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9일 월요일

승산은 그들의 전법에 있다

승산은 그들의 전법에 있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15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3/09 [12:25]  최종편집: ⓒ 자주일보

▲ <사진 1> 2015년 3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군축회의 기조연설에서 리수용 조선외무상은 조선이 억제력과 선제타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억제력은 미국의 핵공격기도를 사전에 억제할 전략핵무력을 뜻하고, 그가 말한 선제타격력은 전술핵탄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타격할 전술핵무력을 뜻한다.     © 자주일보


어느 쪽의 전법이 더 우세한가?

리수용 조선외무상은 지난 3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군축회의 기조연설에서 “이제는 우리도 미국을 억제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선제타격할 수 있는 힘도 갖췄다”고 말했다. 이 직설적인 발언에서 조선이 생각하는 통일대전의 승산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승산이란 억제력과 선제타격력으로 미국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수용 외무상이 말한 억제력은 미국의 핵공격기도를 억제할 전략핵무력을 뜻하고, 그가 말한 선제타격력은 전술핵탄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戰區)의 미국군기지들을 타격할 전술핵무력을 뜻한다. <사진 1>

그런데 전략핵무력과 전술핵무력을 가진 조선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말을 믿을 사람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핵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공멸전쟁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미국과 한국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적 통념은 핵교전 쌍방이 엄청난 참화를 입고 공멸할 것이라는 상상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그런 상상의 출발점은 1954년 3월 1일 미국이 실시한 15메가톤급 수소탄폭발실험과 1961년 10월 30일 소련이 실시한 50메가톤급 수소탄폭발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0메가톤급 수소탄은 일본 히로시마를 초토화한 핵폭탄보다 약 1,500배나 더 강한 핵폭발을 일으켰으니, 지구종말의 상상을 불러일으킬 만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수소탄은 너무 크고 무겁고, 폭발력이 너무 강해서 실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핵무기경쟁에 몰두한 소련과 미국이 과시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소련과 미국의 핵무기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핵전쟁론과 지구종말론을 뒤섞어놓은 상상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런 상상이 차츰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졌다.

핵전쟁공멸론이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지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개발하기 위한 군사과학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었다. 전술핵탄은 이미 냉전시기에 개발되었지만, 원형공산오차(CEP)가 10m 수준으로 크게 축소된 위성유도식 정밀유도장치가 등장한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자기들의 위성항법체계를 각각 완성한 2000년대의 일이다.

전술핵탄을 위성유도식 정밀유도장치와 결합시킨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핵전쟁공멸론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버릴 수 있는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21세기 핵전쟁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20세기식 대량살육전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핵전쟁이 대량살육전으로 되지 않을 것으로 예견하는 까닭은, 그것이 오랜 기간 격렬한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며 대량살육을 불러오는 재래식 전면전과 달리 전쟁의 운명을 한순간에 결정하는 정밀유도전술핵탄 선제타격으로 매우 신속히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개발한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 21세기 핵전쟁의 비밀이 있으며, 이 비밀을 알아야 공상적인 핵전쟁공멸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2013년 5월 18일부터 네 차례 신형 전술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하여 2014년 8월 14일 마침내 초정밀타격도를 지닌 신형 전술미사일개발을 완성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2014년 8월 25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한반도 군사정세 바꿔놓은 북의 전술로케트탄 18발’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조선과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도 물론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다. (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7416)

이처럼 조선과 미국이 각각 서로를 공격할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으므로, 그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 경우 승패여부는 정밀유도전술핵탄을 사용하는 전법에 의해 결정될 것이 분명하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강한 무력이 준비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무력을 사용하는 전법이다. 사격법을 모르는 사람이 들고 있는 총이 막대기만도 못한 것처럼, 위력적인 전법을 갖지 못한 군대에게는 방대한 무력이 한낱 무용지물로 되는 법이다. 

▲ <사진 2> 미국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대량화력집중타격에 동원되는 전형적인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이다. 위의 사진은 미해군이 북침전쟁연습에 동원하는 40,000t급 상륙강슴함 반홈리처드호의 모습을 촬영한 것인데, 항공모함만큼 커 보인다. 미국의 전법은 그런 식의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의존한다. 따라서 미국의 전법으로는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이 불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미국군의 허장성세 뒤에 감춰진 치명적 결함이다.     © 자주일보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의존하는 것은 미국의 약점

조선과 미국은 자기의 군력을 현대화하고 자기의 전법을 개발, 완성하는 데서도 각자 서로 다른 경로와 방식을 택했다.   

미국은 거대기동타격수단들에 전자화, 정보화, 정밀화된 성능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군력을 현대화하였는데, 배수량 100,000t급 초대형 항공모함, 적재량 120t급 전략폭격기, 배수량 40,000t급 초대형 상륙강습함, 수중배수량 18,000t급 전략잠수함이 그런 식으로 현대화된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이다. <사진 2>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그런 식으로 현대화된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갖춘 무장집단들이다.

거대기동타격수단으로 무장한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거대한 공룡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중생대에 번성하였으나 자연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진화과정에서 낙오하여 결국 멸종된 공룡처럼, 거대기동타격수단으로 무장한 미국군도 군사정세 및 전쟁방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정세 및 전쟁방식의 변화라는 것은,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은밀기동력, 불시기습력, 선제타격력이 도입된 무장장비의 전반적 변화를 뜻하는데, 미국의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상륙강습함 같은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은 전자화, 정보화, 정밀화된 성능을 도입하여 현대화되었다고 해도, 선제기습타격이 아니라 대량화력집중타격에 동원되는 것이다.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상륙강습함을 동원하면 적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은 불가능하게 된다. 미국의 주요무장장비들 가운데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에 적합한 것은 잠수함밖에 없는데, 미해군 잠수함은 전시에 독자적으로 작전하지 못하고 반드시 항모타격단에 배속되어 작전하게 되므로 잠수함도 불시기습과 선제타격은 하지 못한다.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국군이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2003년에 일어난 이라크전쟁에서 입증된 바 있다. 정찰조 침투, 증원군 투입, 공습, 상륙강습, 수도점령이 순차적으로 진행된 이라크전쟁은 미국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20세기형 낡은 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 미국군에 맞서는 러시아군과 중국인민해방군도 거대기동타격수단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군과 중국인민해방군도 항모타격단, 전략폭격비행단, 상륙강습단을 창설 또는 증강하기 위해 거대기동타격수단을 마련하는데 힘쓰고 있는데, 그런 노력은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가지고 미국의 거대기동타격수단에 맞서려는 대응전법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러시아군이 프랑스에서 강습상륙함을 수입하려는 것이나 중국인민해방군이 항공모함을 건조한 것은 그러한 대응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가지고 미국의 거대기동타격수단에 맞서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대응전략은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식 낡은 전법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독자적인 전법을 갖지 못하면, 미국과의 군사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과 정치군사적으로 대결하는 나라는 반드시 독자적인 전법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들 가운데서 미국과 맞설 독자적인 전법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조선에서는 자기의 독자적인 전법을 ‘주체전법’이라 부른다.

조선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주체전법’을 창시하였고, 6.25전쟁 중에 더욱 발전시켰다고 말하는데, 정전 이후 미국과의 최후결전을 준비하며 군력강화에 힘써온 지난 60여 년 동안 ‘주체전법’은 더욱 심화, 풍부화되어 오늘에는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3차원 기습공격을 핵전법에 도입한 것은 조선의 강점

조선에서 말하는 ‘주체전법’의 기본내용은 빨찌산전법과 정규군전법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조선에서 말하는 빨찌산전법이란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뜻하고, 정규군전법이란 대량화력집중타격을 뜻한다.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주체전법’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핵전법이다. 조선의 언론보도나 공개자료에는 핵전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핵무력을 가진 조선이 그것을 사용하는 전법을 개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 글에서는 핵전법이라는 말을 쓴다.

기존 핵강국들인 미국, 러시아, 중국은 대량화력집중타격을 각자 자기들의 핵전법에 도입하였지만, 신흥 핵강국인 조선은 대량화력집중타격은 물론이고 무징후선제기습타격까지 자기의 핵전법에 도입하였다. 조선은 무징후선제기습타격과 대량화력집중타격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21세기형 핵전법을 개발한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무징후기습은 미국의 정찰망에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매복하였다가 불시에 적의 급소를 기습한다는 뜻인데,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무징후상태에서 은밀히 기동하여 매복하였다가 불시에 선제타격을 하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인민군의 무징후기습은 지하발사기지에 매복한 전략군, 남진갱도에 매복한 핵배낭특수부대, 적진인근수역에 매복한 잠수함대, 초저공-무전파상태로 매복비행을 하는 요격기편대가 동시다발로 자기의 전투력을 총폭발시키는 지하-수중-공중 3차원 기습공격인 것이다. 그런 3차원 기습공격을 핵전법에 도입하여 완성한 것이 조선의 핵전법이다. 이처럼 정밀유도핵타격, 남진갱도핵타격, 수중매복핵타격, 공중매복핵타격으로 구성되는 조선의 핵전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사진 3> 조선의 핵전법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정밀유도핵타격, 남진갱도핵타격, 수중매복핵타격, 공중매복핵타격으로 전개되는 기습전법이다. 그것은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유기적으로 배합한 전투조법이 전개되는 독창적인 전술핵전법이다. 위의 사진은 2013년 7월 27일 평양에서 진행된 전승 60주년 경축 군사행진에 등장한 핵배낭부대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전시에 남진갱도를 통해 남하한 그들이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의 지하에 핵배낭을 설치해놓고 원격조종장치로 기폭하는 순간, 그 모든 기지들은 사라질 것이다.     © 자주일보

첫째,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초정밀핵탄미사일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불시에 초토화할 정밀유도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둘째,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는 핵배낭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을 지하핵폭발로 파괴할 남진갱도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사진 3>

셋째, 조선인민군 잠수함대는 수중발사핵탄미사일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미국의 전략거점들을 초토화할 수중매복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넷째,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초저공무전파비행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미국의 항모타격단과 상륙강습단을 격침시킬 공중매복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핵전법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조선의 언론에 공개된 조선인민군의 각종 군사활동을 분석, 고찰하여 <자주민보>에 여러 차례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논증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오늘 조선이 3차원 핵전법을 완성하였고, 그런 핵전법에 사용될 핵탄도 충분히 확보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과대평가가 아니다. 그 동안 조선의 언론보도들과 미국의 언론보도들 속에서 내가 찾아낸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심층정보들이 조선의 핵전법 개발과 핵탄 보유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조선의 핵전법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배합한 전투조법으로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안에 파괴하려는 전술핵전법이다. 전략핵전법은 따로 있다. 조선에서 말하는 전술핵전법의 ‘불벼락’을 맞고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미국이 전의를 상실하여 보복공격을 포기하고 항복한다면, 통일대전은 사실상 30분 만에 끝나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초단기속결전은 바로 그런 핵타격씨나리오에 바탕을 두고 성립된 새로운 전쟁개념이다.

 
미국의 보복공격기도 억제할 조선의 전략억제력

그런데 문제가 있다. 조선의 핵전법은 조선으로부터 선제타격을 입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는 조건에서만 전쟁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데,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조선을 선제타격하는 경우 조선이 미국에게 보복타격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를 거론하는데, 조선의 핵전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은 상황을 정반대로 오판하는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의 날, 조선이 3차원 동시다발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만에 파괴하더라도, 미국이 조선에게 보복타격을 하면, 통일대전은 미증유의 핵교전으로 전이되어 교전쌍방이 막심한 전쟁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핵전법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힘을 갖지 못하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려면 매우 강한 전략억제력을 가져야 한다.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의 날, 조선의 전술핵타격을 받고 아시아태평양전구의 군사기지를 잃은 미국이 조선에게 보복핵타격을 할 경우, 조선은 살아남을 수 있으나 미국은 조선의 전략공격을 받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미국이 깨달으면, 미국은 조선의 전술핵타격을 받더라도 감히 조선에게 보복핵타격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지난 냉전시기에 양대 핵강국이었던 소련과 미국은 각기 상대를 향해 메가톤급 전략핵탄을 겨누고 있었는데, 그런 핵대치상태를 유지하는 양국 관계에서 ‘상호확증파괴’를 두려워하는 ‘공포의 균형’이 조성되는 바람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공포의 균형’이란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결심할 의지와 담력을 갖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전쟁을 결심하는 국가지도자의 강한 의지와 담력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냉전시기의 ‘공포의 균형’은 그런 의지와 담력이 없는 두 나라 국가지도자의 공포심, 의지박약증, 담력결핍증에 의존하는 심리적 억제력이었으므로 심리현상만큼이나 가변적이고 불안정하였다.

그런데 조선의 핵전법은 조선이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심리적으로 억제하려는 냉전식 핵전법이 아니라,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물리적으로 억제하는 전법이다. 조선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강한 힘을 가졌을까?

이 문제에 대한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는,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추정은 미국을 ‘유일초강대국’이라고 믿어온 고정관념에서 흘러나온 의식의 분비물이다. 아래에 서술한 몇 가지 정보를 살펴보면,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그런 추정이 빗나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략억제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머릿속에 떠올리는데,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조선이 보유한 네 가지 전략억제수단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조선의 전략억제력은 다음과 같이 다종다양한 전략억제수단들에 의해 세계 최강 수준에 도달하였다.  

▲ <사진 4> 미국의 군사위성을 위성요격미사일로 파괴하는 것은 조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위력적인 전략억제력이다. 조선이 위성요격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여러 정보를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조선은 그런 전략억제력으로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고, 전쟁피해를 극소화한 초단기속결전을 전개하여 조국통일대전을 순식간에 끝내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극궤도에 진입한 위성요격미사일이 군사위성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을 그린 상상도다.     © 자주일보

첫째, 미국의 군사위성체계에 대한 조선의 미사일공격이다. 이것은 조선이 위성요격미사일(ASAT)을 기습적으로 발사하여 미국의 군사위성체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위성이 회전하는 궤도는 남극과 북극을 지나는 극궤도(polar orbit)다. 미국의 군사위성은 지구표면으로부터 약 800km 떨어진 극궤도 위에서 초속 7.5km로 회전하고 있으므로, 발사시각으로부터 3분 안에 1,350km를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조준발사하면 군사위성을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4>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한 발 앞섰다. 2007년 1월 11일 중국이 자행발사대(TEL)에서 발사한 위성공격미사일이 지구표면으로부터 865km 떨어진 극궤도를 회전하던 자국의 고장난 기상관측위성을 요격, 파괴하였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미국은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난 2008년 2월 14일 미사일순향함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극궤도를 회전하던 자국의 고장난 정찰위성을 요격, 파괴하였다.

당시 중국과 미국이 각각 발사한 위성요격미사일은 사거리가 1,500km인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이었는데, 사정권이 1,000~2,750km에 해당하는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은 조선에 무수히 많다. 중요한 문제는, 조선이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초속 7.5km로 비행하는 조그만 군사위성을 명중시킬 정밀요격능력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탄도미사일의 외기권 비행속도와 군사위성의 극궤도 회전속도는 서로 같으므로, 탄도미사일을 외기권에서 요격하는 기술을 가졌다면 군사위성을 극궤도에서 요격하는 기술도 가진 것이다. 조선이 2010년 10월 10일 군사행진에서 요격미사일을 탑재한 3축6륜 자행발사대와 위상배열레이더 탑재차량 등으로 구성된 ‘주체식 요격미싸일종합체’를 등장시킨 것은 초속 7.5km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맞추는 정밀요격능력을 가졌음을 과시한 것이다. 또한 조선이 2012년 12월 12일에 발사한 인공위성 광명성-3호 2호기가 극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은, 지상관제소에서 요격미사일을 조종하여 극궤도에 진입시키는 첨단기술을 가졌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조선이 군사위성을 요격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군사위성체계는 정찰위성, 신호정보위성, 해양정찰위성, 조기경보위성, 미사일발사탐지위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체계가 파괴되면, 조선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군사위성체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국의 전쟁수행력이 완전히 마비되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조선의 싸이버공격이다. <뉴시스> 2015년 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1998년 9월 조선이 500명의 전자전 전투원으로 편성된 싸이버전투부대를 창설하였는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 조선의 싸이버전투부대는 3,000명으로 증강되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4년 1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2년 8월 전략싸이버사령부 창설을 지시하였고, 조선인민군은 그 지시에 따라 6,000명으로 증강된 전략싸이버사령부를 창설하였다고 한다. 전략싸이버사령부 산하에 직속부대병력 1,200명과 기술지원병력 1,800명이 배속되었고, 연관단위들에 3,000명의 병력이 배속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존스합킨스대학교의 알렉산드르 만수로프(Alexandre Mansourov) 교수는 2014년 12월 2일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조선의 싸이버전투원이 5,900명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은 12,000명 수준일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싸이버전투부대의 특징은 “창은 날카롭고 방패는 튼튼하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18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루이스(James A. Lewis) 전략기술국장은 조선이 앞으로 5년 안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싸이버공격인 스턱스넷(Stuxnet)공격을 할 수 있다고 예견하면서, 스턱스넷공격에 대한 방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사전에 억제할 방법도 없기 때문에 미국의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이 조선의 싸이버공격에 완전히 노출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사진 5>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조선의 전략억제수단은 여러 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전자기파무기(EMP weapon)다. 조선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 중앙부 상공 480km에서 전략핵탄 한 발을 터뜨리면, 거기서 방출된 강력한 전자기파가 미국 본토 전역을 뒤덮으며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을 전면적으로 마비시키게 된다. 이것은 미국에게 회복하기 힘든 대재앙으로 될 것이다. 위의 사진은 공중핵폭발로 방출된 거대한 전자기파가 대도시를 뒤덮는 순간포착장면을 그린 상상도다. 전자기파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므로 실제상황에서는 위와 같은 장면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자주일보

셋째,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자기파(EMP)공격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제임스 울시(James Woolsey)와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특별대책국장인 피터 빈슨트 프라이(Peter Vencent Pry)는 2013년 5월 21일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릿저널(WSJ)>에 실은 ‘북조선은 미국에 어떻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적국의 전자기파공격이 미국의 전력공급체계와 사회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경우, 미국 전체 인구의 생존과 현대문명을 유지시켜주는 통신망, 교통망, 금융거래망, 식량 및 식수공급망이 모두 끊어져 대재앙에 빠지게 된다고 크게 우려한 바 있다. 2014년 4월 초 미국 국토안보부가 작성하여 미국 국방부에 제공한 보고서는 미국이 조선의 전자기파공격으로 파괴될 위험을 인정하였다. <사진 5> 

넷째,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략핵공격이다. 조선의 전략억제력인 군사위성체계공격, 싸이버공격, 전자기파공격은 직접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공격은 아니지만, 미국에게 치명상을 입힐 공격이다. 그런데 미국이 그런 치명적인 공격을 받고서도 항복하지 않을 경우, 조선은 인명을 살상하는 전략핵공격을 마지막으로 선택할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략핵공격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각지의 지하발사기지들에서 각개조준다탄두전략핵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의 전략거점들을 향해 쏘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미국 본토 해안에서 가까운 수중매복구역에서 대기하던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각개조준다탄두전략핵탄을 탑재한 수중발사미사일을 미국 본토의 전략거점들을 향해 쏘는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3월 29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심야에 최고사령부 작전실에서 진행된 작전회의에서 “아군 전략로케트들이 임의의 시각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작전전구 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 남조선주둔 미군기지들을 타격할 수 있게 사격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하”였고, “전략로케트들의 기술준비공정계획서에 최종 수표”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런 지시에 따라 2013년 4월 초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아시아태평양전구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전략거점인 괌(Guam)을 타격할 사거리 4,000km의 화성-10호를 동해안으로 이동하고 사격대기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조선의 지하발사기지와 수중매복구역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미국의 정찰위성은 화성-10호 한 발이 특별수송열차에 실려 동해안으로 이동한 ‘빙산의 일각’만 보았을 뿐이다.

지하발사기지와 수중매복구역에서 각종 핵탄미사일들이 사격대기태세를 취하여 초긴장된 시각이 한 초 한 초 흐르던 2013년 4월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 혁명무력의 무자비한 작전이 최종적으로 검토, 비준된 상태에 있음을 정식으로 백악관과 펜타곤에 통고”하였다. 

그런 통고가 나간 이후 지금까지 조선은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암시적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해왔다. 올해 조선인민군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배합한 전투조법으로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안에 파괴하려는 것인데, 미국이 무슨 수로 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공룡 후손 뭘로 보고…왜가리에 덤볐다가 되레 밥 된 족제비


조홍섭 2015. 03. 09
조회수 16028 추천수 0
쇠족제비, 이번엔 왜가리 사냥 나서…부리 물고 늘어져
늪으로 날아간 왜가리 익사 시도, 결국 긴 부리 속으로

wea1.JPG» 왜가리의 부리를 물고 매달린 쇠족제비. 차창 밖으로 찍은 사신이다.

영국의 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촬영한 쇠족제비와 유럽청딱따구리의 목숨을 건 싸움 모습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며 경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큰 몸집의 딱따구리를 공격한 쇠족제비의 배포와 등에 올라타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 근성은 작지만 매운 포식자의 본성을 잘 드러냈다.(■ 관련기사포식자 쇠족제비 태우고 청딱따구리 황당 비행)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을 눈치챈 쇠족제비가 공격을 포기함으로써 딱따구리는 포식자로부터 해방됐다. 둘 다 승부를 가리지 않고 공존한 셈인데, 사실 자연은 늘 그렇게 평화롭지는 않은 법이다.
 
최근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쇠족제비의 사냥 장면을 촬영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있었다. 이 작은 포식자도 역시 자기보다 큰 새를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사냥 대상이 제법 컸다.
 
wea2.JPG» 왜가리가 부리를 물고 늘어진 쇠족제비와 함께 늪으로 날아가고 있다.

30년 동안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끝으로 조류 탐사에 빠져있던 주노 포르검은 지난주 켄트에 있는 엘름리 국립자연보고구역에서 희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차창을 통해 왜가리 부리에 길쭉한 동물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3월6일그의 블로그에 올린 일련의 사진을 보면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쇠족제비는 덩치도 크고 사나운 포식자인 왜가리를 사냥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왜가리가 커다란 부리로 위협하자 족제비는 그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왜가리는 놀라서, 아니면 혼을 내 주려고 쇠족제비를 매단 채 늪으로 날아갔다. 성가신 족제비를 물에 빠뜨려 질식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wea3.JPG» 늪에서도 쇠족제비의 저항은 계속됐고 부리를 끈질기게 물고 버텼다.

wea4.JPG»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부리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쇠족제비.  

쇠족제비는 끝까지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결국 그의 몸은 왜가리의 부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공룡의 살아있는 후손은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쇠족제비의 용기는 지나친 것이었나.

wea5.JPG» 쇠족제비는 왜가리의 부리에 두 개의 상처를 남긴 채 먹이로 사라졌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주노 포르검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손석춘 칼럼] 언론은 왜 침묵하나… 명백한 조직적 범죄, 원세훈 유죄로 끝날 일인가
입력 : 2015-03-09  17:22:37   노출 : 2015.03.09  18:35:15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공안검사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진태의 개탄이다. 그는 국회 법사위에서 “과연 하나에 1억씩 하는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거를 누구한테 흘렸고 누가 그걸 과장했느냐가 더 중요한가”라고 야당 의원들을 훌닦았다. 같은 날 MBC와의 인터뷰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는 곳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전부 논이고 밭이다”며 “그러면 밖에다 버렸다고 하는 것하고 논두렁에 버렸다고 하는 게 그게 무슨 그렇게 차이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어떤가. 나는 ‘공안 검사’출신이 그 차이를 정말 모를까 궁금하다. “집사람이 밖에 버렸다고 하더라”라는 진술과 “논두렁에 버렸다”의 차이는 크다. 굳이 소통이론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 당시 국정원이 ‘심리전’을 강화한 사실만 주목해도 충분하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SBS의 ‘단독보도’ 이후 그 진술이 얼마나 ‘노무현 조롱’을 불러왔고 파국으로 몰아갔는가를 톺아볼 일이다. 
하지만 ‘공안검사 의원’과 시국 인식을 전적으로 같이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법사위에서 문제의 발언을 하며 “국정원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부르댔다. 그렇다. 나는 국정원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저 집권여당 ‘공안의원’ 말에 십분 공감한다. 어찌 우습게 볼 수 있단 말인가. 공안의원이 국회에서 그렇게 주장한 날, 나는 경향신문에 국가정보원이 ‘국가전복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관련기사 : 경향신문 / 누가 내 생각을 조종한다면]
공통점은 더 있다.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가 그것이다. 정말이지 길 지나가는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 2015년 2월 25일 경향신문 2면 기사

 
‘논두렁 시계’가 상징하듯이 심리전은 고도의 세련된 ‘언어 마술’이다. 만일 전직 대통령의 인격을 파탄 내는 여론을 조성하려고 국정원이 수사검사들의 반대를 묵살한 채 언론에 흘린 게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심리전은 국민의 생각을 조종할 단계에 이미 와 있었다고 보아도 결코 과장된 진단이 아니다. 
더구나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려는 올곧은 검사들은 곰비임비 옷을 벗거나 좌천당했다. 하지만 그 부실한 자료만으로도 고법은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을 법정 구속했다. 
그럼에도 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나라가 사뭇 조용하다. 민주공화국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정말 괜찮을까? 명토박아둔다. 나는 국정원이 대한민국 정보기관으로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분에 성실한 요원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원세훈과 그 일당이 저지른 대선개입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작게는 국정원을, 크게는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뒤흔든 반국가사범들이다. 기실 그들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마땅한 대상이다.
그런데 보라. 신문과 방송 대다수는 짐짓 모르쇠다. 야당의 ‘분노’또한 어쩐지 시늉뿐이다. 왜 그럴까? 저널리즘 이론에 밑절미 두고 설명할 수 있다. 무릇 어떤 사안이든 초기에 어떤 정보가 제공되느냐에 따라 공중의 태도가 완고하게 형성된다. 20세기 후반,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권에 민감했던 지미 카터 정권에서 언론 쪽 책임자의 말은 시사적이다.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호딩 카터는 “만약 심각한 도전 없이 3일 정도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안의 맥락을 규정하고 그 사안에 대한 공중의 인식도 통제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카터 정권이 그 수준이라면, 다른 나라, 다른 정권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을지 짐작해볼 일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결과 중간발표로 초기에 ‘사실 무근’이 되었고, 공중의 태도 또한 그렇게 형성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취임식 이후에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공중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권력과 손잡은 대다수 언론이 진실을 은폐하는 범죄에 가담했다. 야당은 ‘대선 불복’의 틀에 갇혀 정당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그렇다. 대다수 국민은 지금 그 문제를 원점에서 바라보는 데 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언론인이나 학자들마저 침묵해도 좋을까.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통령 자리를 만끽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사실심 아닌 법률심을 하는 대법원에 지금 어떤 ‘로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감시는 누가하고 있는가?
한 사람의 학자로서 나는 진실을 공부하는 대학생들 앞에 이 엄청난 거짓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다. 이 땅은 지금 학문의 자유조차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다. 우국충정으로 쓴다.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20gil@hanmail.ne   

며칠새 내가 TV에... '종북 마녀사냥'의 시작


15.03.09 20:33l최종 업데이트 15.03.09 20:33l


지난해 말 통일 토크콘서트로 정부·언론 '종북몰이'의 중심에 서게 돼 강제출국당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2011년 10월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과 호기심의 보따리를 싼 채 남편과 함께 북녘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나와 똑같은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눈물짓고, 미소도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 일란성 쌍둥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려움이 발동하기는커녕 낯설었던 형제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돌아왔다.

북녘 동포들은 순박하고 인정 넘치며, 지혜롭고 성실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내 동포들은 분단의 아픔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 또한 우리 남녘의 사랑스러운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요, 내 겨레였다.

북한 여행을 통해 나는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염원하게 됐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인가. 동시에 조국이 분단돼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해야 했다. 나의 북한 여행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다. 그 후, 북녘 동포들과 나눈 마음과 정을 내 사랑하는 모국 한국의 동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나는 2012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북한 여행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통일 조국은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이 돼 누리고 살아갈 조국이므로, 그리고 조국의 통일은 보수-진보 관계없이 우리 한민족 모두의 사명이며 공의의 실현이므로, 나는 강연 주최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나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흔쾌히 찾아갔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육체적·경제적 그리고 내 개인적 삶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모국, 한국 방문 역시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 돼버렸다.

황선 그리고 '통일의 꽃' 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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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 신은미

2014년 8월께로 기억한다. '6·15 남측위원회'라는 단체로부터 "2014년 9월에 서울에 와서 '통일 토크콘서트'를 할 수 있겠느냐"라는 초청을 받았다. 나는 이 단체로부터 2014년 4월 초청을 받고 전국순회 강연을 한 적이 있어 승낙하고 싶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14년 11·12월, 한국에서 조카의 결혼, 조카 손녀의 돌잔치 등 집안 행사가 있었고, 또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북한에 갈 계획이었다. 평양에 있는 수양가족도 만날 겸 최근 개장했다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 "11월과 12월 사이라면 기꺼이 응하겠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후일 소위 '종북콘서트'라고 알려진 '통일 토크콘서트'에 참가하게 된 연유다.

주최 측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토크콘서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한 사람은 만난 적은 두어 번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이로 이름은 황선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만난 적은 전혀 없지만 언론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현직 국회의원 임수경씨였다.

내가 임수경씨에 대해 처음 들은 때는 그녀가 북한에 불법 입국해 평양서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1989년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학위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북 뉴스를 듣고 보수적인 성향의 나는 그녀를 꽤나 싫어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민족과 통일에 관심을 두고 난 뒤부터는 임수경 의원을 존경하게 됐고, 한때 그녀를 증오했던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 낯을 붉히기도 했다. 아! '통일의 꽃'이라는 임수경 의원과 함께 토크콘서트를 하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주최 측은 '통일 토크콘서트'를 내 스케줄에 맞춰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남편과 나는 북한 비자 신청과 함께 비행기 일정을 잡았다. 로스앤젤레스→인천, 인천→심양, 심양→평양, 평양→북경, 북경→인천, 인천→로스앤젤레스의 복잡한 일정이었다.

나는 서울 친척들에게 줄 선물과 북한의 수양가족, 그중에서도 태어난 지 한 살이 된 수양손자 주의성(첫째 수양딸 김설경의 아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니느라 매일 몇 시간씩을 백화점에서 보냈다. 그래도 북녘동포들에게는 한국산 제품이 쓰기가 좋겠지만, 혹시 평양 순안공항에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표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수양손자 볼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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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수양딸 김설경, 수양손자 주의성, 수양사위 주혁남
ⓒ 김설경

한참 여행 준비를 하고 있던 중 '북한이 에볼라 전염을 막기 위해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불허한다'는 뜻밖의 뉴스를 들었다. 나는 뉴욕의 유엔본부에 있는 북한 대표부에 연락해 '혹시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가해줄 수 없느냐'라고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부득이 평양에 가야 한다면 허락해주겠으나 평양 공항 도착 후 21일간 격리 수용된 뒤 이상이 없으면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평양 출발 예정일인 2014년 11월 26일 전에 북한 입국 불허조치가 해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준비를 계속했다.

임수경 의원이 말한 토크콘서트
임수경 의원은 통일 토크콘서트 참석 계기에 대해 지난 1월 15일 경찰 출석 당시 "공적인 일로 잠깐 조계사에 들렀다가 토크콘서트가 진행되는 걸 보고 참석했다"라고 밝혔다. 또 "행사 기획단계에서 (주최 측이) 출연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라고 밝혔다(관련기사 : 임수경 "정치적 공안몰이... 3년 전 일 소환 부적절"). - 편집자 주
주최 측에서도 약간의 변경사항을 알려왔다. '통일 토크콘서트'의 일원으로 참석하려던 임수경 의원이 계획을 바꿔 '깜짝 게스트'만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나는 존경하는 임수경 의원과 토크콘서트를 내내 함께하지 못하게 돼 실망했지만, 그래도 그녀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잠깐이나마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서울에서의 일정은 상당히 촘촘히 짜여 있었다. 내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로 한 날짜는 11월 19일이었는데, 조계사에서 열리는 첫 번째 토크콘서트가 같은 날 열릴 정도였다. 그만큼 일정이 빡빡했다.

내가 하는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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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 신은미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서울의 친척들 그리고 '통일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를 흥분시킨 것은, 자주 보는 서울의 친척들이나  토크콘서트가 아니었다. 북한의 수양가족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토크콘서트 장소인 조계사로 향했다. 2014년 4월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를 본 사람이 바로 황선씨였다. 아마 그때가 황선씨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은 내용이다. 강연의 요지는 '남과 북의 동포들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이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르며 이질감의 골은 얼마나 깊을까'라는 호기심을 갖고 첫 북한 여행을 한 뒤, 이질감은커녕 '이들은 어쩌면 우리와 이렇게 같을까'라고 느낀 내 경험을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많은 청중들이 깜짝 놀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난 6~7년간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일부 언론사나 TV 방송이 내보내는 글·영상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북한 전역에는 시장의 진흙 바닥에서 강냉이 알을 주워 먹는 '꽃제비'가 들끓고, 북녘 동포들이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다 총탄에 맞아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들. 여기에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탈북 동포들이 가세한다. 마치 북한의 동포들은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며 북한은 인간성이란 찾아보기 힘든 무지막지한 사회라고 '증언'한다. 북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말을 하니 남녘의 동포들은 울분을 터트린다.

북한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청중들이 '그것이 북한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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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던 '통일 토크콘서트' 홍보 웹자보
ⓒ 6.15남측위 서울본부

2014년 11월 19일 조계사에서 있었던 '통일 토크콘서트'도 평소에 내가 강연 중 하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동강 맥주 맛이 좋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녹조라떼'가 돼버린 남녘의 강물을 유머를 섞어 비유하며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 는 등. 예정대로 임수경 의원이 깜짝 게스트로 나타나 마이크를 잡으니 청중들은 큰 박수로 그녀를 환영했다.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첫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 그 다음 날인지 아니면 이틀 뒤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했다는 자막과 함께 내 얼굴이 여러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나오는 게 아닌가!

나에 대한 '마녀사냥'은 이렇게 시작됐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종북? 극우? 김기종을 바라보는 5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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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대체 누구일까?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이후 그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의 과거, 발언, 행동, 그가 소유하고 있던 책들까지 분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선은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그를 ‘종북주의자’이라 부르고, 새정치연합은 ‘극단주의자’라고 표현한다. 누군가는 ‘민족주의자’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예 ‘정신병자’라고 지칭한다. 그가 ‘외톨이’였다는 증언도 소개되고 있다.
분명한 건, 그에게 단 하나의 ‘딱지’를 붙이는 건 허망한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김기종씨를 바라보는 5가지 시선을 모아봤다. 어쩌면 김씨의 ‘정체’는 엇갈리고 겹치는 이 시선들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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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종씨가 살인미수와 외교사절폭행·업무방해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 '종북주의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6일 "김기종씨 개인은 종북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여러가지 전력, 현장에서의 활동 및 구호 등을 보면 종북주의자임은 분명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뉴시스 3월6일)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이 9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를 '종북 주의자'라고 비판하며 새정치민주연합과 무슨 관계인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뉴시스 3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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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생운동에 몸 담았던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일보가 익명으로 인용한 김씨의 한 대학동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한 대학 동문은 “(김씨는) 20년 전부터 반미·반일·친북 성향이 강했던 주사파”라며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할 때 본적을 독도로 옮기며 일본 규탄 운동을 하더니 북한에 다녀온 뒤부턴 본격적으로 반미 운동에 나섰다”고 했다. (조선일보 3월6일)
통일부는 김씨가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8차례 북한에 다녀왔다고 밝혔다. ‘민족화합운동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와 함께 ‘나무심기’ 활동을 목적으로 방북했다는 것.
2. 극단주의자
김씨를 극단주의자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물론 ‘테러’다.
진중권 교수는 5일 자신의 트위터에 “IS에게는 '종교', 일베 폭탄테러 고교생에게는 '국가', 과도 테러 김기종씨에게는 '민족'… 이 세 가지 형태의 극단주의 바탕에는 실은 동일한 문제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뉴스1 3월5일)
이번 사건은 서구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도 일정 부분 유사성이 나타난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호주 카페 인질극 사건 등의 경우, 대부분 현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사회 분위기와 경제적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차이점은 그 배경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종교가 아닌 이념 대립이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국민일보 3월6일)
5일 발생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는 극단주의가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충격파가 크다. 그는 주장 관철을 위해 죽기 살기로 상대를 헐뜯고 끝내는 극단적 선택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일보 3월7일)

3. 민족주의자
김씨가 독도수호운동 등을 하는 문화단체를 운영해왔으며, 그가 반미시위에 참가해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 천황을 죽여야 한다”고 언급하거나 스스로를 ‘독립운동가’라고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민족주의의 혐의를 찾는 시선도 있다.
외신들 중에는 김씨를 ‘내셔널리스트(nationalist; 민족주의자)’로 표현한 곳이 적지 않았다.뉴욕타임스는 김씨를 “민족주의 활동가(nationalist activist)”라고 표현했으며, CNN은 “민족주의 반미 활동가(nationalist and anti-U.S. protests)”로 그를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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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7월 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던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진 뒤 강연장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는 김기종씨. ⓒ연합뉴스
해외에서 민족주의는 흔히 ‘극우’와 동의어로 쓰인다. 유럽연합 탈퇴와 이민자 배척 등을 주장하는 유럽 정당들은 예외 없이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도 ‘극우 민족주의’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김씨의 경우는 어떨까. 김씨의 민족주의는 극단주의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경찰이 수사중이지만, 그가 이날 피습 현장에 들고 간 유인물, 검거 뒤 발언, 과거 행적 등을 볼 때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적 범행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씨는 강연장에 가져간 유인물에서 ‘남북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해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주장에는 마냥 침묵한다’ ‘광복 70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3월5일)
BBC 역시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김씨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행동을 벌여 온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4. 정신병자
보수, 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언론에는 김씨가 평소 불안한 정신상태를 보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저렇게 일낼 줄 알았다. 한마디로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씨에 대한 주변인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데일리안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용의자 김기종씨(55)에 대해 이웃과 지인들은 김씨가 “평소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일삼았다”고 입을 모았다.
90년대 초부터 전통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복원 작업을 함께 했다는 A씨는 김씨에 대해 “몸과 정신이 많이 아프다”며 “특히 정신분열증세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3월6일)
김씨가 지난 1월말 아이돌그룹 ‘엑소(EXO)’ 공연장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당시 그를 조사했던 수사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수사 관계자는 “김씨는 평소에도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홍보 책자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나눠주고,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며 “명문대를 졸업했다는데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3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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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종 씨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휠체어에 탄 채 진료를 받기 위해 차량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김씨는 2007년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기도했다. ‘우리마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것. 이 사건의 간략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88년 8월17일 새벽, 김씨가 운영하던 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했다. 괴한들은 이 단체 회원들을 폭행하고 달아났다. 보도에 따르면, 괴한들은 여학생을 성폭행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들은 군이나 정보기관 같은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사건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프레시안 칼럼에서 “분신 시도 이후 그의 피해의식은 피해망상으로 악화되었고, 이는 과대망상과 맞물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한편 당시 사건을 취재하며 김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김창균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칼럼에서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전했다.
김기종은 “우리마당이 재야 문화단체로는 최초로 통일마당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계획을 세운 직후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극우 세력의 테러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김기종이 했던 말과 180도 달랐다. 거물급 재야인사로 떠오른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조선일보 3월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씨의 변호인 측은 “필요에 따라서는 (김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5. 외톨이
김씨가 자신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가 사회적으로는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또 가족과 친구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외톨이’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음은 사건 직후 SBS가 독도향우회 박남근 수석부회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2006년 김씨와 함께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인물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김 씨가 ‘내 생활을 내려놓고 시민운동에 몸을 바쳤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며 ‘언론에는 정치나 명예를 좇는 사람만 나오고 나처럼 순수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관심을 못 받는다’고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졌을 때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것을 오히려 기분 좋아하면서 ‘처벌을 받았지만 독립운동을 하듯이 국가를 위해 일한 것인 만큼 떳떳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SBS 3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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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공격한 김기종 씨가 대표로 활동하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진보 성향 문화운동 단체 우리마당. ⓒ연합뉴스
그가 대학생 시절부터 벌여왔던 활동은 대체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김씨의 활동은 그의 궁핍한 처지와 맞물려 극단적인 폭력 행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표면적으로 그는 “전쟁훈련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이면에는 실패한 시민운동가의 ‘악심(惡心)’이 놓여 있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김씨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활동을 보였지만 최근엔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웠다. 독도지킴이 등의 활동은 ‘반짝 주목’을 받았으나 큰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다. (국민일보 3월6일)
공정식 KOVA 범죄연구소장은 “김씨가 키리졸브 훈련 중단, 전쟁 중단 같은 사상적 구호를 외치고는 있지만 반일과 반미를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며 “자신을 탄압의 피해자로 합리화하고,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과격하게 발현된 ‘외로운 늑대(Lone Wolf)’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3월7일)
김씨는 10여년 이상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부모 형제와도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1년에 1~2차례씩은 광주에서 만났는데 최근에는 교류가 없어 근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창생 B씨도 “동창들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아 기종이의 근황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문화운동을 한 뒤로는 친구들과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3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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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열린 김기종 수사관련 브리핑에서 경찰관계자가 압수서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런 다양한 시선과는 무관하게 김기종씨에 대한 수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9일 브리핑에서 김씨가 “김일성은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씨의 방북 전력과 김정일 분향소 설치 사실, 북한 관련 토론회 개최 사실 등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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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미 대사 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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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