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를 혁신위원장에 임명하자 24일자 아침신문들은 여당 개혁에 대한 기대감과 필요성을 나타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현 정부에 대한 냉혹한 심판이 있었다는 평과 달리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0일이 넘도록 혁신위원장을 구하지 못했고 여의도에선 ‘김 대표 입맛에 맞는 인사를 찾기 위해 늦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조선일보는 “인요한 위원장이 전권을 약속받는다 해도 여전히 당 1인자는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며 향후 당 혁신 과정에서 당내 기득권 반발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관련해 이날 상당수 아침신문 만평에선 인요한 혁신위가 제대로 여당을 개혁할 수 있을지 의심된다는 메시지를 그려냈다.
보도전문채널 YTN의 공공기관 지분 매각에서 유진그룹이 최종 낙찰자로 결정됐다. 이에 YTN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현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라는 평가를 내놨다. 여러 우려 속에서 조선일보는 소유 구조 변화가 오히려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법에서는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적극적 행위를 학대로 보고 처벌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법을 피해 새로운 방식으로 동물을 학대하고 학대방법을 공유하는 인터넷 공간까지 등장했다. 관련 대응이 필요한 실정이다.
▲ 24일 주요 아침신문 1면 모음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 진짜로 당 개혁할까
조선일보는 사설 <인요한 “국힘, 통합하고 의생하고 다 바꿔야” 관건은 실현>에서 인 위원장에 대해 “4대째 한국에서 선교·의료 봉사를 해온 미국 린턴가 자손으로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며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은 의료인이 집권 여당의 쇄신작업을 이끌게 됐다”고 소개했다.
인 위원장은 “국민의힘의 많은 사람이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많은 변화를 예고한다”며 “지금 국민의힘은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고 4년 동안 편하게 의정 생활을 해도 되는 영남권 의원들이 주축”이라고 했다. 이어 “큰폭의 인적 쇄신이 불가피하다”며 “국민의힘을 이 지경으로 만든 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이른바 ‘실세’들도 책임지고 희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 24일 조선일보 1면 사진기사
조선일보는 당의 개혁이 쉽지 않은 구조적 이유를 짚었다. 이 신문은 “국힘은 야당이 아니기 때문에 인 위원장이 전권을 약속받는다 해도 여전히 당 1인자는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며 “인 위원장의 통합, 희생, 변화 추진은 모든 고비마다 거센 당내 기득권의 반발을 부르게 된다. 결국 어느 순간에 대통령 앞에 이 반발과 갈등이 다 모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많은 정당의 혁신위가 중간에 좌초할 때는 이런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혁신위가 요식행위에 그칠 거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통령과 당 대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당내 기득권을 침해하지 못할 혁신위원장이 임명될 수밖에 없고 혁신을 추진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 위원장은 “(내) 권한이 정확하게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대표가 ‘전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조선일보는 “혁신위원장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는 통합, 희생, 변화를 추진하면서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라며 “당장 어려움을 모면하려고 흉내만 내는 혁신위인지, 아니면 이대로면 경제 사회 개혁을 해보지도 못하겠다는 위기감 속에 진심으로 하는 개혁인지가 드러나면 국민은 그것을 보고 내년 총선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이번 국민의힘 혁신위의 과제를 강조했다. 사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 ‘용산 출장소’ 오명부터 벗어야>에서 “여당이 이렇게까지 무기력·무능력할 수 있냐고 비판받는 것은 ‘친윤’ 지도부가 대통령실에 종속돼 윤 대통령에게 찍소리도 못하기 때문”이라며 “친윤·영남에서 벗어나 인재를 발탁할 수 있는 공천제도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혁신위가 쇄신의 한계를 정해놓거나 대통령실·당 지도부 입김에 휘둘린다면 그 결과는 볼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일부 언론에선 이날 만평에서 인요한 혁신위가 제대로 된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 24일자 중앙일보 박용석 만평
중앙일보 박용석 만평에선 인요한 혁신위가 민심과 동떨어졌다는 내용을 담았다.
▲ 24일 서울신문 조기영의 세상터치
서울신문 조기영의 세상터치에선 강서구청장 보선 이후 여당의 위기 분위기를 담았다.
▲ 24일 국민일보 국민만평
국민일보 국민만평에선 인 위원장이 실제 국민의힘 개혁 운전대를 잡은 것이 맞는지,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 지도부의 바람대로 흘러가는 건 아닌지 의문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 24일 경기일보 경기만평
경기일보 경기만평은 인 위원장의 혁신에 대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을 담았다.
▲ 24일 중부일보 최경락 만평
중부일보 최경락 만평에선 인 위원장을 의사에 비유해 윤 대통령과 김 대표에 대한 대수술을 진행할 수 있겠냐는 메시지를 담았다.
▲ 24일 매일경제 4컷만화 아이디
매일경제는 4컷만화 ‘아이디’에서 의사 출신 인 위원장이 당내 보신주의와 당내 비판을 내부총질이라고 비난하는 분위기를 수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YTN 지분 매각, 낙찰자 유진기업
YTN 지분 매각을 진행 중인 한전KDN과 마사회는 23일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로 유진그룹 지주사인 유진기업을 선정했다”고 했다. 유진그룹이 한전KDN(21.43%)과 마사회(9.52%)가 보유한 지분 30.95%를 인수하면 그동안 정부 산하 공기업이 소유하던 YTN의 첫 민간 최대주주가 될 전망이다. 유진그룹은 계약 체결 30일 이내 방송통신위원회에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을 신청하고 60일 이내 승인을 받으면 정식으로 YTN 새 최대주주가 된다.
▲ 24일자 경향신문 사진기사
이에 언론노조 YTN 지부는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라며 “언론 장악 하청업체는 YTN에 발 못 붙인다”고 했다. 이러한 반발 목소리와 함께 조선일보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계속되어온 YTN의 이른바 ‘공적 소유 구조’ 변화가 오히려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고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고 전했다.
기상천외한 동물 괴롭힘?
한겨레 <동물학대에 관한 슬픈 사실들>이란 칼럼에서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는 최근 동물보호단체에 취직했는데 기상천외한 동물학대 방식에 대해 알게됐다며 이를 소개했다.
칼럼에 따르면 ‘고양이 무단방사’라는 동물학대인데 멀쩡히 자기 구역에서 사는 길고양이를 포획해 수십 km떨어진 인적 드문 곳에 방사시키는 행위다.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준비 없이 극단적인 환경 변화를 겪으면 적응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적극적인 가해행위만 처벌하기 때문에 처벌하기 어렵다. 인터넷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안티캣맘 갤러리’에는 무단방사 행위에 경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합법이라는 주장부터 고양이 급식소 철거를 위해 지자체나 기관에 ‘민원 테러’를 하는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방 전 활동가는 칼럼에서 “군인권센터에서 근무한 지난 5년 동안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많은 사건을 통해 접했다”며 “사람에서 동물로 옮겨와 보니 또 다른 끔찍한 세계가 있다”고 한 뒤 “나보다 약한 생명체를 거리낌 없이 착취하며 이득을 얻고, 괴롭히면서 즐거워하고 전시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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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 속 한국의 선택] ③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이명선)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3.10.24. 05:01:55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지정학과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전쟁 피로감은 높아지고 무고한 피해도 늘어나고 있지만, 종전이나 평화 회복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이 전쟁을 거치면서 치열해진 미·중 전략 경쟁도 조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러·우 전쟁과 미·중 경쟁은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 사안을 포함해 세계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합리적인 선택을 도모해야 할 까닭입니다.
이에 창간 22주년을 맞아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외교광장 및 평화네트워크와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 속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토론회를 마련했습니다. 아래는 이날 토론회 발표를 맡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의 '전쟁과 신냉전의 시대, 새로운 게임 체인저를 찾아서' 발표문 전문입니다.
▲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이 '전쟁과 신냉전의 시대, 새로운 게임 체인저를 찾아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 글에서 '전쟁'은 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의미한다. 물론 이 전쟁 이외에도 지난 10년간 세계 도처에서 무력충돌의 빈도수와 이에 따른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고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면서 중동 정세도 크게 위태로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우 전쟁이 전 세계에 걸쳐 지정학적·경제적·이념적 파장을 크게 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유라시아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에 남한은 우크라이나를, 북한은 러시아를 지지하면서 전쟁의 파장이 한반도로도 뻗치고 있다.
또 '신냉전'은 주로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을 일컫는다. 양국 관계를 '신냉전'으로 규정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반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미중 관계가 1970년대 초반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경쟁과 대결 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에는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특히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양국과 그 동조국들이 '힘에 의한 평화'를 앞세우면서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냉전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조지 오웰의 통찰을 호출한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자신과 동맹국들의 생존을 절멸의 무기인 핵무기에 의존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미중 역시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적인 힘에 의한 생존과 권력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글의 핵심어인 '게임 체인저'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게임 체인저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 집단, 사건, 사고, 제품 등"이다.
여기에는 결과나 흐름을 좋은 방향으로 뒤바꿔 놓는 것도 있지만 그 반대도 존재하고, 결과나 흐름을 더더욱 예측 불허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또 예견된 게임 체인저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것도 있고, 이미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지만 외면·무시당하는 것도 있다. 아울러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것이 '나비 효과'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전쟁과 신냉전의 시대에 새로운 게임 체인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되고 여기에 헤즈볼라, 이란, 미국도 가세하면서 확전이 일어나면 글로벌 지정학의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또 내년 11월에 치러질 미국 대선과 중간선거도 중대 변수이다. 트럼프의 승리 여부, 상하원 의석의 변화, 선거 이후 미국의 정치사회적 대혼란의 수습 여부 등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제정세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냉전 시대 비동맹운동에 비해 영향력과 위상이 더욱 커진 '글로벌 사우스'가 제3지대를 형성해 러-우 전쟁 및 미중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이다.
'자유주의 연대'를 주창하고 있는 한국의 윤석열 정부와 '반미 연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의 선택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 남북한 상호간의 적대성과 한반도 군비경쟁이 역대급으로 치닫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의 핵심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도 남북한의 갈라치기 외교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동맹에 '다 걸기'를 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선택과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선택은 미중 전략 경쟁과 러-우 전쟁의 향방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되고 있다. 한국이 이미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올라섰고, 북한 역시 핵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전쟁과 기우에서 현실로 다가서고 있는 신냉전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게임 체인저는 존재할까? 돌이켜보면 냉전 시대의 게임 체인저는 핵무기였다. 핵무기의 등장과 경쟁은 냉전을 격화시킨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절대무기에 생존을 의지할수록 모두를 파멸시킬 위험도 커진다는 자각도 일어났다. 이러한 자각은 '핵무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는 각성으로 이어졌고 이는 총성 한방 울리지 않고 냉전을 종식할 수 있었던 지혜로 작용했다.
이제는 핵무기를 비롯한 군비경쟁의 위험을 직시하면서도 '기후위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기후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져야 할 시기이다. 강대국과 주요국을 향해 갈수록 거주 불능의 땅이 되고 있는 지구를 둘러싼 허망한 경쟁과 대결을 멈추고 살만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자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이다.
전쟁과 군비경쟁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여러 국가들이 상대를 위협이자 적으로 삼아 전쟁과 군비경쟁에 여념이 없는 사이에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체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협이 진짜로 나타나고 있다. 바로 기후위기다.
그런데 전쟁 및 군비경쟁과 기후위기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군사 활동 자체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또 전쟁은 물론이고 지정학적·전략적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후위기 대처에 필수적인 국제협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위기를 넘어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기후변화가 국제분쟁의 주요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전쟁과 신냉전 시대에 기후위기를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악순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나날이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보다 못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3월 "화석연료 중독이야말로 상호확증파괴(MAD)에 해당된다"며 인류가 "몽유병자처럼 기후재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올해 7월에 전 세계 곳곳이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폭염으로 몸살을 앓자 이제는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과 신냉전, 그리고 이 와중에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군비경쟁은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각종 군사 무기와 장비를 만들고 이것들을 운용·연습·훈련·작전하는 과정에서, 지구촌 곳곳에 퍼져 있는 군사 시설과 부대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또 분쟁과 전쟁, 그리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계 각국의 군사 활동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5-6% 정도를 차지한다는 분석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민간 분야의 항공(1.9%), 해운(1.7%), 철도(0.4%), 파이프라인(0.3%)을 합한 것보다 많다. 또 세계의 군사 활동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국가 단위로 환산하면, 중국, 미국, 인도에 이어 세계 4위에 해당된다.
이처럼 군사 활동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군용기, 함정, 전투차량 등 주요 무기와 장비가 대부분 다량의 화석 연료로 기동되고 연비도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개 자동차의 연비는 30mpg(휘발유 1갤런 당 운행할 수 있는 마일) 정도이다. 이에 반해 전투용 지프차(험비)는 자동차의 5분의 1 수준인 6mpg, F-35 전투기는 50분의 1인 0.6mpg, B-2 전략폭격기는 100분의 1인 0.3mpg에 불과하다.
다량의 연료 소비와 낮은 연비는 다량의 탄소 배출로 연결된다. 1회 작전 임무 수행시, 전투용 지프차는 260 kgCO2e(이산화탄소 환산량), F-35는 27,800 kgCO2e, B-2는 251,400 kgCO2e를 배출하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또 폭등하는 군사비는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수반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미 많은 탄소를 배출했고 또 현재도 그러한 선진국들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개발도상국들의 동참도 반드시 요구된다.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저탄소형, 혹은 탄소 제로형 인프라와 기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자체적으로 이에 필요한 재원과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다.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의 기후협약 이행을 위해 매년 10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10-2016년까지는 500억 달러 안팎을 맴돌았고 그 이후에도 800억 달러 수준이었다.
이처럼 기후 기금 재원 조달은 크게 미달된 반면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주도해온 세계 군사비는 크게 높아지고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집계한 세계 군사비의 흐름을 보면, 2020년 화폐 기준으로 2000년대 후반에 1980년대 후반기를 넘어섰고, 2021년에는 사상 최초로 2조 달러를 돌파했다.
또 2022년 세계 군사비는 2조 24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세계 군비지출이 가장 높았던 1980년대 후반보다 약 6000억 달러가 많다. 그런데 앞으로 세계 군사비 상승폭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세계 양대 군비지출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있고, 주요 국가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50여 명의 사람들은 2021년 12월 "인류를 위한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세계 각국이 5년 동안 매년 2%씩 군사비를 줄이고 이 가운데 절반을 전염병, 기후변화, 극한 빈곤 해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인 제안"에 호응하는 나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군비경쟁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고 장기화·확전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국제협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대표적으로 세계 양대 탄소배출국이자 군비지출국인 미국과 중국은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면서도 기후변화 대처에는 협력을 다짐했지만 아직까진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 대응과 군비경쟁은 양립할 수 없다. 인류가 '냄비 속의 개구리'로 전락하는 신세를 모면하려면 냄비를 가열시키고 있는 군비 활동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 결단 속에서는 지금까지 사각지대로 존재해온 국가안보와 군사 분야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국립대구과학관 실내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기후위기가 찾아온 지구를 나타내는 SOS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군축은 기후위기 대처에 얼마나,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대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 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 온도 상승폭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지나면 돌이키기 어렵다. 섭씨 1.5도, 혹은 2.0도는 이를 대표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인류의 안전 및 생태 보전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선'으로 제시한 수치이다. 각국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대비 2도, 더 나아가 1.5도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와 그 이후 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한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2019년 배출량 기준으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84%를 줄어야 하고 이에 앞선 2030년까지는 43%를 줄어야 한다.
또 하나는 변화되는 기후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초창기 적응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기후위기가 몰고 오는 영향이 선진국을 포함하여 전 지구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적응에 대한 논의 또한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홍수, 가뭄, 태풍 등 극한 기후가 빈번해지고 빙하와 만년설 해빙과 해수면 상승이 빨라지면서 변화된 기후환경에 대한 적응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군비통제와 군축은 이러한 기후위기 대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우선 군사 활동의 축소는 탄소 배출의 감축으로 이어져 기후위기 '완화'에 기여하게 된다. 2022년 기준으로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이 전체 탄소 배출의 5.5%를 차지한다면, 이는 연간 약 27.5억 톤에 해당된다.
이에 반해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탄소예산'은 얼마 남지 않았다. 탄소예산은 상승하는 지구의 기온을 특정 온도 이내로 붙잡아두기 위해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의미하는데, '1.5도 이하'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예산은 2500억 톤밖에 남지 않았다. 매년 380억 톤을 배출한다고 가정하면 7년 이내에 바닥나는 셈이다.
그런데도 전 세계의 군사 활동은 나날이 증가 추세에 있다. 이를 감안해 2023년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30억 톤이라고 가정해보자. 또 2024년부터 2030년까지 7년간 군사 부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2023년 가정치(30억 톤)에서 10%를 줄인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하면 7년 동안 군사 부문에서만 21억 톤을 줄일 수 있다. 20%를 줄이면 감축량은 42억 톤이 된다. 42억톤은 전체 탄소예산의 6%에 근접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은 기후위기 완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군사 활동은 국방비 책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만큼, 국방비 감축과 감축한 예산의 기후위기 대처 투입은 '완화'와 '적응'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 국방비 감축은 해당국의 탄소 배출 감축 및 기후 위기 적응 예산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또 개발도상국들에게 지원하는 기후금융 규모를 늘릴 수 있어 이들 나라의 탄소 배출 저감형 산업구조로의 재편 및 기후변화 적응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2020년에 책정된 기후 재원(완화와 적응 포괄)과 실효적인 대처를 위해 필요한 추가적인 재원, 그리고 글로벌 국방비 감축 효과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산하 재정상설위원회의 <5차 기후재원 흐름 보고서 (2022)>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기후 재원 규모는 8170억 달러이다. 이는 2020년 세계 GDP의 약 1% 수준이다. 이에 반해 지속가능발전 국제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ustainable Development, IISD): IISD는 기후 완화 및 적응에 필요한 금액을 세계 GDP의 약 5%에서 7%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기후대응 예산을 늘리고 있어 이 격차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크게 부족한 현실이다.
부족한 부분은 매년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세계 국방비의 절감을 통해 상당 부분 채울 수 있다. 가령 세계 국방비를 2024년부터 2030년까지 7년 동안 연 2조 달러 수준으로 묶어두고, 이를 예상되는 국방비 증액과 비교해보자.
2022년 세계 국방비가 2조 2400억 달러였고 올해 세계 국방비 증액을 감안하면 2023년 세계 국방비 총액은 2조 300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이다. 또 2024〜2027년 세계 국방비 증가율을 2%로 가정해보면, 7년간 세계 국방비의 합계는 17조 4410억 달러가 되고 7년간 순 증가분은 3420억 달러가 된다.
이에 반해 2024년부터 7년 동안 세계 연 국방비가 2조 달러로 동결된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 7년 동안 절약할 수 있는 재원은 3조 4410억 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절약한 재원의 절반을 기후위기 대응에 사용한다면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 수 있다.
불가능한 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과거 사례를 복기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중후반 세계 군사비는 1조 6000억 달러였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1조 1000억 달러까지 떨어진 바 있기 때문이다. 군비 축소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도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군비통제와 군축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기후위기 등 글로벌 복합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은 그 당위성에 비해 현실성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 군사 분야 탄소 배출량 보고를 제외키로 했고 2015년 파리협정에선 의무사항이 아니라 자발적 선택사항으로 담겨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안보 예외주의는 기후위기 대처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군비 축소를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 대응 예산을 늘리자는 주장에 동의할 국가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명확하다. 기후위기 대처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군축을 통해 평화와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의 역할과 분발이 전제되어야 한다. 반핵 운동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핵무기를 '금기의 무기'로 만들고 냉전을 촉발·격화시킨 무기를 냉전을 종식시킨 무기로 둔갑시킨 데에는 세계 시민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핵무기를 만든 핵물리학자들 가운데 일부가 반핵 투사로 변신했고, 의사와 과학자들이 핵실험과 핵무기 사용이 얼마나 인체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 밝혀냈으며, 평범한 시민들이 핵전쟁의 공포에 맞서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반핵의 물결로 넘실거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글로벌 시민의 힘이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미국의 레이건 등 국가 지도자들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발판으로 삼아 이제는 '기후위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기후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를 결집해 각국 정부와 유엔 등 국제기구 대한 설득과 압박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군축을 통한 기후정의 실현에 나설 수 있는 행위자들을 찾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단번에 군비 축소에 합의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선도국의 역할을 떠올려볼 수 있다. 우선 세계 양대 탄소배출국이자 경제대국이며 군비지출국가인 미국이나 중국의 솔선수범에 나서야 한다. 2023년 미국의 국방비는 약 9000억 달러이고, 중국의 국방비는 약 3000억 달러이다. 이 가운데 10%를 줄여 기후위기 대응 재원으로 전환한다면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 미중 가운데 어느 나라가 먼저 이러한 선택을 한다면, 상대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냉정하게 볼 때, 이상론에 가까울 수 있다.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고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도 대중 견제심리가 매우 강한 미국이 솔선수범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중국은 역대 탄소 배출량이 미국보다 현저하게 적은 반면에 국방비는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먼저 나서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에 대한 설득과 압박의 수위는 계속 높여야 한다. 군축을 통한 기후위기 대처의 선도국이 되는 것이 배타적이고 악의적인 경쟁을 선의의 경쟁으로 전환시키고, 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이라는 점을 설파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의 민심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나은 방법은 미중이 협력해서 두 나라가 함께 나서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중이 군비경쟁을 벌이면서 기후협력을 도모하는 것은 조지 오웰이 말한 '이중사고'(double-think)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군비통제와 군축 협력과 기후협력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때마침 바이든 행정부는 11월 경 미중 정상회담을 희망하고 있고,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중미가 협력해야 할 이유는 천 가지가 넘는다"며 양국의 협력에 인류운명의 향방에 달려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미중 정상회담을 촉구하면서 핵심 의제로 양국이 군비통제를 통해 긴장완화와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일국적, 양자적 차원을 넘어 다자적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포함된 다자주의로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그룹과 G20을 떠올려볼 수 있다. 경제선진국들의 모임인 G20이 지구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총량의 75-80% 수준이다. 또 G20 소속 국가들은 국방비 지출에 있어서도 대부분 상위권에 들어 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G20이 군사 활동 축소를 통해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고 국방비 감축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 재원을 마련키로 결의하면 큰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주도해 '군축을 통한 평화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결의'를 채택하는 방법도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크게 두 가지 특권적 지위를 유지해왔다. 하나는 공식적인 핵보유국이라는 지위이고, 또 하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이다.
이러한 지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국제 평화와 안정을 지킬 책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가 국제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임이사국들은 이에 눈감고 있다.
더구나 이들 5개국은 지구 온난화에 가장 큰 책임을 갖고 있다. 5개 상임이사국들은 1750년부터 2021년까지의 탄소 배출에 있어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압도적인 1위이고, 중국은 2위, 러시아는 3위, 영국은 5위, 프랑스는 8위이다. 또 이들 5개국의 2022년 국방비 합계는 약 1조3,700억 달러에 달해 세계 국방비 총액의 60%에 육박한다.
이러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특권과 현황, 그리고 책무를 고려할 때, 군비 조절을 통한 기후위기 대처 기여에 P5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가령 P5가 2022년 대비 국방비를 10% 줄이면, 연간 1370억 달러를 기후위기 대응 예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모습. ⓒAP=연합뉴스
미국·영국·프랑스와 중국·러시아가 군비경쟁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결의는 상호호혜의 맥락도 품고 있다. 또 유엔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의 동참도 이끌어내는 데에 효과적이다.
인류는 전쟁과 신냉전, 그리고 이 와중에 격화되고 있는 군비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상호간 경쟁심, 적대감, 배타성을 품고 있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다투다가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친다고 한다.
오늘날 외계인의 침공에 해당하는 실존적 위협은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기후위기이다. 실마리는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이기에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흐름과 결과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핵무기를 호출해본다. 핵무기와 기후위기는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공통점이 이를 대표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도 있다. 핵전쟁은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다. 반면 기후위기는 '1.5'를 넘어서는 순간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없다. 하여 이제는 서로를 겨냥한 총을 내려놓고 1.5도라는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군축의 종말 시대를 딛고 군축을 통해 평화와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대장정에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끝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함의도 언급해보고자 한다. 한반도는 기후변화 취약 지역 가운데 하나이자 군비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또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군사 문제에 있고 그 비중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남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도 매우 희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비통제와 군축을 통한 평화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노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군비경쟁이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지구적 차원의 각성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이 힘을 얻으면, 한반도에서도 '쌍중단', 혹은 '쌍축소'를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10.29이태원참사 1주기 대전 시민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추모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박가영 학생이 다녔던 목원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10.29이태원참사 1주기 대전시민 분향소’가 목원대학교 학생회관 앞에 마련되고, 분향소 옆에서 ‘10.29이태원참사 1주기 대전 추모제’도 진행되었다.
분향소가 목원대에 마련되고 분향소 옆에서 추모제까지 진행된 이유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박가영 학생이 참사 당시 목원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이다. 분향소는 10월 23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운영되었고, 추모제는 오후 4시 시작되었다.
김병국 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이 10.29이태원참사 1주기 대전 시민 추모제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목원대를 졸업하고, 목원대에서 이사장을 역임했던 김병국 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추모사에 나서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사고 발생 후 대처 과정을 낱낱이 밝혀서 책임자를 처벌하고 국민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데,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투쟁해야 한다”고 말한 뒤, “후배를 비롯한 이태원 참사를 당하신 가족들을 위로하고 고인들께 편안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목원대에 재학 중이 이해천 학생이 10.29이태원참사 1주기 대전 시민 추모제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목원대에 재학 중이 학생도 추모사에 나섰다.
이해천 학생은 ‘우리는 이제 자녀가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목소리 내는 이유는 여러분들의 자녀가 우리 자녀와 같은 참사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던 유가족들의 발언을 언급하며, “저는 유가족분들이 말씀하신 자녀가 저를 포함한 우리 목원대학교 학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목원대 학생들이 안전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에 유가족분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드리고, 영원히 기억하고 반드시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눈물이 또 쏟아진다 같이 한 추억이 떠올라 간절해지는 짙어지는 이 마음을 어찌 해야 할지 아무리 힘들어도 내 곁에 네가 있었으면 속삭여주는 사랑한단 말 한번만 들을 수 있다면
세상에 ‘사랑해’라는 말이 이토록 슬프게 들릴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정경희 씨가 부른 노래에 평생을 맘껏 사랑해도 모자랄 자녀들을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현실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노래를 부르던 가수도 벅차오르는 감정에 노래를 하며 잠시 울먹였다.
마당극단 좋다의 정경의 배우가 추모노래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추모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추모제에는 이태원 참사 충청지역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목원대에 재학 중이었던 故 박가영 학생의 부친, 박계순씨는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저희 이태원 유가족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며,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려면 특별법이 통과가 돼야 한다”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故 박가영 학생의 모친, 최선미 씨는 “졸업식에 와서 정말 축하해 주고 싶었던 학교였는데, 추모제를 하면서 찾게 되어 기가 막히다”며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무질서함으로 인해서 별이 된 아이들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저희는 그곳에 왜 갔는지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왜 돌아오지 못했나를 물어봐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1주기입니다. 2주기, 3주기, 4주기, 우리 가영이를 기억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 안전에 대해서 기억해 주시고 우리나라가 안전해지는 그날까지 학교가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故 박가영 학생의 부친 박계순 씨가 유가족 발언 도중 말을 잠시 잇지 못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박가영 학생이 다녔던 목원대 학생회관 앞에 10.29이태원참사 1주기 대전 시민 분향소가 설치되고 분향소 옆에서 추모제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