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3일 토요일

2015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포토스케치] 2015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오열하는 어머니, 사진 속 웃음으로 화답하는 아이들

손문상 화백 2015.01.04 08: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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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남쪽 너른 창에 햇볕 한가득 부서지고 있다. 어두운 계단을 올라 들어온 이승의 교실은 부서진 햇살이 아이의 책상 위에 소복소복 내려 쌓여 천상인 듯 평화롭고 한없이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 가라앉은 아이들 책상 하나하나 마다 작은 꽃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 꽃잎 주위로 그리움으로 쓰다듬은 애절한 사랑의 손길이 작은 종이에 조각 글로 넘쳤고 책상 위 사진 속 아이들이 웃음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2015년 1월 3일 오후, 안산 단원고 2학년 각반 교실에 한낮 풍경은 이곳이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곳임을 말하고 있었다. 아이의 생일을 맞아 이날 교실을 찾은 2학년 7반 손찬우 군의 어머니가 찬우 군의 책상 옆에서 오열을 하고 있다. 

▲손찬우 군 어머니의 뒷모습ⓒ프레시안(손문상)
▲손찬우 군 어머니의 뒷모습ⓒ프레시안(손문상)  
 
 
 
 
 
 
 
 
 
 


‘청소왕’ 영웅이라고? “비정규직 노예처럼 부리는 곳”

MBN 신년기획 ‘희망 일구는 소영웅’ 첫편 청소업체 구자관 대표 구설
입력 : 2015-01-03  18:07:38   노출 : 2015.01.03  19:03:54
김유리 기자 | yu100@mediatoday.co.kr   

MBN이 소영웅을 찾는 신년기획에서 첫 번째 영웅으로 내세운 구자관 대표의 청소업체 삼구아이엔씨가 사실상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탄압했다는 증언이 나와 구설에 올랐다.
MBN은 지난 2일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세요”…‘청소왕’ 구자관 대표>라는 기사에서 “청소부 1만7000여명과 함께 청소기업 왕국을 만들고 있는 ‘청소왕’ 구자관씨”라고 구 대표를 소개했다.
MBN은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영웅이 별로 없는데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일하며 희망을 일구는 소영웅을 신년기획으로 취재했다”라며 구 대표를 소개한 꼭지 취지를 밝혔다.
MBN은 청소업체 삼구에 대해 “청소 대행기업 대부분이 계약직 사원을 고용하는 상황에서 모든 직원의 정규직 채용을 고집하며 심지어 명함까지 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수익 대부분을 직원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정해진 월급만 받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사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 삼구에 소속돼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구 대표에게 붙은 ‘청소왕’ ‘영웅’이라는 수식어에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삼구는 서울여대에서 2013년 11월까지 약 9년 동안 청소 등 시설 관리 업무 계약을 맺었다. 당시 서울여대에서 근무했던 환경미화 노동자 A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비정규직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영웅’으로 미화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 등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직전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이상을 일 했고 월급으로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63만원을 받았다.
  
▲ MBN 방송화면 캡쳐.
 

A는 “1년 단위로 매년 계약을 갱신했고 연차도 쉬는 토요일에 쓰라고 해 연차를 쓰기는커녕 연차수당도 한번 제대로 못 받아 봤다”며 “작업화를 한 번 사줘봤나, 심지어 청소에 필요한 걸레도 지급하지 않아 기숙사를 나가는 학생들이 버리는 천으로 걸레를 대신했다”고 말했다.
A는 또 “회식 때에도 비싸다고 맥주도 먹지 못하게 했고 고기도 정해진 양 이상을 시키지 못하게 했다”며 “비정규직에게 밥이나 한 끼 제대로 사주고 그런 말을 했으면 억울하진 않겠다”고 강조했다.
고용도 불안했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환경미화원은 그냥 자르기도 했다”며 “‘까만 봉투 해고’가 가장 유명하고 어이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까만 봉투 해고’는 연말에 사측에서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의 작업복을 까만 봉투에 담아오라고 해서 연초 출근해서 자신의 작업복이 없어지면 비로소 해고라는 걸 알게 되는 식이다.
A는 “당시 소장의 비위인지 삼구 기업 차원의 비위인지를 다 가려낼 수는 없지만 연차를 못쓰게 하는 게 소장 개인 차원에서 가능한 일이겠느냐”며 “기업에서 소장을 내려 보냈으면 소장의 그 비위까지 관리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삼구는 2014년부터 이화여대 청소 용역 업체로 계약을 맺고 운영 중이다. 이화여대에서 고용 업체를 바꿔가며 8년째 일하고 있다는 환경미화 노동자인 B씨는 “현재 삼구에서 일하고 있는데 1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는 상황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B는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서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인정받았고 이전 청소용역 업체의 단체협약을 그대로 승계해 삼구에서도 4대 보험 등이 인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BN에 출연한 구자관 삼구아이엔씨 대표
 
회사에서 명함을 지급하는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B는 “회사에서 개인당 몇장씩 해주기는 하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며 “그런게 다 낭비고 그럴 여유가 있으면 환경미화 노동자에게 필요한 걸 하나 더 해주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A는 “회사와 명함 업체의 친분 때문에 해준 것으로 안다”며 “그럴 돈이면 청소 도구나 제대로 사주는 게 낫다”고 일침을 가했다.
삼구 소속으로 현재 이대 용역업체를 맡고 있는 박미용 소장은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정규직”이라고 말했으나 “지난해 1월 이화여대와 청소용역 계약을 한 후 노동자와는 6월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올해는 계약서 재서명 없이 고용이 승계됐다. 근로계약서에는 1년 단위로 돼 있고 자동 갱신되는 형태”라고 인정했다. 사실상 계약조건이 1년 단위로 갱신되는 비정규 계약직이다.
이에 대해 김윤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청소 대행업체가 원청과 계약해지가 될 경우 소속 직원이 자동으로 해고 되는 수순에서 청소 대행업체 직원의 정규직화는 어불성설이고 특히 삼구는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어 정규직이라고 볼 수 없다”며 “4대보험·퇴직금 등은 노조와 사측의 단체협약을 통해 쟁취한 것으로 대행업체가 정규직 조건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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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MB 발언은 비겁한 변명”


4대강조사위원회 박창근 교수 "4대강 사업의 재앙, 점점 드러날 것"
옥기원 기자 ok@vop.co.kr 발행시간 2015-01-02 18:01:21 최종수정 2015-01-02 18:48:16

정부의 4대강 조사 결과 못 믿는다.
26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와 4대강조사위원회가 국무조정실 4대강조사평가위 조사결과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석 및 평가 기자회견을 열고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가 4대강사업 조사·평가 결과에 대한 수자원 분야 분석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4대강 사업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업 이후 나타난 총체적 부실을 감추기 위한 변명입니다.”
박창근 카톨릭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 공과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책임 회피성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사업이 완료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보 안전성, 녹조 및 수질악화, 홍수감소 효과 미비 등의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이 지적들은 4대강 사업 이전부터 환경전문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요. 곳곳에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4대강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는데 10년 뒤에 평가할 일이라는 발언 자체가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박창근 교수는 한반도 대운하가 언급되던 지난 2008년 전국 2500여명의 대학교수들과 ‘운하반대교수모임’을 결성해, 이후 4대강 사업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지적해왔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박 교수는 지난 2008년에 한국환경기자클럽이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새해 첫날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물 공사는 10년이 하자 보수 기간”이라면서 “약간의 문제들이 발견됐지만, 앞으로 모두 하자 보수하면 된다”며 시간을 더 두고 4대강 사업의 공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에 김무성 대표를 포함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역대 정권이 더 많은 돈을 들여 정비하려던 사업을 (지난 정권 때) 20조원을 들여 해냈다”며 사업의 불가피성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녹조라떼 손에 든 비리덩어리 이명박'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원자력 발전, CJ그룹 비자금 등에 대한 검찰 수사 지시를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한해 6000억 유지관리가 약간의 하자 보수?”
박 교수는 “4대강 사업은 실패한 토건 사업의 전형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환경적 재앙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전혀 실효성 없는 사업으로 기록될 거라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4대강 사업 이후 발생한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만 한 해 600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환경부 수질개선비용이 빠져 있어서, 이같은 비용이 더해지면 유지관리비는 더 높아집니다. 사업에 있어서 편익은 없고 지출만 있는, 말 그대로 전혀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에요.”
박 교수는 보 안전성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의 목적 중 하나였던 홍수감소 효과도 미비하다고 주장했다.
“보 밑으로 형성된 물길을 따라 물이 위로 솟구치는 ’파이핑 현상’으로 보 밑을 바치는 모래가 급속도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적절한 유지보수가 없다면 함안·합천보 등이 기울거나, 무너질 수 있어요. 또 국무조정실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보 구간에서 홍수저감에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홍수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어요. 당초 사업의 목적성을 상실한 졸속 공사를 10년 뒤에 평가하자는 말은 현재 드러난 총제적 부실을 입막음 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화보]“하늘에서 본 낙동강, 700리 강물이 썩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상류에서 하류까지 낙동강이 녹색의 썩은 물로 변해가고 있다. 낙동강복원 부산시민운동본부가 지난 6월 항공촬영한 낙동강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낙동강 박진교를 거쳐 내려가는 강물의 모습. 녹조현상이 심각하다.ⓒ낙동강복원부산시민운동본부
‘죽음의 공간’ 4대강...“후속작업 중단하고 책임자 처벌해야”
박 교수는 4대강 사업 이후 사업이 진행된 전역에서 멸종위기야생동물이 사라지는 등 생태 파괴가 심각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가 참여하는 4대강조사위원회는 국무조정실 4대강조사평가위원회 발표 이후인 지난 26일 성명을 통해 “획일적 준설 등으로 생물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장기적으로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며 4대강 사업을 생태계 측면에서 전혀 쓸모 없는 사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위원회는 “4대강 사업의 목표가 가뭄해소, 홍수저감, 수질개선, 수생태계 복원이었지만 사업 이후 수질 악화, 수생태계 생물다양성 감소라는 결과를 초래했고, 홍수저감과 가뭄해소의 타당성도 확인받지 못했다”며 “4대강 사업이 진행된 전 구간의 생태계가 회복 불능한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의 작년 10월 발표에 따르면 4대강 사업 전후 환경평가 등을 비교해 본 결과 사업이 진행된 일대에서 담비와 하늘다람쥐, 물범 등 보호 포유류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사업이전 41종 이상 발견되던 보호 조류 역시 2013년도에는 21종만 발견되고 있다.
박 교수는 “수질악화나 녹조 등의 문제는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이미 많은 전문가가 예견해 왔다”며 “현재 환경전문가들이 생태계 파괴와 홍수 효과의 미비 등의 문제를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는 만큼 4대강 사업의 비효율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명확해 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4대강 사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영주댐 공사 등 남은 4대강 사업과 지천 정비사업 등의 후속 사업의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대강 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수습하기 위한 4대강 후속대책이 4대강 사업의 문제점들을 가리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또 박 교수는 불투명한 사업추진과정과 실패한 사업목적 등을 감안해 국정조사 같은 특단의 조치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대강 사업 피해 실태 사진들
2일 오전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4대강사업 문제해결을 위한 범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4대강 시민조사 결과 발표와 4대강 건설사 비리, 불법, 담합 수사를 촉구했다.ⓒ김철수 기자

내게 폭발물 던진 고3, 그래도 용서하고자


15.01.03 19:19l최종 업데이트 15.01.03 21:20l


2014년 말미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일어나 신은미·황선 통일콘서트 테러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폭발물에 의해 화상 피해를 입은 이재봉 원광대 교수는 테러범을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익산 통일콘서트를 준비한 당사자였던 이 교수가 편지를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  신은미씨의 토크 콘서트 현장에서 있던 테러 당시 사진.
ⓒ 오준승

새해엔 폭력과 독재 대신 평화와 민주를 맞이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저는 지난해 12월 10일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토크 콘서트'에서 고등학생 A군이 던진 폭발물에 의해 화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테러를 당하자 많은 분들이 걱정하며 격려해 주셔서 언젠가는 경과를 알려드려야겠다고 맘먹고 있었습니다.

마침 지난해 마지막 날 밤 A군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보수 지향적이 되었다는 사연을 곁들이며 저를 포함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습니다. 2주 전에 제가 면회하면서 던진 질문에 대한 보충 답변이지요. 여러분의 고견을 구할 겸 새해 인사 삼아 그 동안에 있었던 일을 보고합니다.

테러 피해의 실상
기사 관련 사진
▲  지난 2014년 12월 10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의 진행요원으로 참석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곽아무개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 강민수

말씀드린 대로 저는 지난 12월 10일 신은미·황선 통일토크 콘서트에서 폭발물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유일한 피해자도 아니고 가장 큰 부상자도 아니지만, 언론에 의해 가장 널리 알려진 피해자가 되었지요. 

아래위 옷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에 불이 붙고 양쪽 신발에까지 구멍이 뚫릴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얼굴과 무릎의 상처는 이제 거의 아물었고 손목에서도 며칠 전부터 새살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큰 통증은 없지만 목욕이나 샤워는커녕 세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몹시 불편하군요.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에 가며 귀중한 시간과 돈을 허비해야 하는 것은 더욱 괴롭고요.

가장 크게 신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은 서울에서 내려온 행사 진행자였습니다. 테러범이 폭발물질이 든 그릇에 불을 붙여 무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발견하고 내려치느라 특히 얼굴을 크게 다쳤습니다. 신은미씨와 황선씨에겐 생명의 은인인 셈인데, 시간이 지나도 얼굴 일부는 완전히 복구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군요. 성당을 빌리도록 주선해준 한 원로신부는 불편한 몸으로 빨리 피신하지 못해 유독가스를 많이 들이켜 한 동안 호흡 곤란을 겪었고요. 

신체적으로 해를 입은 사람은 저를 포함해 이렇게 셋입니다. 셋이 앉은 자리가 각각 떨어져 있었는데도 직간접적으로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만 골라 다쳤으니 불행 중 천만다행이지요. 물론 그 자리에 참석한 200여 명 모두 얼마나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겠습니까만, 일반 청중 가운데 신체적으로 다친 사람은 없으니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은 행사 이틀 전 제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을 보고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 참석했던 사람들의 피해를 일일이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관련기사: 신은미씨 옵니다...뉴라이트와 탈북자 분들도 오세요)

테러범과의 면회 및 부모와의 만남

이틀 뒤 폭발물을 던진 A군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익산경찰서에 10여 차례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면회를 포기했는데, 그날 저녁 A군의 부모가 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부모는 제 치료비를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부모에게 대충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반성과 사과이지 돈이 아닙니다. 진보적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권력도 금력도 완력도 없지만, 극우세력이나 폭력을 옹호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확실하게 지니고 있는 게 있습니다. 도덕성과 양심이지요. 치료비를 조건으로 합의를 추진하지 마세요."

일 주일 뒤 익산경찰서 유치장에서 테러범 A군을 만났습니다. 앳된 모습의 조그만 체구가 고3 같지도 않더군요. 얼굴과 팔다리에 화상을 입은 직후 응급실에 실려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테러범이 '1996년생'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주위에서는 "탈북자인가 보다" 했지만, 저는 잘못된 정보라 생각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렇게 응급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서는 길에 테러범이 고교 3년생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1996년생 18세 고등학생이 정치 테러를...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성당 앞에서 방해 시위를 하던 60~70대 어르신들에게 당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말이죠.

익산경찰서 면회실의 두꺼운 유리벽 건너편 학생에게 먼저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넸습니다. 

"자네 참 대단하군. 요즘 대학생들조차 진학이나 취업 때문에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못하는데 고등학생이 사회 문제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갖다니 말이야. 자네나 나나 우리 사회를 좀 더 살기 좋게 만들어보자는 목표는 비슷하겠네. 그러나 방법이 크게 다르군. 난 비폭력적 방법으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데 자네는 폭력으로 사회를 바꾸려 하니까. 

사회의 부정과 비리에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길은 비폭력 저항일세. 두 번째 좋은 방법은 폭력으로라도 맞서는 것이고. 세 번째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저항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일세. 무관심하거나 무지해서 저항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용기가 부족하거나 비굴해서 저항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자네는 세 번째 부류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낫다는 뜻일세. 그런데 내가 추구하는 비폭력 방법과 자네가 저지른 폭력적 방법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 앞으로 차분하게 잘 생각해보게."

저는 20여 년 전 미국의 대학원에서 평화학과 비폭력정치학을 배우면서부터 모든 종류의 폭력을 거부해 왔습니다.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면서 가벼운 손찌검이라도 한 번 해본 적 없지요. 그러기에 행사 당일 두어 시간 전부터 성당 입구에 이른바 '애국' 어르신들이 모이기 시작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카톡과 페북 등을 통해 급히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어르신들이 어떠한 시비를 걸더라도 대응하지 말라고요. 혹시 때리면 그냥 맞고 들어가라고 부탁했습니다.

A군에게 언제부터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 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탈북자 선교사의 강연을 듣고 나서부터라고 하더군요. 교회에서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배운 셈이랄까요? 크게 나무랐습니다. 

"이 사람아, 예수님의 가장 큰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교회 다닌다는 사람이 그렇게 끔찍한 폭력을 저질러?"

사실 테러 직후 실려 간 응급실에서 테러범이 18세 고3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손양원 목사였습니다. 1948년 여수·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항쟁' 또는 '반란' 과정에서 자신의 고등학생 아들 둘을 때려죽인 좌파 청년이 사형에 처해지기 직전 구출해 양아들로 삼아 목사로 키운 분이죠. 

20여 년 전 손양원 목사의 딸이자 죽은 두 아들의 누나가 쓴 수기를 읽고, "이 분이 과연 인간일까?" 하는 경외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군을 만나면서 바로 그 분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좌파 청년이 우파에게 저지른 살인 행위를 용서하고 그 살인범을 자신의 아들로 삼은 목회자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흉내 내어 우파 청년이 저지른 테러를 용서하면서 제 학생으로 삼아보는 게 어떨까 하는 발상을 품은 것이지요. 겨우 2도 화상을 입은 제 자신과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그 학생을 만나기 전 제 집을 찾아온 부모에게 위 사연을 들려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요즘 '애국'한다는 사람들은 아드님의 테러를 옹호하고 지지하며 '지사'나 '열사' 칭호를 붙인다는군요. 경찰서 앞에 100여 명씩 모여 '석방'과 '불구속 수사'를 외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며, 앞으로 해외유학까지 시켜줄 계획이라는 소문도 들립니다. 그러면 아드님이 지금은 테러 초년생으로 폭발물질을 던졌지만 다음엔 테러 왕초가 되어 기관총까지 쏘아댈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아드님에게 그런 물질적 지원은 조금도 하지 못하겠지만 아드님을 포용해 진보 쪽으로든 보수 쪽으로든 비폭력 운동가로 이끌어보고 싶습니다." 

부모가 동의하더군요.

종편방송 왜곡보도의 폐해

그 학생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네가 죽이고자 했던 신은미씨가 쓴 책을 단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거나 그녀가 이전에 한 강연을 단 한 대목이라도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가?"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인터넷 게시판에 미리 알리지 않았는가. '신은미가 폭사 당했다고 들리면 난줄 알아라'고 말이야. 아무튼 신은미씨를 어떻게 알았는가?" 
"TV뉴스를 보고 알았어요."

테러범 A군도 종편방송 왜곡보도의 희생자였습니다. 그 학생뿐만 아니라 신은미씨의 강연을 반대하거나 방해한 사람들 가운데 그녀의 글 한 쪽이라도 직접 읽거나 강연 한 대목이라도 제대로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묘사했다는 종편방송의 악의적 왜곡보도에 온 사회가 휘둘린 것이지요. 

저는 지난 6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항소심에서 전문가 증언을 한 것과 관련해 극우언론의 왜곡과 그에 기초한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비난을 생생하게 겪어본 터라 그 왜곡을 바로잡고자 <프레시안>에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라는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하게 왜곡 및 비방을 당한 신은미씨가 계획된 강연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말렸습니다. 자신이 '종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 아니냐며 종편방송을 비롯한 극우언론의 왜곡과 억지 그리고 횡포에 굴복하지 말고 소신껏 강연하라고 부추긴 것이었지요.

이런 취지로 저는 신은미씨를 익산으로 초청했습니다. 사회과학대학장 사표까지 내며 원광대에서의 행사를 추진한 이유이고요. 극우언론의 왜곡보도에 휘둘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과 시각이 다르다고 강연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자체가 억지고 횡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녀가 2012년 <오마이뉴스>에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매주 1~2회 연재하던 글은 매회 수십만 명이 읽었습니다. 그 연재를 엮어 2013년 출판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문학 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통일부는 그 책을 홍보하는 동영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고요. 2014년 4월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펼칠 때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되기는커녕 인기가 하늘로 치솟을 듯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10월엔 <한국기자협회>, <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수여하는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진보 또는 '친북좌빨'로 불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그 뒤의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요. 바로 지금의 박근혜 정권에서 생긴 일입니다. 지난 4월 강연과 12월 강연의 내용은 비슷하거나 똑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형식적으로 4월엔 혼자 했는데 12월엔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황선씨와 같이 했다는 점이요, 시기적으로 12월은 박근혜 정권이 어쩌면 최대 위기에 몰려 그 돌파구가 필요한 때였다는 점이지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온 극우언론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교묘하게 고의적으로 왜곡보도를 일삼아왔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은 정권을 지키기 위해 극우언론의 왜곡보도를 활용해왔고요. 그런데 지식인들까지 이러한 왜곡보도에 놀아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어, 익산에서 테러가 일어난 며칠 뒤 한 점잖은 종교인이 "웬 재미교포 극좌(極左) 성향의 여성이 종북(從北) 콘서트를 한다고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였습니다"는 문장을 포함한 이메일을 보냈더군요. 거의 매일 수만 명을 상대로 이메일을 보내는 터라 책도 많이 읽고 글깨나 쓰는 어르신 같은데, '극좌'라는 말의 뜻도 모르고 신은미씨의 글을 몇 줄이라도 읽어보지 않은 듯 함부로 글을 쓴 것이지요. 일부 지식인들마저 종편방송을 비롯한 극우언론의 왜곡보도를 진실로 보고 믿는 것일까요? 글쓰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겸비했을 텐데 말이죠.

그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고 면회를 끝냈습니다. 

"자네가 죽이려고 했거나 죽이고 싶도록 증오했던 신은미씨를 늦게나마 제대로 알아보게. 자네가 원하고 자네 변호사나 부모님이 허락하신다면 다음에 그녀가 쓴 책 한 권 갖다 줄 테니 잘 읽어보게."

마침 그 학생이 2주 후 제게 보낸 편지엔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오는군요.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 한 달 책값만 10만 원이 훌쩍 넘어갈 때도 있는데, 안 그래도 책 안 읽는 나라에서 도서정가제니 부가세니 붙여버리는데 좋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도 나라가 이 모양이니 저 모양이니 투덜대는 사람들에게 반응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데 왜 우리나라를 욕하느냐' 반문하면 .....(중략) 그 이전부터 제 주변에 제대로 된 사람을 끼고 살지 못해서 제 마음은 병들어 있던 건지도 모릅니다"

신은미씨와 테러범의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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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지난 2014년 12월 11일 오후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예정된 서울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앞에서 "신은미 구속"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건물진입 시도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이렇듯 종편방송을 비롯한 극우언론의 왜곡과 횡포에 따른 폐해가 너무 큽니다. 온 사회가 '종북' 논란에 휩싸인 것도, 많은 사람들이 신은미씨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녀의 강연을 반대하거나 방해한 것도, 고등학생이 그녀를 대상으로 정치 테러를 저지른 것도, 지식인조차 그녀를 '극좌'와 '종북'으로 매도한 것도... 모두 종편방송의 교묘하고 악의적인 왜곡보도에서 비롯된 것들이죠.

그러기에 저는 그 때 행사 진행자들이나 참석자들 일부가 '테러 피해자 모임'을 만드는 것엔 반대했습니다. 테러범도 왜곡보도의 피해자인데 그에게 무슨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였습니다. 게다가 신은미씨와 그 행사를 주관했던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이 없고 옳다고 하더라도, 역시 극우언론의 왜곡보도에 따라 그 행사가 테러에 의해서라도 중단된 게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요.

신은미씨는 1월 9일까지 두 번의 출국정지 기간 연장 속에서 세 번의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곧 강제로 출국 당하거나 불구속 기소가 될 것 같습니다. 경찰이 그녀의 책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아들일 내용이 없고, 강연 내용을 뒤져봐도 잘못이 없으며, 미국 내에서 지인들과 통화한 기록까지 털어도 시비를 걸 게 없으니,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처벌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모양입니다. 관광비자로 입국해 강연하며 돈을 벌었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며칠 전엔 그녀가 글에서든 강연에서든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묘사한 적이 없다고 용기 있게 공표했습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지시를 받거나 눈치를 보며 무슨 꼬투리로라도 처벌해야 하는 경찰을 비난하기보다는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생고생하는 그들에게 동정을 보내야겠지요. 아무튼 그녀는 조카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고국을 방문했다가 결혼식 참석은커녕 가족들로부터도 왕따 당한 채 피신해 있습니다. 미국에서 남편이 운영하는 사업체엔 요즘 온갖 비방과 협박 전화가 걸려와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근무하기 어려울 정도랍니다. 종편방송의 왜곡보도가 초래한 결과가 이렇게 끔찍한 것이지요.

한편, 테러범을 용서하고 비폭력 운동가로 이끌고 싶다는 제 의견에 반대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를 용인하면 모방범죄가 잇따르기 쉽다고 우려하며 무거운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한 저보다 훨씬 큰 화상을 입은 사람의 처지나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려야겠지만, 다음과 같은 점도 고려해야겠고요. 

제가 선처를 호소하지 않더라도, 청와대와 극우언론은 그 학생이 처벌 받도록 가만 놔둘 것 같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테러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종북' 콘서트라고 확고하게 단정해 버렸잖아요. 게다가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그 학생을 '우국청년'으로 치켜세웠습니다. '애국' 단체들에서는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상당한 돈을 모아놨다고 하고요. 경찰이 그 학생을 위로하며 봐주기 조사를 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담당 검찰 역시 합의와 선처 호소를 바라는 모양이고요.

두가지 조건

물론 제가 선처를 호소하거나 용서하는 데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재판 과정을 통해 테러에 대한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무슨 일에서든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둘째는 사법부라도 독재를 견제하며 폭력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를 막아야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민족과 국경을 초월해 평등하게 살면서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다는 공산주의의 이상과 목표가 바람직하더라도, 공산주의를 반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폭력과 독재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기 때문 아닌가요. 
기사 관련 사진
▲  이재봉 교수
'통일 대박'을 외치고 평화통일을 바란다면서도 북한을 증오하도록 이끄는 것은 위선이요, 반공을 국시로 삼듯 하면서도 다양성을 부인하고 독재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공산주의를 닮아가는 것은 모순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테러범을 어찌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고견을 기대하며 새해 인사를 마칩니다. 
감사하며 이재봉 드림.

“피토관 얼어 계기판 먹통된 뒤 기수 올리다가…”

등록 : 2015.01.02 19:07수정 : 2015.01.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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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인도네시아 인근 자바해에 추락해 사라진 에어아시아 8501편의 항공기인 에어버스 320-200(등록부호 PK-AXC)이 2011년 8월7일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활주로를 달리고 있다. 이 항공기는 에어아시아의 상징인 빨간색을 칠하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 단거리를 비행했다. 에어버스 320 시리즈는 지난 11월말까지 6000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기종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에어아시아 추락 시나리오

▶ 지난 12월28일 새벽, 한국인 세 명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162명을 태운 에어아시아 여객기 8501편이 인도네시아 자바해 해상으로 추락했습니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의 항공기는 웬만한 악천후에도 끄떡없다는 게 항공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항공재난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서 온다.’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지만, 2009년 악천후 속에서 대서양에 추락한 ‘에어프랑스 447’ 사고가 떠오릅니다. 이번 사고의 한 시나리오를 추적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는 자카르타를 잇는 인구 300만명의 제2의 도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 도시 사람들도 싱가포르에 가서 노동을 하고 업무를 보고 때로는 관광을 한다. 28일 새벽 5시35분에 출발하는 에어아시아(QZ) 8501편에 탄 승객 155명 가운데 149명이 인도네시아 사람이었다. 한국인이 3명, 싱가포르인, 말레이시아인, 영국인이 각각 1명이었다. 인도네시아인 이리얀토 기장과 프랑스인 부기장, 5명의 승무원과 엔지니어를 포함해 모두 162명이 새벽 비행기에 탔다.
난기류 때문에 우회로를 선택했다면
이륙한 에어아시아 8501은 유럽의 항공기제작사 ‘에어버스’가 만든 ‘A(에어버스)320’ 시리즈 중 하나였다. 미국의 항공제작사 ‘보잉’의 737과 함께 주로 대륙 내 중·단거리 구간을 운항하는 기종으로, 에어버스 누리집에 따르면 2014년 11월 기준으로 6331대가 주문돼 6092대가 운항 중인 ‘베스트셀러’다.
에어아시아 8501은 이날도 바지런히 날았다. 항공정보 웹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를 보면, 등록부호 PK-AXC의 이 항공기는 저가항공의 젊은 이미지를 상징하는 빨간색 도색을 하고 수라바야,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등 동남아시아 자바해 연안의 도시를 쉼없이 돌아다녔다. 사고 전날인 27일만 하더라도 새벽 5시53분 수라바야를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를 갔다 왔고 다시 수라바야를 기점으로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의 왕복 비행을 완수했다. 총 여섯 번의 비행이었다. 한 시간 안팎 연착하고 40여분 만에 승객을 내리고 태우는 등 저가항공의 특성인 빡빡한 스케줄을 완수했지만, 자바해에 짙게 깔린 검은 구름을 보기까지 이 빨간 비행기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8일 오전 6시12분 이리얀토 기장은 상공의 먹구름 때문에 왼쪽으로 기수를 틀고 운항고도를 해발 3만2000피트(9754m)에서 3만8000피트(11,582m)로 올리겠다며 인도네시아 관제탑에 항로 변경을 요청한다. 그러나 관제탑은 해당 고도에 다른 항공기가 운항 중이라고 답한다. 이것이 마지막 교신이었다. 2분 뒤 관제탑은 왼쪽으로 7마일(11㎞)을 비행해 3만4000피트(10,363m)에 진입하라고 안내한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6시16분만 해도 8501은 관제탑 레이더에서 개미처럼 북진하고 있었다. 2분 뒤인 6시18분, 비행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7시30분 싱가포르 창이공항,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여행객들을 내려주기로 되어 있던 빨간 비행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래 이번 사고는 지난해 3월 일어난 말레이시아항공(MH) 370 실종사건을 연상케 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말레이시아항공 370은 아직까지도 항공기로 확증될 만한 잔해가 발견되지 않아 항공사고 최대의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에어아시아 8501도 수수께끼의 심연 속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0일 인도네시아 중부 칼리만탄 해안에서 약 170㎞ 떨어진 바다에서 기체 잔해가 발견되면서, 사고의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다.
맨 먼저 드는 의문은 왜 인도네시아 관제탑이 사고기의 항로 변경을 재빨리 승인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2분 뒤에야 우회항로를 제안한 건 너무 늦은 것인가. 그러나 항공전문가들은 낯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보통 적란운이나 먹구름, 태풍 등 기상현상이 예상되면 항공기는 정규항로를 이탈하여 우회로를 선택한다. 조종사는 관제탑에서 전달하는 기상정보와 비행기에 부착된 웨더레이더(레이더를 통해 기상현상을 감지하는 장치)가 주는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위험지대를 피해 간다.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지나가거나 아예 에둘러 가는 게 일반적이다. 사고기도 정규항로 왼쪽의 고지대로 우회하는 항로를 요청했다. 근처에 형성됐던 것으로 보이는 두께 5~10㎞의 적란운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게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의 추측이다.
하지만 항공 교통량이 많으면 우회로도 붐빈다. 사고 당시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이 3만8000피트(11,582m) 상공에서 운항하는 등 주변 항공기만 5대였다. 대도시 국제공항 주변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항공기가 정체하기 때문에 낯선 일은 아니다. 에어아시아가 관제탑의 우회항로 불승인 뒤에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다수 항공전문가는 설사 항공기에 호의적이지 않은 기상지대를 통과하더라도 치명적이진 않다고 말한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터뷸런스(난기류)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경우다. 기장은 속도를 낮추고 기류의 흐름을 탄다. 덜컹거림 때문에 승객들은 불안해하지만 기장에게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타고 가는 것과 비슷하다. 한 국내항공사의 한 기장은 “터뷸런스가 나타나면 권장속도로 속도를 줄인다. 엔진이나 날개의 장치를 켜서 계측장치가 얼지 않도록 조심히 통과한다”고 말했다.
그럼, 문제는 에어아시아 8501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추락에 이르렀느냐다. 항공기가 어떤 기상현상에 직면했고, 항로 변경을 승인받지 못한 이리얀토 기장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항공기가 ‘공기역학적 실속’(aerodynamic stall·비행기가 양력을 상실한 상태)에 빠져들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사고기가 악천후로 인해 물리적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다. 항공기는 생각보다 자주 번개를 맞는다. 지금까지도 1963년 12월 팬암 214 여객기(보잉 701-121)가 번개에 맞은 사고는 항공재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당시 메릴랜드 상공을 날고 있던 기체의 날개를 번개가 직접 때리자, 날개 하단의 연료탱크가 폭발했다. 조종사는 “메이데이”(비행기 위급상황시 조난신호)를 외쳤지만, 항공기는 이내 추락했고, 탑승객 전원인 81명이 숨졌다. 이 사고로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미국 상공을 운항하는 민항기에 낙뢰사고를 방지하는 방전장치의 부착을 의무화했고, 지금은 세계의 거의 모든 민항기가 번개의 위험 없이 운항한다. 번개의 고압전류는 날개와 꼬리 뒷부분에 있는 방전장치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그을음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카르타 찍고 쿠알라룸푸르 찍고…
바지런히 날던 저가항공
기장 “왼쪽으로 상승하겠다”
관제탑에 요청하고 사라져
‘미스터리의 6분’은 블랙박스에
시속 700~800㎞로 돌진하는 항공기
조종사의 감각은 부품에 달렸다
속도·고도 측정하는 ‘피토관’
얇게 얼어도 계기판은 엉망 된다
‘에어프랑스 447’ 사고의 재판인가
기체 머리 부분에 장착돼 속도, 고도를 측정하는 피토관. 2009년 에어프랑스 447 추락사고 이후 악천후 때 얇게 끼는 얼음 문제로 논란이 되어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피토관 착빙은 에어버스의 중대 관심사”
이렇듯 악천후가 직접적으로 항공기를 떨어뜨리진 않는다. 웬만한 적란운이나 난기류 등 위험지대를 통과해도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 항공기는 추락할 정도로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 뉴스전문채널 <시엔엔>(CNN)의 기상전문가 캐런 매기니스도 지난달 29일 에어아시아 8501이 기상 악화로 추락했을 가능성에 대해 “터뷸런스 때문에 항공기가 추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터뷸런스에 대처하는 기장의 조처가 추락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일부 항공전문가들은 2009년 대서양에 추락해 228명의 사망자를 낸 에어프랑스(AF) 447 사고를 환기시킨다. 에어프랑스 447은 이번 사고기와 가장 비슷한 환경과 조건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고 있었다. 항공기 기체는 에어버스에서 만든 A330이었으며, 사고 당시 천둥과 번개가 치는 적도의 난기류에 있었다. 재앙은 가장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다. 1986년 고무패킹 하나가 얼어서 폭발로 이어진 우주선 챌린저호처럼 작은 부품의 오작동이 걷잡을 수 없는 재난으로 이어졌다.
문제의 부품은 ‘피토관’(pitot tube)이라 불리는, 1m도 되지 않는 작은 계측장치다. 항공기 동체 앞부분에 장착되는 피토관은 자신을 통과하는 기체의 압력을 측정해 항공기의 속도와 고도 등을 산출한다. 그런데 높은 습도와 낮은 온도(주로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는 피토관에 ‘크리스털 아이스’라는 얇은 얼음이 낄 수 있다. 이때 피토관은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 조종석 계기판에는 오류 덩어리 정보가 뜬다. 항공기 속도와 고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기민하게 대처하려고 해도, 창밖엔 드넓게 펼쳐진 하늘뿐이라서 제대로 된 공간과 속도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조종사들에게는 목숨을 건 난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국제민간조종사협회(IFALPA)의 사고조사관으로 일하는 신동훈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안전실장이 30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오버스피드가 나오면(항공기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표시되면) 기장은 마치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기수를 높이고 파워를 빼서 속도를 줄일 겁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기수를 낮추고 파워를 넣어서 속도를 높이겠지요. 에어프랑스 447처럼 오버스피드가 아닌데도 계기판에 잘못된 정보가 뜨면 조종사는 잘못된 대응을 하게 되는 거지요.”
시속 700~800㎞ 이상으로 전진하는 두어평의 좁은 조종실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빠르게 지나가는 기체 외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시속 100㎞로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와는 아주 다르다. 돌풍, 낙뢰, 난기류,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장애물. 인간 지각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조종석 계기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잘못된 계기판 정보는 치명적인 사고를 부른다.
에어프랑스 447 사고가 일어난 뒤 유럽항공안전국(EASA)은 피토관 교체와 개선을 지시했다. 에어버스는 2009년부터 A330과 A340에 들어가는 해당 모델의 피토관 교체를 하고 있지만, 기술적 논란은 아직도 여전하다. 유럽항공안전국은 지난 10월에도 피토관과 관련한 기존 조처가 높은 고도에서의 착빙현상을 완전 방지하는 데는 미흡하다며 추가 개선 조처를 지시했다. 이번에 추락한 에어아시아 8501에 피토관과 관련한 수리가 이뤄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의 항공 칼럼니스트 존 골리아는 “피토관의 착빙현상은 에어프랑스 447 사고 이후 에어버스 항공기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어왔다”고 말했다.
2011년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두 건의 항공사고가 피토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9년 6월 홍콩에서 일본 도쿄로 향하는 노스웨스트항공은 3만9000피트(11,887m) 상공에서 폭우를 만나면서 갑자기 속도계가 이상을 일으킨다. 자동운항장치가 꺼지고 경고신호가 울리는 가운데 조종사들은 직접 조종대를 잡아 기체의 중심과 속도를 잡는 데 성공해 무사히 도쿄에 착륙했다. 2009년 5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하던 탐(TAM)항공 8091편의 계기판에도 갑작스런 감속과 고도 저하가 표시됐지만, 조종사는 대체장치를 활용해 아무 사고 없이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조종사는 왜 기수를 올렸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일 조사당국에서 일하는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에어아시아 8501이 추락 직전에 믿기 어려울 만큼 가파른 경사로 급상승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레이더 분석 결과, 이런 경사도는 에어버스 320의 설계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왜 이리얀토 기장은 항공기의 기수를 비정상적으로 올렸을까. 피토관의 착빙에 따른 계기판 오류가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이런 급기동의 원인을 파악하는 게 에어아시아 8501의 추락 원인을 밝혀내는 핵심적인 열쇠다. 항공전문가들은 예단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악천후 때 발생할 수 있는 항공기의 결함, 조종사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행기는 항공사고를 거치면서 최첨단 기술로 무장했다. 항공전문가들은 요즈음의 항공재난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8501의 추락 원인은 조종사들이 관제기관과 웨더레이더의 기상정보를 얼마나 잘 판단해 최악의 위험지대를 벗어나는 항로를 짰느냐, 그리고 만약 계기판에 문제가 생겨 자동운항장치가 무용지물이 됐을 경우 컴퓨터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얼마나 잘 항공기를 기동했느냐의 여부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에어아시아가 빠져든 악천후에서는 많은 실전 경험과 연습이 조종사의 기민한 판단과 침착한 대처 능력을 결정한다고 항공전문가들은 말한다.
에어아시아 8501의 블랙박스에는 이리얀토 기장이 관제기관과 마지막 교신을 한 6시12분부터 항공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진 6시18분까지 조종실에서 부기장 등과 나눈 대화가 기록됐을 것으로 보인다. 블랙박스를 찾아내면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인도네시아 수색당국은 2일 오후까지 기체 일부와 주검 16구를 수습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