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3일 목요일

처음부터 수사관은 무고죄 운운…“내 말 믿어줄까, 두려웠다”

[성범죄법 잔혹사]⑤처음부터 수사관은 무고죄 운운…“내 말 믿어줄까, 두려웠다”

이혜리·유설희·허진무 기자 lhr@kyunghyang.com
입력 : 2020.04.24 06:00 수정 : 2020.04.24 06:02

고소 못하는 피해자
[성범죄법 잔혹사]⑤처음부터 수사관은 무고죄 운운…“내 말 믿어줄까, 두려웠다”
‘왜 바로 고소 안 했나?’ 
취조하듯 캐묻는 수사관…
기나긴 사법절차에도 지쳐 
법적 호소 꺼리는 이유로
“2차 피해 우려” 최다
 
신고·고소한 경우는 
“고통 벗어나 살기 위해서”
“또 다른 피해 생길까봐”
 
디지털 성폭력 신고 땐 
사진 등 증거 요구도
 
‘나만 참고 입 다물면 돼.’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인 ㄱ씨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가해자는 대학교수였고, ㄱ씨는 제자였다. 피해는 고통스러웠지만 고소할 수 없었다. 좁은 학계에서 보는 눈이 많았다. 그대로 공부하면 미래가 보장돼 있었다. 
ㄱ씨가 가해자를 고소한 것은 학교에서 가해자의 다른 성폭력이 공론화되면서였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침묵하는 사이 다른 피해자가 생긴 겁니다. 전 피해를 입고 문제제기를 안 해 다른 피해자를 만든 잘못을 했습니다. 가해자는 감옥에 가야 합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주변에선 ㄱ씨의 고소 결심을 말렸다.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학계에서 매장당할 것이라고 했다. 
고소했지만, 고소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기까지 1년이 걸렸다. 결국 ㄱ씨는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여기는 희망이 없어요.”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가 ‘마녀’(활동명)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성폭력 피해자의 사례다. 설문조사에 응한 피해자 64명 중 30명은 신고·고소를 하지 못했다. 나머지 중에서도 상당수가 피해가 발생한 지 한참 지나 고소를 했다.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고소 후 통과해야 할 수사·재판 절차의 높은 관문이 두려워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고소하지 말라는 회유를 받아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피해 후 즉각 고소하지 않은 경위를 캐묻는다. 2차 피해를 우려한 피해자들은 고소를 주저하고 포기한다. 
피해자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사법시스템은 가해자를 처벌하기는커녕 또 다른 암수범죄(숨은 범죄)만 만들어낸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소와 경찰·검찰의 수사를 둘러싼 악순환의 고리다.
■ 왜 신고하지 못했나 
설문조사 응답자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신고·고소 등 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신고·고소 후 많은 시간과 비용 소모, 피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반면 수사·재판에 의해 가해자가 정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은 피해자들에게 없었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의 말이다. “고소를 한 뒤 겪게 될 불이익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 돈도, 사람도 없다. 기억 하나만 가지고 싸우려면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데 그럴 용기도 없었다. 이혼 후 가장으로서 딸들을 키워야 했기에 포기하는 게 낫다고 봤다.”
다른 피해자도 “수사 과정에서 겪게 될 일들이 두렵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한 강간미수 피해자는 이런 말도 했다. “뉴스나 주변에서 주는 신호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에 고소하는 건 모든 것을 걸어도 어렵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의심하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더 큰 상처를 받을 것이 뻔하다. 더구나 사건 당시 난 40대 후반이었고, 나이가 많은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겪을지 충분히 예견되어 포기했다.” 
10살 때 아버지 친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는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오히려 부모로부터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해자를 고소하는 순간 피해자의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공동체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가족들은 내 보호자가 아니었다.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소문이 나면 그곳에서 못 산다고, 잊어버리라고 그랬다. 그래서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는데 여전히 고통스럽다. 겨우 일상생활을 하고 있지만 부모가 아직 그곳에 있어서 일이 있으면 내려가야 한다. 죽고 싶다.”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고용관계에 있는 경우엔 고소가 생존권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한 강간 피해자는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라 즉각적인 항의도, 고소도 하지 못했다”며 “가해자가 해당 업계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피해를 알리면 나는 매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은 피해자가 신고·고소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따진다. 이는 피해자에게 큰 부담이다. 여러 피해자들이 ‘기억 외에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신고·고소하지 못하는 이유로 설명했다. 
■ “살기 위해서” 성폭력 피해 고소 
가해자를 신고·고소한 피해자들은 어떤 심정으로 신고·고소를 할까. 피해자들의 답변에선 그들이 처한 상황이 드러난다. 피해자들의 삶은 피해를 입은 순간부터 뒤틀리기 시작한다.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가 잘못해 범죄가 발생했다’는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가해자를 신고·고소한 피해자들은 ‘살기 위해서’ 했다고 말했다. 한 피해자는 “고소를 해야 내가 숨을 쉴 것 같았다. 과거가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고 했다. 다른 피해자는 “이 일을 해결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내가 아프고 힘든 게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법으로 인정받고 싶었다”는 말도 있었다. 
자신의 피해를 극복하고 동시에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통해 신고·고소로 나아간 경우도 있었다. 한 피해자의 말이다. “몇 년간의 연애를 하면서 가해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데이트폭력을 당했지만 그게 폭력인지도 몰랐다. 자살을 몇 번 시도하고 관계를 정리한 수년 뒤, 다른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당한 피해를 폭로한 글을 보고서야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깨달았다. 가해자의 행위가 범죄라는 것. 그것을 공적으로 인정받는 게 내 피해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강요된 망각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을 마무리해야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피해자는 “억울했다. 나만 과거에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가해자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절박함을 느끼는 피해자도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자신이 고소하지 않고 있다가 다른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안 뒤 고소한 경우도 있었다. “내가 침묵하는 게 또 다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죄책감이 들었다. 늦었지만 내가 싸워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몇 피해자들은 수사·재판 절차가 그토록 힘들 줄 알았다면 고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강간을 당하고 다음날 바로 고소했다. 피해를 입었으니 고소한 것이다. 그때는 왜 다른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당해도 고소하지 않으려 하는지 몰랐다. 이렇게 힘들 줄 미리 알았다면 과연 같은 선택(고소)을 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의 말이다.
■ 수사기관의 2차 가해 
설문조사에서는 피해자가 고소 이후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으면서 2차 가해를 당한 사례가 드러났다. 수사기관이 별다른 근거 없이 가해자를 옹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사기관으로부터 ‘피해자가 사회생활을 많이 안 해봐서 남자를 잘 모른다’는 지적을 받아 충격을 받은 피해자도 있었다. 이 피해자는 불이익을 받을까봐 항의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를 신고했는데 수사기관으로부터 되레 무고죄도 함께 검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조사 도중 경찰관이 내게 책임을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요새는 무고도 많다’면서 ‘성폭력 사건 접수를 하면 무고 가능성도 같이 검토하고 있다’라고 했다. 나를 믿지 않는 수사관 앞에 있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모든 말을 믿어달라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무고를 염두에 두고 조사를 하겠다는 수사관 앞에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피해자가 얼마나 될까. 성폭력 자체도 너무 힘든데 그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간 경찰서에서도 이런 취급을 받으니 미칠 것 같았다.” 대검찰청·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2017~2018년 기준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인원은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인원의 0.78%에 불과하다. 
수사기관이 피해자에게 진술 조사를 넘어 피해 재연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한 피해자는 “강간 피해를 입고 즉시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물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였는지 피해 장소로 직접 가서 재연을 해보자고 했다”며 “거부했더니 물증 없이 진술만으로는 불리해진다며 압박을 해서 기소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너무 불안했다”고 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수사기관의 성폭력 피해 재연 요구는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그 밖에 조사 때 신뢰관계인의 동석 제한, 조서에 피해자 신원보호를 위한 가명 사용 불허, 대질 조사 종용, 개인정보 유출 등이 수사기관이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례로 꼽혔다.
[성범죄법 잔혹사]⑤처음부터 수사관은 무고죄 운운…“내 말 믿어줄까, 두려웠다”
■ 피해 재생산되는 디지털 성폭력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영상·사진이 온라인상에서 한번 유포되면 피해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피해는 심각하지만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수사기관의 이해도가 떨어지고, 증거 수집과 가해자 추적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맡기는 사례도 있다.
한 피해자는 “지인능욕이라는 형태로 합성을 당해 경찰서에 갔더니 찾을 수 없다고 돌려보내서 포기하고 왔다”고 했다. 다른 피해자는 “트위터를 하는 친구에게 내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라 경찰서에 갔다”며 “그런데 경찰이 그 자리에서 ‘요새 이런 사건이 많은데, 트위터는 잡기 어렵다. 가해자를 알아오든지 해라’라며 일단 자료만 두고 가라고 했다”고 답변했다. 이 피해자는 “수사를 안 하는 경찰은 왜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피해자에게 가해자 잡는 것까지 다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어쩌라는 건지. 문제제기 방법을 모르는 피해자들도 많은데 잘 모르면 앉아서 당한다”고 했다. 
2008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성폭력 범죄는 실제 사건의 12.5%만이 공식 범죄통계에 기록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의 87.5%는 피해를 입고도 신고·고소하지 않는 것이다. 

백혈병 딸 떠난지 13년만에 삼성서 사과편지 받았지만…

등록 :2020-04-24 05:00수정 :2020-04-24 06:08


반도체공장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씨
아버지 앞으로 딸 생일날 편지 날아와
2년전 ‘반올림-삼성’ 중재협약 따라
삼성서 피해자에 개별사과문 발송

진정성 기대한 황씨 “두루뭉술” 허탈
“사망 인과관계·책임자 처벌 언급없어”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2017년 3월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에서 투병 시절 딸의 사진이 담긴 손팻말을 든 채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H6s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2017년 3월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에서 투병 시절 딸의 사진이 담긴 손팻말을 든 채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H6s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급성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대표)씨 앞으로 지난 21일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보낸 사과편지였다.

“고 황유미님과 가족분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좀더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중략) 고통을 겪으신 모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7년 3월6일 유미씨가 숨진 지 13년 만에 황씨가 삼성 쪽으로부터 받은 첫 개별 사과편지다. 반올림 관련 피해자들에게 동일한 편지가 발송됐다.
물론 이번 편지가 삼성 쪽의 첫 사과는 아니다. 2014년 5월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반도체부품 부문장)이 첫 공식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희 사업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고 그분들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셨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로,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모임인 반올림 쪽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과 내용에 반도체와 백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대목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 반올림의 장기 농성이 시작됐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페이스북에 23일 올린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반도체 백혈병 관련 첫 ‘개별 사과문’. 황상기씨 제공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페이스북에 23일 올린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반도체 백혈병 관련 첫 ‘개별 사과문’. 황상기씨 제공

오랜 갈등에 마침표가 찍힌 건 2018년 11월23일 공식 사과를 포함한 조정위원회의 중재 판정을 양쪽이 수용하기로 합의하고 이행협약을 맺으면서다. 조정위원회 권고에 따라 삼성전자의 사과문도 발표됐다.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및 엘시디(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로이 추가됐다. 백혈병 발생의 인과관계 인정이 아닌, 부분적 관리 책임을 인

정한 표현으로, 힘들게 절충안이 만들어진 결과다. 중재안이 수용되면서 2015년 10월7일 시작해 1023일 동안 계속되던 농성도 끝났다.
공식 사과 17개월 만에 피해자들에게 개별 사과문이 발송된 이유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중재협약은 반올림 연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끝낸 보름 안에 피해자들에게 개별 사과문을 발송하기로 했다. 최근 이들에 대한 보상이 마무리됨에 따라 개별 사과문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중재협약이 개별 사과문의 내용까지 적시한 건 아니지만, 이번 개별 사과문의 내용은 앞서와 다르지 않다. 2018년 당시 ‘충분치 않지만 삼성전자의 다짐’으로 받아들이겠다던 황상기씨의 남은 기대도 무너졌다.
황씨는 2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두루뭉술한 사과다. 받아보는 처지에선 사과인지 아닌지 명확한 게 하나도 없어 어리둥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사과한다고 했는데 어떤 유해인자 때문인지 그 성분과 노동자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무엇인지 또 산업안전 관리 소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어떤 것인지 등 구체적 언급이 없다”며 사과의 진정성 부족을 거듭 지적했다. 개별 사과문 발송으로 중재협약에 따른 지원보상과 사과 절차는 마무리됐지만, 거듭된 사과도 피해자 유족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황씨에게 삼성 쪽의 사과편지가 도착한 4월21일은 숨진 유미씨의 35번째 생일이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백남기 농민사건에서야... 헌재의 뒤늦은 결론

20.04.23 18:13l최종 업데이트 20.04.23 18:27l


물대포에 실신한 농민, 생명 위독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물대포에 실신한 농민, 생명 위독 2015년 11월 15일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3대 6이 8대 1로 바뀌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숨졌다.

23일 헌법재판소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농민 백남기씨에게 물대포를 일직선 형태로 살수(직사)한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2014년 김이수·이정미·서기석 재판관이 낸 소수의견이 마침내 다수의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당시 백씨는 물대포에 머리와 등, 가슴 윗부분을 맞고 쓰러졌다. 가족들은 경찰의 물대포 직사가 위헌이라며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백씨는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2016년 9월 25일 세상을 떴다.

헌법소원은 청구인의 기본권 침해를 회복하기 위한 제도다. 이 사건처럼 당사자가 사망한 뒤에 나오는 결론은 어느 쪽이든 효과가 없다. 이 때문에 보통 청구인이 사망하면 심판 자체가 중단된다.

그러나 헌재는 고민 끝에 "심판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직사살수행위는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며 헌재는 직사살수행위가 헌법에 합치하는지 여부에 대한 해명을 한 바 없다"는 이유였다. 다만 이종석 재판관은 가족이 먼저 헌법소원을 제기한 뒤 백씨를 청구인으로 추가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사건을 판단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반대했다.

사건 전반을 살펴본 재판관들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물대포 직사는 위헌'이라고 결론 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당시 경찰이 시위대 해산에 꼭 살수가 필요했는지, 특히 백씨가 시위대와 떨어져 홀로 경찰버스에 연결된 밧줄을 끌어당기는 상황에서 반드시 그에게 물대포를 쏴야 했는지, 살수요원들의 시야가 제대로 확보됐는지, 가슴 윗부분을 겨냥한 직사살수의 위험이 있는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경찰이 백씨의 머리와 가슴 윗부분을 향해 약 13초 동안 직사했고, 그가 쓰러진 뒤에도 백씨와 그를 구조하던 시위대 등 5명을 향해 15초가량 추가 살수했다. 헌재는 이 일로 백남기씨가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 당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또 지연된 정의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날 헌재에서는 2015년 12월 고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이 경찰의 직사살수 행위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진행한다. 왼쪽부터 문형배·이영진·이은애·이선애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재소장, 이석태·이종석·김기영·이미선 헌법재판관. 2020.4.23
▲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날 헌재에서는 2015년 12월 고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이 경찰의 직사살수 행위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진행한다. 왼쪽부터 문형배·이영진·이은애·이선애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재소장, 이석태·이종석·김기영·이미선 헌법재판관. 2020.4.23
ⓒ 연합뉴스

경찰의 물대포 사용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부터 문제됐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참가자들의 안전까지 위협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26일 헌재는 처음으로 물대포 직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 판단했다. 2011년 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고막이 찢어지고 뇌진탕을 입는 등 기본권을 침해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이었다.

"근거리 직사 살수는 발사자의 의도이든 조작실수에 의한 것이든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위헌'이라고 본 사람은 김이수·서기석·이정미 재판관 3명뿐이었다. 다수의견은 이미 집회가 끝나서 위헌 여부를 판단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살펴보더라도 "근거리 물포 직사 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관련 기사 : "물대포 직사는 치명적" 헌법재판관 우려 현실로).

그리고 1년 뒤, 백남기씨가 쓰러졌다.

백씨 변호인단 단장인 이정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헌재의 2014년 판단이 매우 아쉽다"고 했다. 그는 "당시 경찰이 '안전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의견서를 내자 재판관들이 반복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런데 백남기씨뿐 아니라 세월호 집회에서도 계속 (물대포 사용에 따른 피해가) 반복됐다, 헌재가 그때 만약 헌법적 판단을 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그래도 헌재가 2018년 5월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으면 안 된다'고 결정한 데 이어 '직사로도 쏘면 안 된다'고 한 것은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찰이 집회에서 살수차를 이용하는 것은 해산 목적인데 최루액을 못 넣고 직접 쏘지도 못하면 물대포는 집회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단이 안 된다"며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높아진 만큼 경찰이 과감하게 살수차 운영지침 자체를 폐지하는 것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또 국회가 살수차 등 위험한 장비의 사용 금지를 입법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각지대 노동자에 대한 지원규모 대상 확대되어야”

백남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0/04/24 [06:11]
▲ 한국노총 등이 플랫폼,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코로나19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 노동과희망)   © 편집국

특수고용 노동자 등 정부 코로나19 위기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협동조합협의회, ()전국대리기사협회 등은 23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코로나19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와대는 22일 제5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통해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영세사업자 등 93만 명에 대해 3개월간 50만 원씩의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하지만 관련 노동자들은 여전히 지원규모와 대상적용요건 등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현중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들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정부 지원대책에서도 누락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대책 개선을 요구했다.

()전국대리기사협회 김종용 회장은 플랫폼 노동 특성상 정부의 지원대책(대상자 선정지원 방식 등)이 현장과 괴리되어 있다며 명확한 기준 수립을 위해 정책당국과 현장 당사자간의 소통창구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회장은 대리기사용달배달과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속과 수익 손실을 핸드폰 어플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해 복잡한 입증의 절차가 필요하진 않다고 밝혔다.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협동조합협의회 최영미 대표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일이 끊기기 시작했고일회성 일자리는 대부분 끊겼고 정기성 고객(1회 이상 정기적으로 가는 일자리)은 20% 안팎 중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최대표는 최근 발표된 특고프리랜서 지원대책도 일단 산재보험상 특고 직종이거나 계약을 맺은 프리랜서에 한정되어 있다며 가사노동자들은 산재보험상 특고도 아니며개인 계약을 맺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과연 정부가 어떤 입증기준을 세울지 초미의 관심이라고 언급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대리운전기사학습지교사연극·영화종사자로 그치지 않고 더 다양한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정부지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야 하며지원규모와 기간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정부에서 제시하는 소득감소 입증자료를 마련하기 어려운 직종의 노동자들이 많아 직종별로 현실가능한 입증요건이 마련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5인미만 사업장특수고용직역연금 노동자에 대해서 고용유지지원금의 적용을 확대해 휴업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서울시 유급병가지원제도의 사례를 빌어 코로나19 감염위험에 노출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가사노동자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 한시적으로라도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할 것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끝으로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플랫폼특고프리랜서 노동자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대화기구 설치를 정부에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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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특고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코로나19 지원대책 개선 요구안 기자회견문

코로나 사태가 전 지구적 범위에서 장기화되고 생산활동이 위축됨에 따라 고용과 소득의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정부의 적극적인 검역과 선제적 방역조치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훌륭히 위기관리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서민들에게 있어서 위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정부의 정책방향과 의지와 다르게 코로나19 경제 지원대책에서 사각지대가 크게 존재하고 있습니다특히 플랫폼노동자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노동자는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노동자를 위한 대책 어느 곳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최근 지자체들에서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에게도 생계지원대책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만지원 대상의 자격요건 및 소득감소에 대한 입증방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실제 체감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어제 청와대는 제5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개최해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영세사업자 등 93만 명에 대해 3개월간 50만 원씩의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감사를 드리면서도여전히 지원규모와 적용요건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노총과 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협동조합협의회전국대리기사협회는 플랫폼특고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지원대책이 추가적으로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이를 정부 지원대책 개선 요구안에 담아 정부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먼저 지원대상과 규모가 보다 확대되어야 합니다대리운전기사학습지교사연극·영화종사자로 그치지 않고 더 다양한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정부지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야 하며지원규모와 기간도 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특히 정부에서 제시하는 소득감소 입증자료를 마련하기 어려운 직종의 노동자들이 많아 직종별로 현실가능한 입증요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즉각 당사자 조직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을 촉구합니다.

또한, 5인미만 사업장특수고용직역연금 노동자에 대해서 고용유지지원금의 적용을 확대해 휴업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서울시 유급병가지원제도의 사례를 빌어 코로나19 감염위험에 노출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가사노동자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 한시적으로라도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할 것을 적극 검토되어야 합니다.
더불어현재의 위기를 계기로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특고프리랜서 노동자들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 논의를 시작할 것을 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플랫폼특고프리랜서 노동자 당사자들이 참여해 정부지원대책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효과를 제고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논의하는 사회적대화기구의 설치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정책개선의 필요성과 대안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예산한계라는 이유에 묻혀 단순한 외침으로 그치지 않길 바랍니다.

2020년 4월 23 
한국노총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협동조합협의회, ()전국대리기사협회한국노총 철도사회산업노조 한국간병인지부, CN협동조합한국노총 경남대리운전연대노조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한국가사노동자협회서울특별시 동남권·도심권 노동자 종합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