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7일 일요일

남들이 뭐라건, 노무현의 길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 시간의 극장등록 :2020-05-18 06:00수정 :2020-05-18 10:23
제1화 바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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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 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게재.
한겨레 사진 아카이브에는 강재훈 기자가 1988년에 찍은 초선의원 노무현의 사진이 있다. 노무현을 투사의 이미지로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 사진은 다정하고 품격 있는 신사의 모습이다. “저들이 그토록 매도하던 운동권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11월11일치 인터뷰에서 노무현은 말했다. 청문회 스타가 된 노무현 의원이 1988년 최일남 선생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사진 아카이브에는 강재훈 기자가 1988년에 찍은 초선의원 노무현의 사진이 있다. 노무현을 투사의 이미지로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 사진은 다정하고 품격 있는 신사의 모습이다. “저들이 그토록 매도하던 운동권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11월11일치 인터뷰에서 노무현은 말했다. 청문회 스타가 된 노무현 의원이 1988년 최일남 선생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노무현은 앞선 사람이었다. 남과 달랐다. 사람들이 싸우기 주저할 때 투쟁에 앞장섰고, 싸움에 몰두할 때는 통합을 주장했다. 그런데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맞는다”는 말이 있다. “웃자란 가지가 먼저 베인다”고도 한다. 그에게 일어난 일이 그랬다. 노무현에게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정치인 노무현과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1988년부터 2009년까지 20년 남짓이다. 한겨레 30년치 기사와 사진을 모은 아카이브를 찾아보았다. 노무현과 만난 사람, 노무현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지역이 눈에 띈다. 해설 김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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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청문회’와 초선의원 노무현
젊은 초선의원 노무현이 온 나라 사람의 눈에 든 사건은 1988년의 ‘5공청문회’였다. 전두환 일당은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뻔뻔하였다. 텔레비전 중계로 청문회를 보던 시민이 화가 나 심장마비로 숨질 정도였다(한겨레 1988년 11월9일치). 이때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전두환과 부하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든 사람이 노무현이다. 빈틈없는 논리가 그의 무기였다.1988년 11월11일치 한겨레에 노무현의 인터뷰가 실렸다. 노무현은 어떻게 ‘청문회 스타’가 되었나. 증인으로 나온 5공인사들이 “불합리하고 모순된 진술을 하도록 끌고 가는” 것이 비결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논리적인 모습 때문에 주목받았음을 알 수 있다. 끈질기게 그를 따라붙던 ‘선동적’이라느니 ‘감정적’이라느니 하는 비난과는 다르다.
1988년 11월11일치 한겨레에 노무현의 인터뷰가 실렸다.
1988년 11월11일치 한겨레에 노무현의 인터뷰가 실렸다.
· 29년 전 오늘, 노무현을 세상에 알린 헌정사 첫 청문회가 열렸다 / 201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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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졸’로 보는 세력과 같이 할 수 없다”
세상이 김영삼을 따르던 1990년대 초에 노무현은 그에게 맞섰고 세상이 김영삼에게 등을 돌린 2002년에 노무현은 그를 챙겼다. 남들이 뭐라건 노무현은 소신대로 움직였다.노무현을 정치권에 영입한 사람이 김영삼이었다. 그런데 1990년에 김영삼은 충격적인 결정을 한다. 노태우와 김종필과 당을 합친 것이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에서 민주진영에 유리하던 국회의 의석수는 하루아침에 역전되었다. 악명 높은 ‘3당합당’이다. 많은 정치인이 김영삼을 따라 거대 여당에 들어갔다. 노무현은 이들과 갈라섰다. 어려운 길을 택했다.
2002년에 김영삼을 찾은 노무현. 김영삼과 그 측근 박종웅 사이에 서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별세한 김종수 기자가 찍었다. 처음 공개하는 사진이다. 한겨레신문사 서가에 필름 상태로 보관돼오던 것을 팩트스토리가 발굴했다.
2002년에 김영삼을 찾은 노무현. 김영삼과 그 측근 박종웅 사이에 서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별세한 김종수 기자가 찍었다. 처음 공개하는 사진이다. 한겨레신문사 서가에 필름 상태로 보관돼오던 것을 팩트스토리가 발굴했다.
3당합당의 나쁜 결과 하나는 지역 갈등이다. 한때 영남과 호남은 민주주의를 위해 힘을 모았다. 그런데 3당합당 이후 부산과 경남은 김영삼을, 호남은 김대중을 편들며 다퉜다. 노무현은 두 세력의 통합을 바랐다. 2002년에 대통령 후보가 되자마자 김영삼을 찾은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당시는 김영삼이 비난받던 시절이었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후보를 사퇴하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한겨레21] 3김…계산기를 두드려라 / 20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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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낙선…‘바보 노무현’
노무현은 김영삼과 헤어진 뒤 김대중이 이끌던 야당에 합류했다. 약은 사람이라면 지역구를 부산 말고 다른 곳으로 옮겼을 터. 그러나 노무현은 우직하게 지역주의와 싸웠다. 1992년 국회의원 선거도 1995년 시장 선거도 부산에서 출마하고 낙선했다. 중간에 한번, 서울 종로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가 2000년 총선 때 다시 부산에 갔다. 그리고 낙선했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가는 그를,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 불렀다.
‘바보 노무현’의 탄생. 2000년 총선 때 노무현은 다시 부산에 출마하고 낙선한다. 유세장에서 신이 난 어린이들의 모습을 이용호 기자가 찍었다.
‘바보 노무현’의 탄생. 2000년 총선 때 노무현은 다시 부산에 출마하고 낙선한다. 유세장에서 신이 난 어린이들의 모습을 이용호 기자가 찍었다.
1995년 지방선거. “자정 무렵. 개표 방송을 보며 펜을 들었다.” 노무현이 직접 쓴 글이다.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던 노무현은 지역주의의 바람을 맞고 휘청였다.“이러한 상황에서 지역바람을 차단하고 승리를 보장할 비책으로 ‘탈당’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원칙을 지켰다. 나의 자존심도 탈당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지지한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릴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락에 연연하여 비겁하게 지역대결구도와의 정면승부를 회피할 수는 없었다.”
1992년 총선. “만약에 유권자들이 오도된 지역감정에 묻혀버린다면 선거의 의미는 실종되고 만다. 선거는 정권과 정당과 국회의원 또는 후보자 개인에 대한 심판이다.” 교과서 문장 같다. 틀린 말 하나 없이 답답할 정도로 정론이다. 1992년 3월13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부산 시민들은 민자당의 정치행태를 따끔하게 심판하여야 할 것이다.” 누가 썼을까? 부산의 활동가였던 문재인의 글이다.
1992년 총선. “만약에 유권자들이 오도된 지역감정에 묻혀버린다면 선거의 의미는 실종되고 만다. 선거는 정권과 정당과 국회의원 또는 후보자 개인에 대한 심판이다.” 교과서 문장 같다. 틀린 말 하나 없이 답답할 정도로 정론이다. 1992년 3월13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부산 시민들은 민자당의 정치행태를 따끔하게 심판하여야 할 것이다.” 누가 썼을까? 부산의 활동가였던 문재인의 글이다.
1995년 7월6일치 한겨레21에 실린 노무현의 글. 글에 열정이 있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대통령의 문체를 비교해본다.
1995년 7월6일치 한겨레21에 실린 노무현의 글. 글에 열정이 있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대통령의 문체를 비교해본다.
· [한겨레21] ‘바보 노무현’의 외길 / 2002.4.24
· ‘바보 노무현’의 도전, 지역주의 허문 씨앗이 되다 / 2019.5.20
· 보듬어준 종로서 꿈꾼 선거개혁…20년 지나 되살아나 / 2019.5.21_______
노무현을 두려워한 사람들
노무현을 마음에 담아둔 사람은 일찍부터 많았다. “문화방송 텔리비전의 ‘퀴즈 아카데미’ 시청자퀴즈 공모에서 올해의 ‘한국의 인물’로 노무현 의원이 선정됐다.” 1988년 12월25일치 한겨레에 실린 기사다.(그때는 ‘텔리비전'으로 썼나 보다) 한겨레21은 1999년과 2000년에 호감 가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시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두번 다 1위는 노무현.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이회창과 이인제가 ‘차기 대권'이라 불리던 시절인데 그랬다.
노무현이 표지 인물로 처음 등장한 &lt;한겨레21&gt; 1999년 7월1일치(왼쪽). 노무현은 2002년 3월28일치에 다시 표지에 등장했다. 제목은 무려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이 표지 인물로 처음 등장한 <한겨레21> 1999년 7월1일치(왼쪽). 노무현은 2002년 3월28일치에 다시 표지에 등장했다. 제목은 무려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을 두려워한 이들도 일찍부터 있었다. 노동자 집회에서 한 말이 앞뒤 맥락 잘리고 악의적으로 보도된 사건이 일어나 노무현이 항의했다는 기사가 1988년 12월29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주간조선>이 허위사실을 보도해 노무현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기사는 1992년 12월5일치. 재계에서 노무현을 “친노동계 정치인”으로 분류해 견제한다는 2000년 4월8일치 기사도 있다.· [한겨레21] 떴다, 노무현! / 2002.3.20
· [한겨레21] 한겨레21, 노풍을 처음 예보하다 / 2002.12.27_______
종로, 이명박…‘악연’의 시작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제3세력은 가능한가? 노무현도 한때 이 문제를 고민했던 것 같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 때 노무현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거대 양당’에 거리를 둔 채 독자세력으로 서울 종로에 출마한다. 결과는 낙선. 이때 그를 꺾고 당선된 사람이 이명박이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 때 서울 종로에 출마한 노무현과 이명박. 후보 등록 하러 온 두 사람이 악수하는 장면을 이종근 기자가 찍었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 때 서울 종로에 출마한 노무현과 이명박. 후보 등록 하러 온 두 사람이 악수하는 장면을 이종근 기자가 찍었다.
그런데 얼마 뒤 이명박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다. 수를 쓴다. 의원직을 잃기 전에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1998년에 보궐선거가 열리고 노무현이 당선된다.(이때는 김대중이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에 몸담고 있었다) “종로는 정치1번지”라는 말을 소개할 때 거론되는 일화다. 노무현과 이명박, 두 사람의 악연이 종로에서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다.
별세한 김종수 기자가 남긴 이 사진은 2009년의 잔인한 5월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이 사진을 볼 때면 마음이 일렁인다.
별세한 김종수 기자가 남긴 이 사진은 2009년의 잔인한 5월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이 사진을 볼 때면 마음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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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선택…‘노무현 대통령’을 믿기 시작하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내고 2002년에 대선후보 국민경선에 뛰어든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대통령이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적었다. 후보 경선은 이인제가, 대선 본선은 이회창이 이길 것이라고들 생각했다.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광주경선이 있던 3월16일부터였다. 지역주의에 맞서 싸운 그에게 새 미래를 기대했을까? ‘학살 주범’ 전두환 일당을 몰아세우던 청문회 스타를 잊지 않았던 걸까? 광주시민의 선택은 영남사람 노무현이었다. 의미는 컸다. “노무현은 좋지만 설마 대통령이 될까” 의심하던 사람들이 “정말 대통령이 된다”고 믿기 시작했다.
광주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이종근 기자가 찍었다. 나는 그날 노무현이 활짝 웃었다고만 기억했는데 사진을 다시 보니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다. 활짝 웃기만 하던 쪽은 “세상이 바뀐다”며 설레던 그날의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광주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이종근 기자가 찍었다. 나는 그날 노무현이 활짝 웃었다고만 기억했는데 사진을 다시 보니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다. 활짝 웃기만 하던 쪽은 “세상이 바뀐다”며 설레던 그날의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2002년 후보 경선 기간에 노무현은 말했다. “아무도 ‘노풍’을 예견하지 못했는데 딱 한군데 노무현을 알아주고 노풍을 예언한 곳이 있다. 바로 <한겨레21>이다.”노무현이 표지 인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 7월1일치 한겨레21이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1등이더라’는 기사였다. 2002년 3월28일치에 다시 표지에 오른다. 제목은 무려 “노무현 대통령?”이다. 후보 경선 초반인데 말이다.“처음 염두에 두던 표지 제목은 ‘솟는 노무현 대안론’ 정도였다. 광주경선 현장에서 떠오른 제목은 ‘노무현 돌풍’이었다. 머리를 맞댄 끝에 나온 최종 표제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한 후배는 ‘?보다 !가 나았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건넸다. 민주당 일부에선 너무 나가지 않았느냐는 반응도 나왔다.” 2002년 4월11일치 한겨레21에 임석규 기자가 털어놓은 뒷이야기다.· [한겨레21] 노무현, 호남 지역주의에 돌진! / 2003.10.7_______
“노무현과 난 전생에 형제였나 보다”
노무현과 김대중은 어떤 사이였을까. 둘 사이가 서먹하다는 추측이 한때 유행했다. 김대중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지도자였다. 노무현이 대선후보가 되었을 때도 좋다 싫다 내색이 없었다. 둘 사이가 나쁘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대중이 아끼던 박지원이 2003년에 이른바 ‘대북송금 특검'으로 구속되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2004년에 갈라서는 상황을 보면서였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는 과연 불편했을까?
청와대를 떠나는 김대중을 노무현이 환송하는 모습. 2003년 2월 취임식 직후 김봉규 기자가 찍었다.
청와대를 떠나는 김대중을 노무현이 환송하는 모습. 2003년 2월 취임식 직후 김봉규 기자가 찍었다.
이제는 그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2008년에 김대중은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이상하게 닮은 점이 많다. 전생에 형제 사이였나 보다.” 2009년 노무현이 세상을 떠나자 김대중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내린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노무현의 영결식 때 김대중의 슬피 우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따라 울었다. 최근 귀가 솔깃한 증언이 나왔다. “2002년 광주경선에서 노무현이 1위를 할 수 있도록 김대중이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올해 4월17일 <에스비에스>(SBS)에 출연한 박지원의 주장이다. “민주당의 가치관과 정통성은 노무현에게 있다”고 김대중은 생각했다는 것이다.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2009년 5월에 김대중은 말했다. “노무현의 유지를 받들어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유지’라니. 먼저 떠난 후배의 ‘유지’를 입에 올리는 손윗사람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해가 다 가기 전 김대중 역시 세상을 떠났다. 촬영은 이종찬 기자.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2009년 5월에 김대중은 말했다. “노무현의 유지를 받들어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유지’라니. 먼저 떠난 후배의 ‘유지’를 입에 올리는 손윗사람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해가 다 가기 전 김대중 역시 세상을 떠났다. 촬영은 이종찬 기자.
이 증언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2002년 3월25일치 한겨레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노무현에게 밀리던 경쟁 후보 이인제가 “노무현 돌풍의 배후에 김대중이 있으며 둘의 연결고리는 박지원”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때는 지어낸 말이라고들 생각했는데, 웬걸, 박지원의 증언이 나온 뒤 다시 보니 흥미롭다.· [한겨레21] 의리로 얻어낸 신뢰의 상표 / 2004.1.29
· [한겨레21] DJ와 노무현, 전생에 형제간이려나 / 200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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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제주
제주4·3평화기념관에 갈 때마다 나는 노무현의 영상을 본다. 4·3사건 때 국가가 저지른 폭력을 국가원수로서 사과하는 영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2006년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분향하고 묵념하는 노무현.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이었다. 촬영은 장철규 기자.
2006년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분향하고 묵념하는 노무현.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이었다. 촬영은 장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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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다시 봉하를 찾는 날
문재인은 부산의 인권변호사였다. 한겨레 지면에 1988년부터 자주 등장한다. 오랜 친구 노무현의 선거도 도왔다. 그런데 의외다. 노무현의 선거 사진은 많은데 문재인이 찍힌 사진이 거의 없다. 여느 정치권 인사들이 노무현과 함께 사진을 박으려고 어떻게든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 때 문재인은 묵묵히 자기 일을 했던 것이다.그런 문재인에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2004년부터다. 이른바 ‘노무현 탄핵 정국’ 때 노무현 쪽 대리인단 간사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5월14일에 탄핵을 기각했다. 노무현은 대통령직을 지켜냈다.
헌법재판소는 5월14일 대통령의 노무현의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노무현은 대통령직을 지켜냈다. 선고가 나던 날 법정을 나서는 문재인의 표정을 김태형 기자가 사진에 남겼다. 좀처럼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도, 이날만큼은 뭉클한 기쁨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헌법재판소는 5월14일 대통령의 노무현의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노무현은 대통령직을 지켜냈다. 선고가 나던 날 법정을 나서는 문재인의 표정을 김태형 기자가 사진에 남겼다. 좀처럼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도, 이날만큼은 뭉클한 기쁨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자 봉하의 노무현 묘소를 찾았다. 임기 중에 더 오지 않겠다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퇴임 뒤 다시 오겠다고 밝히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문재인이 다시 봉하를 찾는 날,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며 어쩌면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상주’ 문재인, 10년 전 오늘 조문객들에게 부탁한 말 / 2019.5.24
[화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 1회 해설자인 김태권 작가는 만화가입니다. 글도 쓰고 일러스트도 그립니다. 요즘은 주로 관악산 자락에서 두 아이를 떠메고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시대> 등의 만화책을 그렸고, <불편한 미술관>과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등을 썼습니다.

고조되는 대만해협위기, 현금인출기로 전락한 한미동맹

[개벽예감 395] 고조되는 대만해협위기, 현금인출기로 전락한 한미동맹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5/1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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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트럼프의 전향적인 국가전략수정
2. 대만해협에서 출발하는 대양간 해상비단길
3. 사상 처음 날짜변경선 넘은 중국 함대
4. 10년 동안 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서 매번 패한 미국군
5. 현금인출기로 전락한 한미동맹


1. 트럼프의 전향적인 국가전략수정

2018년 10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금융위기 이후 10년, 우리는 안전한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0개국의 경제가 세계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이전보다 더 쇠락했는데,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직접적으로 겪었던 24개국의 경제가 특히 더 쇠락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세계경제가 점차적으로 쇠락해온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1) 60개국 정부들은 2008년에 일어난 세계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렸고, 60개국 중앙은행들은 저금리를 유지하고 금융자산을 대규모 매입했는데, 그런 조치들이 엄청난 부채를 안겨주었다. 이를테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36%이었던 60개국의 부채비률은 10년 만에 52%로 늘어났다.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빚더미만 엄청나게 키워놓은 것이다. 

2) 2008년에 일어난 세계금융위기로 60개국의 실업률이 증가했는데, 실업증가는 지난 10년 동안 빈부격차를 더욱 심하게 벌려놓으면서 결혼률과 출산률을 동반적으로, 지속적으로 떨어뜨려 사회적 생산력을 감소시켰다. 세계금융위기에서 발생한 불행과 고통을 노동계급에게 떠넘겨 실업이 늘어나고 빈부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범위에서 발생한 부채증가와 채무불이행, 실업증가와 빈부격차확대를 위험한 현상들이라고 지적한 국제통화기금 보고서가 나온 때로부터 1년이 지난 2019년 11월 말 뜻밖의 사태가 일어났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괴질재앙이 전 세계를 덮친 것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점차적으로 쇠락해온 세계경제는 전 세계를 덮친 괴질재앙으로 치명적 위험에 빠졌다. 기저질환을 앓는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곧바로 사망하는 것처럼, 10년 동안 점차적으로 쇠락해온 세계경제에 괴질재앙이 덮쳤으니 치명적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가 점차적으로 쇠락해온 지난 10년 동안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대처해왔을까?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기존 세계화전략을 대폭 수정하여 자국우선주의전략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 1월 20일 자국우선주의의 화신이 미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미국 대통령 트럼프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구호를 외치며 등장하더니, 자기는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자국우선주의전략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사진 1> 

▲ <사진 1> 2016년 1월 20일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변화는 기존 세계화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자국우선주의전략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제국주의국가로 남아있는 한 세계지배전략을 버릴 수 없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지배전략을 종전대로 유지하면서 기존 세계화전략을 대폭 수정한 자국우선주의전략을들고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전략에 따르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이후 10년 동안 점차적으로 쇠락해온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방도는그 동안 미국의 세계화전략에 편승하여 부를 축적한 중국과 친미동맹국들에게서 보상금을받아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중국에게 관세전쟁을 도발했고, 동맹국들에게는 미국군주둔지원금을 대폭 증액하는 현금갈취조치를 강요하고 있다. 트럼프의 현금갈취조치에 가장 먼저 걸려든 대상이 한국이다.  

미국이 제국주의국가로 남아있는 한 세계지배전략을 버릴 수 없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지배전략을 종전대로 유지하면서 기존 세계화전략을 대폭 수정한 자국우선주의전략을 들고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전략에 따르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이후 10년 동안 점차적으로 쇠락해온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방도는 그 동안 미국의 세계화전략에 편승하여 부를 축적한 중국과 친미동맹국들에게서 보상금을 받아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중국에게 관세전쟁을 도발했고, 동맹국들에게는 미국군주둔지원금을 대폭 증액하는 현금갈취조치를 강요하고 있다. 트럼프의 현금갈취조치에 가장 먼저 걸려든 대상이 한국이다.         

그러면 중국은 어떻게 대처해왔을까?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은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3년 3월 14일 중국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그는 2013년 9월 7일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는 중에 아스타나에 있는 나자르바예브 대학교에서 연설하면서 대륙간 육상비단길을 창설하는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밝혔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2013년 10월 2일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중에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대양간 해상비단길을 창설하는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밝혔다. 중국식 세계화는 중국이 국운을 걸고 추진하는 21세기 국가전략사업이다.  

미국식 세계화전략은 약소국들을 지배, 수탈하고, 적국들을 위협, 침공하는 제국주의전략의 일환이지만, 중국식 세계화전략은 지배와 수탈, 위협과 침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이 제국주의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대만해협에서 출발하는 대양간 해상비단길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라고 부른다. 대양간 해상비단길은 한 갈래고, 대륙간 육상비단길은 세 갈래다. 대륙간 육상비단길은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에서 출발하여 몽골-로씨야-유럽으로 이어지는 제1통상로, 시안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우크라이나-유럽으로 이어지는 제2통상로, 시안에서 출발하여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중동-뛰르끼예-유럽으로 이어지는 제3통상로로 갈라진다. 또한 대양간 해상비단길은 중국 푸젠성 푸저우(福州)에서 출발하여 동중국해-남중국해-인디아양-아라비아해-홍해-지중해로 이어지는 거대한 통상로다. 대륙간 육상비단길과 대양간 해상비단길은 이딸리아 항구도시 베니스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아시아와 유럽을 순환하면서 세계 인구 65%의 경제활동을 포괄하는 거대한 세계통상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중국이 대양간 해상비단길의 출발점을 세계적인 통상-금융거점인 상하이로 정하지 않고 별로 알려지지 않은 푸저우로 정했다는 사실이다. 푸저우는 상하이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 왜 푸저우를 대양간 해상비단길의 출발점을 정했을까? 지도를 보면, 푸저우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의 중심도시 타이베이와 마주하고 있다. 대양간 해상비단길은 사실상 대만해협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중국이 대양간 해상비단길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대만해협 지배권을 장악해야 하고, 대만을 수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양간 해상비단길은 대만해협에서 출발하는데, 미국은 대만해협 지배권을 여전히 붙들고 있고, 대만을 자기 영향권 안에 묶어두려고 한다. 중국이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추진하려면 대만해협 지배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해야 하고, 대만을 수복해야 한다. 미국은 대양간 해상비단길을 차단하기 위해 대만해협과 동중국해에서 해군력과 공군력을 시위할 뿐 아니라, 대만의 분리주의세력을 적극 지원하여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내려고 획책하고 있다. <사진 2>

▲ <사진 2>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일대일로라고 부르는데, 대양간 해상비단길은 한 갈래지만, 대륙간 육상비단길은 세 갈래다. 대륙간 육상비단길과 대양간 해상비단길은 이딸리아 항구도시 베니스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아시아와 유럽을 순환하면서 세계 인구 65%의 경제활동을 포괄하는 거대한 세계통상로가 완성되는 것이다. 대양간 해상비단길은 대만해협에서 출발하는데, 미국은 대만해협 지배권을 여전히 붙들고 있고, 대만을 자기 영향권안에 묶어두려고 한다. 중국이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추진하려면, 대만해협 지배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해야 하고, 대만을 수복해야 한다.  

만일 미국이 해군력과 공군력을 동원하여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가로막고,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켜 독립국가로 만들면, 중국은 대양간 해상비단길을 운영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중국식 세계화전략은 본격적으로 추진되지도 못한 채 반신불수로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과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한 중국은 우선 남중국해 지배권부터 장악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시사군도에 속한 130여 개 섬, 암초, 산호초, 모래톱을 모두 자국 영토로 확정했고, 남중국해 난사군도에 속한 174개 암초, 산호초, 모래톱 중에서 10개를 자국 영토로 확정했다. 중국은 시사군도와 난사군도에 각각 인공섬들을 만들고, 거기에 공군기지와 미사일기지를 건설했다. 그로써 중국은 남중국해 지배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어물어물하다가 남중국해 지배권을 중국에게 빼앗긴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이니 뭐니 하면서 남중국해에 이지스미사일구축함을 계속 출동시키고 있지만, 남중국해 지배권이 중국에게 넘어간 이상 미국의 그런 행동은 시비를 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중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만해협 지배권을 장악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대만을 수복하는 통일전쟁과 직결된다.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은 두 가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고, 분리주의세력의 통치 아래에 있는 대만을 수복하여 국토를 완정하는 것이며, 둘째는 중국의 21세기 국운이 걸려있는 중국식 세계화전략의 한 축인 대양간 해상비단길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게 되는 것이다.   


3. 사상 처음 날짜변경선 넘은 중국 함대

중국은 오래 전부터 대만통일전쟁을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준비해왔는데,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하는 해가 올해 2020년이다. 대만 언론매체 <중앙통신사> 2018년 9월 1일 보도에 따르면, 대만 국방부는 2018년 8월 31일 입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2020년까지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할 것으로 예견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은 올해 2020년 초부터 대만을 수복하기 위한 사전행동에 나섰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재앙도 중국의 무력통일의지를 가로막지 못했다. 

대만을 수복하려는 중국의 무력통일의지는 2020년 2월 초 어느 날 태평양 한 복판에서 극적으로 발현되었다. 그날의 사변을 보도한 중국인민해방군 기관지 <지에팡쥔바오>와 일본 <요미우리신붕> 2020년 3월 29일부에 실린 기사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2020년 2월 초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소속 7,500t급 이지스미사일구축함 3척과 45,000t급 지원함 1척으로 편성된 함대가 “흥분과 긴장 속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날짜변경선을 넘었다. 지도를 보면, 중국 상하이에서 태평양 한 복판에 그어진 날짜변경선까지 직선거리는 약 5,800km다. 이제껏 근해방어훈련에 힘을 집중해온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이 그날은 태평양 한 복판으로 항진하여 상하이에서 5,800km 떨어진 날짜변경선을 사상 처음으로 넘은 것이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날짜변경선을 넘어가는 극적인 원양기동훈련에 참가한 그들이 어찌 흥분과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2) 날짜변경선을 넘은 중국 함대는 미국 하와이주 오하후섬 서쪽 300km 해상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면, 날짜변경선에서 오하후섬까지 직선거리는 약 1,430km이므로, 중국 함대는 날짜변경선을 넘어 동쪽으로 약 1,100km를 더 항진하여 오하우섬 서쪽 300km 해상에 도착한 것이다. 중국 함대가 접근한 오하우섬에는 무엇이 있을까? 방대한 무력으로 미국의 인디아양-태평양지배체제를 안받침해주는 인도-태평양사령부 본부가 자리 잡은 캠프 스미스(Camp H. M. Smith)가 있다.  

3)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본부로부터 약 300km 떨어진 해상에 도착한 중국 함대는 두 편으로 나뉘어 “실전을 상정한 훈련”을 했다. 함대를 두 편으로 나눠 실전연습을 했다면, 두 개의 타격대상을 동시에 공격하는 실전연습을 한 것이다. 그날 중국 함대가 모의공격을 연습한 두 군데 타격대상 중에서 한 군데는 인도-태평양사령부 본부인 것이 분명한데, 나머지 한 군데는 어디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중국 함대에 탑재된 공격무기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날 오하우섬 앞바다에서 실전연습을 벌인 중국 구축함들은 052D형 이지스미사일구축함들이다. 이 구축함들에는 순항미사일 수직발사관 64문이 설치되었는데, 사거리가 540km인 초음속 순항미사일 잉지(YJ)-18이 그 속에 들어있다. 이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마하 0.8의 아음속으로 해수면을 스치듯이 날아가다가 타격대상으로부터 40km 떨어진 상공에 이르러 마하 2.5~3.0의 초음속으로 도약비행을 하므로, 미국군의 미사일방어망을 뚫을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그 초음속 순항미사일이 함대지순항미사일과 함대함순항미사일 두 종류로 나뉘어 수직발사관에 각각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함대지순항미사일은 인도-태평양사령부 본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고, 함대함순항미사일은 오하우섬 진주항에 있는 해군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중국 함대는 두 종류의 초음속 순항미사일 잉지-18을 각각 발사하여 인도-태평양사령부 본부와 진주항 해군기지를 동시에 공격하는 실전연습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4) 하와이주 오하우섬 앞바다에서 실전연습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국 함대는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전략거점인 괌(Guam)에서 서쪽으로 611km 떨어진 필리핀해를 지날 때, 자기들을 감시하며 따라오던 미국 해군 P-8A 해상초계기를 향해 레이저광선을 쏘았다. 레이저광선을 맞은 P-8A 해상초계기는 황급히 기수를 돌려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에 있는 발진기지로 돌아갔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운용하고 있는 052D형 이지스미사일구축함을 촬영한 것이다. 7,500t급인 이 구축함에는 순항미사일 수직발사관 64문이 설치되었는데, 사거리가 540km인 초음속 순항미사일 잉지-18이 그 속에 들어있다. 이 초음속 순항미사일은함대지순항미사일과 함대함순항미사일 두 종류로 나뉘어 수직발사관에 각각 들어있다.2020년 2월 초 이지스미사일구축함 3척과 지원함 1척으로 편성된 중국 함대가 사상 처음날짜변경선을 넘어 하와이주 오하후섬 서쪽 300km 해상에 도착했다. 오하우섬에는 미국인도-태평양사령부 본부와 진주항 해군기지가 있다. 그날 중국 함대는 두 종류의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각각 발사하여 인도-태평양사령부 본부와 진주항 해군기지를 동시에 공격하는실전연습을 진행했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된 미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을 제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하와이 오하우섬에 있는 인도-태평양사령부와 진주항 해군기지를 공격해야 한다. 중국 함대가 날짜변경선을 넘어 오하우섬 앞바다에서 대담한 실전연습을 벌인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그날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담한 군사행동은 오하우섬 앞바다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중국 함대가 오하우섬 앞바다에서 실전연습을 하고 있었던 2020년 2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소속 훙-6K 전략폭격기, 젠-11 전투기, 쿵징-500 조기경보기로 편성된 공군무력이 장거리항공작전을 연습하고 있었다. 장거리항공작전은 대만해협의 중간선 상공을 넘어 대만 남부해역 상공으로 접근하였다가, 대만과 필리핀 북부 사이의 바시해협을 통과하여 서태평양 상공으로 나갔다가 북상하여, 일본 오끼나와섬과 미야꼬섬 사이에 있는 미야꼬해협 상공에서 대만 북동부해역 상공을 거쳐 중국 본토로 돌아가는 긴 경로를 따라 전개되었다.  

대만해협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담한 군사행동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연합뉴스> 2020년 3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소속 훙-6K 전략폭격기, 젠-11 전투기, 쿵징-500 조기경보기로 편성된 항공무력이 2020년 3월 16일 대만 서남부해역 상공에서 야간비행훈련을 하다가 대만방공식별구역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연합뉴스> 2020년 4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소속 60,000t급 항공모함 랴오닝함, 7,500t급 이지스미사일구축함 2척, 4,000t급 미사일호위함 2척, 48,000t급 보급함 1척으로 편성된 항모전단은 2020년 4월 초 중국 산둥성 칭다오항을 출항하여 4월 11일 미야꼬해협을 통과했고, 12일 대만 동부해역을 지나면서 항공모함에 탑재된 대잠헬기를 이륙시켜 대잠수함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인민해방군은 2020년 5월 14일부터 보하이만에서 항모전단이 참가한 가운데 실사격훈련을 시작했는데, 이 훈련은 앞으로 두 달 반 동안 계속된다. 

대만해협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한 군사행동은 민족주의와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중국 언론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020년 5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퇴역장성들은 태평양에 배치된 미국 항공모함 4척이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마비된 지금이야말로 대만을 무력으로 수복할 기회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의 정치평론가들도 대만을 평화적으로 통일할 가능성이 사라졌으므로 2005년에 제정된 반분렬국가법에 의거하여 대만을 수복하는 통일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런 주장에 중국 인민들이 호응하고 있다고 한다.  


4. 10년 동안 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서 매번 패한 미국군

중국이 대만해협 지배권을 장악하고, 대만을 무력으로 수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은 극도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는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한 해군력과 공군력을 대만해협으로 계속 들이밀었다. 2020년 초부터 미국이 대만해협에서 전개한 군사행동을 날짜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감행하는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서술은 생략한다.)
  
1월 16일 미국 해군 소속 이지스미사일순양함 샤일로함이 대만해협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통과했다.
1월 12일 미국 공군 소속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가 대만섬 동부해역 상공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과했고, 미국 공군 소속 MC-130J 특수작전기가 대만해협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과했다. 
2월 13일 미국 해군 소속 P-3C 해상초계기가 대만 최남단 인근 해역 상공을 비행했다.
2월 15일 미국 해군 소속 이지스미사일순양함 챈슬러빌함이 대만해협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과했다. 
3월 25일 미국 해군 소속 이지스미사일구축함 맥켐벨함이 대만해협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통과했다.
4월 10일 밤부터 11일 새벽 사이에 미국 해군 소속 이지스미사일구축함 배리함이 대만해협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과하면서 중간선에서 중국쪽에 있는 마쭈렬도 인근 해상에 접근했다.
4월 13일 미국 RC-135W 통신감청정찰기와 P-3C 해상초계기가 대만 남부해상 상공에 나타났다. 
5월 13일 미국 해군 소속 이지스미사일구축함 맥캠벨함이 대만해협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과했다. 
5월 14일 미국 공군 소속 B-1B 장거리전략폭격기 2대가 대만 동부해역 상공에서 KC-135 공중급유기 2대로부터 각각 급유를 받고 서북쪽으로 비행했다. 그보다 앞서 지난 5월 1일 미국 텍사스주 다이스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장거리전략폭격기 B-1B 4대가 2대씩 편대를 이뤄 일본 오끼나와 상공과 동중국해 상공으로 비행하였다가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 착륙했는데, 이것은 일시적 착륙이 아니라 약 200명의 장병들과 함께 그 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것이다. 미국은 지난 16년 동안 앤더슨공군기지에 배치했던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 5대를 2020년 4월 17일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대신 그 공군기지에 B-1B 장거리전략폭격기 4대를 배치했다.  

그런데 2019년 7월 30일 마익 라운드 미국 연방상원의원이 상원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미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B-1B 장거리전략폭격기 61대 중에서 39대는 기술점검을 받고 있고, 15대는 창정비를 받고 있는 중이므로 즉시 작전에 동원될 수 있는 것은 6대 뿐이라고 한다. 

지금 중국과 미국이 대만해협에서 벌이는 군사행동이 격화되면 국지전이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전면전이 일어날 것인지 예단하기 힘들지만, 중국과 미국의 전쟁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중미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세인의 관심사로 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은 2020년 4월 21일 미국에서 출판된 ‘죽임의 사슬: 미래의 첨단기술전쟁에서 미국을 수호하여“라는 제목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크리스천 브로즈가 집필한 그 책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미국 국방부는 미국과 중국이 싸우는 컴퓨터모의전쟁연습을 진행해왔는데, 컴퓨터모의전쟁연습의 결과는 미국군이 ”매번 거의 완벽하게“ 패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미국 공군이 운용하는 B-1B 장거리전략폭격기를 촬영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 16년 동안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배치했던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 5대를 2020년 4월 17일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대신 그 공군기지에 B-1B 장거리전략폭격기 4대를 배치했다. 이것은 장거리전략폭격능력을 한층 더 강화한 조치로 된다. 왜냐하면 군사강국인 중국을 상대로 미국이 전쟁을 하려면,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보다 B-1B 장거리전략폭격기를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B-1B 장거리전략폭격기 61대 중에서 39대는 기술점검을 받고 있고, 15대는 창정비를 받고 있어서 즉시작전에 동원될 수 있는 것은 6대 뿐이다. 미국군은 첨단무기를 자랑하지만, 그들의 작전준비태세는 대체로 그런 수준에 있다.  

지난 10년 동안 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서 미국군이 매번 중국인민해방군에게 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무기체계와 군사훈련은 미국을 공격하는 특수한 전투환경에 맞춰 개발된 반면에, 미국의 무기체계와 군사훈련은 중국을 공격하는 특수한 전투환경에 맞춰 개발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전투환경에 맞춰 개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예상씨나리오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1) 중국이 둥닝-2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의 정찰위성들은 모조리 파괴되고, 미국의 눈은 멀어버린다.
2) 중국이 정밀타격미사일을 집중발사하면, 괌의 미국군기지와 일본의 미국군기지들은 모조리 파괴된다. 중국이 발사하는 정밀타격미사일은 미사일방어망을 뚫는 미사일들이다.  
3) 중국이 핵추진잠수함들을 서태평양에 출동시키면, 미국 항모전투단은 중국 본토로 접근하지 못한다.
4) 중국이 지대공미사일과 함대공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 공군 F-35 스텔스전투기들에 항공유를 공급하는 공중급유기들이 모조리 격추된다. 그렇게 되면 작전반경이 짧은 F-35 스텔스전투기들은 중국 본토 상공에 접근하지 못한다. 
5) 중국 연안에 접근한 미국의 핵추진함수함들이 잠대지미사일로 중국 본토의 군사기지들을 공격하면, 중국은 장거리탄도미사일로 하와이의 인도-태평양사령부와 진주항 해군기지를 공격한다. 

대만통일전쟁에서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미국의 핵공격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핵탄두를 전술핵탄두로 개조한 것은 미국이 핵무기를 억제력으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실전무기로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 것이다. 최근 미국이 전술핵탄두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에 자극을 받은 중국은 두 가지 대비책을 서둘렀다. 

1) 중국은 미국의 전술핵공격을 받았을 때를 가정한 보복핵공격을 연습했다. 중국 언론매체 <글로벌타임스> 2020년 1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2020년 1월 15일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 산하 1개 여단이 지하갱도기지에서 미국의 핵공격을 받은 상황을 가정하여 지하갱도기지를 밀폐시키고 보호장비를 착용한 다음, 산소부족, 피로, 배고픔을 극복하는 생존훈련을 진행했으며, 핵타격미사일을 발사하여 미국에게 보복핵공격을 가하는 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2)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가장 확실한 핵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020년 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22일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은 새로 개발한 쥐랑(JL)-3 잠대지탄도미사일을 보하이만에 출동한 11,000t급 094형 핵추진잠수함에서 시험발사했다고 한다. 이날 수중에서 시험발사된 쥐랑-3 잠대지탄도미사일에 장착된 모의탄두는 중국 신장자치구에 있는 고비사막에 떨어졌는데, 사거리가 12,000~14,000km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094형 핵추진잠수함에는 쥐랑-3 잠대지미사일을 발사하는 수직발사관 24문이 설치되었다. 이로써 중국 핵추진잠수함은 자국 영해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사거리가 12,000~14,000km인 잠대지탄도미사일 24발을 핵추진잠수함에 탑재하면, 중국은 미국의 핵공격을 억제하는 가장 확실한 핵억제력을 보유하게 된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단행해도 미국은 중국에게 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5. 현금인출기로 전락한 한미동맹

“미국은 동맹국들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데 지쳤다”고 푸념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세계화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자국우선주의전략을 추진하는 중이고, 21세기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는 시진핑 주석은 중국식 세계화전략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런데 한국은 트럼프식 자국우선주의전략에서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났고, 한반도는 중국식 세계화전략의 범위 밖에 있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식 세계화전략과 미국의 태평양지배전략이 상호대립하는 경계선이 한반도 군사분계선에 그어지는 게 아니라 일본렬도에서 대만해협으로 이어지는 동중국해 해상에 그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태평양지배전략을 종전대로 계속 추진하기 위해 미일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대만해협에서 도발적인 군사행동을 계속 감행하는 중이다. 

미국의 태평양지배전략에서 보면, 미일동맹체제는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를 수호하는 전략거점이고, 한미동맹체제는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를 외곽에서 방어하는 전초거점이다. 한미동맹은 이처럼 미국의 태평양지배전략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갖지 못하고, 미일동맹에 부속된 보조적 지위밖에 갖지 못했는데도, 미국이 이제껏 한미동맹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던 까닭은 미일동맹을 외곽에서 방어해주는 전초거점이 자기들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진 5>

▲ <사진 5> 위의 사진은 한미연합군 창설기념식 장면이다. 병사들이 깃발을 다섯 개나 들고있다. 한미연합군이라면서 유엔기를 들고 나온 꼴이 우스꽝스럽다. 한미연합군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지시를 받지 않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보고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미국의 태평양지배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그들은 임의로 유엔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의 태평양지배전략에서 보면, 미일동맹체제는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를 수호하는전략거점이고, 한미동맹체제는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를 외곽에서 방어하는 전초거점이다. 그러나 중국인민해방군과 미국군이 대만해협에서 군사대결을 벌일수록, 한미연합군의전략적 가치는 감소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이 무력충돌을 벌여도 한미연합군은 대만해협으로 출동할 수 없고, 주한미국군도 대만해협으로 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선으로 군대를 출동시키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트럼프대통령의 시선은 싸늘하다. 그의 눈에는 한미동맹이 보상금을 받아내는 현금인출기로 보일뿐이다.  

그러나 중국인민해방군과 미국군이 대만해협에서 군사대결을 벌일수록,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가치는 감소된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이 무력충돌을 벌여도 한미연합군은 대만해협으로 출동할 수 없고, 주한미국군도 대만해협으로 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미국은 한국군을 윁남전선으로 출동시켰지만, 그것은 윁남전선의 비정규전에 한국군 지상군부대를 동원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대만해협에서 미국과 중국이 무력충돌을 벌이면, 쌍방에서 해군력과 공군력을 동원하게 되는데, 한국 공군 전투기들은 작전반경이 짧아 대만해협까지 날아가지도 못하고, 한국 해군 군함들은 대만해협으로 떠나기 전 중국인민해방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서해와 남해에서 격침될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면, 조선도 즉각 조국통일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사정이 그렇게 얽혔으니, 미국은 한미연합군을 한반도 밖으로 출동시킬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전선으로 출동하지 못하는 군대를 어디에 쓰겠는가!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선은 싸늘하다. 그의 눈에 한미동맹은 보상금을 받아내는 현금인출기로 보일 뿐이다. <동아일보> 2020년 5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미국군주둔지원금을 2020년에 13% 인상하고, 2024년까지 5년 동안 매년 7~8%씩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 방안을 거부하면서 2020년에 전년대비 49%를 인상하여 13억 달러를 받아내고, 2021년에 협상을 다시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부터 해마다 13억 달러 이상 추가로 받아내어 앞으로 5년 뒤에는 연간 100억 달러씩 뜯어가려는 것이다. 2019년 8월 15일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유세 중에 “미국은 동맹국들을 위해 돈을 지불해주는데 지쳤다”고 푸념한 것은 한국에게서 연간 100억 달러씩 보상금을 뜯어내기 위해 앞자락을 깔아놓은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인 필립 럭커와 캐롤 러닝이 공동집필한 책 ‘매우 안정적인 천재(A very Stable Genius)'가 2020년 1월 21일 미국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책에 들어있는 내용에 따르면, 2017년 7월 20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전략회의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한국이 100억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전략환경이 이처럼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도, 현금인출기로 전락한 한미동맹을 여전히 숭상하면서 주한미국군에게 의존하는 것은 자멸을 부르는 짓이다.

文대통령 "헌법 전문에 5.18 정신 넣어야"

5.18 인터뷰..."이명박-박근혜 정권의 5.18 폄하, 분노스러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민중항쟁 40주기를 앞두고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넣어야 한다며 개헌을 언급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여권 내부에서 개헌 논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개헌을 언급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17일 오전 광주MBC가 방영한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앞으로 언젠가 또 개헌이 논의가 된다면 헌법 전문에서 그(5.18) 취지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 2018년 5월 개헌안을 직접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개헌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야당 의원 대부분이 불참함에 따라 투표가 좌절됐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개헌안 발의를 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비록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발의한 개헌안 그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의 이념의 계승, 이것이 담겨있다"고도 했다.

 

그는 "현재 우리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에 의해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4.19민주운동의 이름을 계승하는 것으로 그렇게만 헌법 전문에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발전시켜온 민주주의가 실제로 문안화돼서 집약돼 있는 것이 우리의 헌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4.19의 혁명만으로 민주 이념의 계승을 말하기에는 4.19혁명 이후에 아주 장기간에 어찌 보면 더 본격적인 군사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4.19운동만 가지고는 민주화운동의 어떤 이념의 계승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촛불혁명은 시기상으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의 소지가 있어서 아직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이 이르다"면서 "적어도 5.18민주운동과 6월항쟁의 이념만큼은 우리가 지향하고 계승해야 될 하나의 민주 이념으로서 우리 헌법에 담아야 우리 민주화운
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5.18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전히 발포의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마침 오늘(12일)부터 5.18진상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조사 활동이 시작됐는데, 이번에야말로 아직 남은 진실들이 전부 다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결국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 치유되어야 화해가 있고, 또 국민 통합이 이루지는 것"이라면서 "그 출발은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 그 진실의 토대 위에서만 화해가 있고 통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용서도 진실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행방을 찾지 못하고, 또 시신도 찾지 못해서 어딘가에는 아마 암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그런 집단 학살자들, 그분들을 찾아내는 일들, 또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그 어떤 경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그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한 그런 어떤 그 공작의 실상들까지 다 규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5.18에 대해선 "폄하된다할까 하는 것이 참으로 분노스러웠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들이 참석도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도 못 하게 해서 유족들이 따로 기념행사를 가졌다"며 "5.18민주화운동 정신에 대한 존중, 진심, 이런 부분이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또, 유족들이 따로 기념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광주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대한민국 전체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로 승화시키고, 제대로 기념식을 치러야겠다는 그런 식의 각오를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5.18하면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80년대 이후의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며 "광주를 알게 될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돼 희생당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던 그 사실에 대해 큰 부채의식을 가지게 됐고, 그것이 이제 민주화운동의 하나의 또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 부산 카톨릭 센터에서 5.18 광주 비디오, 말하자면 관람회를 가졌다"며 "그때 비로소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그런 분들도 많았다"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은 또 과거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됐던 당시 경찰로부터 광주 상황을 전해들은 순간을 떠올리며 "저는 광주 바깥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광주의 진실을 접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며 5.18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2017년 취임 직후 참석한 5.18 기념식 때 유족 김소형 씨를 안아줬을 때의 소회도 밝혔다.

그는 "그분이 5.18 당일 날 태어난 것과 아버지가 전남 완도에서 일하시던 분인데,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왔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서 사망하게 된 거였다"며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었다면 엄마 아빠가 지금도 행복하게 잘살고 있지 않을까 이런 사연을 추도사에 담았는데, 그 추도사를 들으면서 누구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전두환 공덕비’ 시민들은 폭파하자는데 옮겨놓자는 포천시, 도대체 왜?

시민단체 “철거 아닌 이설 결정하는 바람에 해결 안 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05-17 16:13:08
수정 2020-05-17 16: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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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논개 생가지를 지나 오른편에 위치한 연못의 정자인 '단아정'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1999년 10월 쓴 것으로 알려진 정자 현판이 20년만에 철거됐다. 2019.12.3.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논개 생가지를 지나 오른편에 위치한 연못의 정자인 '단아정'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1999년 10월 쓴 것으로 알려진 정자 현판이 20년만에 철거됐다. 2019.12.3.ⓒ뉴스1 

충청북도 청주시 청남대에 있던 전두환·노태우 동상이 철거된다. 도는 이들의 이름을 딴 대통령 길도 폐지하고 유품사진 등의 기록도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걸려 있던 ‘전두환 친필 현판’도 5월 중으로 ‘안중근체’로 교체된다. 지난해 말엔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가 30년 가까이 보관·전시하고 있던 전두환 부부의 물품을 철거했다. 비슷한 시기에 전두환이 직접 쓴 장수군 장계면 주논개 생가지 정자 현판도 철거됐다.
이처럼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전두환 흔적 지우기가 이뤄지고 있다. 전두환이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5.18 광주학살의 주범이면서 대법원에서 혐의가 확정된 내란·반란 수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기도 포천시 축석고개 삼거리 부근엔 여전히 ‘전두환 공덕비’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철거하라” 민원으로 포천시가 2018년경에 한차례 철거 또는 이설을 검토한 바 있으나, 무산된 뒤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당시 시는 시정조정위원회를 거쳐 이설(移設)을 결정하고 950만원 상당의 예산을 편성했으나, 시의회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이후 이에 대한 논의는 전개되지 않고 답보상태에 놓였다.
17일 오전 포천시 전두환 공덕비 철거를 촉구하는 상징의식의 모습.
17일 오전 포천시 전두환 공덕비 철거를 촉구하는 상징의식의 모습.ⓒ이명원 제공
‘철거’ 요구했는데, ‘이설’ 결정
‘전두환 공덕비’는 지난 1987년 12월 세워졌다. 시민단체가 철거를 요구하며 뜯어내 지금은 사라진 비석 동판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서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 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는 찬양 문구가 적혔다. 불리는 명칭 그대로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인 셈이다.
또 이 비석엔 전두환의 친필 글씨체로 커다랗게 ‘호국로’(護國路)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옆엔 ‘대통령 전두환’(大統領 全斗煥)이 적혔다.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는 해마다 5월 18일이 다가오면 이를 철거하라고 요구해 왔다. 역사적으로나 법원 판결로나 범죄자로 규명됐음에도, 여전히 반성이 없는 이의 행적을 기려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 5월 17일엔 시민사회가 해당 비석을 흰 천으로 가리고 그 위에 ‘학살자 전두환 죄악 증거비’라고 적힌 현수막을 거는 상징의식을 벌였다. 또 이듬해엔 민중당 포천시위원회가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 씨의 발언인 ‘민주주의 아버지’가 적힌 현수막을 걸고, 붉은 페인트가 묻은 공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올해도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시에 해당 비석 철거를 촉구하면서 퍼포먼스를 벌일 예정이다.
하지만 시는 여전히 해당 비석을 철거할 계획이 없다. 지난 13일 경기도 포천시 관련 부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2018년도에 (공덕비 이설이) 추진했다가 무산된 뒤로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18년 9월 포천시는 부시장과 30여 명의 국장급 공무원들로 구성된 시정조정위원회를 개최해 해당 비석을 어떻게 할지 논의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시는 ‘철거’가 아닌 ‘이설’을 결정했다.
그해 9월 7일 열렸던 포천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례회에 참석한 시 관계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에 관련된 학살자라고 해도, 대통령이 지시해서 건설된 비를 일방적인 민원만 갖고 철거하면 되느냐는 민원도 많이 받았다”라며 “대통령 공적을 기리는 동판은 제거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진보단체 요구사항도 들어 준 것이고, 또 비석을 왜 없애느냐는 반대급부적인 민원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에 옮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의회에 ‘전두환 공덕비’ 이설 비용으로 950만원을 승인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설 비용은 승인되지 않았다. 이설로는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세화 예산결산특별위원장(더불어민주당 소속)은 그해 9월 12일 열린 포천시의회 본회의에서 “이설은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하여 끊임없는 민원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며 “시민 여러분께서 주신 소중한 예산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이설 공사를 보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손세화 포천시 시의원은 지난 2018년 9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전두환 공덕비 철거 또는 이설 여부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이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손세화 포천시 시의원은 지난 2018년 9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전두환 공덕비 철거 또는 이설 여부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이같은 댓글들이 달렸다.ⓒ손세화 시의원 게시물 갈무리
“포천에 전두환 공덕비, 치욕”
“철거 말고 발파해야”
“흑역사도 역사...이전해 기록해야”
“이전하는 비용도 아까워”
처음부터 이설이 아닌 철거를 주장했던 손세화 시의원은 이후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해 9월 17일 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전두환 공덕비 관련 의견수렴을 수렴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러자,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전두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죄인으로, 그런 자의 공덕비가 포천에 있다는 건 치욕이다. 철거가 아닌 폭파, 해체해야 한다”는 분노 서린 글이 달리는가 하면, “잘못된 역사도 역사다. 논쟁이 있었다는 걸 기록해서 이전해야 한다”는 글도 달렸다.
“철거는 당연히 해야 하고, (전두환이 지은) 도로명도 개명해야 한다”, “돌이라도 던지게 철거하는 과정에 포천시민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발파해야 한다”, “그냥 엎어뜨려 시민들 평상으로 사용하고, 철거비용은 복지 사각지대 있는 분들을 위해 쓰는 게 좋겠다” 등의 글도 달렸다.
또 한 시민은 “5.18 학살의 주범 공덕비가 의견을 청취할 문제인가, 바로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항의하는 글을 달았다.
댓글만으론 철거 쪽이 우세해 보였으나, 1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손 의원은 “그냥 돌덩이에 불과한데 거기에 너무 의미부여하는 것 아니냐, 그런 데에다가 왜 예산을 쓰느냐 등의 항의전화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라며, 2018년 이후 철거 방향으로 관련 논의를 이끌지 못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포천시 소흘읍 축석검문소 맞은편에 세워져 있는 '전두환 공덕비'.
포천시 소흘읍 축석검문소 맞은편에 세워져 있는 '전두환 공덕비'.ⓒ민중의소리
“공무원이 대법원판결 따라야지 뭘 따르나?”
전두환 공덕비 철거 및 이전 논의가 전개되지 않는 이유는 포천시가 ‘기계적 중립’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탓으로 보인다.
2018년 9월 7일 개최한 제135회 포천시의회 1차 정례회 기록을 보면, 손세화 시의원이 “950만 원을 들여서 이설하는 것보단 차라리 이런 흑역사는 아예 제거하는 게 낫지 않나”라고 묻자, 시 건설과장은 “시민단체에서 (철거하라고) 민원을 내지만 (또 한편에선) 나이 드신 분들이 민원실에 계속 전화해서 존치해야 한다, 시민단체들 퍼포먼스하는 걸 왜 가만두느냐며 항의한다”며 “(양쪽에서) 이런 민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이설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해 부탁드린다”라고 답했다.
또 손 시의원의 지적과 시 건설국장 대답에 미래통합당 소속 송상국 시의원은 “공무원이 공무원 업무 수행하는데, 정치적인 이념을 가지고 해야 되는 건가. 흑역사고 무슨 역사고 정치적인 개념으로 공무원이 일을 한다고 하면 공무원이 할 일이 뭐가 있나. 그 발언 굉장히 부적절하다”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전두환은 맹백한 죄인이고 흑역사’라는 전제가 정치적인 해석이라며, 이를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전두환은 명백한 죄인이다. 전두환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군사반란죄, 국헌문란죄, 폭동죄, 간접정범죄, 내란죄, 내란목적살인죄, 반란죄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과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가 풀려날 수 있었던 이유는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해 12월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 2개월을 앞두고 ‘국민 화합’이란 이유를 붙여 그를 특별사면했기 때문이다.
이명원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 대표는 “대법원에서 학살자로 인정 됐는데, 공무원이 대법원의 입장에서 해야지 어떤 입장에서 하란 건가”라고 말했다. 이어 “철거 예산을 올렸어야 했다. 시 집행부에서 이설 예산을 올리는 바람에 해결이 안 되는 상태로 2년이 흐른 것”이라며 “대법원판결이나 역사적 규명으로 이미 결론이 난 것을 기초로 충청북도에서도 청남대에 있는 동상을 철거하기로 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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