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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9일 월요일
승산은 그들의 전법에 있다
공룡 후손 뭘로 보고…왜가리에 덤볐다가 되레 밥 된 족제비
쇠족제비, 이번엔 왜가리 사냥 나서…부리 물고 늘어져
늪으로 날아간 왜가리 익사 시도, 결국 긴 부리 속으로
영국의 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촬영한 쇠족제비와 유럽청딱따구리의 목숨을 건 싸움 모습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며 경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큰 몸집의 딱따구리를 공격한 쇠족제비의 배포와 등에 올라타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 근성은 작지만 매운 포식자의 본성을 잘 드러냈다.(■ 관련기사: 포식자 쇠족제비 태우고 청딱따구리 황당 비행)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을 눈치챈 쇠족제비가 공격을 포기함으로써 딱따구리는 포식자로부터 해방됐다. 둘 다 승부를 가리지 않고 공존한 셈인데, 사실 자연은 늘 그렇게 평화롭지는 않은 법이다.
최근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쇠족제비의 사냥 장면을 촬영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있었다. 이 작은 포식자도 역시 자기보다 큰 새를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사냥 대상이 제법 컸다.
30년 동안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끝으로 조류 탐사에 빠져있던 주노 포르검은 지난주 켄트에 있는 엘름리 국립자연보고구역에서 희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차창을 통해 왜가리 부리에 길쭉한 동물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3월6일그의 블로그에 올린 일련의 사진을 보면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쇠족제비는 덩치도 크고 사나운 포식자인 왜가리를 사냥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왜가리가 커다란 부리로 위협하자 족제비는 그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왜가리는 놀라서, 아니면 혼을 내 주려고 쇠족제비를 매단 채 늪으로 날아갔다. 성가신 족제비를 물에 빠뜨려 질식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쇠족제비는 끝까지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결국 그의 몸은 왜가리의 부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공룡의 살아있는 후손은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쇠족제비의 용기는 지나친 것이었나.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주노 포르검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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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새 내가 TV에... '종북 마녀사냥'의 시작
15.03.09 20:33l최종 업데이트 15.03.09 20:33l
| 지난해 말 통일 토크콘서트로 정부·언론 '종북몰이'의 중심에 서게 돼 강제출국당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
북녘 동포들은 순박하고 인정 넘치며, 지혜롭고 성실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내 동포들은 분단의 아픔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 또한 우리 남녘의 사랑스러운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요, 내 겨레였다.
북한 여행을 통해 나는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염원하게 됐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인가. 동시에 조국이 분단돼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해야 했다. 나의 북한 여행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다. 그 후, 북녘 동포들과 나눈 마음과 정을 내 사랑하는 모국 한국의 동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나는 2012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북한 여행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통일 조국은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이 돼 누리고 살아갈 조국이므로, 그리고 조국의 통일은 보수-진보 관계없이 우리 한민족 모두의 사명이며 공의의 실현이므로, 나는 강연 주최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나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흔쾌히 찾아갔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육체적·경제적 그리고 내 개인적 삶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모국, 한국 방문 역시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 돼버렸다.
황선 그리고 '통일의 꽃' 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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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 |
| ⓒ 신은미 | |
2014년 8월께로 기억한다. '6·15 남측위원회'라는 단체로부터 "2014년 9월에 서울에 와서 '통일 토크콘서트'를 할 수 있겠느냐"라는 초청을 받았다. 나는 이 단체로부터 2014년 4월 초청을 받고 전국순회 강연을 한 적이 있어 승낙하고 싶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14년 11·12월, 한국에서 조카의 결혼, 조카 손녀의 돌잔치 등 집안 행사가 있었고, 또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북한에 갈 계획이었다. 평양에 있는 수양가족도 만날 겸 최근 개장했다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 "11월과 12월 사이라면 기꺼이 응하겠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후일 소위 '종북콘서트'라고 알려진 '통일 토크콘서트'에 참가하게 된 연유다.
주최 측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토크콘서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한 사람은 만난 적은 두어 번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이로 이름은 황선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만난 적은 전혀 없지만 언론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현직 국회의원 임수경씨였다.
내가 임수경씨에 대해 처음 들은 때는 그녀가 북한에 불법 입국해 평양서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1989년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학위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북 뉴스를 듣고 보수적인 성향의 나는 그녀를 꽤나 싫어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민족과 통일에 관심을 두고 난 뒤부터는 임수경 의원을 존경하게 됐고, 한때 그녀를 증오했던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 낯을 붉히기도 했다. 아! '통일의 꽃'이라는 임수경 의원과 함께 토크콘서트를 하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주최 측은 '통일 토크콘서트'를 내 스케줄에 맞춰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남편과 나는 북한 비자 신청과 함께 비행기 일정을 잡았다. 로스앤젤레스→인천, 인천→심양, 심양→평양, 평양→북경, 북경→인천, 인천→로스앤젤레스의 복잡한 일정이었다.
나는 서울 친척들에게 줄 선물과 북한의 수양가족, 그중에서도 태어난 지 한 살이 된 수양손자 주의성(첫째 수양딸 김설경의 아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니느라 매일 몇 시간씩을 백화점에서 보냈다. 그래도 북녘동포들에게는 한국산 제품이 쓰기가 좋겠지만, 혹시 평양 순안공항에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표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수양손자 볼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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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수양딸 김설경, 수양손자 주의성, 수양사위 주혁남 | |
| ⓒ 김설경 | |
한참 여행 준비를 하고 있던 중 '북한이 에볼라 전염을 막기 위해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불허한다'는 뜻밖의 뉴스를 들었다. 나는 뉴욕의 유엔본부에 있는 북한 대표부에 연락해 '혹시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가해줄 수 없느냐'라고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부득이 평양에 가야 한다면 허락해주겠으나 평양 공항 도착 후 21일간 격리 수용된 뒤 이상이 없으면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평양 출발 예정일인 2014년 11월 26일 전에 북한 입국 불허조치가 해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준비를 계속했다.
| 임수경 의원이 말한 토크콘서트 |
| 임수경 의원은 통일 토크콘서트 참석 계기에 대해 지난 1월 15일 경찰 출석 당시 "공적인 일로 잠깐 조계사에 들렀다가 토크콘서트가 진행되는 걸 보고 참석했다"라고 밝혔다. 또 "행사 기획단계에서 (주최 측이) 출연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라고 밝혔다(관련기사 : 임수경 "정치적 공안몰이... 3년 전 일 소환 부적절"). - 편집자 주 |
서울에서의 일정은 상당히 촘촘히 짜여 있었다. 내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로 한 날짜는 11월 19일이었는데, 조계사에서 열리는 첫 번째 토크콘서트가 같은 날 열릴 정도였다. 그만큼 일정이 빡빡했다.
내가 하는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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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 |
| ⓒ 신은미 | |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서울의 친척들 그리고 '통일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를 흥분시킨 것은, 자주 보는 서울의 친척들이나 토크콘서트가 아니었다. 북한의 수양가족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토크콘서트 장소인 조계사로 향했다. 2014년 4월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를 본 사람이 바로 황선씨였다. 아마 그때가 황선씨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은 내용이다. 강연의 요지는 '남과 북의 동포들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이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르며 이질감의 골은 얼마나 깊을까'라는 호기심을 갖고 첫 북한 여행을 한 뒤, 이질감은커녕 '이들은 어쩌면 우리와 이렇게 같을까'라고 느낀 내 경험을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많은 청중들이 깜짝 놀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난 6~7년간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일부 언론사나 TV 방송이 내보내는 글·영상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북한 전역에는 시장의 진흙 바닥에서 강냉이 알을 주워 먹는 '꽃제비'가 들끓고, 북녘 동포들이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다 총탄에 맞아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들. 여기에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탈북 동포들이 가세한다. 마치 북한의 동포들은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며 북한은 인간성이란 찾아보기 힘든 무지막지한 사회라고 '증언'한다. 북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말을 하니 남녘의 동포들은 울분을 터트린다.
북한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청중들이 '그것이 북한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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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던 '통일 토크콘서트' 홍보 웹자보 | |
| ⓒ 6.15남측위 서울본부 | |
2014년 11월 19일 조계사에서 있었던 '통일 토크콘서트'도 평소에 내가 강연 중 하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동강 맥주 맛이 좋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녹조라떼'가 돼버린 남녘의 강물을 유머를 섞어 비유하며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 는 등. 예정대로 임수경 의원이 깜짝 게스트로 나타나 마이크를 잡으니 청중들은 큰 박수로 그녀를 환영했다.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첫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 그 다음 날인지 아니면 이틀 뒤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했다는 자막과 함께 내 얼굴이 여러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나오는 게 아닌가!
나에 대한 '마녀사냥'은 이렇게 시작됐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종북? 극우? 김기종을 바라보는 5가지 시선
허핑턴포스트코리아 | 작성자 허완
게시됨: 업데이트됨: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대체 누구일까?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이후 그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의 과거, 발언, 행동, 그가 소유하고 있던 책들까지 분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선은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그를 ‘종북주의자’이라 부르고, 새정치연합은 ‘극단주의자’라고 표현한다. 누군가는 ‘민족주의자’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예 ‘정신병자’라고 지칭한다. 그가 ‘외톨이’였다는 증언도 소개되고 있다.
분명한 건, 그에게 단 하나의 ‘딱지’를 붙이는 건 허망한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김기종씨를 바라보는 5가지 시선을 모아봤다. 어쩌면 김씨의 ‘정체’는 엇갈리고 겹치는 이 시선들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김기종씨가 살인미수와 외교사절폭행·업무방해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 '종북주의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6일 "김기종씨 개인은 종북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여러가지 전력, 현장에서의 활동 및 구호 등을 보면 종북주의자임은 분명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뉴시스 3월6일)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이 9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를 '종북 주의자'라고 비판하며 새정치민주연합과 무슨 관계인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뉴시스 3월9일)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생운동에 몸 담았던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일보가 익명으로 인용한 김씨의 한 대학동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한 대학 동문은 “(김씨는) 20년 전부터 반미·반일·친북 성향이 강했던 주사파”라며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할 때 본적을 독도로 옮기며 일본 규탄 운동을 하더니 북한에 다녀온 뒤부턴 본격적으로 반미 운동에 나섰다”고 했다. (조선일보 3월6일)
통일부는 김씨가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8차례 북한에 다녀왔다고 밝혔다. ‘민족화합운동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와 함께 ‘나무심기’ 활동을 목적으로 방북했다는 것.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발생 직후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 극단주의자
김씨를 극단주의자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물론 ‘테러’다.
진중권 교수는 5일 자신의 트위터에 “IS에게는 '종교', 일베 폭탄테러 고교생에게는 '국가', 과도 테러 김기종씨에게는 '민족'… 이 세 가지 형태의 극단주의 바탕에는 실은 동일한 문제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뉴스1 3월5일)
이번 사건은 서구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도 일정 부분 유사성이 나타난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호주 카페 인질극 사건 등의 경우, 대부분 현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사회 분위기와 경제적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차이점은 그 배경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종교가 아닌 이념 대립이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국민일보 3월6일)
5일 발생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는 극단주의가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충격파가 크다. 그는 주장 관철을 위해 죽기 살기로 상대를 헐뜯고 끝내는 극단적 선택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일보 3월7일)
3. 민족주의자
김씨가 독도수호운동 등을 하는 문화단체를 운영해왔으며, 그가 반미시위에 참가해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 천황을 죽여야 한다”고 언급하거나 스스로를 ‘독립운동가’라고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민족주의의 혐의를 찾는 시선도 있다.
외신들 중에는 김씨를 ‘내셔널리스트(nationalist; 민족주의자)’로 표현한 곳이 적지 않았다.뉴욕타임스는 김씨를 “민족주의 활동가(nationalist activist)”라고 표현했으며, CNN은 “민족주의 반미 활동가(nationalist and anti-U.S. protests)”로 그를 묘사했다.
지난 2010년 7월 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던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진 뒤 강연장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는 김기종씨. ⓒ연합뉴스
해외에서 민족주의는 흔히 ‘극우’와 동의어로 쓰인다. 유럽연합 탈퇴와 이민자 배척 등을 주장하는 유럽 정당들은 예외 없이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도 ‘극우 민족주의’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김씨의 경우는 어떨까. 김씨의 민족주의는 극단주의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경찰이 수사중이지만, 그가 이날 피습 현장에 들고 간 유인물, 검거 뒤 발언, 과거 행적 등을 볼 때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적 범행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김씨는 강연장에 가져간 유인물에서 ‘남북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해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주장에는 마냥 침묵한다’ ‘광복 70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3월5일)
BBC 역시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김씨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행동을 벌여 온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4. 정신병자
보수, 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언론에는 김씨가 평소 불안한 정신상태를 보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저렇게 일낼 줄 알았다. 한마디로 과대망상증 환자이다.”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씨에 대한 주변인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데일리안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용의자 김기종씨(55)에 대해 이웃과 지인들은 김씨가 “평소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일삼았다”고 입을 모았다.90년대 초부터 전통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복원 작업을 함께 했다는 A씨는 김씨에 대해 “몸과 정신이 많이 아프다”며 “특히 정신분열증세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3월6일)
김씨가 지난 1월말 아이돌그룹 ‘엑소(EXO)’ 공연장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당시 그를 조사했던 수사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수사 관계자는 “김씨는 평소에도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홍보 책자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나눠주고,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며 “명문대를 졸업했다는데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3월6일)
김기종 씨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휠체어에 탄 채 진료를 받기 위해 차량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김씨는 2007년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기도했다. ‘우리마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것. 이 사건의 간략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88년 8월17일 새벽, 김씨가 운영하던 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했다. 괴한들은 이 단체 회원들을 폭행하고 달아났다. 보도에 따르면, 괴한들은 여학생을 성폭행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들은 군이나 정보기관 같은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사건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프레시안 칼럼에서 “분신 시도 이후 그의 피해의식은 피해망상으로 악화되었고, 이는 과대망상과 맞물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한편 당시 사건을 취재하며 김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김창균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칼럼에서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전했다.
김기종은 “우리마당이 재야 문화단체로는 최초로 통일마당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계획을 세운 직후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극우 세력의 테러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김기종이 했던 말과 180도 달랐다. 거물급 재야인사로 떠오른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조선일보 3월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씨의 변호인 측은 “필요에 따라서는 (김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5. 외톨이
김씨가 자신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가 사회적으로는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또 가족과 친구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외톨이’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음은 사건 직후 SBS가 독도향우회 박남근 수석부회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2006년 김씨와 함께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인물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김 씨가 ‘내 생활을 내려놓고 시민운동에 몸을 바쳤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며 ‘언론에는 정치나 명예를 좇는 사람만 나오고 나처럼 순수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관심을 못 받는다’고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이 때문에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졌을 때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것을 오히려 기분 좋아하면서 ‘처벌을 받았지만 독립운동을 하듯이 국가를 위해 일한 것인 만큼 떳떳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SBS 3월5일)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공격한 김기종 씨가 대표로 활동하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진보 성향 문화운동 단체 우리마당. ⓒ연합뉴스
그가 대학생 시절부터 벌여왔던 활동은 대체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김씨의 활동은 그의 궁핍한 처지와 맞물려 극단적인 폭력 행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표면적으로 그는 “전쟁훈련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이면에는 실패한 시민운동가의 ‘악심(惡心)’이 놓여 있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김씨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활동을 보였지만 최근엔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웠다. 독도지킴이 등의 활동은 ‘반짝 주목’을 받았으나 큰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다. (국민일보 3월6일)
공정식 KOVA 범죄연구소장은 “김씨가 키리졸브 훈련 중단, 전쟁 중단 같은 사상적 구호를 외치고는 있지만 반일과 반미를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며 “자신을 탄압의 피해자로 합리화하고,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과격하게 발현된 ‘외로운 늑대(Lone Wolf)’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3월7일)
김씨는 10여년 이상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부모 형제와도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1년에 1~2차례씩은 광주에서 만났는데 최근에는 교류가 없어 근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창생 B씨도 “동창들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아 기종이의 근황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문화운동을 한 뒤로는 친구들과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3월6일)
8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열린 김기종 수사관련 브리핑에서 경찰관계자가 압수서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런 다양한 시선과는 무관하게 김기종씨에 대한 수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9일 브리핑에서 김씨가 “김일성은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씨의 방북 전력과 김정일 분향소 설치 사실, 북한 관련 토론회 개최 사실 등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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