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8일 화요일

가슴에 한껏 멋 부린 ‘진객’ 흰눈썹울새

윤순영 2019. 06. 18
조회수 130 추천수 0
극히 드물게 찾아오는 나그네새, 날쌘 땅 위의 사냥꾼

크기변환_YSY_2326.jpg» 파랑, 빨강, 주황색으로 한껏 멋을 부린 흰눈썹울새 수컷.

우리나라가 애초 번식지나 월동지가 아닌 새가 어쩌다 들르는 일이 있다. 반가운 이런 손님을 나그네새라고 부른다. 흰눈썹울새는 나그네새 가운데도 극히 만나기 힘든 새인데, 운 좋게 관찰 기회가 왔다. 지난달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에서 흰눈썹울새를 만났다.

수컷의 멱과 가슴은 푸른색이며, 가운데는 진한 주홍색 깃털이 있다. 자세히 보면, 푸른 가슴 아래 검은색, 그 밑에 흰색, 진한 주홍색의 깃털이 차례로 나 있다. 가슴과 멱까지 울타리를 쳐놓은 것 같은 깃털이 특이하다. 인디언 추장이 목걸이를 한 것 같다.


크기변환_YSY_2396.jpg» 흰눈썹울새의 자세가 당당하다.

크기변환_YSY_0484.jpg» 꼬리를 바짝 올린 채 풀밭 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흰눈썹울새는 땅 위에서 걸어 다니기를 좋아한다. 하천과 습지 주변의 갈대밭이나 풀밭에 살며 땅 위에서 곤충이나 거미를 잡아먹는다. 가슴을 활짝 펴고 꼬리를 위로 바짝 치켜든 채 덤불을 바쁘게 돌아다니거나 뛰어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처음 만난 흰눈썹울새는 절대 곁을 주지 않고 얼굴만 내밀었다. 마주치면 숨어버리기 일쑤다. 돌아다니는 동선이 매우 정확하다. 매우 가까이 곁을 주는 듯하다가 멀리 가고 다시 다가오는 듯하다 멀리 떠나는,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다.


크기변환_YSY_2152.jpg» 몸을 숨긴 흰눈썹울새.

크기변환_YSY_1700.jpg» 꼬리를 치켜세워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땅에서 사냥하는 새들은 발걸음이 매우 빨라, 위협을 느끼면 재빨리 풀숲으로 몸을 숨긴다. 예민하고 경계심과 조심성이 강하다. 몸을 바짝 세워 주변을 살피기도 하고, 쉬지 않고 꼬리를 흔들어 댄다.

크기변환_YSY_0819.jpg» 달음질치는 흰눈썹울새.

크기변환_YSY_1804.jpg» 먹이를 사냥하는 흰눈썹울새.

빠른 걸음으로 갑자기 ‘휙’ 지나가면 뭐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먹잇감은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사냥당한다. 흰눈썹울새는 진정한 ‘땅 위의 사냥꾼’이다.

크기변환_YSY_1940.jpg» 도망치지 않고 버틴다.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크기변환_YSY_2261.jpg» 돌 위에 올라서서 가슴을 한껏 내밀고 자신감을 과시하는 흰눈썹울새.

크기변환_YSY_1805.jpg» 다리를 쩍 벌리고 선 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빠른 행동이 다소 방정맞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4~15㎝의 작은 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잠시 멈춰 주변을 살필 때, 이 작은 새는 천하를 호령하듯 가슴을 내밀고 꼬리를 한껏 위로 치켜든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도도하게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보면, 호랑이가 다가와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크기변환_YSY_1676.jpg» 경계심이 강하지만 반대로 호기심도 많다.

크기변환_YSY_0539.jpg»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경계한다.

크기변환_YSY_2020.jpg» 사냥감을 발견하면 꼬리를 바짝 치켜세운다.

나는 새가 나무보다 땅을 좋아하는 것은, 목숨을 걸더라도 먹을거리가 당장 눈앞에 널려있다는 얘기다. 흰눈썹울새는 겨울에 단독으로 생활하다 번식기에 암수가 함께 땅 위에서 산다. 5∼7월 땅바닥 작은 구멍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5∼7개의 알을 낳아 13~14일 동안 품는다.

크기변환_YSY_9185.jpg» 바닷가를 찾은 흰눈썹울새.

곤충이나 거미를 좋아하지만 식물의 열매도 먹는다. 수풀 규모가 작거나 늪지, 단일 종의 나무숲 산림지대를 좋아한다. 수컷은 다양하고 매우 모방적인 노래를 부른다.전형적인 채팅 방법을 동원하여 수다를 떨듯이 울어댄다

크기변환_YSY_0497.jpg» 바위에 올라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는 흰눈썹울새.

크기변환_YSY_2410.jpg» 긴장을 풀고 몸단장을 한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오호츠크해 연안, 캄차카, 알래스카 서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아프리카 북부, 인도, 동남아시아로 이동한다.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나그네새다.
봄철에는 4월 초순부터 5월 중순까지, 가을에는 10월 초순부터 11월 중순까지 통과한다. 귀하고 흔하지 않은 새다. 매우 적은 수가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월동하기도 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우리민족끼리”라면 개성은 열린다

[기획연재] 6.15와 판문점선언(3) 6.15와 경제협력
6.15공동선언 발표 19돐을 맞아 6.15시절 ‘우리민족끼리’가 사회 전반에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통해 4.27시대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기 위한 과제를 조망해 본다.
[기획연재] 6.15와 판문점선언
(1) 6.15와 민족화해 : 너와 나 함께했던 그 시절
(2) 6.15와 반미자주 : 미국이 점점 싫어지는 이유
(3) 6.15와 경제협력 : '우리민족끼리'라면 개성은 열린다
(4) 6.15와 수구보수
“개성공단에서는 개성공단에 맞는 운전면허증을 발급합니다. 면허증 일련번호 마지막 숫자는 ‘615’로 통용됩니다. 개성공단이 남과 북, 6.15공동선언이 만든 ‘옥동자’라는 의미 때문입니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이 한 라디오(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다.
2000년 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 4항.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6.15선언 발표 이후 남북은 착실히 합의를 지켜나갔다.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라 하는 ‘개성공단’.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조선) 아시아태평양위원회의 <개성공단 건설 및 운영 합의서> 체결을 시작으로, 12월 남북이 장관급회담을 열어 <남북경협 4대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2003년 6월 개성공업지구 착공식을 연다.
1년만인 2004년 6월, 시범단지 2만 8천 평 부지조성을 완료하고 15개 입주업체를 선정해 입주 계약을 체결한다. 2005년 3월엔 남측 지역에서 개성공단으로 전력공급이 시작됐고, 2005년 12월엔 개성공단과 남측 지역 간 통신이 연결됐다.
▲ 개성공단의 모습 [사진 : 뉴시스]
개성공단이 위치한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봉동리는 군사분계선에서 최단거리가 2.5km, 비무장지대에서 서쪽으로 고작 500m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개성공단이 들어서기 전 북한(조선)군 6사단, 64기갑사단, 62포병여단이 배치돼 있었다. 북한(조선)은 개성공단 부지조성을 위해 이 지역 군병력을 10~15km 뒤로 물렸다. ‘군사지역’을 ‘경제협력지역’으로 변화시키고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개성공단이 담당했다. 김진향 이사장이 개성공단을 “평화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개성공단은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노동력과 토지를 활용해 진정한 의미의 ‘남북 상생의 경제협력모델’을 창출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징’이라는 표현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개성공단이 처음 가동된 2004년을 시작으로 10년간 개성공단 기업체 수는 8배, 생산액은 30배로 늘었다. 2005년 1500만 달러로 시작해 10년간 누적 생산액은 23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개성공단 방문 인원은 누적 94만 명에 달했다.
2000년 이후 남북교역액은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되기 전까지 꾸준히 증가해, 2015년 남북교역 규모는 27억 15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교류 건수에 있어서도 2000년 이후 총 470여 건, 이중 개성공단 관련 사업이 총 390건으로 약 80% 이상을 차지했다.
▲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조선) 노동자들 [사진 : 뉴시스]
남북의 경제협력, 나아가 남북 간 긴장 완화와 관계발전에 기여했던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에 따라 부침을 겪기도 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북한(조선)에 대한 남북교역 중단과 대북 신규투자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북제재 조치 ‘5.24조치’를 발표해 개성공단을 축소하고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도 모두 중단했다. 2013년 4월 한미합동군사훈련으로 인해 잠시 가동중단을 겪기도 한 개성공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북한(조선)의 4차 핵실험을 이유로 2월 전면 중단에 이른다.
남북경제교류협력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남북철도 연결, 그리고 금강산관광이다.
6.15시대였던 지난 2003년 경의선을, 2005년 동해선 일부를 복원한 남과 북은 철도로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2007년, 한국전쟁 이후 56년 만에 경의선이, 57년 만에 동해선이 남북을 종단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활발하게 추진된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된다.
1998년 금강호 첫 출항 이후 6.15의 바람을 타고 2005년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한 후 금강산관광은, 2008년 이후 10년 이상 멈춰 있다. 그간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은 200만 명이 넘었다.
6.15공동선언 발표로 활발했던 남북경제교류협력은 결국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모두 멈춰 섰다.
대북제재로 멈춰선 남북경협… 공동선언 정신으로 돌아가야
▲ 사진 : 뉴시스
지난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엔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4월 판문점선언에서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고,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 나가기로 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했다. 연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도 갖기로 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개성공단 전면 중단의 이유이기도 하면서 미국이 대북제재를 시행한 이유는 북한(조선)의 핵실험이다. 북한(조선)은 이를 1년이 훨씬 넘도록 중단했다. 그러나, 원인은 해소됐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성공단은 여전히 폐쇄상태에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 그리고 한미워킹그룹의 간섭과 통제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은 미국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에 이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 직후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11월 비건을 미국 측 대표로 해, 대북제재와 남북관계를 조정하는 ‘한미워킹그룹’ 출범 이후 미국은 사사건건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했다.
미국은 남북철도 연결, 그리고 금강산관광 재개 역시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8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남과 북은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경의선 북측구간 남북공동조사를 추진했다. 그러나 유엔군 사령부의 통행불허로 무산됐다. 연내 치르기로 한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은 한미워킹그룹을 거치고 나서야 지난해 12월26일 겨우 치를 수 있었다. 전문가들도 “대북제재와 관련없다”, “행정명령으로 재개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금강산관광 역시 대북제재에 묶여있다.
▲ 지난해 12월 26일 북한(조선) 개성시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서울-평양 표지판 제막식’ [사진 : 뉴시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대북제재는 더욱 노골화됐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 “아직 적기가 아니”라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제재 유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경제협력에 노력을 기울이던 문재인 정부에 한미워킹그룹은 한미사이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자리가 아니라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로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김연철 통일부 장관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의 발전과 발을 맞춰야 한다”면서 남북관계 발전에 속도조절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제재가 남북경제협력에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도 제2의 6.15시대, 판문점선언 시대를 열겠다는 시민, 사회단체들의 여론은 쉬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2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68.9%, 반대 26.5%로 집계됐다. 지난 2017년 6월에 실시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국민여론’ 조사(찬성 49.4% vs 반대 39.9%)에 비해 찬성 여론이 약 20%p 확대된 결과다. (사)겨레하나는 6.15공동선언 발표 19주년을 앞두고 지난 14일, 6150명이 작성한 금강산 방문신청서를 통일부에 직접 접수하는가 하면, 금강산 가기 운동은 지역과 단체들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 (사)겨레하나는 지난 14일 6.15공동선언 발표 19주년 맞아 6,150장 금강산 방문신청서를 통일부에 직접 접수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온 겨레가 북남관계개선의 덕을 실지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4월 시정연설에선 “(대북제재는) 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인 것만큼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도 방관시 할 수도 없다…”면서 제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사 또한 명확히 했다. 6.15공동선언, 판문점선언을 합의했던 정신으로 돌아와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북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지다.
지난달 17일, 정부는 3년 만에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자산점검을 위한 방북신청을 승인하면서 “기업인들의 조기 방북이 성사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북경제협력과 남북관계 개선, 대북제재를 대하는 남쪽의 선택 역시 다른 데 있지 않다. 6.15공동선언과 이를 계승한 판문점선언에 답이 있다.
“나라의 통일 문제는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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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부인 “그냥 아는 아저씨, 내가 아니면 결혼 못할 것 같았다.”

검사가 돈을 쫓아가면 스폰서 검사로 타락합니다
임병도 | 2019-06-19 09:02:07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윤 후보의 이력이야 워낙 많이 알려져 있어, 언론은 잘 보도되지 않았던 그의 부인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윤 후보자 부인의 재산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윤 후보자가 부인과 결혼하게 된 사연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줘
돈도 없고 내가 아니면 결혼 못할 것 같았다.
윤석열 후보자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 스님이 나서서 결혼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윤 후보를 왜 아는 아저씨라고 불러왔을까요? 김 대표는 윤석열 후보자보다 12살이 어립니다. 단순히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결혼 당시 윤석열 후보자의 나이는 53살이었습니다.
윤 후보자가 53살에 결혼했으니 재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혼입니다. 김 대표의 말처럼 그냥 아는 아저씨처럼 살다가 옆에서 보다 못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준 셈입니다.
윤석열 후보자의 결혼이 늦은 이유는 사법시험을 무려 9수 끝에 합격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윤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 재학 도중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학내 모의재판에서 검사역을 맡았습니다. 윤 후보자는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한동안 강원도로 도피하기도 했습니다.
윤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차에서 계속 낙방하다가 1991년에야 합격합니다. 32살의 나이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윤 후보자는 나이가 많았던 탓에 23기 사이에서는 형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자보다 4살 어린 우병우 전 청와대 수석이 4 기수 선배이고, 14기였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고작 1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으니 ‘아저씨’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김건희 대표는 윤석열 후보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가진 돈도 없고 내가 아니면 영 결혼을 못 할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결혼할 때 남편이 가진 것은 통장에 2000만 원이 전부
자기 명의 집도 없는 검찰총장 후보
김건희 대표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결혼할 때 보니 남편이 가진 것이라고는 통장에 2000만 원이 전부였다. 돈이 너무 없어 결혼 안 하려고까지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김 대표는 윤 후보자가 돈이 없었던 이유로 “빚내서라도 자기가 먼저 술값 내고 밥값 내는 사람이라 월급이 남아나질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마 윤 후보자가 나이가 많았기에 형이라며 따르는 사람이 많아, 술값이고 밥값을 도맡아 낸 것으로 보입니다.
윤 후보자가 돈이 없는 것은 결혼하고 7년이 지났지만 똑같습니다. 2019년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현황을 봐도 윤 후보자의 재산은 예금 2억 1300만 원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김건희 대표의 재산입니다.
김건희 대표의 재산을 살펴보면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의 토지와 서울 서초구에 주상 복합 건물 한 채가 있습니다. 이외에는 49억의 현금과 주식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산 내역 어디를 봐도 윤석열 후보자 명의로 된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검찰총장 후보자가 집도 한 채 없이 살아온 것입니다.
윤 후보자가 재테크 등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그가 여주지청장 시절이었던 2013년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잘 드러납니다. 당시 윤 후보자는 부인 재산 신고를 누락했다는 오해를 받았는데, 재산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대출금 4억 5000만원까지 포함해 과다 신고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윤석열 후보자는 “지난해 결혼해 처음으로 아내 재산을 신고하면서 착오가 생겼다”고 해명했는데, 착오가 아니라 재산 신고를 별다르게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검사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부동산이 하나 없었던 사람이 부인이 보유한 부동산을 신고하려니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부인 재산? 김건희 대표 재산이 맞다.
결혼 후 재산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까먹고 있다.
만약 지금 윤석열 후보자가 이혼하면 재산분할은 어떻게 될까요? 윤 후보자 예금 이외에는 분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보유한 재산 대부분은 김건희 대표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스스로 만들어 왔기 때문에 윤 후보자의 기여도는 0입니다.
“결혼 전에도 시아버지가 맨날 남편 빈 지갑 채워주느라 바빴다고 들었어요. 결혼 후 재산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까먹고 있어요. 나중에 변호사 하면 그래도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그 기대도 접었습니다. 1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의뢰인들 혼내다 끝났다고 하더군요.”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 주간조선 인터뷰 )
언론은 윤석열 후보자 부인의 재산이 50억이 넘는 점을 앞다퉈 강조합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미 결혼하기 전이었던 1990년대 IT 주식으로 종잣돈을 마련해 문화콘텐츠 등의 사업으로 재산을 만들었습니다.
김건희 대표는 윤 후보자를 가리켜 “남편은 거짓 없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부인이라 남편을 치켜세운 말은 아닙니다.
과거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국회의원 당선 후 사법연수원 동기들끼리 축하 모임을 했습니다. 당시 윤석열 검사는 모임에 참석해 10분 간 말없이 술 한 잔만 마시고 떠났습니다. 박범계 의원은 “국회의원과 현직 검사가 사석에서 함께 있으면 검찰의 정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에게 깨우쳐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검사가 돈을 쫓아가면 스폰서 검사로 타락합니다. 그런 면에서 윤 후보자는 평생을 돈이 아닌 검사의 길을 걸어간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지만, ‘검찰 장악 저지’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에는 참여할 듯보입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내내 윤 후보자의 부인 재산을 공격하며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것입니다.
집 한 채 없이 평생 검사로 살아온 윤석열 후보자에게 물을 것은 부인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가 아닙니다. 앞으로 검찰 개혁을 어떻게 해나가고 끝까지 국민에게만 충성하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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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기로 작정했다”

“정부가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기로 작정했다”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6/18 [23:16]  최종편집: ⓒ 자주시보
경찰이 지난 3~4월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김 위원장이 간부들과 사전 공모해 국회에 무단 침입하는 등 불법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가 상당하고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이에 민주총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정부가 결국은 그릇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기로 작정했다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정책 추진에 거세게 저항하는 민주노총을 굴복시키기 위한 시도이며자유한국당을 비롯한 극우 집단들의 끊임없는 민주노총 때리기에 대한 편승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정가 구속하려 하는 것은 김명환 위원장 개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자의 삶과 노동이라며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모아 노동기본권 보장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더욱더 힘찬 투쟁에 온 몸을 던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중당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경사노위 불참에 대한 정치 보복이며적폐세력의 반격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 만들기라며 “‘너희도 민주노총 꼴 나기 싫으면 잠자코 순응하라는 대국민 협박에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민중당은 온갖 불법으로 경영권 승계하고 증거까지 인멸하는 재벌과는 희희낙락 맥주 마시며 기념사진이나 찍는 주제에 노동자에게 불법 시위를 죄로 묻다니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불법이 그렇게 죄라면 이재용부터 잡아 가둬라고 주장했다.

노동당도 성명을 통해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대응은 노동존중 사회가 얼마나 기만인지를 다시 보여준다며 노동법 개악이 전제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라며 민주노총 길들이기를 시도하더니이제는 민주노총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경찰은 당시 국회 앞 투쟁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74명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 하고 있다민주노총 조직쟁의실 소속 간부 3인은 이미 구속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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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영장 신청에 대한 민주노총 성명

정부가 결국은 그릇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기로 작정했다.

경찰은 18일 온갖 혐의를 붙여 김명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이는 개별 사안으로 책임을 몰아 본질을 흐리려는 탄압에 불과하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정책 추진에 거세게 저항하는 민주노총을 굴복시키기 위한 시도이며자유한국당을 비롯한 극우 집단들의 끊임없는 민주노총 때리기에 대한 편승이다.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삶과 노동을 대변하는 조직이다정부가 구속하려 하는 것은 김명환 위원장 개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자의 삶과 노동이다.

민주노총이 이 같은 겁박에 굴복한다 생각하는가정부가 자본의 탐욕과 구태에 무릎 꿇고 이전과 다름없이 후진국형 저임금장시간 노동체계를 유지하고 악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보인 이상민주노총의 답변은 확실해졌다.

민주노총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모아 노동기본권 보장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더욱더 힘찬 투쟁에 온 몸을 던질 것이다.

2019년 6월 18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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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노동신문 기고 통해 ‘북중친선’ 강조

“한반도 문제 관련 대화와 협상 진전 이루도록 추동”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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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9  09: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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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일 북한을 첫 국빈 방문하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19일 <노동신문> 기고를 통해 북중친선 강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문제 진전 추동 의지를 밝혔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날 시 주석은 ‘중조친선을 계승하여 시대의 새로운 장을 계속 아로새기자’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조친선협조관계를 공고발전시킬데 대한 중국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변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국 측은 김정은 위원장 동지께서 조선당과 인민을 이끌어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관철하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개선에 총력을 집중하여 조선이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롭고 보다 큰 성과를 이룩하시는 것을 견결히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 동지의 올바른 결단과 해당 각측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조선반도에 평화와 대화의 대세가 형성되고 조선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역사적 기회가 마련됨으로써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정과 기대를 획득한데 대하여 기쁘게 보고 있다”면서 “중국 측은 조선동지들과 함께 손잡고 노력하여 지역의 항구적인 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함께 작성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을 통하여 김정은위원장동지와 조선동지들과 함께 중조친선협조관계를 설계하고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새로운 장을 아로새기려고 한다”고 밝혔다.
“전략적 의사소통과 교류를 강화하고 서로 배우면서 전통적인 중조친선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할 것”이고 “고위급 내왕의 훌륭한 전통과 인도적 역할을 발휘하여 중조관계발전의 설계도를 잘 작성하고 중조관계발전의 방향을 잘 틀어쥘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여러 급의 의사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당적교류를 심화시키며 국가관리 경험을 교류하여 자기 당과 자기 나라의 사업을 훌륭히 계승하고 훌륭히 발전시켜 나갈 것”이고 “친선적인 내왕과 실무적인 협조를 강화하여 중조관계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의사소통과 대화, 조율과 협조를 강화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며 “중국 측은 조선 측이 조선반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는 것을 지지하며 대화를 통하여 조선 측의 합리적인 관심사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조선 측 및 해당 측들과 함께 의사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조선반도문제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에서 진전이 이룩되도록 공동으로 추동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18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이뤄지는 이번 방북 기간 시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과 회견, 회담하고 평양 시내에 있는 ‘중조우의탑’ 등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확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일주일 사이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모두 만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