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6일 일요일

한미동맹, 딜레마에 빠지다

[쿼바디스, 한미동맹](10) 2017년 한반도 미사일 위기와 한미동맹
  • 장창준 정치학박사
  • 승인 2018.12.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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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비밀 협상’의 실패와 그 교훈
1966년 12월6일, 미국과 베트남의 외교관들이 비밀리에 폴란드에 들어온다. 베트남 전쟁의 확대를 막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비밀 협상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들의 길은 엇갈렸다. 미국측은 폴란드 외교부 청사에서 베트남 대표단을 기다렸다. 베트남측은 폴란드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서 미국 대표단을 기다렸다.
그들은 결국 만나지 못했다. 비밀 협상은 시작도 전에 좌초된 것이다. 그들의 길은 왜 엇갈렸을까? 왜 그들은 다른 장소에서 상대방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왜 그들의 ‘비밀 협상’은 실패했는가.
‘비밀 협상’ 실패의 원인은 북베트남 폭격에 있었다. 비밀 협상은 1966년 11월 초부터 미국과 베트남, 그리고 중재 역할을 담당했던 폴란드 사이에서 협의되고 있었고, 12월6일 폴란드에서 비밀리에 협상을 하기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비밀 협상’의 장애물이 등장했다. 미국이 12월 초부터 북베트남의 도시인 하노이에 대한 폭격을 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베트남 협상 대표단은 폴란드로 출발한 시점이었다.
북베트남 외교부는 미국이 협상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고, ‘비밀 협상’의 중단을 결정한다. 그러나 폴란드에 도착한 베트남 대표단에게 직접 협상 중단을 알리는 것은 ‘비밀 외교’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미국측 대표와 베트남측 대표가 엇갈린 장소에서 상대방을 기다린 것은 이 같은 과정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미국의 하노이 폭격은 우발적인 사건이었을까? 전쟁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한 비밀 협상을 하면서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하노이 폭격을 개시했단 말인가? 결론은 후자였다. 미국은 비밀 협상과 하노이 폭격을 병행했다. 폴란드 비밀 협상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맥나마라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이었고, 이 계획은 존슨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존슨과 맥나마라는 하노이를 폭격하겠다는 미국 합동참모본부(JCS: Joint Chiefs of Staff)의 군사 계획을 승인했다. 하노이 폭격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미국의 군사행동이었다.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군사적 공세로 인해 북베트남이 ‘비밀 협상’에 착수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베트남이 외교 협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라 믿고 하노이 폭격을 강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하노이 폭격이 개시되자 베트남 정부는 협상 중단을 결정했다. 폭격과 비밀 협상을 병행하겠다는 미국의 결정이 비밀 협상을 실패로 이끈 것이다. 전쟁은 지속되었고, 미국과 베트남은 더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평화협정에 나설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비밀 협상’의 실패는 이같은 병행론이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은 교훈을 못 찾은 듯하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협상이 잘돼가고 있다”고 하면서도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조선)이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해왔다. 대북 제재와 북미협상을 병행하고 있다.
2017년 한반도 미사일 위기를 거친 후에 2018년 들어와 북미 사이의 외교 협상이 시작되었다. 하노이 폭격은 군사적 적대행위였다. 대북 제재는 외교적 적대행위이다. 그것이 군사라는 외피를 쓰건, 외교라는 외피를 쓰건 적대행위는 ‘외교 협상’의 장애물이 된다. 미국은 이미 50년 전에 실패한 병행론을 언제까지 지속하려 하는가. 한국 정부는 이같은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2017년 한반도 미사일 위기
2017년 한반도는 전쟁 위기 상황이었다. 습관적으로 ’북핵 위기’라고 부르지만, 북핵 위기가 아니라 미사일 위기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위기였다. 북한(조선)은 ICBM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그것을 저지하는 데 올인했다.
2017년 4월의 위기는 실재했다. 미국이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새롭게 출범한 트럼프 정부는 북한(조선)의 ICBM 개발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북한(조선)의 핵과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이 선택지에 올랐다. 대북 선제공격을 공공연하게 거론하면서 최첨단 전략자산을 모두 한반도에 전개했다. 트럼프 정부가 4월26일 대북정책을 발표하는 날, 시리아를 폭격한 것은 분명히 북한(조선)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였다.
3월18일 트럼프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조선)과의 핵전쟁을 항상 걱정해야 하며,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딱히 결정된 무언가가 없다면 미국으로서는 군사행동이 가장 익숙한 선택이 될 것이다.
다행이 위험스러운 상황은 넘겼다. 트럼프의 자제력이었건, 북한(조선)의 억제력이었건 4월 위기는 무사히 넘겼다. 그러나 안도의 숨을 돌리기 전에 위기는 또 다시 찾아왔다. 7월말~8월초로 접어들면서 위기는 다시 고조되었고, 그 위기는 점차 충돌을 향해 치달았다.
8월8일 북한(조선)의 전략군 대변인이 괌 포위 사격을 경고했다. 이틀 뒤 전략군 사령관이 직접 등장해 “8월 중순까지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최종 완성”하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드리고 발사대기 태세에서 명령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힌다. 미국의 적대정책, 그리고 8월20일로 예정되어 있는 한미군사연습에 대한 북한(조선)의 군사적 반발이었다. 8월14일 전략군 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계획을 보고받은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하여 한숨 돌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8월20일 한미군사연습이 강행되고 상황은 다시 악화된다. 8월22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이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발을 걸어온 이상 백두산 혁명강군의 무자비한 보복과 가차없는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밝힌다. 게다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발사대기상태에서 놈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군사적 대응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일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후 북한(조선)은 자신의 예고대로 미사일 발사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인다. 9월부터 진행되는 미사일 발사는 ‘시험 발사’가 아니라 ‘실제 발사’였다. 미사일의 발사 각도 역시 ‘고각발사’가 아니라 ‘정상각 발사’였다. 8월26일 북한(조선)은 세 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다. 8월29일에는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중거리 미사일 ‘화성 12형’을 발사한다. 화성 12형은 2700km를 비행했으며, 북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다. 이날 발사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태평양상에서의 군사작전의 첫걸음이고 침략의 전초기지인 괌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이라고 밝혔다.
9월15일 북한(조선)은 화성 12형을 다시 발사한다. 이번엔 이동식발사대에서 발사되었고, 3700km를 비행했기 때문에 거리상으로 괌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8월29일과 9월15일에 발사된 화성 12형은 괌 포위사격을 검토한 전략군 소속 미사일이다. 그리고 9월15일 발사된 미사일은 평양에서 괌까지의 거리인 3356km를 훌쩍 뛰어넘는 거리였다. 사실상 괌 포위사격을 단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보다 앞선 9월3일, 북한(조선)은 6차 핵시험을 단행했다.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한 것이다. 이제 북한(조선)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미사일을 시험 발사에서 실제 발사로 전환하고, 실제 발사 미사일의 이동거리가 점차 길어진다. 즉 미국 본토에 점차 가까운 곳에 미사일을 이동시킨다.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수소탄까지 시험한다.
미국으로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9월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장에 섰다. 거기서 “북한(조선)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발언을 한다. ‘한번만 더 미사일을 미국 가까이 발사하면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경고 메시지였다.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가 무엇을 생각했든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반발한다. ‘우리는 미사일을 또 발사할 것이니, 붙으려면 붙어보자’는 김정은식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미 군통수권자가 사실상 군사공격을 공언함으로써 위기는 극대화되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의 전략공군사령부가 데프콘2(전쟁 직전 태세)를 발령하고 대기상태에 놓인 적이 있다. 어쩌면 작년 9월 이후 북미 양측 역시 이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조선)이건, 미국이건, 그것이 최고 결정권자 차원에서의 결정이 되었건, 현장 지휘관 차원의 오판이 되었건 일순간에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2017년 11월29일의 ICBM 발사는 ‘정상각 발사’가 아닌 ‘고각 발사’였다. ICBM은 실제 사거리를 비행하지 않고, 최고고도 4475km로 비행하다가 평양에서 950km 떨어진 곳에 낙하하였다. 만약 북한(조선)이 11월29일 ICBM을 정상각으로 발사하고 여기에 미국이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적으로 대응했다면 북미 전면전이 실재화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2017년 11월28일 김정은 위원장은 ‘화성 15형’ 시험발사 명령을 내린다.
동맹, 딜레마에 빠지다
이 상황을 누구보다 우려하면서 지켜보았을 곳은 청와대였다. 또한 11월29일 ICBM이 정상각으로 발사되지 않고 고각으로 발사되는 것을 보면서 그 누구보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곳도 청와대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ICBM 위기를 감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 선언에서부터 시작해서 8.15 광복절 경축사 등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평화’였다. 베를린 선언에서는 “핵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강조했고,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된다”면서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토로했던 것처럼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동맹은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지하고, 만약 전쟁이 발생하면 격퇴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체결된다. 그런데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전쟁은 이제 상정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핵전쟁이고, 핵전쟁이 발생하는 순간 이미 한반도는 재앙 속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핵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한반도의 상황은 그 자체로 동맹의 목적을 변화시켰다. 이제 동맹은 오직 전쟁을 억지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동맹은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이 돼 버렸다. 아니 그런 동맹이라면 존재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ICBM 위기는 한국 정부를 딜레마에 빠뜨린 셈이다. 미국이 북한(조선)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군사행동을 개시한다면, 한미동맹은 어떤 공동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은 미국의 군사행동에 동참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미국의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어느 쪽으로든 쉽지 않은 결정이다. 다행히 그런 선택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대결이 궁극적으로 종식되지 않는 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하는 딜레마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은 ‘본토 우선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이같은 딜레마에서 빠져 나올 준비를 마쳤다. 미국은 대북정책에서도 ‘동맹국의 안보’보다는 ‘미본토 안보’를 더 중요하게 설정했다. 2018년 4월 미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폼페오 미 국무부 내정자는 북미정상회담을 “미국에 대한 북한(조선)의 핵위협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맹국이 우선인가, 자국이 우선인가 하는 미국이 처한 동맹 딜레마에서 미국은 ‘쿨하게’ 자국의 안보를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동맹의 딜레마는 오롯이 한국에만 적용되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선택해야 한다. ‘동맹국이 우선인가, 자국이 우선인가’에서 자국의 안보가 우선이라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래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것만이 동맹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다.
동맹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대북 제재를 북미협상의 장애물로 인식해야
베트남 ‘비밀 협상’의 장애물은 북베트남 폭격이었다. 2017년 한반도 평화의 장애물은 대북 선제공격이었다. 이 장애물은 2018년 들어와 ‘일단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조선)이 미본토 보복공격 능력인 ICBM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미국이 확충하지 않는 이상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의 장애물은 사라진 것인가. 또 하나의 장애물이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대북 제재다.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북미협상은 쉽지 않다. 북미협상의 교착은 한반도 평화 과정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제재는 2018년부터 형성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 과정의 결정적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조선)이 대화에 나왔다고 주장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폭 때문에 협상에 나왔다는 인식의 되풀이다. 바로 그와 같은 미국의 인식 때문에 베트남 전쟁 ‘비밀 협상’은 실패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조선_)이 대북 제재 때문에 협상에 임했고, 그래서 완전한 비핵화까지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그런 인식이 지배하는 한 북미 외교 협상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문재인 정부의 동맹 딜레마는 지속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과정을 진척시켜 왔다. 남과 북이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남북 접경지역에서 한반도 평화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훌륭한 평화정책이었고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성공적인 대북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 단계 더 진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껍질을 벗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한 외교력을 강화하는 것,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깨고 나와야 할 껍질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대북 제재가 한국에 적용되는 경우에 한정하여 그것을 ‘면제’받는 소극적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서울 정상회담이 아직까지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소극적 방식으로는 더 이상 남북관계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북미대결의 양상은 분명히 바뀌었다. 군사 대결이 종식되고 외교 대결이 본격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제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북미 외교가 교착 상태에 빠진 원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는 또 다른 동맹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남북관계 발전을 목표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대북 제재와 한국 정부 역시 대북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동맹 논리에 의해 좌초될 수 있는 것이다. 군사 대결에서 외교 대결로 바뀐 2018년 상황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은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은 대북 제재와 병행하는 순간 절대 성공할 수 없다. 50년 전의 베트남 ‘비밀 협상’의 교훈이, 그리고 2018년 12월 한반도의 현실이 그것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대북 제재를 북미협상과 남북관계 발전의 장애물로 인식하는 것이 동맹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는 첫 조치이다. 대화와 제재는 결코 병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을 때 동맹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동맹의 딜레마에서 빠져 나왔을 때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과정은 그 종착점을 향해 나갈 수 있다.
장창준 정치학박사  minplusnews@gmail.com

"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이었다"

[전쟁국가 미국·1강-②] 독립전쟁에서 남북전쟁까지
2018.12.17 07:58:59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 12월 5일부터 오는 3월 13일까지 총 8회에 걸쳐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의 '전쟁국가 미국'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이 강연에서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해온 군사주의 노선이 현재 세계의 혼란과 부의 양극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후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봅니다. 

<프레시안>은 격주로 진행되는 강연을 정리해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아래는 지난 12월 5일 진행된 1회 강연을 보강한 내용입니다. 1회 강연은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더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전편 보러 가기 : 미국은 왜 전쟁을 하는가?)

미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이었다'고 말한다. 즉 "초기 정착민이 영국을 떠나 버지니아에 도착하고 서쪽으로 이주하던 시절부터 미국은 정복을 추구하는 제국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건국 이후 미국이 안고 있는 근원적 모순을 지적한다. 미국인의 자유를 위해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노예 등 타자(他者)들을 정복해 온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이 살해됐다. 영국인이 처음 북미 대륙에 닿았을 지금의 미국 영토에는 약 1000만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1900년 그 숫자는 20만 명으로 줄어든다. 미국은 처음부터 전쟁과 살육으로 세워진 나라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하였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라는 부분에서 크게 고민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는 당연히 흑인도 포함돼야 했지만 그랬다가는 미국 경제를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흑인 노예는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게다가 제퍼슨은 그 자신이 농장주로서 노예를 부렸으며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 사생아를 낳기까지 했다. 결국 흑인 노예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백인들의 재산으로 규정됐다. 미국 독립선언문이 말하는 '사람'이란 결국 백인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경제발전은 흑인 노예의 희생에 의한 것이었다. 1800년대 초 미국의 흑인은 전체 인구의 20% 정도였다. 남북전쟁이 일어난 1860년대 백인 인구는 2700만, 흑인 노예는 400만 명 가량(약 13%) 됐다. 자유 신분의 흑인은 48만 8000명에 불과했다.

노예제도는 1860년대 남북전쟁으로 폐지됐지만 흑인들의 실질적 참정권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60년대 민권운동에 의해 비로소 확보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2등 시민으로 취급받고 있다.  

미국의 자유, 미국의 노예제 

'미국의 자유, 미국의 노예제(American Freedom, American Slavery)'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미국의 자유와 노예제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뜻이다. 즉 흑인 노예의 희생이 있었기에 백인의 자유가 가능했다는 뜻이다. 같은 제목의 책도 있다. 이처럼 미국은 출발부터 모순적인 국가였다. 이 근원적 모순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금 트럼프가 추구하고 있는 반(反)이민 등 백인우선주의 정책이 그 증거다.  

지배와 정복으로 출발한 미국은 '화(和)'를 모른다. 너와 내가 다르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평화롭게 살자는 생각이 없다. 미국은 '동(同)을' 추구하는 국가다. '내 식대로 하지 않으면 넌 죽는다'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9.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은 세계를 향해 "우리 편 아니면 적(You are with us or against us)"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야말로 미국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1783년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1789년 연방정부를 출범시켰으며 이후 1850년까지 북미 대륙을 정복해 나간다. 이 시기를 영토 팽창의 시대라 할 수 있다. 

1783년 독립 당시의 미국 영토는 북미 대륙 동쪽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애팔래치아산맥 동쪽에 13개 주가 있었고, 산맥 서쪽에서 미시시피 강까지는 오늘날 중서부(Midwest : 오하이오, 일리노이, 인디애나 등)라 부르는 곳으로 당시에는 아직 주권을 갖지 못한 영토(territory)였다. 대륙 서쪽의 절반 이상은 스페인 땅이었고, 북쪽(오늘날 캐나다)은 영국이 갖고 있었다. 또 남으로는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요컨대 독립 당시 미국은 유럽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북미 대륙 각지에서 원주민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였다.
▲ 지도 1. 1783년 미국 독립 당시 북미 대륙 (출처 : 월터 라페버 <The American Age> p.29)

그런데 이런 나라가 불과 60년 만에 북미 대륙 대부분을 석권할 정도로 팽창한다. 여기에는 당시 유럽의 정세가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이후 1815년 나폴레옹전쟁이 끝날 때까지 4반세기 동안 유럽의 열강들이 혁명과 반혁명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인 것이다. 즉 유럽 열강은 아메리카 대륙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1803년 제퍼슨 대통령은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단숨에 영토를 두 배로 늘린다(루이지애나 매입). 당시 유럽의 패권을 놓고 영국과의 일전을 앞둔 나폴레옹은 군자금 마련을 위해 1500만 달러라는 헐값에 루이지애나(미시시피 강 서쪽에서 로키산맥 동쪽에 이르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루이지애나 주와는 다르다)를 팔아버린다. 기존 영토와 맞먹는 넓이의 이 지역에서 훗날 13개 주가 생겨난다.  

한편 1836년에는 미국 남서쪽 국경 넘어 멕시코 땅에 정착한 미국계 이민들이 텍사스 공화국(Lone-star state)을 설립하고 독립을 선포한다. 미국계 이민들은 타국의 땅에 나라를 세운 것뿐만 아니라 멕시코가 금지한 노예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 연방정부는 텍사스의 미국 합병을 꺼리고 있었다. 북부의 여러 주들이 노예제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45년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텍사스를 미 연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미국과 멕시코 간에 전쟁이 벌어진다(멕시코전쟁 1846~1848년) 

1848년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태평양과 맞닿은 서부지역까지 빼앗는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등 미국 서부의 도시 이름이 스페인어원인 것이 이곳이 원래 멕시코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은 전쟁과 정복을 통해 대륙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관통하는 영토 대국으로 성장한다.  

당시 미국의 목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캐나다와(캐나다는 18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멕시코까지 차지하려 했다. 캐나다를 정복하려던 전쟁이 1812년의 미영 전쟁(1812년 전쟁)이다. 이른바 '사촌간의 전쟁(Cousin's War)'으로 불리는 이 전쟁은 미국사에서 아주 유명하다. 영국군이 미국 본토에 상륙해 백악관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전까지 미국 본토가 침공 당한 유일한 사건이다. 결국 계획했던 캐나다 정복은 실패한다.

미국은 원래 쿠바도 정복하려 했다.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 당시 제퍼슨 대통령은 "다음 목표는 쿠바"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그런 미국이 1850년 이후 영토적 팽창을 사실상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인종주의와 노예제가 그것이다. 우선 미국이 쿠바와 멕시코로 영토 팽창을 계속할 경우 비백인 인구가 늘어날 것을 우려했다. 비백인 인구가 백인 우위를 위협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한 남쪽으로의 영토 팽창이 노예제를 확대해 남부 주들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도 달갑지 않은 사태였다. 연방정부를 장악한 북부 세력은 자유민들의 임금노동을 바탕으로 상공업 발전을 꾀하고 있었다. 

이제 미국의 목표는 영토 팽창에서 상공업 발전과 미국 경제의 해외 진출로 바뀐다. 1850년대까지 미국은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였다. 하지만 이제 제조업과 상업의 발전을 통해 해외로의 팽창에 나선 것이다.  
▲ 지도 2. 1850년까지 미국의 영토 팽창 (출처 : 월터 라페버 <The American Age> p.132)

'먼로 선언'과 '명백한 운명' 

그에 앞서 19세기 전반 미국의 영토적 팽창 과정에서 제기된 두 가지 핵심 이데올로기를 살펴본다. 하나는 먼로 선언이고 다른 하나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 하는 존재인 것처럼, 모든 국가는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념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국익을 위한 행동을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요체는 '자신에게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대외정책의 경우 '미국에 좋은 것이 세계에도 좋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19세기 전반 미국의 영토적 팽창 시기에는 먼로 선언과 명백한 운명이, 19세기 말 미국의 해외 진출 때에는 문호 개방(Open Door)과 민족 자결(National Self-Determination)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먼로 선언과 명백한 운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먼로 선언은 1823년 12월 제5대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발표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유럽의 그 어떤 국가도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미국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유럽 열강 역시 아메리카 대륙의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먼로 선언을 고립주의 선언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정확하게 이 선언은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독점적 세력권'이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먼로 선언이 발표된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1823년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 남미의 주요 국가들이 스페인,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직후이다.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식민종주국 스페인 등이 몰락하면서 남미 여러 나라가 독립했다.

그러나 전쟁이 나폴레옹의 패배로 끝나고 유럽의 구질서가 회복되면서 유럽 열강들은 과거의 식민지를 되찾으려 했다. 바로 이때 미국은 바로 먼로 선언을 통해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개입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또는 '명백한 사명'은 1845년 존 오설리번이라는 언론인이 만든 말이다. 간단히 말해 미국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으로 세계로 계속 뻗어 나가면서 자유를 전파할 특별한 운명을 타고 났다는 얘기다. 미국은 워낙 특별한 나라라서, 미국이 세계로 진출할수록 자유의 영역은 넓어진다는 자기 합리화다. 따라서 텍사스, 캘리포니아, 오리건 등 대륙 서부로 진출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먼로 선언과 '명백한 운명'이 합쳐져 먼로 독트린이 완성된다. 1945년 12월 2일 제임스 포크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먼로 독트린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면서 미국은 더 활발하게 서부로의 팽창을 계속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가 바로 멕시코전쟁이다. 먼로 독트린의 입장에서 본다면 멕시코전쟁은 타국의 영토 탈취가 아니라 자유의 영역의 확대가 되는 셈이다.

'명백한 운명'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미국 경제의 해외 팽창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은 이 경쟁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미국이 가장 눈독 들인 시장은 중국이었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이었기 때문이다. 1853년 페리 제독이 이른바 '흑선' 함대를 이끌고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것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미국에 큰 일이 일어난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2차 대전을 포함해 건국 이래 미국이 치른 수많은 전쟁 중 미군 전사자가 가장 많았던 전쟁이 남북전쟁이다. 4년간의 동족상잔에서 60만 명이 죽었다. 당장 내전이 발발했으니, 중국이고 일본이고 외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국의 해외 진출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일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비록 강제로 개항을(1854년) 당하기는 했지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과학계의 천황이라고 불렸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가토 슈이치라는 비판적 지식인과 나눈 대담에서 '일본이 서구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개항 직후 서구 열강이 남북전쟁 등 전쟁에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853~56년에는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가 크림전쟁, 1861~65년에는 미국의 남북전쟁, 1870년에는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보불전쟁을 벌였다. 이런 전쟁들이 없었더라면 일본도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의 우연 덕분에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남부 주들이 미 연방에서 탈퇴해 별도의 국가를 세우려던 것을 연방정부의 무력으로 저지시킨 전쟁이다. 이 전쟁은 미국에 커다란 상처를 안겼지만, 미국이 통합 국가로 성장하는 데 아주 중요했던, 거쳐야만 했던 과정이었다.

미국을 영어로 하면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United States of America)', 여기서 스테이츠(States)는 곧 '국가들'을 말한다. 미국의 주(州) 하나 하나가 곧 국가인 셈이다. 그래서 남북전쟁 이전 미국을 영어로 설명할 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 아(are)'라고 복수형 동사를 사용했다. '아(are)'가 '이즈(is)'라는 단수형 동사로 바뀐 때가 남북전쟁 이후다. 드디어 미국이 명실상부한 하나의 국가가 된 것이다. (3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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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왜 거부했는가?

[개벽예감 326]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왜 거부했는가?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12/17 [09: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12월 10일 미국이 일으킨 엄중한 사태
2. 12월 3일 통일각에서 진행된 비공개접촉
3. 조선,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다
4.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일어난 의견마찰
5. 조선은 왜 보복을 자제하였을까? 


1. 12월 10일 미국이 일으킨 엄중한 사태

2018년 12월 13일 미국군 소식지 <스타즈 앤드 스트라입스(Stars and Stripes)>가 불길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6.25전쟁시기 조선에서 사망한 미국군의 유골을 발굴, 송환하기 위한 조미협상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미국은 조선에 묻혀있는 미국군 유골을 조선과 미국이 공동으로 발굴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조미협상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면서, 미국군 유해 55구가 송환된 이후 2018년 8월부터 조선과 몇 차례 서신을 교환하면서 의견을 조율해왔는데, 이제는 서신교환마저 중단된 것이다. 

미국군 유해를 발굴, 송환하는 문제를 두고 조미관계에서 발생한 이런 정황은 한국군 유해를 발굴, 송환하는 문제를 두고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정황과 매우 대조적이다.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진행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 중에 남측 국방장관과 북측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하였는데, 그 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2019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공동유해발굴을 진행하기로 약속하였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와 함께 6.25전쟁시기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다. 남과 북은 화살머리고지에서 공동유해발굴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그 지역에 묻혀있는 지뢰와 폭발물을 2018년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공동으로 제거하였고, 2018년 11월 22일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화살머리고지로 통하는 폭 12m의 남북연결도로를 개설하였다.   

이처럼 남과 북은 공동유해발굴을 합의하고 착실히 이행하고 있지만, 조선과 미국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4항에서 공동유해발굴을 합의하였으면서도 전혀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대조적인 모습은 지금 난항을 겪고 있는 조미협상의 현실을 보여준다. <사진 1>  

미국 국방부 당국자가 조선에 묻혀있는 미국군 유해를 조선과 미국이 공동으로 발굴하는 사업이 중단되었다는 불길한 소식을 미국 언론매체에 알려주기 사흘 전인 2018년 12월 10일 유해발굴사업이 중단된 것보다 훨씬 더 불길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관리국은 최룡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에게 “싸이버공격과 심각한 인권침해 및 검열행위 등을 지휘, 시행”하였다는 ‘죄목’을 씌우고, “북조선제재 및 정책추진법에 의거하여 그들을 제재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엄중한 사태였다. 미국이 감행한 이번 제재사건으로 하여 이미 난항을 겪던 조미협상이 위험지경으로 밀려갔으니, 어찌 엄중하다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조선과 미국이 치열한 핵대결을 벌였던 2017년 11월 말까지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지하핵시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단행할 적마다, 미국은 조선을 제재하면서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켜왔었다. 그런데 2017년 11월 29일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종식되었을 뿐 아니라,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미국이 2018년 6월 12일 역사상 처음으로 조미정상회담에 끌려나와 역사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고, 조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조선이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선의의 조치들을 연속 취하면서 그 조치들에 상응하여 미국의 대조선제재가 완화되어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를 제기하였고, 제재가 완화되기 전에는 미국과 어떠한 협상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를 완화하기는커녕 되레 자극적인 추가제재를 감행하였다. 

제재를 완화하라는 조선의 요구를 받아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모른 척하면서 잠자코 있으면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을 터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의 제재완화요구에 자극적인 추가제재로 응답하였을 뿐 아니라, 그 무슨 싸이버공격이니 심각한 인권침해니 하는 당치도 않은 구실을 내걸어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을 제재하는 엄중한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추가제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은 망측스런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제재가 너무 망측스러워 보도하지 않았지만, 조선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적 자존심을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제재로 건드리며 자극하였으니 조선이 어찌 분노하지 않았겠는가!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자극적인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미관계를 악화시켰으니, 얼마 전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요청해오던 조미고위급회담과 조미실무급회담은 언제 성사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제2차 조미정상회담도 언제 개최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연방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한 일본의 일간지 <아사히신붕> 2018년 12월 13일부 보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초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조선이 미국에게 응답하지 않고 있어서 조미정상회담 개최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하였다. 

돌이켜보면, 2018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중에 “내년 초 어느 시점에(sometime early next year)”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었고, 12월 1일에는 취재기자들에게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이나 2월에 열릴 것 같다고 하면서 정상회담 개최지로 세 군데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도 2018년 11월 28일 취재기자들 앞에서 “(조미)고위급회담이 너무 머지않아(before too long) 열리기를 매우 기대한다”고 말했다.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도 2018년 12월 4일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릿저널>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연례회의에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 또는 2월에 열리게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런데 일련의 조미협상들이 이른 시일 안에 순차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하던 트럼프 행정부에게 갑자기 무슨 이상한 바람이 불었는지 태도가 돌변하여 조선에게 자극적인 추가제재를 감행한 것이다. 이런 돌변현상은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해괴한 사건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제재를 발표하였던 2018년 12월 10일 직전에 그들의 태도를 돌변시킬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무슨 사건이 있었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가 그처럼 돌변하였을까?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에게 제재를 감행한 엄중한 사태와 관련하여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취재기자들에게 “미국 정부는 대북제재법(H.R. 757)에 따라 북한인권침해상황에 관한 보고서 및 제재대상을 정기적으로 발표해오고 있는데, 이번 발표는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이 대조선제재법에 따라 관행적으로 제재를 가해오고 있으므로, 이번에 있은 추가제재도 특별히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정말 그럴까?

돌이켜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6월 12일 조미정상회담 이후에도 대조선제재를 계속해왔지만, 지난 몇 달 동안 그들이 발표한 제재대상은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발표한 제재대상은 제재조치를 위반하면서 조선과 거래하였다는 ‘죄목’을 씌운 중국기업들과 로씨야기업들, 그리고 그런 기업과 관련된 조선의 해외체류인사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제재대상은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이다. 얼마 전 제재조치를 위반하였다는 ‘죄목’을 씌워 중국기업들, 로씨야기업들과 조선의 해외체류인사들을 제재했던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는 제재조치위반이 아니라 싸이버공격이니 인권침해니 하는 ‘죄목’을 씌워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을 제재하였으니, 이를 어찌 관행으로 볼 수 있겠는가.    


2. 12월 3일 통일각에서 진행된 비공개접촉

그러지 않아도 조미협상이 난항을 겪는 민감한 시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왜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미관계를 악화시킨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조선, 중국, 로씨야, 이란, 베네수엘라, 수리아 같은 나라들을 걸핏하면 제재하는데, 제재결정권은 스티븐 므누신(Steven T. Mnuchin) 재무장관이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게 아니다. 제재조치는 재무장관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반드시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검토한 다음 트럼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시행된다.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각료회의를 거쳐 제재를 결정하면, 재무부가 앞에 나서서 제재조치를 발표하는 것이 그들의 제재절차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보면, 이번 추가제재는 트럼프 대통령, 팜페오 국무장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므누신 재무장관 등이 참석한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논의되고,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의 분석초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왜 조선에게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미관계를 악화시켰는가 하는 의문에 맞춰져야 하는데, 여기에 얽혀있는 복잡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얼마 전 한국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 앤드루 김(김성현)은 2018년 12월 말에 퇴임하게 된다. 그는 조선문제에 관련한 정보를 분석, 판단하는 코리아임무쎈터를 이끌어오면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수행하여 조미고위급회담에 빠짐없이 배석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보는 조선문제에 관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왔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 지역에 있는 통일각을 촬영한 것이다. 올해 들어 통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하여 남북회담은 물론 조미실무급접촉도 진행되었다. 그런데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12월 3일 통일각에서 중요한 비공개접촉이 진행되었다.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로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수행하여 조미고위급회담에 빠짐없이 배석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보는 조선문제에 관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앤드루 김이 통일각에서 조선측 인사들과 비공개접촉을 진행한 것이다. 한국 언론보도을 분석하면,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하면 제재를 완화한다는 새로운 방침을 결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앤드루 김을 통일각에 파견하여 조선측에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 그가 퇴임을 앞두고 자기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였다. <연합뉴스> 2018년 1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앤드루 김과 일행이 2018년 12월 3일 판문점에서 조선측 인사 3~4명을 만났다고 한다. <중앙일보> 2018년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12월 2일 서울에 나타난 앤드루 김은 이튿날 판문점 북측 지역에 있는 통일각에서 조선측 인사들과 두 시간 가량 회담하였고, 다음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2018년 12월 3일 통일각 비공개접촉에서 무슨 문제가 논의되었을까?  

앤드루 김이 통일각 비공개접촉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간 2018년 12월 4일 워싱턴 현지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한 중요한 정보가 <중앙일보>에 실렸다. 보도기사를 원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미 행정부 내에선 북한이 비핵화과정에서 성실한 조치(sincere measures)를 취하면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방침을 마련했으며, 이에 따라 실무선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성실한 조치는 북한이 핵물질 일부라도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하거나, 영변핵시설 사찰을 허용하는 게 될 수 있다. 대북제재를 일부 풀 수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위의 인용문은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조선에 대한 제재를 변함없이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집해오던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방침을 변경하여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였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마련한 새로운 방침은 조선이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성실한 조치”를  취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한 조치”라는 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를 폐기하고 사찰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위의 인용문은 조선이 핵물질 일부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는 것도 “성실한 조치”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조선의 핵물질은 녕변핵시설단지에서 생산되는 것이므로,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하면 자동적으로 조선의 핵물질 생산량 및 보유량을 알 수 있으므로,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조미협상의 쟁점으로 된다.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조선에 대한 제재를 변함없이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집해오던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방침을 변경하여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였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회의를 소집하여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는 문제를 논의, 결정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던 날로부터 꼭 1년이 되는 2018년 11월 29일 전후에 백악관 각료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하면 제재를 완화한다는 새로운 방침이 그 회의에서 결정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방침을 조선에 제안하는 문제도 그 회의에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악관 각료회의의 결정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앤드루 김을 판문점으로 급파하였다. 2018년 12월 3일 판문점 통일각에 나타난 앤드루 김은 며칠 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결정된 새로운 방침을 조선측 인사들에게 제안하였다. 이것이 통일각 비공개접촉의 내막이다.   


3. 조선,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다

그런데 통일각 비공개접촉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조선은 앤드루 김을 통해 전달받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조선이 조미고위급회담이 개최되기를 고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을 여전히 무시하면서 응답을 주지 않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그런 사실을 잘 말해준다.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왜 거부했을까?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녕변핵시설단지 사찰허용에 상응하는 조치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이 요구하는 것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조선이 이미 실행한 비핵화조치들에 상응하는 조치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선과 미국이 동시적이고, 대등하고, 단계적인 조치들(synchronized, equivalent, phased measures)을 실행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조선에게 있어서, 그것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한 원칙이며, 일점일획도 변경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원칙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방침을 변경하여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조선이 받아줄 수 없는 전제조건을 꺼내놓았다.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해야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달아놓은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은 조선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이미 실행한 비핵화조치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따라서 새로운 제안은 동시적이고, 대등하고, 단계적인 비핵화의 원칙에 어긋나는 제안이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바로 그런 까닭에,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였던 것이다. <사진 3> 

2018년 12월 3일 통일각 비공개접촉을 마치고 빈손으로 워싱턴에 돌아간 앤드루 김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통일각 비공개접촉에 나온 조선측 인사들에게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였으나, 조선이 그것을 거부했다는, 자기들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사실을 지적하면서,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한 것은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는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미국 중앙정보국 지나 해스펄(Gina C. Haspel) 국장의 손을 거쳐 트럼프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었다. 그 보고서를 받아본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2018년 12월 11일부가 트럼프 대통령과 중앙정보국의 껄끄러운 관계를 들춰낸 보도기사를 실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정보국이 자신에게 보내오는 정보보고서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정보기관 분석가들은 자기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보보고와 다른 내용을 공식석상에서 발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엇갈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정보국의 정보보고를 “불신한다(distrust)”는 것이다. 또한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불신하는 정보보고들 가운데는 로씨야의 2016년도 미국 대선 개입사건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고, 조선의 핵포기의지(비핵화의지라고 해야 정확함)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고, 이란의 핵무기개발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고, 지구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고, 싸우디 아라비아 왕세자가 반대파 인사를 살해한 사건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비핵화의지에 관한 중앙정보국의 정보보고를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무슨 뜻인가? 

앤드루 김은 통일각 비공개접촉에서 조선측 인사들에게 제시한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조선이 거부한 사실을 두고,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보고내용을 불신하면서 여전히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면, 앤드루 김이 2018년 12월 말에 퇴임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4.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일어난 의견마찰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한 이후, 백악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인 2018년 12월 5일 또는 6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각료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제2차 조미정상회담 개최시기를 2019년 1월 또는 2월로 예측하는 발언을 꺼내놓았던 날이 12월 4일(화요일)이고, 미국 재무부가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추가제재를 발표한 날이 12월 10일(월요일)인데, 그 며칠 사이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각료회의가 진행되었고, 재무부가 각료회의 결정에 따라 대조선추가제재를 감행하였던 것이니, 백악관 각료회의가 열릴 수 있었던 날은 12월 5일 또는 6일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한 직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소집된 각료회의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각료들이 조선의 거부행동을 성토하는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평소에도 강경발언을 꺼내놓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 무누신 재무장관 등은 그날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조선에게는 애초부터 비핵화의지가 없었으므로 미국이 속은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면서, 조미협상을 포기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시끌벅적 떠들어댔을 것이다. 상황변화에 따라 요리조리 말을 바꾸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인 팜페오 국무장관은 격앙된 분위기를 살피며 말을 아꼈을 것이다. <사진 4>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달랐다. 그는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속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지적한 앤드루 김의 보고내용을 수긍하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각료회의에서도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는 각료들의 주장을 수긍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2018년 12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메시지에 올린 다음과 같은 메시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북조선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는데, 나는 우리가 (조미협상을) 서두르지 않고 있으며, 대단한 경제적 성공을 거둘 멋진 가능성이 (조선에게) 있다고 항상 대답하곤 한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그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자기 인민을 위하여 그 가능성을 충분히 이용할 것이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는 각료들의 주장에 동의하였다면, 위와 같은 트위터 메시지는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물론이고, 각료들도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는 판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왜 그런 주장을 수긍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조선의 비핵화의지를 부정하는 중앙정보국의 정보판단과 각료들의 주장을 수긍하는 순간, 자신이 2018년 한 해 동안 쌓아올린 조미협상의 모든 성과들, 그가 미국과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이 이룩한 훌륭한 외교성과라고 자찬해온 성과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 민주당을 비롯한 백악관 안팎의 반대파들로부터 집중공세를 받으며 시달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자찬해온 최고의 외교성과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경우 자기 정치생명이 급속히 단축될 수밖에 없는 위험이 닥쳐오게 될 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비핵화의지를 부정하는 중앙정보국의 정보판단과 각료들의 주장을 수긍하지 못하는 것이다. 

조선의 비핵화의지를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 사이에서 의견마찰이 생기면서 어수선하게 진행된 백악관 각료회의는 결국 조선에게 고강도 제재를 추가한다는 결정을 이끌어내고 끝났다. 그렇게 되어 미국 재무부는 백악관 각료회의의 결정에 따라 추가제재를 긴급히 준비하였고,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아침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던 것이다. 


5. 조선은 왜 보복을 자제하였을까?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12월 10일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선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며 조선을 자극하였으니, 이제는 조선이 그에 대응해 보복할 차례다. 조선은 어떤 보복조치를 취할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제재를 발표한 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2018년 12월 17일 현재까지, 조선은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 있었던 조선의 반응은 2018년 12월 13일 조선의 웹싸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실린, ‘시간은 미국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줄 것이다’라는 제목의 개인논평과 12월 16일 조선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이 발표한 담화밖에 없다.

개인필명으로 발표된 논평보다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담화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조선외무성이 담화를 발표한 형식이 이전과 좀 달랐다. 2018년 11월 2일 조선외무성은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유지방침을 비판하는 논평을 외무성 미국연구소 소장의 이름으로 발표하였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담화발표주체의 격을 연구소장에서 정책연구실장으로 한 급 낮춘 것이다. 또한 담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제재를 “악랄한 대조선적대행위” 또는 “도발적 망동”이라고 규탄하면서도, 발언수위를 조절하였다. 담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우리가 주동적으로 취한 비핵화조치들을 적극 환영하면서 미국이 이에 상응하게 화답해나올 것을 한결같이 요구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미관계개선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미국무성이 대통령의 말과는 다르게 조미관계를 불과 불이 오가던 지난해의 원점상태에로 되돌려 세워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관계개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 국무부는 대조선제재에 매달리고 있다는 조선외무성의 견해를 알 수 있다.  조선은 추가제재로 엄중한 사태를 일으킨 트럼프 행정부를 강경한 어조로 비판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담화는 강경한 어조를 자제하면서 미국이 “제재압박과 인권소동의 도수를 전례없이 높이는 것으로” 조선의 핵포기를 유도하려고 하면 “조선반도 비핵화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미국은 <최대의 압박>이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닫고 싱가포르 조미공동성명리행에 성실히 림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조선은 보복이 아니라 경고와 충고로 대응한 것이다. 

조선은 왜 보복하지 않고 경고와 충고로 대응한 것일까? 만일 조선이 보복하면 미국도 보복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제껏 진행되어온 조미협상이 완전히 파탄되고 보복의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그런 사태가 일어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보복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이색적인 모습은 트위터에 밤낮으로 열심히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 날부터 미국 언론매체들을 불신하면서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퍼뜨리고 있으며, 자기를 비난하는 미국 언론매체들과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 40여 년 동안 해마다 12월 중순에 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어온 언론인 송년회를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취소해버렸겠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인 송년회를 취소한 것은 그와 미국 언론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만일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보복조치를 취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하는 미국 언론계는 조미협상이 완전히 파탄되었다고 떠들어대면서 협상실패의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조선의 보복조치가 미국 언론계의 반트럼프공세를 본의 아니게 도와주는 사태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언론계의 반트럼프공세를 도와주는 것은 조선에게 손해만 안겨줄 것이다.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제재에 대해 보복하지 않고 경고와 충고로 대응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1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하원을 장악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연방하원을 장악한 기세를 몰아 탄핵결의안을 발의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연방하원에서 탄핵결의안이 통과되어도, 공화당이 장악한 연방상원에서는 통과되지 않을 것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을 받아 백악관에서 쫓겨날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만 탄핵결의안이 연방의회에 상정되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허약한 그의 정치생명을 급격히 단축시키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탄핵결의안이 연방의회에서 통과되지 않더라도, 탄핵결의안이 연방의회에 상정되어 미국이 발칵 뒤집히면,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없게 되고, 2020년 대선에도 출마하지 못하게 된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앞으로 2년밖에 남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안에 완료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업이므로 단계적으로 실현될 것이고, 따라서 추진시간을 요구한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에 재선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만일 트럼프가 아닌 다른 사람이 202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한반도의 비핵화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보복조치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단축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제재에 대해 보복하지 않고 경고와 충고로 대응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선의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고 조선을 자극하였지만, 조선은 미국과 또 다시 정면대결을 벌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보복을 자제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일념으로 보복을 자제하였고, 트럼프 행정부에게 제재를 완화하고 종전선언을 발표하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할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최종목표를 향해 난관과 혼돈을 뚫고 전진하는 조선의 발걸음은 가로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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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국의 추가 제재에 “비핵화 향한 길 영원히 막힐 수 있어” 반발

외무성 미국연구소 개인 필명으로 수위 조절…“우린 조미 관계개선 주장”
신종훈 기자 sjh@vop.co.kr
발행 2018-12-17 09:51:58
수정 2018-12-17 09: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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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자료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협상 교착상태에서 미국의 대북 '인권공세'가 다시 거세지자, 북한은 '비핵화로 가는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반발했다.
북한은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개인 명의 담화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담화는 "국무성을 비롯한 미 행정부 내의 고위 정객들이 신뢰 조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우리에 대한 제재압박과 인권소동의 도수를 전례없이 높이는 것으로 우리가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타산했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으며 오히려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에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것과 같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최대의 압박'이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닫고 싱가포르 조미 공동성명 이행에 성실하게 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담화는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고위정객들은 매일과 같이 우리를 악의에 차서 헐뜯었다"며 "(미 국무성·재무부는) 무려 8차에 달하는 반공화국 제재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에는 있지도 않은 '인권문제'까지 거들면서 주권국가인 우리 공화국 정부의 책임간부들을 저들의 단독제재 대상 명단에 추가하는 도발적 망동까지 서슴지 않는 등 반공화국 인권모략 소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자료사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자료사진)ⓒ뉴시스/AP
앞서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관리국(OFAC)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과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노동당 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 등 고위급 인사 3명에 대해 '인권 유린'을 거론하며 제재 대상에 추가한 바 있다.  
최근 미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인권회의 소집 시도, '인신매매국 자금지원 금지 대상' 재지정 등 대북 압박성 행보가 계속되자 북한이 침묵 기조를 깨고 강한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다만 개인 필명 형식을 통해 메시지 수위 조절은 유지했다.  
담화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미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며 "미 국무성이 대통령의 말과는 다르게 조미관계를 불과 불이 오가던 지난해의 원점상태에로 되돌려세워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는 신뢰조성을 앞세우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단계별로 해나가는 방식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해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13일에는 "우리는 미국이 허튼 생각의 미로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를 인내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개인 필명 논평을 통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바 있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뉴시스/AP

강정구 전 교수 “2018년은 탈냉전 평화통일시대의 서막”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57주기 추모식’ 후 강연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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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6  22: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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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57주기 추모식’이 16일 오전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고인의 묘역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57주기 추모식’이 16일 오전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고인의 묘역에서 진행됐다.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의 약력 보고에 이어 추도사가 진행됐다.
<조용수 평전>의 저자이기도 한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는 “25년 전 ‘조용수 평전’을 쓸 때 느낀 점은 조용수 사장이 돌아가실 때 모든 언론들이 침묵했다는 것인데, 최근에도 변함없이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고 있다”면서 “57년 전 민족일보가 제시한 4대 사시를 다시 추구하는 언론이 생겨 고인의 뜻을 기려야 한다”고 추모했다.
이어 원 기자는 고인의 묘 앞에 최근 발간한 <촛불민중혁명사>를 헌정해 눈길을 끌었다.
고인의 추모식 때면 꼬박 참가하는 재일동포 이춘웅, 임영웅 씨는 추도사에서 “최근 일본에서 고인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소개하고는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도 조용수 사장의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고 알렸다.
고인의 동생인 조용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유족을 대신해서 참배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조 이사장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난 최백근 선생이 얼마 전 묘를 망우리에서 마석 모란민주공원으로 이장했다”고 상기시키고는, 매년 겨울 최백근-조용수 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참배객들이 각각 오는데 내년부터는 참배객을 생각해서 서울에서 두 고인을 함께 추모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식에는 조용준 이사장과 가족들을 비롯해 박중기, 김영옥, 김준기 등 통일원로들,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일본지회 회원들 그리고 처음으로 참배 온 성남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특히, 이번 추모식에는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가 참여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최근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 추모식 후 참배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강정구 전 교수 “2018년은 탈냉전 평화통일시대의 서막”
  
▲ 추모식 후 식당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는 강정구 전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강정구 전 교수는 강의에서 “2018년은 탈냉전 평화통일시대의 서막”이라고 규정했다.
강 전 교수는 이전에도 6.15선언과 10.4선언이 있었는데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반도는 냉전구조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이전에는 남북 사이에 내적으로 탈냉전이 이뤄졌으나 외적 탈냉전이 북미 사이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4.27선언과 9.19선언에서 보듯 남북 사이에 내적 탈냉전이 일어났고, 특히 북미 사이에도 6.12성명으로 외적 탈냉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 전 교수는 내적 탈냉전의 경우 위로부터의 탈냉전과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탈냉전도 일어난 것을 강조했다.
즉, 내적 탈냉전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위로부터의 탈냉전이라면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박정희-박근혜 세력과 자유한국당이 몰락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탈냉전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이다.
강 전 교수는 “이처럼 올해 내적인 탈냉전이 위와 아래로부터 일어나고 또 외적 탈냉전도 일어나게 된 근거는 촛불혁명과 북측의 ‘핵무력 완성’”이라고 정리했다.
강 전 교수는 “촛불혁명이 가져다 준 현 상황은 천재일우의 기회이자 경천동지할 변화”라고는 “이 기회와 변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탈냉전 평화통일시대를 맞이하자”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