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0일 화요일

양승태의 무죄,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은 '재판거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고] 피해자들의 권리회복도 중요하다

장정수 긴급조치사람들 이사  |  기사입력 2024.01.31. 05:04:10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무죄 판결이 정당하느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그러난 무죄판결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검찰이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자신이 사용하던 개인용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는 디가우징(degaussing)해서 데이터가 지워져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 압수수색 영장도 법원이 기각했다.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게 처음부터 세팅돼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의 무죄선고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피해자들의 문제는 무죄선고와 관계없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을 최초로 폭로했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판개입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지적한 것처럼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사법농단과 재판거래의 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의 경우 절반이상이 여전히 재판거래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 독재정권하에서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다가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됐던 민주인사들로 구성된 (사)긴급조치사람들이 30일 발간한 '긴급조치 재판거래 백서'를 보면 그 피해 현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긴급조치 재판거래 백서' 바로가기 ☞ : 클릭) 

백서에 따르면 긴급조치9호 피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재판거래 피해상황을 조사한 결과 총 192명의 소송제기 피해자들 가운데 53%에 달하는 102명이 패소확정판결을 받아 사법농단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백서에 수록된 긴급조치 국가배상소송 재판사례에 따르면 패소확정판결을 받은 102건 중에서 45건은 1심에서는 피해자들이 모두 승소했으나 재판거래를 위해 짜여진 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받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에 모두 패소했다. 



 그 대상을 1000여명에 달하는 긴급조치9호의 전체피해자들로 확대하면 약 60%이상의 피해자들이 재판거래로 국가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도 문제지만 그 피해자들의 구제방안에 대해 사법부가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면 긴급조치 재판거래의 본질은 헌법적 기본권의 수호를 본령으로 하는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통해 조치피해자들의 헌법적 권리인 재판청구권(헌법 27조)과 국가배상청구권(헌법 29조)을 박탈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긴급조치 재판거래 백서'에는 대법원의 수뇌부가 어떻게 긴급조치 사건을 비롯한 각종 시국사건에 대해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통해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이끌어 냈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백서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휘하의 대법원 조직인 법원행정처의 기획조정실이 2015년 7월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설득방안'이란 문건에는 '정부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사례'로서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이 언급되고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고 전제하고 긴급조치9호 피해 국가배상소송을 무력화시킨 대법원의 두 판결(2013다217962, 2012다48824)을 '국정협조사례'로 적시하고 있다.

특히 이 문건은 긴급조치에 대해서 "대통령 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함"이라고 부연암으로써 문제의 대법원 판결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나온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또 사법농단의 핵심인물 중 한사람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획실장으로 있을 때인 2015년11얼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란 문건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술돼 있다.

이는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 소송의 무더기 패소를 초래한 대법원의 두 판결이 청와대와 상고법원 설치 흥정을 위해 사전에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사법적 단죄도 이뤄져야 마땅하지만 그 피해자들의 권리회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법부는 물론이고 국회, 행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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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의 지정학 산책] ICJ 결정, 전말과 이후

 



서아시아 평화의 중심고리는 가자전쟁의 종식에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US-backed)’ 이스라엘군은 이스라엘 극우정권의 프로파간다와는 달리 여전히 아직 가자지구를 평정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하마스 등 저항세력의 강력한 항전에 심각한 군사적 타격을 입고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극우정권은 이스라엘 북부 즉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확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은 230만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단말마의 고통을 강요했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하마스와의 힘든 전쟁보다 비무장의 어린이와 여성들을 상대로 한 쉬운 전쟁 즉 학살이었다. 이스라엘군은 단위시간에 가장 많은 어린이와 여성들을 학살한 전쟁사를 통틀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할, 최고로 용감한 군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이 자행한 이 집단학살에 가장 치열하게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연대한 쪽은 예멘의 안사르 알라와 남아공이었다.

먼저 예멘의 안사르 알라 정부의 입장은 간명하다.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를 멈추면, 홍해 봉쇄도 멈춘다. 이 들의 입장은 무엇보다 한국 정부도 가입되어 있는 ‘제노사이드 방지와 처벌에 대한 협약’ 제1조에 근거한다. “제1조 체약국은 집단살해가 평시에 행해졌는지 전시에 행해졌는지를 불문하고 이를 방지하고 처벌할 것을 약속하는 국제법상의 범죄임을 확인한다.”

현재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인구 전체의 1% 이상을 학살했다. 어찌 보면 이들의 목표는 하마스 소탕이 아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인종청소다. 하마스 제거는 핑계이고 또 그 핑계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가운데 사상자는 계속 늘고 있다.

안사르 알라 정부는 자신들이 이스라엘 향발의 화물 선박을 봉쇄한 것은 바로 이 제노사이드협약 1조에 근거한 국제법상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찬가지 예멘 정부뿐만 아니라 이 협약에 가입한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나라 역시 이 협약에 근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집단살해를 “방지”하고 “처벌”할 의무가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이 협약에 가입함으로써 제1조상의 의무를 이행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안사르 알라 정부에 대해 미영은 자신의 일부 우호국을 줄 세워 예멘을 침략했고 지금 이 시간에도 홍해전쟁은 진정될 기미가 전혀 없다. 미국은 “규칙기반 국제질서” 수호를 개전 사유로 내걸었다. 미국이 말하는 ‘규칙기반 국제질서’는 국제법이 아니다. 미국이 임의로 정한 자신만의 이익 특히 미국 석유자본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군사행동이다. 미국은 안사르 알라의 봉쇄를 불법이라고 규정한다. 마찬가지 아래에서 보게 될 남아공의 이스라엘 ICJ 제소도 처음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예멘군의 대응은 이스라엘 향발 선박뿐만 아니라 미, 영선박에 대한 공격으로 확장되었다. 미영을 제외한 예컨대 중러 심지어 얼마 전까지도 교전국이었던 사우디의 선박도 자유 통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포항에서 출발한 지브롤터 이글이라는 선박이 예멘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항해 중이었던 이 선박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폴란드로 향하거나 이스라엘로 가는 중이었다는 ‘설’이 있다.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 설립 70주년 행사 모습. 2016. 4. 20. ⓒ뉴시스

‘글로벌 다수’(Global Majority)의 국제법 대 미국의 특수이익의 표현인 ‘규칙’과의 싸움에서 남아공은 국제법을 선택했다. 12월 29일 자 ICJ의 언론보도문에 따르면, 남아공이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과 관련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대한 국제협약’ 상의 의무 위반에 대한 소송절차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신청서에 따르면, “더 광범위한 팔레스타인 국적, 인종적 집단의 일원인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을 파괴하기 위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이를 자행함으로써 이스라엘에 의한 행위와 태만은 그 성격에 있어 제노사이드적이다.” 그리고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국가기구, 국가의 대리인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시, 명령, 통제 혹은 그 영향력 하에 행동하는 기타 인물과 단위들을 통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제노사이드 협약상의 의무를 위반하였다.”

또 남아공은 “이스라엘이 특정하게 2023년 10월 7일 이후 제노사이드를 방지하는 데 실패했으며 또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공연한 선동을 처벌하는 데에도 실패했고” 나아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이스라엘인에 대한 제노사이드 행위에 종사했고, 종사하고 있으며, 향후 종사할 우려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남아공은 국제사법재판소 규칙 제74조 “잠정조치(provisional measures) 지시의 신청은 다른 모든 사건에 우선한다”에 의거 “잠정조치의 지시”를 신청했다. 국제사법재판소 규칙 제74조에 따르면 잠정조치 신청이 있을 시, 재판소장은 재판소가 개정 중이 아니라 하더라도 즉시 재판관을 소집하고 당사자의 구두변론을 위한 변론기일을 지정해야 한다. 규칙 제75조는 나아가 재판소는 ”상황“에 따라 ”직권으로“ 잠정조치 지시가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이스라엘국가에 대해 무력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지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재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되는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와 전범행위는 명백한 국제법위반이다. 그렇지만 제노사이드 범죄의 경우 단순한 주장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종말살을 위한 “특정 의도(intent)”를 입증하는 문제다. 하지만 신청국 남아공의 신청문에서도 언급되듯, 이스라엘 정부, 전시내각, 고위공무원, 군 지휘관 등은 수많은 경우에 공공연하게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를 발언, 지시, 선동해왔다. 이를 입증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남아공의 제소로 개시된 이스라엘 정부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집단살해에 관한 국제사법재판소 변론기일은 1월 11~12일 양일간으로 결정되었다. 이 기간 개최된 변론 절차에서 남아공이 우선적으로 청구한 것은 “잠정절차의 지시”이다. 즉 본안에 앞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집단살해 사안의 긴급성과 회복 불가능성에 근거 “잠정조치”를 법원이 “명령(order)”하라는 취지다.

남아공 측의 이스라엘 집단살해죄 여부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도 출석해서 자기 방어에 나선다. 이스라엘의 변론전략은 이스라엘군의 작전은 하마스의 테러에 대한 정당한 방어권의 행사라는 데에 집중되었다. 이스라엘 정치인이나 보통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무죄의 민간인이란 없다”라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무 많은 민간인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는지, 절반이 아이들인 이들 죽은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하마스 공범이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해 왔다. 아무튼 이스라엘 측 분위기는 다 죽이는지 불가능하다면 시나이사막에 갖다 버리자는 것이었다. 이 원계획이 좌절된 이후 남미나 유럽으로 ‘수출’하는 쪽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그러다 콩고와도 협상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의 잔학행위는 일반적인 전쟁법상의 비례성과 군사적 목적성이라는 법원칙을 현저하게 일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스라엘 측 논변이 수용될 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우세했다. 이럴 때 시오니스트들의 가장 오래된 방어전략이 이 모든 것이 ‘피의 비방(blood libel)’ 즉 ’반유대주의‘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정당방어 행위를 집단살해 혹은 인도에 반한 죄라고 말하는 것은 반유대주의적 비방전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담론전략은 이제는 색이 바랐다고 해야겠다. 이스라엘을 가장 큰 위협에 빠트린 것은 네타냐후 극우정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잠정조치 즉 일종의 가처분이 인용되면 어떻게 되는가. 남아공이나 이스라엘이나 모두 유엔 회원국이자 제노사이드협정의 당사국이다. 즉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이나 차후의 최종판결은 구속력을 가진다. 그래서 규칙 제 74조 제4항에 의거 재판소장은 잠정조치 신청에 따라 내려진 “모든 명령”이 “적합한 결과”를 가져오게끔 당사국이 행동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규칙 제 78조에 따라 재판소는 당사국이 자신의 지시를 이행했는지 여부에 대한 정보요구권을 갖는다.

재판소는 국제사법재판소 규칙에 의거 그 결정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통보하고 사무총장은 이를 유엔 안보리에 즉각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만일 이스라엘 정부가 재판소의 잠정조치 명령을 불이행할 시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판례와 해석에 따르면 재판소의 결정이 안보리에 통보되더라도 안보리가 이를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미국이 비토하면 재판소의 결정이 있더라도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 혹은 국제연합 평화유지군 등과 같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을 앞두고 예상대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지지하는 글로벌 신앙고백이 시작되었다. 독일 총리 숄츠가 첫 주자였다. 숄츠의 ‘신호등정권’ 즉 사민-녹색-자민당은 역대 최약체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위해 이 재판에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녹색당-실은 ‘갈색’당-출신 부총리와 외교장관 역시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했다. 제노사이드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은 그냥 안 봐도 된다. 미국의 속주이자 바람잡이이자 푸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제나 그랬다. 영국이 하는 말은 그냥 흘려들어도 글로벌 판세를 읽는 데 별 상관없다. 또 하나 항상 미국 시키는 대로 하는 정부가 캐나다다. 트뤼도가 등장 이스라엘이 3만명 죽여도 그건 제노사이드 아니란다. 재판부의 결정이 내려진 후에도 영국은 ‘상당한 우려’를 공식 표명했고, 캐나다는 국방장관이 등장해 재판부의 제노사이드 결정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발표했다.

ICJ 홈피에는 현 15인의 판사 면면이 게시되어 있다. 재판장 미, 부재판장 러를 비롯, 슬로바키아, 프랑스, 모로코, 소말리아, 중국, 우간다, 인도, 자메이카, 레바논, 일본, 독일, 호주, 브라질 출신들이다. ICJ 판사들이 통상의 예로 보자면 순수하게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리라 믿는다면 이는 국제정치맹이라고 하겠다. 출신국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고도로 ‘정치적으로’ 표결한다. 게다가 미, 영이 나서서 판사들을 매수하고 겁박할지 모른다. ICJ의 현 재판장 조안 도노휴(Joan Donoghue)는 판사로 임명되기 전 미 국무성 법률고문이었다. 그 인맥을 타고 들어와 2021년부터 재판장을 맡고 있다. 도노휴 판사는 며칠 전 1월 11일 일본 외무장관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일본 출신 ICJ 판사인 유지 아와사와(Yuji Iwasawa) 등과 함께 회동을 가졌다. 뿐만 아니다. 미 국무 블링컨 역시 이즈음-특히 작년 영국이 배후에서 작용했다는 설이 있는-푸틴을 기소한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장 카림 칸과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장 도나휴를 면담했다는 말이 한때 돌았다.

그래서 독일은 원래부터 반대표로 예상했었던 표다. 숄츠가 ‘개입’한다는 의미는 그렇게 ‘지시’하겠다는 말이다. 재판장인 미국표도 그랬다. 호주도 같은 앵글로색슨표다. 인도의 모디 정부는 기본적으로 강한 반이슬람이라 이스라엘 편이었다. 일본은 미일동맹표다. 우간다는 미국을 따를 것으로 봤다. 그래서 보자면 우선 미국, 인도, 독일, 일본, 호주, 우간다는 제노사이드 아니라고 할 것이다. 여기 6표다. 반면 슬로바키아, 모로코, 소말리아, 자메이카, 레바논, 브라질 등 6표는 거의 확실하게 제노사이드 표다. 지금까지 6:6 동률이다. 그런데 이번 재판에는 ‘임시’재판관 2명이 추가되었다. 청구인 측인 남아공과 피청구인 측인 이스라엘 재판관이다. 그래서 재판관은 15인에서 2인이 늘어나 17인이다. 하지만 이 2표의 향배는 확정적인 지라 사실상 남는 표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 3표다. 제노사이드 ‘잠정조치(가처분) 명령’ 결정을 위해선 9표가 필요했다. 남은 3표 중 2표가 제노사이드를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의외였다. ICJ가 남아공의 이스라엘 제노사이드 중단을 위한 잠정조치 신청을 받아들였다. 아래 결정문을 보자.(괄호안은 찬반 표결 결과)

ICJ 결정문과 찬반 투표 결과

1.이스라엘 국가는 가자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방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shall take all measures).(15:2)
2.이스라엘 국가는 이스라엘군이 그 어떤 제노사이드도 자행하지 않게끔 보장해야 한다.(15:2)
3. 이스라엘 국가는 제노사이드를 공공연히 선동하는 모든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16:1)
4.이스라엘 국가는 가자지구의 열악한 생존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적이고 실효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16:1)
5. 이스라엘은 제노사이드협약에 관련된 행위에 대한 증거보존을 위해 실효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15:2)
6. 이스라엘은 1개월 이내에 본 법정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취한 모든 조치를 본 법정에 보고해야 한다(15:2)


쟁점별로 이루어진 표결에서 전부 반대표를 던진 나라는 우간다의 줄리아 세부틴데(Julia Sebutinde)였다. 이스라엘의 임시 재판관은 쟁점 1, 2, 5, 6에는 반대표를 하지만 우간다의 재판관이 반대표를 던진 쟁점 3, 4에 의외로 찬성표를 던졌다. 쉽게 낙관하기 어려웠던 표결에서 사실상 압도적인 표차로 남아공이 승리한 것이다. 물론 남아공이 요구한 즉각적인 전투중지(cease-fire) 대신 “이스라엘군은 그 어떤 제노사이드도 자행되지 않게끔 보장”해야 한다는 우회적 결과를 얻어 냈다. 사실상 전투중지 없이 모든 제노사이드의 중단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 효과 면에서는 동일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잠정조치’(가처분)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제노사이드를 ‘방지’하기 위해 이스라엘 국가와 군은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을 ‘명령’한 것이 골자다. 이것이 제노사이드인지 아닌지는 사실 본안소송에서 다투게 될 것이지만, 이번 결정에서 명령한 것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본안소송에서 제노사이드 최종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세기적 재판의 결과 이후 이제 가자에서 총성은 멈췄을까.

2024년 1월 28일 현재 가자지구 사상자 ⓒ알자지라


위에서 보듯 1월 28일 현재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26,792명이다. 부상자는 약 7만명이다. 실종자는 8,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데 사실상 사망자로 보면 된다. 그렇다면 약 3만5천명이 사망했고 이중 어린이 숫자는 1만3천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ICJ 판결 48시간이후까지의 이스라엘 상황 ⓒ유럽-지중해 인권 모니터

‘유럽-지중해 인권모니터’라는 단체가 ICJ 판결 48시간 이후까지의 이스라엘 동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1) 이스라엘의 공격에 의해 가자지구에서 37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643명이 부상했다.
2) 가자 남부 칸유니스 지역 병원이 공격받고 포위가 계속되고 있다.
3) 칸유니스지역 주민들이 나세르 병원에 수십 구의 사체를 매장하도록 강요받았다.
4) 이스라엘 포위와 공격에 의해 사망한 사체를 매장할 4개의 대형 묘지가 칸유니스에 만들어졌다.
5) ICJ 결정 이전과 비교 절반도 안 되는 87대의 구호 트럭만이 가자지구에 들어왔다. 6) 구호 트럭을 기다리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되었다.
7) 이스라엘군이 보안 검문소를 설치했고 칸유니스 난민캠프 서쪽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대했다.
8)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15% 면적을 차지할 완충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가자장벽 동쪽 경계로부터 1.000~1,500미터 내에 있는 거주지 전부를 파괴했다.
9) 누구보다 네타냐후 총리와 재무장관 등이 중심이 되어 ICJ 결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발언을 의도적으로 계속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영국, 캐나다 등을 중심으로 한 ‘규칙기반 국제질서’ 진영들의 ICJ 국제법 사보타지운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격화되는 중이다. 특히 미, 영,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태리, 스웨덴, 일본 등 소위 집단서방이 일치단결(?)해 가자지구 구호활동의 중추를 담당하는 유엔난민구호기구(UNRWA) 분담금 납입을 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이른바 ‘정착민’은 이스라엘군의 지원을 받아 인질석방을 구호로 내걸고 구호차량의 가자진입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 ICJ 결정이후 현재 가자는 이들 ‘규칙기반’ 집단서방의 사보타지에 의해 새로운 기아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상태라 하겠다.

이미 남아공은 미영을 학살공범으로 ICJ 제소를 준비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와 슬로베니아는 불법점령으로 이스라엘을 ICJ에, 멕시코, 칠레는 전범 혐의로 이스라엘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했다. 벨기에와 아일랜드는 남아공의 소송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번 결정이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더라도 미영불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 경우 압도적으로 친팔레스타인 표결을 해 온 유엔 총회에 이 사안이 회부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이 지금처럼 ICJ 명령을 노골적으로 불복하고 미영독, 캐나다 등 극소수 국가의 뒷배를 믿고 학살행위를 지속할 경우 이스라엘을 유엔에서 배제하고 팔레스타인국가를 정식 승인한다든지 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지금 목도하고 있는 첫째, 유엔 안보리의 완전한 균열과 둘째, 유엔 안보리와 유 엔총회의 균열로 귀결되어 국제사회는 앞을 내다볼 수 없을 ‘퍼펙트 스톰’의 대혼란으로 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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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신문 솎아보기]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동아일보 “정부 차원에서 참사 원인, 과정 속시원하게 정식 설명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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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집회 기자 강제 퇴거 사태, 경향 “헌법위배” 한겨레 “서울시 기조 반영”

기자명박재령 기자

  • 입력 2024.01.31 07:40

  • 수정 2024.01.3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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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5일 의정부제일시장 상인들과 오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31일자 경향신문 1면 사진기사.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취임 이후 법안 수 기준 9번째 거부권 행사로 역대 대통령 최다다. 주요 아침신문 9개 중 8개 신문이 이를 1면에 보도했지만 조선일보는 8면에 보도했다. 다수 신문이 여야 모두의 책임을 묻는 양비론을 편 가운데 동아일보는 “서울경찰청장 등 23명이 기소됐지만 포괄적 책임을 진 정부 고위직 인사는 없었다”며 “야당 역시 총선 후로 특조위 구성을 미루는 등 ‘정쟁 요소’를 막판에 뺐다지만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특별법(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하며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법안을 재의결하려면 재적 위원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법안을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112석을 가지고 있어 법안 폐기가 유력하다.

‘독단적 정부’ 지적한 신문과 ‘극단적 갈등’ 양비론 편 신문

▲ 31일자 국민일보 1면 사진기사.

대다수 신문이 1면에 거부권 행사 소식을 전했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거세게 항의하는 유족들의 항의 사진도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말고도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50억 클럽 특검법 총 8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거부권을 반복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했다. 경향신문은 31일자 1면에 <끝내 거부권… 위로도 없이 돈 내밀었다>고 했고 한겨레는 <이태원 진상규명 끝내 거부>라고 했다.

▲ 31일자 조선일보 8면 기사.

다수 신문은 단순 여야 갈등 구조로 사안을 봤다. <尹, 이태원법 거부권 총선정국 대치 격화>(국민일보), <尹,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희생자 유가족-야당 반발>(동아일보), <입법폭주·거부권 악순환 민생 발목 잡는 ‘대결 정치’>(세계일보) 등의 제목을 1면에 달았다. 중앙일보와 서울신문은 윤 대통령의 추모시설 건립 대안 발표를 1면 제목에 포함시켰다. 조선일보는 이를 8면에 다뤘다.

사설 논조도 엇갈린다. 경향신문은 31일자 사설 <맹탕 수사하고 이태원법도 거부한 국가의 불통과 독단>에서 정부 책임론을 폈다. 경향신문은 “매번 참사 책임을 물어야 할 윗선·실세 앞에서 수사는 길을 잃었다. 그러고도 참사 유족·피해자들의 진상 규명 요구를 받아 만들어진 특별법까지 다시 거부한 윤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이 개탄스럽다”며 “헌법이 입법부 견제를 위해 엄격한 요건으로 제한한 재의요구권을 마치 조자룡 헌 칼 쓰듯 마구 휘두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사설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 막겠다고 거부권 쓴 윤 대통령>에서 “검찰은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처벌을 미루고 뭉개다 기소심의위원회의 공개 권고를 받고 나서야 마지못해 기소했다. 이런데 누가 수사 결과를 믿겠나”라며 “다수 국민의 참사 원인을 밝히자는 특별법안에 거부권을 들이댄 것은 참담한 일이다. 정쟁을 핑계대지만, 진상규명 요구를 정쟁으로 몰고 간 것은 정부·여당 책임이 절대적”이라고 했다.

▲ 31일자 동아일보 8면 사설.

반면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서울경찰청장 등 23명이 기소됐지만 포괄적 책임을 진 정부 고위직 인사는 없었다. 정부 차원에서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속시원하게 정식 설명한 적도 없다”면서도 “야당 역시 총선 후로 특조위 구성을 미루는 등 ‘정쟁 요소’를 막판에 뺐다지만 설명이 더 필요하다. 세월호 사건 등 참사 때 위원회를 반복 구성했지만 소득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누구까지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하냐는 문제는 결론짓기가 애매할 수 있다. 하지만 사법적 책임 이전에 관련 당국자가 정치적·도의적 책임이라도 지면서 국민 감정을 누그러뜨렸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조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정부의 무신경한 모습에 불만 여론이 팽배하면서 민주당의 ‘특별법 공세’가 가능해진 것이다. 앞으로 이태원특별법은 다시 국회로 돌아가 재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여야는 이제라도 다시 협의를 시작해 특별법의 위헌적 하자를 제거하고 합의 처리하길 바란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통령 사과 촉구 중앙 “대통령 원래 그런 자리”

▲ 31일자 중앙일보 칼럼.

중앙일보가 윤석열 대통령 사과를 촉구하는 데스크 칼럼을 냈다.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는 31일자 칼럼 ‘시시각각’(윤 대통령 사과할 수밖에 없다)에서 “대통령의 사과에도 일종의 법칙이 있다. 자신들이 하지 않은 일엔 기꺼이 사과하려고 한다”며 “대통령하고 가까운 사람과 관련될수록 더욱 그렇다. 마냥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숙여야 한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고정애 편집국장대리는 “사례는 많다”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문제 등을 거론한 뒤 “지난해 11월 말 첫 보도 이후 대통령실의 침묵(내지 방치) 속에서 퍼지던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이 임계점을 넘어 대통령과 여권 2인자가 충돌하는 사안으로 커졌다. 윤 대통령이 주저하는 사이 김 여사의 처신 문제였던 게 대통령의 국정수행 방식(또는 판단력)에 대한 문제가 됐다. 국민을 가장 앞세워야 할 대통령이 가족을 앞세우느라 국민과 맞서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고 대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공보처 장관을 지냈던 오인환을 인용해 “아들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YS는 가족들과도 편치 않은 입장이 됐다. (중략) 고뇌 속에 YS는 별건 수사 시비에 상관없이 아들을 구속해 법정에 세우는 결단을 내렸다. 냉소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 9단의 YS가 자신이 살기 위해 아들까지 희생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 뒤 고 대리는 “대통령은 원래 그런 자리고, 그래야 하는 자리다. 모두 윤 대통령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전장연 기자 강제 퇴거 사태에 경향 “헌법 위배 소지, 언론 자유 침해”

▲ 31일자 한겨레 12면 기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집회 현장에서 비마이너·레디앙·경향신문 기자 등이 서울교통공사 보안관에 의해 강제 퇴거된 가운데 경향신문이 “언론 자유 침해”라는 사설을 냈다. 한겨레는 기자들에 강경 대응한 서울교통공사를 놓고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라 시의 기조가 즉각 반영되는 구조”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31일자 사설 <취재기자 강제 퇴거한 서울교통공사, 언론 자유 침해다>에서 “지난 22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3주기’ 집회를 취재하던 경향신문 기자 등이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에 의해 강제 퇴거당했다. 해당 기자들이 신분을 증명했지만 막무가내로 역사 밖으로 끌려나갔다”며 “이틀 뒤 서울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환승 통로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해고 철회와 복직 투쟁’ 기자회견을 취재하던 비마이너 기자 등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시민의 집회권을 제약하는 것도 모자라 언론 자유까지 침해한 서울교통공사를 비판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불가분의 관계이며, 이를 제약할 때는 분명한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의 강제력 집행은 자의적이며, 헌법과 법률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헌법과 법률이 왜 있는지 인식을 찾기 어렵다. 승객 편의를 명분으로 역사 내 집회 강경 대응을 주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시를 최우선한 것은 아닌가”라고 했다.

한겨레도 31일자 12면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는 9호선 집회와 기자 강제 퇴거 등이 발생한 4호선 집회를 비교했다. 한겨레는 “메트로9호선 쪽의 대응은 정반대다. 전장연은 지난해 11월 출퇴근길 지하철 시위 장소를 혜화역으로 바꾸기 전까지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같은 시위를 17차례 진행했는데, 이곳에서 강제 퇴거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대합실에서 이뤄진 침묵시위조차 위법이라며 강제 퇴거시킨 교통공사 쪽과 대비된다”고 했다.

한겨레는 “전장연 시위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두 회사의 지배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메트로9호선은 부산은행이 지분 100%를 소유한 민간기업이고, 교통공사는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라 시의 기조가 즉각 반영되는 구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장연 시위를 ‘사회적 테러’라고 비난하는 등 수위를 높이면, 교통공사 쪽도 시위 대응 수준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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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30일 서울교통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 측의 시위 진압 등 행위가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등 위법성이 있다는 의견서를 교통공사에 제출하려 했지만 공사 측은 수령을 거부했다. 공사 측은 사전에 교감된 부분이 아니라 (수령에)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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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위헌이라니...대통령 거부권에 유가족 오열

 

정부여당, 셀프 진상규명 시도 막히자 공정성 운운

“특조위가 국민기본권 침해? 전혀 근거 없어”

인파에 떠밀린 건 원인 아닌 현상...여전히 진상규명 필요

정부, 유가족 서로 못 만나게 하고, 장례 빨리 치르라 압박...“이게 지원이냐”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마저 거부권을 행사했다. 참사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30일 한덕수 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의결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신속하게 재가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반헌법적이고 공정하지 않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유가족들은 국무회의 내내 정부청사 앞에서 처절하게 항의했지만, 끝내 정부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묵살했다.

유가족들은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헌법 가치"라며 "159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윤석열 정부야말로 위헌정부”라고 규탄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을 하던 중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이 의결되자 슬퍼하고 있다. 2024.01.30. ©뉴시스

정부여당, 셀프 진상규명 시도 막히자 공정성 운운

이날 오후 시청 앞 희생자 분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유가족들의 분노와 절규로 가득찼다.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특별법에 담긴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는 정부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초 여당이 특별법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던 까닭은 특조위 위원장 추천권을 정부·여당이 가져가겠다는 시도가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정부 실정을 조사하는 기구에 친정부 인사를 추천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것.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조사 대상이 되어 진실이 규명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냐”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해 정부 영향에서 자유로운 조사기구를 구성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강조했다.

“특조위가 국민기본권 침해? 전혀 근거 없어”

정부가 거부권 행사 근거로 내놓은 입장에 대한 상세한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는 거부권 행사 근거로 ▲특조위가 영장 없이 동행명령을 하거나 압수수색 영장 청구의뢰를 하여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 ▲특조위 구성의 중립성 결여, ▲특조위의 사법부·행정부 권한 침해 우려, ▲국정조사 등을 통한 기존의 충분한 진상조사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윤복남 변호사는 “특조위의 동행명령권과 영장 청구 의뢰권은 이전 세월호 특조위나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가졌던 권한”이라며 “과거 조사위 활동에서도 위헌성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립성 결여 주장에 대해서도 “특별법상 특조위원 11인은 여야가 각각 4인을,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협의하여 3인을 추천하도록 하는 구조인 만큼 충분히 공정하다”고 일축했다. 만약 국회의장이 야당 인사라는 게 문제라면 ‘관련단체’를 특정하지 않았으니 다양한 의견 전달을 하면 된다는 말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 의결 대한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1.30. ©뉴시스

인파에 떠밀린 건 원인 아닌 현상...여전히 진상규명 필요

특조위가 사법부·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윤 변호사는 “행정부가 재난원인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 그 역할을 대신할 독립적 조사 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해외 사례에 비춰도 보편적”이라며 “특조위는 기본적 조사를 수행하는 기구이고 사법 판결을 내리는 기관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에 의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바 없다. 경찰 수사는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일부 관련자만을 기소하는 데 그쳤고, 국회 국정조사는 출석 자체를 회피하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한 자들이 너무 많았다.

이에 윤 변호사는 “특수본은 사건 발생 74일이나 되어서야 군중 유체화(사람이 인파에 떠밀리는 현상)를 원인이라 얘기했지만, 그건 모두가 알고 있었던 현상에 불과하다”며 “참사 이전에 왜 경비대를 배치하지 않았는지, 119 신고 대응이 왜 지연되었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엔 자유권 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기구 설립을 권고한 데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유가족 서로 못 만나게 하고, 장례 빨리 치르라 압박...“이게 지원이냐”

정부의 생색내기용 변명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내세우는 유가족들에 대한 전담 공무원 배치와 장례지원, 의료비 지원 등에는 어떤 내실도 없고, 오히려 사건을 덮으려는 치졸함이 돋보였다는 것.

이와 관련해 조인영 변호사는 “장례지원 과정에서 배치된 전담 공무원은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서로 못 만나게 하고, 장례를 빨리 치르라 독촉하기까지 했다”며 “의료비 지원의 경우 유가족에게는 문자 한 통으로 안내하고, 참사 생존자에게는 그조차도 하지 않아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 희생자들이 즐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부실 대응을 감시 감독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제정을 통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거부권 의결과 더불어 정부가 발표한 ‘희생자·유가족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 계획’에 대해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 위원장은 “1년 넘게 무수히 호소하고 절규할 때는 단 한 번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철저히 외면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피해자를 위하는 척 하는 것은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발을 막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특별법을 통한 특조위가 아닌 어떤 것도 정부 측과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거부권 행사로 말미암아 안전사회로 나아갈 길이 요원해진 가운데, 국회 재의결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재의결은 국회의원 출석 2/3가 찬성하면 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