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5일 일요일

오리무중에 빠진 미국의 전쟁전략, 막판승부만 남은 조미핵대결

[개벽예감255] 오리무중에 빠진 미국의 전쟁전략, 막판승부만 남은 조미핵대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06/26 [12: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공중타격수단 645대 집결시킨 미국의 핵공격위협
2. 미국의 전쟁전략은 실속 없는 허세전략일 뿐이다
3. 다섯 가지 참담한 곤경들과 한 가지 치명적 위험
4. 룡성구역에서 초소형 로켓엔진이 불줄기 뿜은 사연
5. 오늘의 조미핵대결은 55년 전의 미러핵대결과 어떻게 다른가?

▲ <사진 1> 1966년 11월 2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시작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은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 나포사건과 1969년 4월 15일 EC-121 격추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위쪽 사진은 푸에블로호 함장과 승조원 82명이 포로신세가 되어 원산항에 도착한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조선인민군 공군 미그-21 추격기 2대의 공격을 받고 동해 상공에서 격추되어 탑승자 31명 전원이 몰살당한 미국 해군 소속 첩보기 EC-12의 비행모습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공중타격수단 645대 집결시킨 미국의 핵공격위협

1966년 11월 2일 조선인민군이 군사분계선 서부전선에서 미국군을 습격하여 6명을 사살하였다. 이 습격은 1960년대 후반 조선인민군이 끊임없이 지속하였던 기습공격의 시작이었다. 만일 지금 조선인민군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미국군 6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있었다면, 미국은 조선을 침공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생난리를 치겠지만, 당시에는 미국군 6명이 사살당한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미국은 무슨 약점이 잡혔는지 그냥 어물어물 넘어가고 말았다. 미국의 약점을 간파한 조선인민군은 더욱 드센 기습공격을 들이대었다. 군사분계선에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1967년 한 해 동안 미국군 16명이 사망하였고, 51명이 부상당했다.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은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 해군 소속 어뢰정 3척과 공군 소속 미그-21 추격기 2대가 원산 앞바다에서 조선을 정탐하던 미국 해군 소속 첩보선 푸에블로호(USS Pueblo)를 나포하는 사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와 더불어, 조선인민군 특수부대 전투원 31명이 1968년 1월 21일 서부전선 경계망을 뚫고 서울 한 복판까지 침투하여 청와대 습격을 기도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30일에는 동해 해상경계망을 뚫고 남하한 조선인민군 특수부대 전투원 120명이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울진에 각각 기습상륙하여 두 달 동안 교전을 벌였다. 1969년 4월 15일에는 조선인민군 공군 소속 미그-21 추격기 2대가 동해 상공에 나타난 미국 해군 소속 EC-121 첩보기를 격추하여 탑승자 31명 전원을 몰살시켰다. <사진 1>

1966년부터 1969년까지 계속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은 미국군에게 커다란 인명손실을 안겨주었고,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 기간 동안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으로 미국군 75명이 사망하였고, 111명이 부상당했다. 아래의 통계자료는 당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이 얼마나 격렬하였는지 말해준다.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이 푸에블로호 나포로 절정에 이르렀을 때, 미국은 조선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자기들이 당한 사상 최대의 치욕을 씻어보려고 하였다. 격노한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단일군사작전으로는 가장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한반도에 집결시켰다. 이를테면, 당시 조선침공을 노린 미국 해군의 ‘포메이션 스타 작전 (Operation Formation Star)’에는 엔터프라이즈함(USS Enterprise), 타이컨더로가함(USS Ticonderoga), 코럴씨함(USS Coral Sea), 레인저함(USS Ranger), 요크타운함(USS Yorktown) 등 항공모함 5척과 강습상륙함 키어싸지함(USS Kearsarge)을 주축으로 하여 순양함 10척, 구축함 13척, 보급함 6척 등 총 35척으로 편성된 어마어마한 해상무력이 출동하였다. 항공모함 5척과 강습상륙함 1척에 실린 각종 함재기는 총 445대나 되었다. 동해에 몰려든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공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침공을 노린 미국 공군의 ‘컴뱃 팍스 작전 (Operation Combat Fox)’에는 일본 후주(府中)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5공군 전투비행대 소속 전폭기 20대, 미국 본토 노스캐롤라이나주 쎄이무어존슨공군기지(Seymour Johnson AFB)에 주둔하는 제4전술비행단 소속 전폭기 72대,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嘉手納)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18전술비행단 소속 전폭기 36대, 오끼나와 나하(那覇)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64요격기대대와 제82요격기대대 소속 요격기 48대, 미국 본토 워싱턴주 맥코드공군기지(McChord AFB)에 주둔하는 제318요격기대대 소속 요격기 24대가 출동하였다. 이 전폭기들과 요격기들은 오산공군기지, 군산공군기지, 수원공군기지, 김포공군기지, 광주공군기지에 분산배치되어 출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미국은 조선을 침공하기 위해 전폭기 128대, 요격기 72대, 함재기 445대를 포함하여 무려 645대나 되는 어마어마한 공중무력을 집결시켰던 것이다.

▲ <사진 2>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이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을 때, 미국은 선제핵타격으로 조선을 위협하였는데, 그 때 동원된 공중핵타격수단이 F-4D 전폭기다. 이 전폭기에는 전술핵탄 2발을 탑재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은 F-4D 전폭기 128대를 동원한 선제핵타격으로 조선을 위협하였고, 주한미국군기지 핵무기고에는 각종 전술핵탄 950발이 쌓여 있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 공군이 퇴역시킨 각종 전투기들을 내다버리는 애리조나주 사막의 폐기장에 F-4D 전폭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 모습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위에 열거한 미국의 공중무력에서 주목되는 것은, 공중전에 사용되는 요격기(interceptor)보다 공중전과 폭격에 모두 사용되는 전폭기(fighter bomber)가 훨씬 더 많이 출동하였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 공군이 운용하던 F-4D 전폭기는 전술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는데, 1967년 당시 주한미국군기지 핵무기고에는 각종 전술핵탄 950발이 쌓여 있었다. 만일 전술핵폭탄을 2발씩 탑재한 F-4D 전폭기 128대가 출격하여, 조선의 전략거점들에 전술핵폭탄 256발을 모두 투하하였더라면, 조선은 다시 일어서기 힘든 핵참화를 입었을지 모른다. <사진 2>

당시 미국군의 공중공격을 막아낼 조선인민군의 방공무력은 사거리가 21km인 100mm 견인식 고사포, 사거리가 10km인 85mm 견인식 고사포, 사거리가 8.5km인 37mm 견인식 고사포밖에 없었다. 이 3종의 고사포들은 수동식으로 조작하는 방공무기들이었다. 조선이 사거리가 76km인 지대공미사일 번개-1 시제품을 만든 때는 1968년 10월 28일이었으니, 그 지대공미사일은 1969년 후반에 가서야 실전배치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국이 주한미국군 핵무기고에 보관하고 있었던 B43 전술핵폭탄과 B57 전술핵폭탄은 초음속으로 낙하돌진비행을 하는 핵폭탄들이었으므로, 조선인민군의 수동식 고사포로 미국군의 전술핵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또한 당시 미국은 W25 공중발사핵탄도 실전배치하였는데, 사거리가 9.7km이고 비행속도가 마하 3.3인 그 공중발사핵탄을 조선인민군의 수동식 고사포로 막아내는 것은 더구나 불가능하였다. 당시 조선의 공군력은 645대가 넘는 각종 기종을 총동원한 미국의 공중무력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당시 조선에게는 미국의 공중핵타격을 막아낼 방어수단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후반기에 미국은 역량상 대비가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각종 공중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무지막지하게 위협하였다. 미국의 핵위협에 직면한 조선에게 세계 각국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쏠렸다. 정세는 극도로 긴장되었다. 
  
▲ <사진 3> 이 사진은 조선에서 발행된 우표인데,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전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완성하자!"는 전투적 구호가 들어있다. 군인들만이 아니라 인민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표에 그런 구호가 들어간 것은, 조선인민군이 자기의 독창적인 전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말해준다. 비록 무기가 열세이고 수량적으로 부족해도, 강한 정신무장을 갖추고, 자기 전법에 능통하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특유의 전쟁관을 체험적으로 믿게 되기까지 조선은 험난한 고비를 수없이 넘어야 하였다.     © 자주시보


2. 미국의 전쟁전략은 실속 없는 허세전략일 뿐이다

그런데 뜻밖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역량대비가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공중핵타격수단을 동원한 미국의 핵전쟁위협 앞에서 조선인민군은 물러서거나 위축되기는커녕 되레 미국군에게 연속공격을 더욱 드세게 들이대었다. “덤빌 테면 덤벼라”는 식이었다. 당시 전투수단이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조선인민군은 도대체 무엇을 믿었기에 그토록 격렬한 연속공격으로 미국군에게 엄청난 인명손실을 안겨주며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일까? 전술핵폭탄을 탑재한 미국 공군 전폭기들의 선제핵타격위험을 조선인민군이 알지 못해서 미국군에게 겁도 없이 연속공격을 들이댄 것일까? 그런 건 아니었다. 당시 조선은 미국 공군 전폭기에 전술핵폭탄이 탑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한미국군 핵무기고에 각종 전술핵탄들이 무드기 쌓여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문제는 조선의 시각에서 이렇게 설명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조선의 전쟁관은 미국의 전쟁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세한 무기만 있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단순무지한 전쟁관이라면, 우세한 정신무장과 우세한 전법을 가지면 비록 무기가 열세라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조선의 유별난 전쟁관이다. 정신무장은 전쟁목적에 대응하는 개념이고, 전법은 전쟁방법에 대응하는 개념이고, 무기는 전쟁수단에 대응하는 개념인데, 조선인민군은 그 세 가지 요인들 가운데 제1요인과 제2요인에서 미국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므로 제3요인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비록 무기가 열세이고 수량적으로 부족해도, 강한 정신무장을 갖추고, 자기 전법에 능통하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특유의 전쟁관을 체험적으로 믿게 되기까지 조선은 험난한 고비를 수없이 넘어야 하였다. 일제식민지시기 항일전쟁에서, 건국 초기 6.25전쟁에서 그렇게 싸워 두 강적들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조선의 특이한 전쟁관을 성립시킨 피어린 체험이었다. <사진 3>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반대쪽에서도 의문이 생긴다. 역량대비가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공중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공하려던 미국군은 왜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물러났을까? 일반상식으로 풀기 힘든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1960년대 후반 국제정세와 그에 연동된 미국의 전쟁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5년 3월 8일 미국군 해병대 3,500명이 베트남에 상륙하였다. 이 상륙은 미국 지상군이 베트남전선에 처음으로 파병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그 날부터 8개월 동안 베트남전쟁에 지상군을 계속 증파하여 1965년 12월말 200,000명으로 대폭 증강되었다. 미국은 200,000명으로 증강된 대병력과 압도적으로 우세한 공중무력으로 1966년 성탄절 이전에 베트남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고 타산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치명적인 오산이었다. 미국은 1966년 성탄절 이전에 전쟁을 끝내기는커녕 전쟁의 수렁에 더 깊이 빠지고 말았다. 1969년 상반기 6개월 동안만 해도,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군 4,500명이 사망하였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1969년 1월 20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갓 임명된, 전쟁광으로 악명 높은 헨리 키씬저(Henry A. Kissinger)가 고안해냈다는 ‘광기전략’이야말로 그런 광기 어린 몸부림이었다. 소련을 압박하면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한 키씬저는 공중핵타격수단을 동원하여 광란적으로 협박하면 소련이 겁을 먹고 베트남전쟁을 끝낼 것으로 어리석게 타산하였다. 전쟁전략에 대해 무지몽매한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키씬저의 말만 듣고 소련을 위협하는 핵광기를 부렸는데, 1969년 10월 27일부터 ‘자이언트 랜스 작전(Operation Giant Lance)’이라는 작전명으로 감행한 대소핵타격위협이 그것이다. 미국 공군 제92전략항공우주비행단 소속 B-52 장거리전략폭격기 18대가 전략핵폭탄을 가득 싣고 소련군 방공레이더망에 일부러 포착되도록 북극해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장시간 비행하는 핵무력시위였다. 하지만 전쟁광의 저급한 지능으로는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도를 찾지 못했다. 대소핵타격위협이 아무런 실효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닉슨은 작전개시 나흘 만에 ‘자이언트 랜스 작전’을 취소하고 말았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1967년 10월 27일 출격명령을 받은 미국 공군 제92전략항공우주비행단 소속 B-52 장거리전략폭격기가 이륙하는 장면이다. 소련을 압박하면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한 헨리 키씬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쟁전략에 대해 무지몽매한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소련을 위협하는 '자이언트 랜스 작전'을 감행하도록 건의하였다. 그 작전명령에 따라 전략핵폭탄을 가득 실은 B-52 전략폭격기 18대가 소련군 방공레이더망에 일부러 포착되도록 북극해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장시간 비행하는 핵무력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그런 핵타격위협이 아무런 실효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닉슨은 작전개시 나흘 만에 그 작전을 취소하고 말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사실들을 살펴보면, 미국이 베트남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제2전쟁을 일으키기는커녕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미국에게는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은 고사하고 한 개의 전쟁에서도 이길 힘이 없었다. 이것은 미국이 걸핏하면 꺼내들곤 하였던 이른바 ‘두 개의 전쟁전략(two-war strategy)’이 사실은 속이 빈 허세전략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베트남에서 전면전을 벌이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도 전면전을 할 수 있다던 미국의 ‘두 개의 전쟁전략’은 애초부터 허세를 부리는 기만술책 이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기에 있었던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과 미국 항모타격단 철수는 미국의 ‘두 개의 전쟁전략’이 허세전략이었음을 세상에 드러내주었다.

그로부터 세월은 멀리 흘렀다. 미국의 군사력은 ‘두 개의 전쟁전략’을 꺼내들고 허세도 부릴 수 없을 만큼 더 약화되었다. <뉴욕타임스> 2009년 3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이라는 두 개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미국은 ‘두 개의 전쟁전략’을 공식적으로 재고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고 하였으며,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냉전시기부터 견지해온 ‘두 개의 전쟁전략’을 폐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미국의 군사력이 ‘두 개의 전쟁전략’을 꺼내들고 허세를 부릴 수 없을 만큼 약화되었다는 말은 미국이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은 어느 한 지역에서 “대규모 지역전투(major regional conflict)”를 벌이면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도전을 “망쳐놓는(spoil)” 전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는데, 그런 믿음에 기초하여 성립된 새로운 전쟁전략이 이른바 ‘원-플러스 전략(one-plus strategy)’이다. 2012년 1월 5일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원-플러스 전략’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이 발표한 ‘원-플러스 전략’에서 전면전이라는 일반개념을 쓰지 않고, 대규모 지역전투라는 좀 생소하게 들리는 특수개념을 쓴 것은, 2003년부터 계속되는 이라크전쟁과 2001년부터 계속되는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염두에 둔 어법이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미국의 지상군이 적국의 정규군과 격렬하게 벌이는 고강도 전면전이 아니라, 비정규군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테러집단과 싸우는 저강도 지역전투인 것이다. 또한 미국의 ‘원-플러스 전략’에서 말하는, 다른 지역에서의 도전이란 조선의 핵무력 증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원-플러스 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고전하면서도, 다른 한편 조선이 핵무력을 증강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야 하는 것이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06년 이라크 안트바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부상당한 미국군 병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이다. 2016년 6월 29일 현재 이라크전쟁에서 미국군 4,424명이 사망하였고, 31,952명이 부상당했으며, 미국 민간인 245명이 사망하였다. 다른 한편, 2016년 10월 18일 현재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미국군 2,386명이 사망하였고, 20,049명이 부상당했으며, 미국 민간인 1,173명이 사망하였다. 또한 미국은 그 두 전쟁에 2조1,311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쏟아 부었는데도 전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 자주시보,


3. 네 가지 참담한 곤경들과 한 가지 치명적 위험

미국 국방장관이 2012년 1월 5일 ‘원-플러스 전략’을 발표한 때로부터 5년 반 세월이 흘렀다. 지난 5년 6개월 동안 미국의 ‘원-플러스 전략’은 제대로 작동되었을까? 오늘 한반도정세와 국제정세가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원-플러스 전략’이 제대로 작동되기는커녕, 미국은 그 전략을 폐기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곤경과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2012년 1월 이후 미국이 겪는 네 가지 참담한 곤경들과 한 가지 치명적 위험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의 깊은 수렁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전문 웹싸이트 <더 밸런스(The Balance)> 2017년 6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이라크전쟁에 쏟아 부은 전쟁비용은 무려 1조609억 달러에 이르고, 2001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쏟아 부은 전쟁비용은 무려 1조702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고강도 전면전도 아닌 대규모 지역전투에 그처럼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쏟아 붓는 통에 미국의 국가재정파탄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미국은 두 개의 깊은 수렁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 안에 그 두 전쟁이 끝나는 것은 여전히 난망하니, 이것이야말로 참담한 곤경이 아니면 무엇인가. <사진 5>

둘째,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과 시리아를 굴복시켜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켜주려던 미국의 중동전략이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외신을 인용한 <뉴시스> 2016년 1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하싼 로우하니(Hassan Rouhani) 이란이슬람공화국 대통령은 핵추진잠수함에 설치할 소형 가압경수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보고서를 석 달 안에 제출하도록 원자력청장에게 지시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의 핵개발저지선을 정면에서 돌파한 이란이 마침내 핵추진잠수함 개발사업에 착수하였음을 말해준다. 핵추진잠수함에 설치할 가압경수로를 만들려면, 경수로의 연료로 사용될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해야 한다. 2017년 1월 28일 이란원자력청은 IR-8 차세대 원심분리기에 육불화우라늄(UF6)가스를 주입했다고 밝혔다. 원심분리기에 육불화우라늄가스를 주입하면, 우라늄농축공정이 시작되고 고농축 우라늄을 얻어낼 수 있다.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해보려고 온갖 술책을 총동원하였던 미국은 참담한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한편, 시리아전쟁에서는 시리아정부군이 러시아군, 이란군, 헤즈볼라군, 시아파 민병대의 군사지원을 받으며 반란군을 속속 제압하고 있다. 2017년 5월 4일 러시아, 이란, 터키는 시리아평화협상 4차회담에서 시리아 영토에 안전지대를 창설하는 의정서를 채택하였다. 친미반란군을 육성, 지원, 사촉하여 시리아내전을 일으켰고, 그것을 시리아전쟁으로 확전, 격화시켜 시리아정부를 전복하려던 미국은 시리아평화협상에서 제외되는 ‘왕따’를 당하고 있다. 다급해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인 백린탄을 마구 쏘아대고, 시리아군 전투기를 공중에서 격추하고, 공습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공습확대는 오폭에 의한 민간인 사상자만 더 늘어나게 하였다. <아전스 프랑스 프레쓰(Agence France-Presse)> 2017년 6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추종국들의 오폭으로 지난 한 달 동안 민간인 47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미국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만이 아니라 시리아전쟁에서도 참담한 곤경에 빠졌다.

셋째, 미국은 유럽에서 러시아의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2016년 5월 4일 쎄르게이 쇼이구(Sergey K. Shoygu) 러시아 국방장관은 러시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미국군과 대치하는 러시아 서부국경지대에 주둔할 2개 사단, 남부국경지대에 주둔할 1개 사단을 새로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2017년 6월 21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러시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현재 서부군관구에 군사기지 약 40개소가 건설되고 있는데, 올해 연말까지 서부군관구에 새로운 군사기지 약 20개소를 더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미 2016년 10월부터 본토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가 장착되는 초정밀타격 전술탄도미사일 아이스캔더(Iskander)-M을 전진배치하기 시작하였고, 미국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SSC-X-8로 무장한 2개 미사일대대를 2016년에 배치하였다. 이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대폭 확장하여 러시아를 위협하려는 미국에게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러시아의 강력한 도전이며, 그런 도전으로 미국의 유럽전략에 큰 파열구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군사정세변화다. 미국은 중동에서는 물론 유럽에서도 참담한 곤경에 빠졌다. <사진 6>

▲ <사진 6> 미국은 유럽에서 러시아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본토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가 장착되는 초정밀타격 전술탄도미사일 아이스캔더-M을 전전배치하였다. 그로써 러시아는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목에 비수를 겨누게 된 셈이다. 위의 사진은 아이스캔더-M을 4축8륜 자행발사대차에 탑재하는 장면이다. 그 자행발사대차는 아이스캔더-M 2발을 탑재할 수 있다. 그런데 미사일을 기중기로 들어올리는 동안 양쪽에서 병사들이 밧줄로 잡아당기면서 힘들게 탑재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미사일발사준비공정은 아직 자동화되지 못해 수동식으로 작동된다. 저런 식으로 미사일발사를 준비하면 30분이나 소비할 것이다. 그와 달리, 조선이 2017년 5월 29일 원산 인근 갈마호텔 경내에서 시험발사한 신형 초정밀탄도미사일은 발사준비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되어 자행발사대차가 사격위치에 도착하면 5분만에 발사준비를 끝낼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넷째, 미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 해 중국은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였고, 전략폭격기와 전투기 등 40여 대를 동중국해를 넘어 서태평양까지 출동시켜 대규모 비행훈련을 하였다. 또한 중국은 남중국해의 전략거점으로 떠오른 시사(西沙)군도에 군항, 헬기이착륙장, 헬기격납고, 군용 활주로, 전투기격납고, 지대공미사일 포대 등 전초기지 20개를 건설하였다. 그와 더불어, 중국은 67,000톤급 랴오닝(遼寧)함을 주축으로 편성된 항모전단을 수시로 그 두 해역에 보내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대양진출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저지하려던 미국의 서태평양전략에 큰 파열구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군사정세변화다. 미국은 중동과 유럽은 물론이고 서태평양에서도 참담한 곤경에 빠졌다.

다섯째, 미국은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당하지 못해 국가안보가 통째로 파탄당할 치명적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요인들 가운데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요인들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파탄시킬 만한 치명적 위험은 아니고 참담한 곤경들이지만, 다섯 번째 요인으로 서술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통째로 파탄시킬 치명적 위험이다. 

위에 열거한 정세변화들을 살펴보면, 미국의 ‘원-플러스 전략’이 지난 5년 6개월 동안 차츰 무력화되다 못해 이제는 아예 실종되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미국은 쓸 만한 전쟁전략을 하나도 갖지 못한 암울한 처지에 놓였다. 국방예산자동삭감조치가 해마다 거듭되어 무기 중심의 군사력이 약화되고 있는 판에 전쟁전략마저 오리무중 실종되었으니, 미국군 전투준비태세는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다. 미국군 전투준비태세가 오죽 엉망이었으면, 지난 6월 12일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미국 국방장관이 “나는 우리 군대의 전투준비태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난 몇 해 동안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하였겠는가! 

▲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종말단계 조종유도체용으로 추정되는 초소형 엔진시험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4. 룡성구역에서 초소형 로켓엔진이 불줄기 뿜은 사연

2017년 6월 24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MSNBC> 대담에 출연한 마이클 팜페오(Michael R. Pompeo)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도 빠짐없이 북조선에 관해 (내게) 묻고 미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묻는다. 국가안보위협은 트럼프 대통령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은 북조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계속 얻어맞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근황을 팜페오 국장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선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언제 단행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발사 후 33분 만이면 워싱턴 상공에 도달할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불시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시험발사의 날, 미국의 국가안보가 파탄되고 말 것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처럼 날마다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팜페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 질겁할 충격적인 소식을 가지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미국 연방정부 관리 두 사람이 전해준 소식을 인용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 2017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21일 조선이 “이전에도 로켓엔진시험을 진행하곤 하였던 윤성시에서(in the city of Yun Song)”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사용될 로켓엔진시험을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은 이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한 적이 있으므로, 지상분출시험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 질겁할 만한 소식은 아니다.

그런데 조선에는 윤성이라는 도시가 없다. 조선지리를 모르는 미국 연방정부 관리들이 착오로 도시명칭을 잘못 알려준 게 분명한데, 미국에서 용성으로 잘못 발음하는 룡성을 윤성으로 착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룡성은 도시명칭이 아니라 평양의 행정구역명칭이다.

평양 최북단에 있는 룡성구역에는 각종 신형 무기들을 연구개발하는 약 50개의 연구소들로 이루어진 제2자연과학원이 자리잡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에 가끔 나오는 ‘산음동미사일연구소’다. 보안이 철저해서 외부에서는 그 연구소의 공식명칭을 알지 못하므로, ‘산음동미사일연구소’라는 자의적 명칭이 널리 퍼졌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늘 진 곳이라서 산음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미국의 위성사진분석가가 조선의 '산음동미사일연구소'라고 지목한 곳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그 연구소의 일부만 나타났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산음동미사일연구소'는 미국 국가항공우주국(NASA) 산하 연구단지와 미국 공군 산하 아널드공학개발연구단지에 맞먹는 방대하고 현대적인 시설들이 집결된 연구기관이라고 한다.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바로 그 '산음동미사일연구소'의 로켓엔진시험장에서 지난 6월 21일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 로켓엔진은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조종전투부(탄두부)에 들어가는 초소형 액체로켓엔진이다. 완성된 조종전투부를 대륙간탄도미사일 본체에 조립하기 직전에 초소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정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산음동미사일연구소’는 마셜우주비행쎈터, 랭리연구소, 글렌연구소, 에이미스연구소 등이 집결된 미국 국가항공우주국(NASA) 연구단지와 미국 공군 산하 아널드공학개발연구단지에 “맞먹는(identical)” 방대하고 현대적인 시설들이 집결된 연구기관이라고 하는데, 각종 시험장들, 각종 연구개발시설들 및 생산시설들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미국 국가항공우주국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데, 조선의 미사일연구소가 그런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팍스 뉴스(Fox News)> 보도에 따르면, ‘산음동미사일연구소’의 로켓엔진시험장에서 지난 6월 21일 지상분출시험이 진행되었다. 미국 연방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한 <로이터통신> 2017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6월 21일 조선이 지상분출시험에 사용한 로켓엔진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추진체(the smallest stage for an ICBM rocket engine)”에 들어갈 로켓엔진이라고 한다. 가장 작은 추진체에 들어갈 로켓엔진은 무엇일까? 한국 언론매체들은 <로이터통신>의 보도내용을 전하면서, 조선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제3단 추진체에 들어가는 소형 로켓엔진을 시험한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들어가는 여러 개 로켓엔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로켓엔진은 제3단 추진체 로켓엔진이 아니다. 물론 제3단 추진체 로켓엔진도 크기가 작지만, 그보다 더 작은 초소형 로켓엔진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조종전투부(탄두부)에 들어있다. 그것은 말기유도추진체(post-boost vehicle)에 들어가는 초소형 로켓엔진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1단, 2단, 3단을 차례로 연소시키며 날아가 추력비행을 끝내는 순간, 조종전투부가 제3단 추진체에서 자동으로 분리되는데, 그 때 조종전투부 안에 있는 초소형 액체로켓엔진이 점화되어 마지막 추력비행을 하게 된다.

지난 6월 21일 조선은 조종전투부에 들어가는 초소형 액체로켓엔진을 시험하였다. 고도의 미사일공학기술을 가진 조선이 제3단 추진체에 들어가는 소형 로켓엔진을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처럼 쉽지만, 매우 예민한 전자장비들이 들어찬 조종전투부에 들어가는 초소형 로켓엔진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체로켓엔진설계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액체로켓엔진설계는 매우 복잡한데,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들은 모두 고체로켓엔진들이지만, 유독 그 초소형 로켓엔진만은 액체로켓엔진이다. 
두 개의 액체연료통과 한 개의 연소실 및 분사구, 그리고 모세혈관 같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도관들과 펌프들로 구성된 초소형 로켓엔진은 모의 핵탄두 여러 발이 들어간 각개발사식 재돌입체(MIRV)와 미사일유도장치를 비롯한 각종 첨단기술제품들에 연결되는 것이다.

조선이 그런 초소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완성된 조종전투부를 대륙간탄도미사일 본체에 조립하기 직전에 초소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정이다. 그러므로 이 글이 <자주시보>에 실리는 6월 26일에는 조선이 조종전투부를 대륙간탄도미사일 본체에 연결하는 최종조립작업까지 모두 끝마쳤을 것으로 예견된다. 최종조립작업이 끝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8축16륜 자행발사대차에 탑재된 거대한 원통형 발사관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진행되는 것은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마침내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백악관에 넌지시 알려주어 그들을 더 큰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기 위해 조선은 초소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실내시험장에서 진행할 수 있었는데도, 미국 정찰위성이 내려다보는 야외시험장에서 일부러 진행한 것이다. 


5. 오늘의 조미핵대결은 55년 전의 미러핵대결과 어떻게 다른가?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팜페오 국장의 정보보고를 듣는 순간,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자기 머리 위에서 째깍째깍 울리는 시한폭탄 초침소리를 듣는 것 같은 긴장과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미상불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는 미국이 국가안보파탄으로 망하는가 아니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살아남는가 하는 마지막 결정을 내릴 때까지 백악관의 숨통을 사정없이 조이고 있다.

백악관이 숨통이 조이는 것 같은 위협을 받으며 불안과 공포에 떨었던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19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쿠바미사일위기가 일어났을 때, 백악관은 치명적인 위협을 받았었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쿠바미사일위기라고 부르고, 조선과 러시아에서는 까리브해위기라고 부른다. 쿠바미사일위기는 20세기 최대의 핵전쟁위기로 세계사에 기록되었다. 백악관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치명적인 위협을 받았던 55년 전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렇다. 

1961년 4월 쿠바혁명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 중앙정보국이 쿠바에 상륙시킨 ‘2506여단’은 제압당했지만, 쿠바는 미국의 무력침공이 임박했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출범한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쿠바혁명정부가 미국의 무력침공을 막아낼 방도는 소련의 핵억제력에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쿠바혁명의 영원한 별로 추앙받는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는 “혁명전쟁이 일어나면, 승리하거나 죽거나 둘 중에 하나다. 제국주의침략에서 쿠바 같은 약소국을 해방시키려면 핵전쟁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1962년 10월 23일 미국의 고고도정찰기가 쿠바의 싼 크리스또발에 있는 소련의 미사일기지를 촬영한 정찰사진이다. 미사일발사대 옆에 미사일을 임시로 보관하는 천막이 보이고, 그 주변에 미사일연료주입차량, 산화제주입차량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다. 20세기 최대의 핵전쟁위험으로 세계사에 남은 쿠바미사일위기 당시 소련이 쿠바에 배치한 핵탄미사일은 모두 9발이었는데,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3대 도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안보가 치명적인 핵위협으로 파탄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55년 전 소련은 미국과의 핵전쟁을 두려워해서 쿠바에 배치한 핵탄미사일 9발을 불과 18일 만에 철수하고 말았지만, 미국과 핵전쟁도 불사한다고 선포한 조선은 미국과의 핵대결에서 이길 때까지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조선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대기상태에 놓고, 백악관이 굴복할 때까지 그 숨통을 계속 조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최대의 핵대결로 세계사에 남을 조미핵대결은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조기에 종식될 것이고, 그로써 21세기 최대 사변으로 세계사에 남을 한반도의 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리하여 1962년 9월 8일과 16일 소련의 준중거리탄도미사일 R-12 6발과 중거리탄도미사일 R-14 3발이 쿠바에 반입되었다. 2.3메가톤급 열핵탄두를 장착한 R-12의 사거리는 2,000km였고, 2메가톤급 열핵탄두를 장착한 R-14의 사거리는 4,500km였다. 당시 소련의 핵탄미사일 지하발사거점들이 있었던 쿠바 중북부에서 워싱턴까지 거리는 약 2,000km, 뉴욕까지 거리는 약 2,100km, 시카고까지 거리는 약 2,200km, 로스앤젤레스까지 거리는 약 3,800km이므로,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핵탄미사일 9발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3대 도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안보가 치명적인 핵위협으로 파탄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소련의 핵탄미사일 9발이 쿠바에 배치되자, 백악관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전율하였고, 미국은 전쟁이냐 협상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벼랑끝에 떠밀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오늘 조선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타격능력을 완성하였다. 55년 전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핵무기들은 미국의 쿠바침공을 저지하는 전쟁억제수단이었지만, 오늘 조선이 보유한 핵무기들은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전략타격수단이다. 55년 전 소련의 핵탄미사일 9발은 백악관의 숨통을 불과 18일밖에 조이지 못하고 곧바로 철수되었지만, 오늘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은 백악관이 굴복할 때까지 그 숨통을 계속 조이고 있다. 55년 전에는 미국과의 핵전쟁을 두려워한 소련이 쿠바에 배치한 핵탄미사일을 불과 18일 만에 철수하고 말았지만, 오늘 조선은 미국과의 핵대결에서 이길 때까지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조선의 비핵화를 말하고,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말하지만, 조선에게는 죄다 헛소리로 들린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은 55년 전 소련과의 핵대결보다 오늘 조선과의 핵대결에서 훨씬 더 심각한 국가안보파탄위험을 겪고 있으며, 훨씬 더 강도 높은 핵압박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미핵대결은 이제 막판승부만 남았다. 21세기의 최대 핵대결로 세계사에 남을 조미핵대결은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조기에 종식될 것이고, 그로써 21세기 최대 사변으로 세계사에 남을 한반도의 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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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구만리 온 뜸부기, 골프장 싸움 언제 끝날까

윤순영 2017. 06. 26
조회수 385 추천수 0
3년 전부터 친환경 논 찾아와, 승인 취소 골프장 다시 소송전에
주민들 "소중한 자연 지키며 살고 싶다"… 문, 후보 때 특별감사 약속

크기변환_DSC_6183_00002.jpg» 벼 포기 사이를 걷는 뜸부기. 멸종위기종 2급의 법정 보호동물이다.

11년 전 강원도 홍천군 북면 구만리의 골프장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고향의 자연을 지키려고 주민들은 난생 처음 겪지 못할 일을 겪으면서 순박한 심성에 큰 상처를 받았다. 구만리 북쪽에 자리한 종자산(해발 400m), 구만산에서 시작되는 운수골, 그 앞에 고지골 좌우로 남쪽을 향해 해발 200~250m의 야트막한 산들이 완만하게 내려온다.

고지골에서 내려오는 물과 운수골 물을 품고 온 물이 합류하여 동네 어귀를 거쳐 구만천을 만나 홍천강으로 들어간다. 강 건너엔 팔봉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서 있다. 산과 강이 품은 구만리는 비옥한 논과 밭, 마을과 자연이 어우러진 천혜의 지역이다.

크기변환_DSC_1748_00001.jpg» 골프장 예정지로 올라가는 운수골 길목의 녹슨 컨테이너. 주민들의 간절했던 마음이 남아 있다.

이곳 골프장은 2006년부터 사업이 추진됐지만 부실 환경영향평가와 인·허가 과정 논란 등 환경 분쟁에 휘말려 2011년 9월 24일에 공사가 중단됐다. 구만리에는 약 80가구에 150여 명이 사는데, 주민의 반 이상이 퇴거불응죄, 공사방해죄, 특수공무방해죄, 집단상해죄 등의 죄명으로 법정에 서고 50여 명이 벌금형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구만리는 거제 반씨, 경주 이씨, 해주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400년 동안 대를 이어 온 동네다.

크기변환_DSC_4037_00001.jpg» 구만리 냇가에서 만난 꼬마물떼새.

6월 16일 구만리 주민 반종표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3년 전부터 뜸부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지금은 벼가 작아서 뜸부기가 잘 보인다고 했다. 필자는 6년 전 구만리 주민의 요청으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조류조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 날 바로 구만리로 향했다. 지리가 낯설지 않아 뜸부기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다시 찾은 구만리는 6년 전과 다름없이 우수한 생태환경을 그대로 유지한 모습이었다. 

골프장이 건설되었다면 과연 뜸부기가 돌아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만리는 자연친화적인 농사를 지어 올챙이, 우렁이 등 각종 동물이 논에서 살고 원앙과 흰목물떼새, 꼬마물떼새, 백로를 비롯한 많은 산새들이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크기변환_DSC_2886_00002.jpg» 오랜만에 눈에 잘 띠지 않는 여치도 만났다.

크기변환_DSC_4001_00001.jpg» 검은 딱새.

논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뜸부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늘따라 날씨도 무덥다. 그런데 뚝 건너에서 검은 물체가 슬쩍 날아가다 사라졌다. 뜸부기임을 직감했다. 반신반의하며 자리를 옮겨 찾아보니 수컷 뜸부기가 벼 고랑 사이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언제 부터인가 뜸부기는 귀한 손님이 됐다.

크기변환_DSC_1705_00001.jpg» 구만리 주민들. 맨 왼쪽이 반경순 구만리 골프장 반대 추진위원장, 왼쪽에서 두 번째가 뜸부기 제보자 반종표씨이다.

크기변환_DSC_1739_00001.jpg» 구만리 생태 서식지를 안내했던 주민 이종설 주민(오른쪽)과 필자.

저녁 무렵 뜸부기 제보를 해 준 반종표씨와 구만리 골프장 반대 추친 위원장이었던 반경순씨, 생태 서식지를 안내했던 이종설씨도 만났다. 무척 반가웠다. 6년 전 구만리 골프장 일을 다시 되새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2014년 8월 29일 춘천지법 행정부(재판장 강성수 부장판사)는 원하레저가 강원도를 상대로 제기한 사업계획 승인 취소처분  취소 소송 1심판결에서 원고인 원하레저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크기변환_DSC_6872_00001.jpg» 영역 다툼을 하는 수컷 뜸부기들.

조상의 땅을 훼손하지 않고 소중하게 보전하는 것이 구만리 주민의 꿈이다. 주민들은 대대로 자연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골프장 사업자가 골프장 건설을 시작하면 구만리의 이런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멸종위기야생생물 뜸부기가 다시 돌아온 것은 구만리 주민의 희망이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물바람숲> 필자

■ 참고 자료: 2012.12.13. 제18대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 입장 전문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해결을 위한 문재인 후보 입장

입장 발표에 앞서 길게는 8년간 골프장 문제로 고통을 받고 계신 강원도민 여러분께 문재인 후보는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과 함께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못한데 대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우선 드립니다.

문재인 후보는 어르신들께서 400일이 넘도록 강원도청과 강릉시청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몹시 가슴이 아팠으며,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을 맞아 여러분께서 따뜻한 가정에서 겨울을 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왔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 불신과 갈등의 골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 문재인 후보도 조금은 마음을 놓고 선거운동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문재인 후보와 캠프에서 그간 논의하고 결정한 내용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문재인 후보는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해 범도민대책위 및 강원도와 꾸준히 노력해 왔으며, 최문순 강원도지사께서 어제 강원도내 골프장 문제에 대한 인허가 등 전반적인 과정과 절차에 대한 전면재검토와 이를 위한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며, 이를 적극 지지한다.

2.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관련된 기관들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할 것이며,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은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또한 골프장 건설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의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법과 제도를 강화할 것이다.

3.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지만,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렸으니 강원도청과 강릉시청에서 2년째 농성하고 계신 분들이 이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언 몸을 녹일 수 있었으면 한다.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해결을 위한 경과보고

1. ‘강원지역골프장문제해결을위한범도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1월 17일 문재인 후보와 면담을 통해 강원도내 골프장 전면 재검토와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대한 관련기관의 특별감사 추진을 요구하였고, 문재인 후보는 그 자리에서 법률적 타당성을 검토하여 재검토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2. 문재인 후보는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변호사들께 법적 검토를 의뢰하였고,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대한 법률검토를 통해 모든 관련 골프장에 대한 전면재조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문재인 후보에게 보내 왔다.

3. 문재인 후보측은 범도민 대책위원회와 꾸준한 접촉을 갖고 골프장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2년째 노숙농성 중인 어르신들이 하루속히 귀가하여 따뜻한 가정에서 겨울을 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달라”는 문재인 후보의 뜻을 주민들에게 전달하였다.

4. 문재인 후보측 이학영 의원(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과 최승국 시민캠프 공동대표는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만나 골프장 문제의 원만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등 강원도와도 문제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5. 문재인 후보는 범도민대책위의 “1. 강원도내 골프장의 전면 재검토를 적극 지지하고 협력해 달라. 2. 대통령에 당선되면 인허가 관련기간에 대한 특별감사를 추진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수용하고 강원도 차원의 협조도 요청하였다.

6. 그리고 어제 최문순 강원도지사께서 강원도내 골프장에 대한 전면재검토와 특별위원회 설치를 발표하였다. 최문순 지사로서는 이미 골프장 인허가 등의 절차가 진행된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줄 안다. 다시금 감사드린다.

2012년 12월 13일 제18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 캠프
(이학영 국회의원, 최승국 시민캠프 공동대표, 장하나 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
 

 

2만2792명 중 3%…"한국은 잘사는 나라 아니다"


[인터뷰] <우리 곁의 난민> 저자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난민. 2017년 대다수 한국인에겐 낯선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멀고 먼 '나라 밖' 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내전'으로 600만 명의 '난민'이 64년 전 발생했다. 한국은 유엔이 공식적으로 난민을 돕자고 결의한 뒤 처음으로 도움을 받은 나라다. 당시 한국 난민들을 구제한 나라 중엔 시리아도 있다. 어쩌면 '나'의 부모, 조부모가 난민이었을지 모른다. 최근 한국의 난민에 대한 밀착 보고서 <우리 곁의 난민>을 쓴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아기 예수도 난민이었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의 숫자는 6530만 명(2015년 말, UNHCR)에 달한다. 이들 중 거리, 문화, 정서적으로 멀고 먼, 한국을 찾아온 난민은 2만 2792명(1994년부터 2016년까지 난민 인정 신청을 한 수)이다. 하지만 이들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이들은 3퍼센트(672명)에 불과하다. 난민에게 한국은 인색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문 이사장은 기자로서 오랫동안 여성과 인권 문제를 다뤘고,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맡아 한국의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경험이 풍부하다. 그가 10명의 난민 여성의 삶을 밀착 취재해 쓴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난민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준다. '사회적 이슈'로서 난민 이전에 '사람'으로서 난민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을 냉대하는 스스로의 모습도 깨닫게 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아니 보지 않고 듣지 않았던, '우리 곁의 난민'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살려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난민들은 전쟁, 기후 변화, 종교적 박해, 가부장적 폭압, 인종 차별 등에 따른 피해자이지만, 생의 의지로 사선(死線)을 넘은 생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의 첫 번째 '마이너리티 리포트'인 이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문 이사장에게 지난 22일 들었다. 
▲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전쟁고아, 최초의 난민이었다 
 

프레시안 : 한국인에게 '난민'이란 참 낯선 존재다. 책 <우리 곁의 난민>(서울연구원 펴냄)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한국에 난민인정 신청을 한 사람이 2만 2792명이나 된다니, 놀랍다.

문경란 : 조사를 하면서 나도 놀랐다. 한국이 난민인정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16년 말까지 난민인정 신청자는 2만 명이 넘지만, 현재 이 땅에 있는 사람은 1만 명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중 난민 인정을 받은 경우는 672명(3%), 인도적 지위 1156명(5.1%), 심사 진행 6861명(30.1%), 그리고 국내 난민단체들은 1000여 명 정도가 한국에서 난민불인정 상태로 살고 있다고 추산한다.  

프레시안 : 6.25 한국전쟁 반발로 6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하자 유엔이 유엔한국재건단을 설립해 구호와 원조를 제공했는데, 이는 유엔이 설립된 뒤 처음으로 실시한 난민 구호 활동이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문경란 :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난민을 돕자'고 결의한 뒤, 처음으로 도운 나라가 한국이다. 일반적으로 '난민'이라고 하면, 국경을 넘는 경우만 생각한다. 하지만 유엔난민기구는 국경을 넘지는 않았지만 거주지를 탈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국내 실향민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또한 난민으로 분류한다.  

개인적으로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도왔던 나라 중에 현재 내전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시리아 같은 나라도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시리아 의사가 전쟁고아 두 명을 입양했는데, 이 중 한 명은 어른이 돼서 쿠웨이트 주재 한국통상대표부에서 총영사의 비서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우리는 시리아를 내전으로 지새우는 미개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70여 년 전 한국도 똑같이 내전을 겪었으며 이때 발생한 난민들이 전 세계의 도움을 받았다.  

프레시안 : 작곡가 프레드릭 쇼팽, 물리학자 알버트 아이슈타인, 정신분석가 지그문트 프로이트, 철학사상가 한나 아렌트 등도 모두 난민이었다. 

문경란 :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겨 베들레햄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했던 갓난아기 예수도 난민이었다. 당시 헤롯왕은 하늘이 내린 자가 나타나 자신의 아들은 왕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풍문이 돌자, '두 살 이하의 아기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아기 천사에게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요셉은 추운 겨울, 갓 태어난 아기와 산후조리도 못 한 부인을 데리고 약 400킬로미터를 도망간 것이다. 난민의 삶을 공감하기 어렵다면, 아기 예수를 둘러업고 도망가는 마리아와 요셉을 상상하면 된다.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겠나.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다."(세계인권선언 14조) 
누구든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  

▲ <우리 곁의 난민>(문경란 지음, 서울연구원 펴냄) ⓒ서울연구원
프레시안
 : 난민이란, "자기 나라에서 박해를 받는데 국가가 이를 보호해 주지 않아 다른 나라에 가서 보호를 요청해 받아들여진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 대법원이 2008년 7월 24일 선고한 내용(2007두3930 판결)에 따르면, 박해의 의미를 "생명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하여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문경란 : 국가는 국민 또는 구성원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그런데 권리를 보장받기는커녕 박해를 받아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난민이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난민인 것이다.

누구든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 누구는 존엄하고 누구는 존엄하지 않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존엄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난민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존엄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불쌍하니까 도와주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존엄하게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기에 그들의 존엄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사는 게 존엄하게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종합적이다.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보장받아야 하며,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의료권과 교육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또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노동하고 이를 통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인간의 권리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난민 또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인권이 보장되고 보호받아야 할 동등한 존재다."(247~248쪽) 

한국은 "매우 인색한 나라"다  

프레시안 : 한국은 난민인정에 "매우 인색한 나라"라고 했다. 난민인정 전체 신청자의 3퍼센트, 총 672명만 난민인정을 받았다. 이는 전 세계 난민인정률 38퍼센트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난민인정률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경란 : 이방인에 대한 높은 문화적 장벽이 있는 것 같다. 난민뿐 아니라 이주민에 대해서도 굉장히 높은 장벽이 자리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방인을 '짐'이라고 생각하는 정서가 있다.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부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불온한 시선의 이면에는 또 다른 인종주의도 작동하고 있다. 홍세화 전 난민인권센터 이사장이 'GDP 인종주의'라고 표현했는데, 한국보다 GDP가 높은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호의를 베풀면서도 GDP가 낮은 나라에서 온 이방인은 비하하고 차별하고 혐오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국은 난민인정률이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난민인정 심사 과정도 길다. 난민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일 것 같은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문경란 : 늘어난 난민인정 신청자 수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2013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난민법을 시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난민 문제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박수받을 일이다. 물론, 한류의 영향도 있다. 지난해 난민인정 신청자 수는 지난 22년간 난민인정 신청자 전체 수의 3분의 1이 넘는 7542명에 달했다. 

난민 심사는 난민인정 신청자의 말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사지(死地)를 여러 번 넘다 보면, 기억이 왔다 갔다 하며 일관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심사위원은 '거짓말이지?'라며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특히 자국에서의 박해 경험 때문에 국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보니 심사위원이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면 부들부들 떨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신청자도 있다. 무례한 태도는 난민 신청자에게 위협으로 느껴져 그들을 더욱 위축시킨다."(111쪽) 따라서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난민에 대한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난민 여성의 경우, 법무부 출입관리소가 여성적 관점에서 박해의 사유를 제대로 심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난민 여성들은 가정폭력뿐 아니라, 성폭력과 성매매 등 성적 박해에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난민 지위 인정 면접 때 여성 면접관과 통역관을 배치해야 하며, 난민 여성의 출신국의 인권 상황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슬림 지역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는 '할례'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라이베리아 출신 마틸다를 인터뷰하며 들은 비밀조직 산디(Sande)와 여성 할례 이야기는 정말 믿기 어려웠다. 할례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여전히 끔찍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연대의 측면에서 다른 나라 여성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출신 국가로부터도, 난민 신청을 거부한 나라로부터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난민 불인정자는 무력하고 굴욕적이며 종속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이요(아감벤, 2008), 지그문트 바우만이 통탄해 마지않는 '인간쓰레기'의 화신인 것이다(바우만, 2010)."(236쪽) 
▲ 난민지원단체 (사)피난처 활동가 김보미 씨가 책 <우리 곁의 난민>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잘 사는 나라, 그러나 인권은 낮은 나라  

프레시안 : 동남아시아 4명, 중동 2명, 아프리카 3명, 동유럽 1명 등 총 10명의 난민 여성을 인터뷰했고, 이들 중 8명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이들은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됐을까. 물리적, 정서적, 문화적으로 한국은 매우 먼 나라다.  

문경란 : 인터뷰할 때마다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됐느냐'라고 물었는데,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한결같은 말이 있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이며, 민주화가 굉장히 잘 된 나라고, 인권 역시 잘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한 4~5시간 동안 밥도 먹어가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들 중 몇몇은 '한국 국민의 인권 의식이 그렇게 높지 않아 실망했다'며 본심을 털어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이 난민들을 안 좋게 생각할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프레시안 : 미얀마 친족 출신 엄마(소피아 킴)를 따라 11살 때 한국으로 건너와 13년을 살았다는 캐롤라인.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자살공화국이자, 단절된 공동체 사회이며 위계질서가 군대식인 나라다. 그로 인해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참 부끄러웠다.

문경란 : 나 역시 너무 부끄러웠다. 평소에도 한국 사회는 물질적인 평등함과 달리 인간의 존엄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취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에 응한 난민 여성들은 먹고사는 물질적인 문제보다 '자신들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무시할 때 정말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고 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그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난민은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요,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일종의 '아웃 카스트(out-caste)'다."(235쪽) 

난민 가정의 자녀, 정체성은 한국인 

프레시안 : 책을 보며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뉴기니아 등에서 현지 연구를 하면서 기존 남성 인류학자와 달리 여성과 청소년들을 만났던 것이 떠올랐다. 난민 중에서도 여성만을 다루었기 때문에 한국 사회와도 더 많은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은 무국적이거나 출신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난민 가정의 자녀 문제,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문경란 :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난민 가정의 자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부모의 출신국에서 태어났든, 한국에서 태어났든 아이들은 현재 살고있는 한국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피부색이 다르다고,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난민 가정 자녀들은 이런 사실을 부모에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그러면서 꿈을 스스로 구조조정한다. 반면, 난민 가정 부모들은 "대학은 나와야 한국에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며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 난민지원단체 (사)피난처 활동가 김보미 씨가 책 <우리 곁의 난민>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프레시안
 : 캐롤라인의 성장기가 인상적이었다. 대학에 가려면 형편상 장학금을 받아야 했지만, 미얀마 국적이라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온갖 정보를 다 뒤져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외국인에게 학비를 지원해주는 대학을 찾았고, 자신이 원하는 간호사의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문경란 : 캐롤라인은 '꿈이 뭐냐'는 질문에 '봉사와 베풂'이라고 했다. 우선 간호사가 돼 부모를 잘 부양하고, 돈을 벌면 매달 얼마씩이라도 고향을 도우며 기회가 되면 간호사로 직접 가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17살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롤라인은 개인적인 능력도 뛰어나지만,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객관화해서 볼 줄 알았다.  

"이제까지 어려운 길을 헤쳐 나오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안 받았다면 베풂이라는 단어를 몰랐을 거예요. 경험을 통해 베풂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이제 꿈을 접어야 되나 보다'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작은 틈새지만 길이 뚫렸어요. 주변의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캐롤라인의 말 중. 91쪽)  

난민과 소수자는 '짐'이 아니다 

프레시안 : 소말리아 출신 난민이자 세계적인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데저트 플라워>(쉐리 호만 감독, 2009)를 보면서도, 2015년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을 접하면서도 난민 문제를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경란 : 크루디 사건 이후, 난민 문제가 많이 보도됐지만 대부분이 타자화하고 대상화한 뉴스다. 나의 문제, 또는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난민 문제를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외신 보도만 인용할 것인지 답답하다.  

책 작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한 것이다. 인권적으로 보면, 인비저블(invisible)한 것을 비저블(visible)하게 하고 보이스리스(voiceless)한 것을 보이스(voice)하게 한 것이다.

▲ 해변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쿠르디 모습은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google.com

프레시안 : 모든 소수자 문제가 그렇게 단편화된 채 사건사고로 다뤄지는 것 같다.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지도 못한다.  

문경란 : 나와 상관없는 타자, 즉 다른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관심도 일회성으로 끝난다. 좀 더 관심을 둔다면, '아이고, 안 됐네'라는 동정이다. 소수자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은 딱 이 수준이다.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는 길은 친구를 두는 것이다. 소수자 문제를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면, 말도 함부로 하게 될 뿐 아니라 자기 생각을 속단하게 된다. 하지만 소수자 친구가 주변에 있으면 나와 별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존엄하게 살아야하는데, 나의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면 소수자인 내 친구의 존엄 보장도 당연한 일이 된다.  

프레시안 : 미얀마 출신 소피아와 캐롤라인 모녀 외에도 러시아 출신 올가, 코트디부아르 출신 아만, 라이베리아 출신 마틸다, 파키스탄 출신 신디, 시리아 출신 나디아, 콩고 출신 미야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례를 보면서 난민은 결코 불쌍하거나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경계를 넘은 사람이 가진 힘, 이 사람이 겪었던 경험이 이들 안에 응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힘을 사회적으로, 긍정적으로 승화한 사례가 미야 씨와 이주 여성을 위한 문화·경제 공동체인 에코팜므(Eco Femme) 이야기다.  

문경란 : 그렇다. 난민은 우리 사회의 '짐'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 다양성과 잠재력을 가진 에너지이고 힘이다.  

"난민에게 작은 환대를 베풀고 연대하는 것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국가의 책무다. 이제는 한국인도 자유와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세계인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할 때가 되고도 남았다."(255~256쪽)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그럼에도 한국인들의 대체적인 정서가 먹고사는 일이 각박하다 보니, 외부 일에 더욱 배타적으로 된 것 같다. 청년일수록 더하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도와야 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더 인색한 것 같다.

문경란 : 어떤 사람이든 국가든, 더 잘산다고 손을 내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민 문제로 유럽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 난민의 절반인 약 1200만 명은 요르단, 터키,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레바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6개국에 몰려 있다. 이들의 GDP(국내총생산)는 2%도 안 된다. 반면 GDP 비율이 56.6%나 되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경제 규모 상위 6개국이 받아들인 난민은 전체의 8.9%인 212만 명에 불과하다.

세상은 무엇을 중심으로 움직일까? 정말 좋은 세상은 소수자가 사회의 중심 의제로 들어올 때 비로소 누구나 잘사는 사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잘산다'라는 것은 사회의 중요 가치가 '함께' 잘사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을 당하기 마련인데, 그런 불행에 닥쳤을 때 사회적으로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손을 잡아주는 이(이웃)가 있다면, 그래서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게 '잘사는' 사회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함께'라는 것은 빠지고, 물질적 풍요만을 강요하며 잘산다고 생각한다. 이는 압축적인 경제 성장의 병폐다.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가치가 깊숙이 내면화된 것이다.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통일부, 김련희씨와 12명 여성종업원사건 박근혜 정권과 똑같은 입장

통일부, 김련희씨와 12명 여성종업원사건 박근혜 정권과 똑같은 입장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7/06/25 [18:4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6월 14일 기자회견에서 평양시민 김련희씨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자주시보

25일,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는 23일 통일부가 밝힌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북 해외식당 여종업원 북 송환촉구’ 답변에 대한 의견을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먼저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와 ‘평양주민 김련희씨 송환촉구모임’(이하 송환모임)은 지난 6월 14일, 청와대 앞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17주년에 즈음한 송환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한 바 있다.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가 김련희씨와 12명의 여종업원들을 하루속히 송환 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대책회의와 송환모임은 6월 15일, ‘대통령에게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요구서한을 <국민신문고>를 통해 온라인 민원 접수하였으며, 이에 민원 접수 후 6월 23일, ‘통일부 공동체 기반조성국 정착지원과’로부터 민원 처리결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먼저, 통일부는 답변에서 “김련희씨와 해외식당 여종업원이 ‘속아서 강제로 끌려왔다’ 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김련희씨는 자유의사에 따라 입국하였고 입국 및 정착과 정에서 대한민국에 정착하겠다는 의사를 본인이 수차례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북한 해외식당 여종업원 역시 마찬가지로 국내 정착의사를 표명하였으며, 현재 학업 등을 하며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따라 살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다만, 종업원들은 재북 가족의 신변안전을 우려하고 있어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책회의는 ‘통일부의 답변은 지난 박근혜 정권 때와 통일부 입장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똑같은 주장’임을 밝혔다.

김련희씨는 본인이 직접 “속아서 억지로 끌려왔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며 본인의 의사는 “대한민국에 정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송환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대책회의는 강조했다. 

그리고 대책회의는 “북 해외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은 박근혜 정부 하에 국가정보원이 기획한 사건이라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해왔으며 북 당국과 그 가족들은 “유인, 납치극”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과 문제들이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특히, 12 명의 여종업원들의 신변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본인들의 의사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채 계속 정부당국의 말만 믿으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주장했다. 

대책회의는 통일부가 이번 답변에서 밝혔듯이 “김련희씨와 북 해외식당 여종업 원들의 송환문제는 순수하게 기본적 인권과 인도주의 실현 및 통일준비 차원에서 추진할 문제로서, 여기에 어떠한 정치적 고려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정부 당국이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아픔과 인도적 문제들이 하루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만큼 문재인 정부는 지금 즉시 12명 여종업원들의 신변과 본의의 자유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12명의 여종업원이 북으로 송환을 요구한다면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하루빨리 송환해야 할 것을 대책회의는 강조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인도주의적 문제를 지체없이 해결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길로 대담하게 나서야 할 것을 대책회의는 주장했다. 

한편, 북에서는 6월 23일 민족화해협의회의 공개 질문장을 통해 “강제 랍치되여간 우리 녀성 공민들을 지체없이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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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연기장병 ‘대기업 특채’ 이후 벌어진 일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전역 연기 장병을 이용한 재벌
임병도 | 2017-06-26 08:39:4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제 잠실 체육관에서는 제67주년 6·25전쟁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언론마다 6·25전쟁 참전용사 관련 미담 기사 수십 건이 보도됐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작년부터 ‘전역연기장병 대기업 특채 이후’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2015년 전역연기 장병들의 대기업 특채 이후 근황을 보도했던 언론 기사를 요약한 글입니다. 올라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6.25전쟁 기념식이 있었던 날,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왜 공감을 받았고, 당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리해봤습니다.
① 애국심이 스펙, 전역 연기 장병 특채 ‘애국 보훈 기업’
▲대기업의 전역 연기 장병 특채 관련 홍보성 기사들 ⓒ네이버 뉴스 캡처

2015년 9월, SK와 롯데그룹이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을 특별채용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북한의 포격 도발로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의 애국심을 높이 사 스펙으로 인정했다’라며 대대적인 언론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뉴스마다 전역 연기 장병들의 대기업 특채 면접 과정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전역 연기 장병 특채를 추진한 SK, 롯데 그룹은 애국심을 인정한 기업으로 ‘애국 보훈 기업’ 등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질수록 ‘전역 연기 장병 대기업 특채’는 투철한 애국심과 안보관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② 대기업 특채? 아웃소싱 자회사 콜센터로 배치
전역 연기 장병들이 대기업에 특채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6개월 후,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KBS가 보도했습니다.
SK와 롯데의 특별채용 대상이었던 1차 전역연기자 87명 가운데 62명을 조사한 결과 당시 입사 희망 인원 38명 중 10명이 퇴사를 했고, 2명이 탈락했습니다.
퇴사 또는 탈락한 전역 연기 장병들의 이유를 살펴보니,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직종이 아닌 ‘판매, 영업, 콜센터 업무’에 대거 배치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역 연기 장병들은 SK, 롯데가 대기업이라고 취업을 희망했지만, 이들이 배치된 곳은 아웃소싱 회사였습니다. 사실 콜센터나 유통분야, 마트, 편의점 등은 꼭 특별 채용이 아니어도 취업이 가능했던 직종이었습니다.
③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전역 연기 장병을 이용한 재벌
롯데그룹은 전역 연기 장병 특별 채용을 진행하면서 ‘이들이 보여 준 애국심이나 책임감이라고 한다면 기업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전역 연기 장병 특별 채용 당시 롯데그룹 상황을 보면, 장병들이 아닌 재벌 총수를 위한 채용이었습니다.
당시 롯데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롯데=일본 기업’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이 거론됐고, 연 매출 2조 원 면세사업권 연장 심사도 예정돼 있었습니다.
결국, 롯데그룹은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애국심 마케팅’을 통해 전역 연기 장병들을 이용한 셈입니다.
④ 고졸이라 무시 당했던 전역 연기 장병
당시 장병들은 대기업 특채 등의 혜택을 위해 전역을 연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고참인데 무책임하게 전역할 수 없다. 집에 계신 부모님 때문에 제가 안 싸우면 안 되겠다’라는 책임감 때문에 전역을 연기했습니다.
그러나 장병들의 이런 책임감은 사회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었습니다. 롯데제과에 입사한 장병은 자신의 이력서를 본 지사장이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대놓고 무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은 언론에는 특별채용하겠다고 홍보했지만, 실제 이들은 오히려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롯데그룹 홍보실은 “박사 공채도 20~30%가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한다”라며 “그 정도 비율이 퇴사하는 게 특별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⑤ 애국심 이전에 국방 적폐 청산부터
▲2015년 9월 당시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은 ‘상급부대에 있는 사람은 높은 상을 받고, 밑에 있는 사람은 절차를 지키느라 상을 못 받았다’라고 밝혔다. ⓒMBN뉴스 캡처

2015년 당시 전역을 미룬 장병은 모두 16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86명만 육군총장 명의의 표창을 받았고 나머지 74명은 표창을 받지 못했습니다.
군대 보고 체계상 전역 연기 신청을 했어도, 상급부대 근무 장병은 표창을 받았고, 하급부대 장병은 표창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군대 내 불합리한 일들은 너무나 많아 셀 수조차 없습니다.
현충일이나 6.25기념식이 있으면 언론들은 ‘애국심’을 강조하는 보도를 쏟아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장병들은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지,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무시를 당합니다.
‘애국심 마케팅’ 이전에 병사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보상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한민국 군인은 쓰다가 버리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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