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하림의 노래·제안으로 시작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용광로 추락사 20대 청년 추모한 시를 읽고 밤새 달려간 사고 현장 1600도 쇳물에 뼛조각 몇개만 남아
지난 10년간 되풀이되는 사고에도 한해 추락사 376명, 변함없는 현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청원 10만 ‘그 쇳물’은 현재 상징물 형태로 보존 마음 모으면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2010년 9월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에서 용광로에 떨어져 숨진 노동자를 위한 입관식이 열리고 있다. 사흘을 내리 식힌 쇳물 위에서 바스러질 듯한 뼛조각을 수습해 입관식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챌린지)’에 많은 시민이 동참했다. 챌린지를 제안하며 가수 하림이 부른 노래는 10년 전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 용광로에 떨어져 숨진 20대 청년노동자를 추모한 시(‘그 쇳물 쓰지 마라’)를 가사로 삼았다. 당시 사고 현장을 취재한 임지선 기자도 ‘함께 부르기’에 참여했다. 임 기자는 당시 경찰과 함께 사고 용광로에 진입해 현장의 참혹함을 기사로 전했다. 그가 10년 전 취재수첩을 다시 열며 챌린지에 동참한 까닭을 썼다.‘그 기사’(<한겨레> 2010년 9월11일치 ‘쇳물 식은 자리에 뼛조각들…눈물의 입관식’)의 계기가 된 한 편의 시가 10년 만에 한 곡의 노래로 재생됐다. 그 노래를 듣고 부르며 나는 10년 전 취재수첩을 다시 펼쳤다.2010년 용광로(정확한 명칭은 ‘전기로’이나 이 기사에서는 ‘용광로’로 쓰기로 한다) 추락 사망 노동자를 기리며 한 누리꾼이 썼던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는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나를 사고 현장으로 이끌었다. 그 시에 곡을 붙여 2020년 가수 하림이 부른 노래는 그때 그 취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후진적 산재 사고로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 기자가 더 집요하게 취재하고 써야 한다고, 시와 노래가 말하고 있다.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시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2020년 9월,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에서 한 영상과 마주했다. 영상 속에서는 가수 하림이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요즘도 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 일하다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를 만들고 함께 부르는 캠페인을 만들었다”며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챌린지)’를 제안했다. 노래를 듣는 순간, 10년 전 직접 사고 현장인 용광로 안에 들어서며 느꼈던 열기가 얼굴에 훅 끼치는 듯했다.‘함께 부르기(챌린지)’ 참여를 위해 처음으로 직접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찍고 보니 어색하기 그지없어 열번을 넘게 찍고 또 찍었다. 영상은 자기소개로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댓글 시가 붙었던 바로 그 사건, 10년 전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에서 벌어졌던 용광로 추락 사고를 현장에 가서 직접 취재했던 <한겨레> 임지선 기자입니다.”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의 함께 부르기를 제안한 가수 하림.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빈 관 놓인 장례식장에 도착하다
2010년 9월9일 비가 내려 쌀쌀한 가을밤, 나는 무작정 충남 당진으로 향했다. 서울의 강남 지역을 담당하는 사회부 기자였던 내가 팀장과 의논해 퇴근길 목적지를 바꾼 것은 시 한 편 때문이었다. 시는 이틀 전인 9월7일, 사고가 발생한 당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단 네줄짜리 스트레이트 기사에 댓글로 붙어 있었다. 당시 기사 전문은 이러했다.“7일 오전 2시께 충남 당진군 석문면 모 철강업체에서 이 업체 직원 김모(29)씨가 작업 도중 용광로에 빠져 숨졌다. 동료 A(31)씨는 ‘김씨가 5m 높이의 용광로 위에서 고철을 넣어 쇳물에 녹이는 작업을 하던 도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고 말했다. 용광로에는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어 김씨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업체 관계자 등을 상대로 안전관리 소홀 여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사고 당일 밤, 아이디 ‘alfalfdlfkl’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노출된 기사에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를 남겼다. 해당 댓글에만 답글이 400개가 넘게 달렸다. 차가운 스트레이트 기사에 달린 뜨거운 댓글에 사람들은 비로소 눈물이 났다고 했다. 훗날 이 시를 쓴 이는 ‘제페토’라는 필명으로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집을 엮어내기도 했다.2010년 한해에만 일터에서 사고로 숨진 사람이 1931명, 그중 추락사만 417명(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 기준)에 이르렀다. 사고 기사의 말미에는 ‘경찰이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는 문장이 붙곤 하지만 정작 그 경위 조사가 끝날 즈음 관심 갖는 이는 많지 않다. 끔찍한 사고임에도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댓글 시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지 않았다면 이 사고 역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시를 보고 무작정 당진으로 달려갔지만 사고가 난 회사 이름도, 장례식장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정께 도착해 수소문 끝에 장례식장을 찾았다. 빗줄기는 더 거세져 있었다. 장례식장은 빈 관을 가져다 놓은 채 차려져 있었다. 사고가 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섭씨 1600도 용광로에서 산화한 그의 몸을 찾을 길이 없어서였다. 가을비에 몸은 떨리고 섭씨 1600도의 열기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빈 관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텅 빈 눈을 하고 있는 부모와 누나들을 보니 차마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숨진 김씨는 막내아들이었다. 조용히 조문을 하고 나오려는데 그의 누나가 물었다. “우리 동생 친구인가요?” 만 29살. 그와 나는 동갑이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작업복을 입은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퍼붓는 비를 바라보며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다음날은 사고가 난 용광로를 식힌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제야 용광로 온도가 진입할 수 있을 만큼 떨어져 경찰이 출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고 장소가 철강회사 안 공장이기에 회사의 허가 없이 접근하기란 불가능했다. 경찰차를 얻어 타고 과학수사대 장화까지 빌려 신은 끝에 사고 현장에 잠입했다. 용광로 바로 앞에서 기자임이 들통나 회사 관계자와 실랑이를 벌이고서야 사고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다. 추락사가 발생하는 노동환경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여 닿은 죽음의 장소였다.
밴드 두번째달이 참여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두번째달 유튜브 갈무리
용광로 들어가 발견한 타다 남은 유골 조각
경찰과 함께 진입한 용광로 안은 여전히 뜨거웠다. 빌려 신은 고무장화가 녹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 용광로 안으로 들어가니 섭씨 1600도로 이글대던 15t의 쇳물이 식어 허연 쇳가루만 가득했다. 쇳가루 위엔 손이 닿으면 바스러질 듯한 뼛조각 몇개가 흩어져 있었다. “사람이 섭씨 1600도의 쇳물에 떨어지게 되면 일단 그 온도에 몸이 곧바로 타게 되는데, 고인의 경우 가장 두꺼운 다리뼈와 두개골 정도가 일부 남은 듯합니다.” 함께 들어간 과학수사 담당 경찰의 설명이었다.용광로 밖에는 유족들이 서 있었다. 작디작은 유골을 조심스레 떠내는 경찰을 보고 있던 김씨의 부모와 누나들이 오열했다. 야근조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출근을 했던 아들, 사고 소식만 남기고 주검도 볼 수 없게 된 동생이 부서지기 직전의 뼛조각으로 돌아왔다. 용광로 앞에서 입관식이 진행됐다. 하얀 창호지를 깐 관 안으로 유골 조각이 들어갈 때 모든 기계의 가동이 중단된 공장에서 유족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29살 청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7일 새벽, 김씨는 여느 때처럼 작업복 차림으로 용광로 주변에서 일하고 있었다. 4조 3교대로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그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했다. 이 회사에서는 하루에 100t 분량의 고철을 용광로에 넣어 7~8차례 녹여냈다. 하루 세번 20여분씩 ‘스프레이 보수 작업’이라는 정리 작업도 진행했다. 용광로에 15t의 쇳물만 남긴 뒤 위쪽 뚜껑 주변에 낀 자잘한 쇳조각들을 용광로 안쪽으로 넣거나 밖으로 빼내는 작업이었다.2층 높이의 용광로 뚜껑 주변에는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었다.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허술한 쇠사슬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뚜껑 주변 이물질이 잘 제거되지 않아 팔을 뻗다가 섭씨 1600도 열기가 잠깐이라도 얼굴에 훅 끼치면 누구라도 순식간에 정신을 잃게 된다. 사고가 나던 날 새벽 1시20분께 어김없이 스프레이 보수 작업이 시작됐다. 새벽 1시40분 김씨의 동료는 김씨가 철근 조각을 치우려고 파이프를 들고 애쓰는 모습을 봤다. 잠깐 뒤 쳐다봤을 때 김씨는 쇳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동료들은 김씨가 빠진 사실을 알고도 이글대는 용광로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김용균재단이 참여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김용균재단 유튜브 갈무리
후진적 산재, 중대재해 기업 처벌하라
2010년 당시에도 죽음의 과정이 보도된 뒤 여론이 들끓었다. 노동·보건의료 분야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산재 사망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큰 변화는 없다. 당시 기자회견에 나섰던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최근 전화통화에서 “지난 10년 동안 철강회사나 조선소 등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현장에 대해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왔지만 큰 변화 없이 안타까운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용광로 추락 사고가 반복되자 기업들 사이에서 유족과의 합의 방식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됐지만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2015년 인천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가 쇳물에 빠져 숨졌을 때도 안전난간 등 기초적인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안전보건공단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제대로 된 난간 없이 쇠사슬 하나 걸쳐 놓은 공장에서 추락사는 계속됐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해 일터에서 사망한 사람은 2142명, 그중 추락사가 376명(2018년 기준, 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에 이른다.“대표적인 후진적, 재래적 산재인 추락사가 매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아주 기초적인 안전 조치만 취해도 예방이 가능하고, 돈도 많이 들지도 않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은 것이 지난 10년의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산재 사망은 ‘살인’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의 말이다. 그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왔다.노래로 만들어진 ‘그 쇳물 쓰지 마라’는 가수 하림의 제안 이후 많은 정치인과 예술인 등의 참여로 함께 불리고 있다. 노래와 더불어 산재 발생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관심도 퍼져나가고 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제기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최근 서명 인원 10만명을 돌파했다. 김 이사장은 2018년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다. 정의당은 제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상윤 대표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결국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한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당진시립예술단이 참여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당진시립예술단 유튜브 갈무리
그 쇳물은 결국 쓰였을까, 알아보니…
거듭되는 산재에 지지부진한 변화라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공감대’의 힘은 크다.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가 퍼지고 노래가 불리는 사이, 그 쇳물은 어찌 됐을까? 10년 전 사고 당시부터 해당 철강회사는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에 공감하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어 고민을 해온 터였다. 확인 결과, 10년 전 그 쇳물은 지금껏 쓰이지 않았다. 회사 쪽에서는 15t 쇳물 전부를 다시 녹인 뒤 둥근 형태로 굳혀 회사 뒤편 녹지에 상징물 형태로 세워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처럼 노래처럼 김씨의 부모가 명절에 와서 보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관심이 모아지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무역·홍콩·남중국해 문제 등에 더해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며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이 사상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지난 6일 도쿄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참석 하에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외무장관회담이 열렸지만 공동성명 없이 폐막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3국은 공개된 모두 발언에서 중국의 국명을 거론하지 않았다. 주최 측인 스가 요시히데 총리 역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 머리스 페인 호주 외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을 거명하지 않았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입각해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할 목적으로 출범한 '4각 안보 대화'에 참여한 3국이 중국 국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목적어 없는 회담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인도양 진출은 인도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고 태평양 진출은 친미 진영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타파할 목적으로 내놓은 방안이 일대일로(一帶一路, 하나의 벨트로 하나의 실크로드를) 전략이다.
대륙과 해양을 하나의 실크로드로 잇겠다는 이 야심찬 전략에 맞서 '인도·태평양을 하나로 묶는 신개념으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며 미국을 설득한 나라가 일본이다. 이 전략에 대한 일본의 집념은, 조지 부시(아들 부시), 버락 오바마의 거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널드 트럼프를 끝내 설득해 미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선두에 세워놓은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그래서 이 전략의 창안자라 할 수 있는 일본마저도 자국에서 개최된 쿼드 외무장관 회담에서 중국 국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4개국 중 3국이 공동 견제 대상인 중국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번 회담은 '목적어 없는 회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으므로, 쿼드가 어떤 양상을 띠게 될지는 앞으로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쿼드의 현재 단계를 관찰해보면, 이들 4개국이 중국과 관련해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것이 이번 공동성명 불채택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으르고, 어르고... 미국의 오랜 대중국 전략
'중국에 대해 적대적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할 경우, 1945년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중국을 대소련 전초기지로 만들려는 희망을 품었던 미국은 마오쩌둥(모택동)이 대륙을 석권하면서 그 희망을 내다버렸다. 그 뒤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미국과 싸웠고, 미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핵무기를 개발했다. 미국은 그런 중국을 압박하고 봉쇄했다(제1기).
그랬던 미국이 베트남전쟁으로 수렁에 빠지고 1969년에 닉슨 독트린(아시아·태평양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가급적 자제)을 발표하게 되면서 양국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곤경에 빠진 미국은 중국의 힘을 빌려 아시아·태평양의 균형을 유지하는 한편, 중국을 빼내 공산권을 약화시킨다는 전략을 채택했다. 그 뒤 이른바 핑퐁외교로 중국과의 스킨십을 늘리며 중국을 자국 중심의 질서인 팍스 아메리카나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전개했다(제2기).
미국이 1971년에 타이완(대만·중화민국) 몫인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빼앗아 중국 쪽에 넘겨준 사실, 2001년에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킨 사실 등은 중국을 팍스 아메리카나에 편입시키기 위한 미국의 접근법을 반영한다. 이 시기에 미국은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자국을 무시하고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타이완의 몫을 빼앗아 중국에 준 것은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합법적 대표로 인정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승인했음을 뜻한다. 중국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의 최대 소원 중 하나를 기꺼이 들어준 것이다. 이 같은 호의적인 대미관계 속에서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경제성장에 주력했다.
그런데 1990년을 전후한 세계적 탈냉전으로 소련이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이로 인해 힘의 공백이 발생한 틈을 이용해 중국이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부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이 의심 어린 눈초리로 중국을 관찰하도록 만드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2008년에 미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고 중국에서는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됐다.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융성을 상징하는 두 개의 상반된 그림이 하필이면 같은 해에 연출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중국의 미국 추월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급증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중대 변화가 나타났다(제3기).
2009년에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을 팍스 아메리카나에 묶어두되 중국을 어느 정도 눌러줄 필요성을 절감했다. 아시아의 중국을 상대로 이 같은 전략을 구사해서 현존 질서의 변경을 받고 기존의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전략이었다(아시아 재균형 전략).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을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중국을 자기편으로 묶어두려 했다. 중국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하나의 중국 원칙'도 계속해서 존중했다. 겁도 주고 구슬리기도 하면서 자기편에 묶어놓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10년도 못 가서 폐기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베 신조의 '꾀임'을 받아들여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제4기). 지난 6월 발행된 <황해문화> 여름호에 실린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의 기고문 '포스트 냉전 시대 미국의 세계전략과 미군'은 오바마의 전략이 가고 트럼프의 전략이 오는 이 시기를 이렇게 요약한다.
"적어도 오바마 행정부 첫 번째 임기의 마지막 해였던 2012년부터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를 내세웠고 이를 '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재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으로 대표되는 오바마 행정부의 중국 관여 정책은 중국을 미국이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중국의 힘과 영향력을 제한하는 데도 역부족이었다고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인도·태평양 전략인 것이다."
제4기의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서 미국은 중국을 자기편이 아닌 반대편에 위치시키고 있다. 냉전시대의 소련이 있었던 자리에 중국을 갖다 놓은 것이다. 그런 뒤 무역·홍콩·남중국해 문제 등을 명분으로 중국을 때리고 있다.
또 타이완과 공식 관계를 재개할 듯한 포즈를 취함으로써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깰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거기다가 중국이 공산당 국가이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산당 총서기를 겸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부각시키고 있다.
오바마 때의 제3기를 거치면서 미국은 적당히 위협하고 구슬리는 방법으로는 중국의 발호를 막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훨씬 더 강하게 압박해야만 억누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기에 일본·인도·호주와 쿼드 체제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역부족인 듯하기에 한국 등을 '쿼드 플러스'로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일본·인도·호주의 대중국 입장이 미국처럼 제4기에 도달해 있다면, 이번처럼 공동성명도 채택하지 못한 채 쿼드 회담이 끝나는 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일본·인도·호주의 입장이 아직 제4기에 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도·호주 역시 중국의 세계 최강 등극이 현존 세계질서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미래까지도 불확실하게 만들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과 손잡고 중국의 발호를 억제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경제가 중국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처럼 이들도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라는 '안미경중'에 상당히 경도돼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은 미국처럼 강경한 태도를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반대편으로 위치시키는 것과 달리 이들 3국은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중국을 자기편으로 묶어두려 한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중국 견제를 '조용히' 박수 치며 응원하고 있다. 대중국 협력과 대중국 견제를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 3국의 전략은 오바마 때의 제3기와 일견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국 중에서 일본의 태도는 특히 흥미롭다. '중국을 견제해야 현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며 미국을 끌어들인 일본은 미국과 중국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한국 못지않게 주판을 열심히 튕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중국 전선으로 미국의 등을 떠다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눌러줘야 자국의 현재 지위가 유지될 수 있지만 자국이 선두에 나서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일본의 속내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트럼프의 목에 방울을 달아놓고 시진핑 쪽으로 떠다미는 일본의 태도와 관련해 2018년에 <국제관계연구> 제23권 제2호에 실린 정구연·이재현·백우열·이기태의 공동논문 '인도태평양 규칙기반 질서 형성과 쿼드 협력의 전망'은 정호섭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의 관여라는 관점에서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의 역내 개입을 보장하기 위한 지원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즉 미일동맹에 추가하여 안보 이중 안전장치로서 쿼드 간의 결속을 통해 점점 소극적이고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미국의 관여를 아시아 지역 안보 역할에 계속 묶어두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은 현존 체제에서 이룩한 자국의 번영을 지킬 목적으로 기존의 미일동맹에다가 쿼드 체제까지 추가함으로써 이중의 안전장치를 만들어놓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전선에서 주춤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전진하도록 만들고자 그런 이중 장치를 만들어 놓은 뒤, 자국은 '편하게' 3기에 머물러 있다.
미국은 대중국 전략의 제4기로 넘어간 반면, 일본·인도·호주는 위와 같이 제3기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미국과 3국 사이에는 타임머신으로 극복해야 할 만한 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쿼드의 리더인 미국이 이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할 만하다.
지난 기사 피터 쾨니히의 '대봉쇄에서 대전환으로 - 자본의 포스트코로나'이 '그레이트 리셋'을 현대제국주의자본의 음모로 보는 것에 비해 이 글은 달러패망, 미국패권주의 붕괴, 유럽중심 시각에서 분석하는 글이다. 필자 다나까 사까이는 국제정세 전문 블로거이다. 다나까 사까이는 세계경제포럼 회장 크라우스 슈밥이 독일의 이해관계당사자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본다고 분석한다.
필명의 번역자 오마니나는 영화감독이며, 다나까 사카이 관련 많은 글을 번역하였다. 번역문 일부는 문맥에 따라 약간 수정하였다.
▲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이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WEF 연차총회 기자회견에서 올해 포럼 주제인 '제 4차 산업혁명의 이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구미 등의 엘리트들이 모여 세계의 운영 등을 논의하는 "다보스 포럼"을 주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년의 다보스 포럼의 주제를 "그레이트 리셋(그레이트 리셋)"으로 설정했다(정례인 1월 개최가 아니라, 내년 여름으로 연기할 모양이다). 코로나 위기의 구도가 장기화・항구화되어 사회나 기업이나 정부의 본연의 자세가 불가역적으로 전환된다(리셋 된다)는 이야기가 테마의 중심인 것 같다. 거기에, 코로나 이전부터 회자되었던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든지, 기후변동이라든지, 성이나 인종의 격차해소라든지, 디지털화 라든지, 인터넷의 통제라든지 하는, 각종 관련 의제가 더해져, 그레이트 리셋(의 표면적인) 정의가 되어 있다. (그레이트 리셋에는 표면과 이면이 있으므로, 재출발, 재시작, 재배치, 전환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리셋"이라는 영어명을 그냥 쓴다) (The Great Reset) (The WEF Clarion Call: A Breakdown of 'The Great Reset')
WEF의 "그레이트 리셋"은,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의도적으로 모호한 내용이 되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WEF나 그 관련 구미계 에스탭리쉬 층의 발언을 들어 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레이트 리셋"은, 그 말만 들어도 "역시, 드디어 왔구나"라는 이야기가 된다. 코로나 이전에 에스탭리쉬 층이 말했던 "그레이트 리셋"은 "미국의 패권체제의 붕괴" 특히 "달러와 채권금융 패권체제(미금융 패권체제)의 붕괴"였다(당시부터 정의가 애매하게 되어 있었지만). 코로나 위기 후, 미연방은행(FRB)이 QE(달러의 과잉발행에 의한 채권의 구제적인 매입 뒷받침정책)를 재개하고, 미국과 유럽,일본 등의 정부에 의한 코로나 불황대책으로서의 국채발행의 급증도 QE에 의한 국채매입에 의존하고 있다. 향후 머지않아 QE가 한계에 다다르면, 미국중심의 국제금융시스템도 불가역적으로 붕괴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해 진다. 코로나 위기에 의해, 종래의 의미에서의 그레이트 리셋=미패권의 붕괴가 가까워지고 있다. (The 2020s Might Be The Worst Decade In U.S. History) (The Next Crisis Will Be The Last)
WEF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 주도다. 초기인 1971~1986년에는 "유럽경영포럼"이라고 자칭했었다. 남아공의 여야당을 중재하거나, 터키와 그리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을 다보스 포럼에 불러 화해를 시도하거나 했다. WEF는 에스탭리시들의 조직이지만, 국제분쟁을 선동해 세계의 분할통치의 항구화를 추구하는 군산과는 정반대로, 화해 방향의 국제정치 활동을 펼쳐 왔다.
최근에는 2017년에 중국의 시진핑, 2018년 인도의 모디, 2019년에는 브라질의 볼소나로를 다보스 포럼에 불러들여, 다극형 세계의 상징인 브릭스 지도자들을 차례로 초대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트럼프 등 미국정부는 최근, 패권적인 언행을 다보스 포럼에서 비판받기 일쑤다. WEF는 유럽 주도로, 미패권체제가 무너지고 다극화하는 흐름을 적극 용인해, 미패권체제를 고집하는 군산과는 정반대의 활동을 벌여 왔다. (World Economic Forum - Wikipedia)
WEF는, 닉슨의 방중부터 냉전 종식의 시기에 만들어진 이래, 패권체제의 존재방식을 계속 논의해 왔다. 그 WEF가 "그레이트 리셋"을 다보스 포럼의 주제로 삼아왔다. 그렇다고 하면, 거기에서 얘기되는 "그레이트 리셋"의 진정한 의미는, 표면에 써있는 시민운동과 같은 주제들이 아니라, 그레이트 리셋의 본래 의미인 "미패권 및 달러의 붕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보스 포럼의 주제가 "미패권과 달러화의 붕괴"라는 것이 알려지면, 전세계의 개인투자자들이 달러와 채권을 팔아 치워, 붕괴가 앞당겨져 버린다. 그 때문에, 그레이트 리셋이란 환경이나 인권 문제와 같은 표면적인 미담풍의 왜곡된 스토리가 눈속임용으로 만들어져 유포되어 "그레이트 리셋은 달러 붕괴를 말한다"고 하는 종래의 견해는 음모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Major Liquidity Crisis Likely As Covid-19 Spreads) (Pandemic must lead to real change to avoidrisk of conflicts and revolutions, WEF founder says)
패권분석자인 브랜든 스미스에 따르면, WEF나 IMF 등 에스탭리시 조직의 관계자들이, 미패권 붕괴의 의미로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부터다. 2014년은, 08년의 리먼위기로 일단 붕괴해 동결된 채권금융시스템을 연명시키는 새로운 방책으로서 미연방은행이 개시한 QE의 총액이 "이 이상하면 불건전하다"고 여겨지는 정도에 이르러, 연방은행이 QE를 그만두어 갈 것을 결정한 해다. 연명책인 QE를 그만두면, 채권금융시스템은 재붕괴되어, 사태는 "그레이트 리셋"이 된다. 따라서, 에스탭리시들은 2014년에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연방은행은 일본과 EU의 중앙은행에 압력을 가해, 2014년 말부터 일본과 유럽이 QE를 대신 갚아 줌으로써, 미연방은행이 QE를 그만두어도 그레이트 리셋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표현은 올해의 코로나 위기 발생까지 난무했다. (What Will The Global Economy Look Like After The 'Great Reset')(Economic Warwith China is the Final Step Before the "Great Reset")
▲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저명한 기업인ㆍ경제학자ㆍ저널리스트ㆍ정치인 등이 모여 세계 경제에 대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국제민간회의이다.
그레이트 리셋의 준비 자체는, 2014년에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말이 쓰이기 전인, 2008년 리먼 위기 때부터 이루어 졌다. 리먼 위기는, 그레이트 리셋의 시작이었으며, 07년의 서브 프라임 채권 파탄으로부터 08년의 리먼 도산에 이르는 일련의 리먼 위기에 의해, 채권금융시스템(미금융 패권)이 불가역적으로 붕괴했다. 금융의 연명과 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국과 유럽의 엘리트들은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기능하지 못할 것(달러화 붕괴)을 전제로, 달러 대신 IMF의 SDR(특별인출권)을 새로운 기축통화로서 사용하는 것과, 미국, 유럽, 일본의 G7을 대신해 중국 등 신흥국들도 아우르는 G20을 경제정책의 세계적인 결정기구로 만들겠다는 것 등을 구상해, 이러한 구상을 결정하는 첫 G20 정상회의가 2009년 가을에 열렸다. (G20은 세계정부가 된다. http://cafe.daum.net/flyingdaese/Ff32/216) (G8에서 G20으로의 교대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1863)
하지만 그 후, 미연방은행이 QE를 개시해 붕괴상태의 채권금융시스템에 자금을 주입하고, 그 자금으로 채권이 반등해 소생하고 있는 느낌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QE는 무한으로 보이는 달러에 대한 신용을 담보로, 미연방은행이 달러를 "무한"으로 인쇄해, 본래는 민간의 수급으로 지탱되어야 할 채권시장을 "무한정"으로 매입해 지지하는 방안이다. 달러는 붕괴하지 않고, 일단 연명했다. 그러나 달러화에 대한 신용은 무한하지 않고 유한했다. 미연방은행 내에서는 QE를 수년 이상 계속하면 신용저하가 될 수도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되어, 미연방은행은 2014년에 일단 QE를 그만두었다. IMF나 WEF 등은, 머지않아 달러가 재붕괴할 것을 염두했고, 그 시점부터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QE확대로 자멸의 길로 들어선 일본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4860) (QE로 진행되는 금융시장의 황폐화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2816)
하지만 표면적으로 "QE는 무한하다"는 이야기가 석권했기 때문에, 그레이트 리셋 즉, 달러붕괴와 국제금융파탄은 "일어날 리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 채 그대로다. IMF의 SDR를 통화로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는 그레이트 리셋에 대한 준비도 진행되지 않았다. SDR를 국제통화로 쓸 수 있게 하면, 그만큼, 달러의 기축성이 떨어져, 달러붕괴와 금융파탄이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유로화의 기축통화화도, 같은 이유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레이트 리셋에 대한 대응은 실제로 리셋=달러의 붕괴가 일어난 후 밖에는 할 수 없다. (From 9/11 to the Great Reset) (달러의 열악화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4964)
WEF가 "그레이트 리셋"을 내년 다보스포럼의 화두로 삼은 것은, 코로나 위기의 장기화로 실물경제가 대공황에 빠지면서 버블의 팽창 상태가 심해져, 트럼프가 진행하는 미중분리로 중국 등 비미국이 달러를 쓰지 않게 되어, 내년에 걸쳐 그레이트 리셋=달러 붕괴가 정말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레이트 리셋=달러 붕괴가 일어나면 그 세계적인 악영향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내년 개최인 WEF의 목적은 그것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ㆍ유럽ㆍ일본의 돈벌이를 중국으로 이전하는 트럼프의 미중분리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4972)
그렇다고는 해도 그레이트 리셋에 대한 대책으로서 WEF나 유럽세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적다. 유로나 EU가 좀 더 비미(非美)세력으로서 만들어졌다면 미국과 달러의 패권이 붕괴한 만큼을 메꾸는 역할을 EU와 유로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로권 제국의 금융계는 미국중심의 금융버블에 흠뻑 젖어 있어, 미국의 버블 붕괴로 유럽세도 공멸한다. EU는 그 주도국인 독일이 국제적인 자립태세가 결여되어 EU 전체적으로 대미종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미패권 붕괴와 다극화가 진행되어 가는 세계를 주도하지 못한다. (유럽의 대미종속의 행방 http://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1790)
그레이트 리셋에 대한 대응에서 이미 주도성을 발휘하고 있는 곳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다. 트럼프는 미중분리를 추진함으로써 중국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비미적인 독자적인 국제시스템을 만들도록 유도해 왔다. 중국과 일대일로 국가들은, 국제결제를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 위안화 등 각국 통화로 결제하는 추세다.
중국은 금융버블도 미국측에 비교하면 적으며, 시진핑은 국내의 금융버블을 팽창시키지 않는 대책을 계속 취하고 있다.중국 등 비미국가들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시스템으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달러와 미국패권이 무너지는 그레이트 리셋이 일어나도, 비미 국가들은 별로 악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Rationalizing 'The Great Reset') (미중역전을 의도적으로 앞당기는 코로나 위기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4949)
리먼 위기 때, 달러 붕괴가 일어난 것으로 판단되어,달러 대신 SDR를 사용해, 미패권체제를 대신해 G20회의에 세계 정부적 기능을 부여하는 구상이 주요 20개국(G20)회의 등에서 거론되면서, 미국도 G20의 권위를 승인했다. 그때, 그 시스템이 그대로 실현되었다면, 미패권 세력(미영 첩보계와 군산)이 G20사무국을 장악해, 다극형은 이름 뿐인 체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G20은, 중국 필두의 BRICS의 영향력이 크다고 여겨져, 나도 그 전제로 분석을 했었다. 그러나 좀 더 현실적으로 본다면, 국제기구의 운영은 중국보다 미영 첩보계가 훨씬 능숙해, 미영에게 장악되어, 중국세가 배제되었을 것이다. (미국 다극측에게 끌어 올려진 중공의 70년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4326)
이에 비하면, 지금의 미중 분리체제는, 미국측이 중국과의 완벽한 격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미영으로부터 전혀 방해받지 않고 비미국측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미영 첩보계(군산)가 세계의 모든 것을 장악해 온 종래의 미 패권체제는, 미영이 자신들의 우위를 항구화하기 위해, 중,러,인도 이슬람 국가 등 비미측의 경제발전이나 안정을 계속 저해해 왔으며, 그로 인해 세계 실물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이 억제되어 왔다. 이 기존체제를 파괴해 세계의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가속화하기 위해, 미영패권의 중추에 그림자 다극주의자들이 있고, 트럼프는 그 대표가 되어 있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려는 중국, 내수형으로의 대전환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4922) (세계 자본가와 합작하는 시진핑의 중국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2943)
트럼프 등은, 다극형이 된 신세계 질서의 실무체제를 군산에게 탈취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리먼 후의 G20으로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완전한 미중분리를 진행해, 분리가 완성된 시점에서 미국측을 버블 붕괴시켜 그레이트 리셋을 일으켜, 중국 등 비미측의 시스템만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레이트 리셋이 가까워지면 유럽이나 일본 등 대미 종속이었던 동맹국이 미국 측에 남아 있으면 리셋과 함께 국가 파탄이 되어 버리므로, 눈에 띄지않게 미국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면서 중국측으로 접근해 간다. 실제로 리셋이 일어날 무렵에는 상당히 많은 친미국가들이 비미측에도 한쪽 발을 들이 대고 있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리셋에 대한 준비 상태가 된다. 최근 일본의 중국에 대한 접근은 이 흐름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를 미중으로 양분해 중국측을 이기게 한다 http://cafe.daum.net/flyingdaese/SfFI/4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