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3일 수요일

‘대장동 의혹’ 김만배·남욱 구속…‘윗선’ 수사 탄력 붙나

 등록 :2021-11-04 00:39수정 :2021-11-04 02:34

정민용은 영장 기각…“도망·증거인멸 염려 없어”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왼쪽)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가운데) 변호사,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이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왼쪽)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가운데) 변호사,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이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가 구속됐다.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김씨와 남 변호사의 구속으로 이들의 배임과 뇌물 혐의를 둘러싼 ‘윗선’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은 지난 1일 김씨와 남 변호사, 정 전 실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사팀은 이들 세 사람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공모해 택지분양 및 아파트 분양 등으로 최소 651억원의 추가이익을 거뒀고, 그만큼 공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구속 기소한 유 전 본부장에 대해서도 김씨에게 적용한 액수와 동일한 배임 혐의를 적용해 1일 추가기소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2일에도 김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당시 법원은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서울중앙지법 서보민 영장전담부장판사는 4일 새벽 12시30분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등의 혐의를 받는 김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남 변호사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심리한 문성관 영장전담부장판사도 같은 이유로 남 변호사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정민용 전 실장에 대해선 “도망이나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특혜·로비 의혹의 핵심에 있는 김씨와 남 변호사가 구속되면서 정관계·법조계 로비 의혹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 이른바 ‘50억원 클럽’에 등장한 유력 인사는 물론, 대장동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였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등으로 검찰 칼끝은 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검찰은 조만간 곽 의원을 불러 화천대유가 아들 곽아무개씨에게 퇴직금 명목 등으로 50억원을 전달한 경위와 이 돈의 대가성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7873.html?_fr=mt1#csidxdd1e4f2bb920c5eb8c2c1e437be5ee0 


시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자주·통일 달고나’...민족자주농성 3일 차

 

신은섭 통신원 | 기사입력 2021/11/0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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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자주농성단 참가자들은 시민들에게 ‘자주·통일 달고나’를 만들어 주고 있다. 시민들은 달고나를 먹으며 선전물을 유심히 읽는다.   © 신은섭 통신원

 

▲ 광화문을 지나던 노신사가 농성단에 들러 자주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었다. 손에는 달고나가 들려있다.   © 신은섭 통신원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준비위원회(이하 민족위 준)는 지난 1일부터 미 대사관 인근에서 미국에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한미일 3각 동맹 해체, 미국산 첨단무기 강매 반대’를 촉구하며 ‘민족자주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3일째인 3일 정오에 농성 참가자들이 미 대사관 인근에 모였다. 농성은 오후에만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먼저 1인 연설,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신은섭 참가자는 1인 연설에서 “한미는 11월 1일부터 ‘전투준비태세 종합훈련’이라는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이 훈련에는 주요 군사시설을 선제 타격할 수 있는 한국군의 전략무기로 평가받는 F-35A도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번 훈련의 대북 적대시 성격이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이 입으로는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본심은 대화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미국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즉각, 영구히 중단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 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농성단 참가자.   © 신은섭 통신원

 

▲ 농성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연설을 하며 시민들에게 미국의 본질을 알려내고 있다.   © 신은섭 통신원

 

‘자주·통일 달고나’는 시민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선전물을 구경하던 한 시민은 달고나를 손에 든 인증 사진을 남기기도 하였다.

 

선전물을 유심히 살펴보던 한 시민은 농성 참가자에게 다가와 “자주는 진보 운동에서 중요한 근본 문제다. 자주가 없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도 이야기할 수 없다. 자주를 위해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여러분을 응원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용산에서 온 김은희 참가자는 3일째 농성을 마무리하면서 “미국이 지금 군사훈련을 하고 있지만, 바이든이 고민이 많을 것이다. 입으로는 조건 없는 대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군사훈련을 하는 앞뒤가 다른 그 모습을 딱지치기라는 상징 의식으로 심판하고 싶었다”라고 딱지치기 소감을 남겼다. 

 

용인에서 온 권말선 참가자는 “달고나 모양을 완성한 것처럼 한반도의 자주, 민주, 평화통일을 완성해서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 신은섭 통신원

"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 선고 받은 강도영 씨

56세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한 가정에 닥친 비극을 다룬 기사. 아버지는 코에 삽입된 호스를 통해 음식물을 섭취했다. 온몸이 거의 마비됐으니 아기처럼 기저귀를 찼다. 폐렴으로 호흡 곤란이 올 수 있어 누군가 곁을 지켜야 했다. 욕창 방지를 위해 두 시간마다 누운 자세도 바꿔줘야 했다.


22세 아들은 아버지 돌보기를 포기하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는 존속살인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금세 여러 매체가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포털사이트에는 댓글 수천 개가 달렸다. 누구는 "인간의 도리를 어긴 패륜"이라 비난했고, 어떤 이는 "누가 이 청년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고 연민했다. 비난과 연민, 분노와 안타까움은 서로 뒤엉켜 오랫동안 싸웠다. 기사를 읽고 궁금했다. '왜 죽였지?', '22세 아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저런 선택을 했지?' 


가난한 처지에서 기약없이 아버지 돌보는 게 막막했다는 내용은 기사에 담겼지만, 허전했다. 모든 매체의 기사는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청년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공공기관은 왜 돕지 않았는지, 가난의 정도는 어느 정도였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익명 처리된 판결문을 받고, 고양시 법원도서관에서 실명 판결문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굶어 죽은 집에 갔고, 치료 받았던 병원을 찾았다. 청년의 친척과 주변 사람을 만났다. 발로 찾은 사실의 조각과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구속된 청년의 이야기, 이제 풀어놓는다.


 119구급대원이 다급하게 전화한 때는 일요일 오후였다.


"아버님께서 목욕탕에서 쓰러졌습니다. 빨리 A병원으로 오십시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다. 의사는 뇌출혈로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며 동의서를 내밀었다.


"비싸지만 생명 살릴 가능성 높은 수술이 있구요. 비용은 덜 들지만 생명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술이 있습니다. 어느 걸로 하시겠습니까?"

 

아들 강도영(가명)은 수술을 선택했다. 일단 아버지(56세)를 살려야 하니,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 강 씨는 몰랐다. 자신은 이미 외통수에 걸렸다는 걸, 자기든 아버지든 둘 중 한 명은 죽어야만 끝나는 간병 전쟁이 시작됐다는 걸 말이다.


간병노동이 무엇이지, 가난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모든 걸 알기엔 강도영은 많이 어렸다. 아버지가 쓰러진 2020년 9월 13일, 그는 공익근무를 위해 대학을 휴학한 21살이었다.


수술 후 아버지 의식은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몸은 어제와 완전히 달랐다. 코에는 호스가 연결됐다. 음식을 씹고 삼키고 소화시키는 능력을 잃어 누군가 호스로 음식을 주입해야 했다. 아버지 성기에도 '소변줄'이라는 호스가 연결됐다. 기저귀도 찼다. 타인이 소변과 대변을 치워줘야만 했다. 스스로 약간이나마 움직일 수 있는 신체는 오른쪽 팔과 다리뿐이다.


"평생 누워 지내셔야 합니다. 욕창 생기지 않게 2시간마다 체위도 바꿔줘야 하구요. 회복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의사 말을 곱씹자 눈앞이 캄캄했다. 무릎도 저절로 꺾였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됐다"는 현실이, 120kg에 이르는 자기 몸무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직후, 아들 강도영은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집안 청소를 게을리 했다. ⓒ오지원

대구시 수성구 OO동에 있는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30만 원 집에 도착해선 한동안 불도 켜지 않았다. 캄캄한 집에 가만히 서 있으니, 이제 정말로 이 세상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엄마가 강도영에게 말했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밥 먹고 기다리고 있어."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엄마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얼굴 본 적도 없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 강도영을 맞아준 건 오늘처럼 불꺼진 거실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고 밤 12시께 들어왔다.


겁이 많은 강도영은 언제나 불을 켠 채 혼자 잤다. 그게 버릇이 돼 지금도 불을 끄면 불안해서 눈을 감기 어렵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기저귀를 차고, 영원히 일어설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그날도 불을 켜고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눈앞이 어린시절의 거실처럼 캄캄했다.


아버지는 해고된 공장 노동자였다. 해고 기간엔 일주일에 이틀 정도 일당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다 다시 자동차 부품공장에 들어갔다. 월급은 약 200만 원, 어떻게든 둘이 살 순 있는데 1개월여 만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수술비, 병원비, 간병비는 어떻게 하지…'


눈앞처럼 가슴도 까맣게 탔다. 코로나19 탓에 병원 면회는 금지됐다. 바이러스가 아니어도 강도영이 간병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병원은 중증 환자의 간병을 교육받지 않은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돈을 벌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다. 사장님들은 강도영의 뚱뚱한 몸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돈을 버는 건,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첫 달은 아버지가 일한 1개월 월급으로 어떻게 버텼다.


 돈은 조금씩 바닥나고, 쌀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월세, 가스비, 전기료, 통신비, 인터넷 이용료 등 돈으로 처리해야 하는 모든 게 연체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A병원에서 2020년 9월 13일부터 올해 1월까지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병원비가 약 1500만 원 청구됐다. 강도영이 평생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이었다. 고모 두 분이 계셨지만 연락 끊긴 지 오래였다. 아버지와 14살 차이 나는 막내 삼촌에게 부탁했다.


삼촌이 돈을 마련했다. 형편이 넉넉해서 통장에서 인출한 돈이 아니었다.


 "도영아, 삼촌 이거 퇴직금 중간정산해서 받아온 돈이야. 네 숙모 모르게 진행한 일이다. 이거 들키면 삼촌 이혼당할 수도 있어."


미안하고, 괴롭고, 고마웠다. 삼촌도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 뒤 삼촌은 경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저는 사실 형이 결혼한 줄도 몰랐고, 형수 얼굴 본 적도 없습니다. 조카 강도영은 아주 가끔 할아버지 제사 때 봤을 뿐입니다."


아버지를 비용이 그나마 덜 드는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요양급여도 받을 수 없었다. 한국의 요양급여는 65세 이상에게만 적용된다. 아버지는 이제 겨우 56세다. 결국 다달이 나오는 요양병원비와 간병비를 또 삼촌이 냈다.


아버지는 가을과 겨울과 봄을 병원에서 보냈다. 삼촌 통장은 바닥났다. 퇴직금을 중간정산 해 평소 왕래 없던 형의 병원비로 썼다는 사실을 숙모가 알게 됐다. 가정 불화가 시작됐다. 삼촌에겐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둘 있었다.


"도영아, 이젠 삼촌도 도와줄 수 없다. 아버지 퇴원시켜야겠다." 

꽃 피는 3월, 삼촌은 많이 괴로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도영은 할 말이 없었다. 멍하게 삼촌을 바라봤다. 삼촌 눈은 이미 붉어졌다.


 

▲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 후 누워 생활했던 집 안방의 모습. ⓒ오지원

강도영은 이미 월세 3개월을 밀렸고, 이용료를 못내 전화기와 집 인터넷도 끊겼다. 도시가스도 끊겨 난방도 요리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젠 집에로 아버지를 모셔와 콧줄로 음식을 주고, 대소변을 치우고, 2시간마다 체위를 바꿔주는 간병노동도 해야 한다. 

강도영은 용기를 내 집주인 할머니를 찾아갔다.


 "월세 30만 원 세 번 총 90만 원 밀렸는데, 10만 원만 더 빌려줄 수 있을까요? 보증금에서 100만원 제하는 걸로 하구요. 부탁드립니다."

집주인 할머니가 10만 원을 줬다. 그걸로 급하게 집 인터넷부터 살렸다. 그렇게 와이파이를 이용해 다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한 편의점 면접에서 처음 보는 사장님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쓰러졌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집 월세도 내야 하고, 아버지 병원비도 벌어야 합니다. 저는 전화기도 끊겼습니다. 일 좀 시켜 주십시오."

 

사장님은 일을 시켜줬다. 시급 7000원.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오후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12시간 노동. 인터넷을 살리고 일을 시작했지만, 끊긴 식량과 배고픔은 해결되지 않았다.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나서 폐기해야 하는 편의점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래도 배가 고팠다. 따뜻한 밥이 먹고 싶었다. 전기는 아직 살아 있으니 전기밥솥으로 밥을 할 수 있었다. 힘들게 살린 카카오톡으로 3월 24일 새벽 4시 28분에 삼촌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삼촌 저 월급날이 15일인데요. 생활비가 없습니다. 10만 원만 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전화가 안 되는데요. 문자 남겨 주시면 제가 답 드리겠습니다."


잠을 자는지 삼촌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6시간 뒤인 오전 8시 28분에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부탁할 사람이 삼촌밖에 없어요. 쌀이라도 살 수 있게 2만 원이라도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월급 나오면 바로 갚을게요."

 

▲ 22세 강도영 씨는 아버지가 쓰러지고 간병을 책임지면서부터 무기력에 시달렸다. ⓒ오지원

얼마 뒤 삼촌은 쌀, 라면, 즉석카레, 즉석짜장, 간장 등을 사왔다. 강도영은 간장에 밥 비벼 먹으며 약 1개월을 살았다. 알바를 더 알아보려면 살을 빼야 했는데, 탄수화물과 즉석 식품만 먹으니 살이 더 쪘다. 4월 8일 새벽, 요양병원에서 긴급연락이 왔다.


 "아버님 호흡 곤란이 와서 지금 급하게 A병원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그날 강도영과 삼촌은 괴로운 합의를 했다. 아버지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안타깝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마음을 굳게 먹고 병원 담당 의사에게 말했다.


 "아버지 연병치료를 중단해 주십시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의사가 답했다.


"아버님 상태가 다시 좋아졌습니다. 연명치료 중단 요건에 해당하지 않구요. 계속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의사에게 강하게 말했다.


 "병원비가 없다구요! 아버지를 퇴원시키겠습니다. 집에 가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지금 나가면 아버지가 위험하다, 대소변 치우고 식사 제공하는 일을 훈련도 받지 않은 아들이 할 수 있겠느냐"며 반대했다. 아버지는 다시 요양병원보다 비싼 A병원에 입원했다. 병원비 걱정이 머리와 가슴을 지배했다. 강도영은 자기를 받아준 편의점 사장님을 찾아갔다.


 "아버지 병원비를 내야 합니다. 또 응급치료를 받아서요. 월급을 미리 땡겨 줄 수 있을까요?"


사장님은 본사 원칙 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온 세상이 벼랑끝처럼 느껴졌다. 병원에 다시 강하게 요청했다. 정말 돈이 없다고, 아버지 퇴원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나가겠다고. 어눌하게 말할 수 있게 된 아버지도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강도영 씨는 퇴원 이후의 일에 대해 병원 측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퇴원 허가를 받았다. 병원비는 또 삼촌이 냈다. 수술비, 입원비, 요양병원비, 간병비… 삼촌은 약 2000만 원을 병원비로 썼다.


 거의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대중교통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했다. 사설 응급차를 불렀다. 비용이 8만 원 나왔다. 이 돈도 삼촌이 냈다. 삼촌은 아버지가 먹어야 하는 죽으로 된 식사캔, 기저귀 등을 사줬다. 복잡한 마음 때문에 자기 형의 얼굴은 보지도 않았다.

 

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 아버지와 강도영은 4월 23일부터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제 아버지의 삶은 오로지 강도영의 손에 달렸다. 죽 형태의 식사를 콧줄에 넣고,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고, 2시간마다 자세를 바꾸고, 마비된 팔다리를 주무르고…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간병노동을 22살 강도영이 감당해야 했다.


가스가 끊기고 월세가 밀린 단독주택 2층 집에서 말이다. 둘의 휴대전화도 모두 끊긴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돈은 없는데, 돈을 요구하는 곳은 많고, 돈을 써야 하는 곳은 천지였다.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때로는 죽고 싶었다.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고 마비된 몸 마사지하던 어느날, 아버지가 아들에게 작게 말했다.


 "도영아, 미안하다.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라. 필요한 거 있으면 아버지가 부를 테니까, 그 전에는 아버지 방에 들어오지 마."


▲ 뇌출혈로 쓰러져 누워 생활한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부를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지원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면 그 시간에 혼자 집에 있는 아버지가 걱정됐다. 일에 집중 못했고, 사장님 인내도 바닥났다. 5월 2일 알바를 그만 뒀다. 편의점을 떠나면서 사장님에게 다시 부탁했다.


"15일에 나오는 급여를 미리 받을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사장은 곤란하다고 했다. 강도영은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의 심정을 편지에 적어 <셜록>에 보냈다. 

"세상이 너무 막막했고 집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한 채 집앞에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당장 기저귀와 소변줄 교체 등 나갈 돈은 많았는데 막막하고, 좌절감, 또 무능력한 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너무 컸습니다."


강도영은 아버지가 들어오지 말라고 한 그 방에 5월 3일 밤 들어가봤다.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강도영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에 담겨 있다.

 

"피고인(강도영)은 피해자(아버지) 방에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피해자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에게 물이나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피고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바라봤고, 강도영은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그 후 아버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강도영은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외부의 도움 없이 굶어 죽어가는 동안 그는 자기방에서 울며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모든 걸 포기했는지 집도 치우지 않았다.
 

강도영은 5월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새벽 꿈을 꾸었고, 그 내용을 편지에 적었다. 


"아버지가 멀쩡하게 걸으시며 청소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놀라서 아버지께 '괜찮아?'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괜찮다. 빨리 씻어. 청소 끝나면 아빠랑 시내 가서 영화도 보고 돈가스도 먹고 아들 좋아하는 책도 사자'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8시 강도영은 아버지 방문을 열었다. 대변 냄새와 함께 무언가 부패한 냄새가 났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방바닥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코밑에 손을 댔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119에 연락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 아버지와 아들 강도영이 살던 집 모습. 강 씨 부자는 이 집 2층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을 내고 살았다. ⓒ오지원

강도영은 도망가지도 않고 집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강도영은 <셜록>에 보낸 편지에 평생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걸 적었다.


 "그저 남들처럼 아버지, 어머니, 저 이렇게 셋이서 저녁 때 마주보고 밥을 먹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겐 그저 하루의 한 순간이지만 저와 같은 사람에겐 제일 간절하고 꼭 얻고 싶은 순간입니다."

 

꿈을 이루고 싶었던 집, 꿈이 실현되지 않은 집, 아버지가 조용히 죽은, 혼자 울면서 시간을 보낸 집… 그 집을 강도영은 끝까지 지켰다. 119 대원은 경찰과 함께 왔다. 강도영은 집에서 체포됐고 경찰과 함께 집을 떠났다.


지난 8월 13일 대구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이상오)는 존속살해 혐의로 강도영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강도영은 유기치사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2심 선고는 11월 10일 내려진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1031421261454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차별금지법’ 힘 싣는 여당, 국회 입법 논의 탄력 받나

 

대표발의자 권인숙·박주민·이상민·장혜영 공동 기자회견, 여야 대선주자에게 ‘입장 표명’ 요구

정의당 장혜영(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상민, 권인숙 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1.11.03.ⓒ뉴시스/공동취재사진

21대 국회에서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한 4명의 국회의원이 3일 한자리에 모여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법안을 논의하자”고 호소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국민의 찬성 여론이 높은 만큼, 더 이상 국회가 외면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정기국회 회기는 오는 12월 9일까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차별금지법을 검토해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불어민주당도 제정 논의에 전향적인 입장을 내비친 상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정치권의 기류가 여느 때보다 긍정적인 만큼 국회의 차별금지법 논의도 탄력받을지 주목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여야 대선 주자에게 입장 촉구

정의당 장혜영, 더불어민주당 이상민·권인숙·박주민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에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에 관한 논의에 착수하자고 제안했다. 네 의원이 각각 발의한 차별금지법·평등법은 명칭은 다르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하는 내용의 골자를 같이 한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연 배경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이뤄야 한다”며 “더 이상 법안 논의를 미룰 수 없단 절박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민주당에서 처음 ‘평등법’을 발의한 이상민 의원은 “헌법 규범에 맞게끔, 우리가 바라는 그 이치에 맞게끔 세상을 좀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라며 “일부 특정 그룹에 속하는 분들은 이 법에 대해서 ‘사회풍속을 저해한다’ 등 말하는데, 그 말 자체가 차별적이고 매우 삐뚤어진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 법의 주무 국회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합의가 안 돼 (논의) 안건으로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청회도 잘 안 되고 있다. 정말 부끄러워할 일 아닌가”라며 “법사위에서 빨리해 달라. 해줄 뜻이 없으면 국회의원 전원이 모이는 ‘전원위원회’에다가 회부해 전체 의원들의 토론에 부치자”고 제시했다.

전원위는 주요 의안에 대해 본회의 상정 전이나 본회의 상정 후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할 때 소집되는 회의체다.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한 가운데 법안을 심사한다. 이 의원은 “사회적 공론화를 해서 이 법이 뭘 막는지, 이 법 때문에 무슨 피해를 주는지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이 여실하게 드러나도록 토론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아가 이 의원은 여야 대선 주자들에게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밝혀 달라”고 말했다. 그는 “못할 거 없다 회피하지 마시라”라며 “후보들이 정면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줘서 국민의 심판을 받길 바란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차별금지법 공약화를 제안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의원은 “아직 이 후보와 얘기는 안 해봤다”면서도 “기회가 되면 그렇게 (공약화 제안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 박주민 의원은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성립돼 법사위에 회부된 사실을 상기하며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내 상황은 거의 변함이 없는 거 같다”고 답답해했다. 박 의원은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국민의힘과 다른 정당들에 법사위에서 평등법 제정 관련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고 말했다.

권인숙 의원도 “(발의된) 4건의 법안이 체계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개별법으로 구제하기 어려웠던 차별의 사각지대를 포괄하고 실질적인 평등을 구현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반론을 제기하지만, 사회적 합의는 진작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월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5%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에 권 의원은 “국민 10명 중 9명이 찬성한 것”이라며 “개신교 안에서도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보다 높다. 이 법에 어떤 합의가 필요하단 건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첫 발의자 장혜영 “칼자루 쥔 건 민주당”

지난해 6월 21대 국회에서 첫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장혜영 의원은 “부당한 차별로부터 시민을 지켜낼 책무는 여야 대소를 막론한 모든 정당의 책무”라면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스스로 원하는 거의 모든 법안을 야당의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단 것을 여러 번 보여줬다”며 “국민의힘이 만일 (차별금지법에 대해) 또다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상식적인 법안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면 그 억지를 단호히 돌파해낼 책임은 다름 아닌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 있다. 국민의힘의 핑계를 대면서 이 책임을 더 이상 미루는 건 용납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당론으로 굳히는 것엔 소극적인 입장이다. 다만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정기국회 안에 논의를 공론화하는 작업을 할 생각”이라며 “여야 정책위가 주도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4일 예정된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정세현,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보다는 남북연합을 목표로.."

 

민주평통 토론회서 '통일부 명칭 남북관계부로 바꾸는게 바람직' 주장도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11.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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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보다는 남북연합 형성을 당면목표로 설정해야 하며 통일부 명칭도 남북관계부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6월 민주평통 창립 40주년 기념 포럼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통일뉴스 자료사진]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보다는 남북연합 형성을 당면목표로 설정해야 하며 통일부 명칭도 남북관계부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6월 민주평통 창립 40주년 기념 포럼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통일뉴스 자료사진]

'통일부' 명칭을 '남북관계부'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쟁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2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이석현, 사무처장 배기찬)가 주최한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 기조연설(남북한 UN동시가입의 의미와 통일관련 발상의 전환 필요성)에서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Unification)보다는 '남북연합'(Korean Union, KU) 형성을 당면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1991년 9월 18일 유엔동시가입으로 남북은 '두개의 코리아'(Two Korea)를 기정사실화했으며, 이때부터 국제법적으로는 이미 별개의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통일이 곧 될 것 같은 전제하에 남북관계를 논하거나 통일교육을 하는 것은 사실상 모순이라는 것.

또 그해 12월 13일 체결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총리 연형묵'가 서명하였는데, 분단 43년만에 정식 국호와 서명자의 공식 국가직책이 명기된 정부간 공식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남북은 국제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실상 통일보다는 상호체제인정, 평화공존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6.15남북공동선언 제2항에 명시된 '남측의 남북연합제'는 학술적으로 '국가연합'(Confederation)이며,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도 연방(Federation)보다는 국가연합(Confederation)에 가까운 남북관계 지향을 드러낸 개념이라고 풀이했다.

"2000년 6월 시점에서도 북한은 당장 실현불가능한 통일보다는 국가연합 형태의 남북관계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아래 올해 1월 8차당대회를 통해 당 규약 중 '당의 당면목적' 규정이 대폭 개정되었다고 짚었다.

남한 적화 또는 공산화 통일로 인식되었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표현을 삭제하고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으로 수정한 것 등은 결코 돌발적인 변화가 아니라 "남북간 국력격차가 시간에 비례하여 커져가는 상황에서는 당분간 통일은 접어두고 남북이 별개의 국가로 각자도생할 수 밖에 없다는 북한의 중장기적 전망과 전략방침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결국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북한의 대남 경계심이 커진 상황에서 경제공동체-사회·문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면서 통일(정치공동체)의 기반을 닦아 나가려 해온 기존 남한의 통일정책은 이제 전면 재검토와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따라서 "차기 정부는 이러한 전후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실용적이고 실천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전략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정 전 장관은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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