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일 일요일

백전노장 놀라게 한 고속기동 천마군단

[개벽예감 384] 백전노장 놀라게 한 고속기동 천마군단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3/02 [08:48]
<차례>
1. 평양에 나타난 붉은 군대 백전로장 
2. 야조브를 놀라게 한 105땅크사단 
3. 개마무사 철마군단과 고속기동 천마군단
4. 돌격로 열어놓을 전투동원태세 갖췄다


1. 평양에 나타난 붉은 군대 백전로장 

1997년 9월 초 어느 날, 나는 고려민항 여객기를 타고 압록강 상공을 지나 조선 영공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1997년이라고 하면, 조선이 건국 이래 가장 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당시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이 이르면 3개월 안에, 아무리 늦어도 3년 안에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을 내돌렸고, 그런 소문을 듣고 심리적으로 동요한 일부 인사들은 조국통일운동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그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조선의 현실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내 발걸음이 평양으로 향하게 되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갖가지 생각에 잠겨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려민항 여객기는 어느덧 평양국제공항에 내려앉았다. 여객기가 활주로 끝에서 멈춰서고, 탑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데, “손님 여러분, 좌석에 앉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라는 여성승무원의 낭랑한 목소리가 기내방송을 통해 들렸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궁금해진 탑승객들은 저마다 여객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활주로에서는 특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빈급 방문객을 공항에서 영접할 때 사용하는 검은색 리무진 승용차 한 대가 여객기 앞으로 미끄러지듯 달려와 멈춰서더니, 영접을 나온 고위급 인사들이 여객기에서 내린 어떤 서양인 방문객과 환영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그 서양인 방문객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여객기 창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탑승객들 가운데 그 서양인 방문객을 알아본 누군가가 “야조브다”라고 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알려주는 바람에 나는 그 서양인 방문객이 야조브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야조브가 누군지 알지 못했던 나는 야조브라는 이름을 가진 로씨야의 고위급 인사가 평양을 방문한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전혀 뜻밖의 목소리가 내 귓전에 울렸다. “쯪쯪 ... 나라 다 망해먹고...” 로씨야의 사회주의자들이 소련의 붕괴를 막지 못한 것을 두고 개탄하는 어느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란 나는 그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금 전에 안내방송을 하였던 고려민항 여성승무원이 아닌가! 소련의 붕괴를 개탄하던 그 젊은 여성승무원의 강렬한 인상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이련 듯 내 기억에 아직도 선명하다. 야조브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처럼 우연한 계기에 시작되었다.  

1924년 11월 8일 로씨야 옴스크 칼라찐스끼의 빈농에서 태어난 드미뜨리 찌모페예비치 야조브는 1941년 11월 나치도이췰란드의 무력침공에 맞서 혈전을 벌이고 있었던 소련의 붉은군대에 자원입대하였다. 당시 열일곱살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모스크바고등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8월부터 현대전쟁사에 가장 처절한 전투로 기록된 레닌그라드전투에 보병부대 소대장으로 참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1944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전투 중에 두 차례나 부상을 당한 용맹한 군인이었다. 이 용맹한 군인은 1945년 8월 붉은군대의 전승과 더불어 붉은별훈장을 수여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 이후 오랜 기간에 걸친 군사복무기간에 많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푸룬제군사학교를 1956년에 수석으로 졸업한 붉은군대 청년장교 야조브는 기계화보병사단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70년대에 군단장으로, 집단군사령관으로 복무하였고, 1981년 2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980년대에 군구사령관으로 복무하다가 1987년 5월 30일 소련 국방장관의 중책을 맡았고, 1990년 4월 28일 소련군 원수칭호를 받았으며, 1990년 12월에는 소련국가안보회의 성원으로 선출되었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2014년 11월 8일 90회 생일을 맞은 드미뜨리 야조브 전 소련군 원수가 울라지미르 뿌진 로씨야 대통령으로부터 축하인사를 받는 장면이다. 18살이 되던 해에 보병부대 소대장으로 레닌그라드전투에 참가한 이후 평생 군복을 입고 붉은 군대에서 복무하였던 야조브는 1991년 8월 무너져가는 사회주의조국을 지키려고 군사정변까지 일으켰지만 3일 만에 실패하였고, 사회주의배신자들에 의해 국가반역자로 몰려 옥고까지 치렀다. 한 편의 소설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백전로장 야조브는 소련이 붕괴되고, 사회주의진영이 와해되는 역사의 광풍에 휩쓸려 절망에 빠져있던 1997년 7월 어느 날, 희망의 불빛을 비쳐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을 받고 사회주의조선을 향해 설레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야조브가 그런 중책을 맡아보기 2년 전부터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쵸브는 이른바 ‘뻬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찌(개방)’라는 간판을 내걸고 소련의 사회주의체제를 점진적으로 와해시키기 시작하였다. 사태의 위험성을 뒤늦게 깨달은 드미뜨리 야조브 국방장관, 보리스 뿌고 내무장관, 울라지미르 크루쵸브 국가안보위원회(KGB) 의장, 왈렌찐 빠블로브 총리 등은 소련의 사회주의체제를 와해시키고 소련의 연방국가체제를 해체하려는 고르바쵸브의 반역책동을 반대하였다. 야조브를 비롯한 사회주의수호자들과 고르바쵸브를 우두머리로 하는 사회주의배신자들 사이에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은 날로 첨예해졌다. 1991년 8월 18일 야조브를 비롯한 사회주의수호자들은 국가비상위원회를 결성하고,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와해되어가던 소련의 사회주의체제를 지키고, 해체되어가던 소련의 연방국가체제를 되살리려던 군사정변은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군사정변을 주도한 야조브는 체포, 구속되었고, 소련공산당에서 출당되었으며, 국가반역죄로 기소되어 최단 15년형에서 최장 종신형에 처해질 위험에 빠졌다. 간신히 중형을 면한 그는 1993년 1월 26일 출옥하였다. 

18살이 되던 해에 보병부대 소대장으로 레닌그라드전투에 참가하였고, 66살이 되던 해에 소련군 원수칭호를 받으며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야조브는 1991년 8월 무너져가는 소련의 사회주의체제를 지키려고 군사정변까지 일으켰지만 3일 만에 실패하였고, 사회주의배신자들에 의해 국가반역자로 몰려 옥고까지 치렀다. 한 편의 소설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백전로장 야조브가 소련이 붕괴되고, 사회주의진영이 와해되는 광풍에 휩쓸리며 절망에 빠져있던 때, 반혁명의 어둠을 뚫고 환히 빛나는 희망의 불빛이 그의 망막에 비쳐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를 평양으로 초청한 것이다. 1997년 7월 어느 날, 야조브는 자기에게 희망의 불빛을 비춰주는 사회주의조선을 향해 설레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첫 번째 조선방문은 그렇게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1997년 10월 7일 로씨야 통신사 <이따르 타스>는 야조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7월과 8월에 연속 조선을 방문하였다고 하면서, 9월 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야조브를 접견하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야조브를 평양으로 초청하였지만 접견은 뒤로 미루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온갖 고생을 하고 있었던 조선에게 북침의 칼을 겨누고 위협하는 한미연합군의 전쟁연습에 대응하기 위해 전선길에서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9월 2일에 가서야 야조브를 접견할 수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야조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는 자리에 당시 소련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해 힘쓰던 정치활동가 올레그 쉐닌, 소련군 장성 출신 왈렌찐 와레니꼬브, 야조브의 부인 에마 에브게니브나도 동석했다고 한다. 올레그 쉐닌과 왈렌찐 와레니꼬브는 1991년 8월 말 거의 무너져가던 소련의 사회주의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군사정변을 일으켰던 혁명동지들이었다. 

1997년 조선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야조브는 역사의 광풍을 혁명무력으로 다스려 사회주의조선을 수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흠모하게 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조선을 방문하면서 조로친선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힘썼다. 그러던 야조브는 2020년 2월 25일 파란만장했던 한생을 마감하고 모스크바의 하늘 아래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95세였다. 

2020년 2월 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야조브의 유가족들에게 위로전문을 보냈다. 위로전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야조브가 “파쑈도이췰란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성스러운 조국전쟁에 참가하여 위훈을 세웠으며 한생을 나라의 방위력강화에 헌신하여온 저명한 군사정치활동가, 참다운 애국자, 로병의 귀감”이었다고 회고하면서, 그가 “김정일 동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흠모하면서 조로 두 나라 인민들의 친선의 정을 두터이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으며, “그가 남긴 공적은 로씨야인민과 우리 인민의 기억 속에 길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2월 27일 야조브의 영전에 자신의 명의로 된 애도화환을 진정하였다. 


2. 야조브를 놀라게 한 105땅크사단 

야조브가 별세하기 10년 전인 2010년 9월 1일, 조선의 온라인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 그의 조선방문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야조브가 안고 간 <105호 땅크>’라는 흥미로운 제목이 붙은 기사였다. 2007년 7월 말 평양고려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서술한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1997년 9월 초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고위인사들로부터 영접을 받았던 야조브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야조브가 조선방문일정을 마치고 ‘105호 땅크’를 안고 모스크바로 돌아갔다는 제목을 읽고서는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기사에는 조선방문일정을 마치고 평양국제공항으로 나가기 직전, 야조브의 출국을 도와주기 위해 호텔숙소에 찾아온 조선인민무력성 소속 안내원과 야조브 사이에 주고받은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당시 야조브는 조선에서 기념품을 몇 개 샀는데, 그 가운데는 장난감 땅크도 있었다. 나중에 커서 야조브처럼 ‘땅크대장’이 되겠다고 하면서 장난감 땅크를 매우 좋아하는 여섯 살짜리 막내손자에게 줄 장난감 땅크였다. 세상에서 가장 센 <땅크>를 사달라고 조르던 막내손자의 모습을 기억하며 평양의 어느 기념품상점에서 고른 장난감 땅크인데, 크기가 좀 커서 여행가방의 절반을 차지했다. 꽉 들어찬 여행가방에 더 이상 넣을 수 없는 다른 기념품들을 옆에 밀어놓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시 83살 백전로장 야조브와 조선인민무력성 소속 안내원은 군사용어를 사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내원 - “비행장에 나갈 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이 물품들은 내놓고 가실 작정입니까?”
야조브 - “예, 아무래도 그래야 할가 봅니다. <전선>에서 제외된 <예비물자>니까요.”
안내원 - “필요하다면 <배비변경>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야조브 - “<배비변경>이라? 어떻게요?”
안내원 - “<땅크> 하나만 <뒤계선>으로 돌려놓으면 <전선>에 많은 <전술적 공간>이 생길 것 같습니다.”
야조브 - “아, 그건 걸대로 안 됩니다. <땅크>가 없는 <전선>은 아무런 필요도 없습니다. 그 <땅크>는 꼭 <주타격방향>에 있어야 합니다.”
안내원 - “모스크바에도 장난감 땅크가 있겠는데, 귀국하는 길에 사면 되지 않습니까.”
야조브 - “물론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 막내손자에게는 꼭 조선의 <땅크>가 필요합니다. (포장지함을 풀어헤치고 ‘105’라는 번호가 새겨진 장난감 땅크를 꺼내 보이며) 그것도 이 <105호 땅크>가 말입니다. 내가 이 <105호 땅크>를 꼭 가져가자고 하는 것은 단순히 막내손자와 한 약속을 지키자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난 이 장난감 땅크를 통해 손자녀석에게 조선인민군 땅크병들의 고귀한 넋을 심어주자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것이 사탕알보다 더없이 소중합니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야조브는 조선에 머물고 있었던 2007년 7월 27일 전승절을 계기로 조선인민군 105땅크사단 지휘부를 참관하였다고 한다. 105땅크사단의 공식명칭은 근위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이다. 명칭은 땅크사단이지만, 실제로는 군단급 기갑부대다. 야조브가 105땅크사단을 참관한 뒤에, 평양의 어느 기념품상점에서 구입한 장난감 ‘105호 땅크’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면서, 그것을 자기 손자에게 선물로 주려고 하였던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105땅크사단을 참관할 때, 그 기갑부대가 6.25전쟁 시기에 남진공격을 주도하면서 1950년 6월 28일 서울에 가장 먼저 진입하여 중앙청 꼭대기에 공화국기를 휘날린 부대라는 사실과 6.25전쟁 중에 공화국영웅 19명을 배출한 최정예부대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고, 로씨야군이 운용하는 땅크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지닌 조선인민군의 땅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땅크와 함께 한평생 전선을 누비며 화약내를 맡았던 백전로장 야조브였다.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군사정변을 일으켰을 때도 땅크부대를 모스크바에 출동시켰던 야조브였다. 그처럼 땅크에 대해 누구보다 정통한 백전로장의 눈에 비친 조선인민군 105땅크사단은 정신력에서도, 무장력에서도 최강이었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근위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 사령부 청사를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2017년 3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땅크병경기대회-2017>에 참가한 '천마-216' 땅크가 장애물을 타고넘는 장면이다. 땅크에 대해 누구보다 정통한 백전로장 야조브는 2007년 7월 27일 조선을 방문하는 중에 105땅크사단을 참관하였다. 그의 눈에 비친 105땅크사단은 정신력에서도, 무장력에서도 최강이었다. 야조브가 105땅크사단을 참관할 때 본 것은 조선의 3세대 땅크들인 '천마-215'와 '천마-216'이었다.  

105땅크사단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자료를 찾지 못한 나는 그 문제에 관한 서술을 생략하는 대신, 105땅크사단의 무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자료들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야조브가 2007년 7월 27일 105땅크사단을 참관할 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조선의 3세대 땅크들인 ‘천마-215’와 ‘천마-216’이었다. 내가 2013년 6월 5일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하면서 수첩에 적어놓았던 기록을 이 글을 집필하기 위해 다시 찾아보니, ‘천마-215’ 땅크는 2003년에 개발된 것이고, ‘천마-216’ 땅크는 2004년에 개발된 것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로씨야나 미국 같은 땅크선진국들이 신형 땅크를 만들려면 개발기간이 10년 정도 걸리는데, 조선에서는 불과 1년 만에 신형 땅크를 개발하였다. 이것은 판매리윤을 따질 필요가 없고, 오직 생산목표에만 충실하면 되는 사회주의생산체계의 우월성을 보여준다. 판매리윤에 얽매여 생산목표를 세워야 하는 자본주의나라들에서 1년 만에 신형 땅크를 개발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야조브가 105땅크사단을 참관하면서 놀란 것은, 2007년 당시 105땅크사단에 배치된 ‘천마-215’ 땅크와 ‘천마-216’ 땅크가 로씨야군이 운용하는 T-80 땅크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가졌을 뿐 아니라, 당시 로씨야가 자랑하던 T-90 땅크의 성능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T-80 땅크는 1975년에 생산되기 시작하였고, T-90 땅크는 1992년에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로씨야가 만든 땅크보다 더 우수한 땅크를 조선이 만들었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자료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2002년 6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로씨야군이 운용하는 T-90 땅크의 성능과 맞먹는 신형 땅크를 2002년 초에 개발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조선이 T-90 땅크의 성능과 맞먹는 신형 땅크를 2002년 초에 개발하였다고 보도했지만, 내가 2013년 6월 5일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할 때 수첩에 적어놓았던 기록에 따르면, ‘천마-215’ 땅크는 2002년이 아니라 2003년에 개발되었다. <조선일보>는 ‘천마-215’ 땅크의 첫 시제품이 나온 2002년 초를 개발시점으로 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2003년에 개발된 ‘천마-215’ 땅크가 T-90 땅크와 맞먹는 성능을 가졌으므로, 2004년에 개발된 ‘천마-216’ 땅크는 T-90 땅크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진 것이다. 

조선인민군 땅크의 성능이 로씨야군 땅크의 성능보다 못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에 퍼져있는 고정관념인데, 그런 고정관념은 2003년 ‘천마-215’ 땅크의 출현으로 깨져나갔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위에 인용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7월 31일 모스크바를 방문하기 위해 특별렬차를 타고 씨비리지역을 지나는 길에 옴스크에 있는 군수기업 옴스크트란스마쉬에 들러 T-80 땅크생산공정을 참관하였다고 한다. 참관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T-80 땅크의 성능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였는데, 로씨야의 땅크개발기술수준이 조선의 땅크개발기술수준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로씨야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류경수땅크공장을 찾아가 옴스크트란스마쉬에서 만든 T-80 땅크보다 더 우수한 신형 땅크를 만들라는 과업을 주었다. 과업을 받은 류경수땅크공장은 T-80 땅크의 성능보다 우수하고, T-90 땅크의 성능과 맞먹는 신형 땅크를 2003년에 만들어냈다. 그 신형 땅크가 바로 ‘천마-215’다. 

그런데 류경수땅크공장에서 2003년에 개발된 신형 땅크의 공식명칭을 알지 못한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그 신형 땅크를 ‘폭풍호’라고 불렀다. 내가 참관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에는 ‘폭풍호’ 땅크가 전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폭풍호’라는 명칭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조선의 무기수출회사인 조광무역회사는 ‘폭풍호’ 땅크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광고를 온라인에 게재했는데,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그 광고를 보고 ‘천마-215’ 땅크를 ‘폭풍호’ 땅크로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폭풍호’ 땅크는 해외수출용으로 만든 것이므로, 조선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해외수출용 무기는 자국에서 사용하는 무기에 들어있는 핵심첨단장비를 제외하고 판매하는 것이므로, 해외수출용 ‘폭풍호’ 땅크는 ‘천마-215’ 땅크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 

류경수땅크공장은 ‘천마-215’ 땅크를 만든 때로부터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2004년에 T-90 땅크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또 다른 신형 땅크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천마-216’ 땅크다. 2007년 7월 27일 105땅크사단을 참관하면서 T-90 땅크보다 더 우수한 ‘천마-216’ 땅크를 본 야조브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야조브가 2007년 7월 27일 105땅크사단을 참관한 때로부터 2년이 지난 2009년에 조선은 신형 땅크를 또 개발하였다. 그것이 ‘선군-915’ 땅크다. 2013년 6월 5일 내가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중무장전시실을 참관할 때, 일렬로 전시된, 조선에서 만든 땅크 10대 가운데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라고 쓰인 해설판 뒤에 우람한 모습으로 서 있는 세계 최강 땅크를 보면서 묘한 감흥을 느꼈던 기억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3. 개마무사 철마군단과 고속기동 천마군단

먼 옛날 고구려사람들이 강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개마무사 철마군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고구려의 개마무사 철마군단은 5,000명으로 이루어졌는데, 기마병과 말이 모두 비늘식 철제갑옷(찰갑)으로 무장했다고 한다. 중국 진시황의 병마총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마병와 말을 가죽갑옷으로 무장시켰음을 보여주었는데, 고구려의 개마무사 철마군단은 비늘식 철제갑옷으로 무장했던 것이다. 당시 중국의 제철기술로는 비늘처럼 얇고 가벼우면서도 방호력을 가진 최첨단 철제갑옷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가죽갑옷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이 서울 아차산에 있는 고구려시기의 군사유적에서 출토된 철기를 분석하였더니, 고구려사람들은 최첨단 제철기술인 관강법으로 강철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고구려는 독자적인 철강기술로 고도의 철기문명을 발전시켰고, 개마무사 철마군단을 일으켜 강대국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먼 옛날 고구려가 철마군단으로 군사강국을 건설하였다면, 오늘 조선은 ‘천마군단’으로 군사강국을 건설하였다. 조선의 ‘천마호’ 땅크는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말(天馬)’이다. ‘천마호’ 땅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동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데 있다. 조선의 땅크들은 고속기동전에 최적화된 ‘천마’들이다. 조선은 강력한 엔진과 고성능 변속기를 만드는 고도의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천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2004년 7월 9일 한국의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5세기 고구려의 개마무사 철마군단에 관련된 유물들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고구려의 개마무사 철마군단은 12행 행군대오를 모두 남쪽을 향해 배치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개마무사 철마군단이 남진공격선봉대였음을 말해준다. 먼 옛날 고구려의 개마무사 철마군단이 남진공격선봉대였던 것처럼, 오늘 조선의 고속기동 천마군단도 역시 남진공격선봉대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서술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0년 1월 5일 105땅크사단 관하 구분대의 땅크기동훈련을 현지지도하였다고 한다. 당시 언론매체에 실린 보도사진들을 보면, ‘중앙고속도로 춘천-부산 374km’라고 쓴 표지판, ‘김해’, ‘부산’, ‘창원’, ‘삼랑’이라고 쓴 여러 표지판들, ‘호남고속도로’라고 쓴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는 땅크훈련장에서 땅크들이 기동훈련과 포격훈련을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남진공격기동훈련이었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경축 열병식에 참가한 '천마-216' 땅크들이 김일성광장 주석단 앞을 지나는 장면이다. '천마-215' 땅크는 2003년에 개발되었고, '천마-216' 땅크는 2004년에 개발되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조선의 땅크들은 생김새부터가 다른 나라 땅크들과 전혀 다르게 생겼고,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전투구호가 모둔 땅크들의 전면에 똑같이 새겨져 있다. 야조브가 105땅크사단을 참관하였던 2007년 당시 '천마-215' 땅크는 로씨야군이 운용하는 T-90 땅크와 맞먹는 성능을 가졌고, '천마-216' 땅크는 로씨야군이 운용하는 T-90 땅크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가졌다. 야조브는 105땅크사단을 참관한 때로부터 2년 뒤인 2009년에 조선은 신형 땅크를 또 개발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선군-915' 땅크다.   

그런데 당시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왜 하필이면 강추위가 몰아친 2010년 1월 8일에 105땅크사단의 남진공격기동훈련을 현지지도하였는지 그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구구한 억측들이 분석기사라는 미명을 쓰고 헛소문처럼 나돌았다. 그러나 조선에서 나온 자료들을 살펴보면, 사정을 파악할 수 있다. 2010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60년 8월 25일 105땅크사단을 현지지도한 때로부터 50주년이 되는 해이고, 1월 8일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탄생일이다. 또한 조선에서 나온 자료들을 살펴보면, 1950년 6월 28일 38도선을 넘어 진격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7월 5일 미국군 제24보병사단 산하 ‘스미스특공대’와 맞붙은 오산전투에서 상대를 괴멸시킨 다음 곧바로 대전으로 진격하여 7월 20일 그 도시를 점령하고, 8월 31일 낙동강도하전투에서 앞장에 섰던 남진선봉부대가 바로 105땅크사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탄생일에 105땅크사단의 남진공격훈련을 현지지도함으로써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국통일위업을 물려주었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5땅크사단의 남진공격훈련을 현지지도하였던 때로부터 2년이 지난 2012년 1월 8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는 2년 전에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었다. 기록영화에 따르면, 2010년 1월 8일에 있었던 105땅크사단의 남진공격훈련은 김정은 대장(당시 직책)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직접 지휘한 실사격기동훈련이었다는 것이다. 김정은 대장은 땅크기동훈련을 지휘하는 중에 제951호 땅크에 탑승하여 직접 조종하였고, 달리는 땅크에서 포를 연발로 사격하면서 타격표적들을 명중시켰다. <유투브>에서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시청할 수 있는데, 그 기록영화 장면들 가운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1월 8일 105땅크사단의 남진공격훈련을 지휘하는 김정은 대장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음을 알려주는 자막이 나온다. 

“오늘은 선군혁명력사에 특기할 참으로 의의 깊은 날입니다. 오늘 우리 대장이 근위서울제105땅크사단에 가서 훈련지도를 하면서 직접 땅크를 몰고 포사격을 하였는데 새해 첫 포성을 그가 울린 셈입니다. 우리 대장이 울린 포성은 조국통일위업과 주체혁명위업을 백두산 총대로 굳건히 계승, 완성해나갈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를 내외에 선언한 승리의 포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한 이후 비통에 잠긴 조선이 처음으로 맞이한 새해 첫날인 2012년 1월 1일 아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05땅크사단을 또 다시 찾았다. 2년 전, 땅크를 직접 몰고 땅크포를 쏘면서 조국통일위업을 계승할 결의를 다졌던 바로 그 곳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려는 새로운 결의를 다졌던 것이다.  


4. 돌격로 열어놓을 전투동원태세 갖췄다

그로부터 어느덧 8년 세월이 흘렀다. 그 기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통일이냐 무력통일이냐를 결정해야 할 중대한 기회를 여러 차례 맞고 보냈다. 2018년에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화와 협상이 여러 차례 진행되었지만, 평화통일의 길을 가로막고 북침전쟁연습과 대북제재강화에 매달리는 미국의 대결광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평화통일에는 관심이 없고 분단체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망상도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화와 협상은 2019년에 이르러 결국 파탄되고 말았다. 

한반도의 정치군사상황이 이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른 2020년 2월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포병부대들, 해군부대들, 항공군부대들이 참가한 군종합동타격훈련을 지도하였다. 이번 군종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자행포와 방사포는 모두 90여 문이었는데, 지난 시기 군종합동타격훈련에 300여 문이 참가한 것에 비하면 3분의 1로 줄었다. 이런 사정은 이번 군종합동타격훈련에 포병무력보다 해군무력과 항공군무력이 더 많이 참가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조선의 언론보도사진들에는 군종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포병부대들의 사격장면만 보였고, 그 훈련에 함께 참가한 해군부대들의 포격장면이나 항공군부대들의 폭격장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왜 공개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으나,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중요한 무기체계들이 등장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2020년 2월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군종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화력타격부대들이 해안에 포진하고 대구경장거리포를 일제사격방식으로 쏘는 장면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중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전투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보고 감탄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이번 군종합동타격훈련을 계기로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전투동원태세를 갖추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붉은 군대의 백전로장 야조브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105땅크사단도 돌격로를 열어놓을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언제 어느 시각에 명령이 하달되여도 즉시 전투에 진입할 수 있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종부대들과 전선과 동부지구 방어부대들의 전투력에 대하여 감탄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언제 어느 시각에 명령이 하달되여도 즉시 전투에 진입할 수 있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는 이번 군종합동타격훈련이 불시에 내린 긴급명령에 따라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원래 한미연합군은 북침전쟁연습을 오는 3월 9일부터 시작하려고 하였지만, 뜻밖의 괴질재앙이 확산되는 바람에 북침전쟁연습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2월 27일에 발표하였다. 조선인민군은 한미연합군이 오는 3월 9일부터 북침전쟁연습을 시작할 것으로 예견하고, 이번 주간에 선제적 대응전쟁연습을 하려고 준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기에 겪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한미연합군이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려고 할 때마다, 조선인민군은 전시동원태세에 돌입하고 선제적 대응전쟁연습을 진행하였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전군에 전투동원태세돌입명령을 내리면, 지하갱도에 은폐된 미사일발사대차, 자행포, 방사포, 땅크, 장갑차, 전투기, 폭격기, 전투함선, 잠수함 등 각종 전투장비들이 발사준비, 출격준비, 출항준비를 갖추고, 출장이나 휴가로 부대를 떠난 전투원들이 모두 자대로 복귀하고, 군사지휘관들은 자택에서 부대로 출퇴근하지 않고 부대에서 24시간 비상대기상태에 들어가고, 전투원들은 전투복장을 한 채로 숙식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월 27일 한미연합군이 괴질재앙 때문에 북침전쟁연습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하였으므로, 조선인민군도 전투동원태세에 돌입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군종합동타격훈련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려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임의의 시각에 전투동원태세에 돌입할 준비를 갖추었는지 검열하였던 것이다.   

이전에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력타격훈련을 현지지도한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투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에 “대만족을 표시”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이번에는 “감탄을 표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감탄을 표시한 것은,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조국통일대전에 즉시 돌입할 격동적인 전투동원태세를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붉은 군대의 백전로장 야조브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고속기동 천마군단도 돌격로를 열어놓을 전투동원태세를 갖추었을 것이다.        

‘선거연합 정당’ 제안으로 술렁이는 민주당-진보정당-시민사회

민주당은 검토, 정의당은 반대...‘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진보정당’ 전략투표 주장도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03-01 19:54:06
수정 2020-03-01 2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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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의 모습. 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의 모습.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대응하기 위한 민주진보진영의 ‘선거연합 비례정당’ 창당 시나리오가 급부상하고 있다.
주권자전국회의 등 시민단체들이 ‘미래한국당 저지와 정치개혁 완수를 위한 정치개혁연합(가칭) 창당’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이 발단이 됐다. 1일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민생당, 민중당, 그리고 원외정당인 녹색당, 미래당이 제안을 받은 상태다.  
이들은 정치개혁에 동의하는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를 모은 ‘선거연합 비례정당’을 별도로 창당해 총선을 치르자고 제안했다. 선거가 끝나면 ‘선거연합 비례정당’에 ‘파견’됐다가 당선된 비례대표들을 각 정당으로 다시 돌려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선거연합 정당’이란 각각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정당들이 선거 시기에 연합하고 선거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 정책적으로 협력하는 형태로, 선거 이후 사실상 본체 정당에 ‘흡수’되는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는 다르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논의가 급부상하게 된 것은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논란 속에서도 결국 창당해 진보진영이 중심인 군소정당의 몫 비례의석까지 가로챌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 섰던 하승수 변호사는 “선거제도 개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준연동형 30석 중 21석을 미래한국당이 가져갈 수 있다”며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미래한국당이 40%도 안 되는 득표율로도 준연동형 30석 중에 70%인 21석을 차지하게 된다. 전체 47석의 비례의석중에서 60%에 가까운 28석 정도를 차지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받은 표만큼 의석을 가져가도록) 비례성을 개선하기 위해 개혁했는데 오히려 미래한국당 꼼수로 비례성이 더 깨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될 경우 미래통합당이 총선 후 미래한국당과 합당하게 되면 원내 제1당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민주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 안에서는 미래한국당처럼 민주당의 비례전용 위성정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논의가 비공식적인 여러 테이블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강한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선거제도 개혁에 동참했던 민주당이 이를 역행하는 위성정당을 만드는 데에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주당도 공식적으로는 ‘위성정당 반대’ 입장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반면 시민사회에서 제안된 ‘선거연합 비례정당’의 경우 민주당이 직접 위성정당을 만드는 부담도 덜 수 있고,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이날 민중의소리와 전화통화에서 “앞으로 논의할 예정”이라며 “미래한국당에 맞설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에선 당초 비례대표 확보 가능 의석이라고 여긴 ‘병립형 6석+연동형 α’를 제외하고는 군소정당들에 몫을 모두 돌리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강 대변인은 “아직 논의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선거법 개혁을 무력화시키는 '비례용 정당'에 대한 정의당의 대책과 입장,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제안 등에 대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0.03.01.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선거법 개혁을 무력화시키는 '비례용 정당'에 대한 정의당의 대책과 입장,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제안 등에 대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0.03.01.ⓒ뉴시스
민생당·민중당 “논의해보겠다” 
정의당 “비례민주당도, 선거연합 비례정당도 반대”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동참했던 또 다른 정당들이 모두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당원을 비롯한 지지층의 동의를 완전히 얻기도 쉽지 않은 과제다.  
신설합당인 민생당은 일단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인데, 내부에선 긍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다당제 합의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지·찬성하는 세력들이 개혁국회를 만들기 위해 연합비례정당 창당 등의 모든 방안을 ‘4+1’연대의 정신으로 적극 추진하자”며 동조했다.  
원내 진보정당인 민중당은 “내일 논의할 예정”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신창현 대변인은 “현재로선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전했다.  
반면 정의당은 분명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미래한국당뿐만 아니라 비례민주당 추진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뒤, ‘선거연합 비례정당도 반대하냐’는 질문에 “이것은 선택지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비례민주당이든 비례연합정당이든 모두 ‘꼼수 정당’이고, 또 창당하는 과정에서 ‘의원 꿔주기’ 등 꼼수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진보세력 간의 균열과 중도층의 이탈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꼼수에 꼼수’로 대응할 경우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했던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심 대표는 또 “(민주당과 함께 ‘선거연합 비례정당’을 만들 경우) 민주당의 대표성이 강화돼서 결국은 진영 간의 대결로 고착화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정권 심판론의 영향력이 확대돼서 당연히 중도세력을 보수 쪽으로 밀어내는 효과가 나올 것이고, 진보개혁세력의 의석수는 최소화 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작년 12월 27일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서 선거법이 통과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작년 12월 27일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서 선거법이 통과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지역구는 민주당, 정당투표는 진보정당” 주장도 봇물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에 맞게 비례대표 의석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선거연합 비례정당’도 결국은 민주당이 군소정당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의석(α)까지 챙겨가는 위성정당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선거제도 개혁을 역행하는 보수진영에 맞서는 이들이 모두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전략으로도 꼽힌다.  
서울교육감을 지낸 헌법학자인 곽노현 ‘국회를바꾸는사람들’ 대표는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포기하고 비례의석은 진보정당들에게 전적으로 양보할 것을 제안했다. 대신 진보정당들은 여야 격전지인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최대화하는 데 협력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차선책’으로 ‘선거연합 비례정당’을 만들 수 있는데, 거기서도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의석을 챙겨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동시에 정치개혁에 동의하는 모든 정당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대표는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민주당은 개정 선거법상 연동형 비례의석을 가질 수 없다. 금단의 열매”라며 “이게 위성정당이냐, 또는 탈법행위냐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군소정당 몫인 연동형 비례의석을 1석이라도 가져가면 탈법행위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이 탈법행위를 하지 않으려면 (최대 병립형 비례의석인) 6석을 가지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진보정당 입장에선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은 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시민사회 원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도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여권 일각에서 제기한 ‘비례민주당 창당론’과 시민사회 진영에서 제기한 ‘선거연합 비례정당론’ 모두를 비판하면서 지역구 선거와 정당 투표의 ‘전략적 분할투표’를 제안했다. 
백 교수는 “(선거연합 비례정당은) ‘꼼수 정당’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물리적으로) 현실성이 별로 없는 제안”이라며 “냉정을 되찾아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과 정당명부제 투표에서 우호세력의 약진을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 대표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비례꼼수 전략에 매달리는 대신, 촛불개혁을 완수할 진보개혁의 승리 전략을 마련하고 바람직한 협력정치 구상에 매진하기를 당부드린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심 대표는 “어떻게든 미래한국당의 의석수 줄이고 큰 틀에서 진보개혁 의석수 늘리는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유권자가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며 “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진보개혁 유권자의 뜻에 따라서 선거 전략을 운영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가운데 물리적 시간의 한계도 있는 만큼 앞으로 일주일이 선거연합의 방향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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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도움 안되는 '거리 소독', 공포감만 부추길 뿐

[안종주의 안전사회] 정부, 가장 나쁜 마스크 착용법 당장 중단시켜라



마스크 안 쓴 질본 본부장 VS. 턱 밑에 걸친 중앙의료원장, 누가 맞나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는 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코로나19 환자 치료 상황 등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인 오명돈 위원장과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 등이 참석해 지역사회 전파 단계에서의 환자 치료를 위한 대응체계 전환 등을 설명했다. 오 교수 등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가 발언 순서가 되자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고 설명했다. 기자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 상호간 감염 위험이 없기 때문에 애초부터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한편 충북 오송에 있는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과 권준욱 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이 매일 언론 정례 브리핑을 줄곧 열어오면서 단 한 차례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발언하고 있다. 배석하는 공무원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기자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브리핑 공간에서 감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달 20일과 24일 발표한 ‘심각단계에서의 코로나바이러스-19 국민행동수칙’을 보면 마스크 착용과 관련해서는 ‘일반국민 행동수칙’으로 △노인·임산부·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은 외출 시 마스크 착용하고 ‘발열,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을 시 행동수칙’으로 △ 마스크 착용하기 △의료기관 방문 시 반드시 마스크 착용 및 자차 이용을 권고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건강한 사람에게 늘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고하지는 않고 있다. 

질본은 또 △기침, 재채기, 가래, 콧물, 목 아픔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건강한 사람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의심자를 돌보는 경우 △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경우 △많은 사람을 접촉하여야 하는, 감염과 전파 위험이 높은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 즉 대중교통 운전기사, 판매원, 역무원, 우체국 집배원, 택배기사, 대형건물 관리원 및 고객을 직접 응대하여야 하는 직업종사자 등은 KF80 이상 보건용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 

질본, 야외와 개별공간에서는 마스크 착용 불필요 

하지만 질본은 혼잡하지 않은 야외, 개별 공간에서는 일반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홈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지만 이를 줄기차게 강조하는 대국민소통을 하지 않고 있어 대다수 시민은 길거리나 한적한 장소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코로나19의 지역 확산을 막기 위해 쉴 틈조차 없는 권영진 대구시장은 거의 매일 언론 앞에 나서고 있다. 권 시장도 종종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리고 기자회견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스크를 쓰거나 쓰지 않은 채 회의를 진행하거나 현장을 돌아볼 때도 있지만 지난달 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대화할 때는 마스크를 잠시 입 아래로 내리고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부 청와대 참모의 마스크 착용 모습도 코 아래로 내리고 있거나 턱 아래로 내리는 등 어정쩡하다.  

이뿐만 아니라 방송기자들은 코로나19 관련 보도를 하면서 확 트인 야외 공간이든, 널찍한 실내 공간이든 가리지 않고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고 있다. 실내에서 방송 진행을 하는 앵커 등은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있다. 사람이 지나 다니지도 않는 야외공간에서 방송보도를 하면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난센스다. 턱 아래로 내리는 것은 금물이다. 안 쓰면 될 것을 왜 내리고 하는가.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가. 감염병 확산을 막아주는가.

40여일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 기자 등의 엉터리 마스크 착용법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한 뒤 한 달 여가 지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사 등 전문가, 정치인, 언론인, 일반 시민 등 할 것 없이 마스크를 턱에 걸치거나 턱 아래로 내리고 말하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이런 마스크 착용 방식이 코로나19 예방 또는 전파 차단 원칙에 알맞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말할 때는 입 아래로 내리고 다시 올려 쓰고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가장 나쁜 마스크 착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과정에서 마스크 안면 부위에 손을 대는 등 감염 위험을 높이는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잘못된 습관 또는 행태가 첫 환자가 보고된 뒤 40여 일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정부 방역 당국에서는 이런 잘못에 대해 시정조치토록 강력 요청하거나 국민과 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 정확한 마스크 착용법을 강조해서 알리지 않고 있다. 외려 일부 의사가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이를 알리고 있다. 미국에서 신장내과 전문 의사로 일하는 조동혁은 지난 2월24일 제작·방영한 유튜브 ‘마스크 필요한가? 잘못 쓰면 마스크 때문에 오히려 코로나-19 에 감염될 수도’ 편에서 나쁜 방법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한국의 실태를 비판했다. 

▲ 대구에서 육군 소속 군 제독 차량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작전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군부대·지자체 거리 방역은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의 전형

정부는 또 방역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도로와 거리 소독을 계속 벌이는 등 엉터리 방역을 벌이고 있어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거리와 건물 외벽, 확진자가 다녀가지 않은 곳까지 대대적인 소독을 하는 것은 대표적인 보여주기 식 전시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군부대와 지자체 등 정부기관과 민간 할 것 없이 앞 다퉈 코로나19 감염 예방이나 확산 저지와는 무관한 야외 소독을 계속 벌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당장 이런 방역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대신 확진자가 다녀간 공간에 있는 문손잡이 등 확진자가 만졌을 가능성이 있는 곳을 일일이 소독제로 꼼꼼하게 닦아주거나 머물렀던 곳 등을 소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27일 오전 육군 제50보병사단은 대구 대명로 일대 도로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화생방 제독차량 1대를 동원해 제독 작전을 실시하고 방진복을 착용한 40여명의 장병들을 동성로 일대에 투입해 주변 건물 방역과 소독 작전을 펼쳤다. 지난달 11일에는 군 제독차량이 광주 광산구 도심 도로를 소독했다. 이와 관련한 사진이나 영상을 본 사람, 그리고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시민들은 군 제독차량까지 나와 거리까지 소독해야 할 정도로 코로나19가 정말 무섭구나하는 공포를 가졌을 것이다. 

강동구청은 관내에 위치한 명성교회의 부목사가 지난달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구청 직원들이 다음 날 오전 부랴부랴 이 목사의 동선과도 관계가 없는 강동구 명일시장에 나가 도로 방역 소독을 벌였다. 어처구니없는 전시행정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열심히 사진을 실어준다.  

이런 쓸데없는 방역은 인력과 예산만 낭비하는 것이다. 최근 대구·경북 지역의 급속한 유행과 전국적 확산으로 인력과 물자를 아껴 쓰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때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를 지나가는 것만으로, 확진자가 다녀간 건물을 나중에 방문한 것만으로 감염된 사례는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가 나왔지만 아직 없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이런 전시성 방역 행정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확대보도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언론 본연의 사명인 사회적 감시견 노릇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여주기 식 엉터리 방역 소독이 혹 그럴듯한 사진이나 영상을 원하는 언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는 과잉대응이 아니라 공포만 부추길 뿐 아무런 실익이 없는 엉터리 대응이다.  

(도움말=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교수(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봉오동전투’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들어온다

문 대통령, 101주년 3.1절 맞아 ‘남북 보건협력’ 촉구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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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1  12: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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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일 101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사진제공-청와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10시 서울 배화여고 본관 앞에서 개최한 ‘101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이같이 밝혔다.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00년 전(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이 이끈 독립군 연합부대는 중국 지린성 허룽현 봉오동에서 일본군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사에서 첫 전면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임시정부는 ‘독립전쟁 1차 대승리’라 불렀으며, 그해 10월 ‘청산리대첩’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협조해 주신 카자흐스탄 정부와 크즐오르다 주 정부 관계자들, 장군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고 묘역을 보살펴오신 고려인 동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이 우리에게 국가의 존재가치를 일깨우고, 선열의 애국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함께하면 해낼 수 있다는 3·1독립운동의 정신”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지금도 발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한의 교민을 따뜻하게 맞아주신 아산·진천·음성·이천 시민들과 서로에게 마스크를 건넨 대구와 광주 시민들, 헌혈에 동참하고 계신 국민들께 경의를 표한다.”
  
▲ 서울 배화여고는 100년전 3.1만세운동 1주년 시위가 거행된 곳이다. [사진제공-청와대]
특히, 문 대통령은 “우리는 이번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통해 초국경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면서 “북한은 물론 인접한 중국과 일본,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에 향해 “보건 분야의 공동협력”을 촉구했다.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고 접경지역의 재해재난과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할 때 우리 겨레의 삶이 보다 안전해질 것“이라고 했다.
일본을 향해서는 “과거를 직시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며 “과거를 잊지 않되,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일본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코로나19’ 사태 하에서 열린 이날 101주년 3.1절 기념식에는 문 대통령 내외, 대구에 상주 중인 정세균 총리를 제외한 5부 요인, 정당대표, 국무위원과 보훈처장, 김원웅 광복회장, 배화여고 학생 등 50명이 참석했다.
배화여고는 1920년 3월 1일 배화학당 학생 40여 명이 만세운동 1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개최한 곳이다. 만세운동 1주년 행사에 참여한 학생 40여 명 중 24명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이 중 18명의 공적이 확인돼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
<3.1독립운동 101주년 기념사(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비상한 시국에 3·1절 기념식을 열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이지만,
1920년 3월 1일 첫 번째 3·1절을 기념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이곳 배화여고에서,
3·1절 101주년 기념식을 열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1919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공화국의 첫 번째 달력 ‘대한민력’을 발간하면서,
3월 1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하고 국경절로 표시했습니다.
임시정부는 3월 1일을
‘대한인이 부활한 성스러운 날(聖日)’로 내무부 포고를 공포하며,
상해에서 최초의 3·1절 기념식과 축하식을 거행했고,
배화학당을 비롯한 전국·해외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념 만세시위가 열리는 구심 역할을 했습니다.
서대문 감옥에서는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독립만세를 외쳤고,
동경과 블라디보스톡, 미국, 프랑스에서도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를 선언했습니다.
우리 겨레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3·1독립운동 기념식은 일제강점기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일제는 특별경비와 예비검속으로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침묵시키고자 했지만,
학생들은 동맹휴학으로, 상인들은 철시로,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살려냈습니다.
1951년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외환위기가 덮쳐온 1998년에도,
지난 100년간 우리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3·1독립운동을 기념하며
단결의 ‘큰 힘’을 되새겼습니다.
함께하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금 3·1독립운동으로 되새깁니다.
매년 3월 1일, 만세의 함성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오늘의 위기도 온 국민이 함께 반드시 극복해 낼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1919년, 한해에만 무려 1,542회에 걸친 만세 시위운동으로
전국에서 7,600여 명이 사망했고, 만6,000여 명이 부상했으며,
4만6,000여 명이 체포 구금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이 가혹했지만,
우리 겨레의 기상은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학생, 농민, 노동자, 여성이 스스로
독립과 자강, 실력양성의 주인공이 되면서
오히려 더 큰 희망을 키웠습니다.
1920년 1월 13일,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은
대한독립군 홍범도 의용대장의 권고문을 실어
무장투쟁의 정당성과 국토회복을 위한 각오를 다졌습니다.
1월 30일에는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서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될 76명의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민족교육운동으로 실력을 양성했고,
여성의 교육과 권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일제의 수탈과 억압에 저항했고,
기업가들은 근대적 기업을 일구기 위해 분투했으며,
국민들은 민족경제 자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자각한 국민들의 자강 노력이 이어지면서
1920년에만 무장항일 독립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무려 1,651회나 펼쳐졌습니다.
그해 6월, 우리 독립군은 일본군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 최초로 전면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바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였습니다.
임시정부는 이를 ‘독립전쟁 1차 대승리’라 불렀습니다.
1920년 3월,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독립군 북로군정서와 체코군 간에 무기 매수계약이 이뤄졌습니다.
9,000명의 ‘인간사슬’로 연결해 운반해온 이 무기들이
10월 ‘청산리 전투’ 승리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된 군대와
식량과 의복을 지원한 우리 겨레 모두가
독립군이었고 승리의 주역이었습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3·1독립운동이 만들어낸 희망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오늘 저는 온 국민이 기뻐할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분의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입니다.
협조해 주신 카자흐스탄 정부와 크즐오르다 주 정부 관계자들,
장군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고 묘역을 보살펴오신
고려인 동포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갈 힘을 키우는 일입니다.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나갈 것입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이
우리에게 국가의 존재가치를 일깨우고,
선열의 애국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왔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목표로,
‘소재·부품·장비의 독립’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함께하면 해낼 수 있다는 3·1독립운동의 정신과
국난극복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는 단합된 힘으로 역량을 길렀습니다.
무상원조와 차관에 의존했던 경제에서 시작하여
첨단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했고,
드디어 정보통신산업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지금도 온 국민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고, 위축된 경제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우한의 교민을 따뜻하게 맞아주신 아산·진천·음성·이천 시민들과
서로에게 마스크를 건넨 대구와 광주 시민들,
헌혈에 동참하고 계신 국민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전주 한옥마을과 모래내시장에서 시작한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 곳곳의 시장과 상가로 확산되고 있고,
은행과 공공기관들도 자발적으로 상가 임대료를 낮춰
고통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은 성금을 내고 중소 협력업체에 상생의 손을 내밀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채 격리병동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나누고 희망을 키워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 이어지고 있는 응원과 온정의 손길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저력입니다.
전국에서 파견된 250여 명의 공중보건의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 많은 의료인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뒤로한 채 대구·경북을 지키고,
많은 기업들과 개인들이 성금과 구호품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대구·경북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와 함께 정부는
선별진료소와 진단검사 확대, 병상확보와 치료는 물론,
추가 확산의 차단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국민들께서 힘을 모아주실 것이라 믿으며,
반드시 바이러스의 기세를 꺾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 믿습니다.
정부는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려
전방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비상경제 시국’이라는 인식으로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 데도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관광·외식업, 항공·해운업 등에 대한
업종별 맞춤형 지원을 시작했고,
보다 강력한 피해극복 지원과 함께
민생경제 안정,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전례 없는 방안을 담은
‘코로나19 극복 민생·경제 종합대책’도 신속하게 실행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비비를 적극 활용하고
추경 예산을 조속히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겠습니다.
국회에서도 여야를 떠나 대승적으로 협조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방역의 주체’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하면 못해낼 것이 없습니다.
안으로는 당면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밖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뤄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독립이며, 새로운 독립의 완성입니다.
정부가 앞장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단합으로, 위기에 강한 우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합시다.
국민 여러분,
지금 세계는 재해와 재난, 기후변화와 감염병 확산,
국제테러와 사이버 범죄 같은
비전통적 안보 위협 요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통해
초국경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3·1독립선언서’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통합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인도주의를 향한 노력은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입니다.
북한은 물론 인접한 중국과 일본,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북한과도 보건 분야의 공동협력을 바랍니다.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고
접경지역의 재해재난과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할 때
우리 겨레의 삶이 보다 안전해질 것입니다.
남북은 2년 전, ‘9·19 군사합의’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그 합의를 준수하며 다양한 분야의 협력으로 넓혀 나갈 때
한반도의 평화도 굳건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침략행위에 무력으로 맞섰지만,
일본에 대한 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동양평화를 이루자는 것이 본뜻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3·1 독립운동의 정신도 같았습니다.
과거를 직시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되,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랍니다.
역사를 거울삼아 함께 손잡는 것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길입니다.
함께 위기를 이겨내고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위해
같이 노력합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우리는 국가적 위기와 재난을 맞이할 때마다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살려냈습니다.
단합된 힘으로 전쟁과 가난을 이겨냈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뤄냈습니다.
‘코로나19’는 잠시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지만
우리의 단합과 희망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억압을 뚫고 희망으로 부활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이
지난 100년,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 되었듯,
우리는 반드시 ‘코로나 19’를 이기고
우리 경제를 더욱 활기차게 되살려낼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를 믿고 격려하며 오늘을 이겨냅시다.
새로운 100년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갑시다.
감사합니다.
2020년 3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자료제공-청와대)

“친일청산” 3.1 만세시위 온라인에서 재현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0.03.0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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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대문 형무소 앞… ‘독립운동가와 함께하는 만세시위’

3.1운동 101주년인 3월1일.
이날 지역 곳곳에서 예정된 3.1 101주년 기념대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됐지만, 이를 대신하는 행동이 온라인에서 달아올랐다. 101년 전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친일청산’의 함성이 온라인에서 재현된 것.
아베규탄 시민행동은 이날 정오를 기해 ‘온라인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1일 낮 12시, ‘친일정치인 불매운동’ 홈페이지(http://nojapan415.com/31)에 접속해 ‘친일청산 만세’ 등 다양한 구호를 적고, 사진과 함께 지역 위치를 설정해 올리면 ‘전국 만세 지도’가 홈페이지에 표기되는 방식이다.
▲ 친일정치인 불매운동 홈페이지 ‘온라인 만세시위’ 참가 현황. 참가자들의 위치가 전국 만세지도에 표기되고 있다.
▲ 친일정치인 불매운동 홈페이지 ‘온라인 만세시위’ 참가 현황. 참가자들의 위치가 전국 만세지도에 표기되고 있다.
온라인 만세시위 참가자 중 일부는 이날 오전 서대문 형무소 앞에 모였다. ‘독립운동가와 함께하는 만세’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이를 사진(인증샷)으로 담아 온라인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친일이 부끄러운 세상을 만들자”, “친일정치인 불매하자”라고 외쳤다.
온라인 만세시위 게시판엔, ‘독립운동은 못 해도 불매운동은 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아파트 베란다에 걸어놓은 인증샷, 태극기 인증샷, ‘칼국수 먹다가 만세 삼창’ 인증샷 등 다양한 사진을 활용해 온라인 만세시위에 동참하는 참가자들이 줄을 이었다.
시민들은 또, 게시판에 올린 인증샷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지인들의 참가를 독려하기도 했다.
아베규탄 시민행동은 “3.1만세 함성을 온라인에서 재현해 ‘친일청산’의 의지를 선포하고 확산하는 계기”라고 이날 온라인 만세시위 취지를 전했다.
앞서, 아베규탄 시민행동은 이날 민중공동행동, 6.15남측위 서울본부, 동학실천시민행동, 조선동아청산시민행동과 함께 탑골공원에서의 만세시위 후 풍물과 만장 등을 앞세우고 퍼포먼스를 벌이며 일본대사관, 미대사관을 거쳐 조선일보 앞까지 행진하는 ‘민족자주실현, 친일적폐청산 대행진’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대행진을 취소하고, ‘친일정치인 불매운동 선포’ 기자회견 또한 연기했다.
시민행동에서 벌이는 ‘친일정치인 불매운동’은 21대 총선에서 후보자 선택 기준을 ‘친일청산’으로 제시하고 말 그대로 ‘친일정치인을 불매하자’는 운동이다.
시민행동은 “얼마 전 이우연 박사가 수요집회 인근에 일장기를 들고 등장했다.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반인권적·반역사적인 흐름이 우리사회에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런 친일극우적인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사회 친일청산 운동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민행동이 진행하고 있는 ‘친일정치인 불매선언’엔 전국 6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 중이다.
시민행동은 또, 친일정치인 불매선언과 함께 총선 후보자들에게 친일청산 4대 입법과제(▲친일망언 피해자 모욕 처벌 ▲친일반민족행위자 훈장 서훈 취소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이장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공개질의를 보내 답변을 근거로 ‘친일정치인 불매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친일정치인 불매운동 홈페이지(온라인 만세시위 참여하기) : https://nojapan41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