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1일 토요일

주영 북한대사 "핵무기 발사 능력 갖췄다"(동영상)


게시됨: 업데이트됨: 


















북한이 지금 당장 핵무기를 발사할 능력이 있다고 현학봉 주영 북한대사가 20일(현지시간) 주장했다.
현 대사는 이날 런던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현지 스카이 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준비돼 있다"며 "한반도에서 교전이 일어난다면 핵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가 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지금 핵미사일을 발사할 능력이 있다고 말한 것이냐고 확인하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 언제라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미국이 핵무기 공격 독점권을 지닌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보복 공격을 할 것"이라며 "재래식 전쟁에는 재래식 전쟁으로, 핵전쟁에는 핵전쟁으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선제적 공격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게 정부의 원칙"이라고 답했다.
그의 발언은 북한이 발사체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을 만큼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발언은 일부 미국 군 고위층과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일부 성공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이 상당한 수준의 기술은 갖고 있지만 아직 핵탄두 소형화를 했다고 보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그는 북한에서 고문을 받았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대해 "그들의 주장은 소설"이라며 탈북자들을 양심과 도덕성이 없는 "동물들"이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세월호 1주기 앞두고 ‘인양 촉구’ 촛불 밝힌 시민들

[현장] 세월호 1주기 앞두고 ‘인양 촉구’ 촛불 밝힌 시민들허다윤양 아버지 “실종자를 가족 품에 돌려주는 게 정부의 일”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신고하기
승인 2015.03.21  20:48:35
수정 2015.03.22  08:53:53
트위터페이스북네이버구글msn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아직도 진실 규명이 되지 않은 현실에 분노한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밝혔다.
21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모인 150여명의 시민들은 ‘언제나 함께 있을게’ 라는 문구가 씌여진 종이컵 안에 촛불을 밝히고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광장에는 따뜻하게 풀린 날씨 탓에 많은 시민들이 들렀다 가면서 진실규명을 위한 서명대에 서명을 하는 등 세월호 농성장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촛불 문화제 사회를 맡은 ‘청춘의 지성’ 소속 구산하씨는 “안산 분향소에 갔더니 ‘지겹다고 말하지 말라, 잊으라 말하지 말라. 어떻게 자식이 지겹다고 말할 수 있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더라”라며 “광장에 나오신 많은 분들이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동생같은 친구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 잊으라 한다는 세상이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 허다윤 양의 아버지가 발언하고 있다 ⓒ go발뉴스(나혜윤)
실종자 허다윤양의 아버지는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을 향해 “힘이 되어 달라”고 호소했다.
허양의 아버지는 “저 차디찬 앞바다에 실종자가 남아 있는데 정부는 아직까지 대답이 없다”며 “어떠한 고난과 일이 있어도 부모의 마음으로 꼭 아홉명의 실종자를 가족의 품에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만이 정부가 할 일이고 4월 16일 이후 멈춘 시간에서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다”며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국민여러분이 끝까지 함께 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질타도 이어졌다. 김포에서 온 김영현씨는 “6살난 아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이 자리에 많이 오지 못했다”며 “1주기가 다가오는데 아직도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고 어느 것 하나 유가족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있다. 하늘의 별이 된 우리 아이들 원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아직도 많은 분들이 세월호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이 모일 것”이라며 “세월호 진상규명을 할 수 있게, 선체 인양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힘내자”고 밝혔다.
한신대 1학년 이재웅씨는 “참사로 작년에 친한 동생을 잃었다. 사고 나기 3일전 연락했다가 그 이후로는 연락이 되질 않았다”며 “아직도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난 게 믿기지가 않고 지금도 돌아올 거 같다. 그 아이 생일이라 분향소에 다녀왔는데 왜 희생이 되었나, 왜 어른들 잘못 때문에 희생됐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회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이씨는 “홍대에서 유가족분들과 서명운동에 함께 나서면서 시민분들이 보이지 않는 응원을 굉장히 많이 해 주시고 힘내라고 하시더라”라며 “유가족분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아이들이 없어 쓸쓸하실지 몰라도 저희가 늘 함께 하고 있으니 끝까지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갑시다”라고 밝혔다.
국민대학교의 한 학생은 “1주기가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부는 진상조사에 대해서도 전혀 진행하고 있지 않다”며 “아직도 9명의 실종자가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인양에 대한 말을 꺼내지도 않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선체가 온전하게 인양되면 얼마나 많은 증거들이 발견되고 책임자 처벌에 가까워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그런지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에 대해 정부는 폄훼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문화제를 마친 후 시민들은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달빛 행진’에 참여해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관련기사]

나혜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


내가 만난 '세월호 파란바지 아저씨'

15.03.21 14:48l최종 업데이트 15.03.21 14:48l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0일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의 항소심 3차 공판을 취재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이라 고속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이내 잠에서 깨어버렸다. 뚜렷한 형상도, 줄거리도 없는 짧은 꿈이었지만 찝찝했다. 꿈에서 본 것은 분명 세월호 희생자였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선원들의 1심 공판을 보러 다닐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다. 감각은 힘이 셌다. 생존자의 증언이나 현장 동영상, 사진 등 법정에 나오는 자료들을 눈과 귀로 접하며 수시로 2014년 4월 16일을 거듭 복기하는 상황은 예상보다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참사 관련 이미지가 꿈속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한동안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파란바지 아저씨' 김동수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19일,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경험이었다. 이날 그는 제주도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김씨의 딸은 의식을 잃고 화장실에 쓰려져있던 그를 발견한 뒤 병원으로 옮겼다. 상태가 나아진 김씨는 20일 세월호 피해자들을 돕는 경기도 안산시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로 떠났다.

'그날 그 배'의 영웅은 스스로 죄인이라 말했다
기사 관련 사진
▲ 침몰한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인천발 제주도행 여객선 '세월호' 주위에서 수색 및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그의 고통이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사진과 증언 등으로 참사를 간접 체험했을 뿐인 나와 달리 김씨는 '그날 그 배'에서 살아 돌아왔다.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울어진 세월호의 3~4층 갑판을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배가 완전히 뒤집히던 때까지 다른 승객들을 도왔다. 그럼에도 김씨는 괴로워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채 살아 돌아온 죄인이라며.

참사 당일부터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김씨는 늘 자책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3일, 제주도의 한 병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부터 변함없었다. 1시간 가까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씨는 해경의 무능을 질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중간 중간 목소리가 잦아지던 순간이 있었다. '죄책감'을 털어놓을 때였다. 김씨는 참사 당일 기억에 드문드문 빈 곳이 존재한다고, 죄책감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해경은 살릴 마음이 없었다").

"(구조된 다음) 진도체육관에 가보니까 부모들이 와서 통곡하는데… 살아온 게 죄인이라고… 그때 그 감정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그 죄책감에… (4월 16일) 오후 7시 넘어서 체육관에서 나왔다. 미안하니까 우리(화물기사들)는 광주라도 보내달라고. 빨리 제주도로 가야겠다고. 학생들은 계속 시신으로 올라오고, 학부모들은 계속 울고, 찾고 난리인데 (우리가) 어떻게 계속 거기 있을 수 있겠나."

끝내 구조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거듭 미안해하던 그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말이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너무 괴로워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병실을 나선 게 전부였다. 

그와 가족의 생계수단인 4.5톤짜리 화물트럭도 세월호와 함께 검푸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3개월 정도 나오는 정부의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 자신을 줄곧 괴롭히고 있는 죄책감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2014년 10월 21일 세월호 선원들의 1심 28차 공판에서 여전히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아침마다 바다에서 학생들 헛것을 봅니다"). 

"어제 자살을 하려고 했다. 한라산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다. 아침마다 바다에 나가 학생들 헛것을 본다. …(중략)… 해경이 저한테 와서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선장이 살인자죠?" 이랬다. 선장이 살인자면, 해경도 살인자다. 나도 살인자다."

4월 16일 세월호에 갇힌 채 버티고 있는 사람들
기사 관련 사진
▲ 아들 사진 매만지는 엄마 '영인아 빨리 돌아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한 달 앞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세월호 인양촉구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단원고 박영인 학생의 어머니 김선화씨가 아들의 사진을 만지고 있다.
ⓒ 유성호

2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그와 마주쳤다. '부실구조' 책임으로 기소된 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의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직후였다. 마른 편이지만, 오랜 마라톤 경력으로 다부진 느낌을 줬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다. 누가 봐도 김씨는 수척한 모습이었다. 얼굴빛도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얼굴이 안 좋다,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김씨는 "그냥 뭐…"라며 멋쩍어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말자는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3월 20일 그는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비행기를 탔다. 제주공항으로 찾아온 취재진에게 김씨는 호소했다. "살아남은 우리에겐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은 다 끊긴 데다 마음 놓고 치료받기도 어렵다며 국가는 생색만 내고 있다고 했다. '왜 세월호를 못 잊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도 정말 괴롭다고 털어놨다. 

"지나가는 학생들이나 창문만 봐도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 

살아남은 자들마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고, 어렵게 꾸려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조차 못했다. 희생자 9명은 아직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진도 앞바다에 남겨져 있는 상태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참사 1주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워싱턴포스트, 북-중 접경지대 현지 리포트로 상세하게 상황 전해

북한의 성장하는 경제,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오해
워싱턴포스트, 북-중 접경지대 현지 리포트로 상세하게 상황 전해
뉴스프로 | 2015-03-20 14:17:09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워싱턴포스트, 변화 조짐 이는 북한 경제- 북-중 접경지대 현지 리포트로 상세하게 상황 전해
-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실효성 없어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은둔의 왕국’ 북한의 경제실상에 접근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13일 중국-북한 접경지대인 단동 현지 취재를 통해 북한 경제에 일어나는 변화양상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 신문이 전한 내용은 신선하면서 충격적이다.
이 신문은 북한 경제가 점차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이제 북한 주민들이 관료 보다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싶어한다는 점을 끄집어 낸다. 당이 권력을 쥐고 있는 북한 체제 구조상, 당원(관료)은 출세의 지름길이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또 하나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미국이 아무리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해도 북한은 틈새를 발견해 냈으며, 인접국인 중국이 북한과 암암리에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이 점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명박 정권은 박왕자 씨 총격 살해사건을 빌미로 대북 경협을 중단했으며, 뒤이은 박근혜 정권은 전 정권의 기조를 이어나가면서 경협 전제조건으로 북핵 포기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 경제의 변화양상은 이 같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워싱턴포스트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wapo.st/1FlX7im
North Korea’s growing economy — and America’s misconceptions about it
북한의 성장하는 경제 –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오해
Trucks cross from North Korea to China at a steady rate in Dandong, China, which is the commercial gateway to North Korea. (Anna Fifield/The Washington Post)
북한의 통상관문인 중국 단동에서 트럭들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꾸준히 건너가고 있다.
By Anna Fifield March 13
DANDONG, China — The textile factories producing “made in China” goods from compounds just across the Yalu River from North Korea offer a glimpse into a hidden world that is helping North Korea’s economy to thrive.
중국 단동 – 북한의 압록강 바로 건너편의 복합단지에서 “중국산” 제품을 생산하는 섬유공장들은 북한 경제를 번창하게 도와주는 숨겨진 세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Operated by North Koreans, the factories produce clothes and other goods that are exported under foreign-company labels, making it impossible to tell that they have been made with North Korean hands and have contributed to North Korean profits.
북한주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공장들은 외국 기업의 상표를 달고 수출되는 의류와 그 외 제품들을 생산함으로써 그 물품들이 북한 노동자들 손으로 만들어지고, 북한의 수익에 기여해왔다는 사실을 도저히 알 수 없도록 한다.
The thriving operations belie the perception in Washington that U.S. and international sanctions are working to strangle North Korea’s ability to make money. While an overwhelming majority of North Koreans live in poverty, the country’s output has been steadily increasing, and an estimate by South Korea’s Hyundai Research Institute forecasts that the North’s economy will grow this year by a whopping 7 percent.
번창하는 산업들은 미국과 세계 다른 나라들의 무역 제재가 북한의 돈벌이 능력을 조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워싱턴 행정부의 인식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압도적으로 대다수의 북한주민들이 가난 속에 살고 있는 반면, 북한의 생산량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한국 현대 경제 연구원의 평가에 따르면 올해 북한 경제는 7%의 엄청난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A lot of that growth comes through Dandong, a hive of North Korean and Chinese managers and traders, with middlemen helping them all cover their tracks. One local Chinese businessman estimates that one-quarter of this city’s population of 800,000 is involved in doing business with North Korea in some way.
그 성장의 많은 부분은 북한주민, 중국인 경영자들, 그리고 무역상들의 활동 중심지이고, 중간 상인들이 이들의 모든 행적을 숨기는 일을 도와주는 단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도시 80만 인구의 4분의 1이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거래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 중국 현지 사업가는 추정한다.
In one factory on a recent day, dozens of North Korean women sat under fluorescent strip lights sewing seams and pressing pockets on pants, some of which were destined for the United States.
최근 한 공장에서 수십명의 북한 여성들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바지 주머니를 꿰매고 다림질하는 일을 했는데 이 제품 일부는 미국으로 보내질 것들이었다.
The view of Sinuiju, the North Korean city across the river from Dandong. There’s plenty of trade across the border with China. (Anna Fifield/The Washington Post)
단동 강 건너에 있는 북한 도시 신의주. 중국과의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많은 양의 무역이 행해진다.
“They are here to make money for the country,” a North Korean factory manager said of the workers. This scene is repeated in dozens, perhaps hundreds, of labor compounds all along the border, which in effect is little more than a line on the map. The extensive range of commercial activity suggests that it would be wrong to think that China’s leadership is now so annoyed with Kim Jong Un, who took control of North Korea at the end of 2011 after the death of his father, that it is tightening the economic screws on the young leader next door.
“그들은 조국을 위해 돈을 벌려고 이곳에 와 있다”고 북한 공장 관리자가 노동자들에 대해서 말했다. 이런 장면은 사실상 지도상에서 하나의 선에 불과한 국경을 따라 위치한 모든 노동 공단에서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반복된다. 대규모 경제 활동은, 아버지 사망 후 2011년 말에 북한의 권력을 움켜잡은 김정은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현재 매우 불쾌한 나머지, 이웃 나라 나이 어린 지도자에 대해 경제를 단단히 조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This is a very sensitive part of China — during a week of reporting along the North Korean border, Washington Post reporters were monitored by police — and doing business with North Korea is a very sensitive subject.
이곳은 중국의 아주 민감한 지역이고 – 워싱턴포스트지 기자들은 북한 국경을 따라 취재하던 한 주 동안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 북한과의 거래를 하는 것도 아주 민감한 문제다.
The textile-factory manager would allow himself to be identified only as Mr. Kim; he and other North Korean businessmen who agreed to speak about their operations otherwise did so on the condition of anonymity for fear of jeopardizing their livelihoods
North Korea’s economy is still a basket case, barely more than one-fiftieth the size of South Korea’s.
섬유공장 관리자는 자신을 김 씨라고만 해달라고 했다; 그와 다른 북한 사업가들은 자신들의 생계가 위태롭게 될 것을 우려해 익명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말해주는 것에 동의했다. 한국에 비해 1/5이 겨우 넘는 규모에 불과한 북한 경제는 여전히 답이 없다.
But in talking about the changes underway, the businessmen described a North Korean economy that is increasingly run according to market principles, where people want to be in business, not the bureaucracy, and where money talks.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변화에 대해 거론하며 북한 사업가들은 북한 경제가 점차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작동하고, 관료직에 있기보다 차라리 돈을 중요시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Mr. Kim, the textile manager, said he has no qualms about making pants to be worn by men going to work in “imperialist aggressor” countries such as the United States, South Korea or Japan — the three most hated enemies of his country.
섬유공장 관리자인 김 씨는 북한이 가장 증오하는 3개의 적인 미국, 일본, 한국과 같은 “제국주의 침략자”의 나라에서 일하는 남성이 입게 될 바지를 만드는 일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He was only interested, he said, in maximizing profits for Pyongyang, wherever they come from.
“It doesn’t matter whether they’re an enemy country or not,” Kim said.
그는 북한 정부를 위한 이윤이, 어느 나라에서 오건 상관없이 이를 극대화하는 데에만 관심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적국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Westerners have only glimpses of life in the closed-off country.
서구인들은 폐쇄된 국가의 주민들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Fundamentals of capitalism
자본주의의 원칙
In the clothing factory, the women work 13 hours a day, 28 or 29 days a month, and are paid $300 each a month — one-third of which they keep. The rest goes back to the government in Pyongyang.
의류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한 달에 28일에서 29일, 하루 13시간을 일하고 300달러를 받는다 – 이 중 1/3은 자신들이 갖는다. 나머지는 북한 정부에게 돌아간다.
“Even though I want to pay them more, I have to send a certain amount home to my country, so this is all I can give them,” Kim said in his office at the factory. On his desk, an open laptop revealed that visitors had interrupted his game of solitaire.
김 씨는 공장 사무실에서 “내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지급하고 싶어도 일정 액수는 본국에 보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줄 수 있는 수준은 이뿐이다”고 했다. 그의 책상 위의 열린 채로 놓여진 노트북은 기자의 방문으로 방해받기 전까지 그가 솔리테어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The women work on the third floor, wearing their coats inside to guard against the cold, and live on the second floor in shared, dormitory-style rooms decorated with a banner declaring, “Let’s realize the revolutionary ideas of Kim Il Sung and Kim Jong Il” alongside portraits of the two former leaders, grandfather and father, respectively, of Kim Jong Un. Signs on the doors read, “Call each other comrade.”
여성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실내에서도 코트를 입은 채로 3층에서 작업하며, “수령님과 장군님의 혁명 사상을 실천하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옆에 두 지도자였던 김정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기숙사식의 2층의 방에서 공동으로 생활한다. 문에는 “서로를 동지라 부르라”고 쓰여 있다.
North Korea is thought to have at least 50,000 workers outside the country earning money for the regime, and 13,000 of them work in Dandong.
북한 공화국을 위해 최소 5만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나라 밖에서 돈을 벌고 있으며 그들 중 1만3천 명이 단동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This neon explosion of a city contrasts starkly with the North Korean city of Sinuiju, on the opposite bank of the river, where there is only a smattering of light at night.
도시의 네온사인이 급증하는 모습은 밤에 드문드문 불빛이 보일 뿐인, 강 반대편 둑의 북한 도시 신의주와 뚜렷하게 대조를 이룬다.
But there are signs of large-scale construction on the North Korean side: a half-completed apartment tower with a crane on the top and other new buildings underway. Although the traffic crossing the bridge between the two cities is far from jammed, it is constant. A steady flow of vans and container trucks, and the occasional black sedan with tinted windows, crossed in both directions over the course of a week.
그러나 북한 쪽에도 대규모 건설의 조짐이 있다: 꼭대기에 크레인이 놓여진 반쯤 완성된 아파트 건물과 다른 신규 건물들이 건설 중에 있다. 두 도시 사이의 다리를 오가는 차량들이 혼잡할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하다. 화물차와 컨테이너 트럭들, 그리고 간혹 썬팅이 된 검은색 세단까지 차량의 행렬이 일주일 동안 양쪽 방향으로 오고 갔다.
Passenger and freight trains ran regularly, carrying cargo such as steel bars for construction and unrefined gold dirt.
승객 및 화물열차들이 건설용 철근과 정제되지 않은 황금가루 등과 같은 화물을 운반하며 정기적으로 운행됐다.
Consumer goods go in the other direction. The most popular items to sell in North Korea these days are TV sets hooked up to solar panels — preferably with USB ports for watching smuggled dramas.
소비재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 요즘 북한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물품은 태양열 전지판에 연결된 TV이며, 특히 밀반입한 드라마를 보기 위해 USB 포트가 달린 TV가 선호된다.
Here, North Koreans are coming to grips with the fundamentals of capitalism, even if they still won’t use the term.
아직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하지는 않지만, 지금 북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원칙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Over dinner one night at a Chinese restaurant, another North Korean factory manager happily chatted about his corporate role models. Chief among them: the titans of South Korean conglomerates such as Samsung and Hyundai who propelled that country’s rapid economic transformation.
어느 날 중국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나누며 또 다른 북한 공장 관리자는 자신의 기업 롤모델에 대해서 기꺼이 이야기했다. 그 중 주요한 것들은 빠른 경제적 변혁을 추진시켰던 삼성과 현대 같은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었다.
What had he learned from those tycoons in the South?
그가 남한의 이런 거대 기업들로부터 배운 것은 무엇인가?
“Perseverance, the need to diversify,” said the businessman, who manages a factory that produces goods related to the construction industry and was sporting a Tissot watch. “We’re living in a world where new things keep appearing. Who would have thought Nokia would have collapsed? Their mistake was sticking with the same product.”
건설 산업과 관련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관리하는 그 사업가는 티쏘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끈기, 다양화의 필요성”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이 계속 등장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노키아가 망할 수도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나? 그들의 실수는 같은 제품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He has absorbed some of these lessons from the outside world, describing steps he has taken to increase productivity at his factory — mainly by creating better working conditions so his employees want to work more — and boost his profits.
그는 바깥 세계에서 얻은 이런 일부 교훈을 받아들여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행한 조처들, 즉 더 나은 작업환경을 만들어 직원들이 더 많이 일하길 원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윤을 증대시킨 것을 설명했다.
This is emblematic of the tentative economic experimentation taking place since Kim Jong Un became leader.
이것은 김정은이 지도자가 된 이후로 일시적으로 실시된 경제적 실험을 보여주는 것이다.
Reports from inside North Korea suggest that even state-run companies are increasingly operated according to market principles, with managers empowered to hire and fire workers — previously unimaginable in the communist nation — and conduct businesses the way they see best.
북한 내부로부터의 보고서는 심지어 국영회사들도 점점 더 시장 경제에 따라서 운영되며, 매니저들은 노동자들을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권한과 그들이 최고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는데, 이런 일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Obstacles, opportunities
방해 요소들과 기회들
There are frustrations here. The biggest one — literally — has to be the four-lane, $350 million New Yalu River Bridge, a huge steel structure that traverses the river from a glitzy urban development, Dandong New District.
여기에 불만이 있다. 가장 큰 불만은 문자 그대로, 3억5천만 달러를 들인 4차선 도로, 화려하고 도시적인 신(新) 단동 지구로부터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인 신(新) 압록강 대교에 관한 것이다.
The whole development project is now on ice, partly because of the demise of Jang Song Thaek, the businessman and uncle of Kim Jong Un who was executed at the end of 2013, partly because of his “decadent capitalist lifestyle.” Since then, Jang’s colleagues have been recalled to Pyongyang or have disappeared — sometimes with millions of dollars in Chinese money, according to businessmen here.
“타락한 자본주의 생활 방식”을 포함한 이유로 2013년 말 처형된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사업가 장성택의 사망으로 이 전체 프로젝트는 현재 보류된 상태다. 그 이후, 장 씨의 동료들은 평양으로 다시 불러들여 졌거나 종적을 감췄는데, 현지 중국인 사업가들의 말에 따르면 때로 수백만 달러 상당의 중국 화폐를 가지고 사라졌다고 한다.
Beijing is clearly none too happy about this, and smaller Chinese operators also have complaints about dealing with North Korea.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전혀 유쾌해 하지 않고, 작은 규모의 중국인 사업가들 또한 북한과 거래하는 것에 있어 불만을 가지고 있다.
One Korean Chinese businessman named Ri who exports raw materials from North Korea said there are lots of “fraudsters” there.
북한의 원자재를 수출하는 조선족 사업가 리 씨는, 북한에 많은 “사기꾼들”이 있다고 말했다.
“Sometimes the North Korean takes the money, but then you can’t find the person,” he said. “As the middleman, I have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at. There are some people here who’ve committed suicide because they’ve lost everything.”
“가끔은 북한 사람이 돈을 가져가고는 연락이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럴 때는 중개인으로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일 때문에 전 재산을 잃어 자살한 중개인들도 있다.”
A well-to-do Chinese couple who run an exporting business in Dandong — she was carrying a Chanel bag, he had an Armani sweater — could barely conceal their distaste for the state across the river. They used to export kitchen goods to North Korea but have stopped, saying it was too hard to make money there.
단동에서 수출업을 하는 부유한 중국인 부부 – 부인은 샤넬 백을 들고 남자는 아르마니 스웨터를 입었다 – 또한 강 너머 나라에 대한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북한으로 주방용품을 수출하곤 했지만, 그곳에서 돈을 벌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Asked if they had seen signs that North Korea is opening up its economy, the woman said, “Oh, you’re so naive!” “I haven’t seen any signs of that,” her husband chimed in. “We built this whole new bridge, but North Korea hasn’t built anything.”
북한이 경제를 개방하고 있다는 신호들을 보았는지 묻자, 그 부인은 “당신은 너무 순진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조짐은 보지 못했다”며 남편이 끼어들었다. “우리가 이 신 압록강 대교를 모두 지었고 북한은 아무것도 짓지 않았다.”
But while the political chill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might have had an impact on state-level economic cooperation, and those who played in the big leagues with Jang might have been scared away, there are still plenty of small businessmen looking for — and finding — ways to make money.
그러나 북한과 중국 사이의 정치적 냉기가 국가적 차원의 경제 협력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고, 또 장 씨와 함께 큰 무대에서 사업하던 사람들이 겁이나 그만뒀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벌 궁리를 하고 그에 성공하는 중소 기업인들은 충분히 많다.
“These guys are out there to make a buck — they’re not the World Food Program — and as long as these opportunities exist, private, profit-seeking, market-conforming trade and investment will continue,” said Marcus Noland, an expert on the North Korean economy at the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in Washington.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다 – 그들은 <세계 식량 계획> 등의 자선단체가 아니다 – 그리고 이런 기회들이 존재하는 한, 민간의,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 순응적 무역과 투자는 계속될 것이다”고 워싱턴에 위치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북한 경제 전문가 마커스 놀랜드 박사는 말했다.
Take Zhang, a Korean Chinese merchant who runs one of the 30 or so Chinese businesses in Dandong that ship fabric to North Korea to be turned into clothes there for European companies. Zhang said that he employs a few dozen people on the Chinese side of the border but that his workforce in North Korea fluctuates between 3,000 and 10,000 people, depending on how many orders he has.
직물을 북한으로 운송하여 북한에서 유럽회사들을 위해 옷을 만드는 사업을 하는 단동 소재 30여 개 정도의 중국 기업들 중 한 곳을 운영하는 조선족 상인 장 씨를 예를 들어보자. 장 씨는 자신이 국경의 중국 쪽에서는 수십 명을 고용하나, 북한에서는 자신이 받은 주문량에 따라 삼천에서 만 명 사이를 오가는 숫자의 노동자들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North Koreans are particularly good at painstaking, manual work such as lace-making and hand-stitched beadwork. He pulls out his smartphone and shows a photo of a blond woman wearing an intricately embroidered pink and white dress, a product of North Korean labor.
북한 사람들은 특히 레이스를 뜨고 손으로 직접 꿰매는 구슬공예 같은 힘든 수공작업에 능숙하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어 북한에서 생산된 정교하게 수를 놓은 분홍과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금발 여인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Zhang, who speaks Korean and Chinese, does not even need his passport to enter North Korea. He has a permit that allows him to travel back and forth freely. He talked about how he’s developed good relations with his business partners there.
한국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장 씨는 북한에 입국하는데 여권조차 필요하지 않다. 그는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허가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떻게 그가 북한에서 동업자들과 좋은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Over the past few years, I’ve built trust with the North Koreans,” he said. “Every year around the birthdays of the leaders, I go there in person and take fruit and flower baskets. I pay my respects to the leaders, and I’m sure my clients report this back to the authorities.”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북한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왔다”고 그는 말했다. “매년 최고 지도자 탄생일쯤에 나는 직접 과일과 꽃바구니를 가지고 그곳에 간다. 나는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내 고객들이 이것을 당국에 보고할 것으로 확신한다.”
Moving money
자금 이동
For North Koreans who make money on the Chinese side of the border, one question is how to get it back to Pyongyang.
북·중 접경지역의 중국지역에서 돈을 버는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한 가지 문제는 번 돈을 어떻게 북한 정부에게 보내는가 하는 것이다.
Since the start of the Korean War in 1950, when it included North Korea in the Trading With the Enemy Act, the United States has sought to restrict North Korea’s ability to bank and trade.
1950년 한국전 발발 이후 적성국 교역법에 북한을 포함시킨 미국은 북한의 은행 및 무역거래를 꾸준히 제한시켜 왔다.
This has tightened markedly over the past decade, with the United States imposing rounds of sanctions designed to curtail North Korea’s ability to procure materials for its nuclear weapons program by shutting the country out of the international financial system. The latest measures were imposed in January as punishment for the hacking of Sony Pictures Entertainment.
이러한 현상은 미국이 국제금융시스템에서 북한을 차단함으로써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위한 자재를 조달하는 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만든 제재를 하면서 과거 10여 년간 현저하게 강화됐다. 가장 최근의 조치는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해킹에 대한 처벌로 지난 1월에 취해졌다.
The restrictions hurt at first. But North Korea has wised up. It uses small banks in China or Russia to transfer money — several banks in Dandong said it was possible to wire money to Pyongyang, for a hefty commission — or simply reverts to old-fashioned suitcases full of cash, which are much harder to stop with sanctions.
그러한 규제들이 처음에는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북한은 방법을 찾아냈다. 북한은 자금 전송을 위해 중국이나 러시아에 있는 작은 은행들을 이용하거나 – 단동에 있는 몇몇 은행들은 두둑한 수수료만 내면 평양으로 자금 이체가 가능하다고 했다 – 혹은 옛날식으로 현금을 가득 채운 여행 가방으로 나르는 방식으로 되돌아가기도 하는데 이를 제재로 막기는 훨씬 더 힘든 일이다.
There is a sense in Dandong that sanctions are an issue for Washington and Beijing but that they don’t apply here on the border.
제재 조치가 미국과 중국에게는 문제지만, 어쩌면 접경지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단동에서 느껴지는 정서다.
“I’m just a local businessman,” Zhang said, adding that sanctions “apply to big, international companies, not to private individuals like us,” clearly considering his business with North Korea domestic. “Anyway, we find ways to get around them.”
“나는 현지 사업가일 뿐이다”고 장 씨는 말했고, 제재 조치는 “대기업이나 국제기업에 적용되지 우리와 같은 개인 사업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북한과의 거래를 국내 문제로 본다고 덧붙였다. “어쨋튼 제재 망을 피하기 위해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Ri, the Korean Chinese trader, said that his business partners always want cash.
조선족 무역업자 리 씨는 자신의 사업 거래처들은 항상 현금을 원한다고 말했다.
“So they come out or I go into North Korea to settle the bills,” he said in his office in Dandong, running wooden beads through his fingers. “They like to be paid in U.S. dollars, euros, Japanese yen.” (North Koreans returning to Pyongyang apparently like to carry American dollars, for the cachet.)
“그래서 거래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그들이 이곳에 오거나 내가 북한에 들어간다” 그는 염주를 손에 굴리며 단동의 사무실에서 말했다. “거래업자들은 미화, 유로화, 엔화로 지급받길 원한다.” (평양으로 돌아가는 북한 사람들은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미화를 소지하고 싶어한다.)
Everyone interviewed said that it is entirely possible to send cash to North Korea — people usually just carry it in bags over the bridge — and that while there might technically be limits on how much a person can carry, in practice there are no checks, or at least no checks that cannot be overcome by greasing a few palms.
인터뷰에 응한 모든 이들이 북한에 현금을 보내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했고 – 사람들은 대개 가방에 현금을 넣어 다리를 건넌다 – 개인이 운반할 수 있는 현금 액수의 제한이 이론적으로 있는 반면에 관행적으로는 검문이 없거나 설령 검문을 한다 해도 약간의 뇌물을 주면 못 넘을 일은 없다.
But the regime doesn’t always want cash. The North Korean businessmen who talked to The Post said they buy goods according to orders from Pyongyang and ship those back instead. Recently, they have been asked to send back solar panels and generators to help deal with North Korea’s chronic electricity shortage.
그러나 북한 정권은 항상 현금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북한 사업가 장 씨는 북한 정권의 주문에 따라 물건을 구입해서 현금 대신 그 물건들을 보낸다고 말했다. 최근에 그들은 북한의 고질적인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태양열 전지판과 발전기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Like lips and teeth’
‘순망치한(역주: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사자성어로서 밀접한 관계를 나타냄)’
Relations between China and North Korea are complicated, but one thing is clear: Politics and economics are not entirely intertwined.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복잡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치와 경제는 완전히 엮여 있지는 않다.
“There is a lot of jumping to conclusions in Washington and discussion about China showing a strong hand to North Korea,” said John Park, a North Korea sanctions expert at MIT. “I don’t see the evidence for that.”
“미국 정부에서는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일이 많이 있고 중국이 북한에 강경책을 쓴다는 토의도 있다”고 MIT 대학의 북한 제재 전문가 존 박이 말했다. “그런 증거는 보지 못했다.”
Although trade appears to have dipped recently, that is the result of sharp declines in prices of commodities such as coal and iron ore — two of North Korea’s biggest exports to China — rather than some kind of punishment for Kim’s lack of deference to Xi Jinping, the Chinese president.
무역이 최근에 저조한 듯 보이지만 이것은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에 대해 김정은이 존경심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처벌이라기보다는 북한의 대중국 수출의 가장 큰 두 품목인 석탄과 철강석과 같은 원자재의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The young North Korean leader has not made the traditional pilgrimage to visit the state’s patron.
나이 어린 북한의 지도자는 북한의 후원자를 방문하는 전통적인 순례를 아직 행하지 않았다.
But pragmatic China, Park said, does not want North Korea becoming unstable and risk unsettling this precarious northeastern part of China.
하지만 실용주의적인 중국은 북한이 불안정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이 위태로운 중국의 남동부를 동요시킬 위험을 무릅쓸 생각이 없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As you must have watched lots of historic soap operas in South Korea, you will know that China and North Korea are like lips and teeth,” said the North Korean factory manager over dinner, repeating an old saying about the neighbors. “Economically, nothing has changed.”
“남한의 TV 사극에서 많이 보아왔듯 중국과 북한은 ‘순망치한’의 관계다”고 이웃에 대한 사자성어를 언급하며 저녁 식사 중 북한 공장 관리자가 말했다. “경제적인 면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Yoonjung Seo and Hallie Gu contributed to this report.
서윤정과 구할리가 이 보고서에 도움을 줬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536 

왕이 중 외교부장 "한국, AIIB 진일보한 검토 중"


'사드 배치' 관련 거론 않아, "좋은 얘기했다" 만족 표시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신고하기
승인 2015.03.21  12:16:40
트위터페이스북
  
▲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1일 오전 한중 외교장관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와 관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1일 한국 정부가 참여 의사를 내비쳤음을 거듭 확인했다. 한국의 AIIB 참여가 기정사실화되는 기류다.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방한 중인 왕 부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 정부가 이미 밝히지 않았나, (AIIB 관련) 진일보한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라고 말했다. 전날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 이웃인 한국과 일본, 아시아 태평양의 중요한 국가인 호주가 앞으로 관련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왕이 부장은 이날도 한국의 AIIB 참여를 희망했고 우리 측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AIIB' 문제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있다. 중국 주도로 이달말 출범하는 이 은행에 대해, 미국은 자국 주도의 금융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각국에 '불참'을 종용했으나, 영국을 필두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줄줄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오히려 미국이 왕따가 되는 분위기다.
아시아 주요국 중 현재까지 AIIB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나라는 이 지역 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호주 등이다.
한.미.중 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에 대해, 왕이 부장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회담의 의제도 아니었고 거론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사드에 관한 중국의 관심과 우려를 중시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예정됐던 1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회담과 관련, 왕이 부장은 "주로 오후에 열리는 3국 외교장관회의 진행을 위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외교장관회의가 정상회의 사전준비의 성격이 있는 만큼 '3국 정상회의 개최 문제'가 심도 깊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가능한 빨리 열자는 입장이나 일본과 영토.과거사 문제로 대립 중인 중국은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왕이 부장은 "물론 남북문제나 공통관심사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폭넓은 공통인식에 이르렀다"며 "좋은 얘기했다"고 회담 성과에 만족을 표시했다.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북핵 불용 및 북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공동인식을 바탕으로 기존의 전략적 협력 및 소통을 가일층 강화해 나가기로" 하고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과 핵능력 고도화 차단을 위한 의미있는 대화 재개를 위하여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 문제는 한번 훑듯 지나갔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또 "왕 부장은 금년 9월 3일 중국 정부가 주최하는 전승기념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희망하였으며, 윤병세 외교장관의 중국 방문도 초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올해 1월 방한했던 왕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박 대통령 초청 의사를 처음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길어지면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예정보다 30분 가량 늦은 11시 30분께 시작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아베 2기 내각의 외무상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방한했다.
오후 2시에 3국 외교장관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다. 오후 3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중일 외교장관회담에 이어 오후 4시에는 제7차 외교장관회의가 열린다.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는 이 회의의 주요 의제는 3국 협력복원 방안과 3국 정상회의 개최 문제다.
왕이 부장과 기시다 외무상은 20일 저녁 방한했다. 이들은 21일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윤병세 장관 주최 만찬 참석을 끝으로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일정을 마치고, 22일 오전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1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