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2일 토요일

[3신] 가로등불빛 받으며 행진 “양심수 석방이 곧 민주주의다”


[동행취재] 모든 양심수 석방 ‘8.15에 만나요’ 도보행진단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7-08-12 16:44:00
수정 2017-08-13 03: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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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7시 30분경 도보행진단은 수원구치소에서 약 7.3km 떨어진 효원공원에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청와대를 향한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을 이어갔다.
12일 오후 7시 30분경 도보행진단은 수원구치소에서 약 7.3km 떨어진 효원공원에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청와대를 향한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을 이어갔다.ⓒ민중의소리
[3신:밤 12시] 도보행진단, 가로등불빛 받으며 행진 “양심수 석방이 곧 민주주의다”
모든 양심수 석방 ‘8.15에 만나요’ 도보행진단 행진 1일차 마무리
해가 저물고 가로등불빛이 켜졌지만 모든 양심수들의 석방을 바라는 도보행진단의 발걸음은 계속됐다.
12일 오후 7시 30분경 도보행진단은 수원구치소에서 약 7.3km 떨어진 효원공원에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청와대를 향한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을 이어갔다.
참가자들은 ‘십시일반음식연대밥묵자’에서 준비한 제육덮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웠다. 시원한 콩나물냉국도 준비됐다. 반찬으로는 김치와 마늘장아찌가 나왔다.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참가자들이 행진을 시작하자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가로등 불빛과 차량불빛에 의존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던 경찰도 경광등을 흔들며 도보행진단의 행진을 묵묵히 도왔다. 그 뒤로는 구급차량도 뒤따랐다. 무더운 날씨로부터 행진 참가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의사들도 차를 타고 행진대열 뒤를 따랐다. 길벗한의사회 소속 인애한의원 지은혜 한의사와 기운찬한의원 김정현 한의사다.
12일 오후 7시 30분경 도보행진단은 수원구치소에서 약 7.3km 떨어진 효원공원에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청와대를 향한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을 이어갔다.
12일 오후 7시 30분경 도보행진단은 수원구치소에서 약 7.3km 떨어진 효원공원에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청와대를 향한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을 이어갔다.ⓒ민중의소리
낮에는 주로 20대 참가자들이 신청한 최신노래가 행진차량에서 흘러나왔지만, 해가 진 뒤에는 40~50대 참가자들의 신청곡이 흘러나왔다.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가 다시 부른 강산애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행진 분위기를 띄웠다. 참가자들은 리듬에 맞춰 부채와 몸을 흔들며 행진했다.
학생청년들의 분위기에 대열 뒤편에서 도보행진을 따라오던 강광철(50)씨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구명위) 회원인 강광철씨는 “앞에서 행진하고 있는 통일대행진단 학생들의 젊은 에너지가 신선하고 파릇파릇해서 너무 좋다”며 웃음 지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취임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인권을 생각하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했다가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보복을 당해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을 사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 한사람의 양심수도 감옥에 있지 않을 때, 비로소 인권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 상황을 개선시키고 싶어서 행진에 참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 선두에는 대학생 통일대행진단 50여명이 섰다. 통일대행진단은 지난 6일부터 활동을 시작해 사드배치 지역인 성주 소성리를 방문해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이후 12일·13일 1박2일 동안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에 참여했다.
12일 오후 7시 30분경 도보행진단은 수원구치소에서 약 7.3km 떨어진 효원공원에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청와대를 향한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을 이어갔다.
12일 오후 7시 30분경 도보행진단은 수원구치소에서 약 7.3km 떨어진 효원공원에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청와대를 향한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을 이어갔다.ⓒ민중의소리
도보행진은 구명위 차원에서 준비한 행사다. 이번 도보행진을 준비한 구명위 회원 권혜인씨는 “수원구치소에서 청와대까지 41km”라며 “도보행진을 준비하기 위해 3차례 사전답사를 다녔다”고 밝혔다. 그는 “함께 걸으며 양심수 문제에 대해서 알리고 고민할 수 있는 도보행진 기획에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도보행진에 앞서 지난 9·10·11일 3일 동안, 그는 30여명의 청년학생들과 함께 ‘모든 양심수 석방! 815에 만나요! 도보행진단 실천활동’이라는 양심수 석방 운동을 벌였다. 아침마다 수원구치소에 모여 이석기 전 의원에게 서신을 쓰고 수의복을 입고 수도권 곳곳에서 침묵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2일 도보행진을 시작하는 날 오전에는 이 전 의원과 접견했다. 권씨는 “서신을 받아본 이석기 전 의원이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오후 10시 50분경 이날의 목적지인 인덕원역에 도착해 숙소로 이동하고 휴식을 취했다. 도보행진단은 다음날 오전 8시에 다시 인덕원역에서 출발해 과천역과 반포한강공원, 서울역 등을 지나 청와대로 향한다. 이후 청와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시작됐다.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시작됐다.ⓒ민중의소리
[2신:12일 오후 7시 30분]“양심수 석방은 우리 사회 분단적폐 끝장내는 것”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시작됐다. 뜨거운 8월 햇빛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행진차량에서는 빅뱅의 ‘뱅뱅뱅’(BANG BANG BANG),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 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쬐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진에 참여한 학생시민들은 몸을 신나게 흔들며 웃는 얼굴로 땀을 흘렸다.
방송차에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참가자들은 “양심수 석방이 민주주의다”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 외에도 이들은 “양심수 석방은 의지의 문제다”, “반공논리 몰아내고 민주주의 안아오자”, “이석기를 석방하라”,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1차 행진은 수원구치소에서 시작해 홈플러스 북수원점을 지나 효행공원까지 이어졌다. 지나가던 수원시 시민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참가자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들 중에는 엄지를 치켜 올리며 응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행진을 쫓으며 함께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진행했다.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진행했다.ⓒ민중의소리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진행했다.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진행했다.ⓒ민중의소리
행진 중에는 참가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창환 민중연합당 상임대표는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 땅의 자주통일평등평화 그리고 민중생존권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싸웠던 인물”이라며 “촛불항쟁의 불씨였고, 도화선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이들을 석방하지 않는 다는 것은 조국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사들이 해방 후에도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왜 주저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진정 문재인 정부가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촛불의 목소리를 듣고 양심수들을 전원 석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경수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장은 “광복절을 3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양심수 석방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는 단지 몇몇 사람을 구해내겠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적폐 중 한국 사회를 옥죄어온 분단적폐를 끝장내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것,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이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다.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시작됐다.
12일 오후 3시 30분,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행진이 시작됐다.ⓒ민중의소리
대학생 참가자들의 발언도 있었다. 이화여대 정효주(20,여) 1학년 학생은 “지난 촛불정국 때 양심수 가족들을 만난 적이 있다”며 “당시 가족들은 양심수 문제를 거론하면 분위기를 망치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고 한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정 학생은 “박근혜정권의 탄압으로 억울하게 구속된 사람들이 해방되어야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며 “광복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문재인 정부에 의해 양심수 석방이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윤모(20) 대학생은 “지금 양심수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반공논리가 유효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학생은 “공산주의가 아니면, 사회주의가, 아니면 그와 비슷한 진보이념이 국가안보에 위험이 될 수 있으니 범죄자 취급해야한다는 논리는 반공논리를 전제로 깐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촛불혁명은 그런 논리를 깨버리고 민주주의 논리를 제대로 세우자는 것”이라며 “그렇기에 평화와 자주를 옹호하는 양심적 사상 때문에 감옥에 있는 양심수들을 석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민중의소리
[1신:12일 오후 4시 30분] “촛불 광복절, 모든 양심수 석방해야” 힘차게 내딛은 도보행진단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라! 한상균을 석방하라!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8.15에 만나요!”
수원구치소 앞에서 구호와 함성이 울려퍼졌다.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구명위) 회원들과 양심수 가족들, 청년·학생, 시민들로 구성된 ‘양심수 석방 도보행진단’의 함성이다. 500여명의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
구명위는 이날 발대식을 시작으로 1박2일 동안 ‘모든 양심수 석방 8.15에 만나요 도보행진’을 진행한다. 첫날 도보행진 참가자들은 수원구치소 앞에서 행진을 시작해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홈플러스 북수원점과 효행공원을 거쳐 의왕파출소까지 행진한다. 다음날 참가자들은 인덕원역에서 집결해 서울 반포한강공원, 전쟁기념관, 서울역 등을 거쳐 청와대 앞까지 걷는다. 이후 이곳에서 8.15특사를 촉구하는 촛불문화제 ‘8.15에 만나요’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들이 수원구치소에서 도보행진 발대식을 연 이유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이곳에 내란음모 사건으로 4년째 구금돼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발대식 사회를 맡은 양심수석방추진위의 윤희숙은 “이곳에서 함성을 지르면, 그 목소리가 감옥 담장을 넘어서 구치소 안까지 들린다고 한다”고 하자, 참가자들은 있는 힘껏 함성을 질렀다.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민중의소리
참가자들은 ‘8.15 특사!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문구가 적힌 몸자보를 착용하고 육교 위에 올랐다. 이들은 준비해온 양심수 석방을 상징하는 푸른색 부채를 흔들며 커다란 현수막을 펼쳤다. 파란색 바탕의 현수막에는 노란 글씨의 ‘8.15에 만나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글씨 위로는 날아오르는 비둘기가 그려졌다.
구명위 상임공동대표인 정진우 목사는 “이번 8.15광복절은 단순히 해방 후 72년 만에 맞는 72번째 광복절이 아니”라며 “촛불 이후 맞이하는 첫 번째 광복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사드는 여전하고, 굴욕적인 한미관계와 분단의 갈등은 깊어만 가고 있으며, 양심수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지금 구속돼 있는 양심수들의 민족·자주 노선이 옳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외쳤다.
정 대표는 “오늘의 거룩한 발걸음이 해방·자주·평화·통일의 역사를 만들어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우리 힘으로 양심수 전원을 건져내고 해방시키자”고 말했다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민중의소리
이 전 의원과 접견하고 온 신엘라 경기청년연대 의장은 “이석기 의원이 여기 온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전달하라고 한다”며 온 몸으로 하트를 그려보였다. 이어 이 전 의원이 “그 행진에 나도 같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신엘라 의장은 “감옥문이 열릴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며 “반드시 석방시키겠다는 마음으로 힘차게 걷겠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의 누나인 이경진씨는 “청년들의 소성리, 강정마을, 대학로, 서울역, 수원구치소에서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그 열정과 땀이 양심수 가족들에게 무한한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고백했다. 그는 “저도 몸은 안 좋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렇게 나왔다”며 “건강 걱정하지 말고 그저 저와 마주치면 얼굴보고 웃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발대식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와 팔토시를 착용하고 행진을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는 청년들이 그 뒤로 구명회 회원들과 시민들이 따랐다.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
도보행진단은 12일 오후 2시 수원구치소 후문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청와대를 향하는 1박2일 행진을 시작했다.ⓒ민중의소리

일제 강제노동 집결지에 세워진 빼빼마른 노동자상


17.08.12 17:41l최종 업데이트 17.08.12 17:41l


용산역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 용산역에서 12일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이 열렸다
▲ 용산역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 용산역에서 12일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이 열렸다
ⓒ 신지수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끌려가 노역을 살다 억울하게 희생된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기리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용산역에 세워졌다. 

강제징용노동자상건립추진위원회(건립추진위)는 12일 오후 2시 용산역 광장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공개하는 제막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한수 할아버지(99)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송영길 의원, 동상 제작자인 김운성·김서경 작가 등이 참석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 등이 건립추진위에 참여했다. 추진위는 "용산역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끌려가기 직전의 집결지였다. 징용자들이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밟은 조국 땅이다"라면서 "이 곳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자 한다"고 밝혔다.

곡괭이, 빼빼마른 가슴 그리고 햇빛을 가리는 손
용산역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12일 용산역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 용산역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12일 용산역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 신지수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높이 약 190cm, 폭 1m 규모로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작가가 만들었다. 어두운 탄광을 나오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빼빼마른 노동자가 오른쪽 손으론 곡괭이를 들고 다른 손으론 햇빛을 가리고 서있는 모습니다. 오랜 시간 탄광에서 일하다 밖으로 나왔을 때 눈이 부셔 햇빛을 가리는 노동자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곡괭이는 탄광에서 고된 노동을 하던 것을, 오른쪽 어깨에 앉아있는 새는 자유와 고향·어머니를 향한 갈망을 상징한다. 동상의 발쪽에는 흙더미 같은 형상이 있다. 김서경 작가는 "일본에서 묘비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상 하단에는 '눈 감아야 보이는 조국의 하늘과 어머니의 미소, 그 환한 빛을 끝내 움켜쥐지 못한 굳은 살 배인 검은 두 손에 잊지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노동자상을 둘러싼 4개의 기둥에는 일제의 강제징용에 관한 설명, 당시 용산역의 사진 등이 새겨져 있다. 

김한수 할아버지 "우리가 다 죽어 없어지기만 바라나"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 강제징용 노동자상 주변 4개 기둥을 바라보는 김한수 할아버지
▲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 강제징용 노동자상 주변 4개 기둥을 바라보는 김한수 할아버지
ⓒ 신지수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소로 끌려갔던 김한수 할아버지(99)는 "일본은 젊은이들을 끌고 가서 왜 사죄 한마디 하지 않느냐. 한국 정부는 그 책임을 묻지 않고 대가를 청구하지 않는다"며 "우리 같은 사람이 다 죽어 없어지기만을 바라는 건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성토했다.

노동자상을 보며 눈물을 흘린 김 할아버지는 "늦었지"라고 말했다. 이어 김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러 먼 곳에서 오기 힘들다"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많은 곳에 세웠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전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당초 3월에 용산역에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아 미뤄졌다. 여전히 허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노총 조선하 대외현력본부 부장에 따르면 11일 정부로부터 '허가하지 않겠다'고 공문이 내려왔다. 그러나 정부는 건립을 막지는 않았다. 조선하 한국노총 부장은 "정부와 추후 협의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우원식 원내대표 "정부도 노력하겠다" 약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말 너무 늦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우 원내대표는 "전 세계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계속 세워나가, 모든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 아래 (고통받았던) 노동자들의 이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며 "강제징용에 대한 진상규명과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지난해 8월24일 조선인 3000여 명이 노역을 살았던 단바망간 광산에 처음으로 세워진 뒤, 용산역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건립추진위는 이날 오후 6시에 인천에도 세울 예정이다. 경남, 제주 등에도 노동자상 건립을 검토 중이다.

반미통일선봉대 미국 백기 들고, 한반도에서 나가라

반미통일선봉대 미국 백기 들고, 한반도에서 나가라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7/08/12 [21: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2일, 광화문 KT 앞에서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가 '트럼프 아가리 봉합대작전'이라는 집회를 개최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12일 광화문에서 KT 앞에서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가 서울시민들과 ‘트럼프 아가리를 봉합 대작전’ 집회를 개최했다.

먼저 유주호 통일선봉대 대원이 연설을 했다.

수원에 살며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을 키우고 있는 유주호 대원은 “반미통일선봉대를 하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미래를 희망이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한반도가 전쟁위기에 놓여 있다. 미국은 예방전쟁을 운운하며 전쟁을 부추키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남북 모두 안전하지 않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래가 없어진다. 반미통선대 참가한 이유는 분단적페의 근원인 미국을 몰아내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이며, 어른으로써 국민으로서의 할 일”라고 하면서 통일선봉대에 참가한 이유를 밝혔다.

▲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 황태웅 대원이 "미군기지 환경오염문제는 미군이 똥을 싸고 우리가 뒤처리를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이어 황태웅 대원이 용산 미군기지에 대한 규탄연설을 했다.

“통일선봉대 첫 활동이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시작했다. 용산 말고도 전국에 미군기지가 곳곳에 있다. 미군기지는 우리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기지는 한국법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다. 환경오염 조사를 미군기지 밖에서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용산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기름유출 사건이 발생했는데,  3.7톤 이상 유출된 사고가 무려 7건이었다. 용산 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오염은 심각하다. 그러면 기지 안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환경오염 정화 비용이 매년 5억 이상 들어가는데, 이것은 모두 우리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똥은 미국이 싸고 우리가 뒤처리를 하는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혈맹, 우방이라는 미국이 우리 땅에서 하는 양아치 같은 짓거리이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조석원 통일선봉대 대원은 사드배치 철회 내용으로 연설을 했다

“대구에 살고 있다. 성주와 김천의 주민들은 수백일째 촛불을 들고 사드배치를 막아내고 있다. 오늘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했다. 하지만 이것은 꼼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략영향평가, 즉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통해서 민주적 절차와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한 뒤에 사드배치에 대해서 결정하겠다고 한 공약을 이미 어기고 있다. 적폐를 청산하고 촛불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정부가 국민들과 한 약속을 무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사드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드로 북의 미사일을 막을 수 없고, 한반도 평화에 위협이 되는 무용지물, 사드는 분단적폐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평화, 생명 전혀 개의치 않는다. 미국의 본질을 정확히 보고 우리는 함께 투쟁해서 한반도 평화, 사드배치를 막아내자.”고 연설했다. 

그리고 김미숙 통일선봉대 대원은 “최근 기밀이 해제된 코드명 체로키 파일에는 미국이 전두환 군부 세력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더 강력한 물리력을 동원할 것을 권고한 내용이 다 드러나 있다”고 광주항쟁의 학살 배후가 바로 미국이라고 규탄하며 “518 학살 배후가 미국임을 알리고, 미국에 배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하겠다”고 결심을 밝혔다.

▲ 가극단 미래가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배치, 대북제재 동참등 우리 민족끼리가 아닌 미국을 중심으로 정책을 하는 것을 풍자, 비판하는 극을 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이번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에는 김련희씨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김련희씨는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미국으로 인해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70여 년간 분단으로 인해 수많은 8천만 겨레는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도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있다. 6년 동안 북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호소했지만 이 나라는 나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지 않다. 통일부에서는 김련희와 12명은 자기 의사에 따라 남쪽에 왔기에 절대로 보내줄 수 없다고 한다. 나 자신이 속아서 왔다고, 강제로 억류되었다고 이야기 하는데 왜 믿지 않는가. 12명 여성종업원도 어디에 있는지 생사도 확인 안된다. 20대 꽃다운 청춘들이 얼마나 가족이 그립겠는가. 이미 부모님 한 분은 돌아가셨다. 더는 안된다. 더는 불행을 겪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역사와 민족 앞에 책임감을 갖고, 우리 자식들에게는 우리가 겪은 아픔 ,슬픔. 고통 물려줘서는 안된다. 허리 꺾인 조국을 물려줄 수 없다. 민족의 이익만을 위해서 조국통일을 위해서 한마음 한뜻으로 나서자.”고 호소했다.  

▲ 평양시민 김련희씨가 한반도 디톡스 통일선봉대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 총대장인 황선씨는 "트럼프는 전쟁 막말 중단하고, 한반도에서 백기 들고 나가라"고 연설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마지막으로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 황선 총대장이 연설을 했다.

“더 이상 입에 담을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진다. 이 땅을 어지럽히고 숱한 목숨들을 죽여 온 미국인데 앞으로 계획도 거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전쟁이 나도 한반도에서 나고, 수천 명의 한반도 사람이 죽어나가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북쪽 사람들만 죽는가?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용인해도 되는가? 트럼프가 전쟁을 하겠다고 한다.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지금까지 한해도 쉬지 않고, 저지른 전쟁 중에 달랑 수천명 죽은 전쟁이 있었는가.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500만 명 이상 죽었다. 현대전은 헤아릴 수 없을 숱한 생명이 죽어간다. 미군이 있는 곳, 어디에 평화가 있었는가. 단 한 곳도 없다. 이제 미국은 한반도에서 즉시 손을 떼고, 이제 그만 나가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이 매우 망신살 뻗치게 미국의 본토에서 최소한 미국령에서 전쟁을 경험할 상황이 되었다. 미국, 그나마도 체면을 지키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유지하고 싶다면, 한반도에서 백기 들고 내가 잘못했다 분명하게 사과하고 이제 우리는 분명하게 떠나겠다. 사드 들고 주한미군 모두 걷어들고 태평양 건너 철수해야 한다. 트럼프는 막말 그만하고 충고를 귀담아 듣고, 당장 한반도에서 손을 떼고 철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미국 국민들에게 끌어내려질 것이고 미국 국민들에게 탄핵당함으로서 스스로 참수하는 변을 당할고야 말 것이다.”고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는 주한미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가 주한미대사관에 '한반도에서 손을 떼고 나가라'라는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가 광화문 광장에서 반미통일시화전을 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가 반미통일시화전 및 책 전시를 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어린이들이 트럼프에게 망말을 그만하라는 의미에서 입 주변에 테이를 봍이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시민들이 청테이프로 트럼프의 입을 막았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 대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봉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가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집회 참가자들이 '주한미군 철수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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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기록물 은폐 황교안 책임 반드시 물어야”


[인터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 TF 변호사들 “권한대행 기록물 지정은 기본권 침해, 무효”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2017년 08월 13일 일요일

최근 청와대 캐비닛에서 지난 정부에서 작성한 대통령기록관 미이관 문건들이 다수 발견되면서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기록물 지정 행위 전반에 대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기록물 보호 기간을 지정하는 것 자체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과 함께 지정 요건에 해당하지 않은 기록물까지 길게는 30년까지 국민이 볼 수 없게 한 것은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를 악용했다는 비판이다. 
이처럼 황 전 권한대행이 무리하게 대통령기록물 지정 행위를 강행함으로써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이 30년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관련 기록물 등을 볼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 태스크포스(TF) 변호사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뭉쳤다.  
민변 세월호 TF는 지난달 31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대리해 황 전 권한대행이 한 대통령기록물 지정 행위의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황 전 대행의 대통령기록물 지정 행위는 아무런 법률상 근거도 없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 TF 변호사들이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기록물 지정 행위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왼쪽부터) 이윤주 변호사·오현정 법무법인 향법 변호사·이정일 법무법인 동화 변호사·서채완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 TF 변호사들이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기록물 지정 행위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왼쪽부터) 이윤주 변호사·오현정 법무법인 향법 변호사·이정일 법무법인 동화 변호사·서채완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국정농단 증거 30년 감춘 황교안 기록물 지정 강행
이정일 민변 세월호 TF 단장은 지난 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통령(박근혜)의 7시간 자료 등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면 적어도 15년 이상은 어떤 누구도 볼 수 없어 세월호 진실 규명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황 전 대행의 지정 행위를 무효화해 유족들이 자료를 볼 수 있게 하고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고자 헌법소원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를 법으로 규율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정 기간 비공개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원활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며 “하지만 황 전 대행의 지정 행위는 국정 농단의 은폐 수단으로서 이뤄졌고 세월호 유가족이 실체적 진실을 알지 못하게 원천봉쇄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민변 세월호 TF 변호사들은 황 전 대행이 대통령기록물 지정 권한 문제가 불거진 이유에 대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대통령기록물법에 입법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 이정일 민변 세월호 TF 단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이정일 민변 세월호 TF 단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단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지위를 상실해 대통령기록물 지정을 할 수 없게 됐는데 이럴 경우 누가 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는지, 권한대행이 지정할 수 있는지 법률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법적 다툼으로 비화한 것”이라며 “원래 대통령이 지정을 하면 보호 기간엔 대통령만 볼 수 있는데 황 전 대행은 자신이 지정을 해놓고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단장에 따르면 미국 닉슨 대통령은 탄핵되는 과정에서 형사처벌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도청한 기록물 은폐를 시도했다. 이 때문에 미국 의회는 특별법을 만들어서 독립기관이 기록물을 몰수해서 심의했고 그 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했다.
오현정 세월호 TF 변호사는 “대통령기록물법 관련해선 미국은 대통령기록물을 관리하는 기관이 매우 독립적·전문적이고 권한이 강한데 우리나라는 대통령 산하 정부 조직에 불과해 보완이 필요하다”며 “그래서 기록 관련 전문가들이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에서 입법의 공백이 있어 일단 기록물 지정을 유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대통령기록관에서 권한대행이 지정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해줘서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꼬집었다. 
오 변호사는 “대통령기록물법을 보면 대통령기록물을 어떤 경우 지정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요건이 있는데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관한 문건은 이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황 전 대행의 지정 권한 문제도 있지만 지정할 만한 기록물이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지정 요건에 해당 않는 문서까지 못 보게 한 것이 핵심적 문제”라고 말했다.  
지체된 정의… “빠른 진상규명이 유가족 치유 앞당기는 길”
오 변호사는 또 황 전 대행이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기록물을 지정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 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 유가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인 ‘신원권’을 침해한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꼽았다. 
▲ 오현정 민변 세월호 TF 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오현정 민변 세월호 TF 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서채완 세월호 TF 변호사는 “누군가 가족을 잃었고 그것이 공권력과 연관 있는 경우 진실과 진상규명 활동이 빨리 이뤄지는 게 치유와 회복의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신원권과 진실을 알 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침해되는 측면이 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도 힘든 치유 과정을 겪고 있는 유가족의 입장에서 좀 더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대통령기록물을 지정하기 전에도 이미 ‘진실을 알 권리’ 박탈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크다. 당시 청와대는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후 뒤 수십 대의 문서 파쇄기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4일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 발견된 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채널A와 인터뷰에서 ‘나머지 문건들도 모두 파쇄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대통령기록물 무단 폐기 의혹을 증폭하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대통령기록물 파쇄 자체는 기록물법 위반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한다는 헌법의 문서주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기도 하다”며 “그동안 이런 헌법상 의무가 관철되지 않아 문서로 남기지 않고 파쇄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든 건데 이 상황에서 문서를 파쇄하는 것은 기록물 지정 행위 본연의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청와대 파쇄기 구입, 기록물 무단 파기 의혹도 조사해야”

하지만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대통령기록물을 지정하기 전에도 이미 ‘진실을 알 권리’ 박탈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크다. 당시 청와대는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후 뒤 수십 대의 문서 파쇄기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4일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 발견된 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채널A와 인터뷰에서 ‘나머지 문건들도 모두 파쇄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대통령기록물 무단 폐기 의혹을 증폭하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대통령기록물 파쇄 자체는 기록물법 위반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한다는 헌법의 문서주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기도 하다”며 “그동안 이런 헌법상 의무가 관철되지 않아 문서로 남기지 않고 파쇄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든 건데 이 상황에서 문서를 파쇄하는 것은 기록물 지정 행위 본연의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청와대 파쇄기 구입, 기록물 무단 파기 의혹도 조사해야”
▲ 서채완 민변 세월호 TF 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서채완 민변 세월호 TF 변호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대통령 기록물과 직무수행 관련한 물품과 기록 등을 폐기하려면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런 공식 절차에 따라 폐기하지 않고 무단 파기하거나 은닉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정일 단장은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만든 대통령기록물을 만약 폐기했다면 국정농단 자료가 대다수일 테고 세월호 관련 자료도 있을 수 있는데 문서 폐기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면 고발할 수 있다”며 “청와대가 검찰에 넘긴 문건 중에서도 법원이 내밀하게 검토 후 범죄 혐의를 조사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고등법원의 영장을 받아 지정기록물이더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민변 세월호 TF 변호사들은 이번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이후 발족할 2기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를 위한 기초 자료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했다. 
이 단장은 “1기 특조위 조사의 한계는 당해 조사 대상 기관들이 자료를 전혀 내놓지 않아서인데 정권이 바뀌었어도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업무 담당자들 지금도 어떤 형태로든 관련돼 있다”며 “예전엔 그냥 무시했다면 이제는 법률 규정을 달아 비밀 내용이어서 제공 못 한다고 할 거다. 새 정부에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으면 쉽게 의혹을 해소하고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변호사는 “민변 세월호 TF 2기가 출범하게 된 것도 지난 정부에서 특조위가 여러 난관에 봉착했고 가족들의 답답함과 절박함에도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조건에서 많은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2기 특조위는 예산 배정과 활동 기한 등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방어하는 데 기력을 소진하지 않고 우리의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진실규명 활동에 충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족 영웅'이 된 '나치 부역자', '반공 민주'의 모순


[유라시아 견문] 자그레브 : 종교전쟁 2.0
2017.08.13 10:49:23




1. 두 개의 전쟁
독일은 동진하고, 소련은 남하했다. 나치의 동쪽에, 적군(赤軍)의 남부에 유고가 자리했다. 독소전 이면으로 유고내전도 격발된다. 1941년 4월 우타샤(Ustaša)가 주도하는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선포된다. Ustaša는 봉기(Uprising)을 뜻한다. 나치 독일에 호응한 파시스트 정부이다. 크로아티아는 1차 대전 이후 발칸에 들어선 유고슬라비아왕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국왕도 세르비아인이고 수도도 베오그라드였다. 세르비아 주도성이 현저했다.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은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없다. 동족이다.  

하지만 인문학적으로 갈라진다. 종교가 달랐다. 가톨릭을 신앙하는 자신들이야말로 남슬라브인의 맹주임을 자처했다. 유고왕국 내 연방제와 분권자치를 요구하며 최대한의 자율성을 도모했다. 호시탐탐 와중에 천금 같은 기회가 열린 것이다. 히틀러와 합작함으로써 기왕의 유고를 해체하고 대크로아티아를 구현할 수 있었다.  

괴뢰국가 크로아티아가 수립한 정책은 경악스러웠다. 자국 내 200만 정교회 세르비아인 가운데 1/3은 개종시키고, 1/3은 추방시키며, 1/3은 학살키로 한다. 유대인 학살을 솔선수범했던 독일마저 질겁했을 정도이다. 유고의 킬링필드가 펼쳐진다. 난징대학살을 능가하는 발칸대학살이었다. 

▲ 자그레브 대성당. ⓒ이병한

자그레브에는 발칸에서 가장 큰 천주교 성당이 자리한다. 1934년 대주교가 된 이가 스테피나츠(Stepinac)이다. 1941년 당시에는 추기경이었다. 그 또한 독일의 발칸 진출에, 크로아티아 독립국 탄생에 전율했다. 로마 가톨릭이 크로아티아에 들어선 지 1300주년에 일어난 기념비적 사건이라 했다. 실상은 좀 다르다. 9세기부터 이미 바티칸과 발칸 사이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유사 역사학 신봉자에게 문헌적 진실은 중요하지가 않다. 과거의 영광을 상기시키고 미래의 희망을 투사하는 것이 더 긴요한 과제이다. 

몸소 파시스트 정부의 수장을 찾아가 협력 의사를 밝힌다. 주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크로아티아를 만들자고 했다. 히틀러를 신뢰한 것도, 나치즘을 신봉한 것도 아니다. 도리어 이교도라고 여겼다. 자유주의, 전체주의, 공산주의 죄다 헛되고 삿된 미망들이라고 여겼다. 망상에서 벗어난 신의 나라, 신국(神國)을 건설코자 했다. 

그 중에서도 공산주의에 가장 적대적이었다. 종교를 배타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공산주의의 배후에 정교회가 있다고 여겼다. 러시아정교회와 세르비아정교회가 공산주의와 결합하여 가톨릭과 항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사실 여부는 부차적이다. 그렇게 인식했음이 관건적이다. 하여 우타샤가 세르비아 정교도를 절벽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있을 때, 히틀러의 전차부대가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로 진격하고 있을 때, 유럽 곳곳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강제수용소가 지어지고 있을 때, 스테피나츠는 모든 문명세계가 이교도들의 위협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목 놓아 설교했다. 십자군의 그림자가 여실하다.
그가 발칸의 홀로코스트를 직시한 것은 1943년에 이르러서다. 2년간 전개된 사태의 본질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타샤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이로써 공산주의와도 적대하고, 파시스트들도 미워하는 인물이 되었다. 격화되는 독소전과 유고내전 속에서 서서히 고립되어간다. 그럼에도 바티칸으로 망명하지는 않았다. 궁여지책을 구했다. 우타샤와 최소한의 관계를 확보함으로써, 최대한의 인명을 구하는 길을 택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할수록 그의 명성은 도리어 높아져갔다. 유대인도 세르비아인도 그를 신망했다. 발칸의 지옥에서 의탁할 수 있는 유이(二)한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무리들은 발칸의 체, 티토가 은거하고 있는 보스니아의 산골로 향했다.  

유고 내전의 진상을 찬찬히 살피노라면 '발칸의 홀로코스트'라는 비유를 곧이곧대로 쓰기가 꺼려진다. 독가스 살포를 비롯해 근대적 기술을 활용한 살육이 아니었다. 총도 아니고 칼과 도끼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요구한 것 또한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이념 전향이 아니다. 단연 개종이었다. 총검을 앞에 두고 강제 개종이 자행되었다. 거부하는 이들은 정교회 성당에 밀어 넣고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성직자들이 깔끔하게 면도하는 가톨릭과 달리 정교회 신부들은 턱수염을 길게 기른다. 그 남다름조차 견딜 수가 없던 모양이다. 혐오스런 수염을 베어버리고 눈은 뽑아버리고 코와 귀는 잘라 버렸다. 가톨릭이 국시(國是)이고 개종이 곧 국책이었다. 하여 근대화가 곧 세속화라는 공식 또한 도그마에 그친다. 실사구시에 어긋난다. 발칸이 경험한 제2차 세계대전은 자유주의나 전체주의, 공산주의 간 전쟁이 아니었다. 명명백백 종교전쟁이었다. 동서교회간 지하드가 처절했다.  

매우 독특한 현상은 정교회 세르비아인의 박멸을 위하여 무슬림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기왕의 종교전쟁, 십자군과는 다른 양상이다. 크로아티아는 가톨릭과 이슬람에 속해 있다고 했다. 가톨릭과 이슬람의 위대한 역사가 크로아티아 독립국으로 합류한다는 것이다. 로마와 메카를 한 편으로 세우고, 콘스탄티노플(제2 로마)과 모스크바(제3 로마)를 배격한 것이다. 그래서 베오그라드의 정교회 성당을 파괴하는 반면으로 자그레브에는 새 모스크를 지어주었다. 정권이 준비한 300만의 탄알은 오로지 세르비아인과 유대인과 집시를 향했다. 무슬림보다 정교도에 더 적대적인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크로아티아인들과 한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한 뿌리이건만 혼이 비정상이었다.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동족상잔도 마다치 않은 것이다.  
▲ 강제 개종 당하는 세르비아 정교도들.ⓒwikipedia


나아가 1054년 동서 교회 분열 이후 유럽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1000년만의 기회가 도래한 것이라고 여겼다. 비잔티움제국과 오스만제국으로 오염된 유럽을 말끔한 정토(淨土)로 회복시키고자 했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 히틀러의 유럽 통일 전쟁 또한 새로운 천년왕국의 대사역이 출발하는 기회로 접수했다. 히틀러는 무장이다. 장수가 유럽을 통합하면, 그 새 유럽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은 본인들이 담당할 것이다. 

유럽사 특유의 종교전쟁이라는 맥락을 떼어놓고는 열전과 냉전으로 점철된 20세기 유럽사 또한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다. 근대화=세속화라는 교조적 프레임 또한 폐기처분할 때가 되었다. 종교사 없는 근대사, 문명사 없는 현대사는 가짜 역사학(Fake History)이다. 객관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스테피나츠 동상(자그레브).ⓒ이병한

2. 두 번째 전쟁 

학살이 학살을 낳는다. 세르비아인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크로아티아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에 부역하는 무슬림들도 학살했다. 상호 학살이 심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유고의 구심력은 더욱 커져갔다. 극우파 괴뢰정권의 만행이 티토의 빨치산 투쟁에도 득이 되었다. 발칸의 아우슈비츠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속속 보스니아로 집결한 것이다. 사회주의의 우산 아래 종교전쟁을 그친 해방구였다. 우타샤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항쟁하는 티토에 대한 신망도 덩달아 높아져갔다. 민족과 종교로 사람을 나누지 않는 연방주의를 깃발로 세워 자그레브와 사라예보, 베오그라드를 해방시킨다.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대학살 정책이 그들이 가장 원하지 않던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왕정을 대신하여 공산주의 정부가 탄생했다. 유고공산당 아래 발칸은 재통합되었다. 티토는 집권 40여 년간 일관되게 형제애와 통합을 강조했다. 다원일체, 대일통을 고수했다.  
▲가톨릭과 정교회 대표와 유고 공산당이 함께 무대에 오르면서 '제국'을 연출한다.ⓒwikipedia


갈등이 완전히 봉합된 것은 아니다. 1972년 대숙청이 감행된다. 겉보기에는 공산당 내 보혁 갈등이었다. 서구 유화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개혁파 대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보수파의 길항으로 접근한다. 실상은 독립파의 재등장에 더 가깝다. 크로아티아 공화국 대표들이 통화주권과 군대보유를 요청했다. 총과 돈은 국가의 근간이고 혈액이다. 티토는 발끈했다. 1941년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것이라며 역정을 내었다. 유고가 약화되면 재차 외세가 개입한다. 발칸을 자잘한 소국들로 나누어 분할지배 할 것이다. 우타샤가 일소된 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해외로 망명하여 '반공 전사'로 신분을 세탁했다. 천주교도가 민주교도가 된 것이다.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등 반공 군사독재 국가를 주 무대로 유고 해체 운동과 크로아티아 해방 운동을 벌였다. 그들을 지원했던 이로는 프랑스 국민전선의 태두 (아버지)르펜도 있었다. CIA의 자금에 힘입어 테러도 병행했다. 세계 곳곳의 유고 대사관을 겨냥하여 폭탄을 던졌다. 유고 국적기를 납치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고, 내부까지 침투하여 극장과 철도역에도 테러를 가했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하면서 유고공산당의 구심력은 크게 약화된다. 설상가상으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반세기만에 독일과 소련 간 역전이 일어난다. 동독과 서독은 하나가 되었고, 소련은 조각조각 해체되었다. 크로아티아는 끝끝내 정의의 시간이 도래했다고 여겼다. 가장 먼저 독립을 선포하며 유고에서 이탈한다. 세르비아는 오리엔트이다. 유고는 제3세계이다. 우리는 본디 서방에, 제1세계에 속한다. 마침내 동양적 전제로부터 탈출하여 서유럽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해외에서 ‘반공전사’로 활동했던 우타샤 인사들도 속속 본토로 복귀했다. 타지를 전전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그들이 정권을 접수한다. 크로아티아 독립국 수립 50년 만에 재차 분리 독립에 성공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번째 크로아티아 독립국을 가장 먼저 승인한 국가 역시 통일독일이었다. 소련보다 독일의 재기가 유고의 장래에 더 위협이 될 것이라던 티토의 노파심이 들어맞은 셈이다. 소비에트연방과 유고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독립 국가들이 속속 유럽연합으로 편입되어갔다. 비동맹노선을 살처분한 나토는 더욱 확장되어갔다.  
두 번째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크로아티아에서는 과거사 청산이 부각되었다. 단연 논쟁의 중심은 스테피나츠 추기경이다. 유고 시절 그는 독일에 협력한 범죄자로 취급받았다. 1946년 전범재판에 회부된다. 나치에 부역한 성직자이자 괴뢰정부에 협력한 반역자라는 주홍글씨가 박혔다. 불명예를 떠안고 1960년 숨을 거둔다.  

▲나치 및 괴뢰 정권과 협력하는 스테피나츠.ⓒwikipedia

명예가 복권되었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의 열사로 대접받는다. 지금도 그의 묘지를 오가는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손으로 십자가를 그리며 기도를 올린다. 반공주의에 투철함으로써 친나치 이력은 소거된 것이다. 착잡한 마음이 일었다. 노트를 꺼내 몇몇 생각을 적어 내려가던 차, 기도를 마친 할머니가 내 옆자리에 앉는다. 기자냐고 묻길 래, 그렇다고 했다.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내신다. 제대로 통하지는 않았다. 내가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헤로이'(херој)였다. 영어 히어로(Hero)와 러시아어 게로이(геро́й)의 중간쯤 되는 발음이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 말의 취지는 그는 범죄자가 아니다, 였을지도 모르겠다. 찜찜하다. 석연치가 않다. 영웅이라 하기에는 너무 늦게, 너무 적게 기여했다. 크로아티아만큼 과거사 청산이 착종적인 곳도 드물다. 크로아티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1989년 체제의 대서사, '반공 민주'의 모순이다.  

▲스테피나츠 묘소. ⓒ이병한

3. 신유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된다. 사회주의 모국이 사라졌다. 발칸에 세워진 유고사회주의연방공화국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이미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떨어져나갔다. 그럼에도 유고연방을 사수했다. 삭제한 것은 '사회주의'뿐이었다. 1992년의 유고연방을 '신유고'라고 한다. '제3의 유고'라고도 부른다. 유고슬라비아왕국과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공화국에 이은 세 번째 유고였다. 하지만 세르비아 중심성이 훨씬 심화되었다. 대크로아티아주의에 맞불을 놓는 대세르비아주의가 분출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스테피노츠를 추키고 있을 때, 세르비아에서는 두산(Стефан Урош IV Душан) 대왕을 고취시켰다. 14세기 세르비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차르이다. 북으로는 크로아티아를 정복하고, 서로는 아드리아 해에 닿았으며, 남으로는 에게 해에 이르고, 동으로는 콘스탄티노플 앞마당까지 진출한 영웅이다.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그리스는 물론 불가리아와 헝가리 일대까지 아우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세르비아인들은 그가 1355년 갑작스레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콘스탄티노플까지 정복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등극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티토 시절에는 차마 그를 칭송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계몽주의 아래 봉건의 상징이나 반동적 민족주의 혹은 제국주의의 화신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 차르 스페판 두산의 동상(베오그라드).ⓒ이병한

우리는 서방이며 제1세계이고 세르비아는 동방이며 제3세계라는 크로아티아에 맞서 유럽사의 전개 또한 세르비아 중심으로 재인식했다. 신민족주의 서사에서 세르비아인은 유럽 문명을 구제한 수호신으로 등극한다. 비잔티움 제국을 잇는 후계자 자리를 두고 세르비아는 투르크와 경쟁했다. 왕년의 몽골처럼 투르크 또한 유라시아 초원길을 따라 파죽지세로 유럽까지 진출했다. 세르비아가 홀로 맞서 싸움으로써 오스만의 서진을 발칸에서 멈추어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르비아가 아니었다면 유럽 전체가 오스만제국의 치하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즉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부터 프랑스의 계몽주의까지 서유럽의 근대 또한 세르비아인의 피와 뼈 위에서 세워졌다는 것이다. 피해망상과 자부심이 기묘하게 뒤섞인 서사이다. 그래서 세르비아에서 1989년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냉전이 끝난 해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389년으로부터 6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389년 6월 28일은 최후까지 투르크에 맞서 싸웠던 세르비아의 용장 라자르(Лазар Хребељановић)가 장렬하게 전사한 날이다. 
1989년 6월 28일. 차르 라자르가 패배한 장소를 찾은 이가 밀로셰비치이다. 바로 그곳에서 세르비아인들은 다시는 패배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대제국 오스만 시대와 소제국 유고 시대를 지나 정교회 대국을 만드는 것이 세르비아인의 사명이고 책무라고 선포했다. 다가올 다당제 시대를 예비하는 정치 선언이기도 했다.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와 반공주의가 삼위일체로 공진화했다.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세르비아인의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세르비아 공화국 내 집과 학교, 상점에서 티토의 상징물을 떼어냈다. 티토가 주창한 '유고슬라비아인'은 다수 민족인 세르비아인을 억압하는 개념이다. 소수민족을 지나치게 대접했다.  

특히 크로아티아인과 알바니아인에게 과분하게 관대했다. 대크로아티아주의의 원흉 스테피나츠 추기경을 처형하지 않았다. 장례식도 허용해주고 자그레드에 무덤까지 만들어준 것이 티토였다. 무슬림에게는 코소보 자치주도 선사했다. 세르비아 공화국 안에 별도의 자치주까지 마련해준 것이다. 왜 이 신성한 세르비아인의 땅에 이주한지 300년 밖에 안 되는 무슬림 소수자들의 구역을 따로 허용한다는 말인가? 오스만제국의 무슬림보다 훨씬 이전에 이 땅은 본디 세르비아의 민족영웅 라자르가 돌아가신 곳이다. 신성한 고토를 회복해야 한다. 가톨릭과 정교회에 이어 정교회와 이슬람도 분열해간 것이다. 먼저 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이 이웃에서 원수로 척을 졌다. 

▲차르 라자르 초상화. ⓒwikipedia

유고의 운명은 사회주의를 신봉했던 이데올로그들에게는 충격이었겠으나, 발칸사에 정통한 이들에게는 느닷없는 사태가 아니었다. 백년짜리 이념보다 천년 문명이 훨씬 뿌리가 깊다. 다문명세계를 아우르는 제국의 재건에 실패한다면 핵분열을 면하기 힘들다. 삼세번 유고로 이어진 '제국의 근대화' 실험이 최종적으로 파산한 장소가 코소보였다. 유고연방을 역사에서 삭제하고 지도에서 도려내는 NATO의 공습이 처음으로 단행된 곳 또한 코소보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리비아까지 체제 전환을 앞세우며 '인도주의적 개입주의'를 밀어붙이는 NATO의 원형이 드러난 곳 역시도 코소보였다. 고로 코소보는 20세기가 마감된 곳이자, 21세기가 시작된 곳이기도 했다. 세기말, 밀레니엄의 폭탄이 쏟아졌던 1999년의 코소보로 간다.

▶ 필자 소개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