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5일 일요일
홍천 구만리 온 뜸부기, 골프장 싸움 언제 끝날까
윤순영 2017. 06. 26
조회수 385 추천수 0
3년 전부터 친환경 논 찾아와, 승인 취소 골프장 다시 소송전에
주민들 "소중한 자연 지키며 살고 싶다"… 문, 후보 때 특별감사 약속
» 벼 포기 사이를 걷는 뜸부기. 멸종위기종 2급의 법정 보호동물이다.
11년 전 강원도 홍천군 북면 구만리의 골프장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고향의 자연을 지키려고 주민들은 난생 처음 겪지 못할 일을 겪으면서 순박한 심성에 큰 상처를 받았다. 구만리 북쪽에 자리한 종자산(해발 400m), 구만산에서 시작되는 운수골, 그 앞에 고지골 좌우로 남쪽을 향해 해발 200~250m의 야트막한 산들이 완만하게 내려온다.
고지골에서 내려오는 물과 운수골 물을 품고 온 물이 합류하여 동네 어귀를 거쳐 구만천을 만나 홍천강으로 들어간다. 강 건너엔 팔봉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서 있다. 산과 강이 품은 구만리는 비옥한 논과 밭, 마을과 자연이 어우러진 천혜의 지역이다.
» 골프장 예정지로 올라가는 운수골 길목의 녹슨 컨테이너. 주민들의 간절했던 마음이 남아 있다.
이곳 골프장은 2006년부터 사업이 추진됐지만 부실 환경영향평가와 인·허가 과정 논란 등 환경 분쟁에 휘말려 2011년 9월 24일에 공사가 중단됐다. 구만리에는 약 80가구에 150여 명이 사는데, 주민의 반 이상이 퇴거불응죄, 공사방해죄, 특수공무방해죄, 집단상해죄 등의 죄명으로 법정에 서고 50여 명이 벌금형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구만리는 거제 반씨, 경주 이씨, 해주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400년 동안 대를 이어 온 동네다.
» 구만리 냇가에서 만난 꼬마물떼새.
6월 16일 구만리 주민 반종표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3년 전부터 뜸부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지금은 벼가 작아서 뜸부기가 잘 보인다고 했다. 필자는 6년 전 구만리 주민의 요청으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조류조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 날 바로 구만리로 향했다. 지리가 낯설지 않아 뜸부기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다시 찾은 구만리는 6년 전과 다름없이 우수한 생태환경을 그대로 유지한 모습이었다.
골프장이 건설되었다면 과연 뜸부기가 돌아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만리는 자연친화적인 농사를 지어 올챙이, 우렁이 등 각종 동물이 논에서 살고 원앙과 흰목물떼새, 꼬마물떼새, 백로를 비롯한 많은 산새들이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 오랜만에 눈에 잘 띠지 않는 여치도 만났다.
» 검은 딱새.
논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뜸부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늘따라 날씨도 무덥다. 그런데 뚝 건너에서 검은 물체가 슬쩍 날아가다 사라졌다. 뜸부기임을 직감했다. 반신반의하며 자리를 옮겨 찾아보니 수컷 뜸부기가 벼 고랑 사이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언제 부터인가 뜸부기는 귀한 손님이 됐다.
» 구만리 주민들. 맨 왼쪽이 반경순 구만리 골프장 반대 추진위원장, 왼쪽에서 두 번째가 뜸부기 제보자 반종표씨이다.
» 구만리 생태 서식지를 안내했던 주민 이종설 주민(오른쪽)과 필자.
저녁 무렵 뜸부기 제보를 해 준 반종표씨와 구만리 골프장 반대 추친 위원장이었던 반경순씨, 생태 서식지를 안내했던 이종설씨도 만났다. 무척 반가웠다. 6년 전 구만리 골프장 일을 다시 되새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2014년 8월 29일 춘천지법 행정부(재판장 강성수 부장판사)는 원하레저가 강원도를 상대로 제기한 사업계획 승인 취소처분 취소 소송 1심판결에서 원고인 원하레저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 영역 다툼을 하는 수컷 뜸부기들.
조상의 땅을 훼손하지 않고 소중하게 보전하는 것이 구만리 주민의 꿈이다. 주민들은 대대로 자연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골프장 사업자가 골프장 건설을 시작하면 구만리의 이런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멸종위기야생생물 뜸부기가 다시 돌아온 것은 구만리 주민의 희망이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물바람숲> 필자
■ 참고 자료: 2012.12.13. 제18대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 입장 전문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해결을 위한 문재인 후보 입장입장 발표에 앞서 길게는 8년간 골프장 문제로 고통을 받고 계신 강원도민 여러분께 문재인 후보는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과 함께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못한데 대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우선 드립니다.문재인 후보는 어르신들께서 400일이 넘도록 강원도청과 강릉시청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몹시 가슴이 아팠으며,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을 맞아 여러분께서 따뜻한 가정에서 겨울을 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왔습니다.많이 늦었지만 이제 불신과 갈등의 골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 문재인 후보도 조금은 마음을 놓고 선거운동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그럼 문재인 후보와 캠프에서 그간 논의하고 결정한 내용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1. 문재인 후보는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해 범도민대책위 및 강원도와 꾸준히 노력해 왔으며, 최문순 강원도지사께서 어제 강원도내 골프장 문제에 대한 인허가 등 전반적인 과정과 절차에 대한 전면재검토와 이를 위한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며, 이를 적극 지지한다.2.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관련된 기관들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할 것이며,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은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또한 골프장 건설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의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법과 제도를 강화할 것이다.3.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지만,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렸으니 강원도청과 강릉시청에서 2년째 농성하고 계신 분들이 이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언 몸을 녹일 수 있었으면 한다.강원지역 골프장 문제해결을 위한 경과보고1. ‘강원지역골프장문제해결을위한범도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1월 17일 문재인 후보와 면담을 통해 강원도내 골프장 전면 재검토와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대한 관련기관의 특별감사 추진을 요구하였고, 문재인 후보는 그 자리에서 법률적 타당성을 검토하여 재검토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2. 문재인 후보는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변호사들께 법적 검토를 의뢰하였고,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대한 법률검토를 통해 모든 관련 골프장에 대한 전면재조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문재인 후보에게 보내 왔다.3. 문재인 후보측은 범도민 대책위원회와 꾸준한 접촉을 갖고 골프장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2년째 노숙농성 중인 어르신들이 하루속히 귀가하여 따뜻한 가정에서 겨울을 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달라”는 문재인 후보의 뜻을 주민들에게 전달하였다.4. 문재인 후보측 이학영 의원(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과 최승국 시민캠프 공동대표는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만나 골프장 문제의 원만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등 강원도와도 문제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5. 문재인 후보는 범도민대책위의 “1. 강원도내 골프장의 전면 재검토를 적극 지지하고 협력해 달라. 2. 대통령에 당선되면 인허가 관련기간에 대한 특별감사를 추진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수용하고 강원도 차원의 협조도 요청하였다.6. 그리고 어제 최문순 강원도지사께서 강원도내 골프장에 대한 전면재검토와 특별위원회 설치를 발표하였다. 최문순 지사로서는 이미 골프장 인허가 등의 절차가 진행된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줄 안다. 다시금 감사드린다.2012년 12월 13일 제18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 캠프(이학영 국회의원, 최승국 시민캠프 공동대표, 장하나 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
2만2792명 중 3%…"한국은 잘사는 나라 아니다"
[인터뷰] <우리 곁의 난민> 저자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난민. 2017년 대다수 한국인에겐 낯선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멀고 먼 '나라 밖' 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내전'으로 600만 명의 '난민'이 64년 전 발생했다. 한국은 유엔이 공식적으로 난민을 돕자고 결의한 뒤 처음으로 도움을 받은 나라다. 당시 한국 난민들을 구제한 나라 중엔 시리아도 있다. 어쩌면 '나'의 부모, 조부모가 난민이었을지 모른다. 최근 한국의 난민에 대한 밀착 보고서 <우리 곁의 난민>을 쓴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아기 예수도 난민이었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의 숫자는 6530만 명(2015년 말, UNHCR)에 달한다. 이들 중 거리, 문화, 정서적으로 멀고 먼, 한국을 찾아온 난민은 2만 2792명(1994년부터 2016년까지 난민 인정 신청을 한 수)이다. 하지만 이들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이들은 3퍼센트(672명)에 불과하다. 난민에게 한국은 인색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문 이사장은 기자로서 오랫동안 여성과 인권 문제를 다뤘고,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맡아 한국의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경험이 풍부하다. 그가 10명의 난민 여성의 삶을 밀착 취재해 쓴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난민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준다. '사회적 이슈'로서 난민 이전에 '사람'으로서 난민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을 냉대하는 스스로의 모습도 깨닫게 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아니 보지 않고 듣지 않았던, '우리 곁의 난민'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살려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난민들은 전쟁, 기후 변화, 종교적 박해, 가부장적 폭압, 인종 차별 등에 따른 피해자이지만, 생의 의지로 사선(死線)을 넘은 생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의 첫 번째 '마이너리티 리포트'인 이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문 이사장에게 지난 22일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의 숫자는 6530만 명(2015년 말, UNHCR)에 달한다. 이들 중 거리, 문화, 정서적으로 멀고 먼, 한국을 찾아온 난민은 2만 2792명(1994년부터 2016년까지 난민 인정 신청을 한 수)이다. 하지만 이들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이들은 3퍼센트(672명)에 불과하다. 난민에게 한국은 인색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문 이사장은 기자로서 오랫동안 여성과 인권 문제를 다뤘고,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맡아 한국의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경험이 풍부하다. 그가 10명의 난민 여성의 삶을 밀착 취재해 쓴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난민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준다. '사회적 이슈'로서 난민 이전에 '사람'으로서 난민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을 냉대하는 스스로의 모습도 깨닫게 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아니 보지 않고 듣지 않았던, '우리 곁의 난민'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살려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난민들은 전쟁, 기후 변화, 종교적 박해, 가부장적 폭압, 인종 차별 등에 따른 피해자이지만, 생의 의지로 사선(死線)을 넘은 생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의 첫 번째 '마이너리티 리포트'인 이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문 이사장에게 지난 22일 들었다.

▲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전쟁고아, 최초의 난민이었다
프레시안 : 한국인에게 '난민'이란 참 낯선 존재다. 책 <우리 곁의 난민>(서울연구원 펴냄)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한국에 난민인정 신청을 한 사람이 2만 2792명이나 된다니, 놀랍다.
문경란 : 조사를 하면서 나도 놀랐다. 한국이 난민인정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16년 말까지 난민인정 신청자는 2만 명이 넘지만, 현재 이 땅에 있는 사람은 1만 명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중 난민 인정을 받은 경우는 672명(3%), 인도적 지위 1156명(5.1%), 심사 진행 6861명(30.1%), 그리고 국내 난민단체들은 1000여 명 정도가 한국에서 난민불인정 상태로 살고 있다고 추산한다.
프레시안 : 6.25 한국전쟁 반발로 6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하자 유엔이 유엔한국재건단을 설립해 구호와 원조를 제공했는데, 이는 유엔이 설립된 뒤 처음으로 실시한 난민 구호 활동이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문경란 :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난민을 돕자'고 결의한 뒤, 처음으로 도운 나라가 한국이다. 일반적으로 '난민'이라고 하면, 국경을 넘는 경우만 생각한다. 하지만 유엔난민기구는 국경을 넘지는 않았지만 거주지를 탈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국내 실향민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또한 난민으로 분류한다.
개인적으로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도왔던 나라 중에 현재 내전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시리아 같은 나라도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시리아 의사가 전쟁고아 두 명을 입양했는데, 이 중 한 명은 어른이 돼서 쿠웨이트 주재 한국통상대표부에서 총영사의 비서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우리는 시리아를 내전으로 지새우는 미개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70여 년 전 한국도 똑같이 내전을 겪었으며 이때 발생한 난민들이 전 세계의 도움을 받았다.
프레시안 : 작곡가 프레드릭 쇼팽, 물리학자 알버트 아이슈타인, 정신분석가 지그문트 프로이트, 철학사상가 한나 아렌트 등도 모두 난민이었다.
문경란 :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겨 베들레햄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했던 갓난아기 예수도 난민이었다. 당시 헤롯왕은 하늘이 내린 자가 나타나 자신의 아들은 왕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풍문이 돌자, '두 살 이하의 아기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아기 천사에게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요셉은 추운 겨울, 갓 태어난 아기와 산후조리도 못 한 부인을 데리고 약 400킬로미터를 도망간 것이다. 난민의 삶을 공감하기 어렵다면, 아기 예수를 둘러업고 도망가는 마리아와 요셉을 상상하면 된다.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겠나.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다."(세계인권선언 14조)
누구든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

▲ <우리 곁의 난민>(문경란 지음, 서울연구원 펴냄) ⓒ서울연구원
문경란 : 국가는 국민 또는 구성원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그런데 권리를 보장받기는커녕 박해를 받아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난민이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난민인 것이다.
누구든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 누구는 존엄하고 누구는 존엄하지 않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존엄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난민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존엄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불쌍하니까 도와주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존엄하게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기에 그들의 존엄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사는 게 존엄하게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종합적이다.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보장받아야 하며,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의료권과 교육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또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노동하고 이를 통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인간의 권리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난민 또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인권이 보장되고 보호받아야 할 동등한 존재다."(247~248쪽)
한국은 "매우 인색한 나라"다
프레시안 : 한국은 난민인정에 "매우 인색한 나라"라고 했다. 난민인정 전체 신청자의 3퍼센트, 총 672명만 난민인정을 받았다. 이는 전 세계 난민인정률 38퍼센트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난민인정률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경란 : 이방인에 대한 높은 문화적 장벽이 있는 것 같다. 난민뿐 아니라 이주민에 대해서도 굉장히 높은 장벽이 자리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방인을 '짐'이라고 생각하는 정서가 있다.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부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불온한 시선의 이면에는 또 다른 인종주의도 작동하고 있다. 홍세화 전 난민인권센터 이사장이 'GDP 인종주의'라고 표현했는데, 한국보다 GDP가 높은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호의를 베풀면서도 GDP가 낮은 나라에서 온 이방인은 비하하고 차별하고 혐오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국은 난민인정률이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난민인정 심사 과정도 길다. 난민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일 것 같은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문경란 : 늘어난 난민인정 신청자 수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2013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난민법을 시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난민 문제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박수받을 일이다. 물론, 한류의 영향도 있다. 지난해 난민인정 신청자 수는 지난 22년간 난민인정 신청자 전체 수의 3분의 1이 넘는 7542명에 달했다.
난민 심사는 난민인정 신청자의 말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사지(死地)를 여러 번 넘다 보면, 기억이 왔다 갔다 하며 일관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심사위원은 '거짓말이지?'라며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특히 자국에서의 박해 경험 때문에 국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보니 심사위원이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면 부들부들 떨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신청자도 있다. 무례한 태도는 난민 신청자에게 위협으로 느껴져 그들을 더욱 위축시킨다."(111쪽) 따라서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난민에 대한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난민 여성의 경우, 법무부 출입관리소가 여성적 관점에서 박해의 사유를 제대로 심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난민 여성들은 가정폭력뿐 아니라, 성폭력과 성매매 등 성적 박해에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난민 지위 인정 면접 때 여성 면접관과 통역관을 배치해야 하며, 난민 여성의 출신국의 인권 상황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슬림 지역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는 '할례'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라이베리아 출신 마틸다를 인터뷰하며 들은 비밀조직 산디(Sande)와 여성 할례 이야기는 정말 믿기 어려웠다. 할례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여전히 끔찍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연대의 측면에서 다른 나라 여성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출신 국가로부터도, 난민 신청을 거부한 나라로부터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난민 불인정자는 무력하고 굴욕적이며 종속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이요(아감벤, 2008), 지그문트 바우만이 통탄해 마지않는 '인간쓰레기'의 화신인 것이다(바우만, 2010)."(236쪽)

▲ 난민지원단체 (사)피난처 활동가 김보미 씨가 책 <우리 곁의 난민>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잘 사는 나라, 그러나 인권은 낮은 나라
프레시안 : 동남아시아 4명, 중동 2명, 아프리카 3명, 동유럽 1명 등 총 10명의 난민 여성을 인터뷰했고, 이들 중 8명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이들은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됐을까. 물리적, 정서적, 문화적으로 한국은 매우 먼 나라다.
문경란 : 인터뷰할 때마다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됐느냐'라고 물었는데,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한결같은 말이 있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이며, 민주화가 굉장히 잘 된 나라고, 인권 역시 잘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한 4~5시간 동안 밥도 먹어가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들 중 몇몇은 '한국 국민의 인권 의식이 그렇게 높지 않아 실망했다'며 본심을 털어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이 난민들을 안 좋게 생각할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프레시안 : 미얀마 친족 출신 엄마(소피아 킴)를 따라 11살 때 한국으로 건너와 13년을 살았다는 캐롤라인.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자살공화국이자, 단절된 공동체 사회이며 위계질서가 군대식인 나라다. 그로 인해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참 부끄러웠다.
문경란 : 나 역시 너무 부끄러웠다. 평소에도 한국 사회는 물질적인 평등함과 달리 인간의 존엄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취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에 응한 난민 여성들은 먹고사는 물질적인 문제보다 '자신들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무시할 때 정말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고 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그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난민은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요,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일종의 '아웃 카스트(out-caste)'다."(235쪽)
난민 가정의 자녀, 정체성은 한국인
프레시안 : 책을 보며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뉴기니아 등에서 현지 연구를 하면서 기존 남성 인류학자와 달리 여성과 청소년들을 만났던 것이 떠올랐다. 난민 중에서도 여성만을 다루었기 때문에 한국 사회와도 더 많은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은 무국적이거나 출신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난민 가정의 자녀 문제,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문경란 :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난민 가정의 자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부모의 출신국에서 태어났든, 한국에서 태어났든 아이들은 현재 살고있는 한국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피부색이 다르다고,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난민 가정 자녀들은 이런 사실을 부모에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그러면서 꿈을 스스로 구조조정한다. 반면, 난민 가정 부모들은 "대학은 나와야 한국에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며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 난민지원단체 (사)피난처 활동가 김보미 씨가 책 <우리 곁의 난민>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프레시안 : 캐롤라인의 성장기가 인상적이었다. 대학에 가려면 형편상 장학금을 받아야 했지만, 미얀마 국적이라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온갖 정보를 다 뒤져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외국인에게 학비를 지원해주는 대학을 찾았고, 자신이 원하는 간호사의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문경란 : 캐롤라인은 '꿈이 뭐냐'는 질문에 '봉사와 베풂'이라고 했다. 우선 간호사가 돼 부모를 잘 부양하고, 돈을 벌면 매달 얼마씩이라도 고향을 도우며 기회가 되면 간호사로 직접 가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17살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롤라인은 개인적인 능력도 뛰어나지만,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객관화해서 볼 줄 알았다.
"이제까지 어려운 길을 헤쳐 나오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안 받았다면 베풂이라는 단어를 몰랐을 거예요. 경험을 통해 베풂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이제 꿈을 접어야 되나 보다'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작은 틈새지만 길이 뚫렸어요. 주변의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캐롤라인의 말 중. 91쪽)
난민과 소수자는 '짐'이 아니다
프레시안 : 소말리아 출신 난민이자 세계적인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데저트 플라워>(쉐리 호만 감독, 2009)를 보면서도, 2015년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을 접하면서도 난민 문제를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경란 : 크루디 사건 이후, 난민 문제가 많이 보도됐지만 대부분이 타자화하고 대상화한 뉴스다. 나의 문제, 또는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난민 문제를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외신 보도만 인용할 것인지 답답하다.
책 작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한 것이다. 인권적으로 보면, 인비저블(invisible)한 것을 비저블(visible)하게 하고 보이스리스(voiceless)한 것을 보이스(voice)하게 한 것이다.

▲ 해변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쿠르디 모습은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google.com
프레시안 : 모든 소수자 문제가 그렇게 단편화된 채 사건사고로 다뤄지는 것 같다.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지도 못한다.
문경란 : 나와 상관없는 타자, 즉 다른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관심도 일회성으로 끝난다. 좀 더 관심을 둔다면, '아이고, 안 됐네'라는 동정이다. 소수자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은 딱 이 수준이다.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는 길은 친구를 두는 것이다. 소수자 문제를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면, 말도 함부로 하게 될 뿐 아니라 자기 생각을 속단하게 된다. 하지만 소수자 친구가 주변에 있으면 나와 별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존엄하게 살아야하는데, 나의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면 소수자인 내 친구의 존엄 보장도 당연한 일이 된다.
프레시안 : 미얀마 출신 소피아와 캐롤라인 모녀 외에도 러시아 출신 올가, 코트디부아르 출신 아만, 라이베리아 출신 마틸다, 파키스탄 출신 신디, 시리아 출신 나디아, 콩고 출신 미야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례를 보면서 난민은 결코 불쌍하거나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경계를 넘은 사람이 가진 힘, 이 사람이 겪었던 경험이 이들 안에 응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힘을 사회적으로, 긍정적으로 승화한 사례가 미야 씨와 이주 여성을 위한 문화·경제 공동체인 에코팜므(Eco Femme) 이야기다.
문경란 : 그렇다. 난민은 우리 사회의 '짐'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 다양성과 잠재력을 가진 에너지이고 힘이다.
"난민에게 작은 환대를 베풀고 연대하는 것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국가의 책무다. 이제는 한국인도 자유와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세계인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할 때가 되고도 남았다."(255~256쪽)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프레시안(최형락)
문경란 : 어떤 사람이든 국가든, 더 잘산다고 손을 내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민 문제로 유럽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 난민의 절반인 약 1200만 명은 요르단, 터키,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레바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6개국에 몰려 있다. 이들의 GDP(국내총생산)는 2%도 안 된다. 반면 GDP 비율이 56.6%나 되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경제 규모 상위 6개국이 받아들인 난민은 전체의 8.9%인 212만 명에 불과하다.
세상은 무엇을 중심으로 움직일까? 정말 좋은 세상은 소수자가 사회의 중심 의제로 들어올 때 비로소 누구나 잘사는 사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잘산다'라는 것은 사회의 중요 가치가 '함께' 잘사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을 당하기 마련인데, 그런 불행에 닥쳤을 때 사회적으로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손을 잡아주는 이(이웃)가 있다면, 그래서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게 '잘사는' 사회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함께'라는 것은 빠지고, 물질적 풍요만을 강요하며 잘산다고 생각한다. 이는 압축적인 경제 성장의 병폐다.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가치가 깊숙이 내면화된 것이다.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통일부, 김련희씨와 12명 여성종업원사건 박근혜 정권과 똑같은 입장
| 통일부, 김련희씨와 12명 여성종업원사건 박근혜 정권과 똑같은 입장 | ||||
| 기사입력: 2017/06/25 [18:4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25일,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는 23일 통일부가 밝힌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북 해외식당 여종업원 북 송환촉구’ 답변에 대한 의견을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먼저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와 ‘평양주민 김련희씨 송환촉구모임’(이하 송환모임)은 지난 6월 14일, 청와대 앞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17주년에 즈음한 송환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한 바 있다.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가 김련희씨와 12명의 여종업원들을 하루속히 송환 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대책회의와 송환모임은 6월 15일, ‘대통령에게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요구서한을 <국민신문고>를 통해 온라인 민원 접수하였으며, 이에 민원 접수 후 6월 23일, ‘통일부 공동체 기반조성국 정착지원과’로부터 민원 처리결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먼저, 통일부는 답변에서 “김련희씨와 해외식당 여종업원이 ‘속아서 강제로 끌려왔다’ 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김련희씨는 자유의사에 따라 입국하였고 입국 및 정착과 정에서 대한민국에 정착하겠다는 의사를 본인이 수차례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북한 해외식당 여종업원 역시 마찬가지로 국내 정착의사를 표명하였으며, 현재 학업 등을 하며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따라 살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다만, 종업원들은 재북 가족의 신변안전을 우려하고 있어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책회의는 ‘통일부의 답변은 지난 박근혜 정권 때와 통일부 입장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똑같은 주장’임을 밝혔다.
김련희씨는 본인이 직접 “속아서 억지로 끌려왔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며 본인의 의사는 “대한민국에 정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송환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대책회의는 강조했다.
그리고 대책회의는 “북 해외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은 박근혜 정부 하에 국가정보원이 기획한 사건이라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해왔으며 북 당국과 그 가족들은 “유인, 납치극”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과 문제들이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특히, 12 명의 여종업원들의 신변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본인들의 의사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채 계속 정부당국의 말만 믿으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주장했다.
대책회의는 통일부가 이번 답변에서 밝혔듯이 “김련희씨와 북 해외식당 여종업 원들의 송환문제는 순수하게 기본적 인권과 인도주의 실현 및 통일준비 차원에서 추진할 문제로서, 여기에 어떠한 정치적 고려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정부 당국이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아픔과 인도적 문제들이 하루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만큼 문재인 정부는 지금 즉시 12명 여종업원들의 신변과 본의의 자유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12명의 여종업원이 북으로 송환을 요구한다면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하루빨리 송환해야 할 것을 대책회의는 강조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인도주의적 문제를 지체없이 해결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길로 대담하게 나서야 할 것을 대책회의는 주장했다.
한편, 북에서는 6월 23일 민족화해협의회의 공개 질문장을 통해 “강제 랍치되여간 우리 녀성 공민들을 지체없이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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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연기장병 ‘대기업 특채’ 이후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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