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5일 월요일

대통령의 거짓말에 농락당하는 유권자들…

대통령의 거짓말에 농락당하는 유권자들…
김용택 | 2015-10-05 10:07:1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공자의 제자로 훗날 노나라 재상이 된 자공(子貢)이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답변했다.
“백성의 양식이 넉넉하고 국방력이 튼튼하면서 백성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잘하는 정치다.”
“어쩔 수 없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맨 먼저 무엇을 버릴까요.”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군대”라고 했다.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 먼저입니까.” 다시 자공이 묻자 공자는 “양식”이라고 답했다. 논어에 실린 내용이다. 양식이나 국방보다 신뢰가 더 중요하는 가르침이다. 공자뿐만 아니라 신뢰가 통치의 기반이라는 것은 성현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가 아닌가? 박근혜대통령이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밝힌 공약이다. “저는 남북간의 불신과 대결, 불확실성의 악순환을 끊고 신뢰와 평화의 새로운 한반도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겠습니다. 국민적 공감대 위에 남북한의 신뢰, 국제사회의 협력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된 남북관계를 모색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여건을 조성하겠습니다.”
이런 박대통령의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설레었다. 이제 우리도 반세기 동안 동족간의 반목과 증오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공존, 통일의 시대를 맞을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임기 2년여를 남겨 놓고 현실에서 신뢰프로세스는 어떻게 됐을까? 박근혜대통령 취임 후 남북관계는 역대 어느 대통령 때보다 가장 심각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어렵게 만든 남북이산가족 상봉조차 성사될지 의문이다.
‘약속만 하고 제대로 한 게 없다’
지난 7월 1일 JTBC 손석희 아나운서가 9시뉴스를 진행하면서 꺼낸 클로징 맨트다. 오죽하면 뉴스 진행자의 입에서 이런 험담까지 들어야할까? 19대 총선을 불과 6개월 남겨놓은 시점에서 국회 의석수 48석을 아우르는 서울에서 선거를 완패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자 박근혜의원을 당대표로 추대하면서 당기와 당명까지 바꾸면서 새누리당의 개혁이 시작됐다.
당시 새누리당이 꺼낸 카드를 보면 우리 정치도 후진성을 벗고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채무불이행자 신용회복지원,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이런 약속을 듣고 있으면 왜 아 그렇겠는가? 그런데 이런 약속들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국민행복의 길을 열어갈 첫 번째 과제로, 저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정당한 기업 활동은 최대한 보장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지만,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두 번째 과제로, 저는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고용률 중심의 국정운영 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전통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겠습니다… 수출 일변도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성장을 견인하는 쌍끌이 경제를 만들어 내수 중소기업을 키워나가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2012년 7월 10일, 새누리당 예비후보 박근혜)
이런 공약 역시 국민들이 열광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의 공약을 들을 때마다 이제 유럽 선진국처럼 다른 나라에 부끄럽지 않은 희망의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가슴 벅차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의 공약 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공약을 시행되기는커녕 하나같이 공약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배신감과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대통령의 공약 얼마나 지켜지고 있나?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후보로서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로 삼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어디 지역에서 살든, 어떤 계층에 속하던 간에, 억울한 일없이 정당하게 대우받도록… ‘차별도 없고 특혜도 없는 세상,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대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는 경제, 불공정거래가 발붙일 수 없는 경제, 좋은 일자리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성장시스템을 만들고, 위기와 갈등, 반칙과 불공정, 그리고 불확실성과 혼란의 악순환을 끊고 국민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미지 출처 : 늙은 도령>
박대통령의 공약과 현실을 비교해 보면 분노가 치솟는다. 차라리 그런 공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기 격이다. 아니 노골적으로 의도된 공약(空約)으로 유권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저는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거짓말… 그가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면 소가 웃을 얘기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와 같은 공약은 이행이 아니라 거꾸로 가고 있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면서 철저하게 친재벌정책을 펴고 있다. 4대구조개혁이니 노동개혁을 보면 그렇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겠다며 ‘노동시장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미운살이 박힌 노동자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경제를 살린다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단다. 교육개혁을 한다면서 유치원수업시수까지 늘리고 시행도 하기 전의 교육과정을 또 바꾸겠단다. 나라사랑을 말하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한자병행을 강행하겠다는 게 박근혜정부다. 그가 얼마나 사기에 가까운 정책으로 포장하는지는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게 왜 죄가 되는가? 취업을 해도 정규직은 하늘에 별 따기요, 그것조차 연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피크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의료와 철도 교육까지 민영화하겠다고 나서는 게 박근혜정부다. 청년실업자 100만 시대, 비정규직 800만, 1천만 노동자를 두고 임금피크제 도입, 업무부적격자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 통상임금기준 정비, 근로시간 유연성확대… 라는 정책이 어떻게 복지정책이며 경제민주화인가?
3포시대, 5포세대도 모자라 7포세대라는 청년들의 한탄의 소리가 SNS를 채우고 있겠는가? 이제 3포, 5포 7포세대 뿐 아니라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민 가고 싶다고 한다. 가계부채 1,000조 원을 두고 어떻게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실을 두고 의료 민영화, 교육민영화, 철도민영화를 추진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자본이 행복한 사회는 노동자도 행복할까? 박근혜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공약을 믿고 기다리는 국민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는 그의 말은 아직도 유효한가? 기다리면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오기나 할까?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212 

조선노동당 70년 역사로 본 북한

'김일성.김정일의 당, 어머니당'[친절한 통일씨] 조선노동당 70년 역사로 본 북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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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5  17: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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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거리에 걸린 당 창건 70돌 축하 문구. 북한 조선노동당 당기 중 붉은 색은 항일혁명을 중앙노란색 망치, 낫, 붓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의미한다.[자료사진-통일뉴스]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이다", "조선노동당은...인민대중의 운명을 책임지고 돌보는 어머니당으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간다."
지난 2012년 개정된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김정일의 유일영도체계를 중심으로 어머니의 품처럼 인민을 보살피는 당이라고 풀이된다.
김일성-김정일주의 당, 어머니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 혁명의 참모부 등 다양한 표현을 지닌 북한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북한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도 조선노동당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북한의 조선노동당을 제대로 안다는 것도 사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는 것일 뿐, 속 깊이 이해한다는 것과 다르다. 분단 70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조선노동당의 출발
북한 조선노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창건됐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노동당의 출발이 1920년대라고 설명한다. 김일성 주석이 1926년 10월 17일 일제에 맞서 결성한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이 조선노동당의 토대라는 것이다.
당시 김일성은 'ㅌ.ㄷ'와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반제청년동맹 등을 결성하고 공산주의자 육성과 도시와 농촌 의식화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당시 함께 활동한 이들이 김혁, 차광수, 최창걸, 김리갑, 계영춘, 강병선, 김원우 등이다. 김혁은 김일성이 생전에 잊지 못한 동지로 평가받았고, 훗날 부총리가 된 김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어 김일성은 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중국 만주 장춘현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대회'(카륜회의)를 열고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고 조선혁명의 지도사상과 혁명노선 및 전략전술을 확립했다고 한다. 그리고 7월 3일 첫 당 조직을 결성했는데 이것이 조선노동당의 기원이다.
이후  1930년 10월 온성일대 당 조직 결성, 1934년 5월 조선인민혁명군(훗날 조선인민군) 당 위원회 결성, 1936년 2월 남호두회의, 5월 조국광복회 창건 등으로 이어져 해방 후인 194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의 전신인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가 창립됐다.
  
▲ 201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전신인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립이 발표된 평양 중앙지도부 건물. 현재 북한은 당 창건 사적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당시 '서북 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 마지막 날인 13일에 창립이 선포됐지만, 김일성 주석이 연설을 한 날짜인 10월 10일을 창립 날짜로 지정했다. 이어 14일 펑양시군중대회에서 김일성은 지도자로 소개됐다.
그리고 1946년 2월 김두봉, 최창익 등 연안파 세력을 중심으로 창당된 조선신민당과 8월 합당대회를 통해 '북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됐다. 이를 두고 북한은 "노동계급뿐 아니라 광범한 근로대중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묶어세우고 조직동원할 수 있는 통일적인 대중적 당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한편, 남측에서는 1945년 9월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이 재건, 1946년 1월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과 합당해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됐다. 그러나 1949년 6월 남북조선 노동당은 1국 1당 원칙에 따라 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됐다.
1926년  'ㅌ.ㄷ'에 뿌리를 둔 조선노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선포를 거쳐 1949년 6월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 북한은 "피어린 항일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장기간에 걸쳐 억세게 다져온 주체형의 당 창건 위업의 실현"이라고 표현한다.
조선노동당의 성격과 특징, 구조
70년 역사를 지닌 조선노동당의 성격과 특징은 무엇인가.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은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이다"로 시작한다. 즉, 김일성이 당을 만들고 김정일이 당을 강화 발전시켜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를 영원히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노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라고 밝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공고화하는 성격을 지닌 당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조선노동당은 최고 형태의 혁명조직이고 수령, 당, 계급, 대중이 하나의 전일체를 이루고 있는 프롤레타리아독재체제 아래에서 향도적인 영도역량이며 혁명의 참모부로서의 역할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노동당은 노동계급적 원칙, 사회주의 원칙을 토대로 △사상, 기술, 문화 3대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와 사회주의 문화발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의 민족의 통일, △반제자주 연대성 강화를 통한 세계자주화, 평화 및 세계사회주의운동 발전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성격과 목표를 지닌 조선노동당은 집체적 지도기관으로 당 대회,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당 중앙군사위원회을 두고 있다. 서열로 본다면, 당 대회-당 대표자회-전원회의-정치국 순이나 당 대회가 열리지 않으면 당 대표자회, 그 외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당 대회는 조선노동당 규약 2장 14조 1항에 명시된 '가장 상위에 있는 최고지도기관'으로 2010년 개정된 규약에는 소집시기가 명시되지 않지만 1980년 당 규약에는 5년 1회 개최를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1946년 8월 제1차 당대회, 1948년 3월 제2차, 1956년 4월 제3차, 1961년 제4차, 1970년 11월 제5차, 1980년 10월 제6차가 열렸을 뿐 35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긴급한 당의 정책이나 전략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위해 당 대표자회를 소집하도록 한다. 당 대표자회는 1958년 3월 1차, 1966년 10월 2차, 2010년 9월 3차, 2012년 4월 4차가 열렸다.
당 중앙위원회는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지도하는데 △전 당에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확립하며, △당의 노선과 정책을 수립하고, △당과 혁명대열을 공고히하며, △행정 및 경제사업을 지도조정하고, △혁명적 무력을 조직, 그들의 전투능력을 높이며, △기타 정당 및 국내의 기관의 활동에서 당을 대표하고,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임무와 역할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당 중앙위원회 위원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상당한 위상을 의미한다. 제1차 당 대회시 중앙위원은 43명이었으며, 지난 1980년 6차 당 대회에는 정위원 145명, 후보위원 103명이었다. 1명의 위원이 약 1만명의 당원을 대표한다고 할 때, 1980년에는 약 248만명이 노동당원인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당 중앙위원회는 전원회의를 6개월에 1회 이상 소집하도록 한다. 전원회의에는 당 중앙위원, 후보위원, 내각성원, 도당 간부, 사회단체 간부, 주요 기관 및 공장 기업소 간부들이 참석한다. 여기서는 당의 주요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중이 크다.
하지만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도 상시적으로 열리는 회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핵심은 당 정치국 및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이다.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 지도하는 정책 수립의 절대권력기관이다.
그래서 정치국 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의 변동은 북한의 정책 혹은 정책변화를 읽을 수있는 키워드가 된다. 이 중 상무위원회는 1980년 10월 김정일 권력승계 당시 설치된 것으로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이종옥 등 5명이 상무위원으로 구성됐다. 그러다 1981년 김정일이 김일성 다음에 불렸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은, 김영남, 황병서이며, 위원은 최룡해, 박봉주, 김기남, 최태복, 박도춘, 양형섭, 강석주, 리용무, 김원홍,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등이고, 후보위원은 오극렬, 김평해, 최부일, 로두철, 조연준, 리영길, 태종수 등이다.
조선노동당의 또 다른 기구로 비서국이 있다. 비서국은 상설기관이 아닌 협의기관으로 당 내부사업과 그 밖의 실무적 문제들을 토의.결정해 집행을 지도하는 역할을 한다. 정치국에는 당 일꾼과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포진된다면, 비서국은 전임 당 일꾼들인 비서로만 구성되어 있다.
현재 김정은 제1비서를 중심으로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최룡해, 김양건, 김평해, 곽밤기, 강석주, 오수용 등이 당 비서를 맡고있다.
그리고 이들 비서국은 전문부서를 두고 있는데, 조직지도부, 간부부, 경공업부, 계획재정부, 과학교육부, 국제부, 군사부, 근로단체부, 기계공업부, 당역사연구소, 문서정리실, 민방위부, 선전선동부, 신소실, 재정경리부, 총무부, 통일전선부, 38호실, 39호실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당 중앙 검열위원회, 당 중앙 검사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있으며, 지역에도 도.시 당 대표자회, 도.시 당 위원회가 있다.
  
▲ 1945년 12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 결정서 초안을 토의하는 김일성.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 시대의 조선노동당(1945~1994)
조선노동당 70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시대별 당 대회, 당 대표자회,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너무 내용이 방대해 여기서는 북한이 핵심으로 삼고 있는 내용만 다루기로 한다.
김일성 시대는 조선노동당 창건과 공화국 창건 등 북한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1946년 8월 1차 당대회를 시작으로 1948년 3월 2차 당대회를 통해 북한 체제 틀을 잡았고,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계급교양강화를 통한 사회주의교양과 혁명전통교양사업이 심화됐다.
그러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연안파와 소련파가 숙청되고 1958년 3월 열린 제1차 당 대표자회를 통해 '반종파투쟁'을 일단락하고 김일성 유일지도체계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1961년 9월 4차 당대회, 1966년 10월 제2차 당 대표자회를 거쳐 대내외 자주노선을 강조한 권력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1950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현 상무위원회)에서 군대 내 정치기관 조직, 1950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의 당 사상의지적 통일과 단결 강화, 1951년 11월 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 1952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 등에서는 한국전쟁 극복을 통한 당 강화 발전이 강조됐다.
그리고 1953년 8월 당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 중공업 우선 발전, 1956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의 천리마운동 시작, 1962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의 경제.국방건설 병진노선 채택, 1967년 5월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를 통한 전당 유일사상체계 확립 등 김일성 시대 당의 기틀이 완성됐다.
1970년대 들어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시대에서 김정일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맞이했다.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 과업을 제시했다고 북한이 평가하는 1970년 11월 제5차 당대회를 거쳐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이 서열 5위로 발표되며 후계구도를 명확히했다.
  
▲ 1980년 10월에 열린 제6차 당 대회. 여기서 김정일이 김일성 후계자로 공식화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일 시대의 조선노동당(1994~2011)
1994년 총비서인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 김정일 시대 공식적인 당 회의는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가 유일하다.
제3차 당대표자회의는 김정은 후계구도를 공식화하는 회의의 성격이 컸다. 김일성 시대의 당 대회, 당 대표자회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에서는 당 건설과 국가 발전이 중심이었던 것에 비해, 김정일 시대에 공식적으로 열린 당 회의는 후계구도에만 치우쳐있다.
그래서 일각에서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시기는 당과 국가체계가 약화된 시기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1980년 제6차 당 대회로부터 30년,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로부터 44년만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는 김정은 후계구축을 위해 당 기능을 복구하고 '김일성 동지의 당', '선군정치', '영도의 유일성', '계승성' 등을 당 규약에 명확히했다.
  
▲ 2012년 4월 조선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제1비서로 추대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2011~현재)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은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김정은을 제1비서로 추대하면서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진 유일영도체계를 김정은 제1비서로 확고히 했다.
또한, 조선노동당을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세우고, 2013년 1월 제4차 당 세포비서대회, 2013년 2월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2013년 2월 3대혁명소조회의, 2013년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 2013년 12월 당 정치국 확대회의, 2014년 2월 제8차 사상일꾼대회, 2015년 8월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 등이 개최돼 김정은 시대에는 당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2013년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 김일성 시대 경제.국방건설 병진노선의 뒤를 이었고, 2013년 12월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장성택을 숙청해 유일영도체계를 공고히했다.
또한, 경제 등 국내정책을 다루는 화요회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금요회의 등 협의기구가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김정은 시대는 당을 중심으로 한 국가운영을 강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북한 조선노동당 Q&A]
(1) 북한의 당원은 아무나 되나요? 당비도 낼까?
북한의 당원 가입과 당비 등은 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다. 2012년 당 규약은 서문만 공개되어 있어, 2010년 당 규약에서 당원 가입, 당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노동당 당원은 "주체혁명위업, 사회주의 위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주체형의 혁명가"이며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가 든든히 서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며 당 규약을 준수하려는 근로자"이어야 한다.
해당 조건에 맞으면 18세가 되면 입당 청원서와 당원 2명의 입당 보증서를 당 세포에 제출해야 한다. 다만,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원이 입당하려 한다면, 시.군 청년동맹위원회의 입당 보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입당 보증인은 2년 이상의 당 생활 경력을 지녀야 하며, 입당 문제는 개별심의를 거쳐 1년의 후보당원 기간을 지내야 한다. 그럼에도 입당 자격이 안 되면 제명되며, 입당하게 되면 당원증을 받고 입당 선서를 한다.
당비는 월 수입의 2%로, 매달 당비를 내야 한다.
(2) 북한의 당 마크는 뭔가요?
북한 조선노동당의 마크는 망치, 낫, 붓을 교차한 표식이다. 당 규약은 마크에 대해 "당이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굳게 뭉친 노동자, 농민, 인텔리(지식인)를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의 전위부대이며, 인민대중 속에 깊이 뿌리박고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적이고 대중적인 당이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당기는 붉은 색 깃발에 중앙에 당 마크를 새겨넣은 것으로, 붉은 색은 항일혁명을 의미한다.
(3) 북한에는 당이 하나만 있나요?
북한에도 조선노동당 외에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 청우당 등이 있다.
조선사회민주당은 1945년 11월 3일 창당,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인민대중의 반제국주의, 반봉건적 지향과 요구를 배경으로 중소기업가, 상인, 수공업자, 소시민, 일부 농민, 기독교인 등으로 이뤄진 민주정당이다.
천도교 청우당은 1966년 2월 8일 창당했으며, 보국안민의 애국사상과 척양척왜의 자주정신으로 제국주의의 침략과 예속성을 반대하고 민족적 자주와 부강한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천도교를 믿는 농민들을 주로 한 민주주의적 정당이다.
여기서 사회민주당은 조선노동당과 같이 연합하고 청우당은 조선노동당의 3대혁명노선을 위해 투쟁하는 정당으로 정의되지만, 일반적인 정치적 속성을 지닌 정당으로 보기는 힘들다.
(4) 북한 조선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은 어떤 차이가 있죠?
북한과 중국은 국가 지향점이 우선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전체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로 외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중국은 '노.농 연맹에 기초한 인민 민주주의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로 다당합작제를 중심으로 공산당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의 출발도 북한 조선노동당은 2차대전 일본 제국주의에 대응한 반제, 반봉건주의로 항일 빨치산이 정치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 창당했다는 점에서도 1차 대전 이후 청의 몰락과 서구열강의 진입, 러시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영향을 받아 산업노동자, 농민, 학생을 정치기반으로 삼는다.

통일뉴스, 뉴시스 펌도 보안법 위반이라니

통일뉴스, 뉴시스 펌도 보안법 위반이라니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10/06 [05: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박창숙 통일인사 석방 촉구 기자회견     ©자주시보

통일뉴스, 뉴시스 등 합법적인 언론사에서 보도한 북 관련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도 보안법상 북 찬양 고무죄 위반이라는 검찰이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예상된다.

5일 수원지방법원 410호실에서 2시부터 7시까지 5시간여 진행된 박창숙 통일운동가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 증인으로 나온 보안수사대 수사관 2인은 5,000여 쪽의 방대한 증거자료를 몇 보따리 싸가지고 왔는데 그 주된 내용이 합법적인 언론사들의 글을 복사하여 박창숙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것이었다. 그것도 친구들에게만 공개한 것이었고, 그마저도 지난 1차 재판 도중에 비공개처리한 것임에도 북 찬양고무죄 위반이라며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남성욱 변호인은 “찬양고무죄와 관련된 판례가 여러 차례 나왔고 최근 2015년에도 나온 것이 있는데 그 판례와 이 증거들은 충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라고 묻자. 보안수사대 수사관은 “그건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재판장에서 웃음이 터지는 일이 벌어졌다.

“어떤 기준으로 이적성을 판단합니까?”
“내부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도 판례를 반영하여 변경한 일이 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러자 은퇴를 앞둔 경험많은 수사관이 ‘그건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며 대답을 바꿈)

“도대체 이적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북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재판정 웃음이 터지자 판사가 조용히 할 것을 요구)”

증인들의 대답은 심문이 진행될수록 거의 이런 식으로 ‘모르겠습니다. 답변할 수 없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등등 무성의하고 현실에 맞지 않은 내용으로 일관하였다.

남성욱 변호사는 이적목적성이 뚜렷하고 실질적인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확실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례 들을 들어가며 북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라는 이적 규정은 시대 추세에도 맞지 않고 국민의 사상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면 개성공단사업, 북 어린이 돕기, 나무심기 돕기 등등 대부분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다 이적행위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박창숙 씨를 촬영한 100장의 사진을 범민련 등 사람들과 만난 증거로 제출하였는데 실제로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진 등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개인의 사생활을 이렇게 일거수 일투족 감시하는 것이 과연 합법적인 수사활동인지, 관련 영장을 받아서 적법하게 진행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모르겠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등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사실 범민련 사람들과 만났다고 해서 바로 죄가 될 수도 없다.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누고 무슨 일을 모의했는가가 중요한데 그에 대한 구체적 증거는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 재판을 참관한 사람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국가보안법의 과도한 적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실제 두 정부 들어 유엔인권위원회의 한국 인권 지수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 주된 이유가 인터넷에서의 사상 표현의 자유 억압이다.
21세기 들어 한국만 인권이 거꾸로 가고 있어 세계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음 재판은 19일 오후 3시(앞 재판이 일찍 끝나면 더 빨리 진행될 수 있음) 수원지법 410호 법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단독] ‘급식 비리’ 폭로한 충암고 교사, 전방위 압박당했다


등록 :2015-10-05 21:09수정 :2015-10-05 21:49
‘짬짜미 의혹’ 폭로 교사 “제자들 한 학기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었다”
충암고 전경. 충암고 누리집 갈무리
충암고 전경. 충암고 누리집 갈무리
상급기관의 감사와 제재도 학교를 바꾸지 못했다. 2011년 충암학원은 학교 공사비 횡령과 회계 부정 등의 비리 사실이 적발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법인 이사 전원에 대한 임원취임승인 취소 처분 등 제재를 받았다. 제재에 따라 감축됐던 학급수는 한 해 만에 원상복귀됐다. 임원승인이 취소된 이사장은 ‘법인 사무국장’으로, 해임을 요구받은 충암고 교장은 교감으로 돌아왔다.
학교가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충암고 소속 ㄱ교사는 지난해 학교의 급식운영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끼니를 챙겨 먹고도 자꾸 배고프다고 했다. 성장기여서만이 아니다. 애초에 밥상이 부실했다. “똑같은 재원을 갖고도 질이 다른 음식이 나올 순 있지만 상식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ㄱ교사는 판단했다. “우리 학교 3학년 제자들이 한 학기만이라도 개선된 급식을 먹고 학교에서 겪은 상처 일부를 치유하고 졸업하게 하고 싶었어요.” 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ㄱ교사는 말했다.
5개월전 교내서 공개 비판하자
전 이사장이던 법인실장이 불러
“내가 그런짓 하라고 채용했나”
급식업체는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
직원들 시켜 ‘수업 사찰’한 의혹도
업체의 고소에 검찰 “무혐의” 불구
학교선 교사 징계 절차 진행중
위탁배송업체와의 짬짜미 의혹 등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4일 밝힌 충암중·고교 감사 결과는 ㄱ교사가 학교 안에서 먼저 제기한 문제들이다. 학교는 바뀌지 않았다. 급식운영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바뀐 것은 ㄱ교사의 처지였다. 학교와 학교의 위탁을 받은 업체, 학부모들이 전방위적으로 그를 압박해왔다.
지난 5월 급식 관련 교내 1인시위를 벌인 뒤 전 이사장인 ㅇ사무국장이 ㄱ교사를 불러 다그쳤다. “‘내가 채용할 때는 그런 짓 하라고 채용한 것이 아니라고. 내가 허락 안 해줬으면 여기 학교에 왔겠어?’라고 말하더군요.” 명백한 학사 개입이고 압박이었다. 학교와 계약을 맺은 위탁배송업체의 직원이 수업을 사찰한 의혹도 있다. “설마 싶었지만 여러 차례 학생들이 저에게 ‘조리종사원 형들이 선생님이 수업중에 정치적인 이야기나 급식 이야기를 하느냐면서 녹음까지 했다. 선생님을 음해하려는 것 같다’고 제보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지요.”
해당 업체는 ㄱ교사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충암고 교감의 ‘급식비 막말’ 논란 이후 ㄱ교사가 방송 인터뷰에 출연한 것을 문제삼았다. “ㄱ교사의 폭로로 인해 운영하는 식당의 체인점 계약이 몇 건 날아갔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9월 해당 사건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학교와 업체의 유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ㄱ교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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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여전히 학교의 징계 절차는 진행중이다.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징계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뒤 징계 절차가 일시 중단되긴 했지만 ㄱ교사는 “감사 결과와 상관없이 학교는 징계를 진행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의 앞날을 생각해서 용기를 내긴 했지만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부디 학교가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일베 교과서 안 돼"... 서울대부터 학부모까지

타임라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 사회 전반 확산

15.10.05 19:57l최종 업데이트 15.10.05 19: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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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시민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 역사정의실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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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교사, 교수, 학생, 학부모, 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교육부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교육부는 애초 9월 중에 국정화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는 8일 이후로 발표 시기를 미뤘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기자들과 만나 "국정감사 이후 생각을 정리해서 결정하려고 한다"면서 "처음에는 8월에 결정을 보자고 그랬는데 9월로 넘어오고 9월에 찬반이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정부·여당에서는 국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는 역사교육 정상화 첫걸음 내딛을 때가 됐다. 한국사 교과서 변화다"라면서 "시중에 고교 참고서를 보면, 김일성 유일지배체제 확립과정을 이해해야 된다고 나왔다. 무엇을 가르치려는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9월 2일부터 <한국사> 교과서 반대 목소리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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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 정용욱 한국역사연구회장(왼쪽 세번째)이 9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역사·역사교육 연구자들은 이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각계각층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은 9월 초부터 쏟아졌다. 당시 교육부가 9월 중에 국정화 여부를 발표한다는 소식이 나왔던 때다. 

9월 2일 전국역사교사 모임 소속 교사 2255명은 교사 선언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교육부는 '균형 잡힌 교과서'를 강조하지만, 그 진실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거나 희석 시키려는 시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결정되면 즉각 폐지 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서울대 역사학 전공 교수들은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반대의견서'를 전달했다. 의견서에는 역사학 전공 교수 44명 가운데 77%인 34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 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독립운동후손·단체, 학부모, 14곳의 시도교육감, 법학연구자,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 연구진,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일반 교사 등도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서울대에 이어 부산대·덕성여대·고려대·서원대·성균관대·연세대·한국교원대·동국대·가톨릭대·한국외대·신라대 교수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충남, 대구·경북 교수들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10월 1일에는 전국 23개 대학 사범대 역사교육과 학생회가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다양한 검정 교과서로 한국사를 만나며 역사교사의 꿈을 키워 온 우리 예비 역사 교사들은 당연히 우리가 만날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검정 교과서로 미래의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비롯해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전국 470여 개의 독립·민주화운동 단체, 교육·학술단체 등이 힘을 합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소속 인사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다. 오는 7일에는 많은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