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0일 토요일

이천재선생 <미국이 지휘할 수 없는 시대 오고있다>

  • 이천재선생 <미국이 지휘할 수 없는 시대 오고있다> ... 이어 코리아연대탄압규탄 행진!
  • 임진영기자
    2016.04.30 01:14:52

  • 코리아연대(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는 29일 오후5시30분 광화문 미대사관앞에서 <사드배치반대·북미평화협정체결·개성공단폐쇄철회·박근혜정권퇴진>을 촉구하는 12번째 거리강연을 개최했다.

    이날 연사로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이천재고문이 나섰다. 

    이천재고문은 <마치 망나니춤 같은 공포의 전쟁연습이 내일이면 끝난다. 자그마치 30만이 동원된 지상최대의 핵전쟁연습이 두달이나 진행됐다.>면서 <이것은 우리 자존심을 무시하고 미국의 패권주의를 보여준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어 <지금 코리아반도에서 핵전쟁을 할 수 없다는 오바마의 솔직한 고백은 한국사람의 안전 때문이 아니라 북의 핵능력 때문>이라며 <코리아반도에서 핵전쟁을 하면 미국본토가 잿더미로 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게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세가 여기까지 왔으면 적어도 남측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전쟁할 수 없는 미래가 어떻게 발전할지 자기견해가 나와야 한다. 그게 통치자다.>라며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남북이 적대적관계가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인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심지어 국제사회에 돌아다니며 북의 비핵화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북의 비핵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어떻게 남과 북이 평화를 만들고 미래를 만들 것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고문은 <1950년 전쟁때부터 북을 핵으로 공격해야 한다며 미대통령은 핵카드를 들었다놨다 해왔다. 적어도 유엔안보리에서 북이 수소탄으로 무장했다고 하면 유엔총회에서는 핵으로 무장하지 않은 나라는 핵으로 협박해서는 안된다라는 내용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비핵화돼있는 국가에 핵공격한다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서 북이 핵보유국이 된 것>이라고 전했다.

    계속해서 <북의 핵능력이 미국놈들로 하여금 코리아반도에서 전쟁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나온 것은 현실적인 균형이 무너지는 현실적 조건에서 나온 것이지 미국사람들의 인도주의적 양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고문은 또 남북간의 문제는 철두철미하게 마주 앉아야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어도 남북은 마주 앉아야 한다. 남과 북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했던 소중한 기억은 김대중대통령이 북을 방문해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한 때이고, 노무현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서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합의한 때>라면서 <남과 북이 마주앉기만 하면 어쨌든 남북평화와 민족문제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 합의와 가능성이 열린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커다란 역사의 큰길을 억지로 외면하고 남북대결로 계속 전쟁의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기회만 있으면 북을 치려한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런 <대통령>이 청와대를 지키게 하는 것도 그렇지만 하는 짓도 시원치 않다.>며 <백성들이 경제 때문에 어려워하고 있는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 비박, 친박 이라는 말만 한다. 적어도 어떻게 잘해야 훗날 역사에서 평가를 받을 것인가 생각을 해야 대통령>이라고 힐난하고, <<대통령> 하나를 잘못 둔 것은 우리모두의 치욕이다. 이것이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 백성은 전부, 주머니가 텅텅 비어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맨날 하는 이야기가 북비핵화>라고 꼬집었다.

    계속해서 <억압과 통제, 백성의 입을 틀어막는 독재시대인 70~80년대 역사가 우리모두를 바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미국이 더는 이 코리아반도를 지휘할 수도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미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변화를 개척하고 추동할 수 있는 그 주체는 우리다. 이 시대의 주인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리강연이 끝난후 코리아연대는 <코리아연대회원구속규탄·공안탄압중단·박근혜정권퇴진>을 촉구하는 행진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자주통일·민주주의 위해 헌신한 코리아연대 이동근회원 석방하라! 보안법 철폐하고 보수대 해체하라! 박근혜파쇼폭압정권 퇴진하라!>·<지영철석방! 박근혜퇴진!>·<이동근석방! 박근혜퇴진!>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코리아연대탄압중단!>·<국가보안법철폐!>·<북미평화협정체결!><미군떠나라!> 등의 구호가 적힌 가로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미대사관앞을 출발해 세월호광장을 거쳐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코리아연대 지영철·이동근회원은 지난 28일 열린 국가보안법위반혐의에 대한 1심선고재판에서 각각 징역2·1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이동근회원은 법정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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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지율 0.76% '백 년 정당'입니다!"

"우리는 지지율 0.76% '백 년 정당'입니다!"
2016.05.01 09:31:24
[이 주의 조합원] 녹색당의 '국회의원 후보' 하승수 조합원
이번 20대 총선은 민심의 여당 심판이라는 이야기를 낳았다. 이 극적인 이야기에 묻혀 주목받지 못한 이야기도 있다. 진보 정당의 부진이다.

프레시안 협동조합에는 (당연하게도) 진보 정당에 관심을 가진 조합원이 많다. 특히 프레시안 조합원에게 친숙한 인물을 만나봤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이번 '이 주의 조합원' 코너의 주인공이다.

하승수 조합원은 공인회계사로 일하다 1998년부터는 변호사로도 일했다. 이후 그는 시민운동에 눈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초대 소장을 맡았고, 이외 숱한 시민단체를 다지는데 힘을 보탰다. 그가 본격적으로 삶의 궤도를 바꾼 건 녹색당 창당 과정에 합류하면서부터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의 가장 신생 진보 정당인 녹색당은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창당했다. 그러나 득표율 저조를 이유로 정당 해산이 결정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새로 창당했다. 하승수 조합원은 2년 임기인 녹색당의 공동운영위원장을 연임 중이다. 녹색당은 선출직인 공동운영위원장과 공동정책위원장을 남녀 동수 2인으로 구성하고 있다. 

탈성장, 생태, 여성 인권 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당이라서 그럴까. 우리나라 어느 정당보다 젊고, 여성 비중이 크다. 현재 녹색당 당원의 평균 연령대는 만 40~41세 수준이고, 특히 서울의 경우 30대다. 당원 중 여성 비율이 55% 정도 된다.

하승수 조합원은 프레시안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2005년부터 <프레시안> 지면에 소중한 글을 여럿 실은 대표 필자다. 무엇보다 그는 프레시안 협동조합 전환을 승인한 발기인이자, 초대 소비자 조합원 대표 이사이다. 이번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서울시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 이사직을 관뒀다. 

'국회의원 후보 하승수'로서 직접 선거에 참여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25일 서울 종로구 녹색당사를 찾았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18만2301표를 받아 0.76%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보다 0.01%포인트 오른 결과지만, 목표였던 원내 진입에는 실패했다. 진보 정당이 하나같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기에, 조금은 우울한 마음일 터다.

"선거 제도 개혁이 정말 중요해요" 

하 조합원에게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얻은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물어봤다. 녹색당은 광화문에 천막 선거사무소를 만들어 선거 운동을 진행했다. 하 조합원은 '하승수' 홍보보다 녹색당 정책 홍보를 하는데 더 집중했다. 

그는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직접 시민을 만나면서 민심이 어떠했는가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정치에 관한 불신, 혐오가 정말 강하더라고요. 보통 투표는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표를 준다'는 식으로 진행되리라 생각하기 쉬운데,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어떤 사람, 어떤 정당이 싫어 투표한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새누리당 180석' 이야기가 안 믿기더라고요." 

다만 그만큼 한계도 절실히 느꼈을 터다. 녹색당의 당 색은 녹색이다. 안철수 의원의 신당 국민의당과 같다. 실제 많은 시민이 "안철수당 아니냐"고 물어 당황하는 당원이 많았다고 했다. 소수 정당으로서는 어려운 대목이다. 

선거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고 물어봤다. 아픈 대목이다.

하 조합원은 "최소 1~2%는 얻으리라고 기대했는데, 그게 안 됐으니 아쉽다"며 "선거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당은 현재 선거 결과 평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5월부터는 각 지역을 돌며 상향식 의견을 받고, 이를 당 차원에서 최종 정리할 예정이다. 

다만 이번 선거로 얻은 것도 많다고 하 조합원은 강조했다. 무엇보다 당원이 늘어났다. 선거 기간에만 2500여 명이 새로 당원으로 가입했다. 조만간 당원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당원 사이에서 당에 관한 자긍심이 커졌고, 현실 정치에 관한 관심이 더 커진 것도 긍정적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를 치르며 당 내에서 선거 제도의 불합리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했다. 하 조합원은 인터뷰 중 이 부분을 가장 강조했다.

"1인 2표제를 실시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유권자가 많아요. 그러니 정당 투표에 집중하는 녹색당은 더 힘들죠. 이런 간단한 사실을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문제죠. 이상한 광고나 만들어서 논란만 일으키고 말이에요." (웃음)

선거 제도 개혁 이슈는 앞으로도 녹색당이 관심 가질 문제가 됐다. 녹색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유권자의 표를 최대한 반영하는 선거 제도 개혁을 주장해 왔다.

"정치에 상상력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원내 정당 진입 장벽으로 3%를 정해뒀는데, 이게 곧 철칙은 아니거든요. 네덜란드에서는 이 비율이 0.67%에 불과해요. 세계에 다양한 선거 제도가 있는데, 우리는 이런 논의를 너무 안 해요. 그러니 돈 없는 사람은 선거에 나갈 수 없고, 공천 못 받으면 선거에 나가기 힘든 구조가 이어지죠."

▲하승수 조합원. ⓒ프레시안(최형락)
"녹색당은 다릅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중 적잖은 이는 소수 정당이 연대하거나, 합당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이 합치면 원내에 더 많은 진보 정치인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다. 

하 조합원은 곧바로 "워낙 많이 받은 질문"이라며 녹색당이 따로 필요한 이유를 두 가지로 들어 설명했다. 

우선, 당의 지향점이 다르다. 녹색당은 생태주의 정당이다. 탈핵, 탈성장이 당의 지향점이다. 소득 주도 성장을 통해 노동자 권익을 옹호하겠다는 '친성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이념을 가진 정당이다. 

"저는 '탈성장'을 국가 경영 목표에서 '경제 성장률 몇 퍼센트' 개념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경제 성장률 올리는 게 우리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경제는 중요하지만, 경제 성장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탈성장을 이야기하면 다른 진보 정당 관계자도 '녹색당은 따로 가는 게 좋겠네요' 하세요." (웃음) 

당의 운영 방식도 다르다. 녹색당은 당내 민주주의 관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도입된 제도가 대의원 추첨제다. 다른 정당과 녹색당을 가장 차별화하는 요소다.

녹색당은 평균적으로 당원 30명 당 한 명의 대의원을 뽑는다(지역, 성별, 연령별 안배로 정확한 대의원 대상을 정한다). 이들은 제비뽑기로 뽑혀 임기 1년의 대의원직을 지낸다. 당원이라면 누구나 현재는 198명인 대의원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심지어 광주녹색당, 전남녹색당의 경우 운영위원장도 제비뽑기로 선택한다. 이와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사견입니다만, 저는 우리나라 시민운동 사회, 진보 진영에 엘리트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전문가주의가 남아있다고 봅니다. 녹색당은 이를 탈피하고자 합니다. 정치란 몇몇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가치와 지향을 공유하는 당원이라면 누구나 녹색당 운영에 참여하고, 누구나 선거에 나갈 수 있어야죠. 프레시안 협동조합도 대의원 운영에 추첨제를 고려해보는 게 어떨까요?" 

하 조합원은 녹색당이 필요한 이유로 후쿠시마 사고를 꼽았다. 우리나라에 녹색당이 생긴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기존 정치에 관한 생각을 바꿨어요. 우리가 아무리 정치와 따로 떨어져 산다고 해도, 국가 정치가 풀뿌리를 뒤흔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핵발전소는 국가 정치에 떼놓을 수 없는 문제잖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코너의 공통 질문인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을 놓칠 뻔했다. 하 조합원은 프레시안이 "지금처럼 꿋꿋하게 계속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립 언론은 사회의 공기와 같은 존재"라고 비유했다. 있을 때는 공기처럼 필요성을 모를 수 있지만, 없으면 답답한 존재. 녹색당도 어느새 우리 사회의 공기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큰 착각일까.

마지막으로 녹색당 홍보를 한 마디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백 년 가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잖아요? 녹색당은 진짜 백 년 가는 정당입니다. 백 년을 고민해야 할 이슈를 의제화하고, 진짜 백 년 가는 정당을 만들자는 보통 사람이 모인 정당입니다. 그러니 프레시안 조합원 여러분도 관심 많이 가져주세요."

북, 네 쌍둥이 치료 보도를 보고

북, 네 쌍둥이 치료 보도를 보고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4/30 [23:1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5개월이 넘게 평양산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건강한 몸으로 지난 4월15일 태양절날에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 네쌍둥이들     © 자주시보

▲ 네 쌍둥이는 최소 4kg에서 6kg 정상 체중을 찾아 청진시 육아원으로 떠났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연합뉴스는 17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로동신문이 지난 16일 '비약하는 조국에 기쁨을 더해준 네쌍둥이 소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5개월여 동안 평양산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네쌍둥이가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주석 탄생일, 4월15일)에 건강히 퇴원해 비행기를 타고 귀가했다”고 전한 소식을 보도하여 본지에서도 이를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

관련자료를 검색해 보니 유튜브 등에 보도 내용이 동영상으로도 올라와 있었다. 아이들이 전형적인 조선인 골격의 아버지에다가 고운 어머니를 많이 닮아 한결같이 곱고 예뻤다.

네쌍둥이의 어머니는 리봄향은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교동 22인민반에 거주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말 도의 산원에서 네쌍둥이 임신부로 진단받은 즉시 헬기도 아닌 비행기로 평양산원에 입원, 출산일을 포함해 퇴원까지는 무려 7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다. 갈 때 타고가는 비행기를 보니 작은 세스나가 아니라 거센 기류에도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대형항공기였다.

지난해 11월 태어난 네쌍둥이는 당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딱 봐도 성별이 여아들로 같고 닮은 것을 보니 일란성 넷쌍둥이인데 엄마의 몸은 날씬이 미녀였다. 얼굴은 갸냘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태어났을 때 상태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치료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만 300여 차례, 치료일 160일, 전담 의사와 간호사 8명이 밤에도 항상 곁에서 돌보며 치료를 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검사, 기구봉사, 실험실 검사에 친어머니, 친혈육 못지 않은 정성을 기울여준 간호사와 의사들... 

결국 퇴원하는 날 어머니는 눈물을 터트리며 뜨겁게 말했다. "정말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친혈육 친언니들이 되어 따뜻이 보살펴주셨습니다. 은혜에는 보답이 따라야 합니다. 당의 참된 딸들로 굳세게 키워나가겠습니다."
아버지도 물기어린 굳센 음성으로 "고마운 우리 사회주의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네쌍둥이 부모는 선군조선의 효녀로 훌륭히 키우겠다"며 네쌍둥이의 이름을 각각 김선은, 김군은, 김효은, 김녀정이라고 지었다

북에서는 셋쌍둥이 넷쌍둥이는 네살(우리나라 5살)까지 전적으로 국가가 맡아키워준다. 북의 방송보도를 보니 청진시에서는 벌써부터 네쌍둥이 맞이에 흥성이고 있다며 책임자가 퇴원하는 평양산원에까지 달려와서 어서 데려다가 돌보고 싶다며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아마 애육원 육아원 관계자인 것으로 보였다.

▲ 세쌍둥이 후원을 부탁     © 자주시보

우리 보도를 보면 점점 출산율이 떨어지고 결혼 연령도 늦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남녀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혼자살기도 힘든데 가족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다는 것이며 여성들은 무보수 가정부로 전락하기 싫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슷한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었다. 결국 인구의 노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경제 장기 침체는 백약이 무효임은 아베노믹스의 실패로 다시 증명되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 경제가 북보다 수십 수백배 높다는 통계수치가 있는데 왜 남측이라고 얼마되지 않은 네 쌍둥이 세쌍둥이에 대한 지원을 북만큼 못하겠는가. 국회의원들의 의지의 문제라고 본다.
물론 지금도 편부모 아이들에 대한 양육비를 나라나 지방에서 지원해주는 등 날로 보육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혼부부들은 육아를 큰 부담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치료가 힘든 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이나 셋, 넷 쌍둥이 부모들은 현재 국가의 지원만으로 턱없이 부족하여 언론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후원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새로 국회의원들도 뽑았으니 법을 다듬어 다른 복지도 늘력가야 하겠지만 정말 아이들에 대한 건강복지, 교육복지, 학교급식 등 영양공급복지만은 가장 우선시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신혼부부들이 마음 놓고 아이들 낳아 기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엠알아이도 첫번째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만 두번째부터는 중증환자도 자비부담이라는 사실을 최근 본사기자 치료과정에 알게 되었다. 이런 의료복지에서는 육아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전면적인 육아복지 덕에 줄어들던 출산율이 다시 오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라고 못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는 국방비 비리를 근절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회복시켜 한반도의 위기를 줄여 국방비 자체를 줄여갈 방도를 찾는 것도 꼭 필요할 것이다.

대통령 '직접 사과' 이끌어낸 집회, 정말 고맙습니다


16.04.30 19:31l최종 업데이트 16.04.30 19:31l

기사 관련 사진
▲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 2008년 6월 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당시 나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복학생이었다.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대학 도서관은 늘 학생들로 북적였다. 전공이 정치학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TV와 신문, 인터넷으로만 보던 촛불집회에 막연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눈앞의 시험이 더 급했다. 

하지만 6월 10일에 대규모 집회가 치러질 것이란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는 무엇인지도 모를 조바심에 시험공부도 그만둔 채 2008년 6월 10일 오후, 무작정 광화문으로 나갔다. 

처음 나가본 집회 풍경은 놀라웠다. 종로부터 광화문까지, 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물결이 모든 거리를 가득 메웠다. 다들 한 손에는 촛불, 다른 손에는 피켓을 들었다. 더러 아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기도 했다. 종로와 광화문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가득 메웠을 차량 행렬도 이날 만큼은 시민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마치 휴일에 공원으로 소풍을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집회의 내용과 구호는 엄중했지만, 내 옆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광화문대로를 가로막은 '명박산성'도 사람들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진 못했다. 그들은 명박산성을 무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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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2008년 6월 22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 열린 '48시간 비상국민행동' 사흘째인 46차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여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집회가 처음이었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새벽녘 텅 빈 대로를 걸어 다시 집으로 향했다. 평범한 복학생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간혹 촛불집회에 나갔던 시민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연행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별다른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야, 그 때 나와는 달리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나긴 촛불재판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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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6월 29일 새벽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에 반대하는 학생, 시민들이 경찰들과의 격렬한 대치를 벌이던 가운데 경찰의 강제진압이 시작되자 한 시민이 경찰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 유성호

2008년 5월 24일 촛불집회에서 36명이 연행된 이후, 매일 수십 명의 연행자가 발생했다. 연행된 시민들은 여러 경찰서로 나뉘어 조사를 받았다. 민변 변호사들이 이들에 대한 지원을 맡게 되었다. 민변은 2008년 5월 25일부터 쇠고기 촛불집회가 사실상 마무리된 8월 26일까지 총 183회에 거쳐 1398명의 연행자를 접견하였다. 
연행자 대부분이 불구속 수사를 받았는데, 2008년 하반기 이후 검찰의 약식기소와 약식명령 발부가 집중되면서 수백 건에 이르는 변론 사건이 한꺼번에 민변에 접수되었다. 민변은 총 939명(약식명령사건 858명, 정식기소사건 81명), 사건으로는 총 300건(약식명령사건 246건, 정식기소사건 54건)을 무료로 변론하였다. 총 83명의 변호사가 참여하여 이후 8년간 계속될 '촛불 법률지원단'의 시작이었다. 

2008년 당시의 구 집시법(정식 명칭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해가 진 이후의 옥외집회 및 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음에도 검찰은 위 규정을 근거로 수백 명에 이르는 시민들을 일괄적으로 기소했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당시의 집시법에 의하면 집회·시위의 자유는 단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보장되는 반쪽짜리 기본권이었다. 

해가 진 이후에 집회·시위를 했다는 것만으로 집회·시위의 참가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구 집시법 제10조가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인식이 법률지원단에 참여한 변호사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이에 따라 법률지원단은 집시법 제10조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된 형사재판의 재판부에 이 법이 위헌이라는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집시법 제10조를 적용하여 기소된 시민들의 재판이 모두 중단되었다. 

먼저 구 집시법 제10조 중 일몰 후 옥외집회 부분이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위 규정이 헌법에 위반하여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면서도 "입법자가 2010. 6. 30. 이전에 개선입법을 할 때까지 적용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09. 9. 24.자 헌재 2008헌가25결정). 

이후 국회가 2010. 6. 30.까지 위 규정을 개정하지 않고 기한을 상실하자,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형벌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의 변형된 형태이므로 위헌결정과 동일하게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고 보고 일몰 후 옥외 집회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대법원 2011. 6. 23. 선고 2008도7562 전원합의체 판결). 

이 대법원 판결 이후, 해가 진 이후 옥외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안에 대해 검사는 공소를 취소하거나, 일몰 후 옥외시위로 공소장을 변경하였다. 

구 집시법 제10조 중 나머지 옥외시위 부분은 그로부터 6년 뒤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위 규정에 대하여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를 금지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14. 3. 27.자 2010헌가2 한정위헌결정). 여전히 자정 이후의 시위는 금지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 이후 '해가 진 이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 부분에 한해서만 무죄라고 선고하였다. 

도로에서 집회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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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열렸던 지난 2008년 6월10일 저녁. 경찰이 청와대 진입을 막기 위해 세종로네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에 시민들이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 권우성

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된 시민들 중 대다수가 일반교통방해죄(형법 제185조)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법정형으로만 따져보아도 '영아살해'(10년 이하의 징역), '존속상해'(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강제추행'(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야간주거침입절도'(10년 이하의 징역)와 비슷하고, '과실치사'(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와 같은 죄에 비하면 그 형이 훨씬 무거운 죄가 단지 도로에 나가 평화적으로 집회에 참여한 시민 수백 명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된 것이었다.

유사한 조문을 갖춘 도로교통법과 비교하여 보자. 도로교통법은 "도로에서 교통에 방해되는 방법으로 눕거나 앉거나 서있는 행위"를 "벌금 20만 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라는 경범죄로 규율하고 있다(도로교통법 제68조 제3항, 제157조).

평화적인 집회에 참가하여 도로를 일시 행진, 연좌하는 행위를 처벌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굳이 처벌해야 한다면 도로교통법 조항을 적용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검찰은 일반교통방해죄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였다. 

특히 검찰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집회나, 집회 개최를 신고하였으나 경찰이 금지한 집회를 무조건 불법 집회로 간주한 후 참여한 시민들을 일반교통방해죄로 일괄 기소했다.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검찰은 도로에서 진행된 미신고집회(또는 금지통고된 집회)의 참가자들은 모두 범죄자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기소방침은 집회에 참여하려는 시민이 그 신고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만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이를 뿐만 아니라,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는 헌법과도 맞지 않는 태도였다. 

위와 같은 검찰의 무차별 기소를 막기 위해 법률지원단에서 일반교통방해죄의 위헌성에 대해 검토하던 중, 다른 집회 관련 사건에서 법원이 위헌제청결정을 하여 위 규정도 헌법재판소로 올라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서는 합헌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10. 3. 25.자 2009헌가2 결정). 이에 따라 단순히 집회에 참가하여 도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처벌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기소된 시민 한 명 한 명의 구체적 사실관계가 밝혀짐에 따라, 검찰의 기소·법원 판결의 일정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집회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기소 및 처벌이 이루어졌다. 인권침해감시활동을 벌이던 활동가, 의료봉사단 간호원은 물론,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옷에 물대포에 섞여있던 색소가 묻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된 경우도 있었다. 다른 시민을 연행하는 경찰관에 항의하다 체포되어 기소된 경우도 여럿이 있었다. 집회를 촬영하던 시민, 촛불예비군,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엄마들이 줄줄이 기소되었다. 

또한 자정 이후 5분~10분 동안만 집회에 참여했는데도 처벌된 경우가 많았다. 새벽에 체포된 경우 뚜렷한 증거도 없이 그 이전 시간 시위에 계속 참여하였다고 간주되어 처벌받은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인도에 있었던 사람도 연행되어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이미 시위 이전에 경찰 차벽이나 경찰에 의하여 도로와 인도가 차단된 상태에서 집회에 참가한 시민에게도 법원이 일괄적으로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여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 역시 지나치게 높았다. 평화적인 집회에 단순 참가한 시민에게도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이 선고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오히려 형량이 너무 적다고 항소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검사의 무리한 무차별적 기소를 법원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때 그 촛불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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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이틀째인 지난 2008년 6월 6일 저녁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 학생과 시민들이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대형태극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 유성호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시민·변호사 모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직장인이 되었고, 가정을 이룬 경우도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시민과 변호사가 울고 웃으며 함께 재판을 치러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대학생에서 만 2년차 변호사가 되었다. 나는 촛불 법률지원단의 마지막 사업인 두 번째 촛불백서(법률지원단에서는 2010년 첫 번째 촛불백서를 발간하였다) 제작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8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법률지원단의 막내로 사업을 마무리 지으며, 자연스럽게 집회·시위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회·시위는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알릴 수 있는 최후의 통로다. 헌법재판소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대의제를 보완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필수적 요소이자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으로 인정하고 있다(헌법재판소 2014. 4. 24. 2011헌가29 한정위헌결정 등). 

시민이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려는 정부에 맞서 자신의 입장을 내보이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시민들이 없었다면, 이명박 정권은 급히 협상을 재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권과 주권을 외치며 집회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명이나 되는 평범한 시민들이 8년 넘게 재판을 받아야 했으며, 100만 원 내외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촛불재판은 마무리되었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민변은 그러한 우려의 목소리들을 모아 오는 5월 2일 오후 2시, 두 번째 촛불백서를 발간하고 이를 기념하는 보고대회를 서울변호사회 조영래홀(광화문)에서 개최한다. 이 글에 담지 못한 보다 많은 이야기를 백서와 보고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서 발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애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가 2015년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까지 열렸고 수많은 시민들이 2008년 촛불집회 때처럼 거리로 나왔다. 또 다시 단지 도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명에 달하는 시민이 입건되었고, 그 중 상당수가 기소되어 재판 계속 중이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도 비슷한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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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대포에 실신한 농민, 생명 위독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집회·시위의 자유를 옭매는 집시법과 일반교통방해죄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완고한 검찰과 법원의 태도를 바꾸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싶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의 완고한 보수성만큼이나 민주주의와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을 향한 시민들의 열망도 바뀌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와 민중총궐기 집회에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뀐 것이 있다면 손에 든 것이 촛불에서 노란 리본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결국 촛불을 들고 함께 손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실제로 집회에 나와서 앞장서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고귀함을, 헌법상 기본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던 이름 없는 수많은 촛불들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그들은 국민이 곧 주권자이고 정부는 단지 선거로 그 주권을 위임받았을 뿐임을, 헌법에 쓰인 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우리에게 확인해 주었다. 

"기층의 목소리 대변할 살아있는 언론을"

"기층의 목소리 대변할 살아있는 언론을" 5.1절 창간하는 <민플러스> 조헌정 이사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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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30  23: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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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플러스>를 창간하는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이사장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와 28일 향린교회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민플러스> 언론이 흩어진 민주.진보세력들의 목소리를 서로 함께 모으고, 함께 나누는 장이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다.”
5월 1일 세계노동절에 창간하는 진보적 인터넷언론 <민플러스>(www.minplus.or.kr)를 이끌고 있는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는 28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어떤 중심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헌정 목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언론협동조합 담쟁이’가 발간하는 <민플러스>는 시험판을 가동하고 있고, 1일 오전 9시 일반인에게 오픈됨으로써 공식 창간한다.
조헌정 이사장은 “한 6개월 전부터 민주화와 통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서 언론의 지평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을 모았다”며 <민플러스>를 “새로운 진보 현장언론”으로 규정했다.
“특별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민중, 즉 노동자, 농민, 빈민, 기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살아있는 언론”을 지향하면서도 “기층민중과 어떤 미래적 방향을 설정하는 (지식인의) 목소리, 이 두 흐름이 합류가 되는 언론기관”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것.

  
▲ 새 진보 인터넷언론 <민플러스> 시험판 첫 화면. 1일 오전 9시 일반인에게 오픈될 예정이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인터뷰에 함께 자리한 류경완 <민플러스> 운영위원장은 “광고 없이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롭게 준비를 하고 있”다며 “단순 후원만이 아니라 지역이나 단체, 해외, 부문, 세대, 이런 다양한 소모임들을 담쟁이의 특성처럼 밑바탕에서 조그맣게 예쁘게 조직하면서,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같이 손을 잡고 거대한 벽을 넘는’ 철학까지 공유하면서 조합을 운영하고 언론을 경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 운영위원장은 “가장 기본은 현장 소식과 민족.국제 두 축”이라며 “국내 정치나 경제, 이런 부분들은 속보성들이 거의 없고, 사건 사고나 가십, 연예도, 스포츠도 없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의 현장소식을 전할 예정인데... 현장소식들은 아마 우리가 가장 빠를 것”이라고 자부하고 “다음 한 축은 민족과 국제다... 해외교포들이나 진보적인 세계석학들, 전 세계의 진보언론들과 기사공조나 전략적인 제휴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헌정 이사장은 오는 3일 오후 7시 30분에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릴 예정인 창간기념식에서 발표할 창간사를 통해 “지금 우리 국민은 민(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담쟁이와 민플러스는 일하는 사람들이 헌법에 보장된 자기 권리를 온전히 누리며 행사하는 새 세상을 여는데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힐 예정이다.
<민플러스>는 고광헌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과 유영구 전 중앙일보 기자, 브라이언 베커 미 평화단체 엔써 대표 등 10여명의 국내외 자문위원과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램지 클락 전 미 법무부 장관 등 10여명의 국내외 고문을 위촉했다.
또한 정용일 편집장을 비롯한 상근 기자단과 12명의 편집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전문필진을 갖춰 나가고, 각 부문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장기자(통신원)을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다음은 28일 오후 5시 향린교회에서 조헌정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이사장과 류경완 <민플러스> 운영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가장 기본은 현장 소식과 민족.국제 두 축”

  
▲ 조헌정 이사장과의 인터뷰에는 류경완 <민플러스> 운영위원장이 함께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5월 1일 <민플러스>가 창간하는데,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민플러스> 창간에 대해 알려 달라.
■ 조헌정 이사장 : 물론 몇 개 진보언론들이 그동안 쭉 활동을 해왔는데, 한 6개월 전부터 민주화와 통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서 언론의 지평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을 모았다.
그래서 새로운 진보 현장언론, 특별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민중, 즉 노동자, 농민, 빈민, 기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살아있는 언론을 만들어내자는 뜻을 함께 모아서 6개월 이상 준비를 해서 이번 5월 1일 새롭게 시작하게 됐다.
□ 통일뉴스 : 창간일은 5월 1일은 메이데이다. 연관이 있나?
■ 조헌정 : 원래는 4월 19일에 맞춰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내부 사정이 있어서 5월 1일에 창간하고 3일에 창간기념식을 여기 향린교회에서 갖기로 했다.
□ 통일뉴스 : 5월 1일 창간이라고 하면, 온라인 매체 개통일 텐데, 준비는 잘 되고 있나?
■ 조헌정 : 그렇다. 지금 굉장히 바쁘게 뛰고 있다. 일단 시험버전은 나와 있다.
□ 통일뉴스 : 준비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을 텐데, 예상대로 잘 되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 조헌정 :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직접 뛰는 현장 직원은 아니다. 가끔 물어보면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 류경완 운영위원장 : 상근기자들은 대체로 채용했고 5월 중순 추가될 예정이다. 나머지 실무적인 부분이나 행정적 절차는 다 끝났다.
언론사 등록증도 지난주에 나왔고, 협동조합 설립과 법인 등기, 사업자 등록증, 언론사 등록증까지 갖추는데 2달 정도 걸렸다.
5월 1일 창간을 위한 홈피를 시험가동하고 있다. 지금 조합원 대상으로 오픈해서 체크하고 있다. 5월 1일 09시에 일반인에 공개하면서 창간하고, 5월 3일 창간기념식을 한다.
□ 통일뉴스 : 주요한 취재 영역이나 기사 방향을 소개해 달라.
■ 류경완 : 가장 기본은 현장 소식과 민족.국제 두 축이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의 현장소식을 전할 예정인데, 기층 단체들하고 여러 가지 MOU나 제휴도 맺어서 현장소식들은 아마 우리가 가장 빠를 것이다. 전국적으로 노.농.빈은 물론 청년학생들까지 포괄할 계획이다.
국내 정치나 경제, 이런 부분들은 속보성들이 거의 없고, 사건 사고나 가십, 연예도, 스포츠도 없다. 과감히 포기해버리고 현장 쪽에 집중한다.
그 다음 한 축은 민족과 국제다. 통일 쪽하고 국제정세 부분, 남북.북미관계를 축으로 한다. 해외교포들이나 진보적인 세계석학들, 전 세계의 진보언론들과 기사공조나 전략적인 제휴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미 많은 연대사나 축사가 이미 들어와 있고, 창간식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그리고 해외언론들, 또 해외 진보적인 교포들과 상당히 협의를 많이 하고 있다.
□ 통일뉴스 : 창간기념식에 대해서 소개해달라
■ 조헌정 : 3일 오후 7시 반 향린교회 3층 대회당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200명 정도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함께 모이고 우리가 초청한 언론인들, 사회지도인사들이 함께 모여서 창간을 축하할 예정이다. 해외의 진보인사들의 연대사와 축사도 발표된다.
□ 류경완 : 아프리카에서까지 축사가 오고 있다. 그 중에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식전에 영상자료로 틀고, 국내에서도 담쟁이 조합원들의 여러 가지 동정이나 인증샷, 응원, 이런 것들도 쭉 편집해서 한편의 영상을 틀 거다.
축사나 일반적인 식순은 가능한 간단하게 하려고 하고, 마지막에 축하공연을 한다.
“흩어진 민주.진보세력 목소리 함께 모은다”

  
▲  조헌정 이사장은 “언론의 지평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라고 <민플러스>창간의 변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진보언론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성직자로서 언론사 이사장을 맡게 된 소명의식이나 필요성을 설명해 달라.
■ 조헌정 : 사실 종교와 언론이 기본 성격상 비슷한 점이 있다. 일단 대중을 상대로 어떤 의식들을 개발해 가는,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 가는데 기능상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론에도 진보, 보수가 있고 종교에도 진보, 보수가 있듯이 결국 기득권 세력들에 그냥 따라가는 보수종교나 보수언론도 있지만 본래의 종교와 언론의 첫 출발은 결국 둘 다 이 사회를 새롭게 평화와 생명으로 인도하고, 또 약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지향점을 갖고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과 함께하는 타락의 길을 걷는 것이 대다수 언론과 종교의 모습이다. 자본과 권력의 힘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는 향린교회 목사로서 지난 13년 동안 활동해 오고 또 많은 진보.통일 세력들과 함께 해오면서 이것을 함께 묶어내는 중심 역할이 없다고 느꼈고, 그런 점에서 이번에 시작하는 담쟁이 언론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에도 총선을 앞두고 서울민주행동이라든가 전국민주행동, 또 야권연대와 통합을 위한 조직들에 사회의 대표적 인사들이 많이 모였지만 사실 그들이 모여서 전부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어떤 중심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민플러스> 언론이 그런 흩어진 민주.진보세력들의 목소리를 서로 함께 모으고, 함께 나누는 장이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다.
□ 통일뉴스 : 그 같은 문제의식은 보통은 연대조직으로 많이 구현이 되는데, 이런 온라인 인터넷매체를 대안으로 구상한 이유는?
■ 조헌정 : 이건 조직이라기보다는 기층 민중들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적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밑바탕에 흐르는 하나의 사회적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사회변혁 세력으로 등장하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예전 70년대에 한완상 교수가 ‘즉자적 민중, 대자적 민중’ 표현을 썼는데, 즉자적 민중만으로 역사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대자적 민중, 소위 말하는 엘리트 사회계층이 함께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사회변혁을 이루는 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민플러스> 언론을 통해서 기층민중과 어떤 미래적 방향을 설정하는 목소리, 이 두 흐름이 합류가 되는 언론기관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 통일뉴스 : 담쟁이 협동조합이 결성됐는데, 협동조합 형태의 언론사가 최근 몇 개 생긴 것 같다. 협동조합 형식을 취한 이유와 실제 추진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 조헌정 : 사실 협동조합은 우리 교회도 몇 개 교회들이 합쳐서 우리 교회가 주도적으로 하는 길목이라는 협동조합도 있어서 내가 옆에서 보고 있는데, 굉장히 주체적 의식을 갖는, 주인의식을 갖는 점에서 협동조합이 상당히 바람직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담쟁이 협동조합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담쟁이 협동조합이 먼저 만들어진 다음에 <민플러스>가 생긴 셈이다. 원래 함께하는 동지들이 모여서 새로운 언론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힘을 합쳤기 때문에, 언론이 먼저 생기고 그걸 보조하기 위해서 담쟁이가 생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언론의 방향성과 주인의식을 담지하는, 일종의 단순한 재정적 후원조직이 아니라 언론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주인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언론이 소수의 몇 사람만이 끌어가는 전통적 언론이었다면, 지금 만들어지는 것은 담쟁이 협동조합이라고 하는, 생각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언론의 흐름을 끌고 간다는 점에서 좀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 류경완 : 우리가 광고 없이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롭게 준비를 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밑바탕에 담쟁이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결합, 후원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다.
단순 후원만이 아니라 지역이나 단체, 해외, 부문, 세대, 이런 다양한 소모임들을 담쟁이의 특성처럼 밑바탕에서 조그맣게 예쁘게 조직하면서,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같이 손을 잡고 거대한 벽을 넘는’ 철학까지 공유하면서 조합을 운영하고 언론을 경영할 계획이다.
“담쟁이 현장 기자들 전국적 네트워크 만들어 갈 것”

  
▲ 종교인으로서 언론사 이사장을 맡은 조헌정 목사는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과 함께하는 타락의 길을 걷는 것이 대다수 언론과 종교의 모습”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조합원들이 어느 정도 모였고, 출자금이나 조합비는 어떻게 되나? 소개할 수 있는 만큼 소개해 달라.
■ 류경완 : 지금 조합원과 후원회원이 230명 정도 모여 있다. 연말까지 상근체계 유지와 여러 경상비와 운영비들을 감안하면 예산이 2억 5천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조합원들이 출자금과 회비를 약정하고 있고,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준비절차에 치중했기 때문에 조합원 모집이나 홍보는 거의 없었다.
창간을 계기로 온라인상이나 오프로나 적극적으로 홍보를 시작해서 단기간에 조합원들을 대폭 확충할 계획을 잡고 있다.
□ 통일뉴스 : 내부 체계는 편집국과 사업국 체계로 보면 되나? 신생 온라인 매체로서 어떻게 편집역량을 확보하고 있나?
■ 조헌정 : 편집국과 운영위원회 두 축이다. 그 위에 이사회와 이사장이 있다.
■ 류경완 : 편집국 상근인원은 최소한으로만 잡고 있다. 그러나 내년에는 대선이 있고, 넓은 의미의 정권교체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올해 연말까지 운영해 보고 기자단을 대폭 늘리는 걸 고민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가 기자단이 적기 때문에 정부부처 출입이나 국내 속보성 경쟁은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미디어오늘>이나 비슷한 범 진보계의 형제언론들과 같이 기사공유나 교류, 전략적인 제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치.경제, 문화.예술 이런 부분의 약간의 공백들은 외부 전문가 필진을 구성해서 돌파해 나가는 걸고 계획하고 있다. 국내에 100명 정도 전문가 필진들을 구성하기 위해 계속 분야별로 섭외 중이다.
조중동에 끌려가는 여론지형에서 근본적인 성찰이나 사고의 전환을 고민하게 하는, 그런 기획물이나 정론 형태의 큰 시야의 기사들을 많이 기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은, 현장 소식이 전국적으로 가장 빠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담쟁이 현장 기자들, 통신원 형태로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것이다.
전문적인 부분은 100인 필진들을 통해 도움을 많이 받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국내외 진보언론들의 기사를 서로 교차해서 실을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 기사도 계속 번역해서 내보내고, 국제팀에서 해외언론들의 좋은 기사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싣고 하면서 지면들을 채워나갈 계획이다.
편집국 안에 15명 내외의 섹션별 전문가들로 편집기획위원회를 두고, 그들이 필진을 섭외하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도 형성하고, 국내의 숨은 고수들도 찾을 것이다.
아울러 SNS 홍보는 요즘은 모든 언론들이 다 기본이다. 페이스북 페이지나 밴드들, 트위터, 파워블로거들, 이런 쪽도 우리가 SNS홍보단이나 특별팀들을 꾸려서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류경완 운영위원장 “TV까지 구상 중에 있다”
 
  
▲ 정용일 편집장과 쌍두마차로 <민플러스>를 이끌어 갈 류경완 운영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외부 필진들에게도 고료가 지급되나?
■ 류경완 : 일단 계획은 공식적으로 지급된다. 살림 형편이 쉽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타 메이저 언론사만큼의 고료는 못 주더라도 대략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의 고료는 책정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초기부터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 통일뉴스 : 최근 보수 종편들에 맞서 진보 종편의 필요성도 거론되는데.
■ 류경완 : 우리 협동조합의 중장기 사업 중에는 팟캐스트나 여러 가지 영상 프로그램, 결국 마지막에는 TV까지 구상 중에 있다. 아직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초기에는 일단 조합원들을 안정적으로 확충해서 뒷심을 키우는 게 운영위원회 쪽에서 해야 할 제일 큰일이다.
□ 통일뉴스 : 사무실은 어디에 있나?
■ 류경완 : 서대문역 인근 통일의길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