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9일 금요일

돈안들고 끝내주는 결혼식

돈안들고 끝내주는 결혼식

최철호 2018. 03. 09
조회수 1043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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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삶을 가로막는 힘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말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밝은누리> 젊은이들은 혼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신과 물질 면에서 부모로부터 독립해 주체로서 새 삶을 사는 계기로 삼는다. 혼수품을 마련하고 살림집 장만하는 것도 가능한 한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단순 소박하게 한다. 혼인식 때도 한 번 입고 마는 특별한 옷이 아니라 한복이나 평소 즐겨 입는 옷을 입는다. 혼인예식은 먼저 혼인한 이들과 젊은이들이 신랑 신부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해 마을잔치로 한다. 혼인식마다 새롭고 창의적인 잔치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혼인 과정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반대하는 ‘어떤 힘’에 부딪힌다. 주로 부모님 반대로 시작되지만, 반대하는 실체가 꼭 부모님이 아니다. 맞서야 할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가부장 문화에서는 엄마가 먼저 나선다. “나는 괜찮은데, 네 아빠가 이해하시겠냐?” 그럴 때면 큰맘 먹고 아빠를 만난다. 아빠와 어려운 얘기 나눌 생각 하면 심장부터 뛰는 딸들은 먼저 편지로 할 얘기를 전하는 슬기를 발휘한다. 아무리 무섭고 고집불통인 아빠라도 장성한 딸의 편지 받으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래도 반대가 꺾이지는 않는다. “나는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큰아버지나 고모가 이해하시겠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만나서 해결해야 할 대상이 엄청 많아지고 모호해진다. 말이 큰아버지고 고모지, 집안 어른 누구든 등장할 수 있는 거다. 또 한 번 큰맘 먹고 거론된 집안 어른들을 찾아뵙고 말씀드린다. “네 혼인식인데 네가 알아서 하면 되지! 근데 손님들이 좀 이상하게 느끼지 않겠냐? 그냥 사람들이 하는 대로 사는 게 좋을 거다.” 이제 누구를 만나 풀어야 하지! 반대는 여전한데, 맞서야 할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제풀에 지치게 하는 구조다. 이러다 보면 많은 경우 그냥 지쳐서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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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습적인 삶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려다 보면 이런 실체 없는 싸움에 자주 직면한다. 이럴 때는 말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정성껏 나누되 그냥 뜻한 바대로 살면 된다. 그 삶이 참되고 고운 것이라면 결국 삶을 보고 이해할 것이다. 관습의 힘은 그럴듯한 말로 이길 수 없다. 말은 천 냥 빚을 갚는 힘도 있지만, 우리 삶을 떠도는 말은 많은 경우 실체 없는 허상이다.

 말은 잘 주고받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어릴 때 뚜렷하게 경험했다. 고등학생 때 우리 집을 어렵게 만든 사람을 만났다. 나름 담판 짓는 마음이었다. 다방이라는 곳을 처음 갔다. 엄청 긴장되었다. 준비한 얘기를 설득력 있게 했다. 반응도 기대 이상이라 뭔가 해결되는 듯했다. 근데 얘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얘기는 잘되었는데,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었다. 허깨비와 싸운 느낌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다른 화법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 깨달음이 이후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냥 뜻한 바대로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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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1991년 생명평화를 증언하는 삶을 살고자 ´밝은누리´ 공동체를 세웠다·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 마을공동체를 세워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삶을 산다· 남과 북이 더불어 사는 동북아 생명평화공동체를 앞당겨 살며 기도한다· 청소년 청년 젊은 목사들을 교육하고 함께 동지로 세워져 가는 일을 즐기며 힘쓴다.
이메일 : suyuho@hanmail.net      

급변하는 한반도정세-남북, 북미정상회담 국면에서 자주통일운동

[사설] 남북관계전환을 중심으로 북미관계를 보자급변하는 한반도정세-남북, 북미정상회담 국면에서 자주통일운동
1. 핵무력완성 이후 북의 전략과 핵미사일실험 중단(유예)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남북관계개선과 평창올림픽참가의사) - 평창동계올림픽 선수단, 고위급대표단 파견, 김여정특사를 통한 남북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제안 - 대북특사파견과 4월말 정상회담개최 합의 –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제안과 트럼프의 5월안 개최동의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숨가쁜 대전환, 대반전이 불과 두 달 남짓 하는 시간에 일어났다.
지금 한반도정세의 대반전은 누가 보더라도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 신년사발표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남북관계 전환에 대한 의지와 이를 위한 과감한 행보, 대범한 결단은 세간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행보를 이해하려면 핵무력 완성 이후 북의 국가전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핵무력 완성을 바탕으로 1) 경제강국건설 2) 남북관계전환 3) 책임있는 핵강국으로서 국제외교를 전략적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핵무력 완성으로 억지력이 담보된 조건에서 위 세 가지 방향에서 역량을 구축한다면 북미대결전을 승리로 끝낼 수 있다는 전략적 타산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주동적 조치가 핵과 미사일실험 중단(유예)이다. 핵과 미사일실험발사 중단이라는 주동적 조치를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를 선도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전쟁책동을 무력화함과 동시에 남북관계와 국제외교를 전환함으로써 경제강국 건설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미국을 포위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그 중에서도 중심고리는 남북관계전환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합니다.”고 말한 것도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의 시작을 남북관계에서부터 하겠다는 구상이 서 있었던 것이다. 이에 관해 ‘조선신보’에서는 북이 핵 미사일실험을 하지 않을 것임을 이미 시사한 바 있다.
▲ 3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방북 특사단 일행을 환영하는 만찬을 열었다.[사진 : 조선신보]
2. 남북관계전환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와 대범한 결단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조성된 정세는 지금이야말로 북과 남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북남관계를 개선하며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절박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다면 어느 누구도 민족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말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관계개선에 대한 이러한 의지는 남북관계개선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대범한 결단으로 나타났다. 우선 4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통상적 수준으로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표명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물론 여기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남측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당장에 중단할 수는 없기에 최대한 ‘로우키’로 하겠다는 남측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적 안정이 정착되면 중단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인데, 일부 언론에서 마치 김정은 위원장이 한미합동군사훈련자체를 통상훈련으로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4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러나 ‘비핵화 의지표명’은 예상 밖의 파격적인 발언이다. 그간 북이 “우리의 핵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며 비핵화를 의제로 한 대화에 분명히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북미협상 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향적 조치로 보아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은 그 성격상 미국이 북의 참가를 반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평창 이후는 북미관계의 전환 없이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 나설 수도 없고, 설사 남북대화를 한다하더라도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에 묶여 그 어떤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는 사정을 이해한 조치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의 방법론으로 ‘동결을 입구로 비핵화를 출구로 한 2단계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이 2단계 해법에 힘을 실어 준 것으로 보인다. 입구의 조건으로 말하는 ‘동결’에 관해 김정은 위원장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핵실험과 미사일실험 중단(유예), 출구인 비핵화에 관해서는 군사적 위협해소와 체제안전보장을 조건으로 논의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와 관련 6일 저녁 정의용 안보실장의 청와대 발표문에는 핵과 미사실험 중단 앞에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이란 단서가 붙어있는 반면 9일 오전 백악관 발표에는 “앞으로 어떠한 핵실험과 미사일실험도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협상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앞으로 어떠한 핵실험과 미사일실험발사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남측이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남측용과 대미용 두 가지로 변형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상황을 미국이 ‘동결‘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북미정상회담에 동의했다는 것은 그간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했던 비핵화선행조치를 폐기하고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핵과 미사일실험 중단(유예)’에 동의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관계전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목은 정상간 핫라인개설과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집’을 정상회담 개최장소로 선택한 결단이다. 정상간의 소통을 상시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정상간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남북관계를 전략적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특히 과거 6.15시대처럼 북미협상이 교착되거나 갈등이 격화되면 남북관계가 중단되는 상황이 되풀이 되지 않고 북미협상의 진행과 관계없이 남북관계를 밀고 나가도록 하자는 의지로 보인다.
▲ 3월 9일 정의용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사진 : 청와대 제공]
3. 핵과 미사일실험 중단(유예)은 비공식 핵보유국 기정사실화 전략
북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미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ICBM기술의 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시점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나왔다. 전략적 모호성을 남겨두기 위해서다. 핵억지력을 보여주면서도 기술적 완성의 모호성을 남겨두는 것이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가는 데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장치와 새로운 국면에서의 전략적 공세의 여지는 마련해 두었다. 그 하나는 ‘괌 포위사격 계획’이다. 미국이 군사행동을 할 조짐이 보이면 가차 없이 괌포위사격을 감행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태평양상에서의 대규모 핵실험’이다. 미국이 끝내 대북적대정책을 계속하겠다면 공격적인 핵실험으로 새로운 대미 핵무력시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상의 핵실험은 사실상 대미선전포고나 다름없기에 이것이 단행된다면 사실상 북의 입장에서 반미최후의 대결전일 것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 핵보유국들은 북의 핵보유국인정을 결단코 공식적으로 하지 않으려한다. 북의 핵보유국인정을 공식화하면 이른바 핵도미노현상을 불러오고 강대국의 핵독점체제인 NPT체제의 무력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등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이 NPT체제 밖에서 비공식적인 핵보유국이 된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도 북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미국의 대북제재에 동참해 왔지만 북의 실질적인 핵 제거, 더 나아가 북 정권의 제거를 목표로 하는 미국과는 입장이 다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보다는 미국이 주적이고 미국의 대북핵전쟁을 포함한 북한붕괴를 위한 군사행동을 더 경계한다.
최근 러시아가 북미협상의 중재를 자처해 나서고 더 나아가 어떤 미사일방어체제도 무력화할 수 있는 핵미사일개발성공을 발표하면서 푸틴이 직접 나서 “동맹국에 대한 어떠한 핵공격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고 경고해 나선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중국도 미국의 대북독자제재에 반대하면서 “대북제재는 소진되었다. 더 이상의 대북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고 나선 것도 북핵에 대한 우려보다 트럼프정권의 모험적 군사도발에 대한 경계를 더 크게 드러낸 것이다.
북이 추가적인 핵실험과 미사일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보유한 북핵과 미사일제거를 위한 공격적인 대북제재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는 북을 비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핵실험과 미사일실험 유예는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을 미국주도의 대북제재로부터 이탈시키고 사실상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 나가려는 북의 전략이다. 북이 자신을 적대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반복해서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중국은 새로운 시진핑 시대를 준비하며 동북아는 물론 세계적 범위에서 미국과 대등하거나 우위에 서는 ‘글로벌 리더십’을 강력히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정권이 밀어 붙이는 한미일삼각동맹구축과 무역전쟁에 맞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중국으로서는 더 이상 미국의 대북제재에 협력하기 보다는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북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한걸음 더 나아가 ‘동방정책’ 가속화를 위해 북과 경제협력과 가스 송유관 연결 등 이른바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을 주도하고 싶어한다.
바야흐로 미국의 대북제재동맹은 붕괴되고 ‘동북아평화동맹’으로의 대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4. 북미대화-첨예한 협상과 대결의 병행
트럼프정권은 북의 비핵화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믿지 않을 것이다. 또 북미정상회담에 응하면 남북관계가 탄력을 받게 될 것이고 북-중, 북-러, 북-EU 정상회담으로 이어짐으로써 미국의 대북제재전선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이 참가하는 것을 동의할 때만 해도 대놓고 반대할 명분도 없지만 평창 이후 한미합동군사훈련의 강행을 통해 원점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고 타산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생겼다.
먼저, 평창에서 터져 나온 남북사이 화해와 단합의 열기다. 다른 민족은 죽었다 깨어나도 느낄 수 없는 우리민족의 뜨거운 동포애와 통일의 열기는 문재인정부에게도 자신감을 주었고, 김여정특사방남과 대북특사방북으로 이어짐으로써 남북관계전환의 강력한 동력을 형성했다. 평창 전과 평창 후 남북대화에 대한 국민여론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발언과 북미정상회담 제안은 트럼프로서는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핵과 미사일실험을 유예하고 비핵화논의를 할 수도 있다며 만나자는데 거절할 명분도 없다.
관세폭탄에 대한 반발 등 이래저래 국내정치의 위기에 처해있는 트럼프로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위해서라도 북미대화를 성사시켜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하고 싶을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미국은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북의 핵과 미사일실험이 중단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대화는 물론 북중, 북러 정상회담이 이어질 경우 미국의 대북제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이 협상과정에서 북의 전략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는 북미협상에서 비핵화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잘게 쪼개는 방식이 아니라 한꺼번에 내놓고 일괄타결을 시도해야 할 것인데 대북협상라인조차 붕괴되어 있는 트럼프정권으로서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협상의 입구는 열렸다지만 대화의 지속을 위해서는 북의 긴장완화조치-핵과 미사일실험유예에 상응하여 미국이 8월에 열리는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 등 대북전쟁연습 중단과 대북제재철회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북의 가시적 비핵화조치전까지는 이를 지속하려 할 것이다. 또 북이 말하는 ‘조선반도비핵화’와 관련하여 미국의 핵위협과 핵우산 제거 등 상응하는 조치도 쟁점이 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세계비핵화와 연동될 수도 있다.
특히 북의 비핵화에 상응하며 미국의 군사적 위협해소와 체제안전보장의 핵심인 대북적대정책철회와 평화협정, 주한미군철수 등 ‘근본문제’는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달린 문제여서 북이 비핵화를 한다 해서 미국이 동의하고 이행하리라는 담보도 없다.
결국 북미협상은 협상과 대결이 병행되는 가운데 매우 불안정하고 복잡한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 3월 8일 시민사회단체들이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였다.
5. 남북관계전환으로 우리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전환하여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것이 현 정세의 초점이다.
현 국면의 초점은 북미협상에 있지 않다. 북미협상은 남북관계전환을 위한 환경을 여는 것에 의미가 있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버리고 정책적 대전환을 하는가 여부는 북미협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통해 민족적 힘을 하나로 결집하여 북미대결구도를 우리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전환시킬 때 가능하다. 이것이 현 국면에서 주체적 정세인식의 초점이다.
따라서 진보적 통일운동은 자주통일의 기치를 더욱 뚜렷이 하고 반미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여나갈 것을 제안한다.
첫째, 대규모의 남북정상회담 지지환영대회 등 남북정상회담을 지지 환영하는 하는 거족적인 운동을 통 크게 벌여 남북의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에 동의하는 광범위한 통일애국세력의 힘을 하나로 결집해야 한다. 6.15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그간 남북대결국면에서 이완되었던 평화통일세력의 결집을 통해 ‘제2의 6.15시대’를 밀고 나갈 민족운동의 구심을 세워야 한다. ‘전민족대회’라는 전략적 지향은 분명히 하되 그 정신에 맞게 광범위한 평화통일세력의 민족적 단결을 건설하는 운동을 통이 크고 대범하게 전개해야할 때다. 특히 ‘촛불혁명의 시대’에 맞게 광범위한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대중운동을 창조적으로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에 대한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 방해를 단호히 배격하고 대북적대정책폐기, 전쟁연습중단, 대북제재철회 등 남북관계진전을 가로막는 미국의 반평화적 반통일적 정책과 남북이간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더욱 강하게 벌여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GM대우사태, 한미FTA개악, 통상압력, 방위비분담금 증액 등 미국의 침략적 횡포와 주권유린에 맞선 반미투쟁도 강하게 벌여나가야 한다.
셋째, 남북사이 다방면적인 왕래와 교류 협력사업을 정세의 요구에 맞게 통크고 대범하게 벌여나가야 한다. 새로운 높이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창조하는 등 민족자주의식, 민족대단결의식, 통일의식을 고취하는 운동과 결합하여 자주통일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전개해야한다.
넷째, 자주통일운동의 주체역량을 확대강화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 지난 6.15시대 좋은 정치적 환경에서도 주체역량을 튼튼히 마련하는데 주력하지 못하고 합법주의, 실적주의에 빠져 역량강화에는 별 성과가 없었던 경험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의 운동을 하더라도 의식화 조직화사업을 앞세워 튼튼한 자주통일역량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트럼프, 김정은 회동 제의에 "5월까지 만날 것"

정의용.서훈, 트럼프 접견..김정은 위원장 메시지 전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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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9  09: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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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9일 오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접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왼쪽)과 조윤제 주미대사(오른쪽)가 배석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접견한 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밝혔다.
대북 특사단 수석대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했던 정의용 실장은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을 접견한 뒤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 8일 오후 7시)를 조금 넘겨 결과를 간단히 발표했다.
정의용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브리핑에 감사를 표시하고,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또한 대북 특사단 발표문에 포함됐던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하였다”는 점과 “김 위원장은 북한이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점, 그리고 “김 위원장은 한·미 양국의 정례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전했다고 말했다.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접견에는 미국측 고위관계자들도 배석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정 실장은 “오늘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근 저의 북한 평양 방문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는 영예를 가졌다”며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과 최대 압박 정책이 국제사회의 연대와 함께 우리로 하여금 현 시점에 이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한민국은 미국, 일본, 그리고 전세계 많은 우방국들과 함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완전하고 단호한 의지를 견지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우리는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한 외교적 과정을 지속하는 데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대한민국, 미국, 그리고 우방국들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북한이 그들의 언사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줄 때까지 압박이 지속될 것임을 강조하는 데 있어 단합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정의용 실장의 이날 트럼프 대통령 접견 결과 발표는 당초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과 함께할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 실장이 준비해온 메모를 낭독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발표장에는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조윤제 주미대사가 함께 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발표문(국문 번역본, 전문)
2018. 3. 9. 09:11 (현지시간 8일 19:11)
  o 오늘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근 저의 북한 평양 방문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는 영예를 가졌습니다. 저는 트럼프 대통령님과 부통령, 그리고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맥마스터 장군을 포함한 그의 훌륭한 국가안보팀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과 최대 압박 정책이 국제사회의 연대와 함께 우리로 하여금 현 시점에 이를 수 있도록 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트럼프 대통령님의 리더십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님의 개인적인 감사의 뜻을 전달하였습니다.
  o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이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한·미 양국의 정례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하였습니다.
  o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브리핑에 감사를 표시하고,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o 대한민국은 미국, 일본, 그리고 전세계 많은 우방국들과 함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완전하고 단호한 의지를 견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o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우리는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한 외교적 과정을 지속하는 데 대해 낙관하고 있습니다.
  o 대한민국, 미국, 그리고 우방국들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북한이 그들의 언사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줄 때까지 압박이 지속될 것임을 강조하는 데 있어 단합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NSC Chief’s Announcement at the White House

Good evening.
Today, I had the privilege of briefing President Trump on my recent visit to Pyongyang, North Korea. I’d like to thank President Trump, the Vice President and his wonderful national security team, including my close friend General McMaster.  I explained to President Trump that his leadership and his maximum pressure policy, together with international solidarity, brought us to this juncture.  I expressed President Moon Jae-in’s personal gratitude for President Trump’s leadership.
I told President Trump that, in our meeting,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said he is committed to denuclearization. Kim pledged that North Korea will refrain from any further nuclear or missile tests. He understands that the routine joint military exercise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must continue.  And he expressed his eagerness to meet President Trump as soon as possible.
President Trump appreciated the briefing and said he would meet Kim Jong Un by May to achieve permanent denuclearization.
The Republic of Korea, along with the United States, Japan, and our many partners around the world remain fully and resolutely committed to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long with President Trump, we are optimistic about continuing a diplomatic process to test the possibility of a peaceful resolution.
The Republic of Korea, the United States and our partners stand together in insisting that we not repeat the mistakes of the past, and that the pressure will continue until North Korea matches its words with concrete actions.
Thank you.


​(수정, 10:46)

"민주화 투쟁에 승리한 상지대 더이상 '김문기'와 '분규'는 없다"

18.03.10 13:12l최종 업데이트 18.03.10 14:19l
  

 정대화 상지대 총장직무대행
▲  정대화 상지대 총장직무대행
ⓒ 남소연

상지대는 수십년 동안 김문기, 사학비리, 분규사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임시이사가 파견되면 안정됐고, 정이사 체제로 전환되면 분규가 시작되는 역설이 거듭됐다. '사학비리의 대명사'로 불렸던 김문기 전 이사장 체제의 구재단이 최대 변수였다. 온갖 비리를 저질러 쫓겨났던 재단을, 사학 정상화라는 미명 아래 학교로 불러들인 건 비상식적인 법 규정과 보수정권의 비호였다.

그랬던 상지대가 달라졌다. 지난해 8월 31일은 상징적인 날이었다. 8년 6개월 동안, 한때 60개가 넘었던 천막농성장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췄다. 민주화 투쟁 주역들이 승리를 선언하며 스스로 철거한 것이다. 철옹성 같았던 김문기 체제가 무너졌다. 1993년 김문기의 구속으로 마무리된 '제1 민주화'가 김영삼 정부의 개혁사정 드라이브에 힘입은 것이라면, 지난해 농성천막 철거로 상징되는 '제2 민주화'는 오롯이 상지대 구성원들의 단결된 힘으로 쟁취한 것이었다.

김문기 체제에 맞서며 상지대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섰던 대표적인 인물이 정대화 교수다. 그는 지난해 8월 교육부가 상지대에 임기 1년의 관선 임시이사를 파견한 직후 이사회(이사장 고철환)로부터 총장직무대행 겸 부총장에 임명됐다. 22년 전 법인 사무국장을 맡으며 상지대와 인연을 맺은 그는 교수협의회 대표와 상지대비상대책위원장 위원장 등 궂은 일을 도맡다가 김문기 총장 체제에서 파면당하기도 했다. 비리재단 측에서 보자면 눈엣가시인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였다.

지난 2월 23일 오후 강원도 원주 상지대 총장실에서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을 만났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총장으로서 가장 주력했던 게 "분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대학으로 탈바꿈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추진했던 과거의 적폐 청산과 미래의 재정 안정성 확보도 모두 '상지대 정상화'와 맞닿아 있다. 향후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정부가 추진중인 '공영형 사립대(공영사학)' 1호로 선정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상지대 정상화를 공인받고, 비리재단의 복귀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거다.

'유쾌한 달변가'인 그가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울컥했던 순간이 있다. 1986년에 벌어졌던 소위 '상지대 용공조작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비리재단이 조작된 삐라를 뿌리고, 학생 150명 가량을 간첩으로 둔갑시켰던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학생들은 물론 방관했던 교수와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분노가 수십년 동안 상지대 민주화투쟁을 끌고온 힘으로 작용했다고.

정대화 총장대행은 스스로 '넘버3'를 자처한다. 총장은 '넘버2'인 학생들보다 서열이 낮기 때문에 언제든 편하게 총장실로 찾아와 불만이나 고민을 털어놓으라는 거다. 지난 2월 9일 졸업식(학위수여식) 때 교가 대신 '걱정하지 말아요 그대' 노래를 부르고,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졸업장을 받은 진풍경도 '넘버2'인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한 결과다. 김문기 체제에서 무기정학 징계를 받았던 총학생회장에게 공로상을 수여한 장면은 상지대 민주주의를 복원한 상징이었다.

올해는 친일문제 전문가인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전 사무총장,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을 초빙교수로 모셨다. 그리고 친일파, 환경, 시민사회 등을 주제로 일회성 특강이 아닌 정규 강좌를 개설했다. '한국 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대형 릴레이 특강도 성적을 매기지는 않지만 학점을 인정하는 새로운 시도다. 상지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란다.

상지대는 학교운영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은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나 교무회의에서 결정한다. 총장은 의견을 모으고, 이사회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자임한다. 학내 구성원들이 두루 참여하는 위원회만도 100개에 달한다고 한다. 수많은 위원회들은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민주주의의 실험 현장인 셈이다.

상지대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정대화 총장대행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2018년 2월 9일 상지대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았다.
▲  2018년 2월 9일 상지대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았다.
ⓒ 상지대 제공

- 총장직무대행을 맡은 지 7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소회는?
"지난 6개월 동안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허둥대면서 일을 했는데, 지금은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교무위원회도 틀이 잡혔고 안정감이 있다."

- 지난 6개월 동안 가장 주력했던 것은 무엇인가.
"분규 체제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정상적인 대학으로의 탈바꿈, 그게 첫 번째다. 이를 위해 구성원들의 의사를 모으고, 잘못된 걸 바로잡는 일에 주력했다. 두 번째는 상지대 구성원을 괴롭히고 황폐화시켰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었다. 그 다음은 재정적자 해소 문제였다."

- 임시이사회와의 소통은 원활한가. 대학운영 체계도 바꿨다고 하는데.
"고철환 이사장이 (총장직대인) 나보다 더 민주적인 것 같다(웃음). 이사회가 대학 구성원들의 의사를 활발하게 수용해준다. 이사회가 민주적으로 구성원들의 생각을 물어보고 결정한다. 굉장히 높은 수준의 민주성과 개방성을 갖추고 있다."

- 교육부에서 파견된 임시이사들의 임기가 1년인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건가.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임시이사 교체, 임시이사 연임, 정이사 선임. (임시이사회를 포함해) 내부적으로는 정이사를 선임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조만간 교육부에서 (실태 파악을 위해) 실사를 나올 예정이다."

- 그동안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심의원칙 때문에 상지대가 임시이사 체제에선 정상화되고, 정이사 체제에선 복귀한 구재단 인사들로 인해 분규와 파행을 거듭해왔는데. 구재단 복귀의 길을 터주는 사분위의 '문제 조항'이 고쳐졌나.
"아직 안 고쳐졌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가 사분위 정상화 심의원칙을 바꾸겠다며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입법과 관련된 사항이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기대를 거는 건) 5월이 되면 사분위원들이 1명을 빼고는 모두 바뀐다. 현재 사분위원장도 없고, 사분위원 11명 가운데 3명이 공석이다. 아직 정부에서 임명하지 않았지만, 3월에 5명이 바뀐다. 사분위원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기 때문에, 사분위원장이 선임되고 위원들 다수가 물갈이되면 처음으로 '문재인표 사분위'가 구성된다. 여기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 '사학비리의 대명사'였던 김문기 전 이사장의 복귀는 불가능한가, 아니면 낮지만 가능성이 남아 있나.
"'김문기의 복귀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시점이 문제다. 김문기가 김영삼 정부 때인 지난 1993년에 퇴출됐다. 그리고 21년만인 지난 2014년에 복귀했다.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로부터 21년 뒤일 것이다. 87살이니 108살에 복귀가 가능할 거다. '김문기 복귀'를 물어보면 지난해까진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물어보면 '김문기 복귀 가능성은 0%'라고 말하겠다. 물론 김문기의 의사를 대변하는 극소수가 정이사로 들어올 수는 있다. 그건 큰 의미가 없다."

- 김문기의 의사를 대변하는 사람이 상지대 이사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분위 정상화 심의원칙에 따르면, 대학 이해관계자 가운데 정이사를 구성하도록 돼있다. 이명박 정부 때 사분위에서는 구재단에 과반의 정이사 선임권을 주도록 했다. 과반은 아니지만, 지금도 구재단 이해관계자에게 이사 몫을 배분할 수 있다. 상지대 구성원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총장직대를 맡고 있는 내게 묻는다면 전체 정이사 9명 가운데 1명은 구재단(김문기) 몫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나 2명 이상은 절대 안된다."
 정대화 상지대 총장직무대행
▲  정대화 상지대 총장직무대행
ⓒ 남소연

- 속된 말로 '김문기가 상지대를 날로 먹었다'는 얘기가 있다.
"김문기가 박정희 정권 때 중앙정보부와 청와대를 동원해서 자기 돈 10원 한 푼 안 들이고 상지대를 가져갔다. 체육계 거물이자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민관식(1918~2006)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문교부 인맥이 민관식 맨파워로 구성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박정희 유신 때인 1971년에 문교부 장관이 됐다. 그때 김문기가 민관식 쪽에 붙어서 상지대를 소유하게 된 거다.

민관식이 서울 동대문구에서 여당 국회의원을 할 때 김문기는 파고다가구공예점을 운영했다.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관식 후보의 재정위원장·선거사무장을 맡았다. 그 후 민관식이 문교부 장관으로 가니까, 책·걸상 납품을 도맡으며 떼돈을 벌었다. 그리고 상지대에 10원 한 푼 출연하지 않고 말 그대로 날로 먹은 거다. 지금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지만, 김문기가 20년 동안 상지대 이사장을 하면서 학생들의 등록금의 절반 가량을 가져갔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 아직도 상지대에 '김문기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을텐데.
"김문기가 1974년부터 1993년까지 20년 동안 이사장을 했는데 그때의 적폐는 1차 상지대 민주화 시기에 상당부분 정리됐다. 이후 김문기의 둘째 아들(김길남)이 이사회에 들어오고 김문기가 총장으로 복귀해 또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그 가운데 정관이나 규정 등은 지난 6개월 동안 바로 잡았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 김문기 체제에 부화뇌동했던 부역자들 문제다. 조사과정을 거쳐 이들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 김문기 체제의 부역자들이 반발하지는 않나. 징계 절차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
"원칙대로 절차를 밟고 있다. 당사자들이 반발할 여지는 없다고 본다. 교직원에 대한 징계 절차는 굉장히 엄격하다. 교수 징계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거치게 돼 있다. 직원 징계는 지방노동청이나 노동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법률에 정해진 엄격한 규정과 객관적 기준에 따라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행정감사를 진행했고, 내가 총장에 취임한 뒤에는 법인과 협의해서 법인 특별감사를 진행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교수와 학생 대표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이 조사도 거의 마무리 단계다. 징계는 지난해부터 진행됐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완료될 것이다."

- 사학비리만큼이나 구성원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 게 1986년에 발생했던 '상지대 용공조작 사건'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건가.
"김문기 체제에서 학교측이 조작한 사건이다. 학내에 '가자, 북의 나라로'라는 삐라를 자기들이 뿌린 뒤 경찰에 신고해 학생 150명 가량이 간첩으로 몰렸다. 당시 교수들은 그 상황에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학생들이 굴비처럼 엮여서 끌려가는데도 지켜주지 못하고 침묵했다는 트라우마가 강했다. 용공조작 사건이 벌어진 건 1986년 10월 14일이었다.

이 날은 유성환 신한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는 소위 '통일 국시' 발언으로 정치권이 들썩였다. (유성환 의원은 다음날 구속됐다.) '통일 국시' 발언이 있던 날 저녁 상지대에는 조작된 삐라가 뿌려진 것이다. 그 시기 전후로 금강산댐 사건, 1290명이 구속된 '건대 사태'가 벌어졌다.

교수들이 무엇보다 가슴 아파하는 것은, 조작된 사건인데도 그 이후 강원도 원주 경제단체들이 상지대 졸업생은 취업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결의를 했다는 거다. 한 마디로 취업 블랙리스트지. 상지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취직을 안 시켜줬다. 그로 인해 상지대가 받은 타격과 억울함은 말로 하기 어렵다. 학교에서 조작했다는 걸 알아채고 사건 발생 3일만에 치안본부에서 사건을 덮고 학생들을 다 풀어줬는데도 말이다.

용공조작 사건이 벌어지기 1년 전에는, 김문기 체제에 반대하며 항의 농성을 벌인 교수 3명을 특공대가 진압하듯이 끌어내 이천·여주 등에 분리 감금시킨 상태에서 징계위를 열고 파면시킨 강제해직 사태도 벌어졌다. 그때도 교수들은 침묵했다. 그 트라우마의 빚이 1987년 6월항쟁 직후 상지대 교수협의회를 만들게 한 것이다."
 정대화 상지대 총장직무대행
▲  정대화 상지대 총장직무대행
ⓒ 남소연

- 지금도 그 사건을 생각하면 울컥하나 보다. 눈시울이 붉어진 것 같은데.
"내가 교수일 때는 아니지만, 지금도 그 사건을 생각하면 울컥울컥한다. 나는 1996년에 상지대 교수가 됐다. 그 해 가을 우연히 걸어가는데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있더라고. 그때 처음 알았다. 물어봤더니, 어떤 학생이 설명을 해줬다. 그 학생이 89학번인데, 내가 법인국장할 때 나와 같이 활동하며 4년 동안 작업을 해 1999년 김문기를 국회 국정감사장에 끌어냈다. 20년 동안 교수로 지켜봤는데, 학생들이 크게 말하지 않아도 용공조작 사건에 대한 상처가 컸다. 그 사건을 떠올리면 도저히 김문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지."

- 수십 년 전에 벌어진 일인데도 상지대 후배들이 이 사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나.
"아까 말한 그 학생처럼 잊지 않고 이어가겠다는 학생들이 있었다. '역사는 기억과의 투쟁'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기억하면 승계되고, 망각하면 승계되지 않는다. 우리가 임진왜란이나 6·25전쟁도 알고 있듯이 상지대에서는 용공조작 사건이 집단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되고 재생산돼 왔다.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선배 때 겪은 사건이 후배들의 DNA로 남는 것 같다.

학생들에겐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상지대 민주화 투쟁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왜 상지대 학생들이 사학비리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설까,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내 생각에는 용공조작 사건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큰 에너지였던 것 같다. 학생들을 간첩으로 모는 사람이 어떻게 교육자냐는 거다. 이건 상지대 학생이라면 토론할 것도 없다. 김문기 측근들이 '정대화는 빨갱이고, 너희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얘기를 하면 학생들이 반문한다. '왜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았어요? 설명해보세요'라고."

- 지난해 8월 31일은 상지대에선 역사적인 날이었다. 학내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던 천막 농성장을 자발적으로 철거했다. 소회가 남달랐을텐데.
"2009년부터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중간에 천막이 부숴진 적은 있었지만, 약간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지난해 8월말까지 8년 6개월 동안 천막 투쟁을 한 거다. 천막 농성장은 상지대 분규의 상징이었다. 지난한 싸움 끝에 결국 이사회를 바꾸고 김문기를 우리 힘으로 몰아내니 고진감래, 사필귀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교육적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의미가 남달랐던 게 이 시기를 상지대에서는 '제2 민주화'라고 부른다. 나는 '제1 민주화' 때는 학교에 없었다. 331일 동안의 투쟁 끝에 1993년 김문기가 구속되면서 끝났던 제1 민주화는 내부 구성원들이 투쟁해서 얻은 결과라기보다는 김영삼 정부의 사정·개혁의 성과였다. 우리가 한 게 있다면 사학비리의 대명사였던 김문기가 사정·개혁 대상이 되도록 불을 지핀 역할이었다. 그에 반해 지난해 마무리된 제2 민주화는 그 과정이 지난하고 처참했는데도, 우리의 힘으로 훨씬 높은 수준의 대학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 8년 6개월 동안 동고동락했던 천막 농성장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니 허전하지 않았나.
"허전했다. 뭔가 하나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디 와 있는 거지? 여기 상지대가 맞나? 천막이 많았을 때는 60개가 넘었다. 학과당 하나씩, 노조에서 몇 개, 단과대 및 총학생회, 교수협의회 몇 개...  등. 본관을 천막으로 포위한 적이 있었다. 천막이 우리한텐 일상이었는데, 허전하고 아주 이상했다."
 2017년 8월 31일 민주화 투쟁에 승리한 상지대는 천막 농성장을 철거했다. 8년 6개월만의 일이다.
▲  2017년 8월 31일 민주화 투쟁에 승리한 상지대는 천막 농성장을 철거했다. 8년 6개월만의 일이다.
ⓒ 상지대 제공

- 지난한 투쟁 과정이었는데, 언제 가장 지치고 힘들었나.
"김문기가 총장되기 전에 김문기 둘째 아들이 2014년 3월 31일에 이사장이 됐다. 김문기는 그 해 8월 14일 총장이 되던 날, 나를 징계 대상으로 올렸다.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김문기 아들이 이사장이 되면서 구재단이 학교를 장악하자 언론에서 전화가 빗발치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김문기뿐. 그러다보니 언론이 나한테만 몰렸다. 4월말에 있었던 김문기 고발 재판에도 내가 김문기에 맞서는 검사측 증인으로 나갔다. 돌아오면서 '신세 조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데모도 안 하고, 기자회견도 안 하고 다 빠져나갔다.

김문기가 총장이 되자 내가 징계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지리산에 갔다. 사흘 후쯤 총학생회장한테 전화가 왔다. '어디 계세요. 저희도 올라갑니다' 그러더라구. 알고보니 본관 2층 총장실로 간다는 거다. 그래서 부랴부랴 짐을 싸서 학교로 왔더니 총장실을 점거했더라구. (몇 개월 간의 침묵을 깨고)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투쟁이 시작됐다. 주동했던 학생이 무기정학을 당했는데, 그 징계를 받은 것 때문에 올해 졸업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웃음). 학생들이 움직이니까 교수협의회도, 노조도 움직였다. 그 때가 2014년 8월 17일이다.

김길남이 이사장에 취임하고 김문기가 총장이 되기까지 4개월 여 동안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었다. 되돌아보면 큰 태풍이 몰려오는 과정이긴 했지만, 그때는 태풍이 올지 안올지 잘 몰랐다. 내가 지나가면 저쪽에 있던 사람이 흩어졌다. 몇몇 친한 교수들에게 밥 먹자고 하면 '나야 잘려도 되니까 같이 밥 먹어도 되는데, 정 교수하고 밥 먹으면 잘린다는 소문이 돌아'.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 상지대라고 하면, 먼저 두 사람이 떠오른다. '사학비리' 김문기와 '민주화 투쟁' 정대화. 누가 정대화를 투사로 만들었나.
"(웃으면서) 김문기가 만들었지. 안식년도 두 번이나 반납했다. 첫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라서 그랬다. 아내와 안식년이 같은데, 아내만 미국에서 두 달 지내다 돌아왔다. 대신 두 번째는 제대로 하자고 약속했지. 그래서 2010년 말쯤에 뉴욕에 집을 빌렸다. 그런데 그해 12월에 교수협의회 대표로 추천돼, 한참 고민하다가 맡기로 하고 마누라한테 엄청 두드려 맞았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