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0일 일요일

진료가방을 메고 굴뚝에 오르며...


[기고] 파인텍 박준호 홍기탁 굴뚝농성 200일에 부쳐
작년 11월이었다파인텍 김옥배가 한의원을 찾아왔다혼자 왔다자기는 허리가 아파 침 좀 맞으려고 조금 일찍 올라왔고다른 사람들은 따로 상경하기로 했다고 한다장염과 비염을 달고 있는 박준호와 함께 와서 치료받지 그랬냐고 나무랐다볼 때마다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리로 인사를 대신하는 차광호도 마음에 걸렸다.

그 다음 날인 2017년 11월 12일 새벽어둠을 뚫고 파인텍 노동자 박준호홍기탁이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을 올랐다처음에는 굴뚝을 에워싸듯 둘레를 따라 난 나선형 계단을 따라 30미터쯤 올라가면 거기서부터 수직 사다리를 타도록 되어있다그렇게 45미터를 기어올라야 75미터 굴뚝 위에 오를 수 있다그렇게 박준호와 홍기탁은 굴뚝 꼭대기를 향했을 터이다.
   
참 무기력했다하늘에 오르기 하루 전날김옥배가 다녀갔지 않았는가그럼에도 아무 내색하지 않은 그들이 야속했다미리 알고 있었더라도 무슨 도움 될 만한 일이 있을 리 없었지만 추운 계절로 막 들어선 11월 중순에 75미터 저 높은 곳을 향한 그들의 모의와 작전 성공에 박수를 칠 수만은 없었다. 

앞으로 이어질 그들의 싸움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듯 답답했다차광호의 408일 굴뚝농성으로 쟁취한 합의를 회복하기 위해 또다시 굴뚝 위로 향할 수 에 없는 그들의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고 약속을 어긴 스타플렉스 김세권이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 박준호, 홍기탁 씨의 고공농성 굴뚝. ⓒ노순택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다그래서 굴뚝 위의 두 사람 건강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올라가자올라가서 정말 잘 있는지말처럼 괜찮은지 둘을 만나보자고 마음먹었다한 차례 일정을 연기한 1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 조영선 사무총장님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홍종원 선생님과 함께 굴뚝 위를 향해 올라갔다올라가는 내내 너무 무서웠고 추웠다솔직히 위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에게 높이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안전장치와 안내인의 도움으로도 이리 다리가 후들거리고 두려운데 이 사람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위험과 공포를 무릅쓰고 굴뚝위로 올랐을 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굴뚝 위 공간은 겨우 한사람이 새우잠을 잘 수 있는 아주 좁은 공간만을 허락하고 있었다겹겹이 깔아놓은 단열재이불들은 얼어서 엉겨 붙었다냉기와 찬바람이 위아래에서 둘을 괴롭히고 있었다그럼에도 둘은 그 안에서 석 달을 견뎌냈다.
   
얼마나 추웠을까추위에 떨면서 얼마나 서러웠을까차광호가 45미터 굴뚝에서 내려오면서 받아낸 그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더 높은 75미터 굴뚝 위에서 외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노동현실이 뼈 속 깊숙이 시리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어느새 계절은 옷을 갈아입고 굴뚝 위의 둘의 옷차림도 조금 가벼워졌다. 4월 15일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시 굴뚝을 오르는 길은 여전히 무서웠다추위가 가셨는데 더없이 떨렸다거멓게 야윈 얼굴둘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맞는다열악한 환경과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지칠 만도 하다그런데 둘은 오히려 지난번보다 더 밝아졌고 승리를 낙관하고 있었다걱정과 우려를 안고 올라가서 희망을 얻고 내려왔다. 

지난 며칠 동안 느닷없는 폭우로 굴뚝 위 둘의 안부가 궁금해졌다전화를 걸었다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아무 문제없이 '~알' 지내고 있다는 박준호와 홍기탁의 씩씩한 목소리에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일상계획을 꾸준하게 지키고 음식 잘 챙겨먹고 올려준 약도 빠뜨리지 말고 다른 이들이 보낸 건강식품도 잘 챙길 것을 당부한다.
   
이렇게 호사스런 대접은 평생 처음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홍기탁에게지난 4월에 만났을 때보다 속도 편해지고 잠도 잘 자고 있다는 박준호에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하라는 인사로 전화를 끊었다. 

몇 달 후에 다시 두 사람을 살피기 위해 굴뚝 위를 향할 것이다앞으로 몇 번을 더 오르내려야 할지 모른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사람과 함께 내려올 날이 있다는 것이다막연한 그날을 머지않은 내일로 만들기 위해서 나는 떨리는 자신을 다독이며 진료가방을 메고 굴뚝을 향할 것이다. 

힘차게 손을 흔들며 아래를 향해 내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본다.

*오는 2018년 5월30일(수)은 서울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75m 굴뚝 위 홍기탁‧박준호 파인텍 두 노동자의 고공농성이 200일째를 맞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