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1일 화요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난 애국지사들의 나라사랑

그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김용택 | 2016-06-01 09:32:2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나는 어쩌다 역사탐방을 다니면서도 이렇게 감정에 북받쳐 본 일이 없다.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집행장과 고문현장을 둘러보면서다. 전교조 세종시지회가 처음으로 차를 빌려 교사대회에 참여하면서 들려 본 서대문형무소… 나이 70이 넘도록 이런 곳에 와보지 않았다니… 회한과 함께 말로만 듣던 선열들의 고통의 현장에서 열사들의 고통에 죄스러움과 울분으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내가 숨 쉬고 있는 공기와 마시는 물이… 그리고 내가 누리는 이 자유와 권리에 감사하며 살아온 일이 있는가? 그런 것들이 우연히 내게 주어진 것일까?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나’의는 오늘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렸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감사한 일이 있는가? 나는 이분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에 무임승차한 빚쟁이다. 어떻게 역사에 진 이 빚을 갚으며 살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선 곳이 어딘가?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 이분들이 고통을 잊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 왔는가?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은 했지만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는 다시 한번 숙연하게 그분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다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고문도구와 사형장을 보면서 시신이 6토막이 났다는 유관순열사를 생각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한지… 교도소 안을 걷는 것조차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뜻있는 일을 했는가? 그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잔인한 물고문과 상자 속에 못을 받고 통닭처럼 굴리는 이 잔인한 고문 앞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을 분들을 생각하면 울분과 미안함 그리고 이분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 온 부끄러움에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다고 했던가? 오직 조국독립과 해방을 위해 초개와 같이 산화하신 분들의 애통함과 회한을 사형장 앞에 선 미루나무조차 무심하지 않았던지 입구의 선 나무는 멀쩡한데 사형장 안의 나무는 말라 죽어 있었다. 애국지사와 함께 나무까지 산화한 것일까?
<사형장 입구의 미루나무>
<사형장 안의 미루나무>
고문을 하다 죽어간 열사들의 시신을 이렇게 몰래 뒷구멍을 내고 내다 버렸던 간악한 왜놈들이 만행을 하늘인들 어떻게 무심할 수 있었을까? 우리민족은 참 너무 순하기만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잊고 사는가? 그 간악한 만행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왜놈들이 누군가? 조선시대 이전부터 수없이 해안지역을 들어와 노략질을 해 가더니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7년간의 전화에 시달리게 한 장본인이 아닌가? 서양문물을 조금 일찍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평화롭게 사는 나라에 쳐들어와 36년간 종살이를 시킨 것이 왜놈들 아닌가?
왜놈들이 아니었으면 나라가 반조각이 나고 동족 상잔의 비극과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이 계속되겠는가? 우리민족사의 비극은 왜놈들이 원인제공자다. 이런 왜놈들에게 협작질하고 동족을 배신하고 왜놈들에게 붙어 작위를 받고 혹은 앞잡이가 되어 독립운동을 하던 열사들을 잡아 고문하고 괴롭힌 장본인들이 왜놈이요, 친일세력이 아닌가? 아직도 이 땅의 주인 노릇을 하는…
▲ <천진 나만한 이 아이들이 무엇을 알까? 선열들을 잡아 고문했던 도구들… 이 수갑이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 있는 현실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친일세력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주인이다. 뉴라이트들, 식민지사관 학자들. 왜놈들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류사회 인사들이요, 그들에게 은혜를 입은 새누리당 사람들이 아닌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해방된지 70년도 더 지난 지금도 가해자인 친일세력들은 민중들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요, 독립운동을 하던 열사들의 후손은 아직도 종북세력이요, 죄인이다. 
왜놈들이 한 짓을 필설로 다 하기 어렵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가?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잔인한 고문을 당해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닌 선열들에게 밥그릇까지 양을 조절하는 짐승만도 못한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 위의 그릇들은 그들의 회유에 고분고분한 정도에 따라 열사들의 밥의 분량을 조절했다니… 철천지원수 왜놈들이 저지른 죄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하신 분…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짐승만도 못한 왜놈들 앞에서 오히려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으니 우리 역사상 유관순열사보다 더 존경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일까?
사형장 입구 연못에는 나라를 찾겠다고 이 형무소에서 온간 고난을 당하시고 숨져가신 분들의 영혼이 고고한 연꽃으로 피어난 것일까? 우리 일행은 옷깃을 여미며 열사의 혼령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27주년 교사대회에서 이분들이 못다 한 나라사랑을 우리아이들을 올곧게 키워내야겠다는 결의를 하러 형무소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제촉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345 

판잣집 고학생

안재구 선생 회고록3권 ‘수학자의 삶’(4)판잣집 고학생
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회고록 <끝나지 않은 길> 3권 ‘수학자의 삶’을 연재한다. 1권 ‘가짜 해방’, 2권 ‘찢어진 산하’에 이어진다. 1952년 대학 입학과 재학시절, 그리고 4.19혁명의 격동기에 대한 기록이다. 이 회고록을 통해 독자들은 친일잔재와 분단이 남긴 비극을 한 대학생의 고뇌를 통해 읽게 된다. 특히 군 복무 시기에 맞은 4.19혁명을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 게재된다.[편집자]
  
▲ 아들 안영민씨(오른쪽)를 통해 안재구선생님의 대학 시절 모습을 였볼수 있다. [사진 민족21]
읽어주고 받아 적는 강의지만 그런 강의라도 듣기 위해서는 학비가 필요했다. 그래야 학점도 따고 졸업장도 받을 수 있다. 가족을 떠나 대구에 홀로 나온 나는 먹고 입는 돈도 필요했고, 잠자리도 있어야만 했다.
대학 입학금과 첫 학기 등록금은 어머니가 여름 내내 머리카락이 빠져 훤하도록 물동이를 이며 물주고 가꾼 고추농사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 가을햇볕이 좋아 곰팡이도 안 피고 빨갛게 잘 말린 고추를 구지 장날에 좋은 값으로 내다 판 덕으로 수월하게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2학기 등록금부터는 내가 직접 해결해야만 했다. 사범대라서 등록금이 다른 학생의 3분의 1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나는 여름방학 동안 경북 북부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를 돌면서 공책, 연필, 그리고 자질구레한 학용품을 팔아 이문을 남겼다. 이때는 초등학교 교원시험에 합격하여 대구국민학교에서 교육실습을 하면서 사귄 동기 선생님들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역을 돌 때마다 서로 식사 대접을 하고 재워준 선생님들 덕택에 나는 2학기 등록금은 물론 자취방을 얻는 여유도 누릴 수 있었다. 참으로 따뜻한 인정미가 넘쳐나는 시절이었지만 세월이라는 지우개가 지워버려 그 선생님들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모습도 떠올릴 수 없다.
1952년 2학기부터 나는 대구 대봉동 경북중고등학교 동편에 있는 신천 제방 가에 자취방을 구해 생활했다. 신천을 끼고 널찍한 채소밭이 펼쳐져 있던 이곳은 두어 달 전부터 판잣집들이 들어서더니 어느새 제방 가를 가득 메웠다.
당시 전선이 두 번이나 밀고 당기는 통에 38선 이북 동포들이 피난을 왔고, 서울이 비록 수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전선이 안정치 못해 나라의 통치기관들도 환도하지 못하고 대구에 그대로 많이 남아 있었다. 거기에 묶여 있는 사람들과 국방부 직할부대 및 산하 기관의 사람들이 대구에 적지 않았다. 또 정세가 안정되어 생산 공장도 많이 생겨나자 노동자들도 대구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주택문제가 날로 심각해졌다. 특히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구주택을 세울 수는 없더라도 임시나마 살 수 있는 주택이 필요했다. 그래서 도심 주변으로 판잣집 동네가 이루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대봉동, 봉덕동, 신천동, 칠성동, 원대동의 판자촌이었다. 이러한 판자촌의 형성은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대전 등 일거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드는 주요 도시마다 이루어졌다. 또 미군이 주둔하는 부대 곁으로는 미군들의 전용 위안소, 이른바 ‘양공주’ 동네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들 판잣집은 대개 두 치 각목이 기둥이고, 벽체는 사과상자로나 쓸 판때기였다. 온돌은 부엌아궁이부터 비스듬히 구들돌을 배열해서 윗목 골을 두고, 그 위에 미군 부대에서 나온 석유나 경유 드럼통의 뚜껑을 떼고 판으로 펼친 철판을 덮었다. 그 위에 다시 흙을 두 치 두께로 덮은 뒤 황토로 초벽을 치고 온돌을 놓았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장판을 깔거나 풀로 발라서 온돌을 완성했다.
이런 어설픈 온돌은 초저녁에는 방구들이 자글자글 끓다가 좀 지나면 싸늘한 냉돌로 되고 말았다. 그리고 군불을 많이 때면 종종 벽체 나무판자에 불이 붙어 집이 타고, 이웃으로 번져 온 판잣집 동네가 대화(大火)를 겪기도 했다.
38선 이북에서 넘어온 동포들이 이룬 판자촌 마을에는 이북 취향이 물씬 나는 냉면집과 만두집이 많아 이남의 동포들도 애용하고 있었다. 특히 이북 동포들은 미군 부대 물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장을 중심으로 절박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대구에는 주로 교동시장이 이북 동포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이들의 근면하고 강한 생활력은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큰 삶의 배움을 주었다.
당시는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입학시키려고 하는 세상이었다. 부모나 당자 학생이나 대학으로 못 가서 안달이었다. 물론 향학열이 대단히 높아져서 그렇기도 했지만 전쟁 통의 현실이 더욱 그러하도록 만들었다. 당시에는 누구나 만 20세가 되면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고, 병정이 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진단이 나오지 않은 한 군에 입대해야 했다. 병역법이 그랬다. 그런데 대학 공부를 하는 학생은 그 학업을 마칠 때까지 징집을 보류해주었다. 그래서 모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결사적이었다. 전선으로 끌려간 자식의 사망통지서를 받고 통곡하는 이웃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세월이다 보니 더욱 그랬다.
공부는 선후를 세워놓고 조금씩 체계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기초를 충실히 다지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실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공부다. 그런데 설렁설렁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따려고 하다가 뒤늦게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자니 곤혹스런 노릇이었다. 그러니 다들 체계적으로 공부하기보다는 벼락치기로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만 가르쳐주기를 원했다. 학업이 이 지경이 되면 교육의 본래 의미는 없는 것으로 되고 만다. 그래서 대학 입시 합격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사설 강습소(학원)들이 번창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구에는 학원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수요가 넘쳐나다 보니 학원은 문을 열기가 무섭게 번창했다. 그러니 고등학교 선생이나 대학 강사, 심지어 교수들 중에서도 부업으로 학원에서 수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예 학원 강사로 전업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수입이 좋았다.
당시 대구에서 유명한 학원 강사로는 두 사람이 있었다. 요즘 말로 ‘스타 강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사람은 김해룡 선생으로 수학강사였다. 김해룡 선생은 원래 대륜고 수학선생이었다. 부업으로 학원에 나가 수학을 가르쳤는데 강의를 아주 잘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직접 학원을 열어 큰돈을 벌었다.
영어강사로는 단연 양주동 선생이 첫손에 꼽혔다. 당시 YMCA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양주동 선생은 와세다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해방 이후 동국대 교수로 재직했던 분이다. 전쟁 통에 대구에 내려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학원에서 강의를 했는데, 특히 농담도 잘하고 강의방식도 독특해 인기가 아주 많았다.
이런 학원 강사 자리가 내게도 주어졌다. 한날은 영남고 이원복 선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급히 좀 보자는 것이었다. 이원복 선생은 내가 영남고 3학년에 편입했을 때 수학교사로 재직 중이셨던 분이다. 나중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영남고에서 교편생활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셨다. 학교로 찾아가 뵈니 대뜸 자기가 하고 있는 YMCA학원 수업 중 일부를 내게 넘겨주시겠다는 것이다.
“안 군. 나는 고등학교 교사이고 생활도 안정되어 있어서 학원의 강사료가 그리 탐나지 않네. 대학에 입학해 여러 가지로 생활이 어려울 텐데 이번 학기부터 내가 맡고 있는 과목 중 일부를 안 군이 대신 수업해보도록 하게.”
“네? 학원 강의를요? 선생님, 저는 아직 학원에서 수업을 할 만큼 실력이 되질 않습니다.”
“하하, 안 군의 실력이 안 된다면 누가 실력이 되겠는가. 걱정 말게. 대학 입시 준비할 때처럼 준비해서 강의하면 될 걸세.”
“그래도 선생님 하시던 수업하고 차이가 많이 날 텐데요….”
“이미 YMCA학원 쪽에도 이야기를 했네. 그랬더니 ‘선생님이 추천하시니 마음 놓고 맡겨보겠다’고 하더군. 그리고 일은 어려서부터 해야 질이 난다고 하지 않나. 잘 부탁하겠네.”
나는 주저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원복 선생만큼 강의를 잘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원복 선생은 학원에서도 인기가 많은 명강사였다. 당시 이원복 선생이 내게 넘겨준 강의는 해석기하학과 삼각법이었다. 고등학교 수학 과목 중 그래도 내가 수월하게 강의할 수 있는 과목을 찍어서 주신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 이원복 선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나도 학원 강사를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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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북과 우호협력확대 표명, 훅 날아가버린 2077

중, 북과 우호협력확대 표명, 훅 날아가버린 2077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6/01 [07: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베이징 만남     ©


북의 수소탄 시험과 위성발사로 소원해졌던 북중관계가 다시 회복될 조짐이 완연해지고 있다.

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방중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베이징에서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났다고 조선중앙방송이 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방송은 "리수용 동지는 담화에서 김정은 동지께서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 노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해 나갈 조선노동당의 원칙적 입장을 천명하신데 대해 강조했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노동당 제7차 대회 보고에서 사회주의 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전략적 노선과 투쟁과업을 밝혀주신데 대해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는 일장춘몽임을 명백히 선언

전략적 항구적 노선에 대해 북은 온 세상 핵무기가 다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핵보유국의 길을 가겠다는 노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은 북이 핵보유국의 길을 가는 것은 세계 정세를 긴장시킨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왔으며 이번 수소탄 시험 때도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 2077호를 미국과 주도적으로 만들었고 북은 이에 반발하여 대국주의라며 내놓고 질타하는 논평을 발표하는 등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중국은 북의 핵무장에는 반대하지만 미국의 대중국 포위에 맞서 북과 협력도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항구 등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난후된 동북3성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북과의 경제교류 또한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여러 사정이 다시 북중 고위 외교관들의 만남을 이루언 낸 것으로 보이는데 그 첫 만남 자리에서 북의 리수용 부위원장은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바람은 오뉴월 낮잠 꿈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주려는 듯 "김정은위원장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전략적, 항구적 노선이"라며 다시 한 번 대못을 박은 것이다.

사실 중국은 북미평화협정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병행추진 입장을 최근 들어 미국에게 강력이 요구하기 시작했고 미국도 이를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표방한 바 있다.
북은 이젠 이것도 일장춘몽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을 애걸해도 들어줄지는 생각해볼 일이고(아마 막대한 전쟁배상금 내놓지 않으면 들어줄 수 없다는 의미인 듯) 북의 핵포기는 감히 입 밖에 꺼내지도 말라는 주장을 공식적인 북 외무성 논평으로 통해 여러번 강조해오고 있다. 최근 미국을 외무성 부상 자격으로 갔다온 리수용이 미국에서 이런 입장을 직접 밝히기도 했었다.

리수용 부위원장이 그런 중국에 가서 전략적, 항국적 노선이라는 말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입장을 천명한 셈이다.  '우리는 이렇게 갈 것이니 이런 우리와 관계를 좋게 하건 적대시하건 중국 마음대로 하라'는 선언과 다를 것이 없는 발언인 셈이다.

단호한 입장 천명으로 빨리 깨닫게 하는 것이 지금은 중국을 당혹스럽게 할 수 있겠지만 중국이 미국 등과의 외교에서 쓸 데 없는데 시간 낭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결과적으로 중국에게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사실, 외교라인이 움직이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중국이 북미평화협정과 한반도 비해화 병행추진을 미국에게 양보 받아내기 위해 얼나마 애를 썼던가!  


✦ 중국의 북중협력 확대 선언으로 벗꽃지듯 가버린 2077호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런 북의 리수용 부위원장의 입장천명에 대해 쑹타오 부장은 "중국 당과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조선노동당과 인민이 자기의 실정에 맞는 발전의 길로 나가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지지한다"며 "당대회가 제시한 웅대한 목표를 훌륭히 실현해 사회주의 건설에서 보다 큰 성과를 거둘 것을 충심으로 축원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은 설명했다.

앞서 중국 대외연락부는 전날 리 부위원장과 쑹타오 부장의 회담과 관련한 발표문에서 "북한은 제7차 노동당 대회 상황을 설명했다"면서 양측이 북·중 간 전통적 우의를 소중히 여기고 양당 간의 교류·협력을 강화키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핵-경제 병진 노선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북의 사회주의 건설에서 보다 큰 성과를 축원한 것이다.
결국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의 핵-경제 병진노선 등에 대해서 중국은 여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북과 계속 맞설 수만은 없기에 전통적 우의에 바탕을 둔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동북3성지역의 발전을 위한 것과 더불어 베트남을 미국의 군사블럭으로 빠른 속도로 인입하면서 중국을 남쪽으로부터 포위압박해오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 등이 수소탄 보유국 북과의 교류협력을 확대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적어도 인도 수준에서라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러시아 학자들 속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등 러시아는 중국보다 훨씬 먼저 실질적 측면에서는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다만 그것이 일본의 핵보유나 주변국의 핵보유 도미노를 유발할 것 등이 우려스러워 공식적으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도 점차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어쨌든 중국과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북에 제재를 가해 굴복시키겠다는 미국의 생각은 이로써 사실상 파탄이 난 것과 같다. 중국이 북과 교류확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는데 무슨 대북재제랄 것이 있겠는가. 거기다가 북은 중국이 제제를 가해도 끄덕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공영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으로 우간다까지 친북에서 돌아섰기에 북은 이제 곧 망할 일만 남았다고  연일 대서특필을 하고 있으니...

이번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 2077호로 북의 핵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외교를 편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도 북의 대외교류 70%가 중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중국이 다시 북과 협력 사업을 확대한다고 고위급 회담에서 밝혔기에 이제는 정말 현실적인 상황파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라의 경제가 말이 아니어서 국민들은 나라의 활로를 뚫어낼 지혜로운 외교와 대북정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보수적인 국제정세전문가들도 박근혜 정부에서 볼 것은 외교밖에 없었는데 그것마저 요즘은 국제적 비웃음을 사고 있다며 우려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현실 직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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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고, 사적인 전화 때문'... <조선> 보도 잘못됐다"


16.05.31 21:31l최종 업데이트 16.05.31 21:31l





기사 관련 사진
▲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기사 사망사고가 휴대폰 사용 때문이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의 31일 기사.
ⓒ 조선일보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아무개씨가 사고 당시 사적인 내용의 휴대전화 통화 중이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수리에 들어가기 전 전화로 업무보고를 했을 뿐, 사고와 전화통화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서울메트로가 31일 오후 <오마이뉴스>에 밝힌 사고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스크린도어 수리기사 김씨는 지난 28일 수리작업을 위해 스크린도어를 열고 들어가기 전 플랫폼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했다. 내용도 수리작업에 관한 업무상 통화였다. 김씨는 이 통화 뒤 스크린도어를 열고 들어가 수리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서울메트로는 "(김씨가) 스크린도어를 연 뒤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고, 따라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보도는 잘못됐다"고 밝혔다. 

<조선>은 31일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수리공 통화 왜 숨겼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작년 8월에 이어 9개월 간격을 두고 지난 28일 발생한 서울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작업현장에서의 개인 휴대전화 사용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30일 서울메트로가 지난 28일 사고 당시 구의역 CCTV(폐쇄회로 TV)를 확인한 결과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담당 외주업체인 은성 PSD 소속 김모(19)군은 사고를 당하는 순간까지 약 3분간 휴대전화로 통화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김군은 전동차가 진입하고 있다는 방송을 듣지 못했고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만일 서울메트로가 지하철 선로 작업을 할 때 개인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했다면 이번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며 '매뉴얼 부실'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조선> 보도대로라면, 작업 중 사적인 일로 부주의를 한 김군 개인의 과실이 사고의 큰 원인이 되는 셈이고, 정비작업의 외주화와 인력부족으로 인해 안전수칙을 지킬 수 없는 등 구조적 문제는 뒤로 밀려난다. 

<조선> 독자들 중에도 개인의 부주의 탓이라는 반응을 보인 이들이 있었다. 한 독자는 <조선> 홈페이지 기사 댓글로 "매뉴얼이 아무리 좋다지만 그걸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했다. 다른 독자는 "나에게는 사고 생기지 않는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문제"라고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보도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댓글도 뒤따랐다. 아이디 'jeria****'은 "경찰도 서울메트로도 '작업 중 통화'가 아니고 '승강장 위에서 이동 중의 통화'라고 했고, 그리고 마치 개인통화인 것처럼 보이게 기사를 작성하셨던데 정확히 하면 다음 작업 스케줄의 '업무상의 통화'였다고 합니다"며 "기사 정정보도하시고 유족분들에게 사과하세요"라고 촉구했다. 아이디 'sju****'은 "이 같은 기사는 유가족을 두 번 울리는... 그런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위안부 할머니 "돈이 탐나 이러는 줄 아나?"

  번호 30226  글쓴이 김복동  조회 998  누리 10 (0,10, 0:0:2)  등록일 2016-5-31 18:56 대문 0


위안부 할머니 "돈이 탐나 이러는 줄 아나?" 
(프레시안 / 이재호 기자 / 2016-05-31)


정대협 "묻지마 합의 하더니 정체 모를 돈 받으라?…재단 설립 중단해야"
"내일모레면 다 죽을 할머니들인데 재단이 무슨 필요가 있다고 만듭니까? 우리는 돈이 탐이 나서 그런 것 아닙니다.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겁니다."

정부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후속 작업으로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설립한 것과 관련, 31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 거주하고 있는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 할머니는 "나이 어린 소녀들이 전쟁통에 끌려가서 군인들 노예가 됐고, 수년 동안 여기저기 끌려다니다가 겨우 생명만 부지해서 돌아왔는데, 우리가 돈 몇 푼 준다고 마음이 바뀌겠나"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 정부한테 사죄하라고 하고 명예 회복시켜주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 몇 푼 받으려고 싸운 것 아니었다. 그런데 정부가 재단을 만들었다. 이게 잘한 일인가?"라며 "이건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것밖에 안 된다"고 일갈했다.

김 할머니는 "정부가 국민들 모두가 반대하는 걸 하고 있다. 국민을 희롱하는 일"이라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직접 나서서 법적으로 배상하고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정대협
 
정대협 역시 이날 입장 자료를 통해 "12.28 합의는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이루어진 절차적 결함은 물론 그 내용에서도 배상도 아닌 '돈'으로 피해자들을 입막음하고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로써, 잘못된 합의라는 점이 각국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유엔 인권전문가들을 통해서도 확인돼 왔다"고 주장했다.  

정대협은 "그러나 이 외침을 듣지 못하고 있는,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는 뻔뻔한 한일 양국 정부가 '화해와 치유'를 위한 재단의 설립을 강행하겠다고 하니 누구를 위한, 또 누구에 의한 화해이며 치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대협은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제동원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투쟁을 상징하는 평화비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 정부를 비호라도 하듯, 잘못된 합의를 충실히 이행해가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굴욕 외교가 그들의 말대로 진정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정대협은 박근혜 정부가 "시간과의 싸움에 놓인 피해자들을 향해 도리어 시간을 핑계 삼아 '묻지 마 합의'를 떡하니 해놓고는 배상도 아닌 성격조차 불분명한 '돈'을 받으라 강요한다"고 개탄했다.  

정대협은 "일본 정부가 '책임'이라 말하면 '법적 책임'인 것으로, '정부 예산'이라하면 '배상'인 것으로 알아서 과대 포장과 창의적 해석을 해가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종결지으려는 박근혜 정부에게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할 자격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고 일갈했다.  

정대협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일구어 온 국제사회의 판단과 지지, 한결같은 피해자들의 온당한 요구를 한순간에 엎어버린 정치적 합의를 한 것도 모자라 기어이 이를 강행한다면 일본정부에게 10억 엔에 면죄부를 팔아넘긴 부끄러운 정부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을 비롯해 소속 의원 19명은 지난 30일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합의' 무효 확인 및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결의안에서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진행된 양국 정부 간 합의는 법적·정치적·외교적으로 무효임을 확인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 등을 위한 책임 있는 재협상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또 31일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일본군 위안부 재단'과 관련, 결의안은 "지난 1월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공식 입장을 유엔에 제출하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합의 이행이라며 재단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에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임을 확인하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단의 설립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