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6일 화요일

한반도를 쩌렁쩌렁 울린 사드반대, ‘통일로GO' 함성

준비위, 북과 해외의 청년학생들에게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제안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기사입력: 2016/08/17 [01: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 2016 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노래패 우리나라와 청년들의 뜨거운 합동무대     © 청년학생본부

▲ 2016 '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6.15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전준호 상임대표의 대회사, 이 행사에서 북과 해외의 청년학생들에게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을 제안하였다.     © 청년학생본부

광복 71주년을 맞아 14일 늦은 밤부터 15일 새벽 동이 틀때까지 서울시청광장에서 ‘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이 개최되었다.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준비위원회(이하 통문한준비위)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6.15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전준호 상임대표의 대회사와 통일선봉대·통일대행진단 환영식,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통일무도회 등이 이어졌다.

특히 이 행사에서 북과 해외의 청년학생들에게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을 제안하였다.

통문한준비위가 주최, 주관하는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이하 통문한)은 통문한준비위 참여단체들의 율동 및 노래공연과 노래패 '우리나라' 등이 무대에 올라 청년학생과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통문한준비위에는 6.15남측위 청년학생본부 소속단체인 대한불교청년회,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원불교청년회, 천도교청년회, 통일맞이청년위원회 늘봄, 한국기독청년협의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한국대학생문화연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한국청년연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외에 대안대학 청춘의 지성, 대학생겨레하나, 동행실천단, 사이다실천단, 평화나비, 흙수저당이 참가했다.

통문한준비위는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제안문’을 통해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로 민족경제와 평화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최근에는 우리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사드가 배치된다고 발표되며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며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까지 전면적으로 차단되어 남북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황이며, 한반도에는 또다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측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정부,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제안에 대해 “북측과 해외측에서는 연석회의를 위한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남측 정부의 대결정책으로 인해 815에 즈음한 연석회의는 성사가 불가능해졌다”며 “남측 정부는 외세와 손을 잡고 대북대결정책을 벌일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나아가 “당면한 한반도의 위기상황의 해법은 외세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로 가는데 있다”고 제언했다.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통문한준비위는 “우리 청년학생들은 조국이 분단된 이래로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해왔다”며 “우리 남측의 청년학생들은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을 통해 통일세대로서 우리 청년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단결의 장을 마련하길 기원한다. 그를 위한 실무접촉을 빠르게 진행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통문한준비위가 주최·주관한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모인 약 1000여명의 청년학생과 시민들이 함께하며 통일을 향한 뜨거운 열기로 새벽까지 이어졌다.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다음은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만당 공개 제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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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해외 청년학생들에게 드리는 공개제안문]

한반도 평화와 자주통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담아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을 제안합니다.

오늘 우리는 광복 71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광복 71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 이 땅의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고 조성된 정세는 엄중합니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로 민족경제와 평화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최근에는 우리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사드가 배치된다고 발표되며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사드배치에 대해 북은 물론이거니와 중국과 러시아까지 강력하게 반발하고 상황입니다.
거기에 더해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까지 전면적으로 차단되어 남북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황이며, 한반도에는 또다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8월 말 한미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UFG)을 앞두고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훈련을 두고 한미 당국은 연례적인 훈련이라 말하지만,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은 북의 핵관련 시설을 비롯한 주요기관을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연습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북미, 남북간의 모든 대화 채널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그만한 충돌이라도 발생한다면 전쟁으로 번지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상황입니다. 

최근 북에서는 광복 71주년 8.15에 즈음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정부,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제안했습니다. 남측의 많은 단체들과 인사들은 북측의 이번 제안이 경색, 파탄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미 북측과 해외측에서는 연석회의를 위한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남측 정부의 대결정책으로 인해 815에 즈음한 연석회의는 성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남측 정부는 외세와 손을 잡고 대북대결정책을 벌일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땅의 현재 세대이자, 미래를 책임질 주역인 우리 청년학생들은 당면하여 조성되어 있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수 없습니다.
당면한 한반도의 위기상황의 해법은 외세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로 가는데 있습니다.

만나야 통일입니다.
오늘 광복 71주년을 맞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에 모인 우리 남측의 청년학생들은 북측과 해외측의 청년학생들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해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한마당을 제안합니다.

우리 청년학생들은 조국이 분단된 이래로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해왔습니다. 남북해외 3자가 만나는 공동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고 북녘으로 가기도 했으며,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는 어떤 세대와 계층보다 남북해외 청년학생들의 공동행사를 통해 평화, 통일의 분위기를 고취시키는데 청춘의 열정을 쏟아왔습니다.

오늘 우리 남측의 청년학생들은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한마당을 통해 통일세대로서 우리 청년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단결의 장을 마련하길 기원합니다.
그를 위한 실무접촉을 빠르게 진행했으면 합니다.

정의롭고, 애국의 열정이 가득한 북과 해외 청년학생들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민족의 기둥이자 통일의 주축세대인 남북해외청년학생들이 평화통일을 위해 더욱 분연히 떨쳐나섭시다.

                                            2016년 8월 15일
                남북해외 청년학생 통일문화한마당을 염원하는 남측 청년학생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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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모저모]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자주시보

“중국은 반드시 사드에 대응할 것이다”

“중국은 반드시 사드에 대응할 것이다”

남문희 기자  |  bulgot@sisain.co.kr



사드 배치를 계기로 한반도는 전무후무한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냉전 해체 후 짧은 평화 시대가 끝나고 말로만 떠돌던 신냉전의 문턱에 갑자기 다가서게 된 것이다. <시사IN>은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가 새롭게 진입하고 있는 미래를 예측하고 해법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그 첫 순서로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의 진단과 처방을 소개한다.
사드 배치 선언 이후 나온 중국의 반응을 어떻게 보고 있나.
아직까지 특별히 큰 반응을 보인 것 같지는 않다. 국내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응 수단도 마땅치 않고 의지도 크지 않을 것이라 한다. 또 사전 연구 결과 보복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평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정책 결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각 부처가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당사자 의견도 취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응이 미흡하다고 해서, 중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리라거나 대응 수단이 적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또한 중국은 사드를, 미국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추진하는 재균형 정책과 대중국 압박정책의 일환으로 파악한다. (사드를) 미·중 간 전략 경쟁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대응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지도자가 된 이후 한국에 대한 정책을 ‘친선혜용(親善惠容)’이라는 우호적 주변 외교정책 차원에서 추진했다. 전통적 사고를 고수하는 부류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 편향 외교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외교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중대한 좌절을 맞보게 됐다. 시 주석 차원의 대응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김흥규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미국 미시간 대학 박사(국제정치학). 현 아주대 정외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 소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외교부 등 정책 자문위원. 저서로 <시진핑 시기 중국 외교안보> 외 다수. 
ⓒ시사IN 조남진
김흥규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미국 미시간 대학 박사(국제정치학). 현 아주대 정외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 소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외교부 등 정책 자문위원. 저서로 <시진핑 시기 중국 외교안보> 외 다수.
종합적 대응 방안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미 대구의 ‘치맥 행사’나 한류 스타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인적·문화적 교류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제재가 시작된 것 아닌가?
이번에 베이징 갔을 때 한반도 분야에서 상당히 고위급 정책 결정 라인에 있는 분으로부터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종합적 대응 리스트가 완성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와 조치에 대한 점검이 끝났다는 얘기다. 아직 한국 측의 구체적 행동이 다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봐가면서 리스트대로 차근차근 대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전에 이미 한국 방문객 규모를 축소하거나 자제시키는 조치는 취해지고 있다. 중국 여행사들에 한국 여행 자제 통지가 내려간 걸로 알고 있다. 중국 단체나 지방정부의 준자발적인 여행 자제 조치들도 산발적으로 있다고 한다. 한국인 입국자에 대한 검증도 강화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도록 하는 조치들이 이미 취해졌다. 한편 중국 측 비중 있는 인사들의 한국 방문을 자제시키거나 절차를 엄격하게 만드는 조치들도 취해지는 걸로 안다.
종합 리스트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나?
추후 중국이 고려할 수 있는 조치로는 인적 교류와 문화 교류에 대한 제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관세 장벽 따위로, 스탠더드(기준)를 바꾸고 통관 절차를 까다롭게 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에 대한 조치도 있을 것이고, 특히 사드 제작사인 록히드마틴과 방산 협력으로 연결된 기업들이 집중 타깃이 될 것이다. 서해의 해상경계선과 관련해 그동안 한·중 어업협정에서 합의한 중간선을 묵시적으로 인정해온 관행도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관련된 방공식별구역을 재설정하고, 가거초와 이어도의 해양과학기지를 폐쇄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어도 해상에 대한 점유 시도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군사적인 조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 배치될 사드가 미일의 MD(미사일 방어) 체계의 일부라고 중국이 확신한다면 (유사시) 제1차 타격 대상이 될 것은 확실하다. MD 체계를 무력화하려는 또 다른 군비경쟁, 즉 중국의 또 다른 MD라든가 공격무기 배치, 이와 동시에 북한 카드의 활용에 대해서도 고민할 것이다. 현재 유엔 수준의 대북 제재는 계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중국에 의한) 제재 효과는 크게 약화될 것이다. 북·중 관계 개선으로 우리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중국 진출 대기업까지 타깃이 된다면 우리 경제에 혼란이 초래되지 않을까?
그것만이 아니다. 내년 만료되는 64조원(3600억 위안) 규모의 한·중 통화 스왑을 중국이 연장해주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 같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느 순간이라도 외환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위험성이 훨씬 높아지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처럼 카드가 많다. 일본도 견뎌냈는데 한국은 왜 못 견디느냐는 말도 있는데 일본은 세계 3위 경제 규모에 이미 동남아 등지로 위험을 분산하는 등 대비해왔다. 일본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약 20%라 하지만 GDP 중 무역 비중이 낮아서 중국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GDP의 4% 미만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중 무역 의존도가 25%(홍콩까지 치면 30%)다. 더욱이 GDP 가운데 무역에 의존하는 비중 역시 80%에서 110%(실질 GDP 기준으로 추산한 듯-편집자)에 달한다. GDP의 30% 가까이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거의 90%라고 하지만, GDP 내 무역 비중은 20%밖에 안 된다. 중국이 북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들을 하는데, 중국에 대한 취약성이나 민감도는 한국이 훨씬 높다.
서해의 해상 경계와 관련해 기존의 중간선이 아니라면 중국이 제시할 새로운 기준선은 뭔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중국은 역사적 연원이나 대륙의 크기, 대륙붕의 사이즈를 고려해 경계선 설정을 주장해왔다. 북한과 중국의 경우를 보면 신의주에서 직선으로 내려오는 선이 해상 경계의 기점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식으로 할 경우 대륙붕이 거의 목포 앞바다까지 오게 된다. 중국이 자신들 뜻을 관철하고자 한다면 충남이나 목포 앞바다에 수시로 중국 군함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서로 자신이 주장하는 영해선을 관철하기 위해서인 만큼 힘이 있으면 밀어낼 수 있지만 주권 문제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나 더 중국 쪽으로 가게 되나.
기존 중간선에서 우리 쪽으로 절반 정도 더 들어오고, 서해 전체로는 3분의 2 정도가 될 거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8월4일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 앞에 비자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상용 복수비자를 받는 것이 전보다 어려워졌다. 
ⓒ연합뉴스
8월4일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 앞에 비자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상용 복수비자를 받는 것이 전보다 어려워졌다.
국내 일부 논자는 한·중 간 경제관계가 부품 공급 등으로 얽혀 있고, 최근 남중국해를 둘러싼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때문에 중국이 한국까지 적으로 삼기는 부담스러울 거라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성이 있다. 중국은 한·중 간의 상호 의존 관계를 통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나름 상징성도 가진다. 따라서 한국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치를 취해나가고 싶어 할 것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그런 걸 과신하고 한국이 앞장서서 한·미 동맹을 중국을 억제하는 지역동맹으로 전환시키려 한다는 인상을 중국이 받는다면 반드시 반응할 것이다. 또 한·중 경제 관계에서 과거엔 중국이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며, 심지어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대체재가 있지만 한국은 중국 시장 외에 없다. 이미 중국은 한국이나 북한과의 관계를 동일하게 ‘강대국 대 약소국’ 관계로 보고 있다. 약소국이 강대국에 맞서면 대가를 치르게 해준다는 게 시진핑 주변의 전략적 사고이다.
지난 1월6일 북한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통화가 불발된 것이 사드 배치 선언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대북 제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바로 그 시점에 왜 하필 사드 문제를 이슈화한 건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 내 사드 배치 추진 그룹에게는 몇 가지 다른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첫 번째, 미국 내에서 한·미 동맹의 전략적 가치가 점차 약화되는 추세다. 대선 국면의 신고립주의가 그렇고, 최근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동북아 군사력을 재편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의 역량은 강화되는데 우리는 마땅한 대응 수단도 없고, 미국이 동맹에 대해 어떤 신뢰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버림받기 싫은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 미국이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자이고 또 공세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제1강자 편에서 우리 생존과 안위를 추구하는 게 낫다는 외교안보 라인 일부 주류의 사고가 반영됐을 것이다. 두 번째, 일부 민족주의자 그룹에서는 추후 북핵 대응을 위해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들여오기 위한 사전 신뢰 구축 차원에서 사고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현 상황을 역전시키거나 우리 안보를 담보할 수 있는 조치는 결국 한·미 동맹의 강화라는 것에 여러 그룹의 생각이 일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작 오바마 대통령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가운데 사드로 인한 대북 외교 실종에 비판적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국무부나 특히 오바마 자신도 미·중 관계를 협력적으로 운영하면서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2015년 말부터 미·중 관계가 협력보다는 경쟁 쪽으로 바뀐 것 같다. 중국이 급격히 떠오르자 미국 내 초조감이 강화되면서 지금이 중국을 밀어붙여야 할 시기라고 미국 주류들이 판단한 것 같다. 한반도 정책이나 북핵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재조명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협력해 북핵 문제를 관리하는 등 협력적 미·중 관계로 가야 한다는 국무부 측 목소리가 약해지는 듯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환구망 갈무리</font></div>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왼쪽)는 한반도 사드 배치를 비난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인터넷판인 <환구망>(위)에서는 배우 박보검이 중국을 모욕하는 광고를 찍었다며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환구망 갈무리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왼쪽)는 한반도 사드 배치를 비난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인터넷판인 <환구망>(위)에서는 배우 박보검이 중국을 모욕하는 광고를 찍었다며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한반도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어 ‘제3의 전선’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전략과 지정학을 놓고 보면 한·미 동맹을 북한의 핵 위협뿐 아니라 더욱 당면한 미국의 국가 이익인 대중국 관계에도 투입하고 싶어 할 것이다. 당연히 한·미 동맹을 지역동맹화하면서 반중국 동맹으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사드는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중국은 그 함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지금 막 랜드 연구소에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계획에 대한 보고서가 나왔다. 상대방의 목표를 순식간에 타격하는 전쟁 방식은 미·중 간에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대신 오래 지속되면서 간헐적으로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중국의 ‘반접근·영역거부(A2AD:Anti-Access and Area Denial) 전략’에 대한 대비를 해상뿐 아니라 육상에서도 해야 한다는 것인데, 바로 육상에서의 충돌과 사드 배치가 관련돼 있다고 본다. 즉 사드를 육상의 A2AD 견제용으로 만들어가려는 것 같다. 한국은 사드를 북한 대비용이라고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진행될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한국이 과연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성주는 시작에 불과한 것 아닌가?
7월8일 발표 내용은 미국 전략가 시각에서는 불만스러울 것이다. 대북용으로 사드 한 포대를 미국 돈으로 배치하고 종말단계 레이더만 도입해 한 방향으로 고정시킨다고 합의했다. 미국이 결코 원치 않는 합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단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는 기능과 운용 측면에서 유연성을 확보하려 노력하면서 추가 배치를 추진할 것이다. 기존 미·일 MD에 통합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비용도 한국이 대도록 할 것이다. 이번 합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래도 내년 말 배치하는 것은 미국이 비용을 댄다는 것인데, 아직 예산 책정도 안 됐다고 한다.
미국도 곤혹스러울 거다. 원래는 올해 말쯤 사드 논의를 시작해 내년 초쯤 결정하고 내년 말에 한국으로 들여오는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국내 안보 전문가들도 9월4일 대통령의 방중 스케줄이 있고 그때 시진핑 주석도 만나게 돼 있어서, 그 후에나 (사드 관련 결정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훨씬 앞당겨졌다. 그 배경엔,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는 바람에 당초 시나리오대로 갈 경우 사드 배치가 물 건너갈지 모른다는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내년은 대선 국면과 맞물려 더욱 어려워지리라고 봤을 것이다. 그래서 사드 배치 추진파들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침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 성공이 명분을 만들어줬다. 미국도 총선 결과를 보면서 한국 측이 주장하는 ‘사드의 한반도화’에 일단 타협했지만,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은 차기 정부에서도 계속할 것이다. 이 지점이 한·중 관계를 푸는 접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주는 너무 남쪽이어서 수도권은 물론이고 평택 미군기지조차 방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레이더 기능이 사실 더 중요하다. 백두산 뒤쪽 중국 퉁화 시에 둥펑(DF) 계열 미사일 기지가 있다. 사드의 레이더 탐지거리가 600㎞이지만 조정하기에 따라서는 (퉁화 시 미사일 기지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더욱 우려하는 점은 성주에 배치될 사드보다 앞으로 미국이 중국의 A2AD를 차단하는 전략의 일부분으로 사드를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또한 한·미 연합군의 전쟁 계획에 따르면, 유사시 미군을 어떤 형태로든 보호해서 다시 반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주 이남의 기지들은 유사시 증원 물자나 인원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성주 외 다른 미군기지들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앞으로 사드를 더 들여올 명분이 된다. 이 경우 한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므로 한국이 비용을 대라고 할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7월13일 저녁 성주군청 광장에 군민 300여 명이 모여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7월13일 저녁 성주군청 광장에 군민 300여 명이 모여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 정찰위성이 이미 중국을 샅샅이 보고 있는데 중국이 사드에 이토록 민감한 이유는?
정찰위성으로 보고 있지만 만에 하나 놓치거나, 훨씬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더욱 정확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 기지국이 많을수록 잘 터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리고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사드의 기능 확대와 추가 배치로 베이징 뒤에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지가 노출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파격적인 친한(親韓) 행보를 보였던 시진핑 주석이 사드 배치로 타격을 받아 어려운 처지가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런 점이 중국의 대응에 영향을 미칠까?
분명 그런 측면이 있다. 중국 권력 구도가 대단히 미묘하고 민감하다. 시진핑 주석이 공청단 계열을 교체하고 세력 약화 조치를 취하는 중에 사드 문제가 터졌다. 그의 대(對)한반도 정책에 타격을 주고 권위와 정당성에 흠집을 낼 수 있어 국내 정치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치를 취하고자 할 것이다. 시진핑 자신이 이 문제에 너무 깊이 들어왔던 점도 그냥 넘어가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수차례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설득하려 했는데, 한국 정부가 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정면으로 거부하는 조치를 취한 셈이 돼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주 군민의 저항, 중국의 반발 등으로 배치를 철회할 가능성은 없을까? 아니면 닥쳐올 재앙을 최소화할 방안은 뭐가 있을까?
철회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이다. 두 번째로 추진 그룹들은 이 시기를 놓치면 한·미 동맹이 중요한 타격을 입고 또다시 붙들 기회도 많지 않다고 우려할 것이다. 현재의 정부 정책 결정 과정과 권력 구조 아래서는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 합의한 것은 사드의 한반도화라는 점이다. 이것을 어떻게 잘 유지할 수 있는가, 그것을 변경하려는 시도에 대해 제도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사드 추가 배치의 경우,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 때문에 반드시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절차를 제도적으로 합의하고 지킬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사드가 대(對)북한 용도라고 주장할 명분이 된다. 또 미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접점이 될 것이다.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기초는 경제적 협력의 굳건함에 있다. 그것이 약해지면 중국에도 도움이 안 된다. 한국 경제가 약화되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시설이나 무기들을 사줄 수 없기 때문에 한·미 동맹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는 게 한·미 동맹에도 좋고, 한·중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녹취 도움·김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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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 쓰고 있는 성주 ‘사드반대 투쟁’


[현장취재]‘사드배치’ 발표 한 달여… ‘투쟁’이 ‘일상’이 된 성주군민들
▲ 8.15광복절에 성주군에선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군민들 '815인 삭발식'이 진행됐다.
“어디 간다꼬? 이거 달고 가야지. 좋은 거이니끼네.”
성주군청으로 가는 길, 낯선 남자에게 파란 나비리본을 스스럼없이 달아준다. “나도 쫌 이따가 가게 문 닫고 가 볼끼라.” 카톡방 ‘1318+’에서 아이디 ‘주형맘’이 달아주었다. 가슴에 리본하나 달았을 뿐인데 취재 온 기자가 아니라, 성주군민들 집회에 함께하러 온 ‘외부인’ 같은 묘한 이 기분은 뭘까. 군민들은 이렇게 성주를 찾는 모든 이를 사드반대 투쟁에 참가시키고 있었다.
▲ 성주 '유림'에서 5명과 여성 신청자 9명이 삭발을 한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삭발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머라 카노? 삭발 이기 머라꼬. 삭발 아이라 내 목이라도 내놀끼다.” 사드반대 ‘815인 삭발식’에 참여한 홍영옥(64) 주민은 걱정이 돼 건넨 질문에 버럭 화를 냈다. 어떤 결심으로 이 싸움에 임해 있는지 모르는 게 어이없단 표정이었다. 기자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난 15일 성주읍 ‘성밖공원’에선 815인 삭발식이 진행됐다. 그런데 이날 실제 삭발을 한 성주군민은 모두 908명. 8.15광복절에 맞추기 위해 815명으로 제한했지만 접수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그보다 100명 가까이 더 신청한 것. 여성도 5명으로 한정했는데 11명이 접수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니라’ 효경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을 외우던 유림(儒林) 회원들도 5명이 접수했다. 908명의 삭발식은 예상과 달리 겨우 30여분 만에 끝났다. 대구경북 미용사협회 소속 70여명의 미용사가 자원봉사를 와준 덕이다.
‘단일장소 최다인원 동시 삭발’에도 도전한 이날 삭발식엔 한국기록원에서 공식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 한국기록원에서 전국 동시 최다인원 삭발을 기록하기 위해 성주를 찾았다.
성주군민들의 ‘일상생활’이 돼버린 투쟁, 하지만… 
815인 삭발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을까? “그냥. 8월엔 뭘 해볼까 하다가… 머리나 깎아 볼까? 815명이. 8.15광복절 때. 이렇게 하게 됐어요” 뭔가 특별한 기획 배경이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빗나갔다. 파란나비 리본 때도 그랬다. 누군가 ‘사드가 들어오면 우리모두 죽게 되니 검은 리본을 달자’고 제안했고, ‘검은색은 좀 그러니,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리본을 달자’는 참신한 수정 제안에 바로 삼삼오오 모여 리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장례식도 그랬다. “내일 새누리당 지도부들 온다는데 우리 장례나 확 치라뿌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룻만에 장례는 준비됐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래서 성주군민들의 ‘일상생활’이 돼버린 투쟁. ‘위대하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런 집체행위를 기자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왜 하필 광복절에 이런 항의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는지가 궁금했다. “너무 닮지 않았어요?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광복절에 미국의 압력으로 설치되는 사드를 반대하고 있잖아요. 광복이 저절로 온 게 아니잖아요. 우리도 사드를 배치한 미군의 폭정에서 벗어나려면 싸워야죠. 목숨 걸고. 광복절은 우리 민족의 생명과 안전을 되찾은 날이죠? 이런 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사드반대 투쟁을 하니 얼마나 뜻깊어요. 그렇죠?” 역시 ‘우문’에 ‘현답’이였다. 지난달 23일 청계광장에서 서울시민들에게 ‘성주군민들이 선거 때마다 1번만 찍어 죄송하다’고 말한 전영미 성주투쟁위 부위원장의 대답이었다.
▲ 사드 반대를 새긴 독특한 삭발을 한 주민도 있었다. [사진출처 성주투쟁위원회]
성주군이 생긴 이래 최다인원, 8천여 명이 모인 이날 삭발식에선 “성주가 대한민국이다”는 구호가 높이 울려 퍼졌다. “한번 결정된 성주에서 사드배치를 철회시키면, 대한민국 그 어디에 사드를 설치하겠어요? 그래서 5만 성주군민이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사드를 반드시 막아낼 겁니다!” 앰프를 진동하는 사회자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내 땅에서 ‘난민’이 된 우리 일상을 찾아주십시오”
“7.21상경투쟁, 평화나비리본, 새누리당 장례식, 10만 백악관 청원, 815인 삭발”을 성주투쟁 5대 사건으로 꼽은 이재동 성주투쟁위 집행위원장은 승리를 확신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승리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외부세력’ 논란이 있을 때 (성주군민이)직접 상경해 우리 스스로 외부세력이 돼 논란을 잠재웠다. ‘님비’로 몰릴 때도 성주배치가 아니라 한국배치를 반대한다는 뜻으로 평화나비리본을 달았다. 새누리당의 오만함은 장례식으로 응징했다. 무엇보다 사드는 미국과 주한미군의 전쟁무기임을 알리기 위해 백악관에 청원서를 전달하는 뜻깊은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오늘 광복절 815인 삭발식으로 5만 성주의 결심이 5천만 대한민국의 평화의 날개가 됐다.”
“성주군민들의 일상을 찾아주십시오. 지난달 13일 날벼락처럼 성주 사드배치가 발표되고 한 달. 우리 성주 군민들은 일상을 잃어 버렸습니다. 여름 한철 마을 주민들끼리 관광버스를 타고 나들이 한번 가는 즐거움을 잃어 버렸고, 방학을 맞은 아이들 데리고 계곡으로 물놀이 가는 기회도 놓쳐 버렸습니다. 올림픽 경기도 눈에 안 들어오고, 저녁 먹고 촛불문화제에 가는 게 새로운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참외농사를 짓던 평화로운 고장 성주는 전쟁터가 되었고, 성주군민은 내 땅에서 난민이 돼버렸습니다.” 삭발을 한 어느 성주군민이 대통령께 띄운 호소문의 일부이다.
일상을 잃어버린 성주군민들. 한국민을 ‘대표’해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한 달 넘게 벌이고 있는 이들의 호소를 먼저 귀담아 들어야 할 사람은 전국의 이웃사촌들 아닐까. 
성주=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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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과 사드, 송로버섯 오찬과 전기료 폭탄


[칼럼] 문정왕후-윤원형, 박근혜-이정현에게 백성은 무엇인가?
임두만 | 2016-08-16 11:50:07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15일)은 광복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면서 필요하고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 71주년 경축식 경축사를 통해서다.
▲독립유공자 초청 청와대 만찬을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그는 또 “이 땅의 평화는 물론,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진정한 광복은 8천만 민족 모두가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더 이상 이산의 아픔과 고통이 없는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에서 핵과 미사일, 전쟁의 공포를 걷어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사드 배치 역시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자위권적 조치였다”며 “저는 국민의 생명이 달려있는 이런 문제는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반대파들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허공을 때리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지금 누구도 이러한 박 대통령의 ‘충정’을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충정’으로 보질 않는다. 특히 작금 터져 나온 ‘송로버섯 요릿상’ 이야기는 폭염에 찌든 서민들의 복장만 더 터지게 한다.
문화는 늘 시대를 이야기 한다. 문화가 말하는 시대 이야기는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놀랍도록 그 시대에 딱 맞는 드라마와 영화들이 등장, 시청자와 권력자를 함께 깨운다.
현재는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옥중화’가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조선 명종시대 감옥을 바탕으로 당시 권력자와 서민들의 모든 삶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즉 ‘전옥서’라는 당시의 감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 군상들의 작은 권력을 둔 이전투구와 불법비리, 여기에 당대의 권세가인 윤원형과 그의 부인 정난정의 권력과 금력을 향한 욕심과 패역, 더 나아가 권력 최상층인 명종이 모친 문정왕후와 최고 권력을 놓고 겨루는 권력쟁투까지 매우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는 몇 주 전 윤원형의 부인 정난정의 생일잔치를 통해 상당한 메시지를 던졌다. 즉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고, 전옥서에 감금된 죄수들은 하루 멀건 죽 한 그릇도 못 먹이는 현실인데 정난정은 사흘간의 생일잔치를 벌이며 벼슬을 노리는 전국의 토호들에게 뇌물을 받기에 여념이 없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그리고 이 방송은 정난정의 최후를 미리 예감케 했다.
이뿐 아니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으로 국가의 대사를 장악했던 문정왕후는 명종이 성장하여 친정체제로 넘겨준 뒤에도 실제 뒷전에서 모든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에 명종은 반발하며 어머니의 권력행사를 제어하려 하지만 문정왕후는 윤원형 등 조정을 장악한 소윤일파를 앞세워 왕의 친정을 방해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대비의 봉은사 중건 사건을 놓고 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즉 앞의 정난정 생일사건에서 그린 대로 것과 유사하다. 당시 흉년에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다. 이에 국고가 비어 있으므로 아무리 천하의 대비라도 대형국사를 진행할 수 없다. 그러자 대비는 정난정 등을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뒷전에서 긁어모은 ‘불의한 돈’으로 봉은사 중건을 꾀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의 세금을 책임진 ‘평시서’를 통해 상인들을 쥐어짜는 모습도 그려낸다.
이 드라마는 이처럼 당대의 권력자들이 어떻게 망해가고 있는지를 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권력이 어떤 과정을 통해 민심을 잃어가는지, 또 민심은 이미 떠났는데 이를 알지 못하는 불의한 권력자는 어떤 탐욕을 부리는지, 그리고 이에 호응하며 아부하는 세력들은 어떤 군상들인지 드라마 한편을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미 역사는 그들의 최후를 기록해놓고 있다.
문정왕후 사후 윤원형과 정난정은 자결했다. 그런데 그 자결과정이 전해지는 내용으로 보면 참 어이없다. 문정왕후 사후에 윤원형과 정난정은 탄핵을 받았고 명종은 이를 윤허하지 않았으나 하인의 금부도사가 온다는 기별 한마디에 정난정을 자결했다는 설, 그 설이 진위이든 지어 낸 이야기든 스스로의 죄업이 잡히면 ‘사형’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드라마는 이처텀 불의한 권력의 최후를 미리 예견하며 그 사전 작업으로 정난정과 윤원형 문정왕후의 불의한 권력남용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2016년 8월, 전국은 가마솥 더위에 설설 끓고 있으며, 이에 국민들은 한전과 산업부에 가정용 전기료의 누진제 해결책을 요구하며 민심도 끓고 있다. 그런데 이 더운 여름에 청와대 ‘송로버섯 요리’ 오찬 소식은 끓는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를 터지게 만들고 있다. 서민들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송로버섯이란 식재료, 알려지기론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식재료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 비싼 요리가 청와대에서 서민들 전기료 깎아주기 협의를 했다던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만찬에 나왔다고 한다.
현재 국민들이 공분을 느끼고 있는 송로버섯이 포함된 이른바 ‘박근혜 초청 청와대 초호화 오찬’의 얘기는 이렇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치러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이정현 대표와 신임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가졌다. 이 오찬상은 송로버섯과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아 샐러드, 샥스핀 찜, 한우갈비, 능성어 요리 등 최고의 메뉴들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 가운데 특히 송로버섯은 국내에서는 구할 수조차 없는 식재료이며 이 외에도 바닷가제, 캐비아, 샥스핀 등도 서민들은 이름만 들어 본 요리재료들이다. 그런데 이런 요리들을 먹으면서 대통령은 “당정청이 하나가 돼서 오로지 국민만 보고 앞으로 나아갈 때, 국민의 삶도 지금보다 더 편해질 수 있고, 나라도 튼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이정현 대표는 이런 요리들을 대접받으며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그러므로 곧 이는 문정왕후와 윤원형이 ‘백성’ 운운한 것과 같다.
송로버섯은 땅속에서 자라나는 이유로 돼지를 이용해서 채취해야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채취된 적이 없다고 한다. 때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며, 일부 최고급 호텔에서 송로버섯 스프를 특선요리로 내는 날에는 그 가격이 1천만 원대를 훌쩍 뛰어 넘는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타나는 프랑스산 ‘냉동’ 송로버섯은 500g에 158만 원, 어떤 보도를 보면 유럽에서는 이따금 발견되어 1kg이상을 캐는 경우 수억 원대의 가격을 호가하는 땅속 로또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가 어떤 송로버섯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민전기료 운운하며 먹을 식재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관련 기사에 이런 댓글도 달려있다.
“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 : 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백성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옥반가효 만성고 : 옥쟁반에 담긴 맛난 요리 만백성에게 짜낸 고혈이라) 燭淚落時 民淚落(촉루락시 민루락 : 너희들 촛대에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高(가성고처 원성고 : 노랫가락 높은 곳에 백성들 원성도 높아간다)”
이 시조는 판소리 춘향전에 나온다. 원작자는 성이성, 실제 춘향전의 이몽룡은 성이성이 주인공이다. 춘향전에 나오는 잔치연에서 이몽룡이 변학도를 질타하면서 읊은 시조는 성이성이 짓고, 읊었다. 이는 성이성의 4대손 성섭의 저서 <교와문고>와 그의 스승 조경남이 쓴 <난중잡록>에 기록되어 있다.
드라마 옥중화의 배경에서 서민들은 가뭄과 흉년으로 고통 속에 있다. 2015년 대한민국 여름은 온열증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병원을 찾은 환자 역시 수천 명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서민들은 ‘징벌적 누진세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을 비롯한 냉방기조차 마음 편히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때에 오찬 참석자 모두가 긴팔 양복 정방에 넥타이까지 차려메고 대통령 또한 긴팔 상의를 입고 송로버섯 요리를 먹으면서 언필칭 서민을 말했다면 그것은 허위이며 거짓이다. 그들이 말하는 서민이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보는 백성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치사 또한 모두가 허언으로 들린다. 그가 사랑하는 나라와 백성이란 입에 발린 소리로 들린다.
▲전우용씨 트위터 캡쳐
송로버섯 요리 소식에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초청 청와대 오찬에 캐비어, 송로버섯 등 초호화 메뉴…. 저런 거 먹으면서 서민 가정 전기료 6천 원 깎아 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는 거군요. 고작 몇 천원 가지고 징징대는 서민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보였을까”라고 개탄했다. 이게 민심이다.
그래서다. 박근혜와 이정현, 그리고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윤원형과 정난정, 문정왕후와 변학도를 되새겨보기 바란다. 71주년 광복절이 쓰는 시일야방성대곡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546 

100억 기업 일군 독립군 아들 "친일파 청산 포기할 수 없다"


[조호진 시인의 삶이 아름다운 당신 ②] 장병화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
16.08.16 20:36 | 글:조호진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장병화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 ⓒ 장병화

장병화(69) 성남산업진흥재단(아래 성남재단)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업무시간을 내주지는 않았다. 성남재단은 성남시가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설립한 기관이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기관장이 사적 인터뷰를 업무시간에 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공적 질문이 포함됐는데도 그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런 까닭에 인터뷰는 지난 10일 저녁 퇴근 후에 서초구 자택에서 늦게까지 진행됐다. 

그는 독립군 아버지를 해방 조국에서 동족에게 잃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무작정 상경해 밑바닥 생활을 했지만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기를 개발하는 등 음향전문 기술을 쌓으면서 연간 1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일궜다.

그는 인간 승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희망제작소 등에 깊숙이 참여하면서 역사의 승리를 도모하고 있다. 독립군의 아들도 독립군인 것이다. 그의 독립운동 목표는 친일파 청산과 민주사회 구현 그리고 남북통일이다. 

19세에 독립운동 뛰어든 장이호 선생... 이승만에 속고 인민군에 죽은 아버지
▲ 평북 신의주 출신 독립운동가 장이호(1916~1950) 선생. 붉은 원안의 인물이 장이호 선생이다. ⓒ 장병화

그의 부친 장이호(1916~1950) 선생은 평북 신의주 사람으로 열아홉에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했다. 선생은 중국군관학교 한청반(韓靑班)에서 4년간 간부훈련을 받은 뒤, 광복군 2지대에 투신해 일본군을 상대로 기밀탐지와 지하공작 등을 전개했다. 1944년 광복군 제3지대 분대장이 됐고, 그해 12월 동지들과 함께 초모공작(독립군 모집)을 전개하면서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과 <사상계>를 창간한 장준하 등의 학도병을 광복군에 편입시켰다.

김준엽은 1944년 3월 중국 강소성 서주(徐州)의 일본군 쓰까다부대를 탈출했고 장준하는 3개월 후에 같은 부대를 뒤따라 탈출해 중국 국민당 유격대에 들어갔다가 1945년 2월 광복군에 편입됐다. 장이호 선생은 해방 직전인 1945년엔 서주지구 일본군 부대에 배치된 조선인 학도병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한미합작 돌격작전 전략특수(OSS) 훈련을 받았는데 일제가 항복하면서 작전이 취소됐다.
▲ 1945년 8월 15일 광복기념사진. 붉은 원안의 인물이 장이호 선생이다. ⓒ 장병화

▲ 광복군 제3지대 분대장 장이호 선생. 아래 맨 우측이 장이호 선생. ⓒ 조호진

광복 후에는 서주지구 군사특파원단으로 파견돼 동포들의 생명과 재산보호 임무를 수행하다 1946년 귀국해 1947년 나이 서른에 열 살 아래 송정숙씨와 결혼해 형제를 낳았다. 장병화 대표가 장남이다. 장이호 선생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제 앞잡이였던 사찰계 형사들에게 시달렸다. 백범의 한국독립당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참극은 장 대표가 네 살이던 1950년 9월 25일 벌어졌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살 때였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했는데도 아버님은 피난을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건 수도 서울을 지키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거짓 방송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대통령입니다. 서울이 수복된 것은 인천상륙작전에 의해서였습니다. 연합군의 파상 공세에 밀리기 시작한 인민군들은 북으로 후퇴하면서 억울한 사람들을 죽이고 달아났습니다. 

참극은 1950년 9월 25일 벌어졌습니다. 9.28 서울 수복을 나흘 앞두고 동네 빨갱이의 밀고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6.25 동이인 동생이 인민군에 끌려갔는데 그 직전에 죽음을 예견한 아버지가 저를 빼돌렸습니다. 대를 잇기 위해 저를 이웃집에 맡긴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등에 업힌 갓난쟁이 동생이 하도 울어대니까 한 인민군이 어머니와 동생을 빼줘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성북경찰서 뒤 돌산에서 총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칡뿌리로 허기 달래던 어린 시절... 중학생 때, 도둑기차 타고 무작정 상경
▲ 해방된 조국에서 인민군에 의해 죽임 당한 장이호 선생 묘소. ⓒ 장병화

이승만에 속아 남편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1.4 후퇴가 있기 전에 어린 형제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 내려갔다가 친정인 강릉 주문진으로 거처를 옮겼다. 친정 도움으로 근근이 살면서 쑥과 칡뿌리로 허기를 달랬다. 장병화 대표는 그 시절의 배고픔을 잊지 못한다. 자신의 밥그릇만 유독 작게 느껴졌다.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배부르게 밥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학창시절, 그는 성적이 우수했다. 하지만 머릿속엔 돈 벌 궁리뿐이었다. 가난에 사무친 그의 귀에 일본이 잘산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일본에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빠졌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문 밖 동해 바다 수평선 너머 일본을 헤엄처서라도 가고 싶었다. 가자, 일본에 가서 돈을 벌자! 중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무작정 상경을 감행한 그는 도둑기차를 탔다. 

차표 검사가 시작되면 기차 난간에 매달리면서 피했다. 목숨까지 걸었지만 결국 걸렸다. 영주역에서 강제 하차당한 그는 다시 도둑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역무원에게 또 걸렸다. 학생복 덕분에 꿀밤 몇 대 맞고 풀려났다. 부산행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서울역은 강릉역처럼 감시가 허술하지 않았다. 무임승차를 포기한 그는 부산행 기차푯값을 마련하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가출 청소년에게 일자리는 없었다. 며칠 굶으며 노숙을 했더니 거지나 다름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는데 제기동의 한 공장에서 밥을 준다고 하기에 무조건 일했다. 정말 밥밖에 주지 않았다. 소년 노동자는 착취의 대상이었다. 옷은 입고 온 교복 한 벌뿐이었다. 외출복이자 작업복이었던 검정 교복이 땀에 절면서 붉어졌다. 부산행 차표를 사기 위해 다른 일터를 찾아 나섰다. 

월급 주는 곳에 취업하려면 보증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외가 친척을 찾아갔다. 보증은커녕 어머니가 기다린다고, 고향으로 어서 내려가라고 했다. 주문진으로 돌아왔지만 머릿속엔 서울 생각뿐이었다. 다시 상경했다. 몇 달간은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막내 외삼촌 소개로 전축 만드는 공장(성일사)에 취업했다. 기술자가 되면 배는 곯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 밥은 눈물 밥이다. 혼나고 터지면서 익힌 기술을 거저 가르쳐주는 기술자는 없다.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기 개발... 연매출 100억대 음향기기 전문기업 일궈
▲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기를 개발한 장병화 대표. ⓒ 장병화

그는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다. 선배들의 심부름과 공장 청소를 성실하게 감당했다. 눈이 내리면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동네 골목까지 쓸었다. 독립군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못한 대신에 정직과 성실을 물려줬다. 그의 성실을 눈여겨 본 공장장이 야간에 기술학원 다니는 것을 허락해줘 종로2가 YMCA 옆 '한국TV기술학원'을 다녔다. 한창 놀기 좋은 열여덟 청춘이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원을 다녔습니다. 제일가는 기술자였던 옥씨 성을 가진 공장장님과 선배 기술자들이 각별하게 챙겨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어머님이 축음기를 통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슈만의 트로메라이 등 고전음악을 들려주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시와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지는 장롱처럼 큰 포마이카 전축 진공관 앰프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음악소리가 너무 좋아서 밤새는 줄도 모르고 일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일하고 공부했더니 기술이 금세 늘었습니다. 제 손에서 안 고쳐지는 라디오와 전축이 없을 정도로 기술이 늘었으니까요."
▲ 장병화 대표가 맨손으로 일군 가락전자. ⓒ 장병화

3년간 기술을 배운 뒤 을지로 4가에서 유리 진열장 하나 놓고 노점을 시작했다. 라디오와 전축을 고치고 팔았는데 고객들이 늘면서 장사가 잘됐다. 그냥 기술자가 아니고 그냥 장사꾼이 아니라 기술과 정직을 갖춘 청년 사업가였다. 3년 만에 세운상가에 3평짜리 점포를 얻었는데 군대에 가야 했다. 점포를 친동생에게 맡기고 군대를 갔다 왔더니 문을 닫은 상태였다. 진열장 하나 놓고 노점을 다시 시작하며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1970년대 한국의 음향 기술은 형편없었다. 선진 음향기술 도입을 물색했던 중에 일본 마쓰시다사(파나소닉의 모체)의 요청을 받고 해외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일본의 기술을 배우고 제품을 복제하면서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를 만들었다. 수입품 오디오 믹서는 제품은 좋지만 너무 비쌌다. 박원웅과 채은옥, 이장희 등 유명 디스크자키들을 비롯해 방송국 엔지니어 그리고 명동의 청자다방은 물론이고 전국의 음악다방들이 그가 만든 오디오 믹서를 사용했다. 제주도에까지 건너갔다. 그의 제품은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았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977년 음향기기 제조업체 '가락전자'(당시 업체명은 '경일엔터프라이즈')를 창업했다. 그는 38년간 경영하면서 기업을 키웠다. 음향기기 특허를 수십 개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독일과 미국 등 25개국으로 수출했다. 기술과 성실에서 단연 앞선 그는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포기했다. 뇌물을 주고 접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짓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선 정직과 신의보다 뇌물과 향응이 더 잘 통합니다. 저와 같은 기업인은 한국처럼 부패한 풍토에선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부정부패로 성장한 기업은 언젠가 무너집니다. 다 허상입니다. 2만 달러를 성큼 넘어선 한국이 3만 달러 문턱에 걸린 것은 바로 부정부패 때문입니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창립, 11년째 회장 맡으며 임종국 상금 지원
▲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을 11년째 맡고 있는 장병화 대표는 임종국상 운영비와 상금을 후원하고 있다. ⓒ 장병화

독립군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친일파들은 일제 시절의 악행을 감추기 위해 눈엣가시인 독립운동가와 그의 가족들을 모질게 탄압했다. 굶주림에다 탄압까지 당한 후손들은 이름까지 바꿔가며 독립운동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반면 어떤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은 친일파와 독재자에게 붙었다. 부역의 대가로 호가호위했다. 생존에 급급해 아버지를 잊고 살았던 장병화 대표는 아버지를 찾으면서 역사에 눈을 떴다.

"독립군의 아들이란 자부심보다는 굶주림 해결이 더 급했습니다.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게 되니 아버님이 생각났습니다. 광복군동지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더니 아버님과 함께 독립 운동하던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동지의 아들은 동지라면서 이청천 장군과 함께 찍은 아버님 사진을 주셨습니다. 그 어른들 덕분에 아버님이 공적을 인정받고 훈장을 받게 되면서 독립군 아들로 살아야 한다는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장이호 선생은 1977년 대한민국건국훈장에 추서됐다. 선생에게 훈장을 수여한 대통령은 '일왕'(천황)에게 혈서까지 쓰며 충성을 다짐한 황군장교 출신 박정희다. 청산 대상인 친일파가 단상(壇上)에서 단하(壇下)의 독립 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올해 71주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도 아이러니 상황이 재현됐다. 아직은 독립군의 나라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 
▲ 장병화 대표가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에게 선물 받은 글을 읽고 있다. ⓒ 조호진

독립군의 아들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는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면서 독립운동단체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다녔는데 독립운동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어떤 후손은 부정부패에 연루돼 감옥에 갔다.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해야 활 광복회(회장 박유철)는 감투 싸움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역사와 정의가 구정물 통에 빠지면서 이 지경이 됐다. 그의 타는 목마름은 민족문제연구소와 독립운동가 조문기(1927~2008) 선생을 만나면서 해갈됐다. 

독립군의 핏줄은 달랐다. 역사에 눈 뜬 그는 민족문제연구소 이사로 헌신하면서 2005년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임종국상을 제정했다. 임종국상은 선생의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그리고, 민족사 정립을 계승한 개인과 단체들을 대상으로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분야로 나눠 시상한다. 상금과 운영 경비는 11년째 회장을 맡고 있는 장병화 대표가 후원하고 있다. 

칠순 앞둔 독립군 아들의 다짐 "선열 뜻 받들어 남북통일에 헌신"
▲ 겉은 온유하지만 속은 철두철미한 기업인이자 민족운동가 장병화 대표 ⓒ 조호진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겉은 부드럽지만 속은 꼿꼿하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했다면 민족운동과 시민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독할 정도의 원칙과 성실을 갖추지 못했다면 실패했을 지도 모른다. 운동 참여와 기업 운영을 병행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재야 사학자와 시민운동가들로부터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꼿꼿한 운동가이자 당당한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대학으로 공부하러 간 적이 있는데 학벌을 돈 주고 사라는 제안이 있었다. 그는 학벌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기술과 능력은 뛰어난데 학벌이 없다고 무시당했다. 솔깃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원칙주의자다. 성실함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학벌과 인맥 사회를 정직과 성실로 정면 돌파했다. 요즘에도 새벽 5시에 깨어 밤 11시까지 공부하며 일한다. 

칠순을 앞둔 독립군의 아들, 그는 역사에서 만큼은 청년보다 푸르고 열정은 독립군의 총구처럼 뜨겁다. 그는 '민족 반역자는 사라질 수 있으나 잊을 수는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민족정기는 도둑을 맡고 정의는 빛을 잃었다"고 탄식하면서 "민족 반역자를 처단하지 못한 비극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선 안 된다"며 독립 정신을 이어갈 것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남은 인생을 남북통일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통일된 국가를 만드는 날이 하늘에 계신 독립선열들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목숨을 통일에 바치려고 합니다. 통일 독립군이 되려고 합니다. 하나 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제2의 독립운동이라 생각하며 통일이 되는 날까지 몸과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아들에게 물려준 건 기업가의 책임... 성남재단에서 갑질 행정은 용납 안 해
▲ 성남산업진흥재단 8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장병화 대표. ⓒ 장병화

이재명 성남시장은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를 공모하면서 청렴함과 경영능력을 갖춘 인물을 찾았다. 이 시장과 장 대표는 일면식이 없었다. 이 시장은 장 대표의 청렴함과 경영인으로 오랜 경험, 게다가 역사와 시대인식까지 갖춘 점을 높이 사면서 대표로 선임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장 대표가 2015년 7월 성남재단 대표로 취임한 뒤 셋째 아들에게 승계한 기업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에 취임한 뒤 아들에게 승계한 기업(가락전자)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보복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5년도 10년도 아닌 15년 치 서류를 탈탈 털다시피 조사했습니다. 회사 돈의 일원도 사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없고 크게 걸릴 게 없습니다만, 이 시장 주변인물에 대한 보복 같아서 불쾌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장 대표는 가락전자가 30주년을 맞은 200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겼는데 두 번 다 실패했다. 자수성가한 그는 부의 대물림을 반대한다. 자식들도 그렇게 키웠다. 2남 1여 모두 제 갈 길로 갔다. 큰아들은 자기 사업, 둘째 딸은 수의사, 셋째아들은 대기업을 다녔다. 그는 셋째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의 대물림이 아닌 '책임의 대물림'을 위해서였다. 기업이 망하면 그 피해는 노동자와 주주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기업가의 경영책임과 사회적 책임이 무거운 것이다. 
▲ 셋째 아들(장성준)이 승계한 음향기기 전문기업 '가락전자'. 장병화 대표가 물려준 것은 부가 아니라 기업가의 책임이다. ⓒ 장병화

삼성전자에 다니던 셋째아들은 그의 요청에 부응했다. 그는 아들에게 경영을 바로 맡기지 않았다. 말단사원으로 채용했다. 셋째아들 장성준씨가 지난 2015년 6월 사장에 취임한 것은 5년에 걸친 경영훈련에서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이라고 해서 봐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회사를 떠나면서 아들에게 백년 기업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민족과 사회 앞에서 당당한 백년기업을 소원하고 있다. 

그에게 기업가의 덕목에 대해 물었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이라고 했다. 사장이 정직하면 직원도 정직해지고, 기업이 바르게 성장하면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사장 자리는 희생하는 자리라고 했다. 아들에게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고 사장은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지고 희생하는 자리라는 것을 누누이 가르쳤다. 그가 아들에게 승계한 것은 부가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는 정직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일제가 물러가면서 '조선은 100년이 지나도 정직하고 깨끗한 사회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고 갔다는데, 우리 사회는 일제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가 그렇게 장담한 것은 우리 민족에게 자학과 분열을 심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근면 성실하고 우수합니다. 부정부패를 타파하면 민족의 미래는 밝습니다. 자녀들에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하라고 가르치지 말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성공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성남재단 선장인 장 대표의 키워드는 혁신과 투명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혁신을 주도했다. 잦은 회의를 줄이고 종이문서를 없애면서 패드를 지급했고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현장에 답이 있다)과 '2현3무'(2일은 현장 3일은 사무실)를 도입하는 등 현장을 중시했다. 그의 혁신은 갑과 을의 전환이다. 성남재단은 을이 되고 기업은 갑이 되도록 위치를 바꿨다. 직원들이 갑질하거나 선물과 접대를 받거나 커미션(수수료)을 받으면 용납하지 않는다.  

"30년 넘게 기업하면서 갑질 행정의 폐해를 숱하게 경험했습니다. 갑질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몰래하다 적발된 직원 몇 명은 강등 조치했습니다. 성남재단의 목적은 중소기업을 돕는 것입니다. 기업이 살아야 지역경제도 살고 나라 경제도 삽니다. 대표가 된 지 1년이 지나면서 직원들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업인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미팅할 정도로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혁신에 동참한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골프 대신 고전음악 즐기는 기업인... "행복한 음악과 따뜻한 이웃이 필요하죠"
▲ 임종국상은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그리고, 민족사 정립을 계승한 개인과 단체에 수여한다. ⓒ 장병화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인가. 그렇다.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라도 호의호식하면 되는 이 땅에선 그렇다. 그래서 친일파와 후손들은 잘 살고 있다. 못 산다는 것은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처럼 사는 것이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친 대가로 친일파에게 고문당하고 죽임당하고 그 후손들은 못 배우고 못 산다. 이 지경이 된 나라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는 나치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청산하면서 세운 정신이다. 관용은 무조건 봐주는 게 아니라 죄과를 청산한 후에 베푸는 정의다. 친일문제를 덮자고 하는 것은 관용과 화해가 아니다. 역사에 대한 반역이고 친일에 대한 부역행위다. 이 나라를 관용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선 친일파들을 끝끝내 심판해야 한다. 역사와 정의를 세우는 일에는 결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 고전음악 애호가인 장병화 선생. ⓒ 조호진

진정으로 잘 산다는 이런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삶이다. 땀 흘려 일해 모은 재화를 이웃과 나누는 삶이다. 불의가 침범하면 정의로 맞서는 삶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기업을 일구고 일가를 이룬 장병화 대표는 잘 살았다 할 것이다. 역사 정의를 세우는 일과 민주사회를 구현하는 일에 가진 것을 나누었으니 독립군의 아들로서도 임무를 잘 수행한 것이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될 것 같은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직은 쉴 때가 아니란다. 기업가로서 혁신과 역사의 진보를 고수하겠단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그럴 것이다. 무슨 재미로 사나? 악기의 팽팽한 줄을 계속 조이면 현(絃)은 끊어진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취미가 고전음악 감상과 책읽기다.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시인 혹은 음악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전음악 애호가다.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곡과 첼로 곡을 좋아한다. 돈이 생기면 클래식 음반을 사 모았는데 그렇게 모은 1000장 중에 200장을 골라냈다. 음악은 지친 몸과 영혼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다. 벤처협회 회장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한 그는 신식 경영인이지만 취미는 구식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독립군의 아들이 꿈꾸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다.

"음악은 옛날 음악이 진짜 음악입니다. 턴테이블에 음반을 올려놓으면 진공관 앰프에서 육신과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음악이 가슴에 와 닿을 때의 행복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디지털 기계는 그런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가상이 현실화되는 4차 산업혁명이 온다 해도 사람에겐 행복한 음악과 따뜻한 이웃이 필요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합니다. 친일파와 부정부패가 청산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