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2009년 모 기업인에 투자 권유 두달 뒤에 윤석열 장모에 건너간 돈 김씨 가족회사 2년뒤 2585㎡ 사들여
LH 포기 뒤 민간개발 추진 의혹 일어 당시 인허가권자인 김선교 양평군수 윤 후보 경선 당시 선거캠프서 활동
법원 소송 판결문서 “투자” 인정에도 윤 후보 쪽 “투자금 유치 아니다” 부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부인 김건희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인 김건희씨가 경찰이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경기 양평 ‘공흥지구’ 개발에 8억원의 투자금을 조달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 김씨의 직접 관여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0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김씨는 2009년 5월께 ㅁ기업 대표이사의 아들 배아무개씨에게 공흥지구 투자를 권유했다. ㅁ기업은 두달 뒤 윤 후보의 장모 최아무개(74)씨에게 8억원을 건넸고, 이 돈은 2011년 12월 최씨의 가족기업이자 김씨가 한때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부동산 개발업체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공흥지구 내 임야 2585㎡(782평)를 사들이는 데 쓰였다.
민영개발 승인 전에 투자 유치
경기 양평군 양평읍 공흥리 일대 2만2411㎡(6780평) 규모의 공흥지구는 2006년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민임대주택사업을 추진했지만, 양평군이 반대해 2011년 7월 사업을 포기했다. 한달 뒤 이에스아이엔디가 350가구 규모의 민간개발을 양평군에 제안했고, 양평군은 2012년 11월 도시개발사업을 승인해 사업이 본격 진행됐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엘에이치가 사업을 추진하다 포기하고 이후 자치단체가 민간개발을 승인한 구조는 최근 불거진 성남시 대장동 개발 과정과 비슷하다.
특히 윤 후보의 아내인 김씨가 공공개발이 추진되던 2009년에 투자금 8억원을 유치하고, 양평군의 사업 승인 이전에 개발지 토지를 사들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처럼 양평군과 유착해 민간개발을 추진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개발사업 인허가권자였던 양평군수는 윤 후보 경선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경기 여주·양평)이다. 이와 관련해 윤 후보 쪽은 <한겨레>에 “김씨는 (공흥지구) 투자금을 유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장모 최씨를 상대로 ㅁ기업이 공흥지구 개발 수익 186억원 가운데 일부를 배분해달라고 낸 민사소송의 판결문을 보면, 김건희씨의 투자 권유 사실은 법원도 인정했다. 판결문에는 “최씨의 딸인 김씨가 2009년 5월경 ㅁ기업 대표이사 배아무개씨의 아들에게 이 사건 사업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이에 ㅁ기업은 2009년 7월15일 최씨와 ‘ㅁ기업이 최씨에게 공흥지구 개발에 관하여 8억원을 투자하고 사업 수익금 중 일부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투자 약정을 체결했다”고 돼 있다. 김씨가 공흥지구 개발 투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한 것을 법원이 기초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투자전문사가 또 대출 명의 대여
공흥지구 개발이 늦어지자 ㅁ기업은 투자금 반환을 요구했고, 최씨는 그의 부동산 투자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투자자문사인 ㅇ법인의 도움을 받았다. 판결문을 보면 “최씨는 자신의 부동산에 담보를 설정해 ㅇ법인의 명의로 신안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20억원을 대출받았고 그중 8억원을 (2013년 5월) ㅁ기업에 지급”했다고 돼 있다. 실제 최씨가 소유한 서울 암사동 빌딩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2013년 4월 ㅇ법인 명의로 채권최고액 26억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다만 ㅇ법인이 과거 최씨의 잔고증명서 위조에 관여한 곳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씨는 2013년 성남시 도촌동 땅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총 347억원 규모의 신안저축은행 통장 잔고증명서 4장을 ㅇ법인 관계자인 김아무개씨를 통해 위조했는데, 이 중 3장은 예금주가 최씨 명의였고 1장은 ㅇ법인 명의의 잔고증명서였다. 이처럼 최씨의 부동산 매입 과정 등에 여러차례 등장하는 ㅇ법인이 사실상 명의를 빌려주면서까지 최씨의 대출을 도운 셈이다. 기업전문인 한 변호사는 “ㅇ법인 자체가 본래 사업 목적이 아닌 자금 융통을 통해 운영되는 페이퍼컴퍼니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한편, 법원은 “최씨가 ㅁ기업에 투자금 8억원을 돌려줌에 따라 최씨와 ㅁ기업의 투자 약정은 합의 해지됐기에 공흥지구 개발 수익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ㅁ기업이 이익배당금 소송에서 패소한 것이다.
“투자금 조달이 아니라 대여”
윤 후보 쪽은 “해당 거래는 투자금 조달이 아니라 대여였다. ㅁ기업이 8억원을 회수한 뒤 사실관계를 왜곡해서 수익 배분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이에스아이엔디는 엘에이치가 어떤 부지에서 어떤 사업을 진행하는지도 몰랐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2013년 6월 청산한 ㅁ기업 쪽에도 투자와 소송 경위 등을 물었지만, 이 회사 대표 배씨는 “과거 사건을 다시 말하기 싫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제시했던 국토보유세를 두고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하겠다"고 밝혔다. 캠프 쪽에선 당내 경선 때 박용진 의원이 주장했던 '국부펀드' 공약을 활용해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지난 18일 전국민 재난지원금 주장을 철회한 데 이어 이 후보가 국토보유세 공약까지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당내 일각에서는 "우클릭을 위해 '기본소득' 색을 빼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후보는 지난 29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90%이상의 국민들은 내는 것보다 받는 게 많기 때문에 사실은 세금 정책이기보다는 분배 정책에 가깝다"면서도 "국토보유세에 대해 불신들이 많고 오해가 많기 때문에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전제로 추진하겠다.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 후보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원하기 위해 토지에 세금을 매기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하고, 이를 토대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한 민주당 의원은 3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번에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철회했던 것과 같은 맥락 아니겠나"라며 "대선까지 100일도 채 안 남았는데, 기본소득을 설득하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봤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의원은 "기본소득에 대해선 친문 등 당내 설득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당내 일부에선 '기본소득특위'를 만들어 후보를 뒷받침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고도 전했다.
또 다른 정책라인 관계자는 "기본소득 하면 좌파 정책이란 인식이 강하다. 우클릭이 필요한 현 시점에선 맞지 않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 후보는 당 선대위 출범 이후 대대적인 디지털 투자 등 '성장' 공약만 제시했을 뿐(11월 23일), 아직 기본소득에 대해선 공약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 후보는 당내 경선을 치르던 지난 7월, 2023년부터 연간 청년 125만 원-전국민 25만 원을 시작으로 임기(2027년) 내에 연간 청년 200만 원-전국민 100만 원으로 기본소득을 확대해가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기본소득 철회하겠다는 건 아냐"… '국부펀드' 활용 재원 마련 방안도 고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8일 광주시 남구 양림교회에서 열린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며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다만 캠프는 '기본소득 공약을 후퇴시킨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기본소득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당으로부터 8개월 당원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이상이 제주대 교수 논란 등을 고려해 기본소득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삼가는 것일 뿐, 기본소득을 통한 재분배 효과에 대해선 이재명 후보 본인의 소신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이상이 교수 건 등에서 보듯 민주당 지지층 내 분열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문제를 다시 꺼냈다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부담스럽다"라며 "일단 '원팀' 기조를 훼손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기본소득 문제는 잠시 덮어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토보유세를 안 할 수도 있다'는 발언 역시 이 후보가 기본소득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실제 기본소득에 대한 후보의 신념은 확고하다"면서 "독불장군처럼 모든 걸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유연한 정치인이라는 점을 피력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후보 측은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국토보유세 등 세금이 아닌, 당내 경선 때 박용진 의원이 제시했던 '국부펀드' 방식 등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이 후보가 기본소득에 대한 의지가 강한 건 맞지만, 국토보유세·탄소세·로봇세 등 세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기존 공약은 현실적인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라며 "공영개발을 통한 수익이나 국부펀드로 창출한 부를 활용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와 국회의원들이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국가보안법 피해 사례 국회 청취회-하루라도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에서 나온 증언이다.
이날 청취회는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12명의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12명의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보안법 피해 사례 국회 청취회-하루라도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를 개최했다. [사진제공-국민행동]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 씨는 청취회에서 간첩 조작으로 여동생을 비롯해 온 가족의 일상이 무너진 이야기를 생생히 전했다.
이어 유 씨는 “나에게 간첩 누명을 씌우고 기소하여 구속한 검사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조작의 증거들이 밝혀졌을 때 잠시 국가보안법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21대 국회의 용기 있는 결단을 주문한다”라고 촉구했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 씨가 청취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민행동]
그리고 ‘북침설 종북교사’라는 누명으로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되었던 강성호 교사는 “수업 중 학교장의 급한 부름이 있다고 하여 교장실에 갔는데 제천경찰서 대공과 형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끌려나갔다”라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강 교사는 “대공과 취조실에서 제자들과 마주쳤던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내가 북침설 수업을 했다던 그날 결석으로 수업 시간에 없었던 제자 2명에게 북침설 수업을 들었다고 거짓 진술을 하게 했던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라고 규탄했다.
1982년 안기부에 연행돼 옥고를 치렀던 강 교사는 올해 9월 2일 재심 판결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 증언하는 강성호 교사. [사진제공-국민행동]
또한 만 10년째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이선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은 “어느 날 갑자기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의 자택 압수수색을 받았다. 그리고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 도중 경찰이 내 휴대전화 3년 치 통신 내역, 개인 이메일 등을 모두 조사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면서 “시중에서 판매하던 도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모임인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자료집 등을 모두 이적표현물이라 규정하여 기소의 증거로 삼았다. 이 부당함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지금까지 법정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조지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가보안법폐지TF 소속 변호사는 ‘북한 찬양 트윗을 리트윗했다가 구속되어 무죄를 선고받았던 사건, 민중가요 혁명동지가 제창이 국가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사건, 활빈단의 국가보안법 허위 고발사건, 축구선수 정대세 고발사건, 시 낭송 극 고발사건, 북한 컨셉 홍대 앞 주점 사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북한 미화 고발사건’ 등 지금도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국가보안법 피해 사례들을 소개했다.
이어 조 변호사는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특징은 상당히 높은 무죄율, 과반이 넘는 집행유예 비율, 7조 1항과 5항 관련 사건의 높은 비중과 현저히 낮은 양형 수준, 인터넷 활동·탈북자·대북사업 관련 등으로 확장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청취회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서면 축사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존치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지만, 오늘 청취회의 사례처럼 국가보안법으로 많은 피해자가 실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국민주권의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원칙에 따라 국민의 안전과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라면서 “논의를 모아나가”라고 제안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만은 새로운 시대의 청년들에게 절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 폐지만큼 중요한 일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국가권력이 저지른 전횡을 생생히 기억하는 일”이라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임기만료일까지 연장한 것은 대선을 의식하여 우리 시민의 고통을 나중으로 미루어버린 부끄러운 기득권 정치행태”라고 비판했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은 우리들의 생각과 양심을 법과 정치의 감옥에 구속해 놓은 법이다. 생각과 양심을 감옥에 가둔다는 것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감옥에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촛불시민의 정신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에서 남은 임기 안에 반드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가보안법 제정일인 내일(12월 1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등 항의 행동이 이어질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오후 2시에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과 항의 행동을 진행한다. 경기,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전남 등 주요 도시에서도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불법파견 판결을 받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는 기업의 행태를 국가기관이 바로잡아달라고 항의한 일이 죄가 됐다. 청와대 앞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친 일도 죄가 됐다.
검찰이 30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아사히글라스 등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이들에게 공동퇴거불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합게 21년의 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이 문제 삼은 행위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2018년 7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11명이 2004년 이후 이어진 30여 번의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따라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려달라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농성했다. 같은 해 10월 현대기아차, 아사히글라스, 한국지엠 비정규직 6명이 각 사업장의 불법파견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며 대검찰청에 항의방문했다.
2019년 1월에는 현대기아차,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6명이 청와대 100미터 이내에서 손자보를 들고 "불법파견 사용자처벌", 비정규직 이제 그만" 등 구호를 외쳤다.
가진 것은 몸뿐이라 항의방문과 집회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한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선고 공판은 내년 2월로 예정돼 있다. 세 달 뒤 법원이 검찰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들은 감옥에 가게 된다. 맞은편에 선 제조업 불법파견 사용자 중 징역을 산 이는 아직 없다.
검찰로부터 최고 구형인 징역 5년을 받은 김수억 전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에게 지금의 심경과 이번 재판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30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관계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게 합계 20년이 넘는 징역형을 구형한 검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검찰이 오늘 재구형 공판을 잡아 지난달 19일 구형을 바꿨다.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 대한 징역형을 합계 22년 6개월에서 21년으로, 김 전 지회장에 대한 징역형을 5년 6개월에서 5년으로 낮췄다. 재구형을 들으며 어떤 심정이었나?
김수억 : 구형이 낮아졌지만 마음이 참담했다.
검찰이 처음에 무리하게 기소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사용자 처벌을 요구하며 대검찰청 로비에서 농성한 걸 가장 무겁게 처벌하려고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했다. 그런데 검찰 스스로도 혐의가 성립되지 않을 것 같으니 공동퇴거불응으로 기소 내용을 변경했다. 그러면서 형량이 낮아졌다.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자인하면서 형량이 낮아진 거지 요구의 정당함이나 절박함을 참작해 형량이 낮아진 게 아니다. 오늘도 17명 모두에게 징역형을 구형했다.
불법파견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불법파견으로 고통 받은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범죄자로 구형을 들어야 하는 현실이, 이게 과연 정부와 검찰이 이야기했던 정의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프레시안 : 오늘 최후진술을 다시 했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했나?
김수억 : 정말 이 비정규직들이 그토록 큰 죄를 지었는지, 검찰이 기소한 대로라면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에 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요구한 게 죄인지, 16년 넘게 불법파견 범죄를 저지른 재벌기업을 법대로 처벌하고 법대로 시정명령을 내려달라고 한 게 죄인지 물었다. 그 16년 동안 정부와 검찰이 불법파견 범죄를 법대로만 다뤘다면,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정에 서는 일은 없었을 거다.
제발 정부와 검찰이 재벌기업의 범죄에 대해 법대로는 처벌과 집행을 해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고 재벌 편에 서서 호위무사 역할만 하면 억울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법정에 서는 일은 계속될 거라고 했다.
우리가 처벌받아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 받지 않는 일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구형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다만, 이재용과 정의선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한 그 기준대로 처벌하고 구속시켜라. 그것이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다. 이렇게 말씀드렸다.
프레시안 : 주변 사람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김수억 :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님이 오늘 재판을 참관했는데 마지막에 판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들이 죽고 나서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통 받고 차별 받고 힘들게 싸우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내 귀로 들었다. 이 비정규직들 잡아갈 거면 나도 잡아가라"고 했다. 그걸 들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구형을 받은 다른 노동자들과는 불법파견 책임자를 법대로 처벌하라고 외치는 일이 범죄가 되는 현실은 상식과 정의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 계속해서 바꿔나가자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했다.
▲ 2019년 9월 서울고용노동청 앞 천막에서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촉구하며 단식 중이던 김수억 전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을 어기면서도 노동부와 대검찰청에 항의방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김수억 : 어찌 보면, 누구보다도 법에 의존했고 법대로 해달라고 했던 사람이 오늘 구형 받은 노동자들이다. '법원이 현대차에 서른 번 넘게 불법파견 판결을 했으면 그 법을 어긴 사람을 처벌해야 된다'고 했고,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으면 시정명령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도. 검찰도. 사법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떤 재벌도 처벌받지 않았다.
정부에 기대고 법에 기대고 검찰에 기댔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동안 현대기아차만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90명 넘게 해고되고 20명 가까이 구속됐다. 12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도 있었다. 세 명은 목숨을 끊었다. 그러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뭘 해야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해서 농성하고 단식하고 집회한 게 아니다. 법에 먼저 기댔지만 정부와 검찰, 사법부는 법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와 검찰, 사법부의 호위를 받으면서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들이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가 있다.
프레시안 : 오는 2월이 선고다. 재판을 지켜볼 시민과 노동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김수억 : 재판부가 신중하게 판단하기 위해 선고일을 2월 9일로 길게 잡았다. 그런데도 상식과 정의를 바로잡자고 이야기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징역을 살게 된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이 나라의 법이 재벌 편에 선다는 걸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퇴진 촛불을 들었던 노동자와 시민이 바란 세상이 이런 세상은 아니었을 거다.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가 지켜지는 세상을 바랐을 거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이고,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다. 더이상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 받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을 바라면서 이야기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디 억울하게 또 다시 감옥에 갇히는 일에 없도록, 또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하는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도록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코로나시대는 노동의 양극화를 확연히 드러냈다.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들은 재택근무가 가능했고, 돌봄을 위한 휴직도 가능했다. 사람들이 집안에 갇혀 지내는 ‘언택트 시대’가 되어도 사회를 유지시킨 노동자들이 있었다.
택배와 배달노동자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켜줬다. 학교와 어린이집이 멈췄지만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긴급돌봄’이 유지됐다. 학교와 어린이집, 돌봄시설들이 멈추자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됐다. 우리 사회를 유지시켜 주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필수노동자라고 불렀다.
아이러니하게 ‘필수노동자’ 대다수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처해있는 대표적인 노동자였다. 노동관계법으로 보호되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동자다. 필수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코로나 시대의 노동’ 마지막 편은 우리사회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를 해소할 방안을 살펴본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는 두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법제도를 통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직,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와 교섭을 통해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법적으로 ‘근로자’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한국에는 노동자 권리의 ‘최저선’을 제시하는 노동관계법들이 있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이름만 봐도 무슨 법인지 알 수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받을 수 있는 주휴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이나 사회보험 가입, 연차 등의 권리가 주어진다.
문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국민입법센터 신의철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은 물론 다른 노동관계법에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는 규정을 준용해서 쓰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요양보호사도 최근까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시절에는 노동부가 직접 나서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결국 몇 년 간의 재판을 통해 법원에서 인정받고 나서야 비로소 법적으로 보호받는 ‘근로자’가 됐다. 아이돌보미는 아직도 재판 중이다.
‘근로자’라고 해도 각종 예외가 존재한다. 수습 3개월이내 노동자나 장애인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에서 예외다. 상시 4명 이하 사업장도 각종 가산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예외 인데다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상 차별시정조치도 요구할 수 없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한다면 연차는커녕 주휴수당도 없고 휴일수당도 적용받지 못한다. 요양보호사나 아이돌보미 등 돌봄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이런 계약을 하고 있다. 그들을 고용하는 ‘센터’에서 일거리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런 계약을 강요한다. 당연히 수당도 연차도 4대보험도 없다. 법적으로 ‘예외조항’을 만들었더니 ‘합법적 차별’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시간이 없을 때 조부모에게 맡겨졌던 보육이 이제 사회로 나오고 있다. 보육시설과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이 보육을 담당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문제는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은 아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일러스트 내가그린기린그림
택배노동자같은 특수고용노동자나 배달노동자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아예 고려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이들은 임금이 아니라 ‘수수료’를 받고 있는, 사용자에게 종속되지 않은 사업자이기 때문에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언뜻 보면 보통 회사원같은 백화점 판매원이나 정수기 수리 기사 같은 노동자들도 ‘근로자성’을 인정해 달라고 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의 정의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의 핵심부분 중 하나가 ‘종속성’이다.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종속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근로자성을 얻지 못한다.
신의철 변호사는 “현장의 노동관계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했던 1970년대 전태일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일면적 관계에서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구조가 업종마다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돌봄노동만 하더라도 이용자-돌봄노동자-센터-정부로 이어지는 다층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기존의 단면적 관계를 전제로 하여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종속성만을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파악하는 것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노동법의 보호영역 밖으로 내치는 것에 다름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에 맞게 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방향은 포괄범위를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입법센터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① 1. “근로자”란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사업을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자원봉사인 경우를 제외한다.
‘근로자’의 정의를 이렇게 바꾸면 계약의 형식에 관계 없기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까지 포괄할 수 있다. 임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치 자원봉사로 인식돼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교육생이나 무급인턴도 포함된다. 이들을 통해 다른 노동자를 고용할 비용을 줄였거나 이익을 얻었다면, 당연히 ‘근로자’로서 임금을 요구할 권리가 있게 된다.
플랫폼 노동은 각종 산업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노동자는 있는데 이 노동자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사용자가 아니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에서 사용자의 정의는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고 돼 있다. 국민입법센터는 근로기준법을 바꾸면서 플랫폼 사업자를 사용자로 규정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포함시키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신설>2의2. ‘플랫폼 사용자’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제2조제4호에 따른 이동통신단말장치의 플랫폼을 통하여 물건의 수거·배달, 대리운전, 승차 업무를 의뢰받아, 그 업무를 수락하는 타인(이하 ‘플랫폼 노동자’라 한다)으로 하여금 노동을 제공하게 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플랫폼 노동자의 업무 수락 여부나 그 비율이 플랫폼 사용자의 플랫폼 접속 허락, 업무 수행 대가 결정 및 업무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한한다.
국민입법센터는 이와 함께 현행 노동관계법에 존재하는 각종 ‘예외 조항’을 대거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수습 3개월 이내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90% 지급가능 조항, 장애인에 적용되던 최저임금 지급 예외조항 등을 재검토해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에게 제외돼 있던 주휴수당, 연차, 무기계약직 전환 등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몇 년사이에 노동계의 주요 슬로건으로 떠오르는 것이 노조 할 권리 보장이다. (자료사진)ⓒ김슬찬 기자
노조,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은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의 ‘최저’를 보장할 뿐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월급을 올리거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중요한 방법은 자신의 조직을 만들고 사용자와 마주앉아 단체교섭을 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당연한 권리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 부르며 보장하고 있다.
현행 노조법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라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에 비해 범위가 비교적 넓게 규정돼 있다. 실업자나 해고자도 포함되고 근로기준법에서 주요 쟁점이 되는 ‘종속성’도 더 넓게 인정되는 편이다.
폭넓다고 해도 ‘누구나’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이지만 계약상에서 ‘사업자’로 등록되는 특수고용이나 플랫폼노동 같은 새로운 노동형태의 경우, ‘노조할 권리’가 곧바로 보장되지 않는다. 끝내 법원에서 판결을 받고 나서야 합법적 노동조합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시대 가장 주목받았던 노동조합 중 하나였던 택배노조 조합원이 ‘노조법상 근로자’라는 법원의 첫 판단은 2019년에야 나왔다.
특수고용이라는 형태가 등장한지 20년이 넘었다. 새로운 업종에서 새로운 형태의 계약이 등장하면 노조를 만들고 법원의 판결을 받고 교섭을 하는 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많이 들고 당연히 노동자의 권리도 미뤄진다.
“근로자”라 함은 계약의 형식에 관계 없이 타인의 사업을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거나 제공하려는 자를 말한다. 다만, 자원봉사인 경우를 제외한다. 사업주이지만 자신의 사업 내용이 다른 사업주로부터 지배적 영향을 받는 경우, 다른 사업주에 대한 관계에서는 “근로자”로 본다.
이렇게 법을 바꾸면 어떨까. 신의철 변호사는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간단히 규정하고, 사업주의 경우에도 다른 사업주로부터 지배적 영향을 받으면 근로자로 보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내 월급을 정하는’ 사람과 교섭할 수 없는 이상한 현실
법을 바꾸든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서 노동조합을 설립한다고 해도 더 험난한 난관이 존재한다. 도대체 ‘내 월급을 정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최근의 고용관계는 과거의 ‘사장-직원’이라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사내하청 노동자와 원청 사이에 하청업체가 있고 돌봄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는 정부에서 나오지만 법적 사용자는 각종 돌봄센터다. 택배기사와 택배회사 사이에는 집배점이 있고 플랫폼 노동자들의 수수료나 노동환경을 결정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법적으로 사용자로 규정되지 않는다.
신의철 변호사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구조적으로 사업의 이익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상위 사용자와 여러 방법으로 차단돼 있고 한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자가 여럿 있는 경우도 많다”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개념을 넓히는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계약의 유무와 형식에 상관없이 사업의 필수 부분을 운영하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노동을 제공받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며, 타인의 노동의 내용과 방식,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는 자를 모두 사용자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개념을 ‘공동사용자책임’이라고 말했다. 간단하게는 하청기업 사장도, 원청 사장도 모두 사용자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모회사도, 자회사도, 손자회사도 모두 사용자가 되면 재벌기업의 경우 재벌총수가 계열사 노동자의 사용자가 된다. 지금처럼 실질적 영향력을 갖는 재벌총수를 찾아가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해도 ‘법적 책임이 없다’는 허망한 답을 듣는 상황을 없애는 방안이다. 돌봄노동자의 경우 법적으로 계약을 맺고 있는 센터 뿐 아니라 임금을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정부와 ‘노정교섭’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신의철 변호사는 “미국의 공동사용자책임을 참고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공동사용자책임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채택한 개념이다. 기존에는 ‘근로자’와 ‘사용자’를 판단할 때 한국의 종속성처럼 ‘통제기준’을 적용했는데, 오바마 정부 이후 ‘경제적 실체 기준’을 채택해 근로자가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사용자인지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즉, 근로자의 수입이 어디에서 나오는지가 중요하고, 그 수입을 제공하는 사업주는 모두 사용자라는 말이다.
공동사용자책임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표적 노동 개혁 중 하나로 꼽힌다. 시카고에서 임기 마지막 고별연설을 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AP/뉴시스
공동사용자책임을 도입할 경우, 모든 사용자들에게는 근로조건을 보장할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우고 사용자로서 단체교섭을 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게 신 변호사의 설명이다. 즉, 노동자들이 ‘나의 월급을 결정하는 사람’과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정의를 개정해 이를 실현하면 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살펴본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면서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하면 노사 단체교섭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해 사회적 논란을 줄일 필요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용자”란 사업주(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근로자로부터 노동을 제공받는 자를 말한다) 또는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근로자의 노동의 제공 여부 및 노동조건의 결정에 관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업주가 둘 이상인 경우에는 계약의 존재 여부와 그 형식에 관계없이 이들을 모두 “사용자”로 본다. 다음 각 목의 경우를 포함한다.
가. 사업 운영에 상시 필요한 노무를 파견, 하청, 위탁 등 간접적 방식을 통하여 제공받는 자 나.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2조 2호의 가맹본부. 단, 같은 법 제3조 제1항의 소규모 가맹본부를 제외한다. 다. 근로자로부터 직접 노무를 제공받는 사용자에 대하여, 주식 소유, 임원 겸임 등 경영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사용자의 사업 내용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 라. 근로자로부터 직접 노무를 제공받는 사용자에 대하여, 계속적 거래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어 그 사용자의 영업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자
사장님들을 노사교섭에 나오게 하는 방법
나의 월급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교섭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하청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하나의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의 숫자는 적지만 업종별로 모이면 상당한 규모가 된다. 또한 이런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환경은 자신이 계약하고 있는 사업장에서 결정될 수 없기도 하다. 때문에 이들 노동자들은 한 회사나 사업장의 범위를 넘어 업종별로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있다. 택배노조, 라이더노조, 요양보호사노조 등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업종별 노동조합들이다.
이들과 교섭해야 할 사장들도 대부분 단체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업종은 ‘협회’나 ‘연합회’가 있다. 몇 년 전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 정책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나 어린이집 집단휴업을 주도했던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 같은 단체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어떤 업종이든 사업주들은 단체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 참여해 정책 결정에 관여하거나 국회에 입법로비를 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주최로 열린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 시행 의무화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김정엽 국민입법센터 연구기획팀장은 사용자단체의 개념을 확장해 이런 단체들에게 교섭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률상 법정단체로 구성돼 활동하는 사용자들의 단체나 정부의 정책 결정을 위한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의 단체는 물론, 사용자단체가 노동조합의 상대편인 만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향상 활동을 저해하는 사용자들의 집단까지 사용자단체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법률안 제28조(사용자단체에 관한 특칙) 돌봄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단체로서 다음 각 호 중 어느 하나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그 목적과 기능, 명칭에 관계없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3호의 사용자단체로 본다. 1. 사용자들에 대하여 돌봄노동자의 고용 또는 노무관리에 관한 지침을 정하거나 기준을 제시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2.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원회(위원회, 심의회, 협의회 등 명칭을 불문하고 행정기관의 소관 사무에 관하여 자문에 응하거나 조정, 협의, 심의 또는 의결 등을 하기 위한 복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합의제 기관을 말한다. 이하 같다)에 그 대표자 또는 구성원을 참여시키는 행위 3. 돌봄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하는 노동조합과 노동조건에 관하여 협의하거나 노동조합의 조직 또는 활동에 개입하거나 간섭하는 행위
위 조항은 국민입법센터가 조문한 돌봄노동자기본법의 한 부분이다. 김 연구기획팀장은 이 조항을 노동조합법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노동조합법을 이런 취지로 개정하면 중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데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들어 산업단지나 공업단지의 소규모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근로기준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4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들의 사업주가 속한 단체와 교섭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사용자단체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과 더불어 업종별로 노동자대표와 사용자단체가 교섭을 한 결과를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도 적용시키는 방안도 있다. 단체협약 내용을 사용자단체에 속한 모든 기업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를 ‘만인효’라고 한다.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노사교섭의 중요한 개념으로 적용되고 있다. 최근 노동계에서는 이런 방식, 즉 기업을 벗어나 업종별로 진행되는 ‘초기업교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초기업교섭이 자리 잡아가는 업종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설현장에서 개벌로 이뤄지던 교섭이 지역, 전국범위에서 이뤄지고 있고 타워크레인이나 레미콘의 경우 전국적으로 교섭을 통해 표준계약 조건이 정해지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이나 플랫폼노동의 경우 초기업교섭은 꽤 효과적인 대안이다. 노동조합은 있는데 사용자가 불분명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라이더들이 속해 있는 서비스일반노조와 우아한청년들이 플랫폼 배달업계 첫 단체협약을 맺기도 했다. 택배산업의 경우 사회적 협의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노사는 물론 소비자, 정부, 정당까지 참여하면서 교섭의 결과가 곧바로 법제정으로 이어졌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조합원들이 사회적합의를 촉구하며 총파업을 선언하는 장면ⓒ김철수 기자
초기업교섭은 노동자들에게만 좋은 제도는 아니다. 오히려 업계의 무분별한 경쟁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수기 수리기사를 예로 들면서 “시장에서 지배적인 기업이 있으면 수수료 덤핑을 하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이걸 못따라서 힘들어 한다”며 “업종별로 교섭을 하게 되면 노동조건을 맞추게 되면서 출혈적 경쟁을 안 해도 되는 시장경쟁 질서를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사용자단체들을 교섭으로 이끌어내는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업종별 단체들이 교섭을 회피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 프랑스의 경우 노조가 교섭을 요청했을 때 기업들과 업종별 단체들이 교섭대표를 정하지 않으면, 정부가 사용자 단체나 대표적인 기업을 교섭상대로 지정하기도 한다”면서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부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패널티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업교섭을 지역단위에서 활성화 해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노동조합법 중 ‘지역적 구속력’ 조항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제주지역에서 협동조합 공동교섭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주지역에 농협, 축협 등 23개 협동조합에 4천여명의 노동자가 있는데, 이 중 2/3를 조직하게 되면 지역적 구속력 조항으로 단체협약 내용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본부장은 “지역차원의 업종별 교섭을 하게 되면 지역 이슈가 되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나몰라라 하기 어렵다”면서 “지자체나 지방의회에 가능한 범위에서 제도개선까지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그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과 마주 앉아 교섭하는 것이다.ⓒ일러스트 내가그린기린그림
복잡해지는 산업구조, 노사교섭도 시대에 맞게 변할 때
이정희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초기부터 기업별 교섭 중심 체제가 아니었다”면서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사교섭이 기업단위에서 힘을 발휘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박정희 시절 잠시 산업별 노조 체제가 검토 됐는데, ‘어떻게 하면 잘 통제할 수 있느냐’의 관점이었다”면서 “결국 기업별 체제가 통제에 유리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전두환 시기로 가면서 완전히 기업별 노조 체제로 굳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근로기준법은 1997년 전면 재개정됐다. 이제 20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산업구조는 상당한 변화를 맞았다. 사장-직원’이라는 단순한 노사관계는 전통적 기업에서나 볼 수 있다. 오히려 전통적 고용구조를 갖고 있던 기업들도 하청, OEM, 외주용역 등의 간접고용이 늘고 있고,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노동, 시간제 계약 등의 새로운 고용형태가 늘고 있다.
노동관계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라면 변화된 상황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단순한 관계, 하나의 기업으로 갇혀있는 교섭을 확대해 실질적 교섭의 시대로 갈 필요가 있다. 사용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법적으로 누릴 혜택은 다 누리면서 노동자들과의 교섭의무는 피하는 현실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갈수록 노동자의 권리 사각지대가 넓어지는 과거 시스템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다. 그 중요한 출발은 노동자들이 실제 자신의 임금과 노동환경을 결정하는 사용자와 마주 앉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코로나시대의 노동
코로나19 펜데믹은 한국사회의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코로나 시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현장과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국민입법센터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는 현장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법 개정안’ ‘법 제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나아갔습니다.
총 5분야, 10개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4개 분야는 하나의 기사로 갈음하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른 ‘돌봄’에 집중해 시리즈 내의 시리즈로 6개의 기사를 준비했습니다.