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6일 목요일

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단독]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입력 : 2019.06.07 06:00 수정 : 2019.06.07 07:27

“에듀파인 위법” 행정소송
지난 3월 ‘개학 연기 사태’ 여론 뭇매에 도입 수용 ‘제스처’
한국당 등에 업고 ‘반격’…‘유치원 3법’ 논의 악영향 우려
[단독]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사립유치원장들이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 도입을 막기 위한 법적 소송을 진행하면서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태’가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유총을 향한 비판 여론이 잠잠해지고, 국회에서 ‘유치원 3법’의 입법이 계속 미뤄지는 등 관심에서 멀어지자 사립유치원들이 재차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한유총의 개학연기 투쟁 철회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교육당국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에듀파인은 사립유치원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여러 대책 중 최대 핵심 정책이다. 유치원 비리가 만연하게 된 주요 원인이 유치원장들이 교비를 쌈짓돈 쓰듯이 마음대로 해왔던 문제였다. 에듀파인을 쓰게 되면 유치원 회계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정부가 상시적으로 회계부정 문제를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정부와 한유총이 이를 놓고 강경대응을 주고받은 이유다.
사립유치원들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에듀파인 도입을 극렬 반대하다가 3월 개학연기 발표로 학부모와 여론의 지탄을 받자 결국 에듀파인을 수용했다. 정부도 3월까지 에듀파인 적용 대상 유치원(원아 200명 이상)의 에듀파인 도입률이 100%에 달하자 “예정대로 2020년부터는 모든 유치원에 에듀파인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태가 잠잠해지자 원장들은 단체로 소송을 걸었다. 정부가 소송에서 질 경우 에듀파인 의무 도입 자체가 무산된다. 원장들이 유치원의 폐원 규정을 강화한 교육부의 지침 등 여러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들에 대한 추가 소송을 낼 가능성도 있다.
한유총의 법적 대응은 ‘예고된 저항’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덕선 전 한유총 위원장이 물러난 뒤에도 강경파가 한유총 이사진을 장악한 데다 자유한국당 등 국회 내 우군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말부터 국회에 계류 중인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 ‘유치원 3법’ 논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치원 3법은 오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갈 예정이지만 한국당이 국회에 불참하고 있는 데다, 당내에서 유치원 3법을 반대하는 기류도 여전해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에 행정소송까지 겹쳐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치원 3법 중 에듀파인 의무 도입을 법으로 규정한 ‘유아교육법 개정안’의 경우 국회 교육위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법 적용을 1년간 유예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법사위에서 이 수정된 안을 본회의에 넘겨 그대로 통과될 경우 이미 교육부가 규칙 개정으로 시행 중인 에듀파인의 법적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장들이 소송을 제기한 배경에는 신속처리안건으로 한창 진행 중인 유치원 3법에 좌초 혹은 무산 프레임을 씌워 법사위 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려는 꼼수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박 의원은 오는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행정소송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유치원 3법 통과를 촉구할 예정이다. 

창립 73년,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창립 73년,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6/07 [09: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9년 6월 6일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진행된 '경축 73돌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     

북은 6월 6일을 <조선소년단창립일로 기념하며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올해는 <조선소년단창립 73돌이다.

<조선소년단창립 73돌을 맞아 평양에는 각 지에서 올라온 소년단원들이 평양을 참관하고 있다.

6일 노동신문은 논설 소년단원들은 사회주의조선의 보배이고 미래이다를 통해 조선소년단은 혁명의 계승자청년동맹의 교대자로 튼튼히 준비해나가는 우리나라 학생소년들의 대중적 정치조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6일에는 조선소년단창립 73돌 경축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가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열렸고 각 지역에서 조선소년단 도군연합단체대회들이 진행되었다

북은 <조선소년단의 기본임무>에 대해 소년들을 주체의 혁명위업을 떠메고나갈 주체형의 혁명가지덕체를 갖춘 전면적으로 발전된 사회주의 건설의 역군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선소년단>은 만 7세부터 13세까지 가입하며 김일성·김정일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의 산하조직이다.

▲ 조선소년단 창립 73돌을 맞아 각 지역에서 올라온 소년단 대표들이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하고 있다.     

▲ 조선소년단 창립 73돌을 맞아 각 지역에서 올라온 소년단 대표들이 만경대를 참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조선소년단>은 1946년에 창립되었지만 출발은 항일운동 시기로 봐야 한다.

이는 김일성 주석이 1971년 6월 6일 창립 25돌을 맞아 발표한 축하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김일성 주석은 축하문에서 “<새날소년동맹>과 <아동단>의 붉은 깃발은 해방 후 <조선소년단>의 깃발로 이어졌습니다항일 혁명투쟁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어받았으며조선노동당에 의하여 교양된 우리 소년들은 소년단 생활을 통해 간결한 젊은 투사로 자라났으며 새 민주조선을 일떠세우는데 적극 이바지하였습니다소년단원들은 혁명적 조직생활에 충실하였던 항일유격대원들과 아동단원들처럼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여기며 소년단 시절부터 그것을 빛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새날소년동맹>은 1926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 무송지역에서 12월 15일 소년들을 모아 만든 조직이다당시 14살이던 김일성 주석은 연설에서 나라와 민족을 묶어 세워 일제의 침략적 죄행을 폭로하고 조선독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조선민족이 단결하여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날소년동맹>은 8~16세의 소년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혁명을 위한 정치군사사상적으로 무장하고 혁명을 위해 동맹생활에 적극 참가하는 등의 맹세를 통해 반일투쟁반일선전 및 계몽사업 등의 활동을 했다당시 입단식에서는 곤봉과 수첩을 받았으며매일 하루생활총화매주 동맹생활 검토회의군사지식 학습군사훈련 등을 받았다.

1932년 5월 김일성 주석이 두만강 연안 일대에 소사하유격구를 창설하면서어랑촌우복동왕우구해란구소왕청요영구 등지 유격구 지역에 소년 조직인 <아동단>을 만들었다당시 김일성 주석은 아동단은 어린이들을 우리혁명에 무한히 충실한 참된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소년들의 반일적이며 공산주의적인 정치조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여기서 전 세계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라는 구호가 제시됐다현재 '항상 준비'라는 구호가 여기서 출발한 것이다또한아동단의 상징은 깃발붉은 넥타이경례곤봉 등으로 여기서 깃발과 붉은 넥타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항상 준비!

▲ 선배들이 소년단 붉은 넥타이를 메어주고 있다.     

▲2017년  8차 소년단대회에 참가한 어린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붉은 넥타이를 매줬다 

그리고 해방 후 1946년 6월 6일 <조선소년단>을 창립하였다.
북은 <조선소년단창립에 대해 역사상 처음으로 주체사상의 혁명적 기치 아래 지도되는 통일적인 자기조직을 가지게 되었으며모든 소년을 우리 혁명 위업의 믿음직한 후비대로 키울 데 대한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소년단>이 창립되고 새 민주조선을 위하여 항상 배우고 준비하자라는 구호에 맞춰 농촌일 돕기 등을 진행했다그리고 북이 천리마 운동을 벌이던 시기에는 꼬마계획 활동’, ‘토끼 기르기 운동’ 등 좋은 일 하기 운동’ 등을 진행했다.

토끼 기르기 운동’, ‘좋은 일 하기 운동’ 등은 지금도 <조선소년단단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조선소년단창립 66돌 경축 전국연합대회에 참석해 김일성·김정일 조선의 새 세대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으라고 축하 연설을 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 7차 조선소년단 대회, 2017년 8차 조선소년단 대회에 참석해 소년단원들을 격려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2017년 8차 조선소년단 대회에 한 축하연설 일부분을 소개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축하연설에서 온 나라 소년단원들 속에서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영원히 높이 받들어 모시는 깨끗한 충정과 사회와 집단동무들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아름답고 기특한 소행들이 수많이 발휘되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우리 조국의 자랑을 더해주었습니다오늘 우리의 사랑하는 소년단원들은 내일에 대한 푸른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여러 가지 사회정치 활동과 좋은 일 하기 운동도 적극 벌이면서 사회주의조선을 빛내일 혁명 인재로 자라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소년단원들의 아름다운 풍모와 씩씩하고 명랑한 모습에서 주체혁명의 밝은 내일을 내다보고 있는 우리 당은 소년단원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소년단원들의 행복에 넘친 웃음과 창창한 미래를 끝까지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창립 73주년을 맞는 <조선소년단>은 지금 사회주의 조국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라는 구호를 들고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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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돈 10억원 거부하고 산재 인정 받은 엄마와 딸

19.06.07 07:35l최종 업데이트 19.06.07 07:35l




 6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10년만에 산재 인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를 찾았다.
▲  6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10년만에 산재 인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를 찾았다.
ⓒ 유지영

"내가 산재 맞거든요? 그런데 이제서야 산재 인정을 받았다는 게 너무 웃겨요. 정말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했어요."

오래 기다렸다. 10년이 넘는 기다림이었다. 6일 강원도 춘천의 자택에서 만난 삼성LCD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42)씨는 마른 체구에도 우렁찬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산재 맞거든요?"라는 되물음 속에는 삼성과 싸운 10년의 세월이 녹아있었다. 결국 그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됐다.

예전에 한씨는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면 "내 말을 믿어달라"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쳤다. 한씨의 모친 김시녀(62)씨는 "가슴에 응어리가 져서"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30일 가슴에 응어리가 질 정도로 간절했던 산재 재신청이 마침내 승인됐다. 김씨가 그 소식을 전하자 당시 밥을 먹던 한씨는 밥숟가락을 채 내려놓지도 못하고 대성통곡을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한씨는 한참을 울부짖었다. 한참을 꾸역꾸역 울던 한씨는 10년 넘게 자기와 함께, 때로는 앞서서 싸운 엄마를 보고 웃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엄마가 말해주더라고요. 밥을 먹으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진짜 많이 울었어요. 인정이 되고 나니까 왜 이제야 됐는지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한혜경)
"그래. 이제라도 됐으니까 감격이 큰 거지." (김시녀)

"(끄덕끄덕) 엄마한테도 너무 고마웠어." (한혜경)
"뭐가 고마워?" (김시녀)

"엄마하테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울고 나니 웃음이 나대요?" (한혜경)


"저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한씨는 지난 1995년부터 삼성전자 경기도 기흥공장에서 꼬박 5년 10개월을 일했다. 맏딸이고 책임감도 강했다. 한씨는 상고로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월급이 세다는 삼성이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근무하던 5년 사이에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생리가 멈췄고 몸이 안 좋아졌다. 한씨는 결국 퇴사하고 춘천으로 돌아와 마트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그러던 2005년 10월 한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뇌종양이었다. 종양 제거 수술을 했지만 후유증으로 시각, 보행, 언어장애인이 됐다. 그 후로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한씨 모녀는 전국 각지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가보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였다.

2009년 한씨는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이후 근로복지공단 심사, 재심사 청구에서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행정 소송을 했지만 2015년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춘천에서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 동안 울기도 많이 울었다. 힘들여서 3~4시간 걸려 서울까지 가면 재판을 받는 시간은 고작 3~4분. "(산재가 아닌) 개인의 질병"이라는 결정과 함께 들리는 판사의 '땅땅땅' 소리에 이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때로는 "너무 화가 나서", 또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권유한 끝에 이들 모녀는 2018년 다시 한번 용기를 냈고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을 신청한 끝에 지난 5월 최종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삼성LCD 피해자인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한혜경씨는 지난 5월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2009년 대법원에서 패소한지 10년만이다.
▲  삼성LCD 피해자인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한혜경씨는 지난 5월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2009년 대법원에서 패소한지 10년만이다.
ⓒ 반올림

지난 4월 한씨가 근로복지공단에 낸 최종 의견진술서는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저는 꼭 산재로 인정받아서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최종 의견진술서 10문장을 쓰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제가 일할 때에는 비닐장갑도 잘 찢어져서 맨손에 약품이 묻기도 하고 마스크를 껴도 냄새가 다 났어요. 그런 게 위험하다는 건 몰랐어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반도체, LCD 공정에서 뇌종양 피해자가 많이 나왔고 또 명확히 입증 못해도 산재보험 취지상 뇌종양도 산재로 인정되는 분들이 여럿 생겼잖아요. 저에게도 공정하게 판정해주시면 좋겠어요."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삼성에서 회유가 들어왔다

모녀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활동가가 다 됐다. 다른 산재 피해자들도 도울 생각이다. 한씨는 주먹을 꼭 쥐고 "투쟁!"이라고 외치면서 "저 같은 사람이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저는 (투쟁)해야죠.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는 데까지 가야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번 "그럼! 가야지. 하는 데까지 해야지"라고 딸의 말을 거들었다.

지난 2018년 7월 반올림 농성이 1023일로 마무리가 되고 나서 김씨는 한동안 앓아누웠다. 그는 "3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면서 골병이 든 모양"이라면서 웃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때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이재용 재판을 참석하면서 태극기부대 사람들을 보았는데, 혜경이한테 '병신이 여기를 왜 왔냐'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사람들 눈에는 혜경이가 병신으로 보이겠지만 그 트라우마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김시녀)

2014년 무렵에는 삼성 측에서 10억원을 줄 테니 산재 소송을 하지 말라고 회유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김씨가 '혜경아, 엄마 너무 힘들어. 그냥 돈 받자'고 하자 한씨는 '엄마, 나중에 나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되잖아'라고 대답했다. 김씨는 '아차' 싶었다. 피해자가 계속 나오는 걸 보면서 김씨는 "이 일이 혜경이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딸 한혜경씨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 김시녀씨의 모습.
▲  딸 한혜경씨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 김시녀씨의 모습.
ⓒ 유지영

"집안에서 환자가 한 명 나오면 풍비박산이 돼요. 그런데 내가 겪은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겪는다? 내가 조금만 더 싸우면 되는데? 다시는 실습을 나가서 사망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요. 저희가 지금은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 과정에 넣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삼성 백혈병 문제가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서울로 다니고 있어요. 저희는 힘이 닿는데까지 싸울 거예요."

이들 모녀는 오는 1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산재인정 축하음악회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를 연다. 김씨는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워서요.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잔치도 파티도 아닌 그런 걸 열기로 했어요"면서 웃었다.

"혜경이랑 노래도 좀 부르고 감사 인사도 하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모녀는 서로를 다시 한 번 마주보았다.
 
 엄마의 품에 안긴 한혜경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엄마의 품에 안긴 한혜경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유지영

차명진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문재인은 빨갱이"

文대통령, 김원봉 언급하며 '광복군은 국군 뿌리' 발언에 한국당 발칵
2019.06.06 21:29:15




문재인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 시절 '좌우 합작'을 통해 창설된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언급하자 자유한국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광복군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 등이 참여한 것을 언급했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약산 김원봉의 이름을 언급했다.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합니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안정을 추구하고, 어떤 때는 변화를 추구합니다. 어떤 분야는 안정을 선택하고, 어떤 분야는 변화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습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지난 3월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복원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추념사에서 김원봉은 딱 한 차례 언급된다. 문 대통령은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좌우 합작'을 통해 창설된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임을 언급했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력 투쟁을 전개했고,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1944년에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냈다. 1948년 월북한 후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각료를 맡는 등의 이력으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분류된다. 이후 김일성에 의해 숙청을 당하게 된다. 

김원봉이 월북을 하게 된 계기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 대해 좌절을 느껴서였다. 김원봉 본인이 악덕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수사를 받기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아주경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약산 김원봉은 해방 후 북쪽으로 가지 않고 광복군 부사령관 직함을 갖고 남쪽으로 귀국했다. 그런데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모욕적인 수사를 받았다. 심지어 친일 경찰과 연결된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처지였다. 백범 김구 선생이나 몽양 여운형 같은 민족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당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남쪽에 약산이 있었다면 생명을 부지 못했을 것이다. 약산이 월북한 것은 여기서 쫓아낸 거나 마찬가지다. 남한에서 친일파가 득세한 현실에 절망해서 월북한 것이지, 공산주의가 좋아서 간 게 아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도피한 거다." (☞ 바로 가기 : 광복회장 김원웅 인터뷰 )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과 극우 진영은 약산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 및 서훈 추서 움직임을 두고 '역사 전쟁'을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김원봉이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를 들어 "김원봉에게 서훈을 주면 김일성에게도 서훈을 줘야 하느냐"고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은 김원봉 서훈 추서 문제를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 자문기구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지난 2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독립유공자로 평가돼야 할 독립운동가들에게 적정 서훈을 함으로써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권고했다. 

관련해 오창익 국가보훈처 위법·부당행위 재발방지위원장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독립 유공자 인정 여부에 있어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정권의 요직을 지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학교에서 개근상과 우등상을 준다고 할 때 개근상은 개근할 때 주는 상이고, 우등상은 성적이 우수하면 주는 상이다. 그런데 개근한 학생이 성적이 형편없다고 개근상을 못 주겠다고 한다면, 합당한가"라며 "'독립 유공자냐, 아니냐'의 문제와 '해방 전후 북한과 어떤 관계였느냐'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관련 기사 : "좌파 역사공정? 친일세력의 피해망상!") 

차명진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문재인은 빨갱이"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을 두고 강력 반발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6·25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며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했다.  

전 대변인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나라와 가족을 위해 붉은 피를 조국의 산야에 흘린 6.25 전사자들을 뒤에 모셔두고, 눈물로 세월을 견뎌낸 가족들을 앞에 두고 북의 전쟁 공로자에 헌사를 보낸 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보수, 진보를 떠나 최소한의 상식의 선 안에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세월호 막말' 등으로 징계를 받았던 차명진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을 두고 "김원봉이 누구인가? 김일성 정권 권력 서열 3위, 6.25 남침 최선봉에 선 그 놈이다. 그런 놈을 국군 창설자라고? 이보다 反 국가적, 反 헌법적 망언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현충일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자가"라고 비판했다.  

차 전 의원은 "내가 더이상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 한국당 뭐하냐? 이게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 우선 입 달린 의원 한명이라도 이렇게 외쳐야 한다.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비난했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반민족·반민주 행위자 65명 중 일부 묘역에 오물 뿌려

현충일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등 시민사회단체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07 [01:07]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는 반민족·반민주 행위자 65명 중 일부 묘역에 오물이 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국가공무원노조 등이 오물(단죄수)을 뿌린 곳은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김창룡 묘와 정부가 발표한 친일 명단에 속한 김석범 묘 등 모두 5곳이다.

이들은 국립묘지 안장이 부적절한 반민족·반민주 행위자들의 묘를 즉시 이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립묘지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현충일을 맡아 대전현충원에서는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 반민족행위자와 군사반란 가담자 등 부적절한 안장자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즉각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오늘 쪽 뒤편이 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이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 참석한 독립유공자유족회 윤석경 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경 지회장 뒤편으로 이날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가 발표한 이장 요구 대상자 65명 중 반민족·반민주행위자 29명의 명단이 보인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을 비롯한 대전 시민들은 이들의 이장을 촉구하고 부적절한 자들을 이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라는 요구를 지난 2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촉구하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외침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 부적절한 쓰레기 같은 안장자들에게 국가유공자라는 보호막을 제공하고 이들을 위하여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더이상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리 없다는 판단을 하고 친일반민족 행위자와 군사반란에 가담한 자 등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 될 부적절한 자들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공개하는 등 이들의 이장을 실천하는 여론 조성 등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창룡, 소준열, 안현태 등 반민족, 반민주행위자의 유족들에게 “그들이 국립묘지에 있는 한 국민들은 그들의 죄상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알게 되고 손가락질을 더 할 것”이라며, “진정 고인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현충원에서 그 묘를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우리가 수차례 발의 요청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과 냉대로 인하여 본회의에 상정도 못하고 폐기 또는 낮잠을 자고 있다”며 국립묘지법을 개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파묘(破墓) 퍼포먼스와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이장을 촉구하며 파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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