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4일 금요일

이대로라면 전쟁은 시간문제일 뿐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8/15 [12: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14일 판문점에서 결속한 조선인민군 붉은기 이어달리기 행사     © 자주시보

▲ 북 청소년들의 백두산 답사 행군     © 자주시보

▲ 백두산 항일혁명유적지에서 밀영 생활에 대한 강사의 설명을 듣는 북 주민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북의 주민들의 정신교육 사업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뭔가 최후 결전 막바지 준비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 자주시보


한미는 현재 비무장지대 남측경계선 지뢰폭발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발표하고 대북심리방송 스피커를 다시 설치하여 방송을 이미 진행하기 시작했으며 연례적으로 진행해온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또 다시 사상 최대 무력을 동원, 완전한 실전분위기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자 본지에서 우려한 대로 북은 대북방송 중단을 촉구하면서 불응하면 고정식 스피커이건 이동식 스피커이건 전면전까지 불사하고 무차별 타격을 가하겠다고 15일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 명의로 '공개경고장'을 발표하였다.

한반도가 또 다시 위험한 전쟁국면으로 빠르게 휩쓸려가고 있다.

▲ 미군의 을지프리덤훈련 모습, 기본이 상륙작전이다. 즉, 북에 상륙하여 북의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겠다는 것이 미국이 표방하는 군사훈련 목표이다. 올해는 지뢰폭발사건으로 사상최대 규모로 그것도 실전을 방불케하는 강도로 진행한다고 발표하였다.


✦ 최악의 위기에 빠진 미국의 최고 수준의 대북 압박

비무장지대 지뢰폭발사건조사와 대응방안 발표에 유엔이란 모자를 쓴 미국이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사상 최대 규모 발표도 미국의 지뢰사건 조사 결과를 근거로 나온 것이다.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는 이미 이런 한반도 정세 격화를 예상했던지 여름 휴가도 전면 연기하였다.

현재 미국은 개국 이래 최악의 정치 군사 경제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정치적 위기는 미국 내의 수많은 시위만 봐도 익히 알 수 있고 군사적 위기는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 참패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진 이후 미국 경제는 살아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실업자 비율이 대폭 하락 하는 등 지표상으로 좋아져서 달러를 인상하겠다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발표가 종종 나오고는 있지만 실물 경기는 여전히 말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 9월 달러 인상안도 확정된 것은 없다며 다시 연기할 뜻이 있음을 언론을 통해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미국은 저임금을 찾아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세일가스를 개발하여 자국 기업가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에너지와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게 해왔다. 그 덕에 많은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왔고 고용도 창출되었다. 하지만 이 셰일가스 때문에 다 죽게 된 전통 우방국이자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셰일가스 기업을 죽이기 위해 초저가 유가 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미국과 거의 전쟁상태이다. 미국 석유재벌들과 금융권은 긴급 자금을 풀어 미국 셰일가스를 비싼 값에 사서 곳곳의 대형 탱크에 비축유로 저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죽을 것 같던 셰일가스 기업이 죽지 않자 사우디는 재정이 파탄날 상황에 처해 사우디 역사에 흔치 않았던 국채발행까지 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관계개선을 이룬 이란은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를 맞이하여 사우디 석유 기업을 박살내기 위한 초저가 석유를 세계 시장에 마구 뿌리고 있다. 석유만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과 협력하여 건설한 정유공장에서 나프타나 엘피지 가스 등을 올해부터 생산 시작하였는데 그 생산물들을 전 세계 오퍼들에게 거의 헐값으로 막 가져가라고 전화에 불이 일게 연락하고 있고 속속 오퍼들이 이란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렇게 미국은 자기가 살자고 전통 우방국을 죽이기 위해 적대국과도 관계를 개선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쿠바와의 관계 개선도 근본 맥락은 같다.

미국이 이런 최악의 위기에 빠진 것은 유고, 이라크, 아프간, 북부아프리카와 중동 여러나라들의 재스민혁명지원에 막대한 전쟁비용을 쏟아부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확실한 승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과거처럼 자원 약탈과 이권 싹쓸이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어부지리를 중국과 러시아 등이 얻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군사력의 약화가 초래한 비극인 셈이다.

그런데 중동 반미국들의 군사적 힘의 배경에 북이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동 전쟁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공포와 대전차, 대공 미사일, 스커드 탄도미사일 등 상용무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가 선명하게 찍혀있고 예멘처럼 별 힘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나라도 북의 스커드 미사일로 미국 패트리어트 반공망을 산산이 찢어버리면서 사우디 군사공항과 주요 거점을 직격하고 있다. 북의 기술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란의 전투기들이 중동 전쟁터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북은 일년 365일 미사일 바겐세일 국가”라며 비난한 적이 있는데 그 우려가 과장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에 의한 것임이 지금 중동 곳곳의 전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누가 봐도 전 세계 반미의 축이라 자임하면서 미국에게 치명적인 미사일 등 무기를 싼 값으로 마구마구 뿌려대는 북을 그냥 두고서는 미국이 세계 패권을 쥐는 것은 요원한 상황이다.

거기다가 북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이미 실전배치했다고 발표한지 오래다. 올해엔  미국에게 가장 치명적인 잠수함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까지 성공시켰다고 발표하면서 앞으로 실전배치를 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것까지 미국이 묵과한다면 사실상 미국의 1극 군사패권은 포기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를 부르짖으며 지금 한반도 주변에 방대한 무력을 집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무력 사용능력을 높이기 위해 늘 했다고 하면 사상최대 무력동원 기록을 갈아치우는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특별한 명분도 없이 사상최대의 훈련기록을 갈아치워왔는데 이번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은 지뢰폭발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사상최대의 무력동원에 실전방불케하는 훈련강도까지 보여주겠다고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전방불’ 이 말은 매우 위험한 말이다. 북은 미국이 실전 징후만 보여도 먼저 선제타격을 가하겠다고 발표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수뇌부가 혹시 한반도 전쟁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닌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정말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 전면전 불사 외치는 북 인민군

북도 분단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면 부정의한 평화보다 정의의 전쟁이 더 낫다는 입장을 표명한지 이미 5년이 넘었다. 분단으로 주변국과 외세는 이득을 보지만 한반도의 남과 북 주민들은 막심한 피해를 감내해오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피해를 감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이런 북의 입장이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8월 5일 21세기민족일보에서 소개한 4일자 노동신문 논설의 일부 내용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노동신문>에 실린 편집국논설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조선의 영원한 정신이다>
.....
    오늘 우리앞에는 백두산총대의 위력으로 70년간이나 지속되여온 반미대결사를 침략과 도발의 본거지에서 미제의 최후멸망사로 기록하고 우리 인민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이룩하여야 할 성스러운 투쟁과업이 나서고 있다.

    우리의 전진속도가 빨라지고 선군조선의 위력이 강화될수록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은 극도에 달하고있다.지금 이 시각도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서로 야합하여 우리에 대한 제재압박의 도수를 높이고있으며 조선반도주변에서 위험천만한 침략전쟁연습들을 미친듯이 벌려놓고 핵전쟁의 불구름을 끈질기게 몰아오고있다.제반 사태는 오직 힘으로 원쑤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하고 제국주의와 총결산하여야 한다는 계급투쟁의 철리를 더욱 굳게 새겨주고 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백두의 칼바람으로 적들에게 철추를 내리고계신다.적들의 대규모북침전쟁연습이 벌어지고있던 일촉즉발의 시각에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성원들과 함께 백두산에 오르시여 미제와의 총결산을 위한 투쟁에서 비행사들이 력사가 알지 못하는 육탄결사대의 하늘신화를 창조할수 있도록 용맹의 나래를 달아주신분이 경애하는 원수님이시고 최전연인 판문점과 무도,장재도에까지 나가시여 전쟁광증에 걸린 적들에게 백두산혁명강군의 진짜전쟁맛을 보여주자고 하신분도 우리의 원수님이시다. 정전협정이 이미 휴지장으로 되여버리고 불과 불,핵과 핵의 대결만이 남은 조건에서 미제와 특대형도발자들이 너덜거린다면 그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그 무슨 경고나 사전통고없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대상에 대하여 무자비한 정의의 타격을 개시할것이라는 백두산혁명강군의 폭탄선언은 백두의 메아리가 되여 온 세계에 울려퍼지고 있다.
.....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판가리싸움의 그날이 오면 항복서에 도장을 찍을 놈도 없게 침략자들을 씨도 없이 무자비하게 족쳐버리고 전승의 축포가 오르는 열병식광장에 보무당당히 들어설 불같은 결의에 넘쳐있다.
.....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이 위대한 수령님들대에 미일 두 제국주의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의 새봄과 전승의 축포를 안아왔다면 경애하는 원수님대에는 철천지원쑤 미제를 지구상에서 영영 없애버리고 조국통일의 대사변을 가져올것이다....]

장문의 논설의 한 부분인데 요약하면 김정은시대에 반드시 조국통일의 대사변을 완수하겠다는 것이며 그것을 판가리 싸움을 통해서 이루는데 침략과 도발의 본거지 즉, 미 본토 타격전쟁을 통해서 이룰 것이라는 북의 선언이다.
특히 ‘그 무슨 경고나 사전통고없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대상에 대하여 무자비한 정의의 타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언급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때가 되면 꼭 미국에서 북을 위협하지 않아도 언제든 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심각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면 이미 한반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다만 언제 일어나는 시기의 문제만 남은 셈이다.

다만 통일전쟁이라는 언급을 보면 통일 이후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건 마련 등 준비가 필요할 것이기에 당장 전면전이 발생하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북이 남에 비해 생활수준이나 경제력에서 격차가 난다면 통일 이후 남측 민심을 북으로 돌려세우기는커녕 북쪽 민심이 흔들릴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실제 김정은 제1위원정이 경제와 북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현지지도를 정열적으로 이어가면서 늘 하는 말이 ‘최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최후 승리 즉 통일전쟁을 단행하기 위해서는 그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로 보인다.

그런 북의 경제 사정이 최근 급격히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 북을 여행하고 온 외국인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지방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북의 경제발전, 주민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체득시키기기 위한 ‘조선인민군 군인들의 붉은기 이어달리기’ 사업을 진행해왔는데 어제 14일 판문점 도착을 끝으로 결속되었고 ‘전국 청소년 학생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 행군대’의 답사활동이 현재 전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군학살만행지 신천박물관을 전면 개보수하여 대대적으로 주민들에 대한 대미적대의식을 높여내는 행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각지 혁명사적지, 계급교양기지들에 대한 주민들의 참관 교육도 연일 진행하고 있다는 북의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대사변을 앞 둔 북 주민들 사전 정치사업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주도면밀하며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일들이 모이는 귀결점은 오직 하나 미국과 판가리 결전이다. 미국처럼 김정은 위원장도 이미 단호한 결심을 세웠고 무서울 정도로 빈틈없이 하나하나의 일을 빠른 속도로 진행시켜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최고지도자로서 전면적인 지도를 단행한지 3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장성택 숙청 등 자신의 정치지반을 다지는 것부터 무장장비의 현대화에 북 인민군 간부들과 병사들의 실전능력 배양, 무엇보다 북에서 중시해오고 있는 정신전력 강화를 위한 인민군대 계급교양, 나아가 북 전체 주민들에 대한 정신교육까지 그간 해온 일을 보면 수십년은 지나간 것 같다.

미국의 정보당국이 놀고 있지 않다면 이런 북의 움직임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북은 상상 초월 속도로 준비를 다그쳐가고 있다. 미국 수뇌부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북이 더 준비하기 전에 결판을 봐야 하는 것 아닌가.?!”이런 논의가 오가고 있을 것임은 자명한 상황이다.

✦ 평화적 해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아직은 평화적으로 북미대결전을 해결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올 초만 해도 북은 미국의 대북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미국과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표명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게도 과거를 묻지 않겠다며 진심으로 6.15와 10.4 선언을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언제든지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갈 대화를 나눌 의지가 있다고 매년 표명해왔다.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등 미 본토를 타격할 무기를 준비해두고 있다고 해도 미국 또한 그런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북이 아무리 미국의 레이더를 교란시키고 요격체계를 잘 가동하여 막는다고 해도 한반도 인근에 배치된 미국의 군함과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핵탄두 순항미사일을 모두 다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북도 모든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시설을 구축해놓고 있는 것이다.

전쟁 시 자칫하면 북의 지상은 모조리 잿더미가 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런 전쟁을 북이라고 꼭 하고 싶겠는가. 물론 미국이 북의 도시에 핵폭탄을 떨구면 북도 미 본토 전체를 무차별 타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북도 피해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이 북에 대한 안전보장을 해주기로 한 94북미제네바합의와 6자회담 9.19공동성명을 이행할 의지를 확고하게 피력하고 남측에서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와 10.4 선언 이행 의지를 분명히 피력한다면 북도 대화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그만큼 한반도 전쟁 위기는 고조되어가고 있다. 북미 남북과계 개선 해법 찾기 정말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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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윤치호가 독립운동가? 법무부의 황당 동영상


15.08.14 19:45l최종 업데이트 15.08.15 09:5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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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가 인터넷에 게시한 동영상.
ⓒ 인터넷 갈무리

[기사보강 : 15일 오전 9시 58분]

광복 70주년을 맞아 법무부가 정부기관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윤치호를 독립운동가 12명 안에 넣은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유초중고 학생 교육용 사이트 '법사랑 사이버랜드'와 유튜브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8월 12일 '팔월 광복절'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게시했다. 4분 36초 분량의 이 동영상을 살펴봤더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12명에 윤치호가 사진과 함께 들어 있었다(15일 오전 9시 58분 현재, 동영상이 사용자에 의해 삭제된 상태라 나온다). 

하지만 윤치호(1865~1945)는 105인 사건으로 출소한 뒤 조선총독부 일간지인 매일신보에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중일전쟁에 청년들이 자원입대할 것을 호소한 친일파다. 친일세력을 총망라한 조선임전보국단의 고문이었던 그는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27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에 윤치호를 포함한 704명의 이름이 실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문서를 보고했다. 윤치호는 같은 해 나온 관보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이름이 올라갔다. 

윤치호는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낸 <친일인명사전>에도 대표적인 친일행위자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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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가 인터넷에 게시한 동영상.
ⓒ 인터넷 갈무리

한편, 법무부 동영상은 독립운동가 12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희형'이란 인물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그런데 이 또한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이름 두자를 모두 잘못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회영은 현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할아버지다. 

법무부는 이번 동영상에서 "광복절은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날로 기억해야 한다"면서 "광복절을 통해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던 독립운동 선열의 피와 땀으로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친일파를 독립운동가로 둔갑"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대한민국 정부 스스로 윤치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해 관보에까지 실었는데, 법무부가 그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소개한 것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면서 "게다가 이회영 선생의 이름까지 엉터리로 기재한 것은 정부가 얼마나 독립운동가를 업신여기는지 뒷받침해주는 징표"라고 비판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도 "이처럼 친일파를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현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그 내용이 더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기자는 법무부의 해명을 듣기 위해 해당 사이트 운영 부서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민족공동행사, 왜 이렇게 어려워졌나

민족공동행사, 왜 이렇게 어려워졌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8/14 [21: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광복 70년! 분단 70년! 박근혜 정부 통일정책 평가 토론회'     ©자주시보

지난 13일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와  '우리사회연구소' 공동 주최 '광복 70돌,남북은 왜 만날 수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광복 70년! 분단 70년! 박근혜 정부 통일정책 평가 토론회'가 열렸다.

주최측에서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전민족이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통일의 길에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했지만 남북관계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국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정확한 문제점을 알아야 남북관계 개선의 활로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기에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토론회를 열게 되었다고 밝혔다.

발제 : 민족공동행사, 왜 이렇게 어려워졌나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토론 1 : 박근혜 정부 ‘통일대박의 꿈’은 실현될 수 있나
(백남주 <통일경제론> 저자)

토론 2 : 유엔북한인권사무소 설치의 문제점
(김준성 민권연대 정책실장)

토론 3 : 북한관련 언론 보도, 이대로 괜찮은가
(이동훈 NK투데이 취재보도국장)

이중 토론 3의 내용은 이미 자주시보에 보도한 바 있어서 발제문과 두 토론 논문을 하나씩 본지에서 소개할 계획이다. 여기서는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의 발제문 전문을 소개한다.]

▲ 광복 70주년 기념 토론회     © 자주시보


[발제문] 민족공동행사, 왜 이렇게 어려워졌나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올해는 광복 70돌이자 분단 70돌을 맞는 해이다. 남북해외의 온 민족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했고, 6월 15일 서울에서, 8월 15일 평양에서 민족공동행사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지난 6.15 민족공동행사에 이어 다가오는 8.15 민족공동행사도 사실상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1) 6.15 공동행사를 무산시킨 정부의 개입

이미 지난 6.15 15주년 행사에서부터, 통일부의 개입으로 인해 6.15 민족공동행사 준비가 온갖 난항을 거듭한 끝에 끝내 성대히 개최되지 못하였다. 지난 5월 5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남북해외 실무회담은 일정이 연기되면서도 논의를 계속하였지만 끝내 행사장소를 명기하지 못하고 난항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5월의 실무회담이 사실상 결렬된 것은 남측에서 그동안의 합의사항을 뒤집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6.15 민족공동행사, 광복 70돌 남측 준비위원회’의 이승환 대변인은 실무회담에 나온 북측인사에게 광복 70돌 8.15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애당초 남, 북, 해외의 민간이 주도하는 6.15 민족공동행사, 광복 70돌 준비위원회는 6.15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을 논의하면서 8.15 행사는 평양개최를 전제한 분위기였다. 남측 준비위원회도 올해 초 6.15 민족공동행사의 서울개최를 논의하면서, 남북을 번갈아가며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한 관례상 8.15 행사는 평양에서 할 것이라는 구두 논의를 진행해왔다고 한다. 5월 5일의 선양 실무회담에 참여한 관계자는 지난 3월 11일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광복 70주년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입체적으로 진행되면서도 “6.15공동선언 15주년 공동행사가 서울에서 개최되게 된다면 광복 70주년 행사는 북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승환 대변인은 왜 난데없이 8.15 서울개최를 언급해 회담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는가? 여기에는 통일부가 개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통일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월 5일의 선양 남북 민간접촉을 앞두고 남측 준비위원회 관계자를 통해 광복70돌 8.15 행사의 서울개최를 북측과 합의해 오면 6.15 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는 것을 승인해 줄 수 있다는 의견을 강력히 제시했다고 한다. 이것은 “6.15행사보장”을 미끼로 “8.15 서울개최”를 먹어보자는 심산이다. 그래놓고도 정부는 6.15 행사가 통일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는지 6.15 행사를 정치성이 배제된 순수한 사회문화교류로 허용한다는 반쪽짜리 허용입장으로 제동을 걸었다.

결국 6.15 민족공동행사는 남북해외 실무회담에서 ‘6.15 서울, 8.15 평양’을 전제로 준비가 한창인 상황에 통일부가 중간에 끼어들어 8.15 서울개최를 제시한 격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남북관계란 정부당국의 허가 없이는 순탄히 이뤄질 수 없으니 좋으나 싫으나 정부당국이 제정하는 규범과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일까?

남북관계의 핵심은 단순히 얼굴 한 번 보는 것이 아니다. 남북이 지난 시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수많은 교류협력사업을 펼쳤지만 오늘날 이렇게 관계가 가로막힌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북관계를 제도적으로 안착화시킬 정치군사적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의 교훈이 여전히 생생한데 그간 못 만났으니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식으로 남북공동행사를 개최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이 여전히 팽팽한데 박근혜 정부가 8.15 대회를 서울에서 열자고 제의한 까닭은 어디 있는가?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집권중반기 지지율을 끌어올려보자는 심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8.15 서울개최는 결국 한미동맹을 중시하며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는 근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8.15 서울개최는 같은 통일부의 입장을 박근혜 정부의 공식입장과 다른, 통일부 장관의 고심에 찬 결단으로 보아야 할까?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의 입장은 곧 통일부의 입장이었으며 마찬가지로 통일부의 입장은 곧 청와대의 입장이었다. 홍용표 통일부장관도 박근혜 대통령 말 잘 들어서 장관직에 오른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통일부의 6.15 행사 개입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해석해도 충분하다.


2) 8.15 행사에서 재현된 개입

6.15 민족공동행사가 사실상 정부의 개입으로 무산된 데 이어 이제 8.15 행사마저도 정부의 개입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8.15행사는 남과 북, 해외의 민간단체들간 합의로 북측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남측 준비위원회’는 북측행사에 참여할 방북대표단을 구성하여 그 명단을 북측에 전달하려 했다.

지난 8월 4일 준비위 운영위에서는 8월 7일까지 사무처와 조직위가 협조하여 100여명의 방북대표단을 구성하기로 하고 의견을 모으고 8.15 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준비위의 이창복 의장은 8.15 민족공동행사 참가를 반드시 성사시키자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승환 대변인은 상임대표들이 100명의 명단을 확인해야 명단을 북측에 보낼 수 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며 방북신청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으며 이를 이창복 의장께 보고도 하지 않아 준비위 내부에서 상황파악에 혼선이 초래되는 심각한 상황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결국 북측에 방북인사들의 명단이 도착하지 못해 8.15 행사의 남측대표단 방문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는 정부의 눈초리만 바라보며 8.15 민족공동행사를 정부의 입김에 맞추려 했던 일부 인사들이 빚어낸 묵과할 수 없는 하극상이다.

물론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민간단체들의 행사도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남북관계가 정부의 관리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북관계는 민족동질성 회복이며 이는 광범위한 민간이 주체로 나서야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 정부와 민간은 서로 견제하면서 도와나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어야지, 민간이 정부의 눈치만 보려 해서는 보수정권의 아바타를 자임하는 관변단체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남북관계의 실무를 말하기 앞서 과거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현재 진보진영의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일정한 역할을 책임지시면서 남북관계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받는 분들은 대체로 지난 군부독재정권 치하에서부터 이 땅의 통일을 위해 사선을 헤치고 혈로를 뚫어가며 싸워오신 분들이다. 이들은 통일운동의 직선주로를 매진하다 국가보안법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며 온갖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난 70년의 통일운동사에서 통일운동세력이 스스로 보수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통일운동의 숨결을 정부의 장단에 맞추려 노력했던 것은 일찍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로서 박정희 정권의 사상과 이념을 그대로 승계한 것으로 평가받는 박근혜 정부의 지지와 지원 아래 펼쳐지는 통일운동이란 대북공세와 흡수통일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현 정부가 실제로 박수치고 후원해 준 대북사업도 실제로는 북한인권사무소 개설과 대북전단 살포 밖에 없었다.

지금 일각에서 벌어지는 정권의 눈초리에 8.15 행사를 조절하려는 작태들을 광복 70주년을 빗대어 말한다면 일제의 승인을 얻어 독립운동을 하려는 개량주의 망상의 재현이다. 


3)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은 박근혜 정권

<노컷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되었을 수 있다.”는 국가정보원의 첩보보고를 “이런 건 빨리 알려서 북한 실상을 국민들이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고 지시를 해 한국사회에서 온갖 논란을 낳았다고 보도하였다. 당시는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앞두고 남북관계 발전가능성이 주목받던 시기였다. 결국 국정원의 숙청설은 남북관계를 냉각시키는데 일조하였을 뿐이다. 국정원이 야심차게 발표한 숙청설은 3개월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확인된 것은 남북관계가 그만큼 나빠졌다는 것뿐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6월 15일 당일에 한미정상회담을 예정에 두고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나서기도 하였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5월에 “박 대통령이 6월 15~18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일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모색하기 위해 이달 중순 우리나라를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굳이 6.15 15주년의 소중한 날에 미국을 방문해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었던가? 6.15 공동선언 15주년인 6월 15일에 미국을 방문해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3각 공조를 논의한다는 것은 6.15 공동선언에 대한 국제적이고 공개적인 모독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는 메르스 파동을 표면적 핑계로 지연되었으나 10월에 재추진되고 있다.

이번 이희호 여사의 방북과정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으로 지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채로 온갖 생색내기에 급급하였다. 정부는 이희호 여사의 방북에 함께 방북을 신청한 박지원, 임동원, 권노갑, 김옥두 등의 인사의 방북을 모두 불허하였다. 정부는 현실정치인은 방북을 불허한다는 핑계를 대였지만,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정치행보를 펼친 적도 없는 정부관료이다.

무엇보다 8월 4일, 파주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지뢰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지만, 정부는 8월 5일에 통일부장관을 통해 난데없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의하였다. 그러자 8월 8일, 이희호 여사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면담이 없이 돌아오자 주말을 지낸 직후부터 휴전선 목함지뢰사건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북한규탄에 앞장서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갈지자 행보는 남북관계 개선의 일말의 희망을 열고자 노구에 방북길에 올랐던 이희호 여사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지뢰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면 고위급회담을 제의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반대로, 지뢰사건을 단순사고로 판단하고 고위급회담을 제의하였다면, 이희호 여사의 면담이 불발되자 전면적인 대북공세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4)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물어야

남북이 아무리 휴전선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국가를 책임지려는 정권이라면, 남북간에 최소한의 신뢰는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지난 박정희 정권도 엄혹했던 1970년대에 북한에 밀사를 보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6.15 15주년을 ‘유린’한데 이어 광복 70주년을 통일로 승화시키려는 민족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제 DMZ 지뢰사건이 천안함 사건이 무색할만큼 언론지면에 도배되면서 8월 17일부터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시작된다. 이런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과연 순탄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6.15 행사와 8.15 70주년을 앞두고 남북관계가 꼬이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

[SNS] 아베 총리 ‘과거형 사죄’에 네티즌도 뿔


與 “아쉽지만 의미 있어” 野 “가해자 책임회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한 가운데 ‘과거형’으로 사죄를 밝혀 SNS 등에서 비난 반응들이 쏟아졌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국무회의에서 결정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나라(일본) 지난 전쟁에서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해왔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지금 인구의 8할을 넘겼다. 그 전쟁과 어떠한 관여도 없다”면서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다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의 권리가 존중받는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 = 뉴시스>
아베 총리는 “100년 이상 이전 세계에는 서양 제국을 중심으로 해서 식민지가 확대돼 왔다”며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한 식민지 지배의 파도는 19세기 아시아에도 덮쳐왔다. 그 위기감이 일본에 근대화의 원동력이 된 것은 틀림없다”고 제국주의를 합리화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전장에서 많은 여성들의 존엄이나 명예가 깊이 상처를 받게 되는 과거를 이 가슴에 새겨나간다”며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이러한 여성들의 마음에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나라로 있고 싶다. 21세기인만큼, 여성의 인권이 상처 입는 것이 없는 세기를 만들기 위해 세계를 리드해왔다”고 간접 언급했다.
아베 총리의 ‘과거형 사죄’에 새누리당은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반면 야당은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과거사에 대해서 반성과 사죄 등의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담화문”이라며 “또한 죄 없는 사람들에게 일본이 끼친 손해와 고통의 과거사를 언급하면서 단장의 념을 금할 수 없다는 표현까지 한 것을 보면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복잡하고 애통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며 “오늘 담화는 일본의 침략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과거형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위안부에 대해서도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이 상처받았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반면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침략과 식민 지배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하며 가해자로서의 책임은 사실상 회피했다”며 “한마디로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 대신 외교적 수사로 책임회피에만 골몰한 담화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네티즌들도 비판 반응들을 보였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의 최근 ‘친일발언’을 언급하며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인들의 의식속에 화려했던 제국주의 시대를 잊지 못하는 데 무슨 말을 한들 귀에 들리겠나?”(즐거운**), “박근령이 보상은 충분히 다 받았고 사죄할 필요 없다잖아”(정**), “대한민국 외교부는 뭐하시나. 70주년 행사에 눈코 뜰 정신이 없나”(Qif****), “우리도 정부가 나서서 강력하게 비판해보자”(통기***), “친일파 척살이 대한민국 숙제”(아름답****) 등의 비난 반응들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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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부친 친일’로 당 대표 물러났던 신기남의 심경 “김무성은…”

등록 :2015-08-14 17:08수정 :2015-08-15 09:35

2004년 8월 18일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을 찾아가 아버지의 친일 문제에 대해 김우전 광복회장에게 사과한 뒤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4년 8월 18일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을 찾아가 아버지의 친일 문제에 대해 김우전 광복회장에게 사과한 뒤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의겸의 우충좌돌 (25) 
2004년 과거사 청산작업 한창 때 불거져…당 피해 막고 대신 사죄하려 사퇴
아버지에 고문당한 걸로 보도된 두 분 찾아뵀는데 “그런 사실 없다”고 하셔
국회서 친일잔재청산 관련 입법 앞장…아버지도 하늘에서 박수 보내셨을 것
오랜만에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같은 당 홍영표 의원은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사과하는 글을 올린 반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부친을 미화한 게 논란이 되고 있는 13일이었다.
신기남 의원은 11년 전인 2004년 꼭 이맘 때 부친 신상묵이 친일 논란에 휩싸이자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했다. 언론보도가 나온 지 사흘 만에 집권여당의 당 대표직을 던진 것이다. 그 전격성과 신속성에 당시 열린우리당 출입기자였던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뒤로 아버지 문제는 신 의원의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은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전화번호를 누른 것이다. 특히 신기남 의원은 김무성 대표와 비슷한 점이 많다. 동갑내기로 ‘친구의 친구’여서 1980년대부터 아는 사이였다. 1996년 15대 때 함께 국회에 등원했고, 집권여당 대표를 할 때 부친이 친일 논란에 올랐다. 물론 그 뒤 보인 모습은 판이하다. 전화 통화가 길어지자, 대화는 마포의 한 중국집으로 이어졌다.
신기남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분권단체 연석회의‘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신기남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분권단체 연석회의‘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제 시대 때 부친이 일본 헌병으로서 고문을 한 게 문제가 됐다.
“그렇다. <동아일보>가 그렇게 보도했다. 그래서 당 의장을 사퇴한 직후 아버지로부터 고문을 당했다는 분들을 찾아뵀다. 김 선생님, 차 선생님 두 분이었는데, 두 분 다 아버지를 알긴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고문 같은 걸 받은 적은 없다고 하셨다. 왜 그런 보도가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오히려 그때 아버지가 수감돼 있는 두 분에게 빵을 사주는 등 따뜻하게 대해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그때 언론보도를 반박하지 그랬는가.
“이미 당 의장직을 던진 상태라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혹시 몰라 두 분의 말씀을 녹취하고 공증까지 받아뒀다. 지금도 사무실 어느 구석에 있으니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만나보니 두 분 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앞장 서 보훈처에 신청서를 내어 김 선생님은 이듬해 독립유공자로 선정이 됐다. 차 선생님은 보류가 돼 내가 직접 변호인으로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며 노력을 기울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홍영표 의원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
“나도 글을 찾아서 읽어봤다. 참 통절하게 반성을 했더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남들은 후손들이 사죄하라고 쉽게 말을 하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자기 아버지를 부정하는 게 아닌가.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가친척들이 다 걸린 문제다.
우리 아버지도 일제시대 한반도 청년으로서의 한계를 벗지 못하고 일군에 들어가 복무했다. 그래도 나름의 지혜와 용기로 동포를 위해 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아버지 생전에 하지 못한 역사와 민족 앞에서의 사죄와 화해는 돌아가신 다음에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자식인 내가 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라는 막중한 자리였는데 언론보도 사흘 만에 사퇴했다.
“여당 대표의 가족사는 휘발성이 강한 문제다. 뭔가 확실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게다가 동아, 조선 등이 내가 그만둘 때까지 결코 그만두지 않을 태세였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과거사 청산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터라 당이 입게 될 피해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최소한의 표시가 당 의장 사퇴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말렸던 것으로 아는데.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와서 사퇴를 말렸다. ‘나도 선거 때 장인 때문에 색깔론에 시달리지 않았나. 그래도 끝내 버텨냈다. 당신도 버텨라. 당신이 무너지면 당도 흔들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소신대로 하겠으니 양해해달라고,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후회는 없었나.
“나중에 천천히 복기를 해보니 그때 내가 당 의장을 사퇴한 것이 당의 안정성을 해치는 단초가 되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이 들어 괴로웠다. 실제로 천정배 원내대표가 4대 개혁을 추진하면서 많이 외로워했다. 그러나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이 판단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 의장 되기 전에 친일잔재 청산에 앞장섰다.
“2001년 4월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친일잔재청산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친일 논란에 휘말려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게 기폭제가 돼 2005년 ‘친일파 재산환수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친일잔재 청산에 앞장서는 나를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생각해봤다. 애비 속도 모른다고 답답해 하셨을까, 아니면 당신이 못해낸 일을 하고 있다며 박수를 보내셨을까. 나는 후자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버지도 한평생 가슴 한 복판에 죄의식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진정으로 사죄하고 화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셨을 거다. 과거사 청산에 나서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셨을 것이다.”
-부친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웠다는데.
“두 분이 대구사범 동창으로 각별한 사이셨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 때 아버지가 청첩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정도다. 아버지가 춘천에서 강원도 경찰국장으로 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춘천에서 사단장 생활을 할 때라 두 분이 자주 어울리셨다고 한다. 두 분 모두 밤늦도록 술 드시기를 좋아해 부인들 고충이 컸다고 한다.”
-그럼 박정희 정권 때 출세를 할 수 있을 터인데.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인데,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 뒤 자신의 차로 직속 부관을 우리 집에 보내 쪽지를 전달했다. “상묵아! 혁명은 성공했다. 내게 와서 도와다오. 함께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인에게 반역은 없다. 당장 민정이양하고 물러나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매정하게 거절당하자 실망과 분노가 컸으리라고 추측한다. 그 뒤로 두 분의 인연이 끊겼다. 그 덕에 아버지는 84년 돌아가실 때까지 변변한 직업이 없었다. 어머니는 경성사범을 졸업한 엘리트인데도 생계 문제로 다방도 하고 안 해 본 게 없었다. 전셋집을 전전했고 대학 때 등록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서너개씩 했다. 그 점이 나하고 김무성 대표하고의 결정적 차이지. 하하.”
이야기 도중 중국집 주인이 들어와 벽에 걸어 놓게 사인을 하나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신 의원은 “저를 아세요. 전 이미 잊혀진 정치인인데.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내민 종이에 글귀를 적어주었다. 하긴 53살의 젊은 나이에 여당 당대표까지 올랐다가 부친의 친일 행적 때문에 조명에서 비켜난 지 10년이 넘었다. 아버지를 원망도 할 법하건만 그는 오히려 “오히려 못난 아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아버지를 욕되게 한 건 아닌지 죄송하다”고 한다. 신 의원은 요즘 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버지 이야기가 무르익어갈수록 술병도 자꾸만 비어갔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