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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월 미국 대선에 공화당을 대표해 등판할 가능성이 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10일(아래 현지시각) 발언이 미국 정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라들을 발칵 뒤집어놨다.
11일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재임 중 만난 ‘큰 나라의 대통령’이 ‘우리가 돈을 내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우리를 보호할 것인가’, ‘러시아가 우리를 침공한다면 돈을 내지 않아도 우리를 보호할 것인가’라고 물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니, 난 당신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 대통령에게 대답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사실 나는 그들(주-러시아)에게 원하는 건 다 하라고 독려하고 싶다”면서 “당신은 돈을 내야 한다. 법안(Bills)에 맞춰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말하는 ‘돈’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나토는 ‘GDP의 2% 국방비 지출’ 목표를 세웠으나, 19개국(2023년 기준 총 30개국)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목표는 구속력 있는 합의가 아닌 지침에 불과하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쟁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11일 성명을 통해 “(트럼프가) 우리 나토 동맹국들을 버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비난했다.
“푸틴에게 더 많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청신호를 보내고 자유로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잔혹한 공격을 계속하게 하며 폴란드와 발트 국민들에게 공격을 확대하도록 트럼프가 승인한 것은 끔찍하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단합되고 강력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며 “동맹들이 서로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떠한 암시도 미국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안보를 훼손하고 미국과 유럽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발끈했다.
샤를 미셸 유럽평의회 의장은 “무모하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 관련 발언을 비난했다. “푸틴의 이익에만 봉사한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은 X(트위터)를 통해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나토의 모토는 구체적인 것”이라며 “동맹국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은 나토 전체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도 X(트위터)에 글을 올려 “어떠한 선거운동도 동맹의 안보를 가지고 노는데 대한 핑계가 되지 못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11일 [CNN]에 출연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 재임시절 일화를 들어 나토 회원국들에게 “그들의 몫을 내라”고 압박하기 위해 “지렛대”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11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방보다 적국을 편들면서 국제 질서를 뒤집겠다고 위협한다”며 “그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할 경우 세계 질서에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했다”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역사는 이런 상황이 전쟁을 줄이기보다 더 부추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서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극동방위선 ‘애치슨라인’을 발표한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고 주장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겨레 “대통령 대담 재방송까지 한 KBS, ‘국영’ 방송 민낯”
동아 “의사 파업 초읽기, 국민 건강 최우선 두고 극단 충돌 피하길”
경향 ‘내몸잘’ 마지막 편 ‘규정을 거부하며 존재하는, 트랜스젠더의 몸’
기자명윤유경 기자
입력 2024.02.13 07:47
수정 2024.02.1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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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난 13일 아침신문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KBS 녹화 대담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날 아침신문에선 연휴 기간 대통령 대담을 재방송한 KBS에 대한 비판, 논란이 진행 중임에도 대담에서 언급되지 않은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유가족 등 당사자 인터뷰가 담겼다.

▲ 지난 4일 녹화해 지난 7일 방영한 윤석열 대통령 대담 방송. 사진=KBS 갈무리
KBS는 지난 7일 내보낸 윤석열 대통령 신년 특별대담을 설날인 10일 재방송했다. 이를 두고 한겨레는 사설에서 “녹화 대담이 방영된 뒤 ‘땡윤방송’ ‘용산 조공방송’ 등의 비판이 제기됐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윤 대통령의 일방적인 메시지를 담은 방송을 다시 한번 전파에 태운 것”이라며 “공영방송이 공공 자산인 전파를 낭비해가며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대통령 ‘심기 경호’에 나서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방송은 ‘국민의 방송’인가, ‘대통령의 방송’인가”라고 물었다.

▲ 한겨레 사설 갈무리.
한겨레는 “한국방송은 녹화 대담 방영 다음날인 8일 ‘특별대담이 최고 시청률 9.9%를 찍으며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며 자화자찬성 보도자료를 내더니, 설날 당일인 10일 오전에는 녹화 대담을 재방송했다”며 “대통령의 변명과 해명을 어떻게든 많은 국민에게 들려주려 안간힘 쓰는 모습에서 정치권력에 순치된 ‘국영’ 방송의 민낯을 봤다고 하면 지나칠까”라고 했다.
김영희 한겨레 편집인은 ‘김영희 칼럼’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서 “집권 1년9개월 된 대통령의 대담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국정에 대한 의욕은 읽기 힘들었다. 백번 양보해 다수 언론사가 참여하는 신년 회견에서 김 여사 문제에 질문이 집중될까 우려했다면, 여러 비판을 뿌리치고 강행한 녹화 대담에서 국정의 방향이라도 제대로 보여줬어야 한다”며 “잦은 거부권 행사 같은 논쟁적 사안에 대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모습은 없었다. 늘봄학교, 대출금리 등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사안에 대한 언급은 그동안 나온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 한겨레 칼럼 갈무리.
김 편집인은 이어 “이번 대담으로 윤 대통령은 이제 김건희 리스크를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 ‘수렁’에 빠졌음이 분명해졌다.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김 여사 문제는 계속 호출될 것”이라며 “‘김건희 악재’를 딛고 여당이 이긴다면 당은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더 가속할 것이고, 야당이 이긴다면 두말할 나위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녹화 대담에서 언급조차 되지 못해 답답한 심정으로 설 연휴를 보낸 당사자들을 인터뷰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정민씨는 경향신문에 “이태원뿐만 아니라 오송 참사 유족, 채 상병 유족, 서천 화재로 피해를 본 상인들은 여전히 힘들어하는데 정치적 판단을 떠나 대통령이면 국민의 고통에 공감해야 하지 않나”라며 “KBS라도 관련 질문을 해야 했다”고 했다.

▲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해병대 사관 81기 김태성씨도 경향신문에 “대담에서 채 상병과 박정훈 대령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어 아쉽다”며 “설을 맞아 해병대 장병들을 격려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히 군 생활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독려는 순직한 해병에게 모욕적”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칼럼 “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 더 비판해야 하나?”
김대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가 <보수언론이 보수정권 더 비판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김대중 칼럼’을 내놨다. 지난 1월 <권력 비판에 성역 없어…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 더 날카롭게 비판해야>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기사와 관련한 칼럼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는 “돌이켜 보면 역사적 고비마다 정권, 특히 보수 정권을 퇴진시키는 데 크게 작동한 것은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보수·우파 언론이었다. 4·19(그때는 좌·우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때도 그랬고 5·18 때도 그랬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에도 조중동은 순기능했다”며 “2000년대 들어서 보수 언론이 주류(?)인 상황에서도 보수 정권의 대통령은 줄줄이 옥살이를 했고 문재인 정권이 태동했으며 지금도 압도적 의석을 가진 좌파 정당의 전횡과 그 수장의 건재를 목도하고 있다. 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을 비판해서 결국 좌파 정권의 득세를 도와준 모양새일 뿐”이라고 했다.

▲ 조선일보 칼럼 갈무리.
김 칼럼니스트는 “(좌파 언론은) 보수·우파 정권을 공격하는 데는 때로 ‘가짜 뉴스’를 동원할 정도로 매몰차고 공격적이었으면서 좌파 권력을 비판하는 데도 그렇게 엄중하게 임했는가?”라고 물으며 “비평자들도 보수 정권에 대한 보수 언론의 태도는 비판하고 나서면서 좌파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는 입을 닫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 정권은 ‘동네북’인 셈이다. 좌파 언론에서 무차별한 공격과 선동성 비판을 당하면서 보수 언론의 협공도 받아야 하고 게다가 비평자 또는 관전자들의 비판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칼럼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으로 이어진다. 김 칼럼니스트는 “이것이 과연 집권 2년 차 윤 정권에 타격을 줄 만큼의 큰 정치적 사건인가?”라고 물으며 “(4·10 총선거에서) 판단 준거는 대통령의 중요한 정책적 결정, 안보·국방의 방향 설정이고 국민의 경제적 삶이지 대통령 부인의 ‘백’ 수수여서는 우리 수준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일부에선 대통령이 ‘사과’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라고 하는데 몰래카메라로 찍고 1년을 기다려 총선 전에 드러낼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인 좌파가 과연 ‘사과’로 넘어갈 것 같은가? 이 사건은 사과하면서부터 제2막으로 넘어갈 것이 뻔하다”고 했다.
이어 “보수를 비판하는 것이 보수 언론이 좌파 언론과 다른 장점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실론에서 보수 언론이 대통령의 잘못도 아니고 그 부인의 경솔함에 집착하는 것은 가치 전도적”이라고 했다.
의사 집단행동 예고에…국민 건강권 침해 우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본격적으로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5일 전국 곳곳에서 궐기대회를 예고했고,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2일 밤 임시대의원회총회를 열어 집단행동 여부를 논의했다. 대통령실은 “의대 증원은 돌이킬 수 없다”며 의사들의 반발과 집단 휴진 움직임에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
집단 휴진 사태가 현실화되면 2020년 파업보다 규모가 커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동아일보는 2면 기사 <의사들 “정부, 우릴 못이겨” 정부 “법 개정따라 의사면허 박탈 가능”>에서 “당시 정부가 예고한 의대 증원 규모는 연간 400명이었는데, 이번에는 2000명으로 5배나 되기 때문이다.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이라 의사들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재 전공의 상당수는 2020년 의대 증원 등에 반대하며 의사 국가고시 응시를 거부해 결국 정부 방침을 좌절시킨 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의대생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도 기사 <의료계 파업 땐 대형병원 수술 줄줄이 연기>에서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연차를 쓰거나 사직서를 내는 방식 등으로 파업에 나설 경우 당장 대형 병원에선 환자들의 진료·수술 일정이 줄줄이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며 “신규 치료·입원은 어려워지고, 응급실·중환자실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정부는 의사들의 파업 움직임에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파업 참여 의사에 대해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의사들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할 경우 의료법에 의해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업무 개시 명령을 위반하면 면허 취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신문들은 정부와 의사들의 대치로 발생할 국민의 건강권 침해를 우려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의대 증원으로 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 행위가 늘어 국민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도 일리는 있으나 환자를 볼모로 한 파업을 정당화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며 “명분 약한 파업 대신 대폭 증원된 의대생들을 제대로 된 의사로 키워내는 데 전문성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 정부도 교육의 질 하락을 방지할 대책으로 의사들을 설득하고, 의대 증원 정책이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의대 쏠림 완화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의료인력이 부족한 데다 과중한 업무와 낮은 보상까지 겹치면서 외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체계는 기피현상이 만성화됐고, 지방 인구 감소와 맞물려 지역의료체계는 공동화에 빠졌다. 의사를 찾아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현장을 뻔히 아는 의사들이 파업에 나선다면 직역이기주의라는 지탄을 면할 수 없다”며 “사태 흐름을 잘못 읽고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선다면 명분도 실익도 못 챙길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내몸잘’ 마지막 편 ‘규정을 거부하며 존재하는, 트랜스젠더의 몸’
경향신문이 기획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트랜스젠더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기획은 ‘좋은 몸’이라는 단일한 기준에서 벗어난 여러 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해 시간이 새겨진 나이든 몸, 크고 아름다운 살찐 몸, 다름을 알려준 장애가 있는 몸, 이대로도 괜찮은 아픈 몸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이번 마지막 편에선 규정을 거부하며 존재하는 몸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경향신문은 “MTF 트랜스젠더(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됐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 여성), FTM 트랜스젠더(출생 시 여성으로 지정됐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 남성), 논바이너리(한쪽 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몸들은 젠더 스펙트럼을 부유한다”며 “국가와 사회가 정한 단일한 몸의 기준에 담기지 않는다. 이들은 규정되기를 거부함으로써 획일적인 성별의 상에 고정되지 않고 좀 더 나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에게 넓혀준다”고 설명했다.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됐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 남성 성희씨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제 자신과 신체를 각각의 신발이라고 했을 때 한쪽 신발을 다른 쪽과 어울리게 그리고 색을 칠해서 신고 돌아다니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짝짝이 아니야?’ ‘안 맞는 거 아니야?’ 하면 ‘뭐 어때요? 멋있죠?’ 이렇게 답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성희씨에게 트랜지션(출생 시 지정된 성별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춰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은 ‘수선’이 아니라 ‘색칠’”이라며 “몸은 이리저리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편안함을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도화지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 13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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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경 기자구독
[경제뉴스N시선] 윤석열 '가치외교'의 경제적 대가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 | 기사입력 2024.02.13. 05:02:17
장면 1. 지난해 12월,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네덜란드 정부의 대중국 수출통제 발효를 몇 주 앞두고 합법적으로 수출할 예정이었던 장비 3대의 선적이 중단되었다. 블룸버그, CNBC, 영국 가디언 등의 언론에 따르면 선적 중단의 배경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압력이 있었다. ASML이 수출하려던 장비는 최신 장비가 아닌 심자외선(DUV) 장비였지만, 화웨이의 7나노 칩 생산에 ASML의 DUV 장비가 이용되었다고 알려지면서 미국이 수출을 갑자기 막았다는 후문이다.
장면 2. 지난해 10월, 미국은 중국에 기존보다 사양이 낮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칩도 수출하지 못하게 했다. 기존에는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과 일정한 성능 이상의 인공지능 및 슈퍼컴퓨터용 반도체 수출만 금지하고 있었다. 미 행정부가 저사양 반도체의 중국 수출도 금지하자 타격을 입은 기업은 미국의 엔비디아였다. 결국 엔비디아는 다시 미 행정부의 규제에 맞춰 중국 시장을 겨냥해 저사양 AI칩인 H20을 내놓았지만, 중국 현지에서 반응이 썩 좋지는 않다.
장면 3.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단체인 미국반도체협회(SIA)가 지난달 17일 미 상무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동맹국들도 수출 통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SIA는 "일국의 통제보다 다국적 통제가 효과적이며 다국적 통제를 해야 미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미국 기업들은 첨단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지만 일본, 한국, 대만, 이스라엘, 네덜란드의 외국 경쟁업체들은 품목별 수출금지 목록에 올라 있지 않은 장비라면 중국 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급하다. 중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전쟁’을 벌이면서 네덜란드를 최전선에 내세웠다. 그 과정에서 ASML이라는 기업의 이익은 물론이고 네덜란드의 국익도 훼손당했지만 그런 것은 미국의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심지어 엔비디아 같은 자국 기업들이 중국 매출 감소로 피해를 입더라도 미국은 반도체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
조만간 한국도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 끌려 들어갈 조짐이 보인다. 최근 미국 상무부 고위 관리가 "새로운 다자 수출 통제 체제"를 언급하면서 한국도 참여 대상이라고 언급했다. 수출 통제로 한국 기업들이 입게 될 피해는? 20개월 만에 겨우 플러스로 돌아선 한국의 대중 수출은? 당연히 미국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
한국은 네덜란드와도 처지가 다르다. 장비 기업들은 중국 수출이 줄어들어 손해가 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다른 나라에 새로 건설되는 공장에 장비를 판매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의 경우 이미 중국에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를 해놓은 상태로, 중국 시장에 반도체를 못 팔게 되거나 공장 설비 업그레이드를 못 하게 되면 직격탄을 맞는다. 게다가 한국은 수출 의존도와 반도체 의존도가 큰 나라다. 혹시라도 미국의 반도체 기술 전쟁에 끌려다니며 중국 시장을 잃게 된다면 한국의 경제지표는 급속도로 나빠질 것이다.
'탈중국' 외쳤던 윤석열 정부
탈중국 하면 되고 수출 다변화하면 된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에 편입되어 장사를 잘하면 된다고? 그게 윤석열 정부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2022년 6월, 최상목 당시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은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면서 중국의 대안 시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외 언론들은 이 발언을 '탈중국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발언의 당사자인 최상목은 지금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어 있다.
탈중국은 말이 쉽지, 현실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제조업 중심이고 한국 반도체 업계에 최대의 시장이다. 2020년 이후 한국의 대미 수출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대중 수출의 감소를 상쇄하지는 못한다. 지난해 7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의 "중국이란 큰 시장을 포기하면 우리에겐 회복력이 없다"는 발언은 그런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디커플링'이라는 표현을 '디리스킹'으로 바꾼 것도 탈중국이 실현 불가능한 구호였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 중국 시장이 어떤 의미인지는 <조선일보>에 물어봐도 답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물품 가운데 한국산이 6.3%"로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이후 가장 낮다고 지적했다. 그 근본 원인은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자동차,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서 한중이 경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설은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바뀌고 있다지만 여전히 중국은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고 우리나라 수출의 22%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교역국"이라면서 "5% 안팎으로 성장하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한국과 경쟁할 것은 경쟁하더라도 협력할 것은 협력하자는 입장인 듯하다. 지난해 4월 13일, 시진핑 주석이 중국 광저우에 있는 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했다. 시 주석이 중국 내 외국 기업의 공장을 방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중국은 한국을 향해,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에 동참하지 말고 경제적 협력을 계속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인 19일, 윤 대통령은 방미를 앞두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건드렸으니 그 후로 한중 관계는 냉각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2023년 말까지 계속 저조했다. 얼마 전 현대차의 충칭 공장 매각과 철수는 중국에서 한국 제조업 기업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에 공장 지으면 될까?
미국이 벌이는 대중 무역전쟁의 한 축이 대중 수출 통제라면 다른 한 축은 리쇼어링(프렌드쇼어링 포함)이다. 과거 보호무역 시대에 보조금이 수입을 줄이고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사용된 데 반해, 최근 주요국 정부들이 지급하는 보조금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생산시설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 리쇼어링은 자국의 제조업 공동화 문제를 해결하고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인위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중 중국 투자 제한 항목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유예를 받아냈다. 그런데 외신에 따르면 그 유예 조치마저도 앞날이 불투명하다.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업체의 장비 반입 규제 수위를 계속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블룸버그>는 '미-중 경쟁에 발목 잡힌 90억 달러짜리 반도체 공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띄웠다. 90억 달러짜리 반도체 공장이란 SK하이닉스가 인텔로부터 인수한 중국 다롄의 낸드플래시 공장을 가리킨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대선 결과와 그 이후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곤란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 경제의 반도체산업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베이징이 핵심 반도체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워싱턴의 움직임에 한국이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비슷한 예상을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IMF가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전망 보고서'는 '프렌드쇼어링'(중국과 OECD 회원국들이 두 블록으로 분리)과 '리쇼어링'(주요국 해외 진출 기업들의 국내 복귀)이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해서 각국의 경제를 전망했다. 프렌드쇼어링 시나리오에서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1.8% 감소하고 일본과 유럽연합(EU)의 GDP는 1%대 감소하는 반면, 한국은 GDP가 4%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리쇼어링 시나리오는 더 암담하다. IMF는 리쇼어링이 이뤄질 경우 한국의 GDP는 10.2%나 줄어든다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대중 무역전쟁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외국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거나 피해 갈 수도 있어야 한다. <블룸버그> 기사에서 미국 소재 한국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거론 선임국장은 "한국은 미국, 중국과의 관계 균형을 맞추는 까다로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도체 전쟁, 쉽게 끝나지 않는다
사실 미국의 반도체 전쟁은 경제적으로는 미국에도 손해가 되는 일이다. 2020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보고서는 대중 수출통제의 역효과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수출통제를 계속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국 기업들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중국의 기술 발전을 억제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지난해 6월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 외교협회(CFR)와의 대담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두고 "결승선은 없다"고 언급했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 기술 전쟁을 쉽게 끝내지 않고 장기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아닌 트럼프가 당선된다 해도 대중 정책의 기본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무역장벽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트럼프는 중국 외에 모든 나라와의 무역에 관세 10%를 보편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는 날에는 지금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앞날이 불투명해진다. 얼마 전 트럼프는 "모든 종류의 자동차가 미국에서 생산되기를 바란다"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관세 등의 수단으로 "이곳에 공장을 세우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동차업계에서 미국의 테슬라가 중국의 BYD에 추월당한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초조한 심정에 호소한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초조해질수록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 많은 요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중 봉쇄를 미국만 하면 효과가 없으니 한국도 같이 동참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에 이런저런 제품을 수출하지 않기로 했으니 한국도 수출하지 마라, 생각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프렌드 쇼어링을 해야 하니 한국의 제조업을 미국으로 이전하라… 이런 요구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동맹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요구들을 계속 들어주는 것은 한국의 경제주권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길이다.
지정학적 대전환의 시기에는 변화를 잘 읽어내야 한다. 앞으로는 첨단기술의 뒷받침 없이 단순히 노동자 임금을 낮게 유지해서 경쟁력을 키우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또한 원자재와 식량, 에너지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어서 각국 정부의 외교적 행보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계의 교역과 물류 흐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처럼 거대한 변화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무엇보다 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처럼 미국, 일본을 이념적으로 짝사랑하면서 온갖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은 노조 때려잡기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도입으로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최악의 노선이다.
<참고>
ASML halts hi-tech chip-making exports to China reportedly after US request (24.01.02 The Guardian)
The $9 Billion Chip Plant Stuck in Limbo of US-China Rivalry (24.01.24 Bloomberg)
Washington shores up friends in the global chip war (24.02.06 Politico)
H20으로 돌파구 마련한 엔비디아, 화웨이와의 경쟁 '불가피' (24.02.02 HelloT)
[사설]30년 전으로 쪼그라든 중국 시장 속 '메이드 인 코리아' (24.01.29 조선일보)
IMF "美-中 디리스킹, 최대 피해자는 한국… 최악땐 GDP 10% 감소" (23.10.23 동아일보)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는 더불어삶 회원들과 함께 해고노동자 지원, 인터뷰, 강연 기획 등 노동 현장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모순을 파악하고 공론화하는 일에도 기여하고 싶어서 경제 뉴스와 각종 문헌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더불어삶 뉴스레터 구독 링크 https://bit.ly/livewithall-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