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7일 수요일

대국민 사과로 시작한 '주호영 비대위'… "화합과 단결"

 박덕흠 사무총장설 없던 일로…비대위-혁신위 투트랙 가동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2.08.18. 10:35:28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가 당내 갈등과 분열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로 첫 발을 뗐다.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비대위 첫 회의를 열며 "비대위 정식 출범에 앞서서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먼저 반성하고 사과드린다는 말씀을 올리면서 시작하고자 한다"며 "당에 갈등과 분열이 생긴 일, 갈등과 분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법정까지 가게 된 일, 민생을 잘 챙겨서 유능한 집권당이란 인식을 조기에 국민에게 주지 못하고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으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 새 정부를 제대로 견인해 조기에 안착시키고 신뢰 받게 하는데 소홀함이 있었던 점, 이런 점 모두 국민과 당원들께 사과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잘못했고 잘 하겠다는 취지로 인사드리고 (회의를) 시작했으면 한다"며 비대위원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비대위 운영 방향에 대해 주 위원장은 "민심의 창구인 당은 민심을 적극 수용해서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가 민심과 괴리되는 일이 있을 때는 빠른 시간 안에 고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혁신과 변화로 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화합과 단결로 다시는 국민들로부터 당 운영 문제로 걱정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원들에게 그는 "뭉쳐야 한다. 분열한 조직은 필패하게 돼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단합을 호소하지는 않는다"며 "당 전체가 흔들리고 무너지면 모든 게 잘 될 수 없다는 절박함, 집권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이 시대의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 대한 책임감, 이런 걸 갖고 조금씩 역지사지하고 양보하면 당의 단합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심기일전해 다시 새롭게 출발하자"고 당부했다. 



주 위원장은 전날 안철수 의원이 꺼내 든 당 혁신위원회 해체 주장에 대해 "내일 최재형 혁신위원장으로부터 활동 보고도 받도록 돼있지만 저는 비대위와 혁신위에 각각의 역할이 있고 활동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혁신안을 잘 내면 비대위가 논의해 채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혁신위가 활발히 활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주 위원장은 또 자신이 "비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김성원 의원의 발언을 두고 "장난기"라고 말한 데 대해 윤리위 회부가 검토 중이라는 데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면서도 "(장난기 발언은) 김 의원을 옹호하기 위한 게 아니고 평소에 장난기가 많아서 저러다 언제 한 번 큰 사고 치겠다는 걱정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비대위는 이날 주요 인선 작업을 마무리했다. 박덕흠 의원 내정설이 돌던 사무총장직은 김석기 의원에게 돌아갔다. 

'윤핵관' 정진석 의원과 사돈관계인 박 의원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으로는 부적절한 인사라는 여론이 높았다.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2015~2020년 본인의 가족회사가 국토부와 산하 공공기관으로부터 1000억 원대 공사를 수주해 이해충돌 논란을 일으킨 이력 때문이었다. 해당 논란이 일자 박 의원은 2020년 9월 탈당했지만 지난해 12월 슬그머니 복당했다. 

그밖에 비대위 수석대변인으로는 청와대 춘추관장·대변인을 지낸 박정하 의원이 임명됐다. 비대위 비서실장으로는 정희용 의원이 임명됐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북, 17일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 발사

 

  • 기자명 이광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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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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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8.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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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17일 새벽 평안남도 온천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은 감시 및 경계 강화하고 한미 공조아래 철저한 경계태세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비행거리나 고도를 비롯하여 미사일 제원에 대한 세부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들은 대량파괴무기(WMD)인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밀타격무기인 순항미사일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들이 금지하는 대상이 아니다.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안한 ‘대담한 구상’에 대한 북한의 답변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이 지난 1월 25일 발사한 장거리 순항미사일. [자료출처-노동신문]
    북한이 지난 1월 25일 발사한 장거리 순항미사일. [자료출처-노동신문]

    특히, 합동참모본부(합참)와 주한미군사령부가 전날(16일)부터 시작한 ‘위기관리연습’에 대한 북한의 대응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19일 끝나는 위기관리연습은 오는 22일 시작하는 ‘을지 자유의 방패’의 사전연습이다.    

    17일 오후 대통령실은 “오늘 새벽 북한이 평남 온천비행장 인근에서 순항미사일(추정)을 발사한 것과 관련 합참은 한미 연합자산을 통해 탐지했다”면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오전 9시 국가안보실 간부들과 안보상황점검회의를 개최하여, 합참으로부터 관련 상황을 보고 받고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했다”고 알렸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현재 한미 ‘을지 자유의 방패’ 연합 연습을 앞두고 위기관리연습이 시행 중임을 감안하여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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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통령 기자회견에 “국민 안도감 느꼈을 것”이라는 신문은?

     

  • 기자명 노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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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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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신문 솎아보기] 대통령 100일 기자회견에 부정적 평가 다수…노동 답변에 평가 엇갈려
    더불어민주당 부정부패 당직자 자격 관련 조항 개정 않기로, 조선일보 “이재명 방탄 우회로”

    저조한 국정지지율 속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중론이다. 17일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을 기념해 기자회견이 진행된 다음날 아침 중앙일간지로 꼽히는 신문 다수가 반성과 쇄신안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이날 9개 주요종합일간지 1면에 실린 윤 대통령 기자회견 관련 기사 제목들이다.

    윤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사설들은 “공허”(경향)했고, “국정 혼선 반성과 인사 쇄신 없는”(중앙)이었다는 지적으로 요약된다. 9개 신문별 사설 제목은 아래와 같다.

    경향신문: 성찰·쇄신 보이지 않아 공허했던 윤 대통령 100일 회견
    국민일보: 취임 100일 윤 대통령, 다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동아일보: “분골쇄신” 다짐한 尹 회견, 국정·인사 쇄신으로 내용 채워야
    서울신문: ‘국민 숨소리 안 놓치겠다’는 다짐, 허언 안 돼야
    세계일보: 尹대통령 “국민 뜻이 우선순위”…실천으로 보여주길
    조선일보: 국민 뜻 받들겠다는 다짐, 실천되는지 지켜볼 것
    중앙일보: 국정 혼선 반성과 인사 쇄신 없는 윤 대통령 100일 회견
    한겨레: 민심 경고 외면한 윤 대통령의 ‘불통’ 회견
    한국일보: 국정 쇄신 청사진 안 보인 尹 100일 회견

    윤 대통령 기자회견의 문제로 지적된 것 중 하나는 ‘현실인식’이다. 서울신문은 “그가 54분의 기자회견 중 20분을 국정과제 이행 사항을 일일이 언급하는 데 할애한 것이 뭘 뜻하겠나. 대통령실과 정부의 홍보·정무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국정 성과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의 방증 아닌가”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집권세력은 ‘무조건 반대’를 넘어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며 “참모 탓, 야당 탓 말고 대통령 스스로 변화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8월18일 주요 신문 1면 모음
    ▲8월18일 주요 신문 1면 모음

    두 번째는 인사쇄신. 윤 대통령이 ‘인사쇄신은 지지율 반등 등 정치적 목적으로 해선 안 된다’고 밝힌 가운데, 대통령실 홍보라인을 비롯한 일부 참모진 개편이 예견되지만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계일보는 “어물쩍 소폭 개편이나 미세 조정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적극적인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대통령실 일부 참모들만 보강하고 끝낸다면 또 다른 실망을 부를 것”이라며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오만한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대통령과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반면 조선일보의 경우 “국민은 윤 대통령의 이번 회견에 적잖은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취임 초반 미숙하고 때론 거칠게 비쳤던 모습에서 벗어나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이 진짜 변화를 느끼려면 그런 의지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말로만 끝나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국민 실망감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이 즉흥 추가발언한 ‘노동’, 엇갈린 평가

    중앙일보의 경우 윤 대통령 기자회견 발언 중 ‘노동개혁’ ‘대북 문제 대응’ 등 답변은 “평가할 만하다”고 봤다. 이 신문 사설을 인용하면 “노동 유연화와 임금 격차를 아우른 노동개혁이나 연금개혁 등을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추진하겠다고 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 갈등 대응을 강조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발표한 ‘담대한 구상’의 후속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지원 등 북한이 중시하는 안전 보장 관련 조치를 언급한 것도 적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양산할 수 있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구체적 문제 해결 방안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한겨레는 관련 기사(노동개혁 포장한 갈등 의제 ‘사회적 대화’ 한마디도 없어)에서 “고용노동부는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개혁 과제를 발굴하고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윤 대통령은 취임 뒤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사회적 대화’를 언급한 적이 없다”며 “윤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 사실상 사회적 대화는 중단된 셈”이라고 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양극화와 이중구조 문제의 합리적 대안을 노동계 없이 재계와 만들 모양”이라고 논평했다.

    ▲8월18일 한겨레 기사
    ▲8월18일 한겨레 기사

    한편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는 국정 지지율 관련한 여론조사가 난립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100일간 100건 지지율 조사’란 제목의 칼럼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따르면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간 공표한 대통령 지지율 조사가 무려 100건이었다. 박근혜 정부 초반 100일간 50건의 두 배나 되고 문재인 정부 때 66건보다도 크게 늘었다”며 “‘우후죽순 여론조사’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는 견해도 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와 관련 뉴스가 거의 매일 반복되자 여권 지지층이 기가 눌려서 입을 못 여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 ‘이재명 방탄’ 논란 당헌 절충안으로…조선 “면죄부”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17일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의 자격정지를 규정하는 당헌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위한 개정이라며 ‘이재명 방탄’ 꼬리표가 붙은 조항이다. 다만 기소 시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윤리심판원’에서 ‘당무위원회’로 바꿨다. 부정부패 관련 당직자의 자격정지 요건은 ‘기소’에서 ‘하급심에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경우’로 수정했다.

    이를 두고 여론을 의식한 당이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일보 기사(‘이재명 방탄’ 부담됐나…당직자 직무 정지 기준 ‘검찰 기소’ 유지)는 “당헌 개정을 둘러싸고 현재 다수 혐의로 검·경 수사 대상에 오른 유력 당권주자 이재명 의원을 지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거센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준위 안을 문제 삼아왔던 비이재명(비명)계에선 비대위 절충안을 긍정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수정안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진 비대위원들에게는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이 쇄도했다”는 분위기도 전했다.

    ▲8월18일 조선일보, 한국일보 기사
    ▲8월18일 조선일보, 한국일보 기사

    반면 조선일보(‘李 방탄’ 또 꼼수개정…기소돼도 지도부 뜻대로 면죄부)는 “당헌 조항을 이재명 의원에게 유리하게 노골적으로 바꾸진 않았지만, 우회로를 통해 ‘셀프 구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면서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꼼수 개정을 통해 ‘이재명 방탄’을 실현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수정안대로라면,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된 뒤 기소되더라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직무를 정지하지 않을 수 있다”며 “당무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관련 사안을 판단하게 되면 개별 의원들이 지도부의 눈치를 더욱 살피게 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정치 실종시대, 김대중에게 길을 묻다

     

    [다시, 김대중①- 정치 리더십] <김대중 평전> 저자가 쓴 'DJ의 눈으로 본 윤석열 정부 100일'

    22.08.18 05:25최종 업데이트 22.08.18 05:25
    2022년 8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입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남긴 김 전 대통령의 발자국은 명징합니다. 13주기를 맞아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책, 국정관리 능력을 재평가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정치 양극화 시대, 여야 정치권이 김대중의 유산에서 배울점을 찾자는 겁니다. <오마이뉴스>는 각 분야별로 다섯 차례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정책적 유산을 재조명하는 전문가 기고를 싣습니다. 그 첫 번째는 <새벽, 김대중 평전>저자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 2003년 2월 24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에서 사저로 출발하면서 환영 나온 인파들에게 차 안에서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생 동안, 특히 지난 5년 동안 저는 잠시도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퇴임사)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힘을 쏟고 동교동 집으로 돌아왔다. 긴장이 풀어지자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졌다. 결국 신장 투석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 번 투석으로 이틀 또는 사흘치의 생명을 얻었다. 그럼에도 극우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김대중은 빨갱이'라며 구호를 외쳤다. 그들의 고함이 담을 넘어왔다.

     김대중은 낙담했다. 자신을 음해하는 무리와 지상에서는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리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미래인들과 교감했다. 그들이 한반도를 경영할 때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찾을 것이라 믿었다. 김대중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역사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김대중의 시간'이 빨리 찾아왔다. 세상을 떠난 지 13년, 다시 김대중이다. 삶과 사상을 재평가하며 김대중의 리더십과 정책, 업적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아마 시국이 엄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는 없고 정치 해설만 난무하는 천박한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보수와 진보 모두 김대중에게 길을 묻고 있다.

    철저한 정치인, 김대중

    김대중은 철저한 정치인이었다. 정치와 정치인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이 나쁜 정치를 해도 그것들을 바로 잡는 일은 역시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정치인은 심산유곡에 피어난 한 떨기 백합화가 아니라 시궁창에서 피어난 연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은 국민이 내뱉은 울음과 한숨을 삼켜야 한다. 흙탕물에서 공동선을 피워 올려야 한다. 김대중은 자신의 말대로 현실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어떤 현안에도 나름의 답을 찾으려 했다.

    김대중은 대통령수칙을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사랑과 관용, 그러나 법과 질서를 엄수해야' '인사정책이 성공의 길, 아첨하는 자와 무능한 자를 배제' '현안 파악 충분히, 관련 정보 숙지해야' '국민의 애국심과 양심 믿어야, 이해 안 될 때 설명방식 재고' '국회와 야당의 비판 경청, 그러나 정부 짓밟는 것 용납 말아야' '청와대 이외의 일반시민과 접촉에 힘써야' 등이다. 이렇게 준비된 정치인은 일찍이 없었다.

    김대중은 늘 민심을 살폈다. 정권 말기에 권력형 비리가 터져 나오고 민심이 돌아서자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02년 새해 연두회견에서는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여섯 차례나 했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것을 정치인 김대중은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
     

    ▲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취임식장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너머 노태우,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인다(왼쪽부터). ⓒ 연합뉴스

     
    김대중의 용서와 화해는 피의 보복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바꾸었다. 대통령이 되어 약속대로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세상 끝까지 찾아다니며 죽이려 했던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로 바뀜)와 검찰에 대해서도 어떤 앙갚음을 하지 않았다. 다만 새 출발을 당부했다.
     
    "과거 불행했던 안기부 역사의 표본은 바로 나다. 납치, 사형선고 등 안기부의 용공 조작 때문에 별일을 다 당했다. 내가 당했던 일을 안기부가 다시 해서는 안 된다. 완전히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요 행정 수반으로서 받드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받들 필요는 없다."(1998년 안기부 업무보고)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 복권을 건의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반발이 거셌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는 더 이상 정치보복이나 지역적 대립은 없어야 한다는 염원이 담겨있었다. 박정희기념관도 건립토록 했다. 국민 다수의 정서를 감안하면 용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통령 김대중은 이를 허용했다. 자신의 최대 정적인 박정희와의 화해였다.

    통합과 소통 그리고 탕평 인사

    김대중은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민심을 세심하게 살펴서 국민보다 반걸음 이상 앞서가지 않았다. 국민들이 따라오지 못하면 기다렸다가 국민의 손을 잡았다. 이렇듯 국민들을 설득하며 국론을 한 데 모았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금 모으기' 같은 거국적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4대 부문(기업·금융·공공·노동) 개혁도 참으로 지난했다. 군살을 빼고 환부를 도려내는 일은 국민들의 의식까지 개혁해야 하는 난제였다. 그럼에도 대다수가 개혁에 동참했다. 이익집단의 불만은 있었지만 조직적인 저항은 없었다.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의 국민통합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집권 초기부터 동서화합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이른바 '동진정책'이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민원은 각별히 챙겼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냉소뿐이었다. 이를 두고 동진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평하지만 지역화합과 국민 통합의 노력에 어찌 끝이 있을 수 있는가. 당시에는 속 보이는 어설픈 정책이라고 폄훼했지만 어떻게든 반대 진영의 마음을 얻으려는 김대중의 노력은 재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정치적 이해를 따져 민심 갈라치기를 서슴치 않는 요즘 풍토에 김대중의 포용정책은 귀한 유산임이 분명하다.

    김대중은 지역차별을 극복하려 무진 애를 썼다. 특히 고른 인재 등용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지역이나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숨은 인재를 적극 발굴하면서도 탕평인사를 단행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1999년 9월 대통령 김대중은 대법원장과 감사원장 등을 새로 임명했다. 대법원장에는 최종영 전 대법관을, 감사원장에는 이종남 전 법무장관을 발탁했다. 그러자 대변인이 말했다.
     
    "총리는 충청, 대법원장은 강원, 국회의장은 대구, 감사원장은 경기 출신으로 3부 수장의 전국화가 이뤄졌습니다."

    듣고 있던 이희호 여사가 호남만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 김대중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대통령이 호남인데요, 뭐 어떻습니까."

    실언이 없었던 지도자, 역사에 남을 연설문
     

    ▲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앞 광장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대중은 일생동안 말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정제된 입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햇볕정책' '행동하는 양심'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 '철의 실크로드' '기회는 천사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등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대화를 할 때도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레토릭을 구사하지 않았다. 사안을 설명할 때도 쉬운 말로 논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또 상대의 말을 많이 들었다. 대화의 요체는 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데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미문과 감성적인 문구는 극도로 자제했다. 말의 유희나 문장의 기교에 빠지면 철학과 의지가 엷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메시지가 분명했다. 중요한 내용은 반복해서 전달했다.

    연설비서관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거의 살아남은 문장이 없을 정도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듬고 또 다듬었다. 역사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연설문을 작성했다. 대통령 취임사에는 향후 5년이 담겨있었다. 김대중은 취임사에서 천명한 구상들을 그대로 실천했다. 김대중이 연설문을 썼지만 결국 그 연설문이 김대중을 이끌었다.

    정책의 동력은 대의에서 나왔다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대의를 앞세웠다. 햇볕정책을 추진했을 때는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당위성을 내세웠고, 지식정보화 정책에는 눈앞에 지식정보화 혁명이 밀려오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렇게 대의를 내세워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국정을 운영했다. 국민의 정부는 역대 최약체였지만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을 끌어냈다. 한반도 주변 4대국과 선린의 외교망을 설치했다. 4대 부문을 개혁하여 경제체질을 바꾸었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 굶주림을 추방했다.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했고,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과 제주 4.3사건진상규명 특별법 등을 제정했다.

    2700만 명의 인터넷 인구를 지닌 IT강국을 건설했고, 그렇게 해서 전자정부를 완성했다. 또 거센 반대에도 4대 보험을 도입했다. 시위현장에서 최루탄과 폭력이 사라졌다. 취임 당시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1200억 달러를 넘었다. 과거 50년 동안 외국인 투자가 246억 달러에 그쳤지만 국민의 정부 5년 동안에는 무려 600억 달러의 자본을 유치했다. 온 국민의 열기를 뭉쳐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이뤘다. 그리고 가장 귀한 상, 노벨상을 받았다." (김택근, <새벽-김대중 평전>)

    그리고 정권을 재창출했다. 이는 정당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이다. 진보진영이 불안하거나 불온한 세력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고, 그렇게 해서 국민들로부터 다시 정권을 맡겨도 되겠다는 인증을 받은 것이다.

    DJ가 본 윤석열 정부 100일... "검찰을 보내고 정치를 맞아야"
     

    ▲ 2006년 12월 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대중도서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이종호

     
    김대중은 퇴인 후 어림 3년(2007~2009년, 밝혀진 것만) 동안 일기를 썼다. 건강하게 우리 곁을 지켰다면 여전히 일기를 썼을 것이다. 그의 사상을 살피고 어록을 뒤져서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의 가상 일기를 써보겠다. 그가 남긴 일기의 문체를 흉내 내며.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지만 추상적이다. 정책이란 것도 나열에 불과할 뿐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별로 없다. 자유란 용어가 자주 등장했는데 낯익어 오히려 낯설었다. 전체적으로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지 선명하지 않다. 좌표 설정을 제대로 안했으니 앞으로 헤맬 것 같다. 이런 불길한 상상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독차지했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윤 대통령의 인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은 事後(사후)를 책임지는 조직이다. 그래서 그들을 설계하고 예측하는 事前(사전)의 영역에 들이지 않는 게 좋다. 공정과 상식의 나라를 세우겠다면 검찰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정치검사들을 증오했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정치검사들이 나올 것 같다. 검찰의 미래를 보더라도 불행한 일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 또한 최소한의 지역 안배마저 무시해버렸다. 오직 능력만을 보고 발탁했다는데 이는 망언이다. 소외된 지역민들의 공분을 살 뿐이다.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정치권에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입에 담기에 거북한 말들이 유통되고 있다.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실언이 잦다. 대통령의 말에는 모든 사안의 '최후'가 들어있다. 출근길 회견도 그냥 날 것이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 말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있다. 특히 집권여당의 내홍이 극심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근길 회견에서 실토한 '대통령 처음 해 봐서'라는 발언을 많은 이들이 조롱했지만 나는 유심히 들었다. 그의 고뇌가 느껴졌다. 쌓인 현안들이 산을 짊어진 것처럼 무겁고, 생각할수록 두려울 것이다. 그는 초보 정치인이다. 하루속히 검증된 정치인을 곁에 두고 지혜를 빌려 쓰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검증된 정치인을 얻기 어려우면 노회한 정치인이라도 좋다. 당장 흔들리지 않는 지휘탑이 필요해 보인다."

    "집권 초기의 정책들이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대의를 내세워 미리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란 마음을 얻는 고도의 기술이다. 그리고 희망과 꿈을 심는 예술이다. 이렇듯 새 정권이 활력을 잃어가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들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여 한일관계를 풀어가겠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나의 외교노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당시의 한일관계를 떠올렸다. 대중문화 개방으로 생겨난 한류와 한류스타들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행복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다. 하지만 대북정책이 여전히 안개속이다. 취임사에서 '담대한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지원해주겠다며 여러 가지를 나열만 했을 뿐이다. 이런 당근책으로는 북을 설득할 수 없다.

    얼핏 참담하게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 떠오른다. 북한은 분명 거칠게 반응 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될까 우려스럽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다툼에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남북화해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는 작은 나라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중요한 나라이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면 평화의 바다에 고깃배의 노래가 떠다니지만 남과 북이 등을 돌리면 냉전의 바다에 강대국 군함이 물살을 가른다. 이는 근현대사에서 우리가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우리에게 외교는 명줄이다. 국내정치는 실수하더라도 고치면 되지만 외교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재임 중에 내가 왜 그렇게 4대강국과의 외교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늙고 병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탄식하며 적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택근은 오랜 기간 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경향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새벽, 김대중 평전>을 썼다.

    ‘칩4’에 대한 다른 진단, 같은 처방

     메모리 반도체 레버리지 삼아 속도 조절하는 역할 해야…중국 추격 대비한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강화 주문도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시찰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설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22.05.20. ⓒ뉴시스 

    이른바 ‘칩4’를 두고 미중 패권 경쟁 사이에서 한국의 균형 잡기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을 겨냥한 동맹인지, 기술 협의체인지 성격 규정부터 전문가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성에서는 입을 모은다. 칼자루를 쥔 건 한국이니, 최대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쪽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할 방침이다.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로 예정된 회의에서 칩4의 구체적인 협의 수준이나 의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칩4는 미국이 주도해 한국·일본·대만과 반도체 공급망 관련 조정그룹을 형성하려는 구상을 이른다. 모두 반도체 분야 주요 국가로, 이들이 합의를 이루면 반도체 공급망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실체는 모호하다. 정작 미국 언론조차 칩4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반도체(chip·semiconductor) 동맹(alliance)·협력(cooperation)을 언급하는 외신 보도가 있기는 하나, 반도체 주요국이 공급망 안정성 확보 방안을 협의하는 차원으로 설명된다. 동맹 수준에서 별도 의제를 논의하는 기구와는 거리가 있다.

    우세종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소위 ‘칩4 동맹’이라는 단어는 국내 언론에서만 사용한다”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짚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은 한국·일본·대만이 아니더라도 공급망 관리에 도움 되는 나라는 모두 협력하려고 한다”며 “논의 주체를 4개국으로 특정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칩4가 언급된 건 지난 3월이다. 미국이 한국에 칩4 결성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시발점이 됐다.

    이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을 전후로 반도체 동맹이 대두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첫 순방지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지속적으로 공급망을 더욱 회복력 있고, 신뢰성 있게, 안전하게 유지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동행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관계가 첨단기술과 공급망 협력에 기반한 경제 안보 동맹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양국 대통령의 공급망 협력 발언은 칩4가 중국 고립을 목적으로 하는 동맹을 의미한다는 해석에 힘을 실었다.

    정부는 줄곧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7월 칩4에 대해 “미국은 지난해 6월 공급망 검토보고서에서 반도체 분야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했다”며 “미국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외교부도 “미국이 가입을 제안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공급망 교란이 가져오는 여파가 커, 어떤 게 최선인지 다양하게 검토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고립 동맹인가,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가

    칩4가 갖는 외교적 의미를 놓고 해석이 엇갈린다.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이 있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속내라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배타적 반도체 장벽으로 그려진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반도체 수급에 차질 생긴 국가는 경제 전반에 타격을 입는다.

    중국이 한국 최대 수출국이라는 점은 고민이 깊어지게 한다. 칩4를 미중 패권 경쟁 연장선으로 본다면 중국에는 치명적이다. 2017년 사드 배치로 촉발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칩4에 대한 중국 반발은 당연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굴기 전략을 추진하는 중국은 한국과 대만에서 기술이전을 받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기술력이 없는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기술력을 가진 국가와 모여 달려 나가면서 자국의 기회가 줄어드는 형국으로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친미 성향이 짙은 행보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후보 시절부터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인도·호주가 참여하는 쿼드(Quad) 가입 추진을 주장하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가 중국에 대한 대립적인 언급을 공식화한 회의에 참여했다.

    칩4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로 이어진다고 보는 건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상적인 기술 협력 성격이라는 설명이다. 반도체 기술과 생산 능력을 가진 국가가 친미 성향이다 보니 공급망 관리 논의가 중국 배제로 오역된다는 시각이다.

    우세종 연구위원은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와 이미 수행하고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논의체와 다를 바 없는 모임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로 인한 국제적 공급망 불안정을 겪은 주요 반도체 제조국이 어떻게 협력하는 것이 미래 반도체 수급을 위해 효과적일지 얘기해보자는 것”이라며 “주요 의제도 연구개발 협력, 반도체 생산 관련 인재 양성, 공급망 안정 대책 논의 등이지, 특정 국가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는 협의체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칩4라는 틀에서 국가 단위로 동맹을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한일 관계도 있다”며 “협의체가 아닌 동맹 차원으로 수위가 높아지면 외교적인 문제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주요국 간 협의체 구성에 대해 수년전부터 대비해왔다”며 “수면 위로 떠 오르면 미중 사이에서 입장이 곤란해지니 구태여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번에 칩4가 대두되면서 정말 곤란하게 됐다”고 말했다.

    격양된 반응을 보이던 중국은 최근 입장에 변화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에서 칩4 예비회담에 참석한다고 통보했다. 박 장관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고, 왕 부장은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한국의 적절한 판단을 기대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회담 당일자 사설에서 “한국이 부득이 미국의 소그룹(칩4)에 가입해야 한다면, 균형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며 “이는 한국의 독특한 가치를 체현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간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가 칩4에 대해 ‘미국의 협박’, ‘한국의 상업적 자살’ 등 표현으로 비난한 것과 온도차가 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중국이 경제 보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 부장 발언이 톤다운되면서 우려가 해소되는 기류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2022.08.09. ⓒ외교부

    미중 패권 경쟁 틀 못 벗어나…느슨한 협의체로 끌고가야

    동맹이 아닌 협력이라는 성격, 중국의 미묘한 입장 변화를 감안해도 미중 관계의 틀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발전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경계한다. 세계반도체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시장은 2010년 570억달러(약 74조 2,700억원)에서 2020년 1,434억달러(약 186조 8,500억원)로 급성장했다. 2016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 12%를 기록하며 세계 평균을 두 배 웃돌았다. 중국 반도체 굴기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제조 2025’ 정책을 통해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에서 2025년 7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와 과학법(반도체 산업육성법)에 서명했다. 해당 법안에 따라 지원받은 기업은 중국 현지에 공장을 신설·증축하지 못한다. 미국은 다른 방식으로도 중국 수출 금지를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이 올해 상반기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ASML이 생산한 반도체 생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네덜란드 정부에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산업적 외교적 측면을 고려할 때 한국은 칩4를 느슨한 협의체 성격으로 이끌고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한동대 교수)은 “칩4가 민간 기업 단위의 협력체로 구성돼도 배후에는 미국 정부가 있는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기술이전 등을 통제할 경우 한국 정부도 뒤에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저항하고 속도 조절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도 “이분법적으로 보면 시장만 가진 중국보다는 시장과 기술·장비를 가진 미국을 등졌을 때 타격이 크다”면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 시장 비중이 큰 만큼, 한국은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을 추종하기보다는 최대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끌고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앞서서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보이거나 협력 강화를 주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칼자루는 한국이 쥐고 있다”며 “미국에 생산 공장을 지으라거나 중국 공장 신설·증축을 금지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과감하게 거절하는 한편,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력을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24일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반도체 비전 2030’ 전략을 발표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 5000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메모리 칼자루 무뎌질 때 대비해야

    한국이 쥔 칼자루는 메모리 반도체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끊으면 스마트폰·PC·가전 생산이 막히고 서버 증축도 멈춘다. 칩4에 한국이 포함된 이유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 우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다. 중국 추격이 매섭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올해 초 보고서에서 중국의 세계 반도체 점유율이 2020년 9%에서 2024년 17.4%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우세종 연구위원은 “중국이 반도체 생산을 시작한 이래,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매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특히 메모리 분야에서는 중국 기술 발전이 매우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국의 가격경쟁력에 밀려 시장을 내준 경험이 있다.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LCD 시장은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가 한국 기업은 철수했거나 철수가 진행 중이다. OLED 시장은 한국 기업이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중국과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이 단기간에 추격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견제가 작용할 거라는 분석이다.

    김형준 단장은 “미국이 반도체 장비와 전자설계자동화(EDA) 기술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자급자족으로 한국을 따라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레버리지가 쉬이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단은 다르지만, 처방은 같다.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위탁생산), 팹리스(설계) 분야 경쟁력을 강화해 종합반도체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한국이 칩4 논란 중심에서 향후 방향성에 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건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덕분”이라며 “중국에 따라잡히면 가치가 없어진다. 반도체 강국이 아니고 메모리 반도체에서 반짝했던 나라로 사라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협상에서 레버리지를 확보하려면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아우르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발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시장 선두는 대만 TSMC다. 점유율은 54%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16% 정도다. 10나노 이하 선단 공정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는데, TSMC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김형준 단장은 “관건은 파운드리다. 메모리보다 더 위험하다”며 “한국은 최신 전자 기기에 탑재되는 10나노 미만에서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보급형 제품에 들어가는 이른바 레거시(성숙) 공정은 중국이 앞선다”고 설명했다.

    중국 SMIC는 점유율 약 6% 차지하며 세계 시장 5위를 점하고 있다. 최근 키파운드리를 인수하며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든 SK하이닉스와 DB그룹 계열사인 DB하이텍보다 우위다.

    한국 팹리스 경쟁력은 미약하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AP 엑시노스를 개발해 일부 자사 제품에 적용하고 있지만, 퀄컴의 스냅드래곤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실제 삼성전자 플래그십 모델에는 대부분 스냅드래곤이 들어간다. 팹리스는 생산 설비가 없어도 돼 비교적 투자 비용이 적은 만큼 중소기업 참여가 용이한 분야이지만, 한국에서는 기반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 팹리스 기업은 120개가 채 안 되지만, 중국은 1,800개에 달한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팹리스 분야 인재 양성 지원을 주문했다. 그는 “하나의 칩에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는 추세”라며 “기능별로 인력이 필요해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팹리스 인력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해 학부 수준이 아니라 최소 석사, 기본 박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학부생 확대도 중요하지만, 석박사 양성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단장은 정부가 반도체 정책을 설계할 때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시행된 국가첨단전략산업법(반도체 특별법)에는 전략 산업에 대한 인프라 구축 비용 지원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규제 완화, 연구개발, 인력 지원 등 내용이 담겼다. 전략 산업 지정은 실무협의회에서 이뤄지는데, 반도체 산업 지정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그는 “정부가 반도체에 집중해 지원하는 분위기는 업계에서 반길만하다”면서도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부품이다. 모바일·자동차·선박·의료기기 등 반도체 수요 산업 전반에 대한 활성화 정책이 반도체 지원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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