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8일 금요일

[사설] 사법 적폐 청산과 개혁이 절실하다

▲사진 : 대법원 홈페이지
김명수 대법원장이 판사들의 적폐청산 방해 판결을 옹호하여 국민을 아연케 하더니 문무일 검찰총장이 나서 주요 적폐 사건을 연내에 마무리하겠다고 하여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국민적 여망인 적폐청산의 주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검찰과 법원의 수장이 적폐청산에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몇몇 고위직 판사들의 고의적인 적폐 수사 방해와 수구세력들의 반발에 ‘국민적 피로감’을 운운하며 적폐청산이란 시대적 역사적 과제를 또 다시 뒤로 물리려는 기색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고위직 판사들의 고의적인 적폐 수사 방해 행위는 노골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광렬 부장판사는 이미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나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을 아무런 변경 사유가 없음에도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하였다. 자신들이 구속 사유가 분명하다고 인정하여 구속시켜놓고 불과 며칠 만에 구속 사유가 안 된다고 풀어준 것이다. 이게 법치인가. 이에 국민적 비난이 일자 대법원장이 나서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행위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 어긋난다”고 국민을 훈계했다. 한마디로 국민적 비난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폄하하고, 자신들의 판결은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실현이니 조용하라는 것이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참으로 소가 웃을 일이다. 적폐청산이란 자기들의 정치, 경제적 이해실현을 위해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법치를 악용하여 국정을 농단한 사안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말로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인 것이다. 오히려 정치적 이해관계를 법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실현시키려 하고 있는 게 판사들이다. 더욱이 판사의 판결보다 국민적 여망을 받들어야 할 사법부 수장이 잘못된 판결을 내린 자를 징계는커녕 거꾸로 두둔해 나서는 것은 자유한국당이나 조선일보류들이 적폐청산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생떼를 쓰는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법원의 적폐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연속적인 영장실질심사 기각판결 또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오민석, 권순호, 강부용 영장실질심사 부장판사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적폐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줄줄이 영장을 기각하였다. 이들은 우병우, 정유라, 이영선을 비롯해 국정원 직원들, 김재철 전 MBC 사장, 추선희 어버이연합 전 총장, KAI 관련자 등의 영장을 예외 없이 기각하였다. 며칠 전에는 우병우의 핵심 측근인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에 대한 구속영장마저 기각하였다. 우병우에 대한 세 번째 영장 청구도 기각하겠다는 뜻이다. 판사들이 영장을 기각한 사유는 간결하다. 이들이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7일 국정원 내부 고발자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보낸 편지에서 보듯 국정원은 증거인멸과 조작을 일상적으로 행했다. 국기문란이다. 판사들의 이런 판결은 명백한 수사방해이자 적폐옹호다. 오죽했으면 서울중앙지검이 나서서 “국민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영장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기각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의 사명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하소연 했겠는가.
법원의 이런 수사방해 행위의 압권은 지난 6일 최순실 조카 장시호에 대해 구형량보다 많은 2년6개월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적폐사건 수사에 협조한 자에게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적폐사건 관련자들에게 수사에 협조하지 말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이렇듯 사법부의 적폐사건 판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높다.
사법부의 적폐청산과 개혁이 절실하다. 한국의 사법부 신뢰도가 OECD 42개 가맹국 가운데 거의 꼴찌 수준인 39위라는 보도가 나왔다. 국민의 27%만이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답할 만큼 이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은 극에 달해 있다. 한국의 사법부는 지난 60년 이상 ‘독립성’이란 미명 아래 외풍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국민세금으로 그들의 높은 지위와 보수를 보장받고 전관예우라는 해괴한 관례로 자신들의 이해를 실현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시각에 국민은 훈계해야 할 대상이요, 자신들의 판결은 이해관계를 뛰어넘은 법치주의의 최고 권위인양 우월감이 만연돼 있다. ‘민중은 개, 돼지’라고 했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파면 불복소송에서 파면이 부당하다고 나 전 기획관의 손을 들어준 게 바로 법원의 시각이다.
철저히 보수화된 사법부에 약간의 변화라도 올 수 있는 적폐청산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법부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제기된, 진보성향 판사들의 신상자료를 따로 관리해왔다는 이른바 ‘사법부 불랙리스트’ 조사를 지금까지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사법부가 자체의 힘으로 내부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을 한다는 것은 경찰, 검찰보다 어려울 것 같다.
적폐청산에 기한은 없다. 피로감을 느끼는 자들은 적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자들뿐이다. 정의를 바로세우는 데 피곤해 할 국민은 없다. 히틀러의 나치였거나 그에 부역한 자들에 대한 청산작업이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듯이 국기를 문란케 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법치를 악용한 자들에 대한 청산작업에 시한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문부일 검찰총장은 민생을 앞세워 적폐수사를 연내에 마무리하겠다는 거짓된 말로 국민을 우롱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민생은 적폐를 청산하는데 있다. 사회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면 민생은 더욱 나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법부 적폐, 검찰, 경찰, 국정원 내부의 적폐는 그들 자체의 힘으로 청산되기 어려울 것이다. 오직 외부에 공정하게 구성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만이 그나마 어느 정도라도 시대적 역사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공수처법 통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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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우리식 과학기술 산물 진출식’

북, ‘우리식 과학기술 산물 진출식’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7/12/09 [07: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은 신향 트랙터와 화물 자동차 출정식을 가졌다.     © 이정섭 기자

북은 자체로 개발 생산한 만리마 시대 자력자강의 고귀한 창조물인 새 형의 뜨락또르(트렉터)와 화물자동차진출식이 진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8일 금성 뜨락또르공장승리자동차 연합기업소충성호 뜨락또르 공장에서 생산한 천리마804호 뜨락또르승리호화물자동차충성122호 뜨락또르들이 드넓은 광장에 즐비하게 정렬해 있었다고 전했다.

박봉주 내각 총리는 행사에서 순천 기관 공장김책공업종합대학평양기계종합대학평양철도종합대학한덕수평양경공업종합대학 등의 과학자기술자연구사들이 생산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적극 풀어준 것을 언급했다.

▲     © 이정섭 기자

 
박 내각 총리는 금성뜨락또르 공장과 승리 자동차 연합기업소충성호 뜨락또르공장 일꾼들과 노동계급이 안아온 오늘의 자랑찬 성과는 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 공격전에 떨쳐나선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무궁무진한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각 총리는 모든 부문모든 단위에서 자력자강의 혁명정신과학기술의 위력을 총 폭발시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증산투쟁창조투쟁생산돌격전을 힘 있게 벌려나감으로써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에서 보다 큰 승리를 이룩할 것대하여 말했다.

그는 우리의 힘과 기술로 개발창조형의 뜨락또르를 만들어낸 것이 너무도 기뻐 몸소 뜨락또르에 올라 운전도 하고 천리마804호 뜨락또르들이 사회주의협동전야를 꽉 메우게 하자고새형의 80hp 뜨락또르들이 내 나라의 논과 밭을 풍요하게 가꾸어가는 모습을 그려보니 신심이 넘친다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짓던 김종은 위원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발창조형의 뜨락또르와 화물자동차들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아보려고 미쳐 날뛰는 적들의 책동에 강타를 안기고 당중앙의 사상과 권위를 백방으로 옹위한 우리 노동계급의 자력갱생의 고귀한 창조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우리의 멋우리의 슬기우리의 식이 살아 숨쉬는 새 형의 뜨락또르와 화물자동차들의 기운찬 동음은 그대로 우리 노동계급의 자력자강의 숨결이고 하늘에 닿은 우리의 자긍심이여서 시민들의 감탄을 끝없이 자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창전네거리와 옥류교문수거리 등 거리들을 보란 듯이 누비며 사회주의협동전야로 달려가는 뜨락또르와 화물자동차행렬의 장관을 보면서 시민들은 자력갱생의 생명력과 주체공업의 무궁무진한 위력을 다시금 굳게 확신하며 승리자의 기쁨에 넘쳐 손을 저어주었다.”고 알렸다.

기사는 끝으로 새 형의 뜨락또르와 화물자동차 진출식은 김정은 위원장의 영도따라 자주의 기치 드높이 사회주의 승리봉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나가는 주체조선의 자력갱생의 위력필승불패의 기상을 다시금 힘 있게 과시하였다.”고 자랑차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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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하는 MBC에 바란다

[고승우 칼럼] 공정·공익 보도로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 선도해야
고승우 민언연 이사장 / 언론사회학 박사 | 승인 2017.12.08 11:49
[미디어스] MBC 사장 후보의 최종면접 현장이 MBC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생중계된 것은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과거 밀실에서 정해져 위에서 내려온 각본에 따라 하던 일이 모두에게 공개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는 세상이 바뀌고 방송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앞으로 KBS나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의 사장도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7일 최승호 PD가 사장으로 뽑히기 전에 진행된 MBC 사장 후보 3명은 시청자들이 듣고 싶었던 공영방송의 책무나 그 각오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거듭 강조했다. 후보들은 외부 세력으로부터의 언론의 독립, 편성권의 보장, 내부 조직 정비 문제, 특히 뉴스의 정상화 등을 다짐했다. 
또한 과거 정상적인 노사관계시절의 임명 동의제나 단체협약을 통한 공영방송 회복, 사규와 윤리강령의 확실한 준수와 적용과 함께 외주 제작사, 협력사와의 정상적인 관계 설정, 갑질 문제, 방송 작가 처우 개선과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등의 해법을 제시했다. 앞으로 이들이 제시한 방안들이 실천된다면 방송을 비롯한 언론계 전체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승호 MBC 신임 사장이 8일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서 있는 MBC가 안고 있는 과제는 산적해 있지만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해직 언론인의 원상회복과 이명박근혜 정권이 MBC를 망가뜨리는 작업에 동참했거나 적극 기여했던 일부 구성원들 문제다. 이는 건전한 상식선에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레기 언론이라며 지탄했던 시민사회의 MBC에 대한 요구를 실천해야 하는 과제다. 이는 21세기에 걸 맞는 공영언론의 철학과 방법론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는 양식 있는 시민사회가 기대를 걸고 있는 새 시대의 과제다. 
MBC는 지난 수년간 망가진 조직을 재건하면서 촛불 혁명이 제기한 적폐청산을 통한 부정적인 것의 정상화와 함께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사회를 비전을 제시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정의로운 방송저널리즘의 확립을 통해 공정하고 진실한 뉴스 상품을 생산해 주권자인 국민에게 최고 양질의 방송 상품을 서비스 하는 것이다. 동시에 여러 전문 직종의 종합 매체인 방송사 노동현장의 평등을 보장해서 최상의 방송 상품을 생산할 여건을 조성하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의 최악의 문제점인 사회적 평등이 실천될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의로운 방송저널리즘을 확립하기 위한 첫걸음은 눈높이를 국민과 같이 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중매체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 하나는 그 눈높이가 기득권층, 즉 정치·자본권력의 그것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사회감시 비판의 눈높이를 주권자의 그것과 맞추지 않을 경우 기레기 저널리즘을 탈피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현재 방송심의 규정 등이 기계적 균형보도를 강요하고, 방송의 자율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 방송인의 눈높이를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는 MBC가 방송계 전체의 공동 대응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최승호 MBC 신임 사장이 8일 첫 출근을 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송사 업무는 다양한 전문 직종의 분업과 협업 체계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외주제작, 비정규직과 같은 시스템도 포함된다. 그 과정에서 갑질 문제와 불평등 계약 관계가 관행화되어 있다. 그 해법을 다각도로 고민해야 하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특히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방송사 수익 증대나 노조원의 양보를 통해 처리한다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계에 대한 정답의 하나는 유럽연합 노동법의 ‘동일직장, 동일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다. 노동현장의 평등화는 전체 사회의 정치, 경제 민주화와 직결되어 있다. 촛불혁명이 발생한 원인의 하나가 비정규직 양산과 저임금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새 정부 조차도, 심각하게 제도화된 노동현장의 불평등을 정상화하는 작업이 미흡한 상태다. MBC가 내부 노동현장의 정상화에 앞장선다면 언론계와 정부, 재계에 뿌리내린 잘못된 제도를 뿌리 뽑을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언론을 70년 가까이 지배하고 있는 상시적 보도지침인 국가보안법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북한의 핵 개발 문제, 사드 등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지각 변동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보법 체제에서 합리적인 접근이나 해법 추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국보법과 관련해 MBC가 제4부의 역할을 통해 정치권을 선도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대부분의 언론은 정치적 선전이나 심리전 정보를 보도 정보로 확대재생산하던 냉전 독재정권 시절의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이를 MBC는 바로 잡아야 한다. 
언론계 전체의 정상화를 위해 현재 노조가 투쟁중인 KBS, YTN, 연합뉴스 등에 대한 보도에 앞장서 국민에 대한 언론 서비스가 극대화되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언론 동업자의 언론 자유와 관련한 내부 투쟁이나 갈등에 대해 적극 보도하는 관행이 만들어져야 한다.
언론은 그 속성상 하나의 권력이다. 공영방송의 권력은 시청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다. MBC가 이런 관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진정한 공정, 공익을 실천하는 공영언론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MBC의 새 출발을 전체 민주진영이 큰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고승우 민언연 이사장 / 언론사회학 박사  konews80@hanmail.net

북한은 어떻게 악마화 되었나

2007년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의 진상 <상>
2017.12.08 18:47:15




2007년 9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제기된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은 당시 진행되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가로막은 중대한 걸림돌이었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11년 5월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시리아에 영변형 원자로를 지어준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 북한을 핵확산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독립연구자 가레쓰 포터는 10년간 북한 핵시설을 모니터링 했던 IAEA 사찰관 등을 증언을 통해 이스라엘이 공습으로 파괴한 시설은 원자로가 아니라 이미 5년 전 폐기된 미사일 격납고였다고 밝혔다. 미국의 독립 인터넷 언론 <컨서시엄 뉴스>에 게재된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의 진상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 시리아를 공습하다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시리아 동부 알키바르에 있는 한 시설물을 폭격했다. 엿새 후인 12일, 미 <뉴욕타임스>가 국방부 관리의 말을 빌려 공습 사실을 전하면서 목표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공습 사실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신문은 이 관리가 "이스라엘 관리들은 북한이 핵물질 일부를 시리아에 판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시리아와 북한의 핵 연계를 시사했다. 

한 달 남짓 지난 10월 14일,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의 공습은 "북한이 시리아에 건설 중인 원자로(흑연감속로)가 표적"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북한 외무성은 10월 18일 북한이 시리아 핵 개발에 비밀 협력한다는 미국 언론 보도는 완전한 오보라고 반박했다.

10월 28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스라엘이 공격한 시설물이 비밀 핵시설임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증거도 제공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어떤 국가가 핵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으면 우리(IAEA)에게 와야 하는 시스템이 있으며 가서 조사할 권한은 우리가 갖고 있다"면서 "선제 폭격을 하고 나중에 질문을 하는 것은 이 시스템을 허물고 어떤 의혹에 대한 해결에도 이르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리아가 공습한 시설이 군사시설이지만 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 관련 기사 : IAEA 사무총장, 北-시리아 핵 협력설에 제동, 2007년 10월 29일) 

이스라엘 공습 후 7개월이 지난 2008년 4월 24일,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시리아에 원자로를 건설하고 있는 증거라며 11분짜리 비디오 영상을 상하 양원 의원들에게 공개하고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발표해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 의혹을 기정사실화 했다. 시리아는 "터무니없는 공상"이라고 일축했다. (☞ 관련 기사 : 美 "北, 시리아 핵활동 협력" 기정사실화, 2008년 4월 25일) 

CIA가 공개한 북한-시리아 핵 협력 증거의 신뢰성에 대해 영미권의 핵전문가와 주요 언론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핵전문가 존 울프스탈의 말을 인용해 "(북한 원자로와 비슷하다는 시리아의) 원자로 디자인은 인터넷상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구형 영국제를 기초로 한 것"이라며 "비디오만으로는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CSIS의 또 다른 전문가인 앤서니 코즈먼도 "미 정보기관들이 불완전한 결과를 서둘러 제시함에 따라 불필요한 혼란을 일으켰다"며 "또 다시 설익은 생산물을 조급하게 내놓음으로써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했다"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미 중앙정보국(CIA) 관리들조차 현 시점에서는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low)' 수준이라는 점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 관련 기사 : 북-시리아 핵 협력설, '이상한 게 너무 많아', 2008년 4월 28일)

이에 앞서 탐사전문 기자인 세이무어 허시도 <뉴요커> 기사를 통해 북한-시리아 핵 협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 관련 기사 :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 근거가 없다", 2008년 2월 12일) 

당시 <프레시안>도 13차례의 기사를 통해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시리아 핵 협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는 6자회담 2007년 2.13합의에 의해 북핵 시설 불능화가 착수되던 시점이었다. 즉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시화될 때였다. <프레시안>은 북한-시리아 핵 협력 주장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방해하려는 체니 부통령 등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네오콘)의 시도로 보았다. 당시까지도 체니는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공격 야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 관련 기사 : 北-이란-시리아 '3중살' 노리는 네오콘의 음모, 2007년 9월 18일)

'북한-시리아 핵 협력'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2011년 5월 24일,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보고서를 통해 4년 전 이스라엘이 폭격한 시리아 시설은 거의 완성된, 비밀리 건설된 원자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힌 것이다. (☞ 관련 기사 : IAEA "2007년 이스라엘이 폭격한 시리아 시설은 원자로") 

이렇게 해서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이 폭격한 시리아 알키바르의 시설은 북한이 비밀리에 건설한 원자로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식 견해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러한 공식 견해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예컨대 체니 전 부통령은 2016년 10월 11일 <매일경제신문> 주최로 열린 서울 세계지식포럼에서 "2007년 봄에 모사드의 책임자가 제 집무실로 와서 북한이 직접 만들어 준 원자로가 시리아에 있다는 컬러 사진을 보여줬다"며 2007년 당시 공습한 건물은 북한의 도움을 받은 원자로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자로가)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동까지 진출했다"면서 "(만일) 이스라엘이 제거하지 않았다면 IS(이슬람국가)가 시리아에서 원자로를 쥐고 있었을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체니 전 美부통령 "대북 군사행동 배제할 수 없어")

한편 극우 논객 조갑제는 지난 9월 17일 <월간조선> 홈페이지에 실린 기사("속이 다 시원한 이스라엘식 해결")를 통해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을 예찬했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리아에 짓고 있던 북한식 원자로 파괴해 후환을 없앴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을 향하여 한국전 종전(終戰)선언 약속을 해달라고 조르던 2007년 9월 7일은 이스라엘 공군기가 시리아 핵시설을 폭격한 다음 날이었다"며 노 대통령의 유약한 대북 태도를 비판했다. (☞ 관련 기사 : 속이 다 시원한 이스라엘식 해결) 

"북한의 시리아 원자로 건설은 완전한 거짓"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이 폭격한 시리아 알키바르의 시설은 과연 북한이 시리아를 위해 비밀리에 건설한 원자로(흑연감속로)인가?

이에 대해 포터는 "북한의 시리아 원자로 건설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지난 11월 18일 <컨서시엄 뉴스>에 기고한 '시리아 원자로 공습을 위한 이스라엘의 책략'이란 기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파괴한 건물은 이미 5년 전에 폐기된 미사일 격납고였다고 밝혔다. 
▲ 이스라엘이 공습한 시리아의 건물. 위성으로 촬영됐다. ⓒ미 정부

또한 부시 행정부가 '북한-시리아 핵 협력'이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동조한 것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파탄내고 이란 및 시리아에 대한 군사공격을 관철시키려는 네오콘의 책동에 의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책략은 있지도 않은 핵무기 개발을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던 2003년에 버금가는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포터의 이같은 보도는 1993년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2003년까지 15차례나 북한을 방문하며 영변 원자로 감시 업무를 맡았던, 즉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인 전 IAEA 조사관과의 수 개월에 걸친 인터뷰, 그리고 2007년 9월 공습 당시 알키바르 인근에서 방공 업무를 맡았던 시리아 공군 소령과 당시 시리아 원자력개발 책임자의 증언 등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가레쓰 포터는 40여 년간 미국 안보정책을 연구해온 독립연구자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소련 및 중국에 대한 미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 때문이었다는 점을 논증한 (2006년), 이란 핵 위협이 터무니없이 과장됐음을 밝힌 (2014년) 등의 저서를 냈다. 2012년에는 마사 겔혼 언론상을 수상한 언론인이기도 하다. 

포터의 기사가 게재된 <컨서시엄 뉴스>는 언론인 로버트 패리(68세)가 운영하는 독립 인터넷 언론이다. 패리는 <에이피>통신과 <뉴스위크> 기자 등으로 일하면서 1985년 언론 사상 처음으로 이란콘트라 사건의 단초를 밝혀냈으며 이후 이란 미 대사관 인질 석방을 위한 1980년 레이건-이란 간의 비밀 접촉(이른바 'October Surprise') 실상을 파헤치다가 제도권을 미움을 받아 제도언론에서 축출됐다. 1995년부터 아들들과 함께 <컨서시엄 뉴스>를 운영하고 있다. <컨서시엄 뉴스>는 2015년 하버드대 니만 재단이 수여하는 'I. F. 스톤 메달'을 수상했으며 올해에는 마사 겔혼 언론상을 받았다. 

이제 가레쓰 포터의 안내를 따라 '북한-시리아 핵 협력'의 진실을 파헤쳐 보기로 하자. (☞ 원문 보기) 

2007년 2.13합의 두 달 뒤 

2007년 4월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수장 메이어 다간이 워싱턴을 찾았다. 그는 부통령 딕 체니와 CIA 국장 마이클 헤이든, 그리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해들리에게 100장 가까운 (지상 촬영) 사진을 제시하며 시리아 동부 사막지역에 북한의 도움으로 흑연감속로가 건설되고 있다고 제보했다. 그는 수 개 월 후면 원자로는 가동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간은 미국이 공습으로 이 핵시설을 파괴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대통령 부시의 회고록에 따르면 다간의 브리핑 직후 예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부시에게 전화를 걸어 "조지, 미국이 그 핵시설을 공습해 주길 부탁하네"라고 요청했다.

당시는 제5차 6자회담(2005년 11월-2007년 2월)을 통해 2.13합의가 채택된 지 두 달이 지난 때였다. 2.13합의는 북한이 자체 핵시설을 폐쇄하고 불능화하며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미국 등 5개국은 북한에 매년 에너지 100만t을 지원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비로소 시동을 건 것이다.

이에 앞서 6자회담은 2005년 9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미국 및 일본과의 수교 등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 6개 항을 골자로 하는 9.19공동성명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미 재무부가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면서 실행이 암초에 부딪혔다. 이러한 교착 상태는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으로 타개됐다. 북의 첫 핵실험으로 충격을 받은 데다 이라크 침공의 여파로 11월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부시 정부가 6자회담에 적극 나선 것이다. 

네오콘, 이란 정벌과 북핵 협상 파탄 노려 

이런 상황에서 '북한-시리아 핵 협력'이라는 이스라엘 측의 제보는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선물이었다. 체니와 존 볼튼 등 네오콘에게 '이란 정벌'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완수하는 동시에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저지할 수 있는 절호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5년 1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콘돌리자 라이스가 국무장관으로 취임한 후 국무부와 네오콘은 북핵 해법을 놓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메이어 다간과의 논의 과정에 참여했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체니가 이스라엘 측의 제보를 이란 침공의 빌미로 활용하려 했다고 증언했다. 체니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뒤흔들어 이란과의 협력 관계를 단절시키는" 한편 "이란 측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 핵 야망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시리아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편 CIA 국장 마이클 헤이든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방해하기 위해 체니와 손을 잡았다. 그는 지난해 발간된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간이 다녀간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회의에서 귓속말로 체니에게 "부통령 각하, 각하가 옳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체니 역시 북핵 협상의 파탄을 원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2008년 1월 "만일 북한이 시리아에 대한 핵확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북핵 협상은 끝"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라고 라이스 국무장관을 몰아붙였다고 회고했다.  

2007년 9월 6일 시리아에 대한 공습은 미국이 아닌 이스라엘에 의해 수행됐다. 이스라엘 측 제보에 대한 미국 정부 내 반론도 만만치 않았음을 방증한다.

공습 7개월 후, 그리고 체니가 북핵 협상을 중단하라고 라이스를 몰아붙인 지 3개월 후인 2008년 4월 24일 CIA는 '북한-시리아 핵 협력'을 입증하는 증거라며 11분짜리 비디오 영상을 미 의회와 언론에 공개했다.  

북핵 진전의 중대 고비에 제시된 CIA의 영상 증거 

당시 헤이든 CIA 국장은 "미 의회와 국민이 극히 최근의 매우 중대한 북핵 관련 증거를 모른 채 북핵 협상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며 공개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CIA의 공개는 북핵 협상 진전의 매우 중대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이른바 '싱가포르 합의'(4월 8일)를 계기로 돌파구가 마련된 것으로 보였던 북한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가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발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이다.  

2007년 2.13합의 이행을 위해서는 우선 북핵 프로그램의 전모를 밝혀야 했다. 이른바 '북핵 신고' 문제다. 북핵 신고의 3대 쟁점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동결된 플루토늄 개발, 2002년 10월 켈리 특사의 방북으로 불거진 농축우라늄(UEP) 비밀 개발, 시리아와 북한의 핵 협력설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UEP와 시리아 핵 협력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그 때문에 핵 신고는 4개월 가까이 지연됐다.  

이에 미국은 북한이 플루토늄에 대해서만 6자회담 참가국에 신고하고, UEP와 시리아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에게만 간접 시인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것이 바로 싱가포르 합의다.  

그리고 이 합의에 따른 북핵 신고 문제를 최종 협의하기 위해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단장으로 하는 미 실무팀이 4월 22일 방북한 뒤 24일 한국으로 내려왔다.

바로 그날, CIA가 '북한-시리아 핵 협력'의 증거라며 11분짜리 동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 이번 공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시리아 의혹을 눈감으려 한다는 공화당 내부의 반발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가 대북 협상을 막기 위해 이번 브리핑을 추진한 것이라는 의혹이 국무부 내에서 광범위하게 일고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북핵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기 위한 강경파의 의도적 사보타지라는 것이다. 
▲ 부시 미 전 대통령과 네오콘 측근들. 딕 체니(왼쪽)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부시의 좌우에 나란히 서 있다. ⓒ연합뉴스

IAEA 최고 전문가의 검토 
CIA가 공개한 동영상은 이스라엘 측이 제공한 스틸 사진을 컴퓨터로 합성한 것이었다. 이 동영상을 면밀히 검토한 IAEA의 한 사찰관은 이틀 후인 4월 26일 자신의 '초기 기술 평가서'를 올리 하이노넨 IAEA 안전담당 사무차장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에게 제출했다. 이스라엘이 공습한 시리아 알키바르의 시설물은 북한식 흑연감속로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당시 그가 제시한 기술적 이유는 대략 4가지였다.  

첫째, 건물의 높이가 너무 낮다. 북한 영변에 있는 흑연감속로 건물의 높이는 50미터에 이르는 반면 알키바르 건물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지하 구조물이 없는 시리아의 건물에는 북한에 있는 원자로와 유사한 원자로를 보유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둘째, 영변 원자로에는 본 건물 외에 20개 정도의 지원 건물들이 있는 반면 시리아 건물에는 주위에 어떠한 지원 시설도 없다. 

셋째,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냉각탑이 없다. 한국의 경수로나 중수로는 물을 냉각재로 쓰는 반면 북한 영변의 흑연감속로는 이산화탄소 가스를 냉각재로 쓴다. 냉각재로 쓰인 물은 바다로 배출되는 반면 가스의 경우는 온도를 낮춰 재활용된다. 흑연감속로 주변에 반드시 냉각탑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는 "어떻게 가스 냉각식 원자로가 냉각탑 없이 사막에서 작동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넷째, 별도의 폐연료봉 냉각 수조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기 위해서는 냉각 수조에서 1년 이상 식혀야 한다. 

CIA는 시리아의 경우 원자로 건물 내에 "폐연료봉 냉각수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변 원자로를 포함, 세계 29개의 흑연감속로는 모두 별도의 건물에 폐연료봉 냉각 수조를 갖고 있다. 연료봉 주위를 감싸는 흑연(마그녹스) 피복이 공기 중 수분과 접촉하면 폭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폐연료봉 냉각 수조를 원자로 건물 안에 둘 수 없는 이유다.

이 기술평가서를 작성, 보고한 사람은 이집트 출신의 핵공학자이자 IAEA 사찰관인 유스리 아부샤디다.  

핵공학 박사인 아부샤디는 2015년까지 23년간 IAEA 사찰관으로 일했으며 퇴임 당시 직책은 핵 안전국 서유럽 담당 책임자였다. 특히 그는 북핵 문제가 불거진 1993년부터 영변 원자로를 감시해 왔으며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핵 안전국의 북한 담당 책임자였다. 10년간 북한 원자로를 관찰해온 셈이다.  

그는 영변 원자로와 같은 흑연감속로를 설계한 바 있으며 북한을 15번 방문해 영변 원자로를 설계하고 운영한 북한의 기술자들과 광범위한 기술적 토론을 했다. 북한 외부 인사로는 북한 원자로에 가장 정통한 인사라고 할 수 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IAEA 안전담당 사무차장을 역임한 브루노 펠로가 아부샤디를 "가장 믿을 만한 조언자"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가레쓰 포터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아부샤디와 수차례 대면 인터뷰를 했으며 이후 수 개월간 전화와 이메일 등으로 시리아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또 다른 증거가 있다. IAEA는 2008년 6월 알키바르 폭격 현장에서 시료들을 채취, 분석했는데 방사성 탄소를 검출해 내지 못한 것이다. 알키바르 시설물이 흑연감속로이고, 만일 그곳에 핵연료가 있었다면 폭격으로 인해 방사능 물질들이 사방으로 튀었을 텐데도 말이다. IAEA가 방사성 원소를 검출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그곳에 핵물질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이와 관련, 미국 오크리지국립핵연구소의 핵공학자 베라드 나카이는 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원자로가 폭격을 당했다면) 수백 톤의 방사성 탄소가 사방으로 흩어졌을 것이고, 이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아부샤디의 지적에 동의했다.

또한 나카이는 IAEA가 2011년 보고서에서 "수집된 탄소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방사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한 데 대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비판했다.
▲ 미 상업위성 회사인 디지털글로브는 시리아가 이스라엘의 폭격 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주변을 정리했다며 폭격 전인 8월 10일(왼쪽)의 현장 모습과 폭격 후인 10월 24일(오른쪽)의 모습을 비교해 제시했다. ⓒDigitalGlobe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의 실토 

이스라엘이 제시한 '북한-시리아 핵 협력'이 얼마나 엉성한 것인가는 당시 CIA 국장 마이클 헤이든의 실토에서도 드러난다. 헤이든은 2016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 테러시대의 미국 정보기관>)에서 시리아 원자로의 "핵심 요소"들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라고 밝혔다. 알키바르 건물이 원자로라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증거물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CIA는 시리아에서 핵연료 제조시설도 찾아내지 못했다. 북한의 영변 원자로는 1994년 이후 가동 중지에 들어갔고 이후 불능화 됐다. 따라서 시리아가 원자로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자체 핵연료 제조 시설이 있어야 했다. 북한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미국은 찾아내지 못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연상되지 않는가.

조작된 사진  

CIA는 모사드가 제공한 사진과 영상 등을 바탕으로 시리아의 건물이 원자로이며 이 기술이 북한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포터는 이 사진들이 조작됐다고 말한다.

헤이든은 2007년 4월 메이어 다간과 만났을 당시 모사드가 언제, 어떻게 이 사진을 구했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정보원과 정보 수집 방법에 대해서는 서로 묻지 않는 것이 정보기관 간의 관행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미국이 전쟁에 준하는 시리아 공습을 염두에 두면서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포터는 지적한다.

헤이든은 모사드가 최소한 한 가지 속임수를 썼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CIA 분석가들이 모사드로부터 입수한 사진을 검토하면서 사진들 중 한 장에서 트럭의 한 쪽에 쓰여 있던 글자를 포토샵으로 제거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포토샵으로 수정된 사진에 대해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모사드의 사진 수정(포토샵 행위)을 CIA 분석가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고 싶다며 포터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거부했다.  

아부샤디는 CIA 공개 영상을 검토하면서 특이한 물감 톤을 발견했다면서는 이는 이스라엘 측 사진들이 수 년 전에 촬영된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2007년 4월 26일 '초기 기술 평가서'에서 엘바라데이 총장 등에게 문제의 사진들은 영국의 초기 흑연감속로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시리아는 왜 침묵했을까 

그러면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공습에 왜 침묵했는가. 당시 시리아 정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격퇴했다고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 사항에 대해서는 일제 언급하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시리아의 침묵이야말로 문제의 건물이 원자로임을 반증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포터는 공습 당시 알키바르 인근의 방공 임무를 맡았던 시리아 공군 장교와 시리아 원자력위원회 책임자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 건물이 공습 5년 전 이미 폐기된 미사일 격납고였다고 밝혔다.  

시리아의 공군 소령 출신으로 반아사드 진영으로 망명한 아부 모하메드는 지난 2013년 2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하메드는 알 키바르와 가장 가까운 도시인 디에르 에조르의 방공 기지에 근무했으며 이스라엘의 공습이 있었던 2007년 9월 6일 밤, 다마스쿠스 전략공군사령부의 한 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적들의 비행기가 접근하고 있는 상황에서 준장의 명령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이스라엘 비행기들이 디에르 에조르에 접근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이유는 시리아 정부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뿐이었다. 

시리아는 왜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지 않았을까? 이 건물은 당초 미사일 격납고로 건설됐지만 이미 5년 전부터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터에 따르면 아부샤디는 2015년 9월 비엔나에서 시리아 원자력위원회 수장인 이브라힘 오스만을 만났다고 밝혔다. 오스만은 이 자리에서 문제의 그 건물은 미사일을 보관하는 동시에 2기의 고정식 미사일 발사대를 갖고 있었으나 2002년부터 사실상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중 속임수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폐기된 미사일 격납고를 북한이 지원하는 원자로라고 미국에 제보했을까? 그것은 2006년 여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전쟁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본부를 둔 헤즈볼라의 미사일과 로켓 공격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사실상 헤즈볼라에게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이후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미사일과 로켓 기지를 집요하게 찾아 다녔다. 헤즈볼라의 미사일과 로켓의 상당수가 시리아에 보관돼 있다고 믿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시리아는 문제의 그 건물이 2007년 당시에도 헤즈볼라의 미사일 저장소라고 이스라엘이 믿게 만들 이유가 충분하다. 이스라엘의 관심을 진짜 미사일 저장소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정말 원했던 것은 미국이 헤즈볼라의 미사일 저장고를 공습해주는 것이었다. 이른바 '남의 칼을 빌어 사람을 죽임(借刀殺人)을 노린 것이다. 물론 부시 정부는 이스라엘의 제의를 100%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은 시리아 공습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제보에는 미국 내 강경파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있었다. 바로 미국의 숙적인 북한과 시리아를 동시에 악마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을 통해 북미 핵협상을 파탄 내고, 시리아와 이란 침공까지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이 헤즈볼라 미사일 저장고로 믿은 시설을 파괴했고, 시리아는 이를 방치함으로써 자신의 미사일기지를 보호할 수 있었다. 포터는 이를 이중 속임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 네오콘은 북한이 핵기술을 해외에 확산시키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을 미국 및 세계에 전파시킬 수 있었다. 삼중 속임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북한은 악마화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IAEA가 2011년 5월 24일 자 보고서를 통해 2007년 이스라엘이 폭격한 시리아 시설은 거의 완성된, 비밀리 건설된 원자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힌 것이다. 즉 현재까지도 북한의 시리아 핵기술 지원은 사실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식 견해로 건재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IAEA의 보고서는 진실인 것인가? 다음 번에는 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양국체제', 70년 '분단체제'를 끝낼 전략인가?

다른백년, '한반도 양국체제와 동북아 데탕트' 주제 포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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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8  17: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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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7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한반도 양국체제와 동북아 데탕트'를 주제로 '2017 백년포럼 시즌3'을 진행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70년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국가가 상호 영토와 주권, 정통성을 인정하고 관계정상화를 이루는 양국체제'를 반드시 경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상준 경희대학교 교수는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사)다른백년 주최 '2017 백년포럼 시즌3'에서 "한반도의 미래가 반드시 해방 직후의 염원이었던 1민족 1국가여야 한다는 필연은 없다. 1민족 2국가 경영의 전망도 고려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 이때 1민족 2국가+양국연합기구라는 독특한 복합 국가체제의 구상도 고려 가능하다"며, '양국체제' 개념을 제시했다.
1948년에 남과 북에 성립된 두개의 국가가 전쟁을 겪으면서 70년 가까운 세월을 항시적 위기에 짓눌려 지내왔는데, 이 적대의 근원을 해소해야만 남과 북 모두 비정상적인 '비상국가체제'를 벗어날 수 있고 구조적이며 반복적인 퇴행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무르익히고 있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럼은 촛불혁명 1주년을 기념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나리오들 제2편-한반도 양국체제와 동북아 데탕트'라는 주제로 열렸다.
김 교수는 두 나라가 진심으로 양국체제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그 과정도 쉽지 않고 짧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경과해야 하는 중간과정, 출구전략이 '양국체제'라고 강조했다.
또 양국체제는 최소한 30년은 지속될 상태로 보아야 하며, 그 이후 양국 관계나 통일전망이 어떻게 될 지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한반도 양국체제'는 대한민국에서 독재의 순환고리를 영구히 끊고 실질적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게 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보장을 담보하여 한반도 핵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양국체제에 대한 남북의 신뢰가 생기면 북.미 수교는 머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고 양국체제와 그 일부가 되는 북.미 수교는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완화로 가는 길을 열게된다.
이는 동시에 남과 북에서 비상국가체제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며, 이로써 양국체제는 동북아 데탕트의 축이 되고 국가 주권형태의 새로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양국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이 먼저 장기적 전략노선을 분명히 내재화하고 일관된 언어와 행동으로 상대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양국체제를 '새로운 국시'로 선포하거나 헌법 제3, 4조 영토와 통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양국체제는 남북간 접촉에 이어 임시대표부 교환으로 시작해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공식화되는데,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나라 대 나라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관계 설정은 '한 민족이 세운 두 나라의 특수한 나라 대 나라의 관계'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김상준 경희대 교수, 이남곡 연천문화연구소 이사장, 김누리 중앙대 교수, 이일영 한신대 교수, 남문희 <시사인> 전문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남곡 연찬문화연구소 이사장은 "분단체제를 통일이 아니라 양국체제로 넘어서자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도 양국체제의 목적과 방법, 현실인식 등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1960년 사월혁명과 1987년 6월항쟁, 2017년 촛불항쟁의 노정에 대해 30년 주기로 '독재가 대분출한 민주주의를 회수'한 매우 불쾌한 사이클로 해석하는 김 교수의 발제에 대해서는 조금씩 나아지는 나선형 발전과정으로 보자고 했다. 민주주의의 더 많은 발전이 지체된 것은 분단체제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발전과정 자체가 그러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특히 양국체제론이 한국사회에서 진보, 보수를 떠나 합리적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고 북한 역시 굳이 반대하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김 교수의 발제에 대해서는 '지나친 낙관'이라고 선을 그었다.
"우리 사회에서 반미 자주를 외치는 주장보다 더 강한 목소리가 북에 대한 불신과 혐오"라며, "양국체제에 대한 조야의 합의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또 "북은 평화에 대한 공포를, 남은 평화에 대한 체념이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이점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 북이 양국체제를 지지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양국체제에 앞서 촛불 이후 새로 정립되는 보수.진보 간 연합, 연정이 필요하다. 또 양국체제에 앞서 북.미 수교가 먼저 될 수있는데, 여기에 한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는 "20년 후 독일 통일의 기반이 된 빌리 브란트 독일 수상의 동방정책은 사실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양국체제론, 반통일정책이었다"며, "양국체제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70년간 한국을 지배하는 거대한 무력감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독립변수가 되어 본 적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타개할 노선을 고민하지도 못했다. 한국의 통일정책을 '70년의 무위'라고 한 총평도 있다"며, "이 점에서도 양국체제는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분단이 가져오는 왜곡된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70년의 분단은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게 하고 권위앞에 굴종하게 만들었으며, 집단에 속해 있어야만 편안해지도록 나 자신을 파괴해 한국인이 민주주의자가 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는 계속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분단 70년은 한국 정치 구도도 왜곡시켜서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과두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 의회 의원 700여명 중 시장자유주의자는 단 한 명도 없는 데 반해 전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길고 가혹한 착취가 일상이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300명 중 295명이 시장자유주의자라는 것.
이어 "평화운동을 종북으로 몰아 씨를 말린 상황에서 위기는 일상화되어 있지만 그걸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당시 독일의 공영방송과 주요 신문들이 한 달에 10번 이상 한반도 위기를 탑뉴스로 선정했으나 한국의 주요 포털사이트를 장식한 뉴스는 류현진 선수의 선발 등판, 탤런트 아무개씨의 셋째 임신 소식 등이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일영 한신대학교 교수는 기존 분단체제론에는 출구전략이 없거나 모호하다는 발제에 대해 "분단체제론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남북을 분리된 두 국가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분단체제 극복 방법론의 하나로 변혁적 중도론'을 제기하고 있는데. 최종적이고 장기적인 통일도 기존 근대국가를 넘어서는 복합성을 지니는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어 양국체제론에서 제기하는 출구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남문희 <시사인> 전문기자는 지난 2014년 7월 7일 북한이 발표한 정부성명 중 통일방안을 제안한 세번째 항, '새로운 합리적 통일방안으로 연방연합제를 추진하자는 것' 에 주목해 양국체제론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을 시도했다.
구체적인 설명없이 일단 던지고 남측 반응을 보겠다는 태도였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근본적으로 통일은 연방제로 하지만 시작은 연합제로 하자는 의도'라고 추정했다.
이어 취해진 평양 표준시 도입, 북측에서 진행된 국제경기대회에서 태극기 게양 등을 거론하면서 북에서도 남북관계를 두 국가관계로 설정하는 듯한 행보를 계속해 왔다고 말했다. 
  
▲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은 양국체제 논의를 통해 보수와 진보를 함께 아우르는 새로운 계기를 열어보자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남북 분단상황에 이어 남한 내부에서 진보와 보수, 미국의존적 수구집단과 근거없는 친북적 성향들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통일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평화의 조건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오늘 우리가 제기하는 양국체제론의 논의를 통하여 남북간 분단의 대립적 상황과 내용없는 언술적 공존의 모호한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구체적인 현실지형을 살피는 동시에 실제적인 타협과 미래지향적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보수와 진보를 함께 아우르는 플랫폼의 새로운 계기를 열어보자"고 이날 포럼 취지를 설명했다.
또 "여전히 북한을 봉괴하는 그리고 붕괴해야만 하는 정권, 악의 축이자 미국의 전일적 세계통제질서에 저항하는 반항아로 규정하는 한 한반도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며, 미국이 일방적 군사주의에서 벗어나 역지사지의 열린 자세와 대화의 태도를 보일 것을 촉구했다.
이부영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은 축사를 통해 "전쟁위기가 높아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꽤 긴 계획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위기에 처한 민족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이날 포럼의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어 "양국체제가 '남북이 완전히 다른 나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 '외교관계를 맺고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정도를 넘어 수교와 경제교류를 하면서 적대감을 줄이고 동질성을 높여가면서 국가연합으로 심화되는 등 여러 시나리오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