는 “그쪽은 흑이야 흑!”이라는 관점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의 전반적인 생각을 존중하는 편인데, 그래도 서로를 ‘흑’이라 부르는 태도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의 이런 회색적 성향에는 경험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과거 다녔던 회사에서 사측과 종종 부딪혔는데, 싸움이 벌어졌을 때에는 정말 한 사람의 동료가 절실했다. 그런 상황에서 “너는 ○○파라서 함께 할 수 없어”라거나, “너는 △△파니까 우리의 동지가 아니야”라는 식의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옳고 너희는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애매한 관점을 갖고 사는 것은 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이게 피곤하다고 “그래, 어느 쪽이 100% 옳아!”라고 단언하는 것은 여전히 내 성향이 아니다. 내 미천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자면 싸움은 쪽수(!)의 문제고,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건 우리 편 쪽수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은 잘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사르트르와 카뮈

이와 관련해 내가 곱씹는 일화가 있다.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문학가들이자, 20세기 최고의 철학적 지성들로 꼽히는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에 관한 이야기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나치가 유럽을 장악한 1940년대 유럽 전체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인 진보적 문학가이자 철학자였다. 이 둘은 또한 매우 뛰어난 실천가들이기도 했다. 카뮈는 1942년 레지스탕스 조직 콩바(combat, ‘전투’라는 뜻)에 가담했고 이듬해 이 비밀조직이 발행하는 신문의 편집장을 맡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한 뒤 “프랑스에는 별도의 정부가 두 개 더 있다. 하나는 프랑스 중앙은행이고 나머지 하나는 갈리마르 출판사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런데 이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바로 카뮈의 명저 『이방인』이었다. 그 정도로 카뮈가 프랑스 전역에 미친 영향력은 막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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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기타

사르트르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포로가 된 경험이 있으며 이후 파리에서 나치에 저항하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해방 운동에 깊이 간여했고,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전선에 나서는 등 누구보다도 실천적인 지식인이었다.

이 두 사람은 나치 시절 레지스탕스 운동을 통해 서로 알게 됐다. 그리고 곧 사상적 동지가 된다. 두 사람은 종종 술잔도 함께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을 대표하는 두 실천적 지성의 우정은 당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두 지성의 결별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끝내 결별했다. 갈라선 결정적 이유는 폭력에 관한 입장 차이였다. 사르트르는 시대의 진보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카뮈는 그 어떤 이유로도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을 저지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결정적 차이는 격변의 시대였던 20세기 수많은 역사적 전환점에서 두 사람의 의견을 극단적으로 갈라놓았다. 예를 들어 러시아 혁명에 관한 평가에 대해 사르트르는 지지의 입장이었던 반면 카뮈는 격렬히 반대했다.

그래서 카뮈는 폭력 혁명으로 집권에 성공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을 비난하며 “공산주의는 문명의 질병이고 현대의 광기다”라고 쏘아붙였다. 반면 1950년대 이후 사회주의자로서의 노선을 확실히 한 사르트르는 “반(反)공산주의자는 개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자본주의 진영을 질타했다.

195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두 사람의 행보는 갈렸다. 폭력 투쟁을 지지했던 사르트르는 동지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의 유작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유럽이 우리 대륙에 손을 댔으니 그 손을 후려쳐서 떠나가게 만들어야 한다.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 투쟁을 시작하자! 마땅한 무기가 없다고? 식칼이라도 들어라.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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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기타

반면 카뮈는 알제리의 독립에 부정적이었으며(참고로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두 나라 민중들이 프랑스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알제리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식민지도 아니고 독립국도 아닌, 그 중간쯤에 있는 애매한 연방제 국가를 지지했다.

알제리에 대한 카뮈의 이런 태도는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좌익 지성계는 카뮈를 완전히 내놓은 자식 취급했다.

이 정도 사상적 대립을 겪었으면 사르트르와 카뮈는 피차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으로 봐야 한다. 지금이야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쉽게 소개하지만 당시 두 사람 주변에서는 서로를 얼마나 적대시했겠나?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 때 누군가는 “폭력을 써서라도 일본놈들을 몰아내자”고 주장하는데, 누군가는 “느슨한 연방제 형태로 일본과 공존하자”고 주장했다면 그 둘은 피차를 원수로, 혹은 배신자로 여기고 경멸했을 것이다. 둘이 서로를 죽이자고 덤벼도 이상하지 않았을 사이였다는 이야기다. 실제 카뮈와 사르트르는 1952년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논쟁으로 결별한 이후 카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1960년)까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카뮈의 사망 이후 사르트르는 그의 생애를 기리는 추도사에서 “카뮈는 아마도 나의 마지막 좋은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이 있다.

“우리를 가깝게 했던 것들은 많았고, 우리를 갈라놓았던 것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격변의 시대를 살면서 이념의 차이로 갈라선 뒤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걸었던 두 사람. 심지어 카뮈는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반면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이를 거부한 것마저 둘은 달랐다. 하지만 이 극단적인 차이에도 사르트르는 이렇게 회고한다. 자기들을 갈라놓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가끔 곱씹는다. 특히 벗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분열과 대립이 격화될 때 이 이야기를 되새긴다. 나에게는 벗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대립에 대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잠깐씩 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분열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가깝게 했던 것들은 아주 많았고, 우리를 갈라놓았던 것들은 얼마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원팀 회복 가능, 최선의 노력 다하겠다"

 [일문일답] 경선 승리 직후... "경기도 국감 전 도지사 사퇴? 당과 상의할 것"

21.10.10 22:26l최종 업데이트 21.10.10 22:30l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수락연설을 마친 뒤 밖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수락연설을 마친 뒤 밖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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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후보가 이낙연 후보 측의 사실상 '경선 불복' 입장에 대해 "당이 결정하는 대로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마지막 대선경선 합동연설회에서 공식 후보로 선출된 후 기자들과 만나 '이낙연 후보 측에선 무효표를 합산하면 과반이 안 된다면서 경선 불복 입장을 밝혔는데, 어떤 입장이냐'란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이 후보는 "당헌·당규라는 게 있고, 또 당헌·당규를 적절하게 해석해서 당이 아마 잘 결정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면서 "그리고 우리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축하의 말씀을 해주셨다니까 저는 그냥 당이 결정하는 대로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 후보는 "원팀은 민주당의 전통"이라며 "특정인의 당선이나 영광을 위해 경선을 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 더 넓게는 민주 개혁세력의 재집권을 위해 팀원의 하나로서 함께 하는 것"이라고 에둘러 강조했다. 이 후보는 오는 18일, 20일 예정된 경기도 국정감사를 앞두고 경기도지사직을 사퇴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이 후보는 '경기도 국감 전 지사직 사퇴와 관련해 입장은 어떤가'란 질문에 "지금은 경기도지사로서의 책무도 공적 책무지만, 이제는 또 집권 여당의 공식 대선후보로서의 당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당 지도부와 충분히 상의해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지사 찬스' 논란 때 "(경선 완주와 지사직 중)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지사직을 택하겠다"고 한 것과는 배치된다.


이 후보는 이날 발표된 3차 국민·일반당원투표 결과에서 이낙연 후보에게 예상 밖 대패를 한 것 관련, '대장동 의혹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질문엔 "국민들께서 잠시 '혹시 이재명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영향이 조금 있을 순 있겠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사필귀정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이날 15분 정도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전체를 기록한 것이다.

[일문일답 전문] 이재명 후보 "이낙연 불복? 당이 잘 결정할 것"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수락연설을 마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수락연설을 마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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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인터뷰에서도 했지만 3차 선거인단 결과 이후 지금 이낙연 대표 측에서 입장 추후 말씀하겠다고 하면서 약간 경선 불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런 해석이 나온다. 혹시 이낙연이 경선 불복 말씀하거나 하면 최종 후보로서 대처를 어떻게 할지.

"세상 살아가다 보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 그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다 미리 계산하다 보면 너무 어려워 진다. 현재 상태에서 판단하고 최선 다해서 민주당의 전통대로, 원팀 될 수 있도록 제가 최선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씀 드린다."

- 지난주까지 경선결과 두고 대장동 논란에 대해 국민들이 야당과 보수 언론 공세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판단한다고 평가한다고 말씀하셨는데. 3차 선거인단 투표는 유동규 전 본부장이 구속된 이후 치러진 투표인데, 국민들 판단이 바뀐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이에 대한 입장이 어떠신지 궁금하다.

"대장동 문제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것처럼 전국의 어떤 지자체장도 하지 않던, 새로운 방식을 제가 도입해서 개발이익을 환수한 것이다. 여러분 한번 보십쇼. 다 지자체장들이 개발허가를 민간에 내주지, 저처럼 민관 합동기구 만들어서 개발이익 환수한 사례가 있나.

제가 이를 시작한 이후에 다른 데서 벤치마킹해서 최근에 시작한 데가 있긴 한데 그것도 한번 조사해보시면, 제가 위례 신도시 개발한 건 실수죠. 비율로 정하는 바람에 다 비용을 부풀려가지고, 처음에 백운벨리 같은 경우 2500억 넘는다고 하더니, 작년 기준으로 적자 났다고 한 푼도 못 받게 됐다고... 제가 위례 신도시에서 당했던 일이다. 1100억 남는다고 해서 절반 갖기로 했는데, 800억, 400억, 줄더니 나중엔 300억으로 줄어서 150억밖에 저희가 확보를 못 했다.

그러나, 민간에 개발 허가해서 100% 민간이익, 개발이익 다 취득하는 것보다는, 150억이라도, 5500억이라도 환수한 게 잘한 것 아닌가.

그리고 국민의힘이, 민간의 100% 개발이익 가지게 하려고 LH 공공 개발 포기시키고, 성남시의 이재명 공공개발을 4년 동안이나 시의회 동원해서 막고,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민관 했더니 거기 또 붙어 갖고 개발이익 '50억 클럽'이니 몇백억이니 나눠 갖는, 그 장물을 나눠 가진 것... 그게... 국민들께서 너 왜 그것밖에 못 받냐고 하면 제도의 문제고, 또 상대가 방해를 하더라도 그걸 뚫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의무가 저희한테 정치적 책임이 있는 거니까 그 점에 대해선 이해를 하는데.

그걸 막은 당사자가, 도둑질 하도록 길을 터주고 그 도둑들한테 장물을 나눠가진 국민의힘이 어떻게 '너 왜 그거 밖에 환수 하지 못했어?' '왜 공공개발 못했어?'라고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다만, 저는 사필귀정을 믿는다. 문제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포연이 걷히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나. 안개가 걷히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 실상이 드러난다. 그게 세상 이치 아니겠나. 다만, 이 문제도 우리 국민들께서도 앞으로 좀 더 깊이 알게 되시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는 100% 다 민간 이익을 갖는 것을 이재명이 그 국민의힘의 엄청난 방해를 뚫고 고군분투해서 그나마 5500억이라도 환수했다고 아시게 될 것이다.

2015년은 아시는 것처럼 부동산 경기 최악 상태였지 아니었나. 그 상태에서 예정 이익의 70%인 4300억을 저희가 그것도 고정으로, 적자가 나든 부동산 경기가 더 나빠지든 상관없이 무조건 4400억 받는다고 해서 70% 넘게 성남시 몫을 확정했다. 다만 그 이후에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민간에 예정될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보여서, 제가 2년 지난 다음에 2017년 8월에, 1100억을 또 추가 부담시켰다. 그걸 갖고 저를 화천대유 사장이 법정에 나와서 그러지 않았나. '이재명은 공산당 같다'고 저를 비난했다고 하더라.

근데 2018년 3월에 제가 성남시장을 사퇴를 했는데, 도지사 선거 때문에. 근데 땅값이 2018년, 2019년, 2020년에 본격적으로 올랐다. 2021년까지. 집값이. 그러니까 민간의 개발이익이 늘었는데 저한테 통제할 아무 권한이 없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제가 그때 당시에 계속 시장을 했으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일단 분양가를 통제했을 거다. 분양가 통제하면 그렇게 개발이익이 늘어나지 않을 테니까.

두 번째는 인허가 조건을 변경하든지 협상을 하든지 해서 제가 줄였을 텐데, 불행하게도 저한테 권한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또 부정행위를 했다는 그런 상당한 상황이 발생해서, 제가 또 만들어놓은 마지막 장치가 있지 않나. 그때 당시 법률상 의무도 아닌데 청렴 서약을 받아서, 공직자나 임직원한테 뇌물이나 향응을 제공한 게 드러나면 협약 해지하고 원상복구 한다는 그런 청렴 서약을 받아놓은 게 있어서. 제가 마침 가지고 있는 도지사의 지휘권한을 행사해서 협약 해지하고, 배당 중단하고 자산 동결하고 또 임의 배당한 것 돌려받을 방법을 강구하라고 제가 권고, 지도해놨다. 

결과가 나올 텐데, 저는 이런... 곁가지, '화천대유 누구 거냐' 이런 이상한 소문 내고. 아니 화천대유, 저는 곽상도 아들이 직원이었다는데 저는 곽상도한테 돈 줄 생각 꿈에도 없다니까요? 윤석열의 집 사줄 생각 전혀 없어요. 원유철 지금까지 그 고문료라고 받았다는데, 저 원유철 또는 원유철 부인한테 돈 줄 생각 전혀 없어요. (화천대유가) 제거면 줬겠나. 제거면 1100억 추가 부담 넘겨줬겠나.

그러나 이것도 자세히 내용들을 모르시기 때문에 국민들께서 '잠깐, 혹시 이재명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니까 영향이 조금 있었겠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 갈 거다, 사필귀정 할 거다 이렇게 믿는 거다. 결국 한번 생각해보시면 다 곁가지에서 이상한 소리해 갖고 판단의 혼란을 초래하는 게 작전이겠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집단지성은 시간이 지나면 줄기를 보고 본질을 보고 아무도 하지 않는, 도시개발법 만들고 21년 동안 대한민국이 전부 걷은 개발이익 환수한 것 다 합쳐도, (대장동의) 5500억의 3분의 1 밖에 안 된다는 것 아닌가. 이런 점들을 국민들께서 다 아시게 될 거다.

그리고 말씀 드린 것처럼 잘못했다는 의심이 들어서 잠시 들여다 보시겠지만 결국은 이재명이 정말로 법이 정한 것 이상으로 국민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구나, 정말 저런 것까지 만들어내는 건 처음이라잖나, 부동산 전문가들도 놀랍다, 이 사실을. 부제소 특약까지 해놨다. 소송에서 싸우지 못하게. 그 점들을, 실력을, 실적을 인정할 거라고 본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꽃다발을 들고 이낙연 경선 후보, 송영길 대표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꽃다발을 들고 이낙연 경선 후보, 송영길 대표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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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경선 당시 100명에 가까운 대다수 의원 문재인 캠프 소속이었는데 지금 현재 상황 조금 다르고 선대위 과정에서 송대표 만날 텐데. 지금 막 이낙연 측에서 무효표 처리 이의 제기를 공개적으로 했다는 속보 막 나오고 있다. 원팀 전략 어떻게 할 것인지.

"원팀은 민주당의 전통이고, 우리는 특정인의 당선에 대해서 특정인의 영광을 위해서 경선하고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더민당, 더 넓게는 민주개혁세력의 재집권, 4기 민주정부의 창출을 위해서 팀원의 하나로서 함께 해온 것이다. 앞으로도 함께해야 할 일이고. 특정한 개인의 또는 선수간의 갈등, 이런 건 과거의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 또는 야당의 이명박 박근혜 경쟁에 비교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작은 마음의 상처나 갈등은 있지만 저는 뭐 이낙연 후보님이든 박용진 후보님이든 다 하실 수 있는 얘기하셨다고 생각하고, 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고. 또 필요한 얘기, 똑 같은 것도 이렇게 보면 동전도 동그라미고 이렇게 보면 일자인데. 보기에 따라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원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원팀 회복 하기 위해 저 자신도 최선 다하고 있고 당도 노력하고 있고 또 민주당 당원 모두는 개인이 아니라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더불어민주당 집권 위해서 4기 민주정부 창출을 위해서 노력할 기본적 책무를 다 할거라 믿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다만 제가 최선을 다해 설명 드리고 부탁 드리고 원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 말씀 드린다."
 
- 지사직 사퇴 관련 어떤 입장인지. 다가오는 경기도 국감이 대장동 국감이 될 거란 예측들이 많은데 관련해서 할 수 있는 말씀이 있는지.


"지금 저는 제 개인, 경기도지사 개인 입장에서는 최대한 도지사 직무를 다 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근데 지금은 이제 경기도지사로서의 책무도 공적 책무이지만, 또 집권 여당의 공식 대선후보로서 당의 입장이라고 하는 것도 제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당지도부와 충분히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겠다."

- 앞서 질문에서 이낙연 측에서 반발했을 경우에 대한 질문에 가정을 전제로 답변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했는데, 방금 이낙연 캠프 측에서 불복하겠다는 논평까지 나온 상황이다. 가정이 아닌 현실이 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지.

"자세한 내용을 아직 제가 파악 못한 상태라서, 내용을 보고 의논해보고 판단하도록 하겠다."

- (대장동 관련) 사필귀정을 말씀하셨는데, 현재 대장동 사태가 '국민의힘 게이트'냐, '이재명 게이트'냐라고 했을 때, 여론은 '이재명 게이트' 우세한 것 같고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또 그 과정에서 정의당 등에서조차 특검에 대한 요구가 나오고 있는데 특검을 전격적으로 받을 생각은 없는지.

"특검(박영수 전 특검)이 사고 쳤다는게 이 사건의 한 부분 아닌가. 그 점도 한번  봐주시고요. 우리 지금 당이나, 저혼자 방어를 했으니까. 마치 참나무 밭에 가서 소나무 잎 몇 개 발견됐다고 이거 소나무 밭이라고 하도 얘길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어 진짠가?' 이러고 있는 상태 아닌가 싶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본질을 들여다 보면, 어떤 지자체장도 이렇게 추가로 법이 정한 것 이상의 개발이익을 환수하지 않았다. 저는 의심 한다고요? 화천대유 누구 것이냐고요? 제가 저한테 추가 부담해서 1100억 뺏었겠나. 왼손이 하는 거 오른손이 뺏었겠나? 그냥 민간개발 하면 되지 뭣하러 그리 복잡하게 해서 4400억 환수하고, 또 그것도 더 많이 하려고 1100억 더 환수하고. 다 이게 가짜뉴스, 왜곡뉴스 이런 것 때문에 그런데, 정치는 몇몇의 정치인들의 선동이나 가짜뉴스 왜곡 언론으로 조작되는 게 아니다. 국민들께서 결국은 제자리로 보내신다. 저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이 자리에 왔겠나. 국민을 믿는다."

- 이낙연 측에서는 무효표 합산하면 과반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어떤 의도인지.

"네 이게... 당헌당규라고 하는 게 있고. 또 당헌당규를 적절하게 해석해서 당이 아마 잘 결정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축하 말씀를 해주셨다니까 저는 그냥 당이 결정 하는 대로 처분을 기다리도록... 네, 그러겠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152] 비속어인 줄 안다면

 양해원 글지기 대표

돋는 기사가 났다.

‘언어의 품격, 선을 넘었다–욕설 파는 사회.’ 사회생활 시작하는 이들 쓰라는 뜻으로 신용카드 회사가 ‘시발(始發) 카드’를 내놨는데, 욕설에 바탕 둔 상술이 거북하다는 것이다. 더 있다. 유명 선수가 경기 중 내뱉은 상스러운 말을 변형한 ‘식빵’에 ‘언니’가 붙어 애칭이 됐고, 그걸 진짜 상품 이름으로 써먹는다나. 始發과 발음이 비슷한 그 말은 가장 몹쓸 비속어다. 뜻을 지면에 차마 옮길 수 없는.

이런 지경이니, 좀 정색하고 얘기한들 용기랄 것도 없잖은가. “여윳돈을 우량주에 투자해서 ‘존버(오를 때까지 버티기)’ 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기성세대한테는 익숙지 않을 ‘존버’가 왜 그런 뜻일까. 다른 기사에 실마리가 있다. “’존버’는 비속어인 ‘존*’와 ‘버티다’의 합성어를 줄인 말로 ‘끈질기게 버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존*’는 뭔가. 남자 생식기를 가리키는 말에 ‘나오게’를 잇댄 말이 어원(語源)이라면 어원이다. 입에 오르내리며 음절이 줄어 ‘*나게’가 됐다. 다시 음절을 줄이고, 자음접변(동화) 일어난 발음 그대로 ‘존나’라 쓰는 것이다. ‘몹시, 굉장히, 끈질기게’ 따위의 뜻으로. 항간(巷間)에서 더러 쓰는 ‘졸라’는 민망한 느낌을 슬쩍 덜어냈을 뿐.

젊은 세대야 유래 모를지언정 신문에서 비속어를 버젓이 쓰다니. 책 내용 옮기느라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고민한 티도 안 나는 기사가 온갖 매체에 널렸다. 이리 줄이고 저리 뒤튼 상소리나 적으라고 훈민정음 만드시진 않았을 텐데. 내일이 한글날이다. /글지기 대표

 

양해원 글지기 대표

심층분석 - 동아시아전쟁 예고하는 심각한 징후들

 

[개벽예감 464] 심층분석 - 동아시아전쟁 예고하는 심각한 징후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10/11 [08:53]

<차례>

1. 중국의 대만해방전쟁과 대일전쟁, 불가피하다

2.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의 청전결심서와 시진핑 총서기의 16자 지침

3. 중국인민해방군의 미사일공격준비와 상륙작전준비

4. 대만의 난공불락 지하요새는 어떻게 파괴되는가? 

5. 어느 쪽이건 그 섬에 상륙하면, 중일전쟁 일어난다

6. 중국의 ‘이상한 침묵’에 놀란 미국군 지휘부의 이적행위

 

 

1. 중국의 대만해방전쟁과 대일전쟁, 불가피하다

 

동아시아전쟁을 예고하는 징후들이 보인다.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의 장기침체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류행 사태로 사회적 고통과 불안이 극심한데, 언론매체들이 동아시아전쟁위기에 관해 자꾸 보도하면 사회정치적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언론매체들은 전쟁징후에 관한 보도를 회피하고,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에 대해서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전쟁위기는 그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전쟁위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정말로 전쟁이 일어나 대혼란에 빠지는 것보다, 전쟁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동아시아전쟁위기를 발생시킨 원인은 중국과 대만의 정치군사적 대결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었다는 데 있다. 동아시아전쟁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중국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대만의 정치군사적 대결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과 대만의 정치군사적 대결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된 까닭은,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여 미해방지역인 대만을 해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만은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중국 영토의 일부이며, 중국이 아직 해방하지 못한 미해방지역이다. 대만은 나라가 아니다. ‘중화민국’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라는 두 국가로 분렬된 것이 아니라, 중국 안에 대만이라는 미해방지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반국가세력이 점령한 지역 또는 제국주의세력이 점령한 지역을 미해방지역이라 한다. 

 

어떤 나라가 자국의 미해방지역을 해방하여 영토완정을 실현하는 것은 정당한 국가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여 미해방지역인 대만을 해방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정당한 주권행사이며, 대만해방전쟁은 정의의 해방전쟁이다. 

 

그러므로 중국과 대만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거론할 때, 침공위협이니 침범행위니 하는 따위의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자국의 미해방지역을 해방하여 영토완정을 실현하려는 정당한 국가주권행사는 침공이나 침범이 아니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자국 영토인 대만을 일본제국에 강탈당했고, 그로써 대만은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아메리카제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자, 일본제국의 식민지인 대만은 아메리카제국의 점령지로 되었다. 

  

▲ 위의 사진은 중국 영토인 댜오위다오렬도를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댜오위다오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대만의 부속도서인데, 일본은 그 섬이 오끼나와부속도서라고 강변하면서 센까꾸렌또라는 명칭을 붙여놓고 영유권을 주장한다.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은 대만과 그 부속도서인 댜오위다오를 해방하는 전쟁으로 전개될 것이다. 중국의 대만해방은 국가를 참칭하는 반국가세력이 점령한 대만을 무력을 사용하여 해방한다는 뜻이고, 중국의 댜오위다오해방은 일본이 점령한 그 섬을 무력을 사용하여 해방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과 대일전쟁은 불가피하고, 임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태평양전쟁 직후 중국에서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의 내전이 재발하고,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아메리카제국에 의해 재분할되는 과정에서 대만문제가 복잡하게 꼬였다. 중국내전에서 패하여 대만으로 도주한 중국국민당 정권은 미국의 동아시아지배체제에 예속되었고, 미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를 재분할하는 과정에서 대만의 부속도서인 댜오위다오(釣魚島)를 일본의 점령지로 남겨두었다. 일본은 댜오위다오를 센까꾸레또(尖閣列島)라고 부른다. 중국은 댜오위다오를 일본의 점령지로 남겨둔 미국에 항의했으나,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여 오만방자해진 미국은 중국의 항의를 무시해버렸다. 

 

지리적으로 보면, 댜오위다오는 대만에서 186km 떨어져 있고, 일본 오끼나와에서 410km 떨어져 있다. 이것은 댜오위다오가 오끼나와의 부속도서가 아니라 대만의 부속도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본은 자기들이 댜오위다오를 1884년에 ‘발견’했다고 강변하지만, 댜오위다오에 대한 공식기록은 1403년 중국 명왕조 시기의 문헌 순풍상송(順風相送)에 댜오위쉬(釣魚嶼)라는 명칭으로 처음 기록되었다. 1808년 중국 청왕조 시기에 중국인 선푸(沈復)가 댜오위다오를 거쳐 류구국(일본 오끼나와에 존재했던 작은 섬나라)으로 건너갔다는 기록도 있다. 1863년 중국 청왕조가 제작한 지도에 댜오위다오는 중국 푸젠(福建)성에 속한 댜오위다이췬다오(釣魚臺群島)로 표시되었다. 이런 역사기록들은 댜오위다오가 15세기 초부터 중국 영토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댜오위다오는 중국 영토인 것이 분명하다. 

 

2021년 4월 27일 중국은 댜오위다오 지형지리특성조사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보고서에서 댜오위다오의 최고봉은 가오화(高華)봉으로, 댜오위다오의 남부해안은 망위(汒魚)만으로 명명되었으며, 댜오위다오 주변의 작은 섬들에도 중국식 이름이 붙어졌다. 그로써 중국은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했다.   

 

그러므로 중국은 국가를 참칭하는 반국가세력이 점령한 미해방지역인 대만을 해방하고, 일본이 점령한 댜오위다오를 해방하는 정의의 해방전쟁을 수행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대만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가 오면,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면서 댜오위다오에 전격적으로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견지에서 보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은 자기들이 점령한 댜오위다오를 중국에 빼앗기고, 자기들의 옛 식민지이며 지금도 친일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대만을 중국에 빼앗기는 대참사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일본이 대만의 편에 서서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무력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다. 중일전쟁의 불가피성과 임박성에 대해 언급하는 근거가 거기에 있다. 

 

 

2.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의 청전결심서와 시진핑 총서기의 16자 지침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4년 2월 5일 중국의 온라인매체 <전망(前瞻)>은 놀라운 사실을 보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팡펑후이(房峰輝) 총참모장, 우성리(吳勝利) 해군총사령원, 장스보(張仕波) 베이징군구 사령원, 쩡웨이핑(鄭衛平) 난징군구 정치위원 등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청전결심서(請戰決心書)를 제출했다고 한다. 청전결심서는 전쟁결정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문서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가 전쟁을 결정해달라는 요청서를 중국공산당 수뇌부에 제출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쟁은 중일전쟁을 뜻한다. 

 

동아시아전쟁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언론매체들은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이 격화되면 중미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동아시아전쟁위기의 본질은 중국의 대만해방전쟁과 그것을 반대하는 일본의 무력도발로 폭발할 중일전쟁에서 찾아야 한다. 위에 언급한 청전결심서가 그런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 위의 사진은 2017년 7월 30일 중국 내몽골 군사기지에서 진행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경축 열병식의 한 장면이다. 중국의 오성홍기를 게양하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이 열병식에는 전투원 10,000명, 항공기 129대, 무장장비 571대가 참가했다. 그날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열병식에 참가한 중국인민해방군 전투부대들을 사열하고 경축연설을 하였다. 2014년 2월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는 중국공산당수뇌부에 일본과의 전쟁을 결정해달라는 요청서를 제출하였다. 중국공산당 수뇌부는그 요청서를 심의하고,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을 수행할 다섯 가지 개전조건을 제시했으며,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의 대일전쟁전략을 16자로 요약한 대응행동지침을 제시했다.  


2014년 2월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가 중국공산당 수뇌부에 청전결심서를 제출한 까닭은 2012년 9월 10일 일본이 댜오위다오에 속한 5개 무인도 가운데 3개 무인도를 개인소유주로부터 20억5,000만엔(약 300억원)에 매입하여 국유화하기로 결정하고, 이튿날 소유자와 매매계약을 전격적으로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중국은 일본의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는 중국의 영토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며 13억 중국 인민의 감정을 심각하게 상하게 한 망동이라고 규정하면서 댜오위다오 영해기선을 전격적으로 선포했다. 반일감정이 끓어오른 중국 인민 40,000여 명은 중국의 20개 도시에서 일본의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를 규탄하는 반일시위를 벌였으며, 중국인 여론조사에 응한 응답자의 90.8%가 댜오위다오 영토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중국의 무력행사에 찬성의사를 표시했다. 

 

일본의 댜오위다오 국유화와 중국의 댜오위다오 영해기선 선포는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이 대화와 협상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으며,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이 무력사용에 의해 해결될 것임을 예고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위에 인용한 <전망> 보도에 따르면, 2014년 2월 당시 중국공산당 수뇌부는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가 제출한 ‘청전결심서’를 심의하고, ‘중국의 고유한 영토인 댜오위다오 주권보호와 견실한 군사투쟁진행에 관한 중앙군사위원회 결의’라는 제목의 공식문서를 채택했고, 중국이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을 수행할 다섯 가지 개전조건을 명시했다고 한다. 다섯 가지 개전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일본이 무력으로 댜오위다오를 점령하는 경우

2) 일본이 댜오위다오에 행정기구를 설립하는 경우

3) 일본이 댜오위다오에 군사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4) 일본의 군함이나 항공기가 댜오위다오 영해와 영공에서 중국의 항공기, 해양감시선, 군함, 선박의 항행을 무력으로 차단하거나 도발하는 경우

5) 일본이 미일상호안보조약을 핑계로 미국의 군사력을 동원해 댜오위다오를 침공하거나 중국인민해방군에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    

 

위에 인용한 <전망>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가 제출한 ‘청전결심서’를 심의하면서 중국의 대일전쟁전략을 16자로 요약한 대응행동지침을 제시했다고 한다. 시진핑 총서기가 제시한 16자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종합권형(綜合權衡) - 종합적으로 형세를 따져본다.

2) 선전당전(宣戰當戰) - 전쟁을 해야 할 때는 마땅히 싸운다.

3) 합종련횡(合縱連橫) - 이웃나라와 종으로 횡으로 연합한다.

4) 유권병거(維權幷擧) - 주권을 수호한다. 

 

위에 인용한 시진핑 총서기의 16자 지침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공산당 수뇌부가 대일전쟁의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는지 아니면 결정적 시기를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대일전쟁의 결정적 시기를 판단하는 몇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3. 중국인민해방군의 미사일공격준비와 상륙작전준비

 

중국의 대일전쟁과 대만해방전쟁은 동시에 시작될 것이므로, 중국공산당 수뇌부는 중국인민해방군이 대일전쟁과 대만해방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충분한 전쟁준비를 갖추었는지 판단해야 한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충분한 전쟁준비를 갖추었는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중국인민해방군의 미사일공격준비와 상륙작전준비다.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선박공업집단이 발간하는 월간지 <해군과 상선> 2021년 7월호에는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에서 미사일공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상씨나리오가 실렸다. 씨나리오에 따르면, 대만해방전쟁 제1단계는 중국인민해방군 상륙부대가 대만 해안지대에 상륙하기 전에 탄도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발사하여 대만의 공군기지와 공항, 고속도로 비상활주로, 조기경보레이더, 반항공미사일부대, 작전지휘소, 해군기지를 모조리 파괴하는 것이다. 

 

씨나리오에 따르면, 대만해방전쟁 제2단계는 중국인민해방군이 순항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발사하여 대만군의 통신시설, 군사기지, 무기고, 탄약고, 발전소, 주요도로분기점을 정밀타격으로 모조리 파괴하는 것이다. 중국인민해방군은 순항미사일 정밀타격 직후 함선에서 무인정찰기를 출동시켜 대만의 피해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씨나리오에 따르면, 대만해방전쟁 제3단계는 중국인민해방군 해군과 로켓군이 미사일공격으로 대만상륙에 방해되는 나머지 장애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위에 서술한 씨나리오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의 미사일공격은 대만해방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된다. 그러므로 중국인민해방군은 자기의 미사일공격력을 충분히 강화했을 때, 개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의 미사일공격력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을까? 

   

▲ 위의 사진은 2020년 10월 1일 베이징 텐안먼광장에서 진행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70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가한 둥펑-17 극초음속미사일 발사차량이 행진하는장면이다. 둥펑-17 극초음속미사일은 적의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가는 엄청난 위력을가졌다. 미국 국방부가 2019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은 2019년 현재 2,740발의 미사일을 보유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인민해방군이 대일전쟁과 대만해방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미사일공격력을 보유하였음을 말해준다.그들의 해방전쟁준비는 완료되었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민간연구기관 핵위협구상(Nuclear Threat Initiative)이 2020년 11월 18일에 펴낸 ‘중국의 증대되는 미사일비축량과 대만미사일위기의 위험(China's Growing Missile Arsenal and the Risk of a "Taiwan Missile Crisis")'이라는 제목의 분석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려단은 2000년에 15개였는데, 2010년에는 25개로 늘었고, 2020년에는 34개로 늘었다고 한다. 또한 1개 미사일려단에는 미사일발사차량 36대와 수직갱미사일발사대 6개가 배치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인민해방군은 미사일발사차량 1,224대에 미사일을 탑재해고, 수직갱미사일발사대 204개에 미사일을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미사일 1,428발을 임의의 시각에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음을 의미한다. 

 

2019년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중국군사력평가보고’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이 보유한 미사일은 2018년에 801발이었는데, 2019년에는 2,740발로 급증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보면, 중국인민해방군이 대일전쟁과 대만해방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미사일공격력을 보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민해방군이 3차에 걸친 파상적인 미사일공격으로 대만군을 제압하면, 대만상륙작전이 시작된다. 2021년 7월 26일 중국 영자신문 <글로벌 타임스(Global Times)> 보도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제73집단군 소속 항공려단이 대만해협에 접한 푸젠성 남동쪽 해안지대에서 7월 24일 밤낮으로 정찰헬기와 공격헬기에서 실탄을 사격하는 대규모 상륙훈련과 민간여객선을 동원한 군사장비하역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인민해방군 대만상륙훈련에 민간여객선이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배수량이 24,000t이나 되는 대형 민간여객선에 대규모 전투병력이 승선했고, 수륙량용장갑차, 자행포, 병력수송차량을 비롯한 12종 이상의 군사장비 300대가 적재되었다. 이 민간여객선이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호위함들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민간여객선을 방어하는 훈련도 진행되었다. 

 

중국이 보유한, 배수량 10,000t 이상의 대형 민간선박은 총 1,300척인데, 이 민간선박들은 전부 해상민병대에 소속되었다. 그러므로 대만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에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상륙작전을 개시하면, 중국해상민병대 소속 민간선박들이 대만상륙작전에 참가할 것이다.

 

중국해상민병대 소속 민간선박 400,000척이 상상을 초월한 벌떼전술(swarming tactics)로 서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를 뒤덮으며 대만군 함대와 미일동맹군 함대의 항로를 가로막고, 배수량 10,000t 이상의 대형 민간선박 1,300척을 대만상륙전에 동원하면, 대만해방전쟁은 신속하게 결속될 수 있다. 중국은 2015년부터 해상민병대를 동원한 대만상륙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것은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상륙전준비를 완료했음을 말해준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전쟁준비를 충분히 갖추었으므로, 2021년 10월 현재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에게 남은 것은 전쟁결정권의 행사이다.  

 

 

4. 대만의 난공불락 지하요새는 어떻게 파괴되는가? 

 

중국공산당 수뇌부는 대만군의 방어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판단해야 한다. 대만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에 중국인민해방군이 총공격을 개시하면, 대만군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압도적인 미사일공격으로부터 전투기를 무조건 방호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만일 대만군 전투기가 미사일공격을 받아 모조리 파괴되어 공군이 궤멸되면, 대만군 육군과 해군도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의 집중공습으로 궤멸될 것이다. 

 

이런 위험을 예감한 대만군은 대만의 중앙산맥 땅 속 깊은 곳에 자산(佳山)공군기지를 건설해놓았다. 이 지하공군기지는 전투기 250대가 들어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자산공군기지는 대만군이 중국인민해방군의 공격을 막아낼 최후의 방어거점이다. 중국은 자산공군기지를 파괴하면 대만해방전쟁을 신속하게 결속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에, 대만군은 전시에 자산공군기지 안에 들어가 7일 동안만 버티면 미국군이 대만해방전쟁에 개입하여 전세가 뒤바꿔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서 대만군은 자산공군기지 출입구에 무게가 8t이나 되는 강철문을 설치했고, 대만에서 자체로 개발한 반항공미사일 텐궁(天弓)-3을 자산공군기지 주변에 조밀하게 배치하여 강력한 반항공망을 구축했다. 그처럼 강력한 방호력을 갖춘 지하공군기지이므로 어떤 공습도 막아낼 만한 난공불락 지하요새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난공불락 지하요새에도 빈틈은 있다. 이를테면, 텐궁-3 반항공미사일에 배속된 반항공레이더의 표적탐지거리는 222km이고, 표적탐지고도는 30km이며, 요격거리는 200km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군 반항공레이더의 탐지거리 밖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여 반항공레이더를 파괴하고,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가면, 자산공군기지를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군이 최후의 방어거점인 자산공군기지를 잃어버리면, 전쟁수행력을 상실하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군 반항공레이더의 탐지거리 밖에서 대만군 반항공레이더를 파괴할 제1차 공격수단도 가지고 있고, 난공불락 지하요새라는 자산공군기지를 파괴할 제2차 공격수단도 가지고 있다. 그 두 종의 공격수단은 대만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H-6K 전략폭격기에 탑재되어 있다.

 

▲ 이 사진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이 보유한 H-6K 전략폭격기가 이륙하는 장면이다. 이 전략폭격기는 대만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군 반항공레이더의 탐지거리 밖에서 이 전략폭격기에 탑재한 창젠-10 장거리순항미사일을 발사하여 대만군 반항공레이더를 절제수술식 정밀타격으로 파괴할수 있다. 또한 중국인민해방군은 이 전략폭격기에서 발사한 레이저정밀유도 중력폭탄으로 대만군의 난공불락 지하요쇄를 파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은 100시간 만에 아주 싱겁게 종결될 수 있다.  

 

중국은 대만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H-6K 전략폭격기를 자체로 생산하여 150대를 실전배치했다. 전략폭격기 150대는 상상을 초월한 어마어마한 수량이다. 

 

대만군이 H-6K 전략폭격기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그 전략폭격기에 두 종의 강력한 공격무기가 탑재되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창젠(長劍)-10 공중발사장거리순항미사일이다. 이 장거리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1,500km이므로, 대만군 반항공레이더의 탐지거리 222km는 전혀 문제로 되지 않는다. H-6K 전략폭격기가 500kg의 고폭탄두를 장착한 창젠-10 장거리순항미사일을 대만군 반항공레이더의 탐지거리 밖에서 기습발사하면,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가 자산공군기지를 방어하는 대만군 반항공레이더를 절제수술식 정밀타격으로 파괴할 수 있다. 창젠-10 장거리순항미사일의 원형공산오차(CEP)는 10m다. 

 

대만군이 두려워하는 H-6K 전략폭격기에 탑재되는 또 다른 공격무기는 레이저정밀유도 중력폭탄(gravity bomb)이다. H-6K 전략폭격기의 폭장량은 12t이므로, 레이저정밀유도폭탄 6발을 싣고 출격할 수 있다. 창젠-10 장거리순항미사일을 기습발사하여 대만군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간 H-6K 전략폭격기가 레이저정밀유도 중력폭탄 6발을 자산공군기지에 집중투하하면 난공불락 지하요새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은 아주 싱겁게 종결될 수 있다. 중국의 군사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대만해방전쟁은 100시간(약 4일) 만에, 다시 말해서 미국군 증원부대가 대만에 접근하기 전에 중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신속히 결속될 수 있는 것이다. 

 

2021년 10월 4일 중국인민해방군은 각종 작전기 56대를 대만 방공식별구역 안으로 진입시켰는데, H-6K 전략폭격기 12대가 전투기 40대, 조기경보기 2대, 대잠초계기 2대와 함께 출동했다.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은 전투기 편대를 대만 방공식별구역 안으로 진입시키는 공습작전을 연습할 때마다 반드시 H-6K 전략폭격기 편대를 참가시킨다. 왜냐하면 H-6K 전략폭격기가 대만해방전쟁을 신속히 결속시킬 가장 위력적인 공격수단이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6일 대만 국방부장 추궈정(邱國正)은 입법원에 출석하여 최근 중국인민해방군이 대규모 공습작전연습을 진행한 것과 관련하여 대만군 전투기는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를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선제공격불가원칙을 “절대적으로 준수할 것”이라고 하면서, 대만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무력대치상황 중에 “냉정을 유지할 것을 엄격히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수세에 몰린 대만군이 선제공격전략을 포기했다는 말이다. 대만군의 전쟁전략은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와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전에서는 우세한 화력으로 선제공격을 하는 쪽이 승리하는 법인데, 대만군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압도적인 공세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선제공격전략을 포기하고 말았다. 전쟁을 두려워하면서 적의 위세에 겁을 먹으면 반드시 패한다. 오늘 대만군이 그런 꼴을 하고 있다. 

 

 

5. 어느 쪽이건 그 섬에 상륙하면, 중일전쟁 일어난다

 

중국공산당 수뇌부는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을 저지하고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강탈하려는 일본의 군사도발이 전쟁을 불러올 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일본은 중국 영토인 댜오위다오를 이른바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섬의 영유권을 강탈하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의 강탈야욕은 중국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한 공격무기의 전진배치를 불러왔다. 일본은 중일전쟁에 대비한 공격무기를 대만과 댜오위다오로 바짝 접근시켜 전진배치했다. 

 

이를테면, 일본은 2016년 댜오위다오에서 가장 가까운 요나구니지마(與那國島)에 연안감시대를 전진배치했고, 2017년 댜오위다오에서 가까운 오끼나와에 난세이(南西)항공방면대를 전진배치했고, 2018년 동중국해에서 육상자위대를 수송할 해상수송부대를 신설하면서 오끼나와에 병참기지를 설치했고, 2020년 댜오위다오에서 가까운 미야꼬지마(宮古島)에 지대함미사일부대와 지대공미사일부대를 전진배치하고, 병력수송헬기를 보유한 국경락도경비대를 신설했다. 

 

그리고 2021년 7월 1일 일본자위대는 댜오위다오에서 가까운 아마미오시마군도에서 주일미국군과 함께 반항공미사일을 발사하는 미일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일본은 2022년에 댜오위다오에서 남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이시가끼지마(石垣島)에 지대함미사일부대와 지대공미사일부대를 전진배치할 예정이고, 2023년에는 이미 연안감시대가 전진배치된 요나구니지마에 전자전부대를 추가로 배치할 예정이다. 

 

위에 열거한 여러 사례를 보면, 일본의 공격무기 전진배치가 ‘금지선’을 넘어섰고, 중국은 일본의 도발적 전진배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급박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2014년 2월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채택한 공식문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2014년 2월 중국공산당 수뇌부는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가 제출한 ‘청전결심서’를 심의하고, ‘중국의 고유한 영토인 댜오위다오 주권보호와 견실한 군사투쟁진행에 관한 중앙군사위원회 결의’라는 제목의 공식문서를 채택하면서 중국이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을 수행할 다섯 가지 개전조건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네 번째 개전조건은 일본의 군함이나 항공기가 댜오위다오 영해와 영공에서 중국의 해양감시선, 민간선박, 군함, 항공기의 항행을 무력으로 차단하거나 도발하는 경우, 중국은 즉시 일본의 군함이나 항공기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 위의 사진은 2020년 9월 21일 일본해상자위대 소속 P-3C 초계기가 중국 영토인 댜오위다오 영공을 침범하여 비행하는 장면이다. 일본자위대가 중국 영공을 침범하는 것은 중국을 자극하여 중일전쟁을 도발하려는 무모한 불장난이다. 일본은 대만과 댜오위다오에 가까운 자국 섬들에 침공무력을 전진배치해놓고 중국공격을 가상한 전쟁연습에 광분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만 믿고 중국을 자극하면서 중일전쟁의도화선에 불을 붙이려는 일본의 불장난은 동아시아전쟁위기를 날로 격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위에 열거한 것처럼, 2021년 10월 현재 일본은 댜오위다오 인근에 있는 여러 섬들에 공격무기를 전진배치해놓고 언제든지 중국의 해양감시선, 민간선박, 군함, 항공기의 항행을 차단할 무력도발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처럼 엄중한 정세 속에서 2020년 한 해 동안 중국이 댜오위다오 영해로 해안경비함을 진입시킨 회수는 총 1,157회이며, 2021년 1월부터 중국 해경 소속 무장함선들이 한 달에 한 차례씩 댜오위다오 앞바다에 계속 출현하고 있다. 또한 2021년 1월부터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은 댜오위다오 상공으로 전투기를 수백 차례 출동시켰다. 2021년 4월 26일 중국인민해방군 항모전투단은 댜오위다오에 접근하여 조기경보헬기 1대를 이함시켜 댜오위다오렬도에서 오끼나와 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치웨이위다오(赤尾釣島) 상공을 비행하였다. 2021년 8월 26일에는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정찰기, 대잠초계기, 정찰-공격무인기가 일본 오끼나와 인근 상공에 출현하였다.  

 

위에 서술한 정황을 보면,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에서 매우 심각한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쪽이건 댜오위다오에 상륙하면, 중일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험이 조성된 것이다. 

 

2020년 10월 일본 오끼나와현 이시가끼시 당국이 ‘센까꾸’라는 명칭이 새겨진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 댜오위다오에 상륙하려고 하였을 때, 일본 총무성은 그들의 상륙을 불허했다. 이 사건은 일본 정부가 일본인들이 댜오위다오에 상륙하면 중일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일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6. 중국의 ‘이상한 침묵’에 놀란 미국군 지휘부의 이적행위

 

중국공산당 수뇌부는 대만해방전쟁과 대일전쟁의 결정적 시기에 미국이 무력개입을 감행하여 중국과 전쟁을 벌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대만해방전쟁과 중일전쟁의 결정적 시기에 미국이 그 전쟁에 무력개입을 감행하면 전쟁은 중미전쟁으로 확전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중미전쟁은 인류역사에서 전혀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전쟁이다. 왜냐하면, 중미전쟁은 사회주의국가 대 제국주의국가의 전쟁이기 때문이고, 핵강국 대 핵강국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국가 대 제국주의국가의 전쟁, 그리고 핵강국 대 핵강국의 전쟁이 과연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는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중국도 미국의 전쟁수행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하고, 미국도 중국의 전쟁수행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한다. 

 

미지의 세계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떠돌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미증유의 중미전쟁은 당사국들인 중국과 미국에 각각 두려움을 안겨준다. 미증유의 중미전쟁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은 2020년 11월 3일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를 전후하여 워싱턴에서 발생한 극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증폭되었다. 

 

2020년 11월 2일 중국 홍콩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보도에 따르면, 당시 중국공산당 수뇌부는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 2020년 11월 3일부터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되는 2021년 1월 20일까지 기간에 중미관계가 사상 최악의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태에 빠질 것으로 우려하여 미국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하는 가운데 미국 대선후보들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이상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국의 ‘이상한 침묵’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워싱턴에서 불안감을 가장 심하게 느낀 쪽은 미국군 지휘부였다. 중국의 ‘이상한 침묵’이 혹시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혹, 다시 말해서 미국이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정치적 대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중국이 전격적으로 대만해방전쟁을 단행하려고 ‘이상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강한 의혹이 미국군 지휘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처럼 난감한 상황에서 미국군 지휘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와 비밀련락을 취하면서 중국의 ‘이상한 침묵’이 촉발시킨 자기들의 의혹을 해소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어 당시 미국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Mark T. Esper)는 비밀통신선을 통해 중국 국방장관 웨이펑허(魏鳳和)에게 연락했고, 미국군 합참의장 마크 밀리(Mark A. Milley)도 별도의 비밀통신선을 통해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 팡펑후이(房峰輝)에게 연락했다. 

 

미국군 지휘부가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에 비밀련락을 취했다는 극비사항은 한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2021년 9월 21일 미국에서 출판된, ‘위험(Peril)’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폭로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와 로벗 코스타(Robert Costa)가 공동집필한 그 책에 따르면, 미국 대선을 앞둔 2020년 10월 중순 당시 미국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는 비밀통신선을 통해 중국측에 연락하면서, 중국이 대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워싱턴 정치권의 혼란상을 오판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미국은 중국을 공격할 의사를 갖지 않았으니 앞으로 상호련락을 계속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에스퍼 국방장관이 그런 비밀메시지를 중국측에 전했으나, 상황은 더 악화되는 듯하였다. 2020년 10월 23일 시진핑 총서기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항미원조 출국작전(6.25전쟁 참전을 뜻함) 70주년 기념대회’에서 “우리의 신성한 영토를 침범하거나 분렬시키는 시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 인민은 반드시 단호한 반격을 가할 것”이라고 언명한 바 있다. 

 

▲ 위의 사진은 2021년 1월 6일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트럼프를 지지하는 우익시위대가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몰려가 경찰병력과 충돌하는 장면이다. 우익시위대는 경찰저지선을 뚫고 의사당 안에 난입하였고, 연방의회에 참석한의원들은 회의를 급히 정회하고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의사당 난동사건은 미국정치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을 뿐 아니라, 워싱턴 정치권에서 대선을 전후하여 발생한 대혼란을 틈타 중국이 대만해방전쟁을 단행하지나 않을까하고 노심초사하던 미국군 지휘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의사당 난동사건이 일어난 이틀 뒤, 미국군 합참의장은 비밀련락선을 통해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게 연락하여 트럼프가 중국을 공격하겠다고 결정하더라도 그 정보를 중국측에 미리 알려주겠다하면서 전쟁을 하지 말자고 했다. 중국공산당 수뇌부와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는 미국군 지휘부의 비밀련락사건에서 미국군 지휘부의 심리상태를 꿰뚫어보면서 미국군이 겉으로만 강해보이고 속은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미국군 지휘부는 시진핑 총서기의 위와 같은 발언을 듣고, 중국공산당 수뇌부가 대만해방전쟁을 단행할 결심을 표명한 것으로 과도하게 해석하면서 불안에 떨었다. 다급해진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2020년 10월 30일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게 연락하여 에스퍼 국방장관의 비밀메시지를 다시 강조했다. 

 

또한 그 책에 따르면,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우익시위대가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한 폭동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이틀이 지난 2021년 1월 8일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게 또 다시 연락하였는데, 트럼프가 중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며, 만일 트럼프가 중국을 공격하겠다고 결정하더라도 그 정보를 중국측에 미리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우리가 당신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신들도 우리에게 선제타격을 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전쟁결정은 가장 중대한 국가기밀인데, 미국군 지휘부가 그런 국가기밀을 적국에 미리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이적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미국군 지휘부가 중국과의 전쟁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해방전쟁을 위한 예비적 군사행동을 취할 때마다 긴급히 항모타격단을 남중국해에 출동시키면서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 무력시위를 벌려놓지만, 위에 서술한 미국군 지휘부의 심리상태를 보면, 그런 무력시위는 소리만 요란할 뿐이고, 중국과의 전쟁에 겁을 먹은 미국군의 보여주기식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공산당 수뇌부와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가 미국군 지휘부의 심리상태를 꿰뚫어보면서 미국군이 겉으로만 강해보이고, 속은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로써 중국공산당 수뇌부와 중국인민해방군 지휘부는 중미전쟁이 일어나도 그 전쟁에서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분명하다. 그런 자신감은 중국이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해온 대만해방전쟁과 대일전쟁의 결정적 시기를 한 걸음 더 앞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