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3일 월요일

‘숙청’ 김영철 이어 ‘근신’ 김여정도…조선일보, 또 ‘헛발질’

등록 :2019-06-04 09:13수정 :2019-06-04 09:25

3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 참석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 바로 옆 자리 앉아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왼쪽 둘째)이 3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왼쪽 둘째)이 3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오랜 잠행을 끝내고 53일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참석 이후 오래도록 모습이 보이지 않아 끊이지 않던 ‘근신설’ ‘건강이상설’ 등 김여정 제1부부장을 둘러싼 각종 소문도 잦아들 전망이다.

노동당 중앙위 기관지 <노동신문>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가 3일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개막되었다”며, 이 개막 공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와 함께 김여정 제1부부장이 참석했다고 1면 전면 기사로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 부부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주석단의 자리 배치로만 보면, 김 1부부장의 ‘권력 내부 위상’이 전보다 오히려 높아졌을 개연성도 있다. 김영철 당 부위원장도 개막 공연 주석단에 자리해 이틀 연속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왼쪽 둘째)이 3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왼쪽 둘째)이 3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공연이 끝난 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창조성원들을 부르시여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지적하시며 그들의 그릇된 창작창조기풍, 무책임한 일본새에 대하여 심각히 비판하시였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당의 혁명적인 문예정책을 정확히 집행관철해나가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했지만, 김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과 형식을 문제삼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비판적 지적에 따라, 10월 중순까지 공연 예정이라 예고된 ‘인민의 나라’의 내용과 형식에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하리라 전망된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스탠드 카드섹션단을 포함해 많으면 10만명 안팎까지 출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이자 북한 특유의 집체예술이다. 지난해 9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시민을 상대로 직접 연설하는 계기가 된 ‘빛나는 조국’, 2000년대 중반 남쪽의 시민들도 평양에 가서 관람한 ‘아리랑’, 2000년의 ‘백전백승 조선노동당’ 등이 대표작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나 北에서 왔어"에 "그게 중요해?"라 답할 수 있는 사회로

[인터뷰]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6.03 17:50:45




남북하나재단(이하 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한국에는 3만2476명의 북한 이탈 주민(탈북자)이 산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기 이후 매년 거의 1000명의 이탈 주민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적잖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들 상당수는 한국에서도 내일이 불투명한 매일을 보낸다. 여러 이유로 이들의 직업 안정성은 낮다. 2018년 기준 북한 이탈 주민의 월 평균 임금은 189만9000원이고 평균 근속 기간은 26.9개월(하나재단 조사)이다.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연소득 3570만 원)인 국가에서 이탈 주민 대부분은 평균의 한참 아래층위, 더 정확하게는 저소득층에 머문다. 경제적 신분 상승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 현실에 비춰볼 때, 가난은 대물림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한국 정착에 어려움을 주는 주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문화적 격차도 주요 이유다. 하나재단 조사 결과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무시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가장 큰 이유로 '말투, 생활방식, 태도 등 문화적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점(57.0%)'을 꼽았다. 이른바 '탈북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이를 극복하기 매우 어려움을 보여주는 결과다. 북한 이탈 주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인 한국 평균의 세 배에 달한다는 통일부 조사 결과는 그 심각성을 보여준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를 지난 달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나 북한 이탈 주민이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방안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김 교수는 북한 이탈 주민을 문화·사회적 시각에서 주로 바라보는 연구자다. 

김 교수는 북한 이탈 주민을 타자화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들을 '탈북자'라는 큰 덩어리로 묶어 멸시하는 건 물론, 도와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 역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북한 이탈 주민의 오늘이 한국 사회의 오늘을 보여준다고도 평가했다. 약자가 살기 힘든 한국이 지닌 문제가 그들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이유다. 역으로 보자면, 북한 이탈 주민이 문제없이 지내는 사회를 추구해야 온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뜻이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원주민도 살기 힘든 사회, 이탈 주민 적응은 어려울 수밖에

프레시안 : 적잖은 북한 이탈 주민이 한국에서 힘겨운 정착기를 보낸다.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고, 평균 근속 기간도 매우 짧다. 자살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 이탈 주민 문제에 관심이 적은 이라면 '목숨 걸고 위험한 길을 거쳐 한국에 왔는데, 왜 '자유의 땅'에서 힘들어 하느냐'고 말하고 넘길 법한 대목이다. 그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포괄적으로 설명한다면?

김성경 :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로, 이탈 주민 상당수가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심리적, 육체적으로 큰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이를 미처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은 아주 낯선 환경에 떨어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정착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한 체제 차이로 인한 문화 격차도 그들에게 힘든 요인이 된다. 남북이 상당 기간 교류 없이 각자의 체제를 구축했다. 비록 흔들리고는 있지만, 북한은 그 시간 공산 독재 체제를 유지했다. 이처럼 특이한 체제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 곧바로 안착하기에 세계적 신자유주의 국가가 된 남한은 결코 쉽지 않은 곳이다. 청소년 자살률, 노인 자살률 등에서 보듯 한국은 평생을 나고 자란 사람도 나가떨어지는 곳이다. 이탈 주민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자리 문제도 있다. 여러 이유로 이탈 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매우 제한돼 있다. 남북의 노동 강도에도 차이가 크다. 많은 이탈 주민이 '북한에서 이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원주민' 입장에서야 '죽을 고비 넘겨 여기까지 와서 이 정도 일도 못 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노동 강도는 세계적 수준임을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주변에 기댈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도 정착에 어려움을 주는 한 요인이다. 그들은 평생을 꾸려온 커뮤니티와 지인을 모두 고향에 두고 이곳에 왔다. 외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여러 이유가 모두 이탈 주민의 정착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된다. 

프레시안 : 지적한 여러 요인을 하나씩 살펴보면 될 듯하다. 커뮤니티 문제는 얼핏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만나본 이탈 주민 중 적잖은 이가 이탈 주민 커뮤니티에 거부감을 보였다. 의외의 태도였다. 외국으로 이민을 선택하는 한국인 상당수는 교회 등의 한인 커뮤니티에 들어가 현지에 적응하지 않나.  

김성경 : 대체로 하나원 퇴소 기수가 묶인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원을 퇴소한 후, 전국 각지의 임대아파트로 흩어진다. 보통 초기 정착 6개월 정도는 기수끼리 각자의 집에 놀러가면서 우애를 다지고 생활 노하우를 공유한다. 하지만 점차 생활이 바빠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이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파편화된 개인만 남게 된다.  

이탈 주민 커뮤니티 유지가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다. 이탈 주민이 한국에 정착 후 여러 사람으로부터 가장 먼저 듣는 조언이 '북한 사람끼리 어울리지 말고 남한 사람과 친해져라'는 얘기다. 그래야 적응이 빠르니까. 예를 들어 아이 엄마의 경우도 남한 엄마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게 아이 교육에 유리하다는 식의 조언을 듣는다. 하나원, 지자체 등이 이탈 주민 커뮤니티에 도움을 주지만, 유지가 쉽지 않다.  

프레시안 : 이탈 주민 대부분이 좋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의 경력을 더 잘 살릴 방법은 없나? 

김성경 : 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이탈 주민의 73.1%가 중졸 이하의 학력자다. 남한으로 건너와 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응답한 이의 비율은 8.5%에 불과하다. 이탈 주민 대부분이 좋은 일자리를 선택하기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북한 이탈 주민의 일자리 문제는 달리 말해 신자유주의 체제 적응에의 어려움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한데, 최근 입국하는 이들도 그럴지는 의문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에서도 장마당 경제라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나름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이탈 주민 상당수가 중국에 거주할 때도 자본주의 체제를 몸으로 체화한 상태로 한국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려운 요인이 되나?

김성경 : 물론 나이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20대의 적응 속도는 장년층보다 훨씬 빠르다. 

외모 측면에서도 청년층의 정착이 상대적으로 쉬운 이유가 있다. 30~40대만 돼도 고난의 행군기에 발육했기 때문에 같은 나이대의 남한 태생에 비해 체격이 작고, 체력도 약하다. 이 같은 점이 노동을 계속 이어가기 힘든 조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공장 생산직이나 요양보호사 등의 직업을 그들이 가장 먼저 갖게 된다. 노동 강도가 매우 강한 직종이다. 몸에 과부하를 주기 마련인데, 장년층 이탈 주민은 이런 노동을 장기적으로 견디기가 힘들다.  

하지만 20대만 돼도 청소년기 먹는 문제를 해결한 상태로 남한에 들어온다. 겉으로 보기에도 남한 친구들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런 점도 나이대에 따라 남한 사회 적응도를 가르는 요인이 된다.  

"탈북 공간은 젠더화 됐다" 

프레시안 : 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이탈 주민의 74.8%가 여성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성경 : 북한 경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기를 거치면서 공산 체제가 무너지고 자급자족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 때 기간산업에 주로 종사하던 남성은 그래도 회사에는 나가야 했다.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장마당으로 나왔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다 한국으로까지 건너오게 됐다. 북중 국경-중국-한국으로 이어지는 공간이 매우 젠더화됐다.  

프레시안 : 적잖은 이탈 주민이 '남성보다 여성이 한국에 더 잘 정착한다'고들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이탈 주민을 취재한 다른 기자 중에도 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가 있다. 혹 그런 점을 느끼나? 

김성경 : 통계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다만, 세계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활발히 이주한다. '이주의 여성화'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어느 사회에서건 대체로 성인 남성이 그 사회의 표준이 된다.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한, 남성이 국경을 넘을 필요는 상대적으로 여성에 비해 적다. 바꿔 말하자면, 대체로 여성은 그 사회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만큼 다른 사회로 더 쉽게 넘어간다. 

저임금·저소득 노동에 시달리는 이탈 여성이라도 대부분 남한 태생 여성이 자신과 같은 노동 환경에 처한 상황을 보게 된다. 상대적으로 느끼는 위치가 다르지 않다. 반면 이탈 남성은 다르다. 자신과 비교 대상이 되는 남한 사회 주류를 장악한 남성상이 쉽게 보인다. 이탈 주민 남녀로 꾸려진 가족 중 남편은 술 마시고 여성이 일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 이유의 하나로 추정된다.  

이탈 여성이 남한 태생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지만, (저임금 노동을 할 가능성이 큰) 이탈 남성에게는 남한 태생 여성과 결혼을 통한 남한 적응의 문이 닫혀 있다는 점도 성별에 따른 남한 적응력의 차이로 작용할 수 있다. 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이탈 남성의 아내 85.9%가 이탈 여성이고 남한 태생 여성 비율은 4.2%다. 반면 이탈 여성의 남편이 이탈 남성인 경우는 29.0%이고 중국 남성이 26.4%며, 남한 태생 남성은 43.9%다. 

프레시안 : 이탈 청소년의 경우 적응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당장 학교에서 주로 배우는 과목부터 남북에 차이가 있다. 그나마 부모와 함께 입국한 청소년은 사정이 낫겠지만, 홀로 입국한 이라면 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경 : 홀로 입국한 청소년의 경우 종교단체 등이 지원하는 그룹 홈에서 여럿이 함께 생활한다. 한겨레 중고등학교를 비롯해 상당수 대안학교도 혼자 온 이탈 청소년을 지원한다. 

이탈 청소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제삼국 출생자인 경우 발생한다. 이탈 주민 부모가 중국에 거주하던 시기 그곳에서 태어났거나, 이탈 주민 어머니와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건너온 경우다. 이들은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 지원 등) 이탈 주민 지원을 받지 못한다. 더구나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어 능력이 매우 떨어져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학교 적응이 다른 이탈 청소년보다도 어려우니 어린 나이에 학교에서 이탈하기 쉽고, 자연스럽게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이탈 청소년의 문제는 결국 한국 사회의 문제를 보여준다. 한국은 수쳇구멍 같은 사회다. 모두가 스카이 대학교라는 단 하나의 기준점을 향해 질주한다. 여기서 탈락하면 좋은 미래란 없다는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더라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생각이 있느냐를 우리가 자문해야 한다.  

▲ 지난 1월 4일 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인 경기도 안성의 한겨레중고등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렸다.차별 등의 우려가 커 적잖은 이탈 청소년이 대안학교로 진학한다. ⓒ연합뉴스
이탈 주민 혐오 대상 가능성 우려 

프레시안 : 이탈 주민을 주된 소재로 다루는 TV프로그램, 유튜브 채널 등이 여럿 있다. 이들 방송에서 주된 소재는 여전히 이념적이다. '한국에 와보니 이런 게 좋다' '북한의 어떤 현실이 매우 악랄하다'는 식이다. 여기에 한국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목소리가 들어설 공간은 없다.  반공적 논리가 조금 부드러운 수준으로 바뀐 것에 불과해 보인다. 

김성경 : 이탈 주민 대부분은 여러 이유로 북한에서 살기 어려워지자 여러 나라 중 남한을 선택한 사람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사람, 한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특정한 시선으로 그들을 이용한다. 특정 정치 세력이 북한 혐오가 필요할 때 그들을 이용하는 식이다. 이탈 주민이 나오는 유명한 TV 프로그램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살려고 한국에 왔어요' '한국에 와보니 비정규직 문제 너무 안 좋아요'라고 말하는 이가 그 방송에 출연하기란 매우 어렵다. 북한 체제를 잘 아는 듯이 말하면서 정치적 이슈를 꺼내야만 출연 가능성이 커진다. 

새로운 체제에서 각자의 쓰임새를 찾고 계발하려는 욕구는 누구나 가진다. 한국 주류 사회가 이탈 주민에게 열어준 영역은 오직 반공적 공간뿐이다. 다른 능력이 없는 이탈 주민이 자신의 설 자리를 찾는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레시안 : 극우 정치 세력이 이탈 주민을 반공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한편, 특히 젊은 층에서는 이탈 주민 자체를 못마땅하게 보는 분위기도 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저성장을 이어가고,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져감에 따라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성경 : 예멘 난민 혐오 사태에서 보듯, 소수자 혐오 현상은 지구적이다. 신자유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은 사회에서 사람은 희생양을 원하기 마련이다. 사회의 아래층에 놓인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약한 희생양을 찾으려 한다. 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창궐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북한 이탈 주민이 새로운 혐오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본다. 특히나 밝은 미래가 사라져감에 따라 젊은 세대는 기계적 공정함, 기계적 정의에 매우 강하게 반응한다. 소수자를 같은 출발선에 놓고자 하는 지원도 정당하지 않다고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김 교수는 이탈 주민을 타자화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분단 문화'가 가장 큰 장애물 

프레시안 : 정부의 이탈 주민 지원에 문제점이 있지는 않나?

김성경 : 한국 정부의 이탈 주민 지원 제도는 이미 잘 갖춰졌다. 정책이 잘못돼서 이탈 주민의 정착이 어려운 게 아니다. 앞서 열거한 여러 이유를 하나로 묶자면, 결국 ‘분단 문화’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한국에 여러 소수자가 있다. 경제적 이주자, 결혼 이주자, 난민 등이 그들이다. 이탈 주민 역시 소수자다. 소수자로서 이탈 주민은 기본적으로 배제의 대상이 된다. 

이에 더해 그들은 분단국 동포라는 특수한 위치에 동시에 서게 된다. 이른바 '먼저 온 통일'이라는 표상이 그들을 규정하게 된다. 이탈 주민 지원 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그런데, 지원의 다른 얼굴은 시혜다. 그들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는 순간, 남한에서 태어난 원주민은 그들에게 언제고 '왜 자유의 땅까지 와놓고 배은망덕한 소리를 하느냐'고 소리칠 수도 있다. 

그들도 자유인이다.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이탈 주민을 카테고리화해 차별의 대상으로 보든, 시혜의 대상으로 보든 결국 그들을 타자화한다는 맥락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이탈 주민을 둘러싼 여러 담론에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을 통일의 도구로 보는 시각, 일방적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 그들의 목소리를 담을 공간을 자유롭게 열어주는 것이고, 원주민 인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 이탈 주민 시민 단체 대부분은 극 보수 성향을 지닌다. 일부 시민 단체는 보수 정권 집권기 관변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탈 주민은 일상에서 정치적으로 존재를 입증하기를 강요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약자에게 한국은 좋은 나라인가' 자문해야" 

프레시안 : 이탈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회가 그들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선택하기를 강요한다? 

김성경 : 그렇다. 우리는 일상에서 나의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냄으로써 내 존재를 입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탈 주민은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나를 증명해야만 한다. 북한이라는 징표가 일본이나 중국의 그것만 되어도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 정도의 포용성만 한국 사회가 발휘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프레시안 :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으므로 이탈 주민이 어렵다는 게 논지의 핵심이다. 

김성경 : 그렇다. 약자가 살기에 한국이 좋은 나라냐고 자문해야 한다. 저학력·저소득 이탈 주민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건, 결국 한국 저소득층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탈 주민 지원은 단순히 타자인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길이다.  

이탈 주민을 도움이 필요한 자로 보든, 배척의 대상으로 보든 그들을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같다. 청진에서 태어난 A씨를 개인으로 보지 않고 '이탈 주민'으로만 보려는 순간 그들은 카테고리화된다. 궁극적으로 A씨가 '나 북한에서 왔어'라고 할 때 '너와 나 사이에 그게 왜 중요한데?'라고 누구나 답할 사회가 되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이야기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악마화하려는 세력의 반대편에는 '북한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북한을 이해하느냐 마느냐가 핵심이 아니다. 북한을 더 안다고 해서 그들을 타자화하는 우리의 시선이 바뀌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들에게 과도한 시대적 프레임, 정치적 프레임을 덧씌울 필요가 없다.  

이탈 주민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된다. 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것이다. (끝) 

'안중근 묘지 논란' 문화·조선일보, 설명회 따로 기사 따로

러시아 기사 오보로 단정, 정부 자료공개 비판…행안부 "사실 확인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송창한 기자 | 승인 2019.06.04 08:42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1910년 순국 당시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감옥 부근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됐다는 러시아 신문기사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의해 공개됐다. 이에 문화일보와 조선일보는 해당 러시아 기사를 '오보'로 단정, 국가기록원이 유해발굴 작업에 혼선을 유발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안중근 의사의 '기독교 묘지 매장 보도'를 사실로 단정한 바 없으며, 기자설명회 때 아사히 신문의 보도내용과 매장지가 달라 추가적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충분히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달 28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키 등의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공개했다. 안중근 의사 의거일 다음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의 안중근 의사 관련 보도였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모은 기사는 안중근 의사 매장지와 관련한 '우수리스까야 아크라이나'지의 1910년 4월 21일자 보도였다. 해당 기사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직후 교도소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보도됐다. 종전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는 교도소 내의 묘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묘지'를 언급한 내용의 기사가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기록원 ‘안중근 묘지 오보’ 알고도 공개… 유해발굴에 혼선만> 문화일보 5월 30일자 보도
이에 문화일보는 지난달 30일 <기록원 '안중근 묘지 오보' 알고도 공개… 유해발굴에 혼선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가기록원이 '안중근 의사가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는 러시아 신문기사가 오보임을 알고도 국가보훈처·학계 등과 상의없이 실적 알리기에 급급해 유해발굴 작업에 혼선을 부추겼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국가기록원이 28일 발굴·공개한 '안중근 의사가 교도소 인근의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고 보도한 러시아 신문 기사는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을 잘못 인용해 보도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공개한 러시아 '우수리스카야 아크라이나'지의 1910년 4월 21일자 기사는 '아사히신문의 특파원에 따르면'이라며 아사히신문을 인용 보도했는데, 정작 인용된 같은 해 3월 27일자 아사히신문의 '뤼순 특파원발' 기사는 '감옥 공동묘지에 매장됐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내용에 한발 더 나아가 이 문제를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지었다. 
<'안중근 묘지 위치' 확실하지 않은데도… 일단 공개하고 본 국가기록원> 조선일보 5월 31일자 사회 10면
조선일보는 31일 <'안중근 묘지 위치' 확실하지 않은데도… 일단 공개하고 본 국가기록원> 기사에서 "국가기록원이 공개 전 해당 내용이 오보인 줄 알면서도 발표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사실을 엄격하게 다뤄야 할 정부 기관이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썼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국가기록원은 덕성여대 교수 출신의 이소연 원장이 지난 2017년 취임한 뒤 잇따라 구설에 오르고 있다"며 이 원장이 취임 후 '적폐 청산'에 나서 국가기록원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한 테스크포스를 만들었으나 이후 "확실한 증거를 못 찾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전문가들은 '국가기록원이 본연의 업무인 자료의 수집과 보관에서 이탈하려고 하니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라고 지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행안부는 31일 설명자료를 통해 "국가기록원은 안중근 의사의 '기독교 묘지 매장 보도'를 사실로 단정한 바 없으며, 기자설명회 때 추가적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국가기록원은 안중근 의사 의거와 관련된 러시아 극동지역의 신문기사 24건을 수집하여 공개하였으며, 그 중에 안 의사의 유해가 ‘기독교묘지’에 매장되었다는 보도기사가 포함되어 있다"며 "이러한 보도 내용을 사실로 단정한 바 없으며 종전에 알려진 안 의사의 매장장소와 다르다는 점을 보도 자료에 기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행안부는 "기자설명회 시 '아사히신문의 보도내용과 매장지가 달라 추가적인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면서 "러시아 신문의 안 의사 매장지가 아사히신문의 내용과 다르다고 해서 오보로 단정하고 해당 기사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혹시 있을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으로 사료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신문 기사가 당시 아사히신문 등 종전에 알려진 매장지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은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질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자료발표 전 국가보훈처·학계 등에 논의를 구했어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이 관계자는 "자료가 공개된 이후 아직까지 (국가보훈처·학계 등에서)별다른 연락은 없다. 관련 기관에서 협조요청을 하면 기꺼이 자료를 제공하고 자료 입수 경위부터 상세하게 설명드리겠다. 그러려고 입수한 것"이라고 답했다. 관계자는 "공청회를 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사를 전공한 자문위원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평가 받는 과정을 거쳤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문화일보·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대해 "아사히 신문에서 매장지를 보도한 내용은 알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신문이 그것을 오역했는 어떤 물적 단서가 없다. 오역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는데 그것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저희로서는 자료를 공개해 관련기관들이 관심을 가지고 검증하고, 연구해보는 게 맞다는 취지에서 공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엿새만에 유해 발견... 30도 무더위에도 수색 '총력'

19.06.03 20:12l최종 업데이트 19.06.04 00:57l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클레어함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다뉴브 강 위를 헬기가 날고 있다.
▲  다뉴브 강 위를 헬기가 날고 있다.
ⓒ 클레어함
  [기사 보강: 4일 오전 0시 35분]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사고의 실종자로 추정되는 시신이 사고지점으로부터 102km 하류지점에서 발견됐다.

부다페스트 사고현장에 있는 한국 정부 합동신속대응팀은 3일 "헝가리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현 지점에서 102km 떨어진 하르타지역에서 외관상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신속대응팀 현장지휘관인 송순근 대령(헝가리 한국대사관 무관)은 "55세에서 60세로 추정되는 남성"이라고 밝혔다. 시신은 헝가리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몇몇 헝가리 언론은 사고 지점보다 약 30km 하류에 있는 에르치 지역에서 4구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헝가리 경찰은 이 보도를 부인하면서 하르타 지역에서 시신 1구를 발견했다는 내용은 확인했다.

하르타의 시신 발견 지점은 부다페스트 머르기트다리 부근 사고지점으로부터 약 102km 떨어진 곳이다.

신원 확인에 대해 우리 정부의 수색본부 측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색본부 관계자는 "하르타 지역에서 시신 1구가 발견된 것은 맞지만 전문가의 감식이 필요하다"며 "유품이 발견되면 신속한 신원확인이 가능한데, (그렇지 않을 경우)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에르치 지역에서 발견된 시신 4구는 한국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엿새만의 유해 발굴에 수색 작업 활기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다뉴브 강가에는 수색을 지켜보는 부다페스트 시민들과 추모객, 수색 작업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이 모여있다.
▲  다뉴브 강가에는 수색을 지켜보는 부다페스트 시민들과 추모객, 수색 작업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이 모여있다.
ⓒ 클레어함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다뉴브 강가에 추모의 의미로 내걸린 검은 깃발.
▲  다뉴브 강가에 추모의 의미로 내걸린 검은 깃발.
ⓒ 클레어함
 현재 부다페스트는 30도의 무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다. 사고 발생 엿새만에 유해가 발견됨에 따라 수색 작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헝가리와 한국 구조팀은 사고가 발생한 다뉴브강 마가렛트 다리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이날 수색에는 한국 잠수부 2명과 함께 헝가리 잠수부 2명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침몰된 유람선 허블레아니 주변을 조심스럽게 수중 수색 중이다. 사고 후 한국 잠수부가 수색작업에 들어간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강가에는 수색 작업을 지켜보는 부다페스트 시민들과 취재진이 몰려있다. 그동안 추모객 출입이 가능했던 마가렛트 다리는 원활한 수색작업을 위해 이날 오후부터 일반 시민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현지시각으로 지난달 5월 29일 발생한 이 사고 직후, 한국인 탑승객 33명 중 7명이 구조됐고, 실종 19명, 사망 7명으로 집계됐다.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클레어함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3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유람선 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클레어함
 

참 대단했다…,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 이후 가장 강력

현대중공업 법인분할 반대투쟁 참가자의 소감
[사진 : 뉴시스]
현대중공업의 주주총회가 5월 31일 11시 10분 울산대 체육관에서 극소수만 참가한 채로 열려 10여분 만에 법인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주주총회 장소 변경이 공지된 것은 10시 30분 무렵이니, 장소 변경을 알았다 해도, 아마 총알택시를 타면 주총장소에 가까스로 닿을 수 있는 시간과 거리다. 한 마디로 주주들의 참여가 봉쇄된 전형적인 기습 날치기 통과다.
날치기로 법인분할은 강행통과 되었지만, 이번 투쟁은 많은 것을 남겼다.
20여년 만의 가장 강력한 노동자들의 투쟁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멀리는 지난 90년 초반 골리앗 투쟁이후, 가까이는 2012년 민주노조를 다시 세운 이후, 가장 완강하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다. 전면파업 기간, 불가피하게 일하는 협력업체를 제외하고, 사실상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없었다. 이런 모습은 조선소 파업 현장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다.
[사진 : 뉴시스]
연대의 모범을 보여준 투쟁
민주노총 간부와 조합원들의 연대가 빛난 투쟁이었다. 지속적 연대에 이어 5월 30일은 1만 명에 달하는 영남권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점거농성 중인 한마음회관에 집결했다. 지역노동자대회가 이 정도 규모로 치러진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연대를 위해 한마음회관 광장으로 들어가는 노동자들과, 이들을 박수와 환호로 맞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서로의 눈빛과 얼굴에 뿌듯한 연대감이 가득했다.
가족, 시민, 주민 모두가 힘을 모은 투쟁
노동자와 가족들의 유대는 말할 것도 없고, 시민 지역주민들이 한마음으로 지지하고 응원하고 연대한 투쟁이다. 울산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책위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짧은 기간에 2만이 넘는 서명이 이뤄지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촛불문화제에 발 디딜 틈 없이 주민들이 몰려왔다. 요구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가 마음을 모은 투쟁이었다.
[사진 : 뉴시스]
법인분할 강행은 재벌의 민낯, 정부의 무책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노동자와 시민위에 군림하는 재벌대기업과 정몽준 등 재벌총수들..
압도적 다수 시민의 반대와 노동자들의 처절한 문제제기에 현대중공업은 법인분할을 강행할 명분을 내세우는 것 이외에, 어떤 합당한 대안, 설득력 있는 보완책 제시, 진지한 대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법인분할 중단! 본사 이전 반대'에 요구에 대해 현대중공업이 보여준 것은 일고의 고려도 없는 단호한 날치기였다. 정몽준은 울산 국회의원 6명의 면담요구도 단칼에 뭉개고 응답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재벌 총수들의 탐욕은 끝이 없고,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요원하다
조선업 위기로 인한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3만 5천명의 노동자를 말하지 않더라도, 현대중공업 총수 일가와 경영진은 조선업 위기를 총수의 지분 확대와 3세 승계에 활용했다. 이번의 '법인분할'과 '중간 지주를 통한 지분 늘리기'가 그 완성판이다. 애초 제안을 정부가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손해보며 구국의 결단을 했다고 하지는 마라.
정부의 무책임이다
조선업의 과잉경쟁, 출혈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산업구조 개편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특혜인수하게 하고, 정부가 손 털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제조업 일자리, 조선기자재 산업, 국가균형발전, 지역경제 충격 최소화 방안 등 정부가 반드시 책임 있게 해결책을 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골치 아픈 부실기업, 세금 들어가는 기업 정리한다는 단순한 구조조정 이외에 어떤 대책들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산업은행 부행장조차도 ‘법인분할이 가져올 지역경제 여파를 검토해 본 적 있나?’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그건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지경이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렇지만 이번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 시민들의 연대는 단순하지 않았다. 주주총회 통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전에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육지-바다-하늘을 통한 입체적인 노동자 해산 작전, 대규모 구속, 수배, 해고가 수없이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무너진 노조를 다시 세웠고, 지금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주역들이 퇴직하면서, 세대가 바뀌고 있음에도 젊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튼튼한 대오를 이뤄 이 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단결의 위력을 온 몸으로 느낀 노동자들, 노동자의 연대를 넘어 가족과 주민, 시민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진행한 연대투쟁의 소중함을 가슴에 간직한 노동자들의 마음은 쉽사리 허물어질 수 없다.
이번일을 지켜보며 주민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현대중공업이 정몽준이 저러면 안 되지’, ‘현대가 지 혼자 만든 건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야말로, 지역경제에 가장 큰 자산임을 다시 한번 절감한 주민들의 유대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민들은 오만한 재벌 대기업과 총수들이야말로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 계기가 되었다.
이 투쟁을 지켜보고, 작은 힘을 보태기 위해 애쓰기도 했던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쟁에 앞장 선 노동자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마음을 모아 응원하고 연대한 주민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끝나는 투쟁은 없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
방석수 독자  minplusnew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