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2일 토요일

김정은, 트럼프 친서 받아…“흥미로운 내용 심중히 생각”

입력 : 2019.06.23 08:2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23일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23일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친서를 받고, 친서의 내용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북한 매체가 23일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어 왔다”며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보시고 훌륭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하시면서 만족을 표시하셨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사진도 공개했다. 친서를 보내온 시점과 친서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김 위원장이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잇따라 공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이 보내온 친서에 대해 “아름다운 친서”라고 평가했다.
북·미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양국 정상이 친서를 교환하고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긍정 평가하면서 협상 재개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하고 이번 친서 내용을 ‘심중히 생각’하겠다고 밝혔다는 언급으로 볼 때 협상안과 관련한 미국 측의 새로운 입장이 친서에 담겼을지 주목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230821001&code=910303#csidx09e3e3ce138f7cda5b43f588febf69e 



검경은 대학생들에 대한 공안탄압 중단하라!

검경은 대학생들에 대한 공안탄압 중단하라!
대학생통신원 
기사입력: 2019/06/22 [17: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대진연이 공안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생통신원

22일 오후 3시 서울 경찰청 앞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대진연)이 공안탄압 규탄 및 중단’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4월 12일 검경은 나경원 의원실에 면담 요청을 하러 갔던 22명의 대학생 중 한 명에게 영장을 청구했으나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됐다. 6월 14일 검경은 지난 2월에 진행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참여했던 김한성 대진연 상임대표에게 영장을 청구했으나 17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됐다.

대학생들은 국민의 염원인 적폐청산자유한국당 해체’ 요구를 대변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와 나경원 의원 사무실을 찾아갔던 것이었다그런데 검경은 대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오히려 적폐 세력에 동조하며 대학생들에게 영장청구를 했다.

이에 대진연은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경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이다.

기자회견 첫 번째 발언은 나경원 의원실 면담 요청 갔다가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윤태은 학생이 했다.

윤태은 학생은 어제 21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학점과 토익점수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자기 아들이 대기업에 채용이 됐다는 말을 했다지금 이 대한민국에 그런 스펙으로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이는 명백한 채용 특혜다산불 피해를 막았던 나경원과 황교안 아들 KT 특혜채용김학의 성접대 특수강간 등 부정비리에 분노해 나경원 사무실을 찾아갔다고 발언했다

계속해 윤태은 학생은 국회 내 직원들은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 무시했으며 결국 연행까지 됐다. 50 시간이 넘는 동안 유치장에 있으며, ‘이 사회의 공권력이란 무엇인가경찰들은 돈 있는 자들만을 봐주는구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러나 대진연은 이런 적폐와 부정비리에 맞서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다며 결의를 다지는 말을 했다.

두 번째 발언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규탄 기자회견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김한성 대진연 상임대표가 했다.

김한성 상임대표는 “5.18 망언을 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했다가 갑작스레 연행됐다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연행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나중에 경찰이 휴대폰과 노트북을 영장 청구로 뺏어갔으며 결국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한성 대표는 대진연에 당국의 공안 탄압은 계속 더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고 있다이런 탄압에 굴하지 않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대학생들이 앞장설 것이다고 발언했다.

세 번째 발언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기자회견에서 연행됐던 이인선 학생이 했다.

이인선 학생은 검경은 자유한국당에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에게만 탄압하고 있다검경이 이미 적폐세력의 편에 선 것은 아닌가경찰과 정치권의 정경유착을 끝내고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기자회견 마지막 발언으로 나경원 의원에 면담 요청을 했던 22명의 학생 중 한 명이었던 엄재영 학생이 했다.

엄재영 학생은 연행 됐던 22명의 학생이 순차적으로 10몇 시간 뒤 10마지막 2명중에 한명은 풀려나고 나머지 한명이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일 자체가 어이가 없다. 10명씩 나눠서 내보낸 사실들구속 영장을 청구했던 일은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과연 지금이 2019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그러나 대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투쟁하겠다고 발언했다.

▲ 최예진 서울 대진연 대표(왼쪽) 김한성 대진연 상임대표(가운데), 김재영 경기 대진연 대표가 항의서한문을 전달하려 경찰청으로 가고 있다     ©대학생통신원

경찰청에 항의 서한문을 전달하는 대학생 대표들   ©대학생통신원

이어 김재영 경기 대진연 대표와 최예진 서울 대진연 대표가 항의서한문을 낭독했다.

항의서한문 낭독 후 김한성 대진연 상임대표최예진 서울 대진연 대표김재영 경기 대진연 대표가 함께 경찰청에 항의서한문을 전달하고 기자회견은 끝났다.

한편 대진연은 22일부터 매일 경찰청 앞에서 당국의 공안탄압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아래는 항의서한문 전문이다

-------------------------------아래----------------------------------


<항 의 서 한 문>

대학생 단체에 대한 경찰의 무리한 공안탄압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지난 4월 반민특위 망언을 했던 나경원 의원과 김학의 수사 은폐 의혹을 가진 황교안 자유한국당 당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나경원 의원실에 면담 요청을 하러 갔습니다하지만 면담 요청은커녕 경찰의 무차별적인 연행만이 돌아왔습니다당시 연행되었던 22명의 대학생 중 한 명에게는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지난 2월 일산 킨텍스에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열렸습니다이날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세월호 망언을 규탄하기 위한 시민 단체들의 기자회견 역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하지만 기자회견은 시작하지도 못한 채 경찰은 71명이라는 유례없는 인원을 무리하게 연행했습니다뿐만 아니라 6월 11일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김한성 상임대표를 포함한 세 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지난 6월 17일에 영장 실질심사가 있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기자회견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처사이며대학생 단체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탄압입니다자유한국당이 불법적인 국회 점거 했지만 해당 의원 중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같은 시기 면담을 요청하고 기자회견을 하려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쉽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세워졌고 적폐청산은 당장 이루어져야 할 국민들의 요구입니다하지만 경찰은 공권력을 적폐청산에 사용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던 대학생들에게 휘두르고 있습니다시대착오적인 경찰의 공안탄압은 당장 중단되어야 합니다따라서 과도하고 무리한 공안탄압에 대한 경찰청의 책임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합니다.

2019년 6월 22
한국대학생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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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도 감탄한 명연설, 재판정을 뒤집어 놓은 사진작가

19.06.22 19:28l최종 업데이트 19.06.22 19:28l





이시우 작가는 민통선과 용산미군기지 일대를 촬영한 혐의 등으로 2007년 구속됐다. 당시 이 작가에게는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 탐지·누설,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반국가단체 소속 인물과 회합·통신 등 20가지가 넘는 죄목이 쓰였다. 

이 작가는 검찰로부터 10년 구형을 받았으나 2008년 1월 열린 1심 재판에서 이정희 변호사 덕분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해당 사건은 2011년 10월 13일 대법원에서 공소 사항 전부에 대해 완전 무죄 판결로 마무리됐다. 당시 이시우 작가의 무죄 판결은 한국 사회의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시우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 소식을 접하고 도피 및 수배 생활을 했다. 구속 이후에는 스스로 무죄 판결을 위해 예술가로서 창작의 자유를 바탕에 둔 논리를 구상하여 재판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재판정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할 정도였다. 국가보안법 체제와 그 안에 살아가는 예술가라는 관점에서 그의 이런 행동은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 

이에 청년담론은 이시우 작가를 직접 만나 당시의 경험을 듣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본 기사는 2018년 12월 이시우 작가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나는 출두 대신 도망을 택했다 
 
 이시우 작가
▲  이시우 작가
ⓒ 이시우

- 국가보안법 위반 소식을 접했던 당시 심정은 어땠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기사로 접했다고 들었다. 
"나에 대한 내사는 2004년부터 진행되었다고 들었다. 기사로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를 처음 접한 후 작성한 기자에게 전화도 해보았다. 아마도 경찰이 기사로 먼저 흘리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떠보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 사람이 '내가 당당하게 출두해 모든 걸 밝히겠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나한테 지금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를 먼저 생각했다. 당시 상황을 먼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단 2007년 한국은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전시작전권을 돌려주는 대신 '유엔사를 강화'해 이러한 합의를 무력화하려는 구상이 눈에 보였다. (전시작전통제권은 노무현 정부에서 2012년 4월까지 돌려받기로 합의를 하였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치-군사적 상황으로 인해 지연되었다.)

이에 나는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며 관련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유엔사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막지 못하면 전시작전권을 환수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결국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는 나에게 유엔사 해체와 관련한 글을 쓰지 못하게 해 입에 재갈을 물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제 발로 검찰의 소굴로 들어가는 건 공안세력을 돕는 것임이 명백해보여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단순히 도망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유엔사 강화를 막기 위한 글도 계속 써 내려갔다. 변호사는 '도주로 간주돼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감수하기로 했다. '유엔사 강화'라는 공안세력의 의도를 차단하는 것이 진정한 저항이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감옥에 있었던 시간보다 수배 중이던 시간이 더 힘들었다.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피 생활 중에는 온종일 유엔사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통일뉴스 등에 글을 올릴 때는 숙소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글을 부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누가 "이 선생님, 이제야 뵙네요" 했다. 사복경찰 4~5명이 잡으러 왔다. 경찰차에 실려 남대문 경찰서로 가는데 국가보안법이라는 망령이 나의 손을 턱 잡는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유령 같은 것이 내 손을 잡고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 가족들이 겪었을 고초 또한 걱정된다. 어떤 고충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미안했다. 내가 도피를 위해 새벽에 집에서 나오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쳤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겪고 나면 제일 먼저 동네 사람들의 눈초리가 무섭다. '저 사람 집에 시커먼 옷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치네'하는 것만으로 동네에서 낙인이 찍힌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있었대' 하면서 소문이 금방 퍼지기 마련이다. 어떤 분들은 도움을 주지만 또 어떤 분들은 외면한다. 그동안 동네에서 쌓아온 인간관계가 다 드러나는 순간이다.

당시 아내는 공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노동자였다. 하지만 내가 체포된 후 본격적으로 조사를 받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아니,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이어갈 수단이 사라지자 아내는 주변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그게 아주 힘들었다. 수배 생활 중에도 돈이 필요하니 가족들에게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손해를 끼치고 있었다. 아내는 거의 정신을 놓고 살았다. 하루는 서울에서 시위를 하고 돌아오는 데 빨간불에 그냥 길을 건너려고 했다고 한다. 중학생이었던 아이가 "엄마 왜 그래"하면서 말릴 정도로 혼이 나간 채 살았다. 가족들에게 끼쳤던 피해는 평생 짐으로 남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재판 과정에서 판사의 감탄을 끌어내다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대법원 청사.
▲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대법원 청사.
ⓒ 권우성

- 재판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재판 중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재판에 임하는가'가 매우 중요했다. 구속되면서 바로 단식에 들어갔다. 국가보안법을 거부하면서 법 자체도 거부한다고 했는데, 재판을 받는 것이 법을 인정하는 것처럼 되는 것 같아 고민이 되었다. 변호사는 만약 재판을 받게 된다면 몸을 회복해 재판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판을 결국 받기로 한 순간, 방어가 아니라 꼭 이겨야 한다는 것이 재판의 목적이 되었다.

검찰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쓴 것에 국가보안법 위반을 걸었는데 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틀을 '창작의 자유'라는 틀로 바꿔보고자 했다. 창작의 자유라는 틀로 검사도 설득할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다시 정하고자 했다. 변론 과정에서 예술 작품들을 슬라이드로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 사진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찍었다는 등 창작이라는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설명했다.

'지뢰밭에서 지뢰를 찍을 때 혹시라도 지뢰를 밟을 수 있어서, 사진이라도 살리자는 마음으로 사진기를 던지고 디딤돌을 밟고 나왔다는 과정 등을 설명했다. 창작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들을 했다. 나중에는 판사가 자기도 모르게 '아...'하면서 감탄했다. 그때 창작의 자유로 재판의 룰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또 하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적 표현물 소지 혐의'였다. 북한의 책을 연구했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정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대출하는 북한 책을 신청을 해보았다. 검찰이 문제 삼았던 책들을 전부 신청했는데 일주일 후 국정원에서 책을 받으러 오라고 이메일이 왔다. 검찰이 완벽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적표현물 소지'는 이적의 목적으로 활용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인데 나는 그 책을 이용해 학술 활동을 했을 뿐이었다."

-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기 위해선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근본적으로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기본적인 철학적 배경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보안법의 본질은 외부에 있는 적을 내부로 끌어오는 것이다. 세상을 볼 때 보통 나와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밖에 있는 세계를 나에게 심어놓은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우리 사회에 적이 있다. 그 적이 현재 안에 들어와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합법적인 활동 영역 내에서 내부의 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국가보안법을 돌이켜보는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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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라는 프레임의 문제가 크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사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북한'과 '국가보안법'을 빌미로 일어났다. 통합진보당 사태도 마찬가지다. 진보적인 사람 중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문제로 닥쳤을 때 북한에 대한 관점이나 태도에 대해 현실적으로 거부하고 분열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표방하는 명문과 내면의 심리가 달리 작동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은 국가보안법 자체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보안법을 없애도 반공적 분위기가 계속 살아있다면 또 다른 이름의 국가보안법이 생길 수 있다. 법 자체를 없애는 것도 첫 단계로 중요한 목표지만 이 체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 마지막으로 우리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청년이라면 대학생뿐만 아니라 취준생, 직장인 등 많은 20·30세대가 힘든 삶을 겪고 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청년들이 문제가 있다'라고 계속 떠드니까 청년들 스스로 문제 덩어리인 것처럼 느끼고 있다. 사회는 청년들한테 특별히 해준 것도 없으면서 자꾸 청년들한테 문제라고 한다. 그것도 어찌 보면 사회가 테두리 쳐놓는 편견일 수 있다. 오히려 청년들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대 세계는 사람을 끊임없이 수동적으로 만든다. 수동적으로 만들어야 통치가 편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힘든 상태다, 수동적이어야 잘 이해한다'고 하니 정말 수동적으로 변하곤 한다. 그 프레임 자체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왜 삶이 어렵지? 내가 왜 이 고통에 수긍해야 하지?'라는 의문을 근본적으로 가져보는 것부터가 오히려 여러 가지 부분적 대안들로 현실을 땜질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시우 작가의 경험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특수하다. 도주를 비롯해 국가보안법이라는 프레임을 창작의 틀로 바꿔 승소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자신을 비롯해 가족들까지 장기간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이시우 작가의 바람대로 국가보안법은 법 자체의 폐지부터 국가보안법 체제라는 사회 자체가 변화해야 할 것이다.

[기획 / 문재인 시대에 국가보안법을 논하다]
① 
국가보안법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다 ☞ http://omn.kr/1jn4t
② 
평양냉면 칭찬? 마음만 먹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 http://omn.kr/1jn5e
③ 
문재인정부 1호 '간첩' 사건... "이런 식이면 정상회담 왜 하나?" ☞ http://omn.kr/1jn4v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청년지식공동체 청년담론'에서 함께 기획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