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8일 일요일

[단독] 외교부·서울대, 미국 NSA 도·감청 프로그램에 해킹

등록 :2015-11-09 00:54수정 :2015-11-09 01:26
[탐사기획] 스노든 폭로 2년 ‘인터넷 감시사회’
① 침략-NSA에 당한 한국
2013년 뉴질랜드 정보기관서
WTO사무총장 한국후보 감시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
‘파이브 아이스’ 연합체 형성 활동
<한겨레>는 두가지 이유로 미국 국가안보국(NSA) 전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를 검토하기로 했다. 첫째, 2013년 당시 스노든 폭로로 드러난 한국과 관련된 내용들이 거의 다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한국이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5개국 정보기관 연합체인 ‘파이브아이스’에 도감청당한 의혹이 담긴 문건은 국익과 직결된 사건인데도 한국 정부와 정보기관은 적극적으로 실체를 규명하거나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과 국가안보국의 관계의 실체도 규명할 가치가 있다고 봤다. 둘째, 올해 초 국가정보원이 불법성 논란이 있는 외국 인터넷 도감청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감시는 정보기관의 오래된 속성이지만, 인터넷 기술 발달이 과거와 전혀 다른 ‘무차별 감시의 시대’를 열었다는 여러 보안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다. 탐사취재의 방향과 주안점에 관해 보안전문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 관료, 외교안보 전문가 등 12명의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받았다. 스노든 문건에는 도청을 의미하는 ‘와이어태핑’ 대신 주로 ‘컴퓨터 네트워크 익스플로이테이션’(CNE: Computer Network Exploitation)이라는 용어가 쓰였다. 번역어가 마땅치 않아 편의상 ‘인터넷 도감청’으로 지칭하기로 했다. 스노든 문건을 제보받아 기사를 썼던 글렌 그린월드가 만든 독립매체 <인터셉트>가 공개한 280건(약 5000장 분량)의 국가안보국 문건을 전수조사했고 <슈피겔>, <뉴욕 타임스> 등에서 공개한 스노든 문건 40여건도 다시 검토했다. 미국·영국·뉴질랜드·캐나다 의회 정보위원회 보고서를 다 찾아 검토했다. 스노든 사건 이후 미국 행정부·의회·아이티기업 등이 모두 모여 구성한 ‘대통령 검토 그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 등도 입수해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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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만든 인터넷 도감청 프로그램에 의해 한국 교수 출신 외교관의 외교부 및 서울대학교 전자우편이 2013년 뉴질랜드 정보기관에 도감청당한 정황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 외교관이 인터넷 도감청을 당한 사실은 올 3월 뉴질랜드 언론 보도로 알려졌으나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뉴질랜드 정보기관 정부통신안보국(GCSB)이 2013년 1월말~4월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운동 기간에 자국 후보를 위해 미 국가안보국이 만든 인터넷 도감청 프로그램 ‘엑스키스코어’(XKEYSCORE)를 이용해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후보에 출마했던 박태호(63)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경쟁 후보 8명의 전자우편을 도감청한 정황이 올 3월 <뉴질랜드 헤럴드> 및 독립매체 <인터셉트>에 폭로됐다. ‘엑스키스코어’는 국가안보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무차별 인터넷 도감청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호주)·뉴질랜드 5개국 정보기관 연합체인 ‘파이브아이스’(FVEY) 요원 모두 프로그램 이용과 데이터 접속권을 가진다.
박 교수는 지난달 초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13년) 선거 운동 당시 외교부와 서울대학교 전자우편 두가지만 사용했다”며 “콘피덴셜하게 생각할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 동태를 살피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전자우편이 인터넷 도감청 대상이 된 사실과 관련해 “올봄 뉴질랜드 기자로부터 그런 일(전자우편 도감청)이 있었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기분은 나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도감청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도 아니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당시엔 스마트폰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을 거쳐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2011년~2013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일했다.
박 교수는 외교부 청사에서 데스크톱을 통해 전자우편을 작성해 각국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 전자우편을 발송했다. 서울대 전자우편은 아프리카, 중동 등에 있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메일을 작성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교수는 그해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견발표를 한차례 한 것을 빼고 사무총장 선거운동 기간 내내 한국에 머물렀다고 한다.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은 161개 회원국 대표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박 교수는 그해 4월 1차 투표를 통과했으나 같은 달 시행된 2차 투표에서 떨어졌다. 사무총장에는 뉴질랜드 후보 팀 그로서가 아닌 브라질 후보 호베르투 아제베두가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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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죄와 무관한데도 무차별 도감청 드러나
‘BARK’ ‘WTO’ 등 키워드로 박태호 교수 등 해킹
뉴질랜드 야당 “대상국에 모욕적” 정치쟁점화
박 “올 현지 기자로부터 전화 받고 처음 알아”
한국 외교부 “아는바 없다”며 공식대응 안해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후보 도감청 사건’은 두가지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첫째, 추정만 존재하던 엑스키스코어의 무차별 인터넷 도감청 성능이 실제로 드러난 사례다. 전 국가안보국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인터넷 도감청에 대한 기밀문건을 2013년 영국 언론 <가디언>을 통해 폭로했다. 엑스키스코어는 이때 처음 알려진 데이터 수집·정리·검색 프로그램으로, 국가안보국의 정보 능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스노든 문건을 종합하면, 국가안보국은 전세계의 해저 인터넷 광케이블, 인터넷 사이트 서버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인터넷 정보를 수집한다. 국가안보국 요원은 엑스키스코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감시 대상의 전자우편 주소만 알면 주고받는 이메일은 물론 웹페이지 사용기록 등 감시 대상의 인터넷 활동 기록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고 스노든 문건은 설명한다. 정부부처와 국립대학의 인터넷망이 도감청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충격을 준다.
스노든 문건을 보면, ‘×라는 나라의 모든 브이피엔(가상사설망) 벤처기업 리스트’를 엑스키스코어로 쉽게 검색할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직원 교육용 프레젠테이션 파일로 추정된다. 또 다른 파일에는 ‘나의 감시 대상은 독일어 구사자인데 파키스탄에 산다. 그를 찾아낼 수 있는가’라는 예시 과제가 제시된다. ‘엑스키스코어는 모든 언어의 인터넷 통신 정보를 추출하고 저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오직 엑스키스코어에서만 가능하다’는 답변이 이어진다.
<뉴질랜드 헤럴드>가 공개한 문건에 ‘2013_wto_project’(2013년 세계무역기구 계획)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엑스키스코어 검색 내용이 담겨 있다. 문서를 보면, 뉴질랜드 정부통신안보국은 엑스키스코어를 이용해 전세계 전자우편 내용을 대상으로 ‘WTO’(세계무역기구), ‘candidate’(후보) 등의 단어를 키워드검색 했다. 또 이 단어들을 뉴질랜드를 뺀 8개국 후보의 이름과 조합해 검색한 과정이 문건에 드러나 있다. 가령 박 교수의 영문 성 ‘BARK’, ‘KYEREMATEN’(키에레마텐), ‘MOHAMED’(모하메드), ‘GONZALEZ’(곤살레스), ‘BLANCO’(블랑코), ‘AZEVEDO’(아제베두), ‘PANGESTU’(팡에스투), ‘HINDAWI’(힌다위) 등의 이름이 모두 검색어에 올랐다. 다만 문건에는 뉴질랜드 정보기관이 정확히 후보들의 어떤 전자우편을 확보했는지 결과는 나와 있지 않다. 둘째, 박 전 후보를 비롯한 도감청 피해자들이 테러나 범죄와 무관한 이들이었다. ‘파이브아이스’가 일종의 정보 제국주의를 형성했다는 점이 드러난 사례다. ‘파이브아이스’의 정보공유는 기존의 스노든 문건으로 알려졌으나 생생한 사례로 드러난 것이다.
폭로 이후 한국과 뉴질랜드의 대응이 대조된다. 이 사건은 올해 초 현지 언론 보도 뒤 뉴질랜드에서 정치적 쟁점이 됐다.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3월23일에 불법 도감청 폭로 기사가 나온 점도 뉴질랜드 정부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환태평양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 도감청의 불법성 등을 두고 국회에서 여야가 논쟁했다.
올 4월1일 열린 뉴질랜드 하원 회의 속기록을 보면, 녹색당의 케네디 그레이엄 의원이 “환태평양의 이웃들에 대한 스파이 행위에 더해, 정부통신안보국은 팀 그로서의 경쟁 후보들을 도감청함으로써 일개 개별 각료에게까지 서비스를 확대했다. 도감청당한 후보들에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후보들이 들어 있다. 그런 행위는 그 나라 정부에 모욕적일 뿐 아니라, 불법 행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어떤 공식적인 대응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레이엄 의원 발언록을 보면, 뉴질랜드 총리는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을 위해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과 두차례 만났지만 “그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the matter has not been raised)고 의원들에게 말했다. 올 4월2일 뉴질랜드 의회 회의록을 보면, 야당 의원이 행정부에 이 사건을 추궁했다. 출석한 팀 그로서 통상부 장관이 “우리는 (전자우편 도감청과 관련해) 브라질 정부와 대사관 차원에서 논의를 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우리의 활동에 대해 어떤 우방국 정부에도 분명하게 설명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이런 제안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로부터 (해명) 제안을 받지 못했다(It was not taken up by the Korean government)”고 밝혔다. 박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정부에서 연락받은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불법 도감청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탓에 존 키 뉴질랜드 총리가 “한국은 자국의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후보를 우리가 도감청한 건에 대해 그다지 개의치 않을 것(wouldn’t give a monkey’s)”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뉴질랜드 의회 회의록에서 확인됐다.
전 국가안보국 직원 토머스 드레이크(58)는 지난달 12일 통화에서 “엑스키스코어가 전자우편을 마음대로 도감청할 능력이 있다고 보느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한국 후보를 상대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전자우편을 가로채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대화, 정보, 데이터베이스 등에 (국가안보국이) 접속할 수 있게 됐다”며 “이런 채널에 접근해서 정보를 손쉽게 절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989~2008년 국가안보국에서 일했다. 러시아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진 에드워드 스노든은 지난달 29일 자신을 소재로한 다큐멘터리 한국 시사회에서 “국가안보국 도감청 대상에 한국이 포함되냐”는 진행자 질문에 화상통화를 통해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뉴질랜드 정부의 정보보안 조사관(인스펙터제너럴) 셰릴 그윈은 <한겨레>가 “뉴질랜드 정부통신안보국이 확보한 박 교수의 이메일이 무엇인가”를 묻자, “이 사건에 대해 조사가 아직 진행중이며 지금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올해 말에 조사 결과가 나오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결과가 나오면 공개하겠다”고 전자우편으로 답했다. 외교부에 이 사건에 관한 정부 대응을 질의했으나 외교부는 “아는 바 없음”이라고 짧게 답했다. 서울대에 전자우편 인터넷망 현황, 해킹 가능성, 뉴질랜드로부터의 통보 등 이 사건에 대해 <한겨레>가 물었으나, 서울대는 “답할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스노든 문건 다운로드 ‘인터셉트’ 홈페이지, 스노든 문건을 단독 보도한 글렌 그린월드의 홈페이지 ‘글렌 그린월드 닷넷’
권오성 고나무 기자 sage5th@hani.co.kr

"친일인명사전 보급 반대? 친일파 후손 아니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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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 서울시내 중고교 보급을 이뤄낸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
ⓒ 서울시의회 제공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이제야 어려운 여건 속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분들과 독립지사분들께 면목이 서게 됐습니다."

8일 오후 기자와 통화한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은 밝은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최근 김 위원장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한 장의 답변서를 받았다. 자신이 지난해 예산심의과정에서 확보한 친일인명사전 배포 예산이 드디어 집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시교육청은 이 답변서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009년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한 질(전 3권)씩을 12월 중으로 서울의 중학교 333개교와 고교 218개교 등 551개교에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551개교는 이미 학교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보유한 학교와 자율형사립고 등을 제외한 숫자다. 친일인명사전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동조해 친일 행위를 벌인 4389명의 행적을 수록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2월 2015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가결하면서 올해 안으로 1억7천여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중·고교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구입·배포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시교육청이 일부 우익단체들의 반대와 조희연 교육감의 선거법 위반 소송으로 주춤한 탓에 늦어진 것이다.

"교육위원장으로서 이거 하나는 해내야 하지 않겠나"

김문수 위원장은 지난 8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정활동 중 가장 잘한 일로 중고등학교 친일인명사전 보급 예산을 책정한 일을 꼽았던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작년 10월인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학교보내기운동' 단체 소속이라며 서명운동 하고 있는 분을 봤는데, 2년간 겨우 30여 권 보급했다고 하더라"며 "순간 내가 시의회 교육위원장인데 이거 하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되새겼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시내 중고등학교를 전수 조사해봤더니 친일인명사전이 보급된 곳은 10%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김 위원장은 교육위 심의 과정에서도 혹시 모를 반발을 우려했으나, 3명의 새누리당 의원들도 전혀 이의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며 "하긴, 친일파 후손이 아니고서야 누가 반대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여름 악질 친일파를 응징하는 내용의 영화 <암살>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3번이나 봤다. 지난 광복절에는 8.15 70주년을 맞아 교육위 의원들과 함께 <암살>과 <친일인명사전>을 각각 추천영화와 추천도서로 선정하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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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지난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참가한 시민들이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기뻐하며 환호하고 있다.
ⓒ 유성호

"친일파 후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용서 구하는 것뿐"

김 위원장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친일파나 그 후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라며 "역사책을 바꾸는 것으로는 절대 부끄러운 역사를 감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대세력들이 발목을 잡지 않겠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시교육청이 조 교육감의 선거법 위반 소송 때문에 조심스러워 하는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조 교육감이 자신이 왜 교육감이 되려 했는지 생각해본다면 친일인명사전 보급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이 시점에서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머뭇거린다고 저들의 공격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학교는 몰라도 자사고를 제외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다음 주에 예정된 행정감사에서 꼭 따져봐야겠다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정부예산을 지원받아 추진되다가 지난 2003년 국회에서 예산 5억원이 전액 삭감되었으나, 이를 개탄하는 <오마이뉴스> 기사의 한 댓글에 자극을 받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7억여원이 모금돼 2009년 완성할 수 있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북에도 있다"… 북, 일본 규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북에도 있다"… 북, 일본 규탄
nk투데이 김혜민 기자 
기사입력: 2015/11/09 [00: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아베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박근혜대통령     © 자주시보
지난 11월 2일 박근혜 대통령과 일본의 아베신조 총리는 처음으로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정상은 한일관계의 최대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문제해결에 가속도를 내기로 협의했다고 한다.이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반응이 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TV 캡처.
연합뉴스TV 캡처.

북한은 국가 차원의 공식입장을 기본적으로 외무성을 통해 발표해왔다.
11월 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5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조선 반도의 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에도 있다", "일본은 조선 인민에게 저지른 모든 특대형 반인륜 범죄와 피해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전체 조선 민족이 납득할 수 있게 배상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TV 캡처.
연합뉴스TV 캡처.

또한 외무성 대변인은 “일본에 의해 조직적으로 감행된 성노예 범죄는 여성의 존엄과 정조, 육체를 깡그리 유린한 시효 불적용의 극악한 특대형 인권유린 범죄”라고 언급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즉, 북한이 북한에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책임 인정과 배상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사진. ⓒ news.ijntv.cn
일본군 위안부 사진. 임신을 당한 여성도 찍혀있다. ⓒ news.ijntv.cn

북한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는 지난 2004년 서울에서 열린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의 국제회의를 통해 한국에 알려진 바 있다.
당시 ‘조선 일본군위안부 및 강제련행(연행) 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 홍선옥 위원장 등을 비롯한 피해자 9명이 한국을 방문하였고, 리상옥 일본군 피해자와 그리고 징용으로 끌려갔던 황종수 피해자가 생생한 증언을 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의 조선 일본군위안부 및 강제연행 피해자문제 대책위원회 대변인도 6일 담화를 통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농락되는 흥정물이 아니다”, “가해자인 일본이 국가적,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라며 북한 외무성의 입장을 지지했다.

포토저널리스트인 일본인 이토 다카시는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임신한다고 자궁을 들어내고 일본군이 재미로 위안부의 배에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 출처 : 인터넷.
포토저널리스트인 일본인 이토 다카시는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임신한다고 자궁을 들어내고 일본군이 재미로 위안부의 배에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 출처 : 인터넷.

한편 일본의 입장은 어떠할까?
11월 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해결됐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노동신문 사설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최근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주변 나라들이 외교카드로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서술했다.
또한 10월 27일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유엔주재 일본 외교관도 유엔총회에서 일제가 저지른 특대형 반인륜적범죄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하라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도전해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는 이미 정리되였다”고 주장했다고 규탄했다.
노동신문은 이에 일본이 이런 입장을 취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11월 2일 노동신문은 "일본 반동들이 일제의 침략 역사를 미화 분식하는 밑바탕에는 그것을 되풀이하자는 범죄적 목적이 깔려있다"며 "일본이 역사적 교훈을 성실히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처럼 죄많은 과거를 미화 분식하면서 군국화, 재침의 길로 계속 나“갈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즉, 북한은 현재 일본이 위안부 문제 등을 은폐하고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이유가 군국주의 부활과 한반도 재침략을 위한 것이라고 바라본 것이다.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문재인 "새누리당, '육갑(六甲)'부터 손봐라!"


문재인發 민생 개혁 방안 제시, "전·월세 피크제 도입해야"
최하얀 기자 2015.11.08 16:40:39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8일 박근혜 정부의 노동·공공·금융·교육 분야 4대 구조 개혁의 '맞대응' 격인 주거·중소기업·갑을·노동 분야 4대 개혁을 제안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 이후 정부-여당이 '민생' 프레임으로 급격히 기수를 돌리는 것에 대한 맞대응이기도 하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경제 성장의 과실을 재벌·대기업이 독식하고 가계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면서 "정부가 내놓은 4대 개혁은 우선순위도 틀렸고 옳은 내용도 아니다. 제대로 된 민생 경제 대책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말 국민에게 절실하고 민생 경제를 살릴 진짜 4대 개혁은 주거 개혁, 중소기업 개혁, 갑을 개혁, 노동 개혁"이라며 각 분야에서의 개혁 방안과 그를 위한 입법 방향을 제시하고 새누리당에 협조를 요청했다.

첫 번째 과제로 제시된 '주거 개혁'을 문 대표는 △전·월세 피크제(상한제)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 △표준 임대료 도입 △공공 임대 아파트 확대와 같은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문 대표는 "전·월세 대란의 원인은 보편적 주거 복지를 약속했던 박근혜 정부의 공약 파기 때문"이라면서 박근혜 정부는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시키는 것이 대안이라며 '빚내서 집 사라'는 엉뚱한 대책을 내놓았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매매 활성화 정책은 가계 부채를 급속하게 악화시키는 한편 전·월세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면서 "전·월세 피크제로 서민의 주거 안정을 이뤄내는 것보다 더 절실한 민생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여당의 이른바 '노동 시장 구조 개혁'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임금 피크제'를 겨냥해 "피크제가 필요한 것은 임금이 아니라 전·월세 가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 대표는 이어 "새누리당이 민생을 말한다면 우리당이 발의해서 오랫동안 논의해온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 계약 갱신 청구권' 법안을 더 이상 발목 잡지 말고 이번 정기 국회에선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고, "지방자치단체별로 적정 임대료를 산정하는 '표준 임대료' 제도의 도입을 합의해야 한다"고도 요청했다.

그는 "또 월세 전환율을 기준 금리 더하기 3%로 억제하여 전세와 월세 간의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협력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체 재고 주택 대비 5.5%에 불과한 공공 임대 주택은 "평균 11%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고 문 대표는 주문했다. 그는 "이것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면서 "공공 임대 주택의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의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민생 말한다면 전·월세 피크제부터 도입해야"

문 대표는 이어 "성장도 일자리도 소득 증대도 이제 중소기업이다. 전체 기업의 99%인 중소기업이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중소기업 개혁과 갑을 개혁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중소기업에서 중견 기업으로, 중견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생의 산업 생태계와 '성장 사다리'가 무너졌다"면서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중소상인의 △업종 △골목상권 △해외직판 활로 △기술을 지키고 돕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이어 "현행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는 실효성에 한계가 많다"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특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추진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자고 새누리당에 요구했다.

또 상업 지역 내에는 1만 제곱미터를 초과하는 대규모 점포를 건축할 수 없도록 제도화하고,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해외직판지원센터를 설치해 중소기업 해외 직판을 종합적으로 지원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해외직판 중소기업에 대한 조세감면, 자금 및 인력 지원도 공약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제한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원-하청 거래에선 원가 구조와 기술에 대한 공개 요구를 원칙적으로 금하겠다"면서 "기술 유출에 따른 손해 배상액도 5배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하도급법에 따르면 기술 유용 적발 시 피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해야 한다.

문 대표는 또 "중소기업 간 협력을 지원하겠다"면서 "이탈리아의 네트워크계약법(Network Contract Law)처럼 중소기업들이 서로 협력해 국내외 시장을 함께 개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이 외에도 그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들의 집단교섭권 강화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성과공유제와 SK하이닉스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임금공유제 확산 및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적극 추진 △최저 임금 기준 변경과 연동한 하도급대금 조정 청구 법제화를 약속했다.

문 대표는 이날 대표적인 여섯 가지 갑질을 '육갑'이라고 부르며 이를 근절하겠다고도 밝혔다. 그가 제시한 '육갑'은 ①대리점업계의 밀어내기 판매 강요 행위 ②가맹점업계의 고가 인테리어 강요 행위 ③제조하도급에서 부당한 원가산정 요구와 남품단가 후려치기 ④건설하도급에서 추가공사비 미정산 행위 ⑤대형유통점 납품업체에 대한 부당반품 행위 ⑥기술설명회 등을 빙자한 기술편취와 탈취 행위 등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식 '노동 개혁'…노동시간 단축·사내유보금의 고용 투자

정부-여당이 이번 정기국회 중 '과제 완수'를 목놓아 외치고 있는 노동 시장 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도 새정치연합의 '맞 정책'이 제시됐다.

문 대표는 이날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의 본질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고용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노동 개악"이라면서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200만 원도 벌지 못하고 230만 명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 구조, 비정규직 노동자가 무려 627만 명에 달하고 임금 격차가 극심한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위한 정책으로 △노동 시간 단축과 이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차별 해소 △대기업 사내 유보금을 활용한 청년 일자리 창출 △고용보험법 개정을 통한 청년구직촉진수당 신설 등을 제시했다.

문 대표는 우선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한 것은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면서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 노동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면 최소 11만2000개, 여기에 운수업 같은 '노동시간특례업종'까지 확대하면 15만5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말을 포함하여 일주일에 52시간의 근로 원칙을 분명히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새누리당이 겉으로는 '노동 시간 단축'이라고 포장해 지난 9월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새누리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주 근로 시간을 최대 60시간까지로 열어두고 있다. 법정 근로 시간 40시간에 노사 합의 시 가능한 최대 연장 근로 시간 12시간에 더해, 이른바 '특별 근로' 8시간을 덧붙일 수 있게끔 해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휴일 근로는 연장 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일방적인 행정 해석으로 최대 주당 68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했던 상황을 정상화하려는 취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향의 개정안이다.

문 대표는 이어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도 시급한 과제"라면서 "인턴이나 임시직과 같은 나쁜 일자리가 아니라 정규직의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라 공공 기관은 정원의 3%를 청년으로 채용해야 하나 넷 중에 하나꼴로 지키지 않는 실정"이고 "학교 비정규직 등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전환 또한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처럼 "청년 일자리 확대와 고용 안정에 정부부터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을 뿐,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제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입안 되어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확산의 시발점이 된 '기간제법'에 대한 개정 방향 또한 이날 제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 대표는 대신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며 "사내 유보금을 청년 고용에 투자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인턴의 정규직 전환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청년채용할당제를 민간 대기업에도 확대 적용해, 300명 이상의 대기업인 경우에는 전체 고용자 가운데 3% 이상을 청년들로 채우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당이 내놓은 '사내유보금 과세법안'은 사내유보금을 청년일자리 만들기에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 대표는 최근 서울시와 성남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입한 '청년구직촉진수당'의 법제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고용보험법' 개정으로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신설하여 일정기간 취업준비생들의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취업에 소요되는 학원비나 교재비 등 취업 준비자금을 대학생 학자금 대출처럼 대출해주고 취업이 되면 상환하도록 하는 제도도 강구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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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권은 신뢰, 신뢰는 만남에서 시작”


 30년 대북 교류·지원, 에릭 와인가트너 “제 눈의 들보부터 보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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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8  17: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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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세계교회협의회 활동가 자격으로 첫번째 방북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년 이상 남북 기독교 인사 및 인도적 지원단체 관계자들과 교류하고 있는 에릭 와인가트너 씨를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캐나다인이면서 북측 당국으로부터 시민권을 획득한 최초의 비정부 기구 대표.
에릭 와인가트너 씨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수식어 중 하나이다.
와인가트너는 지난 1985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활동가 자격으로 남북 교회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한 첫 번째 방북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년 이상 남북 기독교 인사 및 인도적 지원 단체 관계자 등과 폭넓게 교류해 왔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개선 모두 신뢰에서 시작되며, 신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바에야 이를 위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신뢰 구축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하는 모든 정부의 정책은 정말 잘못된 것”이며, 만남의 계기를 이어갈 수 있는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사업, 사회문화교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한 그는 인권을 빌미로 다른 나라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아가 스스로 인권을 유린하면서 인권을 기준으로 다른 정부를 비판하고 몰아세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의 성서에는 네 눈의 들보를 먼저 보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경구가 있다.” 그가 생각하는 중요한 인권의 원칙이다.
이미 은퇴한 70대의 이 국제 NGO활동가는 지난 달 23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북측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의 만남을 주선한 뒤 바로 서울로 와서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열린 ‘2015대북지원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1985년 한국교회가 북측과 처음으로 접촉할 때 그 일에 대한 주선을 의뢰받고 처음으로 방북한 WCC의 외국인 활동가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남북 교회 대표단은 그의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이후 5년 동안 남북한 대표단이 모두 참여한 4개의 국제회의를 성사시키기도 했으며 지난달 말에도 그 일을 하고 왔다.
지난 1995년 북이 국제사회를 향해 처음으로 원조를 요청한 이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 6개월간 평양에서 근무하며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원조연락소(FALU; Food Aid Liaison Unit) 창립 대표로 일했다. 이때 그는 북이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절, 북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근 해소를 위해 활동한 외국인 벗이었다.
캐나다로 돌아간 후에는 북-캐나다 외교관계 수립에 기여하고 양국 관계를 다루는 뉴스레터 및 웹사이트인 ‘Cankor’의 편집장으로 일하다 2013년 은퇴했다.
‘2015 대북지원 국제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에서 그를 만나 최근 남북 관계 현황과 지원사업, 평화문제, 인권 개선 등 현안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김동진 박사(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의 통역으로 진행됐다.
  
지난 3일 개최된 '2015 대북지원 국제회의'는 5일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선언문' 발표로 폐막했다.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는 에릭 와인가트너 전 캔코리포트 편집장(오른쪽), 왼쪽은 카타리아 젤버거 전 SDC 북한사무소장. [사진제공-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 통일뉴스 : 쉬운 질문부터 드리겠다. 평양시 명예 시민권자로서 특전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 에릭 와인가트너 : 특별한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우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으로부터는 대우를 받는 편이다. 북측 당국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조그련은 30년 동안 만나왔기 때문에 만나면 서로 좋아한다. 사람들이 많이 바뀌어서 정부 인사들의 경우에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지금은 안 보이는 경우가 많다.
□ 강수린 조그련 위원장의 근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 강영섭 위원장이 사망(2012.1.) 후 아들이 물려받은 것이다. 지난해 두 번 만났다. 한번은 제네바에서 만났고 지난 주 평양에서 만났다. 그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이다. 원고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평양에서는 제네바에서와 달리 좀 더 공식적인 모습을 보였다. 주로 개·폐막식 행사에만 나타나고 뭔가 실제적인 일을 할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 강수린 위원장이 겸하고 있던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10월 중순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고 일각에서는 건강 악화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 굉장히 건강하고 전혀 문제없어 보였다.
  
▲ 이날 인터뷰는 김동진 박사(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오른쪽)의 통역으로 진행됐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1985년 처음으로 방북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 1984년 일본 도잔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주최한 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주제는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정의’였다. 그렇지만 포커스는 한반도 문제에 맞춰져 있었다. 남과 북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WCC의 목표였다.
도잔소 전에는 남측 교회가 북측과 연계하는 것을 굉장히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안법 등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는데, 1984년에 처음으로 한국교회가 WCC에 북한에 무언가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때 비록 북에서 일본 도잔소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한국 교회가 WCC에 처음으로 북측 기독교인들을 초청하는 문제를 의뢰했고 이 문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1985년에 파견된 WCC 실무자 2명 중 한 사람이 와인가트너였다. 그는 이때 북측과 협의를 통해 북측 기독교인들이 제네바로 와서 남측 교회 대표자들과 만나는 모임이 가능하겠는지를 협의하기 위해 방북을 했다.
실제 남북교회의 만남은 지난 1986년 9월 스위스 글리온에서 성사됐다.
대북 교류·지원 30년...상상할 수 없었던 기근, 함께 극복 보람
□ 30년 전이었다. 이때 평양의 첫 인상은 어쨌나?
■ 그때는 고려호텔이 없었다. 지금은 확충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단층 건물이었던 보통강호텔에 묵었다. 당시에 한국에는 와 봤었지만 북은 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공항은 굉장히 작았고 어린 소녀가 꽃을 갖다 주면서 우리 일행 두 명을 브이아이피(VIP)로 극진하게 대접해 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도로는 굉장히 넓은데 운행되는 차량은 없었고 심지어 자전거도 하나도 없었다. 왜 자전거가 없냐고 물었더니(베이징에서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들어왔으니까 베이징 거리에 자전거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봤는데 평양에는 한 대도 눈에 띄지 않아 신기해서 물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자전거가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거 복잡하고 싫다. 안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전거가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이미 주체탑도 있었다. 판문점에 가서 정전협정 체결 장소도 보여주었다. 조그련을 보러 간 것이었는데 그들은 일요일에 한번만 봤다. 가정교회가 있다고 했었는데 교회건물도 없을 때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조그련 사람들은 가정교회라는 데서 일요일에 몇 번 만나고 계속 당에서 나온 사람들과 구경 다니고 이야기 나누고 했다. 워낙에 북측 당국과 협의하러 갔던 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때 한편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북에도 종교적인 삶의 양태가 있었지만 굉장히 제한적이고 통제하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평양은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도 있었으며, 건물에 색칠도 잘 되어 있었다. 교통만 많지 않았을 뿐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였다. 평양뿐만 아니라 먼 외곽지역과 지방도시까지 함께 다녔고 농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도 다 봤는데 사람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영양상태도 좋아 보였고 옷도 잘 입고 다녔다.
그때는 10년 뒤에 정말 그런 기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고 나서 1987년에 한 번 더 갔었다. 87년에는 조그련과 더 많이 만났었다. 그 후 1997년부터 2년 반 동안 체류했다.
  
▲ 지난 3일 개최된 '2015 대북지원 국제회의' 모습. [사진제공-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 1985년 첫 방북 무렵 북측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별 문제는 없었나.
■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오히려 그들이 질문이 많았다. 남쪽 사정과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공식 미팅뿐만 아니라 술 마시고 할 때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북을 방문하기 전에 제네바에 나와 있는 대표부 사람들을 만나고 가긴했는데 그들은 WCC 뿐만 아니라 본인이 알고 있는 해외동포 중에서 친북 또는 친남 성향의 동포들에 대해 이름을 거명하면서 물어볼 정도였다. 그 사람들이 질문은 많이 했지만 사실은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우리가 오히려 놀랬었다.
□ 첫 방북 때와 1990년대 중반 WFP-FALU 창립대표를 지냈을 때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 반 북한에 상주했다. 12년 전 첫 방북의 기억이 있던 나로서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가서 만났던 사람들이 많이 야위었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짐승들도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도 너무 남루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오래 입어서 제대로 빨지도 못했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12년 전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은 타일이 다 떨어지고 색도 다 바래고 페인트가 다 벗겨졌는데 보수를 엄두도 못내는 상황으로 보였다. 창문은 전부 깨져 있었는데 깨진 창문을 다른 유리로 복구할 수도 없어서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들로 대충 얼기설기 막아놓은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기도 했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단순히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에너지난으로 인해서 하루에 몇 시간밖에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기반시설이 전부 붕괴돼 있었다. 그저 단순히 식량이 필요한 상황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경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서 중첩된 상황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때 느낌으로는 결국 이건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 아니고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 몇 년 지나는 동안에 북한이 무역 파트너들을 다 잃고 석유를 싼 가격에 사오거나 지원받을 수 있는 소련 등 관계들이 끊어지면서 에너지난이 심화되고, 그 모든 것이 중첩되어서 이런 결과를 빚어냈다고 생각했다.
그전에 방북했을 때에는 평양에 돌아다니던 전차가 잘 정돈돼 있었다. 1997년 평양에서 본 전차는 전력을 공급받는 전차 위의 전선이 너무 자주 끊어지고 지나치게 노화되어서 한 블록 지나면 보수인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 당시 체류하던 구역은 어디었나?
■ 대사관들이 밀집돼 있던 문수동 외교구역이었다. 대사관 근무자들을 위한 아파트가 있었는데 거기에 살고 있었다.
  
▲ 에릭 와인가트너는 정확한 기억력과 따뜻한 애정,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지난 30년간 해 왔던 대북 지원 사업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북이 가장 어려웠던 2년6개월을 평양에 체류하면서 직접 목격했는데, 위기가 극복되는 추이나 동향까지 보았나.
■ (웃음)나는 정말 최고의 직업을 가졌다. 세계식량기구(WFP) 본사 직원보다 훨씬 좋았다. 그들에게는 식량원조사업만 있었지만 내가 일했던 FALU는 WFP를 지원하는 NGO를 조정하는 사무국 기능을 했다. NGO들이 다양한 사업을 원했기 때문에 WFP의 사업장이 없는 지역에도 우리는 다양한 사업장을 두고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북동부지역의 식량부족이 심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나는 바로 북측 당국에 이야기해서 따로 갈 수 있었고 상황이 어떻게 개선되는지 모니터링도 즉시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북의 전역을 다 돌아다니면서 상황이 어떻게 나아지고 있는지 볼 수 있었던 특별한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NGO, 지원 활동 외 북에 대한 이해 높여야
□ 당시 북 당국의 제약은 없었나.
■ 당시에도 지금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북측 당국에 24시간 전에 통보하면 해당 지역을 방문할 수 있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초반이어서 그랬는지 북도 대응하는 매뉴얼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엔 사실 굉장히 편했다. 어디를 가자고 하면 다 협조해 주었고 가만히 있어도 북측에서 오늘은 어디를 보고 싶으냐고 물어보고 제안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제가 심해진 측면이 있다.
그는 자신이 이미 12년 전에 방북 경험이 있었고 북측 관계자들과도 면식이 있으며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원이 많지 않던 초기 NGO활동가였기 때문에 북측도 통역이나 이동 수단 등에서 큰 불편 없이 지원해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도적 지원단체가 늘어나면서 북측이 나중에는 대학생들까지 동원해서 통역지원에 나서는 등 애를 썼지만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엔 1~2일이면 해결되던 일들도 나중엔 일주일씩 걸리기도 했으며, 이 같은 상황은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북측 당국의 의도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기보다는 지원 기구 활동가들이 한반도와 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북측 당국과 부딪히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앞으로 국제기구 등에서 지원 능력은 물론 지역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고 지원 대상인 북 당국과의 신뢰 부족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조언했다.
  
▲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북이 기근을 극복하는 과정을 함께 했던 에릭 와인가트너씨.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북에 체류하면서 겪었던 지원활동에 대해 더 설명해 달라.
■ 중앙당 간부와 지역 당 간부, 농장 관리원 등이 어떤 태도나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지원활동에도 많은 영향이 있었다.
도 당 비서나 협동농장의 관리원이 여성인 경우에는 특별히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지원기구 관계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었던 반면, 어떤 경우에는 우리를 속이고 지원물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구역 내 창고에 저장해 두었던 물품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을 요청하자 똑같은 사람을 여러 집의 주인으로 등장시킨 경우도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지난 일이긴 했지만 이런 일이 평양의 고위 간부들이 지시해서 벌어진 일이라기보다는 지역 관리원이 자기 권한으로 한 짓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경우, 지원 기구에서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러 갔는데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할 북측 사람들 중에는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하는 일도 있었다. 부모가 지원 기구 사람들에게 배고프고 힘든 자식을 보여주는 것을 꺼리는 것은 부끄러워서 감추는 것으로 이해하게 됐다.
“이렇게 하면 도와줄 수 없다”고 했더니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격리해 놓은 시설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 충격적인 상황을 보고 난 후에는 많이 조심스러워졌다고 고백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은 점차 줄어들었으며, 그 이후에 계속 방북하면서 본 북의 상황이 나아졌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 북이 겪고 있는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했는데 반드시 개선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나?
■ 1995년 북한은 유엔에 처음으로 원조를 호소했다. 한 달 사이에 엄청난 규모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WFP의 경우에는 7명의 직원이 1년 사이에 50명으로 늘어났다. 내가 하던 사업팀만 해도 500만 달러 규모의 사업을 진행했다.
전체 경제 구조를 바꾼다던지, 남북의 정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적어도 극심한 기근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고 실제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통해서 북한이 적어도 기근의 상황에서는 벗어나는데 분명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 당시 북측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모습과 적극적인 해결 노력에 대해 모두 이야기 해주었다. 전반적인 모습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 정말 적극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모두가 고통 받았던 시절이었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당 고위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우리와 함께 일하던 통역사는 항생제가 공급되지 않아 고통 받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항생제를 챙겨주겠다는 우리의 제안에 대해 “아니다. 그 항생제는 너희들의 계획대로 전체적인 해결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받지 않았다.
처음에 WFP는 평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기근을 먼저 지원하는 정책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평양은 아무래도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WFP는 절대로 평양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많은 보육원·애육원을 돌아다니며 확인한 결과 평양이라고 해서 기근상황이 다르지 않고 엄청난 규모의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다음부터 평양에 대한 지원도 시작됐다.
물론 최고위층은 그래도 잘 살았을 것이라고 본다. 가끔 만찬에 초대받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음식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정말 소수였다.
 □ 당시 김영삼 정부는 북측의 원조요청에 대해 호응하지 않았다. 어떻게 느꼈나.
■ 마음이 아팠던 건 전 세계가 북한을 돕고 있었는데 동족이 외면하는 상황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남측 정부에 WFP를 통해서라도 지원해 달라고 요청을 했더니 ‘WFP는 모니터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느 날 지원을 한다고 하면서 조금 지원을 하고는 정부지원이라며 모니터링은 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남북 사이에 신뢰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이 최근까지도 달라진 것 같지 않다고 하면서 “남측에서 뭐라도 들여보내는 경우에는 내용물에 한국에서 보낸 것이라고 엄청나게 붙여놓고 북측은 북측대로 그걸 뜯어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한편 재미있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남북 신뢰 없어...그럴수록 인도지원·개발협력 중요
□ 남북 사이에 신뢰가 없다는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 과거 김대중 정부 초기 햇볕정책이 발표되었을 때 전 세계가 흥분했다는 느낌이 있다. 그 후로 남북관계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9년 내가 북한에서 나올 때 김대중 정부의 요청에 의해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북과 수교를 하려고 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북 외무상 부상이 귀국하는 나에게 부탁한 바가 있어 캐나다 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재방북, 2001년 2월 북-캐나다 수교로 이어지게 됐다.
내가 느끼기에, 북은 언제나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바뀌는 것은 남측과 미국의 정책이다.
북측 인사들은 “아니 미국과 한국은 항상 선거에서 정부가 바뀌어서 정책이 자주 바뀌는데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신뢰가 없으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 아니냐. 뭘 믿고 오랜 기간 협력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 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북의 전쟁 세대, 전후 세대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억제력은 핵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부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돈이면 왜 가난한 사람들 먹이지 않느냐’며 북을 공박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내 생각에는 재래식 무기라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비싼 첨단 무기이다. 그런 무기를 살 돈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안 되는 북의 입장에서 안보에 있어서 핵무기를 하나 가지는 것이 가장 싸게 먹힐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국제사회는 이 같은 북의 입장을 용납할 수 없고 이에 따라 북의 핵개발 이후 미국, 한국과 북한의 신뢰관계는 깨져 버렸고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 그는 "네 눈의 들보를 먼저 보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성서 구절을 중요한 인권의 원칙으로 여기고 있다며, 인권을 빌미로 다른 나라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지난 1985년 첫 방북과 1997년부터 2년6개월 체류, 지난 주 방북을 거치며 느낀 북의 변화에 대해 비교한다면?
■ 3년 전 방북 이후 지난주에 처음 평양에 들어갔다. 많이 알겠지만 최근 북한은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지역에 새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미래과학자거리는 너무 아름다웠다. 교통체증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3년 전엔 일반 차량을 택시로 바꾸어 운행했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색상의 택시 전용차가 너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고 전에는 보지 못했는데 아파트에는 태양열 판넬이 정말 많이 부착돼 있었다.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보이는 모습만 보면 대북 경제제재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 한반도의 평화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 북한, 미국은 각각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제안해 달라.
■ 계속 해 왔던 이야기이다. 신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신뢰를 구축하자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야 한다. 신뢰는 상층부뿐만 아니라 밑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중간에서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사업, 사회문화교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정부에 다 말하고 싶다. 왜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하나. 그건 정말 잘못된 정책이다. 어떻게 해서든 만나게 해야 한다.
북에서 활동하는 미국 NGO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좀 힘든 상황이다. 내 경우에 이번 방북 때에도 보험을 들 수 없었다. 정부가 반대하는 여행을 보험회사에서는 계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는 북에서 활동하는 NGO와 학계 인사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계속 제약을 하고 있다. 이러면 만남을 주저하게 된다.
북은 국제사회가 자신들에게 고립정책을 펴고 있다고 하는데, 북이 그럴 수는 있지만 개방된 국제사회가 북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인권개선 중요, “제 눈의 들보부터 보라”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 꼭 한마디 하고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인권 개선을 위해 직업 경력의 절반 이상을 바쳤다고 자부하는 그는 북의 인권 옹호에 대해서도 100% 지원한다는 입장이지만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권 유린국에 대해 결의안을 만들고 비판하고 압박하는 등의 활동으로는 인권문제를 개선할 수 없으며, 정말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국민이 자신들의 인권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개선을 위해 그들 스스로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결국 배고플 때 식량을 지원하고, 물이 오염됐을 때 식수 개선과 위생사업을 통해서 그들이 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인권을 빌미로 다른 나라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며, “게다가 더 말이 안 되는 것은 스스로 인권을 유린하면서 인권을 기준으로 다른 정부를 비판하고 몰아세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기독교인들의 성서에는 네 눈의 들보를 먼저 보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경구가 있다. 중요한 인권의 원칙이다.” 에릭 와인가트너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