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3일 화요일

이명박의 성공과 박근혜의 행복

[손석춘 칼럼]
입력 : 2015-02-03  11:01:18   노출 : 2015.02.04  09:51:10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성공과 행복. 좋은 말이다. 둘 다에 초연할 사람도 있겠지만, 힘없고 돈 없는 국민 대다수에게 성공과 행복을 아예 마다하기란 쉽지 않다.
바로 그렇기에 두 말을 대통령 후보로서 공약해 ‘뜻’을 챙긴 정치인이 있다. ‘국민 성공시대’를 내건 대한민국 17대 대통령 이명박과 ‘국민행복시대’를 내건 18대 대통령 박근혜다. 박근혜의 대통령직은 진행 중이지만, 마침표를 찍은 이명박에 대한 평가는 이미 뭇 조사에서 나타났다. 그의 역대 대통령 순위는 흔들림 없다. 꼴찌다.
하지만 당사자 생각은 다르다. 그가 800쪽 가까운 회고록을 출간했다. 스스로 회고록 말미에 자화자찬을 경계했다고 썼음에도 내용은 자찬 일색이다. 일흔이 한참 넘은 사람에게 ‘성숙’이란 말을 꺼내들기란 민망한 일이지만, 주관적 환상에 매몰되어 객관적 현실을 모르는 인간을 우리는 ‘미숙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으로 접어든다. 선인들이 ‘철들었다’고 할 때가 바로 그 순간 아니던가.
이명박 회고록은 주관적 환상의 대표적 보기다. 그는 자신이 ‘국민 성공시대’를 약속하며 당선된 사실조차 잊은 듯하다. 케케묵은 낙수효과를 내세우며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부르댄 사실에 회한이나 성찰이 있을 리 없다. 그러기에 ‘부자감세’를 여태 부르댄다. 감세는 ‘투자와 소비를 촉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세계적인 추세’였다고 언죽번죽 주장한다.  
무지의 극치다. 과연 그의 주장처럼 감세로 투자와 소비를 촉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렸는가? 2008년에서 2013년까지 ‘대통령의 시간’을 보낸 우리 국민에게 그 물음은 한낱 우문일 뿐이다. 
회고록이 살천스레 외면한 것은 그 뿐이 아니다. 서울 용산의 철거민 참사와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적 탄압에 대해서도 성찰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검찰 수사도 모르쇠다. 오히려 고 노무현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 전에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해결하지 않았다며, 비난하는 투의 ‘회고’를 늘어놓았다.
대통령직 평가 이전에 인간 이명박의 민낯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더 있다. 두루 알다시피 세월호 침몰은 해운자본의 요구를 덜컥 수용해 선박연령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비롯됐다. 바로 그 규제 완화를 이명박 정권이 단행했다. 수학여행 길에 부푼 청소년들의 생때같은 죽음, 부모들의 저 피눈물 앞에서 대체 인간 이명박은 아무런 책임도 못 느낀 걸까.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명박 임기는 끝났지만 ‘규제 완화’와 ‘기업 친화’ 따위는 고스란히 국정 지표이기 때문이다. 후임자는 외려 한 술 더 뜨는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명토박아 두거니와 나는 대통령 박근혜가 전임자의 후안무치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근혜는 후보시절 ‘국민 행복시대’를 내걸었다. 국민 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 치하 5년 동안 성공은커녕 불행한 사람이 양산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표를 얻으려면 그 언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터다. ‘국민 행복’은 ‘국민 성공’이 그렇듯이 먹혀들어갔다. 물론,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주요기관들의 선거개입도 대통령 당선에 큰 몫을 했을 터다. 
하지만 이명박과 선을 그은 차별성은 선거와 함께 시나브로 사라졌다. 규제완화를 부르대거나 대기업을 중심에 놓고 경제 살리기를 추진하는 언행도 어금버금하다. 심지어 747 논리와 같은 474까지 주장했다. 잠재성장률을 4%, 고용률 70%를 달성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제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그것이다. 
개탄할 일이다. 대통령이 대선에서 국민에 약속한 것은 747 아류 474가 아니었다. 그가 후보 시절 내내 외친 말은 ‘경제민주화’ 아니던가. 국민 행복시대와 경제 민주화를 내걸었던 박근혜 집권 2년 동안 과연 행복해진 국민은 얼마나 될까. 경제는 얼마나 민주화 되었을까. 
  
▲ 손석춘 언론인
 
이명박에게 성찰이 전혀 없듯 현직 대통령도 그렇다면 국민적 비극이다. 이명박이 자신은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착각하듯이, 현직 대통령도 자신은 행복한 대통령이라 생각하는 걸까. 딴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통령의 표정은 자못 행복해 보인다.
하여, 정색하고 경고한다. 이명박이 자신의 성공을 약속한 게 아니라 ‘국민 성공’을 공약했듯이, 박근혜 또한 자신의 행복을 약속한 게 아니다. ‘국민 행복’을 공약했다. 국민 성공시대를 내걸고 자신만 ‘성공’한 대통령에 이어, ‘국민 행복시대’를 내걸고 자신만 ‘행복’한 대통령을 보기란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을 수 없는 고역이다. 아직도 3년이나 남은 임기, 국민 행복에 조금이라도 눈 돌리기를 촉구하는 까닭이다. 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박근혜에게 주는 산 교훈이다.

이병철·정주영 신화 밑바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85> 경제 개발, 열한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아홉 번째 이야기 주제는 경제 개발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역사적 배경으로 평준화와 교육열, 그리고 농지 개혁과 여성의 사회 활동 참여 문제를 앞에서 짚었다. 

서중석 : 1970년대에 와서 국가 동원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지구상에서 특이한 역사를 가진 점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앙 집권화 문제다.

중세 시대에는 대부분 분권 사회였다. 일본도 그랬고 서양도 대개 그랬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중국과는 또 다르게 적어도 고려 시대 초기부터 계속 중앙 집권화 방향으로 갔다. 조선 후기에 가면 면리도 이제는 중앙 정부가 상당히 장악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제는 한국을 더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 1914년 면리제를 실시한다. (이해 조선총독부는 지방 행정 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한반도 전역의 말단 행정 구역 수를 3분의 1 정도 축소·단순화할 정도로 큰 폭의 개편이었다. '편집자') 그리고 파출소를 면 단위까지 두고 한국인을 꼼짝 못하게 한다. 특히 일제 말에 가면 한국인을 대거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일제는 정신대, 근로보국대는 물론 방공협회와 그 지회라는 것을 방방곡곡, 구석구석까지 만들어서 방공 운동이라는 걸 했다. 또 애국반 같은 것을 조직했다. 방공 운동을 펴는 것도 애국반에서 많이 했지만 이런 것들은 공출, 징용, 징병 같은 것을 하는 데도 필요했다. 하여튼 이런 모든 것은 한국 사회가 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미군정 시절에 경찰까지 완전히 중앙 집권화가 이뤄지면서 그런 경향이 더욱더 강화된다. 미군은 서울에 경무부를 설치하고 경찰 조직을 중앙에서 장악해버렸다. 경찰 중앙 집권화는 노무현 정권 때 좀 지양할 것처럼 보이더니만 안 되더라. 사실 경찰을 중앙 집권화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경찰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각 지역 치안 업무를 맡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처럼 정치에 뛰어드는 경찰이 그리 많지 않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본은 헌병 경찰제를 실시하며 무단 통치를 했다. 헌병 경찰제는 조선주차군 헌병대 사령관이 모든 경찰 업무를 지휘·총괄하는 체제였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헌병 경찰제는 폐지됐다. 그 후 조선총독부에 경무국(이후 경무부)을 설치하고 각 지방에서는 도지사가 경찰권을 행사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미군정도 초기에는 이 틀을 유지했다. 그러나 1945년 12월말 미군정은 도지사가 관할하던 각 도의 경찰부를 서울에 있던 경무국(얼마 후 경무부로 명칭 변경)이 직접 통제하는 체제로 바꿨다. 이처럼 중앙 집권화된 경찰 조직을 만든 것은 각지에서 분출하던 변혁 운동을 힘으로 누르기 위해서였다. '편집자')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동원적 경제 발전에서 효과 발휘한 강력한 국가 동원력 

프레시안 : 일제 강점기에 억눌려 있던 한국 사회는 해방을 계기로 역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분단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등을 거치며 민중은 움츠러들고, 반공주의를 앞세운 국가가 국민을 일상적으로 동원하게 된다. 

서중석 : 이승만 정권 때도 얼마나 동원을 많이 했나. 특히 북진 통일 운동 같은 게 그랬다. 1953년 이전에도 동원했지만, 1953년 휴전이 이뤄지기 한두 달 전부터 여러 형태의 북진 통일 운동이 1959년 연말까지 쉬지 않고 일어난다. 또 이 당시엔 도지사가 순시를 나가도 학생들이 나가서 손뼉 쳐야 했다. 이건 박정희 정권 때에도 그랬다. 나도 고등학생 때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환영을 나갔고, 베트남에 파병할 때도 여의도에 환송 나가고 그랬다. 무슨 일만 있으면 학생을 동원했다. 이렇게 동원을 많이 했는데, 그건 그만큼 국가 동원력이 강했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는 주민등록증이 만들어지고 향토예비군이 생겨나고 1970년대 중반에 가면 민방위가 생기고 반상회가 생기고 학원이 완전히 병영화되고 그러면서 개인의 신상이 낱낱이 파악되지 않나. 이렇게 철저하게 국가가 민(民)을 장악하고 동원할 수 있는 사회였고,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옛날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철저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돼 있었다. 

사실 일본 역시 역사적 전통 때문에도 개인 파악을 잘하는 나라였다. 내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일본에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외국인 불법 노동자가 일본에서는 버텨내기 어렵다고들 했다. 그만큼 파악이 잘된다는 말이었다. 그런 일본조차 부가가치세, 금융 실명제를 오랫동안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는데, 한국은 척척 실행하지 않나. 이것도 국가가 민을 동원하고 장악하고 파악하는 능력이 세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센 나라다. 지구에서 제일 센 나라에 들어간다. 이게 동원적 경제 발전을 할 때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프레시안 : 학생을 마구잡이로 동원하는 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언론이 봉변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1955년 <대구매일신문> 테러 사건이다. 당시 이 신문은 고위층이 행차할 때 아침밥도 못 먹은 학생들을 불러내 뙤약볕 아래 몇 시간 동안 환영 인파로 세워두는 풍조를 질타하는 사설('학도를 정치도구화하지 말라')을 실었다가 수십 명의 관변 단체 회원들에게 테러를 당했다. 경찰이 "대낮(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는 궤변으로 폭도를 비호한 것으로도 유명한 사건이다. 나아가 이 사설이 북한 방송에 인용됐다며, 사설을 쓴 최석채 주필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 다시 돌아오면, 국가의 동원력과 더불어 눈여겨볼 대목으로 어떤 것이 있나. 

서중석 : 사회 전반적인 능력, 이걸 국가 능력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회 전반적인 능력이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통계를 가지고 설명하면 이것에 대한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50년대에는 거의 모든 통계가 부정확했다. 사실 통계를 못 냈다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 1950년대 국민총생산(GNP) 통계 같은 것을 낸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 유엔에서 나온 건 있는데, 그건 그쪽 전문가들이 추정했다고 그런다. 유엔만 해도 고등 전문가들을 쓸 수 있었는데 한국은 그게 좀 약했다고 하더라. 심한 사례를 하나 들면, 대한노총에서 자기들 대한노총의 조직 노동자가 몇 명인지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 나라가 전반적으로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경제 개발 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있었겠나.

1960∼1970년대를 보면 경제 성장률이나 물가 같은 중요한 통계조차 1980∼1990년대에 계속 수정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이야기할 경제 관련 여러 통계도 어떤 자료를 보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나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은 그전에 비해서는 나았다. 왜냐하면 한국은행, 산업은행 조사부 같은 것을 통해 각종 통계가 비교적 정확하게 제시될 수 있을 만큼 한국 사회가 역량을 축적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미국 등에서 통계 전문가를 계속 초빙한다. 그렇게 해서 통계를 배우는 것이다. 또 사실은 한국전쟁 시기에 미군이 통계와 관련해 여러 가지를 가르쳐줬다. 전쟁 시기에는 통계 낼 게 많지 않나. 이런저런 것을 통해 한국이 스스로 통계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면서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에 가서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실효성 있게 되는 것 아닌가. 그것도 바로 이런 것과 관련 있다. 1950년대 초반이나 중반에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겠나. 통계 하나 제대로 못 잡던 시기였는데.


사회 전반적인 능력 문제를 헛짚은 뉴라이트 

프레시안 : 통계를 예로 들어 설명한 사회 전반적인 능력의 문제가 다른 영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

서중석 : 그 점은 테크노크라트, 기업인 그리고 회사의 중견 간부 문제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뉴라이트의 대부 격인 모 교수 그분이 쓴 논문을 보면, 1930년대 한국의 산업화, 경제 발전이 1960∼1970년대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서 정말 유심히 읽어봤다. 그런데 왜 가능하게 됐는지는, 그리고 인적 자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그 교수는 주장했는데 도대체 인적 자원이 어떻게 그랬다는 것인지 하는 부분은 제대로 알게끔 써놓지를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주먹구구식이 아닌가. 우격다짐으로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 글을 보고 실망을 많이 했다. 어떻게 그런 분이 이렇게까지 쓸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테크노크라트만 하더라도 1950년대에 미국에 가서 연수도 받고 공부도 하고 하면서 이게 쌓였고, 1958년 부흥부 산하에 산업개발위원회가 탄생한다고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나. 거기서 최초로 제대로 된 경제 개발 3개년 계획도 세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장면 정부에서 성취형 관료, 이들을 테크노크라트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1950년대부터 활약하던 그 사람들이 박정희 정부에서도 장관이나 실무 책임자로 여러 명이 기용된다. 그러면서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모이는 걸 볼 수 있다. 이처럼 테크노크라트 성장 과정을 보더라도 1950년대 말경부터 기술 인력이 관료 속에서 어느 정도 쌓이게 되는 것이다.

기업인의 경우를 봐도 1950년대에는 경제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업인이나 중간 경영인, 회사원 같은 사람들이 상당히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에는 인적 자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여러 자료에서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게 나오지 않나. 그런데 1950년대에 기업들이 망하고 새로 흥하는 부침을 거듭하면서 경영 수완을 쌓아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대기업도 그랬지만 그 시기에는 중소기업도 많았다.

그러면서 장면 정권, 박정희 정권에 가게 되면 부정 축재자 처리를 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예컨대 태창처럼 그 당시 큰 재벌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권력 쪽에서 이른바 알래스카 계통이 당한다고 하듯이, 재계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부가 밀려나고 하면서 새롭게 살아나는 경영인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관을 끌어다가 기업을 운영하며 국제적 경영 시야를 갖추는 사람까지 생겼다. (태창은 이승만 정권과 유착해 각종 특혜를 누리며 덩치를 키운 재벌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내리막길에 접어들면서 태창 전성시대도 막을 내린다. 알래스카 세력은 5.16쿠데타 정권의 중심 세력 중 하나이던 함경도 출신 군인들을 말한다. 경상도 출신 군인들과 경쟁하던 이들은 1963년 3월 이른바 '반혁명 사건'에 연루돼 대부분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다. 경상도계와 함경도계의 힘겨루기는 5.16쿠데타 후 부정 축재자 처리 과정에서도 벌어지는데, 함경도계가 밀려나면서 경상도 기업 중심으로 재계가 재편된다. '편집자')

이건 1960년대에 와서야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일제 때건 해방 이후건 그전까지는 그런 경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뉴라이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 2013년 2월 19일, 서강대 캠퍼스에 걸린 연극 '한강의 기적 - 박정희와 이병철, 정주영' 현수막 아래로 학생들이 지나가는 모습. ⓒ연합뉴스
▲ 2013년 2월 19일, 서강대 캠퍼스에 걸린 연극 '한강의 기적 - 박정희와 이병철, 정주영' 현수막 아래로 학생들이 지나가는 모습. ⓒ연합뉴스  
 
 

사회적 경험의 축적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의 형성 

프레시안 : 고도성장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는 박정희 신화뿐만 아니라 이병철·정주영으로 대표되는 몇몇 재벌 회장들에 관한 신화도 있다. 요약하면,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그룹을 만들고 한국을 일으켜 세웠다는 내용이다. 물론 경쟁하던 여러 자본가들 중에서 살아남은 그들의 선택과 수완은 그것대로 평가할 대목이 있다. 그렇지만 신화로 표현되는 놀라운 성장을 가능케 한 밑바탕 즉 역사적 배경, 국제적 조건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탁월한 경영 능력'이라는 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평준화, 교육열, 농지 개혁, 여성의 사회 활동 참여 문제, 그리고 국가 동원력과 사회 전반적인 능력 문제 등을 두루 살핀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재벌이 누린 수많은 특혜, 숱한 이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재벌의 거듭된 반칙, 평범한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 등을 쏙 빼놓은 채 몇몇 재벌 회장의 탁월한 경영 능력을 치켜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건 다시 돌아오면,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을 이끈 이들이 경영 수완을 쌓은 과정을 보면 뉴라이트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맨 파워'론과는 거리가 있다.

서중석 : 사실 나는 아까 이야기한 그 논문에서 뉴라이트의 대부 격인 그 교수가 삼성을 예로 들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적절한 예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내 기억으로는 그 사람을 예로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삼성 이병철 같은 경우도 일제 말에 몇 가지를 좀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1950년대의 기업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더구나 1960년대 규모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었다. 이병철의 경우도 계속해서 노하우, 경영 능력이 쌓인 것이었다. 국제 정세를 1960년대부터는 아는 것 아닌가. 그때쯤에 일본을 자주 왕래하지 않나. 그리고 1970년대 들어 자동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중화학 공업에 뛰어들고 1977년에 대대적인 체제 개편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게 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업계가 참 재미나다. 왜 그렇게 자동차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는데, 자동차 업계에는 풍운아들이 많았다. 많은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울산 현대의 정주영 같은 탁월한 기업인들이 생겨나게 되고, 중간 경영인들의 인적 자원도 점차 풍부해지는 것이다. 

그와 함께 1960년대부터 제대로 된, 능력 있는 회사원들이 많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는 그런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면 바로바로 발탁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람들이 회사에 헌신하면서 자신의 업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사업도 챙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과로사도 많이 했다. 1970년대에는 뱀탕 먹고 술 마시며 접대하는 게 일이었던 '술상무'들 때문에 뱀이 다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오고 그랬다. 그게 다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런 걸 거치면서 한국 사회가 산업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 한 사람이 시켜서 이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 내 말은 그것이다.

하여튼 1970년대 중후반에는 중동 건설 붐이 일면서 새로운 기업가들이 나타나고, 중화학 공업이 대거 생겨나지 않나. 정주영뿐만 아니라 다른 '신데렐라'들이 나타나 활약하면서 율산·제세·대봉 같은 데가 등장했는데, 이 기업들은 한때는 대단한 기업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 망한다. 그런 일도 생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여든여섯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사학 비리 제보 후 2번째 파면... 마음 아파"


15.02.03 20:50l최종 업데이트 15.02.03 20:50l


기사 관련 사진
▲  공익제보 뒤 파면당한 서울 성북구 동구마케팅고 안종훈 교사.
ⓒ 권우성

안종훈(43) 동구마케팅고 교사는 지난달 30일 또 다시 학교에서 쫓겨났다. 지난해 8월에 이어 두 번째 파면이다. 같은 해 12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파면 취소 결정으로 복직했지만, 이 학교 재단인 동구학원은 그를 한 달 만에 다시 학교에서 내쫓았다.

그는 2일 학교를 찾았지만, 학교로부터 뚜렷한 말을 듣지 못했다. 대신 학생들이 그를 찾아 "힘내세요"라고 말했다. 몇몇 졸업생들도 소식을 듣고 격려 전화를 했다. 한 졸업생은 "동구는 이사장이나 학교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했다. 안 교사는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두 번이나 파면당해, 학생들한테 안 좋은 기억을 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안종훈 교사는 지난 2012년 이 학교 이아무개 행정실장이 학교 공금을 빼돌려 실형을 받았는데도 계속 돈을 받으며 재직하고 있다고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특별감사를 벌여 17건의 비위사실을 적발했다. 하지만 동구학원은 이아무개 행정실장을 퇴직시키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조웅 이사장의 임원 승인을 취소했지만 동구학원은 버티기에 나섰다. 오히려 지난해 8월 안 교사를 파면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같은 해 12월 징계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며 파면을 취소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시설사업비를 내려 보내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동구학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최근 안 교사를 재차 파면했다.

안 교사는 "동구학원은 학생들의 교육이 아닌, 보복 징계를 통해 저 하나만을 쫓아내는 데 혈안이 돼있다"면서 "반드시 학교로 돌아가겠다, 학교의 비리를 모두 해결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 파면, 마음 편할 줄 알았지만..."

지난달 30일 안 교사의 집에 그의 파면을 알리는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두 번째 파면이라 마음이 편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착잡했다"면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파면 취소 이후 동구학원이 저를 다시 학교에서 쫓아내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게 무너져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파면의 가장 큰 이유는 안 교사가 지난해 5월 1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서울교사결의대회'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교사가 정치적인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게 동구학원의 주장이다. 이는 1차 파면 때도 징계 사유로 언급됐다.

하지만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동구학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원회는 "근무시간 중 무단이탈하여 결의대회에 참가하였다거나,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였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아 징계사유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파면의 두 번째 이유는 그가 해직기간 학교 앞에서 집회를 열어 '징계 거부 집단 시위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안 교사는 "징계가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호소하는 것도 징계 사유가 된다니 황당하다, 징계 사유가 조작됐고 날조됐다"면서 "지난달 19일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해명했지만,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안 교사는 2일 학교를 찾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징계를 한 이유를 밝혀달라고 했지만, 학교 쪽은 거부했다. 징계 과정에서도 동구학원은 대화를 거부했다. 그는 "파국을 막기 위해 대화하려고 했다"면서 "동료 교사나 인근의 한 학교 교장 출신 인사가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대화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교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억울한 심정을 동료교사들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제가 다가올까 전전긍긍했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동료도 거의 없었다"며 "제가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파면됐으니, 동료 교사들도 찍힐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반드시 학교로 돌아가, 비리 해결하겠다"

안종훈 교사는 "일반적으로 사학에서 비리가 발생하면, 꼬리자르기를 하고 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동구학원은 비리를 감싸는 새로운 유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개탄했다.

현재 조웅 전 이사장의 부인 최길자 이사가 동구학원 이사장 직무대행이다. 학교 홈페이지는 여전히 조웅 전 이사장이 이사장으로 소개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12일 공익제보자인 안 교사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8억9675만 원의 시설사업비 집행을 유보했지만, 동구학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안 교사는 "시설사업비가 학생들을 위한 교육에 쓰는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저를 쫓아내고 싶어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동구학원은 서울시교육청의 이러한 조치에도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안중에 없는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동구학원은 비리를 덮고 감추기 위해 부당한 징계를 계속 하고 있다, 보복 징계를 통해 저 하나만 쫓아내는 데 혈안이 돼있다"면서 "이대로 넘어가면, 다른 사립학교도 동구학원처럼 버티면서 (제보자를) 보복 징계를 하려고 할 것이다, 진일보한 새로운 사학 비리의 유형이 나올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안 교사는 "교원소청심사원회 소청심사 청구나 법적 대응을 통해 반드시 학교로 돌아가겠다"면서 "학교로 돌아가는 게 끝이 아니고, 학교의 비리를 모두 해결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교육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동구학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는 2일 성명에서 "동구재단은 교육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는 3일 논평에서 "학교의 비리를 제보한 것에 대한 보복성 징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사학비리 제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현 부패방지법과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신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 갯고둥에 숨은 수만년 자연사 비밀


조홍섭 2015. 02. 03
조회수 2104 추천수 0
좁은 조간대 사는 이동성 적은 연체동물, 대륙이동 따라 전 세계 분포
한반도 댕가리는 빙하기 끝나자 일본서 제주, 남해 거쳐 서해로 확산

da.jpg» 갯고동의 일종인 댕가리의 모습. 서해와 남해 조간대에 널리 분포한다. 사진=원용진 외 <생태학과 진화> 
 
먹을 것 없던 시절 한겨울 아이들을 유혹하던 간식거리에 ‘쪽쪽이 고둥’이 있었다. 함지박에 수북이 담아놓은 이 고둥의 꽁지를 조금 잘라낸 뒤 입 쪽을 세게 빨면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속살이 입에 들어온다.
 
요즘도 유원지에서 파는 이 다슬기 비슷하게 생긴 연체동물의 제 이름은 갯고둥과의 댕가리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동물에 동아시아 환경의 수만년 변천사를 읽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댕가리의 유전자를 분석해 빙하기 같은 과거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가 한반도 주변 해양생물에 어떤 진화적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처음으로 밝힌 연구결과가 나왔다.
 
호 푸엉타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박사과정생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생태학과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서·남해와 제주도 해안의 댕가리 디엔에이(DNA)에 나타난 변이가 과거 어떤 사건에서 기원했는지를 추적한 결과를 밝혔다.
 
댕가리-빙하기 해안선.jpg» 마지막 빙하기 때 한반도 주변의 해안선 위치(회색)와 해류 방향(화살표). 왼쪽 도표는 6가지 댕가리 집단별 개체수 변동, 막대는 빙하기 절정기, 맨위 곡선은 해수면 변동을 나타냄. 원용진 외 <생태학과 진화>

지구에는 지난 250만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찾아왔다. 수만년의 시간대 걸쳐 생물은 달라진 기후와 지형에 따라 이동과 격리, 번성과 사멸을 거듭했다. 한반도 주변의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반도에 마지막 빙하기가 절정에 이른 때는 2만6000~1만9000년 전이다. 기온은 현재보다 8~13도 해수면 높이는 130m 낮았다. 황해는 당시 모두 육지였고 제주도 남쪽까지 이어졌다. 대한해협은 일본과 육지로 연결됐거나 아주 좁은 운하 형태였다.

빙하기가 절정을 지나 급속하게 기온이 오르자 바닷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길어진 해안선을 따라 갯고둥이 서식지를 늘려 갔다.

da2.jpg» 서해와 남해의 수심. 빙하기 때는 현재보다 100m 이상 해수면이 낮았기 때문에 온도가 낮아지면서 해안선은 차츰 제주도 남쪽으로 후퇴했고 댕가리의 서식지도 이에 따라 변화했다. 그림=원용진 외 <생태학과 진화>
 
댕가리(Batillaria attramentaria)는 갯벌이나 모래밭, 조간대의 바위웅덩이에 서식하며 서·남해는 물론 일본과 중국 동부에 널리 분포한다. 몸길이가 2~3㎝인 이 작은 갯가 생물은 멀리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붙박여 산다.
 
많은 해양생물은 알에서 유생이 태어나면 해류를 타고 멀리 떠다니다가 정착해 성체가 되지만 댕가리는 유생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 따라서 태어난 곳에 주로 머물며 조간대의 좁은 지역에만 서식하기 때문에 해안선 변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연구진은 지난 빙하기 이후 해안선의 변화에 따라 댕가리의 분포와 유전적 분화가 어떻게 이뤄졌으며 개체수가 얼마나 불어났는지 등을 유전분석을 통해 조사했다. 논문의 교신 저자인 원용진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연구결과를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해안가에 서식하는 해양 무척추동물인 갯고둥류의 댕가리 종은 마지막 빙하기의 절정기(2만6000~1만9000년 전) 이후 개체수가 역사적으로 급격히 증가해왔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서해를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 해역은 수심이 얕은 대륙붕 지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된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해역은 빙하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해침 시기에 극심한 해안선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해침에 따라 육지에 붙어 있던 제주도가 섬으로 떨어지고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이동하면서 서해와 남해와 해안선이 확장되어 들어오게 되는데, 이러한 고해양학적 변화와 시기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시간 순서가 이번 연구 결과 밝혀진 해양동물 댕가리 종의 해역별 분화와 개체수 증가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댕가리는 빙하기 시기에 남방에 존재했을 조상집단이 북상하면서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 후 그 중 일부 집단이 다시 서해와 남해로 갈라져 가며 서식지를 확장해 나갔는데, 이러한 서식지 확장과 동시에 개체수가 10배 이상 증가하는 변동을 겪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처럼 갯고둥과의 연체동물은 이동능력이 적어 해안선 변화의 지표 구실을 하지만 동아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와 호주, 그리고 중앙아메리카까지 널리 분포한다. 이동이 어려운 이들이 어떻게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하게 됐을까.
 
오자와 토모오 일본 사이버대 동물학자 등은 2009년 세계의 갯고둥 화석과 유전분석 결과를 토대로 이들이 호주, 남아메리카, 남극, 인도, 아프리카 등이 하나로 붙어있던 초대륙 곤드와나가 분열되면서 분포지가 나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오자와_댕가리.jpg» 갯고동과 생물의 세계 분포. 과거 초대륙 곤드와나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이 있다. 그림=오자와 외 (2009).

2500만년 전 호주와 동남아 지판이 충돌해 호주의 갯고둥이 아시아로 퍼졌고, 남아메리카의 갯고둥은 310만년 전 파나마 해협이 막혀 남·북아메리카가 이어지면서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게 됐다는 이론이다. 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동아시아에는 이 갯고둥과에 속하는 Batillaria 속에 4종 알려져 있습니다. 화석 기록도 비교적 연구가 많이 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마이오세 후기부터 이 그룹에 속하는 종들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이 열대 기원의 남반구 호주 지역에서 북쪽으로 이동하여 점차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호주와 뉴질랜드 주변에는 동아시아 갯고둥과 종들과 공통조상을 공유하는 종들이 살고 있습니다. 갯고둥과의 조상들은 아주 먼 과거에 테티스 해(Tethys Seaway)를 따라 이동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에 따라 동쪽으로는 서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해서 현재의 갯고둥과 종들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쪽으로는 곤드와나 대륙이 갈라지면서 형성된 바다를 따라 오늘날 파나마 지역에까지 뻗어나간 것으로 확인됩니다. 흥미롭게도 중간에 해당하는 유럽에는 과거 조상의 화석은 발견되나 현재는 갯고둥과 계보들이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남아의 댕가리는 쿠로시오 난류를 따라 일본에 왔고 해류의 북쪽 가지인 쓰시마 난류를 타고 동해에 진출했으나 빙하기 때 동해가 내해가 되면서 고립돼 유전적으로 분화했다. 이번 연구는 쓰시마 난류를 타고 한반도 근해로 퍼진 댕가리가 제주와 남해, 서해로 차례로 확산한 과정을 규명한 것이다.
 
원 교수는 후속연구의 과제로  “이번 연구에선 핵 속의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약 6만년 전의 기간만을 들여다 보았지만 앞으로 핵유전자 좌위의 디엔에이로 분석대상을 넓히면 그 이전 빙하기 때의 사건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huong-Thao Ho, Ye-Seul Kwan, Boa Kim & Yong-Jin Won, Postglacial range shift and demographic expansion of the marine intertidal snail Batillaria attramentaria, Ecology and Evolution, doi: 10.1002/ece3.1374.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ece3.1374/abstract
 
■ 이 논문과 관련해 원용진 교수가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이메일 전문 
-연구 대상 생물인 Batillaria attramentaria를 댕가리라고 하셨는데요. 국내 수산 관련 자료에서는 학명이 B. cumingii로 좀 다르더군요.
 
=우리말로 댕가리 종은 Batillaria attramentaria 가 공식 학명입니다. Batillaria cumingi 는 이명(異名: synonym) 으로서 댕가리 종에 붙여진 다른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 연구자들에 따라 한 종에 대해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서 사용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누가 제일 먼저 그 종에 대해 학술적으로 기록을 남겼냐는 기준(선취권) 따라 나중에 해당 분류군 전문가들이 다시 재정립을 진행합니다. 한동안 댕가리는 B. cumingi로 사용하던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식 학명으로 B. attramentari가 채택되었습니다.
 
댕가리는 연체동물문(Mollusca) 복족강(Gastropoda) 갯고둥과(Batillaridae) Batillaria 속에 속하는 종입니다. 연안의 조간대 해안을 따라 한국, 일본, 중국 등에 널리 분포하는 종입니다. 주로 갯벌이나 모래사장 그리고 조간대 바위 웅덩이 틈과 같이 얕은 물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모양은 민물 다슬기와 같은 원뿔모양이며, 백색과 흑색 띠가 교대로 원뿔 둘레를 감아 올라가는 무늬패턴을 나타냅니다. 몸길이는 작고 대략 2~3㎝ 길이, 폭 1㎝ 미만의 크기입니다. 동아시아에는 이 갯고둥과에 속하는 Batillaria  속에 4종 알려져 있습니다. 화석 기록도 비교적 연구가 많이 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마이오세 후기부터 이 그룹에 속하는 종들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이 열대 기원의 남반구 호주 지역에서 북쪽으로 이동하여 점차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호주와 뉴질랜드 주변에는 동아시아 갯고둥과 종들과 공통조상을 공유하는 종들이 살고 있습니다. 갯고둥과의 조상은 아주 먼 과거에 테티스 해(Tethys Seaway)를 따라 이동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에 따라 동쪽으로는 서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해서 현재의 갯고둥과 종들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쪽으로는 곤드와나 대륙이 갈라지면서 형성된 바다를 따라 오늘날 파나마 지역에까지 뻗어나간 것으로 확인됩니다. 흥미롭게도 중간에 해당하는 유럽에는 과거 조상의 화석은 발견되나 현재는 갯고둥과 계보들이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체발생상 댕가리의 발생은 직접발생 방식을 따릅니다. 해양생물들에서 이러한 발생방식은 수정란이 성체로 발달해 가는 과정에서 유생형 형질의 일부 혹은 전체가 생략되고 성체형 형질이 바로 발현되는 발생 양식입니다. 직접발생의 반대는 간접발생이라고 합니다. 유생시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성체와 모양이 뚜렷하게 다르며 변태에 의해 성체로 성장해갑니다. 해양생물들은 대체로 간접발생하는 종류들이 많은 편입니다. 유생은 배(胚)와 성체(成體)의 중간시기에 해당하는데, 배와는 달리 자유생활을 하고 성체와 달리 생식기관이 미발달된 상태입니다. 직접발생에서는 성체와 달리 몸이 작을 뿐인데, 이런 경우 수정된 장소 주변에서 성체가 될 때까지 몸이 자라는 과정을 거쳐 서식지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자유생활을 하는 유생시기가 길면, 해류를 따라 먼 장소로 이동하는 확률이 높아지지만, 반대로 직접발생을 하는 종류들을 이동성이 낮아지면서 서로 떨어진 집단들 간에 유전적인 분화도가 높아집니다. 이 경우 집단간 유전자 흐름이 적다고 말합니다. 문헌상 댕가리의 발생에 대해서 세밀한 연구 논문들은 매우 적은 편이라서, 구체적인 설명은 저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 이 연구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과거 빙하기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가 한반도 주변 해양생물들에 진화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데에 의미가 큽니다. 특히, 현재 살아있는 생물 집단들이 간직한 DNA 변이 정보를 분석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의 연대측정을 통해 과거에 있었던 진화적 변화의 양상과 발생 시기를 재구성했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댕가리 종을 대상으로 연구한 본 연구에서 의미하는 진화적 변화는 한 종이 서로 다른 두 종으로 나뉘는 종 분화(speciation) 수준의 큰 변화는 아니고, 종 분화 과정의 중간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역의 구분에 따른 한 종 내 집단분화, 그리고 빙하기 기후변화와 연결된 해수면 변동과 지역 해류의 변동과 같은 고해양학적 변화의 영향을 받은 서식지 확장 및 해수온도 변화에 반응하는 개체수 증감 같은 사건들을 포함합니다.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해안가에 서식하는 해양무척추동물인 갯고둥류의 댕가리 종은 최후최대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2만6000~1만9000년 전) 이후 개체수가 역사적으로 급격히 증가해왔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서해를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 해역은 수심이 얕은 대륙붕 지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된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해역은 빙하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해침의 시기에 극심한 해안선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해침에 따라 육지에 붙어 있던 제주도가 섬으로 떨어지고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이동하면서 서해와 남해와 해안선이 확장되어 들어오게 되는데, 이러한 고해양학적 변화와 시기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시간 순서가 이번 연구 결과 밝혀진 해양동물 댕가리 종의 해역별 분화와 개체수 증가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댕가리는 빙하기 시기에 남방에 존재했을 조상집단이 북상하면서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 후 그 중 일부 집단이 다시 서해와 남해로 갈라져 가며 서식지를 확장해 나갔는데, 이러한 서식지 확장과 동시에 개체수가 10배 이상 증가하는 변동을 겪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한국의 댕가리 개체수 증가 양상은 일본 주변의 광범위한 집단들에서도 매우 일치된 결과였는데, 이 시기 동아시아 전역에서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고 서식지가 확장되면서 댕가리가 생존하기에 좀 더 양호한 환경이 조성된 결과라고 해석됩니다. 동아시아 해양생물들을 통틀어서 본 연구 이전에는 마지막 빙하기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본 연구결과가 이러한 과학적 질문에 대한 최초의 보고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가장 최근의 빙하기 영향을 댕가리 종이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이 생물이 갖고 있는 독특한 발생양식과 서식환경에 따른 것으로 해석됩니다. 댕가리 종은 직접발생으로 개체발생을 하기 때문에 태어난 곳 근처에서 성체가 되고 성체 또한 이동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떨어진 집단들 간에는 유전적 분화가 축적되어 갈 가능성이 큽니다. 또 해안가에 서식하고 있는 폭도 조간대 좁은 지역에 한정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해침에 따른 해안선 변동이 있을 경우 해안선 위치를 따라 이동해 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해안선 변동의 역사를 잘 반영하는 생물이었다고 추론됩니다. 지금의 서해는 과거 빙하기 시기엔 존재하지 않았고, 이후 기후가 온난화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이렇게 해서 새롭게 형성된 서해안은 댕가리 종에겐 매우 광활한 서식지 확장이 되었을 거고 개체수도 그에 따라 증가했을 것입니다.
 
한편 빙하기는 동해가 주변 바다로부터 고립되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필리핀 남부에서 북상하는 쿠로시오 난류가 동중국해에서 갈라져 대한해협을 따라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길이 해수면 하강에 의해 형성된 육로에 의해 막히면서 쿠로시오 난류권에 놓인 남방 계열의 댕가리와 지리적으로 고립되는 시기를 갖게 됩니다. 동아시아 전체에서 댕가리는 크게 일본 북쪽의 북방계(쓰시마 계열)와 나머지 남쪽의 남방계(쿠로시오 계열)로 구분되어 있는데, 본 연구에서 이 두 계보가 갈라진 시기가 약 40만 년 전으로 처음으로 측정되었습니다. 거시적으로 살펴봤을 때 남방기원의 댕가리 종이 북상하면서 동해에 정착한 후 과거 여러 번의 빙하기 영향을 받아 나머지 해역과 고립되어 지리적 분화가 촉진되었음을 시사하는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동아시아와 한반도 주변 해양생물 전반의 과거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최근 과거 해양생물들에서 일어났을 법한 사건들의 개연성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생물들의 특성이 다르므로 동일한 역사적 환경변화에 대한 개별 종들의 진화적 반응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댕가리와 같은 생물학적 특성이 있는 해양생물들은 그에 상응하는 진화적 변화의 사건들이 있었음을 시사했다고 봅니다. 현재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해양생물들 가운데 일부지만 그들의 지리적 분포와 유전적 다양성의 기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 연구라고 생각됩니다.  

-연구 방법론이 궁금합니다.
 
=본 연구에서는 댕가리 집단 샘플로부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인 COI유전자 DNA 서열 정보를 얻은 후 이 자료를 분기집단유전학(divergence population genetics) 분석을 통해 과거 제주도, 남해, 서해 해역 사이에서 일어났던 종내 분기역사를 재구성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석방법을 통해 한국 댕가리 종의 과거 조상집단과 현재 집단들 사이에서 일어난 분기연대와 개체수를 측정할 수 있었고 그 크기를 비교해서 증감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방법과 병행하여, 동아시아 지역별 그룹들을 6그룹(제주도 남부, 제주도 북부, 서해, 남해, 일본 북방, 일본 남방)으로 구분해서 각 지역에서 일어났던 개체수 증감의 역사를 베이시안 스카이라인 플롯(Bayesian Skyline Plot) 방법으로 분석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석 방법은 개체수 증가의 양상과 그 시기가 상호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두 방법은 모델 기반 집단유전학연구 방법으로 최근에 개발되었습니다. 복잡한 생물들의 과거 사건들을 비교적 단순한 모형(models)들의 틀로 해석하는 접근법인데, 샘플들의 DNA 자료에 담긴 집단변이 정보로부터 선택한 모형에 내재되어 있는 주요 파라미터 값(예를 들어 개체수의 크기, 분기연대, 집단 간 유전자 흐름 정도 등)들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후확률적 분포(posterior probability distribution) 추론하는 방법들입니다. 2000년대 이전 과거에는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던 복잡한 진화적 사건들에 대한 정량적 추정이 집단유전학 이론정립, 모델개발, 컴퓨터 시뮬레이션 융합을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 댕가리가 일본에서는 구로시오와 쓰시마 집단으로 나뉘고, 쓰시마 집단은 다시 한반도 근해에서 황해, 남해, 제주 북부, 제주 남부 등으로 형질이 분화했다고 이해했는데요. 일본에서 분화가 일어난 40만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반도 근해 집단의 지리적 형질 차이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한반도 해안이 다 연결돼 있는데, 경계지역에서 잡종화는 일어나지 않는지요.
 
=본 연구의 대상인 댕가리는 한국과 일본 모두 한 종입니다. 다만 지리적인 구역에 따라 서로 종내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령 쿠로시오와 쓰시마 집단은 일본의 북쪽과 남쪽에 지리적으로 구분되어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에 따른 것으로 보여지며, 앞서 설명했듯이 빙하기 해수면이 하강했을 시기 쿠로시오 난류의 한 지류인 쓰시마해류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대한해협에서 막히면서 동해쪽 그룹인 쓰시마 집단이 분리되어 나타난 유전적 차이로 해석됩니다. 물론 해류 한가지 영향만으로 두 그룹이 나뉘었다고 보는 것은 아니고요, 이 종의 이동 능력이 매우 낮기 때문에 거시적 지리 그룹 간에는 연결성이 약해지면서 차이가 축적되어 갔을 것이고, 특히 빙하기 시기는 지리적 고립을 더욱 촉진했을(reinforce)거라고 봅니다. 앞서도 설명드렸듯이 유생시기가 일부 생략된 직접 발생하는 댕가리의 경우 먼 거리 이동이 매우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역 집단들 간에도 유전적 분화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해안선이 연결되어 있는 서해와 남해 간에도 서로 유전적 타입들의 빈도가 달라지는 분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집단 사이에 유전적 타입의 빈도가 달라지는 것은 서로 왕래가 적다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ABO혈액형 빈도가 집단들 간에 다를 수 있는데, 이 경우도 유전적 분화가 있다고 표현합니다. 즉 지리적 형질 차이는 사실 없지만, 집단유전학에서는 단순히 빈도가 달라도 분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거시적으로 40만 년 전에 대표적인 두 계보 사이의 분리가 있는 것으로 계산이 되었는데요, 저는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남방기원의 댕가리가 동해 쪽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해간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을 살펴보면 남쪽 쿠로시오 타입의 집단들에서 다양성이 훨씬 높게 관찰됩니다. 이는 과거에 북쪽이 아닌 남쪽에 조상집단들이 대거 서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실제로 화석자료들과 댕가리과 계통수(Ozawa et al 2009 Zoologica Scripta, 38, 5, pp 503-525) 연구에서 동아시아 갯고둥과 종들이 남방기원이라는 밝혀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잡종화(hybridization)는 서로 다른 두 종이 교배하여 자손을 낳을 때 이런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나의 종인 동아시아 댕가리 종은 그래서 이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유전적으로 독특한 집단 간에도 교배가 일어나며, 그에 따른 유전적 재조합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경우 백인과 흑인 사이처럼 말이죠.  제주도 남부는 특이하게 미토콘드리아 COI 유전자 타입에 쿠로시오 타입이 일부 관찰됩니다. 이는 제주도가 한반도 다른 지역에 비해 좀더 남쪽에 위치한 결과 과거 쿠로시오 타입의 개체들의 유입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빙하기 시기 제주도 남쪽에 퇴각해 있던 해안가로 규슈 지역에 서식했을 개체들이 유입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아쉽게도 모계유전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조사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유전적 그룹 간에 교배가 된 타입은 식별할 수 없었습니다 (A 아니면 B로 판별되지 AB 타입은 없습니다). 추후 핵유전자를 사용하여 조사를 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빙기와 간빙기는 250만년 전부터 시작돼 여러 차례 되풀이됐는데요. 이 연구에서와 같은 분화가 그때마다 일어난 건가요, 아니면 특정 시점에만 일어난 건가요.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먼저 간단히 말씀드리면,  현재의 자료로는 6 만 년 전 과거 이상에 대한 의미 있는 개체수 크기 정보는 추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들여다볼 창이 폭이 매우 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데이터의 해상력이 낮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먼 과거의 역사와 사건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다수의 핵유전자 좌위에서 DNA 서열정보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진화유전학자들은 과거를 들여다 보는 창을 늘리기 위해서 보다 많은 데이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 가운데는 좀 더 많은 수의 유전자 DNA 서열정보를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LGM(2만6천~1만9천년 전) 이후의 시기에 폭발적 개체수 증가가 측정되었는데요, 본 연구에 사용된 미토콘드리아 DNA 자료로는 6만 년 이전의 과거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추정해보면, 아마도 LGM 이전의 빙하기는 서식지의 감소와 추운 날씨로 인해 개체수가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개체수가 줄게 되면 병목효과(bottleneck effect)가 일어나서 그 이전에 조상들로부터 유전된 유전적 변이의 상당량이 소실됩니다. 멸종위기종이 이런 특성이 있는데,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은 이유가 바로 이런 병목현상과 같은 개체수 감소입니다. 그래서 다시 과거를 조심스럽게 재구성을 해보면, 과거 여러 번의 빙하기 시기를 거치면서 상당한 과거의 유전적 변이가 소실돼서 6만 년 이전의 과거를 알려줄 정보가 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는 없다고 보입니다. 그와 대비되어, 병목 이후 간빙기 온난화에 따른 개체수가 10배 이상 증가하는 사건이 있게 되면(우리 연구에서 관찰한 LGM 이후 개체수 팽창) 상대적으로 개체수 팽창의 신호가 매우 분명하고 강하게 잡히는 것으로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달리 바라보면, 댕가리 종의 생물학적 특성이 고해양학적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이라고 가정한다면, 먼 과거의 사건들이 남긴 집단유전학적 변이 흔적은 그 이후 중간에 존재했을 빙하기 시기 개체수 감소와 같은 사건들의 영향으로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대적으로 먼 과거의 정보를 추출하려는 방편으로 앞으로 핵유전자 서열정보를 추가하여 분석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론유전학자의 도움을 받아 여러 번의 빙하기 조건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현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DNA 변이에 영향을 끼칠지를 핵유전자 실험 관측치와 비교해보는 공동연구가 뒷받침되어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문재인, 박지원이 새정연의 사망일을 앞당기고 있다.

‘경선룰’ 놓고 문재인과 박지원 신경전 격화
문재인, 박지원이 새정연의 사망일을 앞당기고 있다.
임두만 | 2015-02-03 15:24:41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8전당대회가 5일 앞으로 다가온 새정치민주연합에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 넉넉하게 이기고 당권을 잡을 것으로 판단했던 문재인 후보 측이 박지원 후보 측의 맹렬 추격 때문에 박빙의 게임이 된 때문이다.
1월 말을 지나면서 각종 여론조사와 당 내외의 예측은 대의원 당원에서 박지원 측이 이기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의원 당원에서 미세하게 이기더라도 반영률이 25%나 되는 여론조사에서 워낙 문재인 측이 앞서고 있으므로 대략의 예측은 ‘그래도 문재인’ 정도였다.
그런데 전대가 막판으로 다가가면서 문재인 측이 스스로 급해진 것 같다. 박빙일 것으로 봤던 대의원 표도 박 후보가 앞서고, 호남 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권리당원 지지율에선 박 후보가 상당부분 앞선다는 예측이 나오면서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원사이드하게 박 후보를 제치지 못하면 최종 결과도 예측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저들은 이미 지난 해 12월 29일 정해진 룰에서 위험부담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 없음’이란 답을 하는 응답층이 매우 중요한 값이 된 것이다.
즉 전체 응답자를 100으로 하고 이중 ‘지지후보 없음’ 응답자가 30%정도 나온다면 실제 여론조사 반영률은 전체 유권자의 25%가 아니라 15%로 줄어든다는 점에서 위험신호를 감지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느닷없이 이미 정해진 룰임에도 불합리하다며 이를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룰을 고칠 자격도 없는 전준위가 ‘유권해석’이란 이름으로 문재인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들은 이 절차를 진행하면서 당내나 외의 비판과 후보 측의 반발을 의식, 투표라는 과정을 거쳤다. 전준위원 15명의 투표를 통해 11명의 찬성을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는 편법이자 불법이다. 이미 전당대회 경선 룰은 지난 해 12월 29일 합의되어 경선 세칙까지 다 정해졌으며 이 세칙에 대한 내용까지 각 후보 캠프가 갖고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측은 이를 부인하면서 경선 세칙 중 유독 자신들이 유리한 여론조사 부분만 문제를 제기하고, 이미 권리당원 투표를 하루 정도 남긴 시점에 바꾸게 한 것이다.
박지원이 기자회견과 방송토론회에서 “작년 12월29일 모든 후보가 참여해 이 규칙(시행 세칙)을 만들었고 여기에 따라 오늘까지 선거운동을 했다. 100m 경주 가운데 98m를 왔는데 이제 와서 규정을 바꾼다면 이는 계파 독점의 결과”라고 한 말은 팩트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방송 토론회에서 “재작년 전당대회대로 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게 왜 룰 변경인가. 오히려 (박 후보 측이) 룰 변경을 시도하다가 제동이 걸린 것인데 거꾸로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국민들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런 거짓말을 뻔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누가 순수하다고 말하는가? 어제 방송토론회에서 나타난 문재인은 순수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의 모든 발언들을 종합하면 어떤 비난을 받아도 일단 당권을 잡아야겠다는 욕심만 노골적으로 내보였다.
이는 박지원도 마찬가지다. 룰 전쟁에서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꼈음인지 전국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토론회에서 전당대회와 상관없는 문재인의 개인적 치부까지 들춰가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때문에 두 사람의 노골적 탐욕이 그대로 나타난 토론회는 말 그대로 개판 토론회가 되었다.
그러니 이 상태로 전당대회가 치러지고 문재인이 당 대표가 되었더라도 ‘전대는 전대고 전대가 끝났으니 화합하자’고 하면 화합이 되는가?
천만에다. 정당한 룰에 의해 정당한 선거로 당선되어도 패자는 승자에게 흔쾌하게 승복하지 못하는 것이 선거다. 그런데 선거 룰을 선거운동기간 90%가 지난 다음에 바꿔서 승리한 측에게 패배한 후보가 승복할 수는 없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당은 불협화음이 오래 계속될 것이며 그 책임은 불법과 편법으로 당권을 잡은 측이 져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다. 지금이라도 문재인이 전대 승리 후 패자 측에게 화합을 말하고 하나됨을 말하려면 경선세칙을 원위치 시켜야 한다. 지난 해 12월 19일 합의하여 만들어진 룰대로 여론조사 값을 매겨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자신이 지금까지 주장한 당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보이는 일이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보여야 하므로…
2.8전당대회가 끝나면 정국은 급속하게 4.29재보선의 격동으로 빠져든다. 보궐선거 3개의 지역구는 야당들이 피터지는 싸움판을 벌여야 할 곳이다. 국민모임, 통진당계무소속 후보는 무조건 출진한다고 하면 새정연 말고도 이미 야권 후보가 최소 2명씩은 나온다.
여기에 출마할 새정연의 후보라면 최소한 난립하는 야권후보들 중 특출하게 유권자를 견인할 후보여야 한다. 그런 후보를 공천해야 그나마 싸워볼 수 있다. 이번 당 대표는 그런 공천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공천권도 행사하지 않겠다는 당 대표를 하려고 전대에서 불법과 편법을 한다? 그런 당 대표를 만들려고 전 계파가 다 불법과 편법을 옹호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스로 불법과 편법을 자행한다?
거짓말이다. 개가 웃을 일이다. 불법과 편법은 다 동원하면서 당권을 쥔 문재인과 친노가 정말 문재인 말대로 모든 기득권을 다 내놓고 공천에서 아무 작용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면 그게 아마추어다.
결국 이 3곳의 공천은 틀림없이 친노 친문의 사천이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다시 당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탈당, 분당, 신당 창당 등으로 야권은 시끄럽고, 야권후보는 난립하면서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완승을 할 것이다. 이윽고 새정연이란 정당의 수명은 거기서 종료된다. 이 처절한 종막을 위해 저들은 마지막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새정연을 두고 ‘통합’이니 ’화합‘이니 ’단일화‘니 하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반동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박근혜 정부와 대등한 전쟁이라도 할 수 있으려면 새정연이라는 세력이 야권의 주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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