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쿠팡은 이길 수 없다'는 아들의 죽음..."같은 죽음 반복되면 안 돼요"

 [인터뷰]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 어머니 박미숙 씨

지난해 10월 12일,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7살 장덕준 씨가 퇴근 뒤 과로사했다. 고인의 어머니인 박미숙 씨는 지난 11일 아들의 묘소 앞에서 추모제를, 12일 국회 앞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치렀다.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 묘소에 가는 것도, 제사를 하는 것도 꺼려하던 박 씨였다. 아들의 1주기를 어떻게 보낼지를 두고 가족 간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들기도 했다. 그러던 박 씨가 1주기 추모 행사를 하게 된 것은 전국쿠팡물류센터지부와 택배과로사대책위원회(아래 과로사대책위) 등의 제안 덕분이었다.


 

시린 마음을 안고 국회 앞에 선 박 씨는 기자회견 당일 발언 서두에 아들을 잃은 뒤의 심정을 짧게 말했다. 그리고 "쿠팡에는 아직도 덕준이의 친구들이 있다"며 쿠팡에 과로사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정부와 국회에 야간노동 규제법 제정을 촉구했다. 지난 1년, 포기하지 않고 수도 없이 외쳐온 말이었다.


 

지난 14일, 경북 경산 부부가 운영하는 목공소에서 박 씨를 만나 아들에 대한 기억과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 박미숙 씨. ⓒ프레시안(최형락)

쿠팡에서 일한 뒤 마라톤 선수처럼 말라가던 평범한 20대 청년, 장덕준


 

박 씨에게 덕준 씨는 그 세대가 즐기는 취미를 가진 "평범한 20대 청년"이자 "친구 같기도 하고 스승 같기도 한" 아들이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을 좋아했고 맛있는 음식과 세계맥주도 좋아했다. 어머니와는 산책을 다녔고 아버지와는 술친구로 어울렸다. 사회과학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던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뭔가를 배우고 새로 생각하는 일도 많았다.


덕준 씨가 대학을 졸업한 해는 코로나가 일어난 2019년이었다.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취업난에 맞닥뜨렸다. 이전에도 용돈을 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일을 하던 덕준 씨였다. 2019년 6월 쿠팡 칠곡물류센터로 출근을 시작했다.


 

이후 덕준 씨의 몸은 변해갔다. 운동을 좋아해 근육이 붙어있었는데 "마라톤 선수처럼" 말라갔다. 하루는 걱정이 된 가족들이 몸무게를 재보자고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75kg이던 몸무게가 60kg이 돼 있었다. 나중에는 무릎이 아파 보호대를 차고 출근했다.


 

덕준 씨가 쿠팡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날도 많았다. '중간관리자들이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 '새로 온 사람에게 직무교육을 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수월할 텐데 교육이 없다', '일을 잘 하는 형이 있는데 무기계약직 심사에 탈락했다'와 같은 말들이었다. 쿠팡 노동자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쿠팡에서 일하면서 양팔 저울을 비유로 많이 들었어요. 한쪽에 물건을 두면 한쪽은 내려간다. 누군가 즐겁고 행복하고 편리하다고 느낀다면 힘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런 아들에게 박 씨가 "바꾸려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 날도 있었다. "한 번 쳐서 안 된다. 계속 쳐야 한다"고도 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왔으니 쿠팡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 돌아보면 자신은 밖에 있었는데 너무 쉽게 생각했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덕준 씨는 말을 해도 바뀌는 게 없다며 "우리는 쿠팡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그만 두라'고 해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덕준 씨는 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2년을 채우고 무기계약직이 되면 그 때 선택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달 12일 세상을 떠났다.


 

"새벽 6시에 (덕준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욕실에서 샤워를 하거든요. 그런데 욕실이 너무 조용했어요. 피곤하면 욕실에서 자기도 하니까.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문을 두드렸는데도 소리가 안 났어요. 들어가 보니 (가슴에 손을 X자 모양으로 교차하고 상체를 수그리며) 이렇게 있는 거예요. 119를 불렀어요. 의사가 힘들 거라고 말을 하는데도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눈으로 보는데도 다시 일어날 것 같았어요."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박미숙 씨의 옆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산재 신청부터 전국 순회 투쟁, 청와대 청원까지...박미숙 씨의 지난 1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는데도 장례는 시작됐다. 그 때만 해도 산재나 과로사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장례 둘째 날, 새벽 장례식장에 온 진경호 당시 과로사대책위원장을 만나고서야 처음 의구심이 생겼다. 아들이 하던 이야기와 과로사한 택배노동자의 이야기가 너무 비슷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쿠팡 물류센터 동료들도 사망 당일 덕준 씨 몸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덕준이 일하던 7층에서 50~70명 정도가 일한다는데 35명 정도가 장례식장에 왔어요. 조의금을 보낸 친구들은 50명 가까이 됐어요. 온 친구들이 다 너무 심하게 울었어요. '그날 덕준이가 가슴 통증이 있다고 했다', '속이 메슥거린다고 했다'고도 했어요. (사망 당시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있던 게 생각나셨겠네요?) 네."


박 씨와 남편은 고심 끝에 아들의 시신을 부검하고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과로사대책위와 함께 덕준 씨에게 일어난 일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쿠팡은 자사 홈페이지 뉴스룸에서 '고인이 살인적인 근무에 시달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맞받았다.


 

지난 2월 9일 근로복지공단은 덕준 씨의 죽음은 산재라고 인정했다. 공단에 따르면, 야간근무자였던 덕준 씨는 발병 전 1주간 주 평균 62시간 10분, 발병 전 2주에서 12주간 주 평균 58시간 18분 일했다. 하루에 취급한 중량물의 무게는 470kg 이상이었다. 과중한 업무로 과다하게 사용된 근육은 급성으로 파괴됐고 결국 심근경색에 이르렀다.


공단의 산재 인정이 나온 날, 쿠팡은 자사 뉴스룸을 통해 유족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유족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과로사 방지대책 등과 관련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월 22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산재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기 전에도 쿠팡은 유족에게 연락했다. 청문회가 끝나자 접촉이 끊겼다.


이에 박 씨는 지난 5월 13일부터 한 달여간 전국 순회 투쟁을 벌였다. 남편과 함께 각지의 쿠팡 물류센터를 찾았다.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다시 한 번 유족과 대책위, 쿠팡간에 과로사 방지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으나 지난 7월 중단됐다. 


당시 을지로위는 유족의 야간 연속근로와 연장근로 제한 요구에 쿠팡이 '야간 연속근무 6일, 연장근무 2시간 30분'을 고수한 점이 협상 중단의 주요 이유라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주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까지 허용된다. 고용노동부 과로사 판정 노동시간 기준은 발병 12주 전 주 평균 60시간, 발병 4주 전 주 평균 64시간이다.


 

쿠팡은 유족과의 합의가 불발하는데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대책위가 가로막고 있어 유족과 직접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 씨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저는 이미 대책위에 합의 권한을 위임했어요. 쿠팡과 서너 번 직접 통화하면서도 그런 뜻을 분명히 밝혔고요. 7월에 협의할 때 합의문까지 만들어졌어요. 저는 성에 안 찼어요. 그런데 대책위가 저를 설득했어요."


대화가 중단된 뒤에도 박 씨는 쿠팡과의 싸움을 계속했다. 지난 9월에는 쿠팡이 제대로 된 재발방지대책을 내게 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 박미숙 씨가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목판 액자를 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바꾸려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 책임져야죠"


 

지금 박 씨의 가장 큰 바람은 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럴 수 없으니 아들과 같은 이유로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가 야간노동 규제법을 제정하고, 쿠팡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덕준이가 자기 몸을 던져서 보여줬어요. 야간노동은 위험해요. 지금 야간노동 규제법이 안 갖춰진다면 제2, 제3의 덕준이가 또 나올 거에요. 국회가 제발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을 대변한다는 자신들의 직무를 깊이 생각하고 충실히 하고 소홀히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쿠팡은 지금 한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이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걸맞게 노동자의 안전이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사람을 자꾸 갈아 넣는 게 아니라 정말 노동자를 존중하고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귀담아 들으면 좋겠어요."


 

긴 싸움이 힘들지는 않을까. 목표가 너무 멀어보이지는 않을까.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해도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지난 1년의 싸움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쿠팡을 이길 수 없어요"라는 아들의 말도 자꾸 떠올랐다. 하지만 박 씨의 생각은 단호했다.
 


"덕준이가 가고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이게(아들과 같은 이유로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제 일이 됐어요. 제가 한 '바꾸려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 책임져야죠. 나중에 엄마로서 덕준이를 만났을 때 '어머니 왜 그랬어요' 이런 말은 안 들어야죠.


 

'너무 잘 했어요.' 덕준이 말투가 있거든요. 그 말투로 툭 던지는 이 말을 듣고 싶어요. 그게 귓가에 자꾸 맴돌아요. 다른 부모가 똑같은 환경에서 또 자식을 잃는다면, 덕준이가 봤을 때 뭐라고 할까요. 제가 언제까지 (싸움을 계속하며) 갈지는 모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오늘 갈 수 있는 만큼은 갈 거예요."


 

얼마 전 박 씨 부부는 쿠팡에서 일하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조리원의 남편 최동범 씨와 함께 일생에 한 번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팔공산 갓바위를 찾았다. 가족을 잃은 뒤 걷는 일조차 줄어든 탓에 체력이 떨어져 셋 모두 숨을 몰아쉬면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같이 산에 올랐다. 


 

그곳에서 빌었을 소원은 올해 안에 이뤄질 수 있을까. 덕준 씨의 2주기는 온전한 애도의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01521284038004#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우리말 쉽고 바르게]⑨ 즐기며 배우는 한글놀이터… 시장골목서 만나는 '소년 세종'

 

기수정 문화팀 팀장입력 : 2021-10-15 00:00


창제 원리·변천사 궁금할 땐 용산 '국립 한글박물관'… 다양한 자료·전시물 체험세종대왕 일대기 벽화·동상 앞 인증사진·…'여주한글시장' 영릉과 함께 입소문
여주한글시장에 설치된 소년 세종의 동상 [사진=기수정 기자]

여주한글시장에 설치된 소년 세종의 동상 [사진=기수정 기자]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언어'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하다. 소통의 역할을 하는 언어가 파괴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사용으로 '새로운 표현'과 '간결한 표현'은 가능해졌을지 몰라도 이를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이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한글박물관' 전경[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한글박물관' 전경[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자주·애민·실용'이라는 창제 원리에 기반한 한글은 독창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언어로 손꼽힌다. 한글이 세계 최고의 문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런 이유에서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은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적으로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도 준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 문맹자를 없애기에 좋은 글자임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한글'의 우수성과 이를 만든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익히 알고 있지만 정작 한글을 주제로 한 여행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국내 곳곳에는 한글의 가치를 직접 깨달을 수 있는 여행지가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공간이 '국립 한글박물관'(서울 용산구)과 '여주한글시장'(경기 여주)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있지만 한국인보다 외국인과 학부모에게 더 인기가 높은 국립 한글박물관과 한글을 주제로 한 전통시장 여주 한글시장을 둘러보며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아 보고, 한글의 위대함을 가슴속에 품어 보기로 하자. 

◆독창적·과학적 문자 한글, 박물관에서 만나다···국립 한글박물관

세계의 언어학자들로부터 독창적·과학적 문자라는 찬사를 받는 한글. 날마다 듣고 쓰고 읽고 말하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편한 언어지만, 과연 한글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이는 얼마나 많을까.

한글 탄생 배경과 변천사, 한글 창제 원리, 한글이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지, 변천사와 그 원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글이 품은 가치는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국립 한글박물관'이 정답이다. 한글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이곳에서 알 수 있다. 

지난 2014년 10월 9일 문을 연 국립 한글박물관은 한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더 나아가 한글과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실험할 수 있도록 한 전시 공간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한글의 원리를 쉽게 체험할 수 있고, 한글을 익히고 싶은 외국인들은 한글을 배울 수 있다. 한글 문화의 놀이터인 셈이다. 

건물은 모음 글자의 배경이 된 하늘·사람·땅을 형상화했다. 총 3층으로 이뤄진 건물에는 전시실과 한글놀이터, 기념품점, 카페, 도서관이 마련됐다.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한글이 걸어온 길'을 주제로 한글 창제 원리를 알 수 있다. 또 이에 따라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한글이 국어로 정착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다양한 자료와 전시물을 통해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개편 공사로 내년 1월까지 운영을 하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1443년부터 우리 말과 글을 빼앗긴 일제강점기까지 차례로 표현한 설치물을 비롯해 정조가 직접 쓴 한글 편지첩, 금속제 한글 활자, 최초의 국어 교과서 등 귀한 자료가 많다. 전시를 관람하고 난 후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이 더욱 자랑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3층에는 기획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다. 한글과 세계 문자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기획해 전시하는 공간이다. 한글의 과거부터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이곳에는 유물뿐만 아니라 현대 작가의 작품까지 총망라돼 있다. 

전시실 맞은편에는 한글놀이터가 있다. 신나게 놀면서 한글을 배우는 공간인 만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한글과 놀이를 결합한 재미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한글이 만들어진 원리를 배우고 한글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같은 층에 자리한 한글배움터에서는 외국인이나 다문화 주민이 좀 더 쉽고 즐겁게 한글을 배워볼 수 있다.

해설을 들으면 훨씬 더 알차고, 쉽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지만 현재는 코로나19 예방 조치 차원에서 전시 해설이 잠정 중단됐다. 관람 인원도 90명(한글놀이터 33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여주 한글시장은 '한글'을 주제로 한 이색 여행지 중 한 곳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여주 한글시장은 '한글'을 주제로 한 이색 여행지 중 한 곳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글을 주제로 한 전통시장이 있다? 여주 한글시장

골목길이 주는 재미가 있다. 바로 발견의 재미다. 여주 한글시장도 그렇다. 이곳이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우리 고유의 언어 '한글'을 주제로 삼은 덕이다.

1980년대부터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해 '중앙로상점가'로 불리다 지난 2016년 문화 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선정되면서 여주한글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문화 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은 전통시장과 지역의 문화 관광을 연계하는 내용이다.

여주한글시장은 중앙로 상점가에 한글을 접목해 만들었다. 한글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단순했다.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사적 195호)이 여주에 있기 때문이었다.

여주한글시장으로 탈바꿈한 후 이곳 시장은 여주 여행 명소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곳곳에 한글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세종대왕을 소재로 한 벽화가 '한글시장'이라는 특색을 제대로 살렸고, 이곳을 찾는 이가 자연스레 늘었다. 

여주한글시장에 가면 다양한 한글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가게 간판도 대부분 한글로 이뤄졌다. 시장 입구 바닥에는 훈민정음이 새겨졌고, 하늘에 알록달록한 한글 작품이 걸렸다. 글자로 사용하던 한글을 미술 작품으로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다.

여주한글시장은 5개 구역으로 나뉜다. 여주시청 입구와 제일시장 입구다.

1구역은 여주시청 입구에서 시작하고, 4구역까지 차례로 이어진다. 중앙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골목이 연결되는데, 벽화를 보려면 2구역과 3구역 사이를 찾으면 된다.

이곳에서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표현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세종대왕의 탄생부터 즉위, 측우기 제작, 훈민정음 창제까지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재미있게 그려냈다. 

벽화를 좀 더 보고 싶다면 4구역 벽화골목으로 가면 된다. 열심히 사군자를 그리는 세종대왕 모습이 퍽 진지하다. 한글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지고, 세종의 모습에 또 한번 빠져든다. 그리고 길지 않은 골목에서 문득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자신도 발견하게 된다. 

생활 문화 전시관 '여주두지'도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두지는 쌀을 보관하는 뒤주를 한자로 표기한 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여주뒤주'일 것이다. 여주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보관하는 공간이 되겠다는 뜻에서 '여주두지'로 이름 붙였다.

이곳에서는 여주 14개 마을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와 채집한 물건을 만날 수 있다. 여주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와 물건이라 더 정겹다. 

이곳을 둘러본 뒤에는 소년 세종 동상으로 향한다. 소년 세종의 실제 모습도 이처럼 영특했으리라. 인자하면서도 똘똘해 보이는 소년 세종이 책을 들고 서서 웃는 모습을 마주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인증사진을 찍어댄다. 아직은 한글이 신기하기만 한 아이도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달라 조른다. 촬영장소 옆에 마련된 의자는 한글의 자음을 표현했다. 
 

여주한글시장 벽화골목에는 그려진 세종대왕의 일대기[사진=기수정 기자]
 

여주한글시장 벽화골목에는 그려진 세종대왕의 일대기[사진=기수정 기자]
 

한글'로 표현된 여주한글시장 조형물 [사진=기수정 기자]

'한글'로 표현된 여주한글시장 조형물 [사진=기수정 기자]

국립 한글박물관 전시실 내부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국립 한글박물관 전시실 내부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여주한글시장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여주한글시장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서울서 함께 촛불 든 여수 사고 현장실습생 친구들 “잊지 않고 우리가 바꿀게”

 허지영 기자 

16일 오후 6시 전남 여수의 선착장에서 위험한 잠수 업무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을 기리는 추모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제공 =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16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는 현장실습 중 위험한 잠수 업무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고 홍정운 군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소년들의 촛불이 밝혀졌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정운아, 잊지 않을게, 우리가 바꿀게’라는 이름으로 전국 청소년 추모제를 진행했다.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전남 여수에서 고인과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을 비롯해 경기, 인천, 충남, 울산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 5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생전 친구였던 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낭독한 뒤, 요트 업체 대표를 구속 수사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폐지 의견에 반대하며, 실습 사업장에 대한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난 6일 사고가 난 뒤 11일째 여수에서 추모행동을 하고 있는 고인의 절친 A(19) 군은 “정운이는 부모님께 폐 끼치기 싫어서 용돈도 직접 일을 해 부담하던 친구”라며 “요트 사장은 아직 불구속 입건 상태인데, 지난 주말에 사고가 난 배를 끌고 영업을 했다. 아무도 처벌하지 않는 이 사회에 분노한다”라고 말했다.

고인과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여수해양과학고 김준혁(19) 군은 “정운이는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친구”라며 “왜 우리 정운이가 이런 사고를 당해야 하나, 화가 나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16일 오후 6시 전남 여수의 선착장에서 위험한 잠수 업무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을 기리는 추모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제공 =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친구 이민주(19) 양은 “현장실습제도가 폐지된다면 특성화고의 존재 가치가 없다”라며 현장실습 폐지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이 양은 “장례식이 끝나고 슬퍼할 틈도 없이 추모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저희 생각과는 조금 다른 기사들을 보며 하루하루 힘들고 지쳤다”라면서도 “저희가 바라는 건 현장실습 폐지가 아닌, 안전한 현장실습장을 만들어 정운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잘못은 몇 곳의 취업처와 관리감독을 제대로 안 한 나라에게 있는데, 그 피해가 꿈을 위해 특성화고에 입학한 학생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라면서 “집회나 시위 등에 우리를 언급하며, 어른들의 요구를 위해 우리를 이용하지 말아달라”라고 당부했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 조합원이자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신은진 양은 “왜 네가 일하다 죽어야 해, 도대체 우리는 왜 살기 위해 들어간 일터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해”라며 “현장실습생으로 이 일을 끝까지 지겨볼 거고, 다시는 너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게”라고 편지를 전했다.

뉴스에서 사고를 접하고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 직접 연락을 취해 추모행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밝힌 미림여자정보과학고 졸업생 김이한 씨는 후배에 대한 죄책감과 비통함이 담긴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 씨는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늘 ‘기술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여기 나와 있는 정운 군의 친구들을 보니 부끄러워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못 할 것 같다. 이런 억울한 사망사고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나”라며 울먹였다.

16일 오후 6시 전남 여수의 선착장에서 위험한 잠수 업무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을 기리는 추모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제공 =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그러면서 “정운 님을 떠나게 만든 업주가 너무나 원망스럽고, 현장에 있던 모든 어른을 탓하고 싶지만 그들을 비난하는 데만 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그들을 비난하는 데에 집중하는 순간 이 사고는 몰상식한 업주의 잘못으로 생긴 불상사 정도로만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 어른 중 한 명이라도 미성년자는 잠수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정운 님의 잠수를 말렸더라면, 현장 실습생이 현장에서 부당한 요구를 당당히 거절하고 편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더라면 정운 군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정운 님의 사고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점점 고졸 근로자가 줄어가는 이 상황에서 이 사고는 남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에 나와 있는 우리는 모두 언제 어디서나 약자가 될 수 있다. 약자가 보호 받지 못하는 사회를 그냥 두지 말자. 용서하지 말고 끝까지 죄를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서현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유해 위험 작업 관련 직종 및 산업안전 고위험 직종 현장실습 금지 ▲운영 중인 현장실습 안전 문제 전수조사 ▲요트 사장 구속 및 강력 처벌 대책 마련 ▲현장실습 기업체 대한 관리·감독 대책 마련 ▲현장실습생 안전지킴이 플랫폼 제작 및 운영 ▲현장실습생 노동자성 인정 및 노동법 전면 적용 등의 내용이 담긴 실습생 사망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재차 정부에 촉구했다.

또 교육부 장관과의 양자토론회를 제안하며 “제2의 고 홍정운 님과 같은 죽음이 멈출 때까지 행동할 것이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현장실습이 이뤄질 때까지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위 대책안에 대한 온·오프라인 서명 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오는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전국특성화고등학생 대회를 개최해 안전한 실습 보장을 요구하는 추모행동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