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8일 일요일

사회주의 조선의 여성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8/19 [01:18]
 
▲     © 프레스아리랑


조선을 방문하고 온 많은 사람들은 조선의 여성에 대해서 극찬을 한다. 

자본의 때가 묻지 않고 순수한 인간애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물질과 소유를 중심으로 살지 않고 조국과 혁명과업, 주체정신 이러한 존귀한 가치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것에 감탄한다.

조선을 자주 방문하면서 나는 항상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조선에서의 여성의식은 무엇을 
말할까? 조선에서는 여성문제가 무엇일까? 여성으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있을까?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 들이다.

나의 이러한 질문이 철저하게 서구자본개인주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경험한 일이 있었다.

15년 전 내가 인솔한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들>이라는 소위 진보적이며 진취적이고 여성의식이 
뚜렸한 미주여성단체가 조선을 방문했을 때이다. 우리들은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여성단체인 여맹(여성연맹)을 방문했다. 그때 여성부위원장과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10명의 여성일군들과 마주 앉았다. 이때 서구식 양장을 한 우리들이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단연히 여성에 관한 문제였다.
우리는 너무도 기대에 차서 "이곳에서 여성문제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었다.

우리들의 
질문에 여맹간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무슨 여성문제를 말하는가? 그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곧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이 우리들의 의식을 깨고 머리를 띵하게 쳤다.

“우리들은 여성문제가 없습니다”

그 대답은 단호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잘못들었는가 
생각했다. 여성문제가 없다니? 어떻게 여성문제가 없다고 대답할까? 사람이 사는 세상에 여성문제가 없다니? 오히려 우리들도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이어 참으로 명쾌하고 당당하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우리들나라는 해방 후 1946년 김일성 주석이 새로운 공화국을 건립할 당시부터 <남녀평등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대의원 수의 배정 등 많은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하여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항상 역사의 두 바퀴 중 한쪽의 바퀴는 여성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입니다.”

정말 우문현답이었다. 사회주의사회 속에서 주체사상으로 무장되고 혁명정신이 투철한 이나라의 여성들에게 우리들이 생각했던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여성문제들, 남녀차별문제, 고용문제, 임금차별문제, 임산출산후의 부당한 대우문제, 여성의 상품화 등, 무수한 문제들이 이곳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의 던지는 어리석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문제가 제도적으로 보완되어 있어서 여성이 당당하게 사회의 혁명일꾼으로 일하고 있음을 말했다.
▲     ©프레스아리랑
 

우리들은 또 한가지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이곳에서 애창하는 노래 중에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가 있는데, 왜 여성을 꽃이라고 비유합니까? 왜 여성이 꽃이어야 합니까? 왜 나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누구를 위한 꽃입니까? 그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합니까?

그런데 역시 들려온 대답은 오히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
여성이 꽃이다라는 말은 참 좋습니다. 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들의 이분들의 대답을 통해서 <꽃>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게 되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
여성은 꽃>이라는 의미는 여성이 남성을 위한 꽃이라는 뜻으로 쉽게 해석된다. 그런데 이들의 대답을 들은 후 인간으로서 여성이 꽃처럼 곱고 아름다움을 창출한다는 의미에서의 <꽃>이라는 말이 왜 이상한지 다시 한번 되돌려 생각해보았다. 이곳 조선에서는 오염되지 않은 언어의 원래의 의미가 그대로 살아있구나 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언어는 이렇게 원래의 의미를 잃고 자본의 냄새, 타락의 냄새를 풍기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들의 이런 잘못된 관점에서의 질문을 금강산을 안내하는 여성해설가에게도 했다.. “여성이
결혼상대로 남성을 고를 때 결혼조건으로서 경제력을 얼마나 봅니까? “ 우리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 아리따운 젊은 여성해설가는 우리의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서 이렇게 대답했다. “돈이 왜 결혼의 조건이 됩니까? “ 이 여성해설가는 이상하다는 듯이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어서 “남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과 아내와 가정을 귀히 여기고 국가에 대한 헌신하는 사람이 결혼조건으로 최고이지요?”

그때 우리들이 얼마나 타락한 가치를 표현했는가 하고 부끄러웠다. 

우리가 던졌던 질문은 당연히 우리가 사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 질문들은 문화와 가치가 전혀 다른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이해되지 않고 생뚱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는 것에 놀랐다. 즉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철저하게 물든 사회에서 교육받으며 자란 우리들이 던지는 당연한 질문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 조선에서 주체사상과 혁명정신으로 무장된 여성들에게는 참으로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우리가 하는 판단의 척도가 다른 사회에서는 그 기준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다.
▲     © 프레스아리랑

조선의 여성들을 표현할 때 가장 적합한 단어는 <참 곱다> <아리땁다>라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내면에 품고 있는 순수한 마음, 인간에 대한 신심, 떄묻지않은 정서, 고귀한 정신적인 가치, 등 이러한 것이 아름다움으로 자연스럽게 표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곱다>라는 말은 여성의 자태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 고움 속에 감추어져 있는 강인한 힘, 당당하고 힘찬 신심과 혁명열정, 조국사랑 , 모든 사람들이 동지라고 믿는 신심, 그것에 대한 희생이 승화되어 품어내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래서 이 고운 여성들은 
당당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있다. 이래서 처녀들은 스스럼없이 상이군인에게 시집하고, 건설현장으로 달려가고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도 한다. 조선의 여성들은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모두다 혁명열사이다.

우리들 자본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의식이 뚜렸할 수록 더욱 이기적으로 되기 쉽다. <왜 내가 희생을 하는가?> <나의 권리는 무엇인가?> 등등 자의식이 가득차서 자기중심적 삶을 사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나는 조선의 여성들에게서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본다. 이들은 은은하고 고요한 고운 자태 속에서 당당하고 힘찬 민족의 소리를 내며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고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여 남녀차별을 하는게 아니라 서로 동지로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나눈다. 그러므로 이 고움 속에서는 모든 것이 수용되고 용해되며 승화되어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곱지만 단단함이다. 이 조선의 여성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 단호함과 명확함에 놀란다.
신념에 의해서 양육되고 교육되어져 온 열매이다. 누구나 통일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다. 그리고 이상을 품고 그것을 위해서 산다. 누구나 주체적이고 혁명적이다.

내가 경험한 조선의 여성은 이러하다고 결론내리고 싶다.

1. 누구나 혁명전사이다. 그래서 민족에 대한 신념이 뚜렸하고 자기 의사와 주장이 분명하다. 누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의 삶을 바치고 혁명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끝없이 자기를 연마하고 그 뜻을 생활에서 실천하면서 산다.

2. 인간으로서의 풍부한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참인간으로서의 “인간애”를 실현한다. 사람을 
살려내는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있다.

3.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과 참여의식이 분명하다. 그리고 독립적이고 강인하다.

4. 아름다운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으며 때 묻지 않은 정서가 물씬하게 풍긴다. 누구나 가무를 즐기며, 
악기를 다루고 예술을 즐긴다. 이들은 풍부한 인간성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한다.

6. 물질에 때 묻지 않은 투철한 혁명정신, 주체의 정신을 생활화한다.

7. 북의 모든 여성들은 훈련된 혁명전사이며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동지들이다.

이렇게 조선의 여성들은 역사의 한 바퀴로서, 혁명의 길에 함께 나서서 민족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에 당당하게 그 몫을 감당한다.

나는 조선의 여성들은 원래적인 여성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 나는 조선의 여성들을 통해서 참 여성의 모습을 본다. 참으로 고우면서 투철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움 속에 민족의식, 혁명의식, 역사의식, 통일의식이 분명하게 자리 잡아서 참인간으로서의 여성의 상을 표출하고 있다. 가장 여성적인 것은 바로 가장 인간적임을 조선의 여성들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돈)의 때가 묻지 않고 고운 인간본래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투철한 혁명정신으로 무장하고 매일매일 새롭게 주체적으로 태어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우리들 자본개인주의가 만들어낸 여성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점이다.

조명지(재미동포)

서울 한복판에서 굶어죽은 탈북 엄마와 아들

<기고> 이흥노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이흥노  |  roskey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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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7  11: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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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노 / 재미동포,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민족의 경사인 해방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탈북 어머니 (42)와 아들 (6)이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타살 흔적이 없는 정황으로 봐서 굶어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게 사실로 믿어지는 이유로 냉장고에 고추가루 외에 아무것도 음식물이 없었다는 점과 은행통장에는 석달전에  잔액 3858원이 인출돼서 잔고 0원 소인이 찍혀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수도요금 미납으로 수도가 끊어졌고, 9만원 월세도 몇 달째 밀렸다고 한다.
은행에서 마지막 돈을 찾은 게 석달됐으니 죽은지 몇 달 됐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족과 이혼한 이 젊은 어머니는 병든 아들을 수발하느라 변변한 직장을 가질 수 조차 없었고 수입이라곤 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 돈으로 두 모자가 겨우 연명만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작년 4월에도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 사는 40대 엄마와 딸의 시신이 몇 달째 방치돼 있었다. 이들 두 모녀도 양육비1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편지통에는 고지서와 독촉장만 잔뜩 쌓여 있었고 넉 달이나 수도 사용량이 전혀 없었다.
 2014년에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으로 온 나라가 슴픔에 잠긴 바 있다. 저승의 길로 떠나면서도 밀린 방세를 주인에게 남기고 떠난 어머니라 더 가슴이 미어진다. 2015년, 대구에서는 지적 장애 30대 언니를 돌보던 동생이 함께 자살을 하고 말았다. 기약없이 한평생 장애언니를 보살펴야 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극단적 선택을 같이 한 것이라고 한다. 당국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닌데도 매년 자살이 줄어들기는커녕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국은 하루 평균 자살 40~50명으로 세계 자살률 1위를 차지한지 오래다. ‘자살천국’이라는 오명을 달게 됐고 ‘자살이 유행’이라는 새로운 단어 까지 유행되고 있다. 자살의 동기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생활고가 원인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일반인들에 비해 탈북자들의 자살률이 높을 뿐 아니라 각종 범죄, 마약, 심지어 매춘행위에 연루되는 경향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탈북자들이 겪는 공통된 애로는 낯선 환경 적응과 동시에 사회의 싸늘하고 냉소적인 시선이라고 한다.
탈북자면 누구나 겪어야 되는 첫 단계가 받은 정착금에서 탈북 부로커가 ‘탈북경비’라는 명목으로 떼어가는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목격하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제2인생 정착을 하는 데에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탈북자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은 차별,무시, 멸시, 차별로 나타나 끝내 탈북자들이 절망하고 탈선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이건 굳이 탈북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북녘에서는 자살이나 창녀라는 말 자체도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탈북자가 자살을 하거나 매춘부가 된다는 건 너무도 끔찍한 비극 중 비극이다. 무엇 보다 탈북여성들이 몸을 파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수입이 일반적으로 낮은 탓에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한다. 특히 박근혜 정권하에 탈북여성들의 매춘행위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더욱 가슴 아픈 건 탈북 창녀들의 단골 손님이 주로 외국인 출신 노동자라는 거다. 박근혜는 한 기념사 (2016)에서 북주민들에게 “희망과 자유가 보장된 자유 대한의 품으로 어서 오라!”라고  연설했다. 결국 창녀가 될 자유를 찾아 ‘자유의 땅’으로 오라는 꼴이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탈북자들은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에 단골로 일당을 받고 동원돼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왔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을 비롯 몇 개 반북단체는 한미일 반북우익단체의 지원을 받아 반북 운동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탈북출신인 태영호 전 주영공사는 이번 모자의 아사에 대해 “북 당국과 김씨 일가에 책임이 있다”며 이 사건을 대내선전에 써먹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태씨가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어렵사리 살아가는 탈북자들에게 동정을 표하고 그간 무관심했다는 걸 먼저 사죄해야 옳다.
한편, 탈북자들 중에서도 개인 혹은 단체로 촛불혁명에 가담하고 촛불정권 창출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한반도민주청년연합’과 ‘남북청년나눔운동’ 등 여러 탈북단체도 있다. 이들은 끊어진 혈맥을 잇자며 남북 화해협력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동시에 그 인권이 침해돼선 안된다. 불문율이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죽은 사람 시체를 몇 달째 아무도 몰랐다니, 이게 사람사는 세상이 맞느냐고 물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짐승이 죽어도 몇 달씩 방치되진 않을 것이다. 죽어서도 죽은자의 인권이 철저하게 유린되고 있다. 자살자 대부분이 다세대 아파트에 산다. 옆집이 있고, 이웃도 있고, 동네도 있다. 버젓이 사회와 국가도 있다. 죽은 사람도 어였한 사회의 일원이다. 생활고로 신음하는 걸 몰랐다, 또 멀쩡한 사람이 죽어도 몰랐다는 건 변명이다. 정상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황금만능 개인주의, 인정머리 없는 사회의 민낯이다. 더불어 함께 웃고 우는 사회, 서로 나누어 갖는 포근하고 따뜻한 사회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