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6일 일요일

[단독]여, 사참위법 개정안 강행…이낙연 “발목잡히지 않겠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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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대표, 세월호 유가족 만나
“야당과 협상에 발목 안 잡힐 것”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6일 국회 본청 앞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면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아 의견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6일 국회 본청 앞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면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아 의견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세월호 참사 등을 조사하는 사회적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참위법) 개정안을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오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했다. 쟁점이던 사참위 활동기간은 ‘1년 연장+6개월 추가 연장+3개월(보고서 작성)’로 정리됐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6일 국회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 “정기국회 내에 사참위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참위 활동은 오는 10일 종료된다. 이 때문에 4·16가족협의회 소속 유가족들은 지난 3일부터 국회 본청 앞에서 사참위법 개정을 촉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2014년 7월 세월호 특별법, 2017년 11월 사참위법 제정 촉구에 이은 3번째 국회 농성이다.

이 대표는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야당과의 협상에 발목 잡히지 않겠다. 법안 통과 후에도 사참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책임지겠다”고 말했다고 민주당 관계자가 전했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사참위법 개정안을 처리키로 입장을 정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처리와 보폭을 맞출 예정이다. 7일 정무위원회, 8~9일 법제사법위원회 처리 수순이 유력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야당과 협의를 수차례 시도해왔으나 일절 응하지 않아 (강행 처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사참위 활동기간과 관련해 민주당은 1년 연장에 6개월 추가 연장, 보고서 작성 기간 3개월 등 ‘1+6+3’ 안을 추진키로 했다. 당초 유가족들은 ‘1+6+6(최장 2년)’ 안을 요구했고 민주당은 ‘1+4’ 안으로 맞섰으나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양측 요구를 조율해 접점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참위 내 ‘가습기살균제 소위’는 존치하고, 세월호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는 사참위 활동기간 동안 시효 진행을 정지하기로 했다.

김용민·고민정·이탄희 등 민주당 30~40대 초선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참위법을 조속히 처리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당 지도부는) 국민의힘이 협상을 빌미로 시간을 끌더라도 속지 말고 과감히 결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070600005&code=910402#csidx5cebbf8df21676186f49b49eda8e6c8 

[2020 올해의 인물] 정은경은 도망가지 않는다

 K-방역의 상징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그는 무엇으로 신뢰를 획득했는가

20.12.07 07:12l최종 업데이트 20.12.07 07:23l.글: 박정훈(twentyrock)사진: 이희훈(lhh)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 "보람이에요. 국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기쁜 일이고, 작더라도 하나씩 사회가 합리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오마이뉴스 선정 2020년 올해의 인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 이희훈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물었다. 지난 26년 동안 공공의료에 헌신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고. 지극히 '정은경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보람이에요. 국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기쁜 일이고, 작더라도 하나씩 사회가 합리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2020년 '올해의 인물'로 누구를 선정할 것인가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편집국 의견을 취합했을 때, 쉽게 한 인물로 모아졌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K-방역의 상징이다. 길고 지독한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방역 사령관'인 그는 국민들 앞에서 150여 회 브리핑을 진행하는 동안 검은 머리가 흰 머리가 되어갔다.

선정은 쉬웠지만, 그 이후가 어려웠다. 그는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한 번도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신청했지만, 역시나 무산됐다. 그래도 올해의 인물인데, 소감이라도 들어야 할 것 아닌가. 지난 11월 16일 정 청장의 정례브리핑이 끝났을 때 가까이 다가갔다.

- <오마이뉴스>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혔습니다.
"감사하고,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 대응하는 데 굉장히 많은 분들이 수고를 하셨잖아요. 정부 다른 부처도 그렇고, 지자체 공무원들도 그렇고, 의료인들도 그렇고. 많은 분들 다 같이 고생하셨는데, 그것을 개인이 받는 것 같은 약간 미안함... 좀 과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질병관리청장으로서의 목표가 있다면요?
"질병관리청이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국민 건강 지킴이 기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과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국민들 건강을 어떻게 지킬 건가, 체계를 잘 갖추는게 청장으로서 가장 큰 숙제이고 해야 될 일인 것 같습니다. 질병관리청이 신설이 됐으니까 그것에 맞게끔 조직을 잘 정비하고, 전문 인력들을 많이 확충해서 건강 지킴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선 채로 즉석으로 진행한 문답은 여기까지가 최대치였다. 그에게서 직접 듣지 못한 '인간 정은경'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의 스승, 동료, 선후배 등 주변인물들을 만났다. 질문의 주제는 '정은경은 무엇으로 신뢰를 획득했는가'였다. 이 기사는 그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다.
 
ⓒ 이희훈
 
① 표리동(表裏同)

"그 사람은 보이는 그대로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정 청장의 지도교수였던 문옥륜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평이다. 27년 전부터 정 청장을 지켜봤던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성품이 너무 수더분했다. 시키면 아주 빼어나고 깔끔하게 모든 걸 잘 정리했던 사람이다. 말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뚝심이 있었다. 자기 전문 베이스가 있으니까,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실력파였다. 권모술수,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상에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사람은 많지만, '표리동(表裏同)'한 사람은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상대방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저 사람은 나를 속이지 않는구나.' 그 자리에 신뢰가 싹튼다. 이런 현상이 극적으로 나타났던 상황이 올해 초다. 코로나19가 터지며 전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이어졌던 정은경 청장의 브리핑은 국민들의 마음에 신뢰를 심어줬다.

그는 정치적 수사는 생략하고, 항상 동일한 방역수칙의 준수를 반복적으로 요청한다. 기자들의 수많은 질문에 수치까지 제시하며 정확하게 답변하고, 공격적인 질문에도 감정의 동요 없이 침착하게 대응한다. 그의 말에는 낙관도, 비관도 없다. 오로지 엄중한 현실 인식만이 있을 뿐.
 
 브리핑 중인 질병관리청 정은경 청장
▲ "그 사람은 보이는 그대로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지도교수였던 문옥륜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평이다. 겉과 속이 같다는 평은 굉장한 칭찬이다. 그 때문일까. 그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 이희훈

② 정은경은 도망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에게도 순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 청장 공직생활의 가장 큰 위기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였다. 당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현장점검 반장으로 일했던 정 청장에게 감사원은 '방역 실패'를 이유로 정직을 권고했다. 과거 업무 성과가 반영돼 인사혁신처의 최종 징계 수위는 다소 낮춰져 감봉 1개월이었다.

억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체 다른 말이 없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이이었던 정기석 한림대 의대 교수는 "징계에 화가 나서 공직을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는데, 정 청장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라고 회고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정 청장과 함께 일했던 A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다른 예방의학 출신도 메르스 사태로 견책 징계를 받았는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징계 수위가 견책인데도, 내가 왜 징계를 받아야 하느냐고,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 하나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데 하면서... 징계를 받게 되면 승진에도 영향을 받고, 연수 가는 것도 영향을 받고... 그 분은 참을 수가 없었던 거다. 나중에 결국 공직을 그만두고 대학으로 갔다."

하지만 정 청장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때 정 청장이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A씨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위기가 왔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코로나19 3차 유행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 정 청장 본인에 대한 외부 공격도 나온다. 지난 11월 23일(월) <조선일보>는 2면에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겨울이 예고된 상황인데 '코로나 차르(황제)'의 역할을 해야 할 방역 사령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어느 순간부터... 할말 않는 한국 방역사령탑>이었고, 이 기사 바로 밑에는 <살해 위협에도... 할말 하는 미국 방역사령탑>이라는 기사를 배치해 대비시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직 중요한 건 방역. 정 청장은 바로 이날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 나와 "짧은 기간 안에 유행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면서 "첫째는 사람 간 접촉을 줄여야 합니다, 둘째는 마스크 벗는 것을 최소화해주시길 바랍니다, 셋째는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위기가 와도, 누군가 그 위기를 증폭시켜도, 그는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한다.

③ 정은경의 직원들도 도망가지 않는다

혹시 이런 상사 밑에서 일한다면 숨막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오히려 정 반대 대답이 돌아왔다. "간부들이 정 청장 밑에서 떠나기 싫어한다"는 것. 위에서 소개했던 A씨는 그 이유에 대해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올해 초 대구 사태 때 일이다. 전날 청장이 와서 무슨 지시를 했다. 비상상황이잖아. 당연히 다음날 간부회의 때, 되면 되고 안되면 안되고, 보고가 올라와야 하잖아. 그런데 없었다. 당연히 화를 내야 밑에 사람도 다시는 그런 실수를 안 할텐데... 당연히 깨질 타이밍인데... 깨지 않더라. 화를 안내요. 오히려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더라."

화를 내야 할 타이밍에 화를 안낸다? 그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

"난 이렇게 본다. 메르스는 금방 끝났다. 하지만 이건(코로나19) 언제 끝날지 모른다. 사실 다 지쳐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수장이 막 화를 내고 그러면 밑에 사람들은 다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간부들 분위기는, '저 사람 밑에서 떠나기 싫다'거든. 같이 일하면 편하다. 본인이 가장 많이 알고, 결정 내려주고, 화내지 않고, 기다려줄 줄도 알고. 베스트 상사다."

만약 코로나19 방역이 단기전이었다면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직적 리더십'을 통한 강력하고 일사불란한 대응이 더 적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 방역은 다르다. 계속 같이 할 수 있느냐, 계속 같이 하고 싶은가라는, '지속성과 자발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정은경의 리더십은 이에 최적화되어 있다.

외부에서 아무리 '영웅' 호칭을 들어도 내부에서 '갑질 상사'면 그와 오래 하기는 힘들다. 정 청장은 오히려 반대로 보인다. 브리핑에서는 웃음기 없이 건조한 팩트를 나열하지만, 안에서는 웃음도 많고 다정한 면모가 있다는 것이 복수의 공통된 이야기다. 질병관리청에서 만난 청소노동자는 "지나다니면서 인사를 하면, 저희보다 더 겸손하고 다소곳하게 인사를 한다"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힘들고 지친 거 표현도 안하고, 항상 밝고 점잖고"라고 말했다.

④ 모든 것이 적혀있는 노트
 
혹시 사람이 너무 무른 거 아닐까? 그래서 밑에 직원들에게 휘둘리는 거 아닐까? 그런 상상을 배척할 수 있는 증거가 '정은경의 노트'다. 정기석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정 청장의 장점으로 세심함, 꼼꼼함, 근면함 세가지를 꼽으며 노트의 존재를 언급했다. A씨 역시 노트 이야기를 꺼내며 "그래서 (정 청장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 청장은 보고를 받으면 노트에 다 적는다. 그런 노트가 몇 권이 되는 걸로 안다. 그 노트에 지시해야 될 사항, 지시한 사항, 오늘 처리해야 할 사항이 다 적혀있다. 보고할 때 예전 내용을 다 찾아본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한된다. 물론 그걸 근거로 따지는 건 못 봤다. 하지만 적는 거 자체로 부담이다. 엄청 성실하게 적는다."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추가하는 사람의 실력은 항상 최고일 수밖에 없다. 정기석 교수는 정 청장이 이전에 감염병 메뉴얼 개정 작업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보건복지부 혈액관리위원회 수혈부작용소위원회 위원)는 정 청장이 보건복지부 혈액장기팀장(2005년 10월~2007년 2월)일 때 같이 일하며 겪었던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당시는 수혈을 통한 에이즈와 간염 감염 사례가 드러나는 등 부실한 혈액 관리 시스템이 문제로 떠오른 직후였다.

"그 때 정 청장이 혈액 관련 시스템을 다 바꿔서 이후 수혈을 통한 감염이 급감할 수 있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수혈감염 조사 프로세스 도입, 배상 지침 마련, C형 간염 등에 핵상증폭검사 도입, 전산시스템을 통한 헌혈 부적격자 판단, 헌혈부터 수혈까지의 자동화 등이다."

이런 발군의 실력의 배경에는 꾸준하고 꼼꼼한 정 청장의 노트가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확진환자 3명 추가 등과 관련해 브리핑하며 여러가지 표정을 짓고 있다. 정 본부장은 이날 국내 확진환자는 3명이 추가돼 총 15명이다.15명 모두 상태는 안정적이며, 사망설이 돌았던 4번 환자도 안정적인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브리핑에서 정치적 수사는 생략하고, 항상 동일한 방역수칙의 준수를 반복적으로 요청한다. 기자들의 수많은 질문에 수치까지 제시하며 정확하게 답변하고, 공격적인 질문에도 감정의 동요 없이 침착하게 대응한다. 그의 말에는 낙관도, 비관도 없다. 오로지 엄중한 현실 인식만이 있을 뿐. 사진은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올해 2월 초 브리핑을 하고있는 정 청장(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의 여러 모습이다. 이때는 머리가 많이 까맸다. ⓒ 연합뉴스
 
⑤ 서울대 의대 문예부

몇몇 사람들은 정 청장이 '서울대 운동권'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같은 83학번 동기인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협의의 의미로 볼 때는 애매하다"면서 "다만, 시대의 흐름에 대해 진보적이고 열려있는 마인드로서 항상 뒤에서 지원하는 성품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의대 시절 정 청장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인 단어가 '문예부'다. 80학번으로 문예부 선배였던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공동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문예부는 서울 의대에서 몇 개 없는 저항 서클이었다. 병원 내에서 사회참여적 시가 포함된 시화전을 열고, 브레히트와 김남주의 시, 루카치 미학을 읽었다. 본과 3학년 때는 문예부 자체로 판자촌 빈민 진료를 했다."

정 청장은 이런 문예부에서 차장을 했다. 이후 그의 행보를 보면, 당시 진보적인 의사들이 많이 선택했던 가정의학과를 선택했고, 대학병원에 남지 않고 첫 근무지로 보건소를 선택했다. 공공의료의 확대를 추구하는 인의협에 가입, 1992년에는 사무국 차장까지 지냈다. 그해 6월에는 '여의사 근무실태 및 성차별에 대한 인식도 조사결과'를 발표해 의료계 내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행보로 볼 때 이거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정 청장은 학생 때부터 공공의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 우석균 대표는 "앞에 나서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그냥 평범한 의대생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민중 지향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정 청장이 징계에도, 공격에도, 지치는 장기전에도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⑥ 부모의 죽음을 알리지 않다

정은경 청장의 박사논문을 지도한 안윤옥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정 청장이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질문에 두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나는 그에게 화를 냈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논문에 대한 기억이었다. 첫번째는 정 청장이 보건복지부 과장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주위 사람한테 연락을 안했다. 나 뿐 아니라 동문들 모두에게. 당시에는 부고를 안하면 사람 취급도 안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중에 소식을 듣고 아주 그냥 전화를 해서 왜 알리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그랬더니 보건복지부 과장 이상의 상가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주변에서 봐왔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더라. 직위가 있으면 누군가에게는 로비할 기회가 되지 않은가. 특정인에게만 따로 알릴 수도 없어서 일체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는 거다. 굉장히 혼내려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아, 공직자로서 정신이 똑바로 박혔구나..."

두번째 기억은 '너무 오래 걸린 논문' 이야기다.

"그 사람이 입학하고 학위 논문을 10년 걸려 썼다. 오래 걸린 이유 중 하나는,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거를 했을 때만 논문으로 제출하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논문을 쓴다는 게, 술렁술렁 해서 학위 따는 걸로 여겨지는 걸 싫어했다. 내가 박사를 열아홉 명을 지도했는데, 마지막 열 아홉 번째 제자다. 들어온 건 네번째였던 것 같은데."

이런 에피소드는 정 청장이 공직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에게 공직은 최소한 개인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가장 마지막에 일상을 회복할 사람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 길고 지독한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방역 사령관'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국민들 앞에서 150여회 브리핑을 진행하는 동안 검은 머리가 흰 머리가 되어갔다. ⓒ 이희훈
 
지난 주 초 정 청장의 부상 소식이 전해졌다.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자택에서 넘어져 어깨를 다쳤으며, 병원에 입원했지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병가중인 정 청장은 이번주 초, 이르면 화요일에 복귀할 예정이다.

정 청장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상이 그리운 한해였다"라고 말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정 청장으로서는 지난 1년 중 처음으로 휴식을 가진 것일지 모른다. 정 청장은 소위 '워크홀릭'이다. 과장 때부터 늦게까지 일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코로나19 상황이 발생했으니, 한동안 잠시 확신자 발생이 주춤했을 때도 오전 7시경에 출근해서 자정이 되어야 퇴근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겨울 초입, 상황이 심상치 않다. 그래도 국민들은 별로 의심하지 않는다. 정 청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방역 전선에 서리라는 것을. 그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도망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여전히 가장 늦게 퇴근할 것이고, 가장 일찍 출근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이고, 그가 가장 마지막에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되찾을 사람이라는 것을.

방역은 백신이나 치료제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방역은 신뢰로 하는 것이다. 
정은경은 그 신뢰를 획득했다. ◆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 "감사하고,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 대응하는 데 굉장히 많은 분들이 수고를 하셨잖아요. 정부 다른 부처도 그렇고, 지자체 공무원들도 그렇고, 의료인들도 그렇고. 많은 분들 다 같이 고생하셨는데, 그것을 개인이 받는 것 같은 약간 미안함... 좀 과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인사다. ⓒ 이희훈
 

우리 영토에 출입허가 내주는 점령군 사령관

 

[개벽예감 422] 우리 영토에 출입허가 내주는 점령군 사령관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12/0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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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지상작전사령관의 무단출입사건

2. 점령군 사령관의 출입허가

3. 미국이 조작해놓은 불법군사조직

4. 유엔안보리가 아닌 다른 통로 

5. 조선을 마지막 선택으로 이끌어가는 정세

 

 

1. 지상작전사령관의 무단출입사건

 

“우리는 지금까지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들을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

 

위의 인용문은 2019년 12월 3일 조선외무성 미국담당부상이 발표한 담화의 일부다. 그가 담화에서 말한 ‘크리스마스선물’은, 미국이 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전향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조선은 2019년 12월 25일에 대미압박공세를 가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조선의 대미압박공세는 곧 군사행동을 의미하므로, 미국군 수뇌부는 조선인민군이 2019년 12월 25일에 군사작전을 단행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다. 미국의 신경은 곤두섰다. 

 

그래서 미국은 2019년 12월 25일 새벽 각종 정찰기를 한꺼번에 5대나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동시켜 전례 없는 대규모 정찰작전을 벌였다. 덩달아 한국군도 이지스구축함을 동해에 출동시켰고, 미사일조기경보레이더를 켜놓고 대북감시에 집중했으며, 항공통제기도 띄웠다. 트럼프 대통령도 침묵하지 않았다. 2019년 12월 24일 백악관 출입기자가 위의 인용문에 나온 ‘크리스마스선물’에 관해 질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성공적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것은 만일 조선인민군이 미국을 위협하는 군사작전을 실행하면, 아주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엄포발언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군이 전개한 대규모 정찰작전과 미국 대통령이 꺼내놓은 엄포발언은 그들이 상황을 얼마나 오판했는지를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소동에 불과했다. 만일 조선인민군이 미국을 위협하는 군사작전을 정말로 실행하려고 했다면, 작전날짜를 예고하지 않고, 작전준비징후도 노출하지 않고 불시에 실행했을 것인데, 상황을 오판한 미국은 강력대응이요 뭐요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선물’을 예고한 조선외무성 미국담당부상의 발언을 듣고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긴장하고 있었던 2019년 12월 5일 케네스 윌스백(Kenneth S. Wilsbach) 당시 주한미국군 부사령관은 남영신 당시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과 함께 한국군 3사단 최전방부대가 주둔하는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시찰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조국강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비무장지대의 어느 한 구간을촬영한 사진이다. 나무와 풀이 자라난 우리 영토 위에 군사분계선 철책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조국강토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참을 수 없는 비극과 불행인데, 주한미국군이 조국강토를 갈라놓은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 관할하고 있으니 비극과 불행은 더 가증되었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이 비무장지대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주한미국군은 주둔군이 아니라점령군이라는 실상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한미국군 부사령관과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이 함께 전선을 시찰한 직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2020년 1월 29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당시 로벗 에이브럼스(Robert B. Abrams)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이 비무장지대 출입허가를 받지 않고 드나들었다고 지적하면서, 비무장지대 출입규정을 위반했다는 통보를 한국군 합참본부에 보냈다고 한다. 한국군 군인 또는 남측 주민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들어가거나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북측에 가려면 반드시 48시간 전에 주한미국군 사령부에 출입허가를 신청하고, 허가를 받게 되어 있다.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은 자기 혼자 비무장지대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부사령관과 함께 들어갔으므로 당연히 주한미국군 사령관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주한미국군 사령부의 판단은 달랐다. 주한미국군 사령부의 판단에 따르면,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과 주한미국군 부사령관이 함께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는 경우, 주한미국군 부사령관은 출입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은 출입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2월 3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에이브럼스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김종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게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의 비무장지대 무단출입사건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의 전선시찰에 조사권을 발동한 것이다. 주한미국군 사령관이 조사권을 발동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한국군 수뇌부가 자기 허가를 받지 않고 비무장지대를 무단으로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한국군 합참본부에 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보다 상위에 있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비무장지대 감시초소를 방문하려고 해도, 48시간 전에 주한미국군 사령관에게 출입허가를 신청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을 살펴보면,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한국군 합참의장보다 상위에 있는 최고위급 사령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사건을 살펴보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은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이 관할하는 점령지역이며, 따라서 한국 정부의 행정권은 비무장지대에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주둔군 사령관이 아니라 점령군 사령관이며, 주한미국군은 주둔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는 실상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군 합참의장이 주한미국군 사령관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비무장지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한국군은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쓴 점령군 사령관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실상이 드러난다. 점령군 사령관의 통제를 받는 군대를 허수아비군대라고 부른다. 

 

 

2. 점령군 사령관의 출입허가

 

2019년 10월 23일 유엔사령부는 비무장지대 출입문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 유엔사령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약 2,200건에 이르는 비무장지대 출입허가신청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서 93% 이상을 허가해주었다고 한다. 미국이 유엔군 부사령관 자리에 앉혀놓은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중장 스투어트 메이어(Stuart C. Mayer)는 2020년 11월 24일 발표문에서 유엔사령부가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약 3,800건에 이르는 비무장지대 출입허가신청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서 98%를 허가해주었다고 밝혔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비무장지대를 드나들기 위해 유엔사령부에 출입허가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을까? 그 의문을 풀려면, 많은 관광객들이 판문점 남측 구역에 가보려고 주한미국군 사령관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지금은 폭파되어 없어졌지만 개성에 있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자주 드나들던 남측 인원들도 주한미국군 사령관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사실을 아는 순간, 의문이 풀리는 게 아니라, 자기 땅인데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고, 점령군 사령관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하는 굴욕적인 현실에 분노하게 된다. 

 

그렇다면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쓴 점령군 사령관은 비무장지대 출입허가신청 가운데서 어떤 것을 끝내 허가하지 않았을까? 불허사례는 다음과 같다.

 

1) 2018년 8월 23일 통일부는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를 개성을 거쳐 신의주까지 운행하면서 북측 철도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점령군 사령관은 열차의 비무장지대 통과를 허가하지 않았다. 

 

2) 2019년 6월 12일부터 13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진행된 한독통일자문위원회에 참석한 도이췰란드 신련방주 특임관 겸 경제-에너지부 차관을 대표로 하는 도이췰란드 정부대표단이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 감시초소를 방문하려고 했을 때, 정경두 당시 국방장관은 주한미국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지만,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도이췰란드 정부대표단의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3) 2019년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된 제100차 전국체전을 위해 서울시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성화를 채취해 서울까지 봉송하려고 출입허가를 신청했지만,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허가하지 않았다.  

 

4) 2019년 8월 9일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경의선 도라산역에서 진행된 ‘파주 DMZ 평화의 길 개방행사’에 참석하는 길에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려고 출입허가를 신청했는데,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통일부 장관에게만 허가를 내주고 그와 동행하는 취재진에게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통일부 장관은 대성동 마을에 가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5) 이재강 경기도 평화 부지사는 지난 2016년에 폐쇄된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고 남북교류를 재개하기 위해 도라전망대에 사무실을 설치하려고 했다. (도라전망대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리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있고, 한국군 1사단이 그 지역에 주둔한다.) 경기도 평화 부지사는 2020년 10월 중순부터 한국군 1사단과 도라전망대에 사무실을 설치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해왔고, 마침내 합의를 봐서 2020년 11월 9일 도라전망대 사무실로 집기를 반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군 1사단이 유엔사령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집기반입을 중지시켰다. 하는 수 없이 경기도 평화 부지사와 직원들은 비무장지대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임진각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위에 열거한 불허사례들이 말해주는 것은, 유엔기를 들고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주한미국군이 그 지역에서 행사하는 배타적인 관할권이 우리 영토에 대한 주권을 난폭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도가 우리 섬인 것처럼, 비무장지대도 우리 땅이다. 독도에 대한 주권은 한국 정부가 행사하고 있지만,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주권은 미국이 틀어쥐고 있다. 주한미국군이 주둔하는 군사기지들이 미국의 관할지로 넘어간 것도 치욕적인데, 주한미국군이 주둔하지도 않는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까지 미국의 관할지로 넘어갔으니 더 치욕적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이재강 경기도 평화 부지사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통일대교 남측 입구에서 개성공단 정상화를 요구하며 1인시위를 하는 장면이다. 그는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고 남북교류를 재개하기 위해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도라전망대에 사무실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유엔사령부가 허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그와 직원들은 비무장지대에서 멀리 남쪽으로 떨어진 임진각에 천막을 치고 그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정상화될 수 없고, 남북교류도 재개될 수 없다.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것은,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치욕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 관할하는 것은 조국강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분단체제를 영구히 유지하려는 미국의 분할점령정책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와 다르게, 독도문제는 조국강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분단체제와 무관하다.   

 

이처럼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훼손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 미국의 비무장지대점령에 대해서는 그저 무덤덤하다. 사람들은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배타적인 관할권을 행사하는 치욕스런 현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당연한 일처럼 여기고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지독한 최면상태에 빠져 자주의식이 마비되어버린 것이 더 참을 수 없는 비극과 불행이다. 사람들이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에 분노하는 것처럼 미국의 비무장지대점령에 분노할 때, 66년 동안 지속되어오는 ‘한미동맹’의 최면상태에서 깨어나 자주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에 규정된 자기의 고유한 권한을 행사한다고 하면서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해왔다. 정전협정 제1조 8항에는 이렇게 명기되었다. “비무장지대 내의 어떠한 군인이나 사민이나 그가 들어가려고 요구하는 지역의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느 일방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도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은 바로 이 정전협정 조항을 틀어쥐고 사상 최악의 사태를 일으켰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극단적인 모순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다. 우리 민족의 삶을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은 정전체제 한복판에 바로 그 극단적 모순이 놓여있다.  

 

현실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주권을 주한미국군 사령관에게서 되찾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고 싶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그는 2019년 9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9기 출범식 연설에서 “국제평화지대로 변모하는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을 국제경제특구로 만들어 본격적인 평화경제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드는 일은 북한의 행동에 화답하는 행동으로 신뢰를 쌓는 일이며 비무장지대 내의 활동에 국제사회가 참여함으로써 남북 상호 간의 안전을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잠꼬대 같은 소리는 2020년에도 계속 들려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월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에서 제시한 남북교류협력사업 가운데는 남북철도-도로를 연결하는 사업, 남북접경지역에서 상호협력하는 사업, 비무장지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이 있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 사령부가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극단적 모순을 그대로 두고, 남북철도-도로를 연결하고, 남북접경지역에서 상호협력을 추진하고 싶다고 했으니,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리가 또 어디에 있을까! 미국의 점령지역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싶다는 말은 너무도 창피한 소리여서 더 이상 거론하기도 힘들다.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극단적인 모순을 애써 외면하면서,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고 싶다는 해괴한 발상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표현만 약간 바뀐 채 계속 제기되어왔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서명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는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었다. 또한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함께 서명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는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었다.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남측 정부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비현실적인 제안을 꺼내놓았지만, 북측 정부는 모처럼 어렵사리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원만히 이끌어내려는 생각에서 그런 비현실적인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재인 정부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고,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진전시키면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정치선전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계속하지만, 미국이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 사령부를 앞세워 비무장지대를 점령하고 있는 한, 그런 선전은 외국군대의 영토점령으로 주권을 훼손당한 현실을 은폐하는 허위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허위선전을 늘어놓지 말아야 하며,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 사령관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의 관할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모순을 세상에 폭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혹시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의 주권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친미예속정부는 언제나 백악관의 비위나 맞춰주려고 애쓰기 때문에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되찾아 영토주권을 확립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그런 친미예속정부가 남북정치협상을 100년 동안 계속한다고 해도, 성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3. 미국이 조작해놓은 불법군사조직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미국이 점령한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되찾아 주권을 확립할 수 있을까? 그 방도를 모색하려면, 우선 유엔군과 유엔사령부가 출현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1950년 7월 7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는 상임리사국인 소련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된 회의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성원국들의 모든 군대를 미국원동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연합사령부(Unified Command)에 배속시키고, 연합사령부가 유엔기를 사용하게 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것이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안 제84호다. 

 

당시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인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국가를 참칭하면서 중국의 유엔대표권을 행사하는 부조리에 항의하여 1950년 1월 13일부터 유엔안보리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소련이 불참하는 기회를 틈탄 미국은 막후공작을 벌여 소련에게 불리한 유엔안보리 결의안들을 계속 조작해냈다. 유엔헌장 제27조에는 유엔안보리 결정이 5개 상임리사국 전체의 찬성과 7개 이상 비상임리사국의 찬성으로 채택된다고 규정되었으므로, 상임리사국인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 미국의 막후공작에 의해 채택된 모든 결의안은 원천무효다. 이런 법리적 해석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성원국들의 모든 군대를 미국원동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연합사령부에 배속시키고, 그 연합사령부가 유엔기를 사용하게 한다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안 제84호는 원천무효다. 

 

당시 유엔을 장악한 미국은 전횡을 부리며 국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1950년 7월 25일 소련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된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은 6.25전쟁 지휘부인 연합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 보고서에서 미국은 연합사령부라는 명칭을 제멋대로 유엔사령부라고 바꿔놓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 유엔사령부는 유엔안보리 결정에 의해 성립된 합법군사조직이 아니라, 미국의 자의적인 명칭변경으로 조작된 불법군사조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엔사령부가 미국이 조작해놓은 불법군사조직이므로, 그 휘하에 배속된 유엔군도 유엔헌장을 짓밟고 유엔의 이름을 더럽힌 군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유엔군과 유엔평화유지군을 비교하면 그런 사실이 자명해진다. 

 

1)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평화작전부(UN Department of Peace Operations)와 유엔작전지원부(UN Department of Operational Support)의 통제 밑에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전선에 파견되어 확전을 막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활동한다. 그런데 유엔군은 한반도전선에서 확전을 막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활동하기는커녕 정반대로 남북내전에 불법적으로 개입하여 내전을 국제전으로 확전시켰고, 북위 38도선을 넘어 조선을 침공했으며, 야만적인 무차별폭격으로 38도선 이북의 도시들과 산업시설 전반을 파괴하고 민간인을 대량살상했으며,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에 핵폭탄을 투하하려고 광분했다. 이것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유죄판결조건을 충족시키는 침략범죄와 전쟁범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1월 11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제정했고, 박근혜 정부는 2013년 7월 26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제정했고, 문재인 정부는 2020년 3월 24일 ‘유엔참전용사의 명예선양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친미예속정권의 경거망동이 아닌가!    

 

2) 자국군대를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파병했던 친미국가들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연락장교만 남겨두고 차례로 철군했고, 1976년 7월 26일 타이군이 마지막으로 철수한 이후 미국군만 남았다. 그러므로 1976년 이후 유엔군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유엔사령부는 군대 없는 명목사령부로 전락했다. 

 

3) 유엔평화유지군 지휘권은 유엔 부사무총장이 행사한다. 그런데 유엔군 지휘권은 6.25전쟁 중에는 미국원동군 총사령관이 행사했었고,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1976년까지는 주한미국군 사령관이 행사했다. 유엔군의 마지막 일원이었던 타이군이 철수한 1976년 이후 유엔군은 없어지고 미국군만 남았는데도,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여전히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눌러쓰고 유엔군 사령관으로 행세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4) 유엔평화유지군을 유지하는 재정은 유엔안보리 상임리사국 5개국과 몇몇 다른 유엔성원국들이 분담한다. 유엔군은 1976년 이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엔사령부를 유지하는 재정만 필요한데, 유엔사령부를 유지하는 재정은 주한미국군 유지비에 포함된다. 이런 사정은 유엔사령부가 유엔과 무관하고,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6.25전쟁이 치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1950년 7월 14일 일본도꾜에 있는 미국원동군 총사령부 청사 옥상에서 진행된 유엔기 전달식 장면이다. 당시 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 리는 6.25전쟁에 파병한 유엔성원국 군대들이 유엔기를 사용하게 허락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에 따라 콜린스 당시 미국 육군참모총장에게 유엔기를 위탁하여 미국원동군 총사령부에 전달하게 하였다. 콜린스는 트리그브 리로부터 건네받은 유엔기를 도꾜로 가지고 가서 미국원동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전달했다. 위의 사진은 트리그브 리의 특사인 앨프레드 카친 대령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된 유엔기 전달식에서 콜린스가 맥아더에게 유엔기를 넘겨주는 장면이다. 유엔기를 건네받은 유엔군은 남북내전에 불법적으로 개입해 내전을 국제전으로 확전시켰으며, 북위 38도선을 넘어 조선을 침공했으며, 38도선이북지역의 도시들과 산업시설들을 야만적인 무차별폭격으로 파괴하고 민간인들을 대량살상했으며,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에 핵공격을 가하려고 광분했다. 유엔군은 그런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 유엔헌장을 짓밟고, 유엔의 이름을 더럽힌 침략군대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유엔사령부가 미국의 전횡에 의해 조작된 불법군사조직이며, 유엔군은 미국군이 자기의 침략적 정체를 유엔 깃발로 은폐하는 데 이용당했음을 보여준다. 1950년 당시 유엔안보리는 미국의 거수기로 전락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유엔사령부를 조작해놓은 미국의 전횡을 뻔히 보면서도 그냥 넘어갔으며, 침략군대에 유엔기를 들려주는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저질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정세가 바뀌었다. 유엔에서 미국의 전횡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 유엔성원국들은 유엔 역사에서 최악의 실책으로 기록된 미국의 유엔사령부 조작사건을 방치한 유엔의 직무유기에 관심을 돌렸다. 그리하여 1975년 11월 18일에 진행된 유엔총회 제30차 회의에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결의안이 동시에 채택되었다. 미국이 발의한 결의안 제3390A호는 정전체제를 관리할 수 있는 다른 장치가 마련되면 1976년 1월 1일까지 유엔사령부를 해체할 수 있다는 조건부 해체안이었고, 다른 유엔성원국들이 발의한 결의안 제3390B호는 유엔사령부를 무조건, 즉시 해체해야 한다는 무조건 해체안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다른 장치를 만들지 않았고, 다른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구실을 내세워 유엔사령부 해체결의안을 이행하지 않았다. 

 

주목되는 것은, 1975년 유엔총회 제30차 회의에서 채택된 유엔사령부 해체결의안은 강제력이 없는 권고안이라는 사실이다.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려면 강제력이 없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아니라 강제력이 있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엔안보리 거부권을 행사하는 5개 상임리사국들 가운데 유엔사령부 해체를 지지하는 나라는 로씨야와 중국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는 유엔사령부 해체를 반대한다. 그러므로 로씨야와 중국이 유엔사령부 해체안을 유엔안보리에 상정해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동조하면 그 해체안은 채택되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유엔안보리에서 유엔사령부 해체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유엔안보리가 아닌 다른 통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려면 유엔안보리가 아닌 다른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통로는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국제법적 근거를 말소시키는 것이다.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국제법적 근거는 정전협정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버리면 유엔사령부는 자동적으로 해체될 것이고, 점령군 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벗고 유엔기를 유엔사무국에 반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일찌감치 파악한 조선은 지난 60여 년 동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의 끈질긴 노력이 집중된 결절점은 조미직접협상이다. 그리고 조미직접협상의 최고단계는 조미정상회담이다. 

 

그러나 조선과 협상하기는커녕 조선과 연락하는 것조차 거부한 미국은 다자협상의 틀을 차려놓고 그 안에서 조선과 형식적인 협상을 벌였다. 4자회담과 6자회담 같은 다자협상은 조선과 직접적으로 협상하기 싫은 미국의 술책에 불과했으므로, 그런 다자협상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조선은 녕변핵시설 일부를 불능화하여 6자회담 합의를 이행하는 성의를 보였으나, 미국은 6자회담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었으며, 조선에 금융제재를 가하여 6자회담을 파탄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런 험악한 사태에 대응하여 조선은 2009년 4월 14일 6자회담에 불참하고, 녕변핵시설을 원상복구하겠다고 선언했고, 5월 25일에는 제2차 핵시험을 단행했으며, 6월 13일에는 우라늄농축을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2009년부터 조선이 핵무력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바로 그 2009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추대된 해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워놓은 핵무력완성이라는 목표가 8년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달성되리라는 것은 그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한 8년의 투쟁에서 조선은 미국의 협박과 공갈과 방해를 물리치면서 난관을 돌파해야 했고, 핵무력을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과학기술적 난제들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7년 11월 29일 조선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실물로 핵무력을 완성하였음을 입증했다. 그렇게 되자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조미정상회담에 끌려나왔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은 그런 배경에서 성사되었다.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전략은 단계적 해결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전략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하지 않고,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는 전술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해결의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면, 그 다음 단계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제기한,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즉석에서 받아들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합의였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험프리즈 안에 건설된주한미국군 사령부 청사를 촬영한 사진이다. 청사 앞에 성조기, 태극기, 유엔기가나란히 게양되어 있다. 유엔사령부는 미국이 유엔을 장악하고 전횡을 부리던1950년에 막후공작으로 유엔안보리를 움직여 조작해놓은 불법군사조직이다. 유엔군의 마지막 구성군이었던 타이군이 철수한 1976년 이후 유엔군은 없어지고 미국군만 남았는데도,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여전히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눌러쓰고유엔군 사령관으로 행세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5. 조선을 마지막 선택으로 이끌어가는 정세

 

그러나 미국군 수뇌부는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렸다. 이를테면, 대조선전쟁연습에 사단급 부대들을 동원해오던 조치를 변경하여, 사단급 부대를 중대급 부대들로 잘게 쪼개어 전쟁연습을 분산적으로 진행하는가 하면,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서 진행해오던 대조선전쟁연습을 미국 본토에서 진행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트럼프 행정부는 조미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에도 조선에 대한 제재강도를 더욱 높였다. 2020년 10월 21일 <미국의소리>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단독으로 조선에 가한 제재대상은 개별인사 177명과 기관 313개라고 한다. 미국이 제재대상으로 지목한 177명 개별인사들 가운데는 최룡해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장, 리병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있고, 제재대상으로 지목한 313개 기관들 가운데는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조선국방과학원, 조선무역은행이 있다. 이런 사정은 미국의 경제제재가 조선의 경제를 제재하는 수준을 넘어서 조선의 핵심지도부를 겨눈 노골적인 적대행위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미국군 수뇌부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미국 재무부가 조선의 핵심지도부를 겨눈 노골적인 적대행위를 자행하는 상황에서 조미정상회담은 결국 유산되고 말았다. 

 

2021년 1월 20일에 출범할 미국의 새 행정부도 대조선적대정책에 계속 집착할 것으로 예견된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는 대통령 재임 중에 대조선적대정책을 계속하면서도 조미정상회담에 관심을 두었지만,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은 대통령 재임 중에 조미정상회담을 외면하면서 대조선적대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견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조선적대정책에 집착하면서 조미정상회담을 유산시킨 것과 더불어, 동북아시아정세도 미국이 유엔사령부에 강하게 매달리는 방향으로 전변되었다. 국력을 키워온 중국이 강대국으로 일어서자, 그에 놀란 미국은 중국을 억제하는 반중군사전선을 구축하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유엔사령부를 강화하려는 행동을 취하게 된 것이다. 2019년 9월 17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4년부터 유엔사령부 재활성화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유엔사령부 참모진을 다국적 군사지휘관들로 확대, 개편하는 한편, 유엔군 파병국들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19년 9월 1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사령부는 2019년 8월부터 유엔군 부사령관과 한국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을 대표로 하고, 주한미국군 사령부 실무자들, 한국 국방부 실무자들, 유엔사령부 실무자들로 구성된 고위급 협의체를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오랜 기간 조선이 인내력을 발휘하면서 진행해온 대미협상과 대남협상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정세는 조선을 마지막 선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조선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려는 것은 조국통일대전이다.

정부, ‘거리두기’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 상향 “3단계 전 최후의 보루”

 8일부터 28일까지 3주간... 박능후 중대본 제1차장 “모든 사회활동을 자제하고 최소화해달라”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20-12-06 18:34:08
수정 2020-12-06 18: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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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대응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12.06.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대응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12.06.ⓒ사진 = 뉴시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적인 '3차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오는 8일 0시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한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대본 정례브리핑을 통해 이 같이 밝히며, "비수도권에 대해서도 유행 확산 차단을 위해 거리두기 2단계로 상향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박 1차장은 "이러한 단계 상향에 대해서는 각 부처와 지자체, 생활방역위원회의 전문가 분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면서 "대다수가 동의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비수도권의 경우 편차가 있지만 수도권의 심각한 상황과 1일생활권인 우리나라의 여건을 고려해 2단계로 일제 상향을 권고키로 했다. 실제 대구·경북권과 제주도 등은 1단계 거리두기 기준에 해당하는 수준의 확진자 발생 추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각 지자체 별로 여건에 맞게 단계를 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키로 했다.

정부는 수도권 거리두기 단계를 2.5단계로 상향하며, 필수적인 사회경제활동을 제외하고는 외출이나 모임 등 모든 사회활동을 자제해달라고 촉구했다.

박 1차장은 "2.5단계는 사회활동의 엄중제한에 해당하는 단계"라며, "지금은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며, 가급적 모든 사회활동을 자제하고 최소화해달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또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는 "3단계 전면 제한 조치 직전의 최후의 보루"라며, "정부의 규제조치 외 활동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고도 짚었다.

이번 거리두기 상향 조치는 오는 8일 0시부터 28일까지 3주동안 시행된다.

박 1차장은 거리두기 상향 조치를 통해 "수도권 일일 환자 수를 150명~ 200명 수준으로 감소시키는 것이 목표"라면서 "상황 전개를 지켜보며 거리두기 단계를 연장하거나 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의 유행과 길어지는 거리두기로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분들께 재차 송구하다"면서도, "지금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이번 위기는 지금까지 위기와는 다르다. 방역역량을 집중할 중심 대상이 없다. 자칫하면 지난 유행들과 비교할 수 없는 훨씬 큰 규모의 확산이 초래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의료체계가 한계에 도달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확진자 급증으로 인한 병상부족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 지정 입원치료병상 가운데 중환자 치료 역량이 있는 병상을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또 상급종합병원들에 협조를 구해 인력과 장비 등을 지원하여 중환자병상을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6일 현재 코로나19 중증환자가 즉시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수도권에 20개, 전국에 55개 뿐이다. 정부는 현재 운영중인 177개 전담치료병상을 오는 15일까지 274병상까지 확대하고 추후에도 계속 확대할 방침이다.

끝으로 박 제1차장은 "정부로서는 모든 방역조치를 하고 저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해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고 동참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이제는 약속과 모임을 자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다 취소하시고, 이 3주간만은 모든 활동을 줄여주시기를 부탁드리겠다"고 거듭 당부했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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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하는 거라고?

 

  • 기자명 김성진 공공운수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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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0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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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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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6월, 민주노총 통일위원회가 6·15공동선언 20주년을 기념하는 ’노동자공동행동’을 벌였다. 이 사업에서 일반 조합원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손팻말 인증샷’이 있었다. 여기에 호응하여 필자가 몸담은 노동조합에서 조합원 인증샷을 취합했고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손팻말 인증샷의 내용은 ‘미국은 남북관계 간섭 말고 대북제재 해제하라’, ‘한반도 긴장 조성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우리 민족 번영의 길 남북공동선언 이행’, ‘70년 전쟁 끝내고 평화협정 체결하자’였다.

    노동조합이 조합원 인증샷을 게시하자 게시글 아래로 많은 댓글이 달렸다. “노조의 목적이 뭔지부터 되돌아봐라”, “노조는 언제까지 민노총 꼭두각시가 되어서 조합원들 내동댕이치고 정치질이나 할래?”, “이런 건 퇴근 후 각자 시민단체나 정당에 들어가서 하세요”, “우리 일만 신경 쓰면 안 될까요? 앞으로 우리 노조가 어떻게 나가야 할지 걱정 안 되십니까?”, “한민족 잘살자는 거 청와대랑 통일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자유게시판도 아니고 조합원 확인 후 실명으로 가입해야 하는 게시판에서 수십 건의 댓글 중에 이런 비난 글이 압도적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2020년 815 노동자대회
    ▲ 2020년 815 노동자대회

    물론 모든 노동조합이 이렇지는 않고, 모든 조합원이 이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랬으면 어떻게 노동자 통일운동이 이어지고, 진보정당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필자가 몸담은 노동조합이 대규모 공기업노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노동조합이라 할 것 없이 이런 경향이 점점 더 짙어지는 추세라서 가슴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의 정치활동, 통일운동, 연대사업에 대해 부정적, 배타적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사실 이런 활동들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활동가가 아닌 일반 조합원도 수십 년 동안 했던 활동이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임금, 복지, 노동조건의 향상을 위한 활동이 아니면 노동조합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고 ‘딴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극단적 실리주의 경향도 널리 퍼져있다. 

    이런 경향들은 눈앞의 이익만 보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이익을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소탐대실이다. 정부가 “성과급을 많이 줄 테니 정부에서 추진하는 성과연봉제나 직무급제를 받아들이라.”라고 해서, 그리고 조합원들이 그것을 바란다고 해서 노동조합이 투쟁을 접고 정부안대로 합의한다면 조합원에게 이익일까. 임금이나 복지, 노동조건의 향상도 중요하지만 노동자의 근본적이며 더 큰 이익은 다른 데에 있다. 

    노동자의 경제적 이익만 놓고 보자면 임금인상은 물가상승으로 곧 그 효과가 상쇄되고, 복지향상과 노동조건 개선은 사업장 내에 머물고 있다. 노동자의 급여통장은 단지 급여가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임금이 입금되자마자 각종 지출로 빠져나가고 만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의 삶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지 못함으로써 오로지 임금만으로 노동자가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임금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절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지만 수입을 늘리기 위한 모든 시도는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만다.

    노동자의 지갑을 살찌게 하는 것은 수입을 늘리는 것과 함께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가계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 교육비는 물론이고 의료비, 보험료, 교통비, 통신비, 각종 세금 등 기본 비용을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놀고먹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수입이 없어도 의식주는 기본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을 통해, 예를 들어 ‘자녀학자금 지원’ 등 사업장 내부 요구가 아닌 생활적 요구를 걸고 투쟁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사업장 노동조합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노동자 사이의 연대, 노동자와 민중의 연대를 기초로 한 사회정치적 투쟁이 요구된다. 사회적 요구는 사회적 투쟁 없이 쟁취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연대와 투쟁을 정치적으로 이끌어 갈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노동자는 경제적 이익만 충족하면 삶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기를 바란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왜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조합이 강해지기를 바랄까?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 노동조합이 없던 시기에 현대계열사 노동자는 두발 단속을 당해야 했고 관리자들의 일상적 폭력을 감내해야 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땅콩 회항’ 등 직장 갑질과 성희롱, 인격 모독이 그치지 않고 직장 내 민주화는 갈 길이 멀다. 

    노동자는 사업장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구속과 탄압에 저항한다. 일하는 보람을 빼앗아가고, 자신의 발전과 향상을 막으며, 자주성을 구속하고, 인간적 자존심을 짓밟는 사용자 측의 행위에 저항하며 극복하기를 바란다. 또한, 자신의 노동과 사업장 내 모든 환경을 자기 뜻에 맞게 주도적으로 바꿔 나가려 한다. 개인으로서는 해결방법이 없는 이 요구를 노동자는 노동조합 결성과 강화를 통해 해결한다. 이렇듯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모이는 이유가 경제적 이익의 측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이든 사회정치적이든 이런 노동자의 요구와 이익은 노동과정을 포함한 모든 생활영역에서 발현된다. 노동조합의 활동은 대체로 사업장 담벼락 안에서 이루어지고 생산과정에 개입하는 정도로 제한된다. 하지만 노동자의 요구와 이익은 그런 경계가 없다. 그것은 사업장 내 생산과정도 사업주의 권한도 넘어선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요구와 이익을 온전히 실현하자면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듯이 진보정당으로 결집한 노동자의 사회정치적 투쟁을 통해 사회를 노동자의 뜻에 맞게 바꿔나가야 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은 필연이다.

    이제 위 댓글의 충고대로 노동조합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자. 노동조합의 목적은 각 노동조합의 규약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률적이지는 않기에 대표적으로 민주노총의 규약을 참고하면,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 향상과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장되는 통일조국, 민주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규약은 25년 전 민주노총 건설 시기 노동자의 염원을 반영했고 최근(2019년)까지 개정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수많은 민주노총 소속 단위 노동조합에서 이 규약을 기준으로 자체 규약을 제정하고 있다.

    이제 되물어보자. 노동조합에서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설립 목적에 어긋나는 활동인가? 사업장 내 활동가들의 정치활동이 노동조합 본연의 활동이 아니라 ‘딴짓하는 것’인가? 노동조합으로 단결한 조합원은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조합원을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존재로 바라보면서, 조합원의 더 크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요구와 이익을 외면하고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충족하는 투쟁으로만 노동조합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야말로 ‘딴짓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