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일 토요일

목숨과 단심(丹心), 노자의 선택은?


이인우 2015.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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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명장면】노자, 그 잃어버린 이야기
 노담일사(老聃逸事)<상>


이 이야기는 고대 중국 주(周)나라 경왕(景王) 연간(B.C 545~520)에 왕실 사관(史官)을 지낸 노담(老聃)이라는 사람의 약전(略傳)이다. 나, 이생이 공자께서 ‘노자’(老子)를 만났다는 전래 설화의 진위를 추적하던 중에 듣게 된 전승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노담은 생애의 전모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에 관한 전승들도 대부분 그 신빙성을 자신할 수 없다.① 그래서 약전의 제목을 노담의 ‘잃어버린’, 혹은 ‘잊혀진’ 이야기란 뜻의 <노담일사>(老聃逸事)라 하고 <공자, 노자를 만나다> 편의 부록으로 삼는다. 한 편의 ‘문화사’로 읽는다면 시간의 낭비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생(李生) 


1. 내력(來歷)
노담은 어릴 때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귀 모양이 특이했던 듯 하다. 그의 자(字)로 여겨지는 담(聃)은 ‘귓바퀴가 없을 정도로 귀가 늘어졌다’는 뜻의 글자이다. 그의 관직으로 추정할 때, 공자보다 한 세대 위, 즉 약 15~20살 정도 나이가 위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담의 출신지는 중국 남방의 초(楚)나라 고(苦)현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고현은 원래 진(陳)나라 상(相)땅이다. 진나라는 소국으로 초나라의 보호국이었다가 서기전 479년(공자가 돌아가신 해이기도 하다) 초나라에게 합병 당했다. 담은 상 땅이 진나라에 속한 시절에 태어난 사람이다. 이 상 땅이 나중에  초나라에 흡수되었기에 후대 사람들은 노담을 초나라 사람이라고 여겼다.

노담의 성씨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약소국 진나라 출신으로 주왕실의 태사(太史;고대 중국에서 천문역법(天文曆法)을 관장하는 벼슬)라는 고위직에 오른 것으로 보아 최소한 서민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나라 공실의 성은 규(女+爲)씨이다. 규는 고대의 성스러운 왕인 순(舜)의 성이다. 어쩌면 그의 집안은 낙양으로 진출한 진나라 공족의 후예였을지 모른다. 또는 중원의 공력 높은 무사(巫史) 가문이었을 수도 있다.
노담의 집안이 언제부터 주나라 수도 낙양에 살게 되었는 지도 알 수 없으나, 고조나 증조부 대부터 주왕실의 사(史)를 세습하였던 것 같다. 이 집안에는 비전(秘傳)하는 양생술(養生術)이 있어서 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함께 장수하였다. 그런 탓에 늙도록 왕실에 충성한 할아버지는 귀족들로부터 장로(長老)의 예우를 받았다. 담의 아버지는 태사의 지위에서 은퇴한 뒤에도 후배 사관들에게 ‘노사’(老師)라 불리었다. 이런 자랑스런 가계 때문에 담은 어렸을 때부터  ‘장로의 손자 담’,  ‘노사의 아들 담’이라고 불리었다. 나중에는 그 자신도 매우 장수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담을 존칭하여 ‘노담 선생’이라 불렀다. 노자(老子)라는 존칭은 아마 여기서 처음 유래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노담의 직책은 왕실 사관(史官)이었다. 사(史)는 본래 고대 원시사회의 무축(巫祝)에서 비롯되었다. 무축은 모계(母系) 중심의 원시농경사회에서 신에게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고 사냥과 전쟁의 유불리를 점치는 사제자(司祭者)이자 주술자였다.
이 제사장 집단에서 무사(巫史)가 나왔고 유(儒)와 사(史)가 분화 되었다. 유가가 이 집단에서 제전(祭典)을 실행하는 층의 후예라면, 사는 축도문을 낭송하고 이를 기록(정확히는 기억)하는 층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들은 고도의 상징과 의식을 통해 자신들이 신과 닿아있음을 자부했다. 그들이 사용한 은유로 가득 찬 주술적인 언어들은 집단의 ‘공동기억’으로서 가문 안에서만 전승됐다. 이들은 무축의 시대가 가고 왕권의 시대가 오자 세력을 잃고 하층계급으로 전락해 갔다. 그러나 소수는 그 비전(秘傳)한 지식으로 권력을 가까이서 보좌했고, 정치력을 갖춘 자는 권력의 한 축이 되기도 했다. 왕실의 사(史)가 본래 모계(母系) 사회의 성직자였음을 암시하는 노담의 시가 지금도 전해진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신비한 암컷이라 한다.
 신비한 암컷의 문이여!
 이를 일컬어 만물의 근원이라 한다. 
 이어지고 이어져 영원한 듯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谷神不死(곡신불사)/是謂玄牝(시위현빈)/玄牝之門(현빈지문)/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綿綿若存(면면약존)/用之不勤(용지
불근)②
 
제사자에서 왕의 정치적 자문관이 된 사는 일상적으로는 조정과 왕실의 제례와 의전에 관한 전거와 기록의 관리를 담당하며, 유사시에 천문(天文)과 복서(卜筮), 점사(占辭)를 행하고 해석함으로써 정치에 참여하였다. 사관으로서 노담이 맡았던 주요 직책 중에는 왕실도서관인 수장실(守藏室)의 장관직도 있었다. 당시 왕실 도서관이 소장한 하은주(夏殷周·고대 중국의 3대 왕조) 시대의 전적과 기물들은 오직 왕실과 왕명을 받은 자만이 열람·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수장실 장관의 권위는 매우 높았다. 노담은 또 ‘주하사’(柱下史)라는 직책을 겸하였다. 주하사는 말 그대로 ‘기둥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왕의 자문에 응하는 시어사(侍御史)의 직책’이었다. 왕을 정치적으로 보필하는 근신(近臣), 나아가 특별한 사랑을 받은 총신(寵臣)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요직이었다.  노담과 같이 높은 지위를 부여받은 사관은 그 광범위한 지식과 충성심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 깊숙히 개입하기도 했다. 왕실 소속의 세습 사관 겸 정치자문관으로서 담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잠언이 있었다.

 도(道)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하지만,           
   하지 않음이 없다.                                         
 만약 임금이 이를 잘 지킨다면                       
 만물은 저절로 교화되리라.                        
 교화를 억지로 하려고 든다면                     
 우리가 이름없는 통나무가 되어 못하게 하리라.
 이름없는 통나무는
 대저 또한 욕심이 없을지니,                            
 욕심내지 않고 고요하여                                 
 천하는 저절로 안정하리라.                             
 道常無爲(도상무위)/而無不爲(이무불위)/侯王若能守之(후왕약능수지)/萬物將自化(만물장자화)/化而欲作(화이욕작)/吾將
鎭之以無名之樸(오장진지이무명지박)/無名之樸(무명지박)/夫亦將無欲(부역장무욕)/不欲以靜(불욕이정)/天下將自定(천하장
자정)③
 
nojaedit.jpg
*노자. 출처 : 위키피디아

2. 영광의 시절
노담이 태사일 때 주나라 국왕은 경왕(景王)이었다. 그는 27년간 재위하며 군왕의 자질을 발휘했던 아버지 영왕(靈王)으로부터 군주의 도를 배웠다. 노담은 이런 경왕에게 두 가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첫째는 일종의 비밀업무로서 ‘제왕학’과 ‘군사학’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주나라는 외적을 피해 낙양으로 동천(東遷)하면서 사실상 천하의 주인으로서 권위와 힘을 상실했다. 왕국은 작은 영토로 축소되어 이웃한 강력한 제후국인 정(鄭)나라와 진(晉)나라에 의지하여 겨우 천자(天子)의 지위를 유지했다. 따라서 지각 있는 왕이라면 왕자(王者) 본래의 권좌와 위력을 되찾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미 영락한 작은 나라에 불과한 왕실이 몇배나 힘이 센 제후국들을 별다른 무력도 없이 통어(統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왕은 부왕인 영왕의 뜻을 이어받아 주왕실의 이런 서글픈 처지를 바꿔보고 싶었다. 노담 집안은 그런 왕실의 ‘비밀 두뇌’였다.
“왕실이 저 사나운 제후들을 말과 개처럼 부릴 지혜를 강구하시오! 왕도(王道)를 회복할 길을 반드시 찾아주시오!” 그런 지침을 받은 노담 집안이 찾아낸 치도(治道)는 무엇이었을까? 
 
 없는 힘으로 있는 힘을 다스린다
  
바로 성인(聖王)의 도(道), 즉 무위(無爲)의 치(治)였다. 무력(無力)으로 유력(有力)을 아우르고, 없음(無)으로 있음(有)를 덮고, 부드러움(柔)으로 굳셈(剛)을 감싸고, 약함(弱)으로 강함(强)을 이끄는 고도의 정치술이었다. 노담이 간절한 마음으로 왕에게 무위(無爲)의 덕의 중요성을 가르친 글 한편이 전해진다.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으나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여 이기는데              
 물과 바꿀만 한 것이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천하에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나            
 능히 행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런 까닭에 성인이 말하기를                 
 나라의 오욕을 짊어지는 자                     
 그를 일컬어 사직의 주인이라 하며              
 나라의 불행을 떠매고 가는 자                      
 그를 일컬어 천하의 주인이라 한다.                
 天下莫柔弱於水(천하막유약어수)/而功堅强者莫之能勝(이공견강자막지능승)/以其無以易之(이기무이역지)/弱之勝强(약지승
강)/柔之勝剛(유지승강)/天下莫不知(천하막부지)/莫能行(막능행)/是以聖人云(시이성인운)/受國之垢(수국지구)/是謂社稷主(
시위사직주)/受國不祥(수국불상)/是謂天下王(시위천하왕)④

또한 노담은 강력한 제후의 군사력을 역용(逆用)하여 약한 왕실의 안녕을 지키고, 제후의 군사지휘권을 왕의 통제하에 두어 그것으로 제후를 복종시키는 용병술도 깊이 연구하였다.
“도(道)로써 덕(德)을 넓혀 지(智)와 무(武)를 복종시켜라!”
“제후가 병기를 제멋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 제후가 함부로 행군하지 못하게 하라! 제후가 병권을 성왕에게 바치게 하라!”
  
 무릇 아무리 좋은 병기(兵器)라도                                   
 상서롭지 못한 기물(器物)일 뿐이다.                               
 만물이 다 싫어하는 바이니,                                         
 도(道)를 지닌 자는 병사(兵事)에 몸을 두지 않는다.    
 병기는 도무지 상서롭지 않은 것이니                            
 군자의 기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을 때 쓰는 것이니                                         
 사용함에 초연하고 담담해야 한다.                          
 이겨도 아름답지 않으니                                     
 승리를 찬양하는 자는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것이다.                                    
 무릇 살인을 즐기는 자가                                             
 어떻게 천하의 지지를 얻겠는가.                                 
 사람을 많이 죽였으면                                                   
 슬픔과 자비로 애도해야 하니                                        
 전승(戰勝)의 의식,                                                    
 상례(喪禮)를 따르는 것이 도리일진저.                       
 夫佳兵者(부가병자)/不祥之器(불상지기)/物或惡之(물혹오지)/故有道者不處(고유도자불처)/兵者 不祥之器(병자
불상지기)/非君子之器(비군자지기)/不得已而用之(부득이이용지)/恬淡爲上(염담위상)/勝而不美(승이불미)/而美之者(이미지
자)/是樂殺人(시락살인)/夫樂殺人者(부락살인자)/則不可得志於天下矣(즉불가득지어천하의)/殺人之衆(살인지중)/以哀悲泣之
(이애비읍지)/戰勝(전승)/以喪禮處之(이상례처지) ⑤

경왕은 주실 중흥(周室 重興)이란 자신의 염원이 태자 시대에서는 꼭 이뤄지기를 희망했다. 경왕은 태자를 담에게 맡겨 가르치도록 했다. 이때 경왕이 태자 수(壽)에게 노담을 교부(敎父)라 부르게 하니, 노담이 경왕 부자 앞에서 태자에게 바친 시가 전해진다.
 
 사람이 싫어하는 바가 셋이 있으니                         
 어려서 부모를 잃는 고(孤·고아)요,                      
 같아 살 배필이 없는 과(寡·과인)요,                            
 사람으로서 굶주리는 불곡(不穀·먹을 곡식이 없음)이니 
 그래서 왕공(王公)은 이를 자신의 칭호를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물의 이치란                                           
 덜어내면 더해지고                                                   
 더하려면 오히려 줄어듭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가르침이지만                        
 지금 다시 이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교부(敎父)의 이름으로                                              
 오직 이 한 말씀을 그대에게 바칩니다.                        
 人之所惡(인지소악)/唯孤(유고)/寡(과)/不穀(불곡)/而王公以爲稱(이왕공이위칭)/故物(고물)/或損之而益(혹손지이익)/或
益之而損(혹익지이손)/人之所敎(인지소교)/我亦敎之(아역교지)/吾將(오장)/以爲敎父(이위교부) ⑥

태자는 총명하여 충실한 학업으로 왕의 기대에 부응했다. 왕실은 평안했고 미래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바야흐로 주왕실 중흥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 만 같았다. 노담의 가슴에도 뜨거운 자부와 웅지가 뭉게구름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3. 비극의 시작
“담 선생!”
“노담 선생!”
수장실(守藏室)로 당직 사관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급히…”
“큰일났습니다. 태자 전하께서 급서하셨다고 합니다!”
노담의 손에 들려있던 도필(刀筆)이 쨍그러니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서기전 522년 주나라 경왕 18년, 태자 수(壽)가 왕후에 이어 갑자기 죽었다. 노담의 나이 40대 후반 때 일어난 사건이었다. 태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 자체로 왕실의 큰 슬픔이면서 노담에게도 커다란 좌절이었다.
“그동안 제후들 몰래 연구한 제왕학(帝王學)을 꽃피워 줄 성군의 재목이었는데… 아, 주실(周室)의 천록(天祿)이 진정 여기까지인가…” 
태자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 만개할 것이 분명했던 노담의 영화도 꽃을 피워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태자의 죽음이 장장 17년에 걸친 골육상쟁의 서막이 될 줄이야…
  
경왕은 태자와 왕후가 잇따라 죽는 슬픔 속에서도 군왕으로서 사고의 중심을 잃지 않았다. 우선 새로 정비를 맞아 적자를 생산하는 일을 서둘렀다. 경왕에게는 태자 말고 여러 명의 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 맏아들 조(朝)는 장자로서 책임감이 강하고 기상도 늠름했지만, 경왕은 왕위만큼은 적자로 이어지길 원했다. 그래서 경왕은 곧 새 왕후를 맞아 새로 2명의 아들을 얻었다. 맹(猛)과 개(빌 개)였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경왕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경왕은 자신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느끼자, 비로소 태자가 어린아이에 불과한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맹은 이제 겨우 세살박이가 아닌가. 이리같은 제후들과, 호시탐탐 왕권을 노리는 노회한 공족들 틈바구니에서 저 아이가 제대로 임금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게다가 왕후 집안을 중심으로 새 외척세력이 형성되고 있었다. 몇몇 탐욕스런 귀족들이 작당(作黨)을 부채질하고 주도했다. 왕은 불안감으로 잠 못이루는 날이 늘어만 갔다.
 
“노담, 어찌하면 좋겠소?”
“…”
노담은 죽은 태자의 스승으로서 다른 왕자들이 태자의 지위를 논하는 문제에는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서장자(庶長子) 조의 사부인 빈기(賓起)를 추천했다.
“그런 일은 저보다 빈기가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장자의 스승이니…”
태자가 죽은 후 맏아들 조에게 허전한 마음을 의지해온 경왕은 마침내 서자이나 이미 장성한 성인인 맏아들로 태자를 교체하기로 결심했다.
“조의 기상이 실로 할아버지 영왕(靈王)을 닮았다. 왕실의 중흥을 도모하려면 이 길뿐이다…” 
경왕은 조를 태자로 삼기 전에 중단한 결단을 하나 더 내렸다.
“태자의 외척들이 순순히 찬성할 리는 없을 터…”
태자 맹 형제를 에워싼 외척과 귀족들을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태자 교체는 말도 꺼내기 전에 수포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그들은 강력한 제후국인 진(晉)나라를 배후세력으로 갖고 있었기에 왕으로서는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고민하는 경왕의 귀에  빈기가 속삭였다.
“폐태자를 하려면 우선 맹 왕자의 훈육을 맡고 있는 하문자(下門子)의 입부터 막아야 합니다. 다른 죄를 씌어 하문자를 먼저 내치십시오. 그런 다음 망산에서 여름 사냥대회를 열어 공경(公卿)들을 모두 초대하십시오. 왕의 부름에 선(單)공과 유(劉)공(외척의 후견 세력)도 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냥하는 틈을 보아 둘을 처단한 뒤 즉시 태자의 교체를 명하신다면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그렇게 왕의 비밀작전이 착착 진행되어 마침내 사냥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경왕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궁을 나와 사냥터와 가까운 왕족 집에 머물렀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경왕이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고 만 것이다.
왕자 조와 빈기의 입장에서 보면 이 ‘붕어’(崩御)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었지만, 암살의 증거 또한 없었다.
“살해자가 있음에 틀림없건만…”

사자굴에 들어갈 뻔 한 사실을 깨달은 태자당은 즉시 왕자 맹을 새 왕으로 추대하고 선씨와 유씨가 섭정이 되었음을 공표했다. 그리고 바로 군사를 보내 빈기를 척살하고, 조정 안팎에 포진해 있던 선왕의 측근과 총신들은 물론 서왕자들과 가까운 백공(百工· 왕성 안에 살며 왕족과 귀족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제작·공급하는 세습적인 상공(商工)집단을 말한다.)들까지 축출하고 그 자리에 자기 세력을 배치했다.
전광석화처럼 새 왕 체제가 들어서고 2달 뒤 경왕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장례식이 끝나고 새 왕의 정식 즉위식이 거행되기 전에 또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장자 조를 지지하는 왕족들과 숙청된 백관 및 백공 세력이 연합하여 왕궁을 기습 공격한 것이다. 선대 두 왕의 직계 왕자들도 모두 조의 편에 가담하니 전세가 단숨에 서장자 쪽으로 기울었다. 선씨와 유씨 등은 맹과 개 형제를 들쳐업고 이웃한 제후국인 진(晉)나라로 달아나 구원을 요청했다. 이 내전의 와중에 태자 맹이 놀라 죽자 척신들이 동생 개를 추대하니 이 사람이 경왕(敬王)이다. 호족들이 어린 이복동생 개를 즉위시켰다는 소식을 들은 조도 즉각 왕위에 오르니, 주나라 수도 낙양에 두 명의 왕이 동시에 들어서게 되었다. 낙양에는 두 개의 성이 있는데 서쪽에 본래의 왕성(王城)이 있고  동쪽에 새로 쌓은 성주(成周)성이 있었다. 사람들은 왕성에서 즉위한 조를 서왕(西王), 동쪽 성주에 들어간 개를 동왕(東王)이라 불렀다.

한쪽은 비록 서자이긴 하나 선왕이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는 명분이 있었고, 한쪽은 선왕의 유지가 없는 갓난아이지만 정비 소생의 적통이란 명분이 있었다. 약점과 명분이 뒤섞여 어느 쪽도 온전한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낙양사람들은 두 왕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줄을 잘 못 섰다간 온 집안이 역적으로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느쪽이든 빨리 승부가 나기만을 바랐다. 노담의 상황은 더욱 안좋았다. 개인적인 친분으로는 서왕자들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태사로서 서자들에게 적통의 계승자를 제치고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선왕의 총애를 받은 사람으로서 어린 왕자를 허수아비삼아 권력을 농단하는 귀족들을 추종하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동왕 세력이 불러들인 진나라 군대가 낙양에 진군했다. 낙양은 진나라 군대를 사이에 두고 왕성의 서왕파와 성주의 동왕파로 갈려 사활을 건 대치에 들어갔다. 오늘 서왕파의 군대가 기세를 올리면 내일은 동왕파가 만세를 부르는 격이었다.
어느 쪽에도 가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나라 군대의 노략질까지 당하게 된 백성들은 남부여대하여 피난을 떠났다. 노담의 가족도 전화(戰禍)를 피해 낙양을 떠났다가 전선(戰線)에 가로막히자 고향인 남쪽 진(陳)나라를 향해 피난길에 올랐다.
이 내란이 장기화되면서 궁중의 관리, 악사, 공장(工匠)들도 낙양을 떠나 중국 전토로 흩어져 갔다. 음악을 사랑한 공자도 사방으로 비산(飛散)한 악사들의 운명을 전해 듣고 안타깝게 여긴 마음이 <논어>에 전해질 정도였다.

‘태사지는 제나라로 가고, 아반간은 초나라로 가고, 삼반료는 채나라로 가고, 사반결은 진(秦)나라로 가고, 고방숙은 하(河)로 들어가고 파도무는 한(漢)으로 갔고, 소사양과 격경양은 발해 너머 갔느니… -<논어> ‘미자’편 9장
 
이복형제간의 맹렬한 왕위 다툼은 5년을 끌었다. 싸움은 진(晉)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장기전을 펼친 동왕의 승리로 끝났다. 서기전 516년 서왕은 주왕실의 내전을 종식시키기로 한 진나라의 대공세에 밀려 지지세력을 이끌고 마침내 초나라로 망명했다. 주왕실의 정통성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했던 서왕은 이 때 주나라 왕실 수장고에 있던 창업이래의 수많은 전적(典籍)을 가지고 초나라로 갔다.  주나라 왕실 전적의 남천(南遷)은 중국문화사의 일대 사건이었다.⑧ 당시까지 중원 문화권의 밖에 존재하는  ‘오랑캐’ 지역(초나라)이 갑자기 쏟아진 높은 수준의 외래문화와 문물을 흡수하여 급속하게 ‘중화’(中華)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서왕 조는 비록 왕위싸움에 져서 주나라 봉건질서 밖의 초나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으나, 자신이 그토록 자부한 `천자의 나라’가 그 문화적 영토를 양자강 이남의 남쪽 지방까지 확장시키는 예기치 못한 기여를 ‘중국’에 한 셈이 되었다.
서왕은 망명하면서 각 제후국에 이러 조칙을 내리고 떠나갔다.
“왕실이 혼란할 때 선씨와 유씨의 무리들이 천하를 착란시켜 한결같이 불순한 짓만을 자행하면서 ‘선왕의 후사에 어찌 정해진 규정이 있었던가? 오직 내 마음내키는대로 할 뿐이니 누가 감히 나를 토벌하겠는가?’라고 하면서 하늘의 버림을 받은 무리들을 거느리고서 왕실에 혼란을 조성하고(…) 선왕의 명을 가탁해 거짓을 자행하는 데도 진나라는 부도(不道)하여 저들을 도와 그 끝없는 탐욕을 멋대로 부렸다. 지금 나는 난리를 피해 형만(荊蠻·초나라)으로 도망하여 몸을 의탁할 곳이 없으니, 나의 형제친족인 제후들은 하늘의 법을 따라 나의 성공을 돕고 교활한 자들을 돕지 말라. 선왕의 명을 따라 하늘의 벌을 부르지 말고서 부덕한 나를 용서하여 위난의 평정을 도모한다면 나의 소원이 이뤄질 것이다…”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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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숨과 바꾼 단심(丹心)
내전이 끝나자 전장으로 변했던 낙양에 오랫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낙양을 떠났던 사람들도 하나둘 돌아와 본래의 생업을 되찾았다.  한편에선 피바람이 불었다. ‘줄을 잘못 선’ 많은 사람들이 반역죄와 부역죄로 처단되거나 투옥과 유형을 감수해야 했다. 비록 구체적인 혐의는 없다할지라도 서왕파와 조금이라도 가깝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은 목숨이 위태로왔다.
낙양으로 불려들어온 노담의 목숨은 풍전등화였다.
“적통을 폐하고 서자를 받들려고 했던 ‘역적 중의 역적’ 빈기란 놈과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너도 그와 한패가 틀림없으렸다!”
그런 의심 속에서 노담은 제발로 낙양에 온 것을 천번만번 후회했다.
‘차라리 서왕을 쫓아 초나라로 갈걸 그랬나…아, 동쪽 바닷가로 가서 이름을 바꾸고 숨어살았다면 이런 위태로움은 없을 것을…’
서기전 515년 노담이 나이 50대 중반에 맞이한 인생최대의 위기였다. 그런데 이 위기 속에 노담을 구한 건 다름아닌 그가 지닌 ‘지식’이었다.  서왕이 수많은 왕실 전적을 가지고 망명하는 바람에 새로운 지배세력은 권위와 정통성을 과시할 의전과 제례의식 거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른 시일 안에 왕실 전적을 보완해 제후국들에게 체통이 깎이는 일을 최대한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고전에 정통한 학자들이 다수 필요했는데, 노담은 그 대표적인 학자였다.
용케 화를 피한 동료들이 노담에게 권했다.
“노담선생.  서왕쪽과 맺었던 과거 친분은 모두 부인하세요. 낙양을 떠난 것도 진나라 군대의 약탈을 피해 떠났다가 서왕파의 군대에 막혀 돌아오지 못한 것이라고 사정하세요. 거짓말로라도 서왕을 따라가지 않은 것이 금상(今上)을 사모한 증거가 아니냐고 하세요. 사람은 일단 살고 볼 일이 아니요?”
“나는 선왕의 지극한 은총을 입은 몸. 그 아들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는데 내가  어느 편을 들어야 옳았단 말이요? 나는 그저 선왕을 기리며 여생을  살고 싶을 뿐이오.”
“선생의 마음을 우리가 왜 모르겠소. 그러나 금상은 여기 낙양에 있고 서왕은 천리밖 오랑캐 땅에 있소이다.”
제자들도 노담을 붙들고 간청하다시피 조언한다.
“선생님! 텅 빈 수장실을 전적으로 채우라는 성화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애꿎은 사관 하나가 매를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
“지금 섭정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제후들에게 뽐내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전고(典故)를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후들에게 비장한 전적을 보내달라고 읍소를 해야할 지경인데, 우리 수장실에서 이 업무를 감당할 분은 선생님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한번 허리를 굽혀 주신다면 미력한 저희들은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이 점을 살펴주십시오.”
죄인의 신분으로 낙양에 끌려오다시피했던 노담은 결국 서왕을 공개적으로 부인했고, 그 대가로 사면을 받아 수장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일실된 전적을 보충하고 새로 바쳐지거나 복사된 전적을 감수하는 일을 맡았다. 그것은 매우 깊고 넓은 지식을 요하는 작업이었지만, 노담에게는 더이상 `학문‘이 아니었다. 비루한 목숨값이었다. 그에게 독서와 연찬은 목숨을 유지하는 수단이 아닌 한, ‘누군가의 찌꺼기를 핥는’  부끄럽고 비루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5. 늙은이의 노래
어느 화창한 봄날 성주성의 축성이 끝났다.  여러 나라에서 차출돼 온 역부들은 고향에 돌아갈 기쁨에 성을 돌며 ‘성주풀이’를 지어 불렀다. 왕과 신하들은 제단을 쌓고 신에게 축성을 고한 뒤 군신(君臣)이 더불어 영화를 누리게 해달라고 빌었다. 서약식이 끝나자 대부 이상의 관리 출신 ‘사면자’들은 왕실이 베푸는 잔치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았다. 왕과 섭정들 앞에서 충성스런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나온 수장실의 동료가 노담에게 넌즈시 말했다.
“까짓 웃으라면 웃고, 춤을 추라면 춥시다. 기왕이면 왕이 직접 보고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또다른 친구가 말했다. 
“하늘에도 눈이 떠다니고 땅밑에도 귀가 있소. 괜한 소리말고 주는 술이나 받아마시고 조용히 있다가 갑시다.”
노담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래, 더이상 ‘학문’도 없고, 학문으로 봉사할 성왕도 없다. 내가 무엇때문에 형편없는 왕자들의 개같은 싸움에 내 소중한 목숨을 던져주랴. 만세를 부르라면 실컷 불러주자, 만세! 만세! 만만세…’
이 잔치날에 노담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가 전해지고 있다.
  
  뭇사람들은 즐거워하네                  
  큰 잔치상을 받아 들고                       
  봄날의 누대에 오른 듯 하네.              
  나는 홀로 조용하네                            
  아무런 느낌없이                             
  아직 웃는 것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나는 홀로 우두커니 서 있네                
  마치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뭇사람들은 다 잔치를 즐기는데           
  나는 홀로 떨어져 있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              
  세상사람들은 다 밝다 하는데              
  나는 홀로 깜깜하고                            
  세상사람들 다 총명하다 하는데          
  나만 홀로 어둡네.                              
  고요하기가 바다같고                         
  맑은 바람처럼 머무는 곳 없네.           
  뭇사람들은 다 높이 받들건만             
  나의 뜻은 홀로 낮은 곳에 처하는 것    
  나는 홀로 뭇사람들과 다르니             
  산다는 것의 본질을 귀히 여기노라.      
  衆人熙熙(중인희희)/如享太牢(여향태뢰)/如春登臺(여춘등대)/我獨泊兮(아독박혜)/其未兆(기미조)/如孀兒之未孩(여상아
지미해)/루루兮(루루혜)/若無所歸(약무소귀)/衆人皆有餘(중인개유여)/而我獨若遺(이아독약유)/我愚人之心也哉(아우인지심
야재)/沌沌兮(돈돈혜)/俗人昭昭(속인소소)/我獨昏昏(아독혼혼)/俗人察察(속인찰찰)/我獨悶悶(아독민민)/澹兮其若海(담혜기
약해)/요兮若無止(요혜약무지)/衆人皆有以(중인개유이)/而我獨頑似鄙(이아독완사비)/我獨異於人(아독이어인)/而貴食母(이
귀식모)
  
잔치에 참석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진심으로 즐겁지 않다. 그래서 아직 웃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술을 마신다. 잔치가 무르익어 흥청거리자 노담은 조용히 따로 떨어져 나와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우두커니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또 한 잔, 또 한 잔을 마신다. 바람이 따스하게 불어오니 꽃이 흐드러진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흰구름은 어디선가 일어나 어디론가 흘러간다.
  
      학문을 끊어 근심의 뿌리를 잘랐으니    
  이제 나에게 ‘네’와 ‘예’에 무슨 차이가 있으랴                             
  선과 악의 차이는 또 얼마란 말이냐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바를 나도 두려워 한다.                            
  아, 생(生)의 도(道)                           
  아득하여 다 깨달을 수 없구나…
     絶學無憂(절학무우)/唯之與阿(유지여아)/相去幾何(상거기하)/善之與惡(선지여악)/相去若何(상거약하)/人之所畏(인
지소외)/不可不畏(불가불외)/  荒兮(황혜)/其未央哉(기미앙재)⑩

진심으로 충성하는 ‘예’와 마음을 감추고 대답하는 ‘예’의 차이가 굳이 얼마나 된다고 이러나? 저마다 선을 주장하는 데 과연 그 선이 말하는 악과는 또 얼마나 차이가 지나? 나는 또한 그 이치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나, 담은  ‘예’든 ‘네’든 개의치 않으련다. 이제 더는 선악을 묻지 않으련다. 나는 지금 승자를 따를 뿐이다. 나도 별 수 없는 인간, 뭇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것을 나도 두려워 한다.

그렇다, 나도 남들처럼 죽음이 두려웠을 뿐이다. 인생이란 아직 다 건너지 못한 강, 다다르지 못한 평원을 가는 것과 같다. 나의 삶은 천명을 따르고 있는가? 거스르고 있는가? 옳다는 것은 무엇이고, 틀린 것은 또 무엇인가? 나는 아직 그 멀고 깊은 끝을 보지 못했다. 삶의 여정(道)이여, 이치(道)여, 참으로 멀고 아득하여 나는 알 수가 없구나….

<하편 계속>


<원문 보기>

① 노담의 신상에 관한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기록은 사마천의 기록이다.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李)씨,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다. 주나라 수장실의 관리였다. 공자가 주나라에 갔을 때,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 老子者, 楚苦懸여(갈 여)鄕曲仁里人也, 姓李氏, 名耳, 字聃, 周守藏室之史也. 孔子適周, 將問禮於老子.(하략) -사마천, <사기> ‘노자한비열전’
그러나 사마천 자신도 당시 전해져 온 노자에 관한 전승을 사실로 확신하지 못했다. 일례로 노담의 성이 이씨라는 것에 대해서는 ‘한나라 초기에 이씨 성을 가진 실세 가문이 노자의 가계를 차용한 ’것’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사마천은 또 공자 사후 1백여년 뒤의 인물인 주나라 태사 담이 노자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여 그에 관한 세상의 풍설을 함께 기록해 놓았다.
 “공자 사후 129년 후 기록에 따르면, 주나라 태사 담이 진헌공을 배알하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바로 이 태사 담이 노자라 하고, 혹자는 아니라고 하였다. 세상사람들도 그것이 그런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自孔子師之後百二十九年, 而史記周太史담見秦獻公曰(…) 或曰담卽老子, 或曰非也, 世莫知其然否. -사마천, <사기> ‘노자한비열전’
 
   ② <노자> 6장 전문
 
 ③ <노자> 37장 전문
 
 ④ <노자> 78장 부분. 전문은 다음과 같다.
 天下莫柔弱於水(천하막유약어수)/而功堅强者莫之能勝(이공견강자막지능승)/以其無以易之(이기무이역지)/弱之勝强(약지승강)/柔之勝剛(유지승강)/天下莫不知(천하막부지)/莫能行(막능행)/是以聖人云(시이성인운)/受國之垢(수국지구)/是謂社稷主(시위사직주)/受國不祥(수국불상)/是謂天下王(시위천하왕)/(正言若反(정언약반))

   ⑤ <노자> 31장 부분. 전문은 다음과 같다.
 夫佳兵者(부가병자)/不祥之器(불상지기)/物或惡之(물혹오지)/故有道者不處(고유도자불처)/(君子居則貴左(군자거즉귀좌)/用兵則貴右(용병칙귀우))/兵者 不祥之器(병자 불상지기)/非君子之器(비군자지기)/不得已而用之(부득이이용지)/恬淡爲上(염담위상)/勝而不美(승이불미)/而美之者(이미지자)/是樂殺人(시락살인)/夫樂殺人者(부락살인자)/則不可得志於天下矣(즉불가득지어천하의)/(吉事尙左(길사상좌)/凶事尙右(흉사상우)/偏將軍居左(편장군거좌)/上將軍居右 (상장군거우)/言以喪禮處之(언이상례처지))/殺人之衆(살인지중)/以哀悲泣之(이애비읍지)/戰勝(전승)/以喪禮處之(이상례처지)

 ⑥ <노자> 42장 부분. 전문은 다음과 같다.
 (道生一(도생일)/一生二(일생이)/二生三(이생삼)/三生萬物(삼생만물)/萬物負陰而抱陽(만물부음이포양)/沖氣以爲和(충기이위화))/人之所惡(인지소악)/唯孤(유고)/寡(과)/不穀(불곡)/而王公以爲稱(이왕공이위칭)/故物(고물)/或損之而益(혹손지이익)/或益之而損(혹익지이손)/人之所敎(인지소교)/我亦敎之(아역교지)/(强梁者不得其死(강양자부득기사))/吾將(오장)/以爲敎父(이위교부)

   ⑦ <좌전> 노소공 22년조
  
 ⑧ 김학규, <공자의 생애와 사상>
 
 ⑨ <좌전> 노소공 26년조
 
 ⑩ <노자> 20장 전문

 
 

125주년 메이데이 5만노동자 〈끝내자 박근혜!〉 ... 민주국제포럼 참가 국제민주인사들 선두행진


  • [사회] 125주년 메이데이 5만노동자 〈끝내자 박근혜!〉 ... 민주국제포럼 참가 국제민주인사들 선두행진

  • 민주노총은 125주년 메이데이를 맞아 <최저임금1만원 쟁취! 노동시장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세월호 진상규명!> 2015세계노동절대회를 1일 오후3시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했다. 

    민주노총조합원 등 5만여명의 노동자가 모여 성사한 이날 대회에서 민주노총은 <4.24총파업으로 노동시장구조개악과 공무원연금 개악 등 노동자·서민의 삶을 후퇴시키는 정책에 대한 강력한 뜻을 밝혔음에도 <정부>는 정책강행을 포기하지 않았고 총파업에 대한 탄압(사법처리)수순을 밟고 있다.>며 <이에 맞서 전국에서 전개된 총파업의 기세를 서울로 결집해, 전국 2900여곳 사업장 5만명이상이 참가한다.>고 전했다.  

    이어 <노동절대회는 노동시장구조개악, 공무원연금개악, 공공기관가짜정상화, 대학구조조정, 비정규직착취, 의료·철도·물민영화 등 이 모든 공세에 대한 포괄적인 투쟁과 연대를 결의하는 장>이라며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파탄내는 원인의 정점에는 박근혜<정권>이 있다. 민주노총은 <끝내자 박근혜>라는 슬로건아래  △최저임금1만원 인상 △노동시장구조개악 폐기 △공무원연금개악 중단, 공적연금 강화 △<세월>호대통령령 폐기, 진상규명 4대요구를 천명하며 수용되지 않는다면 하반기 강력한 대정권투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4.24총파업의 기세를 오늘 다시 확인하고 5~6월투쟁으로 더욱 몰아쳐 가야 한다.>며 <하반기에는 기어이 민중총궐기투쟁으로 박<정권>을 끝장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2015년 노동자의 이름으로 박<정권>의 노동탄압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20년은 노동자로 살아가기 정말 힘들 것>이라며 <정권의 모든 공격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각오로 연대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박근혜와 그 뒤에 숨어있는 자본을 이길 수 없다. 노동자의 깡다구로 반드시 승리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전국농민회청연맹 김영호의장, 전국빈민연합 심호섭공동의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상임공동대표가 연대선언문을 통해 <국가폭력과 불법, 무법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죽은 듯이 살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짓밟히고, 약한자를 향한 증오와 멸시가 판치는 사회에서 살수는 없다.>며 <거짓과 부정, 부패비리의 몸통,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쳤다.

    한국노총 이병균사무총장은 연대사를 통해 <노동시장구조개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양대노총은 총파업투쟁으로 이를 저지할 것>이라며 <그로 인한 혼란과 파국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세월>호유가족들도 대회에 함께 했다. 

    유경근집행위원장은 <1년간 유가족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분노하며 함께 해준 민주노총조합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우리가족들은 시행령이 통과되든 말든, 정부가 진상규명을 방해하든 말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엄마아빠로 살기 위해, 안전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산별연맹대표자들은 산별연맹깃발과 함께 무대에 올라 박<정권>에 맞서 앞장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대회를 마친 5만여노동자들은 서울시청광장을 출발해 서울시내곳곳을 누비며 <박근혜 퇴진!> <끝내자 박근혜!>, <더쉬운 해고 멈춰!, 더낮은 임금 멈춰!. 더많은 비정규직 멈춰!>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경찰은 청와대주변을 비롯해 광화문, 종로 일대에 차벽을 설치하고 병력을 배치해 행진대오가 가는 곳마다 봉쇄하고 방패와 최루액, 물대포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해산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10여명의 노동자들이 불법적으로 연행됐다. 

    지난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열린 민주국제포럼에 참가한 인 베흐나흐 까센(Bernard Cassen)세계사회포럼창립자, 빅토르 우고 히혼((Víctor Hugo Jijón)에콰도르공공정책대학교수, 뎀바 무싸 뎀벨레(Demba Moussa Dembélé) 2011다카리세계사회포럼조직위원장, 잉에 회거(Inge Höger)독일연방의회하원의원, 클라우디아 하이트(Claudia Haydt)독일좌파당국제담당,  졍 살렘(Jean Salem)소르본대철학교수 등 외국인참가자들과 민주국제포럼명예대표 권오헌민가협양심수후원회명예회장, 공동대표 송무호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이사장, 이채언전남대교수 등이 대회에 참가하고 가두행진에도 동참했다.

    이들은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연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대열선두에서 행진했으며 <박<정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국제사회에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는 <박근혜정권 퇴진!>촛불신문 97혁신호 3만여부를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신문은 코리아연대의 <경찰벽 무너뜨리고 청와대를 향해 앞으로!>시국선언과, 4.16연대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통첩>, <<이명박근혜정권>의 <노동자죽이기> 10대죄악>, <박근혜<정권>이 퇴진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 노동자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신문을 받아가는 등 많은 관심을 끌었다. 

    또 <부정선거 부패비리 박근혜정권 퇴진하라>는 구호가 적힌 전단이 서울시내곳곳에 뿌려졌고 <민생파탄 책임지고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부정부패 썩은 정권 박근혜새누리당정권 퇴진하라>·<세월호참사 성완종게이트 민생파탄 박근혜는 퇴진하라>가 적힌 포스터와 <박근혜도 수사하라>는 내용의 <그네공주와 일곱난장이>패러디포스터도 행진로 곳곳에 나붙어 참가자와 시민들이 <참신하다>며 환호하고 관심을 표했다.

    행진대오는 오후7시20분경 종각역사거리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해산했으며 일부는 <<세월>호특별법시행령 폐기> 범국민철야행동에 계속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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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언제든지 찾아오라고요? 그건 박 대통령의 거짓말"


15.05.01 16:43l최종 업데이트 15.05.02 19:34l


[최종신 : 2일 오후 4시 50분] 

"캡사이신·물대포에 우리는 두 번 죽었다"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 입 속에 캡사이신 발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이틀째인 2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방향 행진을 시도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눈과 입을 향해 발사했다. 캡사이신을 입에 맞은 한 유가족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 권우성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 눈과 입에 캡사이신 난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이틀째인 2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방향 행진을 시도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눈과 입을 향해 발사했다. 눈과 입속에 캡사이신을 맞은 유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 권우성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이 시행령 폐기 촉구를 요청하기 위해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과잉 대응에 결국 두 손을 들어야 했다. '미신고 불법집회', '시민 교통 불편'이라는 전가의 보도와 물대포·캡사이신의 물리력은 유족과 시민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경찰의 공권력은 '언제든지 찾아오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해줬다. 

유족과 시민들 200여 명은 2일 오후 2시 40분경,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전날 오후 3시부터 서울 광장에 집결해 종로 일대를 거쳐 안국 사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꼬박 24시간 만에 세월호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왔다. 

이 자리에서 유족과 시민들은 경찰의 과잉 대응을 질타했다. 마이크를 잡은 '성호 아빠' 최경덕씨는 "1년 전이나 후나 대한민국의 변함 없음에 절망했다"면서 "유족들을 토끼 몰이로 가두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면서 "정말 저희들은 청와대에 가고 싶었다, 가서 쓰레기 시행령 폐기하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주 엄마 유병화씨는 "이미 세월호 사고로 새끼 잃은 부모로서 한 번 죽었고, 어제 오늘 캡사이신과 물대포는 유족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후) 1년이 지났지만, 경찰의 횡포는 나날이 발전했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국민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경찰이 저희를 짓누르고 짓밟았다"면서 "저희가 총을 들었나, 칼을 들었나, 제대로 된 시행령 만들자는데 무슨 잘못이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 침해 감시 변호사단에서 활동한 송아람 변호사는 경찰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송 변호사는 "정부가 유족과 시민들을 정권의 적으로 보지 않고서는 이렇게 상대할 수가 없다"면서 "경찰의 물리력은 상상 이상으로 유족과 시민을 겁박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신고 집회라도 명백한 위험이 없다면 해산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저희는 인도를 통해 청와대에 가려고 했다, 시민 피해가 없는데도 마구잡이식으로 행진을 봉쇄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향후 물대포에 함유된 캡사이신 양을 조사해 경찰 과잉 대응을 판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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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유가족에 캡사이신 조준난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이틀째인 2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방향 행진을 시도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눈과 입을 향해 발사했다. 캡사이신을 맞은 삭발한 어머니가 물로 눈을 씻고난 뒤에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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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유가족에 캡사이신 조준난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이틀째인 2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방향 행진을 시도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눈과 입을 향해 발사했다. 캡사이신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시민의 눈을 물로 씻겨주고 있다.
ⓒ 권우성

마구잡이 체포, 경찰 42명 연행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1박 2일간 함께 해준 시민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전 위원장은 "지금까지 함께 해주시고 항상 저희 곁에 계시는 시민들 감사하다"면서 "캡사이신, 물대포 맞으신 시민들, 저에게 오시면 따뜻한 밥 한끼 사드리겠다, 너무나 수고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정부의 시행령안은 죽어서 자식 볼 면목을 없게 한다"면서 "시행령이 국무회의에 상정되더라도 시행령 받아들일 생각 없다, 저희 손으로 진상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유족과 시민들은 세월호 농성장 내 분향소에서 참배하며 1박 2일 철야 행동을 마무리했다. 

한편, 경찰은 1박 2일 철야 행동에서 유족 1명을 포함해 시민 42여 명을 연행했다. 서울 지역 경찰서로 이송한 경찰은 이들에게 공무집행방해, 도로교통방해, 집회 및 시위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조사 중이다. 

[13신 : 2일 오후 2시 10분 ] 

경찰, 유족 행진 시도에 다시 캡사이신 

세월호 유족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은 캡사이신으로 응수했다. 또 다시 경찰은 해산명령을 내리고 체포하겠다고 유족들을 겁박했다. 

서울 안국동사거리-경복궁역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유족 50여 명은 2일 오후 1시 50분부터 경복궁 돌담 인도로 행진을 시도했다. 

유족들이 방패를 든 경찰과 몸싸움을 시도하자 경찰은 유족들에게 캡사이신을 쐈다. 얼굴에 맞은 유족은 고통을 호소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물로 얼굴을 씻었다. 

유족들은 계속 길을 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경복궁 정문을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행진을 원하고 있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이다. 

경찰에 의해 행진이 막히자 유족들은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 조계사를  거쳐 광화문으로 행진하고 있다. 

[12신 : 2일 낮 12시 30분] 

"밤새워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물대포·캡사이신" 

경찰과 유족 대치 속에서 먼저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한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 행진 보장과 시행령 폐기를 촉구했다. 

서울 안국동사거리 인사동쪽에 갇혀 있던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아래 4.16연대) 소속 회원과 시민 200여 명은 2일 오전 11시경,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쓰레기 시행령 폐기를 위해 밤을 새워 대답을 기다렸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경찰의 대답은 차벽과 캡사이신, 물대포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자식 잃은 부모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웠나"면서 "어제 경찰은 차벽과 캡사이신, 물대포를 세월호 유족을 겨냥해 마구잡이로 쏘아댔다"고 비판했다. 또 "유족들은 농도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최루액 물대포에 맞아야 했고 고통스러워 했다, 눈물이 모자라 수포가 발생하기도 했다"며 "참으로 잔인하고 잔인한 정부가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또 "정부의 탄압은 진실을 향한 세월호 유족과 국민들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유족 행진 보장을 요구했다. 

한편, 유족 50여 명은 서울 안국동사거리 경복궁 방향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다. 유족들은 청와대행 대신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경찰의 비협조로 발이 묶여 있다. 경찰은 이동경로로 서울 조계사-광화문광장을 주장한 반면, 유족은 경복궁 정문으로 직진해 광장에 진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11신 : 2일 오전 8시 57분] 
"오늘이 내 새끼 화장한 날, 청와대 가자" 

경찰의 방패 벽에 세월호 유족들의 발은 한 시간 넘게 묶여 있다. 서울 안국동사거리-경복궁 방향 도로에서 유족들은 거리에 주저 앉았다. 목줄을 푼 유족들은 "으싸, 으쌰"하며 힘을 썼지만 방패는 꿈적도 않고 있다. 

유가족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창현아빠 이창석씨는 "택시 타고 가자, 택시 좀 불러 달라"며 "5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한 아버지는 "작년 오늘이 내 새끼 화장한 날"이라며 "내가 오늘 청와대 가고 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욱엄마 홍영미씨는 경찰 대원들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홍씨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전세계에 채증되고 있다"면서 "유엔인권위원회에 보낼 거다, 여러분들의 잘못 똑똑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채증하는 경찰을 향해 홍씨는 "채증맨 잘 보이시나, 필름 아깝다, 배터리도 세금"이라며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좀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스피커에서는 사법처리하겠다는 말만 흘러나왔다. 경찰은 "종로경찰서 경비과장 입니다, 유족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로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정밀 채증을 통해 사후에 사법처리하겠습니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8시 50분 현재 4차 해산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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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 2일 철야 행동. 계속되는 대치 상황에 지친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
ⓒ 선대식

[10신: 2일 오전 7시 43분] 
'청와대로' 한줄로 이어진 아빠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다시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단원고 학생들 아버지 19명은 현재 목에 줄을 걸어 연결한 채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또 다시 경찰에 막혀 한 시간 정도 대치하고 있던 유족들은 오전 7시 20분경 자신들을 묶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은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줄을 목에 걸었다. "줄이 너무 길어서 나까지 오겠다", "엄마들은 맨날 앞에 나섰으니까 아빠들만 해"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던 유족들은 연결을 마친 뒤 결연해졌다. 아버지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박자를 맞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해 이들은 경찰의 방패에 막혔다. 유족들은 경찰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계속 항의 중이다. 몇몇 어머니들은 목줄을 건 채 "나 갈거라고!"라며 울부짖는 아버지들을 보고 서럽게 통곡하고 있다.

한편 시민들은 여전히 유족들과 만나지 못한 채 인사동 쪽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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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 2일 철야 행동, 유가족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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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신: 2일 오전 6시 44분] 
또 다시 길바닥에서 잠 청한 유족들 

길바닥에서 밤을 보낸 유족들은 아침부터 다시 한 번 시끌벅적한 상황에 놓였다. 2일 오전 6시 20분 청와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유족들은 현재 경찰과 대치 중이다. 

한 운전자와 붙은 실랑이가 문제였다. 경찰은 오전 5시반경부터 차량 통행을 위해 차선 두 개를 확보했다. 안국동 사거리는 4차선인 탓에 평소보다 통행 속도가 느려지자 몇몇 운전자들이 유족들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한 트럭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유족들에게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 말에 흥분한 유족들이 차량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유족들은 "차라리 (차벽으로 전면 통제했던 1일처럼) 다 막아버려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몇몇 유족은 경복궁역 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하니 청와대로 가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곧바로 움직였지만 다시 경찰에 막혀버렸다. 

한편 지난밤 인사동 쪽으로 밀려났던 시민 200여 명이 거리에서 밤을 지샜다. 이들은 여전히 경찰에 저지당해 유족들과 떨어져 있다. 시민들은 오전 6시 37분 현재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행진 보장하라"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8신: 2일 오전 5시 42분] 
유가족과 시민들, 인사동 입구에서 연좌농성 중 

2일 오전 5시 현재 경찰의 밀어내기에 집회 참가자들은 안국동 사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밀려난 상태다. 다만 40여 명의 세월호 유족은 인사동쪽 시민들과 나뉜 채 도로 위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찰이 유족 방향으로 일반차량을 통행시키려다가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을 인도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캡사이신을 발포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이 저항했지만 참가자들은 인사동 차없는 거리 등으로 밀려났다. 또 이날 인권침해 여부를 감시하러 나온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 관계자도 얼굴에 캡사이신을 맞았다. 

한편, 경찰은 아침이 다가오자 차량 통행을 위해 망가진 경찰버스 타이어 교체 작업을 하고 있으며 물대포와 살수차도 철수한 상태다.

[7신: 2일 오전 2시 53분] 
경찰 검거작전 시작... 유족들 맨 앞에서 몸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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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열린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에서 경찰이 검거작전을 시작하자, 유가족들이 맨 앞에 서서 이를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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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경찰이 유가족을 방패로 때리며 "맞아도 싸다"라고 하자 분노한 유가족들이 경찰을 붙잡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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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열린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에서 경찰이 검거작전을 펼치며 참가자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 유성호

약 세 시간 동안 평화로웠던 안국동 사거리에 다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2일 오전 2시 23분 "6차 해산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으니 검거작전을 하겠다"는 종로서 경비과장의 방송과 동시에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몸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유족들이 미리 대열 맨 앞에 모였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유족들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이들은 유족들과 뒤엉켜 계속 밀려났다. 2시 53분 현재 경찰은 시민들과 유족들을 분리시켰다. 경찰벽에 둘러싸인 유족들은 또 다시 고립됐다. 이들은 시민들과 만나려고 이동했지만 다시 경찰에 막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족 김 아무개씨가 경찰의 방패에 맞았다. 그러자 경찰은 "맞아도 싸다"는 말을 던져 유족을 자극했다. 유족들은 그를 붙잡고 거듭 사과를 요구했으나 해당 경찰은 끝내 입을 다문 채 동료 경찰들 쪽으로 피했다. 한 어머니는 "니들이 자식을 보낸 우리 심정을 아느냐"며 울부짖었고, 한 아버지는 분을 참기 어려운 듯 경찰버스를 향해 생수통을 던졌다.

[6신: 2일 0시 40분]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 일시 중단... "이게 무슨 세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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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족에게 캡사이신 넣은 물대포 난사하는 경찰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로 유가족을 향해 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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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경찰의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는 잠시 멈췄지만 대치 상황은 여전하다. 2일 자정 현재 안국동 사거리는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경찰은 전날 10시 40분~11시 20분경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집중 살포했다. 물대포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량의 캡사이신 가루가 고여있었다. 물대포를 맞은 화단의 꽃들도 처참하게 쓰려져 버렸다. 

유족들은 자신들을 막아선 경찰에게 거듭 항의했다. 한 어머니는 "이게 무슨 세상이냐"라며 경찰 방패를 붙잡고 오열했다. 한 시민은 경찰들을 향해 "너희들이 무엇을 막고 있는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잘 봐두라"고 소리쳤고, 울고 있는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들에게 "청와대 못 가서 죄송합니다 어머님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시민 대부분은 캡사이신 냄새에 콜록대고 추위와 씨우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당초 416연대가 계획한 문화제 진행은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추모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부르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5신 보강: 1일 오후 10시 58분] 
또 다시 등장한 물대포... 캡사이신 섞어 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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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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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물대포가 또 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등장했다. 

경찰은 10시 47분 현재 시민들을 향해 수차례 살수했다. 물대포에 캡사이신이 섞인 탓에 온몸이 젖은 시민들은 거듭 콜록거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자신들이 대열 앞에서 물대포를 맞겠다며 나섰다. 

행진을 시도한 지 두 시간이 넘었지만 시민들은 아직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폴리스라인에 막힌 이들은 거듭 돌파를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반면 경찰의 대응 수위는 더욱 강경해졌다. 물대포 살수뿐 아니라 캡사이신 발포도 잦아졌다. 일부 시민은 우산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안국동 사거리 곳곳에서는 "물! 물!" "물 좀 전달해주세요!"라는 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있다. 몇몇 취재진도 시민들과 뒤엉킨 채 캡사이신을 맞기도 했다. 

[4신 : 1일 오후 10시 1분]
시민-유가족, 청와대 행진 시도... 경찰, 캡사이신 무차별 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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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며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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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며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일 오후 9시 35분 현재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에 모인 세월호 참사 유족과 시민 등 3000명(416연대 추산)은 경복궁 방향으로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대치 중이다.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시행령을 폐기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 평화행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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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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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파도타기를하며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행진 시작 전,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가야할 길이 있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그는 "아무리 차벽으로 둘러쳐도, 아무리 많은 경찰이 막아도 진실과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들의 뜨거운 마음만 있으면 된다"며 "뜨겁게 함성을 지르며 나아가자"고 했다. 

시민들은 "와아"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곧바로 막혀버렸다. 이들은 차벽과 폴리스라인으로 에워싸인 통로를 뚫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또 다시 캡사이신을 맞으며 물러났다. 경찰은 현재 거듭 "지금 즉시 해산하라"며 살수차 사용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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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힌 뒤, 경찰의 해산경고방송에 부부젤라를 불며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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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차벽과 물대포로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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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 1일 오후 7시 30분]
차벽에 고립된 섬...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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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가 경찰 차벽에 막힌 채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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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들이 차벽 앞에 주저 앉은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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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족들이 차벽 앞에 주저 앉은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또한 도로와 경찰버스에 정부파산 등의 문구를 적었다.
ⓒ 선대식

"유가족이 가장 못 참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차벽에 에워싸인 안국역은 섬이 됐다. 오후 7시 30분 현재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모여 있다. 응급 차량마저 차벽에 막혀 돌아갈 정도로 경찰은 이곳을 철통방어하고 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저희 유족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며 "기다리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싫다"며 경찰에 강하게 항의했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마무리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세월호가 민주노총이고, 민주노총이 세월호이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유족들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며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조합원들도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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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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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던 중 경찰이 뿌린 캡사이신을 물로 씻어내고 있다.
ⓒ 유성호

한편 416연대는 이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1박 2일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그에 앞서 유족들은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도하려 했지만 아직 안국역 인근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민주노총은 곧 보신각 집회 현장을 정리한 뒤 세월호 유족들이 경찰과 대치 중인 안국역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경찰은 조합원의 행진을 막을 예정이어서 또 다시 물리적 충돌도 예상된다.

[2신: 1일 오후 5시 50분]
차벽에 막힌 유가족... 도심서 물리적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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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소화기를 뿌리며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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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소화기를 뿌리며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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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 유성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5시 45분 현재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 경찰과 대치 중이다. 이들은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찰버스에 밧줄을 연결, 잡아당기고 있지만 캡사이신에 계속 저지당하고 있다. 

앞서 민주노총은 오후 4시 반쯤 노동절 대회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에서 출발, 을지로 2가를 거쳐 종로 2가에 도착한 대열 가운데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안국동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경복궁 방향으로 진입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미리 쳐둔 폴리스라인에 막혀버렸다. 조합원들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경찰의 캡사이신 대량 발포에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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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100여 명이 경찰 차벽 앞에서 주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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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벽에 가로막힌 유가족들이 도로에 앉아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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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을 지나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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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를 지나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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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25분쯤 관훈동 쪽으로 이동한 조합원들은 다시 한 번 경찰버스 2대에 막혔다. 이들은 수차례 버스를 넘어뜨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이 캡사이신 등으로 대응하자 다시 인사동쪽으로 물러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조계사 방향에서도 경찰과 대치 중이지만 대부분 막힌 상태다. 삼청동으로 가려했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 역시 안국역 출구 근처에서 경찰에 막혔다. 

[1신 : 1일 오후 4시 43분] 
광장 메운 노동자들의 함성 "썩은 세상 우리가 갈아엎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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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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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메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외쳤다.

"재벌경제, 썩은 세상 노동자가 갈아엎자, 투쟁!"

이날 전국민주노동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은 서울광장 앞에서 2015년 세계노동절대회를 열었다. 지난 4월 24일 총파업에 이어 다시 한 번 결집한 노동자들은 강경한 대정부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1일 대회 행사명도 '끝내자 박근혜'였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싸우지 않고 무엇을 쟁취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입을 뗐다. 그는 "2015년 올해, 민생은 파탄났고 서민들과 노동자들은 못 살겠다고 한다"며 "지금 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부패한 정권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중의 총 결의로 박근혜 정권을 끝장내자"며 "침몰하는 한국사회를 구하기 위한 역할을 민주노총이 기꺼이 맡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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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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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행사의 문을 연 것도 "이 돈으로 살아봐"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몸짓패 공연이었다. 한상균 위원장 역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에 시민들도 박수를 보낸다"며 "앞으로 20년은 노동자로 살아가기 참 힘들 텐데, 가뜩이나 힘든 우리 아들딸에게 못난 아버지가 되지 말자"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는 민주노총뿐 아니라 한국노동총연맹(아래 한국노총·)도 주요 의제로 강조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날 한국노총을 대표로 참석한 이병균 사무총장은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양대노총은 총파업 투쟁으로 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포기하고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떨지 않고, 차별이 없어지고, 경제민주화로 재벌이 개혁되고 원·하청 노동자가 공생할 수 있을 때까지 (두 노총이) 함께 두 손 잡고 투쟁해야 한다"며 거듭 연대를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1일 노동절 대회에 약 5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후 4시 14분 현재도 서울광장에는 노동절 대회에 참여하려는 노동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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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5주년 세계노동절, 서울광장 가득 메운 노동자들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수많은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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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조혜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