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불출석, 위증 등으로 성과 미진 김현태, 조태용, 김성훈 등 10명 고발 마지막 날에도 계속된 여당의 몽니
지난해 12월 31일 출범한 국조특위는 역대 국정조사처럼 구체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는 불법비상계엄에 대한 여야의 상반된 입장과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이 이유로 꼽힌다. 그럼에도 60일 동안 활동한 국조특위는 일부 증인들의 핵심 증언을 이끌어냈고, 국회 봉쇄 및 단전 지시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안규백 내란 국조특위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청문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란 국조특위 고발 대상자와 관련해 항의하며 자리를 떠났다. ⓒ 뉴시스
마지막인 28일, 결과보고서 채택과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위증을 일삼았던 증인들의 고발 건이 의결됐다. 고발이 의결된 증인은 총 10명이다. 윤석열, 김용현, 여인형, 노상원, 문상호, 강의구, 김용군, 조태용 등이다.
여당은 증인 고발에 반발했다. 야당이 조태용 국정원장과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을 위증으로 고발하려 하자, 이들과 배치되는 주장을 한 홍장원 국정원 제1차장과 곽종근 전 육군특전사령관까지 고발해야 한다고 몽니를 부린 거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홍장원, 곽종근도 출석할 때마다 말이 달랐다는 취지로 말하며, 이들까지 함께 고발 의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말이 바뀐 건 조태용 원장과 김현태 단장이다.
조 원장은 불법계엄 당시 국무회의 참석 사실을 숨겼고, 기자회견에서 홍 전 차장의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보고를 받긴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김 단장은 지난해 12월 전쟁기념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곤 “곽 전 사령관에게 전화가 왔고, 국회의원이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한다. 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뉘앙스의 연락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저한테는 끌어내라고 까지는 아니었다”고 번복했다.
이 내용은 이날 채택된 결과보고서에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자가당착, 내란 옹호를 지적했다. “207페이지에서 208페이지에 조 원장이 거짓말하는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고, 그에 반해 홍 전 차장의 일관된 주장은 204~206페이지에 그대로 나와 있다”며 “이 내용에 대해 여당도 동의했는데, 이건 이미 자신들이 통과시킨 보고서 자체를 부인하는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었다.
무엇이 밝혀졌나
다섯 차례의 청문회, 두 차례의 기관보고, 합창 및 결심실 현장 조사 등 약 두 달에 걸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국조특위)’ 활동이 종료됐다. 그 과정에 국조특위는 어떤 성과를 이루었을까
처음 국조특위에 출석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냐”는 질문에 10초 정도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곽 전 사령관은 그런 지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후 윤석열 측은 ‘요원’이었다는 초라한 변명을 내놨다.
국회 단전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CCTV를 통해 공개됐다. 계엄 해제안건이 의결되고 불과 6분 뒤였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전체적인 것도 아니었고, 지하1층의 부분적이었다”며 별일 아닌 것처럼 주장했으나,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1차 불을 내렸을 때, 비상등이 잠시 들어왔지만, 그것까지 또 차단했다”며 “이후 밝아진 건 CCTV가 적외선 촬영모드로 전환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군 내부에서 작성된 ‘비상계엄 선포’ 관련 문건도 공개됐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11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라는 방첩사 내부 문건을 공개한 거다. 해당 문건은 여인형 전 사령과 지시로 방첩사 비서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계엄과, 합동수사기구의 법적 근거부터 주요쟁점이 정리돼 있었다. 윤석열의 내란이 사전에 치밀히 모의 됐었다는 증거였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도 드러났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계엄 당일 밤 11시 37분쯤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언론사 다섯 곳을 말 하셨다”며 “단전·단수 지시가 명확하게 있던 건 아니고 경찰에서 협조 요청이 있으면 (소방청이) 협조해주라는 뉘앙스였다”고 밝혔다. 이어 허 청장은 “회의 석상이라 옆에 있던 (이영팔) 소방차장과 의논했지만, 특별하게 액션을 취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윤석열이 이 전 장관에게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단수를 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보여줬다고 명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질의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답변하지 않겠다”는 말로 일관했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해서는 “단전·단수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 자료사진. 2020.03.03. ⓒ뉴시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명의로 이른바 ‘세컨드 폰’을 만들어 정치인과 연락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밝혀진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지난해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사무총장 세컨드 폰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를 믿을 수 없다’고 비판해 온 국민의힘의 처지도 난감해졌다. 정치권에선 “그 ‘부패한 카르텔’은 다름아닌 국민의힘과 연결된 것이었냐”는 비판이 나온다.
2일 경향신분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사무총장은 지난해 8월4일 강화군수 예비후보자로 등록했다.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자는 14명이었는데, 김 전 사무총장은 1차 경선을 통과해 경선 대상 4명에 포함됐다. 다만 같은 해 9월 있었던 최종 경선에서 탈락했다.
전날 감사원은 김 전 사무총장이 선관위 명의의 ‘세컨드 폰’으로 정치인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표 내용을 보면 김 전 사무총장은 2022년 1월부터 세컨드 폰을 이용해 정치인과 연락했다. 그해 3월과 6월에는 각각 대선과 지방선거가 연이어 열렸다.
김 전 사무총장은 세컨드 폰을 통해 정치인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감사원은 “김 전 사무총장이 ‘정치인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각양각색인데 그 부분까지는 말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국민의힘은 김 전 사무총장을 비난하며 선관위를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관급인 사무총장이 특정 정치인과 선별적으로 몰래 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선관위를 어떻게 신뢰하나”라고 썼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도 김 전 사무총장 사례를 언급하며 “비리종합세트 선관위의 실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진보당은 “겉으로는 부정선거·관리부실 운운하며 정작 안으로는 그 핵심 당사자를 따뜻하게 품고 지자체장 선거에까지 출마하도록 배려했다니, 그 뻔뻔함에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에서 내란까지 노골적으로 비호하며 연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독립성·공정성을 공격하는 가운데, 정작 정치인 통화 논란이 제기된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바로 작년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에 출마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수석대변인은 “작년이면, 윤석열 대통령부터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 그 무슨 대국민담화가 있을 때마다 부정선거 운운하며 선관위를 공격했던 때 아니냐”며 “결국, 그 ‘부패한 카르텔’은 다름아닌 국민의힘과 연결된 것이었냐”고 반문했다.
이어 “엊그제도 국민의힘은 김동원 대변인 논평을 통해 선관위 내부의 가족채용 실태를 비판하며 '차라리 가족기업으로 전환하라'고 일갈했다”며 “아들 특혜 채용 의혹의 장본인이 바로 김세환 전 사무총장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홍 수석대변인은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팔아온 것은 바로 국민의힘이었다”면서 “이러고도 과연 국민의힘에서 선관위 사무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운운할 자격이 있나. 즉각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윤정헌 기자 ” 응원하기
▲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발언하고 있는 최승호PD. 사진=금준경 기자
뉴스타파 구성원들이 피켓을 들었습니다. 박중석 신임 사장 체제에서 최승호 PD에게 회사 운영규정상 정년이 초과했다고 통보해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최승호 PD에 따르면 사측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투입됐다고 지적했고, 4대강 보도를 더는 하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노조는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상 정년 조항이 없고, 사측이 제시한 운영규정은 이미 사문화됐다고 반박했습니다. 논란이 되자 사측은 해고 압박이 아닌 용퇴 요청이라고 했습니다. 4대강 보도를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최승호 PD는 김만배 신학림 녹취록 보도 당시 촉발된 이견과 반발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측은 이 역시 부인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연일 피케팅을 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 사측의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갈등에는 최승호 PD 개인의 인사 문제를 넘어 뉴스타파 보도방향 및 운영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 등이 이면에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노조의 피케팅 현장을 찾아 최승호 PD 등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측에도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내부의 일’이라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측의 입장을 반영해 최승호 PD를 인터뷰했습니다.
이제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9개 남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재작년 라 트라페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앞으로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시기 쉽지 않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양조장 관계자는 수도사가 되려고 하는 유럽인들이 없다고 털어놨다. 하긴, 아무리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어도 외부와 단절된 트라피스트의 삶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겠지.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봉쇄 수도원이다. 수도사는 베네딕트 성인의 규율, '일하고 기도하라'에 따라 자급자족을 수행한다.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치즈, 와인, 맥주는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노동의 대가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이유로 트라피스트 맥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 됐다. 수도원이라는 거룩하고 신비스러운 배경이 맥주를 프리미엄 상품으로 등극시켰다. 트라피스트 제품을 인증하기 위해 창설된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International Trappist Association)도 맥주가 아니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0년 상업 맥주 양조장 밸텀이 트라피스트 이름으로 맥주를 출시하자 진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벨기에 트라피스트 오르발 수도원이 즉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생산된 맥주에만 '트라피스트 맥주'라는 이름을 허가했다. 단, 수도원 맥주 레시피로 상업 양조장에서 만드는 맥주는 '애비 비어'(Abbey beer)로 구분해 분쟁의 여지를 없앴다.
상표권 보호를 절감한 트라피스트 수도원들은 1997년 협회를 조직한 후, 세 가지 규정을 충족한 제품에만 육각형 ATP(Authentic Trappist Product) 라벨을 붙이도록 했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모든 제품은 수도원 내에서 생산될 것, 모든 제품은 수도사의 관리 감독을 받을 것, 수익은 수도원 운영과 지역 공동체 발전에 사용할 것.
ITA는 수도원이 이 규정을 따르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라벨을 박탈했다. ATP 라벨은 트라피스트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표식이 됐다. 사람들은 육각형 라벨을 통해 트라피스트 정신을 공감하고 소비했다. 현재 ATP 제품은 치즈, 와인, 맥주, 초콜릿, 벌꿀, 쿠키, 초, 비누를 포함 총 14종이 있다.
위기의 트라피스트 맥주
▲이태리 트레 폰타네 트라피스트 맥주윤한샘
2020년까지만 해도 ATP 맥주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12곳에 달했다. 벨기에 트라피스트 맥주의 대부, 베스트말레를 필두로 오르발, 베스트블레테렌, 시메이, 로슈포르, 아헬, 6곳과 네덜란드 라 트라페와 준데르트 그리고 영국 틴트 메도우, 미국 스펜서, 이탈리아 트레 폰타네, 오스트리아 엥겔스젤이 트라피스트 맥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21년부터 불안의 조짐이 나타났다. 벨기에 아헬과 미국 스펜서가 맥주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아헬은 수도사 부족으로 수도원을 폐쇄했고, 스펜서는 재정 문제가 원인이었다. 그나마 아헬은 베스트말레의 도움으로 2023년까지 맥주가 나오다가 상업 양조장에 인수되어 애비비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트라피스트 수도원, 엥겔스젤이 문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4명의 수도사는 인원 부족으로 수도원 운영이 힘들다는 판단 아래 폐쇄를 결정했다. 그레고리우스, 벤노 같은 아름다운 트라피스트 맥주도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2023년 사라진 오스트리아 엥겔스젤 벤노윤한샘
맥주만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제품들도 모습을 감추고 있다. 현재 ATP 인증 제품이 나오는 수도원은 13곳에 불과하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과 연대하고 있다.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수도원 운영과 제품 생산에 지역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수도원을 개방해 피크닉과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라 트라페는 수도원 마켓을 통해 지역민에게 빵, 치즈, 맥주, 옷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친환경 음식과 수도원 맥주를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고, 뒤뜰 텃밭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도 지역 커뮤니티에 공급하고 있다.
맥주에 낭만 한 스푼
▲세 개의 규칙을 상징하는 그림들쓰리룰즈 보도자료
2024년 라 트라페는 첫 맥주 출시 140주년을 기념하는 맥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은 쓰리 룰즈(Three rules), 트라피스트 맥주를 정의하는 세 가지 규칙에서 가져왔다. 진정한 트라피스트 맥주가 아니라면 흉내 낼 수도, 따라할 수도 없는 이름이었다.
가슴을 찡하게 한 건, 영국 틴트 메도우와 네덜란드 준데르트가 양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었다.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지역 색과 개성이 뚜렷한 트라피스트 맥주에서 협업은 극히 드문 사례다. 이전까지 트라피스트 수도원들끼리 협업한 맥주는 이태리 트레 폰타네가 2019년과 2021년 진행했던 '시네르지아'가 유일하다. 트레 폰타네는 수도원 연대 활동 강화와 자선 사업에 필요한 자본 확충 그리고 새로운 양조 경험을 목적으로 협업을 했다.
2020년 출시된 시네르지아' 19는 지금은 사라진 미국 스펜서와 협업으로 나온 벨지안 IPA였다. 벨지안 IPA는 벨기에 효모 향과 미국 홉 향이 어우러진 맥주로 크래프트 맥주에서나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물론 트라피스트 맥주가 전통적인 스타일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ATP 라벨이 붙은 벨지안 IPA는 좀처럼 예상하기 힘든 경우였다. 아마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영향을 받은 스펜서 수도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스펜서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수밖에.
▲지금은 사라진 미국 스펜서 트라피스트 맥주윤한샘
시네르지아' 21은 트레 폰타네, 로슈포르, 베스트 말레의 협업으로 탄생한 맥주다. 7.5% 알코올을 품은 어두운색 벨기에 에일, 두벨로 출시됐다. 두벨은 20세기 초 베스트 말레 수도원에서 양조된 이래 벨기에 맥주 스타일의 근간이 됐다. 맥아에서 올라오는 감초, 초콜릿, 견과류 향 그리고 맥주 전체를 조용히 감싸고 있는 옅은 페놀 향이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매우 드물지만 트라피스트 수도원과 상업 양조장의 협업으로 나온 맥주도 있다. 라 트라페와 미국 브룬스윅 비어웍스, 이 어색하고 생경한 조합은 트라피스트와 크래프트가 만난 첫 번째 사례로 주목받았다. 맥주 이름 또한 거룩했다. '오라 에 라보라'(Ora et Labora), 기도하고 일하라.
7.5% 알코올을 가진 도펠 복, '오라 에 라보라'는 유럽과 미국 홉이 첨가됐고 병 내 이차 발효를 통해 탄산화와 숙성을 진행했다. 전통적인 도펠 복의 문법을 비틀어 전통과 실험을 적절하게 버무린 작품이었다.
트라피스트 맥주가 협업을 한다는 건, 수익 이외의 공익 목적이 있다는 뜻. 이 맥주는 우간다에 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라 트라페 수출 책임자 안토니오 반 헤케는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에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거라고 말했다. '기도하고 일하라', 트라피스트 정신이 담긴 이름을 아무 맥주에나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다.
형제애로 지구를 지키다
▲쓰리룰즈를 협업한 수도원장들쓰리룰즈 보도자료
지금까지 트라피스트 협업 맥주가 베일에 싸인 채 비밀리에 진행됐다면, 쓰리 룰즈는 다르다. 공식 홈페이지를 열고 맥주가 세상에 나온 이유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것도 세 명의 수도원장을 앞세워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세 명의 수도원장이 전면을 장식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살짝 찡했다.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이 얼굴을 드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로슈로프와 라 트라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도사의 사진을 찍는 것도 불허했던 트라피스트 아닌가.
마치 성배를 들고 있는 듯 두 손으로 병을 받치고 있는 틴트 메도우 수도원장 조셉 옆으로 라 트라페 수도원장 이삭과 준데르트 수도원장 귀도는 누구보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흰색 튜닉 위에 검은 색 스카풀라를 걸친 세 수도사의 눈빛에서 라 트라페 140주년 맥주를 향한 강한 형재애가 느껴졌다. 사라져가는 트라피스트 맥주를 지키는 수호자의 굳은 의지와 진심 또한 묻어났다. 이렇게 낭만 터지는 맥주라니.
얼마 전 웹상에서만 보던 쓰리 룰즈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맥주를 직접 보니 경건한 마음이 절로 생겼다. 스테인글라스를 투과한 빛줄기처럼 쓰리 룰즈는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육각형 ATP 라벨을 가운데 두고 금색으로 버무린 수도원의 상징들이 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홉에 둘러싸인 세 개의 규칙과 수도원 로고는 진짜 트라피스트 맥주 정신이 무엇인지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라트라페 140주년 기념 맥주, 쓰리 룰즈윤한샘
▲라트라페 140주년 기념 맥주 쓰리룰즈윤한샘
쓰리 룰즈는 두벨이다. 짙은 갈색을 두르고 7.4% 알코올로 무장한 쓰리 룰즈의 첫 향은 우아한 감초와 캐러멜이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 뒤로 섬세한 수지 향이 물씬 밀려왔다. 적절한 쓴맛과 단맛이 만나 이루는 균형감은 완벽했다. 손의 온기로 잔의 온도를 높이면 우아한 바디감이 입안 곳곳을 물들였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뭔가 한 방이 더 있을 텐데. 역시나, 쓰리 룰즈의 수익금은 네덜란드 환경단체 'Trees For All'이 1만 4000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기부되고 있었다. 140년 된 트라피스트 맥주의 가치 수호와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보호를 위해 뭉친 수도원 맥주라니. 이보다 낭만 넘치는 맥주가 있으려나. 내가 쓰리 룰즈를 마시며 작은 위안을 얻었던 건, 요즘 한국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일부 종교에 지쳐있기 때문이리라.
종교가 맥주의 힘을 빌어 우리 사회를 더 살 만한 곳으로 이끌고 있다니, 이보다 더 멋진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어려울수록 진정성에 답이 있다. 종교와 맥주가 가야할 길도 마찬가지다. 오라 에 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